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사랑해야 하는 것들에 대하여
조은 지음, 최민식 사진 / 샘터사 / 200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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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렌즈를 통해 보여진 세상은 바라보는 이의 마음을 드러낸다. 사진은 순간포착의 예술이다. 사진작가는 가장 극적이고 감동적인 순간을 포착하기 위해 긴장의 끈을 놓지 않는다. 하지만 그런 긴장감이 최민식의 사진에서는 보이지 않는다. 가장 평범한, 가장 자연스러운 순간을 마음에 담아내어 자기도 모르게 누르는 셔터속에 담겨진 세상을 한참 응시하고 있으면 그가 펼쳐진 세상을 있는 그대로 수용하는 도리를 터득하였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그가 담아낸 사진에는 전쟁으로 인해 가족을 잃은 깊은 슬픔과 엉겨있는 상실감도 스며있고, 근대화의 과정에서 아무런 이유도 모른채 혹독한 노동과 쳇바퀴처럼 제자리만 돌아가는 벗어날 수 없는 굶주림과 생존에의 강한 갈망도 스며있다. 하지만 그의 사진 속에는 이 모든 것을 이겨내고 승화시키는 사랑의 숨결이 도사리고 있다. 그 삶의 의미를 꿰뚫어보는 깨달음이 있다. 그 사랑과 깨달음 속에서 불평등은 평등으로, 억압과 착취는 연민과 용서로 탈바꿈한다. 건널 수 없을 것같은 삶과 죽음이 그 속에서 하나가 된다. 이해할 수 없는 것이 이해되어지고, 보이지 않는 것이 마음의 눈앞에 펼쳐진다.

삶의 가장 고통스럽고 처절한 순간들, 고난과 시련의 세월을 견뎌내며 그것이 손마디에 이마에 볼에 온몸에 남긴 삶의 흉터자국들, 그것을 바라보는 그의 시선은 고통으로 찌들어 있지 않다. 오히려 그 차갑고 싸늘해지고 쪼그라든 영혼의 나무에 생명수를 뿌려 다시 가지가 돋게 하고 새싹을 틔우게 한다. 그의 따뜻한 눈빛에서 우리는 사랑을 읽을 수 있다.

그 사랑은 우리의 삶이 아무리 흙탕속에서 뒹굴고 있어도 그 삶을 통하여 우리 영혼이 정화되고 성숙되는 것을 지켜준다. 삶의 바닥처럼 보이는 비밀의 문을 지나 그 한없이 떨어지는 바닥을 한없이 치솟는 천상으로 만들어내는 마음의 비밀, 그 비밀 속에서 삶의 진정한 의미는 숨겨진 베일을 벗는다. 어둠이 빛이 되고, 절망이 희망이 되고, 고통이 희열로 바뀌는 마법의 주문은 팔과 다리를 잃고 밥 한 그릇을 위해 몸부림치는 장애인을 바라보는 우리의 마음을 아프게만 하지는 않는다.

세상 사람 모두가 제 각각의 얼굴을 가지고 있듯이 모두가 제 각각의 인생을 가지고 산다. 사진작가 최민식의 인생의 화폭을 채우는 것은 사진이다. 그 사진을 통해 세상은 그의 마음으로 반영된다. 그가 사진에서 인생을 배우고 영혼을 성숙시켜가듯이 나에게도 사진이 필요하다. 그 사진은 나에게 내 삶의 의미를 찾게 해주고 내 삶을 보다 풍요롭고 아름답게 만들어줄 것이다. 자 이제 내 사진을 찍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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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연 2005-02-06 00: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가타부타 말이 필요없이 사진작가의 시선이 담긴 사진 한 장만으로도 가슴에 그 의미가 전해진다는 것, 참 멋있는 일인 것 같습니다...최민식 님의 사진들은 그런 심정을 절렬하게 느끼도록 하는 힘이 있지요..

달팽이 2005-02-06 11: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 동감입니다. 오랫만이군요...비연님...

달팽이 2005-02-06 20: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ㅎ, 고마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