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재구의 포구기행 - MBC 느낌표 선정도서, 해뜨는 마을 해지는 마을의 여행자
곽재구 글.사진 / 열림원 / 2002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포구란 어떤 공간일까? 여행을 다니면서 포구가 나타나는 곳이면 늘 마음이 먼저 그 곳에 가있는 경우가 많다. 더구나 노을이 질 때 바다위로 펼쳐지는 붉은 하늘을 쳐다보고 있으면 꽃천지의 하늘이 되어 내 가슴도 붉어지게 되는 것을 느낀다. 그 붉은 노을을 쳐다보며 싱싱한 해삼과 멍게를 놓고 소주한잔 하면서 불어오는 시원한 바람을 맞으면 어느새 세상 시름이 모두 씻겨져내린다.

  포구는 육지가 끝나는 곳이다. 바다와 접하는 곳이다. 그래서 육지에서 있었던 온갖 시름을 풀어놓는 곳이다. 그 육지의 시름들을 일과가 끝나는 해저물녘에 노을과 함께 바람과 함께 풀어놓으면 강물이 흘러 바다에서 자신의 몸을 벗고 바다가 되듯이 그렇게 자신을 놓아버리고 바람이 되고 노을이 되고 바다가 된다. 포구는 이렇게 삶속에 지친 우리들의 영혼을 누이는 곳이다. 그 놓인 영혼이 충분한 쉼을 얻어 다시 생활로 삶으로 돌아가는 원기를 보충하는 곳이다.

  포구에서의 사람들과의 만남도 빼놓을 수 없다. 곽재구 시인도 역시 포구마다 잊혀지지 않는 사람들과의 기억들을 가지고 있다. 소리꾼 조공례할머니라든지 2000원짜리 세상에서 제일 맛난 팥죽과 순임씨, 바다를 사랑하는 그리고 시를 사랑하는 어부 정씨 등 포구를 바탕으로 삶을 일구어가는 억척같은 아낙들과 한많은 사람들의 인생살이의 고달픔이 있다. 하지만 바다에서 그 억척스러움과 한스러움 고달픔은 모두 포용되고 만다. 바다란 그런 공간이다. 삶의 모든 것을 포용하는 바다와 그 기운을 처음 맞대고 사는 동네가 바로 포구인 것이다.

  포구의 어제 오늘은 많이 달라졌다. 자연적으로 형성된 포구의 원래모습이 남아 있는 곳이 거의 없어졌다. 관광지가 될수록 사람들이 많이 찾을수록 높은 건물과 음식업, 숙박업이 들어서게 되고 그러면서 원래의 자연풍광을 잃어가는 것을 어찌할 수 없다. 하지만 그 어찌할 수 없는 인간의 욕망이 때로는 서글프기만 한 것을 또 어찌할 수 없다. 이리 저리 풍경을 가리는 건물들 사이로 언뜻 조각만한 풍경들이 눈에 들어오면 막혀버린 건물들이 또 내 가슴도 꽉꽉 막혀버리게 한다. 어쩌겠나. 세상 사람들은 또 그들의 방식으로 삶을 일구어가는 것인데....하지만 가진 것도 없이 몸뚱이 하나로 억척스런 삶을 살아가면서도 사람의 정을 잃지 않는 토박이들이 자신의 보금자리를 빼앗겨가는 것을 지켜보면 가슴아픈 일을 어찌할 수 없다.

  삶을 살다가 간혹 정이라고 하는 것이 생기게 되면 사랑이라는 감정이 생기게 되면 우리는 그것이 사는 중요한 의미가 되기도 한다. 하지만 그때문에 지불해야 하는 빚도 만만치 않다. 좋은 감정 때문에 생기는 감정의 굴곡과 밑바닥 감정까지도 다 싸안고 살아야 하니 말이다. 때로는 그 호오의 감정없이 그냥 모두 내려놓은 채 내가 바람이 되고 노을이 되고 바다가 되고 구름이 되고 풍경 그 자체가 되고 싶을 때가 있다. 뭐 대수인가? 이렇게 살다 나도 한 줌 재로 변하고 말 것인데...그깟 육체 평생 달고 얽매여 살면서 한 순간 쯤 놓아버린다고 어떻게 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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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caru 2005-07-30 18: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깟 육체 평생 달고 얽매여 살면서 한 순간 쯤 놓아버린다고 어떻게 될 것인가?
키햐~
ㅇㅣ 책 저도 있습니다... 한 순간쯤 ...이눔의 육체를 놓구 싶을 때...읽구...훌쩍...해버릴려고... 아껴 두었다고 말한....다면..거짓말일까...

달팽이 2005-07-30 20: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하하...역시 호방한 이카루님...

잉크냄새 2005-08-08 18: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안녕하세요. 달팽이님. 어촌태생인 저에게 포구의 하늘빛은 노을빛마저도 회색빛으로 종종 비춰지곤 했습니다. 과거의 영화가 모두 사라져가는, 퇴물이 되어버린 술집여자의 어색한 화장만큼이나 부조화스러운 풍경이 펼쳐지곤 했습니다. 아마도 두발 모두 바다에 묻고 살아가는 사람들의 틈바구니에서 자라온 까닭인가 봅니다.

달팽이 2005-08-08 22: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반갑습니다. 잉크냄새님. 산업화과정에서 농촌과 더불어 삶의 터전을 빼앗겨가는 어촌에서 자라면서 바라본 어린아이의 눈에서 벌써 회색빛 하늘을 보았다니 상당히 조숙했었나봅니다. 여행자로서 아무리 밀착해서 보려해도 그들의 속내음까지 다 알 수는 없는 것이겠죠. 하지만 어촌태생으로 유년시절의 빛깔을 간직한 당신에게 그 노을빛과 파도소리, 바다가 주는 아름다움이 뭇사람들이 보는 것보다 더욱 선명하고 다채로울 것이라 믿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