뇌를 단련하다 - 인간의 현재 도쿄대 강의 1
다치바나 다카시 지음, 이규원 옮김 / 청어람미디어 / 200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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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와 사상은 그것이 다른 것을 배제하고 한 인간의 두뇌에서 절대화되어 버리면 극단적이고 비극적인 상황을 초래한다. 오늘 신문에서는 1996년도 일본 지하철 가스참사의 장본인인 옴 진리교 교주의 사형선고가 내려졌는데 이 사례도 지의 전체적인 이해없이 한 사상과 이론에 몰입할 때 귀결되는 비극적 상황 가운데 하나라고 볼 수 있다.

물론 대학생활이나 젊은 시절에 우리가 인간과 세계에 대한 이해를 보다 폭넓고 깊이 해야 하는 이유가 비단 이런 극단적이고 비극적인 상황을 피하기 위해서만은 아니다. 그것은 바로 자신과 인간세계 그리고 우주에 대한 폭넓고도 전체적인 이해를 통해 우리들의 삶의 관점과 태도를 형성하고 삶을 보다 지혜롭고 의미있게 살기 위해서도 반드시 필요하다.

내가 대학생이었을 때에는 비판적 사회과학에 전도되어 다른 곳으로 눈을 돌릴 수 없었던 것이 지금와서 아주 안타까운 마음이 드는 때가 있다. 그 때 내가 좀 더 전체적인 지와 사상에 대해 탐색과정을 거쳤더라면 좀 더 균형있고 폭넓은 시각을 가지고 삶의 중요한 시기에 보다 현명하게 대처할 수 있었을텐데.... 적어도 인문과학과 자연과학의 위대한 고전들이라도 탐독하는데 시간과 노력을 더 들였더라면 고정관념의 틀을 깨는데 이렇게 힘들지도 않았을 것이며 인간의 존재와 나의 삶의 의미를 깨우치는데 좀 더 절실한 요구들에 부응하며 살 수도 있었을 터인데.....

물론 그렇다고 과거를 모두 부정하고 싶은 마음은 없다. 하지만 다치바나 다카시가 도쿄대 대학생들에게 전하고 싶은 메세지는 단지 자신의 개인적 바램이라기보다는 일본의 미래의 흥망과 관련하여 국가적인 비전까지도 갖고 있다는 점에서 우리나의 대학생에게도 반드시 필요한 관점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지의 최첨단의 성과물들에 대해 이해하고 인문과학과 자연과학의 화석화된 장벽을 허물고 지의 전체지도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는 그의 생각은 대학교육이 단지 input에만 그치는 것이 아니라output도 자유자재로 다룰줄 알아야 개인의 전인적인 발달이 가능할 뿐만 아니라 국가의 장래비전으로 연결될 수 있다는 것이다. 사실 개인적으로 인생의 중요 시점의 판단의 준거에서나 국가의 중대사의 결정에 있어 그것이 편협되고 특정시각에 의해서 단기적인 관점으로 내리는 결정이 얼마나 한 개인의 인생을 나아가서는 국가의 장래와 인류의 미래를 망쳐왔던가?

저자는 이 거대하고도 의미있는 첫 걸음을 이제 막 대학생이 되는 우리의 미래세대들을 통해서 이루어보고자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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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인의 고통 이후 오퍼스 10
수잔 손택 지음, 이재원 옮김 / 이후 / 200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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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문과 뉴스를 비롯한 대중매체에서는 날마다 팔레스타인의 폭격으로 얼마나 많은 사람이 죽었다는 사실과 이라크의 폭탄테러에 의해 얼마만큼의 사람이 죽었다는 이야기가 끊이지를 않는다. 그리고 국내에서도 아이들과 여자들의 납치 살인 사건이 미디어를 타고 우리들에게 전해진다. 하지만 우리는 이러한 미디어를 접하며 한 손에는 커피 혹은 담배 한 가치를 집어들고 늘상 되풀이되는 일상의 한 부분으로서만 받아들이고 만다. 리모콘을 쥐고 있던 손을 놓아버리는 순간 우리는 그 참혹하고 연민어린 장면들을 잊어버리고 어느덧 무의식의 일상속으로, 메트릭스 속으로 빨려 들어가며 살고 있다.

수잔 손택은 사진을 비롯한 미디어가 가진 양면성에 대해 이야기한다. 한 면은 그것이 가진 긍정성으로 이를 통해 한정되고 왜곡된 상태에서나마 미디어 수용자들이 전쟁의 참상에 대해서 보게 되고 반전을 위해 자신이 무언가를 해야 한다는 의무감을 가지게 된다는 것이다. 다른 한 면은 미디어가 전쟁의 참혹함과 비극에 대해 미디어 수용자로 하여금 수동적이고 무능력한 적응력을 키워서 무의식에 사로잡히게 만든다는 것이다. 바로 우리들의 모습처럼....

하지만 무엇보다도 전쟁자료에 대한 미디어화는 그것이 국가에 의해 정책적으로 이루어지고 있으며 때로는 특정한 정치적 목적에서 제작되고 방영된다는 사실이다. 이라크전에서 보았듯이 전쟁사진을 포함한 자료들이 대부분 미국에서 제작되고 그 자체가 방송사와 군산복합체의 이익을 가지게 되지만 그것은 미국의 제도적이고 합법화된 폭력을 전세계적으로 용인하게 만드는 목적이 있다는 것이다. 더구나 차마 눈뜨고 볼 수조차 없이 비참하고 참혹한 장면들을 미디어를 통해 보면서 그것이 나와는 상관없이 먼 곳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타인의 고통'이라고 생각한다는 것이다.

여기에서 우리가 간과해서는 안되는 것이 있다. 바로 그 '타인의 고통'이 우리가 누리고 있는 자유와 어떤 방식으로든 연결되고 있다는 점이다. 그것은 우리의 국가와 산업이 무기와 인력을 제공하고 있을 수도 있으며, 그 행위에 대한 암묵적 동조와 인정에 의한 내면적 굴복에 의해서도 제공될 수 있다. 하지만 따지고 보면 우리가 용인했던 그 폭력과 살인이 어떤 연기의 네트워크를 통해 우리들에게 돌아올지 알 수 없는 일이다.

이 책을 읽으며 나는 또 한 가지의 교훈을 배울 수 있었다. 그것은 피해자들 역시 자신들만의 경험을 극대화하며 자신과는 원인과 지역을 달리하는 피해자들에 대한 배타적인 태도를 갖게 된다는 것이다. 자신들의 희생만을 부각시키려고 하는 이기심은 우리 세계가 가진 폭력과 희생의 정도를 더욱 심화시키게 될 뿐인데도 말이다.

우리가 미디어를 통해 폭력을 대하는 것이나 직접 그 폭력이 이루어지는 현장에 있으나 우리가 내면적으로 깨어있기를 요구한다. 그것은 어떤 폭력과 탄압에서도 마음만큼은 고통을 통해 성장하려는 의지를 가져야 하며 그 마음 속에서 어떤 '타인'도 만들지 않아야 하는 이유인 것이다. 그것은 바로 '우리'의 고통인 것임을 깨달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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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포토저널리즘에 대한 날카로운 지적 시선 <타인의 고통>
    from 風林火山 : 승부사의 이야기 2007-08-07 03:58 
    타인의 고통수잔 손택 지음, 이재원 옮김/이후(시울)전반적인 리뷰2007년 8월 5일 읽은 책이다. 이 책의 리뷰를 적으면서 처음 안 사실이 지금 현재 내가 갖고 있는 책의 표지와 지금의 표지가 다르다는 것이다. 뭐 이 책의 발간일이 2004년 1월이긴 하지만 개인적인 생각에는 이 책이 다루고 있는 것을 보면 기존의 책 표지 자체도 타인의 고통을 드러내는 그림이었기에 이 책에서 얘기하고 있는 바와 약간은 상충되는 부분도 없지 않은 것이 사실이다. 그..
 
 
 
시간의 지도리에 서서
이정우 지음 / 산해 / 200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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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나라에서도 이런 고민을 하는 사람이 있다는게 놀랍다. 그리고 대학교수직의 제의를 거절하고 제도권에서 할 수 없는 담론의 자유를 누리기 위해 철학아카데미를 개원해서 그가 펼치는 활동은 우리 사회에 참된 지식이 나아가야 할 바를 시사해준다는 생각이 든다.

사회주의권의 몰락과 더불어 이미 지구는 전 세계적 자본주의화하고 있다. 하지만 그 자본주의는 이미 초기 자본주의의 내재적 모순에 대한 비판을 탄력적으로 흡수하여 더욱 공고한 체제를 바탕으로 성장해가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외형적 물질적 성장에 대비되어 정신적이고 진정한 삶의 행복에 대한 우리들의 만족도는 형편없다. 따라서 이제 이러한 맹목적 성장에 대한 우리 스스로의 반성이 필요한 시점이다. 저자의 물음은 바로 여기에서 시작하고 있다.

과학에 기반하는 진리의 사회에서 철학과 사유에 기반하는 진실의 사회에로의 이행이 필요하다고 그는 주장한다. 사회는 말할 것도 없고 대학이라는 공간조차 자본과 기술 미디어의 3가지 세력에 의해 점령당한지 오래고 대학교수는 대학기업의 사원에 불과하다는 신랄한 비판은 단순한 독설적인 의미를 넘어 우리 사회에서 대학의 기능이 변질되고 타락되어가는 것에 대해 새롭게 그 의미를 되새겨보게 한다.

사회에서 기술과 과학이 차지하는 비중은 커지고 인문이 차지하는 영역은 점차 축소되고 있다는 그의 지적은 주지의 사실이다. 하지만 기술과 과학이 자본의 수단으로 변질되어 중요하게 그 의미를 점하는 부분은 있지만 우리 사회에서는 아직도 이공계기피현상을 포함한 현상을 볼 때 그의 평가가 균형잡힌 것이라고 보기에 힘든 점도 없지 않다. 과학과 기술도 사회에서 나름대로의 역할과 중요성이 있으니까..하지만 인간이 길러야 할 전체를 보는 안목을 무시하고 한 부분의 전문가나 기술자만 되면 된다는 식의 교육제도와 사회구조에는 명백한 문제점이 있다.

분명 전체는 단순한 부분의 합이 아니다. 부분이 모여 하나의 전체를 이루는 데에는 네트워크가 작용한다. 인간의 유전자수가 23쌍의 염색체로 되어 있다고 해서 그 23쌍의 염색체의 기능이 밝혀진다고 해서 염색체의 비밀이 풀리는 것은 아닐 것이다. 그것이 상호작용의 네트워크를 가진다면 문제는 더욱 복잡해진다. 현실을 푸는 문제에도 이런 사실은 적용될 것이다. 한 부분 부분의 문제점이 각각의 대안을 가진다고 해서 그 대안들을 적용하여 각 부분이 풀리면 전체가 풀리는 식의 구조가 아닐 것이다. 그것은 전체로서 작동하며 그 연관관계의 네트워크를 파악하지 않고서는 힘들 것이다.

하지만 그가 제시하는 동서양의 오랜 고전들을 망라하여 그 지혜들이 상호작용의 과정을 통하여 융합하는 가운데 새로운 현실을 담아내는 새로운 이론과 담론, 철학의 탄생을 기대해볼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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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명 비법대사전
정청암.이성천 지음 / 문원북 / 200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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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을 짓는 것은 운명을 만들어가는 작은 첫 출발이다. 그러므로 그 아이의 운명을 짓는 사람의 마음가짐은 중요하다. 물론 그것이 전적으로 아이의 운명을 결정한다고 보아서는 안되지만 아이의 운명에 영향을 미친다는 마음으로 짓는 것이다.

이 책은 음양오행과 주역에 대한 어려운 책들이 작명에 대한 어려움의 선입견이라는 벽을 어느 정도 허물어준다. 누구나가 쉽게 이해하고 작명할 수 있도록 우리말을 많이 사용하고 도표나 기하학도 될 수 있는대로 쉽게 만들어놓았다.

따라서 음양오행이나 주역에 대한 깊이있는 설명보다는 일반인이 쉽게 책으로 작명하는 방법에 대해 설명하고 있으며 많은 이름의 사례들을 통해서 직접 짓지 않고도 지어진 좋은 이름을 사용할 수 있도록 해주고 있다는 점에서 좋다. 하지만 음양오행이나 주역에 대한 좀 더 매끄럽고 자세한 설명이 덧붙여졌더라면 좋았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더욱이 만세보에 대해서는 최근 몇년간의 자료를 담았더라면 좋았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아니면 최소한 당해년도만이라도 말이다. 어차피 작명을 할 때는 생년월일시에 의한 사주도 풀이해보아야 하니까 말이다.

몇 가지의 아쉬운 점은 어느 책이나 남게 마련이다. 부족한 부분을 다른 책으로 메꾸어가면서 드디어 아이의 이름을 지었다. 아이의 작은 운명을 부모의 마음으로 짓는다는 것은 참 어렵다. 욕심이 안들어가게 되도록이면 너무 좋게 짓는다는 생각없이 그저 무난하게 짓는다는 생각으로 지어야지 하면서도 않좋다거나 해롭다는 말들에는 신경이 쓰이니 말이다.

아이의 이름을 지으면서 부모가 된다는 것이 무엇인가에 대해 나름대로 깊이 생각해보는 계기가 되었고 더불어 부모가 되는 자리에 한걸음 성큼 다가선 기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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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명대전
정보국 / 가림출판사 / 199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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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에게 이름을 직접 지어주고 싶은 마음에서 동생이 아이이름을 지을 때 샀던 책을 빌려 들었다. 우선 어떻게 지어야 할까를 고민하다가 좋은 이름도 좋은 이름이지만 내가 인생을 살아가며 그 인생의 중요한 의미나 교훈을 이름 한글자에 담아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것이 나에게는 '도움되다' '베풀다'라는 것이었다. 이렇게 하나의 의미를 정하고 나면 이름짓는 방향이 어느정도 잡히게 된다. 그 다음엔 이 책을 참고하면 된다.

이 책은 이름을 짓는데 필요한 역학과 음양오행에 대한 기본적인 설명들을 담고 있다. 육신과 육신조견표의 내용이나 음양오행중에도 몇몇 부분은 이해를 제대로 못했지만 찬찬히 읽어내리다 보면 이름을 짓고 그 이름을 부르는 데 담긴 기운이 평생동안 자신의 기운을 지배할 수도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저자도 밝히고 있듯이 아이의 운을 이름 하나가 모두 좌우한다는 생각을 가지는 것도 잘못된 생각이다. 아이 자신의 타고난 운이나 명도 있을 것이고 다만 내가 아이의 이름을 정성들여 짓는 데는 그 타고난 운명과 인생의 교훈을 그르치지 않고 온전히 그대로 살며 배우기를 간절히 바라는 마음에서일뿐이다. 오직 그뿐이다. 아이는 아이이고 나는 나일 따름이다. 이렇게 이름지으며 내가 가지는 허물이 있다면 그것 역시 나의 업이 될 것이다.

다만 내 아이라는 집착없이 사심없이 하나의 생명으로서 그 아이의 탄생을 축복하고 아이의 인생이 스스로의 의미를 온전히 갖게끔 바라는 마음으로 이름을 짓고자 하였다. 이름대로 세상에 타인에게 도움이 되는 삶을 살아준다면 족할 따름이다. 이것도 내 욕심일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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