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앵무새 죽이기
하퍼 리 지음 / 다락원 / 2007년 2월
평점 :
왜? 제목이 '앵무새 죽이기'였을까? 앵무새가 상징하는 것이 무엇일까? 사실 이 책의 이야기에서 앵무새라는 말은 단 한 번 나온다. 핀치 에티커스 변호사의 딸이자 이 책의 주인공인 스카웃의 마지막 말 중 하나다. "그건 앵무새를 쏘아 죽이는 것, 그런 종류였지요? 그렇지요??"라는 말에서 그것이 의미하는 것은 '인간이 가지고 있는 선한 양심' 정도로 해석해 볼 수 있겠다. 거짓을 참지 못하고 사회적 불의에 대해 항의하고 약자가 억울한 일을 당하는 것을 참지 못하는 것, 나아가 적극적 자비로까지 나아가는 개념일 수도 있겠다.
이 책을 아주 오래 전에 읽다가 일간지에 소개된 책을 보고 다시 읽기로 마음먹었다. 이 책은 한 소녀의 관점에서 엄마를 어릴 때 잃고 변호사 아버지와 흑인 가정부와 세 살 위의 오빠와 함께 유년시절부터 성장해가는 과정을 그린 이야기다. 미국의 근대화로 오는 시기의 미국의 흑백차별문제, 그리고 메이컴 지역에서의 특수성(이웰가족과 백인과 흑인들의 문화가 어우러진...)속에서 아이들이 홀로된 아버지 밑에서 정신적으로 성숙해지며 선한 양심에 눈을 뜨면서 성장해가는 감동적인 이야기다.
포레스트 카토의 '내 영혼이 따뜻했던 날들'처럼 아이들이 감정과 분노와 연민과 화 등의 다양한 감정의 굴곡을 겪으면서 성장해가고 '머리를 꼿꼿이 들고 이겨내는 과정'이 잔잔한 감동을 선사한다. 우선 핀치 에티커스라고 하는 변호사 아버지가 성숙하고 건전한 마음으로 아이들의 양육과정에 얼마나 섬세한 마음을 쓰면서 보살피는지에 대해 알 수 있다. 결핍은 더욱 책임감을 더하게 하는 것인지 모르겠지만 그의 모습을 보면 한 아버지이자 가장으로서 나의 모습을 되돌아보게 된다. 그리고 가정부 흑인 칼퍼니아 아줌마도 흑인으로서는 글을 읽고 쓰면서 깨인 의식을 갖고 이 가족의 구성원으로서 아이들의 양육에 적극적으로 관여한다. 이러한 따뜻하고 열린 보살핌 속에서 사랑을 듬뿍 받으며 자라는 젬과 스카웃은 엄마의 부재로 인한 트라우마없이 건강하게 잘 자라며 밝게 생활한다.
이 지역의 신비스러운 부 래들리 가문에 대한 이야기도 이 책의 또 다른 재미를 선사한다. 뭔가 비현실적이면서 사회의 갈등과 차별로부터 문을 닫아버린 듯한 폐쇄적이고 밀폐된 이 집의 아들 아서가 이 아이들의 성장을 오랫동안 따뜻한 눈으로 지켜보았다는 사실과 자신을 숨기고 아이들과 교류하고 그의 관심을 보여주었다는 점과 마지막으로 이 아이들의 생명을 구하면서 세상 속으로 그 모습을 드러낸 아서는 이 이야기의 끝은 더욱 재미있게 만든다.
우리는 어떻게 하면 사회적 불의 속에 '선한 감정과 선한 의지'를 유지할 수 있을까? 깨인 의식을 갖추는 것도 그 하나일 수 있지만 나는 보다 자연스러운 감정으로 당연하게 그런 판단과 연민이 일어나는 것은 가정과 사회에서 자연스럽게 공동체와 어울리고 배려하고 자라면서 얻은 사랑의 산물이라고 생각한다. 더 나아가 인생의 지혜라는 관점에서 삶을 바라볼 수 있을 때 우리 사회가 가지게 되는 일종의 '앵무새'가 아닌가 생각된다. 앵무새는 인간의 말을 흉내내고 그 인간의 말은 바른 마음을 담아낼 때 비로소 '양심과 선함'의 공동체를 만들어갈 수 있으니 말이다. 그런 앵무새를 죽이는 사회야말로 차별과 편견을 재생산해내며 그 부정의와 불합리 속에 권력과 명예를 쫓으려는 사람들이 만들어낸 허상의 탑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