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비소리 - 나를 깨우는 우리 문장 120
정민 지음 / 마음산책 / 2005년 1월
평점 :
품절


  아침이 늘 새롭다. 보는 풍경이 늘 새롭다. 푸른 하늘에 흘러가는 구름 한점 한점 같은 날이 없다. 만나는 사람들의 표정이 새롭고 거대한 궤적을 그리며 흘러가는 역사의 표정 또한 새롭다. 새로운 책 한 권 드는 내 마음이 새롭다. 하지만 새로운 것은 또한 새로운 것이 아니다. 겉모습이야 늘 변하기 마련이지만 푸른 하늘에 떠있는 구름 뒤의 하늘 여전하다. 사람사는 모습은 달라도 살면서 가지는 인생의 기쁨과 슬픔, 쾌락과 고통, 이상과 현실, 꿈과 현실이 별반 달라진 것이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모든 것은 내 마음 속의 떨림으로 모아지고 그 떨림은 순간 순간이 늘 새로운 것이 된다.

  정민 선생님의 책을 한 권 들었다. 사실 사놓은 지는 오래되지만 목차와 앞부분을 보니 짧은 문장의 글로만 되어서 일정한 체계와 책 한 권을 다 읽은 후에 가지는 어떤 느낌과 감정이 한 페이지 페이지 분리될것이라 생각하니 선뜻 손이 가지 않았다. 그러다가 우연히 손에 쥔 책은 한 페이지 페이지마다 그냥 읽어내리는 글이 아니었다. 나의 느슨해진 자세를 바로잡게 하고 나의 혼란스러운 정신을 바로세우니 이것은 짧고도 강력한 글이었다.

  모든 가치있는 책들이 그러하거니와 이 책 역시 나의 마음을 온 세상을 돌아다니게 하는 책이 아니었고, 나의 마음 속으로 돌아오게 한 책이었다. 남들을 어떻게 생각하고 세상이 이래서 어떻고 저래서 어떻고 하는 책이 아니라 글을 통해서 나를 되돌아보고 지금 마음을 가늠하고 단속하게 하는 글들이었다. 우리 선비들에게는 삶의 나태해지고 게을러진 마음을 질책하는 글이었고, 남을 꾸짖는 마음을 돌리어 자신을 꾸짖는 글이었다. 기능인이나 기술자가 되기 위한 글이 아니었고, 예술로 승화시키는 글이었으며 정신과 몸을 바로 세우는 글이었다. 남들에게 자신을 드러내는 글이 아니었고, 아무도 알아주는 이 없는 곳에서 자신을 수신하는 글이었던 것이다.

  우리 삶을 일깨우는 120편의 짧은 문장들로 저자는 우리들의 관성화되고 타성화된 삶을 죽비로 내려치면서 질책한다. 하지만 이 글들은 저자 자신을 바로세우는 글이기도 하다. 시간과 공간과 자아에 묶여있어 올바르고 참된 생각과 판단을 내리지 못하는 우리들에게 마음속의 양심에 떳떳하게 생각하고 행동하라고 한다. 보다 크고 원대한 마음에서 본 중요한 인생의 가치를 위해서 보다 적은 가치들에 매이지 말라고 한다. 비록 많은 글로 이루어진 사상과 이론이 아니지만 자신의 생활속에 인생의 가치를 담은 결코 가볍지 않은 이 글들은 한가하고 여유로운 주말의 오후를 엄숙하게 한다. 경건하게 한다.

  글을 읽어도 아무런 감흥을 느끼지 못하는 경우도 있고, 비록 짧은 글이라도 자신의 마음을 바로세우는 글이 있다. 결국엔 글이 마음이라는 코드로 전환되어야 한다. 그것을 바꾸는 코드는 무엇일까? 나아가 사람과의 만남도, 어떤 일을 하고 있어도, 그저 아무일없이 한가롭게 소일해도 마음은 열려 있고 깨어있게 만드는 코드 그것은 무엇일까? 그리고 왜 이런 멋진 글을 접할 때 우리는 갑자기 그 코드의 접속을 느끼는 것일까? 그것은 글의 형식이나 내용에 있는 것이 아니라 글쓴이의 마음에 있는 것이다.

 


댓글(2)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글샘 2005-09-24 14: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주역이 왜 글자가 아닌 코드로 세상을 풀고 있는 것인지, 요즘 곰곰 숙고하고 있습니다. 글로 나타낸 것은 선현들의 사상의 찌꺼기라는 장자의 말씀에 공감하면서 말입니다. 달팽이님의 글에 공감을 느끼면서 신선한 오후를 맞습니다. 주말 잘 보내시길...

달팽이 2005-09-24 16: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 선생님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