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 근처에서 자취를 시작한지 일 년하고 아홉 달째다. 도시에서 산다는 것이 그리 다를 것 없겠지만, 이 동네에 터를 잡고 살 것이 아닌 이상에야 자취는 동네 소속감이 있을리 없다. 이곳으로 주소지를 옮겨 주민세를 이 동네에 바치고 있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아직 별달리 이주 계획은 없지만, 내년에도 여기에 살지는 장담을 하지 못한다. 여기가 우리 동네니 하며 살면 가까이 사는 이웃도 사귀고, 아는 체도 하고, 옆집 사람들과 뭐라도 나눠 먹고 하면 좋겠지마는, 이곳은 언제나 내 맘도 몸도 우리 동네니 할 입장도 못되고, 그러고 싶은 생각도 크게 들지는 않는 여하한 삭막한 도시의 한 동네 구석과 같다.
그러나 아무리 자취를 하는 곳이라고 하더라도, 한때나마 머물고 잠자고 먹고 싸고 하는 곳에서 말 한마디 건네고 지낼 이웃이 전혀 생기지 않는 것은 아니다. 근처 슈퍼나 편의점 주인이나 아르바이트생과 자주 또는 매일 마주치는 것은 자취생들의 일상일 것이다. 정기적으로는 한두 달에 한 번 머리 자르러 가는 미용실이 있을 것이다. 나도 다른 자취생들과는 그 점에서 다르지 않다. 다른 것이라면 그 외에는 없다는 것일테다. 미용실은 내가 머리에 신경을 쓰는 편이 아닌지라 자주 가는 편은 못 된다. 대강 따져보면 한 달 보름 만에 한 번씩, 그러니까 머리가 좀 덥수룩해져서 간지럽고 거치적거린다 싶은 그때쯤에 가까이에 있는 동네 미용실엘 간다. 일 년하고 아홉 달을 살았으니 한 열 번은 넘게 한 미용실을 다닌 셈이다. 나는 모르는 사람들에게는 과묵한 성격이라, 이런 데엘 가도 붙임성 있게 말을 한다거나 친한 척을 하지 못한다. 오죽하면 어떻게 잘라드리느냐는 질문에도 대충 단정히 시원하게 깎아 달라는 말만 남기고 눈을 감을 따름이다. 그런데도 드문드문 이긴 하나 두세 번이 지나니 슬슬 이 미용실 아주머니는 나에게 말을 건네 온다. 살갑게 받아주지는 못하지만 그리 싫은 내색도 하지 않고 간혹 말을 받아쳐주는 정도는 한다.
내가 자취생활을 하면서 하루도 거르지 않는 곳은 큰길에서 집으로 들어서는 모퉁이의 작은 편의점이다. 담배를 피다보니 하루 한 갑씩은 집에 들어오는 길에 담배를 사야한다. 간혹 마실 물이라던가 필요한 잡다한 것들을 이 편의점에서 산다. 편의점에는 자취생들에게 필요한 다양한 것들을 마련해두고 있어 나는 제각기 필요한 것들을 사러 여러 곳을 돌아다니는 수고를 절대 마다한다. 그래서 편의점은 내가 하루도 거를 수도 없고, 내 생활의 필수품들을 조달하는 중요한 공간이다.
편의점에 들락거린 지 한두 달이 지나니, 편의점 사장 아저씨와 사장 아주머니와 좀 낯설음이 없어졌다. 이 편의점은 내외가 주야를 나눠 일을 본다. 가끔 학생들이 아르바이트로 지키긴 하지만 대부분은 이 부부가 운영을 하는 듯하다. 그 사정을 알고는 좀 이상하다기보다는, 별 시답잖은 문제가 있을 거로 생각됐다. 근데 시답잖은 문제만은 아닐 수도 있겠다. 저 부부가 교대로 근무를 하다보면 언제 부부생활을 하겠는가 말이다. 그러나 이런 의문을 묻지도 않았고 이내 덮어버렸다. 알아서들 하지 않겠는가. 그리고 그들은 고등학교를 다니는 딸이 있고 이보다는 어려 보이는 아들이 있다. 별 시답잖은 문제일 수도 있다는 생각은 이런데서 연유하기도 한다.
편의점에 들르면 먼저 아는 체를 하고 인사도 건네고, 이래저래 말도 주고받는다. 한 날은 딸내미가 모의고사를 본 모양이다. 어째어째 이야기가 오고 갔는데, 다니던 학교가 어딘지 알게 됐고, 그곳 국어선생님이 내 대학 동기라는 말이 오고 갔다. 그때부터인지 내 정체를 잘은 모르지만, 선생 친구라니 대하는 태도가 좀 달라졌다 싶다. 내가 느끼기에 그렇다는 얘기다. 보다 정중해지고 보다 친근하게 대하려는 태도라고 해야 할까. 그리고 건네는 말이 좀 더 많아졌다는 것 정도.
오늘은 좀 늦은 저녁 사장 아주머니가 뜬금없이 이런 말을 건네 왔다. 아들이 초등학생인데 휴대폰을 사달라고 보챈단다. 그건 어림없는 소리고, 본인도 휴대폰이 없다고, 사장 아저씨가 사주지도 않는다고, 사장님이 무서운 분이라고, 어림도 없는 소리를 하고 있다고 말이다. 사장 아저씨는 매우 온화한 분이다. 요즘은 잘 보이지 않지만 예전 텔레비전에 자주 보이던 탤런트 이정섭과 외모와 분위기, 말투가 많이 닮았다고 느낀다. 말도 조곤조곤 여성스럽게 하고 손님들에게도 매우 친절히 세심하게 배려한다. 오히려 아주머니 말투가 덤덤하고 건조하게 느껴진다. 아저씨는 작은 키에다가 몸도 삐쩍 말라보여 내외가 외형이 좀 바뀌어야 싶기도 했다. 그 나름대로 잘 어울리지 싶기도 하고 말이다.
아들이 초등학생이란다. 중학생은 돼 보이는 무게감인데, 초등학생이라면 적어도 5~6학년은 되지 싶다. 요즘 초등학생들도 다들 휴대폰을 가지고 다닌다는데, 아직 없는 것을 보면 이 사장님이 그리 호락호락한 분은 아닐 것으로 짐작되고도 남는다. 항상 다정하고 부드럽지만 본인의 뜻과 어긋나는 점에서는 단호하다는 말을 덧붙인다. 그래서 아이들이 아버지를 무서워 한데나. 그럴 수도 있겠다 싶다. 착하고 부드러워 보이는 외모지만 이정섭이 그렇듯이 약간은 좀스러운 데가 있어야 더욱 어울리지 않겠는가. 그렇다고 좀스럽다고 단정 짓는 것은 아니다. 초등학생 아들에게 휴대폰을 사주지 않는 것이 좀스러운 일이라고 말하기에는 무리가 있으니 말이다. 그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휴대폰을 가지고 있는 것이 교육적으로 문제라느니, 잘만 사용하면 해될 것도 없다느니 하는 것을 따질 곳으로 편의점 계산대 앞은 모자란 감이 있다. 그래서 농담 삼아 아드님이 여자 친구가 있으면 휴대폰을 사줘야 하지 않겠느냐고 넌지시 건넸다. 여자 친구도 없을 뿐더러, 공부를 잘해야 한단다. 상위 5% 안에 들어야 한다나. 그것도 중학교에나 가서 말이다. 그러면서 덧붙인다. 공부만 잘하면 된다고.
내가 볼 때 이 아들이 공부를 그리 썩 잘하는 편이 아니구나 짐작됐다. 공부를 잘했으면 지금쯤 휴대폰이나 사달라고 보채지는 않았을 테니 말이다. 당당히 더 비싼 것을 요구했을 것이다. 공부만 잘하면 중학교 올라가기 전에 휴대폰을 손에 넣을 수도 있겠다 싶기도 하고 말이다. 그 말에 공부가 뭐가 중요하냐고 반문하지는 않았다. 대부분의 부모들이 그러하듯이 공부만 잘하면 뭐든지 해줄 것처럼 하지 않는가. 그런 말은 공부 잘하는 자식들에게는 불필요하다. 아마도 공부를 못하는 애들에게 해당될 것이고, 그런 아이들은 공부를 잘하기가 여간 어려운 것이 아니다. 그러니 그런 공약은 실행되기 어렵고, 아무리 떠벌려도 그리 해될 것이 없을 것이다.
물건을 사고 집으로 들어오는 길에 내 어렸을 적 생각이 이것저것 든다. 시골에 살았던 어렸을 적에 동네에 자전거 붐이 분 적이 있다. 기어가 달린 자전거가 온 동네 아이들에게 최고 인기였다. 모두들 자전거를 타고 마치 요즘의 폭주족들처럼 모여 온 동네를 빵빵대며 달렸다. 나는 그런 붐에 이른 시기에 참여하지 못했다. 우리 집이 그리 잘 사는 형편도 아니고, 그런 것을 호락호락하게 사줄 어른들도 아니었다. 자전거 붐이 가실 때쯤에야 내게도 자전거가 생겼는데, 그 시기가 지나면 아이템 획득의 그 짜릿함이 반감될 수밖에 없다. 자전거를 타기 위한 균형감 정도를 익혔을 뿐 신나게 동네를 달리지는 않았던 것으로 기억된다.
자전거 붐이 지나고 나서는 비비탄 총의 붐이 이르렀다. 레밍턴이니 스미스니 하는 장난감 총인데, 쏘아대는 비비탄이 여간 위협적인 것이 아니다. 권총에서부터 장총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모델이 있었다. 아이들은 저마다 여러 종의 총들을 들고 총싸움도 하고 편을 짜서 전쟁놀이도 하며 지냈다. 내가 뒤늦게 이 총싸움에 참여한 것은 그간 꼼쳐 두었던 용돈을 털어 몰래 이 비비탄 총을 샀기에 가능했다. 부모님에 걸려서 혼이 났던 기억 또한 또렷하다.
초등학교 6학년 때였던가, 그때는 컴퓨터가 시대의 필수품으로 등장하는 초기여서 이 시골 아이들에게도 컴퓨터를 배우는 것이 매우 중요한 것처럼 여겨졌다. 온 동네에 컴퓨터 학원 붐이 일었다. 작은 시골 마을임에도 불구하고 읍내에서 노란색의 컴퓨터 학원 차가 들락거렸다. 아이들은 자의반 타의반으로 방과 후면 학교 앞에서 노란색의 컴퓨터 학원 가방을 들고 노란색의 차를 타고 읍내로 떠났다. 이번에 또한 나는 그 대열의 초기에 합류하지 않았다. 중요한 것은 못했다가 아니고 안했다는 것이다. 이번에는 좀 반대였다. 부모님들은 내게 이 대열에 합류할 것을 권유했지만, 나는 별로 내키지가 않았다. 그런데 나는 컴퓨터는 싫고 피아노를 배우고 싶으니 피아노 학원에나 보내달라고 했다. 그런데 이는 거절됐다. 사내놈이 무슨 계집애들처럼 피아노를 배우느냐는 것이다. 두세 달이 지나고나니 학교를 파하면 나는 같이 놀 친구들이 없었다. 여간 심심해지지 않을 수 없었고, 그래서 어쩔 수 없이 컴퓨터학원엘 다니겠다고 했다. 비록 세 달 만에 종을 쳤지만 말이다.
피아노는 급기야 고2때 여름방학 보충수업비를 빼돌려 피아노학원엘 2달간 다닌 것으로 그때의 한을 풀었다. 약간의 좌절과 함께였지만 말이다. 그건 그렇고 내가 왜 이렇게 예전 일들이 기억났는지 모르겠다. 한 가지 더 생각나는 것은 국민학교 시절 같은 반 여자아이의 생일날이다. 동네의 다른 아이들은 거의 다 초대를 받았는데, 나를 빼놓은 것이 여간 괘씸하지 않을 수 없었다. 감히 나를 빼놓다니. 소외감과 시기감을 절실히 받았다.
그런데, 어린 시절의 이런 소외감이나 열등감은 곳곳에서 발생한다. 자전거나 비비탄 총 붐이 일었을 때 아이들의 그 대열에 내가 참여하지 못한다는 것은 여간 서운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어린 아이가 집안의 경제사정을 돌아본다는 것은 그리 탐탁찮은 일이다. 이것은 부작용이 강한데, 자기 집은 못살기 때문에 이런 것을 가질 수 없다고 느끼는 것은 좀 잘못된 쪽으로 가기 십상이다. 그런데 정작 이런 아이들 장난감 같은 것을 사주는 데에 그 집안의 경제사정이 전혀 못 미치는 것만은 아닌 것이 대부분이다. 우리 집도 그러했다고 생각된다. 사 줄 수도 있었으리라 생각된다. 교육적 문제까지를 우리 부모님들이 고려했다고 생각되지는 않는다. 그렇다면 대부분의 아이들이 그걸 가지고 노는데, 그걸 사준 대부분의 부모들은 교육적 고려를 전혀 하지 않은 것은 아닐 것이기 때문이다.
아이들에게 소외감과 열등감을 심어주는 것은 이런 소소한 데서 생긴다. 못 사줄 이유가 무엇이냐 이 말이다. 그런데 대부분의 부모가 이런 소소한 것에도 빼놓지않고 조건을 건다는 데에 문제가 있다. 그 조건은 십중팔구 공부와 관련된다. 공부만능주의, 공부지상주의라고 불러도 좋을 것이다. 몇 등을 하면 사주겠다, 몇 점을 맞으면 사주겠다식 말이다. 그런데 이건 그리 교육적이 못된다. 적절한 거래는 부모 자식 간에 나름 유효한데, 그게 공부에만 집중되는 것은 적절한 것이 못된다는 얘기다. 나는 부모님께 이런 공부거래를 제의받은 적이 한 번도 없다. 나는 공부를 그리 잘하는 편도 못하는 편도 아니어서 대강 중간적도의 순위권을 유지해 왔다. 그러나 한 번도 공부해라, 몇 등하면 사주겠다는 식의 제의를 거의 받은 기억이 없다. 간혹 이런 무심함에 원망하기도 했지만, 지금에는 이게 참 감사한 일이지 싶다. 지금 내가 공부에 그다지 치를 떨지 않는 것은 모두 이 때문이라고 감사한다.
쓸데없는 말들이 많았는데, 집에 들어와서 다시 편의점 집 아들을 생각해보니 이런 결론에 도달한다. 굳이 이 아들에게 휴대폰을 사주지 못할 이유는 없어 보인다. 대부분의 아이들이 휴대폰을 가지고 다닌대서야 이런데서 오는 소외감을 아이가 맛보는 것은 그리 유익한 것이 없지 않겠는가. 그렇다고 공부 잘하면 사준다도 좀 탐탁찮은 구석이 있다. 조금 달리 거래를 해보아도 좋지 않겠는가? 이를테면 편의점에서 적당히 심부름이나 일을 시키고 그에 따른 보수를 모아서 네가 가지고 싶은 휴대폰을 사라는 제안이나, 또는 다른 방법을 생각해봐도 좋지 싶다. 공부가 다가 아닌 것을 이 부모들은 잘 알면서 아이들에게 공부가 다일 것처럼 가르치는 것은 옳지 못하다. 능력이 안 돼서 아무리 해도 상위 5%에 달하지 못해, 그때까지 휴대폰 하나 없이 소외감으로 지내는 것은 부모에게도 그 자식에게도 그리 달가운 일이 못 될 것이다. 우리 동네 편의점 집 아들에게 그 부모가 휴대폰을 사주는 것은 별다른 계약 없이도 가능할 것이다. 그러나 굳이 거래를 하자면 공부가 아닌 다른 어떤 창조적 방법이면 좋겠다. 나는 그 아이가 휴대폰을 가질 수 있는, 공부가 아닌 다른 방법이 있었으면 좋겠다. 그런 방법이라면 내가 돈을 내서라도 사주고 싶을 정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