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서(奇書)내용이 기이한 책이다. 내용이 어려워서 읽기 힘든 책을 뜻하기도 한다. 추리소설을 즐겨 읽는 독자라면 잘 아는 ‘일본 추리소설 3대 기서가 있다. 오구리 무시타로(小栗虫太郎)흑사관 살인 사건(1934), 유메노 큐사쿠(夢野久作)도구라 마구라(1935), 나카이 히데오(中井英夫)허무에의 제물(1964)이다.

















* 오구리 무시타로, 강원주 옮김 흑사관 살인 사건(이상미디어, 2019)

 

* [절판] 오구리 무시타로, 김선영 옮김 흑사관 살인 사건(북로드, 2011)




올해가 《흑사관 살인 사건》이 발표된 지 90주년이 된 해다흑사관 살인 사건후리야기(降矢木) 가문의 성에 일어난 연쇄 살인 사건을 다룬 장편소설이다. 성이 중세에 유행한 흑사병으로 죽은 사람들을 매장한 건물과 비슷해서 흑사관이라는 별칭이 붙여졌다. 이 작품에 오구리 무시타로의 탐정소설 시리즈의 주인공이자 변호사인 노리미즈 린타로(法水麟太郎)가 등장한다. 노리미즈는 박식한 인물이다. 그는 자신이 아는 모든 지식을 설명하면서 불가사의한 사건을 추리한다. 그런데 문제는 노리미즈가 아는 게 너무 많아서 한번 말하기 시작하면 장광설이 되고 만다. 노미리즈는 종교, 점성술, 과학, 범죄학 등 다양한 분야의 문헌과 용어들을 언급하면서 설명한다. 흑사관 살인 사건이 기서로 평가받는 이유가 작품 전반에 나타나는 현학적인 내용이다. 독자는 인내심 하나만으로 방대하면서도 난해한 내용을 뚫으면서 읽어야 한다.

 



















* [절판] 유메노 큐사쿠, 이동민 옮김 도구라 마구라(크롭써클, 2008년, 전 2권)





도구라 마구라유메노 큐사쿠의 유작이다. 유메노는 이 소설을 써서 탈고하는 데까지 십 년을 바쳤다. 소설이 발표된 지 이듬해에 세상을 떠났다. 독특하게도 뇌와 기억을 소재로 한 추리소설이다. 그래서 혹자는 이 소설을 SF로 보기도 한다. 두 권으로 된 번역본이 출간되었지만, 절판되었다.

















* 나카이 히데오, 허문순 옮김 허무에의 제물(동서문화사, 2009)

 



허무에의 제물반 미스터리(anti mystery)’를 대표하는 걸작이다. 번역본을 낸 출판사는 동서문화사. 허무에의 제물의 역자는 해설에서 ‘600쪽이 넘는 소설을 단숨에 읽었다라며 운을 뗀다. 읽기 까다로운 작품을 완독한 것을 자랑하는 것일까, 아니면 어떤 작품인지 모르고 한 거짓말일까? 저작권을 무시하면서 책을 출판하고, 유령 역자(익명의 역자가 번역한 책에 고인이 된 역자의 이름을 쓴 것)’를 내세워 책을 펴낸 출판사의 전력을 생각하면 역자의 말이 미덥지 않다.

















* 윤영천 미스터리 가이드북: 한 권으로 살펴보는 미스터리 장르의 모든 것(한스미디어, 2021)




미스터리 가이드북을 펴낸 미스터리 전문가 윤영천일본 본격 미스터리의 흐름을 충분히 이해한 다음에 ‘3대 기서에 도전하라고 권한다. 단순히 기서라는 단어에 혹해서 도전한다면 그 시간에 다른 작품을 읽으라고 말한다. 미스터리 마니아가 그렇게 말하니까, 기서를 더 읽고 싶어진다.


















* 백휴 추리소설로 철학 하기: 에드거 앨런 포에서 정유정까지(나비클럽, 2024)




철학을 전공한 추리소설 작가 백휴는 추리소설로 철학 하기에서 추리소설은 오락소설이라는 통념을 깨뜨리기 위해 추리소설을 철학적으로 읽기를 시도한다나는 이 책을 프롤로그-12순으로 읽었다. 12장은 프롤로그의 심화 편이라 할 수 있는데, 추리소설을 철학적 관점으로 읽고 해석해야 하는 이유가 본격적으로 나온다그런데 12장에 인용된 철학자가 너무 많다. 철학 용어를 인용하면서 추리소설을 철학으로 독해해야 하는 이유를 설명하면 독자들이 부담스러울 수 있다. 근거를 설명할 땐 단순할수록 좋다. 오컴의 면도날(Occam’s razor)’이 필요해 보인다.


고전 추리소설에 묘사된 탐정은 추리력과 논리력이 뛰어나다. 가장 대표적인 탐정이 셜록 홈스(Sherlock Holmes)다. 추리력과 논리력은 어떤 현상을 올바르게 분석하게끔 해주는 이성이 뒷받침되어야 가능한 능력이다. 하지만 시대가 지나면서 서구 지식인들이 찬양했던 이성의 입지가 점점 흔들리기 시작한다. 니체(Nietzsche)로 시작해서 몇몇 철학자들이 이성의 한계를 지적한다. 추리소설 역시 이성과 반이성이 충돌하는 철학의 흐름에 맞춰 유행하게 되었다. 20세기에 나온 추리소설 속 탐정은 똑똑하지 않다. 사건을 해결하지 못해서 전전긍긍하거나 결국 해결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3대 기서 중 흑사관 살인 사건을 먼저 읽어보려고 한다. 처음에는 아무 생각 없이 읽으려고 했는데, 추리소설로 철학 하기를 읽고 난 후에 생각이 달라졌다. 추리소설 3대 기서를 철학적으로 분석하면서 읽어보면 어떨까? 읽기 어렵기로 악명높은 책들을 더 어려운 방식으로 읽어야 하는 상황이 부담스럽다. 비트겐슈타인(Wittgenstein)은 탐정소설 속에 지혜의 알갱이들이 많이 있다고 말했다. 지혜의 알갱이 한 톨이라고 찾지 못해도 좋다. 일단 흑사관 살인 사건을 끝까지 읽는 것이 목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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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넬로페 2024-02-15 07:3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추리소설인데 내용이 어렵고 그것도 철학적인 접근~~
그럼에도 어쩐지 도전해보고 싶은 생각이 드는데요^^

cyrus 2024-02-23 07:00   좋아요 1 | URL
내용이 어렵거나 특이한 책은 한 번이라도 읽어보고 싶어요. 어떤 내용인지 궁금하거든요. ^^

stella.K 2024-02-15 18:0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나도 읽는다면 흑사관부터 도전할까 했는데 네 글 읽어보니 미스터리 가이드 북이랑 철학하기부터 읽어야지 싶네. 미스터리물은 어렵지 않다고 생각했는데 만만히 봤다간 큰코 다치겠군.
근데 허무에의 제물이 그런 사연이 있었군. 저 제목도 사실은 문법상 문제가 있어 보이긴 한다. ~~에의는 잘못된 표현이라고 들었거든 일본식 표현이라고 하던데. 손 좀 보면 좋을텐데ᆢ

cyrus 2024-02-23 07:03   좋아요 0 | URL
저도 ‘~에의’라는 표현이 눈에 거슬렸어요. 동서미스터리문고 개정판이 나올 가능성이 희박해서 제목이 고쳐지는 일은 없을 거예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