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수록작품 : E.T.A. 호프만  「황금 항아리 : 새로운 시대의 옛 이야기(Der golden Topf」 (1813년)

 

 

 

괴테《파우스트》를 완성한 다음 해인 1832년 3월 22일, 82년 6개월의 생을 마감했다. 이 작품은 구상에서 완성에 이르기까지 무려 60여 년이 걸렸다. 이뿐만 아니라 괴테는 왕성하게 활동하며 시와 소설, 희곡과 산문 등 다양한 분야에서 많은 작품을 남겼다. 괴테의 대표작으로 우리는 항상 《파우스트》와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두 작품을 먼저 언급한다.《파우스트》가 괴테의 작가 인생 후반기를 장식하는 스완 송(Swan Song)이라면,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은 젊은 괴테 앞에 작가로서의 길을 터준 출세작이다. 나폴레옹도 읽을 정도로 18세기 유럽의 베스트셀러가 된《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덕분에 괴테는 평생 먹고 사는 데 지장이 없을 정도였다고 한다.

 

 

 

 

 

 

 

 

 

 

 

 

 

 

 

 

 

 

 

괴테가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을 쓰게 된 것은 소설 속 남자주인공처럼 약혼자가 있는 여성 샤를로테 부프를 사랑한 체험에서 비롯됐다. 그녀에게 실연당한 괴테는 괴로움을 잊기 위해 고향으로 돌아갔다. 그 후에 괴테의 친구 예루살렘이 친구의 아내를 사랑하다가 자살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사랑의 실패에 비관하다가 끝내 스스로 목숨을 끊는 친구의 극단적인 결정이 이미 쓰디쓴 사랑의 실패를 맛본 괴테 입장에서는 가슴이 철렁했을 것이다. 자신도 정말 죽고 싶을 정도로 괴로워했던 적이 있었으니까. 하지만 괴테는 친구의 자살에 의외의 인물이 개입된 사실을 알면서 큰 충격을 받았다. 친구에게 권총을 빌려준 사람은 결정적으로 괴테에게 정신적 상처를 안겨준 샤를로테의 약혼자였다. 사랑 하나로 인해 생긴 악연과 실제 체험을 토대로 괴테는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를 완성했다. 괴테와 예루살렘이 합쳐진 베르터는 로테에게 약혼자가 있다는 것을 알고 실의와 고독감에 빠져 끝내 권총자살을 한다.

 

이 소설은 출간 즉시 엄청난 인기를 끌었고, 무명작가였던 괴테를 단숨에 유명하게 만들었다. 그러나 그를 유명하게 만든 베르터 열풍은 곧 당시 사람들이 소설 속 베르테르의 죽음을 모방해 자살하는 데까지 영향을 주게 된다. 그 높던 교황과 황제의 권력과 권위도 이미 무너졌거나 무너져 가던 18세기 유럽은 이미 자살을 죄악이라고만 생각하던 시대를 한참 지나 있었다. 괴테의 이 소설은 낭만주의 문학에 상당한 영향을 주었을 뿐 아니라, 낭만주의 영향 속에서 문학과 예술에서 나타나는 자살은 더 이상 추한 모습이 아니었다.

 

이루어지지 못한 사랑의 경험을 기억하는 것 자체가 무척 괴로울 법한데 작가나 예술가들은 오히려 불편하게 생각하지 않는 듯하다. 그걸 작품 소재로 삼는다. 운이 좋으면 전업 작가로 발돋움할 수 있는 결정적인 계기가 되기도 한다. 독일 낭만주의 문학을 대표하는 호프만도 괴테처럼 사랑의 좌절을 겪고 난 뒤에 본격적으로 펜을 잡기 시작했다. 《Phantasiestücke in Callots Manier》(칼로 풍의 환상화집)은 호프만이 처음으로 내놓은 작품인데 여기 수록된 동화 「황금 항아리」는 가장 많이 알려졌다.

 

주인공인 대학생 안젤무스는 현실 세계와 사랑과 환상 세계의 사랑 사이에서 방황하고, 일상생활이 불가능할 정도로 망상에 시달린다. 그는 우연히 정향나무 아래서 초록 황금빛을 띤 세 마리의 뱀을 발견한다. 세 마리의 뱀은 불의 정령(현실 세계에서는 궁정 사서관 린트호르스트로 등장한다)의 딸인데 안젤무스는 세 자매 중 막내인 세르펜티나를 짝사랑하게 된다. 그렇지만 교감의 딸 베로니카는 안젤무스를 좋아하고 있었다. 안젤무스는 베로니카에게 자신이 추밀고문관이 되면 그녀와 결혼하겠다는 약속까지 하고 만다. 복잡한 삼각관계에 성격이 고약한 마녀가 사과장수 노파로 분하여 개입한다. 이 마녀는 불의 정령 린트호르스트와 적대적 관계이고, 이야기 초반부에 안젤무스는 사과장수 노파로 둔갑한 마녀의 광주리를 밟고 지나가는 바람에 자신의 지갑을 마녀에게 빼앗겨버린 악연이 있었다. 안젤무스를 차지하고 싶은 베로니카는 마녀의 도움을 받게 되는데 안젤무스와 린트호르스트를 괴롭히기 위한 마녀의 음모였다. 한편 안젤무스는 세르펜티나를 만나기 위해서 린트호르스트의 집을 방문하는 일이 잦아지고, 린트호르스트 밑에서 필사 작업을 하게 된다. 이 과정을 완수하면 세르펜티나가 소유하는 황금 항아리를 혼수품으로 얻을 수 있다.

 

「황금 항아리」의 안젤무스는 현실 세계를 벗어나 환상 세계로의 진입을 추구한다. 이 동화에서 그가 보여주는 망각, 우울 증세는 병적이다. 특히 안젤무스가 정향나무 밑에서 초록뱀 세 자매를 만나는 환상을 겪는 장면은 일상을 초월하는 광기에 가까운 분열된 정신 상태를 묘사하고 있다. 호프만은 감수성이 예민하고, 상상력이 풍부했다. 그는 「황금 항아리」를 집필하기 전에 사랑의 실패에 극단적인 정신 상태를 보였으며 한때 자살에 대한 생각에 이른 적도 있었다고 한다. 「황금 항아리」는 호프만의 아픈 기억을 고스란히 담고 있다. 안젤무스는 호프만이 사랑했던 율리아 마르크의 생일과 관련된 수호성자의 이름이다. 안젤무스가 사랑하는 세르펜티나는 율리아 마르크, 베로니카는 호프만의 아내 마샤에게서 나온 것으로 해석하기도 한다.

 

호프만의 현실 세계는 정식으로 마샤와 결혼한 부부로서 한집에 살게 된다. 그렇지만 이루어지지 못한 채 그대로 남아버린 반쪽짜리 사랑을 늘 가슴에 품고 살았을 것이다. 그의 환상 세계 속에는 또 다른 집이 있었고, 그 집에 율리아 마르크가 살고 있다. 현실 세계의 사랑을 상징하는 베로니카를 외면하고 환상 세계의 세르펜티나를 만나기 위해 린트호르스트의 집을 매일 찾아가는 양상을 떠올려본다면 이 동화를 통해 호프만의 심정을 짐작할 수 있다. 반쪽짜리 사랑을 잊지 못한 호프만은 자신을 동화의 주인공으로 만들어 어려운 현실을 극복하여 현실에서는 불가능한 사랑을 끝내 성취한 영웅으로 그렸다. 사실 주인공 이름만 봐도 동화의 결말을 알 수 있다. 세르펜티나를 원하는 안젤무스는 율리아 마르크의 수호성인이 되고 싶은 호프만의 간절한 마음이며 드디어 율리아 마르크와 닮은 세르펜티나와 결혼하는 데 성공한다.

 

실패한 짝사랑의 증상은 고통스러운 열병과 같다. 처음에는 기쁨으로 사랑을 하다가 이내 마음을 졸이게 되고 마침내 숯검정처럼 속이 타들어 간다. 짝사랑이 이루어지지 못하면 증상은 더욱 심각해진다. 헤어나기 힘든 절망적인 상황으로 몰고 갈 수 있다. 어떤 심리학자는 짝사랑 증상이 심하면 상대방이 자기 안에서 너무 크게 미화돼 자신도 모르게 환상을 그린다고 말한다. 호프만은 괴테보다 반쪽짜리로만 남은 짝사랑 후유증에 고생했다. 율리아 마르크가 호프만 곁에 없어도 그녀는 아름다운 황금색 빛깔을 내는 초록색 뱀 세르펜티나가 되어 안젤무스가 된 호프만을 끊임없이 유혹했다. 그러나 이 환상은 호프만 스스로 만든 것이다. 동화 「황금 항아리」의 안젤무스는 행복했지만, 호프만은 평생 현실을 도피하려는 도망자 신세로 살아야 했다. 그에게 유일한 안식처는 환상이었다. 호프만의 환상소설은 호프만 본인에게 허락된 마약이다. 

 

 

 

 

 

 

 

 

 

 

 

 

 

 

 

 

 

 

 

※ 호프만의 「황금 항아리」는 단편 선집이나 동화 모음집에 단골로 수록되는 작품 중 하나이다. 간혹 ‘황금 단지’라는 제목으로 소개되기도 한다. 물의 요정을 주제로 한 낭만주의 문학작품을 모은《물의 요정의 매혹》(이화여자대학교출판부, 2007)에 수록된 호프만의 동화 제목은 ‘황금 단지’다. 오래전에 개정판마저도 절판된 《호프만 단편집》(경남대학교출판부, 2002)에서는 ‘금항아리’라는 제목으로 소개되었다. 그런데 절판된 《호프만 단편집》의 서평에 의하면 번역은 최악이라고 한다. 「황금 항아리」가 수록된 《환상문학 걸작선 1》(자음과모음, 2013)을 추천한다. 이 책에 호프만의 노벨레 「왕의 신부」도 있는데 다른 호프만의 작품들에 비해 덜 알려졌지만, 이야기가 무척 재미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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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양물감 2015-02-23 22: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호프만의 글은 저는 못읽어봤네요.
괴테의 파우스트는 저를 좌절하게 만든 책이고요. ㅠㅠ

cyrus 2015-02-23 23:47   좋아요 1 | URL
외국 단편소설 모음집에 간혹 호프만의 단편 한 편 정도는 수록되어 있는데 찾기가 쉽지 않을 겁니다. 그나마 많이 알려진 단편이 ‘황금 항아리’와 ‘모래 사나이’입니다. 예전에 파우스트를 읽다가 중도에 포기한 적이 있어요. 언젠가는 꼭 다시 읽어보려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