컬러 테라피는 각각의 색채가 지닌 고유한 스펙트럼을 이용해 건강과 성격 변화를 유도하는 대체의학의 한 분야이다. 사람들의 시선을 끌기 위해 푯말에 붉은색 글씨를 쓰거나 학습효과를 높이기 위해 녹색 칠판을 쓰는 등 기능적으로 색깔을 활용하는 사례는 예부터 존재했다. 색채치료는 오래전부터 있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고대 이집트에서는 색깔을 이용해 질병을 치료했다고 한다. 최근에는 적극적인 치료 효과까지 염두에 두고 색깔을 활용하는 쪽으로 그 연구영역이 확대되는 추세다. 1980년대 교도소 내 폭력으로 골머리를 앓던 미국에서는 사람의 마음을 안정시키는 색깔이 알기 위해 실험한 끝에 분홍색을 가장 편안한 색으로 꼽았다. 당시 회색이었던 교도소의 벽 색깔을 분홍색으로 바꾸자 놀랍게도 교도소 내 폭력사고가 눈에 띠게 줄었다고 한다. 분홍색은 자궁 내부의 색이어서 편안함과 안정감을 준다는 설명이다.

 

 

 

 

 

바실리 칸딘스키 「동심원들과 정사각형」 (1913년)

 

 

 

바실리 칸딘스키의 그림 「동심원들과 정사각형」을 보라. 빨간색 원이 제일 먼저 눈에 띈다. 주황색, 노란색 등 난색이 많다. 《그림의 힘 1》(김선현 저, 에이트 포인트)에 이 그림의 효과가 소개된다. 책의 저자는 빨간색은 사람의 기분을 상승시키는 효과가 있다는 사실을 알리면서 체력이 떨어지면 이 칸딘스키의 그림을 벽에 붙여놓고 보라고 권한다. 저자의 말이 그럴싸하게 들린다. 이어서 저자는 빨간색의 효과를 증명해주는 실험 결과를 소개한다. 그리고 자신도 이와 유사한 실험을 시도해서 비슷한 결과를 얻었다고 주장한다.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의대의 실험에 따르면, 똑같은 정신병 치료약을 빨강색으로 코팅했더니 사람들이 흥분을 했고, 파란색이나 녹색으로 코팅했더니 진정 효과를 보였다고 합니다. 제가 한 관찰 실험 중에도 그런 결과가 나온 적이 있습니다. 우선 유치원생 20명을 빨간색 방 어린이들은 육체 놀이에 집중하는 반면, 파란색 방 어린이들은 책을 읽는 등 정적인 활동을 많이 하는 결과가 나타났습니다. (《그림의 힘 1》 중에서)

 

 

독자는 처음 이 글을 보는 순간, 아무런 의심 없이 받아들인다. 대학이나 권위 있는 연구소가 주관하는 실험에서 나온 결과라면 누구나 다 믿게 된다. 여기에 저자가 자신 또한 그 실험의 결과를 확인했다고 강조하면 설득 있게 보인다. 한편으로 어떤 독자는 이렇게 생각할 수 있다. 병원에 가면 환자들의 심신을 안정시키는 색채 치료실이 있는지 궁금해한다. 환자들이 많이 찾고, 최고급 의료기술이 있는 종합병원이라면 이런 색채 치료실 한두 개쯤은 마련되어 있을 것으로 생각하기 쉽다. 진짜로 있는지 확인하려면 수많은 종합병원에 전화를 걸어서 물어보는 방법이 있지만 시간이 오래 걸린다. 성급한 결론으로 보일 수 있지만, 색채 치료실 효과를 인정하는 의사는 많지 않을 것이다. 색채 치료실을 운영하는 병원이 나올 거라고 낙관적으로 전망하지 않는다. 주류 의학자나 심리학자들은 컬러 테라피 효과를 회의적으로 생각한다. 약이 아니라도 약이라고 알고 먹으면 효과가 있는 위약효과(플라세보 효과) 정도로 보고 있다. 그러므로 병원이 색채 치료실을 만들 이유가 없다. 색깔마다 오랜 시간을 거쳐 상징적 이미지를 갖고 있다는 것은 받아들일 수 있어도 특정 색의 치료 효과는 과학적 접근과 거리가 멀다. 

 

 

 

 

 

 

 

 

 

 

 

 

 

 

 

 

빨간색은 자연에서 접하는 불 또는 피의 이미지와 연관된다. 불은 따스함, 피는 생명 등으로 연결된다. 따스함은 열정으로 이어지고 빨간 스포츠카도 그런 이미지에서 연상된 것이다. 빨간색은 남성적인 색깔이다. 최초로 색채의 시각적 효과를 증명한 독일의 대문호 괴테는 빨간색을 ‘색의 왕’이라고 했다. 실제로 빨간색은 남성 귀족, 남성 추기경이 많이 선호했다. 왕정 시대에 빨간색 염료가 너무나도 귀해서 귀족이나 왕족만이 빨간색 옷을 입을 수 있었다. 오래전부터 빨간색이 강력한 권력을 상징하는 의미로 알려지기도 했다. 왕 이외 사람들은 절대로 빨간 옷을 입을 수가 없었다.

 

 

 

 

 

필립 드 상파뉴 「리슐리외 추기경」 (1637년경)

 

 

지금은 누구나 빨간 옷을 입을 수가 있지만, 권력을 상징하는 빨간색의 의미는 아직도 남아 있다. 추기경의 주케토(Zuchetto, 머리 위에 쓰는 모자)는 빨간색이다. 권위를 상징하는 빨간색은 왕족만 어울리는 것이 아니다. 프랑스 궁정화가 상파뉴는 루이 13세 통치 시절 재상을 지낸 리슐리외 추기경의 초상화를 제작했는데, 막강한 권력을 가진 자의 자태를 보여주고 있다.

 

 

 

 

 

(위) 바이오맨 (아래) 후뢰시맨

 

 

 

80년대에 어린 시절을 보낸 남자라면, ‘슈퍼 전대 시리즈’를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 국내에 널리 알려진 대표적인 작품이 우주특공대 바이오맨, 지구방위대 후뢰시맨 그리고 파워레인저가 있다. 역대 전대물 시리즈에서 나오는 대장은 공통으로 ‘레드’라는 호칭으로 부르며 빨간색 헬멧 슈트를 입고 변신한다. (예외가 있다. ‘전자전대 메가레인저’의 대장의 헬멧 슈트는 검은색, ‘미래전대 타임레인저’는 분홍색 헬멧 슈트를 착용하는 여성 대원이 대장이다) 역시 제일 앞장 서는 사람답게 ‘레드’는 늘 항상 다른 대원들보다 앞에 서고, <무한도전>의 유재석처럼 정중앙 자리를 고수한다. 그래서 남자 아이들이 가장 좋아하는 대원이 ‘레드’다. 레드가 ‘옐로’나 ‘핑크’ 같은 히로인보다 인기가 많을 수밖에 없는 이유가 남자는 대장 역할을 선호하기 때문이다. 그렇다 보니 네다섯 명의 동네 아이들과 함께 전대물 시리즈를 흉내 내는 역할 놀이를 하게 되면, 서로 레드 역할을 하고 싶어 싸우기도 한다.

 

 

 

 

 

 

 

 

 

 

 

 

그렇지만 빨간색에 좋은 의미만 있는 건 아니다. 적극성과 열정처럼 긍정적인 힘을 상징하면서도 불처럼 공격성과 분노 같은 부정적인 힘을 가지고 있다. 신호등의 빨간색이나 축구의 레드카드는 각각 금지와 경고의 신호다. 빨간색을 부도덕한 색으로 여겨 금기하던 시대도 있었다. 중세에 ‘빨간 머리+여자’ 조합은 마녀로 여겼다. 너새니얼 호손의 소설 《주홍 글씨》에서 헤스터는 간통을 저질러 붉은색으로 된 ‘간통(Adultery)’의 첫 글자 ‘A’ 글씨를 가슴에 달고 다닌다. 진정한 셜록키언이라면 셜록 홈즈 시리즈에 나온 빨간색을 기억해야 한다. 셜록 홈즈 시리즈의 시작을 알리는 《주홍색 연구》에 희생자가 죽어가면서 자신의 피로 벽에 ‘RACHE(독일어로 ‘복수’)’라는 글자를 새긴다. 《셜록 홈즈의 모험》 두 번째 수록작 <빨간 머리 연맹>에 나오는 악당의 머리 색깔은 붉은색이다. 《셜록 홈즈의 마지막 인사》 세 번째 수록작의 제목은 <붉은 원>이다. 소설에 언급되는 비밀 범죄 조직 이름이다. 쥘 르나르《홍당무》 주인공은 붉은 머리칼에 주근깨투성이인 탓에 ‘홍당무’라는 별명을 가지게 된다. 그의 어머니는 홍당무를 문제아처럼 대하고, 형과 누나는 홍당무를 놀린다. 이로 인해 홍당무는 사춘기 기질을 드러내며 세상에 대한 분노를 느낀다.

 

무슨 색이 어떤 상징을 부여하는 공식은 획일화에 빠질 수 있는 위험이 있다. 특히 인터넷에서 다양하게 소개되는 색채 치료 방법과 효과 중에는 명확하지 않은 경우가 많다. 일상생활에서 색깔의 의미를 찾을 때는 상식에 집착하기보다 자신에게 어울리는 색이 무엇인지를 찾는 것이 중요하다. 또한 치유력에 지나치게 맹신하는 것도 좋지 않다. 심리적 만족을 얻는 것만으로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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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쌩 2015-10-20 21:25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빨간색은 누구나 입을 수 있지만
아무나 소화할수는 없다는~~점이 슬프네요.

AgalmA 2015-10-20 21:49   좋아요 1 | URL
대~한민국~~~ 붉은 악마의 위엄이란 것도(쿨럭;)...농담이었습니다;

cyrus 2015-10-22 20:38   좋아요 0 | URL
붉은악마 응원할 때 레드티 입으면 거리낌없는데, 평상시에 입는 붉은색 옷은 소화하기 힘들어요. ^^;;

AgalmA 2015-10-20 22:10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한편 블루의 역사에서 보면, 블루가 권위의 상징이던 시절도 있었죠. 파란 염료 탄생으로 성모마리아의 의상도 흰색에서 푸른색으로 바뀌죠. 이건 아직도 많이 남아 있죠. 고가이다 보니 종교계, 왕실이 또 독점. 푸른 염료의 독성으로 개천이 푸른 독 라떼가 됐다는 기록을 보며....인간 사회에선 색조차 참 순수하게 존재하기 어렵구나...했어요;

cyrus 2015-10-22 20:39   좋아요 0 | URL
네, 맞아요. 색채의 역사를 살펴보면 귀족들이 자신들 선호하는 색에 무조건 권위의 상징을 붙였어요.
 
첫사랑의 이름 블루픽션 (비룡소 청소년 문학선) 38
아모스 오즈 지음, 정회성 옮김 / 비룡소 / 2009년 10월
평점 :
절판


 

 

* Soumchi (1978)

 

 

 

첫사랑. 생각만 해도 가슴 설레는 세 글자다. 아득한 기억 저편에서 금세 하얀 뭉게구름이 하트 모양을 그리며 뭉실뭉실 피어오를 것만 같다. 첫사랑의 추억은 우리의 마음속에 남는다. 그것을 담아두는 저장고는 머리가 아니라 대개 가슴의 영역이다. 열병 같은 첫사랑의 기억도, 부질없어 보이던 청춘의 방황도 세월이라는 이름 속에 사라지는 것 같지만, 어느새 추억이라는 옷을 갈아입고 우리의 가슴 속에 잔잔하게 스며든다.

 

아모스 오즈의 《첫사랑의 이름》은 우리에게 잊힌 첫사랑의 추억을 다시 환기하는 소설이다. 평범한 소년과 소녀의 만남과 사랑, 그리고 갑작스러운 이별. 어쩌면 다소 작위적하고 통속적인 설정으로 비칠 수도 있었던 이 잔잔한 성장 소설이 외국 문학상 심사위원의 지지를 이토록 깊은 지지를 끌어낼 수 있었던 원동력은 무엇일까. 삶의 진실이 문자로 명료하게 드러날 때, 그것을 읽는 독자는 소스라치게 놀란다. 이 소설의 서늘한 힘이란 바로 이런 것이다. 수줍은 첫사랑을 시작한 소년의 감정 변화를 생생하게 포착해내는 작가의 시선이 인상적이다.

 

책에 주인공 소년의 이름은 단 한 번도 언급되지 않는다. 그 대신, 동네 친구들이 그를 놀리기 위해 붙여준 별명이 이름을 대신한다. 소년이 별명을 얻게 된 사연이 독특하다. 지리 수업 시간에 소년은 선생님의 질문에 자신 있게 대답한다. 훌라 호수를 ‘숌히(Soumchi) 호수’라고도 부른다고 대답하자 선생님은 당황한다. 선생님은 탈무드에 훌라 호수의 또 다른 지명이 있는 사실을 전혀 알지 못한다. 교실의 아이들은 소년의 대답이 완전히 틀린 줄 알고, 크게 비웃는다. 이때부터 소년은 ‘숌히’라는 별명을 얻게 된다. 숌히가 좋아한 소녀 에스티는 전형적인 ‘츤데레’(마음속으로는 좋아하면서도 겉으로는 쌀쌀맞게 대하는 사람을 의미하는 인터넷 은어) 스타일. 에스티는 숌히를 퉁명스럽게 대하지만, 숌히는 어떻게든 그녀의 관심을 얻으려고 노력한다.

 

숌히는 외삼촌으로부터 자전거를 생일 선물로 받는다. 좀처럼 받기 힘든 특별한 선물을 자랑하고픈 마음에 숌히는 아이들 앞에서 자전거를 탄 채 등장하지만, 아이들은 숌히의 자전거가 여성용이라고 놀린다. 자존심 제대로 상한 숌히는 자신을 동네북으로 여기는 이곳을 벗어나 저 멀리 아프리카의 잠베지 강으로 떠나려고 결심한다. 말 그대로 가출을 꿈꾼다. 하지만 여행의 동반자가 될 자전거를 부잣집 아들인 알도의 장난감 기차 세트와 바꾼다. 이번에 고엘 게르만스키라는 소년이 자신이 키우는 개를 숌히의 장난감 기차 세트와 맞바꾸자고 강압적으로 제안한다. 너무나도 순진한 숌히는 개가 족보가 있는 순종이라는 고엘의 말을 믿고, 장난감 기차 세트를 주는 대신에 개를 얻는다. 숌히는 뒤늦게 자신의 결정에 후회한다. 하루 동안 모든 걸 잃어버린 자신의 처량한 신세를 한탄한다. 그러다가 길에서 우연히 에스티의 아버지를 만난다. 에스티의 아버지는 친절하게 숌히는 자신의 집으로 초대한다. 뜻밖의 행운! 숌히는 에스티를 만날 수 있다는 사실에 내심 기뻐한다. 운 좋게도 에스티의 방을 처음 구경하게 되고. 방에 그녀와 함께 있는 겹경사를 누린다. 이 만남을 계기로 숌히와 에스티는 다정하게 지내게 된다. 여기까지 숌히가 어린 시절에 겪은 첫사랑의 추억이다.

 

숌히는 뜻하지 않은 상황 덕분에 극적으로 에스티와의 만남이 성사될 수 있었다. 그렇지만 어른이 된 독자는 알고 있으리라. 운명이란 자기 뜻과는 아무런 상관없이 제멋대로 흘러가는 것이라는 점을. 세상은 점점 변하고, 영원할 것 같은 우리 마음도 세월 따라 무심히 변한다. 숌히는 히말라야나 아프리카에 가면 시간이 그대로 멈춘 장소를 만날 수 있다고 믿는다. 세상의 변화를 순순히 인정하지 않는다. 숌히는 너무 이른 나이에 삶의 진실을 알게 된다. 그렇게 그는 나이를 먹게 된다.

 

이 소설의 에필로그 제목은 ‘끝이 좋으면 다 좋다’. 셰익스피어의 희곡 작품(All's Well That Ends Well) 제목이기도 하다. 재미있게도 희곡의 여주인공 헬레나도 숌히처럼 외로운 존재에다가 짝사랑하는 상대가 있다.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는 바람에 고아가 된 헬레나는 후견인의 집으로 들어가 살게 된다. 그녀는 후견인의 아들을 좋아하지만, 그는 헬레나에 관심이 없다. 가출한 숌히가 에스티의 집으로 초대받은 과정이 희곡의 줄거리와 비슷하다. 헬레나와 숌히는 사랑을 성취하는 데 성공한다. 하지만 이 세상에 시작되는 모든 사랑이 셰익스피어 희곡의 결말처럼 행복하게 끝맺지 못한다. 숌히가 에스티와 헤어지게 된 이유가 밝히지 않은 채 소설은 여운을 남기면서 끝난다. 수줍은 마음으로 에스티에게 조심스럽게 다가가는 숌히에게 삶은 그리 관대하지만은 않다. 에필로그 제목은 달콤하면서 씁쓸한 첫사랑의 추억을 의미하는 슬픈 반어 표현이다.

 

기억 속 앨범 한구석에 있는 첫사랑의 추억을 끄집어내면 멋쩍다. 인생을 살면서 절대 잊히지 않을 것 같은 장면들이 희미해지고 그렇게 우리는 남자 또는 여자로 성장해 간다. 진한 사랑 한번으로 평생 함께 살았으면 하는 바람들은 철없는 기대였음을 알게 된다. 그러나 야속하게도 변하고 잊었다고 생각한 사람은 다시 기억으로 돌아온다. 녹음기에 담겨 있는 소리가 재생버튼을 누르면 언제라도 다시 들려오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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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절대의 탐구 (La Recherche de l'absolu, 1834년, <인간 희극> 제2부 철학 연구)

 

 

 

도스또예프스끼의 소설 《노름꾼》은 도박중독자의 심리를 뛰어나게 묘사한 명작이다. 이 소설은 바로 도스또예프스끼 자신의 얘기이기도 하다. 그는 한동안 도박에 빠져 파산지경에 이르렀고, 급기야는 앞으로 쓰게 될 작품을 담보로 선금을 받아 도박자금으로 썼다. 이 때 나온 소설이 《노름꾼》이다. 작가의 전 재산이랄 수 있는 문학혼을 걸고 도박자금을 융통한 거로 봐서 도스또예프스끼는 도박중독자임에 틀림없다.

 

도박 얘기에 ‘삼성 라이온즈’를 언급하지 않을 수가 없다. 어제 삼성 라이온즈 야구단 주축 선수 3명이 해외 원정 불법 도박을 한 사실이 발각되었다. 나는 이승엽이 아시아 한 시즌 최다 홈런 신기록을 달성하고, 2002년 한국시리즈 우승을 지켜본 삼성 라이온즈 팬이다. 어제 청천벽력 같은 소식에 너무 화가 난다. 도박 혐의로 의심받는 이 세 명의 선수가 이번 시즌 우승에 이바지를 했고, 올 시즌에 역대 최고 기록도 남겼다. 야구 경기에 승리하기 위해서는 투수의 역할이 가장 중요하다. 긴 이닝 동안 오래 던지면서 실점을 적게 허용하는 실력이 있어야 한다. 그래서 ‘야구는 투수 놀음’이라는 말이 있다. 제아무리 홈런을 뻥뻥 쳐주는 거포 타자들이 즐비한 팀이라도 선발이든 중간이든 투수가 공을 제대로 못 던져서 점수를 허용하면 승리를 장담할 수 없다. 세 명의 투수가 도박 혐의 사실이 인정되면, 그들은 ‘투수 노름’으로 인해 내년 선수 생활을 장담하지 못하는 최악의 상황을 받아들여야 한다.

 

이런 엄청난 결과를 잘 알면서도 부동산, 카지노, 경마, 벤처 등 어떤 아이템이 ‘돈 된다’는 소문만 나면 앞뒤 재지 않고 정신없이 달려드는 사람들이 많다. 그들은 ‘돈 놓고 돈 먹기’란 심정으로 부나방처럼 덤벼든다. ‘대박’을 쫓다가 그만 ‘쪽박’ 신세가 되어 패가망신한다. 오늘날에는 로또, 도박이 사람들에게 대박의 꿈을 부풀리는 위험한 놀이라면 과거에 황금이 귀했던 시절에는 연금술이 한탕주의식 풍조를 불러일으켰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고대부터 중세시대까지 유행한 연금술은 값싼 금속이나 돌 등을 금으로 만들어내기 위해 시작되었다. 사람에 따라 조금씩 차이가 있고, 자세한 비법은 일반에 공개되지 않았지만, 대개는 비슷한 과정을 거친다. 구리, 주석, 납, 철의 4가지 합금을 만들어 비소나 수은의 증기를 쬐면 백색을 띤 ‘은의 형상’이 만들어지고 이때 금으로 만드는 씨앗의 역할을 하는 소량의 금을 촉매제로 첨가하면 일이 마무리된다. 오랜 세월 수많은 실험을 거쳤지만 역사상 연금술을 통해 금을 만드는데 성공했다는 연금술사는 아무도 없다. 그야말로 허황한 꿈이다. 연금술에 푹 빠져 재산을 탕진하는 사람들이 늘어났지만, 그들의 무수한 시행착오가 오늘날 화학지식과 화학공업의 모태가 되었다. 그래도 허황한 일확천금의 꿈에 시간과 돈을 낭비하게 한 연금술을 좋게 볼 수 없다. 연금술은 수없이 시도해봤자 ‘꽝’만 나오는 복권과 같다.

 

한탕주의식 풍조가 한 사람의 인생을 파멸시키는 것뿐만 아니라 주변 사람들마저 힘들게 하는 과정을 잘 보여주는 소설이 바로 발자크의 《절대의 탐구》이다. 소설의 주인공 발타자르 클라스는 훌륭한 귀족 가문 출신의 남자다. 그는 화학 실험에 관심이 많다. 소설을 위해 꾸며낸 이야기이지만, 클라스는 프랑스의 유명한 화학자 라부아지에의 제자가 된 적이 있다. 어느 날 화학자이자 장교인 폴란드인 베르초프냐를 만나면서, 화학 실험에 열중하게 된다. 그가 이토록 실험에 집착하는 이유는 단 하나. 세상의 모든 물질을 단일한 ‘절대’ 원소로 만드는 것. ‘절대 원소’로 만드는 과정을 발견하면, 황금을 만드는 일은 식은 죽 먹기다. 하지만 현실적으로는 불가능한 일이다. 클라스는 허황한 진리를 믿으면서 자신의 방에 온종일 틀어박혀 실험에 몰두한다. 자신의 아내와 자식들을 거들떠보지 않고, 가세는 점점 기울어져 간다. 아내는 실험에 빠진 남편의 모습에 안타까워하며 예전 관계로 되돌리려고 노력한다. 그렇지만 부부의 사랑은 광적인 학문 탐구열을 이겨내지 못한다. 아내는 홀로 남편과 자식들 뒷바라지하다가 병을 앓아 세상을 떠나고 만다. 이제 아내의 역할은 고스란히 클라스의 딸 마르그리트가 맡게 된다. 아내가 죽은 뒤에도 클라스의 실험 정신은 갈수록 심해진다. 가족들 몰래 화학 실험 기구를 사는 바람에 빚이 늘어나게 된다. 클라스는 아내의 유산뿐만 아니라 딸이 물려받은 유산 일부를 빌리면서까지 화학 실험에 필요한 것들을 마구 사들인다. 이런 상황을 더 이상 지켜볼 수 없었던 마르그리트는 좀 더 강경한 자세로 나서서 아버지의 실험을 어떻게든 막으려고 노력한다. 

 

《절대의 탐구》는 그리 길지 않은 분량의 소설인데도, 계속 읽어나가는 것이 벅차다. 발자크 특유의 장황한 묘사에 금세 집중력을 떨어뜨리지만, 무엇보다도 발타자르 클라스의 행동을 보는 내내 짜증이 일어난다. 사실 가정을 소홀히 하고, 말도 안 되는 실험에 집착한 클라스 같은 남편의 행동은 이혼 사유 감이다. 소설 후반부에 이를수록 클라스의 추태는 차마 눈 뜨고 보기 힘들다. 딸이 돈을 빌려주지 않자, 징징대다가 자살 소동을 일으켜서 동정심을 유도하는 모습이 꼴불견이다. 언젠가는 절대 원소를 발견하면 즉시 돈을 갚겠다고 약속하는 모습도 보기 흉하다. 발타자르 클라스는 최악의 남편상, 최악의 아버지상을 동시에 갖춘 최악의 주인공이 되시겠다.

 

어떤 것에 중독된 사람들은 공통으로 손이 잘리면 발로라도 한다는 식으로 끝까지 집착하는 성향을 보인다. 상대방이 절제하라고 조언을 해도 받아들이지 않는다. 오히려 좋게 조언을 해주는 사람들에게 따진다. 다른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데 왜 자기가 좋아서 하는 일에 참견하느냐고 화를 낸다. 중독 증세가 심한 사람들은 자기가 주변 사람들을 피곤하게 만들고 있는지를 잘 모른다. 또한, 자신의 중독 증세가 심한 상태라는 것도 스스로 인정하지 않는다. 《절대의 탐구》를 읽는 내내, 이번 주 월요일에 방영했던 TV 프로그램 ‘안녕하세요’가 생각났다. 하필이면 그 방송에 낚시에 재미 들인 아버지, 게임 중독 어머니 그리고 폭음하는 아버지의 사연이 소개되었다. 세 사람 다 중독의 원인은 달라도, 증세는 비슷했다. 자신을 측은하게 바라보는 주변 사람들의 심정을 헤아리지 못했다. 중독도 제대로 고치지 못하면 헤어나기 힘든 마음의 병이 된다. 집착할수록 자기 영혼뿐만 아니라 자신이 사랑하는 주변 사람들의 영혼마저 갉아먹는다.

 

 

 

 

 

※ 눈 뜨고 못 봐주는 오자

 

* 1912년 8월 하순 어느 일요일, 저녁기도가 끝난 뒤, 한 여인이 뜰을 향한 창문 앞 안락의자에 앉아 있었다. (297쪽) → 뜻밖의 타임머신

 

* 자신을 못생겼다고 수군대는 세상의 평판에 순종하는 젊은 처녀의 사랑을 잘 묘사하려면, 좋이 책 한 권은 필요하지 않을까? (307쪽) → 종이책? 그거 좋지!

 

* 발랄한 취주악의 팡파르에밖에 비유할 길 없는 효과를 내고 있는 빛의 범람 속에... (347쪽) → 여기에 함정이 있어!

 

* 클라스 부인이 천사를 그린 귀드 레니의 그림 앞에서 노신부를 불러세웠을 때... (380쪽) → 이탈리아의 바로크 화가 ‘Guido Reni’를 ‘귀도 레니’라고 쓰는 것이 맞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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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10-16 19:30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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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10-19 19:49   URL
비밀 댓글입니다.
 

 

 

 

 

 

 

 

 

 

 

 

 

 

 

 

 

 

 

 

우리는 스스로 만들었거나 만들어진 틀 속에 갇혀 산다. 자신이 다른 이들보다 객관적이라고 착각하지만, 사실은 모두 왜곡된 창으로 세상을 바라본다. 우리가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이 얼마나 많은 편견으로 차 있는지를 보여주는 흥미로운 실험 하나 소개하겠다.

 

시카고대학 소속 심리학자들이 경찰관이 범인을 체포하는 방식의 시뮬레이션 컴퓨터 게임을 고안했다. 게임 규칙은 간단하다. 참가자는 경찰관이 되어 컴퓨터 화면에 나타나는 범인이 보이면 재빨리 총을 쏘면 된다. 범인은 한 손에 권총이 쥐어져 있고, 범인이 아닌 선량한 사람은 휴대폰 같은 위험하지 않은 물건을 손에 들고 있다. 화면에 나타나는 사람들은 백인과 흑인으로 구성되었다. 선량한 사람이 다치지 않고, 정확하게 범인에게만 총을 쏜 참가자는 상금을 받는다. 참가자들은 상금을 얻기 위해 화면에 끝까지 집중했지만, 위험인물에게 총을 쏘아야 할지 말아야 할지 상당히 늦게 결정했다. 그리고 휴대폰을 들고 있는 흑인 남성을 쏘고, 무기를 소지한 백인 남성을 보내주는 실수를 반복했다. 호주 심리학자가 시카고대학의 실험과 아주 비슷한 방식을 시도했다. 이번에 터번을 쓴 남성을 화면에 등장시켰다. 이 실험에서 참가자들은 평범한 복장의 남성보다 머리에 터번을 쓴 남성을 볼 때 더 많이 총을 쏘았다.

 

 

 

 

알 카에다의 수장 오사마 빈 라덴. 그가 은신 생활을 하는 동안 외신은 하얀 터번, 길게 자란 수염의 빈 라덴 사진과 영상을 반복해서 공개했고, 터번과 수염은 테러리스트를 상징하는 트레이드마크가 되었다. 상징이 각인된 사람은 터번을 쓴 긴 수염의 중동인만 보면 테러리스트로 의심한다.   

 

 

두 가지 실험에 참가한 사람들은 자신 눈앞에 있는 사람이 위험인물인지 아닌지 식별하는 데 어려워한다. 게임을 하다가 간혹 생기는 단순한 실수로 가볍게 이해해선 안 된다. 이런 비극적인 상황이 실제로 일어난다. 평범한 시민이 이슬람 테러리스트로 오인되어 경찰관의 총격을 받아 사망하는 일이 발생한 적이 있다. 피부색이 까무잡잡한 중동인 외모를 가졌다는 이유로 테러리스트로 의심받는다. 9.11 테러 이후 미국 사회 내 반이슬람 정서가 높아지면서 아랍계 미국인에 대한 차별성 범죄가 늘어났다. 이슬람계에 대한 보복성 범죄 증가는 전혀 놀라울 게 못 된다. 지금도 여전히 미국 사회에서 이슬람 공포증을 유발하는 수사적 표현을 구사하는 정치인, 언론인들이 있다. 그들의 목소리에 익숙한 미국인들은 무슬림과 아랍계 미국인에 대한 적대감이 해소되지 않은 채 증오감을 더 키운다. 터번을 쓴 남성만 보면 무조건 테러리스트로 의심하는 무시무시한 편견이 형성된다.

 

 

 

 

 

'수염 난 장난꾸러기' 스웨덴지부 단체 사진 (사진출처: 연합뉴스)

 

 

무장세력 IS의 난폭함이 갈수록 심해지면 무슬림에 대한 편견도 사라지지 않는다. 최근 스웨덴에서 남성들로 구성된 친목모임 단체가 IS 일원으로 오인되는 해프닝이 있었다. 덥수룩한 수염을 기른 남성회원 30여 명으로 구성된 ‘수염 난 장난꾸러기들’이 스톡홀름에 있는 고성에서 기념사진을 찍었다. 이들은 단체 깃발을 가지고 왔는데, 검은색 바탕의 깃발에 ‘X’자로 교차한 두 개의 검이 그려져 있다. 멀리서 보면 흡사 해적 깃발과 비슷하게 생겼다. 깃발을 들고 무리 지어 고성을 찾은 단체 회원들을 목격한 사람은 처음에 그들이 IS조직인 줄 알고 경찰로 신고했다. 아마도 신고자는 수염 난 사내들이 오사마 빈 라덴과 비슷하게 생겨서 위험인물로 생각했을 것이다. 뉴스가 공개하는 이슬람 무장단체 일원들은 공통으로 수염이 많이 자라나 있다. ‘수염 난 장난꾸러기들’은 형제애, 자선, 친절을 목표로 생활하는 엘리트 남성들의 친목단체다. 스웨덴 지부뿐만 아니라 전 세계 곳곳에 지부가 있다. 혹시 외국을 여행할 때 정장 차림에 덥수룩한 수염이 있는 남자들이 때로 모여 돌아다닌다면, 일단 무서운 사람으로 오해하지 마시라. ‘수염 난 장난꾸러기’의 단체 깃발도 기억해두시길.

 

인종 편견은 흑인을 바라보는 시선에서도 나타난다. 흑인들이 많이 사는 동네에는 범죄가 잦아서 흑인 범죄 성향이 높다는 편견 때문에 비무장 흑인마저 잠재적 범죄자가 된다. 지난달 말에 휠체어를 탄 흑인 청년이 경찰의 총격에 사망하는 사건이 일어났다. 흑인 차별과 편견이 사라지지 못한 이유 중 하나는 자신과 다른 것을 선천적으로 두려워하는 심리에서 비롯되기 때문이다. 미국 대통령이 흑인이어도 여전히 흑인을 범죄와 연관 지어서 두려워하는 미국인이 많다. 사실과 맞지 않은 원초적 두려움은 편견의 뿌리가 되어 우리 뇌 속에 자라난다. 오랜 세월이 지나서야 드디어 세상에 공개된 하퍼 리의 소설 《파수꾼》에는 흑인에 대한 두려움으로 사로잡혀 편견에 쉽게 조종당하는 사람들이 등장한다. 진 루이즈 핀처의 고모는 과거에 메이콤 마을에 일어난 흑인 폭동의 공포를 잊지 못한다. 그러면서 그들을 법적으로 보호하는 NACCP(흑인 인권단체)에 반감을 품는다. 루이즈의 친구는 흑인 인권 운동이 공산주의자들과 결탁한 음모로 믿는다.  

 

뚜렷한 믿음은 복잡한 세상을 살아가는 데 훌륭한 지침이 된다. 삶을 지탱해주는 기준이 없으면 자신감을 가질 수 없다. 중심이 없으니 늘 주변에 휘둘린다. 불안한 삶을 살게 된다. 그런데도 우리가 가진 생각이나 행동이 나도 모르게 잘못된 편견에 매몰되지 않았는지 자문할 필요는 있다. 타인을 향한 편견은 증오가 담긴 화살이 되어 선량한 사람의 피를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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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10-15 23:43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15-10-16 16:14   좋아요 1 | URL
그래서 편견이라는 게 정말 무서워요. 저 또한 그런 함정에 쉽게 빠질 수 있는데, 이런 위험을 감지하지 못해요.

[그장소] 2015-10-16 04: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 편견일까요? 조종일까요? 일종의 시그널에 계속 노출되서 무의식 중 세뇌라면..아니..의식중 세뇌일 수도..
계속 암시를 줬어요. 대중적 매체를 통해서..그들은
다르다고요...아닐까요...?! 선택되어지도록 ..이 실험은 이미 세팅 자체가 의미 없었는 건지 몰라요.

cyrus 2015-10-16 16:33   좋아요 1 | URL
그장소님이 말씀하시는 ‘일종의 시그널’이 ‘편견’과 비슷한 의미로 본다면, 제가 소개한 실험이 대중매체가 전파한 편견에 조종당한 사람들의 심리를 보여주는 사례로 볼 수 있겠군요. 이 글의 요지는 편견의 근본적인 원인입니다. 그러니까 편견이 어떻게 해서 생기는 건지 알리고 싶었습니다.

마립간 2015-10-16 08:0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파수꾼>에는 흑인에 대한 두려움으로 사로잡혀 편견에 쉽게 조종당하는 사람들. ; 이 문구를 보니, 고양이를 무서워 하는 사람들과 강간을 두려워하는 여성들이 떠오르네요.

cyrus 2015-10-16 16:39   좋아요 1 | URL
어떤 사람들은 고양이 울음소리가 너무 무서워서, 고양이 자체를 싫어하기도 해요. 밤에 고양이 울음소리를 들으면 무섭게 느껴진 건 사실이지만, 고양기가 알고 보면 매력 있는 동물이에요.

AgalmA 2015-10-16 21:0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불안-공포와 편견이 참 미묘해지는 지점에서 연결되어 있다고 봅니다. 진화적인 자기 보호본능상 어떤 사건을 트라우마적으로 겪게 되면 편견이나 병증으로 뿌리내리게 되는 상황이 되는 듯 싶으니까요.
˝꼬마 앨버트˝ 실험에서도 볼 수 있듯이 공포 조건반사를 보려고 한 잔인한 실험은, 꼬마 앨버트가 흰쥐를 두려워하게 만들고 더 나아가 다른 조그만 털 난 동물 전체, 흰 수염에도 공포증을 갖게 만들어 산타클로스도 무서워했다고 하죠. 이처럼 ˝확장성˝이 편견에서 가장 우려되는 점이죠.
여하간 이 행동주의 관점의 실험은 뇌과학 쪽에선 이의를 제기했죠. 조건형성 때문이 아니라 원래 인간 뇌가 쥐 같이 병원균을 옮기는 생물을 겁내게끔 만들어졌다는 의견.
이런 실험을 받은 아이들이 단명하거나 사회부적응으로 고통당하는 등의 뒷이야기들은 더 처참하고....

덧붙여 홀로코스트를 경험하지 않았는데도 그 자녀들이 유전적으로 공포 불안 상황에 대한 뉴런이 더 많다는 것도 의미심장...
아무튼 참 복잡한 인간 심리...

[그장소] 2015-10-16 20:48   좋아요 0 | URL
음...더 가면 공포..그렇죠.
알게모르게 노출이 자연스레 이뤄지고 있다는걸.
저는 말한것이고.
cyrus 님은 딱 저 견해를 놓고 만 말씀하신 것이고요.
거기서 파생된 연쇄적 반응에 대해 마립간님 Agalma님이 정리를 해 주신 셈..
제 얘기는 좀 치우친 면이 있답니다 .전문 분야로 논한 게 아니니 너그럽게 양해를 바랍니다.^^

[그장소] 2015-10-16 20:50   좋아요 0 | URL
사람이 참 못할 짓을 과학이란 명분으로 많이해요.
이놈의 호기심...ㅎㅎㅎ
심리..이걸 탓해야하나? 인간 자체가 판도라의 상자.

AgalmA 2015-10-16 21:02   좋아요 1 | URL
그장소님이 말씀하신 대중매체적 선동도 일리 있습니다.
저는 인간 자체의 심리 작동 방식에서 보려고 한 거여서 맥락이 서로 달랐을 뿐 서로 보족적이지 충돌될 부분은 없는 것 같습니다~

과학이란 명분...뭘 모르니 여기도 찔러보고 저기도 찔러보고 아니겠습니까...빛과 어둠처럼 득이 있는 만큼 피해도 불가피하고요. 득보다 실을 더 피해야 할 텐데 그게 참...

cyrus 2015-10-19 20:01   좋아요 1 | URL
그장소님의 의견은 틀리지 않습니다. 아갈마님이 지난주에 제가 달았던 댓글 내용을 좀 더 정확하게 풀어쓰셨어요. 선동으로 인한 확장성이 편견을 조장하는 원인입니다. 제가 ‘선동’이라는 표현을 썼어야하는데, 그 단어가 생각나지 않았어요. ‘대중매체가 전파한 편견에 조종당한’이라고 쓴 표현이 구체적이지 않아서 아마도 제 댓글이 그장소님의 의견을 반박하는 의미로 보인 것 같습니다. 큰 오해 없으면 합니다. ^^

[그장소] 2015-10-16 21: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Agalma 님 말씀 대로 같은걸 놓고 서로 각자의 방향에서 보고자 한 ..것으로 사료 되옵니다 .하하핫~

[그장소] 2015-10-19 20:3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저는 반박으로 본적은 없는데 .왜 저는 선동 이란 단어를
선호치 않아 서 안썼거든요.^^ 너무 우회를 한 탓에 배려 토스가 서로..주어지다보니..조심성만 가득 해진 면이 있단 생각 이..들어요.그냥 포크로찍듯 그 단어를 적재적소에 써야 한단걸..또 배우네요.^^
cyrus님 오해나 반박이나..그런 느낌이 아니고 저는 즐거웠어요.진심으로.^^

cyrus 2015-10-19 20:39   좋아요 1 | URL
좋게 보셔서 고맙습니다. ^^

[그장소] 2015-10-19 20:43   좋아요 0 | URL
저야 다른 사례를 가져와 대입을 시킨 셈이니 이해를 바랄 쪽은 제 쪽이 분명하거든요.
잘 받아주셔서 전 이야기에 흥미가 한껏이었고요.
^^
다시 읽어봐도 논점에 벗어난 글이 아니고.
제 얘긴 다른 사례의 붙임 정도. .로 참고 해주시면 했었어요.ㅡ그러니 여러모로 감사합니다. ㅎㅎ
 
경제학자들은 왜 싸우는가 - 세상을 움직이는 4가지 경제이론에 대한 가장 명쾌하고 간결한 입문서!
질 라보 지음, 권지현 옮김 / 서해문집 / 2015년 6월
평점 :
절판


 

 

 

성장이 먼저냐, 분배가 우선이냐. 경제학에서 가장 많이 다루는 고전적인 명제다. 효율과 평등 중에서 어느 것을 더 중요시하느냐는 것으로, 이 문제는 경제학의 역사만큼이나 오래됐다. 국민이 배불리 먹으려면 일단 파이를 크게 만들어야 한다는 주장이 일리가 있고, 파이를 크게 만드는 것 못지않게 어떻게 공정하게 나누느냐 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주장 역시 타당하다. 그래서 이 논쟁은 지금까지 지속하고 있다. 세계 각국의 정당은 어느 쪽을 중시하느냐에 따라 갈라지고, 선거 때마다 국민의 심판을 받는다. 이렇듯 경제학은 우리 삶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친숙한 학문이다. 추상적이고 포괄적인 개념은 이제 일상이 되었고 더 이상 경제가 빠진 사회는 상상조차 할 수 없다. 하지만 경제가 학문이 되는 순간, 우리는 머리가 지끈거리기 시작한다. 경제학의 거장이라는 애덤 스미스, 리카도, 케인스 같은 학자들도 학창시절 한번쯤 우리를 골탕먹였던 악명 높은 인물로만 기억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질 라보의 《경제학자들은 왜 싸우는가》는 그러한 거부감을 줄여주는 책이다. 학자들의 핵심 이론과 좀 더 편하게 만날 수 있도록 했다. 이 책에 다루는 경제학자는 애덤 스미스, 케인스, 마르크스, 칼 폴라니다. 교과서에서처럼 그래프와 공식으로 뒤덮인 난해한 설명은 없다. 대신 이러한 이론들이 경제를 어떻게 바라보는지를 아주 쉽게 소개하고 있다. ‘지대넓얕(지적 대화를 위한 넓고 얕은 지식)’처럼 딱 필요할 만큼의 내용을 알려주는 방식이 이 책의 가장 큰 장점이다. 그러나 지식을 너무 얇게 진열되다 보니 독자의 궁금증을 완벽하게 해갈해주지 못한다. 예를 들면, 저자는 애덤 스미스의 ‘보이지 않는 손’이 《국부론》를 잘못 해석한 용어라고 주장하는데, 저자의 말에 뒷받침해주는 인용문이 없다. 경제학을 제대로 공부하고 싶은 독자는 질 라보의 책을 읽고 난 다음에 애덤 스미스에 관한 또 다른 책을 참고한다. 그러면 질 라보의 설명이 옳은 건지 직접 눈으로 확인할 수 있고 자연스럽게 새로운 정보를 터득하게 된다. 이론을 쉽게 설명한 책이라고 해서 저자의 주장에 무조건 동의하면서 읽는 건 잘못된 독서 방식이다. ‘경제학’을 하나의 건물로 비유하자면, 질 라보의 책은 ‘경제학’을 세우려고 마련한 기본적인 토대와 같다. 달랑 토대만 세워놓은 상태만으로 ‘경제학’을 제대로 안다고 할 수 없다.

 

질 라보는 4가지 경제이론이 인류의 경제 인식에 커다란 영향을 준 ‘표상’이라고 말한다. ‘표상’이라는 용어가 이 책에서 가장 어렵게 느껴지는 대목일 수 있다. 철학 용어로서의 ‘표상’이 먼저 떠오른다면 잠시 잊어도 좋다. 저자는 ‘표상’을 단순하게 설명한다. ‘경제’라는 이름이 붙여진 이미지를 의미한다. 그래도 용어의 의미가 난해하다고 생각하면, ‘본보기’로 순화하여 이해해도 된다. 과거부터 오늘날까지 경제학자들은 이 ‘본보기’를 둘러싸고 설전을 펼친다. 사회의 변화에 따라 네 가지 경제 이론이 역사의 무대에 여러 번 재등장했다.

 

처음에 애덤 스미스는 경제를 시장 자체로 인식했다. 시장은 완전히 자유롭게 내버려 둘 때 최고의 상태가 된다고 주장했다. 그의 주장은 자유주의 경제학자들의 지적 토양이 되어주었고, 오늘날 주류경제학의 전제로 확고히 자리 잡게 된다. 하지만 1930년에 들이닥친 대공황으로 대세는 실업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부의 재분배를 주장한 케인스의 이론으로 흘러갔다. 케인스는 경제를 순환적인 흐름으로 이해했다. 경제가 잘되려면 시장경제를 그대로 내버려둬선 안 되고, 선순환이 이루어지도록 정부 지출을 확대하는 ‘큰 정부’ 역할을 강조한다. 1960년대 전 세계가 인플레이션이 심각해지자 다시 애덤 스미스의 고전학파가 전성기를 맞는다. 마르크스는 자본주의를 ‘자본가’와 ‘노동자’로 나누어지는 권력관계로 본다. 애덤 스미스가 생각한 대로 부는 교환을 통해서 창출되는 것이 아니라 소수의 자본가가 노동자의 착취로 자본을 축적할 때 형성된다고 말한다. 마지막으로 칼 폴라니는 시장중심주의 경제의 틀에 벗어나 환경을 해치지 않는 지속 가능한 경체체제로 구상하자고 주장한다.

 

이 네 가지 경제이론을 이해하고 나면 심오한 질문처럼 느껴지는 책 제목의 의미를 알 수 있다. 제목의 ‘경제학자’를 ‘정치인’으로 바꿔서 생각하면 경제이론이 교과서에 있어야 할 지루한 내용이 아님을 깨닫게 된다. 오늘날에도 시장경제에 모두 맡기자는 고전학파 이론과 감세로 부를 분배하자는 케인스 이론의 자리다툼이 이어지고 있다. 당시의 상황에 따라 두 이론이 번갈아 선택되고 있다. 어느 것이 최선인가의 정답은 단지 상황에 따라 결정될 뿐이다. 어느 이론을 선택하느냐에 따라 정책의 방향은 크게 달라진다. 이 고민은 경제학자, 정치인만의 문제가 아닌 우리 모두 숙고해야 할 기본적인 삶의 물음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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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ureka01 2015-10-15 23:4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낙수효과는 작동되지 않는다는 걸 모르죠..

그러나 아무리 물을 부어도 물이 다른데로 세버리고 아래로 내려가지 않는 돈이 되어 버렸어요.

이젠 경제학자들이 분수효과를 이야기 하더군요..^^

cyrus 2015-10-16 16:43   좋아요 0 | URL
낙수/분수 효과에도 각각 장단점이 있을 겁니다. 그나저나 분수효과 얘기나 나온다면 새누리당과 자유경제원을 어떻게든 이 분수효과를 깎아내리려고 홍보를 하겠군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