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망 좋은 []

 

EP. 7

 


 대구두류도서관 → 영 우동 → 담담책방 → 카페 스몰토크


2021122일 금요일, 흐리지만 춥지 않은 날씨







영 우동은 무슨 뜻일까. 망자의 넋을 뜻하는 ()’은 분명히 아닐 테고, 숫자 ‘0’도 아닐 것이다영 우동은 이월드 정문 건너편강남닭칼국수송정초밥사이로 난 작은 골목 안에 있는 작은 중식당이다이곳에 가면 중식뿐만 아니라 곧 후술할 떡볶이와 김밥, 라면, 돈가스 등도 맛볼 수 있다.

 

 

 



 

식당은 작고 오래됐다외관은 허름해 보여도 가격이 싸고 적지 않은 양의 음식을 먹을 수 있어 사람들의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오전 11시부터 식당의 문이 열린다. 오후 3~5시는 휴식 시간이며 저녁 8시에 식당의 문이 닫힌다. 영업 종료 30분 전까지 음식을 주문할 수 있다.

 

나는 1057분에 식당에 들어갔다. 내가 식당의 첫 손님이었다. 식당지기 부부는 음식 재료를 준비하고 있었다. 음식을 주문하지 않았는데 사모님은 “(음식) 만드는 데 오래 걸릴 수 있어요라고 말했다. 나는 괜찮아요. 천천히 하세요라고 말했다.

 

 

 

 

 


 



 

사람들은 식당에 오면 음식이 나올 때까지 기다리면서 휴대폰을 만지작거린다. 영 우동에 가서 주문한 음식을 기다린다면 10분 만이라도 휴대폰을 들여다보지 말 것을 권한다. 가만히 앉아 있지 말고, 자리에 일어나 가게 전체를 둘러보자. 그러면 한쪽 유리벽에 붙여진 손글씨가 보일 것이다. 아마도 식당지기 부부 중 한 분이 직접 쓴 것으로 보인다. 종이에 시와 명언들이 빼곡히 적혀 있다. 그중에 프랑스의 철학자 사르트르(Sartre)의 명언이 눈에 띈다. B(Birth)D(Death) 사이의 C(Choice)가 인생이.”


계산대 밑에 책들이 꽂혀 있다. 사르트르의 책은 보이지 않았다. 그 대신에 알베르 카뮈(Albert Camus)이방인. 페스트》(혜원출판사)는 있었다. 한때 친했으나 끝내 갈라서버린 실존주의 문학의 두 거장을 중식당에서 만날 줄이야.

 

내가 주문한 음식은 볶음밥과 스페셜 떡볶이. 내가 이 음식들을 주문하자 사모님은 혼자서?’라고 말했다. 스페셜 떡볶이는 두 사람이 먹을 수 있는 양이다. 떡볶이에 납작 만두와 라면 사리도 들어가 있다. 


음식을 기다릴 때 식당지기 아저씨의 칼질 소리에 귀 기울여 보라. 그분이 천천히 칼질하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칼질 소리가 아주 정직하다. 또각또각규칙적인 소리는 사람의 마음을 편안하게 해준다대부분 중식당에 가면 요리사들은 아주 빠른 속도로 칼질을 한다. 따다닥. 식당에 온 손님과 전화나 배달 앱으로 주문한 손님들의 음식을 빨리 만들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영 우동의 식당지기 부부는 음식을 천천히 만든다. 인내심이 부족하거나 시간적 여유가 없는 사람에게 영 우동에 가는 것을 추천하지 않는다. 식당에서 주문한 음식을 먹으려면 적어도 30분은 기다려야 한다.

 

 

 

 



 

볶음밥만 먹으면 배가 안 찰 것 같아서 반찬(!)으로 스페셜 떡볶이를 같이 주문했다. 내 선택이 옳았다. 민경 장군이 이런 말을 했었지. “고민될 땐 그냥 둘 다 시켜라.”

 


 

 

 

 

  

 



떡볶이의 고추장 소스는 맵지 않고, 매콤하다. 볶음밥의 자장 소스가 부족해서 나는 숟가락으로 떡볶이 소스를 퍼서 밥에 비볐다백반 한 그릇 더 주문하고 싶었을 정도로 떡볶이 소스가 내 입맛에 맞았다싱거운 계란탕은 기름진 음식 때문에 불만이 가득한 위장을 달래준다.

 

 

 

 

 


 

나는 두류도서관에 자주 가는 편이다. 그런데 이제야 영 우동의 존재를 알았다. 확실히 나 같은 책 바보는 정말 바보다. 영 우동은 그저 오래되고 작은 노포가 아니다. 그곳에 다른 식당에서 볼 수 없는 느림의 미학(味學)’이 있다. 천천히 만들어진 음식에 나오는 평범하면서도 담박한 맛과 손글씨에 묻어 난 올곧은 지성은 영 우동’만의 매력이다. 내 생각에 영 우동은 식당에 온 손님들을 기분 좋아지게 만드는 밝은 기운이다.



 


댓글(17) 먼댓글(0) 좋아요(2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쎄인트saint 2021-01-25 11:42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Young~ 우동집인가 봅니다. 가격이 진짜 착하군요.
음식도 정성이 들어가는 듯. 대구가면 가보고 싶은 음식점이네요...

cyrus 2021-01-26 09:34   좋아요 0 | URL
네, 우동도 팝니다. 식당에 방문한 분들의 후기를 봤는데 ‘영’이 ‘젊음(young)’을 뜻할 것이라고 추측하더군요. 다음에 오면 식당 이름의 의미를 여쭤봐야겠어요. ^^

페넬로페 2021-01-25 12:3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제가 만약 영식당에 가면 야끼우동을 시키고 싶네요~~ cyrus님의 글로 식당이 음식을 먹는 곳과 더불어 미학의 장소가 된 것 같아요^^
근데 사군!
좀 ‘위‘ ‘대‘ 하시네요**

cyrus 2021-01-26 09:35   좋아요 1 | URL
위가 좀 큽니다... ㅎㅎㅎ 위가 조금 더 크고, 말빨이 좋았으면 먹방을 찍고 있었을 겁니다... ^^;;

syo 2021-01-25 13:12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리뷰 영역의 무한확장!

cyrus 2021-01-26 09:36   좋아요 0 | URL
사람이 책 이야기만 하면 재미없어 보이잖아요.. ㅎㅎㅎㅎ

이하라 2021-01-25 13: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고민 될 때는 그냥 둘 다 시켜라.. 양이 적은 사람들에겐 넘치는 선택지네요. 두 개 시켜본 적이 없는 제게는 진짜 장군급 조언이에요.

cyrus 2021-01-26 09:41   좋아요 0 | URL
식당의 인기 메뉴가 울면, 볶음밥, 떡볶이에요. 사실 울면과 볶음밥, 둘 중에 뭘 먹을지 고민했어요. 금요일 날씨가 흐려서 면 요리가 댕기긴 했거든요. 세 가지 음식을 다 먹는 건 무리라고 생각해서 볶음밥을 주문했어요. ^^

막시무스 2021-01-25 13: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캬~~~메뉴판만 봐도 내공이 느껴졌는데, 담은 접시랑 비운 접시에서 폭발하네요! 대구 가면 방문해 볼께요!ㅎ

cyrus 2021-01-26 09:42   좋아요 1 | URL
제가 책도 잘 먹고, 음식도 잘 먹습니다.. ^^;;

stella.K 2021-01-25 19: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양이 제법 많아 보이는데 괜찮았나?
저 붓글씨 마음에 든다. 그렇지. 그렇게 살면 되는 것을!ㅎㅎ

cyrus 2021-01-26 09:44   좋아요 0 | URL
저는 만족스러웠어요. ㅎㅎㅎ 지금 비가 내리는데, 울면과 야끼 우동을 먹고 싶네요.

mini74 2021-01-25 22: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두류 도서관 ㅎㅎ 반가운 곳이네요

cyrus 2021-01-26 09:46   좋아요 0 | URL
미니님은 대구에 살아보신 적이 있으신가 보군요. ^^

mini74 2021-01-26 10:34   좋아요 1 | URL
친정이 대구랍니다. 저는 주로 중도와 학원서림이 주무대였지요. ㅎㅎ

페크pek0501 2021-01-27 15: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티브이로 운동하는 걸 보고 민경 장군의 팬이 되었습니당~~

느림의 미학. 제가 좋아하는 말입니다.

cyrus 2021-01-29 10:11   좋아요 0 | URL
‘느림의 미학’이라는 표현을 제일 먼저 쓴 사람이 누군지 갑자기 궁금하네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