컬러 테라피는 각각의 색채가 지닌 고유한 스펙트럼을 이용해 건강과 성격 변화를 유도하는 대체의학의 한 분야이다. 사람들의 시선을 끌기 위해 푯말에 붉은색 글씨를 쓰거나 학습효과를 높이기 위해 녹색 칠판을 쓰는 등 기능적으로 색깔을 활용하는 사례는 예부터 존재했다. 색채치료는 오래전부터 있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고대 이집트에서는 색깔을 이용해 질병을 치료했다고 한다. 최근에는 적극적인 치료 효과까지 염두에 두고 색깔을 활용하는 쪽으로 그 연구영역이 확대되는 추세다. 1980년대 교도소 내 폭력으로 골머리를 앓던 미국에서는 사람의 마음을 안정시키는 색깔이 알기 위해 실험한 끝에 분홍색을 가장 편안한 색으로 꼽았다. 당시 회색이었던 교도소의 벽 색깔을 분홍색으로 바꾸자 놀랍게도 교도소 내 폭력사고가 눈에 띠게 줄었다고 한다. 분홍색은 자궁 내부의 색이어서 편안함과 안정감을 준다는 설명이다.

 

 

 

 

 

바실리 칸딘스키 「동심원들과 정사각형」 (1913년)

 

 

 

바실리 칸딘스키의 그림 「동심원들과 정사각형」을 보라. 빨간색 원이 제일 먼저 눈에 띈다. 주황색, 노란색 등 난색이 많다. 《그림의 힘 1》(김선현 저, 에이트 포인트)에 이 그림의 효과가 소개된다. 책의 저자는 빨간색은 사람의 기분을 상승시키는 효과가 있다는 사실을 알리면서 체력이 떨어지면 이 칸딘스키의 그림을 벽에 붙여놓고 보라고 권한다. 저자의 말이 그럴싸하게 들린다. 이어서 저자는 빨간색의 효과를 증명해주는 실험 결과를 소개한다. 그리고 자신도 이와 유사한 실험을 시도해서 비슷한 결과를 얻었다고 주장한다.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의대의 실험에 따르면, 똑같은 정신병 치료약을 빨강색으로 코팅했더니 사람들이 흥분을 했고, 파란색이나 녹색으로 코팅했더니 진정 효과를 보였다고 합니다. 제가 한 관찰 실험 중에도 그런 결과가 나온 적이 있습니다. 우선 유치원생 20명을 빨간색 방 어린이들은 육체 놀이에 집중하는 반면, 파란색 방 어린이들은 책을 읽는 등 정적인 활동을 많이 하는 결과가 나타났습니다. (《그림의 힘 1》 중에서)

 

 

독자는 처음 이 글을 보는 순간, 아무런 의심 없이 받아들인다. 대학이나 권위 있는 연구소가 주관하는 실험에서 나온 결과라면 누구나 다 믿게 된다. 여기에 저자가 자신 또한 그 실험의 결과를 확인했다고 강조하면 설득 있게 보인다. 한편으로 어떤 독자는 이렇게 생각할 수 있다. 병원에 가면 환자들의 심신을 안정시키는 색채 치료실이 있는지 궁금해한다. 환자들이 많이 찾고, 최고급 의료기술이 있는 종합병원이라면 이런 색채 치료실 한두 개쯤은 마련되어 있을 것으로 생각하기 쉽다. 진짜로 있는지 확인하려면 수많은 종합병원에 전화를 걸어서 물어보는 방법이 있지만 시간이 오래 걸린다. 성급한 결론으로 보일 수 있지만, 색채 치료실 효과를 인정하는 의사는 많지 않을 것이다. 색채 치료실을 운영하는 병원이 나올 거라고 낙관적으로 전망하지 않는다. 주류 의학자나 심리학자들은 컬러 테라피 효과를 회의적으로 생각한다. 약이 아니라도 약이라고 알고 먹으면 효과가 있는 위약효과(플라세보 효과) 정도로 보고 있다. 그러므로 병원이 색채 치료실을 만들 이유가 없다. 색깔마다 오랜 시간을 거쳐 상징적 이미지를 갖고 있다는 것은 받아들일 수 있어도 특정 색의 치료 효과는 과학적 접근과 거리가 멀다. 

 

 

 

 

 

 

 

 

 

 

 

 

 

 

 

 

빨간색은 자연에서 접하는 불 또는 피의 이미지와 연관된다. 불은 따스함, 피는 생명 등으로 연결된다. 따스함은 열정으로 이어지고 빨간 스포츠카도 그런 이미지에서 연상된 것이다. 빨간색은 남성적인 색깔이다. 최초로 색채의 시각적 효과를 증명한 독일의 대문호 괴테는 빨간색을 ‘색의 왕’이라고 했다. 실제로 빨간색은 남성 귀족, 남성 추기경이 많이 선호했다. 왕정 시대에 빨간색 염료가 너무나도 귀해서 귀족이나 왕족만이 빨간색 옷을 입을 수 있었다. 오래전부터 빨간색이 강력한 권력을 상징하는 의미로 알려지기도 했다. 왕 이외 사람들은 절대로 빨간 옷을 입을 수가 없었다.

 

 

 

 

 

필립 드 상파뉴 「리슐리외 추기경」 (1637년경)

 

 

지금은 누구나 빨간 옷을 입을 수가 있지만, 권력을 상징하는 빨간색의 의미는 아직도 남아 있다. 추기경의 주케토(Zuchetto, 머리 위에 쓰는 모자)는 빨간색이다. 권위를 상징하는 빨간색은 왕족만 어울리는 것이 아니다. 프랑스 궁정화가 상파뉴는 루이 13세 통치 시절 재상을 지낸 리슐리외 추기경의 초상화를 제작했는데, 막강한 권력을 가진 자의 자태를 보여주고 있다.

 

 

 

 

 

(위) 바이오맨 (아래) 후뢰시맨

 

 

 

80년대에 어린 시절을 보낸 남자라면, ‘슈퍼 전대 시리즈’를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 국내에 널리 알려진 대표적인 작품이 우주특공대 바이오맨, 지구방위대 후뢰시맨 그리고 파워레인저가 있다. 역대 전대물 시리즈에서 나오는 대장은 공통으로 ‘레드’라는 호칭으로 부르며 빨간색 헬멧 슈트를 입고 변신한다. (예외가 있다. ‘전자전대 메가레인저’의 대장의 헬멧 슈트는 검은색, ‘미래전대 타임레인저’는 분홍색 헬멧 슈트를 착용하는 여성 대원이 대장이다) 역시 제일 앞장 서는 사람답게 ‘레드’는 늘 항상 다른 대원들보다 앞에 서고, <무한도전>의 유재석처럼 정중앙 자리를 고수한다. 그래서 남자 아이들이 가장 좋아하는 대원이 ‘레드’다. 레드가 ‘옐로’나 ‘핑크’ 같은 히로인보다 인기가 많을 수밖에 없는 이유가 남자는 대장 역할을 선호하기 때문이다. 그렇다 보니 네다섯 명의 동네 아이들과 함께 전대물 시리즈를 흉내 내는 역할 놀이를 하게 되면, 서로 레드 역할을 하고 싶어 싸우기도 한다.

 

 

 

 

 

 

 

 

 

 

 

 

그렇지만 빨간색에 좋은 의미만 있는 건 아니다. 적극성과 열정처럼 긍정적인 힘을 상징하면서도 불처럼 공격성과 분노 같은 부정적인 힘을 가지고 있다. 신호등의 빨간색이나 축구의 레드카드는 각각 금지와 경고의 신호다. 빨간색을 부도덕한 색으로 여겨 금기하던 시대도 있었다. 중세에 ‘빨간 머리+여자’ 조합은 마녀로 여겼다. 너새니얼 호손의 소설 《주홍 글씨》에서 헤스터는 간통을 저질러 붉은색으로 된 ‘간통(Adultery)’의 첫 글자 ‘A’ 글씨를 가슴에 달고 다닌다. 진정한 셜록키언이라면 셜록 홈즈 시리즈에 나온 빨간색을 기억해야 한다. 셜록 홈즈 시리즈의 시작을 알리는 《주홍색 연구》에 희생자가 죽어가면서 자신의 피로 벽에 ‘RACHE(독일어로 ‘복수’)’라는 글자를 새긴다. 《셜록 홈즈의 모험》 두 번째 수록작 <빨간 머리 연맹>에 나오는 악당의 머리 색깔은 붉은색이다. 《셜록 홈즈의 마지막 인사》 세 번째 수록작의 제목은 <붉은 원>이다. 소설에 언급되는 비밀 범죄 조직 이름이다. 쥘 르나르《홍당무》 주인공은 붉은 머리칼에 주근깨투성이인 탓에 ‘홍당무’라는 별명을 가지게 된다. 그의 어머니는 홍당무를 문제아처럼 대하고, 형과 누나는 홍당무를 놀린다. 이로 인해 홍당무는 사춘기 기질을 드러내며 세상에 대한 분노를 느낀다.

 

무슨 색이 어떤 상징을 부여하는 공식은 획일화에 빠질 수 있는 위험이 있다. 특히 인터넷에서 다양하게 소개되는 색채 치료 방법과 효과 중에는 명확하지 않은 경우가 많다. 일상생활에서 색깔의 의미를 찾을 때는 상식에 집착하기보다 자신에게 어울리는 색이 무엇인지를 찾는 것이 중요하다. 또한 치유력에 지나치게 맹신하는 것도 좋지 않다. 심리적 만족을 얻는 것만으로 충분하다.

 

 

 


댓글(5) 먼댓글(0) 좋아요(2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오쌩 2015-10-20 21:25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빨간색은 누구나 입을 수 있지만
아무나 소화할수는 없다는~~점이 슬프네요.

AgalmA 2015-10-20 21:49   좋아요 1 | URL
대~한민국~~~ 붉은 악마의 위엄이란 것도(쿨럭;)...농담이었습니다;

cyrus 2015-10-22 20:38   좋아요 0 | URL
붉은악마 응원할 때 레드티 입으면 거리낌없는데, 평상시에 입는 붉은색 옷은 소화하기 힘들어요. ^^;;

AgalmA 2015-10-20 22:10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한편 블루의 역사에서 보면, 블루가 권위의 상징이던 시절도 있었죠. 파란 염료 탄생으로 성모마리아의 의상도 흰색에서 푸른색으로 바뀌죠. 이건 아직도 많이 남아 있죠. 고가이다 보니 종교계, 왕실이 또 독점. 푸른 염료의 독성으로 개천이 푸른 독 라떼가 됐다는 기록을 보며....인간 사회에선 색조차 참 순수하게 존재하기 어렵구나...했어요;

cyrus 2015-10-22 20:39   좋아요 0 | URL
네, 맞아요. 색채의 역사를 살펴보면 귀족들이 자신들 선호하는 색에 무조건 권위의 상징을 붙였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