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하기의 다른 방법 - 모습들 눈빛시각예술선서 7
존 버거 지음, 장 모르 사진, 이희재 옮김 / 눈빛 / 2004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사진 한 장이 앞에 놓여 있다.  사람들은 이 사진을 바라보면서 과거에 함께 했던 시간을 떠올리거나 그 시간과 공간속에서 놓여져 있던 자신의 모습을 찾고자 한다. 이 때 우리는 사진을 보며 우리의 뇌 속에 마음 속에 저장된  이미지를 다시 복원시키게 된다. 그 순간 사진은 우리에게 이미 어떤 획정지어진 의미를 가진다. 왜냐하면 우리들은 늘 우리들이 경험한 것을 소유하려는 욕망으로 사진을 찍어두기 때문이다. 우리들의 욕망이 그 풍경에 더욱 많이 투영될수록 우리는 그 사진 한 장의 감상 속으로 더욱 쉽게 빠져들게 된다.

  우리의 기억과 함께 한 풍경들이 사진 속에 담겨져 있을 때, 때로는 우리는 말로서 그 장면들을 되살려내고 또 현재의 생각과 더불어 더욱 많은 설명을 갖다붙이게 된다. 그럼으로써 우주의 온 작용으로 빚어진 사진 한 장은 이제 더 이상 상상의 여지를 발휘할 수 없는 박제되어 버린 종이조각으로 전락하게 된다. 그 사진은 이제 우리들의 시야에서 내팽개쳐진다. 이미 소비된 상품에는 더 이상 매력을 느끼지 못하는 인간 욕구의 본질상....

  존 버거와 장 모노는 이러한 고정된 사진의 이미지를 다시 유동적이고 많은 가능성이 존재하는 '모호성'의 상태로 되돌려놓고자 한다. 그가 세상을 담아내는 방식도 그러하겠지만, 그의 파인드에 담겨진 세상을 사람들에게 보여주는 방법에서도 그는 이러한 방식에 충실하고자 한다. 우선, 그는 사진 한 장을 우리들 앞에 던져 놓는다. 그리고 상상하게 한다. 그 사진이 가지고 있는 역사적 상황, 공간적 배경, 개인사를 묻어버리고 난 다음 남는 순수한 호기심을 우리앞에 던져 준다. 이러한 장치를 통해 우리는 사진 한 장이 갖고 있는 이미지가 가슴 속에 남기는 떨림을 통해 어떤 흔적을 발견해가게 되며, 이를 통해 발견된 그것은 내 존재의 형상을 말없이 드러낸다. 

  이러한 그의 사진에 대한 설명은 표현 형식만 조금 달리했을 뿐, 글로 한정되지 않는 사진 그대로 보여주려고 하는 그의 마음과 일치한다. 따라서 그의 글은 사진이고 그의 사진은 글이 되는 마법적인 일체를 이루어낸다. 사진을 통해서 ,될 수 있는 한, 렌즈에 담긴 세상 그대로의 모습을 우리에게 보여주고자 하는 것이다. 그것을 수용하는 것은 온전히 우리들의 남겨진 몫이 된다. 그 모습을 받아들이는 독자의 바른 태도는 자신의 경험과 사고를 될 수 있는 한 배제한 상태에서 가슴 속에 그려지는 희미한 실루엣에 초점을 맞추는 일이다.

  이러한 방법을 통해 그는 순간적이고 고정된 이미지 한 장에서 역사를 뛰어 넘고 공간을 뛰어 넘은 '영원성'으로 향하는 배를 띄운다. 어차피 이미지라고 하는 것이 빛이 만들어내는 색채의 마술이 아니던가? 그 명암을 걷어내고 색채를 걷어내어 남은 빛 속으로 우리의 마음을 녹여내어 존재 그 자체 속으로 우리를 초대한다. 그 빛의 터널을 지나 우리가 다시 도착하는 곳이 바로 이 세상이 아닐까? 또한 그의 파인드가 지향하는 곳이 바로 이 곳은 아닐까?

  눈 앞 가득히 아무렇게나 자라 있는 잔디가 더없이 따스하고 평화로운 햇살을 받고 있다. 저 생각없는 잔디 속에 하나의 풀이 되어 평화속으로 내 마음이 잠긴다. 이 순간 나는 풍경 그대로의 존재가 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여행보다 오래 남는 사진 찍기
강영의 글.사진 / 북하우스 / 2005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여행에서 빠뜨릴 수 없는 것이 사진이다. 우리는 기억하고 싶은 삶의 경험들을 사진이라는 매체를 통해 영원화시킨다. 비록 한 장의 이미지임에도 불구하고 그것은 우리들의 과거의 체험과 현재 그것을 바라보는 느낌, 그리고 그것을 통해 우리 앞날의 모습까지 그려보게 한다는 점에서 과거, 현재, 미래를 담은 것이다. 또한 달리 표현하면 시간이 사라져버린 이미지이자 삶의 절대적 체험이기도 하다.

  보통 사진이라고 하면 시각의 예술이다. 하지만 사진 한 장이 드러내는 이미지는 단순히 시각적 요소로만 구성된 것은 아니다.  그 속에는 청각과 후각, 미각을 포함한 오감각이 모두 들어있다. 나아가 때로는 그 속에 인간 존재의 심연을 보여주는 무의식과 잠재의식의 영역이 조각퍼즐의 한 조각 조각처럼 듬성 듬성 수면 위로 떠오르기도 한다. 사진을 보는 독자로서 내가 중심적으로 보는 것은 이것이 내 존재의 심연을 얼마나 떨리게 하고 있는가이다.

  그녀는 아마추어 사진가이다. 하지만 그녀의 사진을 단순한 아마추어 여행사진이라고 보기에는 아쉬움이 있다. 그것은 우선 그녀의 여행동기에서부터 그러하다. 물론 거창하게 자기와의 만남이라든가, 삶의 깨달음을 위한 것이라고는 밝히지 않았지만 그들의 여행이 단순히 자신의 보금자리와 일자리를 유지한 채 휴가철에 떠나는 휴식이나 삶의 위안이 아니라 바로 여행자체의 삶을 겪어보기 위한 것이었음을 알 수 있다. 따라서 그녀는 자신의 의지로 비록 짧지만 한 생 속에서 선택한 또 다른 생을 살아본 것이고 그 또 다른 생의 기록이 바로 이 책에 담겨진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그녀의 체험이 얼마나 충실하게 사진으로 담겨졌는지 알 수는 없지만 그녀의 사진을 보고 있으면 그가 세상을 보는 따뜻하고 신비로운 눈을 가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낯선 문화를 대할 때에는 늘 자신 속에 익숙해진 문화와 상이하거나 대립될 때 갖게 되는 일종의 경계심이 누구나 있기 마련인데, 적어도 파인드 안에 피사체를 담아낼 때에는 그런 경계심이 자연스레 녹아내리고 있음을 알 수 있기 때문이다. 그녀의 말대로 우열과 시비를 떠나 상대방과 또는 대상과 직접 교감하면서 생기는 수용이 그런 태도를 만들어내었기 때문이리라. 한 장의 이미지를 파인드 속에 담아내기 이전에 우선 그 이미지를 우리의 뇌속에서 그리고 가슴속에서 만들어내어야만 하기 때문이다.

  그녀의 사진이 촛점을 맞춘 곳은 내면적 소리이다. 그것은 이미지화된 풍경과 인물 속에 담긴 그 사람 고유의 소리가 가슴에 와닿는 떨림을 만들어낼 때의 바로 그 소리이다. 그 소리야말로 사진기라는 매체로 담아낼 수 없는 것을 담아내는 특별한 능력을 필요로 한다. 피사체가 내는 소리를 담아내는 데에도 장애가 있고, 그 담아낸 소리를 이미지로서 타인에게 전달하는 데에도 장애는 존재한다. 물론 그 사이에 카메라나 사진가가 담아낼 수 없는 능력의 한계도 있겠지만 피사체를 대하는 사진가의 마음은 무한히 열려야 하는 것이다. 자신이 담아내지 못한 것을 타인에게 전달할 수도 없는 법이니까....

  그녀의 사진은 계속될 것이다. 그녀의 삶이 그러하듯이 늘 그녀는 과정속에 놓여져있기 때문이다. 도달할 수 없는 "궁극의 한 장"을 찍어내기 위해 그녀는 오늘도 세상을 보는 특별한 눈을 만들어가고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그녀가 여행을 통해 찾으려 했던 삶의 의미들을 파인드에 담아내기 위해 스스로가 사진기가 되고 피사체가 되고 동시에 그녀도 될 때에 결정적 한 장에 가까워져가는 모습을 보게 될 것 같다. 그것이 시각적 의미를 넘어 오감각, 나아가 마음을 담아내고 현재와 과거, 미래까지도 단 한 장의 사진에 담아내는 것이 될 것이다.  결국 한 장의 사진에서도 인생은 담겨져야 하는 것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9)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사진에 관하여
수잔 손택 지음, 이재원 옮김 / 이후 / 2005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우리가 살아가는 삶의 경험들은 순간 순간 변하고 한 순간 만들어졌던 세상은 한 순간마다 허물어지고 새로운 세상이 만들어진다.  현재는 순간 과거로 변하고 우리는 잡을 수 없는 현실 속에서 허무함을 느껴야만 한다. 그래서 우리는 현재를 붙잡아두고 싶어한다. 미래를 붙잡아두고 싶어한다. 이런 이유로 우리는 삶의 소중한 기억들을 사진이라는 매체를 통해 남겨두고 싶어한다. 대학교 시절, 신문에는 한 사회적 쟁점을 두고 찬, 반의 많은 논리들이 가득차 있곤 했고, 우리 사회에 대한 관심과 애정을 가져야 하는 사회학도로서 나는 늘 논리로서 무장한 글들의 범람으로 지쳐야만 했다. 바로 그 때 잡다한 논리와 수많은 잉크로 채워진 글들을 일축시키고 단 한 컷의 카르툰으로 보여주는 박재동의 만화는 그야말로 무릎을 치게 하는 것이었다. 사진의 매력은 바로 여기에 있는 것이다. 베트남전의 만행을 다룬 수백시간의 텔레비전보다  훨씬 더 반전여론을 들끓게 만들었던 것이 후잉 콩 우트의 "전쟁의 공포"라고 하는 사진 한 장이었듯이(미군의 네이팜탄을 맞은 뒤 두팔을 벌린 채 고통으로 울부짖으며 도로로 뛰어나오던 어느 벌거벗은 남베트남 어린아이의 정면사진)...

우리는 삶의 한 장면을 기억하고 싶은 기념식, 입학식, 졸업식에서 사진을 찍는다. 여행갔을 때에도 우리는 빠뜨리지 않고 카메라를 챙긴다. 그럼으로써 한 순간에 흩어져버리는 삶의 체험을 소유할 수 있다고 믿게 되며, 그 찍힌 사진의 이미지를 영원히 간직할 수 있을 것이라고 믿는다. 우리들이 삶에서 갖게 되는 체험들은 늘 정지된 사진과 같이 뇌속에 기억되며 다시 불러들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기억들의 기록으로서의 사진은 객관적인 것이라고 믿는다. 하지만 똑같은 사진기를 사용하여 똑같은 풍경을 담은 사진이 제각각 천차만별의 차이를 가지는 이유를 우리는 간과하고 만다. 그것은 객관적이라고 여겼던 사진이 주관적인 과정을 통하여 이루어진다는 사실에서 비롯된다. 풍경과 세상을 바라보는 그 사람의 태도와 가치관, 정신세계가 바로 한 장의 사진 속에 고스란히 담겨지게 된다. 사진을 찍는 사람이 플라톤의 동굴 속에 있다면 그 사진 역시 플라톤의 동굴의 풍경일 것이다.

삶은 이미지로 구성된다. 우리가 감각으로 대하는 세상은 결국 이미지이다. 그리고 그 이미지의 축적이 우리의 일생이다. 하지만 이미지 속에 과연 모든 것이 담길 수가 있을까? 사람들은 그 이미지 속에 객관적으로 존재하는 현실과 세계가 담겨질 수 있다고 믿는다. 나아가 잘 담겨진 이미지는 현실보다 더욱 현실적이라고 믿는다. 그래서 진짜 꽃을 대하는 것보다 꽃 사진이 더욱 아름답고 감동적이라고 여기며 사람을 대하는 것보다 그의 잘 찍힌 사진에서 더욱 호감을 느끼게 된다고 한다. 이제는 삶의 경험들이 이미지로서 상품화되고 상품화된 이미지야말로 우리가 삶을 진실로 경험하게 되는 방법이라고 말한다. 왜냐하면  물질적 삶을 체험하고 느끼게 하는 인간 존재의 그 무엇이 이미지화된 세계도 똑같이 체험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똑같은 한 장의 사진을 접하면서도 삶의 아름다움과 정신적 각성을 이루는 사람이 있는가하면 단지 외면해버림으로써 아무런 존재의식없이 볼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이미지화된 삶을 살아가는 방식과 하나도 다를 바가 없다.

우리들의 삶은 무엇인가? 삶을 체험하는 내 속의 무언가가 그것을 물질적인 삶을 거쳐 뇌속의 이미지로 만들기도 하고 때로는 이미지화를 거친 사진과 영상을 통해 그것을 받아들이게도 한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그 이미지를 받아들이는 우리들의 존재 속에 그 무엇인가가 있어 삶의 경험들을 이미지로서 받아들이고 또 지우고 또 받아들이며 지우는 과정을 끊임없이 해대고 있다는 것이다. 그것은 이미지가 수없이 나타났다가 사라지는 스크린이기도 하고 디지털카메라의 메모리이기도 한 그 무엇이 우리 인간 존재의 심연 속에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것을 통해 우리는 자기가 이미지화된 세계를 수용하여 삶을 살아가더라도 이미지에 속지 않고 삶의 파란에 휘둘리지 않고 좀 더 넓은 자아로서 여유를 가지고 인생을 즐길 수 있게 된다. 


댓글(9) 먼댓글(0) 좋아요(1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비연 2005-04-01 12: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 지난 주에 사두었는데..님의 리뷰를 보니 빨리 읽어야겠다는 성급함이..^^;
잘 읽고 갑니다...ㅊㅊ 꾸욱~

달팽이 2005-04-01 13: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반갑군요...비연님...역시 비연님과는 책읽는 취향이 비슷한데가 있군요...ㅎㅎ

어둔이 2005-04-03 23: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진의 이미지를 통해서 사실을 확인하듯 우리는 마음의 상을 통하여 세상을 드러다 본다. 마음에 드러난 세상이 결국 집착과 무지 이듯이 사진의 이미지는 결국 파인드를 통해서 드러다 본 작가의 의도가 숨어 있다. 사진이 가진 이미지는 사실보다 더 사실적이게 보일 수있으며 현실보다 더 아름다운 현실로 만들어 질 수 있다. 그것은 마음의 기억으로 남겨진 현실의 파편과 마음의 상상력으로 덧된 현실의 꿈을 반영하고 있다. 어짜피 세상은 마음의 상이고 마음의 상은 그렇게 감각의 이미지로 남기 마련이다. 이미 우리들의 세상에는 생산된 이미지가 우리의 마음을 묶어두듯 우리들의 마음속엔 마음의 상이 우리의 영혼을 삼키고 있다...

봄비가 내린다. 하늘에서 내려와 스며드는 것이 있어야 땅으로 부터 쏫구치는 것도 있으리라. 보여지는 이미지는 보는 자를 만들고 보는 자가 또 그 보여지는 이미지를 자라게 한다. 세상은 결국 뫼비우스의 띠...펼쳐지면 우주로도 가둘 수없고 감아들면 마음의 한점으로도 자리할 여지가 없네...

비연 2005-04-09 11: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주의 마이 리뷰 당선을 축하드려요~!!!

달팽이 2005-04-09 23: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운이 좋아서...ㅎㅎㅎ

파란여우 2005-04-10 11: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주의 리뷰 당선을 지각으로 달려와 축하 드려요.
핑계를 대자면 요즘 너무 시간이 없었다는..(궁색한..^^;;)
그래서 보관함에 일단 집어넣고, 추천과 땡스투 다 눌렀답니다.
아시죠? 제 맘...^^

달팽이 2005-04-10 20: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 그럼요...하지만, 글은 이미 내가 리뷰의 마지막 문장을 쓸 때 날 떠나버린 박제화된 언어일 뿐.... 더 이상 집착하지 않으려 해요...그래서 리뷰 당선되고 다시 읽어보면 부끄러움만 더해가는 걸요....

책읽는나무 2005-04-30 16: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많이 늦었지만 리뷰 편안하게 잘 읽고 갑니다..^^
인사는 아마도 처음 여쭙는게 아닐까? 싶네요...여러 리뷰를 그냥 훔쳐만 보고 갔었습니다...그것이 죄송스러워 이번에는 축하인사를 남기려구요..^^
이주의 리뷰는 물론 이달의 리뷰까지 당선되신 것을 축하드립니다.

달팽이 2005-04-30 18: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알게 되어 반갑습니다. 오늘은 또 어느 분이 발자국도 없이 다녀가셨나 궁금해지는 군요...
 
우리가 사랑해야 하는 것들에 대하여
조은 지음, 최민식 사진 / 샘터사 / 2004년 9월
평점 :
품절


렌즈를 통해 보여진 세상은 바라보는 이의 마음을 드러낸다. 사진은 순간포착의 예술이다. 사진작가는 가장 극적이고 감동적인 순간을 포착하기 위해 긴장의 끈을 놓지 않는다. 하지만 그런 긴장감이 최민식의 사진에서는 보이지 않는다. 가장 평범한, 가장 자연스러운 순간을 마음에 담아내어 자기도 모르게 누르는 셔터속에 담겨진 세상을 한참 응시하고 있으면 그가 펼쳐진 세상을 있는 그대로 수용하는 도리를 터득하였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그가 담아낸 사진에는 전쟁으로 인해 가족을 잃은 깊은 슬픔과 엉겨있는 상실감도 스며있고, 근대화의 과정에서 아무런 이유도 모른채 혹독한 노동과 쳇바퀴처럼 제자리만 돌아가는 벗어날 수 없는 굶주림과 생존에의 강한 갈망도 스며있다. 하지만 그의 사진 속에는 이 모든 것을 이겨내고 승화시키는 사랑의 숨결이 도사리고 있다. 그 삶의 의미를 꿰뚫어보는 깨달음이 있다. 그 사랑과 깨달음 속에서 불평등은 평등으로, 억압과 착취는 연민과 용서로 탈바꿈한다. 건널 수 없을 것같은 삶과 죽음이 그 속에서 하나가 된다. 이해할 수 없는 것이 이해되어지고, 보이지 않는 것이 마음의 눈앞에 펼쳐진다.

삶의 가장 고통스럽고 처절한 순간들, 고난과 시련의 세월을 견뎌내며 그것이 손마디에 이마에 볼에 온몸에 남긴 삶의 흉터자국들, 그것을 바라보는 그의 시선은 고통으로 찌들어 있지 않다. 오히려 그 차갑고 싸늘해지고 쪼그라든 영혼의 나무에 생명수를 뿌려 다시 가지가 돋게 하고 새싹을 틔우게 한다. 그의 따뜻한 눈빛에서 우리는 사랑을 읽을 수 있다.

그 사랑은 우리의 삶이 아무리 흙탕속에서 뒹굴고 있어도 그 삶을 통하여 우리 영혼이 정화되고 성숙되는 것을 지켜준다. 삶의 바닥처럼 보이는 비밀의 문을 지나 그 한없이 떨어지는 바닥을 한없이 치솟는 천상으로 만들어내는 마음의 비밀, 그 비밀 속에서 삶의 진정한 의미는 숨겨진 베일을 벗는다. 어둠이 빛이 되고, 절망이 희망이 되고, 고통이 희열로 바뀌는 마법의 주문은 팔과 다리를 잃고 밥 한 그릇을 위해 몸부림치는 장애인을 바라보는 우리의 마음을 아프게만 하지는 않는다.

세상 사람 모두가 제 각각의 얼굴을 가지고 있듯이 모두가 제 각각의 인생을 가지고 산다. 사진작가 최민식의 인생의 화폭을 채우는 것은 사진이다. 그 사진을 통해 세상은 그의 마음으로 반영된다. 그가 사진에서 인생을 배우고 영혼을 성숙시켜가듯이 나에게도 사진이 필요하다. 그 사진은 나에게 내 삶의 의미를 찾게 해주고 내 삶을 보다 풍요롭고 아름답게 만들어줄 것이다. 자 이제 내 사진을 찍자.


댓글(3)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비연 2005-02-06 00: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가타부타 말이 필요없이 사진작가의 시선이 담긴 사진 한 장만으로도 가슴에 그 의미가 전해진다는 것, 참 멋있는 일인 것 같습니다...최민식 님의 사진들은 그런 심정을 절렬하게 느끼도록 하는 힘이 있지요..

달팽이 2005-02-06 11: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 동감입니다. 오랫만이군요...비연님...

달팽이 2005-02-06 20: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ㅎ, 고마워요...
 
정민 선생님이 들려주는 한시 이야기 - MBC 느낌표 선정도서, 보급판 진경문고 5
정민 지음 / 보림 / 2003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정민 선생님의 글은 옛글이지만 그 속에 옛 사람들의 마음을 담았다. 그저 눈으로 보이는 것만을 넘어서 옛 사람들의 그 마음 씀씀이와 직설적 화법보다는 돌려서 넌지시 암시하는 옛 사람들의 멋과 풍류를 그가 가진 마음의 눈으로 되살려 내었다. 그래서 늘 선생님의 글들은 우리들의 삶에 생활에 감추어진 멋들을 되살려내도록 해준다.

그가 이런 옛사람들의 시, 서, 화를 보는 안목으로 우리 옛 전통문화를 아이들의 눈높이에 맞춰 써내려갔다. 단지 아이들뿐만 아니라 일반인들이 우리 옛 글과 그림을 이해하기 위해서 입문서로 사용해도 될 정도로 재미있고 알차게 엮어내었다. 글 속의 여백과 보여주지 않음으로 보여주는 옛 사람들의 지혜를 그는 될 수 있으면 빛바래지 않은 상태로 우리들에게 보여주고자 노력하였다.

우리의 옛 조상들은 정말 멋있고도 지혜로운 사람들이다. 말하지 않으면서 말하는 법에 의해 상대방이 보다 깊이 깨달을 수 있도록 배려하고 있으며,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님을 보여줌으로써 삶의 보다 깊은 곳에 대한 스스로의 체험으로 경험할 것을 강조하고 있다. 다 보여주지 않음으로써 그것을 보는 자가 갖게되는 온갖 상상력과 창조성을 해치지 않는 조심스러움을 보여주기도 하고, 사물에 깃든 생명력을 봄으로써 사물을 보다 깊이 이해하고 사물과 만물에 대한 신비로움과 경이로움을 자아내게 하기도 한다.

옛 사람들의 작품속에서 우리는 그 사람을 발견한다. 그 사람이 품었던 의도와 그 사람의 세계관과 맞닥뜨리게 된다. 그리고 그 작품을 만들어낸 사람의 애틋한 마음과 절절한 마음과 만나게 된다. 그 만남은 평범하고 관성화되어 삶의 활력과 신비를 잃어버린  현대인의 생활에서 지쳐버린 자신의 삶을 다시 되돌아볼 수 있게 해준다.

그래서 과거는 과거가 아니라 현재 사람이 기억해내고 현생활의 필요에 의해 되살려낸 과거가 된다. 물질문명의 발달에도 불구하고 인생을 대하는 성숙하지 못한 우리들의 삶에서 옛 사람들이 가진 정신적 풍요로움과 여유로움은 각박해진 우리의 삶을 반성하고 오늘을 다시 새롭게 살게 해주는 힘이 된다.

그 힘을 정민 선생은 자신의 아들 '벼리'를 통해 이 세상 아이들에게 전해주고 싶은 것이다. 그러한 마음이 이 책 전반에 두루두루 널려 있음을 읽은 이는 알게 된다. 이러한 이유로 내가 정민 교수를 좋아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댓글(4) 먼댓글(0) 좋아요(1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파란여우 2004-10-25 12: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어렵다고 생각하는 한시를 아이들의 눈높이로 쓴 책이란 말이군요. 그렇다면 저도 이 책을 읽어봐야 겠군요^^님의 리뷰는 가을날의 한편의 맑은 수채화 같습니다. 예쁘다고 할까요..^^

달팽이 2004-10-25 13: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갑사합니다...쑥스럽군요..ㅎㅎ

혜덕화 2004-10-26 08: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몇년 전에 이 책을 처음 읽고 받았던 감동이 기억나네요.
할아버지가 손자를 데리고 무덤가에 가서 조촐한 제사를 지내는 모습의 한시를읽고
얼마나 울었던지. 눈물이 많아서 눈앞에 상상하는 풍경만으로 마음이 아리던 기억이 새롭습니다. 좋은 책을 읽으셨네요.

달팽이 2004-10-26 11: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혜덕화님 오랫만에 글 남겨주시니 반갑군요...정민 선생님의 옛 사람들의 글 이면에 있는 마음을 읽어내려는 그 마음이 존경스럽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