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ive de cirque
어린시절 소독차의 연기를 따라 온 거리를 헤매던 기억이 있다.
만병통치약을 파는 아저씨의 쑈를 보기 위해 어른들 틈사이를 헤치고 들어가 몰래 서서 구경했던 일도...
하물며 거리를 지나가는 가장행렬의 구경이라든지 시골집 어디에서 열리는 굿구경은 자다가 벌떡 일어나서라도 구경을 다녔었다.
어른이나 아이 할 것 없이 볼거리에 대한 호기심과 설레임은 인지상정이다.
도심의 한가운데를 지나가는 서커스의 행렬...
그 긴 행렬을 구경하기 위해 거리로 쏟아져나온 사람들..
그들의 마음 속엔 호기심과 즐거움이 자리잡고 있다.
파리 운하가 보이는 길목을 따라 구경나오는 사람들..
호텔창가에 서서 구경하는 한쌍의 연인
저마다의 축제를 즐기는 양 마음을 거리로 향하고 있다.
처음 내 시선을 끈 것은 빛바랜 오렌지색과 낡은 회색계열의 건물이다.
드라크루아는 파리의 근대의 모습을 주로 그렸던 화가이다.
지금은 사라져버린 그리고 사라져가는 파리의 옛 모습을 향수어린 마음으로 담아낸다.
낡은 벽, 회칠이 떨어져나간 자리에 드러난 벽돌
아득히 어두워지는 하늘 위로 오르는 굴뚝 연기들...
그 모든 것이 이 그림을 보는 파리 사람들에겐 따뜻한 추억의 온기이지 않을까?
다음으로 시선을 끄는 것은 아이들의 모습이다.
손을 앞뒤로 휘저어가며 신이 나서 뛰어다니는 몸동작을 보라..
축제같은 날 아이들의 동심이 빠진다면 무슨 재미랴..
아마 고명빠진 밍밍한 국수의 맛이리라..
하얀말의 발걸음 또한 경쾌하다.
그 앞으로 드러난 가득한 설레임과 즐거움...
선두마차 앞의 강아지의 즐거움도 이와 다르지 않을 것이다.
레스토랑 앞에서 손을 흔들며 기뻐하는 소녀와
서커스단의 행렬이 궁금해 창으로 고개를 내민 사람들...
즐거운 것은 구경꾼들만이 아니다.
화려한 복장으로 서커스단 행렬 속에 몸을 둔 사람들도 보자.
프랑스 국기를 든 흑인도
말을 끄는 중년의 키작은 신사도
전동차를 운전하는 운전사도
그 얼굴에 드리워진 웃음을 읽어낼 수 있다.
축제의 행렬을 중심으로 그림 속의 모든 사람들의 마음이 축제의 마음이 된다.
건물 사이로 드러난 파리운하도 그 시선을 이 곳으로 향하지 않을까?
다음으로 나의 시선을 끈 것은 어둑한 밤의 거리를 밝히고 있는 불빛들이다.
판화임에도 불구하고 이 그림을 놀랍도록 생생하게 살려내고 있는 저 불빛들...
그 불빛의 번짐을 보라.
건물의 색깔과 형태에 따라 미묘하게 드러나는 색감의 차이는 빛을 처리하는 그의 사유구조를 보여준다.
마지막으로 나의 시선이 닿은 곳은 하늘이다.
시선을 올릴수록 도시의 불빛이 점점 사라져가는 빛의 층차와 어둠의 층차들....
건물에서 흘러나오는 연기들이 그 어둠의 하늘 속으로 빨려들어가는 듯하다.
이 그림을 그리는 그의 마음엔 유년시절의 축제가 함께 하지 않았을까?
그 마음을 따라 나는 그림 속으로 뚜벅 걸어 들어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