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있는 그대로 받아들여라
얀 케르쇼트 지음, 김기협 옮김 / 꿈꾸는아침 / 2006년 10월
평점 :
품절
있음은 우리 존재의 시작을 '지금 이곳'에서 알게 한다. 키보드에 올려놓은 손가락들이 가볍게 이곳저곳을 타고 옮겨다니는 것들을 통해서 가벼운 누름이 느껴지고 눈은 흰 여백에 새롭게 채워져가는 글씨들을 지켜본다. 주위에서 들려오는 크고 작은 사람들의 목소리는 나의 귓속으로 스며들어 사라지고 나는 이 모든 것을 느끼고 있는 내가 존재하고 있음을 안다. 하지만 이러한 나의 있음은 내 의식이 몸에 붙어있을 한시적인 시간과 공간내에서일 뿐이다. 내가 늦은 밤 잠자리에서 희미해져가는 의식을 쫓아가다 어느새 나를 떨쳐버리고 가버린 그가 텅 빈 껍데기만을 남겨놓은 채 사라질 때 있음도 내게서 사라지는 듯한 느낌을 받는다. 내게 온 풍경들은 시시각각 쓰러져 사라져가고 내게 들려온 소리들도 순간순간 잡을 수 없는 소리의 블랙홀로 빨려들어간다. 그것을 느끼는 마음의 나를 찾아 생각을 가라앉혀서 내면을 들여다보면 '나'라고 부를 그 무엇은 없다. '있음'은 어느듯 '없음'으로 변하고 만다. 있음과 없음은 존재의 양면인 것일까? 문득 존재의 의문하나가 마음을 차지한다.
창문을 들여다보고 있으면 그것을 통해 들어온 외부의 세상이 눈과 마음을 채운다. 옷을 벗어버린 채 추운 바람에 떨고 있는 나무와 그 위로 한 줄기 햇살을 비추고 있는 빛, 그리고 보이지 않는 뿌리가 그것을 지탱하고 있을 것이라는 생각과 더불어 나는 보이는 세상과 보이지 않는 세상을 상상한다. 마음을 통해 '있음'으로 들어가는 창문도 있다. 마음의 번다한 생각들을 가라앉히고 자신의 본래 모습을 찾기 위해 우리가 들여다보아야 하는 창이 있다. 그 창문은 어떤 특정한 모양도 형태도 가지고 있지 않다. 그렇기 때문에 모든 형태와 모습을 할 수 있다. 세상에서 가장 값진 보석을 숨기는 방법은 모든 곳에 아무렇게나 두는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언제 어디서나 그 존재의 보석이 있기 때문에 우리는 언제 어디서나 그것을 찾을 생각을 못한다. 마음으로 열린 창을 통해 그것을 찾아가려는 나의 마음은 이 곳에서 시작되어 창문 너머의 세상을 꿈꾼다.
벗어나라. 자신의 본래 모습을 알기 위해 승복을 입어야 할 필요도 없다. 주어진 시간에 교회에 앉아 기도를 해야 할 필요도 없다. 그렇다고 참된 스승을 찾아 그를 본받아야 할 필요도 없다. 그 외부로 주어진 마음을 돌려 스스로의 마음 안에서 길을 찾는다면, 외부로 뻗은 마음의 에너지를 자신을 비추는 빛으로 만들어낸다면 비로소 그 모든 형식과 겉치레는 산산조각이 난다. 더불어 세상이 모두 공부거리가 되는데 더 이상 무엇이 필요하랴. 그것이 공부거리가 아님을 알기까지, 뭔가를 추구하는 그것마저도 없음을 알기까지 스스로를 탐구하자. 모든 종교와 영적 전통과 권위로부터 벗어나라. 그 권위가 그 전통이 그 모델이 나에게 하나의 족쇄가 되기도 한다는 것을 안다. 더불어 어떤 이상현상이나 신비한 체험이 하나의 관념이 되어 나를 사로잡는것에서부터도 자유로워져야 한다. 비로소 참된 의문이 나에게서 일어난다.
대담은 이렇게 알게된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사람들과 나누는 자리이다. 토니파슨스와 더글라스 하딩과 네이선 질과 크리슈나무르티와 나눈 대화들은 바로 그들이 자리한 곳에서 이루어지는 하나의 놀이이다. 진리의 자리에서 시비를 다투는 것 자체가 하나의 불완전한 집착일 수 있지만, 완전하고 바른 깨달음이라는 것이 , 그 없는 깨달음이라는 것이 없지 않다는 생각을 갖게 한다. 나에게 맞는 옷이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몸이 없으면 애초에 옷도 필요없는 법, 그 옷의 색깔과 크기에 대해 이야기하는 바가 조금씩은 달리 느껴지기 때문이다. 그들이 노는 자리에 말을 모두 버리고 앉아 있으면 어떻게 될까?
다시 나에게로 돌아오다. 잠을 자다 문득 깨다. 오줌이 마려웠기 때문이다. 문득 이것을 아는 자는 누구인가? 하는 마음이 든다. 그리고 내가 깊은 잠을 자는 내내 더 이상 참을 수 없기 전까지 괜찮다는 것을 아는 자도 동시에 존재하고 있는 것이다. 마음을 통해 받아들이고 수용하는 세상이 아무런 생각없이 그저 주어지는 대로 받아들일 수 있기 위해서는 나라고 불리우는 존재의 참모습을 알아야 한다. 모든 풍경이 들고 사라지는 그 자리 모든 소리가 들어오고 소멸하는 그 자리 그 모든 감각과 그 모든 비감각의 것들을 받아들이고 알아차리는 그것이 바로 지금 키보드를 옮겨다니는 내 손가락의 느낌을 있게 하고 채워져가는 글들을 바라보고 이해하게 한다. 무엇인가? 그것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