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삶이 얼마나 무력한지, 그리고 얼마나 많은 일상적이고 자연스러운 암초에 노출되어 있는지를 생각한다면 인생의 너무 큰 몫을 출생이며 빈둥거리기, 수련 과정 따위에 할애해서는 안 될 것이다.'

                                                                              -몽테뉴의 <에세> 중에서


연이어 터지는 흉폭한 사건과 묻지마 사건으로 세상의 모든 것에 대한 불신과 불안이 치솟고 있다.

일상의 모든 순간이 행복과 기쁨 그리고 행운만 깃들 수 없지만 대한민국의 법과 제도로 국민의 안전과 생명이 보호 받지 못한다는 것이 현재 2023년의 우리 사회의 민낯이다.


[삶의 가르침이 되는 말은 어릴 때 부모님의 집에서 배웠다. 모두 엄격한 지혜였지만, 오래된 가재도구처럼 아름답고 단순할 뿐이었다. 그런 걸로 할 수 있는 일은 많지 않을 것 같았다. 그런 경구는 항상 문장 하나로 표현되었고, 곧 마침표가 찍혔기 때문이다.]

                                              -로베르트 무질의 <특성 없는 남자> 중에서

학교에서는 폭력과 욕설이 난무 하고 부모는 서로를 견제하고 헐뜯는 경쟁심으로 충만해서 10살 영재에게 근거 없는 비방과 협박 메일을 보내고 있다.

상처와 충격은 시간이 지나면 사라질 것 같지만 마음 속 한 구석엔 영원히 지워지지 않는 상흔을 남겨서 언제 어느 순간에 불쑥 튀어 나올지 모른다.

마치 주기적으로 감정의 높낮이가 오르락 내리락 하듯 하나의 상처와 폭행, 폭언으로 받은 상처가 어제는 견딜 만 했지만 오늘은 견딜 수 없을 정도로 어떤 보상과 위로로도 완전하게 치유 되지 않는다.

산다는 게 이토록 힘이 든다는 건 인간의 운명인 것인가?

인간의 삶에 밀물과 썰물이 있다면 밀려 오고 쓸려 내려가는 시기와 간격의 고리에서 잠시 멈춤이라는 건 할 수 없는 것일까?


[우리는 속도에 얽매여 산다. 밤낮으로 빠르게 달리고, 다른 모든 일도 빠르게 처리한다. 그런데도 우리는 마치 우리를 둘러싼 네 벽이 고정돼 있는 것처럼 면도하고 밥 먹고 사랑하고 독서하고 업무를 본다. 섬뜩한 것은 우리가 그것을 눈치채지 못하지만 그 벽들이 움직이고, 어디로 향하는지는 모르지만 길고 굽은 더듬이처럼 벽의 레일이 계속 생겨난다는 사실이다.]

                                                    -로베르트 무질의 <특성 없는 남자> 중에서


태어난 지 두 달 만에 죽은 딸,테니스 공에 맞아 즉사한 남동생, 세상에 둘도 없던 친구 라 보에시의 사망, 신장 결석증을 앓다 피를 쏟아 내고 세상을 떠난 아버지....

가까운 이들의 죽음을 두 눈으로 목격했던 미셸 에켐 드 몽테뉴(1533-1592)는 38살이 되던 해 “남아 있는 삶이나마... 누구의 방해도 없이 지내다 죽겠노라' 다짐하고 조상 대대로 살았던 고향 프랑스 서남부의 페리고르로 귀향한다.

귀향 한 성 밖 너머 수시로 출몰하는 전쟁의 피 냄새가 끓어 올랐던 시기에 몽테뉴는 지름이 16보, 둘레가 50본 정도인 서재에서 칩거하며 1천 권 남짓의 책을 읽으며 종당 천장에 새겨 놓은 로마시인 루크레티우스의 시구를 지우고 이런 경구를 새겨 넣었다.


' 더 오래 살아도 새롭게 얻을 낙은 없다!'

-몽테뉴


그가 이 시기에 써낸 『에세』는 근대 시대로 넘어가 마르셀 프루스트, 로베르트 무질, 제임스 조이스, 버지니아 울프에게 지대한 영향을 미치며 <에세이>라는 장르를 탄생 시키며 내가 나를 쓴 최초의 철학적 사유의 글은 인간의 내적 삶이 결정적인 사유를 통해 추출해낸 단 하나의 변할 수 없는 형식이 되었다.



[처음부터 나는 글쓰기를 가르치는 일이란 곧 작가를 움직이는 동력이 무엇인지 또렷이 보일 때까지 계속 읽는 법을 가르치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어떤 글을 읽을 때 우리는 이렇게 물을 것이다. 여기서 작가의 뇌리를 사로잡고 있는 더 큰 생각은 무엇일까? 진정한 경험은? 진짜 주제는? 내게 중요한 것은 답을 찾을 수 있느냐가 아니라 이런 질문을 던질 수 있느냐 하는 것이었다.]

                                                         -비비언 고닉의'상황과 이야기' 중에서


나는 매일 글을 쓰면서 세상을 탐구 하며 내 안의 나를 다양한 각도로 살펴 보고 있다.

글을 쓰는 동안에는 사회와 가정에서 소비 되고 허비 되고 끌려 다니는 '내가' 아닌 주체적인 '내가' 된다.

1월 12일부터 투비에 매일 글을 쓰고 있으니 나역시 몽테뉴, 비비언 고닉처럼 에세이를 쓰고 있는 것이다.

https://tobe.aladin.co.kr/t/scott


[문학의 미래는 단지 책장에 책 몇 권을 덧붙이거나 위대한 여성 작가나 호메로스를 꼼꼼히 읽고 세련된 사람이 되는 것보다 훨씬 더 많은 일에 관한 것이다. 나는 복수의 목소리와 복수의 관점을 담은 복잡한 소설들을 체험하는 것, 고통 받고 축하하고, 여행을 떠났다가 집에 돌아오거나, 그저 방안에서 깊은 생각에 잠기고, 친절하거나 잔인한 캐릭터들이 등장하는 소설들을 체험하는 것을 통해, 이 상상의 인간들은 실제의 타자들과의 관계 속에서 우리를 다른 곳으로 옮겨주고 또 그럴 수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낯선 것이 친숙해진다. 소설 읽기는 우리 정치적 불행에 대한 해결책이 아니다. 그 문제라면, 조직화, 적극적 저항, 더 강경한 수사가 요구된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이야기들이, 좋은 이야기들이 필요하다.]

                                             -시리 허스트베트의 어머니의 기원 중에서

한국에서 알랭 보통의 에세이들이 날개 돋치게 팔리는 동안 나는 뉴욕에서 시리 허스트베트가 진행하는 팟캐스트를 들으며 그녀가 쓴 책들 기고한 에세이들을 모조리 찾아 읽었다.

그 시기에 뉴욕은 불특정 다수를 대상으로 한 묻지마 폭행과 범죄가 날마다 실시간으로 발생했고 대낮에 거리에서 아시아계들이 흑인, 히스패닉 부랑자들에게 피가 터지게 폭행을 당했던 시기였다.

다민족 국가로 이방인과 이민자들, 불법 체류자들로 넘쳐 나는 미국 뉴욕은 그야말로 아시아계들에게는 정글 같은 곳이여서 그곳에서 아시아계 여성으로 살아간다는 건 매일 아침 문 밖을 나설 때 마다 목숨을 걸어야 할 정도로 어디에서든 안심할 수 없는 곳이다.

'여성은 성적 대상이 아니다.'라는 표어를 크게 적은 피켓을 들고 행진을 해도 아시아계 여성들의 인권 보호는 지켜지지 않는 곳이 뉴욕이다.


그 시기에 시리 허스트베트는 '여자가 성적 대상이면 남성도 성적 대상이다'라며 남성들이 품고 있는 성적 감성을 문장으로 낱낱이 해부 하는 기고 글을 썼다.

미국의 페미니즘은 2016년에 터져 나온 미투 사건 이전에 청교도적인 사고가 깊이 자리 잡은 곳이였다.


'성적 자유와 에로티시즘은 동일하지 않다'고 주장한 시리 허스트베트는 법적으로 해석되지 못하는 '성차별'의 문제, 여성의 인권에 대해 심리학적 사유와 과학적인 사고 방식으로 분석했다.

시리 허스트베트의 글은 인간의 기억과 상실, 차별과 혐오, 모성, 이민자들의 현실을 예술적인 언어로 문학·신경과학·정신분석·예술·사회 분야를 넘나들며 여성성과 남성성이 모두 뒤섞여 있는 독특한 매력으로 넘쳐 난다.

그녀의 글이 기고 되고 책으로 출간 될 때마다 찾아 읽고 구매하는 이유는 세상을 집요하게 분석하고 파헤치는 작가 이기 때문이다.

흔히들 유명 작가들이 펴낸 에세이 집에는 자기만의 이야기, 자기 만의 세상에 대한 글들로 채워져 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은 점점 좁혀져서 실시간으로 멀리 떨어져 있는 이들의 세상을 손 안에 폰으로 볼 수 있음에도 세상을 이해하고 분석하고 바라보는 시각은 점점 편협해져서 거짓과 진실에 대한 경계가 모호해지고 있다.


미국 2세대 페미니스트인 80대 비비언 고닉은 여전히 길을 걸으며 세상을 관찰하고 분석하며 어떤 비난에도 굴하지 않고 맞서며 자신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70세를 앞둔 1955년생 시리 허스트베트도 사회에 고착된 죽은 언어, 여성 혐오, 차별,폭력, 폭언에 대해 맞서 싸우며 상투적인 언어가 아닌 논리와 설득의 아우라를 휘감고 오래고 영예로운 싸움의 선봉장에 서 있다.



불안한 시기에 두 권의 뛰어난 작가들의 책이 펀딩 되고 있다.

이미 나는 두 권을 읽었지만 모두 어려운 시기에 훌륭한 양서가 세상에 널리 읽혀지는 바램으로 펀딩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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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고 2023-08-21 06:4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시리 허스트베트 글 좋네요 저는 한권도 안 읽었는데ㅜㅜ 스콧님 소개 보고 읽어야 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아 근데 이 분 남편이 폴 오스터군요ㅎㅎㅎ

2023-08-21 09:55   URL
비밀 댓글입니다.

호시우행 2023-08-21 07:4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책소개 감사합니다.

scott 2023-08-21 09:56   좋아요 0 | URL
오늘도 무덥네요
호시우행님 한 주 시작 시원하게 ^^

건수하 2023-08-21 09:2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시리 허스트베트 전에 어딘가에서 보고 (스콧님이 언급하셨을까요) 이름이 어렵다고 생각하고서는 잊어버렸는데 오늘 이 글을 보니 급 관심이 생겨서 읽어보려고 합니다. (아마도 요즘의 난무하는 범죄 때문인 것 같아요) 소개 감사합니다.

scott 2023-08-21 09:56   좋아요 1 | URL
네, 전에 제가 언급 했습니다

좋은 책 어려운 시기에 출간 결정한 출판사 칭찬하고 싶어서 올렸네요 ^^

희선 2023-08-22 00:0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scott 님은 벌써 읽으신 책이 한국말로 나오는군요 그런 거 보면 반갑겠습니다 요새 일어나는 일이 그리 좋지 않지만... 한국도 좀 멈춰야 하지 않을까 싶기도 합니다 지금까지 경제만 많이 생각했잖아요 한동안 저녁이 있는 삶을 살자 했지만 정말 그렇게 산 사람이 얼마나 될지... 세상은 이어진 것처럼 보이지만, 그저 겉만 그럴지도 모르겠네요


희선

2023-08-22 10:29   URL
비밀 댓글입니다.

억울한홍합 2023-08-27 19:3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인생에는 밀물과 썰물이 있다‘에서부터 읽고 싶어집니다~~

scott 2023-08-27 20:59   좋아요 0 | URL
홍합님 9월 도서로 강추 ^^

어쩌다냥장판 2023-12-29 16:4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특성 없는 남자의 리뷰를 보다가 리뷰 쓰신걸 늦게야 봤어요 에세는 추천해주셔서 구입해선 교훈서처럼 읽고 있어요 듣는걸로는 아까워서 눈으로 봐야할 책이라.. 역시나 여러책들 장바구니에 담아둡니다 소중하고 상세한 리뷰 늘 감사합니다
 

첫 여성운동 물결의 국면을 1848년 세니커폴스 집회부터 여성의 투표권을 인정한 1920년 제19차 헌법 개정안 시점까지 추적할 수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우리는 1960년대부터 시작하여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는 제2의 물결을 떠올릴 수 있다. 혼란스럽고 소란하고 대단하고 지금도 계속 진행 중인 물결을. 우리는 이런 시각을 견지하면서 우리 모두 여전히 그 물결의 한가운데 있다고, 세상이 요동치는 한 멈추지 않고 계속 나아갈 것이라고 마음에 새긴다.'

                                                                                                      -여전히 미쳐 있는 중에서 

폭우를 뚫고 도착한 책, 읽자!읽자!읽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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햇살과함께 2023-07-15 17:0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오 벌써 도착했네요!
저도 집에 가면 와있기를!

scott 2023-07-15 17:26   좋아요 1 | URL
펀드 참여자들은 오늘 배송 해 줄 것 같습니다
햇살님 댁에도 이미 와 있을것 같아요
여전히 미쳐 있는 ^^

거리의화가 2023-07-15 18:1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도착했답니다 스콧님^^ 표지가 강렬하네요.

scott 2023-07-15 18:57   좋아요 1 | URL
다락방에 미친에 비하면 한 손에 잡히는 두께 ㅋㅋ

독서괭 2023-07-15 18:3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전 배송지연 문자 왔네요. 어차피 사무실로 시켜서 월요일에 오는 편이 나으니 다행이요 ㅎㅎ

scott 2023-07-15 18:58   좋아요 1 | URL
월요일,,,,
부디 비에 젖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제 택배 박스 모서리도 좀 젖었는데
다행히 책은 포송 포송 ^^

책읽는나무 2023-07-16 20:2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어제 받았네요^^

2023-07-16 22:52   URL
비밀 댓글입니다.
 

'생명과 인생이라는 뜻을 담고 있는 한글 단어 '삶'을 보면 흥미로운 자음이 보입니다.

ㅅ-ㄹ-ㅁ'

-문지혁의 중급 한국어 중에서


투비를 하고 부터 가끔씩 알라딘에 들어와 글쓰기 창을 열때면 여전히 불안, 불안하다.

쓰던 도중에 순식간에 백지 상태 글쓰기 창이 뜬다거나,올리고 싶은 사진이미지가 등록 되지 않거나...

하는 경우가 빈번하기에 오늘도 글을 쓰면서 문득 내가 알라딘을 하면서 부터 이모티콘을 직접 그리게 되었다는 사실을 새삼 깨닫게 되었다.(댓글창에 사진이미지 등록이 안되니)

.

  ∧_-------∧ !

 (´💖ω゚💖')

_(_つ/ ̄ ̄ ̄/_

  \/   /

    ̄ ̄ ̄

투비컨티뉴드 글쓰기 기능에 익숙해진 지금, 이곳 알라딘 서재에 내가 원하는 날짜, 시간에 맞춘 예약 발행 기능이 전혀 없다는 사실에 어색한 불편함이 한 가득...


' 빈센트가 그린 아름다운 밤하늘과 반짝이는 별들은 말한다. 현실에서 도망치지 않고 담담하게 살아가되 하늘의 별을 바라보며 희망을 잃지 말라고. 희망은 별에 있지만 지구 역시 별이라는 사실을 잊지 말라고.”

-보내는 이, 빈센트


┊┊┊╭━━━━━━━━━╮

┊┊┊┃이제 이곳엔 리뷰만 올려야 하놔 ㅎㅎㅎㅎㅎㅎ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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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YDADDY 2023-03-06 08:2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멋진 아스키 아트군요. 키보드앱중에 지원하는 것도 있지만 직접 만드시는 분은 처음 봐요. 앞으로 예쁜 재미있는 그림 기대할께요. ^^

scott 2023-03-06 10:19   좋아요 1 | URL
이제 헬기도 그릴 수 있습니다 ㅎㅎㅎ

알라딘 서재 댓글 창에 사진이미지를 올리지 못해서

이런 기술을 나름 습득하게 되었네요

대디님 한 주 시작 멋지게 ^^

거리의화가 2023-03-06 09:1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투비에 예약 발행 기능이 저도 참 좋더라구요.
사진 안 올라가는 건 진짜 빨리 해결이^^;;;
아... 월요일인데 일하기가 넘 싫습니다. 할 일은 태산 같은데ㅠㅠ

scott 2023-03-06 10:20   좋아요 1 | URL
투비 글쓰기 기능에 익숙해져서
지금 댓글 쓰는 것도 적응이 안되능 ㅎㅎㅎ

3월 일더미 가득 ㅠ.ㅠ

화가님 미세먼지 가득찬 오늘 건강 잘 챙기세요 ^^

물감 2023-03-06 11:3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사진 등록이 되긴 하는데 로딩이 좀 길어졌어요. 어째 점점 서재가 무너져가는 기분이 들죠 왜 ㅠ

2023-03-06 11:38   URL
비밀 댓글입니다.

쎄인트saint 2023-03-06 11:5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되다...안 되다 하네요....

scott 2023-03-06 12:14   좋아요 0 | URL
그냥 어느 순간 서재글 모두 홀라당 날라갈것 같습니다
서브 용량 과부하를 더이상 못 버티는 듯,,,

바람돌이 2023-03-06 23:3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젠 되는거 아닌가요? 되던데요??? ㅎㅎ

scott 2023-03-08 10:47   좋아요 1 | URL
어느 날 갑자기 여기글 홀라당 날라 갈것 같아여 ㅎㅎㅎ
 

미국의 주요 아이비리그 대학의 창작 수업이 대략 90여개 정도로 1학년 생들의 필수 과목인 기초 라이팅 수업을 들으면 2학년으로 올라 가서는  각종 연구 보고서 쓰는 법, 기업 지원 이력서 작성법, 신문, 잡지 기사 작성법, 각종 메뉴얼 쓰기 수업까지  세부적이면서  전문적인 글쓰기 훈련을 집중적으로 배울 수 있다.

 각 대학 마다 분야 별 전문가 급 실무진 교수들과 초빙 강사들에게 수업 진행을 맡기는데 이들 대부분은 주요 문학상을 수상한 이력을 갖춘 작가들, 언론계 종사자들, 유명 저널리스트, 방송 진행자들로 일단 이들의 이름으로 개설된   수업은 단연 학생들에게 인기다.

특히 프린스턴 대학은 시러큐스 대학 재학 시절 부터 타고난 글쟁이로 이름을 날리며 세계적인 작가가 된 조이스 캐롤 오츠가 학부생을 대상으로 한 창작 수업을 시작 하면서 여러 명의 유명 작가들을 배출 했다.

그 중 한 명인 조너선 사프런 포어는 조이스 캐롤 오츠가 강력 추천해서 첫 장편 <모든 것이 밝혀졌다> 출간과 함께 그가 출간하는 작품들이 전 세계로 번역 출간 되었고 영화로도 만들어졌다.


현재 조너선 샤프런 포어도 자신의 모교 프린스턴 대학에서 강의를 하고 있고 퓰리처 상을 수상한 줌파 라히리는 코로나 발발 시기에 문예창작 학부(루이스 센터 아트스쿨) 학과장이 되었다.

현재 프린스턴 대학은 중국계 작가 이윤 리까지 영입해서 막강한 교수진을 구성했다.

미국 대학 역사에서 가장 먼저 창작 클래스를 설립해서 창작 워크샵을 시작한 아이오와 대학은 100년이 훌쩍 넘는 기간 동안 이곳 창작 교육 프로그램을 거쳐간 작가들 중 상당수가 세계적인 작가가 되었다.

중국계 이윤 리 작가도 이곳에서 글쓰기 수업을 받으면서 썼던 단편이 '뉴요커'에 실리면서 작가 생활을 시작했다.


미국 대학들이 글쓰기 수업에 막대한 투자를 하는 이유는 '쓰기'는 생각의 힘을 길러주는 최고의 도구이자 자신의 생각을 완성 할 수 있는  최고의 지침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주요 아이비리그 대학들은 문예창작을 석사(MFA in Creative Writing) 과정으로  개설해서 '글쓰기'를 전문적으로 집중 교육하고 있다. 

글쓰기  수업에서 가장 강조하고 중점을 두는 건 어떻게 쓰는 법이 아닌 어떻게 읽고 분석해서 단어들을 문장의 어떤 매커니즘으로 연결 시켜 나가는지를  중점으로 세세하게 분석하는 글쓰기 훈련을 한다.

여러 인물들의 인과 관계를 엮어서 스토리의 구조를 짜려면 각각의 이야기에 맞는 배경지식을 알고 있어야 하기 때문에 창작 수업에서는 어떤 수업 보다도 집중적으로 '읽기'에 많은 시간을 할애하고 있다.

프린스턴 대학에서 철학을 선택한 조너선 사프란 포어가 그저 재미있을 것 같아 선택했던 창작 수업에서 조이스 캐롤 오츠는 학생들을 돌아가면서 지목한 후 각자의 이야기를 큰 소리로 이야기 해보는 방식으로 수업을 진행했다고 한다.

조이스 캐롤 오츠가 이런 방식으로 수업을 진행했던 이유는 단어들이 특정 단어들과 만났을 때 어떤 음조와 음률로 이어지는지 스스로 써 놓고 알지 못하기에 제 3자인 다른 이들이 듣고 어떤 이야기로 받아 들이는지, 스토리의 구조가 어떻게 흘러가는지 파악해서 첨삭 조언을 하기 위해서 였다.

조너선은 이 과정을 여러 차례 하는 동안 처음에는 말도 안되는 이야기를 지껄였다가 수업 마지막에는 제대로 된 이야기를 써 보겠다고 작정하고 종이에 글을 쓰기 시작했다.

기말 시험으로 제출한 그의 이야기에 캐롤 오츠는 흥미롭다며 다음 이야기를 써보라고 격려했고 그 결과 그는 세계적인 작가가 되었다.

아마도 조너선은 수업 내내 이야기가 작동하는 방식을 학습해 나가면서 결국엔 스토리의 구조 속에 담긴 특정 사건과 인물의 시작과 끝 맺음을 어떻게 다듬어 나가는지 배웠을 것이다.

하지만 모든 이들에게 이렇게 단기간 안에 글쓰기를 학습하고 훈련해서 누구에게나 읽혀지는 완성된 이야기를 뚝딱 창작 하기 힘들고 어떤 수업을 들었어도 글쓰기에 진전이 없을지도 모른다.

여기, 또 다른 한 명의 창작 클래스를 이끌고 있는 작가가 있다.


<바르도의 링컨>으로 맨부커상을 수상한 작가 조지 손더스(George Saunders1958-)는 미 대학 문예 창작 학부에서 가장 유명한 학교 중에 하나인 시러큐스 대학에서 글쓰기 수업을 이끌고 있다.

그는 장편 <바르도의 링컨>으로 세계적인 명성을 얻기 전  오 헨리 단편상을 수상하며 단편을 잘 쓰는 작가로 알려져 있었다.

시러큐스 대학의 창작 학부는  단  여섯 명의 신입생만 받기 때문에 이곳의 입학 관문을 뚫고 들어간 학생들은 이미 전문 작가의 궤도에 올랐을 정도로 미국 내 각종 글쓰기 대회에 이름을 수차례 올렸던 이들이다.(입학 평균 경쟁률이 7-800:1 정도라고 함)

이들은 입학과 함께 교수진들과 1;1 수업을 받으며 매 학기 마다 제출하는 과제물이 주요 문예지에 실리거나 문학상 수상 후보에 올라 갈 수 있을 정도로  강도 높은 글쓰기 훈련을 한다.

조지 손더스는 20여 년 동안 자신의 창작 수업에서 19세기 러시아 단편 소설을 중심으로 가르쳤는데 그 중심에는 <안톤 체홉>의 작품들로 기타 작가들 중에는 투르게네프, 톨스토이, 고골 뿐이다.

조지 손더스 뿐 만 아니라 미국의 거의 모든 대학의 창작 클래스에서 안톤 체홉의 주요 단편들은 항상 교재로 쓰이고 있다.

조지 손더스가 선택한 러시아 단편들의 공통점은 단순하면서 명료한 언어로 구성된 이야기로 가장 기본적인 글쓰기 형식이 이 단편들 속에 모두 들어 있다.

안톤 체홉의 대부분의 단편들은 대단한 사건이나 인물이 나오지 않고 역사적 소용돌이에 휘말리는 영웅의 대서사시도 없다.

별 볼일 없는 인물들, 우리 주변에서 한 번 쯤 스쳐 지나갔던 이들의 모습에서 선한 삶을 살거나 그렇지 못한 인간들의 모습 속에서 참된 인간애를 느끼게 만드는 이야기의 힘이 담겨져 있다.

조지 손더스는 여기, 이 책에서' 19세기 러시아 단편 소설을 읽는 것은 '마치 젊은 작곡가가 바흐를 공부 하는 것과 비슷하다.'라고 언급하며 책 전반에 걸쳐 읽는 방식, 즉 우리 자신의 읽기를 지켜 보고 어떤 이야기를 통해 세상을 어떻게 받아들이는지 생각 해볼 기회를 갖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 한다.


그가 글을 쓰고 싶어서 이 책을 펼친 독자들을 위해 선택한 작품들은

-마차에서(안톤 체홉)

-기수들(이반 투르게네프)

-사랑스러운 사람(안톤 체홉)

-주인과 하인(레프 톨스토이)

-코(니콜라이 고골)

-구스베리(안톤 체홉)

-단지 알료샤(레프 톨스토이)


총 7개 단편들을 통해 각자 읽기 상태를 점검하고 저자가 던지는 질문에 대한 답을 에세이 형식으로 써보기를 제안한다.

우리가 어떤 이야기를 읽거나 들었을 때 그 이야기를 통해서 어떤 느낌, 즉, 무엇 때문에 끝까지 읽게 되었는지 어떤 내용에서 마음이 움직였는지 글로 써봐야 각각의 단편 전체 구조를 파악할 수 있게 된다.

작가 손더스는 문학적 언어가 아닌 가장 기본적인 방법으로 서술 하면서 특정 이야기에서 저항심이나 혼란을 느꼈거나 짜증을 불러 일으켰던 것 까지 모조리 써본 후 도대체 이 이야기에서 무엇을 배울 수 있는지 차분하게 생각해 보는 법을 시도 해 볼 것을 조언한다.


그는 첫 번째 스토리 안톤 체홉의 <마차에서>를 한 장씩 보여 주면서 각각의 이야기 속에서 독자들이 무엇에 중점을 두고 한 문장에서 다음 문장으로 이어질 때 중심 인물의 감정의 선을 자르고 붙이며 시 공간을 뛰어넘는 작업을 한다.

맨 마지막 전체 스토리를 단 한 줄로 만드는 작업을 하는데 이 방식은 실제 시러큐스 대학 수업에서 훈련 하는 방식과 똑같다고 한다.


우선, 손더스는 독자들이 작품을 읽고, 어떤 부분에서 주인공이 무엇을 했는지, 이전 스토리에서 알아 차리지 못했던 그 무엇을 알게 되었는지 그리고 그 다음에는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 단계 별로 읽기 작업을 시도한 후 이런 질문을 던진다.


  1. 책장에서 눈을 들고 지금까지 알게 된 것을 요약하라. 한두 문장으로 해보라.

  2. 무엇에 호기심을 느끼는가?

  3. 이야기가 어디로 간다고 생각하는가?

그리고 맨 마지막 질문은 다음과 같다.


-당신이 작가라면 다음에 어떻게 하겠는가?

-한 사람의 독자로서 당신은 다른 무엇을 알고 싶은가?


우리는 쓰기가 아닌 읽기의 독자의 시선으로 각각의 이야기를 분석 할 때 테마-플롯-인물 발전-구조 같은 용어를 사용 하지 않는다.

쓰기를 할 때도 이런 용어에 집착 하지 않는다. 하지만 일단 글을 쓰게 되면 설득력 있는 이야기, 읽고 싶은 이야기를 쓰려면 서사 구조를 제대로 구축할 수 있어야 한다.

시러큐스 대학의 창작 워크샵 프로그램에서 소설 쓰기 방식은 일주일에 한 번 씩 학생 여섯 명이 서로 두 명씩 팀을 짜서 각자 쓴 작품을 읽고 토론 하는 방식으로 진행한다.

이런 수업 방식은 다른 대학에서도 똑같은 방식으로 진행 되는데 다른 사람이 쓴 글을 읽고 분석하고 토론하고 그리고 마지막으로 교정을 한 후 , 담당 교수가 논평을 하는 걸로 마무리한다.

콜로라도 광업 대학에서 공학을 전공한 후 건설 현장에서 뛰어 다니다가 뒤늦게 글쓰기를 시작한 조지 손더스는 전형적인 글쓰기 수업 방식과는 다른 방법으로 학생들을 자극한다.

별것 아닌 사건이 발생하는 지점의 문단을 뽑아내서 거기서 추출해 낸 특정 단어로 하나의 이야기를 완성하는 동안 학생들, 또는 독자들이  위대한 작가의 불멸의 작품에서 버려도 되는 부분을 가져다 완전히 다른 이야기로 완성해서 자신만의 글쓰기 스타일로 발전 시켜 나가게 이끈다.

이런 과정 속에서 이야기를 쓰는 동안 19세기 러시아 농노 사회가 아닌 21세기 현대 사회의 노동자들의 삶으로 깊숙이 개입해서 나날이 축적 되고 있는 고통, 삶의 고단함, 과거 속의 그들의 삶을 역 추적해 볼 수 있다.


[그들은 아침 8시 반에 읍내에서 마차를 몰고 나왔다. 포장도로는 말랐고 찬란한 4월의 태양이 온기를 뿌렸지만 도랑과 숲에는 여전히 눈이 있었다. 겨울, 악하고 어둡고 긴 겨울은 바로 얼마 전에야 끝났고 갑자기 봄이 왔지만, 온기도, 봄의 숨에 따뜻해진 나른하고 투명한 숲도, 호수처럼 물이 괸 들판의 거대한 웅덩이들 위를 나는 검은 새 떼도, 다른 사람이라면 너무 좋아 뛰어들 것만 같은 이 경이롭고 가없이 깊은 하늘도, 마차에 앉은 마리야 바실리예브나에게는 전혀 새롭지도 흥미롭지도 않았다. 그녀는 학교에서 13년을 가르쳤고 그 세월 내내 급여를 받으러 수도 없이 읍내에 다녀왔다. 지금 같은 봄이건 비 오는 가을 저녁이건 겨울이건 그녀가 늘 변함없이 갈망하는 것은 가능한 한 빨리 목적지에 닿는 것 뿐이었다. 이 지역에서 오래, 아주 오랫동안, 100년 동안 살아온 것 같았고 읍내에서 학교까지 가는 길의 모드 돌멩이, 모든 나무를 아는 느낌이었다. 여기에 그녀의 과거와 그녀의 현재가 있었으며, 그녀는 학교, 읍내까지 왕복 하는 길, 다시 학교, 다시 길 외에 다른 미래를 상상 할 수 없었다.]

-안톤 체홉의 <마차> 첫 페이지


이야기의 첫 시작에서 몇 가지 핵심 적인 인물의 상황과 심리를 알 수 있지만 앞으로 어떤 이야기로 흘러 갈 지 아직 예측하지 못한다.

손더스는 이 작품 <마차>를 읽고, 쓰는 창작 수업에서 주요 인물의 성격을 완전히 바꾸어 버리면 어떤 결말로 완성 할 수 있는지 창작 해보거나 체홉이 시도 하지 않았던 극적인 사건을 추가 해서 완성한 작품을 함께 읽으면서 어떤 스토리로 재 탄생 시킬 수 있는지 시도 하는 동안 완전하지 않은 이야기, 핵심 요소를 빼버린 이야기, 부분 부분, 싹둑 싹둑, 삭제하고 잘라 버린 이야기를 어떻게 완성된 구조로 만들어가는지 해체하는 작업에 중점을 둔다.

단편의 마법사, 안톤 체홉은 '저기 기차가 온다.'라는 첫 문장을 시작으로 철도 건너 편에 살고 있는 사람들의 일상에서 특정 시간대에 발생 했던 사건을 중심으로 사소한 요소들을 배치 하고 기차가 달릴 때 창문 너머 보이는 십자가가 보이는 교회의 불빛으로 하나의 이야기로 완성한다.

여기엔 어떤 극적인 사건도 없고, 엄청난 슬픔도 없고 어떤 뚜렷한 행복도 보이지 않는다.

그저 꿈처럼 흐릿하고 모호하게 드러나는 유년 시절의 모습, 현재의 삶 속에서 한 때 행복 했던 가정, 사랑 받았던 순간이 언뜻 언뜻 스쳐 지나가다 결국엔 어떤 일도 일어 나지 않은 채 누군가가 기억하는 어떤 인물의 삶의 흔적만 남겨질 뿐이다.

여기서 손더스는 이런 논평을 한다.


[우리 자신이 아무것도 아닌 존재이고 늘 아무것도 아닌 존재 였다고 느낀다면 그것도 하나의 이야기다. 하지만 우리가 아무것도 아니라고 느끼다가 어떤 기적적인 순간에 한때 우리도 무언가였다는 사실을 기억한다면 그것은 더 행복한 이야기 일까 아니면 더 슬픈 이야기 일까?]


글을 쓰고 싶다는 생각을 하는 사람들, 작가를 지망하는 이들 대부분 현재 내가 구상하고 쓰고 있는 글감이 과연 누군가에게 읽혀지는 이야기가 될까?라는 의문을 갖고 있다.

각자 자신의 삶을 이야기로 쓰고 싶은 이들도 과연 내 인생이 이야기로 쓸 수 있는 인생인지 , 이런 글감도 이야기가 될 수 있는지라는 생각과 고민을 하는 이들이 아주 많을 것이다.

읽혀지는 이야기, 많은 이들의 공감을 갖는 이야기의 가장 큰 특징은 우리가 그 이야기 속의 사람들이 살아가는 모습에서 각자 자신들의 모습을 발견 하거나 대입 시켜 보며 현재의 삶 보다 더 나은 미래의 자신의 모습을 찾을 수 있다는 희망을 품고 무언의 메시지를 상상 해 볼 공간이 있는 이야기로 독자들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는 힘이 있어야 한다.


'예술은 직접적으로 인간의 모든 문제를 해결 할 필요가 없다. 단지 어떤 문제도 부정하거나 외면하지 않고 스스로 깨닫고 느끼게 하는 게 진정한 예술의 힘이다.'


조지 손더스는 실제로 여기 실려 있는 단편들 중 가장 분량이 짧은 것(대략 1200단어 정도)를 복사해서  약 200단어 분량으로 잘라서 각각의 장이 끝날 때마다 무엇을 알게 되었는지, 앞선 이야기에서 무엇이 궁금한지 묻고 이 이야기가 어떤 방식의 결말을 맺을지 토론 한 후 각자 학생들이 원하는 부분의 이야기를 잘라서 이야기로 완성하는 쓰기 작업을 통해 글쓰기 훈련을 지도 한다.


이 책을 단순히 작법서로 배우겠다고 집어 들었다면 책장을 덮어버리게 될 것이다.

하지만 첫 장 부터 차분하게 읽는 동안 작가 손더스가 던지는 질문에 답을 하기 위해 종이를 펼쳐 놓고 쓰기 시작한다면 그동안 쓰기 위해서 읽었던 무수히 많은 일련의 과정 속에서 어떤 치명적인 실수를 했는지, 무엇을 읽지 못하고 지나쳐 버렸는지 알게 된다.


따라서 이 책은 어떻게 읽고 공부해야 어떤 글로 발전 시킬 수 있는지 배울 수 있는 책이다.

이 책에서 어떤 글쓰기 법칙도 찾을 수 없다. 이야기의 진정성이 작동하는 방식, 어떤 이야기가 끝까지 읽게 만드는지 어떤 스토리가 시 공간을 너머 읽혀지는지 정확하게 읽는 훈련을 스스로 구축해서 현실에서 이야기를 찾는 법을 찾게 만든다.

무엇에 대해 쓸까?라는 구상을 하기 전에 가장 먼저 해야 할 것은 무엇을 어떻게 읽어야 하는지 , 현재 살고 있는 세상을 어떤 관점으로 읽고 있는지 스스로 정의 해서 이야기 구조를 짜서 종이에 써 봐야 한다.


[이반 이바니치는 오두막에서 나와 빗속에서 첨벙 물로 뛰어들어 두 팔을 넓게 밀어내며 헤엄을 쳤다. 그가 일으키는 물결에 하얀 수련들이 흔들거렸다. 그는 강 한가운데까지 헤엄쳐 나가 물속으로 들어갔고 잠시 후 다른 곳에서 올라와 계속 헤엄 치다가도 연신 물속으로 다시 들어가 바닥에 손을 대려 했다. '어이쿠 하느님!' 그는 기뻐서 계속 소리쳤다. '어이쿠 하느님!' 그는 물방앗간까지 헤엄쳐 가 농민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돌아와 강 한가운데에 누워 얼굴을 비에 드러낸 채 둥둥 떠 있었다. 부르킨과 알료힌은 이미 옷을 입고 떠날 채비를 하고 있었지만 그는 계속 헤엄을 치고 물속으로 들어갔다. '어이쿠 하느님!' 그는 계속 탄성을 질렀다.

'주여, 저에게 자비를.'

'그만하면 됐잖아!' 부르킨이 그에게 소리쳤다.]

-안톤 체홉 <구스베리> 중에서


이 책의 원제목은 < A swim in a pond in the rain>으로 체홉의 '구스베리'에서 주인공 이반이 비가 내리는데 웅덩이 속으로 첨벙 뛰어 들어가 헤엄을 치는 장면에서 따왔다.


1895년 8월 8알 안톤 체홉은 평소 자신이 존경했던 대 작가 톨스토이에게 초대를 받아 그의 영지 야스나야 폴라냐로 갔다.

당시 톨스토이는 흰색 작업복을 입은 채 방금 전에 농사일을 마치기라도 한 듯 어깨에 커다란 수건을 걸친 상태로 땀으로 젖은 몸을 씻기 위해 강으로 향하고 있었다.

톨스토이는 처음 만난 체홉에게 대뜸 강으로 가자고 말했고 잔뜩 긴장했던 체홉은 톨스토이를 따라서 강으로 갔다.

강에 도착하자 마자 톨스토이는 입고 있던 옷을 벗고 강물 속으로 뛰어들었고 체홉도 뒤따라서 옷을 모두 벗고 뛰어 들었다.

톨스토이는 물 속에서 첨벙 첨벙 수영을 하면서 체홉에게 이런 저런 이야기를 했고 체홉도 함께 첨벙 첨벙하며 서로 대화를 나누며 재밌는 시간을 보냈다.

후에 체홉은 자신의 일기에 '강물 속에서 함께 수영 하는 동안 그가 대 작가라는 사실을 잊어 버렸다.'라고 썼다.

체홉은 톨스토이와 함께 수영 한 후 정확히 3년 뒤 1898년에 <구스베리> 단편을 완성한다.

안톤 체홉은 톨스토이를 만나기 전 그가 행하고 실천하는 삶에 진정성이 결여된 것으로 <바보 이반>이 현실에서는 작위를 가진 귀족이 드넓은 영지를 갖고 기득권을 위한 축제를 벌이고 있다고 생각했다.

체홉은 누구나 경외 하고 존경하는 영적 지도자 처럼 구는 톨스토이가 민중들에게 더 나은 삶을 위한 과학적 진보를 부정하고 오로지 흙으로 돌아가라는 그의 삶 자체가 모순덩어리라며 톨스토이의 초청을 수차례 거절했었다.

하지만 함께 수영을 하고 돌아온 후에 가까운 지인들에게 '만일 톨스토이가 죽게 된다면 내 삶에 텅 빈 자리가 생길까 봐 그의 죽음이 두렵다.'라는 말을 했다.

1904년 체홉이 사망했다는 소식을 들은 톨스토이는 '그가 나를 그렇게 사랑하는지 전혀 몰랐다.'라고 말했다.

체홉은 한 순간의 소중한 경험과 추억을 이렇게 한 편의 멋진 단편 <구스베리>로 완성했다.

후대의 독자들은 이 작품을 읽고 부분 부분 잘라서 자신들의 삶의 경험, 상상의 스토리 구조로 다시 재 편집해서 새로운 이야기로 탄생 시켜 나가고 있다.

한 편의 글을 쓰면 첫 번째 원고는 두 번째 읽을 때 전체를 뜯어 고칠 정도로 지우고 고치기를 반복하며 어떤 문단은 전체 삭제하고 다시 쓰게 된다.

그렇게 쓰면서 쉼표를 찍고, 각각의 문장 마다 어색하게 자리 잡은 단어들을 빼고, 모호한 문장을 삭제하고 앞 선 스토리에서 불분명하게 묘사된 부분을 고쳐서 전에 썼던 분량에서 반으로 줄이고 공간과 시간을 재배치 하면서 전체 스토리를 다듬어 나간다.

이런 과정을 무라카미 하루키는 수시로 톱질 하고 망치질 하는 걸로 마무리 한다고 표현했고 우크라이나 출신의 작가 이자크 바벨은 '어떤 강철 못도 적당한 자리에 찍힌 마침표 만큼 차갑게 인간 심장을 꿰뚫을 수 없을' 정도로 촘촘하고 꼼꼼하게 하나의 세계를 완성해야 비로소 읽혀지는 이야기가 된다고 말했다.

작가 손더스는 이 책에서 영화나 기타 영상 스토리의 시퀀스와 감독의 시선으로 편집하는 장면으로 이야기를 완성한 후에 어떤 방법으로 고쳐 쓰고 재 구성 해서 지지부진하게 늘어진 이야기를 어떻게 다듬어야 완결된 스토리로 만들 수 있는지 그 과정을 설명했다.


그 과정을 간략한 문장으로 써보면,

단 한 장의 텍스트를 읽고 자르고-확장하고- 다듬어서- 하나의 문장으로 응축 시켜나가는 훈련을 하는 것이다.

그가 강조하는 건 작가 지망생들은 쓰기에 앞서서 철저하게 읽고 분석하는 과정에서 자신만의 관점, 세상을 읽고 글로 풀어 쓰는 능력을 키워 나가면서 궁극적으로 자신만의 목소리를 찾아 내야 비로소 한 걸음 더 발전할 수 있다고 말한다.

결국 그는 자신이 진행하는 수업에서 가장 훌륭한 텍스트인 읽기 교재를 독자들에게 던져 놓고 글을 쓰고 싶다면 이야기 속으로 첨벙 뛰어 들어가서 스스로 밖으로 나오는 법을 터득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의 수업은 다른 교수들의 창작 수업과 달리 수업 이름이 길다.

<읽기, 쓰기, 그리고 삶에 관한 러시아 작가의 마스터 클래스>

이것은 마치 프로 음악가가 학생들을 위해 연 마스터 클래스에서 함께 악보를 읽고 연습하며 각자의 삶의 모습을 실어 연주하는 모습이 떠오른다. 

그의 창작 수업은 단순히 작가가 되기 위해 쓰는 연습을 하고 훈련을 하는 수업이 아닌 '삶'을 알아가는 수업으로 세상을 어떻게 읽고 해석하는지 스스로 터득해나가게 만드는 수업이다.


이 책을 읽다 보면 일단 각각의 이야기가 크게 재밌지도 않고 대단히 극적인 사건이 발생하지도 않고 결말도 흐지부지 마무리 되는 스토리들이다.

21세기에 자극적인 영상과 스토리에 익숙해진 독자들에게 이 책에 들어간 이야기들은 지루하게 느껴질 것이다.

하지만 페이지를 넘길 때마다 작가 손더스가 던지는 질문을 생각하며 한 번 더 이야기 속으로 들어가면 왜 이런 질문이 나왔는지 인물의 심리를 추적하며 작가의 입장에서 다시 한번 이야기를 재 구성하게 된다.

매 단편이 끝날 때마다 그는 작품 설명과 글쓰기 작법 구성이 끝나면 개인적인 이야기, 자신의 인생 이야기 어떻게 쓸 수 있을지 머릿속으로 재구성 하며 '나는 무슨 이야기를 어떻게 쓸 것인가?'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지게 된다.


어떤 목적을 갖고 , 어떤 의지로든 일단, 이 책을 펼쳐 드는 순간 마지막 장을 덮을 때면 '읽기와 쓰기'는 서로 분리 된 것이 아니라 하나라는 사실을 깨닫고 현재 내가 살고 있는 세상을 어떻게 읽고 해석할 수 있을지 현실을 읽고 있는 나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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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선 2023-02-14 03:1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알라딘에서 받은 메일에 이 책 《작가는 어떻게 읽는가》 가 있더군요 안톤 체호프를 읽으면 소설을 쓴다는 말도 있었던 것 같네요 이게 제목이었던가 메일을 보니 안톤 체호프뿐 아니라 러시아 작가 소설을 본다는 말이 있었어요 이 책 벌써 보시다니... scott 님은 이 책이 한국말로 나오기 전에 아셨군요 짧은 소설이어도 한번이 아니고 여러 번 보겠습니다 그런 걸 하면 자신은 어떻게 쓸지 생각하기도 하겠네요


희선

scott 2023-02-14 10:53   좋아요 3 | URL
체홉의 글을 읽고 난 후 이 정도는 나도 쓸 수 있을 것 같은데 라고 생각 하고 막상 써보면 그렇게 유려한 스토리가 얼마나 쓰기 힘든지 절실하게 깨닫게 됩니다 ㅋㅋ
알라딘 메일에도 이 책을 추천했었군요
이 책은 미국에서 출간 되자 마자 불티 나게 팔렸던 드문 작법책입니다
아마도 저자의 독특한 글쓰기 강의(기존에는 이런 스타일의 작법서가 없었음) 때문이고
미국 시라큐스 대학은 그야말로 창작문학부 중에서 탑 스쿨 중에 탑 스쿨입니다
여기 입학 하는 날 부터 프로의 세계의 관문 바로 앞으로 가는 길이기 때문에

짧은 스토리 아에 모든 삶이 응축 되어 있게 쓴 체홉이 진정한 글쓰기 스승이라는 거 새삼 깨닫고 있습니다

희선님 날씨가 많이 포근하네요
오늘 하루 해피 발렌 타인 데이 ^^

즐라탄이즐라탄탄 2023-02-14 06:4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지나가다 우연히 보게 되었는데 중간중간 마음에 와닿는 구절들이 있어서 좋았습니다. 고맙습니다.

scott 2023-02-14 10:54   좋아요 2 | URL
다시 읽어 보니 오타와 비문이 넘쳐서
몇 몇 구절 수정 했습니다
즐라탄이 읽어주셔서 캄솨!

오늘 하루 멋지게 보내세요 ^^

거리의화가 2023-02-14 09:49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읽고 분석하여 하나의 문장으로 풀어내는 과정이 중요하네요. 체호프의 단편들이 읽고 싶어집니다^^
뭔가 특별하거나 대단한 이야기가 아니라 일상의 작은 이야기를 글감으로 사용하더라도 이야기를 잘 배치하고 전개해나간다면 훌륭한 글이 된다는 생각이 듭니다.

scott 2023-02-14 10:55   좋아요 3 | URL
읽고 분석하는 건 모든 학문의 기초!

제대로 읽고 있는지 확인하는 과정을 이 책을 통해 저자가 밑줄쫘악 할 정도로 강조 하고 있습니다

세상의 모든 이야기, 작은 글감에서 출발!
화가님 오늘 하루 해피 발렌타인 데이 보내세요 ^^

물감 2023-02-14 11:10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스캇님 이번 페이퍼는 진짜... 너무너무 흥미진진 합니다.
아아 손더스한테 수업받고 싶네요 진심 ㅎㅎㅎ
특히 요 부분,

-당신이 작가라면 다음에 어떻게 하겠는가?
-한 사람의 독자로서 당신은 다른 무엇을 알고 싶은가?

글쟁이로써 살을 파고드는 질문이에요.
어떻게 하면 독자들의 시선을 머물게 하는 글과 문장이 될지 늘 고민합니다.
잘 읽었습니다^^

scott 2023-02-14 11:53   좋아요 3 | URL
물감님 우리 이번 생애
꼬옥 함께 손더스옹에게 수업 받으러
시러큐스 대학에 입학 합시다! ㅎㅎㅎ
물감님은 프로 글쟁이여서
단번에 합격하실 것 같습니다

일단 전 읽기 부터 차근 차근 열심히 하기롱 ㅠ.ㅠ

2023-02-14 11:3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3-02-14 11:55   URL
비밀 댓글입니다.

책먼지 2023-02-14 11:46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이 라인업 무엇인가요.. 대체 어떻게 수업하는지 구경이라도 하고 싶다!!!

scott 2023-02-14 11:57   좋아요 3 | URL
물감님 하고 저하고 그리고 먼지님
이렇게 세명이서 저 대학
시러큐스 문창과 입구까지 가보기롱^.~

우끼 2023-02-14 12:37   좋아요 2 | URL
저도저도 끼워주세요~~

scott 2023-02-14 12:39   좋아요 2 | URL
우끼님 까지
네명 ^.~

책먼지 2023-02-14 12:51   좋아요 2 | URL
든든합니다..💕

은오 2023-02-14 12:39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저 이 책 목차 한번 읽어봤다가 담지는 않았는데.... 뭔가 소설 읽는 데 도움이 될 것 같기도 하고 그르네여. 작가지망생이 아니라면 지루하게 읽히겠죠? 그나저나 이 신간을 벌써 읽고 페이퍼까지 남겨주신 스콧님 ㅋㅋㅋㅋ 😮👍

scott 2023-02-14 12:40   좋아요 5 | URL
역쉬! 은오님 고수의 스멜이 ㅋㅋㅋ
목차만 봐도 다 알고 있는 거쥬 !ㅎㅎ

이책은 몇년전에 완독 했는데
정영목 교수님이
어찌 번역 하셨는지 귱금해서 냉큼 ^0^

어쩌다냥장판 2023-02-14 22:1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여담이지만 전 모든것이 밝혀졌다보다 엄청나게 시끄럽고 믿을수 없게 가까운 이책이 더 좋더라고요 ㅎ 아마 십년도 더 전에 젊은 나이라 나았다 느껴을지도 모르겠지만요
이제 책들ㄹ 장바구니에 담기 준비해야 할것 같은데요~~ 톨스토이와 체호프가 함께 수영하고 담소하는 모습을 시간여행을 통해 지켜본다는 생각만 해도 짜릿하네요 ㅎㅎ
밤 바람이 찬데 건강 조심하세요~~
염증으로 안먹어 입원한 냥이 병문안 왔다갔다 정신 없네요 요즘
스캇님 건강 잘 챙기세요~~ 항상

2023-02-14 23:5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3-02-15 03:5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3-02-15 11:55   URL
비밀 댓글입니다.

dollC 2023-02-14 23:08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스캇님 페이퍼를 보면, 읽고 싶은 책도 많고 알고 싶은 것도 많고ㅎㅎ 지적 욕구를 마구마구 자극받고 있어요.(하지만 실행력은 제로;;;)
일단 양질의 페이퍼를 열심히 읽는 걸로 대신해 보렵니다😅

scott 2023-02-14 23:52   좋아요 2 | URL
저도 돌씨님 페이버 보고 읽고 싶어서 찜 👆^^한 책들 많습니다 ㅎㅎ

이책은 이렇게 써서 정리를 해두지 않으면 뒤돌아 서면 잊어버릴것 같아서 ㅎㅎㅎ

저도 글만 이리 길게 써 놓고는 실행력은 0 ^^

돌씨님 좋은밤, 굿!밤 (-‿◦☀)

2023-03-08 16:3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3-03-08 17:3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3-03-08 17:4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3-03-08 17:53   URL
비밀 댓글입니다.

희선 2023-03-09 01:5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scott 님 축하합니다 이월은 갔지만, 지난달도 삼월에도 책을 별로 못 보다니... 제대로 못 봐도 보기라도 해야 할 텐데... 곧 삼월 삼분의 일이 가겠습니다


희선

2023-03-09 11:06   URL
비밀 댓글입니다.

꼬마요정 2023-03-09 14:2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축하드립니다!!
저 저번에 이 페이퍼 보고 저 책 샀답니다. 작가는 어떻게 읽는가 ㅎㅎㅎ
스콧님 글은 늘 책을 사고 싶게 만드는 마력이 있는 것 같아요!!!

scott 2023-03-09 15:25   좋아요 1 | URL
요정님 이 책 무척 좋은 책입니다 ㅎㅎㅎ

요정님은 어떻게 읽는가
리뷰 기대 할께요 ^^

서니데이 2023-03-13 17: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달의 당선작 축하합니다.
좋은 하루 보내세요.^^

2023-03-31 18:4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3-03-31 19:5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3-04-03 09:5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3-04-03 11:01   URL
비밀 댓글입니다.
 


'그것 보세요. 공작, 제노바도 루카도 보나파르트 일가의 여지, 영지나 다름없이 되어 버렸잖아요. 미리 말씀드려두지만, 그래도 전쟁 같은 건 없다고 하시거나 반그리스도의(정말 저는 그자가 반그리스도라고 믿고 있어요)추악하고 무서운 소행을 변화라도 하실 생각이라면 저는 당장 당신과 절교 하겠어요. 당신은 더 이상 제 친구도 당신이 늘 입버릇처럼 말씀하시는 제 충실한 노예도 아녜요. 어쨌든 잘 오셨습니다. 잘 오셨어요. 제가 당신을 놀라게 해드린 것 같군요. 자, 앉아서 말씀을 들려주세요.'

-톨스토이 <전쟁과 평화> 중에서


1805년 7월 ,마리야 페오도로브나 황태후를 가까이 모시면서 이름을 떨치고 있던 여관 안나 파블로브나 셰레르는 자기 집 야회에 맨 먼저 도착한 위세 있는 고관 바실리 공작을 세련된 프랑스어로 맞아 들이면서 19세기 초 러시아 상류 사회 사교계들의 모습들이 눈 앞에 펼쳐 진다.

형형색색으로 수 놓은 궁중복을 입은 이들 별 모양의 훈장을 한 쪽 가슴에 주렁 주렁 달고 나타난 이들 온갖 향수 냄새로 진동하는 연회장 한 가운데서 안나 파블로브나는 느긋한 자세로 소파에 앉아 초대 손님을 향해 이렇게 말한다.


'아아, 오스트리아 얘기 따윈 그만하세요.!제가 잘 모르는 건지도 모르지만 오스트리아는 결코 전쟁을 원한 적이 없고, 지금도 원하지 않아요. 그 나라는 우리를 배신하고 있는 거예요. 오직 러시아만이 유럽의 구세주가 되어야 해요. 우리 폐하께서는 당신의 고귀한 사명을 알고 계시고 그 사명에 충실하실 겁니다. 제가 믿는 건 이것 뿐이에요.......

우리 러시아인 만의 힘으로 의인들이 흘린 피를 반드시 씻어주어야 합니다. 어디 한번 말씀해보세요. 우리는 도대체 누구에게 희망을 걸어야 합니까?....폐하께서 반드시 유럽을 구하실 겁니다.!'


1805년과 1807년, 그리고 1812년 나폴레옹이 모스크바를 점령 했다가 후퇴하는 시기를 담은 톨스토이의 대 장편 <전쟁과 평화>을 통해 유산을 위해 싸우고 영적 성취를 갈망하는 백작의 사생아인 피에르 베즈호프 백작, 나폴레옹과의 전쟁에서 가족을 뒤로 하고 싸우는 안드레이 볼콘스키, 그리고 귀족의 아름다운 어린 딸로 두 남자 모두를 유혹하는 나타샤 로스토프의 삶을 통해 전쟁을 겪으면서 소작농과 귀족, 민간인과 군인 등 다양한 배경을 가진 인물들이 시대, 역사, 문화에 따른 문제와 씨름 하는 과정을 생생하게 그려 냈다.


[보나파르트가 지휘하는 10만 프랑스군의 추격을 받고 가는 곳마다 주민들에게 반감을 사고 이제 더는 연합군도 믿을 수 없고 식량이 떨어지고 전쟁의 예기치 않은 조건 아래서 행동할 것을 강요 당하던 3만 오천의 러시아군은 쿠투조프의 지휘 아래 도나우 강 하루 쪽으로 서둘러 퇴각했고 적군에게 추격을 당하면 멈춰서 중포 따위를 잃기 않고 후퇴할 수 있을 만큼만 후위 전으로 응전 하면서 나아갔다. 적군도 인정 할 만큼 러시아군은 용감하고 완강히 싸웠지만 이러한 전투는 결국 후퇴만 더 재촉할 뿐이었다.]

톨스토이가 36세이던 1864년이었다. 톨스토이는 같은 해 1월 20일자 편지에서 누이 동생에게 “1812년부터 취재한 장편 소설을 쓰고 있다”고 알렸다.

하지만 톨스토이가 실제 이 작품을 쓰게 만들었던 직접적인 동기는 1856년 유형지에서 귀환이 허용된 ‘데카브리스트(12월 당원, 1825년 12월 26일에 무장 봉기를 일으킨 러시아 혁명가들을 통틀어 일컫는 말)’들의 활동에 대한 깊은 관심에서 비롯 되었다.

말하자면 톨스토이는 데카브리스트들의 혁명 운동이 중심인 소설을 쓰고자 했기에 여러 가지 자료를 직접 수집하며 집필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는 데카브리스트의 성격과 세계관을 밝혀내기 위해서는, 어쨌든 그보다 한 시대 이전의 러시아 국가가 당면했던 역사적 대 사건이자, 당시 청년 계층에 커다란 영향을 준 나폴레옹 전쟁까지 거슬러 올라갈 필요성을 느끼게 된 것이다.

1864년 서른 여섯 살에 접어든 톨스토이는 1856년 유형지에서 귀환이 허용된 ‘데카브리스트(12월 당원, 1825년 12월 26일에 무장 봉기를 일으킨 러시아 혁명가들을 통틀어 일컫는 말)’들의 혁명을 중심으로 한 시대 이전의 러시아 국가가 당면했던 역사적 대사건이였던 나폴레옹 침공이 현세대와 미래 청년 세대들에게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에 대한 작품을 써내려 갔다.


톨스토이는 <전쟁과 평화>작품의 시작을 1805년으로 정해 놓고 개개인의 회상과 편지를 통해 당시 사회 정세 속에 여러 인물들의 삶이 어떤 변화와 성장 과정을 거쳤는지 상세하게 묘사했다.


『전쟁과 평화』는 인생, 역사, 가족, 그리고 인간이 된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 하는가?에 대해 전쟁의 공포와 삶의 공허함에 대한 의문 즉 ,죽음의 공포 속에서 어떤 삶을 선택 할 수 있는지 묻고 있다.

전쟁이 발발한 원인은 인간이 알 수 없다. 전쟁은 숱한 인간 의지가 응집한 힘의 파급으로 특정 원인이나 한 사람의 주도적인 영향 만으론 절대 터지지 않는 수많은 우연이 켜켜이 쌓여 일어나는 필연이다.

인류는 전쟁의 한 단면만 볼 뿐 전체를 파악하는 시각을 갖지 못한 채 애국심에 불타 올라 이성을 잃고 광기에 휩싸일 뿐이다.

전쟁이 터지면 인간은 미쳐간다. 러시아 민중이 애국심에 불타 이성을 잃고 광기에 휩싸인다.

​그렇다면, 전쟁과 평화는 인간이 만들어낸 허공 속의 외침 일 뿐 일까?

세상 곳곳에서 발발하는 전쟁에서 완전한 승리도 그리고 완전한 평화도 없다.

그저 한쪽의 추가 기울어지지 않게 팽팽하게 당겨야 하는 평화라는 힘의 균형을 가까스로 유지 하고 있지만 언제 어디서 어떤 식으로 균열이 생겨서 전쟁이 발발 할지 모른다.


2022년 2월 14일 새벽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땅을 침공했다.


'인류는 과거에도 지금과 같은 상황을 두 번 맞이했습니다. 그리고 두 번 다 세계 대전이라는 너무 큰 대가를 치렀습니다. 이제 우리는 전쟁이 반복 적인 패턴이 되기 전에 이 흐름을 바꿀 기회를 맞이했습니다. 수 백만 명의 희생자가 나오기 전에 다른 체계를 만들어야 합니다. 우리는 지난 두 번의 세계 대전에서 배운 교훈을 기억하고 세 번째 전쟁이 일어나는 것 만은 기필코 막아야 합니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의 <우크라이나에서 온 메시지> 중에서



이제 전 세계는 전쟁, 기후 변화, 그리고 끝이 보이지 않는 전염병만이 창궐할 뿐이다.

인류의 역사는 전쟁에서 평화로 이어지면서 지속 되어 왔다.

증오와 폭력의 먹구름 속에서 사랑과 자비, 용서는 언제나 승리 하게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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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돌이 2023-02-04 00:0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는 심지어 전쟁과 평화도 안 읽었다는..... ㅠ.ㅠ 올해 읽겟다고 책은 사두었죠. 힘내겠습니다. ^^
오늘 올라온 러시아가 잡아간 우크라이나 아이들에 대한 관련 기사는 너무 끔찍해서 입에 꺼내기도 싫네요. 설마 싶으면서도 그 설마하는 일들이 비일비재하게 일어나는 것이 전쟁이니 안타깝다고 말하기도 끔찍하고 부끄러웠습니다.

scott 2023-02-04 00:20   좋아요 1 | URL
쟁여두면 언젠간 읽게 됩니다 ^^

러시아가 머나먼 시절 스탈린 때부터 해왔던 짓입니다
마을 전체 굶겨 죽이거나 몰살 시키고
아이들을 러시아로 끌고가서 러시아인으로 세뇌 교육 시켜서 성장하면 전쟁 용병으로 ㅠ.ㅠ

망고 2023-02-04 07:2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벌써 1년 되었네요 다시 겨울이 올 동안 전쟁이 안 끝나다니 우크라이나 사람들 너무 안타깝습니다 아ㅠㅠ 톨스토이 전쟁과 평화는 무려 4권이나 하아...언젠간 읽겠죠😂

2023-02-04 10:3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3-02-04 11:1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3-02-04 11:1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3-02-04 11:2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3-02-04 08:5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3-02-04 10:39   URL
비밀 댓글입니다.

새파랑 2023-02-04 13:00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전쟁과 평화 읽고
와! 감탄했던 기억이 나네요 ㅋ 장편인데도 전혀 지루하지 않고 흥미롭던 ㅎㅎ 요걸 원서로도 읽는 스콧님은 리얼천재!

우크라이나 전쟁이 평화로 이어졌으면 좋겠습니다~!!

scott 2023-02-04 13:10   좋아요 1 | URL
새파랑님 러시아 문학! 주르륵 섭렵 하신분!ㅎㅎ

불멸의 고전 이유가 있었습니다
전평 그동안 4-5번 읽었지만
이번엔 제대로 정독

톨스토이 전평 번역본 품질 ㅋㅋ 비교도 해보느라 가장 훌륭하다는 영역판도 완독 ㅎㅎㅎ

얼마전 테스트 해봤는데
제 지능은 천재와 거리가 먼 ㅋㅋ


푸틴이 사라져도 전쟁은 쉽게 끝나지 않을 것 같습니다 ㅠ.ㅠ

moonnight 2023-02-04 14:1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전쟁과 평화 아직 못 읽었습니다(동서문화사편)ㅠㅠ 언젠간 읽겠지 위로해봅니다. 전쟁이 사라지고 평화가 영원히 유지되길 기도합니다ㅠㅠ

scott 2023-02-04 14:59   좋아요 0 | URL
문나잇님 쟁여 두셨으면 언젠가 ^^

평화로웠던 세상은 없었지만 이번 전쟁 멈추지 못할 것 같습니다(악마 푸틴 절대로 종전 선언 안함 ㅠ.ㅠ)

희선 2023-02-05 00: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디서든 전쟁이 일어나지 않으면 좋을 텐데, 사람이 욕심을 버리면 좀 나을 텐데... 어떤 일 하나로만 전쟁이 일어나지 않겠네요 그렇게 되기 전에 막을 수 있다면 좋을 텐데... 좀 달라도 받아들이면 좋을 텐데, 말로 하든지... 이겨도 져도 좋지 않은 게 전쟁일 텐데...


희선

거리의화가 2023-02-05 07:4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 글을 보니 ‘전쟁과 평화‘만큼은 읽어야겠다라는 생각이 드네요. 읽어야 할 작가 중 하나인데... 우크라이나 EU가 지원한다고 하던데... 전쟁이 멈출 줄을 모르네요. 이제는 종전이 양보라는 생각을 하는 것이 아닌지;;; 애꿎은 주민, 피난민과 총알받이가 된 병사들이 피해를 보네요.

scott 2023-02-05 09:19   좋아요 1 | URL
불멸의 고전입니다
세상에 영원한 평화도 없지만 이번 전쟁의 비극 멈춰야만 ㅠㅠ

coolcat329 2023-02-05 12:3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오 저도 읽어야 할 책인데 너무 길어서 ...😓
일단 쟁여두기라도 해야 하겠죠?

scott 2023-02-05 13:01   좋아요 0 | URL
쟁여두면 언젠간 반드시 😄

페넬로페 2023-02-05 16:2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아직 전쟁과 평화를 읽지 못했어요 ㅠㅠ
언젠가는 읽게 되겠죠^^
미국의 전쟁 중재안이 참 황당한데
전쟁은 언제나 비극입니다^^

2023-02-05 23:19   URL
비밀 댓글입니다.

꼬마요정 2023-02-05 23:5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전쟁이 빨리 끝나면 좋겠습니다. 러시아는 그동안 기후 등의 이유로 전쟁에서 패한 적이 별로 없으니 유럽과의 전쟁에는 자신감이 있는 것 같습니다. 물론 그것도 다 사람을 갈아넣은 거였죠ㅠㅠ 아직도 <에너미 앳 더 게이트>였나 영화에서 병사 두 명당 한 명에게 총을 지급하고 나머지 한 명에게는 총알만 준 장면을 잊을 수 없어요. ㅠㅠㅠㅠ

전쟁과 평화 정말 재미있게 읽었어요. 그런데 읽으면서 전쟁이 얼마나 허무한지, 진짜로 전투에 참가한 군인들과 말만 하는 윗사람들 사이의 간극이 참 그랬습니다. 나폴레옹도 그닥 훌륭한 전술가가 아닌 것 같았구요. 그리고 결국 피해는 그 땅의 모든 생명체, 무생명체 모두가 입었죠ㅠㅠ
피에르가 전투 구경하는 장면은 신기했습니다. 뭐지? 싶었어요. 그래서 드라마도 봤어요. 음...

2023-02-06 00:16   URL
비밀 댓글입니다.

NamGiKim 2023-02-16 19:24   좋아요 0 | URL
참고로 영화 <에너미 앳 더 게이트>는 헐리우드식 연출이 들어간 장면입니다. 스탈린그라드 전투 당시 소련군이 그렇게 싸운 적은 없어요. 그리고 독전대라는 것도 팀킬하는 용도가 아니었고, 소위 영화상에서 자국 군인 막 죽이는 주체로 나오는 이들 또한 전투에서 굉장히 많이 전사했습니다. 제프리 로버츠의 <스탈린의 전쟁>에 아주 상세하게 나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