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집의 즐거움 - 평범한 사람들의 특별한 수집 이야기
박균호 지음 / 두리반 / 201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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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향입니다. 존중해주세요.” 한때 이런 말이 유행인 적이 있었다. 줄임말로 하면 ‘취존’이라고도 한다. ‘취향’의 의미가 궁금해서 국어사전을 찾아본다. 사전적 의미는 이렇다. 하고 싶은 마음이 생기는 방향. 그런데 이 ‘취향’이라는 단어를 학문적으로 접근하면 의미가 조금 달라진다. 17세기 유럽에서 취향은 대상의 미적 가치를 이해하는 특별한 능력을 의미했다. 칸트는 취향을 아름다움을 판정하는 능력이라고 주장했다. 19세기에 들어서면서부터 취향의 의미에서 ‘미적 가치’라는 핵심 단어가 사라지게 되었다.

 

오늘날, ‘취향’은 일상 속에서 흔하게 사용하는 그저 그런 단어로 전락했다. 그렇지만 지금도 대상의 아름다움에 푹 빠져 취향에 따라 사는 이들이 있다. 우리는 그들을 ‘오덕후’라고 부른다. ‘오덕후’는 ‘오타쿠(おたく)’를 한국식으로 변형한 준말이다. 자기의 관심 분야에 몰입하고 심취하는 사람을 ‘오타쿠’라 부른다. 자기만족을 위해 관심 분야에 몰두하며 상당한 지식과 정보를 소유하거나 관심 대상을 수집한다. 그러나 너무 관심 분야에 푹 빠져 현실과 다소 동떨어진 사람으로 바라보는 부정적 시선은 여전하다. 한국에서 ‘오덕후’에 대한 인식은 일본에 비해 좋지 않은 편이다. 다 큰 어른이 애들이 볼법한 일본 애니메이션 캐릭터가 그려진 티셔츠를 입거나 캐릭터 관련 장난감을 사면 대부분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을 보인다. 그러나 다행히도 오덕후가 만화 애니메이션에 빠진 어른 아이라는 삐딱한 고정관념이 점점 줄어드는 추세다. 주위 사람들의 시선에 아랑곳하지 않고, 자신의 관심사를 늘 공유하려는 훌륭한 오덕후들이 존재했기에 가능하다. 특이한 취향을 가진 소수의 비주류로 취급받던 시절은 지나가고, 당당하게 대중문화의 한 축으로 자리 잡고 있다.

 

이제 물건을 수집하고 관련 정보를 공유하는 사람들에게 ‘오덕후’라는 단어 대신에 ‘수집가’라고 불러 보자. 흔히 ‘수집가’라면 값비싼 골동품을 모으는 사람으로 인식한다. 생각해보면 피규어를 모으는 사람도 엄연히 말하면 피규어 ‘수집가’다. 그런데 우리는 그들을 ‘피규어 오덕후’라고 말한다. ‘수집가’와 ‘오덕후’, 두 단어는 서로 의미는 같지만, 전자를 긍정적 의미로 사용하는 편이다. 그러니까 열심히 모아두면 나중에 돈이 될 만한 물건을 수집하는 사람을 ‘수집가’로 부르지만, 쓸데없는 물건을 모아두는 데 돈을 펑펑 쓰는 사람이 한심해서 ‘오덕후’라고 부른다. ‘수집’을 무조건 ‘돈’과 함께 연관 짓는 인식 탓에 평범한 수집품을 모으는 사람들의 열정이 무시당하기 쉽다. 그리고 수집가는 돈이 많아야 한다는 편견 또한 수집 능력을 낮춰 보게 만드는 원인이다. 그러나 수집가로 정평이 난 사람들을 실제로 만나보면 흡연과 음주를 줄이면서까지 구매비용을 마련한다.

 

양철로 만든 장난감을 가리키는 틴 토이(Tin toy)를 수집하는 누똥바 씨(닉네임)는 수집품을 가격으로 산정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그녀는 나름대로 고생하면서 완성한 틴 토이 컬렉션이 고작 자신의 조카를 위한 장난감으로 여기는 친척의 농담에 실망하기도 한다. 수집가의 열정을 모르는 사람들의 눈에는 수집품밖에 보이지 않는다. 그들은 남의 수집품을 ‘돈이 될 만한 것’ 또는 실용성 있는 물건으로만 생각한다. 《수집의 즐거움》에 소개되는 22명의 수집가들은 오직 재산 증식 목적으로 진귀한 물건을 모으지 않는다. 수집가는 남들보다 평범한 물건의 아름다움을 알아보고 감동할 줄 아는 특별한 안목을 가진 사람이다. 22명의 수집가는 칸트가 정의했던 진짜 ‘취향’을 가지고 있다. 조선의 공예를 사랑해서 공예품을 수집했던 일본의 미술평론가 야나기 무네요시의 말처럼 22명의 수집가의 가슴 속에는 ‘아름다운 무언가를 찾으려는 마음’이 가득하다.

 

 

 

 

 

 

김근영 씨는 코카콜라 로고와 패키지 디자인이 좋아서 코카콜라 병을 수집하고, ‘이상한 나라의 헌책방’을 운영하는 윤성근 씨는 앨리스 속에 실린 삽화에 매료되고 나서 나라별로 출간된 앨리스 책을 모으기 시작했다. 앤티크 용품 수집가이자 ‘앤지스 앤티크 갤러리 카페’ 대료 송앤지 씨(본명 송현미)는 파손된 수집품마저 멋있게 꾸밀 줄 안다. 파손된 커피잔 조각을 버리지 않고, 의자 위에 붙여서 하나의 멋진 모자이크 무늬가 있는 테이블로 만든다. 송앤지 씨는 수집품에 대한 애정이 누구보다도 넘치고, 파손된 수집품으로 새로운 아름다움을 만들어 내는 뛰어난 미적 안목을 가지고 있다.

 

칸트와 야나기 무네요시의 말에서 알 수 있듯이 인간은 본능적으로 아름다움을 추구한다. 예술욕이 소유욕과 결합하면 아름다움을 오랫동안 영유하고 싶은 수집의 열정이 생긴다. 수집가들은 모든 사람이 평범한 아름다움을 마음껏 감상할 수 있는 날이 오기를 고대하면서 지금도 수집품을 모으고 있다. 내가 ‘좋아하는’ 무엇을 함으로써 거기서 아름다움을 발견하고 알리는 것. 이것이야말로 진짜 ‘취향’이다. 이들의 수집 열정이 새로운 대중문화로 형성되는 과정은 기록되어 널리 알려져야 한다. 그래야 수집가의 취향을 존중해줄 수 있다. 수집가를 ‘오덕후’라고 비아냥거리는 당신에게 묻는다. 수집가를 함부로 무시하지 마라. 당신은 누구에게 한 번이라도 뜨거운 사람이었느냐.1) 아름다운 무언가를 찾고 싶은 뜨거운 열정을 지닌 수집가들에게 존경의 박수를!

 

 

 

 

 

 

1) 안도현의 시 ‘너에게 묻는다’에 나오는 문장을 차용하여 새롭게 바꿔 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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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다이제스터 2015-06-17 21:4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취향과 덕후가 세상을 풍요롭게 한다는 걸 믿습니다. ^^

cyrus 2015-06-18 10:09   좋아요 0 | URL
맞습니다. 다양한 관심에 몰입하는 분들이 많았으면 좋겠습니다. ^^

보라마녀 2015-06-17 22: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앨리스책 모은다는... 미는 무엇인가의 물음에 미학자가 미는 취향이며 취미다고 했는데 현대미술에 어울리는 정의 같아요.

cyrus 2015-06-18 10:11   좋아요 0 | URL
보라마녀님이 앨리스 책을 모으게 된 이유가 궁금합니다. 앨리스는 내용이 어려워도 다시 읽고 싶은 매력적인 동화예요. ^^

만병통치약 2015-06-17 23: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수집가들 덕후들의 열정과 노력에 존경을 표합니다. 저 같이 게으른 사람은 구경만합니다..^^ 저는 버리는데애 취미가 있어서 틈날때마다 책 말고는 다 버려요 ㅋㅋ

박균호 2015-06-17 23:3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의 부족한 책을 이리도 면밀히 읽어주시고 이런 훌륭한 서평을 남겨주셔서 정말 고맙습니다.

북다이제스터 2015-06-17 23:47   좋아요 0 | URL
아, 이 책 쓰신 저자세요?

cyrus 2015-06-18 10:15   좋아요 0 | URL
반갑습니다. 책을 읽으면서 잊고 있었던 수집욕이 생겼습니다. ^^

박균호 2015-06-17 23: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그렇습니다 ^^

북다이제스터 2015-06-17 23:55   좋아요 1 | URL
역시 알라딘 북플에는 고수분들만 계세요. 넘 좋아요. 많이 배우고 즐기겠습니다.^^

박균호 2015-06-17 23: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이고 아닙니다...ㅠㅠ 여기 방금 시작한 초보입니다...ㅎㅎ 제가 많이 배워야죠..

AgalmA 2015-06-18 01: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사 때문에 뭘 모으기가 너무 버거워요ㅜㅜ...책도 꾸준히 팔고...흑))

cyrus 2015-06-18 10:17   좋아요 0 | URL
맞아요. 수집 공간 문제가 수집가라면 겪게 되는 숙명적인 고민이죠. ^^;;

바람향 2015-06-18 09: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수집품들이 정말 멋질 것 같네요. 저도 찾아봐야겠습니다^^ㅎㅎ

cyrus 2015-06-18 10:18   좋아요 0 | URL
책 속에 정말 멋진 수집품을 찍은 사진이 있습니다. ^^

보물선 2015-06-18 10: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시루스님도 각주에 밝히시는데!!! ^^

cyrus 2015-06-18 10:19   좋아요 1 | URL
예전에 그냥 가볍게 생각했었는데, 이제부터는 신중하게 글을 써야겠습니다. 새삼 인용 출처 공개의 중요성을 깨닫게 됩니다. ^^

마녀고양이 2015-06-18 11: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오덕후가 일종의 미학이라고 봅니다. 그리고
수집가라는 명칭도 좋지만, 오덕후라는 명칭도 사실 맘에 들어요. 부정적으로 사용하는 사람도 있지만 그 명칭 자체에서 풍기는 멋이 느껴지기도 해요. ^^

cyrus 2015-06-18 18:50   좋아요 0 | URL
사실 수집가들은 자신들을 오덕후라고 부르든지 간에 호칭에 별 신경 쓰지 않을 겁니다. 오덕후가 한자어라서 마고님 말씀처럼 고풍스럽고 특별한 전문가 같은 느낌이 느껴져요. ^^

붉은돼지 2015-06-18 12: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라벨수집하는 일인으로 일단 보관함으로 보냅니다.
전에는 수집에 관한 책도 수집했어요...
조이스 캐롤 오츠의 <소녀 수집하는 노인>까지..ㅋㅋㅋ

저도 마녀고양이님 말씀처럼 오덕후라는 호칭도 괜찮은 것 같아요
원래는 부정적 의미가 맞긴 하지만.... 무슨 오패칠웅 같은 제후와 같은 느낌...
단어 자체에서 풍기는 멋이 있어요
한자로도 좋은 의미로 쓸 수도 있을것 같구요..^^

cyrus 2015-06-18 18:52   좋아요 0 | URL
예전에 붉은돼지님이 서재에 공개했던 수집한 병뚜껑 사진이 기억이 납니다. ^^

stella.K 2015-06-18 12: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런 콜라병은 어디서 구했을까? 예쁘네.

사실 난 덕후란 말을 몰랐다가 지난 주 아는 지인한테서 알았다.
이런 따분하다면 따분한 세상에서 뭔가 몰입할 수 있는 대상이 있다면
좋겠지. 난 책 모으는 취미 밖에 없는데 그것도 자제하는 중이다.
늘어놓을 곳이 없어서 말이지.ㅠ

cyrus 2015-06-18 18:53   좋아요 0 | URL
저런 병, 생각보다 가격이 비쌉니다. 그만큼 희소성이 있어서 꽤 높은 가격이 책정 되요. 저도 책 구입을 자제하는 편인데 도저히 참을 수가 없습니다. 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