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절대의 탐구 (La Recherche de l'absolu, 1834년, <인간 희극> 제2부 철학 연구)

 

 

 

도스또예프스끼의 소설 《노름꾼》은 도박중독자의 심리를 뛰어나게 묘사한 명작이다. 이 소설은 바로 도스또예프스끼 자신의 얘기이기도 하다. 그는 한동안 도박에 빠져 파산지경에 이르렀고, 급기야는 앞으로 쓰게 될 작품을 담보로 선금을 받아 도박자금으로 썼다. 이 때 나온 소설이 《노름꾼》이다. 작가의 전 재산이랄 수 있는 문학혼을 걸고 도박자금을 융통한 거로 봐서 도스또예프스끼는 도박중독자임에 틀림없다.

 

도박 얘기에 ‘삼성 라이온즈’를 언급하지 않을 수가 없다. 어제 삼성 라이온즈 야구단 주축 선수 3명이 해외 원정 불법 도박을 한 사실이 발각되었다. 나는 이승엽이 아시아 한 시즌 최다 홈런 신기록을 달성하고, 2002년 한국시리즈 우승을 지켜본 삼성 라이온즈 팬이다. 어제 청천벽력 같은 소식에 너무 화가 난다. 도박 혐의로 의심받는 이 세 명의 선수가 이번 시즌 우승에 이바지를 했고, 올 시즌에 역대 최고 기록도 남겼다. 야구 경기에 승리하기 위해서는 투수의 역할이 가장 중요하다. 긴 이닝 동안 오래 던지면서 실점을 적게 허용하는 실력이 있어야 한다. 그래서 ‘야구는 투수 놀음’이라는 말이 있다. 제아무리 홈런을 뻥뻥 쳐주는 거포 타자들이 즐비한 팀이라도 선발이든 중간이든 투수가 공을 제대로 못 던져서 점수를 허용하면 승리를 장담할 수 없다. 세 명의 투수가 도박 혐의 사실이 인정되면, 그들은 ‘투수 노름’으로 인해 내년 선수 생활을 장담하지 못하는 최악의 상황을 받아들여야 한다.

 

이런 엄청난 결과를 잘 알면서도 부동산, 카지노, 경마, 벤처 등 어떤 아이템이 ‘돈 된다’는 소문만 나면 앞뒤 재지 않고 정신없이 달려드는 사람들이 많다. 그들은 ‘돈 놓고 돈 먹기’란 심정으로 부나방처럼 덤벼든다. ‘대박’을 쫓다가 그만 ‘쪽박’ 신세가 되어 패가망신한다. 오늘날에는 로또, 도박이 사람들에게 대박의 꿈을 부풀리는 위험한 놀이라면 과거에 황금이 귀했던 시절에는 연금술이 한탕주의식 풍조를 불러일으켰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고대부터 중세시대까지 유행한 연금술은 값싼 금속이나 돌 등을 금으로 만들어내기 위해 시작되었다. 사람에 따라 조금씩 차이가 있고, 자세한 비법은 일반에 공개되지 않았지만, 대개는 비슷한 과정을 거친다. 구리, 주석, 납, 철의 4가지 합금을 만들어 비소나 수은의 증기를 쬐면 백색을 띤 ‘은의 형상’이 만들어지고 이때 금으로 만드는 씨앗의 역할을 하는 소량의 금을 촉매제로 첨가하면 일이 마무리된다. 오랜 세월 수많은 실험을 거쳤지만 역사상 연금술을 통해 금을 만드는데 성공했다는 연금술사는 아무도 없다. 그야말로 허황한 꿈이다. 연금술에 푹 빠져 재산을 탕진하는 사람들이 늘어났지만, 그들의 무수한 시행착오가 오늘날 화학지식과 화학공업의 모태가 되었다. 그래도 허황한 일확천금의 꿈에 시간과 돈을 낭비하게 한 연금술을 좋게 볼 수 없다. 연금술은 수없이 시도해봤자 ‘꽝’만 나오는 복권과 같다.

 

한탕주의식 풍조가 한 사람의 인생을 파멸시키는 것뿐만 아니라 주변 사람들마저 힘들게 하는 과정을 잘 보여주는 소설이 바로 발자크의 《절대의 탐구》이다. 소설의 주인공 발타자르 클라스는 훌륭한 귀족 가문 출신의 남자다. 그는 화학 실험에 관심이 많다. 소설을 위해 꾸며낸 이야기이지만, 클라스는 프랑스의 유명한 화학자 라부아지에의 제자가 된 적이 있다. 어느 날 화학자이자 장교인 폴란드인 베르초프냐를 만나면서, 화학 실험에 열중하게 된다. 그가 이토록 실험에 집착하는 이유는 단 하나. 세상의 모든 물질을 단일한 ‘절대’ 원소로 만드는 것. ‘절대 원소’로 만드는 과정을 발견하면, 황금을 만드는 일은 식은 죽 먹기다. 하지만 현실적으로는 불가능한 일이다. 클라스는 허황한 진리를 믿으면서 자신의 방에 온종일 틀어박혀 실험에 몰두한다. 자신의 아내와 자식들을 거들떠보지 않고, 가세는 점점 기울어져 간다. 아내는 실험에 빠진 남편의 모습에 안타까워하며 예전 관계로 되돌리려고 노력한다. 그렇지만 부부의 사랑은 광적인 학문 탐구열을 이겨내지 못한다. 아내는 홀로 남편과 자식들 뒷바라지하다가 병을 앓아 세상을 떠나고 만다. 이제 아내의 역할은 고스란히 클라스의 딸 마르그리트가 맡게 된다. 아내가 죽은 뒤에도 클라스의 실험 정신은 갈수록 심해진다. 가족들 몰래 화학 실험 기구를 사는 바람에 빚이 늘어나게 된다. 클라스는 아내의 유산뿐만 아니라 딸이 물려받은 유산 일부를 빌리면서까지 화학 실험에 필요한 것들을 마구 사들인다. 이런 상황을 더 이상 지켜볼 수 없었던 마르그리트는 좀 더 강경한 자세로 나서서 아버지의 실험을 어떻게든 막으려고 노력한다. 

 

《절대의 탐구》는 그리 길지 않은 분량의 소설인데도, 계속 읽어나가는 것이 벅차다. 발자크 특유의 장황한 묘사에 금세 집중력을 떨어뜨리지만, 무엇보다도 발타자르 클라스의 행동을 보는 내내 짜증이 일어난다. 사실 가정을 소홀히 하고, 말도 안 되는 실험에 집착한 클라스 같은 남편의 행동은 이혼 사유 감이다. 소설 후반부에 이를수록 클라스의 추태는 차마 눈 뜨고 보기 힘들다. 딸이 돈을 빌려주지 않자, 징징대다가 자살 소동을 일으켜서 동정심을 유도하는 모습이 꼴불견이다. 언젠가는 절대 원소를 발견하면 즉시 돈을 갚겠다고 약속하는 모습도 보기 흉하다. 발타자르 클라스는 최악의 남편상, 최악의 아버지상을 동시에 갖춘 최악의 주인공이 되시겠다.

 

어떤 것에 중독된 사람들은 공통으로 손이 잘리면 발로라도 한다는 식으로 끝까지 집착하는 성향을 보인다. 상대방이 절제하라고 조언을 해도 받아들이지 않는다. 오히려 좋게 조언을 해주는 사람들에게 따진다. 다른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데 왜 자기가 좋아서 하는 일에 참견하느냐고 화를 낸다. 중독 증세가 심한 사람들은 자기가 주변 사람들을 피곤하게 만들고 있는지를 잘 모른다. 또한, 자신의 중독 증세가 심한 상태라는 것도 스스로 인정하지 않는다. 《절대의 탐구》를 읽는 내내, 이번 주 월요일에 방영했던 TV 프로그램 ‘안녕하세요’가 생각났다. 하필이면 그 방송에 낚시에 재미 들인 아버지, 게임 중독 어머니 그리고 폭음하는 아버지의 사연이 소개되었다. 세 사람 다 중독의 원인은 달라도, 증세는 비슷했다. 자신을 측은하게 바라보는 주변 사람들의 심정을 헤아리지 못했다. 중독도 제대로 고치지 못하면 헤어나기 힘든 마음의 병이 된다. 집착할수록 자기 영혼뿐만 아니라 자신이 사랑하는 주변 사람들의 영혼마저 갉아먹는다.

 

 

 

 

 

※ 눈 뜨고 못 봐주는 오자

 

* 1912년 8월 하순 어느 일요일, 저녁기도가 끝난 뒤, 한 여인이 뜰을 향한 창문 앞 안락의자에 앉아 있었다. (297쪽) → 뜻밖의 타임머신

 

* 자신을 못생겼다고 수군대는 세상의 평판에 순종하는 젊은 처녀의 사랑을 잘 묘사하려면, 좋이 책 한 권은 필요하지 않을까? (307쪽) → 종이책? 그거 좋지!

 

* 발랄한 취주악의 팡파르에밖에 비유할 길 없는 효과를 내고 있는 빛의 범람 속에... (347쪽) → 여기에 함정이 있어!

 

* 클라스 부인이 천사를 그린 귀드 레니의 그림 앞에서 노신부를 불러세웠을 때... (380쪽) → 이탈리아의 바로크 화가 ‘Guido Reni’를 ‘귀도 레니’라고 쓰는 것이 맞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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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10-16 19:30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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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10-19 19:49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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