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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에 관하여
수잔 손택 지음, 이재원 옮김 / 이후 / 2005년 2월
평점 :
우리가 살아가는 삶의 경험들은 순간 순간 변하고 한 순간 만들어졌던 세상은 한 순간마다 허물어지고 새로운 세상이 만들어진다. 현재는 순간 과거로 변하고 우리는 잡을 수 없는 현실 속에서 허무함을 느껴야만 한다. 그래서 우리는 현재를 붙잡아두고 싶어한다. 미래를 붙잡아두고 싶어한다. 이런 이유로 우리는 삶의 소중한 기억들을 사진이라는 매체를 통해 남겨두고 싶어한다. 대학교 시절, 신문에는 한 사회적 쟁점을 두고 찬, 반의 많은 논리들이 가득차 있곤 했고, 우리 사회에 대한 관심과 애정을 가져야 하는 사회학도로서 나는 늘 논리로서 무장한 글들의 범람으로 지쳐야만 했다. 바로 그 때 잡다한 논리와 수많은 잉크로 채워진 글들을 일축시키고 단 한 컷의 카르툰으로 보여주는 박재동의 만화는 그야말로 무릎을 치게 하는 것이었다. 사진의 매력은 바로 여기에 있는 것이다. 베트남전의 만행을 다룬 수백시간의 텔레비전보다 훨씬 더 반전여론을 들끓게 만들었던 것이 후잉 콩 우트의 "전쟁의 공포"라고 하는 사진 한 장이었듯이(미군의 네이팜탄을 맞은 뒤 두팔을 벌린 채 고통으로 울부짖으며 도로로 뛰어나오던 어느 벌거벗은 남베트남 어린아이의 정면사진)...
우리는 삶의 한 장면을 기억하고 싶은 기념식, 입학식, 졸업식에서 사진을 찍는다. 여행갔을 때에도 우리는 빠뜨리지 않고 카메라를 챙긴다. 그럼으로써 한 순간에 흩어져버리는 삶의 체험을 소유할 수 있다고 믿게 되며, 그 찍힌 사진의 이미지를 영원히 간직할 수 있을 것이라고 믿는다. 우리들이 삶에서 갖게 되는 체험들은 늘 정지된 사진과 같이 뇌속에 기억되며 다시 불러들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기억들의 기록으로서의 사진은 객관적인 것이라고 믿는다. 하지만 똑같은 사진기를 사용하여 똑같은 풍경을 담은 사진이 제각각 천차만별의 차이를 가지는 이유를 우리는 간과하고 만다. 그것은 객관적이라고 여겼던 사진이 주관적인 과정을 통하여 이루어진다는 사실에서 비롯된다. 풍경과 세상을 바라보는 그 사람의 태도와 가치관, 정신세계가 바로 한 장의 사진 속에 고스란히 담겨지게 된다. 사진을 찍는 사람이 플라톤의 동굴 속에 있다면 그 사진 역시 플라톤의 동굴의 풍경일 것이다.
삶은 이미지로 구성된다. 우리가 감각으로 대하는 세상은 결국 이미지이다. 그리고 그 이미지의 축적이 우리의 일생이다. 하지만 이미지 속에 과연 모든 것이 담길 수가 있을까? 사람들은 그 이미지 속에 객관적으로 존재하는 현실과 세계가 담겨질 수 있다고 믿는다. 나아가 잘 담겨진 이미지는 현실보다 더욱 현실적이라고 믿는다. 그래서 진짜 꽃을 대하는 것보다 꽃 사진이 더욱 아름답고 감동적이라고 여기며 사람을 대하는 것보다 그의 잘 찍힌 사진에서 더욱 호감을 느끼게 된다고 한다. 이제는 삶의 경험들이 이미지로서 상품화되고 상품화된 이미지야말로 우리가 삶을 진실로 경험하게 되는 방법이라고 말한다. 왜냐하면 물질적 삶을 체험하고 느끼게 하는 인간 존재의 그 무엇이 이미지화된 세계도 똑같이 체험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똑같은 한 장의 사진을 접하면서도 삶의 아름다움과 정신적 각성을 이루는 사람이 있는가하면 단지 외면해버림으로써 아무런 존재의식없이 볼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이미지화된 삶을 살아가는 방식과 하나도 다를 바가 없다.
우리들의 삶은 무엇인가? 삶을 체험하는 내 속의 무언가가 그것을 물질적인 삶을 거쳐 뇌속의 이미지로 만들기도 하고 때로는 이미지화를 거친 사진과 영상을 통해 그것을 받아들이게도 한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그 이미지를 받아들이는 우리들의 존재 속에 그 무엇인가가 있어 삶의 경험들을 이미지로서 받아들이고 또 지우고 또 받아들이며 지우는 과정을 끊임없이 해대고 있다는 것이다. 그것은 이미지가 수없이 나타났다가 사라지는 스크린이기도 하고 디지털카메라의 메모리이기도 한 그 무엇이 우리 인간 존재의 심연 속에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것을 통해 우리는 자기가 이미지화된 세계를 수용하여 삶을 살아가더라도 이미지에 속지 않고 삶의 파란에 휘둘리지 않고 좀 더 넓은 자아로서 여유를 가지고 인생을 즐길 수 있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