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중권의 《미학 오디세이》 1권을 읽어보신 독자라면 그 책에 인용된 프랑수아 비용(Francois Villon)의 시구를 봤을 것이다.

 

 

저는 가난하고 늙은 여인입니다

아주 무식해서 읽을 수도 없어요

그들은 저희 마을 교회에

하프가 울려 퍼지는 천국과

저주받은 영혼들이 불타는 지옥을 그려서 보여주었어요

하나는 내게 기쁨을 주지만

다른 하나는 두려움을 줍니다

(《미학 오디세이 1》 150쪽)

 

 

이 시의 제목이 『어머니를 위한 발라드』로 되어 있다. 발라드(ballade)란 유럽 중세에 유행한 자유로운 형식의 담시(譚詩)다. 《미학 오디세이 1》에 인용된 시구는 전체 내용의 일부이며 비용이 1461년에 발표한 <유언의 노래(Le Testament)>에 수록되었다. 발라드의 원제는 ‘Ballade pour prier Nostre Dame’이다. 이 제목은 ‘성모에게 기도하기 위한 발라드(송면, 《유언시》)’, ‘성모에게 기도하는 발라드(송면, 《프랑수아 비용 : 그 생애와 시 세계》)’, ‘성모에게 기도드리는 발라드(김준현, 《유언의 노래》)’로 번역되었다.

 

 

저는 아무 것도 모르는, 낫 놓고 기역자도 모르는

불쌍한 늙은 여자외다.

제가 속하고 있는 성당에는

수금(竪琴)과 비파(琵琶)가 그려진 천국의 그림과

죄인들이 업화에 타는 지옥의 그림이 있는데

하나는 저를 무섭게 하고 하나는 저를 기쁘고 즐겁게 하나니

 

(『성모에게 기도하는 발라드』 중에서, 《유언시》 128쪽)

 

저는 늙고 불쌍한,

아무것도 알지 못하고, 글자 한 자 읽을 수 없는 여인입니다.

제가 속한 교구의 교회에서, 저는 봅니다,

하프와 류트가 있는, 그림으로 묘사된 천국을,

그리고 단죄받은 죄인들을 불길에 끓이는 지옥을,

하나는 저를 두렵게 하며, 다른 하나는 기쁨과 즐거움을 줍니다.

 

(『성모에게 기도드리는 발라드』 중에서, 《유언의 노래》 53쪽)

 

 

그런데 《유언의 노래》에서는 원제가 ‘Ballade pour prier Notre Dame’으로 되어 있다. ‘Nostre’에서 ‘s’가 빠졌다. 오자로 보일 수 있으나 ‘Notre Dame’도 ‘성모’를 뜻하기 때문에 인쇄상 오류라고 단정 지을 수 없다. 아마도 ‘Nostre Dame’은 중세 시대에 사용했던 고어(古語)였을 것이다. 그런데 ‘Nostre Dame’을 인터넷 불어사전에 검색하면 ‘성모’가 아닌 생각지 못한 단어가 나온다.

 

‘Nostre Dame’은 예언가로 유명한 노스트라다무스(Nostradamu)의 본명과 같다. 우리가 잘 아는 이름은 라틴어고, 그의 프랑스어 본명은 ‘미셸 드 노스트르담(Michel de Nostredame)’이다. 그래서 시의 제목을 ‘노스트르담에게 기도하는 발라드’로 읽을 수 있다. 이것만 가지고 비용과 노스트라다무스의 연관성을 생각해볼 수 있는데, 전혀 관련이 없다. 비용은 1431년에 태어나서 1463년(추정)에 사망했고, 노스트라다무스는 그보다 훨씬 늦은 1503년에 태어났다. 굳이 두 사람의 공통점을 찾는다면, 시를 쓴 사실 그것 하나뿐이다. 비용은 8행시로 구성된 시를 남겼고, 노스트라다무스는 4행시로 이루어진 예언 시를 남겼다. 노스트라다무스의 예언 시는 세기말에 다시 주목받았고, 지구 종말론을 언급하기 좋아하는 사람들을 위한 ‘떡밥’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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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레프 2017-02-07 17: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뭔가 심오합니다

cyrus 2017-02-08 11:01   좋아요 0 | URL
비용의 시 중에 심오한 분위기를 내는 것들이 꽤 있습니다. 기독교의 구원 의식이 반영된 것도 있어서 지금 보기에는 좀 딱딱하게 느껴질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