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용석 전 의원은 '여 아나운서가 되려면 다 줘야 한다'는 말 한 마디 때문에 곤혹을 치르게 되었고, 김문수 전 경기도지사는 '춘향전은 변 사또는 춘향이 따먹으려는 이야기'라고 해서 한 때 네티즌들은 그를 '따문수'라고 비아냥거렸다. 이 두 정치인의 발언은 그 해 네티즌들이 선정한 정치인 최고의 망언이 되었다.
좀 이른 감 있지만 아무래도 올해 2012년 정치인의 최고 망언으로는 이석기 의원의 '애국가 부정 발언'이 아닐까 싶다. 지금까지도 네이버 검색어순위에 당당히 상위권에 자신의 이름 석자가 남아 있다. 그리고 이번 발언을 통해서 이석기 의원은 또 다시 말도 안 되는 궤변을 주장했다. 이 의원이 주장하고 있는 '국가(國歌)' 부정 발언 속에는 그동안 자신과 김재연 의원 그리고 통진당 구당권파를 향한 여당 및 국민들의 '종북주의' 비난 논란을 어떻게든 잠재워보려는 의도가 있어 보인다.
일부 여론은 이 의원의 발언 의도를 애국가를 부르지 않는 통진당 내 행사절차에서 비롯된다고 보고 있는데 여기서 이 의원이 말하고 있는 '국가(國歌) 부정론'은 흡사 무정부주의자(아나키스트)들이 주장하는 논리와 흡사해보인다. 말 그대로 무정부주의자들은 국가(國家)의 존재 및 정당성, 국가 권력, 제도화된 사회적 권위 자체를 부정하는 급진적인 사상을 주장했다.
이들은 국가 및 사유재산의 존재는 개인을 억압하고 착취했다고 보고 있다. 어떻게 보면 무정부주의자들의 사상은 좌파 성향의 사회주의 사상과 언뜻 비슷해보일 수도 있지만 엄연히 내용면에서 따져 보면 이 두 급진적 사상은 서로 차이점이 있다. 아니. 오히려 무정부주의자들은 사회주의 사상을 비판하기도 했다. 국가가 생산수단을 소유하고 계획 경제를 강조하는 사회주의자들의 사상 또한 국가 만들어내는 권위에 불과하며 이러한 제도 역시 개인을 억압할 수 있다고 봤다. 사상적 일례로 무정부주의의 대표적인 사상가인 미하일 바쿠닌은 그 당시 유럽에서 유행하던 마르크스의 사상을 비판하면서 무정부주의적 사회주의를 주장했다.
그렇다면 과거에 NL계의 주체사상에 심취했던 이 의원이 갑자기 아나키스트로 사상 전향을 한 것일까? 그의 전력을 봐서는 사상 전향은 참으로 생뚱맞은 일이다. 이번에 논란의 이슈가 된 이 의원의 발언 배경에는 자신을 향한 '종북주의' 논란의 화살을 피하기 위해서 잠시나마 19세기 유럽에 유행했던 아나키스트의 논리를 방패삼아 여론을 가라앉혀보려는 의도가 담겨져 있다.
하지만 이번에 아나키즘적 논리를 동원한 이 의원의 발언은 논리성 없는 궤변이 되고 말았다. 일단 먼저 무정부주의, 즉 아나키즘은 19세기 근대 유럽에서 유행했던 '현 시대의 흐름과는 전혀 맞지 않은 구시대적 사상이다. 현실성 전혀 없는 이데올로기의 허상에 사로잡힌 사람답게 이번에는 사회주의 이데올로기와는 조금 다르면서도 급진적인 아나키즘에서 나올 법한 논리를 근거로 들고 나온 것이다.
그리고 그가 진심으로 '아나키스트''로 사상 전향했다고 가정해보자. 그렇다면 그는 지금 당장 국회의원직을 사퇴해야 한다. 대한민국 헌법 제46조에는 '국회의원은 국가이익을 우선하여 양심에 따라 직무를 행한다'라고 명시되어 있다. 그렇다면 국가 정당성을 부정하는 '아나키스트' 이 의원은 '국가이익을 우선하는 직무'를 행할 필요가 없어지게 된다. '국가' 존재 자체를 부정하는데 굳이 그가 국가이익을 위해서 수고스럽게 일할 필요가 없다.
결국, 오늘 이 의원, 아니 아나키스트 이석기의 '국가 부정' 발언은 본인을 향한 비난 여론을 더욱 점화시켰을 뿐만 아니라 구시대적 사상을 들먹이면서 본인의 의원직 자체를 스스로 부정해버리는 결과를 입증해줬다.
북한 정부의 존재를 공식적으로 부정하지 않은 채 회피하고 언제나 자신의 입장이 불리하게 처하면 '종미(從美)'를 언급하여 반박하는 그의 행보를 살펴보면 문제투성인데다가 관념적 허상에 불과한 주체사상에 대한 집착의 잔상이 여전히 남아 있다. 그리고 이번에는 구시대적인 사상이나 다름없는 아나키즘과 유사한 논리를 근거삼아 해괴망측한 국가관을 만천하에 드러내 공개적으로 망신살 뻗쳤다. 내가 보기에는 이석기 의원은 한참 유행이 지나간 구시대적 이데올로기를 집착에 가까울 정도로 좋아해보인다. 그의 모습은 흡사 실생활에서 전혀 필요 없는 값어치 없는 옛날 유물 수집에 집착하는 유물수집광처럼 느껴진다. 차라리 이번 발언을 기회 삼아 '이석기'라는 이름 대신에 '구석기'(舊石器)라고 개명하기를 권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