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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으로 향하는 버스 안에서 저는 아주 귀여운 천사를 만났습니다. 눈에 보이지도 않는 천사를 어떻게 봤냐고요?

포근한 엄마 품 속에서 따사로운 햇살을 받으면서 새곤새곤 잠에 푹 빠진 갓난아기입니다.


...
잠들기 전에 아기는 제 얼굴을 계속 쳐다봤습니다. 제 얼굴이 재밌게 생겨서 그런지 이 아기는 자꾸 저 얼굴을 쳐다보면서 싱글벙글 해맑게 웃더군요. 그 아기의 미소가 너무나도 귀여워서 폰의 사진으로 담으려고 했으나 아기가 사진을 의식한 탓인지 시선을 외면하더군요. ^^;; 버스 타는 내내 20분 정도 아기의 미소를 사진으로 담기 위해서 기회를 노려봤지만 결국에는 엄마 품 속에서 꿈나라로 떠나고 말았습니다.

이 때 하필이면 제가 목적지에 내려야하는 바람에 사진을 찍지 못한 아쉬움을 뒤로 한 채 잠든 천사와 헤어져야 했습니다. 예전에 학교 축제 때 공연하러 온 포미닛 패왕색 현아의 섹시함을 사진으로 찍지 못해 아쉬웠던 그 때 심정과 똑같았습니다.

결국 저는 급한 마음에 잠든 아기의 모습이라도 몰래 도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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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살아가면서 지나간 인생 중에서 가장 중요했던 시기 또는 다시 되돌아가고 싶은 시절을 꼽는다면 젋은이들은 학창시절, 연세가 좀 있으신 분들은 주저없이 20대의 젋은 시절이라고 다들 말합니다.

하지만 전 오늘 버스 안에서 아기 천사를 만난 순간, 생각이 달라졌습니다. 그저 순수하기만한 귀여움 돋는 아기 시절도 인생에 있어서 아주 중요하다는 사실을요. 그리고 아기야말로 우리에게 행복을 전해주는 위대한 존재라고 생각합니다.

아기가 미소짓는 모습을 보는 순간 자신도 모르게 얼굴에 웃음이 나오게 됩니다. 그리고 아기의 조그만 손을 만져보고 싶고 머리를 쓰다듬고 싶은 마음도 생깁니다. 아기의 미소는 웃음기 없는 무뚝뚝한 중년 아저씨들은 저절로 웃게 만듭니다. 그리고 자신의 귀여운 매력을 발산하여 주위 모든 사람들의 시선을 끌어오는 위력을 지니고 있습니다. 세상에서 아기의 귀여움 돋는 미소를 보고 좋아하지 않는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아기도 한 번 보채기 시작해서 울음이 터지기 시작하면 청소기 소음에 맞먹을 정도로 엄청나게 시끄럽습니다. 그래서 엄청 울어대는 아기를 가리켜 장난삼아 '악마'라고 불리기도 합니다. 그래서 어떤 이는 아기 우는 소리에 질색하여 아기 자체를 싫어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저는 아기를 싫어하는 사람들이야말로 세상에서 가장 불행한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아기의 미소는 우리에게 웃음을 유발할 뿐만 아니라 천사답게 행복 바이러스도 선사해줍니다. 웃을 수 있다는 것은 곧 마음이 행복하다는 증거입니다. 마음이 행복하다는 것은 신체 역시 건강합니다. 즉, 웃음은 우리 삶을 건강하게 해준다는 삼단논법이 성립됩니다.

그저 아기의 울음소리를 싫어하는 사람들은 불행하게도 아기의 귀여운 미소를 단 한 번도 보지 못했다거나 혹은 봤으면서도 자신이 인식하는 모든 대상을 오직 부정적으로만 보는 성격의 사람일수도 있습니다. 부정적인 성격이 강한 사람일수록 긍정적인 성격의 사람에 비해 살아가면서 행복감을 느끼는 정도가 당연히 낮을 수밖에 없습니다.



3

기독교에서 천사란 천국에서 인간 세계로 내려와서 신과 인간의 중간에서 신의 뜻을 인간에게 전하는 동시에 신을 향한 인간의 기원을 신에게 전하는 천국의 사자(使者)라고 합니다. (으르렁거리는 호랑이 친구 사자 아니에요 ^^;;)

인간이 신과 같은 초인적 존재에게 바라는 소원 또는 기원의 내용은 제각각이지만 궁극적을 본다면 별 탈 없이 행복하게 잘 살아가기를 원하는 것이 우리 인간이 간절히 원초적인 삶의 욕망입니다. 부자가 되기를 원하는 사람이나 건강하게 무병장수하기를 원하는 사람이나 다 공통적으로 행복을 추구하는데서 비롯된 기원입니다.


저는 버스에거 내리기 전에 단 1초 동안 잠든 아기천사의 얼굴을 바라봤습니다. 그리고 마음 속으로 천사에게 말했습니다.

"20분 동안 나를 행복하게 해줘서 고맙다. 너의 귀여운 미소로 다른 사람들에게도 행복 바이러스를 전해줬으면 좋겠다."

비로 아기의 미소를 사진으로 찍지 못했지만 저는 버스 타는 20분동안 아기로부터 행복이라는 아주 좋은 선물을 받았습니다.

이 사진으로나마 제 글을 보고 있을 서재이웃분들 모두 행복의 기운을 마구마구 느꼈으면 합니다. 모두들, 행복하세요 ~~~~!! ♥♥♥ (^o^)



P.S

갓난아기 시절의 순수하고 귀여움은 속세의 먼지와 과도한 알콜로 인해 이제는 눈꼽만큼도 찾아볼 수 없을 지경에 이르렀지만 ....

저도 남들에게 행복을 줄 수 있는 '판타스틱 베이비'가 되고 싶습니다.
Wow~~~~ fantastic baby ~~~~ ㅋㅋㅋㅋ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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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진 2012-06-25 21: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랜만에 진지하신 시루스님에서 벗어나 20대 청년의 시루스님으로 오셧군요!
저는 갓난아이부터 꼭 3~4살까지의 아이만 좋아합니다. 5살부터는 장난끼가 많아져요. 그럼 그 때부터는 스트레스가 쌓입니다. 만약 아이에 관한 일을 해야한다면 베이비시터를 하겠습니다. (있으리냐만은) 음. 아이는 잘 때가 가장 예쁩니다.

cyrus 2012-06-28 11:38   좋아요 0 | URL
맞아요. 잘 때도 예쁘고요ㅎㅎㅎㅎ 버스 탈 때 저런 귀여운 아기를
만나면 가는 내내 지루하지가 않아서 좋아요 ^^

굿바이 2012-06-25 22: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잘~지내시죠? 판타스틱 베이비님 ^_______^
오늘 마주한 풍경중에서 단연 으뜸인데요, 저 사진 말이죠!!!

cyrus 2012-06-28 11:39   좋아요 0 | URL
답글이 늦었네요. 잘 지내고 있어요. 굿바이님 ^^
사실 저 사진 찍느라 조마조마했어요, 괜히 죄 짓는 기분이랄까요? ^^;;

노이에자이트 2012-06-26 01: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현아 같은 여자와 결혼하면 천사같은 아이가 나오겠지요.

cyrus 2012-06-28 11:40   좋아요 0 | URL
ㅎㅎㅎㅎ 역시 노자님~~ 역시 이런 댓글 쓰실 줄 알았습니다. ^^

blanca 2012-06-26 10: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cyrus님 좋은 아빠가 되실 수 있을 것 같아요. 아이는 잠든 모습이 가장 예뻐요. 아이에게 뽀뽀를 자꾸 하면 잠투정을 많이 한다는 얘기 ㅋㅋ가 있는데도 불구하고 저도 아이 어렸을 때 잠들면 계속 뽀뽀했던 기억이 납니다. 엄마의 뒷모습도 참 아름답네요

cyrus 2012-06-28 11:41   좋아요 0 | URL
글쎄요 ㅎㅎ 그냥 아기만 좋아할 수도 있어요. 잠든 아기에게 뽀뽀하는
블랑카님 멋져요. 아이가 블랑카님의 사랑을 듬뿍 받으면서 자랐겠어요 ^^

감은빛 2012-06-26 18: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가끔 천사였다가 자주 악마로 돌변하는 녀석, 저희 집에 하나 있습니다.
몇 해전에도 하나 키웠는데,
그 놈은 부쩍 커버려서 이 글에서 말하는 천사나 악마랑은 조금 다른 듯 해요.

가끔 젊은 남자가 아기를 좋아하면 이해못하는 사람들도 있던데,
저는 어려서부터 아기를 정말 좋아했어요.
게다가 이상하게도 낯선 아기들도 저를 좋아하더라구요.
아내가 '미스테리'라고 생각하는 에피소드가 몇 있습니다.

퇴근시간이네요.
어서 가서 천사였다가 악마로 돌변하는 녀석 이마에 뽀보해야겠습니다. ^^

cyrus 2012-06-28 11:43   좋아요 0 | URL
아기들은 아무것도 모르는 순진하기 때문에 주위에 있는 모든 것에 대해서
호기심을 가지게 되고 또는 어떠한 편견을 가지지도 않죠, 그래서
그런 아기들이 참 좋은거 같아요 ^^

꽃도둑 2012-06-27 14: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판타스틱 베이비~ 한참 웃었습니다..
오랜만이에요, 사이러스님,,,^^
글이 편안하게 느껴져서 정말 좋아요...

저도 얼마전에 천사 손을 잡고 하늘을 날았는데..사이러스님도 천사를 만났군요,,ㅎㅎ

cyrus 2012-06-28 11:44   좋아요 0 | URL
네, 오랜만이에요. 꽃도둑님. 버스를 타게 되면 아기들을 만나게 되는데
며칠 전 만난 저 아기처럼 저렇게 귀여우면서 편안한 녀석은 별로 없었어요.
제가 버스에서 만났던 아기들은 대부분 울었거든요 ^^;;
 

 

 

 이제는 스마트워크(Smart work) 시대다!

 

 

 

 

 

 

 

 

 

 

 

 

 

 

 

 

 

 

 

스마트워크(Smart work)란 말 그대로 ‘똑똑하게 일한다.’는 뜻이다. 사무실 개념을 탈피해 언제 어디서나 쉽게 업무를 볼 수 있는 근무 형태를 말한다. 이는 우리나라의 IT 강점을 스마트워크에 접목시켜 저 출산, 고령화라는 국가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제안된 것이다.

 

 

 

 

출처: 매일경제 (2010년 8월 11일자)

 

 

 

유형은 재택근무, 이동근무, 유연근무, 스마트워크센터 근무 등 크게 4가지로 나뉜다. 재택근무는 말 그대로 각종 IT기기를 이용해 집에서 일을 하는 것이며, 이동근무는 스마트폰이나 노트북 등을 이용해 공간적 제약 없이 업무를 보는 것이다. 그리고 유연근무는 사무실이 정해져 있지만 근로자의 생활 패턴에 맞춰 시간에 구애받지 않고 근무하는 형태며, 스마트워크센터 근무는 주거 지역 부근에 사무실을 마련해 놓고 이곳에서 원격 근무를 하는 방식이다. 이러한 근무형태는 출퇴근 시간 교통량을 감소시켜 환경 보호에 도움이 되며, 비용 절감, 소외계층의 일자리를 창출할 수 있다는 점에서 주목받고 있다.

 

1950년대만 해도 대부분의 선진국에서 블루칼라 근로자들이 다수를 차지했지만 1990년대에 들어서는 화이트칼라가 블루칼라를 대체해 나가고 있다. 하지만 화이트칼라의 관리방식은 블루칼라를 관리하던 방식으로 행해져 왔다. ‘어떻게 되었는가.’ 하는 결과 중심의 매니지먼트 그리고 그러한 방식의 관리가 가능한 시스템과 업무 프로세스를 재구축해야 하는 것이 이 시점에서 스마트워크가 필요한 이유이다.

 

그동안 개인의 창의성이 많이 강조되어 왔으나, 기회를 살리지 못한 현실이다. 우리는 조직 차원의 보다 새로운 접근이 필요하다. 이것을 창의 기반 생산성이라는 새로운 개념으로 정리하고자 한다. 현실적으로는 생산성과 창의성 간의 역설과 같은 모순이 존재하지만, 21세기 창조적인 기업으로 거듭나면서 지속 성장을 모색하는 기업이라면 창의성, 생산성 모두를 확보해야 한다.

 

조직 내 다양성이 증대되고 있는 지금, 스마트워크는 조직창의성으로 승화시켜야 하는 21세기 기업에게 필요한 새로운 도전이라고 할 수 있다. 인력의 다양성 증대와 함께 스마트워크가 필요한 이유는 현실이 워크하드(Work hard)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우리나라 근로자들은 노동시간이 길고 생산성은 낮다. 스마트워크는 다른 기업과 차별되는 새로운 근로생활의 가치를 창출하자는 것이다. 그리고 스마트워크 시대로 전환되고 있는 지금, 우리는 새로운 시대의 변화의 과정을 대비하여 그곳에서 창출되고 있는 근로생활의 가치를 통해서 자신의 역량에 맞는 직업을 선택할 수 있어야 한다.

 

 

 

 스마트워크 시대 속에 살고 있는 우리는 정말 '스마트'(Smart)한가?

 

 

 

 

 

 

 

삼성전자 갤럭시 노트 CF 마지막 장면.

이제 시대는 인류에게 스마트폰을 중심으로 한 '스마트한' 생활 방식을 요구하고 있다.

하지만 우리는 정말 스마트폰을 '스마트하게' 제대로 사용하고 있을까?

 

 

 

삼성전자에서 출시된 갤럭시 노트 CF 마지막에 보면 ‘HOW TO LIVE SMART' 라는 문구가 등장한다. 30초라는 아주 짧은 시간으로 제작된 이 광고 속에서 우리는 광고 마지막, 그것도 불과 1초도 채 안 돼서 나오는 이 문구는 스마트폰과 같은 신종 모바일 기기가 우리 실생활에서 아주 밀접하게 사용되고 있는 시대의 서막을 알리는 셈이다. 지금도 우리는 스마트폰의 보급이 이루어지고 있는 이 스마트워크 시대 속에서 광고문구대로 ‘스마트’하게 생활하고 있다. 시간과 장소를 구애받지 않고 언제 어디서든 원하는 정보를 검색하여 찾을 수 있다.

 

 

 

 

 

 

 

하지만 우리는 과연 스마트워크 시대 속에서 ‘스마트’하게 살아가고 있는 것일까? 즉, 다시 말하자면 우리가 원하는 목표를 이루기 위해서 좀 더 영리하게 스마트폰을 사용하고 있느냐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스마트폰이라 하면 인터넷을 통한 정보 검색이 가능한 용도로 사용되는 정도로 생각한다. 그러나 이 손 안에 들고 다니는 스마트폰으로 공부를 보다 용이하게 할 수 있다. 그리고 스마트폰을 통해서 공부한 지식 및 정보를 단순히 개인을 위한 자기계발 목적의 획득(습득)이 아닌 수많은 사람들이 다함께 공유할 수 있다.

 

그래서 ‘나만을 위한 공부’(For me the study)가 아닌 ‘모든 사람들을 위한 공부’(For all those study)가 이루어질 수 있는 스마트워크 시대 속에 적합한 공부 방법을 나름대로 소개하고자 한다.

 

 

 

 

 스마트폰으로 공무원 고시 준비하기

 

 

취업을 공무원에 목표를 두고 있어서 어플리케이션 스토어(Application store, 앱 스토어)에 ‘공무원 고시’ 관련 앱을 찾아봤는데 ‘사이버국가고시센터(http://www.gosi.go.kr)’와 같은 공무원 고시에 관심 있는 사람들에게 유용하면서도 공신력 있는 앱은 아직 개발하지 않았지만 ‘공무원 고시’라고 검색을 하게 되면 각종 공무원 고시 기출문제 등 다양한 정보를 찾을 수 있다.

 

평소에 공무원 고시 일정에 대해서 관심이 많았는데 ‘공무원 공고 알리미’라는 앱 덕분에 굳이 공무원 고시 일정을 검색하는 수고로움을 덜어준다. 이 앱에는 월별 공무원 시험 정보를 모두 담고 있으며 매 정기적으로 정보들이 업데이트된다. 직렬별 원서접수 기간에서부터 시험일정까지 모든 일정 정보들을 손쉽게 확인할 수 있으며 일정에 대한 궁금한 사항을 댓글 창을 통해 입력할 수 있음으로써 실시간으로 앱을 사용하는 이들과 정보를 공유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그리고 기존의 온라인 공무원 고시 관련 카페처럼 앱을 사용하는 이들이 함께 모여 스터디 일정을 계획한다거나 공무원 고시에 합격할 수 있는 비결을 알 수 있는 후기 등 인터넷에서만 가능했던 정보 공유 목적의 온라인 공간이 이제는 스마트폰에서도 접할 수 있다.

 

 

 

 

 

공무원 기출문제를 직접 풀어볼 수 있고 학습 가능한 공무원 기출문제 앱 일부  

 

 

 

그리고 공무원 고시에 대비할 수 있는 각종 과목의 기출문제들도 어플리케이션 스토어에 검색하고 찾을 수 있다. 공무원 고시를 대비할 수 있는 전공서적 및 수험교재들은 대부분 분량이 많다. 공무원 고시를 준비하는 데 공부해야 할 과목 수만 해도 기본적으로 5~7개임을 감안한다면 이동하는 데 있어서 불편하다. 그리고 그 방대한 분량의 서적 탓에 언제 어디서나 공부할 수가 없다.

 

하지만 공무원 기출문제 앱만 있으면 간편하게 스마트폰으로 역대 기출문제들을 다운로드할 수 있으며 자신이 원하는 대로 문제를 풀어볼 수 있다. 무조건 아침 일찍 일어나서 공무원 시험공부를 하기 위해서 무거운 수험교재들을 들고 다니면서까지 공공도서관으로 향할 필요가 없다. 스마트폰을 통해 자신이 원하는 시간에 얼마든지 다운로드 받은 문제들을 풀어봄으로써 공무원 시험공부를 간편하게 할 수 있다.

 

기존의 공무원 고시 공부는 이론적 내용을 담고 있는 전공서적과 문제들만 모아 놓은 수험교재가 함께 있어야 했다. 이렇다보니 시간적으로 효율성이 떨어지는 학습법만 고집하게 되는 경향이 생기게 마련이다. 두 권의 방대한 분량의 서적을 번갈아 봐야한다는 것은 무척 비효율적인 공부 방법이다. 공무원 고시 기출문제 그리고 공무원 고시에서 자주 출제된다거나 수험생들이라면 꼭 알아야 할 핵심내용들을 따로 요약, 정리해놓은 앱까지 갖추고 있다면 보다 수월하게 시간을 절약하면서 공부할 수 있다. 기출문제 앱을 이용하다가 이해하기 어렵다거나 꼭 재학습해야하는 중요한 핵심내용을 암기하고 싶다면 바로 수험교재 속 모든 내용을 담고 있는 앱을 바로 이용하면 된다. 굳이 종이로 된 수험서적을 일일이 뒤적거리는 필요가 없게 된다. 특히 학업이나 각종 자격증 및 TOEIC 공부 때문에 학업 일정이 여유롭지 않은 학생들에게는 스마트폰 앱을 이용한 공부는 아주 유용하다.

 

필자는 항상 등교나 하교할 때 이 두 가지 앱을 자투리 시간을 이용해서 활용하는 편이다. 이러한 공부 방법 덕분에 그동안 잊어버리고 있었던 행정학 원론 과목 내용을 다시 한 번 숙지하고 상기한다. 공부할 시간이 마땅치 않거나 장소가 여의치 않을 때는 스마트폰 앱을 이용한 공무원 공부 방법을 꾸준히 활용할 수 있다.

 

 

 

 

 PC의 파워포인트 시대는 갔다, 이제는 스마트폰의 프레지(Prezi)가 대세!

 

 

 

 

 

 

 

 

 

 

 

 

 

 

 

 

 

 

 

 

 

 

 

 

 

 

 

 

 

지금까지의 프레젠테이션이 주로 발표자가 슬라이드에 끌려가 내용 읽기에 급급했다면 최근 등장한 프레지(Prezi)는 시각적으로 청중을 자극한다. 파워포인트를 대체할 수 있는 새로운 개념의 발표 도구로 주목 받고 있다. 프레지는 웹 기반의 PT 도구로 ‘프레지’ 사이트(www.prezi.com)에 가입만 하면 누구나 쉽게 콘텐츠를 만들어 공유할 수 있다.

 

프레지는 2009년 4월 공식 서비스를 시작, 헝가리 부다페스트와 미국 샌프란시스코에 본부를 두고 있다. 한국어 서비스는 지난해 10월부터 제공되면서 프레지 사용법 강의에 사람들이 몰리는 등 커뮤니케이션 광고, 마케팅 종사자들을 중심으로 사용자들이 크게 늘고 있다.

 

 

 

 

 

 

사진출처: 프레지 공식사이트

 

 

특히 프레지는 필요한 정보를 줌인, 줌아웃(Zoom out, 확대, 축소)해 강조하거나 숨길 수 있을 뿐 아니라 웹툰과 동영상 그리고 텍스트를 유기적으로 묶어 전달력이 높아지는 장점을 지닌다. 때문에 색다른 이력서를 원하는 구직자는 물론 직장 내 기획서 및 과제 발표 등에 활용하면 남들보다 돋보이는 PT를 할 수 있다. 익히는 데도 시간이 적게 걸린다. 1시간이면 사용법을 익혀 쓸 수 있다. 무료와 유료 서비스로 세분화돼 있지만 대부분 기본적인 작업은 무료로 다 할 수 있다.

 

또 프레지의 경우 웹브라우저 상에서 작업, 저장, 공유를 할 수 있어 사용자 대부분은 자기가 만든 프레젠테이션 작품을 이메일, 블로그뿐만 아니라 트위터나 페이스북에 올려 소통은 물론 마케팅 효과도 함께 얻을 수 있다는 강점이 있다.

 

 

 

 

 

사진출처: 한국 프레지 사용자 모임

 

 

 

그리고 기존의 프레젠테이션이 컴퓨터 PC에서만 사용이 가능한 발표 도구임을 감안하면 프레지는 아이패드, 아이폰을 통해서 지원이 가능하며 발표용으로 슬라이드 쇼를 진행할 수 있다. 또 아이폰을 이용해서 프레지를 제어, 실행할 수도 있다. 웹 자료를 직접 프레젠테이션 할 수 있고 다운로드 받은 파일을 제어할 수도 있다. 현재까지는 애플 아이폰을 통해서만 프레지 앱을 사용할 수 있으며 안드로이드용 프레지 앱은 아직 개발하지 않은 상태이다. 하지만 안드로이드용 스마트폰 사용자의 요구가 증가하고 있는 만큼 머지않아 갤럭시 이외 다른 스마트폰 기종에서도 프레지 앱을 만날 수 있을 것이라 예상된다. 스마트폰 중심으로 실행되는 프레지가 실행되는 날까지 이제는 프레젠테이션 스킬만 공부하는 것이 아니라 프레지를 사용할 줄 아는 방법을 알아야 한다.

 

 

 

 급속한 변화의 시대 속에 '스마트하게' 살아남기

 

공부는 외우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무엇인지를 이해하고 아는 것이 중요하다. 이제는 '스마트워크'의 시대다. 이러한 시대 속에서 인류는 속도의 발전에 뒤쳐지지 않기 위해서는 능동적으로 삶을 살아가야 한다. 그러한 삶을 살아가기 위해서는 지금의 현실을 순응, 안주하기보다는 지금보다 더(better), 그리고 끊임없이(Continue)하게 공부해야 한다. 열심히 살아가는 방식은 인생의 미덕에 불과하다. 이제는 ‘스마트하게’ 살아야 한다. 스마트폰을 이용한 공부야말로 스마트한 생활방식을 보여주는 하나의 사례다.

 

Smart IT(스마트 그리드, Smart greed)와 다양한 사회 시스템과의 융합, 라이프 스타일(Life Style)의 변화 등을 통해 안전하고, 편리하고, 경제적인 시민이 원하는 스마트한 사회로 변화하고 있다. 가장 중요한 것은 내가 이 사회에서 무슨 일을 하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정보사회의 특성을 정확히 이해하고 스마트하게 일하고 따라가는 방법을 고민하는 것이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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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용석 전 의원은 '여 아나운서가 되려면 다 줘야 한다'는 말 한 마디 때문에 곤혹을 치르게 되었고, 김문수 전 경기도지사는 '춘향전은 변 사또는 춘향이 따먹으려는 이야기'라고 해서 한 때 네티즌들은 그를 '따문수'라고 비아냥거렸다.  이 두 정치인의 발언은 그 해 네티즌들이 선정한 정치인 최고의 망언이 되었다.

 

좀 이른 감 있지만 아무래도 올해 2012년 정치인의 최고 망언으로는 이석기 의원의 '애국가 부정 발언'이 아닐까 싶다.  지금까지도 네이버 검색어순위에 당당히 상위권에 자신의 이름 석자가 남아 있다. 그리고 이번 발언을 통해서 이석기 의원은 또 다시 말도 안 되는 궤변을 주장했다. 이 의원이 주장하고 있는 '국가(國歌)' 부정 발언 속에는 그동안 자신과 김재연 의원 그리고 통진당 구당권파를 향한 여당 및 국민들의 '종북주의'  비난 논란을 어떻게든 잠재워보려는 의도가 있어 보인다.

 

 

 

 

 

 

 

 

 

 

 

 

 

 


일부 여론은 이 의원의 발언 의도를 애국가를 부르지 않는 통진당 내 행사절차에서 비롯된다고 보고 있는데 여기서 이 의원이 말하고 있는 '국가(國歌) 부정론'은 흡사 무정부주의자(아나키스트)들이 주장하는 논리와 흡사해보인다. 말 그대로 무정부주의자들은 국가(國家)의 존재 및 정당성, 국가 권력, 제도화된 사회적 권위 자체를 부정하는 급진적인 사상을 주장했다. 

 

 

 

 

 

 

 

 

 

 

 

 

 

 

 

 

 

 

이들은 국가 및 사유재산의 존재는 개인을 억압하고 착취했다고 보고 있다. 어떻게 보면 무정부주의자들의 사상은 좌파 성향의 사회주의 사상과 언뜻 비슷해보일 수도 있지만 엄연히 내용면에서 따져 보면 이 두 급진적 사상은 서로 차이점이 있다. 아니. 오히려 무정부주의자들은 사회주의 사상을 비판하기도 했다. 국가가 생산수단을 소유하고 계획 경제를 강조하는 사회주의자들의 사상 또한 국가 만들어내는 권위에 불과하며 이러한 제도 역시 개인을 억압할 수 있다고 봤다. 사상적 일례로 무정부주의의 대표적인 사상가인 미하일 바쿠닌은 그 당시 유럽에서 유행하던 마르크스의 사상을 비판하면서 무정부주의적 사회주의를 주장했다.

 

그렇다면 과거에 NL계의 주체사상에 심취했던 이 의원이 갑자기 아나키스트로 사상 전향을 한 것일까?  그의 전력을 봐서는 사상 전향은 참으로 생뚱맞은 일이다. 이번에 논란의 이슈가 된 이 의원의 발언 배경에는 자신을 향한 '종북주의' 논란의 화살을 피하기 위해서 잠시나마 19세기 유럽에 유행했던 아나키스트의 논리를 방패삼아 여론을 가라앉혀보려는 의도가 담겨져 있다.

 

하지만 이번에 아나키즘적 논리를 동원한 이 의원의 발언은 논리성 없는 궤변이 되고 말았다. 일단 먼저 무정부주의, 즉 아나키즘은 19세기 근대 유럽에서 유행했던 '현 시대의 흐름과는 전혀 맞지 않은 구시대적 사상이다.  현실성 전혀 없는 이데올로기의 허상에 사로잡힌 사람답게 이번에는 사회주의 이데올로기와는 조금 다르면서도 급진적인 아나키즘에서 나올 법한 논리를 근거로 들고 나온 것이다.

 

그리고 그가 진심으로 '아나키스트''로 사상 전향했다고 가정해보자. 그렇다면 그는 지금 당장 국회의원직을 사퇴해야 한다. 대한민국 헌법 제46조에는 '국회의원은 국가이익을 우선하여 양심에 따라 직무를 행한다'라고 명시되어 있다. 그렇다면 국가 정당성을 부정하는 '아나키스트' 이 의원은 '국가이익을 우선하는 직무'를 행할 필요가 없어지게 된다.  '국가' 존재 자체를 부정하는데 굳이 그가 국가이익을 위해서 수고스럽게 일할 필요가 없다.

 

결국, 오늘 이 의원, 아니 아나키스트 이석기의 '국가 부정' 발언은 본인을 향한 비난 여론을 더욱 점화시켰을 뿐만 아니라 구시대적 사상을 들먹이면서 본인의 의원직 자체를 스스로 부정해버리는 결과를 입증해줬다.

 

북한 정부의 존재를 공식적으로 부정하지 않은 채 회피하고 언제나 자신의 입장이 불리하게 처하면 '종미(從美)'를 언급하여 반박하는 그의 행보를 살펴보면 문제투성인데다가 관념적 허상에 불과한 주체사상에 대한 집착의 잔상이 여전히 남아 있다. 그리고 이번에는 구시대적인 사상이나 다름없는 아나키즘과 유사한 논리를 근거삼아 해괴망측한 국가관을 만천하에 드러내 공개적으로 망신살 뻗쳤다. 내가 보기에는 이석기 의원은 한참 유행이 지나간 구시대적 이데올로기를 집착에 가까울 정도로 좋아해보인다. 그의 모습은 흡사 실생활에서 전혀 필요 없는 값어치 없는 옛날 유물 수집에 집착하는 유물수집광처럼 느껴진다. 차라리 이번 발언을 기회 삼아 '이석기'라는 이름 대신에 '구석기'(舊石器)라고 개명하기를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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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진당 내분 사태부터 시작한 진보 분열의 문제가 지금은 종북 논쟁으로 논란이 점화되어가고 있다. 요즘 아침 일찍 등교하기 전에 스마트폰으로 보수, 진보 진영 가리지 않고 조중동과 한겨레, 경향신문 어플로 신문에 실리는 소식들을 접하게 되는데 아무래도 제일 먼저 관심 있게 보는 기사가 바로 통진당 내분 사태 관련 내용들이다.

 

그리고 몇 주 전부터 페이스북도 시작하게 되었는데 통진당 사태가 큰 사회적 이슈인지라 페이스북에서도 통진당 사태에 대해서 각자의 입장을 밝힌 글들을 볼 수 있었다. 학교 수업을 통해서 인연을 맺게 된 모 박사님과 페이스북 친구를 맺게 되었는데 그 분 또한 통진당 사태에 쭉 관심을 가지고 있었던지 통진당 사태 관련 신문기사를 페이스북에 링크를 올리곤 한다. 그리고 진보 진영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것뿐만 아니라 NL계를 비롯한 우리나라에 남아 있는 종북주의자들에 대한 경계와 근절에 대해서 소신있게 자신의 입장을 밝히기도 했다.   

 

그 분 덕분에 그동안 알지 못했던 진보 내 종북주의자들의 존재에 대해서 알 수 있었고, PD계와 NL계의 실체에 대해서도 알 수 있었다. 그래서 모 박사님이 올리신 통진당 사태 관련 글이 있으면 항상 댓글을 남긴다. 방금 전에도 모 박사님의 페이스북 링크에 댓글을 달았는데 북한 인권, 3대 세습 체제 그리고 북침과 남침에 대한 질문을 의도적으로 회피하는 종북주의자들의 태도에 비판하는 입장을 취한 글이었다.

 

나는 박사님의 글에 동의하는 마음으로 댓글을 달았는데... 아뿔싸..!  댓글에 용어를 잘못 쓰는 큰 실수를 하고 말았다.

 

내가 페이스북에 남겼던 문제의 댓글 내용은 다음과 같다.

 

 "북한 인권, 북침 문제를 회피한다는 것 자체가 잘못된 이념에 사로잡힌 전형적인 이데올로그입니다. 특히나 북침에 대한 명백한 증거가 있는데도 말입니다.

 

 

자, 이 문장에서 내가 무슨 실수를 했는지 알 수 있겠는가.

 

나는 종북주의자를 비판하는 입장을 담은 내용의 댓글을 남겼는데 나도 모르게 그만 '북침'이라는 용어를 쓰고 말았다. 그렇다. '북침'은 남한이 북한을 침략한다는 의미의 단어이다. 종북주의자를 비판하는 태도의 입장이라면 '북침'이 아니라 '남침'으로 써야한다. '남침'은 '북침'과 반대로 북한이 남한을 침략하는 것이다.

 

이것은 단순한 '실수'라기보다는 내가 용어의 의미를 정확하게 알지 못한 오류에서 비롯된 것이다. 다행히도 이 댓글을 단 지 5분 뒤에 모 박사님께서 답글로 나의 댓글 내용이 잘못되었음을 지적했다. 확인한 후, 잘못 쓴 내용의 댓굴을 삭제하지 않았다. 나의 실수를 그대로 인정한 것이다. 그리고 실수를 인정하는 내용의 댓글을 달았다.

 

 " 제가 단어의 의미를 제대로 알지 못해서 잘못 쓰고 말았네요. 실수를 통해서 단어의 정확한 의미에 대해서 배웁니다. "



오늘 실수를 통해서 문득 느낀게 과연 나 같은 젊은 세대들이 '남침'과 '북침'의 의미를 제대로 알고 있으며 두 단어를 제대로 구분하고 있는지 궁금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염려된다.

 

어느 설문조사에 의하면 전국 초, 중고생의 50% 절반이 6.25 전쟁이 발발하는 연도를 정확하게 모르는 것으로 조사되었다. 6.25 전쟁은 1950년에 발발되었다. 이뿐만 아니라 어떤 이는 6.25 전쟁이 북한의 침략이라는 사실을 모를뿐더러 심지어 남한이 먼저 북한을 침략한 걸로 알고 있다. 엄밀히 말하자면 6.25 전쟁은 소련의 스탈린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은 북한의 침략이며 이는 국제법상으로 불법적인 '남침'인 것이다.

오늘 실수를 통해서 용어의 의미에 대해서 다시 한 번 제대로 배우게 되었다. 대한민국 사람이라면 꼭 알아야 할 사실을 모르고 있다거나 나처럼 오류를 범하는 사람들이 더 이상 나오지 않기를 바란다. 잘못된 오류의 역사를 알고 있어서는 안 된다. 특히 요즘 같이 국가의 정체성을 왜곡하고 이념에 사로잡힌 채 사회을 호도하는 자들이 판치는 세상에서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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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alogue du vent et de la mer" from La Mer by Claude Debussy
NBC Symphony Orchestra
Arturo Toscanini, conductor
New York 13.IV.1940

 

 

 

 

 

 

 

 

 

 

 

 

 

 

 

 

 

 

 

 

 

 

 

 

 

문득 궁금중이 생겼다. 간혹 책, 그러니깐 시집을 읽다가 별 내용도 아닌 시구를 보는 순간, 이것과 연상되는 음악의 멜로디가 특정 그림의 이미작가 떠오르는 적이 있으신지..?

 

종종 시집을 읽다보면 정말 멋지고 인상 깊은 시구를 접하게 되는 것도 독서의 소소한 기쁜 일이지만 단 몇 줄의 구절 덕분에 잠시 세월의 망각 속에 잊혀지고 있었던 음악의 멜로디나 그림이 떠오른다면 그 기쁨은 더욱 배가 될 것이다. 프루스트의 소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에서 주인공마르셀이 아무 생각 없이 마들렌을 맛 보는 순간 감미로운 행복감에 엄습되는 것처럼 말이다.

 

분명 현재 읽고 있는 시의 문장과 갑작스레 떠올린 과거에 대한 기억의 존재들(좋아했던 음악이나 그림들)과는 연관성이 없어도 시집이라는 매게체를 통해서 또 하나의 익숙하면서도 신비스러운 추억을 재회하게 된다. 정말 보고 싶은 친구가 있었는데 뜻밖의 장소에서 만나게 되면 너무나도 반가우면서도 그를 떠나보내기가 싫을 때가 있다. 추억 속의 재회도 마찬가지다. 우연하게 찾아온 추억이라는 정겨운 손님을 그냥 쉽게 떠나보낸다는 것은 너무나도 아쉬운 일이다.  

 

 

 

 

 

 

 

 

 

 

 

 

 

 

 

 

 

 

 

 

 

 

 

 

 귀스타브 쿠르베 「파도」1869년

 

 

 

 1


 바다가 감당할 길 없는 불길이라는 걸

 예전엔 물랐었다.

 열광의 도가니요

 광기의 샘이라는 걸 -

 

 

 아마 수평선 때문일 것이다

 그 불타는 무한

 불타는 그 한숨 때문일 것이다

 

 

 저 한없이 열린 공간을

 감당할 생물은 없다

 거대한 용광로의 열기에

 나도 막막히 달아오를 뿐.

 

 

 

 - 정현종 「바다의 열병(熱病)」중에서 -

 

 

 

 

정현종의 「바다의 열병(熱病)」은 총 2부로 구성된 짧은 시다. 특히 이 시의 1부에 해당하는 문장들을 보는 순간, '바다'의 푸른 이미지가 아니라 '바다'가 만들어 내는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딱 시의 문장들을 보는 순간, 클로드 드뷔시의 [바다]의 멜로디가 생각났다. 신기하게도 멜로디는 정확하게 무엇인지 기억은 안 났지만 문장 속 단어들을 보는 순간, 그냥 드뷔시의 음악이 생각났다.  '감당할 길 없는 불길' , '열광의 도가니', '열광의 샘' , '불타는 무한' . 

 

정말 오랜만에 드뷔시의 [바다]를 인터넷에 검색해서 들어보게 되었는데 3악장인 '바람과 바다의 대화'와 절묘하게 어울렸다. 선율의 도입부에서부터 불길함이 감도는 팀파니의 트레몰로는 이제 막 바다 위에 몰려오는 거대한 바람의 등장을 예고하고 있다. 바람에 의해 파도가 크게 출렁이듯이 음악은 후반부에 진행될수록 점점 '열광의 도가니' 속으로 빠지게 된다. 아니, 드뷔시의 음악을 처음 듣는 사람에게는 이 멜로디가 '열광'이라기보다는 '불길함이 감도는 자연의 광기'에 가까우리라.

 

드뷔시는 프랑스의 인상주의 음악을 대표하는 근대 음악가 중의 한 사람이다. 치 인상주의 화가들이 빛이 대상에 비쳐졌을 때의 순간적인 인상을 화면에 포착한 것처럼 대상을 보고 느낀 인상을 음표로 옮겼다. 그래서 그의 음악은 듣는 순간 자연스레 이미지가 연상돼 감상자들을 음악과 미술의 이중적 유희의 세계에 들어서게 된다. 하지만 인간의 감성은 서로 상반된 이미지의 대상을 통해서 공감각적으로 연계한다는 것은 보통 쉬운 일이 아니다. 그래서 그 당시 정형적이면서도 조화로운 선율의 입맛에 길들인 사람들에게는 드뷔시의 음악은  낯설게 느껴지는 '소음'에 가까웠을 것이다. 아니, 그가 만들어 낸 '소음'이 단순히 귀로만 듣어서는 안 되며 음감의 공간을 뛰어넘어 또 다른 이미지가 연상되는 시각적 공간을 발견하지 못했다. 그저 '음악'만 듣고 자란 사람들은 자신의 귀에 들려오는 멜로디를 '음악' 그 자체로 들으려고만 했다.

 

나는 지금까지 살면서 바다에 많이 가보지도 못한 편이다. 비록 많은 횟수는 아니지만 두 세 번 직접 본 '바다'에 대한 이미지는 지금도 내 머릿속에 남아 있다. 누군가는 바다 한 두 번 가는 걸 가지고 '바다'가 떠올리고 느낄 수 있냐고 반문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몰라서 그렇지 인간이 한 번 경험에 의해서 형성하게 된 기억은 오랫도안 지속될수록 강력하다. 망각의 어둠 속에 남아 있던 기억의 잔상들을 우연찮게 떠올리는 이유가 그런 것이다. 남자는 실패한 첫사랑을 잊지 못하며 여자는 자신에게 실연의 상처를 안겨 준 못난 사랑을 마음 한 구석에 간직하고 있는 것 또한 경험에 의한 기억이 우리의 삶에 작용하고 있는 보이지 않는 힘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그리고 이에 덧붙여서 [바다]에 대한 숨겨진 에피소드를 소개하자면 정작 드뷔시는 바다에 가본 적이 딱 한 번뿐이라는 점이다. 그의 유일한 경험은 영국에 갈 때 도버해협을 건넌 아주 짧은 시간에 불과했을 뿐이었다.
그 짧은 경험에 의한 기억만 가지고 3악장으로 이루어진 위대한 음악이 탄생되었던 것이다.

 

오늘 덕분에 정현종 시인의 시 구절 덕분에 내가 좋아했던 드뷔시의 음악을 오랜만에 감상할 수 있어서 좋았다. 나른한 매너리즘이 감도는 주말에 드뷔시의 푸른 열기에 달아오를 수 있다. '광기의 불꽃'이 아닌 '정열의 불꽃' 속에서 10년 전의 클래식 음악에 대한 열정을 기억의 숯더미 속에서 찾게 되었다.

 

이런 멋진 시를 만들어주신 정현종 시인님. 정말 고맙습니다.

 

 

... 그리고 이번 경험을 통해서 얻은 또 하나의 결론. 나는 '인상주의자'에 가깝다는 사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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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5-28 17:4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2-05-28 21:43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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