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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를 담는 그릇 - 한국건축의 재발견 1
김봉렬 지음 / 이상건축 / 1999년 2월
평점 :
절판
그간 우리 나라 건축물에 대해서는 달리 관심을 가져본 적이 별로 없었던 것 같다. 간혹 유적지를 방문할 때 안내판 정도로 간략한 지식은 얻었고, 좀 더 관심이 있으면 인터넷을 통해 찾아보면 그만이라고 생각했다. 멋있는 사찰이나 서원, 향교나 고택을 방문할 때는 무엇보다 자연과의 조화감으로 와닿는 느낌들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안내자를 동승해서 다녀오는 문화유산답사는 왠지 맛이 덜할 것이라 생각했다. 왜냐하면 주어진 짧은 시간을 기나긴 설명으로 채워버리기엔 이곳 멀리까지 와서 눈과 귀를 열어두고 마음을 열어두어서 와닿는 느낌들을 간직하는 시간이 더 절실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런 시간을 더 가지기 위해서 답사 후에 관련된 책들을 찾아보는 것이 나의 기행방법이었다. 김봉렬 교수의 책도 그런 면에서 더욱 나에게 값지게 읽힐 거리였다. 물론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도 있고 때로는 지식이 사물을 더욱 잘 보게 만들어주기도 하지만 우리들에게 상대적으로 부족한 것은 지식이 아니라 가슴이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이 책은 독자가 스스로 읽어나가면서 관심있는 곳은 찾아서 볼 수 있도록 하면 좋을 책이다.
전체적인 자연과의 조화를 고려해서 지은 집과 그 건축양식은 시대적인 유행과 기술발달 수준을 잘 보여주기도 하며 나아가서는 건축가의 개인적인 사상과 의도가 담겨진 것들이 많다. 유형으로 남아있는 건축과 유적을 접하면서 건축가의 사상과 풍수지리를 고려한 면과 나아가 그 곳에 살았던 사람들의 정신들까지 가늠해볼 수 있다면 문화답사는 제대로 된 조건을 충족시키고 있는 것이다.
우리나라의 위대한 문화유산인 석굴암과 수원화성에 대한 이야기는 어느 정도 접해본 이야기라서 새로울 것은 많이 없었다. 하지만 수원성에 담긴 정조의 일생과 의도가 개인의 복수와 영달을 넘어 종묘사직을 생각하고 시대를 생각하는 큰 뜻을 읽어낼 수 있는 저자의 안목이 놀랍다. 나아가 신라와 백제의 건축양식의 차이점과 외래문화의 수용에 대한 일반적인 관점을 넘어서 그 곳을 주무대로 살았던 사람들의 숨결도 담아내려 했다는 점에서 우리는 건축이 유물로서만 아니라 오늘날을 들여다보는 렌즈의 역할까지 하게 됨을 알게 된다.
하지만 그도 결국은 건축물에 대한 전문적 지식을 바탕으로 하기 때문에 그 건축물 속에 살았던 사람들의 정신과 숨결을 모두 담아내는 데 제약을 가질 수 밖에 없었음을 인정한다. 그것은 남겨진 우리들의 몫이 아닐까? 아무리 뛰어난 스승이라도 밥을 씹어 넘겨서 소화시켜줄 수는 없지 않는가? 책을 통해서 새롭게 생긴 허기와 갈증을 우리들의 마음 속에서 새로운 앎을 위한 출발점으로 삼아야 하는 것이다. 현장을 방문해서 그 숨결을 느끼고 그 뜻과 정신을 마음 속에서 되살려내고 수기의 계기로 삼는 것은 답사자의 몫으로 남는 것이다.
우리 나라에서 지금껏 보존되고 있는 건축물들은 대체로 그 외형의 보존에만 치중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하지만 우리가 옛 유적을 찾을 때 그것이 생활로 쓰여질 때의 시대가 담겨져야 하며 그곳에 살았던 사람의 정신과 혼이 담겨져야 한다. 그래야 후세 사람들이 그 곳을 찾아서 자신의 삶을 돌아보고 새로운 교훈 삼아 성찰하는 시간들을 가지게 되지 않겠는가? 정면교사이든 반면교사이든 우선은 외형의 이면에 담겨진 정신을 발굴하는 작업들이 좀 더 필요하다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