움베르토 에코의 소설 《장미의 이름》에 보면 주인공 아드소가 수도원 장서관 내부에 놀라는 장면이 나온다. 거대한 미로로 묘사된 2차원의 장서관 내부는 낭만주의 시대의 대표적 화가이자 건축가인 피라네시의 스케치를 재현한 듯 수많은 계단과 다리로 복잡하게 얽힌 3차원의 비밀스러운 공간으로 구현되어 있었다. 그 기이한 구조를 기억하는 독자들은 예의 장서관이라는 대상에서 대단히 폐쇄적이며 종교적 신비감과 더불어 뭔지 모를 중압감에 휩싸인 그 시대의 지식에 대한 태도를 엿볼 수 있다.
그런데 장서관 풍경만 본다고 해서 중세의 텁텁한 공기를 제대로 느낄 수 없다. 이건 소설 일부에 불과하다. 에코는 《장미의 이름》을 완성하기까지 10여 년의 세월을 보냈다. 중세의 시대적 배경을 더욱 생생하게 표현하기 위해 종교적 지식을 쌓았으며 의학 공부도 새롭게 시작했다고 한다. 중세 철학은 말할 것도 없고 당시 수사도들의 의상을 묘사하기 위해 몇 달간을 도서관에 파묻혀 지냈다. 《장미의 이름》은 중세 역사에 해박한 에코가 자신의 능력을 유감없이 발휘한 소설이다. 중세를 생생하게 복원한 《장미의 이름》을 읽어 보지 않고, 시공사 출판사의 ‘에코의 중세 컬렉션’에 눈독을 들이는 독자들에게 당부한다. 두꺼운 양의 책을 소화해낼 자신이 없으면, 《장미의 이름》 독서부터 먼저 시작하는 것이 좋다. 이건 에코를 위한 예의다. 왜 쉬운 길을 내버려두고 높이 솟아오른 산에 올라가려고만 하는가.
《장미의 이름》 1권의 ‘6시과’ 이야기는 윌리엄 수도사가 프란체스코회의 우베르티노 수도사를 만나는 장면이 핵심이다. 이전 장면은 아드소의 서술로 되어 있다. 윌리엄과 동행한 아드소는 우베르티노를 만나러 가는 도중에 교회 문전과 기둥 장식을 만난다. 아드소는 교회 장식물을 관찰하듯이 구경하면서 연신 감탄한다. 속독하는 독자들은 이 장면을 그냥 훌쩍 넘겼을 것이다. 사실 나도 예전에 이 장면을 주마간산으로 보기만 했다. 하지만 에코가 중세에 낯선 독자들을 엿 먹이려고, 혹은 일부러 책의 분량을 늘리려고 채워 넣은 것이 아니다. 즉, 교회 장식에 대한 아드소의 서술은 이 소설의 불필요한 장면이 절대로 아니다. 중세 기독교 도상학을 이해해야만 아드소처럼 중세를 오감으로 느낄 수 있다.
아드소는 사자 형상이 새겨진 기둥의 인각을 발견한다. 그리고 사자 인각에 대한 인상을 서술하기 시작한다.
내 눈은 노인들의 발치에 장미꽃처럼 피어난 창들의 균형 잡힌 리듬에 따라 움직였고, 박공의 삼각면을 떠받치고 있는 중앙 기둥에 인각된 형상에 이르렀다. 무엇이었을까? 걷잡을 수 없는 분노에 사로잡힌 듯, 한 덩어리로 어우러진 세 쌍의 사자가 전하려는 상징적 의미는 도대체 무엇이었을까? 이들 사자는 뒷발을 대지에 박고 앞발로는 동료의 곱슬곱슬한 갈기를 그려쥔 채 이빨을 드러내고 위협적으로 으르렁거리는 형태로 덩굴 더미에 휩싸여 기둥의 몸체에 붙어 있었다. 이들 사자의 인각은, 악마적인 사자의 본성을 순치하여 보다 나은 존재로 변용시키는 상징적 의미를 담고 있는 것 같았다.
(2002년 구판 《장미의 이름》 1권 89쪽)
중세 사람들은 자연을 창조주가 만들어 낸 피조물로 여겼다. 그래서 중세 기독교도들은 동물이나 식물의 습성에 창조주가 부여한 의미가 숨겨져 있다고 해석했다. 이러한 내용은 기독교적 상징으로 체계화되었고, 신앙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근거가 되었다. 이렇듯 아드소 역시 사자의 본성에서 종교적 의미를 찾으려고 탐색한다. 하지만 각각의 종파마다 자연 대상을 보는 시각에서 상반된 차이가 있었다. 전국 곳곳에 혼재된 기독교 상징들을 하나로 통일시켜 줄 ‘박식한 자’가 있어야 했다.
중세 사람들이 보고, 말했던 수많은 상징적 의미들을 좀 더 체계적으로 집대성한 책이 바로 《피지올로구스(Physiologus)》다. 피지올로구스는 ‘자연에 대해 박식한 자’라는 뜻을 가진 라틴어다. 이 말은 원래 익명의 저자를 뜻하는 이름이었다. 판본이 수백 년 동안 보급되면서부터 책의 이름으로도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현존한 것 중에서 가장 오래된 피지올로구스는 5세기 무렵 에티오피아에 나온 판본이다.
기독교들은 피지올로구스를 통해서 하느님의 섭리에 어긋나는 해로운 자연의 피조물을 분류하여 경계했다. 이들은 악마에 가까운 존재로 알려지게 된다. 아드소는 악마의 짐승들이 나열된 장식을 구경하게 되는데, 마치 무서운 환영을 목격한 것처럼 공포심을 느낀다.
악마의 우화집에 등장하는 모든 짐승들이 추기경 회의를 위해 모인 듯, 옥좌를 향해 영광의 노래(자신들에게는 패배를 뜻하는)를 부르며 옥좌를 보호하고 있다. 판 무리, 양성 동물들, 손가락이 여섯인 축생들, 세이네레스 무리, 켄타우로스 무리, 고르곤 세 자매, 하르피아이, 인쿠부스, 용어(龍漁) 무리, 미노타우로스, 스라소니, 표범, 키마이라, 콧구멍으로 불을 뿜는 카이노팔레스, 악어, 꼬리가 여럿이고 몸에 털이 난 도마뱀 무리, 도롱뇽, 뿔 달린 살모사, 거북이, 구렁이, 등에 이빨이 나 있는 양두수(兩頭數), 하이에나, 수달, 까마귀, 톱니 뿔이 달린 물 파리, 개구리, 그리폰, 원숭이, 루크로타, 만티코라, 독수리, 파란드로스, 족제비, 용, 후투티, 올빼미, 바실리스크, 최면충(催眠蟲), 긴귀곰, 지네, 전갈, 도마뱀, 고래, 두더지, 올빼미도마뱀, 쌍동(雙胴) 오징어, 디프사스, 녹색 도마뱀, 방어, 문어, 곰치, 바다거북. 이 모든 동물의 무리가 한 동아리가 되어 득실거리고 있었다.
(2002년 구판 《장미의 이름》 1권 91~92쪽)
이름이 생소한 짐승의 정체가 궁금한 분은 《장미의 이름》 1권의 주석을 참고하면 된다. 악마의 우화집에는 우리에게 친숙한 동물들이 나온다. 도마뱀, 올빼미, 독수리, 표범, 고래, 족제비, 수달, 까마귀, 개구리 등이 있다. 야행성 동물인 올빼미는 흔히 악의 상징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피지올로구스는 어두운 밤에 사는 올빼미의 습성을 어둠 속에서 헤매는 신자들을 인도하는 예수의 모습으로 이해했다. 표범은 잔꾀가 많은 사악한 짐승으로 알려졌지만, 피지올로구스는 표범의 용맹함을 예수의 상징으로 삼았다. 고래는 순진한 사람들을 유혹하는 향기를 내뿜는 사악한 괴물로 봤다. 개구리는 탐욕에 환장하면서 뛰어드는 타락한 인간을 상징했다. 동양에서는 원숭이를 신성한 동물로 여겼지만, 서양에서는 거의 악마로 취급받았다. 피지올로구스는 원숭이를 마귀가 하는 일을 똑같이 하는 존재로 설명했다. 이처럼 《장미의 이름》에 언급되는 동물들과 피지올로구스의 도상학을 같이 비교해보면 상징 해석의 차이점을 확인할 수 있다.

《장미의 이름》뿐만 아니라 중세를 배경으로 한 소설 혹은 중세 문학을 읽을 때 기본적인 도상학 지식을 알고 있으면 본문에 나오는 종교적 상징들을 수월하게 이해할 수 있다. 《장미의 이름》 속에는 중세 세계를 이해할 수 있는 중요한 내용이 암호처럼 숨겨져 있다. 우린 소설이 어렵다는 이유만으로 지금까지 에코의 암호를 발견하지 못한 채 ‘다 읽은 척’ 자랑했다. 줄거리는 다 알고 있어도, 에코가 텍스트 속에 숨겨놓은 상징들을 반 정도 이해하지 못했다. 《장미의 이름》은 한 번 다 읽고 마는 소설이 절대로 아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