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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학자들은 왜 싸우는가 - 세상을 움직이는 4가지 경제이론에 대한 가장 명쾌하고 간결한 입문서!
질 라보 지음, 권지현 옮김 / 서해문집 / 2015년 6월
평점 :
절판
성장이 먼저냐, 분배가 우선이냐. 경제학에서 가장 많이 다루는 고전적인 명제다. 효율과 평등 중에서 어느 것을 더 중요시하느냐는 것으로, 이 문제는 경제학의 역사만큼이나 오래됐다. 국민이 배불리 먹으려면 일단 파이를 크게 만들어야 한다는 주장이 일리가 있고, 파이를 크게 만드는 것 못지않게 어떻게 공정하게 나누느냐 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주장 역시 타당하다. 그래서 이 논쟁은 지금까지 지속하고 있다. 세계 각국의 정당은 어느 쪽을 중시하느냐에 따라 갈라지고, 선거 때마다 국민의 심판을 받는다. 이렇듯 경제학은 우리 삶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친숙한 학문이다. 추상적이고 포괄적인 개념은 이제 일상이 되었고 더 이상 경제가 빠진 사회는 상상조차 할 수 없다. 하지만 경제가 학문이 되는 순간, 우리는 머리가 지끈거리기 시작한다. 경제학의 거장이라는 애덤 스미스, 리카도, 케인스 같은 학자들도 학창시절 한번쯤 우리를 골탕먹였던 악명 높은 인물로만 기억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질 라보의 《경제학자들은 왜 싸우는가》는 그러한 거부감을 줄여주는 책이다. 학자들의 핵심 이론과 좀 더 편하게 만날 수 있도록 했다. 이 책에 다루는 경제학자는 애덤 스미스, 케인스, 마르크스, 칼 폴라니다. 교과서에서처럼 그래프와 공식으로 뒤덮인 난해한 설명은 없다. 대신 이러한 이론들이 경제를 어떻게 바라보는지를 아주 쉽게 소개하고 있다. ‘지대넓얕(지적 대화를 위한 넓고 얕은 지식)’처럼 딱 필요할 만큼의 내용을 알려주는 방식이 이 책의 가장 큰 장점이다. 그러나 지식을 너무 얇게 진열되다 보니 독자의 궁금증을 완벽하게 해갈해주지 못한다. 예를 들면, 저자는 애덤 스미스의 ‘보이지 않는 손’이 《국부론》를 잘못 해석한 용어라고 주장하는데, 저자의 말에 뒷받침해주는 인용문이 없다. 경제학을 제대로 공부하고 싶은 독자는 질 라보의 책을 읽고 난 다음에 애덤 스미스에 관한 또 다른 책을 참고한다. 그러면 질 라보의 설명이 옳은 건지 직접 눈으로 확인할 수 있고 자연스럽게 새로운 정보를 터득하게 된다. 이론을 쉽게 설명한 책이라고 해서 저자의 주장에 무조건 동의하면서 읽는 건 잘못된 독서 방식이다. ‘경제학’을 하나의 건물로 비유하자면, 질 라보의 책은 ‘경제학’을 세우려고 마련한 기본적인 토대와 같다. 달랑 토대만 세워놓은 상태만으로 ‘경제학’을 제대로 안다고 할 수 없다.
질 라보는 4가지 경제이론이 인류의 경제 인식에 커다란 영향을 준 ‘표상’이라고 말한다. ‘표상’이라는 용어가 이 책에서 가장 어렵게 느껴지는 대목일 수 있다. 철학 용어로서의 ‘표상’이 먼저 떠오른다면 잠시 잊어도 좋다. 저자는 ‘표상’을 단순하게 설명한다. ‘경제’라는 이름이 붙여진 이미지를 의미한다. 그래도 용어의 의미가 난해하다고 생각하면, ‘본보기’로 순화하여 이해해도 된다. 과거부터 오늘날까지 경제학자들은 이 ‘본보기’를 둘러싸고 설전을 펼친다. 사회의 변화에 따라 네 가지 경제 이론이 역사의 무대에 여러 번 재등장했다.
처음에 애덤 스미스는 경제를 시장 자체로 인식했다. 시장은 완전히 자유롭게 내버려 둘 때 최고의 상태가 된다고 주장했다. 그의 주장은 자유주의 경제학자들의 지적 토양이 되어주었고, 오늘날 주류경제학의 전제로 확고히 자리 잡게 된다. 하지만 1930년에 들이닥친 대공황으로 대세는 실업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부의 재분배를 주장한 케인스의 이론으로 흘러갔다. 케인스는 경제를 순환적인 흐름으로 이해했다. 경제가 잘되려면 시장경제를 그대로 내버려둬선 안 되고, 선순환이 이루어지도록 정부 지출을 확대하는 ‘큰 정부’ 역할을 강조한다. 1960년대 전 세계가 인플레이션이 심각해지자 다시 애덤 스미스의 고전학파가 전성기를 맞는다. 마르크스는 자본주의를 ‘자본가’와 ‘노동자’로 나누어지는 권력관계로 본다. 애덤 스미스가 생각한 대로 부는 교환을 통해서 창출되는 것이 아니라 소수의 자본가가 노동자의 착취로 자본을 축적할 때 형성된다고 말한다. 마지막으로 칼 폴라니는 시장중심주의 경제의 틀에 벗어나 환경을 해치지 않는 지속 가능한 경체체제로 구상하자고 주장한다.
이 네 가지 경제이론을 이해하고 나면 심오한 질문처럼 느껴지는 책 제목의 의미를 알 수 있다. 제목의 ‘경제학자’를 ‘정치인’으로 바꿔서 생각하면 경제이론이 교과서에 있어야 할 지루한 내용이 아님을 깨닫게 된다. 오늘날에도 시장경제에 모두 맡기자는 고전학파 이론과 감세로 부를 분배하자는 케인스 이론의 자리다툼이 이어지고 있다. 당시의 상황에 따라 두 이론이 번갈아 선택되고 있다. 어느 것이 최선인가의 정답은 단지 상황에 따라 결정될 뿐이다. 어느 이론을 선택하느냐에 따라 정책의 방향은 크게 달라진다. 이 고민은 경제학자, 정치인만의 문제가 아닌 우리 모두 숙고해야 할 기본적인 삶의 물음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