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면과 성실을 강요하는 자본주의 사회. 이런 세상에서 게으름뱅이는 비난받는 존재이다. 하지만 노동에 지친 사람들에게 게으름이 주는 쾌락은 조금이나마 동경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부지런함과 성실함을 미덕으로 강요하는 현대 사회에서 게으름에 대한 찬양게으름 예찬은 무척 도발적인 책이다. 그러나 일은 적게 하면서 인생을 한가롭게 살고 싶은 사람들이라면 그냥 지나칠 수 없는 책들이다.

    

 

 

 

 

 

 

 

 

 

 

 

 

 

 

* 버트런드 러셀 게으름에 대한 찬양(사회평론, 2005)

 

 

게으름에 대한 찬양의 저자 버트런드 러셀(Bertrand Russell)은 철학 · 수학 · 교육 등 다양한 분야에서 70여 권의 저서와 수백 편의 논문을 썼다. 평화 운동에도 앞장섰던 러셀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아인슈타인(Einstein) 등 명사들과 함께 핵무기 감축과 전쟁 방지를 위해 노력했다. 그는 아흔여덟의 나이로 세상을 떠나기 전까지 정력적으로 활동했다. 생을 마감하기 전까지 손에서 일을 놓지 않았을 것 같은 그가 게으름을 찬양하는 글을 썼다는 점이 이채롭다.

 

러셀은 게으름에 대한 찬양에서 노동이 인생의 목표가 아니라고 말한다. 예전 기득권층은 노동자들의 잉여생산을 독촉하기 위해 근로의 미덕을 앞세웠다. 기득권층이 만들어낸 고정관념 때문에 노동자들은 열심히 일하는 것이 인간의 본분이라고 자연스럽게 받아들였다. 우리는 노동이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며 자아실현의 수단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정말 그런가.

    

 

 

 

 

 

 

 

 

 

 

 

 

 

 

 

* 벤저민 프랭클린 벤저민 프랭클린, 가난한 리처드의 달력(휴먼하우스, 2018)

* 새뮤얼 스마일스 자조론(비즈니스북스, 2006)

    

 

 

여기서 잠깐! 노동 숭배의 역사를 간단하게 살펴보자. 예로부터 일하지 않는 자는 먹지 말라고 회자하던 노동 숭배는 러셀 못지않게 부지런히 활동한 벤저민 프랭클린(Benjamin Franklin)시간은 돈이다란 명제를 만나면서 정점에 이른다. 19세기 영국의 사회개혁가로 활동한 새뮤얼 스마일스(Samuel Smiles)자조론이라는 책을 그 유명한 경구로 시작한다.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 스마일스의 자조 정신을 함축한 이 경구는 스스로 자신의 운명을 개척하는 사람들에게 용기를 불어넣어 주는 가장 강력한 메시지로 알려져 있다. 스마일스는 이 책에서 노동자, 기술자, 과학자, 발명가, 군인, 정치가, 예술가 등 가난과 역경을 이겨내고 개인적인 성공과 함께 인류문명의 발전을 성취한 사람들의 생생한 삶을 소개한다. 스마일스는 성공한 위인의 자리에 열심히 땀 흘려 일하는 개인의 근면성과 열정을 대치시키고 있다. 그는 성공에 이르는 기본적인 비결을 개인의 노동과 근면에서 찾는다. 하지만 신분 제약이나 재산 유무와 관계없이 누구나 노력하고 근면하면 부와 성공을 달성할 수 있다는 스마일스의 입장은 노동의 미덕을 지나치게 숭배하는 고정관념에 가깝다.

    

 

 

 

 

 

 

 

 

 

 

 

 

 

 

* 강준만 바벨탑 공화국(인물과사상사, 2019)

 

    

 

산업화 초기만 해도 개천에서 용 난다는 말이 통용되던 사회였다. 하지만 이제 더 이상 그런 희망을 말하지 않는다. ‘개천에서 용 난다라는 말은 계층 이동의 가능성을 의미한다. 하지만 고성장 시대가 끝나면서 달라졌다. 부와 행복을 동시에 잡기 위해 노력하려면 누군가와 경쟁해야 하고, 그들의 희생이 전제되어야 한다. 결국 개인은 더 높은 서열을 차지하기 위해 각자도생의 길을 선택한다. 강준만 전북대 신문방송학과 교수는 오직 나의 성공과 행복만 생각하면서 일하는 사람들이 서로 경쟁하게 만드는 한국식 서열 사회를 바벨탑에 빗댄다.

 

타인에게 일을 시키는 사람들, 즉 죽어라 일만 하는 사람들 위에 있는 기득권층이 노동의 가치를 찬양한다. 지금도 자본가들은 부지런하고 성실하게 일해야 한다는 부르주아적 성실성을 지상 최고의 미덕으로 생각한다. 러셀은 이러한 고정관념 때문에 실업자가 된 노동자는 자신의 게으른 상태에 대해 스스로 죄책감을 느낀다고 지적한다. 그래서 게으름에 대해 느끼는 원초적인 죄책감을 용감하게 떨쳐버려야 사회와 개인이 행복해질 수 있다고 주장한다.

    

 

 

 

 

 

 

 

 

 

 

 

 

 

 

* 로버트 디세이 게으름 예찬(다산초당, 2019)

    

 

 

호주의 작가가 쓴 게으름 예찬게으름에 대한 찬양의 주요 내용을 계승하여 현시대에 맞게 재해석한 책이다. 게으름에 대한 찬양게으름 예찬의 선배 격이라 할 수 있다. 게으름 예찬도 게으름뱅이를 악덕으로 만드는 노동 숭배에 정면으로 대든다. 그런 다음 빈둥거리기를 위한 구체적인 방향을 조목조목 제시한다. 이를테면 이런 것들이다. 아무 것도 안 하기, 한가롭게 산책하기, 깃들이기(보금자리를 장만하여 그 내부와 외부를 꾸미는 일) 등이 있다. 이 책에서 제시한 실천 방안들이 그다지 새롭지 않다고 투덜거릴 수도 있겠다.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이런 사소한 일상이 주는 행복을 우리가 얼마나 많이 잊고 사는가를 일깨워주는 대목이기도 하다.

 

게으름에 대한 찬양게으름 예찬에서 긍정하는 게으름은 각각 여유휴식에 가깝다. 게으름은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삶의 선택에 관한 문제다. 빠르게 흘러가는 세상 속을 사는 동안 나 자신을 잊어버리지 않을 수 있는 능력과 나만의 행복을 추구하기 위해 살아가겠다는 확고한 의지, 이것이 바로 게으름의 미덕이다. 게으름으로부터 우리 마음은 여유로워지고 자신의 내면을 좀 더 깊숙이 들여다볼 수 있으며, 정신적 자유를 가질 수 있게 된다. 행복해지고 싶다면 게으름뱅이가 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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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ngela 2019-11-04 22: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여유와 휴식을 위한 게으름은 필요한 것 같아요. 살럿 에이브러햄스 <오늘도 휘게>에세이도 휴식에 대해 언급한 것으로 알고있어요~

cyrus 2019-11-05 19:45   좋아요 0 | URL
주변 사람들 눈치 때문에 마음껏 쉬기 힘들어요. 저는 아무 것도 안 하고 눕는 것을 좋아하는데 어머니가 이런 저의 모습을 보면 잔소리를 해요. 맨날 누워만 있다고요.. ㅎㅎㅎㅎ

페크pek0501 2019-11-12 12: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게으름에 대한 찬양은 오디오북으로 들어서 내용을 알게 되었어요.
요즘 읽고 있는 책 중 하나가 러셀 자서전이에요. 제목이 <인생은 뜨겁게>.
어떤 분야의 전문가가 된다는 게 멋진 일이라는 걸 새삼 느끼게 해 줍니다.

cyrus 2019-11-18 21:58   좋아요 0 | URL
맞아요. 러셀 같이 다방면에 활약한 전문가는 정말 대단한 사람이에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