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김포외고 입시 문제 유출 사건이 일파만파 커지고 있다. 학교 선생이란 작자가 학원 원장한테 문제를 넘긴 것이 발단이 된 이 사건이, 오늘 뉴스를 보니 어느 학부모한테도 다량의 시험문제를 유출한 것으로 드러났다. 그런데 이 문제의 교사란 작자는 벌써 어디론가 튀어버렸다니, 그 발빠름 하나는 배워야 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특목고는 무슨 개뿔, 그 특수목적이라는 것이 오로지 대학이니, 시험문제 빼내는 것이 문제일리 없었을 것이다. 이번 사건을 계기로 욕을 좀 제대로 드시면 좋겠다.

김포외고 입시 문제 유출 사건으로 경기도 교육청이 궁지에 몰린 듯 한데, 예전에도 문제 유출은 아니지만 교육청이 크게 혼줄난 일이 있었다. 지금 들으면 재미있는 일화지만 당시에는 정말 어처구니 없는 일이었을 것이다. 당시 문제가 된 것은 중학교 입시에서였다. 1964년 12월 7일 실시된 서울지역 전기 중학입시에서 있었던 일이다. 지금도 여전하지만 당시에도 교육열은 펄펄 끊었다. 얼마나 끓었으면 중학교까지도 시험봐서 들어가겠는가.

당시 전기 중학입시의 공동출제된 선다형 문항 가운데 다음 문제가 이 사건의 발단이 되었다.

   
 

다음은 엿을 만드는 순서를 차례대로 적어 놓은 것이다.
    1. 찹쌀 1kg가량을 물에 담갔다가
    2. 이것을 쪄서 밥을 만든다
    3. 이 밥에 물 3L와 엿기름 160g을 넣고 잘 섞은 다음에 60도의 온도로 5∼6시간 둔다.
위 3.에서 엿기름 대신 넣어도 좋은 것은 무엇인가?

- 1964년 12월 7일 서울지역 전기 중학교 입시 자연과목 18번 문제

 
   

이 문제의 답으로는 ①디아스타제였다. 그런데 보기 ②에 무즙이 있었다는 것이 문제였다. 그 당시 민간에서는 무즙을 넣어서 엿을 만들었기 때문이다. 무즙을 답으로 써서 떨어진 학생의 학부모들은 거세게 반발했다. 실제로 무즙을 넣어 엿을 만들어 관련 기관에 찾아가 항의하면서 "엿 먹어! 이게 무로 쑨 엿이야. 빨리 나와 엿먹어라! 엿먹어라! 엿먹어라!" 했단다. 이른바 무즙 파동이다.

이 무즙파동이 파동이 된 데에는 당시 해당 교육당국의 우왕좌왕한 대처에 원인이 있었다. 무즙을 답으로 인정할 수 없다고 했다가 반발이 거세자 하루만에 이 문제를 무효로 한다고 발표했다. 그랬더니 원래 이 문제를 맞춘 학생들의 부모들이 더욱 거세게 반발하자, 다시 이를 무효화 했다. 이랬다가 저랬다가 왔다 갔다 좌충우돌했으니 파동이 날 수 밖에. 결국 이 문제는 법정으로까지 가게 된다. 서울고등법원 특별부는 '무즙도 정답으로 봐야 하며, 이 문제로 인해 불합격된 39명의 학생들을 구제하라"는 판결을 내리면서 막을 내렸다. 또한 이로인해 청와대 비서실장, 문교부 장관과 차관, 서울시 교육감 등 줄줄이 8명이 옷을 벗게 된다.

다들 잘 아는 이야기겠지만 이 사건으로 인해 '엿먹어라'라는 욕이 유래했다는 속설이 있다. 우스갯소리만은 아닌 것 같은 것이, 오늘날 '엿먹어라'는 비교적 유효적절히 욕으로써 기능하고 있는데에 이 파동이 지대한 영향을 미쳤을 것은 분명해 보인다. 기실 '엿먹어라'의 유래는 오래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조선 후기 남사당 패들의 은어로 '엿'은 여성의 성기를 가리켰다. 그로부터 '엿먹어라'라는 욕이 시작됐을 것이다. 이것이 보다 근거가 있었보이는데, 무엇보다 '엿먹어라'의 지위가 오늘날과 같이 확립된 데에는 이 무즙파동이 적잖이 기여했다고 봐야할 것이다.

무즙파동에 이어 이듬해 창칼파동이 일어나 중학교 입시가 철폐되기에 이른다. 이 두 파동은 당시의 과열된 입시양상의 극단을 보여주는 것으로 흔히 거론되는데, 내가 여기서 말하고자 하는 것은 이런 것과는 상관없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무즙파동과 '엿먹어라'의 유래가 하나의 오분석이랄 수도 있지만, 무즙파동하면 '엿먹어라'를 떠올리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다. 당시 이 파동의 피해당사자들은 이 '엿먹어라'에 혼신의 혈기를 담어 당시 교육당국에 내뱉은 것이기 때문이다. 우왕좌왕하는 교육당국으로 인해 울었다가 웃을 수 밖에 없는 이들에게 '엿먹어라'는 욕이기도 하면서 자신들의 정치적 입장을 정확히 전달하는 기조일 수도 있는 것 아니겠는가.

이 페이퍼의 제목을 거창하게도 '욕의 정치학'이라고 붙였지만, 나는 그 거창한 담론을 소화할 능력이 전무하다. 다만 가만히 우리들의 욕들을 살펴보면 소시민들의 정치성을 다소간 내포하고 있다고 여겨지기도 한다. 택시 기사가 손님을 태우고 "이런 노무현 어쩌구"하는 것에서부터 공사판 막노동자들의 세상한탄들에 욕설은 친근하게 올라온다. 이 썩을 놈의 세상에 대한 어쩌면 소극적 반항이랄 수 있는 이러한 욕설은 하나의 정치적 발언은 아닐까?

무즙파동이 '엿먹어라'의 기원이 되지는 않을지언정, '엿먹어라'가 사용되는 맥락하에서는 지극히 정치적일 수 있다고도 보여진다. 이 엿같은 세상에 대고 '엿먹어라'를 외치는 이 민중들은 그 욕설 가득히, 아무런 힘도 가지지 못하지만, 자신이 정치적 존재임을 실어내고 있는 것이다.

욕을 보면 그 세상의 모든 부조리들을 짐작할 수 있지 않을까? 욕을 하면 교양없는 사람, 못 배운 놈, 저질로 폄하하는 세상만큼 엿 같은 세상도 없을 것이다. 욕은 우리에게 간혹 구수한 맛과 재미를 주기도 하지 않는가. 우리가 가진 모든 정치성을 가득히 실어 세상에 대고 욕이라도 시원히 해낸다면, 그런 욕에 우리 사회가 작게나마 귀 기울인다면, 민중들의 욕에 담긴 정치적 의미를 살핀다면, 이 사회는 조금이나마 살만한 세상이 될 수도 있지 않을까 생각된다.

욕의 정치학은 그런 의미에서 차근차근 따져보아도 좋지 싶다. 하여간에 우리 사회의 수많은 부조리들에 대고 욕이라도 시원스레 배설해 내자. 우선 김포외고 파동 책임자들에게 '엿먹어라'를 날려주고 싶다. 그리고 이 세상에 모든 '엿먹어'야할 놈들에게도 한 방 제대로 날려들 주자. 욕의 정치학은 그나마 우릴 시원하게 해줄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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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늘빵 2007-11-14 08: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으헝. 저 사건이 진실이에요? 저런 재밌는(?) 일이.

멜기세덱 2007-11-14 23:44   좋아요 0 | URL
진짜에요....ㅋㅋ

가시장미 2007-11-14 09: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머! 저도 욕 잘하는데....으흐 -_-; 근데, 제가 하는 욕은 정치적의미가 아니라는게...아쉽네요. ㅋㅋ 남에게 상처주는 욕은 폭력이 될 수도 있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앞으로 자제하려고 굳게 다짐했는데.. 이 페이퍼보니... 음.... 조금 다른 생각도 하게되네요.
<- 줏대없는 가시장미 _-_)~ <- 이 이모티콘 이제 좀 식상한데... ㅋㅋ

멜기세덱 2007-11-14 23:45   좋아요 0 | URL
줏대가 좀 없으면 떠 어떻습니까. 가시만 도도히 달고 사셔도 충분히 아름답습니다.

바람돌이 2007-11-15 23: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엿이 불쌍하다는 생각이... 엿 맛있는데 말예요.
보통 욕에서 "개"자가 많이 쓰이잖아요. 개가 불쌍해요. 개가 도대체 뭘 어쨌다고 말입니까? 개보다 못한 인간들이 얼마나 많은데 말이죠.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