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토 준지 컬렉션 9화 두 번째 이야기

혈옥수(血鈺樹)

 

 

 

 

 

 

 

 

안자이카나는 차가 고장 나는 바람에 사람이 살지 않는 외딴 마을을 헤맨다. 갑자기 아이들이 튀어나와 커플을 공격하고, 카나의 목에는 아이에게 물린 상처가 생긴다. 가까스로 아이들을 피해 달아난 커플은 혼자 사는 청년의 집에 머무른다.

 

 

 

 

 

 

 

 

 

 

 

 

 

 

 

 

 

* 이토 준지 《이토 준지 공포박물관 7 : 신음하는 배수관》 (시공사, 2008)

 

 

 

 

청년은 커플에게 자신이 사랑했던 여자 친구에 관한 이야기를 들려준다. 여자는 청년에게 자살을 암시하는 듯한 발언을 한다. 그녀는 수수께끼의 말을 남겼는데, 자기 몸속에 흐르는 피가 밖으로 빠져나가고 싶어 한다고 말했다. 결국, 그녀는 칼로 목을 그어 자살한다. 청년은 여자의 목에 흐르는 피를 빨고, 목에 난 상처 부위에 ‘혈옥수’가 자라난다. 여자가 말한 대로 몸속의 피는 밖으로 나오면 나무 형태로 변한다. 혈옥수는 체내의 영양분을 먹으면서 점점 자라고, 영양분이 빠져나간 몸은 미라가 된다. 청년은 혈옥수로 남게 된 여자 친구가 영원히 살아간다고 믿는다. 그런데 상처가 난 카나의 목에 혈옥수가 자라기 시작하는데…‥.

 

 

 

 

 

 

 

 

 

 

 

 

 

 

 

 

 

 

 

* 지그문트 프로이트 《정신분석학의 근본 개념》 (열린책들, 2004)

 

 

 

『혈옥수』에로스(Eros)타나토스(Thanatos)라는 프로이트의 명제와 공포물의 대명사인 ‘뱀파이어’ 설정을 결합한 이야기다. 프로이트는 『쾌락 원칙을 넘어서』라는 글에서 사랑하는 대상을 파괴하고 생명이 없는 무기질로 환원시키려는 죽음 욕동을 가설로 제시했다. 프로이트에게 삶의 욕동은 에로스로 건강하지만, 죽음 욕동인 타나토스는 위험하다. 에로스는 원천이 사랑이기에 건설적이지만, 타나토스는 원천이 미움이기에 파괴하려 든다. 죽음 욕동은 분노를 표출할 대상을 겨냥한다. 분노가 행동으로 표출될 때 쾌감을 느끼기 때문이다. 『혈옥수』의 청년은 자신의 고귀한 목적(혈옥수로 가득한 정원을 만들고 즐기는 것), 즉 쾌락을 위해 타자를 죽음의 구렁텅이로 빠뜨린다(흡혈 행위 이후에 사람의 몸에서 자라나는 혈옥수). 물론 이 쾌감은 정당하지 않다. 쾌감의 희생자 대다수는 여성이기 때문이다.

 

 

 

 

 

 

 

 

 

 

 

 

 

 

 

 

 

 

 

 

 

 

 

 

 

 

 

 

 

 

 

 

 

* 박선경 역 《세계 서스펜스 추리여행 1》 (나래북, 2014) - 클라리몽드

* 테오필 고티에 《고티에 환상 단편집》 (지만지, 2013) - 사랑에 빠진 죽은 연인

* [절판] 신주혜 역 《클라리몽드 : 아홉 개의 환상기담》 (작품, 2013) - 클라리몽드

* 이탈로 칼비노 엮음 《세계의 환상소설》 (민음사, 2010) - 죽은 여자의 사랑

* 이규현 역 《이것은 소설이 아니다》 (창비, 2010) - 죽은 여인의 사랑

* 정진영 역 《뱀파이어 걸작선》 (책세상, 2006) - 죽은 연인

 

 

 

‘에로스와 타나토스’라는 정신 분석의 주제는 테오필 고티에의 고딕 로맨스 소설 『클라리몽드』에서도 나온다. 이 단편 소설은 브램 스토커《드라큘라》(1897년)보다 훨씬 더 일찍 나온(1836년) 뱀파이어 소설이다. 공포 문학이나 뱀파이어 문학의 역사를 이야기할 때 자주 언급되는 작품이기도 하다. 원제는 ‘La Morte Amoureuse (죽은 연인)이지만, 이 소설의 여주인공 이름인 ‘클라리몽드(Clarimonde)’로 더 많이 알려졌다.

 

소설은 나이 든 신부인 로뮈알드가 자신의 젊은 시절을 회상하면서 시작된다. 청년 로뮈알드는 교회에서 기도하던 중 매춘부 클라리몽드를 우연히 보게 된다. 로뮈알드는 그녀에게 첫눈에 반하고, 갑자기 마음속에 솟아오르기 시작한 욕망을 절제하느라 애쓴다. 정식으로 신부가 된 로뮈알드는 장례식을 거행하기 위해 ‘죽은 여인’의 집에 찾아갔는데, 죽은 여인은 바로 자신이 사랑했던 클라리몽드였다. 그는 그녀의 시신을 바라보면서 다시 한번 욕망에 휩싸이게 되고, 클라리몽드의 입술에 키스한다. 신부의 키스에 클라리몽드는 다시 눈을 뜬다. 로뮈알드는 매일 밤 그녀를 만나 밀회를 즐긴다. 그러나 부활한 클라리몽드는 뱀파이어였다. 신부와 뱀파이어의 기이한 사랑은 오래가지 못한다. 로뮈알드의 신부 서품을 도운 세라피옹 신부는 망상에 사로잡힌 로뮈알드를 구해내기 위해 클라리몽드의 무덤을 파헤친다. 클라리몽드의 시신을 확인한 로뮈알드는 자신을 괴롭힌 ‘클라리몽드의 환상’에서 벗어난다.

 

로뮈알드는 처음에 클라리몽드를 만났을 땐 육체적 쾌락을 다스리는 데 성공한다. 그렇지만 죽은 클라리몽드를 보자마자 그녀에 대한 욕정과 집착은 커지기 시작한다. 클라리몽드는 로뮈알드의 피를 빨면서 끝없이 그를 소유하고자 한다. 세라피옹 신부가 등장하지 않았다면 피가 빨린 로뮈알드는 서서히 죽어 갔을 테고, 그녀는 로뮈알드를 죽여서라도 독점했을 것이다. 클라리몽드 역시 상대에게 과도하게 집착하는 도착 증세를 보인다. 도착이란 대상이 너무 집착하는 나머지 그것을 파괴하고 싶은 욕망이다. 클라리몽드의 흡혈 행위는 도착증에 대한 환유로 읽을 수 있다.

 

『혈옥수』와 『클라리몽드』, 두 작품 모두 욕망의 환상 속에 뒤틀린 사랑을 보여준다. 사랑은 기본적으로 타자에 대한 존중이다. 타자를 이용하여 쾌락을 누리는 병든 에로스는 타자와 나를 파괴한다. 많은 영화, 노래, 문학, 미술 등 모든 예술은 지칠 줄 모른 채 ‘병든 에로스’를 다루고, 대중은 사랑과 여성을 왜곡한 예술을 소비한다. 이런 예술을 ‘미학’으로 애써 포장하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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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5-10 14:36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18-05-10 17:15   좋아요 1 | URL
저는 책임성이 부족해서 상대방을 위해 헌신하는 일을 못해요.. ㅎㅎㅎ

겨울호랑이 2018-05-10 15:4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날이 더워지니 이제 공포 / 괴기 문학이 더 생각나네요. 다만, 이토 준지는 좀 끈적한 느낌이 들어 시원한 소나기 같은 느낌보다는 습한 장맛비 같네요^^:)

캐모마일 2018-05-10 15:57   좋아요 1 | URL
습한 장맛비. 비유를 읽고 혼자서 오 맞아!하고 웃는 바람에 주변 분들이 순간 절 이토 준지 만화 인물들처럼 보네요. ㅜㅜ

겨울호랑이 2018-05-10 16:04   좋아요 1 | URL
에고... 난처하셨겠어요... 그래도 이토 준지가 좀 끈적끈적한 것을 아는 사람은 다 알 지 싶습니다.^^:)

cyrus 2018-05-10 17:21   좋아요 2 | URL
To. 겨울호랑이 / 이토 준지의 공포를 적절하게 설명해주셨어요. 습하면서 불쾌한 느낌을 주는 공포를 연출한 러브크래프트의 영향을 받은 사람이 이토 준지입니다. <이토 준지 컬렉션>을 보면 햇빛이 전혀 없는 잿빛 구름만 가득한 하늘이 나옵니다. ^^

To. 캐모마일 / 평범한 것조차 기괴하게 비틀어버리는 묘사가 이토 준지의 능력이죠. ^^
 

 

 

올해로 유관순 열사가 태어난 지 116년이 지났다. 열사가 우리 현대사에 차지하는 비중이 크지만 유 열사의 생애와 업적에 비해 연구가 너무 미진하다. 철저한 고증과 균형감 있는 평전 한 권조차 나오지 않았다. 4년 전에는 유 열사에 대한 내용이 빠진 고등학교 교과서 4종이 확인되어 논란이 일어난 적 있었다. 유 열사가 항일운동을 한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나 친일파가 자신들의 과오를 무마하려고 의도적으로 부각한 인물이라는 주장이 제기됐다. 물론, 이를 반박하는 주장도 있다.

 

 

 

 

 

 

유 열사가 빠진 역사 교과서 논란이 일어났을 때 새누리당(현 자유한국당), 보수 언론 등은 가장 적극적으로 비판했다. 이들은 이 논란을 빌미 삼아 국정교과서 폐지를 지지하는 진보 세력까지 비판했다. 그런데 국정교과서에도 유 열사에 관한 내용이 담고 있을 거라고 확신할 수 있을까? 새누리당은 대변인의 입을 통해 유 열사가 없는 역사 교과서를 제작 · 배포하는 일은 열사에 대한 모욕이며 모든 독립 운동가들에 대한 배신이라고 공식 입장을 표명했다. 국회의원 배지를 단 친일 후손이 소속된 새누리당이 천연덕스럽게 그런 말을 하니까 어색하다. 그들의 생색내기는 결국 누워서 침 뱉기나 마찬가지인 상황이다.

 

 

 

 

 

 

 

 

 

 

 

 

 

 

 

 

 

 

* 전영택 《순국처녀 유관순전》 (늘봄, 2015)

 

 

 

생각보다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2015년에 최초의 유관순 전기로 알려진 전영택《순국처녀 유관순전》 (늘봄, 2015)이 복간되었다. 전영택은 교과서에도 실린 단편소설 『화수분』의 작가이다. 전기를 복간한 출판사명인 ‘늘봄’은 전영택의 호(號)다. 유관순 전기는 1948년에 출간되었다. ‘복간본 출간 열풍’이 있었던 시기에 나온 책이라서 초판 원문의 옛말을 그대로 살렸다. 이 책의 장르를 정확히 구분하자면 《순국처녀 유관순전》은 ‘완전한 전기’라기보다는 ‘간략하게 적은 소전(小傳)’에 가깝다. 전영택은 초판 서문에서 이 책을 ‘소전’이라고 밝혔다. 그래서 전기는 매우 얇은 소책자라서 분량은 100쪽이 되지 않는다. 전영택은 유관순을 ‘한국의 잔 다르크’로 표현했다. 그는 유관순 열사를 가르친 이화학당(이화여대의 전신) 교사 박인덕의 진술을 토대로 전기를 작성했지만, ‘소설가가 쓴 전기’이다 보니 과장되고 허구적인 묘사가 곳곳에 보인다. 그런데 문제는 박인덕과 전영택은 친일 논란이 있는 인물이라는 사실이다. 그래서 ‘유관순은 친일파들이 의도적으로 알린 과장된 인물’이라고 주장하는 학자들의 의견이 나오게 된 것이다.

 

이 책의 해설은 홍찬식 동아일보 수석 논설위원이 썼다. 홍 위원은 친일 인사가 유관순을 발굴했다는 주장 자체가 ‘전체적인 진실’이 아닐 뿐더러 그런 측면이 일부 있었다고 해도 전영택 작가의 친일 경력을 문제 삼아 유관순 열사의 업적이 교과서에 누락 되선 안 된다고 주장한다. 전영택 작가의 친일 경력을 교묘히 은폐하는 그의 논변이 거슬리지만, 이보다 더 불편한 사실은 그가 몸담고 있는 신문사이다. 동아일보 창업자 인촌 김성수는 친일인명사전에 등재된 인물이다. 아이러니한 건 그의 두 번째 아내 이아주는 3 · 1 운동에 참여한 독립운동가다.

 

유관순 열사 역사 교과서 논란은 교육부가 기록이 빠진 고등학교 교과서 4종에 2015학년부터 유 열사에 대한 내용을 다시 싣기로 해 일단락됐다. 그렇지만 유 열사에 대한 대접이 여전히 형편없다. 삼일절이 가까워지면 <삼일절 노래>와 함께 <유관순 노래>가 불린다.

 

 

 3월 하늘 가만히 우러러보면 유관순 누나가 생각납니다. 옥 속에 갇혀서도 만세 부르다 푸른 하늘 그리며 숨이 졌대요. (‘유관순 노래’ 1절)

 

 

노랫말을 만든 사람은 아동 문학가 강소천이다. 1915년에 태어난 강소천은 1902년에 태어난 유 열사를 ‘누나’라고 부를 수 있다. 그러나 백 년이나 지난 지금도 우리는 유 열사를 ‘누나’로만 기억하고 있다. <유관순 노래>는 동요다. <유관순 노래>를 접하는 어린이들은 ‘누나’라는 호칭으로 알려진 유 열사를 친근하게 느낄 수 있다. 열사를 ‘누나’로 호명하는 노랫말이 잘못됐다고 지적하고 싶지 않다. 문제는 다 큰 어른들이 여전히 유관순을 ‘애국심 많은 누나’로 기억하고 있는 점이다. 어린 시절 때 들은 <유관순 노래>의 노랫말 속 ‘누나’가 지워지지 않은 기억에 콕 박힌 탓일까. 유관순을 누나라고 자연스럽게 부르면서 젊은 나이에 순국한 이봉창 열사(유 열사보다 일 년 먼저 태어났다)를 ‘형’이라고 부르지 않은 걸까. 만약 이봉창 열사를 ‘형’이라고 부르면 어떤 반응을 보일까. 연세가 높은 어르신들은 나라를 되찾기 위해 노력한 선조를 모욕하는 무례한 호칭이라면서 역정을 낼 것이다. 그렇다면 백 년 전에 태어나 독립운동에 뛰어든 선조인 유 열사를 ‘누나’라고 부르는 것도 무례한 일 아닌가?

 

 

 

 

 

 

 

 

 

 

 

 

 

 

 

 

 

 

 

* 권김현영 엮음 《피해와 가해의 페미니즘》 (교양인, 2018)

* 최기숙 《처녀귀신 : 조선시대 여인의 한과 복수》 (문학동네, 2010)

* [절판] 김종대 《한국의 학교괴담 : 한국의 학교괴담에 대한 민속학적 탐구》 (다른세상, 2002)

 

 

 

 

정희진은 유 열사가 ‘누나’라고 불리게 된 배경을 ‘가부장제 중심의 민족주의’에서 찾는다. 우리나라의 민족주의는 ‘남성의 이해가 반영된 젠더 정치’[1]다. 즉 민족주의는 남성 독립 운동가를 ‘민족의 대표’ 또는 ‘독립투사’로, 여성 독립 운동가를 ‘독립운동에 뛰어든 여성’으로 정체화하는 정치이다. 유 열사를 ‘유관순 누나’라고 호명하면 그녀의 역사적 발자취는 희석된다. 유관순 열사를 ‘여성’이라는 정체성에 가두면 ‘(남성) 일제의 고문으로 이른 나이에 죽음을 맞은 피해자’로 남게 된다. 지배세력에 향한 분노와 적개심, 그리고 그들에게 굴복한 경험에 대한 민족의 수치심이 불붙으면 ‘한(恨)의 민족주의’가 형성된다. ‘한의 민족주의’가 반영된 유관순 열사는 투지가 넘치는 ‘민족의 대표’가 아닌 ‘피해자 여성의 대표’로 남게 된다.

 

‘피해자 여성의 대표’로 정체화된 유관순 열사는 엉뚱하게도 ‘유관순 귀신’으로 소환된다. ‘공포 괴담’이 유행하던 90년대에 유관순 귀신이 등장하는 괴담이 만들어졌고, ‘유관순 괴담’은 다양한 형태로 알려져 아이들이 즐겨 보던 괴담집에 종종 수록되곤 했다. 지금 들어보면 참으로 황당한 내용이다.

 

 

 1) 새벽 12시에 불이 꺼진 화장실 속 거울 앞에 서서 <유관순 노래>를 열 번 부르면 거울에 비친 유관순 귀신을 볼 수 있다.

 

2) 불이 꺼진 화장실 속 거울 앞에 서서 유관순 이름을 세 번 부르면 유관순 귀신이 나타나 자신을 부른 사람의 목을 졸라 죽인다.

 

3) 모 초등학교의 수영장 탈의실 위에는 이순신 장군 동상이 있다고 한다. 그 전에는 유관순 열사가 있었는데 자기 대신에 세워진 이순신 장군에게 적의를 품어 밤 12시가 되면 나타나서 이순신 장군과 싸운다고 한다. (김종대 《한국의 학교괴담》 34쪽)

 

4) 매년 삼일절이 되면 학교 운동장에 세워진 유관순 동상이 살아 움직이면서 피눈물을 흘린다. (김종대 《한국의 학교괴담》 35쪽)

 

 

유관순 귀신은 현대판 ‘처녀 귀신’이다. 예나 지금이나 처녀귀신은 ‘원한에 맺힌 억울한 존재’ 또는 ‘공포의 대상’이다. 민간 전설, 고소설 또는 도시전설 속 처녀 귀신은 스스로 원한을 해소하지 못하는 ‘피해자’로 그려진다.

 

‘유관순 열사’ 또는 ‘인간 유관순’을 제대로 볼 수 있는 날은 멀고도 요원하다. ‘친일 청산’이라는 적폐청산은커녕 사회에 고착화된 일제의 잔재조차 청산하지 못하는 이 나라에 유관순 평전이 나오는 건 불가능한 일인가?

 

 

 

 

 

[1] 정희진 『피해자 정체성의 정치와 페미니즘』 , 《피해와 가해의 페미니즘》 2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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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5-09 21:01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18-05-10 08:13   좋아요 1 | URL
유관순 열사가 ‘친일파가 과대 포장한 인물‘로 오해받기 쉬운 이유 중 하나는 그녀가 다녔던 학교인 이화학당과 관련이 있습니다. 이화학당은 이화여대의 전신인데 이화여대 초대 총장이 김활란입니다. 이 사람도 친일 경력이 있고, 그녀가 총장으로 활동하고 있었을 때 이화여대는 대대적으로 유 열사 업적을 알리기 시작했어요.

김활란이나 박인덕처럼 처음에는 독립운동을 했다가 나중에 변절한 친일파들이 많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의 죄를 가리기 위해 동료의 이름을 내세워 열사로 만들려고 했을 것입니다. 충분히 그럴 가능성이 있습니다.

2018-05-10 09:07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18-05-10 12:29   좋아요 1 | URL
젊은 나이에 순국한 위인을 정답게 부르려고 ‘형’, ‘누나’ 호칭을 자주 사용되는 것 같아요. 전태일 열사에게 ‘전태일 형’이라고 부르는 사람들이 있는데 저도 예전에 그렇게 불렀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형’ 호칭을 쓰기가 거북해요.
 
250만 분의 1 - 이정모의 자연사 이야기
이정모 지음 / 나무나무 / 201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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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이라면 정신없이 빠져드는 게 하나쯤 있다. 그중 하나가 공룡이다. 공룡 그림을 보고 그 이름을 맞추고 초식공룡인지 육식공룡인지 구별해내는 꼬마 공룡 박사님들이 많다. 어린이들 사이에 공룡에 관한 지식은 상식이 돼 있다. 그러다 보니 부모들도 공룡 이름이라도 몇 가지 모르고는 자녀들과 눈높이를 맞춰 놀아주기도 힘들게 됐다. 요즘 아이들은 책만으로도 부족하다. 진짜 공룡 화석을 만져 보고 싶어 한다. 예전 박물관은 왠지 딱딱하고 재미없게만 여겨졌다. 그러나 요즘 박물관은 체험할 것들이 푸짐해지면서 ‘재밌는 놀이 공간’으로 탈바꿈하고 있다. 서대문자연사박물관은 시간적 노력과 경제적 비용을 크게 들이지 않아도 자연과 역사를 배우는 체험의 장으로 손색이 없다. 서울시립과학관 초대 관장인 이정모 씨는 예전에 서대문자연사박물관 관장으로 일했다.

 

과학을 쉽고 재미있게 풀어쓰기로 유명한 이정모 씨의 신작 《250만 분의 1》(나무나무, 2018)《공생 멸종 진화》(나무나무, 2015)의 속편이다. 저자는 전작에서 공생, 멸종 그리고 진화라는 주제로 지구 생명의 역사를 들려준다. 지구의 역사, 즉 자연사는 멸종의 역사라고 할 수 있다. 멸종은 지구 생태계에 빈자리를 만들어 새로운 생명이 등장하게 된 자연사의 결정적 사건이기 때문이다. 《250만 분의 1》의 ‘250만’은 현재 지구상에 사는 생물종 수(2017년 세계생물다양성정보기구가 발표한 지구의 생물종 수는 2,528,677종이다). ‘1’은 인간이다. 우리는 억세게 운 좋게 살아남은 250만 종 중 하나이다. 저자는 인류가 멸망하지 않고 오래 살아남으려면 다른 생명과 공생하면서 살아야 한다고 강조한다. 공생에 대해 생각해보려면 우리보다 하찮은 생명에게 배워야 한다. 《250만 분의 1》은 진화와 멸종의 역사를 거친 생명이 주는 교훈을 펼쳐 보인다.

 

학창시절에 단선적 진화론을 공부한 사람들은 공룡의 전성기인 중생대가 끝난 다음에 포유류가 본격적으로 출현한 신생대가 시작되었다고 생각한다. 공룡과 포유류 중 무엇이 먼저 나타났냐고 물어보면 십중팔구 ‘공룡’이라고 대답한다. 하지만 중생대에는 몸집이 큰 공룡과 몸집이 작은 포유류가 같이 살고 있었다. 분명 포유류는 공룡처럼 중생대의 주연급 동물은 아니었다. 그렇지만 포유류는 다양한 방식으로 진화하면서 자신의 시대가 될 신생대를 조용하게 준비하고 있었다. 신생대의 주인공들은 어두운 밤을 주 무대로 삼아 야행성 동물로 살아온 덕분에 먹잇감을 노리는 공룡들의 눈치를 피할 수 있었다. 포유류는 밤 환경에 적응하기 위해 턱뼈 일부를 청각을 향상하는 뼈로 진화했고, 색을 구분하는 시각 능력 대신에 빛을 감지하는 시각 능력을 선택했다.

 

《250만 분의 1》 1부 『공룡 되살리기』 편은 꼬마 공룡 박사님들의 눈높이에 맞추고 싶어 하는 부모라면 꼭 읽어야 한다. 1부에 잘못 알려진 공룡 상식을 바로잡는 깨알 같은 저자의 의견뿐만 아니라 공룡에 관한 ‘최신 상식’까지 나온다. 익룡은 우리말로 풀이하면 ‘하늘을 날아다니는 공룡’이다. 그런데 ‘날아다니는 공룡’이 익룡의 정확한 의미가 아니란다. 더 정확히 표현하면 ‘날개 달린 도마뱀’, 날아다니는 파충류’이다. 공룡은 골반에서 수직으로 내려오면서 형성된 다리가 있고, 땅에서 걸으면서 살았던 파충류를 의미한다.

 

 

 

 

 

 

다음 달에 <쥬라기 월드 : 폴론 킹덤>이 개봉된다. 이 영화에 거대한 익룡이 뒷발로 사람을 낚아채는 장면이 나온다면 “저건 과학적으로 불가능한 일이야!”라고 자신 있게 말하자. 새의 깃털 역할을 한 익룡의 날개막(비행막)은 아주 얇다(프테라노돈의 날개막 두께는 1mm). 아무리 거대한 날개를 가졌다고 해도 날개막이 찢어지면 영원히 날 수 없다.

 

책에 대한 지적을 끝으로 서평을 마무리한다. 33쪽에 아이에게 공룡(엘라스모사우루스)을 설명해주는 아빠의 모습을 묘사한 내용이 있다. 공룡을 사랑하고, 공룡을 좋아하는 아이의 관심사를 이해할 줄 아는 사람은 아빠뿐인가? 엄마도 어렸을 적에 공룡을 좋아했고, 아빠 못지않게 아이에게 공룡을 제대로 가르쳐줄 능력이 있다. ‘아빠’ 대신에 ‘부모’라는 표현을 썼으면 어땠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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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5-09 15:31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18-05-09 19:42   좋아요 1 | URL
따님이 들으면 서운하겠는데요.. ㅎㅎㅎ 곰곰이 생각해보세요. 분명 어린 시절 따님도 특출한 능력이 있었을 거예요. ^^

psyche 2018-05-10 02:0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까먹고 있었는데 우리집 막내도 공룡에 빠졌을 때가 잠깐 있었네요. 푹 빠지기 전에 포켓 몬스터로 넘어가는 바람에 저는 공룡이름 외우다 말고 포켓 몬스터 이름을 줄줄 외우게 되었네요.ㅎㅎ

cyrus 2018-05-10 08:15   좋아요 0 | URL
포켓몬 중에 공룡과 닮은 녀석들이 많죠. 저는 포켓몬 1세대를 좋아했던 포켓몬 키드였습니다. 포켓몬 빵에 들어있는 스티커를 열심히 모았어요.. ㅎㅎㅎ

psyche 2018-05-10 10:29   좋아요 0 | URL
cyrus님 연세가??? 제 큰딸이 포켓몬 1세대 포켓몬 키드였는데...ㅎㅎ

cyrus 2018-05-10 12:26   좋아요 0 | URL
30대 초반입니다... ㅎㅎㅎ 우리나라에 포켓몬스터가 처음 방영되기 시작했을 때 저는 초딩이었습니다.. ^^
 

 

 

 

 

 

 

레드스타킹은 지난 4월 한 달 동안 바쁘게 달려왔습니다. 벌써 한 달이 지났다는 게 신기합니다. 430피해와 가해의 페미니즘두 번째 모임을 마지막으로 한 주간 휴식기에 들어갔습니다. 다음 주 월요일인 514일부터 모임을 재개합니다.

 

지난주 일요일에 레드스타킹 멤버들과 술 모임을 했습니다. 새로 문을 연 수제 맥줏집에 모였습니다. 그 날이 마침 레드스타킹 멤버 한 분의 생일이었습니다. 맥줏집에서 생일 파티를 하게 됐습니다. 그 날에 저는 과학 혁명의 구조독서 모임에 참석했고, 독서 모임이 끝난 후에 맥줏집으로 이동했습니다. 저를 포함한 멤버 네 명이 맥줏집에 일찍 도착했습니다.

 

네 명이 모여서 나눈 대화의 주제 역시 페미니즘이었습니다. 대화를 나누다 보니 술 모임도 월요일 정기 모임처럼 느껴졌습니다. 젠더에 관한 대화를 나누던 도중에 은님이 제가 작성한 나영 님 강연 후기[1]를 언급했습니다. 님은 제 글의 내용 일부가 잘못되었다고 말했습니다. 님의 지적을 받았을 때 매우 놀랐거나 기분 상하지 않았습니다. 예상했던 지적이었거든요. 문제가 된 제 글의 내용을 인용하겠습니다.

 

 

성은 단순히 섹스(Sex)만을 의미하지 않아요. [중략] 젠더(Gender)을 뜻하는 단어입니다. 그렇지만 생물학적 성을 의미하는 섹스와는 조금 다른 의미입니다. 젠더는 사회학적 성을 의미합니다. 유전자에 의해 남성과 여성이 결정되는 것이 생물학적 성이라면, 사회학적 성은 생물학으로 타고난 성과는 전혀 상관없이 사회나 문화에 의해 수행된 역할을 의미합니다.

 

 

틀린 내용은 아닙니다. 그런데 나영 님은 섹스와 젠더의 의미를 조금 다른 관점으로 설명했어요. 그러니까 나영 님은 섹스는 생물학적 성, 젠더는 사회학적 성이라고 말하지 않았어요. 오히려 섹스와 젠더를 구분하는 교과서적 정의에 의문을 제기하는 입장을 드러냈습니다. 제가 그 내용을 후기에 쓰지 못했습니다.

 

나영 님이 강연했던 당시 그 날을 복기하면 이렇습니다. 나영 님이 청중들에게 질문을 던졌습니다.

 

 

섹스와 젠더, 이 두 개의 단어는 뭘 의미하는 걸까요?”

 

 

페미니즘을 공부한 청중들은 당연히 섹스는 생물학적 성, 젠더는 사회학적 성이라고 대답했어요. 그러자 나영 님은 또 다시 질문을 했습니다.

 

 

그렇다면 여러분이 말씀하신 대로 상대방의 성별이 섹스인지 젠더인지 쉽게 구분할 수 있나요?”

    

 

아주 자신 있게 첫 번째 질문에 대답한 청중들은 나영 님의 두 번째 질문에는 침묵했습니다. 저도 대답하지 못했어요. 몰랐던 것이죠. 이 두 번째 질문은 (섹스와 젠더를 명확히) 구분할 수 있다’, ‘구분할 수 없다라는 답변을 내놓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 아닙니다. ‘답정너(“답은 정해져 있고 넌 대답만 하면 돼의 준말)’는 아닌 것이죠. 이 질문은 우리가 전혀 생각하지 못했던 두 가지 의문을 갖게 만듭니다. 하나는 섹스와 젠더는 명확히 구분할 수 있는가?’이고, 또 하나는 섹스와 젠더를 구분하는 교과서적 정의를 누가 정했는가?’입니다.

 

이미 나영 님은 작년에 나온 그럼에도 페미니즘(은행나무, 2017)에 수록한 글을 통해 젠더 개념의 모호성에 의문을 제기했습니다.

 

 

 

 

 

 

 

 

 

 

 

 

 

 

 

 

 

* 윤보라 외 그럼에도 페미니즘(은행나무, 2017)

 

 

이제는 누구나 섹스는 생물학적인 성이고, 젠더는 사회적인 성이다라는 정의를 마치 답안지에 적어낼 정답처럼 이야기하지만, 그렇다면 과연 생물학적인 성으로서의 여성이라는 범주는 어디까지라고 할 수 있을까? 우리 성별을 구분하는 기준 중에서 생물학적으로 이미 결정된 것사회적으로 구성된 것을 명확히 구분할 수 있는 것은 과연 얼마나 있을까? (나영, 여성을 사랑하는 나는 여성이 아닙니까?, 131)

 

 

 

작년에 그럼에도 페미니즘을 읽었습니다. 강연에 나온 나영 님의 두 번째 질문은 처음 들어 본 내용이 아니었습니다. 최근에 그럼에도 페미니즘에 수록된 나영 님의 글을 다시 읽었을 때 부끄러웠습니다. 사실, 그 책을 읽은 당시에 나영 님이 대단한 분인지 몰랐어요. 레드스타킹 모임 활동을 하면서 나영 님의 존재감을 알게 됐습니다.

 

 

 

 

 

책을 읽으면서 페미니즘을 받아들이는 과정, 즉 독서 방식에 문제가 있었습니다. 저는 눈으로 페미니즘을 읽으면서여성학자들의 입장을 충분히 이해했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착각이었고, 크나큰 실수였습니다. 혼자 공부하면 종종 이런 실수를 저지르기도 합니다. 특히 남자가 혼자서 책으로 페미니즘을 공부하면 정작 중요한 내용을 간과하는 엄청난 실수를 저지르기 쉽습니다.

 

 

 

 

 

 

 

 

 

 

 

 

 

 

 

 

 

 

 

 

* 록산 게이 나쁜 페미니스트(사이행성, 2016)

 

 

 

저는 지금도 이 두 가지 의문에 대해서 뚜렷한 결론을 내리지 못했습니다. 그렇지만 고민하지 않을 수 없는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페미니즘은 세상(또는 나)에 대한 질문과 고민을 마주해야 하는 학문입니다. 따라서 페미니즘은 공부하기 쉬운 학문이라 말할 수 없어요. 페미니즘은 하나를 알면 열을 아는학문이 아니에요. 그 반대입니다. 하나를 알아도 열은 모르는학문입니다. 나쁜 페미니스트(사이행성, 2016)의 저자 록산 게이는 페미니즘은 복수 명사이며 그 속에 다양한 페미니즘이 공존한다고 말했습니다. 페미니즘의 하나를 안다고 해서 페미니즘을 완벽히 이해한다고 볼 수 없습니다. 힘겨운 일이지만 열 개 이상의 페미니즘을 공부해야 합니다. ‘하나의 페미니즘만으로는 늘 시시각각 변하고 복잡해지는 세상을 읽을 수가 없습니다.

 

페미니즘이 세상을 읽고 해석하는 기능을 하지 못하면 또 다른 차별이 생깁니다. 지나온 페미니즘의 역사가 이를 증명하고 있습니다. 여성의 투표권을 요구한 자유주의 페미니즘(1세대 페미니즘)기득권이라는 든든한 성(城)을 포기하지 못했고 인종과 계급 문제를 고려하지 않았습니다. 전미여성기구(NOW: National Organization for Women)를 설립한 베티 프리단은 여성운동에 뛰어든 레즈비언을 끌어안지 않았고 페미니즘의 교차성(intersectionality)을 차폐막으로 막아버렸습니다. 페미니스트도 인간입니다. 완전하지 않으며 때론 실수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페미니스트의 실수나 한계를 근거로 페미니즘은 불완전하고 문제 있는 학문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요? 절대로 그렇지 않습니다. 이 세상에 완벽한 인간은 없듯이 이 세상에 완벽한 학문은 없습니다.

 

오늘 안나 님의 서재에 은유 작가의 인터뷰집 출판하는 마음(유유, 2018)에 나오는 문장을 봤습니다.[2] 그 문장이 지금 저의 상황을 대변한다고 생각했습니다.

 

 

부끄럽지 않은 책을 만들어야 한다. 애정의 다함에 대해 나는 나를 자꾸만 의심해야 한다. 한순간의 안도가 한 권의 책을 망칠 수 있다. 어려운 이름, . 그렇다고 당신에게 내 싸다구를 후려쳐달라고 할 순 없지 않은가. 내 귀싸대기는 내가 후려 치는 걸로. (25)

 

 

페미니즘에 대한 글을 쓸 때면 부끄럽지 않은 글을 써야겠다는 마음으로 임하면서 글을 쓰기 시작합니다. 글을 다 쓰고 나서도 내가 배운 지식을 올바르게 표현했는지 의심합니다. 나름대로 생각해본 끝에 글에 문제가 있다고 느끼면 피드백을 합니다. 저는 얼마든지 싸다구 맞을 각오로 페미니즘을 공부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맞을 각오를 하고 레드스타킹에 들어갔습니다. 제 기준으로 볼 때 레드스타킹에 들어오면서 지금까지 멤버들에게 세 번 넘게 맞았습니다. 젠더 무법자모임 첫날에 남녀평등이라고 말해서 얻어맞았고[3], 권김현영 님한테도 아주 세게 한 방 맞았어요.[4] ! 제가 맞았다라는 표현을 썼다고 해서 레드스타킹을 남자 패는 남성 혐오자들의 모임으로 생각하지 마세요. 제가 이 글에서 쓰고 있는 맞았다라는 표현은 건전한 비판을 의미합니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레드스타킹은 해치지 않아요!

 

 

 

 

 

 

 

[1] [“나도 고발한다”] 201852일 작성

http://blog.aladin.co.kr/haesung/10066052

 

[2] [출판하는 마음, 그 마음에 리스펙.]

http://blog.aladin.co.kr/hopeblossom_/10072261

 

[3] 2018213일 작성

http://blog.aladin.co.kr/haesung/9903117

 

[4] [페미니즘에는 왕도가 없습니다] 2018417

http://blog.aladin.co.kr/haesung/100315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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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5-08 21:07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18-05-09 11:48   좋아요 0 | URL
그렇죠. 인간이니까 모르는 건 당연하고, 아무리 열심히 공부해도 모든 걸 암기하는 인공지능처럼 모든 지식을 다 알 수 없어요. ㅎㅎㅎ

지금행복하자 2018-05-08 21: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남자만 맞지 않습니다 법적으로 2번을 달고 있는 저같은 여자들도 책을 읽다보면 몇대 맞아야 마지막 페이지를 덮을 수 있어요. 생각보다 더 많이 이분법적이고 편견에 사로잡혀 있더라고요~ 제자신이~

cyrus 2018-05-09 11:50   좋아요 0 | URL
내 스스로 따귀를 칠 수 있는 능력을 기르기 위해서 열심히 책 읽고, 강연에 자주 참석해야겠어요.

blanca 2018-05-09 03:4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직도 배우고 고칠 점이 있다 생각하는 것 자체가 저는 충분히 가치있는 일이라 생각해요. 더 이상 배울 것도 고칠 것도 없다고 생각하는 지점에서 퇴보하는 거겠지요. 잘 읽고 갑니다.

cyrus 2018-05-09 11:52   좋아요 0 | URL
네, 맞습니다. 제가 글에서 표현하고 싶은 것을 정확히 말씀해주셨어요. 페미니스트도 인간입니다. 그들이 배움을 멈추고 독선적인 자세를 보인다면 비판받아야 마땅합니다.

stella.K 2018-05-09 16: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 수제 맥주집! 많이 괴로웠겠다.
요즘 수제 맥주가 대세라며?
그렇지 않아도 오늘 간만에 맥주를 샀는데
선택의 폭이 너무 넓어 어떤 걸 마셔야할지 모르겠더군.
근데 너무 싼 걸 산 것 같아. 자주 마시는 것도 아닌데
이왕 마시는 거 비싼 거 마실 걸. 후회하는 중.ㅠ

흑인 페미니즘이라... 재미있을 것 같다.

cyrus 2018-05-09 19:46   좋아요 0 | URL
편의점에 파는 외국 맥주를 자주 마셔도 좋은 맥주 맛이 뭔지 잘 몰아요. 그냥 맥주라는 술 자체가 좋아요.. ㅎㅎㅎ 수제 맥줏집에 갈 일이 없어서 평소에 먹을 수 없는 맥주를 골랐어요. 제가 고른 건 흑맥주였어요. 다크 초콜릿 향을 넣었다는데 마셔 봐도 잘 모르겠어요.. ^^;;

2018-05-10 09:03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18-05-10 12:33   좋아요 1 | URL
저는 이 분의 자유분방한 발언, 특히 자위에 대해서 얘기하는 건 나쁘지 않다고 봅니다. 그런데 간혹 선을 넘는 발언과 행동에 대해선 저도 선뜻 찬성하기 어려울 때가 있어요. 100명의 페미니스트가 있다고 해서 무조건 다 같을 순 없죠. ^^;;
 
신이 되려는 기술 - 위기의 휴머니티
게르트 레온하르트 지음, 전병근 옮김 / 틔움출판 / 201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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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악함 대부분은 악한 의도 때문이라기보다

생각하지 않는 것에서 비롯한다.

 

- 한나 아렌트 -

 

 

 

 

과학이 생활 곳곳으로 깊이 파고들수록 인공지능 기술은 점점 복잡하게 발전하고 대중과 멀어져간다. 어쩌면 사람들은 인공지능에 대해 알기를 포기함으로써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을 무시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미래학자 레이 커즈와일은 인류의 과학기술 진보가 2배 승수로 체증하는 법칙을 이어가고 있다고 한다. 18개월마다 칩의 집적도가 2배씩 높아진다는 무어의 법칙이 대표적이다. 그는 비단 반도체뿐 아니라 모든 과학기술이 일정 기간에 2배씩 발전해왔음을 증명해 보였다. 커즈와일은 과학기술의 발전으로 미래 인류가 특이점(singularity)에 도달할 것이라고 주장한다. 2050년에 인간의 두뇌를 능가하는 초인공지능이 가능해져 개개 인격의 한계를 초월할 수도 있을 것이라고 내다본다. 그리고 유전공학 기술을 통해 그 원리들을 자유자재로 조작할 수 있게 되면 이미 인간은 신(god)이나 다름없게 된다. 커즈와일의 전망이 가시화할 시점이 그리 멀지 않다. 기하급수적 기술 발전 법칙에 따라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이른 시일 내에 특이점이 올 수 있다.

 

커즈와일을 비롯한 대부분 학자들은 ‘사람 같은 인공지능’이 불가능한 꿈이 아니며 그것도 머지않아 현실화될 수 있을 것으로 예상한다. 인간의 진화로 인해 탄생한 인공지능은 더 이상 인간과 다를 게 없다. 여기까지는 수긍이 간다. 문제는 지금부터다. 특이점은 우리의 미래를 어떻게 바꿀 것인가. 사람 같은 인공지능은 과연 등장할 것인가. 스스로 배우는 인공지능이 인간성으로 통칭하는 특징을 두루 갖추고 있다면 이것과 인간의 차이점은 무엇인가. 인간과 기계의 경계가 계속 허물어져 가는 상황 속에서 우리는 인간성이라고 부를 만한 인간 고유의 특징을 간직할 수 있을까. 기계와 소통하며 사는 데 점점 길들어가면서도 한편으로는 불안한 마음을 지울 길 없다. 미래학자 게르트 레온하르트는 필요 때문에 만들어진 인공지능과 인간의 관계를 통해 인간성의 의미와 미래에 대한 끊임없는 질문을 던진다.

 

 

기하급수적으로 모든 것을 삼키는 기술 변화에 직면한 우리는 인간성의 우위를 어떻게 유지할 수 있을까? (15쪽)

 

 

《신이 되려는 기술 : 위기의 휴머니티》 (틔움, 2018)은 이 같은 질문에 답하고자 했다. 이 책은 인공지능에 관한 내용이면서도 근본적으로는 우리 삶에 관한 이야기이다. 저자는 기술적 요소가 중심이 되면서 인간의 본질, 즉 안드로리즘(Andronism)이 감축되거나 폐기될 처지에 놓여있다고 주장한다. 안드로리즘은 인간만이 가질 수 있는 특성이며 저자는 창의성, 연민, 책임성, 공감 등이 우리가 지켜야 할 안드로리즘이라고 말한다. 기술 발전은 ‘조금씩 그러다 갑자기’ 등장하는 식으로 전개된다. 사실 기술의 발전은 불과 수십 년 전만 해도 상상할 수 없는 일들을 속속 현실로 나타나게 하고 있다. 스마트폰이 세상을 지배하리라고 누구도 생각하지 못했다. 우리는 컴퓨터나 스마트폰이 보편화하지 않았을 때도 생활하는 데 큰 불편을 느끼지 않았다. 이제는 그들의 포로 아닌 포로가 되어 그것들이 없으면 갑갑하고 생활하기 힘든 지경에 이르렀다. 인간이 편해지고자 만들어 낸 문명의 이기 앞에 인간 스스로가 발목을 잡힌 것이 현실이다. 우리들의 도덕성이나 인간미는 갈수록 멀어져 가고 있다. 이는 기술 발전만을 추구했을 뿐 인간 고유의 가치를 도외시한 결과이다.

 

“기술은 윤리가 없다. 기술이 윤리를 가져서도 안 된다.”[1] 저자는 이렇게 단언한다. 기술의 발전으로 만들어진 것들을 조합한 것을 실존적 존재인 인간으로 인정하기 어렵다. 만약 ‘사람 같은 인공지능’의 인권을 인정한다면 인공지능에 따라 스스로 판단하고 행동하는 기계에도 인권을 인정해야 할지도 모른다. 그런 최악의 상황을 맞게 된다면 진정한 인간의 윤리와 존엄성은 실종될 수밖에 없다. 기술자들은 기능을 구현하는 데만 집중할 뿐, 기술이 일으킬 법적 · 사회적 파장 같은 문제를 고려하지 않는 경향이 있다. 저자는 인간의 영역을 침해하는 기술 발전을 경계하고 있으나 그것을 거부해야 할 대상으로 바라보지 않는다. 그는 미래는 저절로 우리 앞에 출현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매일 만들어가는 것이라고 말한다. 따라서 기술 발전으로 나날이 변화하는 미래에 대비하려면 우리가 가진 능력(어떤 현상에 대해 숙의하고 성찰하는 것)으로 무엇을 해야 하는지에 대한 책임감을 느껴야 한다.

 

인간의 정체성을 규정짓는 요소로써 인간성의 가치는 기술의 혜택과 불안이 동시에 융단폭격처럼 쏟아지는 시대에 새롭게 재고될 필요가 있다. 일찍이 원효대사는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라고 했다. 생각하기에 따라 해골에 고인 물이 맛 좋은 음료가 수도, 참을 수 없는 역겨움을 일으킬 수도 있다. 앞으로 기술이 가져다주는 혜택과 부작용을 모두 경험하면서 살아야 하는 우리에게 모든 것이 마음먹기에 달렸다는 원효의 깨달음이 필요하다. 인공지능은 미래의 이야기가 아니다. 우리가 기계의 진화를 두려워하는 동안 인공지능의 성능은 더 빨리 향상되고 있다. 인간과 인공지능의 공존에 대해 정말 깊이 고뇌해야 할 때다.

 

 

 

 

[1] 《신이 되려는 기술 : 위기의 휴머니티》 5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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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크pek0501 2018-05-08 14: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세상의 악함은 무지에서 비롯되는 경우가 많다고 알고 있어요. 그런데 지혜롭기란 얼마나 힘든 일입니까. 자신도 모르게 짓는 인간의 죄라는 것도 있지요.

cyrus 2018-05-08 18:40   좋아요 0 | URL
요즘은 정말 몰라서 죄를 짓는 건지 아니면 모르는 척하면서 죄를 짓는지 분간하기 어려워요. ^^;;

2018-05-08 14:14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18-05-08 18:41   좋아요 0 | URL
이 책에 페이스북의 ‘좋아요‘ 기능을 여러 번 비판하는 내용이 나옵니다. 그 내용을 보면서 북플이 생각났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