이번 주 목요일인 11일에 ‘낙태죄(형법 269조)’에 대한 헌법재판소의 판결이 나온다. 헌법재판소는 작년 2월부터 낙태죄 처벌 조항이 위헌인지 확인해 달라는 헌법소원을 심리해왔다. 인공 임신중절(낙태)을 형법으로 금지한다는 것은 시민의 재생산권(reproduction rights), 즉 임신과 출산 전 영역을 국가가 통제하고 관리해야 한다는 입장을 반영하는 것이다. 낙태죄 폐지를 찬성하는 사람들은 재생산권이 그 당사자인 개인, 여성에게 있다고 주장한다. 재생산이란 임신, 출산, 양육 등 가사노동을 하는 여성의 활동이다. 재생산권은 말 그대로 여성 자신이 재생산 여부를 주체적으로 결정할 수 있는 권리다. 성관계, 임신, 피임, 출산 그리고 임신 중절 등이 이 권리에 포함된다.
임신중절은 형법상으로 1953년부터 불법이다. 다만 1973년부터 모자보건법(母子保健法, 제14조 1항)에 의해 임산부 또는 그 배우자가 대통령령으로 정한 우생학적 · 유전학적 정신장애나 신체 질환, 혹은 전염성 질환이 있는 경우, 강간 혹은 근친상간에 의해 임신한 경우, 마지막으로 임산부 건강에 위험이 있을 때 제한적으로 허용하고 있다. 여러 가지 사회경제적인 이유(원치 않는 임신, 양육에 대한 경제적 부담감 등)로 임신중절을 하려는 행위는 허용하지 않아서 대부분의 임신중절은 법을 어기면서 행해진다. 무허가 임신중절 시술은 시술자 여성의 건강을 해치거나 목숨을 잃게 만드는 원인이다.
2010년에 임신중절 근절 운동을 주도하는 산부인과 의사들의 모임인 ‘프로 라이프(pro-life) 의사회’가 불법 낙태 시술을 한 산부인과 병원 3곳을 고발한 일이 있었다. 프로 라이프는 태아의 생명을 중시하여 ‘낙태 범죄화’를 옹호하는 입장이다. 임신중절을 찬성하고 여성의 선택권을 중시하는 입장은 ‘프로 초이스(pro-choice)’이다. 미국에서는 오래전부터 ‘프로 라이프 대 프로 초이스’ 논쟁이 사회적으로 중요한 이슈가 돼 왔다.
지난달 마지막 날인 일요일(3월 31일)에 대구에서 열린 ‘페미니즘 이어 달리기’ 14탄의 강연 주제는 ‘낙태죄 폐지’에 관한 것이었다. 이 날 강연자는 녹색병원 산부인과 과장인 윤정원 님이다.
* ‘성과 재생산 포럼’ 기획 《배틀그라운드》 (후마니타스, 2018)
* 이은의, 윤정원, 은유, 박선민, 오수경 《불편할 준비》 (시사인북, 2018)
사실 지금도 그렇지만, 우리나라 낙태죄 폐지 운동은 모자보건법의 낙태죄 적용 예외 규정을 ‘사회경제적인 이유에 의한 인공 임신중절’로 개편해야 한다는 수준에 머무르고 있다. 앞서 설명했듯이 낙태죄 폐지 운동을 통해 성취하고자 하는 목표는 여성의 재생산권과 자기 통제권이다. 장애’을 뜻한다. 그렇기 때문에 ‘낙태’라는 단어를 자주 쓸수록 마치 임신 중 여성 인권 단체인 ‘장애여성공감’은 이러한 논의만으로는 장애 여성의 재생산권을 충분히 다룰 수 없다면서 비판했다. 이렇게 만들어진 것이 바로 ‘성(性)과 재생산 포럼’이다. ‘성과 재생산 포럼’은 장애 여성의 재생산권과 이것이 가지는 사회적 의미, 여기서 발생하는 다양한 연대의 가능성을 논의했다. 그러한 논의가 담긴 책이 바로 《배틀그라운드》다. 이 책에 윤정원 님이 쓴 글 『인권과 보건의료의 관점에서 본 임신 중지』가 실려 있다. ‘낙태죄 폐지 논란’ 문제를 이해하기에 앞서 가장 먼저 알아야 할 것이 바로 ‘재생산권’의 의미이다. 《불편할 준비》에 실린 윤정원 님의 글 『산부인과 사용 설명서 – 생리에서 낙태죄까지』를 읽어 보면 재생산권의 의미뿐만 아니라 정부와 사회가 여성의 재생산권에 얼마나 무관심했는지 알 수 있다. 여성의 재생산권은 건강권과 직결되어 있다. 여성의 몸을 ‘출산을 위한 도구’로 여기는 인식의 틀은 예나 지금이나 별로 달라진 게 없다.
그날 강연은 인공 임신중절에 대한 이해와 공감을 높이는 시간으로 꾸며졌다. 낙태죄 폐지를 찬성하는 페미니스트들은 ‘낙태’ 대신에 ‘임신 중절’이라는 단어를 주로 많이 쓴다. 낙태(落胎)는 ‘배 속에 있는 아기를 떨어뜨리는 것(없애버리는 것)’을 뜻한다. 그렇기 때문에 ‘낙태’라는 단어를 자주 쓸수록 마치 임신 중절을 선택한 여성들이 생명을 존중하지 않는 것으로 인식하게 만든다. 인공 임신중절이 ‘안전한 의료서비스’로 보장하지 못한다면, 여성의 건강권은 위협받는다. 외국의 경우를 보면 음성적인 임신 중절 시술이 오히려 여성들의 건강을 심각하게 훼손하기 때문이다. 불법 임신 중절 시술은 여성들에게 정신적 육체적으로 심각한 후유증을 남길 뿐만 아니라 사망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불법 임신 중절 시술로 인한 불의의 사고는 ‘의료 사고’로 인정받지 못한다.
임신 중절의 방법은 크게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지금까지 언급한 ‘수술 유산(surgical abortion)’이다. 또 하나는 ‘약물 유산(medical abortion)’이다. 약물 유산은 약을 먹으면서 유산을 유도하는 방식이다. 가장 많이 알려진 유산 유도약(언론에서는 ‘먹는 낙태약’이라고 쓰던데, 이 단어 역시 ‘낙태’처럼 임신 중절에 대한 부정적인 의미를 상기한다)은 미페프리스톤이다. 흔히 우리나라에서는 ‘미프진’이라는 이름으로 알려져 있다. 미프진은 여성의 몸에서 나오는 호르몬인 프로게스테론을 억제하여 임신할 수 없게 한다. 미프진을 복용하면 생리통과 비슷한 복통이 일어나거나 하혈 증세가 발생할 수 있다. 그러나 미프진 복용 후의 치사율은 극히 낮으며(미국에서 2000~2011년 동안 미프진을 처방받아 복용한 152만 명 중 패혈증으로 사망한 사례는 단 8건에 불과했다[주]), 이미 2005년에 필수의약품 목록에 포함되었을 정도로 약의 안전성은 입증되었다. 하지만 낙태를 범죄로 보는 우리나라에서는 미프진은 국내에 반입할 수 없다. 2000년에 미프진 도입 논의가 잠시 있었지만, 보건복지위의 식약청 국정감사에서 “먹는 낙태약은 생명 경시 풍조를 조장하고 청소년의 성생활 문란을 부추길 수 있다”는 의견이 나오면서 정식으로 도입되지 못했다.
여성에게 출산과 양육은 인생을 바꿀 만큼 중요하다. 여성이 임신을 지속할 것인지 또는 임신 중절을 선택할 것인지를 결정하는 것은 대단히 중요한 선택의 문제다. 나는 프로 초이스를 지지한다. 이번 주 목요일에 헌법재판소의 판결이 좋게 나오길 바란다. 그러나 임신 중절을 전면적으로 허용하든, 제한적으로 허용하든 그날의 결론은 길었던 논쟁의 끝이 아닐 것이다. 누군가에게는 낙태죄 폐지는 끝이 아닌 또 다른 논의의 시작이다.
* 장애여성공감 기획 《어쩌면 이상한 몸》 (오월의봄, 2018)
* [레드스타킹 선정 도서] 수전 웬델 《거부당한 몸》 (그린비, 2013)
낙태에 반대하면서도 장애를 가진 아이라면 낙태가 가능하다고 보는 모자보건법은 장애인의 몸과 생명권을 철저하게 배제하는 사고방식을 강화한다. 프로 초이스가 합법적 임신 중절을 강조하면서 장애인 낙태를 허용하는 것 또한 문제가 있다. 두 가지 입장 모두 철저하게 우생학적으로 태아의 생존을 결정하는 것이다. 그래서 장애인 인권 운동가와 장애학을 연구하는 학자들은 낙태죄 폐지를 신중하게 접근한다(물론, 이들도 낙태죄 폐지를 찬성한다). 장애여성공감은 장애인을 낙태시킬 수밖에 없는 모자보건법의 문제점을 인정하면서도 문제의 근원인 사회적 차별을 도외시한 채, 임신 중절을 전면 허용해야 한다고 외치는 ‘비(非)장애 여성들’의 피상적인 입장을 비판하고 있다. 장애인은 이 세상에 태어날 권리가 있으며 이것 또한 장애 여성의 재생산권에 달린 문제이다. 이런 점에서 장애 여성의 재생산권을 이야기하는 것은 본질적으로 인간을 ‘정상/비정상’으로 나누는 우리 사회의 이분법적 사고를 폭로하는 것이며, 이는 낙태죄 폐지 운동에 장애 여성도 함께 할 수 있어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주] 원 출처: Ushma D Upadhyay et al.(2005), Incidence of Emergency Department Visits and Complications After Abortion, Obstetrics & Gynecology. 본 내용은 윤정원 님의 강연 글을 참고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