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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의 밥상
제인 구달 외 지음, 김은영 옮김 / 사이언스북스 / 2006년 2월
평점 :
어느덧 뜨거워진 햇살아래서 모처럼 구포시장을 걷는다. 한줄기 바람이 일어나면 순간 몸의 상쾌함이 함께 일어난다. 모퉁이를 돌아 나오며 할머니가 앉아서 대야 가득히 담긴 묵을 파는 모습을 보다가 지나가는 바람이 나의 마음을 태워서 아련한 옛 시골집으로 데려가버렸다. 마음을 잃어버린 나는 껍데기만 남은 채 그곳에서 우두커니 서 있었다. 고향집 마루에선 할머니가 시장에 팔기 위해 만든 도토리묵이 대야 가득 담겨 있었고, 산에서 놀다가 온 몸에 흙투성이가 되어 돌아온 나는 배고프다고 할머니를 보채고 있었다. 할머니는 무엇이 그리 할 일이 많은지 조금만 기다리라고 했고, 기다림을 참지 못해 화가 난 나는 대야에 담긴 도토리묵을 손가락으로 휘휘 저어버렸다. 나의 심술에 화가 난 할머니는 점심 밥상 위에 내 손가락에 뭉개진 묵을 내놓았고, 나는 투덜거리며 밥을 달라고 숟가락으로 밥상을 탁탁 두드렸었다. 언제부터인가 나는 재래시장의 한 좌판에서나 길가에 앉아 도토리묵을 파는 할머니를 보면 묵맛을 보고서 도토리묵을 조금씩 사서 집에 가져오기 시작했다. 그 때는 그렇게 먹기 싫었던 그 묵이 이젠 그 옛날의 넓었던 고향집과 할머니의 기억과 함께 어우러져 나에겐 잊을 수 없는 맛으로 남게 되었던 것이다.
침팬지 연구에 평생을 바쳤던 제인 구달 박사가 왜 밥상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을까? 그녀의 평생의 연구결과가 왜 우리들의 밥상 위로 올라오게 되었는지 처음엔 궁금했다. 하지만 책을 넘겨가면서 이런 나의 궁금증은 아침에 컵에 넣은 커피가 뜨거운 물에 풀리듯 소리도없이 그렇게 풀려버렸다. 서열이 엄격한 침팬지에게 있어서조차 가끔씩 구한 육류 앞에서는 그 서열도 무너져버린다. 어렵게 구한 동물의 살을 두고서는 두목이라 할지라도 사생결단으로 덤비는 침팬지 앞에 두목은 슬며시 남는 것을 던져주기를 기다린다. 사회적 서열과 위계에 앞서 우선 입의 욕망이 동물에게 얼마나 강한 것인지 보여준다. 인간에게도 이러한 사실은 예외가 되지 않는다. 입의 욕망을 채우기 위한 식탐이 지구상의 많은 동물들(소, 돼지, 오리, 닭, 양, 칠면조 등)을 얼마나 잔인하게 양육하고 도륙하는지 나아가서 우리 지구생태계를 얼마나 급속하고 회복불가능하게 파괴하는지 보여준다.
영리한 돼지가 도축장에서 마취주사를 빠뜨린 채 컨베이어 벨트에 실려가면서 앞에서 자신을 향해 다가오는 커다란 칼날 앞에서 얼마나 떨어대는지, 얼마나 공포에 사로잡힌채 울부짖는지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너무 가혹하고 잔인하다는 생각에 고기맛이 뚝 떨어진다. 원래 체질적으로 육식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 나이지만 우리가 식용하는 소나 돼지를 비롯한 동물들의 양육과정(성장호르몬제, 유전자 변형 주사, 화학 비료에 과도한 항생제 주사까지)을 보기만 해도 인간의 입이 가진 죄가 너무 무겁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책 속에 나온 오리의 입을 강제로 벌려 위로 화학 사료를 밀어넣는 사진을 보다가 마치 내가 오리가 된 것처럼 너무 서러워졌다.
이러한 육식을 위한 숨겨진 비용과 생태계 파괴가 너무나도 크다는 사실을 우리들은 잘 모른다. 정부보조에 의한 무수한 항생제와 주사 사용, 불결한 양육과정에서 나오는 악취와 오염물질, 토지와 하천의 오염, 생태계의 파괴와 먹이사슬의 최종소비자인 인간에게 그 화와 항생제와 성장호르몬제가 쌓이고 축적된다는 사실, 그래서 신경질적이고 화를 잘 내는 우리들의 심리상태로 연결된다는 사실도 간과할 수 없다. 동물들만 이렇게 비생명적이고 위험하게 키워지는 것은 물론 아니다.
우리가 몸에 좋다고 생각하는 각종 채소와 과일, 곡물들도 유전자 변형과 화학 비료의 과다 사용과 항생제의 과다 사용으로 위험한 상태에 와 있다. 더구나 뇌가 어느 정도 성장을 완성하는 12세 이하의 아동들에게 이러한 음식이 가져다주는 위험성은 아주 크다는 사실을 빠뜨릴 수 없다. 이 책을 읽으면서 나는 우리집 아이에게 주기 위해 받아먹는 우유를 더 이상 받지 않기로 결심했다. 그리고 유기농 우유를 먹이기로 했다. 또한 우리가 먹는 식품에 대해서도 좀 더 관심을 가지고 살펴보기로 했다.
수질 오염과 바다 오염도 심각하다. 수많은 양식장과 그로부터 나오는 오염물질들은 연근해를 오염시켜 죽음의 바다로 만든다. 이 곳에서 잡은 물고기와 채취한 먹을거리가 위험한 것은 물론이다. 이미 우리들은 횟집에 가더라도 대부분 양식 고기를 먹게 된다. 나아가 오염된 어패류와 오염된 바다에서 기르는 굴과 김 바지락 등의 양식먹을거리에 대부분 노출되어 있다.
인간의 숫자가 많아졌다고해서 이렇게 된 것이 아니다. 대량생산이 필요해졌다고 해서 이런 위험한 음식이 우리들의 밥상위에 오르는 직접적인 원인이 되지 못한다. 그것은 다국적기업들이 우리들의 먹거리에 투자해서 오로지 보다 많은 이윤을 창출하는 것에만 관심을 가지기 때문이다. 이러한 자본의 악순환구조가 우리에게는 생명을 위협하는 밥상을 제공하고 지구에게는 생태계를 파괴하는 환경을 만들어내고 있는 것이다.
실천은 나에게서 아주 일상적이고 사소한 일들에서부터 시작된다. 동래 메가마트에 몇 일전에 갔다. 우연히 걷다가 유기농 식품코너를 발견했다. 아이가 먹을 과자와 사탕을 몇 개 샀다. 그리고 이 코너가 더욱 커졌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했다. 대형할인점에서도 이젠 소비자가 요구하면 유기농 코너를 만들지 않을 수 없다. 그러면 우리가 소비자로서 우리들의 권리를 유기농 제품을 요구하는 투표로서 행사하는 일이 희망이 된다. 사랑과 생명을 배반했던 입이 다시 희망의 노래를 사랑의 노래를 부를 수 있기 위해서 우리는 각자의 삶에서 작은 실천에서부터 시작해야 한다. 그것이 제인 구달 박사가 전하는 메세지이다.
내 마음을 싣고 갔던 바람 한 점이 다시 나를 그 자리에 내려놓았다. 나는 묵을 파는 할머니를 쳐다보고 있었다. 오래된 과거의 희미하지만 따뜻한 기억 속에 우리 희망의 미래가 놓여져 있다. 자연을 파괴하지 않는, 생명을 파괴하지 않는 인간적이고 아름다운 그리고 지속가능한 미래를 우리의 미래세대에게 물려주어야 하지 않을까? 손을 잡고 따라온 시윤이의 해맑은 웃음과 그의 아장걸음에서 나는 이 세대에게 우리들이 물려줄 수 있는 가장 소중한 선물이 무엇인지 묻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