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량한 차별주의자
김지혜 지음 / 창비 / 201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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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가 비장한 표정으로 기자회견장에 나타나면서 폭탄선언을 한다. 여러분, 저는 차별주의자입니다.”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배우의 고백에 기자회견장은 잠시 술렁거리지만, 노트북 자판을 두드리는 기자들의 손이 바빠진다. 기자석에 앉아 있던 어느 기자는 생각해보니 나도 누군가를 차별한 경험이 있는 것 같은데…‥라며 혼잣말을 한다. 그러자 배우는 장난기 어린 미소를 지으면서 …‥라고 말하는 사람은 없겠죠?”라고 말한다.

 

방금 나온 배우와 기자의 발언은 실제로 일어난 일이 아니다. 치질 치료제 광고의 한 장면을 패러디한 것이다. 우리는 차별주의자가 나쁜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만약 누군가가 당신은 지금까지 살면서 한 번이라도 상대방에게 차별을 한 적이 있어요?”라고 묻는다면 대다수 사람은 살면서 그런 짓을 한 적이 없어요라고 대답할 것이다. 실제로 그렇게 말할 수 있는 사람이 있다면 존경의 박수를 받아야 한다. 그런데 이상하지 않은가? 내가 누군가로부터 직접적이든 간접적이든 차별받았다고 말하는 사람은 많다. 그렇다면 그들을 차별한 사람은 누군데? 차별을 당한 사람들은 많은데 자신이 차별을 한 적이 있다고 반성하는 사람을 눈곱만큼도 찾아보기 힘든 이런 상황을 어떻게 봐야 할까?

 

선량한 차별주의자는 심각하지만, 단편적으로 이해하기 쉬운 차별의 의미에 다시 생각해보게 만든다. ‘선량한 차별주의자는 서로 반대되는 느낌의 단어를 조합하는 표현 방식인 역설법이 생각나는 제목이다. 선량한 차별주의자라는 표현 자체가 상식적으로 말이 안 되는 것처럼 보이지만 불행하게도 이런 사람은 우리 주변 어디에나 있다. 인정하기 싫겠지만, 나 자신이 선량한 차별주의자가 될 수 있으며 그렇게 살아왔을 수도 있다.

 

이 책은 차별하는 가해자차별받는 피해자라는 이분법적인 구도를 가지고 차별 문제에 접근하는 방식에 의문을 제기한다. 우리는 상황에 따라 누군가를 차별하는 가해자가 되기도 하고, 차별받는 피해자가 되기도 한다. 그렇게 되면 우리는 살면서 차별을 한 적이 없어요라고 떳떳하게 말할 수 없게 된다. 우리는 분명 평등과 정의가 실현되는 세상을 꿈꾼다. 하지만 선량한 마음을 가진 우리는 의도하지 않은 상태에서 차별을 저지른다. 또 가해자의 위치에 서서 차별했다는 사실을 인지하지 못한다. 이런 사람은 선량한 차별주의자에 속한다. 또 선량하면서도 차별을 당하는 사람들조차 차별 구조에 맞춰 생각하고 행동한다. 그들도 자신이 특권을 누리고 있으며 자신보다 사회적 지위가 낮은 사람을 차별할 수 있는 위치에 있다는 사실을 인식하지 못한다.

 

선량한 차별주의자는 다양한 연구 결과와 사례를 통해 차별을 심각한 문제로 받아들이지 못하는 우리 사회의 한 단면을 보여준다. 이 책을 쓴 저자는 결정 장애라는 은어를 사용했다가 잘못을 시인한 경험을 들러준다. 결정 장애란 행동이나 태도를 정해야 할 때에 망설이기만 하고 결단을 내리지 못하는 상황을 뜻한다. 그런데 이 결정 장애라는 말은 일상에서 무심코 쓰는 혐오 표현이다. 장애인을 부정적으로 보는 의미가 내포하고 있기 때문이다.

 

만약 누군가가 자신이 평소에 좋아하는 대상이나 남들이 모르는 사적인 취미를 고백할 때 커밍아웃(coming out)이라는 단어를 썼다고 하자. 커밍아웃은 벽장에서 나오다(coming out of the closet)라는 뜻에서 유래된 말로 성소수자가 자신의 성 정체성을 공개하는 일을 뜻한다. 대부분 비 성소수자(non-sexual minority)는 무언가를 공개하거나 고백할 때 커밍아웃이라는 표현을 자주 쓴다. 그러나 부모와 친구들에게 커밍아웃하고 싶은데 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그리고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하는 성소수자들의 상황과 비교하면 비 성소수자들은 커밍아웃을 너무나 편안하게 말한다. 그들은 성소수자를 차별한 적이 없다고 말하는 선량한 차별주의자.

 

상대방이 선량한 차별주의자인지 아닌지 판별하는 것은 중요하지 않다. 차별 문제에 관심을 가져야 하는 기본적인 목적은 일상 속에서 반복되는 차별의 구조를 이해하고 비판하는 작업을 실천하기 위한 것이지만, 우리가 차별 문제에 관심을 가져야 할 가장 중요한 목적은 따로 있다. 그것은 바로 내가 누군가에게 했을 차별을 스스로 인식할 수 있도록 자기 성찰에 익숙해지는 일이다. 자기 성찰을 하지 않고 차별 가해자를 찾아내 돌을 던지는 사회는 보이지 않는 차별의 구조가 무엇인지 생각해보는 분위기를 만들지 못한다. 우리는 난 누군가를 차별하지 않으면서 살 수 있어라고 안심할 수 없다. 우리는 허점이 많은 인간이다. 착하고 똑똑하다고 해도 누구나 차별주의자가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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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크pek0501 2019-11-12 12: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전혀 차별하지 않고 살고 있다고 자신할 수 없어요.
우리는 자기가 무슨 짓을 하고 있는지 모르는 경우가 허다하죠.
인식과 성찰의 중요성. 동감합니다.

cyrus 2019-11-18 21:56   좋아요 0 | URL
혼자 공부하면 내 행동과 발언이 타인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되돌아보기 힘들어요. 독서모임을 장기간 참석하면서 느낀 건데 성찰에도 한계가 있어요. 여러 사람과 함께 공부하면서 그들의 비판적인 의견을 귀담아 듣는다면 성찰할 수 있는 기회가 생길 수 있다고 생각해요. ^^
 

 

 

근면과 성실을 강요하는 자본주의 사회. 이런 세상에서 게으름뱅이는 비난받는 존재이다. 하지만 노동에 지친 사람들에게 게으름이 주는 쾌락은 조금이나마 동경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부지런함과 성실함을 미덕으로 강요하는 현대 사회에서 게으름에 대한 찬양게으름 예찬은 무척 도발적인 책이다. 그러나 일은 적게 하면서 인생을 한가롭게 살고 싶은 사람들이라면 그냥 지나칠 수 없는 책들이다.

    

 

 

 

 

 

 

 

 

 

 

 

 

 

 

* 버트런드 러셀 게으름에 대한 찬양(사회평론, 2005)

 

 

게으름에 대한 찬양의 저자 버트런드 러셀(Bertrand Russell)은 철학 · 수학 · 교육 등 다양한 분야에서 70여 권의 저서와 수백 편의 논문을 썼다. 평화 운동에도 앞장섰던 러셀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아인슈타인(Einstein) 등 명사들과 함께 핵무기 감축과 전쟁 방지를 위해 노력했다. 그는 아흔여덟의 나이로 세상을 떠나기 전까지 정력적으로 활동했다. 생을 마감하기 전까지 손에서 일을 놓지 않았을 것 같은 그가 게으름을 찬양하는 글을 썼다는 점이 이채롭다.

 

러셀은 게으름에 대한 찬양에서 노동이 인생의 목표가 아니라고 말한다. 예전 기득권층은 노동자들의 잉여생산을 독촉하기 위해 근로의 미덕을 앞세웠다. 기득권층이 만들어낸 고정관념 때문에 노동자들은 열심히 일하는 것이 인간의 본분이라고 자연스럽게 받아들였다. 우리는 노동이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며 자아실현의 수단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정말 그런가.

    

 

 

 

 

 

 

 

 

 

 

 

 

 

 

 

* 벤저민 프랭클린 벤저민 프랭클린, 가난한 리처드의 달력(휴먼하우스, 2018)

* 새뮤얼 스마일스 자조론(비즈니스북스, 2006)

    

 

 

여기서 잠깐! 노동 숭배의 역사를 간단하게 살펴보자. 예로부터 일하지 않는 자는 먹지 말라고 회자하던 노동 숭배는 러셀 못지않게 부지런히 활동한 벤저민 프랭클린(Benjamin Franklin)시간은 돈이다란 명제를 만나면서 정점에 이른다. 19세기 영국의 사회개혁가로 활동한 새뮤얼 스마일스(Samuel Smiles)자조론이라는 책을 그 유명한 경구로 시작한다.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 스마일스의 자조 정신을 함축한 이 경구는 스스로 자신의 운명을 개척하는 사람들에게 용기를 불어넣어 주는 가장 강력한 메시지로 알려져 있다. 스마일스는 이 책에서 노동자, 기술자, 과학자, 발명가, 군인, 정치가, 예술가 등 가난과 역경을 이겨내고 개인적인 성공과 함께 인류문명의 발전을 성취한 사람들의 생생한 삶을 소개한다. 스마일스는 성공한 위인의 자리에 열심히 땀 흘려 일하는 개인의 근면성과 열정을 대치시키고 있다. 그는 성공에 이르는 기본적인 비결을 개인의 노동과 근면에서 찾는다. 하지만 신분 제약이나 재산 유무와 관계없이 누구나 노력하고 근면하면 부와 성공을 달성할 수 있다는 스마일스의 입장은 노동의 미덕을 지나치게 숭배하는 고정관념에 가깝다.

    

 

 

 

 

 

 

 

 

 

 

 

 

 

 

* 강준만 바벨탑 공화국(인물과사상사, 2019)

 

    

 

산업화 초기만 해도 개천에서 용 난다는 말이 통용되던 사회였다. 하지만 이제 더 이상 그런 희망을 말하지 않는다. ‘개천에서 용 난다라는 말은 계층 이동의 가능성을 의미한다. 하지만 고성장 시대가 끝나면서 달라졌다. 부와 행복을 동시에 잡기 위해 노력하려면 누군가와 경쟁해야 하고, 그들의 희생이 전제되어야 한다. 결국 개인은 더 높은 서열을 차지하기 위해 각자도생의 길을 선택한다. 강준만 전북대 신문방송학과 교수는 오직 나의 성공과 행복만 생각하면서 일하는 사람들이 서로 경쟁하게 만드는 한국식 서열 사회를 바벨탑에 빗댄다.

 

타인에게 일을 시키는 사람들, 즉 죽어라 일만 하는 사람들 위에 있는 기득권층이 노동의 가치를 찬양한다. 지금도 자본가들은 부지런하고 성실하게 일해야 한다는 부르주아적 성실성을 지상 최고의 미덕으로 생각한다. 러셀은 이러한 고정관념 때문에 실업자가 된 노동자는 자신의 게으른 상태에 대해 스스로 죄책감을 느낀다고 지적한다. 그래서 게으름에 대해 느끼는 원초적인 죄책감을 용감하게 떨쳐버려야 사회와 개인이 행복해질 수 있다고 주장한다.

    

 

 

 

 

 

 

 

 

 

 

 

 

 

 

* 로버트 디세이 게으름 예찬(다산초당, 2019)

    

 

 

호주의 작가가 쓴 게으름 예찬게으름에 대한 찬양의 주요 내용을 계승하여 현시대에 맞게 재해석한 책이다. 게으름에 대한 찬양게으름 예찬의 선배 격이라 할 수 있다. 게으름 예찬도 게으름뱅이를 악덕으로 만드는 노동 숭배에 정면으로 대든다. 그런 다음 빈둥거리기를 위한 구체적인 방향을 조목조목 제시한다. 이를테면 이런 것들이다. 아무 것도 안 하기, 한가롭게 산책하기, 깃들이기(보금자리를 장만하여 그 내부와 외부를 꾸미는 일) 등이 있다. 이 책에서 제시한 실천 방안들이 그다지 새롭지 않다고 투덜거릴 수도 있겠다.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이런 사소한 일상이 주는 행복을 우리가 얼마나 많이 잊고 사는가를 일깨워주는 대목이기도 하다.

 

게으름에 대한 찬양게으름 예찬에서 긍정하는 게으름은 각각 여유휴식에 가깝다. 게으름은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삶의 선택에 관한 문제다. 빠르게 흘러가는 세상 속을 사는 동안 나 자신을 잊어버리지 않을 수 있는 능력과 나만의 행복을 추구하기 위해 살아가겠다는 확고한 의지, 이것이 바로 게으름의 미덕이다. 게으름으로부터 우리 마음은 여유로워지고 자신의 내면을 좀 더 깊숙이 들여다볼 수 있으며, 정신적 자유를 가질 수 있게 된다. 행복해지고 싶다면 게으름뱅이가 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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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ngela 2019-11-04 22: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여유와 휴식을 위한 게으름은 필요한 것 같아요. 살럿 에이브러햄스 <오늘도 휘게>에세이도 휴식에 대해 언급한 것으로 알고있어요~

cyrus 2019-11-05 19:45   좋아요 0 | URL
주변 사람들 눈치 때문에 마음껏 쉬기 힘들어요. 저는 아무 것도 안 하고 눕는 것을 좋아하는데 어머니가 이런 저의 모습을 보면 잔소리를 해요. 맨날 누워만 있다고요.. ㅎㅎㅎㅎ

페크pek0501 2019-11-12 12: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게으름에 대한 찬양은 오디오북으로 들어서 내용을 알게 되었어요.
요즘 읽고 있는 책 중 하나가 러셀 자서전이에요. 제목이 <인생은 뜨겁게>.
어떤 분야의 전문가가 된다는 게 멋진 일이라는 걸 새삼 느끼게 해 줍니다.

cyrus 2019-11-18 21:58   좋아요 0 | URL
맞아요. 러셀 같이 다방면에 활약한 전문가는 정말 대단한 사람이에요. ^^
 

 

 

우치다 타츠루(內田樹)대세를 따르지 않는 시민들의 생각법이라는 책에 요시모토 다카아키는 오직 혼자였다라는 글이 실려 있다. 요시모토 다카아키(吉本隆明)2012년에 세상을 떠난 일본의 사상가이다. 그의 이름은 우리에게 낯설지만, 그의 둘째 딸은 국내에 많이 알려진 소설가다. 그녀는 바로 요시모토 바나나(吉本ばなな).

    

 

 

 

 

 

 

 

 

 

 

 

 

 

 

* 우치다 타츠루 대세를 따르지 않는 시민들의 생각법(바다출판사, 2019)

 

    

 

타츠루는 고인이 된 다카아키를 추모하기 위해 요시모토 다카아키는 오직 혼자였다라는 글을 썼다. 다음에 나오는 문장은 타츠루의 글에서 인용했다. 생전에 전후 일본을 대표하는 사상가로 추앙받은 다카아키의 명성을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다.

 

 

 요시모토 다카아키라는 사상가가 우리 세대에 미친 영향은 더할 나위 없이 심오하고 예리하고 압도적이었다. 우리는 요시모토 다카아키의 언어를 본받아 이야기했고, 요시모토 다카아키의 술어를 사용해 논의했고, “, 요시모토 다카아키 책을 읽지 않은 놈이군하고 선고를 두려워했다. 어떤 조직이나 당파에도 속하지 않고 요시모토 다카아키는 오로지 혼자 힘으로 한 시대를 온전히 휘어잡았다고 말할 수 있을 만한 지적 영향을 발휘했다.  (56)

 

 

다카아키는 1960년대 일본 학생운동의 정신적 지주로 주목받았고, 사회적인 문제가 일어날 때마다 앞장서서 싸웠다. 요시모토 바나나는 국내의 어느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아버지를 고통받는 사람들을 위해 평생 싸웠고, 말과 행동에 차이가 없었던 존경스러운 분이라고 언급했다. 그녀가 사회적 약자들을 위로하는 소설을 쓰겠다고 생각한 된 데는 아버지의 영향이 크다.

 

다카아키는 마르크스(Marx)자본론천 년에 한 번 나올까 말까 한 책이라고 극찬했으며 자신을 좌파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는 정치적인 영향력을 확장하는 일에만 몰두하는 당파의 행보를 반대했고, 전체주의로 변질한 스탈린주의와 내부 비판에 소극적인 일본 좌파 세력을 비판했다. 1968년에 발표된 공동환상론은 다카아키의 대표작이다. 다카아키는 이 책에서 국가의 정의를 새롭게 정의한다.

 

17~18세기의 계몽주의자들은 국가를 사회계약의 산물이라고 주장했다. 마르크스는 국가를 부르주아지 계급이 프롤레타리아 계급을 억압하는 기관이라고 주장했다. 그런데 다카아키는 이 두 가지의 입장을 거부한다. 그는 국가가 여러 사람(공동)이 모이면서 만들어진 환상이라고 주장한다. 국가에 대한 그의 입장은 일본이라는 동아시아 국가의 존재에 대한 문제 제기로 이어진다. 개인의 이익보다는 민족 또는 공동체의 이익을 우선시하는 일본의 사회적 분위기를 고려하면, 국가를 민족이 모여서 세워진 거대한 실체가 아닌 환상으로 호명한 다카아키의 주장은 파격적이었다. 공동환상론은 전후 일본 청년 세대의 필독서가 되었으며 그 책을 가슴에 품고 다닌 일본 여학생과 남학생들이 많았다고 한다.

    

 

 

 

 

 

 

 

 

 

 

 

 

 

  

* 동아시아출판인회의 동아시아 책의 사상, 책의 힘(한길사, 2010)

 

    

 

공동환상론2009년에 한국과 일본, 중국, 홍콩, 대만 등 아시아 5개 지역 출판사들의 모임인 동아시아출판인회의가 공동으로 기획한 동아시아 100권의에 포함되었다. 20세기 후반 동아시아에서 출간된 인문 서적 가운데 학술 가치가 높은 책들이 동아시아 100권의 책에 선정되었다. 동아시아출판인회의는 동아시아 100권의 책을 아시아 5개 지역의 언어로 동시에 출간하기로 계획을 세웠다. 그러나 그로부터 십 년이 지났지만, 한국어로 된 공동환상론》 출간은 깜깜 무소식이다. 동아시아 100권의 책에 대한 해체를 담은 동아시아 책의 사상, 책의 힘을 참고하는 것이 현재로서는 공동환상론을 간접적으로 살펴볼 수 있는 유일한 독서 방식이다.

    

 

 

 

 

 

 

 

 

 

 

 

 

 

 

 

 

* [절판] 요시모토 다카아키 요시모토 바나나의 아버지가 들려주는 내 안의 행복(호박넝쿨, 2003)

 

* 요시모토 다카아키 진짜와 가짜(서커스, 2019)

    

 

 

다카아키는 광범위한 주제에 관한 에세이를 많이 썼다. 제목이 너무 평범하게 느껴지는 내 안의 행복과 다카아키가 세상을 떠나기 일 년 전에 나온 진짜와 가짜(저자명이 요시모토 타카아키로 되어 있다)는 에세이집이다. 내 안의 행복번역본에 요시모토 바나나의 아버지라는 문구가 삽입되었다. 이 번역본이 나온 해가 2003년이었고, 이때가 요시모토 바나나의 책이 한창 인기를 끌고 있었다. 두 권의 책 모두 읽기에는 수월한 편이다. 한 번쯤 세상을 살아가면서 생각해봐야 할 내용을 다루고 있다. 다카아키의 글을 읽어 보면 우치다 타츠루의 글을 읽는 것 같은 기분이 든다. 두 사람이 쓴 에세이는 읽기 쉽다. 또 그들의 관심사도 거의 비슷하다. 우치다 타츠루도 가끔 자신의 글에 철학으로서의 마르크시즘을 긍정하는 입장을 드러냈는데, 아마도 이러한 생각은 다카아키로부터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 지금도 우치다 타츠루는 다카아키의 언어와 생각을 본받아 글을 쓰고 있다. 그는 요시모토 다카아키라는 거인의 어깨 위에 서서 세상을 바라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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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크pek0501 2019-11-12 12: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우치다 타츠루의 책을 두 권 가지고 있어요. 철학에 조예가 깊은 저자로 느낍니다.
이 페이퍼를 읽으니 ‘다수를 따라 악을 행하지 말지어다.‘라는 성경? 문구가 생각납니다.
옳은 소수가 되는 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실감합니다.

cyrus 2019-11-18 22:00   좋아요 0 | URL
다수 한가운데서 개인의 솔직한 생각과 의견을 드러낸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에요. 그 사람들 눈치를 봐야 하죠, 그리고 또 다수 중에 자신의 생각과 의견을 지지해주는 사람을 적어도 한 두 명 정도는 있어야 해요. 소수의 마이너리티가 되는 것은 정말 외로운 일입니다.
 
아버지의 유산
필립 로스 지음, 정영목 옮김 / 문학동네 / 201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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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은 우리 눈에 보이지 않는 거대한 문이다. 사람은 어느 순간부터 죽음의 문을 통과하게 되는 상황을 준비해나간다고 하지만, 그 거대한 문이 다가설 때까지 아무도 모른다. 사실 엄밀히 말하자면 그 문의 존재는 누구나 알고 있다. 다만 잊고 살 뿐이다.

 

일상에서 죽음을 떠올리며 산다는 것은 우울하기 짝이 없는 일이다. 하지만 외면할 수도 없다. 그래서 그 벽이 다가오기 전에 원 없이 세상을 즐겁게 살아보는 것이 필요하다. 또 자신의 삶을 돌아보면서 정리해야 할 일들을 하나하나 짚어 나갈 필요도 있다. 나의 죽음 이후 내 가족과 자녀 간의 분쟁을 일으킬 수 있는 경제적인 문제, 즉 유산 상속에 관한 문제도 그중 하나일 것이다. 부모 중 한 사람이 죽음을 맞이하는 경우가 생기면, 남아있는 사람들은 슬픔과 동시에 유산 상속이라는 해결과제까지 떠안게 된다.

 

많은 이들이 유산 상속이라고 하면 경제적 가치가 있는 재산을 떠올리고, 그것이 분할되어 내게 얼마나 많이 주어질지 관심을 가진다. 아니면 아버지와 함께 생활하면서 알게 된 생활의 지혜라든가 아버지와 관련된 행복한 추억과 같은 정신적인 유산을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필립 로스(Philip Roth)의 자서전적 에세이인 아버지의 유산을 읽으려는 독자라면 먼저 이 책의 제목에 있는 유산의 의미가 무엇인지 한 번쯤 생각해볼 수 있다. 별것 아닌 일이지만, 책을 읽기 전에 그런 생각을 꼭 해보시라. 책의 후반부(200쪽 이후부터)유산에 대한 우리의 일반적인 통념을 깨뜨리는 반전이 나오기 때문이다. 그 내용을 보는 순간 정신이 번쩍 들 것이다. 어떤 독자는 아버지의 유산서평에 내가 강조한 그 반전을 언급했던데, 서평을 쓴 독자가 의도하지 않은 스포일러가 될 만한 사실이다. 이 책을 읽기 전에 독자 서평을 안 보는 것이 좋을 수도 있다. 오히려 그게 이 책이 주는 진실한 교훈을 최대한으로 받아들이는 방법이기 때문이다.

 

아버지의 유산86세의 아버지가 뇌종양 판정을 받고 2년 뒤 세상을 떠나기까지의 시간을 기록한 책이다. 작가의 아버지는 유대인 이민자 출신이다. 그는 일상의 숱한 반유대주의를 헤쳐 나왔고 정년퇴임을 할 때까지 보험회사 관리 업무에 종사했다. 필립 로스는 아버지의 남은 삶을 함께하면서 아버지와 나눈 일상적인 대화부터 시작해서 아버지가 숨을 거두기 직전의 모습까지 기록으로 남긴다. 아버지의 유산》에는 아버지에 대한 자식의 애정을 숨김없이 드러내는 기존의 책들과 다른 특별함이 있다. 특별함이 바로 내가 앞서 언급한 이 책의 반전이다. 반전이 없었으면 아버지의 유산은 누군가의 아버지에 대한 평범한 기록으로 남았을 것이다. 이 책의 반전은 작가뿐만 아니라 그의 이야기를 지켜보는 독자들까지 불편하게 만들지만, 한편으로는 절대로 외면할 수 없는 진실이다. 따라서 아버지의 유산은 유산의 물질성을 먼저 떠올리는 모든 아버지의 자식들을 각성하게 만든다.

 

내가 두 번이나 강조한 책의 반전을 막상 읽어보면 누군가는 당혹스러운 반응을 보일 것이고(대부분 사람이 이런 반응을 보인다. 이 책에서 로스가 언급한 유산은 우리가 거부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또 어떤 이는 아주 특별한 유산의 의미를 기대했는데, 별거 아니네라고 생각할 수 있다. 책의 반전을 보면서 두 가지 유형의 감정(내가 언급한 것 이외의 또 다른 감정을 느낀 독자가 있을 것이다) 중 하나라도 느낀 독자가 있다면 그 사람은 한 인간의 죽음이라는 문이 서서히 다가오는 것을 실감하지 못하고 있다. 죽음을 생각하지 않는 것이 나쁘다는 건 아니다. 이 글을 시작하면서 미리 언급했듯이 죽음에 대해서 진지하게 생각하는 일은 쉽지 않다. 하지만 아버지의 유산을 읽는다면 인생의 마지막 문으로 향하는 여정이 어떤 것인지 조금이라도 생각해볼 수 있다. 아버지의 유산은 종이에 남아 있는 작가의 아버지에 대한 특별한 이야기가 아니다. 책 한 권과 같은 인생을 촤르르 펼치다가 언젠가는 마주하게 될 낯설면서도 익숙한 페이지, 바로 내 아버지에 대한 일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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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ngela 2019-11-01 22: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유산하면 물질적인것만 떠오르는데, 반전이라니 그게 뭘까 기대가 되네요. 읽어보고 싶어요~

cyrus 2019-11-02 17:44   좋아요 1 | URL
꼭 읽어보셔요. 저를 놀라게 해준 책입니다. 반전이 정말 궁금하시다면 다른 분의 리뷰를 보셔도 돼요. 그렇지만 반전이 주는 놀라움을 제대로 느끼려면 책을 읽는 게 낫습니다. ^^

붕붕툐툐 2019-11-03 00: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요, 저요~ 저도 정신 번쩍 들고 싶어요~ㅎㅎ

cyrus 2019-11-04 18:26   좋아요 0 | URL
책을 처음부터 읽으면 제가 느꼈던 감정을 조금 이해할 수 있어요. ^^
 

 

 

국내에 번역된 슈테판 츠바이크(Stefan Zweig)의 책이 꽤 많다. 대부분 사람은 츠바이크를 소설가 또는 전기(傳記) 작가로 기억한다. 츠바이크는 발자크(Balzac), 에라스뮈스(Erasmus), 마리 앙투아네트(Marie Antoinette) 등의 전기와 평전을 썼다. 그뿐만 아니라 시와 희곡도 썼다. 츠바이크가 작가로서 처음으로 선보인 작품은 시집이다.

 

 

 

 

 

 

 

 

 

 

 

 

 

 

 

* 최성일 책으로 만나는 사상가들(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 2011)

 

 

츠바이크의 작품들은 그에 대해 잘 모르는 독자를 난감하게 만든다. 사실 필자도 그런 독자 중의 한 사람이었다. 번역서 중에 뭐부터 읽어야 할지 고르기 쉽지 않았다. 그래서 필자는 총 218명의 작가와 사상가의 쓴 책들을 사전식으로 정리한 출판 평론가 최성일 씨의 유작 책으로 만나는 사상가들을 참고했다. 이 책은 작가와 사상가를 처음 접하는 독자들에게 유용한 길잡이로 활용될 수 있다. 최성일 씨는 외국 저자의 국내 번역서를 한눈에 볼 수 있도록 목록 형식으로 작성했다. 국내 번역서 목록은 번역서 한 권의 역사를 파악할 수 있는 중요한 참고자료가 된다. 이 책에 츠바이크의 국내 번역서 목록이 있다. 만약 최성일 씨가 지금 살아 계셨더라면 국내 번역서 목록이 수정된 개정 증보판이 나왔을 것이다. 최성일 씨 필생의 노력이 반영된 국내 번역서 목록은 2011년에 멈춰진 상태다. 그 이후에 최성일 씨가 관심을 보인 저자의 번역서들이 출간되었고, 이제는 누군가가 그 목록을 고쳐야 한다. 필자가 그 일을 하려고 한다. 현재 시점을 기준으로 보완해야 할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 [절판] 슈테파니 츠바이크 나를 사랑한 고양이 시시(북스캔, 2003)

* [품절] 슈테파니 츠바이크 아프리카, 나의 노래(까치, 2005)

 

 

 

책으로 만나는 사상가들에 있는 츠바이크의 국내 번역서 목록을 수정하기 전에 먼저 오류부터 언급하고 싶다. 이 목록에 나를 사랑한 고양이 시시아프리카, 나의 노래라는 두 권의 책이 포함되어 있다. 이 두 권의 책을 쓴 저자는 독일 유대계 여성 작가 슈테파니 츠바이크(Stefanie Zweig). 성은 같지만 이름이 다르다. 슈테판 츠바이크는 오스트리아 출신의 유대계 작가다. 최 씨가 책을 조사하는 과정 중에 작가 이름을 혼동한 것으로 보인다.

 

과거에 츠바이크의 작품이 중복으로 출판된 경우가 많았다. 그렇다 보니 내용은 같지만, 제목이 다른 번역서가 있다. 가장 많이 중복으로 출판된 츠바이크의 작품은 낯선 여인의 편지(Brief einer Unbekannten). 이 작품은 1962년에 국내에 번역되어 나온 것까지 포함해서 현재까지 총 14번이나 출간되었다. 특히 박찬기, 원당희의 번역은 여러 출판사를 거쳐 중복으로 출간되었다.

 

 

 

 

1. 모르는 여인의 편지

박찬기 옮김, 황혼의 이야기(육문사, 1962)에 수록

 

 

2. 미지의 여인의 편지

박찬기 옮김 (동민문화사, 1967)

 

 

3. 미지의 여인의 편지

박찬기 옮김 (주영사, 1974)

 

 

 

 

 

 

 

 

 

 

 

 

 

 

 

4. 모르는 여인으로부터의 편지

원당희 옮김 (고려원, 1991)

 

 

5. 모르는 여인의 편지

박찬기 옮김, 감정의 혼란(깊은샘, 1996)에 수록

 

 

6. 외사랑

이초록 옮김, 사랑의 슬픔(산들, 1997)에 수록

 

 

 

 

 

 

 

 

 

 

 

 

 

 

 

7. 나를 알지 못하는 당신에게

원당희 옮김 (사민서각, 1997)

 

 

8. 편지

안의정 옮김 (맑은소리, 1997)

 

 

 

 

 

 

 

 

 

 

 

 

 

 

 

9. 모르는 여인으로부터의 편지

안의정 옮김 (맑은소리, 2003)

 

 

 

10. 모르는 여인의 편지

박찬기 옮김, 황혼의 이야기(서문당, 2003)에 수록

 

 

 

 

 

 

 

 

 

 

 

 

 

 

 

 

 

11. 모르는 여인의 편지

원당희 옮김 (자연사랑, 2003)

 

 

 

 

 

 

 

 

 

 

 

 

 

 

 

 

 

12. 낯선 여인의 편지

김연수 옮김, 체스. 낯선 여인의 편지(문학동네, 2010)에 수록

 

 

 

 

 

 

 

 

 

 

 

 

 

 

 

13. 모르는 여인의 편지

송용구 옮김 (고려대학교출판부, 2011)

 

 

 

 

 

 

 

 

 

 

 

 

 

 

 

 

 

14. 모르는 여인의 편지

양원석 옮김, 마리 앙투아네트 / 모르는 여인의 편지(동서문화사, 2015)에 수록

 

 

 

낯선 여인의 편지다음으로 많이 중복으로 출판된 츠바이크의 작품은 황혼 이야기(Geschichte in der Dämmerung). 이 노벨레(Novelle)1911년에 출간된 첫 경험, 네 편의 이야기(Erstes Erlebnis. Vier Geschichten aus Kinderland)에 수록된 츠바이크의 초기 작품이다. 이 작품집에 수록된 노벨레는 다음과 같다.

 

 

1. 황혼 이야기(Geschichte in der Dämmerung)

2. 여자 가정교사(Die Gouvernante)

3. 타 버린 비밀(Brennendes Geheimnis)

4. 여름날의 사건(Sommernovellette)

 

 

2, 4번 노벨레를 제외한 나머지 두 작품은 번역되었다. 비록 번역되지 못한 작품이 몇 편 있으나 츠바이크의 소설을 읽으려고 한다면 이미 번역된 초기작부터 읽으면 된다. 1911년에 발표된 네 편의 작품 중 가장 유명한 것은 타 버린 비밀이다. 1913년에 이 작품만 따로 출간되었으며 1933년과 1988년에 영화화되었다.

 

 

 

 

 

 

 

 

 

 

 

 

 

 

 

 

 

 

 

* 슈테판 츠바이크 타 버린 비밀(세창미디어, 2019)

* [품절] 슈테판 츠바이크 일급비밀(자연사랑, 2003)

 

 

 

타 버린 비밀2003년에 일급비밀이라는 제목으로 번역된 적이 있다. ‘일급비밀80년대를 풍미한 3인조 남성 댄스 그룹 가수 소방차의 노래 제목을 생각나게 한다. 그러나 일급이라는 표현은 원제의 의미와 완전히 다를 뿐만 아니라 소설의 핵심 주제인 비밀의 의미를 제대로 살리지 못한다. 다행히 최근에 타 버린 비밀이라는 제목으로 재출간되었다.

 

외교관 부인의 아들인 에드거(Edgar)는 우연히 만난 남작과 친하게 지낸다. 사실 남작은 부인을 유혹하기 위해 에드거에게 접근한다. 사랑을 위해서라면 물불 가리지 않는 어른의 감정을 잘 모르는 순수한 열두 살 소년 에드거는 처음엔 그 사실을 알아차리지 못한다. 시간이 지날수록 남작은 노골적으로 부인에게 추파를 던지고, 남작이 부인과 함께 보내는 시간이 점점 늘어난다. 두 사람의 관계를 가까이서 지켜본 에드거는 남작을 질투한다. 이제 에드거는 은밀한 곳에서 사랑의 밀어를 속삭이는 어른의 세계에 조금씩 알아가기 시작한다. 이 소설의 제목에 있는 단어이자 소설의 핵심 주제인 비밀은 에드거가 무척이나 궁금하게 여기는 어른의 세계. 타 버린 비밀은 어른의 세계에 접근하려고 애쓰는 소년의 정신적인 성장 과정을 세밀하게 그려낸 소설이다. 일급비밀타 버린 비밀은 같은 역자가 옮긴 작품이다. 제목만 달라졌다. 번역 문장도 약간 달라졌지만, 막상 읽어보면 크게 고친 티가 나지 않는다. 일급비밀타 버린 비밀에 있는 문장을 인용해서 비교해보면 그 사실을 알 수 있다.

 

 

 

 아이는 자신에게 그토록 친절하게 말을 걸어주는 이 낯선 신사에 대하여 너무 자의식이 강한 것 같아 보였다.

 남작은 대화를 나누며 한번도 아이에게 거만한 태도를 보인 적이 없었고, 오히려 매번 좀 당황해 했다. 그리고 이제 그는 행복한 감정과 동시에 부끄러움 때문에 무척이나 혼란스러운 상황에 빠지게 되었다. 그는 대화를 정말 지속시키고 싶었지만, 아무 생각도 나지 않았다

 

(일급비밀19)

 

 아이는 자기에게 이토록 친절하게 말을 걸어 주는 이 멋있는 낯선 신사에게 대단히 자의식이 강한 모습을 보이려는 것 같았다. 그는 한 번도 건방진 태도를 보인 적이 없었고 항상 조금은 당황스러웠다. 이제 그는 행복한 동시에 부끄러운 감정으로 몹시 혼란스러운 상황에 빠지게 되었다. 그는 기꺼이 대화를 지속시키고 싶었으나 아무 생각도 나지 않았다

 

(타 버린 비밀26)

 

 

사랑의 슬픔외사랑첫사랑이라는 제목이 붙여진 두 편의 노벨레가 수록되어 있다. 이 두 편의 노벨레는 각각 낯선 여인의 편지황혼 이야기.

 

 

 

 

 

그런데 이 번역서는 두 작품의 원제를 잘못 썼다. 황혼 이야기의 원제가 ‘Erstes Erlebnis’라고 되어 있는데, ‘Erstes Erlebnis’황혼 이야기가 수록된 노벨레 모음집의 제목이다. 낯선 여인의 편지의 원제로 잘못 적혀 있는 ‘Amok(‘아모크또는 아목이라고 부른다)1922년에 발표된 노벨레 모음집의 제목이다. 여기에 수록된 소설은 낯선 여인의 편지환상의 밤(Phantastische Nacht), 달밤의 뒷골목(Die Mondscheingasse) 이다.

 

 

 

 

 

 

 

 

 

 

 

 

 

 

 

* [품절] 슈테판 츠바이크 감정의 혼란(깊은샘, 1996)

감정의 혼란’, ‘모르는 여인의 편지’, ‘달밤의 뒷골목’, ‘황혼 이야기수록

 

 

 

 

 

 

 

* [절판] 슈테판 츠바이크 태초에 사랑이 있었다(하문사, 1996)

달밤의 뒷골목과 같은 내용임.

 

 

 

 

 

 

 

* [품절] 슈테판 츠바이크 사랑의 슬픔(산들, 1997)

외사랑(= 낯선 여인의 편지)’, ‘첫사랑(= 황혼 이야기)’ 수록

 

 

 

 

 

 

 

 

 

 

 

 

 

  

* 슈테판 츠바이크 황혼의 이야기(서문당, 2003)

모르는 여인의 편지’, ‘마음의 파멸(Untergang eines Herzens, 1927)’, ‘황혼의 이야기수록

 

 

 

 

 

 

 

 

 

 

 

 

 

 

 

* 슈테판 츠바이크 환상의 밤(세창미디어, 2018)

* [품절] 슈테판 츠바이크 환상의 밤(자연사랑, 1999)

 

 

 

감정의 혼란황혼의 이야기에 공통으로 수록된 모르는 여인의 편지황혼의 이야기는 같은 역자가 번역한 것이다.

 

 

 

 

 

 태초에 사랑이 있었다라는 번역서 앞표지에 장편소설이라고 되어 있는데, 이 번역서의 원작은 단편 형식에 가까운 노벨레로 분류되는 달밤의 뒷골목이다. 그런데 소설이 시작되는 첫 문장(15~16쪽)은 원작에 없는 내용이다. 즉 역자가 원작에 없는 문장을 추가로 쓴 것이다. 소설을 장편인 것처럼 보이려고 일부러 쓸데없는 내용을 추가한 것일까. 왜 역자가 원작을 넘어선 번역을 했는지 도통 알 수 없다. 아무튼 태초에 사랑이 있었다는 츠바이크의 소설을 읽으려고 하거나 구매하는 독자들이 피해야 할 번역서다. 앞서 언급한 사랑의 슬픔도 마찬가지다. 필자는 이 책을 중고도서로 샀는데, 가격은 1,900원이었다. 금전적으로는 큰 손해를 본 건 아니지만, 괜히 샀다는 생각이 든다. 이미 필자는 모르는 여인의 편지황혼 이야기가 수록된 번역서를 가지고 있다. 이래서 구매자가 직접 작성한 번역서 목록과 리뷰가 있어야 한다. 그러면 나처럼 책 사는 데 헛돈을 쓴 독자가 생기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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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삭매냐 2019-10-28 18: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무래도 오바네요. 왜 역자가 내용에도 없는 걸 썼는지...

cyrus 2019-11-01 17:38   좋아요 0 | URL
8, 90년대에 나온 외국 작가의 번역본 중에 역자가 윤색한 것도 있었어요. 제가 ‘셔얼록 호움즈(셜록 홈스) 시리즈’ 문고본을 가지고 있는데요, 그 책도 원작에 없는 내용이 나와요. ^^;;

boooo 2019-10-28 19: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체스로 시작했습니다. :)

cyrus 2019-11-01 17:39   좋아요 0 | URL
츠바이크의 후기 작품인데 아직 안 읽었어요. ^^

stella.K 2019-10-28 19: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난 츠바이크를 <체스>로 알게 되었는데 그 소설은 정말 대단했지.
그후 몇권 읽긴했지만 지적인 면에선 뭐라할 수 없지만
딱히 나의 마음을 사로잡지는 않더군. 좋긴 좋은데 막 좋지는 않아.

그나저나 최성일 씨의 책은 읽었나?
난 몇년 전 사 놓고 안 읽고 있어. 중고로 너무 싸게 사서
어떤 책인가 사 봤지. 정가로만 살 수 있는 책이라면 안 샀을 텐데...
핑계지만 나이 드니까 이런 책은 점점 안 읽게되더군.ㅋ

cyrus 2019-11-01 17:43   좋아요 0 | URL
제가 가지고 있는 최성일 씨의 책은 <책으로 만나는 사상가들>뿐이에요. 도서정가제 시행 전에 샀어요. 그때는 지금보다 적립금을 쏠쏠하게 쓸 수 있었던 시절이었어요. 정말 이 책 사길 잘 했다는 생각이 들어요. 사전 형식의 책이라서 가끔 생각날 때마다 봐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