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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균의 종말 - 평균이라는 허상은 어떻게 교육을 속여왔나
토드 로즈 지음, 정미나 옮김, 이우일 감수 / 21세기북스 / 201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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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는 흔히 산업화시대의 산물로서의 학교교육의 부정적인 측면을 이야기한다. 누구나가 대량생산공장에서 찍혀 나오는 빵과 같이 표준화되고 개성없는 산업현장에서 기계화된 인간으로 만들어지는 것이 중요했던 시절의 산물이다. 그러나 세상은 변화하고 굴지의 세계기업들은 신입사원을 뽑을 때 학벌이나 스펙을 지워버리고 조직 내의 각 직원들과의 의사소통을 늘려나갔다. 그 결과 흙 속에 감추어진 진주같은 일꾼들을 뽑을 수 있었다.

 

  물론 평균주의를 비판한다고 해도 그것이 사회에 가지는 의미와 그것을 폐기해야 할 부분들에 대해 더 깊은 고민이 필요하다. 재난에 대해 표준화된 매뉴얼이 필요하고 직무능력을 기를 때 표준화된 교육방법과 그것을 달성하고자 하는 능력에 대한 표준화된 단계도 필요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때로는 표준화된 지식과 능력에 대해 일정 단계까지 그것이 필요하다는 논리도 또한 의미는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모든 사람들이 조기교육으로 김연아나 박태환이 될 수도 없을 뿐더러 그렇게 모든 국민을 길러내는 것이 바람직하지도 않기 때문이다..

 

  평균의 종말은 이 사회의 패러다임의 변화에 따른 구 잔재로서 남아있는 영역에 대한 메세지로는 분명하고 의미가 있다. 대표적으로 학교 교육은 그러한 평균적 인간을 길러내는 중요한 통로로 사용되어 왔다. 달라진 사회의 요구, 개개인의 들쭉날쭉성에 따른 개인성장의 불규칙성과 인생의 각각의 의미와 성장을 생각할 때는 평균적 강요가 폭력이 되고 인생의 학살이 될 수 있다. 이미 세상은 많은 학교 교육을 거부하고 있다. 피라미드식 학교교육과 컨베이어벨트식 학교 교육에서는 승자는 늘 소수의 한 명이 될 뿐이니까.

 

  우리의 교육 현실에서도 변화는 감지되고 있다. 전체순위와 석차를 만들지 마라고 한다든지 학생참여식 자기주도적 학습과 수업으로의 전환이라든지 진로와 연계한 학습동기부여와 그에 따른 적성에 맞춘 진학의 유도 등 교육계에서도 많은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하지만 이런 변화는 세계의 변화에 따라 그저 겨우 바뀌고 있을 따름이다. 교육은 늘 속성 자체가 보수적이고 따라서 다른 모든 사회 변화의 끝에서 변화하지 않을 수 없어 꼬리를 자르는 식으로 늘 변해왔기 때문이다. 그래서 여기에서 말하는 학벌과 계층의 되물림이 사라진 사회에서는 자신의 직무능력과 열정에 따라 직업을 구하게 된다.  거기에 따라 교육적 비효율성의 상징인 종합대학에서 4년의 비싼 등록금과 세월을 낭비할 필요없이 자신에게 맞는 자격증을 취득하여 미래사회에 대비해야 하는 점은 우리 교육계에 많은 것을 시사해준다.

 

  하지만 미래 사회가 이러한 평균의 종말을 전 사회적으로 가져올 것인지에 대해서는 의문이 있다. 오히려 전 사회계층은 부의 되물림 교육의 되물림을 또 다른 형식으로 재생산해내게 될 것이고 또 그런 과정에서 평균주의의 이데올로기는 우리 사회를 다른 방식으로 지배할 가능성도 있기 때문이다. 분명 보다 많은 부와 좋은 지위를 가진 사람은 이러한 미래 사회의 능력을 갖추는 데 있어 평균이상의 기회를 갖게 될 것이고 그것은 또 다른 평균주의를 낳게 될 가능성이 되기 때문이다. 우리 스스로가 깨인 자각으로 그런 것에 마음을 뺏기지 않고 스스로 당당하게 삶을 살아가게 될 때 비로소 허상없는 가치가 세상을 지배하지 않는 세상이 오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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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의 시험 - 대한민국을 바꾸는 교육 혁명의 시작
이혜정 지음 / 다산4.0 / 2017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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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한민국의 시험제도는 적정한가? 대한민국의 교육은 지금 새로운 세기가 진행되고 있다. 그 세기에 한국의 성장은 이미 정체되었고 사회는 고령화에 저출산 현상으로 인해 한국의 미래는 암울하다. 한국이 더욱 눈부신 성장을 하는 것은 요원한 일이 되어버렸다. 한국의 저성장과 정체성을 벗어나기 위한 두 돌파구가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하나는 한반도의 통일이다. 그로 인한 남북경제협력과 교류는 세계의 자본과 에너지를 한반도로 모여들게 할 것이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보다 먼 미래를 준비하는 과정이 우리나라 내부의 혁명, 즉 교육 혁명이다.

 

  저자는 한국 교육의 문제점을 교육학자로서 그리고 아이를 키우는 어머니의 입장에서 또한 한국 엘리트주의 교육에서 엘리트로서 서울대 출신으로 가지는 이데올로기를 모두 한 몸에 가지고 한국 사회의 교육 현실을 적나라하게 분석해간다. 일반 교육 과정을 포기하는 아이들이 늘어나고 있고 아이들이 더 이상 교실에서 배움을 거부하고 학교생활에 행복해 하지 않고 더 이상 수업에 의미를 두지 않는 현실은 우리 사회의 미래를 더 절망스럽게 한다. 이런 문제는 어디에서 출발하고 있고 도대체 어디에서 바꾸어야 할 지에 대해 이 책은 명확히 보여준다.

 

  교육제도의 핵심은 대학입시이고 그 대학입시의 관문은 대학수학능력시험이다. 이로 인해 수많은 수험생이 목을 매어 공부하고 인생을 바친다. 하지만 이 평가방법은 나아가서 대한민국의 모든 학교에서 일상화된 평가 방법으로는 한국 교육의 고질적 문제를 고칠 수 없다고 말한다. 오히려 평가방법을 바꾸어야만 대한민국의 교육이 살아나고 또 한국의 미래도 살아날 수 있다고 한다. 배움을 거부하는 교실엔 일방적으로 교과의 내용을 주입시키려는 교사가 있다.  그동안 많은 연수와 책을 통해 나름대로 나도 수업방식의 개선을 꾀하고 있다. 아이들이 스스로 공부하려는 마음이 없다면 그 어떤 형식의 수업도 의미가 없을 것이고 아이들이 배우려는 열정과 의지가 강하다면 또 어떤 형태의 수업도 최고의 결과를 가져올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21세기를 살아가는 지금, 미래의 직업환경이 요구하는 능력을 학교가 아이들에게 길러주어야 한다는 요구는 현실이다. 아니 길러준다는 표현보다 아이들이 스스로 자신의 능력을 끄집어내도록 교육환경과 수업환경을 구성해야 한다는 것이다. 수동적인 학습 습관을 능동적인 학습 습관으로 바꾸어야 한다. 따라서 열린 마음으로 세상의 변화를 수용해야 하고 또 그에 따라 자신의 수업을 바꾸어야 하는 것은 이 시대 교사의 소명이다. 그 변화의 정점에 시험이 있다. 평가방식의 변화가 학습방법의 변화를 가져온다. 나부터 바꾸어보자.

 

  대한민국의 새로운 출발점은 시험의 변화이다. 그리고 교육의 변화이며 그에 따라 달라질 아이들의 변화이고 그 아이들이 성장해서 일구어낼 한국 미래의 변화이다. 그 변화의 출발점이 지금 교육환경에서 평가인 시험을 바꾸는데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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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의 영혼을 위한 닭고기 수프
잭 캔필드.마크 빅터 한센 지음, 에이미 뉴마크 엮음, 최선경.김병식 옮김 / 지식프레임 / 201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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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책은 선생님들의 이야기로 교사들에게 감동을 주는 책이다. 나는 왜 교사가 되었을까? 제대로 가르치지도 못하고 그래서 제대로 교사가 되어본 적이 없는 나는 왜 교사가 된 것일까? 하고 나에게 묻게 되었다. 나아가 제대로 살아본 적도 없는 나는 왜 살아가는 것일까? 하고 또 묻게 된다. 이 책은 어떻게 보면 힐링의 책일 수 있지만 어떤 면에서 보면 다시 막중한 책임감을 느끼게 하는 책이기도 하다. 한 사람의 가장으로서 제대로 사는 것이나 한 인생으로 건강하게 사는 것이나 한 교사로서 학생들과 보람있고 가치있는 학교생활을 하는 것은 다르지 않는 일임을 알기 때문이다.

 

  이 책의 이야기들은 하나 하나 감동적이다. 교사가 교사의 봄분으로 가르치는 것을 행복으로 느끼며 그것에서 보람을 갖는 이야기들도 있다. 그러나 더욱 감동적인 것은 교사가 한 인간으로서 학생을 한 인간으로 다가갈 때 마음이 열리는 순간이다. 그것은 만남으로 인해 영혼의 떨림이 시작되는 순간이고 이렇게 영혼이 떨린 이후는 다른 사람으로 거듭 태어나는 사건이 되기 때문이다. 아이를 바꾸는 것은 교사의 전문적 지식이 아니라 그 지식으로 포장된 열정이며 또 그 지식을 인연으로 만난 한 영혼과 다른 영혼의 만남이기 때문이다,

 

  한 영혼과 다른 영혼이 만나 한 영혼이 성숙해간다는 것은 참으로 아름다운 일이다. 우리는 간디와 비노바바베에서 영적 스승과 제자와의 관계에서 그 삶의 가치로움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그것이 어느 뛰어난 영적 스승이 아니라 평범한 두 영혼이 만나 이렇게 아름다운 일을 이루어낼 수 있다는 것이 바로 교육현장의 매력이 아닐까 하고 생각하게 된다. 두 따듯한 영혼이 만나든 한 영혼과 상처입은 영혼이 만나든 사랑으로 품어서 성장하길 바라는 마음이 이런 위대한 기적을 만들어낼 수 있다는 사실에 놀란다.

 

  그러고 보니 난 참으로 어리석은 영혼이다. 이런 세상의 진리가 도처에 있는데도 내 마음이 깨어 있지 못하여 소중한 순간의 인연들을 얼마나 놓치고 사는 것일까? 물론 그것이 의도적인 것이어서는 곤란하겠지만 따듯하고 사심없는 사랑의 마음이 이루어낼 수 있는 위대함에 대해 그리고 우주가 만들어내는 이런 기적에 대해 우리는 아는 것이 너무 적지 않은가? 어느 거창한 무대를 필요로하는 것도 아니고 내 열린 마음 하나가 출발점이 되어 이루어지는 인연들에 감사하며 살 때 어쩌면 그 기적들은 잠재된 형태로 우주에서 늘 만들어지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반짝이는 눈빛, 스스로 해냈다는 성취감, 그리하여 아픈 아이가 스스로의 힘으로 교사의 필요없이 떳떳한 성인으로 성장해가는 것....어쩌면 그것은 영혼의 성장에서 성인을 만나 범부의 삶이 진화하는 모습과 닮았다는 생각이 든다. 우리 모두는 성인이 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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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최고의 교사입니다
레이프 에스퀴스 지음, 박인균 옮김 / 추수밭(청림출판) / 201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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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 직장에 30년을 근무하면 그것이 어떤 일이든 그 분야에서는 전문가나 베테랑이 된다. 그러나 교육에서는 그것이 힘들다. 왜 그럴까? 19세기의 교육현장에서 20세기의 교사가 21세기의 아이들을 가르친다는 표현처럼 교육만큼 복잡한 환경도 드물기 때문이다. 처음 교사가 되어 교단에 첫 발을 내딛을 때 그 자신감과 희망과 아이들에 대한 사랑은 정말로 크다. 그러나 5년쯤 되는 교사가 되었을 때 갈림길은 시작된다. 지금까지 온 길을 그대로 써먹을 것인가? 지금부터 변화할 것인가?

 

  에스퀴스 선생님은 미국의 경제적 환경이 좋지 않은 초등학교에서 평생을 근무한 베테랑 교사로 알려져 있다. 그가 이 분야에 베테랑이 된 데에는 특별한 이유가 있다. 그 무엇보다 그는 흔들림없는 교육철학을 갖고 있다. 그가 처음 열정을 가지고 교단에 들어섰을 때 자신의 열정을 이해하지 못하는 학부모가 학생들 앞에서 그를 욕하고 갔을 때 보통 교사들은 촤절하고 만다. 그러나 그는 그러지 않았다. 그리고 그 학생에 대해서도 그가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했다. 부모는 부모고 학생은 자신의 교육철학이 적용되는 목표이고 대상이기 때문이다. 부차적인 문제에 휘둘리지 않고 교육의 목적에 충실하는 것.... 그것은 말처럼 쉽지 않다. 그가 대단한 이유는 그것을 몸소 행동으로 오랫동안 실천해왔기 때문이다.

 

  이 책을 읽으며 나 자신의 모습을 많이 되돌아보게 되었다. 그리고 지금도 나 자신을 바라본다. 내가 학교에 와서 교실에 들어갈 때 가장 나의 중요한 포인트는 무엇인가? 수업인가? 학습 내용인가? 아니면 학생들인가? 그 중심이 학생들에게 있을 때라야 비로소 학습내용도 수업형태도 의미있어진다. 그 열정으로 56반을 운영하고 방과후의 학생들과 연극을 목적으로 열정적으로 상호교류하여 일구어낸 결과는 그야말로 멋지다. 비록 그처럼 멋진 결과를 낼 수 없어도 그같은 열정과 노력과 아이디어만으로도 그는 최고의 교사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많은 교사들을 만난다. 학생들과 똑같은 감정으로 다투는 교사도 있고 자신의 이익만을 추구하는 교사도 있다. 자신의 고집 속에 학생들을 붕어빵처럼 찍어내기를 원하는 교사도 있고 나아가 교단에 잘 어울리지 않는 품성을 가진 이들도 있다. 하지만 그 무엇보다 학생들을 사랑하고 그들의 배움에 열정적이고 수업 이외의 에너지와 열정으로 학생들을 만나가는 교사들을 볼 때마다 나는 숙연해지고 한편 자랑스럽고 또 한편 나에게 주어진 숙제를 느끼게 된다. 젊은 교사의 열정도 나이 든 교사의 노련함도 그 겉모습을 떠나 그 목표가 어디에 맞추어져 있는가를 보게 될 때 좀 더 우리는 바른 방향을 찾을 수 있다.

 

  학교를 자기 삶의 밥벌이의 수단으로 삼지 않고 자아실현의 공간으로 삼는다면 나아가 타인의 성장에 도움되는 곳에 중심을 둔다면 그리고 그 과정 속에 자신의 많은 것을 희생할 줄 아는 교사가 많다면 그 사회의 미래는 밝을 것이다. 그가 졸업생이 되어 다시 학교에 그 고마움을 표현하든 말든 더욱 중요한 것은 그 아픔을 딛고 자란 그 아이가 사회의 일원으로 성숙하게 자라 그 사회를 더욱 밝고 희망차게 살아가는 것만으로도 그 가치는 충분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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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우리는 대학에 가는가
EBS [왜 우리는 대학에 가는가] 제작팀 지음 / 해냄 / 201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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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젊은이는 아프다. 아니, 이 시대의 젊은이는 아프다. 혼자서 점심을 먹고 시간을 쪼개어가며 즐겁지도 않은 공부를 하고 스펙쌓기를 하고 또 직업을 찾아 헤맨다. 초등학교때부터 공부 공부 하는 강요와 내 인생을 위해선 공부 밖에 없다는 암묵적 동의로 입시교육환경 속으로 빠져들면서부터 특목고 대학 취업으로 이어지는 통로를 지나야 한다. 그 통로를 세상 모든 사람들이 다 지나가고 또 그 길만이 우리를 행복하게 만들어줄 것이라고 생각하며 대학에 들어가기 위해 기를 쓰고 노력한다.

 

  그런데 대학에서 길을 잃어버렸다. 서울대학에 오면 인생의 고민이 끝이 날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란다. 지방대학에서도 자기만 열심히 해서 실력을 갖추면 그만일 것이라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란다. 외국의 유명대학에 나오고 스펙을 많이 쌓으면 될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란다. 이런 저런 학벌과 스펙도 없는 나는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단다. 대학이 어느 때부터인가 절망과 좌절을 경험하는 공간이 되어버렸다. 행복하게 자신의 인생을 설계하고 진로를 결정하고 직업을 선택하는 공간이 아니라 어찌됐든 좋은(??) 직업을 선택해서 잘먹고잘살아야 하는 수단으로 전락해버린 것이다.

 

  그런데 정작 대학입시를 보며 달려온 학창시절 모두가 부정되면서 생기는 깊은 절망감을 극복하기가 너무 힘들다. 세상이 원한다고 해서 그 길을 열심히 달려왔는데 이제 그 세상이 외면한다. 그러니 인생이 위축되고 대학생활이 힘들다. 도대체 어디서부터 꼬여버린 것일까? 기업이 요구하는 인재는 무엇일까? 기업이라는 조직에 분명 비용보다 효율이 큰 사람이겠지. 그게 기업의 이윤논리이니 그 사람의 연봉만큼 아니 그보다 훨씬 더 많이 기업에 이득을 안겨다줄 사람일 것이다. 그 인재라는 것은 현 시대에 과연 무엇일까?

 

  최근에 오면서 기업에서도 창의성과 열정, 인성과 긍정성의 가치를 중요시하고 있다. 그런데 이런 덕목이란 것이 대부분 자신에 대한 바른 이해와 자아존중감과 긍정성에서 나온다. 그리고 이런 덕목은 세상의 기준에 흔들리지 않는 자신에 대한 이해와 기준이 있을 때에 비로소 만들어진다. 그런데 우리들은 단 한 번의 실패도 용납되지 않는 사회에서 한 번의 실패에 가로막혀 더 이상의 희망을 발견하지 못하는 청춘들을 보게 된다. 그럴 때마다 안타깝고 슬픈 마음을 금할 수 없다. 자신에 대한 긍정성과 희망과 실패로부터 배워서 더욱 나아가려고 하는 의지와 삶 전체에 대한 신뢰와 긍정이 바로 미래 사회가 요구하는 인성이라면 그것을 배우는 학교교육은 잘못되어 있다는 것이 된다.

 

  멘토들을 통해서 다섯 대학생들이 자신감을 가져가는 과정을 보게 되었다. 누구나가 태어나면서부터 가지는 기질은 장점과 단점이 있다. 때로는 장점이 단점이고 단점이 장점이다. 어느 면에서 보느냐에 따라 달라지기 때문이다. 그러나 자신의 기질과 자신으로부터 배우려는 의지와 열정이 있다면 그것이 바로 인재의 기준이 된다. 인재는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지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자신의 삶에 대한 긍정과 자신에 대한 신뢰로 끊임없이 도전하고 용기를 잃지 않는 자가 결국은 세상의 기준으로도 인재가 된다.

 

  스티브잡스, 빌게이츠, KFC 창업자 커넬 샌더스, 광고천재 이재석 등을 보라. 얼마나 많은 실패를 거듭하고도 절망하지 않고 그 실패에서 배워 더욱 스스로를 업그레이드 시켰는지....우리들은 아니 우리 사회는 너무 작은 실수도 용납하지 않고 실패의 미덕을 인정하지 않고 실패의 교훈을 되새기지 않아 그 실패 한 번에 쓰러지게 만드는 것이다. 그래서 그 세상의 장애물을 받아들이지 말고 스스로 거기에 기꺽이지 않고 자신을 끊임없는 긍정과 꿈의 희망으로 가져가는 것이 미래사회가 요구하는 인재가 된다. 그럴려면 자신에 대한 깊은 이해가 필요하고 나아가 인간 존재에 대한 깊은 이해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마지막으로 대학에서의 배움과 가르침에 대해 지면을 할애하고 있다. 과연 우리들의 배움터는 문제가 없는가? 우리 교육이 문제라면 그 대안적 교실을 또는 대안적 배움을 실현하는 모델들은 어떤 것이 있는지 소개하면서 마무리를 짓는다. 이스라엘의 하브루타 교육법, 조벽 교수님의 교수법, 샌델 교수님의 교수법 등 틀에 박힌 수업을 탈피하고 새로운 도전을 하고 있는 교수님들의 수업을 소개하면서 진정한 배움이란 무엇인지 묻고 있다. 더 나아가 진정한 삶이란 무엇인지 생각하게 한다. 왜 대학에 가야 하는가? 의 물음은 모든 연령대의 사람들에게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하는 물음을 묻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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