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가오는 말들 - 나와 당신을 연결하는 이해와 공감의 말들
은유 지음 / 어크로스 / 201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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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을 쓸 것인지 생각하기, 쓰기, 고치기. 누구나 알고 있는 글쓰기의 세 단계다. 글을 쓰는 것은 생각을 깊게 한 후에 쓸 수 있고, 여러 번 지웠다가 다시 쓸 수도 있다. 말을 할 때도 이 세 단계를 지켜야 한다. 생각하기, 말하기, 고치기. 이 말하기 단계에서 가장 쉬운 것이 말하기고, 가장 어려운 것이 고치기다. 고치지 못하는 이유가 있다. 말은 엎어진 물과 같다. 말 한번 잘못하면 끝이다. 잘못 나온 말은 수십 마디의 변명으로도 고치기 어렵다. 그러므로 말을 할 땐 정말 신중해야 한다.

 

책을 많이 읽고, 글을 잘 쓰는 사람은 말도 잘할까? 반은 맞고, 반은 틀리다. 전자에 해당하는 사람은 이동진, 김영하, 김겨울 등이 있다. 이들의 공통점은 책 읽기를 엄청나게 좋아하고, 독서와 글쓰기에 관한 책을 냈다. 팟캐스트와 유튜브 방송을 진행하면서 꽤 많은 청취자/시청자/독자들과 소통한다. 게다가 그들의 입심 또한 범상치 않아 재미있게, 유쾌하게 책을 소개한다. 후자에 해당하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그렇지만 책 많이 읽고, 글 잘 쓰는 똑똑한 사람도 무지에 근거한 발언이나 오해가 생길 수 있는 경솔한 발언을 할 때가 있다.

 

나는 책을 많이 읽지만, 말을 잘하는 편은 아니다. 무언가 생각나는 것을 말로 표현하고 싶은데, 흐르는 물이 어딘가에 막힌 것처럼 술술 나오지 못할 때가 많다. 생각나는 대로 더듬더듬 힘겹게 말하고 나면, 얼굴이 화근거리고 심장이 두근거린다. 발음도 좋지 않다. 대화를 나누다가 상대방이 내 발음을 이해하지 못해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을 때가 있는데, 그 표정을 보는 순간 내 마음은 갑자기 흔들린다. 그야말로 ‘마음 지진’이다. 그럴 때 급히 대화를 매듭지어버린다. 상대방의 마음을 사로잡는 수려한 언변까지는 바라지 않는다. 쓸데없이 긴장하지 않으면서 편안하게 대화를 나누고 싶다. 그래서 대화 분위기에 익숙해지고 싶어서 작년부터 독서 모임에 나가게 됐다. 1년 동안 두 개의 독서 모임에 나가면서 확실히 알았다. 내가 너무 책에 파묻혀 살았구나. 이러니 말주변이 없었어.

 

말을 잘 하지 못하더라도 말을 ‘잘 듣는’ 사람으로 살아가고 있다면 내 인생의 반은 성공했다고 생각한다. 나한테 ‘다가오는 말들’을 경청하는 사람이 되는 것. 독서 모임에 나가기 전에 ‘경청하는 태도’를 잊지 않도록 마음속으로 자가 최면을 걸듯이 여러 번 다짐을 했다. 마침 은유 작가의 《다가오는 말들》을 읽게 되었고, 경청의 세 단계를 새롭게 설정할 수 있었다. 듣기, 생각하기, 고치기.

 

 

 타인의 말은 나를 찌르고 흔든다. 사고를 원점으로 돌려놓는다. 그렇게 몸에 자리 잡고 나가지 않는 말들이 쌓이고 숙성되고 연결되면 한 편의 글이 되었다. 이 과정을 꾸준히 반복하면서 남의 말을 듣는 훈련이 조금은 된 것 같다. 무엇보다 큰 수확은 내가 편견이 많다는 사실을 안 것이다. 그렇게 책을 읽어도 이 모양인가 싶어 자주 부끄러웠다. 하지만 편견, 무지, 둔감함은 지식이 부족해서 생기는 건 아니었다. 결핍보다 과잉이 늘 문제다. 타인의 말은 내 판단을 내려놓아야 온전히 들리기 때문이다.

 

(저자의 말, 7~8쪽)

 

 

말을 잘하고 싶은 욕심이 생기면 생각이 많아진다. 상대방에게 말하기 전에 내가 알고 있는 지식을 총동원하고, 그것을 어떻게 능숙하게 표현해야 할지 미리 생각하는 것이다. 그야말로 두뇌를 완전 가동하고 있는 셈이다. 그런데 짧은 시간 안에 두뇌를 너무 빨리 작동하면 정확하지 않은 지식의 파편, 또는 편견을 제대로 걸러내지 못한다. 잡다한 생각으로 꽉 채운 말 한마디는 겉으론 화려하게 보일지 몰라도, 청자의 마음을 울리는 힘은 부족하다. 오히려 ‘청자를 울리는’ 해로운 말이 될 수 있다. 나나 상대방 모두에게 득이 되지 않는 말 한마디를 꺼내려고 복잡하게 생각하기보다는 차라리 ‘나’를 내려놓고 상대방의 말을 잘 듣는 게 낫다. 내게 다가오는 상대방의 말 또한 나를 아프게 하는 해로운 무기가 될 수 있지만, 내 머릿속에 남아 있는 ‘독소’ 같은 편견들을 제거해주는 따끔한 해독 주사가 되기도 한다. 해독 주사 같은 말이 내 두뇌를 찌르고 나면, 몇 번의 진통을 거치면서 생각한다. 그게 바로 은유 작가가 말한 ‘사고를 원점으로 돌리는’ 일이다. 이 과정에서 우리는 편견을 발견하게 되고, 성숙한 ‘나’로 단단히 준비할 수 있도록 편견에 저항한다. 이것이 내가 생각한 경청의 마지막 단계 ‘고치기’다.

 

제대로 경청하는 사람이 되려면 ‘확신에 찬 사람(19쪽)’이 되지 않아야 한다. 편견이 쌓이고 자기 확신 단계에 들면 오만이 생긴다. 오만은 ‘다가오는 말’을 원천 봉쇄하는 방어막이 되거나 때론 상대방을 제압하는 위력이 되기도 한다. ‘네가 생각한 건 틀렸어’ ‘어딜 감히 내 말에 태클을 걸어?’ 이런 식으로 강압적으로 말하는 사람은 모든 답이 자기에게서 나온다는 확신을 가지고 있다. 은유 작가는 40대 후반이면 그렇게 되지 않도록 두려워해야 할 나이라고 말하는데, ‘젊은 꼰대’가 늘어나는 요즘 사회적 분위기를 생각하면 아집이 생기기 시작하는 나이는 중요하지 않다.

 

책을 많이 읽고, SNS나 블로그에서 글을 쓰는 일은 분명 좋은 일이다. 물론, 앞서 언급했던 글쓰기의 세 단계를 이행한다는 전제하에서 말이다. 그런데 문제는 혼자서 ‘생각하고, 쓰고, 고치는 일’이 가능하냐는 점이다. 혼자서 충분히 할 수 있는 일이다. 그러나 은유 작가의 글을 읽고 난 이후로 생각이 달라졌다. 글쓴이가 자신의 글에 ‘다가오는 말들’을 경청하지 않은 채 글을 쓰고 고친다면, 과연 그 글이 제대로 쓰인 것이라고 볼 수 있을까. 평소에 남의 말을 잘 듣는 사람은 글 쓸 때도 남의 의견을 잘 듣는다. 이 사람은 무지와 편견으로 살아온 ‘나’를 재발견하고, 삶과 사회를 새롭게 정의하면서 글을 쓴다. 그리고 상대방(독자)이 불편하지 않도록 신중하게 글을 쓴다. 내 글을 읽게 될 독자에게 상처 주지 않도록 최대한 배려하면서 글을 쓸 수 있으려면 일단 ‘다가오는 말’을 잘 듣고 마음으로 흡수하는 습관이 몸에 배어야 한다. 그러면 ‘나를 위한 글쓰기’는 ‘남을 위한 글쓰기’로 승화한다.

 

혼자서 책 읽고, 글을 쓰는 일은 긴장감이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 왜냐하면 내게 ‘다가오는 말들’이 없기 때문이다. 틀에 박힌 글쓰기가 반복되는 일상은 온전히 ‘나’를 위한 공부가 될 수 없다. 안중근 의사는 ‘하루만 책을 읽지 않으면 입안에 가시가 돋는다’고 말했다. 좋은 말이긴 하나, 책에 파묻혀 사면서 글쓰기에 몰두하는 외로운 일상도 좋다고 볼 수 없다. 낯선 존재와 마주하면서 낯선 말을 접해보지 않으면 머리에 가시가 돋는다. 그 가시는 내 정신을 빈곤하게 만들 뿐만 아니라, 남을 위협하는 언어라는 무기가 되곤 한다. 머릿속에 가시가 생기지 않으려면 제대로 공부해야 한다. 여기서 말하는 공부는 ‘낯선 존재의 말을 거리낌 없이 받아들이고 부딪칠 수 있는 공간’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그 공간 안에서 ‘무지로 인한 긴장과 혼돈의 시간을 치르면서(278쪽)’ 공부를 해야 한다. 그래서 요즘 들어 혼자서 책 읽는 것보다 같은 책을 여러 사람과 함께 읽는 독서 모임이 좋게 느껴진다. 모임 분위기가 즐거운 것도 있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의 삶, 성격, 정체성, 신념)(과, 이) 다른 사람들과 어울려 공부하면서 느끼는 ‘긴장감’이 좋다. 지금도 나는 그렇게 공부하고 있으며, 앞으로도 쭉 그렇게 공부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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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크(pek0501) 2019-04-14 12:2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독서 모임, 좋은 공부 방법인 것 같습니다. 함께 읽은 텍스트에 대해서 다양한 의견을 들을 수 있다는 점에서요. 편견 깨기... 확실히 독학에는 한계가 있는 것 같아요.

cyrus 2019-04-17 13:38   좋아요 0 | URL
내 글을 보는 다른 사람들의 반응이 너무 없는 것은 좋은 현상이 아니에요. 사람들은 자신이 보고 싶어 하는 글만 보려고 합니다. 그리고 다른 의견을 말하는 것 자체에 부담을 느끼죠. 솔직히 말해서 요즘 들어 블로그에 글을 쓰는 일에 회의감을 느낍니다. 나와 생각이 다른 사람이라도 그들과 직접 만나면서 이야기를 나누는 게 더 좋게 느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