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권력 - 개마고원신서 26
강준만.권성우 지음 / 개마고원 / 2001년 12월
평점 :
절판


80년대와 90년대 초반까지 대학생활을 해보았던 사람이라면 사상의 자유와 표현의 자유가 인정되지 못해서 각 대학 주요 학생회장실과 사회비판적 동아리방 주요 교수의 방이 도청되었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것이다. 뿐만 아니라 수많은 금서목록제도때문에 책을 직접 구하지 못하고 복사해서 돌려가면서 읽었던 기억이 있을 것이다. 이미 추억거리가 되어 버린 이 금서목록을 지난 해에 우연히 그 때의 금서목록이란 것을 보고 어이가 없어했던 기억들이 난다.

80년대와 90년대 초반을 거치면서 노동운동과 사회운동의 일부분이 합법화되고 반독재 민주화 운동이 형식적으로 문민정부의 출현과 함께 희석화되면서 80년대 민중의 목소리의 대변자적 역할을 했던 길지와 창작과 비평, 문학과 사회, 문예동네 등의 문학잡지와 한겨레신문도 변화된 사회에 맞게 컨텐츠를 만들어가야 했고 어느 부분은 더욱 변화되어야 했다.

'문화유산답사기'를 읽었던 것이 이 즈음이었다. 그동안 진보와 보수 구도로 인한 사회적 분위기에서 벗어나려고 할 무렵 이제 비로소 그간에 양 구도 때문에 묻혀 있었던 또 다른 문학과 이론과 글들이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고 이것을 보며 나는 민주화의 결실로 인한 사회의 다양성이 증대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내가 이렇게 생각했던 데에는 물론 나의 주관적인 생각이 작용했음을 부인할 수 없다. 80년대의 사회구성체 논쟁에서 학생운동의 PD, NR파의 분파 생성, 민주노총과 비합법 정당활동 등이 포스트모던 논쟁과 사회민주주의 논쟁 그리고 다양한 문화적 운동과 활동들로 쏟아져나오기 시작했던 것이다.

하지만 이 책은 한국의 민주화 과정이 단순히 사회의 다양성으로만 이어지지는 않았음을 보여준다. 80년대에 비판적 사회운동의 입의 역할을 했던 문학잡지와 평론이 출판자본의 지배에 의해 구조재편과 새로운 생존경쟁의 여건에 놓였기 때문이다. 이런 변화된 상황에서 그들은 생존을 위해서 자신의 민족적 저항주의나 비판적 민중운동의 역할을 접고 생존과 확장을 위해 자본의 파수꾼에서 아르바이트생의 비정규직 노동자의 역할까지도 기꺼이 감수하게 된다.

대학원에서 공부를 계속하고 싶었던 내가 대학의 생리를 좀 알게 된 것은 군대생활을 통해서였다. 서울 타대학의 대학원 생활의 이야기를 들으며 내 대학원 생활을 비교하기도 하면서 나는 이 곳에 더 머물 이유가 없다고 판단했다.  대학에서 공부로 평생을 살아간다는 것은 중세의 도제교육이나 봉건제적 구습에 적응할 정도의 삶의 수용이 가능한지를 스스로에게 물어야만 하는 일임을 알게 되었다.

그런데 문단의 구조는 그것보다 더욱 봉건적이고 봉건적이다 못해 고대 노예제적 삶에 가까운 것이었다. 무엇보다도 더 절망적인 것은 서로간의 인간적인 신뢰에 기반한 정당한 비판 자체가 허용되지 못하는 현실이었고, 그것이 문인들의 밥그릇을 놓고 벌이는 비열한 것이었음을 알게 되었을 때 나는 티없는 순수함으로 치장한 문학이 사실은 얼마나 더러운 오물통이었는가를 알게 되었다.

문학 내부에서의 어떤 자성적 목소리도 그 고질적인 문제를 건드리지 못하는 상황에서 강준만 교수의 이 책은 적어도 갈증에 타는 목을 적셔줄 시원한 냉수 한 잔은 되었다. 그의 말대로 물론 외부자이기 때문에 이런 문제를 더욱 과감하고 적나라하게 밝힐 수 있는 장점을 가진 것이었다. 문인들은 자신의 소신대로 상에 구애받지 않고 소설을 써내려가고 문학평론가들은 소신있게 자신의 바른 목소리를 내어 출판자본에 대항하여 새로운 문학의 지평을 열어야 한국문학의 미래는 존재할 수 있다는 그의 목소리를 귀담아 들을 필요가 있다.

물론 그도 알다시피 2000년대가 어떤 시대인가? 국가마저도 대자본의 이해관계를 대변해주는 들러리의 역할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지 않은가? 더구나 한국 사회에서 삼성이라고 하는 대자본의 지배구조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는 곳이 얼마나 되는가? 노무현 정부도 20000만불 시대의 경제논리에 말려들고 각종 방송사 신문사를 포함한 언론기관을 자신들의 마음대로 주무르는 한국 사회에서 일개 기자나 일개 문인의 붓끝에서 나온 글이 얼마나 힘을 발휘할 것인가?

이미 2000년대는 대자본의 지배구조아래 모든 군소 자본 권력이 줄서기를 하는 시기가 되고 있는 것이다. 디스토피아적 상상을 하긴 싫지만 지금의 전개흐름대로라면 앞으로의 자본 비판 사회운동이나 정당운동도 대자본의 지원아래서 사회내의 저항의 목소리를 수용하고 체제내로 포섭하는 장치로서 사용되는 것은 아닌지 우려된다.

경제성장이 아니면 우리는 행복하지 못할 것인가? 경제논리 아닌 인간논리가 세상의 삶의 흐름을 바꿀 수는 없는 것인가? 다시 오물통의 현실로 돌아와보자. 거대구조와 담론은 외부에서 우리를 강요하는 사회적 짐이 된다. 하지만 구체적인 삶에서 나의 행동과 의식을 결정하는 것은 나의 의지가 아닌가? 문학을 사랑하는 한 사람의 소비자(이 말도 별로 마음에 안든다)로서 나는 책을 고르는 주권을 바르게 행사하고 문인들은 그들의 학문적 양심을 지켜나가고 그들의 삶의 터에서 삶의 조건을 처우를 개선하려는 노력들이 절실하게 필요하다.

우선 표현의 자유를 우리는 움켜쥐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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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자림 2006-08-08 17: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지막 말이 가슴에 울리네요.
좋아하는 작가 강준만.. 이 책 방학 때 한 번 만나봐야겠네요.

달팽이 2006-08-08 22: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래전에 읽었어야 하는 책인데 시류를 놓쳐 아쉽습니다.
그래도 읽어보아야 할 책이라는 사실엔 변함없습니다.
 
철학 상담소 - 우울한 현대인을 위한 철학자들의 카운슬링
루 매리노프 지음, 김익희 옮김 / 북로드 / 2006년 4월
평점 :
품절


저기 한 철학도가 있다. 머리는 덥수룩하게 길러서 아무렇게나 치렁치렁 늘어뜨린 채 굴은 뿔테 안경을 쓰고 있다. 옷은 편한 느낌이다 못해 조금은 예의없고 건방져보이기까지 하다. 시선은 무언가를 응시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촛점이 없다. 때로는 멍하니 고개를 들어 하늘을 쳐다보기도 하고, 때로는 땅에 고개를 박은 채 오랫동안 가만히 있기도 한다. 괜히 말을 잘못 걸었다간 인생의 골치아픈 개념들의 폭탄세례를 맞아야할 것 같아 두렵다. 왜 철학은 현실과는 동떨어져 고리타분하고 생활에 아무런 도움되지 않는 문제들에만 매달리는 것일까? 하고 의문을 가지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이야말로 이 책을 만나야 하는 사람 중 하나다.

책 표지 사진에는 많은 동그란 것이 지면을 가득 메우고 있다. 책을 눈 가까이 가져가고서야 그것이 아스피린임을 알게 된다. 저자는 철학이 우리들의 생활에 밀접하게 관계하고 있다고 말한다. 그래서 우리가 배아프면 즉시 통증을 없애주는 아스피린과도 같은 것이라고 한다. 우리가 당면하고 있는 문제가 무엇인지 제대로 이해하기만 해도 대부분의 문제가 해결될 수 있다고 말한다. 그런 면에서는 침을 맞는 것 처럼 즉시 효과가 나타난다고 말한다. 이제까지 철학은 사람들에게 많은 오해가 있어왔고, 물론 그 책임의 일부는 철학자들에게 있음을 저자도 부정하지는 않을 것이다.

우리가 생활하면서 느끼는 문제의 대부분은 우리가 어떤 것을 선으로 볼것인가의 문제에서 출발한다고 본다. 우리가 느끼는 문제의 대부분은 객관적인 상황의 문제(병이 있으면 병원에서 치료하면 되고, 정신병이 있으면 정신병원에서 치료받으면 된다)라기보다는 그 상황에 대한 자기의 인식이나 스스로의 자신에 대한 정당성 부여의 부족이나 자신을 용서하지 못하는 데서 오는 자책감이나 괴로움일 수가 많다. 그래서 의무론, 목적론, 종교윤리학, 객관주의적 윤리학, 프리마파시 의무론, 사회생물학, 타자 중심의 윤리학, 불교 윤리학, 법적 도덕론, 메타 윤리적 상대주의의 열한 가지 이론으로서 각 각의 장, 단점을 통해 개개인에게 필요한 처방을 내려야 하고 거기에서 철학은 안내자의 역할을 할 수 있다고 본다.

자신이 불교를 종교로 가지고 있거나 타 종교를 종교로 가진다고 해도 때로는 삶의 문제들이 구체적인 해결 방법과 그 자신의 괴로움을 해소하는 철학적 근거를 따로 가질 수 있기 마련이다. 그래서 어떤 한 가지 입장에서 모든 문제들을 해결하려고하기보다 상황에 맞게 실존주의적 입장에서, 목적론적 입장에서, 의무론적 입장에서, 객관주의 윤리학의 관점에서... 보아야 하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그렇게 해서 자신이 처한 생활 상의 문제에 접근해야 한다고 그는 말한다.

때에 따라서 이 문제는 죽음의 상황에서도 적용된다. 비록 죽음을 되돌릴 수는 없을지라도 죽음을 스스로의 마음으로 수용할 수 있게 하거나, 죽을 병이라하더라도 때에 따라서는 생의 의지를 스스로가 내어서 죽음에 맞서 싸우게 할 수도 있다고 한다. 한 사람이 어떤 병원에서 암 말기 진단으로 수술이 필요없다는 진단을 받았다. 그런데 이 사람은 그 병원 진단을 바탕으로 자신의 죽음을 확정짓고 세상을 비관적으로 생활하고만 있다. 이런 경우 철학은 우선, 그 병이 말기암의 죽을 병이 확실한가? 둘째, 말기 암이라도 수술도 필요없는가? 아니면 수술에 의해 삶을 연장하거나 회복의 가능성이 있는가? 셋째, 그래서 남은 기간 동안 내게 필요한 것은 무엇이고 무엇을 하고 싶은가?를 물음으로써 감정적으로만 반응하던 그가 자신을 보다 객관적인 상황에서 파악하게 됨으로써 죽음을 보다 잘 준비할 수 있게 한다.

결국 모든 철학의 문제는 우리 스스로의 내면적 판단을 어떻게 내리느냐의 문제로 귀결된다. 우리가 주어진 상황 속에서 부정적인 감정으로 사람들을 대하고 살것인가? 아니면 사랑으로 사람들의 관계를 이끌 것인가가 우리들의 내적 결정에 달려 있다. 그런 면에서 우리는 꿋꿋하게 홀로서기를 해야 한다. 이런 의미에서 "두 사람이 손을 잡고 같은 길을 걷는다고 하더라도, 사실은 각자가 자신의 길을 홀로 걷고 있는 것이다"라는 말은 맞는 말이다.

이 책도 역시 철학이 할 수 있는 영역의 한계가 있다. 결국 삶과 죽음의 문제에 있어 우리들의 영혼의 존재와 진리의 존재 문제에 대해서는 저자도 가능성을 열어 놓고 있다. 자신을 제대로 파악해서 인식의 변화를 가져온다는 것은 우리들이 중요시여기고 의존해온 삶의 가치가 변해야 하는 문제이고 그것은 참된 진리가 무엇이고 우리들은 어떤 존재인가? 하는 근원적 물음에 파생된 문제들이기 때문이다. 철학이 생활의 문제를 외면하지 않으면서 삶의 궁극적인 문제로 에너지를 모아갈 때 비로소 그 역할을 제대로 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다.

그렇게 된다면 철학은 단순히 배아픔을 치료해주는 아스피린뿐만이 아니라 인생의 바다에 빠져 허우적대는 우리들에게 던져진 구명보트도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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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자림 2006-08-06 15: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잘 읽고 가옵니당
꿋꿋하게 홀로서기를 잘 하고 싶은 비자림 올림^^

달팽이 2006-08-06 16: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잘하고 계신 비자림님께 안부여쭙니다.
 
대학생 글쓰기 특강
강준만 지음 / 인물과사상사 / 200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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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적으로 이슈가 되고 있는 논쟁거리를 다루고 있는 인터넷 게시판에서는 단순한 논리적 대립을 넘어 차마 입에 담지못할 욕설과 비난으로 가득찬 댓글들을 보게 된다. 민주주의 사회에서 대중들의 생각과 의식에 관심을 가진 위정자가 이런 글들을 보게 되면 그야말로 수준낮고 감정으로만 상황에 반응하는 우매한 대중이라고 생각할런지 모른다. 꼬리에 꼬리를 문 댓글이 무분별한 비판과 비논리적 감정싸움으로 이어질 때 내가 이 뻘밭에서 뭐하고 있나 하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우리의 모습이라고해서 별반 다르지 않다. 부부가 싸울 때, 형제끼리 싸울 때, 부모와 다툴 때, 유심히 한 번 들여다보라. 과연 그들이 정말 싸우고 싶어서 싸우는지. 사소한 말 한마디가 애초에는 전혀 의도하지 않았던 싸움을 만들어낸다. 한쪽에서는 별 생각도 없이 던진 말이 날아가는 도중에 비수가 되어 상대방의 가슴을 찌르면 상대방은 더욱 무시무시한 무기를 만들고 있는 모습을 보게 된다.

예전에는 말이 사람들 사이의 주된 커뮤니케이션의 매체였다면 인터넷 시대에는 글쓰기가 그 매체가 되고 있다. 휴대 전화도 길지는 않지만 서로간의 간단한 정보와 사실을 교환하는 커뮤니케이션의 매체가 되고 있다. 글쓰기는 말하기와는 차이가 있다. 말하기는 일회성으로 허공으로 흩어져버리지만(물론 문제가 된 말이 모두 없어지지는 않지만 말이다) 글쓰기는 자신의 생각이 글로써 표현되었기 때문에 언제든지 누구에 의해 옮겨질 수 있다는 점이 있다. 특히 디지털 시대의 무한 복사와 전파의 특성을 감안할 때 글쓰기는 더욱 신중하고 상대방을 고려해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들이 사용하는 글쓰기는 말하기의 천박함을 거의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이런 이유로 개인의 사생활에 있어서나 사회적인 사안에 대한 생각의 교류에 있어서나 그 밖의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생활 전반에서 글쓰기는 문제를 더욱 증폭시키기도 하고 새로운 문제를 만들어내기도 한다.

책읽기의 붐이 사회적으로 분지도 벌써 몇 년이 되어간다. 직장에서 가정에서 학교에서 어디에서건 책읽는 분위기는 어느 정도 정착되어가고 있고 많은 사람들이 손쉽게 책을 온라인이나 오프라인에서 구할 수 있다. 더구나 전국적으로 도서관의 수가 많아지고 신간서적들을 정기적으로 충원하고 있는 실정이니 책읽기에 관심을 가진 사람이라면 누구나가 쉽게 책을 접할 수 있는 환경이 만들어지고 있다.

책읽기는 타인의 인생을 간접 경험하거나 타인의 어떤 분야에 대한 생각을 논리적으로 정리한 글이기 때문에 읽는 행위가 새로운 사고능력과 창의성, 상상력을 개발하게 해주고 독자의 삶을 풍요롭게 만들어준다. 하지만 독서를 하면서 생기는 단편적인 생각과 어떤 발상들은 대체로 더 이상 성장하지 못하고 책을 덮는 순간 허물어져버리게 마련이다. 그래서 자신의 생각을 전체적으로 구상해보고 창조력과 상상력을 발휘한 사유의 모델들을 정리하기 위해 글쓰기는 중요하다. 글쓰기야말로 책읽기의 완성이라고해도 과언이 아니다. 대학에서도 논술이라는 이름으로 글쓰기의 중요성을 더욱 강조하고 있는 실정이며 입시에서의 비중은 앞으로 더욱 커질 전망이다.

대학 교수인 저자가 학생들의 글을 접하면서 글쓰기에 대한 공간을 마련할 필요를 느꼈다. 이미 인문학에서 학문적 영역을 가로지르는 글쓰기로 유명하고 또 시원하면서도 날카로운 관점으로 사회현상에 대한 명쾌한 설명으로 정평이 나 있는 사람이다. 그의 글쓰기는 모두에서 '사회과학적 글쓰기'라고 밝히고 있다. 즉, 주로 논쟁문제에 대한 글쓰기 중심으로 책이 구성되었다는 것을 말해준다.

논쟁문제는 서로 대립되는 두 시각이 있고, 어떤 것이 절대적으로 옳다고 말할 수 없으나, 한 쪽의 선택에 의해 그 사회적 영향이 큰 사회적 문제를 말한다. 대립적인 문제에 있어서는 논점을 뚜렷이 하는 것이 필요한 까닭에 극단적인 시각을 드러내는 글들이 많이 보이게 되고 이러한 점이 일반 대중들에게 소화되면서 논리적 요소는 사라지고 감정적인, 또는 자신의 지위나 입지에 서 있는 견해를 정당화시키는 수단으로 사용되면서 글쓰기가 화해하지 못하고 싸움을 위한 싸움으로 전락하게 된다.

거기에서 우리는 개념의 정확성이나 논리전개시 따르는 오류를 피하는 것이나 상대방의 입장에서 생각해 볼 것과 될 수 있으면 대안을 명확히 제시하면서도 조화로운 관점에서 결론을 유도할 것 등을 배워야 한다. 적어도 사회과학적 글쓰기로서는 아직 저자만큼 해박하고 명쾌한 글쓰기 책을 아직은 우리 사회에서 발견할 수 없을 것 같다. 그만큼 스스로가 충분히 글쓰기에 능하고 많은 저서를 써내려간 자신의 경험이 충분이 살아있기 때문일 것이다. 거기에 강단에서 학생들의 글쓰기를 지도한 경험까지 이 책에 그대로 살아 있다.

물론 글쓰기엔 사회과학적 글쓰기만 있는 것은 아니다. 다른 영역의 글쓰기도 있을 것이다. 철학적 글쓰기와 문학적 글쓰기 나아가 자신의 삶의 의미를 묻고 답을 찾는 종교적, 영성적 글쓰기도 있다. 그래서 모든 글을 이 잣대로만 해석할 수는 없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 책의 가치가 절감되는 것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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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이야 2006-08-02 10: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좋은 리뷰 추천하고 갑니다.^^

달팽이 2006-08-02 13: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부끄..

파란여우 2006-08-04 23: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글쓰기의 즐거움> 사 놓고 그냥 있습니다.
인터넷 용어나 은어 비속어로 도배하는 글쓰기가 정말 많습니다.
이건 글쓰기로 볼 수 없고요, 일종의 허접한 의미없는 배설일뿐입니다.
글쓰는 일에 전문 작가가 아닌 한 특별히 무게 잡을 필요는 없지만
그렇다고 완전 날림으로 장난질하듯이 쓰는 글쓰기는 지양해야죠.
네, 저도 가끔 그 짓을 합니다만..--;;

달팽이 2006-08-04 23: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크으.. 저도 반성합니다.
때로는 이 짓도 지적 배설(제대로 소화를 시키지 못해서일수도...)인것을...
 
글쓰기의 전략 - Reading & Writing
정희모.이재성 지음 / 들녘 / 200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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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제까지의 나의 글쓰기는 책을 덮은 직후 책을 읽은 느낌이나 생각의 흐름을 적어낸 것이었다. 글을 쓰고 난 후 다시 제대로 교정을 본다든지 내용을 다시 구성한다는 것은 생각지도 못한 일이었다. 더구나 글쓰기의 계획을 세운다든지 결론을 어떻게 낼 것인가에 대한 준비는 애초부터 없었다. 그래서 나의 리뷰를 글쓰기라고 하기엔 부끄러운 마음이 앞선다. 나에게 있어 글쓰기는 읽은 책의 내용이나 느낌을 다시 정리해보는 계기에 불과했던 것이다.

 

  나탈리 골드버그는 “글쓰기는 글쓰기를 통해서만 배울 수 있다. 바깥에서는 어떤 배움의 길도 없다.”고 했다. 사실 이제까지의 내 생각도 그러했다. 글을 쓰는 과정에서 조금씩 가다듬어지는 생각들과 늘어가는 표현력이 스스로 느껴졌던 것이다. 그래서 골드버그의 말은 어떤 면에서는 맞는 말이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생각하며 지내던 어느 날, 리뷰를 쓰기 위해 키보드 위에 손을 올려놓은 나는 멍한 마음이 되어버렸다. 책을 방금 덮었지만 아무런 생각도 들지 않았던 것이다. 그래도 리뷰를 써야지 하고 생각하며 좀 더 자리를 지켰지만 결국은 다른 책을 들 수밖에 없었다. 그때 이미 글쓰기는 의무감이 되어 없는 생각을 머릿속에서 짜내게 하는 강제가 되고 있었던 것이다.

 

  집을 지을 때 우리는 설계도가 필요함을 안다. 그리고 필요한 재료도 구입해야 하고 그 재료를 집의 구조에 맞게 제작해야 할 때도 있음을 안다. 필요한 인부를 고용해야 하고 될 수 있으면 숙련자를 구하는 것도 유념한다. 글쓰기도 마찬가지다. 글쓰기의 테마가 정해지면 필요한 정보와 가공된 자료를 준비해야 한다. 글의 구성이 서론, 본론, 결론으로 짜여져 있어야 한다. 나아가 서론은 어떤 형식으로 구성하며, 본론은 어떤 내용을 어떤 방식으로 전개할 것인지에 대해서도 계획해야 한다. 결론은 어떤 방법으로 할 것인지에 대해서도 생각해 두어야 한다.

 

  이렇게 준비된 글쓰기는 아무 계획 없이 쓰는 글과는 다를 수밖에 없다. 집짓기에도 꼼꼼한 계획과 좋은 설계도와 뛰어난 기술이 편안하고 좋은 집을 만들어내듯이 잘 구성된 계획은 이미 좋은 글쓰기의 바탕을 마련한 것이 된다. 이 책은 이러한 글쓰기의 이론과 전략에 대해 우리가 좋은 준비를 할 수 있는 방법을 제시한다. 이제까지의 나의 글쓰기를 둘러볼 때 가장 큰 반성이 바로 글쓰기의 전략 없이 즉흥적으로 써내려갔던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준비 없이 지은 집으로 거친 비바람에 대비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하지만 집짓기의 준비가 다 되었다고 모든 것이 해결된 것은 아니다. 집짓는 날의 날씨와 인부의 수와 컨디션, 숙련도의 정도, 집짓는 기간도 많은 변수가 된다. 마찬가지로 글쓰는 사람의 심리적 요소(원고제출 마감기간), 그 날의 기분, 날씨, 글쓰는 이에게 일어난 사건이나 상황 등이 변수가 된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글쓰는 순간의 그의 생각의 흐름과 마음의 흐름이다. 그것이 자연스러우면 글도 자연스럽게 나오기 때문이다. 그것을 다듬는 것은 차후의 일이 된다.


  따라서 나는 다시 골드버그의 말로 돌아가야 한다. 책을 읽으면서 마음을 깊이 담아내고 책을 읽고 난 후 생긴 마음의 흐름을 잘 포착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것을 글로 옮기는 데에 구성력도 아이디어도 문장력도 필요하다. 글의 형식을 보다 문맥에 맞게 고치고 문단을 보다 적절하게 나누고 문장 간의 연결이 자연스럽게 하며 글 전체가 쉽고 재미있게 읽힐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선 내가 책에 깊이 몰입해야 하는 것이다.

 

  사람들을 감동시킬 수 있는 글은 항상 글쓴이의 마음에 그 비결이 있다.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인 것은 글쓴이가 세상을 보는 특별한 눈이며 세상을 담아내는 아름다운 가슴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글쓰기의 기법과 방법이 그 가슴과 만나게 될 때에야 비로소 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는 감동적인 글이 생기게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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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이야 2006-07-24 22: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세상을 보는 특별한 눈, 세상을 담아내는 아름다운 가슴... 맘에 새기고 갑니다.^^ 거기에 잘 된 설계도 한 장을 가지고 말이죠..

파란여우 2006-07-25 20: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내용이 형식에 비하여 튀면 거칠고
형식이 내용에 비하여 튀면 사치스럽다는 말이 생각납니다.
님의 글은 중도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아 조율성이 뛰어나다는 생각을 종종해요

달팽이 2006-07-25 22: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혜경님께 도움될지 모르겠군요...
여우님의 칭찬에 몸둘바를 모르는 달팽이 집 속으로 숨고만 싶군요..
 
한국어가 있다 1
중앙일보 어문연구소 우리말 바루기 팀 지음 / 커뮤니케이션북스 / 200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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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끔 글도 아닌 글을 적으면서 나는 마음에서 일어나는 무늬를 포착하고 표현하는 어휘의 부족을 늘 느낀다. 더불어 평범하게 쓰고 있는 단어도 그 의미와 정확한 용례를 무시하고 사용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을 느낀다. 그래서 언제가 될지 몰라도 꼭 국어 맞춤법에 대한 책도 읽어야겠다고 생각한 적이 여러 번 있다. 우리 나라 사람이기 때문에 우리 글의 아름다움을 느끼고 그것을 바르게 쓰는 일이 중요하고 무엇보다 바른 말을 알아야 그 바른 말 속에 담겨진 뜻과 마음을 제대로 이해할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언젠가 한 번 봐야지 하고 주문했던 책을, 책읽어내기 어려운 요즘 들게 되었다. 국어도 사람들 사이의 약속이기 때문에 그 사용법이나 쓰임새가 세월이 가면 변하기도 한다. 그렇게 변화된 맞춤법을 우리가 관심을 갖고 익히지 않는다면 잘못 사용할 때가 많이 생기게 마련이다. 책을 읽고 마음을 잘 담아내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 담아낸 마음을 바르고 적확한 표현을 사용하여 사람들에게 전달하는 것도 중요하다. 자신만 읽고 느낄 것 같으면 표현이야 아무래도 상관없지만 적어도 타인이 한 사람이라도 읽을 수 있는 글들에는 정성도 필요하기 마련이다. 일종의 읽는 이에 대한 배려라고 해도 좋을 것이다.

    맞춤법을 제대로 아는 사람이 보면 허점투성이의 글임에도 불구하고 글쓴이의 마음을 따라 읽어내려는 노력 덕에 많은 민폐가 가려져왔던 것이 사실이다. 영어나 외국어는 죽어라고 공부하면서 우리글은 그냥 일상생활하는데 불편함이 없으니 뒤로 밀쳐왔던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물건을 쓰는 것도 바르게 쓰는 법이 있고 사람을 대하는 것도 좋게 대하는 것이 있듯이 글을 쓰는 데에도 마음을 모아야 할 것이다.

  중앙일보에 2년이 넘게 연재되어온 우리말 바루기의 글들을 모아엮었다. 우리 생활에서 틀리기 쉬운 말과 글쓰기에 대해 친절하고 자세한 설명과 사진까지 덧붙여 읽기에 조금도 지루함이 없다. 지금 당장 고등학교 교과서도 펼치기 힘들고 그렇다고 정규적인 교육 프로그램을 따라가기도 힘든 실정의 일반인이 그냥 책읽듯이 쉽게 읽어낼 수 있는 책이다. 시간 날 때 조금씩 읽을 수 있도록 하나씩의 사례로 되어 있다. 편집한 이들의 노력과 정성을 가득 느낄 수 있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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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04-28 12:27   URL
비밀 댓글입니다.

달팽이 2006-04-28 13: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음보다는 몸입니다.
둘째아이 태어나고 시간이 별로 없어서..
ㅋㅋ, 역시 글샘님입니다.
고맙습니다.

2006-04-29 20:54   URL
비밀 댓글입니다.

달팽이 2006-04-29 23: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반가워요.
참, 숫자는 뭔가 오류가 있는거 아닌지 모르겠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