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있었던 박완서 선생의 강연 후기를 간단히 정리하고자 한다. 전날까지 감기몸살로 며칠을 고생하셨다는데 건강한 모습으로 강연에 임해주셔서 무척 고맙다는 생각을 갖게 됐다. 첫인상은 뭐랄까, '곱게 늙으신 소녀'(어째 좀 싸가지 없는 표현같지만) 같다고 할까? 76의 고령에도 불구하고 고은 인상과 조심스런 몸가짐이 마치 수줍은 소녀같았다. 강연 1시간여 전 도착하여 교수님들과 식사를 하러 가시던 중 학생들을 마주쳤을 때는 매우 쑥스러운 듯한 모습이었다. 그 느낌은 강연 후에도 크게 변하지 않았다.

이번 강연은 조금 졸속으로 추진된 면이 없지 않다. 일주일도 남지 않고 박완서 선생이 강연에 오신다는 사실을 알았고, 강연 준비도 준비랄 것 없이 부랴부랴였다. 이번 강연은 원래 크게 계획된 행사는 아니었다. 매년 학과 학생들이 학술제라는 이름으로 몇몇 동아리들의 발표회에 지나지 않았던 행사였다. 그 한 프로그램으로 문인이나 학자들을 초청하여 강연을 듣는데, 그런 강연들은 장연스레 조촐할 따름이다.

예년에는 김윤식 교수를 초청한 적이 있었다. 유명세에 비해 대중적인 분은 아니셔서 역시 조촐했다. EBS 강사로 유명세를 탔던 모 야구선수와 동명의 학과 선배를 초청한 적도 있었다. 요새는 대형 학원에 스카우트되어 교사를 그만두었다고 알고 있다. 그 외에 여러분들을 초청하여 강연을 들었던 것 같은데, 이번 강연 만큼은 여러모로 예년의 그 조촐함을 유지할 수 없었다.

준비가 워낙 부족한 탓에 강연 후 사진이나 동영상 등도 전혀 남은바가 없다. 사진이라도 찍어서 남겼으면 좋았을 것을 하고 후회가 된다. 학생들이 휴대폰으로나마 찍어둔 사진이 있는지 만방으로 구해봐야겠다. 강연 하루 전 장소가 급변했다. 원래는 100여명 규모의 소강당으로 예정하고 있었으나, 아무리 봐도 좁지 싶었던 것이다. 그래서 2~300명 규모의 중강당이 자리가 나 급작스럽게 장소를 바꾸었다. 지금 생각하면 장소를 바꾸지 않았으면 큰일 날 뻔 했다고, 다행스럽게 생각하고 있다.

강연 당일은 준비한 것 없이 분주했다. 연세가 많으셔서 앉아서 진행되어야 할 것 같아, 단상을 치우고 탁자와 편안한 의자를 마련했다. 마이크를 준비했었는데, 아마도 청중들과 질의응답이 있을 것 같아, 무선 마이크를 준비하느라 방송실을 뛰어다녔다. 이번 박완서 선생 초청에 지대한 공로를 하신 김명인 선생님께서는 전날 조금 우려하셨다. 몸이 안 좋으시다는 소식을 들으셨지는, 내일 혹시나 못 오실 수도 있다는 것이다. 강연 당일 전화를 주셨는데, 다행스럽게도 박완서 선생이 좀 좋아지셔서 강연엔 차질이 없을 거라고, 아직도 몸살 기운이 있고, 목이 좋지 않으니 강연 때 수시로 마실 수 있는 차를 좀 준비하라고 하셨다. 그래서 차를 준비하려는데, 있는게 별 게 없었다. 끽해야 싸구려 녹차였다. 이곳저곳 수소문 끝에 괜찮은 차를 몇 개 구했다. 지금 그 차 이름이 무엇이었는지 기억은 나지 않지만, 강연 내내 박완서 선생이 맛있게(?) 드시는 것 같아서 기분이 좋았다. 준간에 따뜻한 물은 한 번 더 따라드렸다.

오후 5시 30분 쯤 되니 학과 학생들뿐 아니라, 소식을 들은 선배들, 그리고 다른 학과 학생들, 근처 중고등학교 학생들도 하나둘씩 모여 들었다. 강연 장소를 보다 넓은 곳으로 옮겨 천만다행이었다. 6시쯤 되서는 정말 많은 사람들이 와서 빈자리를 찾아보기 어려울 지경이었다. 5분쯤 후에 박완서 선생님을 모시고 교수님들께서 도착하셨다. 청중들은 큰 박수와 함께 부끄럽게 웃음짓는 박완서 선생을 맞았다. 강단으로 올라 마련된 의자에 앉아 강연이 시작되었다.

몸도 편찮으셔서 강연 원고도 따로 마련하지 못하셨다고 했다. 김명인 교수님께서 미리 언질을 주신 것은 강연을 대담형식으로 진행하겠다는 것이었다. 결과적이지만 그래서 더 좋은 자리가 되었던 것이 아닌가 한다. 문학평론가이신 김명인 교수님과 소설가 박완서 선생의 대담을 2~300여명의 청중과 함께 듣는다는 것은 나름 행운이지 싶기도 하다. 대담이 시작되었다.

먼저 김명인 교수님께서 박완서 선생의 근황을 소개하면서 며칠 간 몸살을 앓으셨다고 전했다. 그럼에도 와주신 선생께 청중들은 다시 한 번 큰 박수로 고마움을 전했다. 이어 김명인 교수는 이상하게도 박완서 선생은 "대작가, 대문호란 수식어와 어울리지 않는" 작가라면서 "요즘은 국민여동생이니, 국민배우하는데, 박완서 선생은 국민어머니 혹은 국민할머니 같다. 또한 국민작가라는 표현이 매우 잘 어울리는 것 같다"고 하여 청중들의 호응을 받았다. 40세에 『나목(裸木)』(1970)으로 늦은 나이에 등단하여 최근 『친절한 복희씨』에 이르기까지 37년간의 "영원한 현역"으로서의 활발한 작품활동의 힘이 어디에서 연유하는 것인지를 첫번째로 물었다.

박완서 선생은 체력과 정신력을 꾸준히 유지하는 것을 그 첫째로 꼽았다. 그러면서 자신은 76의 나이지만 "500년, 1000년을 산 것이 아닌가"하는 생각을 한단다. 1931년생으로 "이조시대의 문화를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시골에서 태어나" 일제시대, 해방, 전쟁, 군사독재, 경제성장 등 격동하는 현대사를 온몸으로 체감하면서 그 "스쳐간 문화의 깊이"가 그러하다는 것이다. 또한 박완서 선생은 슬그머니 어린 시절의 어머니, 할머니 이야기로 넘어간다.

"이조시대의 문화를 그대로 간직하고 있"던 시골마을 경기도 개풍에서 태어난 선생은, 그 당시 본인의 고향을 "자급자족하던 마을"로 기억한다. 어찌나 세상물정에 어두웠던지, 할아버지가 사오신 물감이 덕국(德國) 물감이라고 했는데, 그 덕국이라는 것이 독일임을 아주 나중에야 아셨다면서 "다른 나라가 있다는 걸" 몰랐던 시절이었다고 했다. 그런 선생에게는 어머니와 할머니가 계셨다. 어머니와 할머니로부터 옛날이야기를 많이 전해 들었다는 것이다. 특히 어머니는 언문도 깨치고 한문에도 밝았다. 어머니가 시집 올 때 필사본의 이야기책 한 궤짝을 가져 왔다면서 "무궁무진한 이야기꾼"으로 어머니를 기억한다. 항상 말씀 하실때도 이러저런 이야기를 비유삼아 하셨다. 그런 선생은 한 시구절을 빌려와 "나를 키운 건 8할이 이야기"이고 그건 모두 '엄마의 덕'이라고 한다. 그러니까 박완서 선생이 지금까지 활발히 작품활동을 하는 그 근원에는 이런 "무궁무진한 이야기꾼"이었던 어머니의 영향이 컸다는 답변이었다.

이것은 지금으로 말하면 활발한 독서였다고 할 수 있다. 이야기를 많이 듣는 것은 전쟁터에 나갈 군인에게는 부족함없는 총알이 마련되었던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책을 찾아보기 귀한 시절, 어린 나이의 선생에게 어머니의 이야기는 무궁무진한 독서의 경험이였다고 할 수 있다. 뒤에 한 청중이 박완서 선생 작품 속의 아름답고 다양한 우리말 어휘를 칭찬하며 그러한 어휘력이 어디에서 나오는 것인지를 물었는데, 박완서 선생은 다시한번 이 시절의 경험으로 그 답변을 대신했다.

박완서 선생은 여러층의 문학세계를 보여준다고 지적하면서 이전의 전쟁, 7~80년대의 경제성장과 군사독재, 여성 문제 등 다양한 층의 작품세계를 보여주는데, 근작 『친절한 복희씨』에서는 또 이와는 다른 박완서 문학 세계를 보여준다고 김명인 교수는 말했다. 말하자면 "'노년의 눈(시선)'으로 사회와 세상을 바라본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박완서 선생은 "어쩌다 보니 노인 이야기가 많았"단다. 장편 『그 남자네 집』이나 『아주 오래된 농담』등에서는 "젊은이들의 이야기"를 썼지않느냐며 반문한다. 그러면서 "지금도 욕심이 연애소설을 쓰는" 것이라고 한다. 본인은 아직도 "연애감정이나 정서를 잘 알고 있다"면서. 그런데 문제는 "연애의 소도구"랄 수 있는 것들, 이를테면 "요즘의 젊은이들은 사랑을 어떻게 해야할지 추측"을 할 수 없다면서, 그렇기때문에 연애소설을 못 쓰고 있다고 아쉬워한다.

손녀를 만나러 서울 도심에 올라왔을 때의 재미난 이야기를 아울러 덧붙인다. 길을 지나다 어느 "젊은 꽃미남이 아는 척"을 하며 사인을 해달라고 해서 선생은 "이게 웬 떡이냐"하며 좋아하셨단다. 그런데 웬걸 그 꽃미남을 사인을 받으며 "우리 엄마가 팬이에요"해서 씁쓸하셨다는 농담에 청중들은 자지러 질 수 밖에 없었다. 그만큼 젊은이들의 감수성을 알고 싶어하고 끊임없이 젊음을 유지하려고 하고 있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런 것이 박완서 선생이 여전히 활발한 작품을 생산해 내는 원동력은 아닐까? 노년이 되면서 "많이 부드러워졌다"는 선생은 그것은 "많이 자유로워졌다"는 것이란다. 노년에서의 그런 자유의 느낌을 이번 근작 『친절한 복희씨』에 담아 놓은 것이 아닐까?

이 외에도 얼마간 대담이 오고 갔는데, 박완서 선생은 목이 좋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친절히 조목조목 길게 답해주셔서 몇가지 질문에도 금방 1시간 반이 지나가버렸다. 연신 준비된 차를 마시는 모습을 보면서 내가 다 흐뭇해졌다. 예정된 시간이 많이 지났지만 청중들의 반응이 뜨거워 몇 사람의 질문을 받기로 했다.

첫 질문은 아마도 내가 기억하기로, 박완서 선생의 작품 특징이랄 수 있는 과거 경험의 서술이 오늘날의 어린 학생들에게는 공감대를 형성하기 어렸지 않느냐, 이런 것을 오늘날의 학생들에게 어떻게 가르쳐야 할까? 라는 요지의 질문이었던 것 같다. 아마도 이런 질문을 선생은 많이 받았을 것이다. 이에 대해 선생은 지난날의 아픈 추억을 언급하면서 "아무도 없는 전쟁의 도시 서울에서의 고초"는 "나만 본 것"이었고 이것을 "글로 쓰고 싶"고 "써야겠다"고 생각했다면서 "언젠가 글로 쓰지 않으면" 안 될 것이고, "이런 고통을 반복하지 않으려면" "내가 경험한 것으로 안온한 세상에 도움과 자극을 주고 싶은 욕구"가 있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의 끝에도 그런 언급을 한 적이 있다고 한다. 그래서 옮겨 본다.

   
 

그때 문득 막다른 골목까지 쫓긴 도망자가 획 돌아서는 것처럼 찰나적으로 사고의 전환이 왔다. 나만 보았다는데 무슨 뜻이 있을 것 같았다. 우리만 여기 남기까지 얼마나 많은 고약한 우연이 엎치고 덮쳤던가. 그래, 나 홀로 보았다면 반드시 그걸 증언할 책무가 있을 것이다. 그거야말로 고약한 우연에 대한 정당한 복수다. 증언할 게 어찌 이 거대한 공허뿐이랴. 벌레의 시간도 증언해야지. 그래야 난 벌레를 벗어날 수가 있다.

그건 앞으로 언젠가 글을 쓸 것 같은 예감이었다. 그 예감이 공포를 몰아 냈다. 조금밖에 없는 식량도 걱정이 안 됐다. 다닥다닥 붙은 빈 집들이 식량으로 보였다. 집집마다 설마 밀가루 몇 줌, 보리쌀 한두 됫박쯤 없을라구. 나는 벌써 빈 집을 털 계획까지 세워 놓고 있었기 때문에 목구멍이 포도청도 겁나지 않았다.

 
   

박완서 선생은 종교와 문학의 한가지 공통점으로 바람직한 것들을 세상에 가르치는 것이 아닐까 한다는 의미의 말씀을 했다. 일제시대 말기 쌀을 감쳐둔 것을 찾아내려고 온 순사를 위안부에 끌고 갈 처녀들을 잡으러 온 것으로 알고 딸을 숨겨두었다가, 쌀을 어디 숨겨두었는지 검사하는 쇠꼬챙이에 숨겨둔 딸이 찔려 죽는 모습들을 시골의 고향마을에서 어린 시절 보고 큰 충격을 받았다는 선생은 자신이 글을 쓸 것이라고는 별로 생각하지 않았다. 전쟁의 참상과 참척의 고통을 겪으면서 선생은 아마도 이런 것들을 공감하지 못하는 세상에 전해서 다시는 이런 아픔과 고통이 이 땅에 없길 바라는 간절한 마음에서 작품을 쓰는 것은 아닐까? 선생의 따뜻한 마음을 다시 한 번 느낄 수 있었다.

어떤 맥락에서 나온 말씀이지는 모르지만 본인은 아직 "젊은 감수성은 잃지" 않았다면서 "위험한 것은 진부해지는 감수성"이고, 선생은 그런 "감수성을 잃지 않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고 있다는 말씀을 당당하게 하셨다. "위험한 것은 진부해지는 감수성"이란 말씀에 옷깃을 여미지 않을 수 없었다. 아직도 그 말씀이 가슴 깊이 울린다.

박완서 선생의 작품의 큰 특징 중의 하나는 쉽게 읽힌다는 것이다. 선생은 자신의 작품이 "어떤 평론가(김윤식 교수)가 병을 뒤집어 물이 흐르듯이 읽힌다고 말했는데" 사람들은 "쉽게 읽히니 쉽게 쓴 줄 아는데" 전혀 그렇지 않다고 한다. 에피소드 하나, 어떤 기자가 원고지 10매 정도의 분량의 글을 써줄 것을 요청했는데, 이래저래 바빠서 거절했단다. 그런데 이 기자의 대구가 가관이다. 선생은 글을 쉽게 쓰니 그 정도야 몇 시간이면 쓰지 않느냐고 말이다. 선생은 "어디 이런 싸가지 없는 기자가 있나" 하고 생각했다면서 또 한 번 청중에게 웃음을 주었다. 지난 시절의 아픔과 참척의 고통을 글을 옮기면서 어찌 쉽게 그것을 쓸 수 있었겠는가? 선생은 글을 쓰면서 글자 한 자에 때문에 막혀서 진도를 나가지 못한 적도 많다면서, 본인도 힘들게 글을 쓰는 작가라고 말해 청중들의 뜨거운 박수를 받았다.

이 외에도 여러 질문이 오가며 대략 2시간 가량의 강연이 모두 끝났다. 선생은 다소곳이 앉아 진솔하고 솔직하게 모든 질문에 답변을 해주셨는데, 그 모습이 너무 아름다웠다. 김명인 교수는 선생이 청중들의 할머니, 자신에게는 어머니 뻘이신데, 예정된 시간을 훌쩍 넘기면서까지 친절히 강연에 임해주신데 대해 깊은 감사를 전했다. 모든 청중들도 그 이상을 고마움을 전했다.

강연을 마치고 청중들의 큰 박수 속에 선생은 자리를 나왔다. 2시간 가량 한 자리에 앉아서 많은 말씀을 전하신 분이 76의 고령이시라는 데 다시한 번 놀랐다. 8시가 넘어 끝난 강연 후 선생은 화장실에 잠시 들렀다. 그 앞에 학생 두 명이 대기하서 섰다가 선생이 나오시는 걸 보고 다짜고짜 사인을 요청했다. 많은 사람들이 선생의 사인을 받고 싶어 했지만, 2시간을 강연하신 선생께 감히 그 피곤함을 끼칠 수가 없었을 것이다. 그런데 이 학생들의 사인 요청을 받아주셨다. 이를 어쩌랴, 주위에 감히 요청하지 못했던 사람들이 몰려 들었다. 나는 급하게 책상을 들고 뛸 수 밖에 없었다. 3~40명 가량이 모여들어 갑작스럽게 팬 사인회가 열렸다. 모든 사람들에게 친절히 사인을 해 주신 선생께 나도 끄트막에 사인을 받았다. 사인을 하시는 모습을 옆에서 지켜보면서 그 사인하시던 손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손은 노년의 나이를 속이지는 못했지만, 어떻게 하면 그렇게 곱게 늙은 손을 가지고 있을까 무척 궁금해졌다. 한 청중이 이런 말을 했었다. "어떻게 하면 선생님의 눈가의 주름을 닮을 수 있을까요"라고. 나도 어떻게 하면 선생의 그 곱게 늙으신 소녀같은 모습을 가질 수 있을까 무척 궁금해지는 지금이다. 아마도 선생의 작품 속에 그 비밀이 숨겨 있을지도 모르겠다.

사진을 많이 남기지 못해 무척 아쉽다. 학생들이 휴대폰으로 찍은 사진을 구하는 대로 이 페이퍼에 올려야겠다. 강연이 끝나고 참가한 모든 사람들이 너무 좋았고 감동을 받았단다. 다음날 김명인 교수님께 선생께서도 "너무 행복했다"고 말씀을 전하셨단다. 박완서 선생님, 행복하셨다구요? 이 말씀을 전해듣고 나는 더 많이 행복해졌다. 정말 잊지 못할 선생과의 만남이었고, 다시 한 번 선생께 깊이 고마움을 전한다. 단언하건대, 앞으로 나는 선생의 "꽃미남 팬"이 될 것이라고 굳게 약속한다. "박완서 선생님, 더 행복하시죠?"

* 이전에 선생의 많은 작품을 이상하게도 읽은 것이 별로 없다. 그마나 읽은 것이라고는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와 「그 여자네 집」이 고작이었다. 오신다고 해서 집에 사 두었던 <20세기 한국소설>의 『박완서』에 실린 몇 작품과 근간 『친절한 복희씨』를 부랴부랴 읽었다. 읽으면서도 술술 읽히는 것이 왜 아직까지 선생의 작품을 이렇게 안 읽었을까 의아했다.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를 읽은 것은 느낌표 때문이었다. 그래서인지 그 내용이 전혀 기억나지 않는다. 군생활의 어려움 때문이기도 하겠다. 앞으로 선생의 작품을 최대한 읽어볼 작정이다.

* 어느 서재지기께서 몇 가지 질문을 해달라고 하셨는데, 아무래도 내 입장이 선생께 질문을 드릴 수 있는 입장이 못 되었다. 질문하고 싶은 것은 무척 많았는데, 다짜고짜 해볼 것 하는 아쉬움은 조금 있다. 질문 주신 그 분께도 죄송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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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오기 2007-11-15 02: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치 한 자리에 있는 것 같은 후기에 감동 ^^ 저도 나목부터 이분의 팬이었는데, 호미부터 읽기를 쉬었답니다. 멜기님의 글을 보고 다시 친절한 복희씨부터 봐야겠어요.
확인해보니 집에 있는 이분의 책이 12권있네요. 열심히 사들였는데, 사람들이 와서 하나씩 집어가기 딱 좋은 작가라 손이 많이 탔어요. ㅠㅠ
박완서님의 사진과 긴 후기를 올려주신 님께 다시 한번 감사드립니다!

멜기세덱 2007-11-15 21:43   좋아요 0 | URL
ㅎㅎ 많이도 가지고 계시네요. 저도 열심히 사서 읽으려구요.ㅎㅎ

순오기 2007-12-13 10:45   좋아요 0 | URL
우리 언니의 생일선물로 보내려고요. 다시 읽어봐도 감동적인 후기예요!

2007-12-14 18:24   URL
비밀 댓글입니다.

프레이야 2007-11-15 18: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진부하지 않은 감수성, 힘들게 쓰지만 쉽게 읽히는 글, 벌레의 시간을 증언해야
벌레에서 벗어날 수 있다... 새깁니다. 언니(^^)의 미소가 아름답네요.
저도 친절한 복희씨, 읽어봐야겠어요. 자세한 후기 잘 읽었습니다, 세덱님^^

멜기세덱 2007-11-15 21:45   좋아요 0 | URL
ㅎㅎ 언니....ㅋㅋ
완서 누님이 완소긴 하지만, 혜경님이 언니라 그러면....욕먹어요...ㅋㅋ

2007-11-15 22:2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7-11-16 09:47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