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도직입으로 여러분들에게 묻습니다. 서론, 본론 따윈 제쳐버리고 도대체가 결론부터 짚어 가면 서평이 뭡니까? (거리의 시인들이라는 가수의 ‘음악이 뭔데’ 첫 노랫말을 잠깐 빌렸습니다)
서평을 어떻게 써야 한다고 생각하십니까? 최근에 좋은 서평이 무엇인지 밝힌 로쟈님의 인터뷰 내용이 화제가 되었습니다. 어떤 내용인지 여기서 길게 설명할 필요는 없겠습니다만, 혹시 모르는 분들을 위해서 요약해서 설명하면 이렇습니다. 로쟈님은 서평이란 객관적인 글이다, 어떤 책을 읽게끔 하도록 쓰거나 읽은 척할 수 있게 해주는 글이야말로 좋은 서평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로쟈님은 서평과 독후감과의 차이점을 예시로 들면서 서평의 의미를 더욱 구체적으로 강조했습니다. 서평이 다른 사람을 위해 쓴 글이라면, 독후감은 나 자신을 위해 쓴 글입니다. 결국, 서평은 책에 대한 품평이므로 감상 위주의 독후감과 다르다는 거죠.
로쟈님의 글을 읽고 난 뒤에 저는 자신에게 물어봤습니다. 너는 지금까지 제대로 쓴 서평이 한 편이라도 있느냐고 말입니다. 비록 짧은 기간이지만, 지난 주말 이틀 내내 이 질문의 답변을 생각해봤습니다. 오랜 생각 끝에 저는 5년 동안 서평이 아니라 감상문을 쭉 써왔다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제가 알라딘 블로그에 글을 남기게 된 진짜 목적은 지금은 사라진 ‘Thanks to 적립금’을 얻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일단 글을 많이 쓰면, 쏠쏠하게 적립금을 얻을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생각보다 적립금을 많이 받지 못했습니다. 처음에 저는 제 글이 형편없어서 관심이 없는 줄 알았습니다. 사실 중학교 졸업 이후부터 군 복무 전역까지 글을 써본 기회가 없었습니다. 그래도 나름 잘 쓴 티를 내려고 글을 열심히 썼는데, 며칠 뒤에 썼던 글을 다시 읽으니까 엉망진창이었습니다. 문장이 길었습니다. 주제에 맞지 않는 엉뚱한 내용으로 덧칠된 글이 많았습니다. 좋은 글의 기본 조건인 글의 통일성을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부족한 점을 고치려고 글 한 번 쓰고 나면 퇴고를 여러 번 했습니다. 글 쓰는 시간이 오래 걸려도 그 습관을 항상 유지하려고 노력했습니다.
그렇게 5개월 동안 틈나는 대로 글을 썼습니다. 2010년 5월 8일에 첫 서평을 올리기 시작한 지 6개월이 지난 후에 처음으로 제 글이 알라딘 ‘이달의 당선작’으로 선정되었습니다. 기분이 좋았습니다. 기쁜 경험을 하고 나서부터 글 쓰는 일에 재미가 붙고, 자신감이 향상되었습니다. 출판사 서평 이벤트에 여러 번 당첨되는 등 노력의 결실들이 알알이 맺혔습니다. 점점 좋은 반응을 얻게 되자 자꾸 욕심이 생겼습니다. ‘이달의 당선작’에 선정 받으려고 글을 열심히 썼던 거죠. 솔직히 말하자면,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특히 서평 이벤트에 글을 응모하면 평소보다 ‘작문 전투력’이 향상됩니다. 남들에게 잘 쓴 글로 보이도록 신경을 많이 씁니다. 저는 보상을 얻기 위한 목적으로 감상문을 썼습니다. 그러니까 서평이라는 이름으로 감상문을 쓴 것이죠. 책의 주제나 줄거리 언급이 줄어들고 멋진 문장이 곁들인 독창적인 감상 중심으로 글을 썼습니다. 현재까지도 ‘알라딘 이달의 선정작’ 선정 과정에 이의를 제기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어떻게 쓰면 적립금을 받을 만한 좋은 글이 되는지 저는 정확히 잘 모르겠습니다. 이건 개인적인 견해입니다. 멋들어진 문장으로 느낌을 풀어낸 감상문이 책 내용만 요약한 서평보다 선정될 확률이 높습니다. 감상문은 읽어보면 재미있습니다. 그리고 감상문 작성자의 생각에 동의하거나 공감할 수 있습니다. 감상문의 독자는 그 글에 ‘좋아요’를 눌러줍니다. ‘좋아요’ 수도 무시할 수 없는 선정 요소입니다. 그 글에 대한 반응이 좋다는 것을 의미하니까요. 물론, ‘좋아요’ 수가 적은 글도 ‘이달의 선정작’이 되는 사례가 있습니다. 그리고 ‘좋아요’ 수가 많은 글이라서 무조건 선정된다는 보장이 없습니다. 당선작 독자선정 위원들의 반응이 우선적으로 중요하니까요.
쓸데없이 과거 자랑을 잔뜩 늘어놓았군요. 정신 차리고 본론으로 돌아오겠습니다. 적립금이나 상품에 눈이 멀어 감상문을 썼던 과거를 반성하고, 이제부터 다른 사람들을 위한 서평을 쓰기로 결심했습니다. 생각보다 어려운 일이 될 것 같습니다. 작문 스타일을 바꾸는 게 쉽지 않거든요.
서평을 닭고기 음식으로 비유하면, 먹음직스러운 기름기를 쏙 뺀 텁텁한 맛의 닭고기 음식이라고 생각합니다. 여기서 ‘먹음직스러운 기름기’는 글 작성자의 개성 있는 문체로 이루어진 문장들과 독자의 눈길을 사로잡는 간결한 인용문입니다. 이런 기름기는 글을 한결 부드럽게 해줍닌다. 저도 그렇고 여기 알라딘 블로그에 글을 남기는 분들 대다수는 이 ‘먹음직스러운 기름기’를 좋아합니다. 글 읽는 독자는 자신의 입맛에 맞은 기름기가 있는 글을 보고 싶어 합니다. 저 같은 글 쓰는 독자는 남들의 입맛에 맞는 기름기를 칠하려고 무던히 애를 씁니다. 그런데 기름기만 너무 많으면 건강에 좋지 않듯이, 기름기가 너무 많은 감상문은 서평의 제기능을 하지 못합니다.
저만 그렇게 생각한 걸까요? 요즘 서평을 보면 인용문이 지나치게 많다는 걸 느낍니다. 책 속에 좋은 문장을 소개하는 것은 좋습니다. 그러나 책 소개와 상관없이 자신이 좋아하는 문장을 다섯 개 이상 채워진 글은 서평이라고 보기 어렵습니다. 서평 작성 시에 인용 문장을 넣어도 됩니다. 저도 초창기에 알라딘 블로그에 감상문을 썼을 때 인용문을 많이 넣는 버릇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런 글을 다시 읽어보면 인용문만 먼저 보이고, 작성자 본연의 문체의 비중이 줄어듭니다. 굳이 인용문을 써야 한다면 자신만의 문장으로 직접 표현하는 연습이 필요합니다. 제 입으로 말하기는 그렇지만, 저는 그런 문제점을 개선했습니다. 지금 알라딘 블로그에 ‘좋아요’ 수를 많이 받는 글 대부분은 감상문에 가깝습니다. 북플이 점점 활성화될수록 감상문을 읽고 싶은 독자가 많아질 거로 예상합니다. 그래서 저는 앞으로 서평의 전망을 회의적으로 봅니다. 전문서평가가 아닌 일반 독자의 서평이 다른 독자들의 관심에서 멀어지고, 책 구매 결정에 크게 영향을 미치지 못할 겁니다.
그래서 저는 로쟈님이 언급한 서평의 정의가 꼭 지켜야 할 정석으로 보지 않습니다. 독자를 위한 서평에서도 작성자의 감상이 약간 필요합니다. 여기서 제가 말하는 감상은 책에 대한 평가에 중점을 둔 것입니다. 국어사전에 ‘감상’이라는 단어를 찾아보면 ‘작품을 이해하고 즐기고 평가’한다고 적혀 있습니다. 그러면 책에 대한 평가 또한 감상의 범주에 포함될 수 있습니다. 좀 더 쉽게 설명하면, 책의 장단점을 가려내는 내용이 서평에서 차지하는 감상의 범위입니다. 예를 들어 책의 단점을 밝혀내어 독자에게 읽지 말라고 알려줘야 합니다. 책의 특별한 장점을 강조하면서 특정 독자에게 추천할 수도 있습니다. 이런 내용들은 작성자의 개인적인 생각이 아니면 절대로 쓸 수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책을 평가하는 작성자의 자세도 감상입니다. 저는 ‘책을 이해하고 즐기고 평가하는’ 글이 서평이라고 생각합니다. 감상문은 ‘책을 이해하고 즐기는’ 글입니다. 여러분들도 자신이 쓰고 있는 글이 서평인지, 감상문인지 한번쯤 생각해보는 것이 좋습니다.
제가 생각하는 서평의 의미가 이해 안 되는 분들을 위해 특별히 블로거 네 분을 소개하면서 글을 마치겠습니다. 이 분들이야말로 ‘책을 이해하고 즐기고 평가하는’ 서평을 열심히 씁니다.
파워리뷰어, 흔적, 북다이제스터, 표맥(標麥)
신기하게도 이 네 분이 쓰고 있는 서평들은 전체적으로 무미건조합니다. 재미있는 점이라고 하나도 없습니다. 사실 제 글도 무미건조하고 딱딱한 건 사실입니다. 그래도 저는 이분들의 서평을 선호합니다. 지금도 독자에게 관심을 줄 만한 서평을 쓰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파워리뷰어님은 중앙일보 J 플러스에 서평을 기고하고 있고요, 파워리뷰어님의 서평은 페이스북에 올리기에 알맞은 분량이라서 읽는 데 부담이 없습니다. 알라딘에 흔적님처럼 비평에 가까운 서평을 쓰는 분이 많지 않습니다. 흔적님은 독야청청하게 글을 쓰시고 계십니다. 분량이 길다는 점이 아쉽지만, 인문서적, 특히 철학 분야의 책을 깊이 있게 분석하면서도 개인적 감상에 치우치지 않는 필력이 장점입니다. 여러분들의 생각과 차이가 있겠지만, 제가 보기에 북다이제스터님, 표맥님의 서평은 로쟈님의 서평 형식과 거의 가깝습니다. 이 네 분들이 서평을 잘 쓴다고 해서 제가 이분들의 작문 실력이 뛰어나다는 걸 강조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그리고 서평이 잘 쓴 글이고, 감상문은 못 쓴 글이라는 잘못된 흑백 논리를 심으려는 의도도 전혀 없습니다. 감상문이 아닌 진짜 서평을 쓰고 있는 분들을 알리고 싶었을 뿐입니다. 이분들이 ‘이달의 당선작’으로 많이 뽑혔으면 좋겠습니다. 저도 이분들만큼 열심히 서평을 쓰도록 노력해야겠습니다.
※ 이 글은 지금까지 알라딘에서 봐왔던 이웃들의 글에 대한 소견을 정리한 겁니다. 자칫하면 논쟁이 될 수 있는 민감한 부분을 날카로운 비판의 칼날을 세게 건드려봤습니다. 아마도 제 글을 보고 마음속으로 ‘감히 너 따위 놈이 함부로 남의 글에 대해서 평가하느냐’고 불만을 가질 겁니다. 혹은 제가 생각하는 서평의 의미에 반감을 품는 분도 있을 겁니다.
알라딘 서재와 북플은 이웃들 간의 친화적인 소통이 가능한 청정 지역으로 알려졌습니다. 하지만 그런 이유로 건전한 비판을 의도적으로 피하거나 외면하는 자세를 가지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특정 상대방을 악의적으로 비난하려고 이 글을 쓴 것이 아닙니다. 이 글의 첫 문장에 나오듯이 여러분들이 생각하는 서평의 의미를 알고 싶어서 일부러 도발적인 자세로 임하면서 글을 써봤습니다. 그래야 여러분들의 반응을 단번에 끌어들일 수 있으니까요.
서평의 의미는 사람마다 다릅니다. 그러므로 이 문제에 정답은 없습니다. 끙끙 숨기지 말고 속 시원하게 이 자리에 털어봅시다. 인식의 차이를 알아보자는 겁니다. 서평에 관한 제 입장에 비판을 해도 좋고요, 여러분들만의 의견을 댓글로 남겨도 좋습니다. 참고로 제 블로그에는 비로그인으로 댓글을 남길 수 없습니다. 글을 읽어보지도 않고, ‘좋아요’만 누르고 가는 일이 없기를 바랍니다. 저를 비판한다고 해서 ‘친구 관계’를 거절당하는 일은 없습니다.
상대방을 깔보거나 인신공격하는 댓글을 남기는 분은 일차적으로 경고를 할 겁니다. 그런데도 공격적인 태도로 일관한다면, 문제 되는 댓글을 삭제하겠습니다. 만일에 댓글 토론이 제가 말릴 수 없을 정도로 심각한 토론 전쟁으로 치닫으면, 비공개로 전환하거나 삭제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