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스스로 만들었거나 만들어진 틀 속에 갇혀 산다. 자신이 다른 이들보다 객관적이라고 착각하지만, 사실은 모두 왜곡된 창으로 세상을 바라본다. 우리가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이 얼마나 많은 편견으로 차 있는지를 보여주는 흥미로운 실험 하나 소개하겠다.
시카고대학 소속 심리학자들이 경찰관이 범인을 체포하는 방식의 시뮬레이션 컴퓨터 게임을 고안했다. 게임 규칙은 간단하다. 참가자는 경찰관이 되어 컴퓨터 화면에 나타나는 범인이 보이면 재빨리 총을 쏘면 된다. 범인은 한 손에 권총이 쥐어져 있고, 범인이 아닌 선량한 사람은 휴대폰 같은 위험하지 않은 물건을 손에 들고 있다. 화면에 나타나는 사람들은 백인과 흑인으로 구성되었다. 선량한 사람이 다치지 않고, 정확하게 범인에게만 총을 쏜 참가자는 상금을 받는다. 참가자들은 상금을 얻기 위해 화면에 끝까지 집중했지만, 위험인물에게 총을 쏘아야 할지 말아야 할지 상당히 늦게 결정했다. 그리고 휴대폰을 들고 있는 흑인 남성을 쏘고, 무기를 소지한 백인 남성을 보내주는 실수를 반복했다. 호주 심리학자가 시카고대학의 실험과 아주 비슷한 방식을 시도했다. 이번에 터번을 쓴 남성을 화면에 등장시켰다. 이 실험에서 참가자들은 평범한 복장의 남성보다 머리에 터번을 쓴 남성을 볼 때 더 많이 총을 쏘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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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 카에다의 수장 오사마 빈 라덴. 그가 은신 생활을 하는 동안 외신은 하얀 터번, 길게 자란 수염의 빈 라덴 사진과 영상을 반복해서 공개했고, 터번과 수염은 테러리스트를 상징하는 트레이드마크가 되었다. 상징이 각인된 사람은 터번을 쓴 긴 수염의 중동인만 보면 테러리스트로 의심한다.
두 가지 실험에 참가한 사람들은 자신 눈앞에 있는 사람이 위험인물인지 아닌지 식별하는 데 어려워한다. 게임을 하다가 간혹 생기는 단순한 실수로 가볍게 이해해선 안 된다. 이런 비극적인 상황이 실제로 일어난다. 평범한 시민이 이슬람 테러리스트로 오인되어 경찰관의 총격을 받아 사망하는 일이 발생한 적이 있다. 피부색이 까무잡잡한 중동인 외모를 가졌다는 이유로 테러리스트로 의심받는다. 9.11 테러 이후 미국 사회 내 반이슬람 정서가 높아지면서 아랍계 미국인에 대한 차별성 범죄가 늘어났다. 이슬람계에 대한 보복성 범죄 증가는 전혀 놀라울 게 못 된다. 지금도 여전히 미국 사회에서 이슬람 공포증을 유발하는 수사적 표현을 구사하는 정치인, 언론인들이 있다. 그들의 목소리에 익숙한 미국인들은 무슬림과 아랍계 미국인에 대한 적대감이 해소되지 않은 채 증오감을 더 키운다. 터번을 쓴 남성만 보면 무조건 테러리스트로 의심하는 무시무시한 편견이 형성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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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염 난 장난꾸러기' 스웨덴지부 단체 사진 (사진출처: 연합뉴스)
무장세력 IS의 난폭함이 갈수록 심해지면 무슬림에 대한 편견도 사라지지 않는다. 최근 스웨덴에서 남성들로 구성된 친목모임 단체가 IS 일원으로 오인되는 해프닝이 있었다. 덥수룩한 수염을 기른 남성회원 30여 명으로 구성된 ‘수염 난 장난꾸러기들’이 스톡홀름에 있는 고성에서 기념사진을 찍었다. 이들은 단체 깃발을 가지고 왔는데, 검은색 바탕의 깃발에 ‘X’자로 교차한 두 개의 검이 그려져 있다. 멀리서 보면 흡사 해적 깃발과 비슷하게 생겼다. 깃발을 들고 무리 지어 고성을 찾은 단체 회원들을 목격한 사람은 처음에 그들이 IS조직인 줄 알고 경찰로 신고했다. 아마도 신고자는 수염 난 사내들이 오사마 빈 라덴과 비슷하게 생겨서 위험인물로 생각했을 것이다. 뉴스가 공개하는 이슬람 무장단체 일원들은 공통으로 수염이 많이 자라나 있다. ‘수염 난 장난꾸러기들’은 형제애, 자선, 친절을 목표로 생활하는 엘리트 남성들의 친목단체다. 스웨덴 지부뿐만 아니라 전 세계 곳곳에 지부가 있다. 혹시 외국을 여행할 때 정장 차림에 덥수룩한 수염이 있는 남자들이 때로 모여 돌아다닌다면, 일단 무서운 사람으로 오해하지 마시라. ‘수염 난 장난꾸러기’의 단체 깃발도 기억해두시길.
인종 편견은 흑인을 바라보는 시선에서도 나타난다. 흑인들이 많이 사는 동네에는 범죄가 잦아서 흑인 범죄 성향이 높다는 편견 때문에 비무장 흑인마저 잠재적 범죄자가 된다. 지난달 말에 휠체어를 탄 흑인 청년이 경찰의 총격에 사망하는 사건이 일어났다. 흑인 차별과 편견이 사라지지 못한 이유 중 하나는 자신과 다른 것을 선천적으로 두려워하는 심리에서 비롯되기 때문이다. 미국 대통령이 흑인이어도 여전히 흑인을 범죄와 연관 지어서 두려워하는 미국인이 많다. 사실과 맞지 않은 원초적 두려움은 편견의 뿌리가 되어 우리 뇌 속에 자라난다. 오랜 세월이 지나서야 드디어 세상에 공개된 하퍼 리의 소설 《파수꾼》에는 흑인에 대한 두려움으로 사로잡혀 편견에 쉽게 조종당하는 사람들이 등장한다. 진 루이즈 핀처의 고모는 과거에 메이콤 마을에 일어난 흑인 폭동의 공포를 잊지 못한다. 그러면서 그들을 법적으로 보호하는 NACCP(흑인 인권단체)에 반감을 품는다. 루이즈의 친구는 흑인 인권 운동이 공산주의자들과 결탁한 음모로 믿는다.
뚜렷한 믿음은 복잡한 세상을 살아가는 데 훌륭한 지침이 된다. 삶을 지탱해주는 기준이 없으면 자신감을 가질 수 없다. 중심이 없으니 늘 주변에 휘둘린다. 불안한 삶을 살게 된다. 그런데도 우리가 가진 생각이나 행동이 나도 모르게 잘못된 편견에 매몰되지 않았는지 자문할 필요는 있다. 타인을 향한 편견은 증오가 담긴 화살이 되어 선량한 사람의 피를 부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