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움을 훔치다 - 김수남이 만난 한국의 예인들
김수남 지음 / 디새집(열림원) / 200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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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옥진의 표정사진과 밀양의 병신춤, 한영숙의 승무 사진이 오랫동안 기억에 남는다. 단 한 장의 사진을 보면서 예술가들의 혼이 그대로 드러난 것을 본다. 동시에 그 혼을 담을 수 있는 김수남 사진가의 영혼의 몰입도 함께 본다. 과연 사진 한 장에 어떻게 이런 장면을 담아낼 수 있는가? 그것은 사진가 김수남의 굿이나 무, 극, 소리를 감상하면서 영혼이 몰입되어야만 뽑아낼 수 있는 장면이다. 그러기 위해선 30년이라고 하는 오랜 세월동안 쌓이고 쌓인 경륜의 탓도 무시할 수 없지만 무엇보다도 예능인들의 삶과 무대에 대한 혼적인 끌림과 관심이 없이는 불가능했던 일이 아닐까 하고 생각해본다.

  조국에 밀어닥친 서양화와 근대화의 물결 속에서 한 시대의 예능을 이어왔던 이들의 마지막 세대로서 살아온 그들. 그 시대가 저물어가는 세월 속에서 사람들의 천대와 무관심속에서의 어렵고 고달픈 삶 속에서도 그것을 하지 않고서는 삶의 의미를 찾을 수 없었던 그들. 자신의 온 삶을 내던져서 자신의 혼을 끌어당기는 그 길을 따라 걷지 않을 수 없었던 삶 속에서 세월속에 뼈를 깎는 노력 속에 한과 슬픔을 예술로서 표출했던 그들. 자신들이 마지막 시대일지도 몰라 자신에게서 그 예술미를 정점으로 한껏 승화시키고자 했던 진정한 예술가들 그들 앞에 단순한 기능으로 지식으로 전문가입네 예술가네 하고 허세를 부리는 우리들의 모습은 얼마나 초라한가?

  부모나 집안이 예능가였던 사람이나, 집안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그 길을 걸어갔던 사람이나 무엇보다도 자신의 영혼의 이끌림에 의해 자신도 어쩔 수 없이 길을 걸었던 사람들, 따라서 기예나 기술을 넘어 자아를 버린 상태에서 무의식이나 그 너머의 힘이 드러나도록 펼쳐보인 그들의 예술은 우리 사회에 참다운 예술이 지향해야 할 바를 사라져가는 옛 것 속에서 넌지시 드러내준다. 그들의 춤사위 속에는 이미 그들의 자아는 없다. 그들이 알 수 없는 어떤 힘들이 그들을 움직이고 그것을 보는 우리도 또한 어떤 몰입의 느낌을 뒤따라가게 된다.

  그것은 김수남 사진가의 눈으로써 포착된 것이기에 가능한 것이었다. 그 기운이 온 무대를 사로잡으며 뻗쳐가는 순간을 어떤 기술과 지식으로 포착해낼 수 있을 것인가? 다만 무대에의 몰입과 무아적인 찍기가 이루어낼 수 있는 것이 아닐까? 참다운 예술가의 기질은 무대 위에 있는 자나 그것을 파인드에 담아내는 자 모두에게 갖추어질 때만이 이런 사진이 탄생할 수 있는 것이다. 서로를 비추는 구슬에 때가 끼지 않을 때 하늘에 떠 있는 하나의 달이 온 구슬에 비쳐져 백 개 천 개의 달이 될 수 있듯이....

  이제 우리는 어디에서 이런 사진들과 같은 문화를 향유할 수 있을 것인가? 사라져가는 것에 대한 애절함과 쓸쓸함은 늘 우리에게 인생의 참된 의미를 되묻곤 하는데, 자신의 삶과 인생을 자신의 예술 속에 쏟아부어 승화시키고자 했던, 그래서 한 시대를 풍미했던 우리들의 예술가들의 떠나감과 그 문화의 소멸이 그것을 지켜보는 우리로 하여금 깊은 아쉬움과 슬픔에 빠지게 한다. 모든 것이 피었다 지는 세상, 그래서 또 다른 예술가가  또 다른 예술로 자신의 인생과 한과 슬픔을 담아내겠지만 우주에 핀 꽃 한 송이, 다시는 똑같이 피지 않을 그 한 송이 꽃이 지는 데 어찌 슬프지 아니하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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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란여우 2005-08-22 22: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이 책 읽고 (글은 순식간에 읽히지만)
사진은 오래오래 들여다 봐야 하죠..
암튼, 명치끝이 찌리릿 했어요...울컥하기도 했구요.

달팽이 2005-08-22 23: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영혼이 몰입되는 것에서 이미 파인드에 담겨지지 않더라도 상황은 끝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 다음 일은 파인드에 담겨지든, 글로 적혀지든 단지 그것을 표현하는 것이 될테니까요... 그런 면에서 사진을 오래 들여다보면서 그 장면 속으로 들어가는 것이 중요하겠지요...찌릿한 느낌...오직 그 뿐입니다.
 
곽재구의 포구기행 - MBC 느낌표 선정도서, 해뜨는 마을 해지는 마을의 여행자
곽재구 글.사진 / 열림원 / 200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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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포구란 어떤 공간일까? 여행을 다니면서 포구가 나타나는 곳이면 늘 마음이 먼저 그 곳에 가있는 경우가 많다. 더구나 노을이 질 때 바다위로 펼쳐지는 붉은 하늘을 쳐다보고 있으면 꽃천지의 하늘이 되어 내 가슴도 붉어지게 되는 것을 느낀다. 그 붉은 노을을 쳐다보며 싱싱한 해삼과 멍게를 놓고 소주한잔 하면서 불어오는 시원한 바람을 맞으면 어느새 세상 시름이 모두 씻겨져내린다.

  포구는 육지가 끝나는 곳이다. 바다와 접하는 곳이다. 그래서 육지에서 있었던 온갖 시름을 풀어놓는 곳이다. 그 육지의 시름들을 일과가 끝나는 해저물녘에 노을과 함께 바람과 함께 풀어놓으면 강물이 흘러 바다에서 자신의 몸을 벗고 바다가 되듯이 그렇게 자신을 놓아버리고 바람이 되고 노을이 되고 바다가 된다. 포구는 이렇게 삶속에 지친 우리들의 영혼을 누이는 곳이다. 그 놓인 영혼이 충분한 쉼을 얻어 다시 생활로 삶으로 돌아가는 원기를 보충하는 곳이다.

  포구에서의 사람들과의 만남도 빼놓을 수 없다. 곽재구 시인도 역시 포구마다 잊혀지지 않는 사람들과의 기억들을 가지고 있다. 소리꾼 조공례할머니라든지 2000원짜리 세상에서 제일 맛난 팥죽과 순임씨, 바다를 사랑하는 그리고 시를 사랑하는 어부 정씨 등 포구를 바탕으로 삶을 일구어가는 억척같은 아낙들과 한많은 사람들의 인생살이의 고달픔이 있다. 하지만 바다에서 그 억척스러움과 한스러움 고달픔은 모두 포용되고 만다. 바다란 그런 공간이다. 삶의 모든 것을 포용하는 바다와 그 기운을 처음 맞대고 사는 동네가 바로 포구인 것이다.

  포구의 어제 오늘은 많이 달라졌다. 자연적으로 형성된 포구의 원래모습이 남아 있는 곳이 거의 없어졌다. 관광지가 될수록 사람들이 많이 찾을수록 높은 건물과 음식업, 숙박업이 들어서게 되고 그러면서 원래의 자연풍광을 잃어가는 것을 어찌할 수 없다. 하지만 그 어찌할 수 없는 인간의 욕망이 때로는 서글프기만 한 것을 또 어찌할 수 없다. 이리 저리 풍경을 가리는 건물들 사이로 언뜻 조각만한 풍경들이 눈에 들어오면 막혀버린 건물들이 또 내 가슴도 꽉꽉 막혀버리게 한다. 어쩌겠나. 세상 사람들은 또 그들의 방식으로 삶을 일구어가는 것인데....하지만 가진 것도 없이 몸뚱이 하나로 억척스런 삶을 살아가면서도 사람의 정을 잃지 않는 토박이들이 자신의 보금자리를 빼앗겨가는 것을 지켜보면 가슴아픈 일을 어찌할 수 없다.

  삶을 살다가 간혹 정이라고 하는 것이 생기게 되면 사랑이라는 감정이 생기게 되면 우리는 그것이 사는 중요한 의미가 되기도 한다. 하지만 그때문에 지불해야 하는 빚도 만만치 않다. 좋은 감정 때문에 생기는 감정의 굴곡과 밑바닥 감정까지도 다 싸안고 살아야 하니 말이다. 때로는 그 호오의 감정없이 그냥 모두 내려놓은 채 내가 바람이 되고 노을이 되고 바다가 되고 구름이 되고 풍경 그 자체가 되고 싶을 때가 있다. 뭐 대수인가? 이렇게 살다 나도 한 줌 재로 변하고 말 것인데...그깟 육체 평생 달고 얽매여 살면서 한 순간 쯤 놓아버린다고 어떻게 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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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caru 2005-07-30 18: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깟 육체 평생 달고 얽매여 살면서 한 순간 쯤 놓아버린다고 어떻게 될 것인가?
키햐~
ㅇㅣ 책 저도 있습니다... 한 순간쯤 ...이눔의 육체를 놓구 싶을 때...읽구...훌쩍...해버릴려고... 아껴 두었다고 말한....다면..거짓말일까...

달팽이 2005-07-30 20: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하하...역시 호방한 이카루님...

잉크냄새 2005-08-08 18: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안녕하세요. 달팽이님. 어촌태생인 저에게 포구의 하늘빛은 노을빛마저도 회색빛으로 종종 비춰지곤 했습니다. 과거의 영화가 모두 사라져가는, 퇴물이 되어버린 술집여자의 어색한 화장만큼이나 부조화스러운 풍경이 펼쳐지곤 했습니다. 아마도 두발 모두 바다에 묻고 살아가는 사람들의 틈바구니에서 자라온 까닭인가 봅니다.

달팽이 2005-08-08 22: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반갑습니다. 잉크냄새님. 산업화과정에서 농촌과 더불어 삶의 터전을 빼앗겨가는 어촌에서 자라면서 바라본 어린아이의 눈에서 벌써 회색빛 하늘을 보았다니 상당히 조숙했었나봅니다. 여행자로서 아무리 밀착해서 보려해도 그들의 속내음까지 다 알 수는 없는 것이겠죠. 하지만 어촌태생으로 유년시절의 빛깔을 간직한 당신에게 그 노을빛과 파도소리, 바다가 주는 아름다움이 뭇사람들이 보는 것보다 더욱 선명하고 다채로울 것이라 믿습니다.
 
손녀딸 릴리에게 주는 편지 - 케임브리지 대학 노교수가 사랑하는 손녀딸에게 전하는 인류 성찰의 지혜
앨런 맥팔레인 지음, 이근영 옮김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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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0년 동안 세계에서 가장 유수한 대학에서 문화인류학 계통의 학문을 한 사람으로서 그가 손녀딸에게 주는 글은 감동적이다. 그 이유는 그가 저명한 대학의 이름난 교수이기 때문이 아니다. 그는 마치 편안한 동네 할아버지가 자신의 손녀딸을 무릎 위에 앉혀 놓고 재미있는 옛날 이야기를 들려주듯이 얘기한다. 글의 내용도 평생 학문을 한 사람의 글이라기보다는 편안하고 쉽게 쓰여져서 손녀딸이 가슴으로 읽을 수 있게 써내려갔다. 하지만 내용은 녹녹하지 않다. 녹녹하지 않다는 말이 논리적이고 어렵다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30년 학문이 한 주제의 5-6페이지의 내용에 쉬우면서도 간결하고 핵심적으로 요약되어 있다는 점이다.

  어느듯 산업화로 인한 핵가족의 도래로 할아버지 할머니들은 가족에서 밀려나가버렸고, 전통사회에서는 삶의 지혜를 조언해주고 방향을 인도해주는 중요한 역할을 하는 그들이었지만 지식이 분화되고 전문가만이 대접받은 사회에서 설 자리를 잃어버렸다. 특히 변화의 속도가 빨라져버린 정보화사회에서 정보매체를 다루는 기술을 접하지 못한 그들은 의사소통의 통로마저 잃고 외롭고 고독한 여생을 보내고 있다. 이런 사회에서 우리에게도 반드시 올 노년에 자신의 손녀딸에게 이렇게 삶의 아름답고도 성숙한 메세지를 줄 수 있다는 사실이 나의 노년을 미리 꿈꾸게 하고 있는 것이다.

  30년간의 세계각지에 떠난 여행이, 그리고 평생에 걸친 진리에 대한 탐구가 그에게 남긴 것은 우리에게 주어지는 사회적, 문화적, 정치적 제도나 틀이 세계 어느 곳에서나 다를 수 있고, 그 다양함은 인간이 쌓아온 선택의 산물임을 보여줌으로써 우리들에게 주어진 삶의 여러 가지 모습들도 우리들의 선택 속에 놓여 있기 때문에 주어진 사회적 구조물로서의 어떤 정형화된 삶의 모습에 얽매이지 말라는 것이다. 즉 우리들의 삶은 어떤 것이든지 우리들의 선택에 달려 있다는 것이다.

  결혼에 대한 것도 선택하에 놓여져 있고, 사랑도 마찬가지다. 섹스와 몸의 욕구에 대한 문제도, 학교와 조직, 불평등, 지식과 개인적 가치, 시민사회, 민주주의에 대한 가치 인류의 미래 등 28편의 인생의 주제들에 대한 그의 입장은 모든 것이 가능성으로서 다양하게 열려 있으니 두려워하지 말고 네 인생을 온전히 누리라는 메세지이다. "세상에 정말 우리가 두려워해야 할 것은 두려움 그 자체 밖에는 아무것도 없다."는 그의 말은 우리가 자유롭고 인생의 열려진 가능성의 삶을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생각해보게 한다.

  할아버지가 손녀 딸에게 해줄 수 있는 말로서 이보다 아름다운 말을 나는 아직 보지 못했다. "사랑한다. 이것이 내가 너에게 마지막으로 해주고 싶은 말이다. 두려워하지 말고 네 날개를 마음껏 펴라." 우리들의 삶이 위축되고 불행해지는 것은 우리들의 마음 속에 도사리고 있는 두려움과 공포의 씨앗때문이 아니던가? 자신의 삶을 열린 무한한 가능성 속에 던지고 모험 속에 놓음으로써 우리는 삶의 정말 중요한 가치들을 받아들일 준비를 하고 그 삶이 우리들의 영혼을 더욱 살찌우게 될 것이다.

  다만 한 가지 아쉬운 점은, 인생과 학문에 대한 그의 다양하고 폭넓은 지혜가 정신적이고 종교적인 구원에 대한 면에 있어서는 일종의 편견이 작용하여 무한히 열린 정신세계로 들어갈 수 있는 문이 닫혀진 느낌이라는 점이다. 아무리 인생의 많은 경험을 하더라도 아무리 많은 지식을 쌓더라도 그것으로 다하지 못하는 삶의 중요한 자물쇠는 아직 열려지지 않은 상태로 남아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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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수잡설
최창조 지음 / 모멘토 / 200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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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풍수가 어떻게 해서 자신의 삶이 되었는가에 대한 인생이야기에서부터 이 책은 시작한다. 일반적으로 우리가 '풍수지리' 하면 좋은 땅 좋은 형세 하에서 명당자리를 고르는 것으로 이해하지만 그는 풍수를 인간의 지리학이라고 본다. 풍수가 인간의 삶과 밀접한 관련을 갖고 인간의 마음이 또 풍수를 수용하는 태도를 결정하여 원래 갖추어진 풍수를 다르게 받아들이기도 한다는 것이다.

  다음으로 그가 민감하게 얘기하고 있는 것이 수도천도의 이야기다. 현재는 좀 시기가 지난 느낌도 있지만 아직도 수도이전의 문제는 앞으로 우리 사회의 발전방향과 관련하여 중요한 쟁점이 되고 있다. 그는 대전이나 남쪽으로 이전보다는 통일을 대비한 수도 이전으로 교하에 통일 수도를 두자고 주장한다. "통일"의 문제가 현실적으로 다가온다면 그의 주장을 무시할 수는 없다. 어차피 남, 북한의 서로의 주장을 할 것이고 그러다보면 대화와 타협의 과정을 거치다보면 평양과 서울의 중간 지점 어딘가에서 실마리가 풀릴 것이기 때문이다.

  이제까지 풍수에 대한 사람들의 입장은 주로 풍수가 인간에게 미치는 영향만을 고려해왔다. 하지만 인간이 풍수에 미치는 영향 또한 무시할 수 없다. 지금의 건축기술이나 규모로 보아 왠만한 지형은 다시 만들어낼 수 있는 것이 작금의 실정이다. 따라서 풍수의 고전이론을 완전히 무시할 수는 없다고 하더라도 너무 그것에만 매달려 인간의 의지와 마음을 고려하지 못하는 것도 문제다.

  결론적으로 완벽한 땅은 없다. 다만 우리들의 삶과 잘 맞는 터잡기와 그곳에서 사는 우리들의 마음가짐이 명당을 만들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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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슷한 것은 가짜다 - 연암 박지원의 예술론과 산문미학
정민 지음 / 태학사 / 200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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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같이 비개이고 만물이 자신의 생명력을 마음껏 발산하여 허공은 천성산의 가을 날 계곡물과 같고, 초록은 쪽빛보다 푸르르고, 바람은 농악한마당의 장구소리처럼 경쾌해지는 날, 격물하는 내 마음 속에도 그 온생명의 숨결이 느껴진다. 아, 이 느낌, 이 마음을 글로 담아낼 순 없을까? 아니 글이 아니더라도 이미 그것은 글이 되어버렸다. 글 아닌 글...연암 선생의 글도 이러하다. 300여년이 훌쩍 지나버린 세월 속에서도 글에 살아 있는 숨결은 마치 박지원 선생을 옆에 두고서 이야기를 듣고 있는 풍경을 만들어내는 듯하다.

  그래서 그가 말하는 글은 문심(文心)이어야 하고 심사(心似)여야 한다. 쓰여진 글 속에서 글쓴이와 만날 수 있어야 한다. 장엄하게 떠오르는 일출의 광경을 떨리는 가슴으로 맞이하는 것처럼 한 편의 글 속에서도 마음과 마음이 만나 서로 떨리는 감정을 느껴야만 한다. 그러기 위해선 우선 박제화되어버린 죽은 글이어서는 안된다. 우리는 흔히 글의 고전을 이야기하고 글의 형식을 이야기한다. 하지만 참된 글은 지금 이 순간 글쓴이의 마음이 열리는 체험을 필요로 한다. 그것이 없다면 글이 아니다.

  그래서 비슷한 것은 가짜다. 그것은 고전의 형식을 답습하는 것으로 글의 소임을 다한 것이라고 여기기 때문이다. 진정한 글은 형식에 치우치지 않는다. 글의 형식이 잘 갖추어진 경우라도 읽어 아무런 감흥이 없는 글이 있는가 하면 형식없이 마구 쓰여진 무지랭이의 글이 마음을 온통 뒤흔드는 것이 있다. 우리는 후자를 참된 글이라 여기는데 주저함이 없다. 따라서 저 푸른 생명의 나무의 떨림을 가져오지 못하는 글은 참된 글이 아니다.

  비단 글 뿐만이 아니다. 그림도 생활도 인생도 우리의 마음을 열어주는 천둥과 번개가 없다면 그것은 그림도 아니고 생활도 아니며 인생도 될 수 없다. 몇 일 전 내가 좋은 영화 한 편을 보고 그 감동을 오래도록 간직했다면 나는 좋은 글을 읽은 것이다. 몇 일 전 내가 좋은 사람을 만나 함께 술을 마셨다면 나는 좋은 그림을 본 것이다. 오늘 비 개인 산빛과 풍경을 보고 마음 속의 떨림을 느꼈다면 나는 삶에 침투되는 글을 읽고  있는 것이다. 늘 보는 하늘, 늘 지나는 길, 늘 대하는 사람, 늘 대하는 일상들....그래서 내가 똑같이 반복되는 또 하루의 오늘을 보내는 것이라면 나는 이미 죽은 것이다.

  스스로에게 묻자, 나는 오늘 살았는가 죽었는가. 오늘 만나는 사람들의 눈빛에 나의 가슴이 떨리는가? 바람에 흔들리는 잎새에 내 마음도 흔들리는가? 저 푸른 하늘빛 물빛에 내 마음 투영되는가? 창을 넘어 들어오는 뒷산을 가득메운 초록빛 영혼들의 속삭임에 나는 간지럼타고 있는가? 내 앞에 놓여진 이 책 한 권 오늘 나를 새롭게 하는가? 이 모든 것 언제나 새로운가?

  내 마음 속에서 뒤바뀌는 세상, 내 마음으로 모아지는 세상, 내 마음 한 점에 다 담아지는 세상이...나에게 묻게 한다. 이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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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샘 2005-05-09 09: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음에 찍는 점.
점심을 먹고 싶네요~~~

달팽이 2005-05-09 11: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ㅎ...점심을 먹는 것은 과거의 마음, 현재의 마음, 미래의 마음 어느 곳에 점을 찍는 것인가요?

드팀전 2005-05-10 10: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 점심은 배고프면 그냥 먹는거죠.ㅆㅆ 고민스럽긴 하지요.어느 음식점을 가야할 지... 성철스님께서 이런 말씀을 하셨죠. "점심은 점심이다.밥먹고하자"(진짜 그랬는지 찾아보진 마시길)..... 우하하하하하.맛난 점심드세요 두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