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니네 방 - 내가 혼자가 아닌 그 곳
언니네 사람들 지음 / 갤리온 / 2006년 3월
평점 :
품절


  아직 우리 사회는 남성들로부터의 폭력과 억압이 팽배해 있는 구조를 가지고 있다. 여성이라는 이유로 남성들의 비위를 맞추어야 하고 남성의 성적 욕망에 복종되어야 하고 그로 인해 피해받는 현실이다. 우선 남성들의 반성이 필요하다. 이 사회에 많은 부조리와 모순이 존재하지만 성문제에서는 여성들이 주로 피해자였고 지금도 크게 다를 바가 없으니 말이다. 이 책은 우선 많은 여성들의 성적인 경험의 사례를 통해서 남성과 여성은 서로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그 상이한 성적인 욕구 중 남성은 자신이 원하는대로 충족했고 그 요구에 여성은 종속되고 복종해온 것이 지금까지의 주된 현실이라 볼 수 있다.

  그래서 우선은 여성들 스스로가 자신의 성적인 억압구조에 대해 솔직하게 말할 수 있는 담론의 공간이 필요함을 말한다. '언니네 방'은 바로 그런 공간이다. 개인적으로 겪은 성적 수치심이나 성폭력의 경험들이 외부로 표현되지 못하고 속으로만 상처를 키우는 우리 시대의 여성들이 남성의 삶의 동반자로서 보다 행복하고 건강한 성의식을 갖는 것이 무엇보다도 필요한 일이 아닐까? 나아가 여성들 스스로가 자신의 솔직한 성적 욕구를 표현할 수 있고 남자들에게 요구할 수 있는 성문화가 정착되어야 한다. 그를 통해서 이전에 남성의 몸의 욕구에만 종속되었던 성적 욕구의 평등과 균형을 통해서 비뚤어지고 병적인 사랑의 행위로부터 해방될 수 있게 된다.

  물론 그동안 우리 사회에서 터부시되고 수치스럽게 여긴 성문제를 일반 여성들의 눈으로 솔직하게 그려내었다는 점에서 이 책은 의미를 가진다. 하지만 남성과 여성의 성적인 문제가 인생의 동반자로서의 남녀의 문제를 모두 풀어내지는 않는다. 남자든 여자든 우선은 같은 사람이라는 공유부분이 있고, 그 속에서 남녀의 삶의 공통부분과 동반자적 관계가 도출될 필요가 있다. 참된 인간성을 가지고 타인의 마음을 받아들이고 수용할 수 있는 사람만이 타인의 고통에 대해서도 뭔가를 나눌려는 마음의 준비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 면에서는 우선 남자와 여자이기 이전에 같은 사람으로서 우리들의 인생의 의미를 물어야 한다.

  '세상은 어쩌자고 남자 아니면 여자일까?' 그것 때문에 생기는 문제는 또 얼마나 많은가? 그냥 인간으로서 만나면 아무런 문제가 없이 좋은 사람들도 남자와 여자로 만나면 온갖 문제들을 만들어내니 말이다. 그렇게 끌리고 좋은 점만 보이는 이성이 결혼해서 함께 생활하면 서로의 단점만 보게 되고 지긋지긋해지니 말이다. 친구일 경우 오래된 친구일수록 좋듯이 자신의 마음을 더욱 잘 알아주고 눈빛만으로도 마음을 읽어주는데 말이다. 물론 서로의 노력이 부족한 탓이리라. 서로를 진실로 이해하려는 노력...남녀가 서로간에 인간으로서 이해하고 존중하려는 노력이 전제될 때 비로소 남성은 여성으로서의 차이와 매력을 이해하게 되고 여성은 남성의 장점과 필요성을 이해하게 된다.

  이 솔직하고도 용기있는 여성들의 담론에 박수를 보내는 한편 조심스레 드는 작은 걱정 하나는 바로 이것이다. 어떻게 그간의 남성들의 잘못된 행위를 비판하건 결론적으로는 남자를 인생의 동반자로 받아들이고 사랑해야 한다는 것이다. 개인적으로 나도 성적인 욕구를 가지고 있지만 제대로 그것을 표현할 방법을 곤란스러워하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그 방법을 고민하기에 앞서 우선은 여성에 대한 인간적인 배려의 마음이 우선이고 타인에 대한 사랑이 우선이라고 생각한다. 자신의 오감의 욕구를 중심으로 그것을 채워나가려고만 한다면 결국은 이기심으로 흐를 수밖에 없고 그 각각의 이기심들이 어느 지점에서는 충돌하고 갈등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성에 대한 담론을 솔직하게 털어놓을 수 있는 '혼자만의 방'도 필요하다. 하지만 자신의 자아를 줄여가며 타인에 대한 자비와 사랑을 제대로 하기 위해 자신을 제대로 보기 위한 '홀로의 방'도 필요하다. 세상과 존재의 참모습을 바로 보아낼 때에야 비로소 나와 타인의 관계가 바로 보이기 때문이다. 그것이 제대로 된다면 내 성의 욕망을 채우는 것도 여성의 성적 욕망을 채워주는 것도 모두 허물없이 이룰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쓸쓸한 봄날 나는 지독히도 외로운 시간을 보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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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르바나 2006-04-18 09: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달팽이님, 외로우시군요.
대나무가 크게 자라려면 마디로 굵어지는 정지된 것 같은 시간이 있듯이
크게 한 번 깨달아야 하는 생활수행에 많이 힘이 드시는가 봅니다.
쓸쓸한 봄날 가운데 선열로 기쁜 날이 숨어있기를 니르바나가 기원합니다. ^^

달팽이 2006-04-18 10: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니르바나님의 글 이면에 실린 마음을 생각하니 힘이 납니다.
외로우면 외로움 속으로 들어가고 기쁘면 기쁨속으로 들어가라고 하던데..
생활에선 힘이 모자라 그런지 잘 되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세상이 훨훨 타오르는 공부의 좋은 날을 맞이하길 바랍니다.
그때까지는 노력이 필요하겠지요..
 
시대를 담는 그릇 - 한국건축의 재발견 1
김봉렬 지음 / 이상건축 / 1999년 2월
평점 :
절판


  그간 우리 나라 건축물에 대해서는 달리 관심을 가져본 적이 별로 없었던 것 같다. 간혹 유적지를 방문할 때 안내판 정도로 간략한 지식은 얻었고, 좀 더 관심이 있으면 인터넷을 통해 찾아보면 그만이라고 생각했다. 멋있는 사찰이나 서원, 향교나 고택을 방문할 때는 무엇보다 자연과의 조화감으로 와닿는 느낌들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안내자를 동승해서 다녀오는 문화유산답사는 왠지 맛이 덜할 것이라 생각했다. 왜냐하면 주어진 짧은 시간을 기나긴 설명으로 채워버리기엔 이곳 멀리까지 와서 눈과 귀를 열어두고 마음을 열어두어서 와닿는 느낌들을 간직하는 시간이 더 절실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런 시간을 더 가지기 위해서 답사 후에 관련된 책들을 찾아보는 것이 나의 기행방법이었다. 김봉렬 교수의 책도 그런 면에서 더욱 나에게 값지게 읽힐 거리였다. 물론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도 있고 때로는 지식이 사물을 더욱 잘 보게 만들어주기도 하지만 우리들에게 상대적으로 부족한 것은 지식이 아니라 가슴이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이 책은 독자가 스스로 읽어나가면서 관심있는 곳은 찾아서 볼 수 있도록 하면 좋을 책이다.

  전체적인 자연과의 조화를 고려해서 지은 집과 그 건축양식은 시대적인 유행과 기술발달 수준을 잘 보여주기도 하며 나아가서는 건축가의 개인적인 사상과 의도가 담겨진 것들이 많다. 유형으로 남아있는 건축과 유적을 접하면서 건축가의 사상과 풍수지리를 고려한 면과 나아가 그 곳에 살았던 사람들의 정신들까지 가늠해볼 수 있다면 문화답사는 제대로 된 조건을 충족시키고 있는 것이다.

  우리나라의 위대한 문화유산인 석굴암과 수원화성에 대한 이야기는 어느 정도 접해본 이야기라서 새로울 것은 많이 없었다. 하지만 수원성에 담긴 정조의 일생과 의도가 개인의 복수와 영달을 넘어 종묘사직을 생각하고 시대를 생각하는 큰 뜻을 읽어낼 수 있는 저자의 안목이 놀랍다. 나아가 신라와 백제의 건축양식의 차이점과 외래문화의 수용에 대한 일반적인 관점을 넘어서 그 곳을 주무대로 살았던 사람들의 숨결도 담아내려 했다는 점에서 우리는 건축이 유물로서만 아니라 오늘날을 들여다보는 렌즈의 역할까지 하게 됨을 알게 된다.

  하지만 그도 결국은 건축물에 대한 전문적 지식을 바탕으로 하기 때문에 그 건축물 속에 살았던 사람들의 정신과 숨결을 모두 담아내는 데 제약을 가질 수 밖에 없었음을 인정한다. 그것은 남겨진 우리들의 몫이 아닐까? 아무리 뛰어난 스승이라도 밥을 씹어 넘겨서 소화시켜줄 수는 없지 않는가? 책을 통해서 새롭게 생긴 허기와 갈증을 우리들의 마음 속에서 새로운 앎을 위한 출발점으로 삼아야 하는 것이다. 현장을 방문해서 그 숨결을 느끼고 그 뜻과 정신을 마음 속에서 되살려내고 수기의 계기로 삼는 것은 답사자의 몫으로 남는 것이다.

  우리 나라에서 지금껏 보존되고 있는 건축물들은 대체로 그 외형의 보존에만 치중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하지만 우리가 옛 유적을 찾을 때 그것이 생활로 쓰여질 때의 시대가 담겨져야 하며 그곳에 살았던 사람의 정신과 혼이 담겨져야 한다. 그래야 후세 사람들이 그 곳을 찾아서 자신의 삶을 돌아보고 새로운 교훈 삼아 성찰하는 시간들을 가지게 되지 않겠는가? 정면교사이든 반면교사이든 우선은 외형의 이면에 담겨진 정신을 발굴하는 작업들이 좀 더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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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란여우 2006-02-09 19: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앗, 절판이라뇨...1999년도간인데 벌써...

달팽이 2006-02-09 19: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러게요..하지만 불교건축은 다행히 절판이 안되었더군요..
 
소크라테스의 변명 외 - 교양사상신서 18
플라톤 지음 / 육문사 / 1991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이 책은 소크라테스의 판결에 대한 그의 변명과 죽음을 앞둔 상태에서의 그의 인생관과 삶과 죽음에 대한 견해를 피력한 것을 그의 제자 플라톤이 옮긴 것이다. 처의 서재에서 꺼낸 아주 오래된 책을 읽으면서 나는 소크라테스가 단순히 지혜로운 자였을 뿐만아니라 그가 삶과 죽음을 초월한 영적인 깨달음을 가지고 있었음을 알게 되었다. 그렇기 때문에 그는 자신의 죽음을 예견하면서도 자신에게 부여된 사명감을 한 치의 오차없이 수행하는 삶을 살 수 있었던 것이다.

  변명에서는 소크라테스를 고소함으로써 자신의 명예와 지위를 유지하려했던 소피스트들에 대한 비판과 자신의 결백을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그는 그 결백의 주장을 자신의 면책을 위한 논리로만 했던 것이 아니라 그 연설 자체를 하나의 대화법으로 함으로써 상대방이 스스로의 논리적 오류를 인지하게 하고 스스로의 도덕적인 부끄러움을 느끼게 하는 방법을 사용하고 있다. 그의 대화는 쉽고도 아름다우며 사람들의 가슴을 매료시키는 마음의 연금술이다.

  크리톤에서는 자신의 오랜 친구 크리톤이 탈옥을 위한 모든 준비를 마치고 소크라테스를 설득하지만 오히려 소크라테스는 대화를 통해 그를 어쩔 수 없이 만들어버린다. 결국 악법이라고 하더라도 자신이 신에게 부여받은 사명대로 살았던 삶에 대해 사람들에게 세상에게 떳떳하지 못할 이유가 없으며, 아테네 시민들이 내린 결정이 부당하다고 하더라도 그것을 어길 수 없다는 것이다.

  향연에서부터는 소크라테스의 정신적 세계를 엿볼 수 있는 말들이 쏟아지기 시작한다. 그는 참다운 에로스라는 것은 영원히 존재하는 것으로, 생겨나거나 소멸하는 일도 없고, 증가하거나 감소하는 일도 없다고 한다. 그것은 어떤 데서는 아름답고 어떤 데서는 추한 그런 것이 아니요, 때로는 아름답고 때로는 추한 그런 것도 아니요, 또 어떤 방향에서 보면 아름답고 어떤 방향에서 보면 추한 그런 것이 아니요, 또 어떤 사람에게는 아름답고 어떤 사람에게는 추한 그런 것이 아니라고 보았다.

  결국 그는 상대적인 아름다움이나 지혜를 떠나 절대적 아름다움이나 지혜 또는 진리가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이러한 그의 생각은 파이돈에서 더욱 나아가 삶과 죽음의 문제, 영혼과 육체의 문제에 대한 그의 생각을 잘 보여준다. 그에게는 육체란 단지 영혼에 의해 움직이는 것이며 영혼의 세계에서 살아가는 사람에게는 육체는 조절되고 영혼의 명령에 따라 살게 될 것이라고 한다. 이러한 그의 생각들이 대화법을 통해서 명쾌하게 전달되고 있다.

  이 책을 통해 나는 소크라테스의 대화법이라고 하는 진리에 접근하는 매력적인 방법을 보게 되었다. 그것은 내 삶을 살아가면서 내 스스로에게 항상 물어야 되는 물음을 주었다. 또한 그가 단순히 현자나 지자가 아니라 삶과 죽음을 불사하는 절대적 진리에 대한 내적 체험을 가지고 있었으며 그러한 점에서 그는 수행자였다는 점이다. 비록 세상이 그를 알아주지 못했더라도 그의 삶에 있어서 그가 보여준 많은 말들과 생각이 자신의 열린 눈과 마음에서 나왔던 것임을 알 수 있었다. 이런 그의 깨달음이 플라톤에게도 잘 이어지고 있을까가 궁금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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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누아 2005-11-12 22: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래 전에 이 책을 읽었어요. 제대로 알지 못했지만 소크라테스는 철학자가 아니라 수행자이며, 한 사람의 붓다라고 느꼈습니다. 심장을 울리는 구절들이 있었는데 지금은 가물가물...^^;;

파란여우 2005-11-12 22: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소크라테스....의 연속.
님의 깊은 독서가 저에게는 불가사의한 일입니다,
전 당연히(!!!) 이런 책 완독 못하죠^^

달팽이 2005-11-13 09: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누아님 동감입니다.
파란여우님, 가사의한 일이죠...
전 당연히 님이 이런 책을 완독하고도 남을 능력의 소유자라 믿거든요...
인연이 언제인가가 문제일뿐...
 
소크라테스 카페
크리스토퍼 필립스 지음, 안시열 옮김 / 김영사 / 2001년 10월
평점 :
절판


  철학은 인간 존재와 삶 그리고 세상에 대한 질문이다. 대학 시절 내 삶에 대한 진지한 고민을 놓고 철학책읽기는 나에게 있어 나를 들여다보기 위한 중요한 렌즈였다. 하지만 철학공부에 들어가기에 앞서 놓여진 무수하고 어려웠던 서양철학자들의 사상과 어려운 개념들은 거대한 벽처럼 나를 가로막고 섰고, 나는 그 앞에서 고개를 숙인채 돌아서야 했던 기억이 있다. 요즈음 대학에서는 철학과의 형편이 어렵다. 세계화와 실업난으로 취직이 안되는 철학과에 지원하려는 수험생들이 급격히 줄어들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렇게 된 원인을 사회의 탓만으로 돌릴 수는 없다. 적어도 철학이 우리 삶에 있어서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를 생활과 밀접하게 연결시키지 못한 철학교수들과 철학자들의 몫도 무시할 수 없기 때문이다. 난해한 개념과 고상한 표현들로 얼룩지고 특권화된 대학의 울타리에서 그들은 사회로 인간의 삶으로 파고들려는 노력을 게을리했음을 어느 정도는 인정해야 하리라.

  여기에 대한 비판에서 출발하여 자신의 삶과 자신의 존재에서부터 출발하여 철학하기의 새로운 방법을 사람들과 함께하는 한 젊은 철학자가 있다. 크리스토퍼 필립스는 높은 벽으로 둘러싸인 철학의 울타리를 부수고 사람들 속으로 들어간다. 초등학생들과 일반 시민, 노동자, 교수, 교사, 엔지니어, 노인들과 회사원, 경영자 등 각계각층의 사람들과 다양한 연령대의 사람들에게 과연 철학하기란 무엇인가? 그리고 그것은 우리들의 삶과 어떤 관계를 가지는가에 대해 소크라테스의 대화법을 통해서 접근한다. 그가 가진 사회적 지위나 부는 내던지고 오직 그 사람의 사유만으로 진리에 도달하려는 노력은 신선하다. 또한 철학하기란 우리에게 낯선 생각들을 보다 잘 이해시키기 위한 노력들이며 때로는 초등학생들의 사유와 상상력이 더욱 깊은 진실에 가까울 때가 많음을 보게 된다.

  이 책을 통한 카페의 대화에서 볼 때 우리들은 진리를 향해 노력에 의해 보다 가까워질 수 있으며, 그것은 어떤 고정화된 진리나 대화의 결론을 상정하지 않을 때에 가능한 것임을 알게 된다. 소크라테스 카페에서는 누구나 자유로운 자신의 생각을 한 주제에 집중시켜서 말할 수 있으며 특정한 두 사람이나 소수의 논쟁으로 만들지 않으며 질문의 내용 그 자체와 주변의 질문들에 대한 다양한 사고를 공유함으로써 자신이 가진 생각이 검증받거나 때로는 부서지는 과정을 통하여 보다 주제에 대한 이해가 넓어지고 깊어짐으로써 보다 자신을 잘 이해할 수 있게 됨을 말한다. 소크라테스의 말처럼 무지를 통한 자신의 이해는 모르면서 안다고 생각하는 사람보다 더욱 열린 생각을 갖게 하고 진리에 가까워질 수 있게 한다.

  하지만 그도 어느 정도 인정하듯이 사람들간의 사유의 교환으로 도달할 수 있는 진리에는 한계가 있기 마련이다. 따라서 나는 이 책이 주는 큰 교훈이 바로 자신에 대해 존재에 대해 물을 수 있게 만드는 힘을 기르는 데 있다고 생각한다. 하나의 질문에서 또 다른 질문을 도출해내는 능력과 자신의 무지에 대한 인식에서부터 출발한 물음이 커지고 커져서 결국에는 내가 물음 그 자체가 되도록 만드는 훈련과정이 소크라테스 카페가 가지는 의미는 아닐까 하고 말이다. 인간은 결국 물을 때에만 자신을 변화시킬 수 있고, 자신의 변화를 통한 보다 깊어진 인식과 통찰력이 삶을 보다 의미있게 만들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는 친절하게도 소크라테스 카페를 열려고 하는 사람들을 위해 구체적인 조언까지 아끼지 않고 있다. 철학의 저변 확대를 위한 것이라기보다 인간이 보다 자신을 잘 이해하게 되고 따라서 자신의 삶을 더욱 소중하고 의미있게 가꾸게 하기 위해 나아가 우리 사회와 세상의 의식수준의 성장과 아름다운 삶을 위하여 제 2의 3의 소크라테스 카페가 세상 여기저기서 열렸으면 하는 바램이 간절하다. 지구상의 작은 나라 한반도의 끝 이 곳에서도 모습은 달라도 그 동기가 같은 모임이 있고 나는 그것을 통해 삶의 길을 진리의 길을 걸어가고자 한다. 나에게 진실로 묻기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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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비소리 - 나를 깨우는 우리 문장 120
정민 지음 / 마음산책 / 200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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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아침이 늘 새롭다. 보는 풍경이 늘 새롭다. 푸른 하늘에 흘러가는 구름 한점 한점 같은 날이 없다. 만나는 사람들의 표정이 새롭고 거대한 궤적을 그리며 흘러가는 역사의 표정 또한 새롭다. 새로운 책 한 권 드는 내 마음이 새롭다. 하지만 새로운 것은 또한 새로운 것이 아니다. 겉모습이야 늘 변하기 마련이지만 푸른 하늘에 떠있는 구름 뒤의 하늘 여전하다. 사람사는 모습은 달라도 살면서 가지는 인생의 기쁨과 슬픔, 쾌락과 고통, 이상과 현실, 꿈과 현실이 별반 달라진 것이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모든 것은 내 마음 속의 떨림으로 모아지고 그 떨림은 순간 순간이 늘 새로운 것이 된다.

  정민 선생님의 책을 한 권 들었다. 사실 사놓은 지는 오래되지만 목차와 앞부분을 보니 짧은 문장의 글로만 되어서 일정한 체계와 책 한 권을 다 읽은 후에 가지는 어떤 느낌과 감정이 한 페이지 페이지 분리될것이라 생각하니 선뜻 손이 가지 않았다. 그러다가 우연히 손에 쥔 책은 한 페이지 페이지마다 그냥 읽어내리는 글이 아니었다. 나의 느슨해진 자세를 바로잡게 하고 나의 혼란스러운 정신을 바로세우니 이것은 짧고도 강력한 글이었다.

  모든 가치있는 책들이 그러하거니와 이 책 역시 나의 마음을 온 세상을 돌아다니게 하는 책이 아니었고, 나의 마음 속으로 돌아오게 한 책이었다. 남들을 어떻게 생각하고 세상이 이래서 어떻고 저래서 어떻고 하는 책이 아니라 글을 통해서 나를 되돌아보고 지금 마음을 가늠하고 단속하게 하는 글들이었다. 우리 선비들에게는 삶의 나태해지고 게을러진 마음을 질책하는 글이었고, 남을 꾸짖는 마음을 돌리어 자신을 꾸짖는 글이었다. 기능인이나 기술자가 되기 위한 글이 아니었고, 예술로 승화시키는 글이었으며 정신과 몸을 바로 세우는 글이었다. 남들에게 자신을 드러내는 글이 아니었고, 아무도 알아주는 이 없는 곳에서 자신을 수신하는 글이었던 것이다.

  우리 삶을 일깨우는 120편의 짧은 문장들로 저자는 우리들의 관성화되고 타성화된 삶을 죽비로 내려치면서 질책한다. 하지만 이 글들은 저자 자신을 바로세우는 글이기도 하다. 시간과 공간과 자아에 묶여있어 올바르고 참된 생각과 판단을 내리지 못하는 우리들에게 마음속의 양심에 떳떳하게 생각하고 행동하라고 한다. 보다 크고 원대한 마음에서 본 중요한 인생의 가치를 위해서 보다 적은 가치들에 매이지 말라고 한다. 비록 많은 글로 이루어진 사상과 이론이 아니지만 자신의 생활속에 인생의 가치를 담은 결코 가볍지 않은 이 글들은 한가하고 여유로운 주말의 오후를 엄숙하게 한다. 경건하게 한다.

  글을 읽어도 아무런 감흥을 느끼지 못하는 경우도 있고, 비록 짧은 글이라도 자신의 마음을 바로세우는 글이 있다. 결국엔 글이 마음이라는 코드로 전환되어야 한다. 그것을 바꾸는 코드는 무엇일까? 나아가 사람과의 만남도, 어떤 일을 하고 있어도, 그저 아무일없이 한가롭게 소일해도 마음은 열려 있고 깨어있게 만드는 코드 그것은 무엇일까? 그리고 왜 이런 멋진 글을 접할 때 우리는 갑자기 그 코드의 접속을 느끼는 것일까? 그것은 글의 형식이나 내용에 있는 것이 아니라 글쓴이의 마음에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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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샘 2005-09-24 14: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주역이 왜 글자가 아닌 코드로 세상을 풀고 있는 것인지, 요즘 곰곰 숙고하고 있습니다. 글로 나타낸 것은 선현들의 사상의 찌꺼기라는 장자의 말씀에 공감하면서 말입니다. 달팽이님의 글에 공감을 느끼면서 신선한 오후를 맞습니다. 주말 잘 보내시길...

달팽이 2005-09-24 16: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 선생님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