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 가뭄
애너벨 크랩 지음, 황금진 옮김, 정희진 해제 / 동양북스(동양문고) / 201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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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에는 ‘남자는 바깥 일, 여자는 집안일’로 부부의 역할이 또렷하게 구분돼 여성은 ‘가정주부’라는 이름으로 집안에 묶였었다. 남자가 설거지나 빨래 등 가사 일을 거들거나 시장바구니를 들고 나서게 되면, 주위 눈치를 살펴야 했고 ‘남자답지 못하다’라는 비난도 감수해야 했다. 하지만 이제 어느 슈퍼마켓에서나 부부가 함께 시장바구니를 들고 장을 보는 모습은 흔하게 볼 수 있는 광경이 됐다. 남편이 집 안 청소를 하거나, 세탁기를 돌려 빨래를 하고, 또 부엌을 들락날락하며 접시를 나르는 것도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니다.

 

맞벌이 부부 뿐만 아니라 전업주부의 가정에서도 더 이상 집안일은 여성만의 몫은 아니다. 부부가 가사 노동을 함께하는 인식이 생기고 있지만, 외국과 비교하면 아직도 멀었다. 특히 남성은 남편이 가사 노동을 하는 것에 바람직하다고 생각하지만, 갈수록 열악해지는 기혼 여성의 근로조건 문제를 외면한다. 애너벨 크랩의 《아내 가뭄》은 아내의 노동 문제에 대한 이중적 인식을 짚는다. 성인 대다수는 ‘일하는 여성’이 있어야 한다고 보면서도 바람직한 아내상은 ‘가족의 뒷바라지를 잘하는 여성’이라고 여긴다.

 

퇴근하고 집에 와도 쉬지 못하고 집안일에 매달리는 맞벌이 아내들은 가사노동의 양 때문만이 아니라 남편과의 가사 분담률이 불공평하기 때문에 스트레스에 시달린다. 아직도 많은 맞벌이 아내들은 자신이 직장을 가졌기 때문에 집에 남아있는 어린 자식들에 대한 죄책감으로 걸음이 바쁘다. 어머니는 마땅히 집에서 자식을 돌봐야 한다는 오랜 관행에서 벗어나지 못하기 때문이다. 거기에다 일을 하도록 허락한 남편에게 고마워서 늘 반찬도 제대로 하려고 애쓴다. 여성들과 함께 일한 남성들은 기혼 여성이 직장에서도 집 생각하는 것에 못마땅해한다. 이러한 남성들은 여성의 일차적 역할을 가사와 양육노동의 담당자로 보고 있다. 그래서 직장을 가졌던 여성도 결혼을 하면 직장을 그만두고 가정에 안착한다.

 

1980년대 말, 일하는 엄마들의 이중역할 부담을 완화해주기 위한 대안으로 ‘마미 트랙(mommy track)’이 거론되었다. ‘마미 트랙’은 출산과 양육을 전담하는 여성 인력의 특수성을 십분 고려해, 직업을 갖는 순간부터 임금 수준은 물론 승진 배치 교육에 이르기까지 남자들과 경쟁하지 않는 엄마들만의 트랙을 의미한다. 엄마에게 ‘마미 트랙’을 제공해줌으로써 일과 가족의 양립을 위한 선택지를 제공해주자는 것이 요지였다. 하지만 ‘마미 트랙’은 일과 가족의 균형을 맞추려는 이상적인 대안이었을 뿐, 현실적으로는 엄마들이 편하게 걷을 수 있는 ‘꽃길’이 되지 못했다. ‘마미 트랙’은 ‘여성은 일차적 양육자’라는 가부장적 성별 분업구조 인식을 강화한다. 여기서도 가사 및 양육을 여성의 일차적 책임으로 규정하고 있다. ‘마미 트랙’에 향한 대중의 관심이 소리 없이 사라지자 또다시 여성의 가사 노동 가치를 인정해주길 촉구하는 사회적 목소리가 거세졌다. 여기서, 애너벨 크랩은 이러한 반응의 한계를 지적했다. 그녀는 사회가 남성들에게 가사 노동을 권하지 않았다고 말한다. 그저 여성에게 일과 삶의 균형을 위해서 주어진 과업을 적절히 잘하라는 식으로 그럴듯하게 포장한다. 결국, 아내는 자신에게 자꾸만 눈치 주는 사회가 하라는 대로 하게 된다. 그녀들은 일과 가정, 두 마리 토끼를 잡아야 하는 노력을 강요받는다. 이것은 그녀들의 심각한 ‘선택의 문제’가 된다. 둘 중 하나라도 놓치면 죄책감을 느낀다. 일을 못 하면 ‘무능력한 여성’, 집안일을 소홀히 하면 ‘아주 무능력한 여성’으로 비난받는다. 여성이 겪는 이중고의 진통을 남성은 이해하지 못한다. 남성은 집안일 못한다고 해서 여성처럼 욕먹지 않기 때문이다. 오히려 집안일에 열중하는 자신의 모습에 부끄러워한다.

 

여성의 노동시장 참여율이 지속해서 증가하는 데 반해 남성의 가사노동 참여율이 저조하다면 여성에게는 결혼생활을 유지할 이유가 없다고 할 수도 있다. 또한, 출산이 여성에게 전통적 역할로의 복귀를 의미하거나 육아와 직장의 이중부담을 감내해야 한다면 누가 여성에게 출산을 권할 수 있겠는가. 이런 이중부담 상황에서 여성이 감당해야 할 고통은 너무나도 크다. 일과 가족의 균형이 일하는 아내에게만 절실히 요구되는 것이 아님은 분명하다. 상식적으로는 남편에게도 필수임이 분명하다. 그런데 남편 입장에선 선뜻 내키지 않는다. 회식과 야근이 일상화돼 있는 조직문화에 획기적 전환이 이뤄지지 않는 한, 남편들은 가족을 부양해야 하는 ‘일 중심 이데올로기’에 벗어나지 못한다. 이제 남편들도 살림과 관계된 경험담을 술자리에서 말할 수 있어야 한다. 이 상황이 상상만 해도 부끄럽다거나 혹은 여성이 득세하는 말세적 현상이라고 느낀다면 그런 남편은 어떤 형태로든 불편하고 만족스럽지 못한 생활을 하게 될 것이다. 맞벌이 아내들이 남성과 똑같은 능력을 발휘하고 직업의 성취도를 높이기 위해 고민하고 공부하고 노력하는 만큼 남편들도 살림을 잘하기 위해 고민하고 공부하고 노력해야 한다. 그러면 부부 모두 함께 걸으면서 행복해질 수 있는 ‘꽃길’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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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ureka01 2017-02-08 12:06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자주 아내에게 요리를 해줄 수 있기를...^^. 청소도 ..쓰레기 버리는 일도..모두 내손으로 할 수 있기를...그럼 아내로 부터 사랑받습니다..~~~~분담 꼭해야 합니다..~~(어제 집에서 혼자 대청소 했습니다~~^^) 칭찬 많이 들었어요 ..고맙다고 ~~^^ ㅋㅋㅋ

cyrus 2017-02-08 17:02   좋아요 0 | URL
유레카님이 항상 제 글의 첫 번째 댓글을 남길 거로 생각했습니다만, 사모님 자랑을 할 줄은 생각 못했습니다. 딸내미 자랑, 사모님 자랑하는 모습이 부럽습니다. 제가 결혼하게 되면 부부 금술이 좋지 않을 때 유레카님에게 상담 받아야겠어요. ㅎㅎㅎ

yureka01 2017-02-08 17:06   좋아요 1 | URL
ㅎㅎㅎ 상담이고 자시고 할 것도 없어요..^^..
그저 내가 먼저 한다라는 생각..
내가 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생각을 하고
먼저 몸으로 움직임을 보여주면 되는 거예요...

액션이 답입니다.^^
세치혀 놀리는 사랑법은 가짜이거든요...ㅋ

우민(愚民)ngs01 2017-02-08 13:1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유레카님 말씀에 동감...
재활용은 제 담당이 된지 꽤 됐네요 문제는 처음에는 고맙다고 하더니
이제는 당연한 듯 ^^
이게 생활인 것 같습니다.

cyrus 2017-02-08 17:04   좋아요 0 | URL
옛날 같았으면 남자들이 ngs님이 아내 앞에 기죽는 남편이라고 놀려댔을 겁니다. 그렇지만 이제는 ngs님과 유레카님 같은 남편 분들을 질투하거나 놀려선 안 됩니다. 결혼 안 한 남자들이 부러워해야 하고, 칭찬해야 합니다. ^^

yureka01 2017-02-08 14: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ngs01님 ㅎㅎㅎㅎㅎ 고맙단 소리 안해도 잘 하실 거라 믿습니다~ ㅋ

stella.K 2017-02-08 15: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지난주부터 나영석 PD가 구혜선과 안재현 앞세워
<신혼일기>라는 걸 방영하기 시작했는데
새로 시작해서 그런지 나름 재밌고 신선하더군.
거기서 보면 남편인 안재현이 가사에 적극적인데
결혼 초기에 남편이 어떻게 가사에 참여하느냐에 따라
앞으로의 결혼생활의 성패가 좌우되지 않을까 싶어.
그런 프로는 네가 봐도 좋을 것 같은데 말야.
독신으로 쭈~욱 살 것이 아니라면 말야.
신혼부부가 싸우면 어느 부분에서 싸우게 되는지
애정을 느낀다면 어느 부분에서 느끼는지 생각해 볼만한 구석이 있다고 봐져.
물론 이런 예능 프로는 별 기대없이 보는 자세가 더 중요하겠지만 말야.ㅋ

cyrus 2017-02-08 17:07   좋아요 0 | URL
그런데 저는 방송에 나오는 부부 모습은 믿지 않아요. 방송에 약간의 연출이 있을 수 있거든요. 연예인 부부나 커플이 행복하게 알콩달콩한 모습으로 방송해놓고선, 몇 년 후에 이별, 이혼 크리 맞으면 이미지에 큰 타격을 입어요. 그들의 좋은 모습에 익숙한 대중은 실망감에 욕설을 퍼붓고요... ^^;;

stella.K 2017-02-08 18:02   좋아요 0 | URL
ㅋㅋ 당연해. 다 편집이야.
그런 건 사실 보다 편집의 묘지.
말에 의하면 차승원이가 성격이 장난이 아니라더군.
그런데도 삼시세끼 어촌편에서 얼마나 잘 나오디?
그거 다 편집한 거 잖아. 그것 때문에 차줌마로 뜨고.
팩트 보자고 그런 거 보는 거 아냐. 편집의 기술 보자고 보는 거지.ㅋ

북프리쿠키 2017-02-08 15: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가슴은 죄책감과 연민으로 와이프를 보다듬고, 머리로는 오늘부터 잘하자고
다짐하는데, 문제는 이놈의 비계덩어리가 잘 움직여지지 않네요. ㅠ

cyrus 2017-02-08 17:09   좋아요 1 | URL
솔직히 말해서 제가 결혼하면 책 읽느라 집안일을 소홀히 할 겁니다. 유레카님이 말씀했듯이 ‘말보다는 행동‘이 중요한 것 같습니다. ^^;;

아무 2017-02-08 20: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의식 구조의 개선이 제도의 개선을 따라가지 못한다고 생각하지만, 마미 트랙 같은 경우는 제도가 의식을 고착화시킨 경우 같네요. 예전에 <빨래하는 페미니즘>에서도 가사 노동의 문제를 읽었던 기억이 있습니다. 페미니즘 운동이 본격화되면서 가사 노동에서 해방되는 여성은 늘었지만, 그것이 가사 노동 종사자의 문제를 발생시켰다는 얘기였던 걸로 기억해요. 어찌됐든 남성 개개인의 실천과 의식 개선도 중요하지만, 제도도 갈 길이 아직 먼 것 같습니다..ㅠㅠ

cyrus 2017-02-08 20:20   좋아요 0 | URL
제도 도입이 의식 구조 개선에 기여한다고 볼 수 없지만, 우리나라 같은 경우, 남편의 육아휴직제도가 보편화되지 못한 실정입니다. 육아휴직을 신청하고 도 승진과 연관되는 업무 분위기 때문에 주저하는 남편들이 많습니다. 엄마에게 부담 주는 육아휴직제도만으로 한계가 있어요.
 

 

 

 

 

 

 

 

 

 

 

 

 

 

 

 

 

 

 

 

 

진중권의 《미학 오디세이》 1권을 읽어보신 독자라면 그 책에 인용된 프랑수아 비용(Francois Villon)의 시구를 봤을 것이다.

 

 

저는 가난하고 늙은 여인입니다

아주 무식해서 읽을 수도 없어요

그들은 저희 마을 교회에

하프가 울려 퍼지는 천국과

저주받은 영혼들이 불타는 지옥을 그려서 보여주었어요

하나는 내게 기쁨을 주지만

다른 하나는 두려움을 줍니다

(《미학 오디세이 1》 150쪽)

 

 

이 시의 제목이 『어머니를 위한 발라드』로 되어 있다. 발라드(ballade)란 유럽 중세에 유행한 자유로운 형식의 담시(譚詩)다. 《미학 오디세이 1》에 인용된 시구는 전체 내용의 일부이며 비용이 1461년에 발표한 <유언의 노래(Le Testament)>에 수록되었다. 발라드의 원제는 ‘Ballade pour prier Nostre Dame’이다. 이 제목은 ‘성모에게 기도하기 위한 발라드(송면, 《유언시》)’, ‘성모에게 기도하는 발라드(송면, 《프랑수아 비용 : 그 생애와 시 세계》)’, ‘성모에게 기도드리는 발라드(김준현, 《유언의 노래》)’로 번역되었다.

 

 

저는 아무 것도 모르는, 낫 놓고 기역자도 모르는

불쌍한 늙은 여자외다.

제가 속하고 있는 성당에는

수금(竪琴)과 비파(琵琶)가 그려진 천국의 그림과

죄인들이 업화에 타는 지옥의 그림이 있는데

하나는 저를 무섭게 하고 하나는 저를 기쁘고 즐겁게 하나니

 

(『성모에게 기도하는 발라드』 중에서, 《유언시》 128쪽)

 

저는 늙고 불쌍한,

아무것도 알지 못하고, 글자 한 자 읽을 수 없는 여인입니다.

제가 속한 교구의 교회에서, 저는 봅니다,

하프와 류트가 있는, 그림으로 묘사된 천국을,

그리고 단죄받은 죄인들을 불길에 끓이는 지옥을,

하나는 저를 두렵게 하며, 다른 하나는 기쁨과 즐거움을 줍니다.

 

(『성모에게 기도드리는 발라드』 중에서, 《유언의 노래》 53쪽)

 

 

그런데 《유언의 노래》에서는 원제가 ‘Ballade pour prier Notre Dame’으로 되어 있다. ‘Nostre’에서 ‘s’가 빠졌다. 오자로 보일 수 있으나 ‘Notre Dame’도 ‘성모’를 뜻하기 때문에 인쇄상 오류라고 단정 지을 수 없다. 아마도 ‘Nostre Dame’은 중세 시대에 사용했던 고어(古語)였을 것이다. 그런데 ‘Nostre Dame’을 인터넷 불어사전에 검색하면 ‘성모’가 아닌 생각지 못한 단어가 나온다.

 

‘Nostre Dame’은 예언가로 유명한 노스트라다무스(Nostradamu)의 본명과 같다. 우리가 잘 아는 이름은 라틴어고, 그의 프랑스어 본명은 ‘미셸 드 노스트르담(Michel de Nostredame)’이다. 그래서 시의 제목을 ‘노스트르담에게 기도하는 발라드’로 읽을 수 있다. 이것만 가지고 비용과 노스트라다무스의 연관성을 생각해볼 수 있는데, 전혀 관련이 없다. 비용은 1431년에 태어나서 1463년(추정)에 사망했고, 노스트라다무스는 그보다 훨씬 늦은 1503년에 태어났다. 굳이 두 사람의 공통점을 찾는다면, 시를 쓴 사실 그것 하나뿐이다. 비용은 8행시로 구성된 시를 남겼고, 노스트라다무스는 4행시로 이루어진 예언 시를 남겼다. 노스트라다무스의 예언 시는 세기말에 다시 주목받았고, 지구 종말론을 언급하기 좋아하는 사람들을 위한 ‘떡밥’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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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레프 2017-02-07 17: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뭔가 심오합니다

cyrus 2017-02-08 11:01   좋아요 0 | URL
비용의 시 중에 심오한 분위기를 내는 것들이 꽤 있습니다. 기독교의 구원 의식이 반영된 것도 있어서 지금 보기에는 좀 딱딱하게 느껴질 수 있습니다.
 
유언의 노래 민음사 세계시인선 리뉴얼판 4
프랑수아 비용 지음, 김준현 옮김 / 민음사 / 201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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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정 · 첨언합니다 (2017년 2월 10일 작성)

 

제가 2월 7일, 그리고 오늘 민음사 세계시인선 리뉴얼판 《유언의 노래》 13연 8행시에 문제를 제기하는 글을 썼습니다. 오늘 오전에 ***님(의 댓글이 ‘비밀’로 되어 있어서 실제 닉네임을 거론하지 않았습니다)께서 제 의견에 대한 이견을 내놓았습니다. ***님의 말씀을 정리하면 이렇습니다.

 

제가 참고했던 ‘프로젝트 구텐베르크’ 원문이 잘못될 가능성이 있습니다. 이 원문은 1860년대에 나온 것이고, 그 후로 학자들의 연구 결과가 반영된 시의 순서와 머릿수가 체계적으로 정립되었습니다. 《유언시》의 송면 교수와 《유언의 노래》의 김준현 교수는 새롭게 정리된 원본 시집을 참고해서 번역했을 겁니다. ***님이 2012년에 나온 불영 대역본 시집의 시의 순서와 머릿수가 두 권의 번역본과 비슷하다고 했습니다. ‘프로젝트 구텐베르크’는 과거 자료를 디지털화해서 옮겼기 때문에 최근의 연구 성과를 반영되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므로 제가 ‘프로젝트 구텐베르크’ 원문을 가지고 두 권의 번역본에 대해 문제점이 있다고 주장한 의견이 잘못되었음을 밝힙니다. 잘못 전달될 소지가 있는 내용은 '취소선'으로 그었습니다. 좋은 의견을 주신 ***님께 다시 한 번 감사드립니다.

 

 

 

 

 

프랑수아 비용(François Villon)의 《유언시》(문학과지성사, 1980년)와 《유언의 노래》를 같이 읽었다. 전자의 책은 3,000행이 넘는 비용의 시를 모두 번역한 전집 형태의 완역본이고, 후자의 책은 선집 형태로 구성되어 있다. 두 책의 출간 연도의 차이가 무려 36년이나 된다. 그만큼 번역 어투에도 크게 차이가 난다. 당연히 《유언의 노래》가 읽기 편하다. 《유언시》는 한문이 조금 섞여 있고, 이제는 촌스러운 티가 나는 80년대 외래어 표기법의 흔적이 있다.

 

무모하게 프랑스어 원전 텍스트까지 참고했다. 텍스트는 프로젝트 구텐베르크(Project Gutenberg)에 있는 <Oeuvres complètes de François Villon>(프랑수아 비용 전집)이다.

 

※ 링크 : http://www.gutenberg.org/files/12246/12246-h/12246-h.htm

 

 

솔직히 말하면, 나는 외국어 공부에 담 쌓은 지 오래 되었다. 당연히 프랑스어 기초조차 배운 적이 없다. 그래도 원문을 참고하는 이유가 있다. 프랑스어를 한국어로 번역된 텍스트만 가지고 번역이 좋다 나쁘다고 비교 · 평가하는 건 번역에서 중요한 논의가 아니기 때문이다. 번역문이 최대한 원문과 가깝도록 옮긴 건지 따지려면 비용의 시에 관심이 많은 불문학 전공자가 해야 하는 것이 맞다. 나는 번역자가 문장을 어떻게 이해했고 해석했는지 알고 싶어서 원문을 참고했다.

 

삼중(三重)의 독서를 하느라 오랜 시간이 걸렸지만, 원문을 참고하길 잘 했다는 생각이 든다. 왜냐하면 두 번역본에 공통된 문제점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이 문제점이 무엇인지 설명하기 전에 원문과 이를 번역한 문장들을 소개해본다.

 

 

 

* 《유언시》 53쪽

 

그리고 메트르 로베르 발리에게는

산인지 계곡인지 알 수 없는

고등법원의 말단 서기이기에

목로주점 ‘장화’에 맡겨 둔

나의 긴 바지를 남겨 준다.

우선 그에게 내어 주기 바라거니와

그의 애인 쟌 드 밀리에르에게 입힌다면

여간 잘 어울릴 것이 아니로다.

 

* 《유언의 노래》 16쪽 (『산도 골짜기도 분간하지 못하는』)

 

또 로베르 발레,

산도 골짜기도 분간하지 못하는

고등법원의 불쌍한 서기에게

내 주된 유증물을 정하노니,

선술집 ‘장딴지’에 담보물로 잡힌

짧은 반바지를,

그의 연인인 잔 드 밀리에르에게

매우 걸맞은 머리쓰개가 되도록

그에게 즉시 주기 바란다.

 

 

원문에는 지금은 거의 사용하지 않아 사라진 고어(古語)가 많다. 우리말로 번역된 두 개의 문장을 비교해보면 문맥상의 차이가 확연히 보이지만, 이를 분석하는 일은 불문학 전공자가 하는 게 맞다. 내가 문제 삼고 싶은 건 따로 있다. 두 번역본은 『산도 골짜기도 분간하지 못하는』 8행시 구절 전체를 ‘13연(XIII) 97~104행’으로 소개했다. 그런데 이 8행시 구절은 ‘13연’이 아니라 ‘14연(XIV) 105~112행’이다. 《유언시》를 번역한 故 송면 교수가 13연으로 알려진 8행시를 실수로 빠뜨리고, 14연의 8행시를 13연으로 착각한 것일 수 있고, 아니면 송 교수가 번역하기 위해 참고한 저본에 오류가 있을 수도 있다. 후자의 경우라고 해도, 번역자의 책임을 완전히 면하기 어렵다. 원래 13연의 8행시가 누락되니까 15연의 8행시가 엉뚱하게 ‘14연’으로 표기되어 있고, 뒤에 나오게 될 구절의 연 표시마저 다 틀렸다. 19연의 8행시는 ‘18연’으로 되어 있고, 송 교수는 19연에 원문을 알 수 없는 8행시 구절을 옮겼다. 프랑스어를 잘 몰라서 아직까지 《유언시》의 19연으로 소개된 8행시 구절의 원문을 찾아내지 못했다.

 

 

또 하나, 야경대장(夜警隊長)에게는

투구를 주기로 정해 두고

가게의 대를 어루만지며 야경을 도는

사보(徙步)의 야경 대원들에게는

훔친 멋있는 물건

피에르 오 레 가(街)의 초롱을 남겨 준다.

그리하여 만약 그들이 나를 샤틀레 감옥으로 연행하면

나는 세 개의 백합 무늬의 방을 차지하리로다.

 

(《유언시》 56쪽, 번역자 송면 교수가 ‘19연’으로 잘못 소개한 8행시)

 

 

《유언의 노래》의 번역자 김준현 교수는 비용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고 고려대 불문학과 부교수로 활동하고 있다. 그런데 그마저도 30여 년 전에 송 교수의 실수를 재현했다. 김 교수도 《유언시》의 존재를 모를 리가 없을 것이다. 그리고 자신이 비용의 시를 번역했을 때 《유언시》를 참고했을 수도 있다. 송 교수의 번역본을 참고했든 안 했든 간에 13연의 8행시가 빠뜨린 채, 14연의 8행시를 13연으로 소개한 것은 중대한 오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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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전자 사회 - 인간 사회보다 합리적인 유전자들의 세상
이타이 야나이 & 마틴 럴처 지음, 이유 옮김 / 을유문화사 / 201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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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생명의 최소 단위는 세포다. 원시의 바다에서 단세포생물이 처음 출현한 그 날부터 계보를 이어 내려오면서 세포는 점점 복잡한 구조를 가진 고단위의 생명체로 진화해왔다. 세포를 만들어내고 그 세포가 생존에 더욱 적합하도록 진화하게 하는 ‘보이지 않는 손’이 바로 유전자다. 지금까지 유전자나 유전학에 대한 대중 과학서들이 대체로 ‘이기적 유전자’나 ‘이타적 유전자’라는 관점에서 자연현상을 풀어나갔다면, 《유전자 사회》는 통합적인 관점에서 유전자 세계를 조망하고 순례한다. 유전자는 필연과 우연, 변화와 정체, 이기심과 이타심 같은 수단들을 필요할 때마다 적절히 사용하여 생명을 연속시켜 나간다. 이제껏 진화의 문제가 ‘생존 경쟁을 통해 이루어지는 진화 과정’에 집중돼 있었다. 그러나 유전자 확산을 목적으로 한 진화 과정은 아무 의지 없이 진행되는 자연선택보다 훨씬 합리적이다. 그것은 사회 안에서 협동하고, 경쟁하는 관계를 형성하는 과정과 유사하다. 결국 “생명이란 무엇인가?”라고 물으려면 먼저 우리가 ‘유전자 사회’가 어떻게 구성되어 있는지 이해하고 있어야 한다.  
 
유전자 정보는 생명을 이루어줄 뿐만 아니라 개성까지 갖춰 준다. 사람의 개성이나 체질이란 서로 다른 극히 일부의 염기서열 차이에서 오는 결과이기 때문이다. 인간을 포함한 모든 생명체는 자연의 한 부분으로서 유구한 세월 동안 환경과의 끊임없는 상호작용을 통해 적응하며 진화해 온 존재이며, 어느 생명체도 그 흐름에서 벗어날 수 없다. 대부분 질병은 유전자들의 돌연변이에 의한 기능 이상 때문에 비롯된다. 인간 역시 다른 생물과 함께 진화의 과정 중에 있다. 유전자들의 변이는 지금 이 순간에도 계속 일어나고 있다. 유전자 돌연변이를 통해 여러 질병이 생기기도 하지만, 더 우수한 형질이 만들어지기도 하며 그것으로 생명체의 다양성도 유지된다. 
 
과학과 의학이 발달하면 언젠가는 암도 정복될 것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러나 그런 생각은 과학에 대한 지나친 맹신과 막연한 기대감에 근거하고 있는 것이지 과학적인 근거가 있는 것은 아니다. 리처드 도킨스의 ‘이기적 유전자’ 이론에 따르면 인간은 유전자들이 다음 세대에 자신들 유전자 정보를 물려주기 위해 만들어진 프로그램이다. 생명체는 죽지만 유전자는 번식을 통해 계속 지구상에 살아남는다. 암세포는 원래 정상 세포의 유전자가 발암 요인에 의해 돌연변이가 일어나 생긴다. 기하급수적으로 숫자를 늘려가며 주위의 정상조직을 파괴하고 자신의 졸병들을 혈관을 통해 다른 곳으로 이동시켜 급기야 인간의 생명을 앗아간다. 따라서 암은 유전자가 역동적으로 진화하면서 만들어진 과정의 근본적인 결과다. 이런 시각에서 암의 발생 이유를 이해한다면, 우리가 암을 예방하기 위해 턱없이 비싼 건강식품이나 비법 등에 시간과 돈과 노력을 쏟아붓는 것이 별 의미가 없음을 알게 된다. 그런 노력을 통해 내 몸에 존재하는 암 발병 가능성을 가진 유전자의 존재를 거부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나이가 들면 흰머리가 나고, 눈과 귀가 어두워지고, 치아가 약해지는 것이 순리인 것처럼, 암이 발생하는 원인은 인간이 유전자 속에 가진 정보일 수 있다.
 
《유전자 사회》는 ‘유전자가 인간의 행동을 결정한다’는 식의 ‘유전자 결정론’을 깔고 있지 않다. 유전자가 사람의 모든 것을 좌우한다는 발상은 위험하다. 유전자 결정론은 다양한 인간의 삶을 획일화하고, 인종 차별을 정당화하는 이념적 근거가 된다. 《유전자 사회》는 이 극단적인 생각과 전혀 관련 없다. 《유전자 사회》의 저자들은 인류의 유전자가 인종과 관계없이 99.9% 일치함에도 인종차별이 일어나는 이유를 짚어본다. 인종 간의 유전적 차이를 연구하는 것이 인종차별주의에 대항할 수 있는 강력한 무기가 되기 어렵다. 왜냐하면 ‘문화적 변이’를 무시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인간 본성은 유전자와 문화적 요소(관습과 교육)의 상호작용으로 나타나는데 문화적 요인이 더 큰 영향을 준다. 유전자란 해당 개체 생명체의 행동유형을 규제하긴 하지만 그런 유형은 사회적 및 자연적 환경의 영향을 전적으로 받는다. 달리 말해서 기존 진화이론과 달리 유전자 역시 고립된 것이 아니라 외부환경의 조건에 따라 서로 변화할 수 있다. 《유전자 사회》는 인간이 모든 생물 종의 가장 위에 군림하는 것이 아니라 유전자로부터 무수히 많은 것을 받았고, 지금도 그들이 없이는 존재할 수 없음을 깨닫게 하여 우리를 겸허하게 한다. 인간은 생명의 역사라는 기나긴 여정에서 목적지가 아니라 유전자 세계 속의 간이역에 불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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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호랑이 2017-02-07 06:3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사회학의 분석 단위가 ‘개체‘에서 ‘유전자‘로 내려가면서, ‘개인의 의지‘나 ‘생각‘이 어떤 의미가 있는지 다시 생각하게 됩니다.. 우리가 추상적으로 생각하는 ‘국가‘의 개념과 개체로서 ‘개인‘이 이제는 별다른 차이가 없는 것 같아요.. 과학의 발전이 가져온 사회학의 변화인 것 같습니다^^

cyrus 2017-02-07 12:43   좋아요 1 | URL
흔히 유전자를 인간 수명 연장을 위해 알아야 할 것으로 생각하기 쉽습니다. 그것만으로도 유전자의 세계를 이해할 수 없고, 여전히 연구해야 할 것이 아주 많습니다. 유전자 세계를 하나의 사회로 볼 필요가 있습니다. 재미있게도 인간이 살아가는 방식과 상당히 유사하기 때문입니다. ^^
 

 

 

["헌책 팔아 빌딩 짓는다는 시절 있었는데..."] 오마이뉴스, 201725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3&oid=047&aid=0002140306

 

 

 

어제 발견한 좋은 기사입니다. 헌책방을 소개한 글을 볼 때마다 반갑고, 마음이 두근거립니다. 2014년 처음으로 뿌리서점을 찾은 적이 있었습니다. 뿌리서점을 상징하는 간판이 된 책이 주인을 기다립니다!’라 문구는 여전했습니다. 만일 저 간판 하나 없어지면 헌책방에 들어설 때 낯설게 느껴질 것 같습니다.

 

뿌리서점 사장님의 말씀 속에 한국 현대사 격동의 물결이 남기고 간 흔적을 볼 수 있습니다. 그 거대한 물결 속에서 헌책방 하나만 믿고 치열하게 헤쳐나간 사장님이 존경스럽습니다. 사장님 말씀대로 여기서 살아남은 것만으로도 천만다행입니다.

 

 

 

 

 

 

 

 

 

 

 

 

 

 

 

 

 

 

 

헌책방은 책의 역사가 잠들어있는 유일한 장소입니다. 헌책방 주인은 아무도 기억하지 않는 역사를 목격했고, 혼자서 묵묵히 지키고 있는 정령입니다. 오늘도 헌책방 주인은 여전히 책의 곁을 떠나지 않고, 책을 만들고 진열합니다. 그리고 무한히 자신과 세계를 향해 책을 접었다가 다시 펴기를 반복합니다. -뤽 낭시는 이러한 서점상의 일을 삼중의 명령이라고 했습니다.[1] 헌책방 주인은 매일 수많은 책과 접촉하고 있습니다. 변화무쌍한 세계 속에 가치가 있을 만한 책들을 건져내고, 새 주인을 만나기를 고대하면서 책장에 꽂아 소중히 보관합니다. 그렇지만 아쉽게도 그곳은 독자들의 접촉 횟수가 아주 적습니다. 헌책방 주인의 손길을 많이 거친 책들은 새로운 주인, 즉 독자들이 자신을 활짝 펼쳐주길 기다리고 있습니다.

 

헌책방의 책들 대부분은 출판연도가 상당히 오래됐습니다. 저보다 먼저 태어난 책도 있고요, 제가 태어난 해에 나온 책도 있습니다. 그래도 출간된 지 20년 훌쩍 넘긴 책은 나이가 많은 노인과 같습니다. 그렇게 되면 헌책방은 양로원인 셈이죠. 책들은 여전히 소통에 가담하고 싶어 합니다. “, 안 늙었어. 아직은 팔팔하다네.”라고 말하는 노인의 고집을 생각하면 됩니다. 그렇지만 나이 든 책들보다 한참 늦게 태어난 젊은 독자들은 그 말이 들리지 않습니다. 그들의 눈과 귀는 스마트폰으로 향해 있으니까요. 사실 책보다 더 재미있는 것이 스마트폰입니다. 헌책방 밖에는 책보다 더 재미있는 것들이 아주 많습니다. 그리고 새로 나오는 책들의 등장에 나이 든 책들의 입지가 점점 좁아집니다. 가끔 2010년대에 나온 젊은 책들이 간혹 헌책방에 머무를 때가 있습니다. 정말 그들은 먼지가 쌓이기 전에 잠깐 머무릅니다. 오래 머물러봤자 최소 일 년입니다. 젊은 책들은 나이 든 책들보다 새 주인을 만날 확률이 높습니다.

 

아무리 헌책방을 예찬해봤자 헌책방을 갑자기 찾는 손님은 없을 겁니다. 헌책방은 직접 가봐야 합니다. 그러면 헌책방의 매력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헌책방 내부에는 먼지가 많고, 눅눅한 냄새가 코를 건드립니다. 게다가 여름에는 너무 덥고, 겨울에는 너무 춥습니다. 손님이 찾기에 아주 열악하고, 불편한 공간입니다. 요즘 거대하고, 아늑하고, 음악이 흐르고, 편하게 앉을 수 있는 오프라인 중고서점의 등장으로 헌책방을 찾는 발길이 더 뜸해졌습니다. 제가 지금까지 헌책방에 드나들면서 2, 30대 손님이 한 시간 이상 책을 고르는 모습을 단 한 번도 보지 못했습니다. ! 예외의 경험 딱 한 번 있었습니다. 젊은 남녀 커플이 헌책방에 와서 다자이 오사무의 인간 실격한 권을 찾느라 3, 40분 머무른 적 있었습니다. 헌책방에 오래 머무르는 손님들의 평균 연령층은 5, 60대입니다. 그런데 이분들 대부분은 책을 사는 목적 때문에 헌책방을 찾는 것이 아니라 헌책방 주인과 친분이 있어서 찾습니다. 이분들은 몇 시간 동안 헌책방 주인과 대화를 나눕니다. 그렇다고 이분들을 부정적으로 보는 건 절대로 아닙니다. 곰팡내 나는 헌책방에 이런 분들이 많이 와야 사람 냄새가 나는 헌책방이 될 수 있거든요. 그런데 이분들이 나이가 나이인지라 몸이 불편하면 헌책방에 방문하기 어렵습니다. 그분들과 같이 나이 먹어가는 헌책방 주인도 마찬가지입니다. 헌책방 주인의 하루는 노쇠한 체력 하나만 믿고, 헌책방의 문이 닫히지 않기 위해서 버티고 있습니다. 한 푼이라도 더 벌어 보려고, 그리고 정말 몇 안 되는 단골손님들이 오기를 기다리면서 헌책방을 홀로 지킵니다.

 

-뤽 낭시는 책을 진지하면서도 덧없는 사유라고 했습니다.[2] 아주 멋지면서도 맞는 말입니다. 한편으로 헌책방의 생존기를 생각하면 그 말이 서글프게 느껴집니다. 물론, 낭시는 그 말 다음에 우리가 끈질기게 공유하는 사유라고 덧붙이긴 했습니다. 그러나 헌책방 안에서 이러한 사유의 거래가 이루어지는 일이 희박해지고 있습니다. 제가 아무리 헌책방을 자주 찾는다고 해도 이 진지한 사유의 거래가 얼마나 오래 갈지 장담할 수 없습니다. 저는 작년 10, 제일서점의 예고 없는 폐점을 두 눈으로 목격하면서 사유의 거래를 했던 그동안의 세월이 덧없음을 느꼈습니다. ([갑작스러운 이별] 20161018일 작성)

 

그래도 저는 대구의 모든 헌책방이 완전히 사라질 때까지 그곳에서 끈질기게 공유하는 사유의 거래를 추구하고 싶습니다. 뭐 특별한 이유는 없습니다. 헌책방에서 좋은 책을 찾고, 읽는 것이 그저 즐겁기만 합니다.

 

 

 

[1] -뤽 낭시 사유의 거래에 대하여43

[2] 같은 책, 64~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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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프리쿠키 2017-02-06 18: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기사 재미있게 읽었어요
엄청 돈 버셨더군요ㅎ
좁은 공간에 복도까지 쌓여진 책을 보니
과연 손님이 있을까 싶은게 절로 삶의 무게가 느껴지던데 격세지감입니다.
인터넷의 발달이 누군가를 이렇게도 죽여왔구나 싶어요~

cyrus 2017-02-06 22:09   좋아요 1 | URL
세월이 너무 빠르게 지나가서 좋은 것들이 사라지거나 잊히는 상황이 아쉬워요.

해피북 2017-02-06 20:0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기사도 잘 읽고 글도 재밌게 잘 읽었어요. 종종 헌책방 탐방기를 올려주셨던 덕분에 헌책방에 대한 남모를 동경도 생기고 ㅎ 물론 곰팡이냄새는 조금 맡더라도 하루쯤 발품 팔아가며 책들 사이를 누벼보고 싶은 충동도 들게합니다. 작년에 알라딘 중고샵 방문 횟수가 1회라서 까마득하게 느껴지던 참이었는데 글을 읽고나니 막 달려가보고 싶네요 ㅋㅂㅋ

cyrus 2017-02-06 22:11   좋아요 1 | URL
서울뿐만 아니라 지방에 있는 헌책방에 한 번씩 방문해서 연재 형식으로 글을 써볼 생각도 한 적 있었어요. 1년 서재 활동 프로젝트인 거죠. 그런데 현실은.. ㅎㅎㅎ

대학생 때 이런 목적의 여행을 하지 못해서 후회됩니다.

지금행복하자 2017-02-06 22: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ㅋ저에게 헌책방은 참고서팔러간 기억밖에 없어요.. 알라딘 중고서점은 헌책방으로 안쳐 주니까요 ㅋㅋ

cyrus 2017-02-06 22:13   좋아요 0 | URL
대부분 사람들이 생각하는 헌책방의 이미지가 참고서 구하거나 팔 수 있는 곳이죠. 저 어렸을 때 교과서를 잃어버린 적이 있었어요. 그때 아버지가 직접 헌책방에 가서 똑같은 교재를 구하기도 했습니다. ^^

아무 2017-02-07 14: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가 지금 사는 곳엔 헌책방이 한 곳뿐인데, 책이 워낙 많아 둘러보기도 힘들었던 기억이 있어요^^;; 오랜만에 다시 찾아가봐야 될 것 같네요 ㅎㅎ

cyrus 2017-02-07 16:48   좋아요 0 | URL
혼자서 책을 찾기 힘든 헌책방일수록 좋습니다. 그러면 오기가 생겨서 다음에 또 한 번 가고 싶어져요. ^^

stella.K 2017-02-07 16: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헌책 장사도 무시할 게 아니구나.
난 그거해서 밥은 먹나 싶었거든.
이름난 서점들이 중고샵을 하는 것도 이유는 있겠어.ㅋ

cyrus 2017-02-07 16:51   좋아요 0 | URL
헌책방 사장님이랑 개인적으로 친분이 두터운 사이가 아니라서 하루에 받는 수입이 얼마인지 여쭈어보지 못했어요. 가게 임대료 때문에 푹 쉬지 못하고, 가게에 나서는 모습을 보면 안쓰러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