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가 잠든 사이에
스테이시 에이브럼스 지음, 권도희 옮김 / 비채 / 202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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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은 악마가 인간에게 행한 가장 큰 속임수 입니다.! 악마는 우리 스스로가 운명을 조종할 수 있다고 믿게 만들었지만, 우리가 만들 수 있는 건 종말밖에 없어요. 사당을 짓기 위해 자연의 법칙을 파괴하는 것은 악마의 짓입니다. 이제 그런 짓은 그만둬야 합니다.!]


6월 18일 일요일 오후

대법관 하위드 윈은 어느 대학 졸업식장에서 연설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와 밤 11시 47분 뇌사 상태에 빠져버린다.

평소와 크게 다르지 않았던 주말 동안 대법원장 하위드 윈에게 어떤 일이 발생한 걸까?

미국 대법원은 회기마다 청문회를 열어 법령을 제정하는데 10월의 첫 번째 월요일이면 윈 대법관과 동료 법관들은 딱한 사정을 가진 자들과 그들을 대리하는 변호사들에게 관용을 구할 시간을 분배해주고 심의를 시작한다.

통상적으로 법률 원칙에 어긋나지 않게 6월 마지막 날 밤 자정이 되면 무죄이든 유죄이든 결과가 나오고 전통에 따라 그들은 마지막 주에 가장 중요한 사안들을 분배하고 판결을 내린다.

사안에 따라 판결이 7월로 넘어가는 경우도 있지만 대법관 윈의 재임 기간 동안에는 절대로 그 기간 까지 넘긴 적 없이 6월 30일 날까지 모든 것이 결판 나고 마무리 된다.

대법관이 쓰러지기 전인 밤 11시, 그의 방에 들어간 간병인은 약병이 바닥에 떨어져 있는 걸 발견하고 급히 의료진에게 연락을 한다.


[그녀에게 전해 ...해답을 구하려면 동쪽에서 찾아보라고, 강을 봐야 해. 그 사이에 있는 광장으로 가야해. 라스커, 바우어 날 용서해]라는 말을 남기고 혼수 상태에 빠진다.


다음날 아침 6월 19일 월요일, 대법관의 서기 에이버리 킨은 대법관 윈이 쓰러지기 직전에 자신을 법적 후견인으로 지명했다는 통보를 받고 의문의 혼수 상태에 빠진 대법관 윈을 둘러싼 배후를 조사하기 시작한다.


'이게 대체 무슨 일이지? 졸업식에서 있었던 일 때문에 윈 대법관님한테 무슨 일이 생긴건가?'


대법관이 혼수상태에 빠지자 대통령 측에선 혼수상태인 대법관은 앞서 합의된 내용에 서명 할 수도 없고 법적 후견인 비서에게 대신 투표 할 수 있는 권한을 줄 수 없다고 판단하고 후견인 비서에게 사임하라는 압박을 가한다.

하지만 이런 불의의 상황은 역사적 사례로도 없었고 미국 헌법 3조에 의하면 질병으로 인해 그 직위를 거두는 것을 인정하지 않는다.

따라서 혼수 상태에 빠진 대법관은 스스로 사임을 하지 못하기 때문에 숨이 끊어지기 전까지 법원에서 이름도 자리도 없애 버리지 못한다.

2년 만에 대통령이 심장마비로 급사 하자 당시 부통령이였던 스토크스가 곧바로 대통령직을 넘겨 받았지만 연이어 터지는 주가 폭락과 마다가스카르에서 발생한 인질 구조 작전 실패, 마이크가 켜진 상태로 사적인 대화가 언론으로 흘러나가 버린 사건들 때문에 지지율이 빠른 속도로 떨어지고 있었다.

설상 가상으로 그동안 어떤 불협화음을 보이지 않았던 동맹국 인도가 배짱을 부리며 무역 협상 테이블에 나오지 않고 있다.

비밀리에 진행되고 있는 군사 프로젝트를 추진하고 있는 스토크스 대통령측은 이 사실이 대법원측으로 흘러 들어갔다는 정황을 포착한다.

그렇다면 대법관 윈이 자신의 서기인 에이버리를 법적 후견인으로 내세워 서명하게 만든 서류는 무엇일까?

컴퓨터에 저장된 파일 어디에도 어떤 증거를 찾지 못하고 자료들, 사건 기록부들 전부 찾아 봐도 대법관이 에이버리에게 위임한 중요한 문서의 서류함을 찾지 못한다.


-체스다이너모

-아니는 강에 있다.

-뒤마는 아니를 찾아라.

-광장에서


체스 경기를 즐겨 했던 대법관은 체스판 기호물에 암호 같은 알파벳을 표기 해 두었다.

상원 법안 의결을 바로 코 앞에 둔 백악관은 대법관 서기 에이버리를 법원 출임금지 상태로 만들어 놓자 그녀는 경찰과 FBI들의 감시 아래서 손과 발이 묶여 버린다.

에이버리는 자신의 머릿 속에 체스판을 띄워 놓고 기형물을 움직이며 각종 이권이 걸려있는 거대한 로비스트 단체와 국가의 중대한 기밀 사항이 들어 있는 특허권 분쟁, 외국 기업 강제 인수 합병 문제들의 뒤엉켜버린 실타래를 풀고 대법관에게 협박과 위협을 가한 이들을 찾기 시작한다.


-염색체 연구는 비밀리에 행해졌고, 티그리스로스트에 의해 부인 되었다.

-혈통을 대상으로 하는 유전자 연구의 무기화.

-미국 재무부에서 사전 승인 없이 히게이아에 수억 달러의 자금을 지급 했다.

-윌 밴스 소령은 CBIRF에 배정된 생화학자다.

-아프가니스탄, 인도, 쉽게 손이 닿는 세계에서 가장 큰 이슬람교도들의 나라

-사라진 과학자, 사라진 예산 분석가, 죽은 간병인, 살해 시도

-외아들을 살리기 위한 필사적인 대법관....


자금이 연방 계좌에서 빠져 나갔다는 증거를 찾아 낸 에이버리는 추적 결과 그 돈이 국토 안보부 소속의 과학 기술 부서에서 나왔다는 정황을 포착해낸다.

일련의 증거와 정황의 퍼즐을 맟춰보니 국가의 법률과 국제 조약에 위배되는 연구에 참여한 이들이 전부 미국 달러를 사용한 사실이 수면 위로 떠오른다.

그렇다면 과연 미국 대통령은 이 사건에 대해 어디까지 알고 있고 어디까지 개입했는가?

히게이아가 이 기술을 상용화 시킨다면 잘못된 염색체 변이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 중에서 누구라도 죽일 수 있는 생물 유전자적 바이러스를 만들 수 있게 된다.

호의와 어리석음의 나라 미국 땅.

정의는 어느 세계에서나 있지만 미국 땅 어디에서도 더 이상 찾기 힘들게 되었다.

염색체 연구 기금,실험 영상과 그밖에 돈의 출처까지 알아낸 서기 에이버리는 반 인륜적 범죄를 저지른 증거를 들고 미국 백악관의 문 앞에 설 수 있을까?


6월 27일 화요일

원고: 미 연방 대법원 배석판사 하워드 제퍼슨 윈

피고: 미 합중국


혼수 상태인 대법관의 법적 후견인 에이버리는 고소장을 접수하고 다음날 오전 10시 3분 재판장에 원고 자리에 선다.


대통령의 몰락...

백악관의 대량학살...


언론에서 여러 시나리오들이 흘러 나오기 시작하고 보수 방송에선 에이버리가 변호사 자격증을 잃고 법조계에서 추방될 것인지 아닌지를 놓고 토론이 벌어진다.

에이버리는 윈 대법관의 침대 옆에 서서 그의 손을 붙잡는다.


'정의는 다른 조각은 보이지 않는 곳에 있다. 그 세상이 만나는 곳'에서...



<정의가 잠든 사이에>를 쓴 작가 스테이시 에이브럼스는 예일대 법대를 졸업한 변호사로 조지아주 하원의원과 소수당 대표를 역임했고 2018년 조지아주 역사상 가장 많은 표를 얻어 민주당 주지사 후보가 되었다.

그녀는 셀리나 몽고메리라는 필명으로 로맨스 소설을 썼을 정도로 필력을 이미 출판계에서 검증 받은 프로 작가 이면서 미국 주요 정당의 주지사 후보에 오른 최초의 아프리카계 미국인 여성으로 미국 정치판에서 '공정한 싸움', '공정한 수', '남부 경제 발전 프로젝트'를 설립해서 민주주의 사회에서 공정하게 의결권에 헌신하며 국가와 국제 문제그리고 시민 사회문제를 폭넓게 다루는 뛰어난 정치인이다.

위스콘신 주(州) 미시시피에서 조선소 노동자로 일하는 부모님 아래서 성장한 스테이시는 노동자 계층 부모님이 국가에서 보조 받은 생활비로 생계를 꾸리는 걸 지켜 보면서 공공 서비스와 시민 참여의 중요성에 일찌감치 눈을 떴다.

아버지가 거리에서 추위에 떨고 있는 노숙자에게 코트를 벗어주는 모습을 보고 자란 스테이시는 교육열이 높은 부모님의 지원으로 좋은 학군에 공부하며 흑인계 미국인으로서는 최초로 졸업생 대표 연설을 한다.

그녀는 명문대학에 입학하고 2학년에 올라갔을 무렵에 LA 흑인 폭동의 불을 붙이게 된 ‘로드니 킹 사건’(Rodney King riots)으로 에이브럼스는 TV 토론 프로그램에 출연해 당시 조지아주 애틀랜타 첫 흑인 시장이었던 메이너드 잭슨에게 "당신은 (흑인을 대표하는) 젊은 시장이면서도, 젊은이들을 위해 충분히 일을 하고 있지 않다"고 맹비난을 퍼부어 댔다.

이후 스테이시는 예일대학교 로스쿨로 진학해 변호사 자격증을 따며 한 법률사무소에서 세무사로 활동하던 중 2002년 29세의 나이로 애틀랜타 변호사로 취직해 정부 관련 업무를 시작하면서 본격적으로 주 정부의 비효율적으로 운영 되고 있는 비과세 구조, 헬스케어, 공공 부문 재정 등을 주도 면밀하게 조사하고 분석하기 시작한다.

2006년 조지아주 하원 의원에 당선된 스테이시 에이브럼스는 미국 흑인 역사상 최초의 아프리카계 미국 여성 하원의원이 되고 주먹구구식으로 공공 운영비를 책정하고 있었던 공화당의원들에게 계산기를 들고 직접 보는 앞에서 계산을 하며 주민들의 세금이 어떻게 빠져 나가는 지 정확한 수치로 맞섰다.

그녀는 때로는 공화당의 눈속임을 향해 돌직구를 날리면서도 정부 개혁을 위해서 공화당과도 협력하며 범죄 개혁에 힘을 합쳤고 1% 저금리 대출 프로그램인 ‘희망(hope) 장학금 제도’를 만들어서 저소득층에게 교육의 문을 열어주었다.

스테이시 에이브럼스는 ‘조지아 역사상 가장 많이 세금 인상을 막아낸 인물’로 전통적으로 민주당이 강세를 보이지 않았던 조지아 주에서 숨어 있는 표를 발굴하기 위해 유권자를 찾아 다니며 투표를 독려 해서 기울어진 정치 지형을 바로 잡는데 앞장섰다.

미국 땅에서는 1965년 흑인의 투표권을 보장하는 투표권법(Voting Rights Act)이 통과되어 남부 지역에서 흑인 유권자에 대한 차별적인 투표 제한 조치가 금지됐는데도 불구하고, 공공연하게 또는 암암리에 흑인의 투표를 방해하며 투표를 하지 못하도록 심리적으로 압박하는 행태와 사회적 분위기가 뿌리 깊게 박혀 있는 곳이다.

2018년 공화당과 민주당을 통틀어 아프리카계 여성으로서는 최초로 주지사 후보로 지명된 스테이시 에이브럼스는 선거에서 떨어졌고 2022년 재도전에도 실패 했지만 미국 정치계에 흑인 여성 최초로 목소리를 내며 기울어진 미국의 정치 풍토를 바로 잡아나가는데 앞장 서고 있다.


2021년에 발표한 <정의가 잠든 사이에>는 스테이시 에이브럼스가 의정활동을 하며 주지사 선거에 도전 했던 지난 12년 동안 쓰고 또 쓰고 그리고 고치기를 반복한 끝에 완성했다.

이 작품의 출발은 판사 테리사 윈 로즈버러와 나눈 대화에서 시작되었고 소설적 상상력과 생생한 경험을 버무려서 최대한 현실에 가깝게 법원과 대법원 그리고 서기들의 움직임과 역할을 현실감 넘치게 펼쳐 보였다.

그녀는 모든 의정 활동과 지역 사회 발전과 방향을 논의하고 토론 하고 각 공공기관과 기타 시설 방문과 연설이 끝마치고 늦은 시간 노트북을 켜고 이 소설을 썼다.

그녀는 <정의가 잠든 사이에>를 쓰는 동안 미국 사회를 향해 질문을 던지며 그 해답을 찾기 위해 자료를 찾고 자문을 구하며 소설 같은 현실이 담긴 미국 사법권과 백악관 그리고 나라 밖의 움직임을 담아 냈다.

소설적 결말은 해피 엔딩이지만 현재 미국과 우리 나라 앞에 놓여진 현실은 절대로 낙관적인 상황도 아니고 해피 엔딩으로 향하지도 않을 것이다.

미국의 정치계, 법조계 모두 막강한 불법 자금을 세탁하며 세를 불리는 이권 세력들 손에서 자유롭지 못하고 성실하게 하루 하루 살아가며 세금을 꼬박 꼬박 내고 있는 시민들은 이들의 상세한 내막을 알지도 못할 뿐만 아니라 극단의 양극화·불평등그리고 계층의 갈등만 점점 커져 가고 있다.

이 땅에는 어디에나 있지만 어디에도 없는 것이 정의다.

이것이 현재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 정의가 잠들어 버린 세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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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문, 작가는 무엇으로 쓰는가
최재봉 지음 / 비채 / 202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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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 주 언제 어디서든 빼 놓지 않고 읽는 기사는 문화면으로 주요 일간지 문학부분 담당 기자들의 기사들 중에 한겨레 신문의 최재봉 기자의 이름을 발견하면 글의 주제와 상관 없이 무조건 읽었다.

몇 해전 부터 한겨레 신문 칼럼에 '최재봉의 탐문'이라는 칼럼이 실렸고 나는 매주 이 칼럼들을 스크랩 하며 기자가 읽고 있는 책들을 찾아 읽어나갔다.

2022년부터 연재 되었던 최재봉 기자의 칼럼은 정년 퇴직을 앞두고 지난 30여 년 동안 문학 전문 기자로 열띤 취재를 벌이며 목격하고 만나고 탐문했던 문학계의 사람과 작품 그 이면에 관한 글들로 채워져 있다.

가장 먼저 최재봉 기자는 문학이 탄생하는 작업실의 조건과 독자를 사로잡는 첫 문장의 비밀 등 작가와 작품의 내밀한 이야기를 들려주고 나서 기자의 시선으로 바라본 문단 문제를 파고 들어서 책을 읽지 않는 시대에 고전과 현대문학을 잇는 각각의 주제를 흥미롭게 비교 하며 작품 안팎으로 문학을 구성하는 존재들의 이야기에 대해 광활한 탐구를 펼쳐 보인다.


한국 현대문학계의 순혈주의에 대한 문제는 오래도록 지적 되어왔고 여러 주요 문학상을 수상하는 과정에서 온갖 시끄러운 잡음으로 인해 수상을 거부하는 일련의 사태까지 나왔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문학계는 그들만의 제자와 후배들 끼리 주고 받거나 한 작가가 주요 문학상을 싹 휩쓰는 모습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특히 각 신문사와 대형 출판사가 주관하는 문학상의 심사위원들은 소위 오랫동안 문학계에서 [선생]으로 군림하며 각 대학에서 문학을 가르치며 제자들을 양성하며 등단과 수상작들을 결정하는데 보이지 않는 입김과 역할을 해왔다.


기자 출신의 작가 김훈과 오랫동안 영화 쪽 일을 하다 장편 소설<고래>로 문학계에 등단한 작가 천명관 모두 한국 문단의 중심이면서도 여전히 '선생님들의 시선'에서 자유롭지 못하다고 토로했다.

[책상 앞에서 글을 쓰는 동안 선생님들의 엄한 눈이 등 뒤에서 늘 자신을 지켜보고 있는 거다. 출발부터 그렇다. 대학을 다니며 교수들의 지도 편달과 평가를 받는다. 그리고 등단을 할 때 심사위원 선생님들의 심사, 청탁을 받을 때도 편집위원 선생님들의 평가, 문학상 후보에 오를 때 또 심사위원의 평가, 하다못해 문예창작과 관련한 지원금을 받을 때도 누군가의 심사를 받는다. 그러니까 문단 생활을 한다는 건 내내 선생님들의 평가와 심사를 받는다는 의미이다.]


한국 문단만 '선생님의 시선'이 있는 게 아니다. 미국 문단 역시 대학의 문예창작과에서 기성 문단에서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는 직업이 소설가인 교수들에게 지도를 받고 작품을 쓴 학생들은 공식화 되고 이론화 된 창작의 이론을 습득해서 잘 팔리는 작품과 문학상 후보에 오를 수 있는 작품들을 써내고 이들의 작품 추천서를 지도 교수들이 써주고 상을 주며 문학성이라는 후광을 씌워준다.

옆 나라 일본 문학계도 크게 다르지 않다.

등단절차와 문예지의 원고 청탁, 각종 문학상 심사와 시상 등 문학 작품이 시장에서 나오기 까지 발행하고 유통하는 전반 과정에서 수익을 내야 하는 출판사와 손을 잡은 '선생님의 시선과 입김'이 크게 좌우 되어 그들만의 폐쇄적인 구조로 고착 되었다.


읽혀지고 팔려지는 작품의 전반적인 과정과 문학계 이면의 모습에서 책을 읽는 독자들의 숫자가 왜 감소하고 있는지, 작가들의 일상사 그리고 개인 작업에 대한 이야기까지 최재봉 기자는 한 시대. 한 세대에 중심에 있었던 이들이 남기고 간 글과 작품에 대한 촘촘한 취재 기록과 순수한 독자 입장에서 비밀을 탐문 하듯 파고 들었다.


탐문 과정에서 양념처럼 등장하는 문학이 탄생하는 작업실의 조건과 독자를 사로잡는 첫 문장의 비밀 등 작가와 작품의 내밀한 이야기부터 책을 읽지 않는 시대에 고전과 현대문학을 잇는 각각의 주제를 흥미롭게 비교하며 작품 안팎으로 문학을 구성하는 존재들에 대해 밀도감 넘치는 이야기를 펼쳐 보인다.

이 책의 첫 시작은 '총의 노래가 될 뻔 했던 하얼빈'에서 시작해서 '사라진 원고'로 마무리 된다.

소설을 쓰는 작가는 개인의 생각과 경험 그리고 세상을 향해 목소리를 내는 발언자이고 이들의 책을 읽는 독자들은 이 시대를 살고 있는 목격자이자 증언자이다.

따라서 책을 읽는 것 만으로도 기억을 되새기게 되고 현실의 삶을 돌아 보면서 내가 아닌 타인의 삶과 세상에 대해 곰곰이 생각해 볼 수 있는 경험을 안겨준다.

이 세상의 모든 것들이 빛의 속도로 지나가고 바뀌고 있지만 결국 생태계에서 유일하게 읽고 쓰고 말하는 행위를 할 수 있는 영장류인 인간은 비록 현실은 고단하고 끔찍하고 비참할 지라도 책을 읽는 동안에는 더 나은 삶과 미래를 향한 희망을 품게 된다.

이 책의 맨 마지막 장에 최재봉 기자가 칼럼을 쓰는 동안에 인용하고 참조한 책들의 목록이 실려 있다.

책을 읽고 나서 마지막 탐문 하듯 책 뒷 장에 빼곡하게 적혀 있는 책들을 찾아 읽는 경험을 해본다면 결국 글이란 쓰는 사람의 것이 아니라 읽는 사람의 것임을 책을 읽고 탐구하며 탐닉하는 기쁨을 맛보게 될 것이다.

문학의 위상이 예전 같지 않고 시나 소설을 진지하게 읽는 독자도 갈수록 줄어드는 시대이지만 결국 인간은 영원히 읽는 행위를 멈추지 않을 것이고 이야기의 힘은 인간의 한 생애보다 훨씬 더 오래도록 이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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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선 2024-03-30 02:4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scott 님은 최재봉 기자가 이 칼럼을 쓸 때부터 봤군요 저는 이름 처음 알았습니다 기자는 이름 알기 어렵기는 하죠 아니 저만 잘 모르는 걸지도 신문을 안 봐서... 김훈 작가는 기자였다가 작가가 돼서 이름 알기는 하는군요 작가와 글 그런 이야기가 담겨서 관심 있는 사람은 즐겁게 보겠습니다 여전히 책은 나오는데 읽는 사람은 적다고 하고... 나오는 책이 얼마 안 될지도 모르겠네요 그래도 책을 보는 사람이 있는 한 책은 나오겠죠 여러 가지...

scott 님 벌써 주말이네요 주말 편안하게 보내세요


희선

새파랑 2024-03-30 10: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최재봉 기자는 처음 들어보고, 저자가 생각하는 문단의 문제? 이런것도 처음 알았습니다. 폐쇄적인 구조가 되면 점점 나빠질수밖에 없는데 안타깝네요. 문학의 위상이 예전같지 않아도 북플에서는 여전히 문학이 👍 인거 같습니다~!!
 
북극을 꿈꾸다 - 우리의 삶에서 상상력이 사라졌을 때
배리 로페즈 지음, 신해경 옮김 / 북하우스 / 202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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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48년 미 서부 캘리포니아에 금광이 개발되면서 온갖 부류의 사람들이 금맥을 찾으려 몰려 들던 시기를 지나 10년 후 대륙 횡단 철도 개통과 맞물려 북아메리카 대륙 개척을 너머 바다 탐험 항해를 나서는 시대가 도래 했다.

탐험과 개척의 시대에 대륙에선 원주민 인디언들과 생태계들이 무참히 짓밟혔고 바다의 생명체들 역시 무자비한 방법으로 개체군의 종을 멸종 시켜 버렸다.

미 대륙의 침입자들은 북극해 탐험에서 유럽의 탐험가들에 비해서 한 세기 늦게 뛰어들었지만 어떤 국가보다도 더 빠르고 기술적인 방법으로 고래잡이에 나서서 단 몇 년 만에 고래종의 씨를 말려 버렸다.

불과 반 세기 만에 바닷속 해저 깊은 곳에서 석유를 끌어 올리는 것 만큼 수 많은 바다 생명체들이 사라져갔고 여러 규제와 협약, 환경단체의 보호와 보존의 양 날개를 펼치며 기후 위기, 생태계 보존을 외치고 있지만 생태계 먹이 사슬에서 가장 잔혹한 학살자인 인간종이 이룩한 고도의 문명과 산업화로 지구는 점점 뜨거워져서 눈 앞에 재해와 재난은 현실이 되어 버린 지 오래 되었다.

개체수도 많지 않고 포획하기 힘든 동물들이 살고 있는 북극은 지구촌의 거대한 물류와 교통, 통신 선로가 뒤엉켜 있는 곳으로 거대한 석유 개발과 광산 개발을 위한 굴착기들이 바다 속에 우뚝 서있는 곳이다.

눈에 보이는 것 만큼만 북극의 생태계 보존을 하면서 유전과 광산 개발 채굴에 혈안이 되어 땅과 바다는 인간 종의 착취로 처참하게 파괴 되고 있다.

북극의 얼음이 2센티만 녹아버려도 대륙의 일부가 불어난 바닷물에 침수 되고 기후 이상으로 계절의 주기까지 달라지고 있는 것이 현실이지만 실질적으로 이 모든 위기와 위험을 정확하게 알지 못한다.

자원에서 추출한 것으로 인간 생태계를 유지 해 왔기에 보존과 보호는 영구불멸의 구호 일뿐 머나먼 북아메리카 원주민들과 에스키모 인들의 보존된 지혜와 야생의 땅이 가진 신성한 존재 같은 건 책과 영화에서나 간간이 마주 할 뿐이다.


[11월에 내륙 얼음 위로 귀환 하려다가 79피오르에서 사망. 나는 약한 달빛에 의지해 이곳에 왔지만 얼어붙은 다리와 어둠 때문에 더 갈 수 없다. 다른 이들의 시체는 빙하에서 좀 떨어진 (약 12킬로미터) 피오르 한가운데에 있다. 하겐은 11월 15일에 죽었고, 에릭센은 열흘 뒤에 죽었다.]



1900년 그린란드 북동쪽 해안 북위 82도 37분 지점에 돌 무더기를 하나 쌓은 덴마크 국적의 탐험가들은 이전 탐험가들과 달리 25년 동안 그린란드 동해안의 외진 곳들을 샅샅이 탐사하며 반도와 내륙 해안 곳곳을 조사했지만 해수면 아래 숨겨진 빙산에 막히고 부딪쳐서 결국 북극점 도달엔 실패하고 이들 중 몇 명은 얼어 죽었다.

미지의 북극 땅을 탐험하면 할 수록 막대한 인명 손실이 발생해도 유럽인들과 미 대륙 침략자 백인들은 북극으로 탐험대를 보내는 걸 포기 하지 않았다.

백인 탐험가들이 북극 땅에 발을 들여 놓기 휠씬 이전부터 이 땅에서 생존 하고 있었던 에스키모들은 계절의 주기에 맞춰 이동하며 자신들의 땅을 탐험하고 있었다.


북극의 동식물의 생육 주기는 다른 대륙과 달랐고 뚜렷하게 구분 되어지지 않았다.

어떤 곳에는 계절적으로만 존재하는 개체군이 있었고 수 세기 동안 존재했던 번식지와 군락지들 역시 계절의 변화에 맞춰 사라졌다가 모습을 드러낸다.

따라서 외지인들의 눈에 북극의 어떤 땅은 비어 있거나 드문 드문 보일 뿐이다.


수 세기 전에 미지의 땅을 찾아 나선 탐험가들처럼 땅과 바다가 인간의 삶에 어떤 의미를 주는지 눈 앞에서 본 빛과 바람 새의 지저귀는 소리, 동물들의 움직임을 찾아 떠난 사람이 있다.


세계를 이루는 모든 존재들이 간직하고 있는 신비함을 자연의 언어와 목소리로 들려 준 미국 태생의 생태주의자이자 자연주의자 배리 로페즈가 남긴 <북극을 꿈꾸다>는 1986년에 출간 된 책으로 이 책을 펼치면 첫 장에 이런 문구가 적혀 있다.



인간은 누구나 생에 한 번 쯤 기억된 대지에 마음을 집중해야 한다.

자신이 경험한 특정한 대지에 넋을 놓아야 한다.

가능한 모든 방향에서 바라보고 경탄 하고 곰곰이 생각해야 한다.

대지의 매 계절을 매만지고 그 안의 소리에 귀 기울이는 상상을 해야 한다.

대지의 생명들과 숨죽인 바람의 모든 움직임을 상상 해야 한다.

달의 광휘와 황혼과 여명의 모든 색깔을 기억해야 한다.

-N.스콧 모마데이

어느 여름 밤, 친구와 함께 알래스카 브룩스 산맥 서쪽에서 야영을 하던 중에 텐트를 친 산등성이에서 서북극 카리부 무리의 번식지 남쪽에 펼쳐진 툰드라 지역에 서식하고 있는 다양한 동물을 관찰하고 있었다.

그 곳에서 베리 로페즈가 목격한 생명체들은 새끼가 든 굴을 홀로 지키는 일년 생 늑대가 아직 덜 자란 회색 아기곰과 대치하고 있었고,라플란드긴발톱멧새들과 마주치거나 흰 올빼미 두 마리가 두 눈을 감고 있는 둥지 앞을 지나거나 물떼 새들의 사나운 날개짓을 관찰하는 동안 길들 지 않는 생명체들의 강인한 생명력에 경이감을 느끼며 북극으로 향했다.

5년 동안의 북극을 탐험한 기록이 담긴 이 책 속에는 북극 대륙의 땅과 하늘, 바다의 사계절 속에 그곳에 서식하고 있는 큰곰, 사향소, 북극곰, 일각고래 그리고 새들의 대 이동의 순간을 지난 시대와 현 시대의 인간의 열정과 탐욕, 욕망으로 어떻게 파괴되었는지 현재 남아 있는 생명체들은 어떤 모습으로 종족을 보존 시키는데 안간힘을 쓰는지 뛰어난 관찰력과 유려한 문체로 고요히 생동 하고 있는 경의로운 자연의 신비를 한 권의 책으로 엮어 냈다.

이 책에는 수많은 지형과 인명, 동 식물들의 이름들이 줄줄이 나오고 상세한 주석이 달려 있지만 지형을 보여주는 지도를 제외하고는 북극 땅에 살고 있는 동물과 식물, 생명체의 모습을 보여주는 도판이 실려 있지 않다.

사진이나 그림 같은 부차적인 설명이 없어도 이 책의 첫 장을 여는 순간부터 미지의 동토 속을 찾아 모험과 탐욕의 역사로 시간 여행 하듯 빨려 들어가게 된다.

우리가 지각하는 세상은 우리 시야에 포착된 '자기 세계'일 뿐을 자연 생태계에 존재하는 다양한 생명체의 삶을 완전하고 정확하게 이해 할 수 없다.

특히 다양한 매체와 기록, 책과 여러 다큐멘터리를 통해서 보여지는 야생의 세계는 여러 학자들의 연구 결과물로 이들에 의해 동물들의 행동과 삶의 양상이 숫자로 축소 되거나 과장 되어 버렸다.

배리 로페즈는 학자들의 연구 결과물이 아닌 자신의 눈과 귀로 목격한 북극의 생태계를 이렇게 묘사했다.


[탁 트인 툰드라를 어슬렁거리다 보면 어디에서나 완전한 모양을 갖춘 채 죽은 이파리들과 그대로 보존된 꽃잎들, 나뭇가지들, 몇 년 째 그대로 쌓여 있는 유기 퇴적물들을 보게 된다. 북극에서는 아주 적은 수의 유기체가 아주 짧은 기간에만 작용할 수 있어서 부패가 아주 느리게 진행되고 발 밑에 토양층의 깊이와 성질이 바뀐다.

따라서 토양에 따라 서식하는 동물과 식물의 종류가 달라지고 점점 줄어드는 태양 에너지에 적응할 수 있는 종이 줄어들면서 수가 감소할 것이다.마지막 까지 남은 녀석들은 추위와 어둠 속에서 천천히 움직이거나 아예 활동을 멈춘다. 계속 가다 보면 결국에는 지렁이도 송장벌레도 없는 지역, 흙도 부패도 거의 볼 수 없는, 생명이라곤 없는 북극의 자갈 사막에 서게 될 것이다.]


일반적으로 북극과 떨어진 대륙에 살고 있는 이들에게 1년의 주기는 사계절 또는 두 계절로 구분 하고 있지만 북극의 계절과 주기는 단 몇 주 사이에 지나가는 현상으로 겨울과 여름 이 두 계절 사이의 기온 변화가 전 지구의 온도 변화에 결정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

특히 도시에 삶의 터전이 있는 이들에게 특정지역에서 살아가는 동물들 간의 먹이 사슬 관계에 대해 잘 알지 못한다.

툰드라 지역의 가장 큰 먹이 사슬인 사향소는 새들과 친밀하게 지내며 사냥을 하는데 도움을 받고 흰 멧새와 라플란드긴발톱멧새들은 사향소들의 털로 척박한 환경을 견뎌낼 수 있는 튼튼한 둥지를 만든다.

사향소가 지나간 자리에서 북극토끼들은 먹잇감을 발견하고 토끼들이 파헤친 땅 속에서 얼음과 이끼를 뚫고 버드나무 순이 나와 나무로 성장한다.

사향소가 죽으며 온갖 곤충들이 달려들어 부패와 분해 되는 과정에서 새들의 먹이와 다양한 유기물의 양분으로 나눠진다.

하지만 지구 상에서 닥치는대로 사냥하고 포획하는 인간의 눈에 땅 위에 군림하는 모든 생명체들은 먹잇감으로 밖에 보이지 않는다.

북극의 얼음이 녹아내리고 있다며 얼음 덩어리 위에 홀로 앉아 있는 새하얀 북극곰의 모습은 곧잘 여러 매체에서 자주 보고 있으면서도 정작 이 북극곰에 대해 알고 있는 사실이 거의 없다.

북극 가장 자리에 살고 있는 북극곰이 해빙 테두리와 해수면 대륙 해안에서 사냥으로 먹고 살고 있는 얼음곰이자 민첩한 사냥꾼이라는 사실을 이 책을 통해 알게 되었다.

수컷의 정교한 사냥 솜씨는 인간이 만들고 개발한 최첨단 기기보다 정교하고 암컷이 파놓은 굴은 인간이 얼음 땅 위에 절대로 세우지 못할 정도로 최첨단 보온 구조로 지어졌다는 사실도 직접 눈과 발로 관찰하고 기록한 배리 로페즈를 통해 알게 되었다.

뛰어난 통찰력을 가지고 새로운 환경에 적응해서 적당한 시기에 적당한 행동을 하며 한 계절 한 계절 지혜롭게 삶의 고비를 잘 넘긴 북극곰의 생은 30년 정도로 인류학자들과 동물학자, 생태학자들은 곰의 습성이 인간의 습성과 거의 비슷하다는 말을 한다.

억척스럽고, 끈질기고, 이해가 빠르고 지극히 현실적인 북극곰처럼 선사시대부터 인류는 무언가에 사냥 당하는 공포가 유전자에 각인되어 있고 세기를 거듭해서 진화하는 동안 곰보다 더 빠른 속도로 생태계를 포획하고 사냥하며 수 많은 개체수와 종을 멸종 시켜 버렸다.

사라지는 멸종 동물을 보존하려고 표식을 확인하고 테이터를 기록하고 위성용 위치 추적 목줄을 채우기 위해 마취제를 투입하는 이런 모든 과정 역시 오히려 생명을 위협하는 한 요인이 될 수 있지만 이렇게 해서라도 보호 하지 않으면 인간들이 모두 멸종 시켜 버릴 것이다.

수렵 사냥꾼은 단순히 굶주린 배를 채우기 위해 짐승을 죽이고 그 짐승의 모든 종을 잡아 먹는 것이 주된 목적이 아니였다.

숨을 쉬며 살아 가는 공간에서 함께 공존 하며 서로 분리 되지 않은 조화와 균형을 맞추며 살아갔지만 오랜 세기 동안 인류는 이 사실을 잊고 살았다.

게다가 내 눈 앞에서 펼쳐지는 일이 아닌 이상 자신들의 삶과 관련 없다는 생각으로 무분별한 살상과 사냥 포획으로 자연의 생태계는 처참하게 파괴되고 있다.

(c)The Icebergs, 1861, Frederic Edwin Church


1859년 뉴펀들랜드 앞 바다 항해를 나섰던 풍경화가 프레드릭 에드윈 처치는 자신의 두 눈으로 목격한 빙산을 스케치를 들고 뉴욕 작업실로 돌아와 완성한다.

왼쪽으로 급격하게 솟아 오른 빙산 일부처럼 보이는 전경의 얼음 바닥이 그림의 거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이 그림은 화가 처치가 그림 맨 아래에 '이상한 초자연'이라는 글귀를 적어 놓을 정도로 그가 본 빙산은 거대한 빙산들 중 일부에 지나지 않았다.

해수면의 온도에 따라 이동하는 빙산들은 평소에 물에 잠겨 있다가 비 바람이 불고 해수면이 요동치면 모습을 드러내는데 마치 육지에 있는 거대한 절벽의 모습이 되었다가 계곡처럼 한 가운데가 푹 파여져 있거나 소용돌이 치듯 자잘한 얼음 조각으로 부서져서 물보라처럼 눈 앞에 펼쳐지기에 정확하고 사실적으로 묘사하는 것이 불가능하다.

어떤 사람들에게 그저 텅 빈 것이 또 다른 사람에게는 보이는 것처럼 인간의 눈에 보이지 않았던 무수히 많은 생명 모두 어느 누구의 소유도 아니고 어떤 문화와 더 밀접한 관계를 갖고 있지도 않다.

인간의 지성과 지혜가 닿지 않는 곳에는 말과 언어로 표현하기 힘든 생명체들이 살아 숨 쉬고 있다.

땅다람쥐를 찾아 땅을 파헤치는 툰드라의 회색곰을 사냥하는 늑대,살육의 무시 무시한 현장 속에서도 결연하게 둥지를 지키는 해변 종다리들이 공존 하는 모습에서 땅 위의 생명체들의 숨소리 바다 속을 유영하는 거대한 생명체, 하늘 위를 자유롭게 날아 다니는 어마 어마한 군락의 철새 무리들까지 5년 동안 북극을 탐험하고 기록한 베리 로페즈의 <북극을 꿈꾸다>는 매 페이지 마다 경이로운 자연과 생명체를 만나게 되고 인간의 탐욕적인 욕망과 지난 역사 속의 모험과 탐험으로 인해 파괴된 원시 자연의 안타까운 모습이 파노라마 처럼 펼쳐져 있다.

지난 세기 서구 열강 세력들은 앞다퉈서 사냥을 하듯 대륙과 대륙 사이, 바다와 섬 사이를 마구 잡이로 지배하고 짓밟으며 폭력적으로 포획하고 날 것으로 집어 삼켰다.

이런 약탈과 살육의 시간 동안 멸종된 동 식물 개체군 만큼 사라진 원주민과 피지배 식민지 사람들은 지구의 생태계가 몇 백 번 바뀌어도 영원히 살아 돌아 오지 못한다.

미 개발된 대륙과 바다를 차지 해서 부를 키우고 세계의 모든 자원을 포식하는 동안 지구는 점점 뜨거워져서 이전 시대에 인간의 몸과 뼈를 살찌우게 만든 식량군들도 사라지고 있다.

야만적인 살육의 인간의 손에서 살아 남은 자연과 생명체들이 과연 언제까지 버텨내고 생존 할 수 있을까?

반 세기 전 배리 로페즈는 북극을 여행하고 탐험하는 동안 마주한 북극은 선명한 석양과 오로라가 펼쳐진 곳으로 겨울의 북극 하늘은 오래 도록 새벽과 어스름의 색깔들을 지니고 정오 즈음에 남쪽 하늘이 잠깐 밝아지면 얇디 얇은 노란 금색 줄과 익숙한 연보라색 위로 짙은 푸른색과 멍든 것 같은 자주색, 여러 층의 짙은 보라색이 지평선 위 80도까지 펼쳐지는 광경을 바라 보며 인간이 상상하지 못한 그 너머에 있는 경이로운 자연의 모습에 고개를 숙였다.

도시에 살고 있는 도시 유목민들의 시야에는 보이는 것이라곤 건축물과 도로, 자동차 물결들 뿐이지만 북극의 봄과 가을의 일출과 일몰 사이의 풍광은 장미색, 담홍색, 엷은 청록색, 살구색, 진청색이 어우러지고 그 사이 사이 선명한 빨간색과 주황색, 노란색이 스며있다.

학부 시절에 노르웨이에서 오로라를 본 적이 있다.


부활절 방학 시기였던 3월 늦은 저녁부터 시작된 빛의 향연은 하늘에서 파스텔 톤의 빛의 세기가 넓게 퍼지더니 자정 즈음에 땅 속 깊은 곳 까지 노란색이 스며들어서 시간이 흐를 수록 서서히 태양 빛에 반사되듯 짙은 주황색으로 주변을 밝히기 시작했다.

가볍게 하늘과 땅 위를 가로지르는 빛과 색이 빚어낸 거대한 장막이 펼쳐지는 현상을 두 눈으로 보는 순간 자연을 향한 경외심이 솟구쳐 올랐다.

1986년에 배리 로페즈가 북극을 탐험한 곳과 현재의 북극의 모습은 다를 것이다 하지만 몇 세기의 것이든 불과 몇 년 전의 것이든 눈을 떼고 멀리 바라 보면 눈에 보이지 않는 땅과 하늘 그리고 바다는 하나의 모습으로 지구 상에 있는 모든 것들이 하나의 점처럼 이어져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 이 순간 우리가 살고 있지 않은 또 다른 대륙에서 발생하고 있는 지진과 해일 그리고 재난의 모습을 리모콘으로 돌려 보다 일 순간 정지 시키는 장면처럼 스쳐 지나갈 뿐이다.

지구 상에 모든 생명체들은 단 하나의 땅과 바다를 공유하는 하나의 개체군으로 생명에 대한 책임감을 받아 들여야 하지만 약육강식의 인간 세계에서 한 국가와 한 개인의 도덕적 책임감 만으로 무너져버린 생태계를 구해 내지 못한다.

환경 보존과 보호는 어쩌면 영원히 답이 없는 공허한 메아리에 그쳐 버릴 지라도 인간의 삶은 미지의 영역을 끊임없이 헤엄치고 탐험하며 끈질기게 생명력을 이어갔듯이 인간의 삶이 땅과 바다에 맞닿아 있는 한 우리 모두 이 모순되고 불공평한 약육강식의 세상에서 살아가야 한다.




눈에 보이지 않는 시간 공간을 초월하는 땅에서 솟아나는 생명 그 이상에 대해 형용할 수 없을 정도로 꼼꼼한 관찰력과 경이로운 현상을 시적인 문체로 서술한 배리 로페즈의 <북극을 꿈꾸다>는 척박한 도시 속 유목민들에게 4만년 동안 살아 숨 쉬었던 대지 위에서 어떻게 하면 모든 인류가 현명하게 공존하며 살아 갈 수 있을지 반 세기 전 북극의 대지 위를 거닐며 사유하고 꿈꾸고 상상한 한 인간의 통찰력이 담긴 사유물이 이 책에 담겨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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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선 2024-03-26 02:4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북극 얼음도 빠르게 녹고 있겠지요 지금도... 1986년엔 좀 달랐겠습니다 그때도 기후위기 말한 사람 있을 텐데, 그런 걸 왜 더 빨리 생각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도 듭니다 아니 지구가 따듯해진다는 건 19세기에도 알았던 것 같던데... 그때는 조금씩 달라졌겠지요 지금은 아주 빨리 바뀌는군요 브라질은 무척 덥다가 비가 많이 왔다고 합니다 북극 남극이 얼음 빙하 다 중요한데... 지구는 이어져 있고 그런 게 다 영향을 미치니... 앞으로 어떻게 될지 걱정이네요


희선

2024-03-29 00:30   URL
비밀 댓글입니다.
 
가을비 이야기
기시 유스케 지음, 이선희 옮김 / 비채 / 202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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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라사키 시키부(紫式部)가 1008년경에 쓴 <겐지 이야기(源氏物語)>는 전체 54첩으로 된 장편 대하소설로서, 헤이안 시대 귀족들의 사랑과 고뇌, 이상과 현실이 불교의 무상관을 바탕으로 은은한 운치와 정감이 배어든 사계절과 함께 이어지는 여러 군상들의 풍류와 인생을 담은 일본 최고의 고전으로 수 세기에 걸쳐 일본 문학과 예술에 깊은 영향을 끼치고 있다.

무라사키 시키부의 <겐지 이야기>처럼 수 세기에 걸쳐 후대인들에게 읽혀지는 에도 시대를 대표하는 문학 작품인 우에다 아키나리의 <우게츠 이야기 雨月物語 >는 일본 고전 설화 문학의 진수로 꼽히며 영화를 비롯해서 현대 일본 장르 문학에 큰 영감을 주고 있다.


1775년에 출간된 <우게츠 이야기 雨月物語 >는 기존의 봉건 질서와 유교적인 윤리에 따라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면에 감추어진 어두운 모습, 기이한 행동과 현상을 괴이하고 신비한 분위기의 몽환적인 세상을 담고 있다.


[메이와(明和) 5년(1767) 3월, 비가 그치고 달빛이 몽롱한 밤에 서창(書窓) 밑에서 이 이야기들을 엮어서 서점에 건네주며, 제목을 우게쓰 이야기(雨月物語)라고 하였다.]


라는 문단으로 시작하는 우게쓰 이야기가 일본의 대표적인 호러 작가 기시 유스케가 2023년 일본 사회를 배경으로 네 가지 공포와 네 가지 절망 속에 벗어날 수 없는 운명에 농락 당하고 고통받는 인간의 모습을 <가을비>라는 단편으로 엮어냈다.


작가의 실종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단편 <푸가>는 기묘한 꿈을 꾸면서 순간 이동을 하는 한 인간의 생에 관한 이야기를 들려준다.


[당신의 혼백이 유체이탈해서 이 방에서 빠져나가려고 하면 거미줄에 잡혀서, 호랑거미에게 포박된 채 아침까지 지내게 됩니다. 그때 꾸는 악몽이 얼마나 음침하고 무서울지는....

지금까지 꾸었던 꿈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 일 겁니다.]

-푸가 중에서


꿈 속에서 순간 이동으로 사라진 작가의 삶을 추적하는 마쓰야마는 자신의 영혼이 하늘 높이 비상하는 체험을 하면서 육신은 납으로 된 관 속에 잠들어 있는 모습을 보게 된다.

인간에게 내재된 죽음의 공포와 일상에서 밀려 드는 초조함과 불안함, 막연한 미래를 향한 두려움이 현 시대와 과거 시대를 오고 가며 마지막 문장까지 독자들의 심장을 팽팽하게 조인다.


[그 얼굴을 보고 나는 마음 깊은 곳에서 전율했다. 나를 올려다보는 탁한 눈에서는 온몸의 털이 곤두설 만큼 어마어마한 원통함이 전해졌다.]

-푸가 중에서

작가 기시 유스케가 <우게쓰 이야기>에 영감을 받아 '비'를 주제로 엮은 단편들에 담긴 인생들은 21세기 현대 일본 사회의 암울한 모습을 담고 있다.

경제적 빈곤의 나락으로 떨어질 정도로 쌓여가는 병원 치료비와 간병비로 노부모를 봉양하는 홀아비의 모습, 쏟아지는 택배 물량을 배달하는 배달 기사가 매일 사 모으는 로또, 학교에서 왕따로 자살을 하기 위해 아파트 옥상에 올라가는 십대들, 불치의 병에 걸렸지만 스스로 목숨을 끊어 버릴 용기가 없는 사람, 사이비 종교의 마수에 걸려 폐지를 줍는 인생이 된 사람들의 운명들이 작가의 노련한 필체에 압축되어 담겨 있다.


[어쩌면 각각의 장소에는 행운의 열쇠 같은 것이 잠들어 있을 수도 있다. 또한 세 사람에게 똑같이 위도와 경도를 주어도, 길흉은 각각 다를 수도 있다. 어느 사람은 잠든 것처럼 사망하지만 다른 사람은 살아갈 희망을 찾을 수도 있는 것이다. 그런 경우에 자신은 어느 쪽인지, 마지막 순간까지 알 수 없으리라.]

-고쿠리 상 중에서

이렇게 저마다 처참한 환경과 운명에 농락 당하는 이들은 꿈 속에서 순간 이동을 하거나 ,한 방으로 인생 역전을 노리지만 자신이 처한 운명에 저항하면 할 수록 악에 대항하면 할 수록 아무리 도망치고 발 버둥치려 해도 원래의 삶, 지옥 같은 일상으로 돌아온다.

[전선이 정체 되어 가을 장마가 시작되면서, 벌써 사흘째 비가 내리고 있다. 인쇄소에 원고 넘기는 날을 앞두고 살기 등등한 편집부 사무실에는 습기가 파고들어 분위기는 몹시 무겁고 답답했다. 공조 시스템도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듯 했다.]

인간은 하늘에서 내리는 비를 멈추게 할 수 없고 어떤 운명도 빗줄기를 피해 갈 수 없다.

그럼에도 비가 내리면 비가 그치길 기다리거나 우산을 쓰고도 온 몸이 비에 흠뻑 젖어도 빗 줄기를 뚫고 질주하는 이들이 있다.

항거 할 수 없는 운명일지라도 죽을 힘을 다해 운명에 맞선다면 영원히 멈추지 않을 것 같은 빗줄기는 언젠가는 반드시 멈출 것이다.


'현실은 공포로 가득 차 있습니다.

전쟁에 팬데믹, 기후변화, 저출산 고령화에 경제 위기까지, 인간이 받아들이는 방식에 따라 공포는 얼마든지 늘어나죠.

사회가 존재하는 한 두려움이라는 감정은 결코 사라지지 않을 것입니다.'

-기시 유스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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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파랑 2023-11-24 17:0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일본의 암울한 모습이랑 우리나라의 암울한 모습이 비슷한거 같아요. 옆나라여서 그런가..
비를 주제로 하는 작품이라니 재미있을거 같아요~!!

scott 2023-11-25 10:36   좋아요 2 | URL
울 나라 현재가 더 암울합니다. ㅠ.ㅠ

희선 2023-11-25 03:3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가을비는 차가운 느낌이 드는군요 가을비가 자꾸 오면 겨울에 가까워져설지도 모르겠네요 비가 와서 우산을 써도 비를 아주 맞지 않는 건 아닌 것 같아요 피할 수 없는 비라니... 눈은 좀 괜찮은데... 책 앞에 있는 말이 무섭네요 ‘진짜 지옥은 우리가 사는 세계야’는 말...

scott 님 이야기는 어두워도 주말입니다 주말 편안하게 보내세요


희선

2023-11-25 10:38   URL
비밀 댓글입니다.

어쩌다냥장판 2023-11-26 15:4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현실은 공포로 가득찬게 맞는말 같네요 여기저기 우울한 소식들만 들리고 아동폭력 동물학대 어휴
요즘도 저는 그냥 책만 듣고 다 닫고 살아요 ㅎㅎ 고양이들 돌보느라 24시간이 모자라네요
추워지는 날씨 건강 조심하세요

2023-11-26 22:07   URL
비밀 댓글입니다.
 
네가 사라진 날
할런 코벤 지음, 부선희 옮김 / 비채 / 202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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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남자가 뉴욕 센트럴파크 벤치에 앉아 있다.

그 남자 앞에 관광객들이 괴성을 지르고 있고 이를 지켜보던 사람들이 각자 자신들의 휴대폰을 들고 찍고 있다.

이런 아수라장 속에서도 그 남자는 공원 한 복판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알지 못한다.

스토베리 필즈

그는 지금 <스토리베리 필즈>라는 이름이 새겨진 벤치에 앉아 있다.


스토베리 필즈


바로 이곳 벤치에서 멀리 떨어지지 않은 곳에서 존 레넌이 총격을 받아 사망한 곳으로 그의 죽음을 기리기 위해 그가 작곡한 노래의 이름을 벤치에 붙여 헌정했다.

점점 모여드는 관광객 틈 속에 끼여 버린 그 남자는 관광객들이 서로 앞다퉈 사진을 찍고 있는 방향으로 시선을 돌린다.

IMAGINE

세계의 평화를 염원하며 만든 곡 IMAGINE의 노래소리가 공원에서 울려 퍼지고 있다.

이 음악을 <스토베리 필즈>라고 새겨진 벤치에 앉은 단정한 양복 차림에 넥타이를 맨 이 남자의 이름은 사이먼

그는 이 공원에서 멀리 떨어져 있지 않은 월드 파이낸셜 센터에서 나와 지난 시절 아이들과 함께 다녔던 산책길을 서성이고 있다.

아홉 살의 페이지, 여섯 살의 샘, 애니아는 세살

그는 지난 시절 세 명의 아이들과 함께 센트럴파크 웨스트 사이의 67번가에 있는 아파트에서 나와 이곳 스트로베리 필즈를 지나 연못가의 엘리스 동상까지 3미터가 넘는 거리를 아이들과 신나게 뛰어 다녔다.

공원 벤치 마다 누군가를 기리기 위한 문구가 적혀 있었다.

영특하고 활발한 큰 아이 페이지는 공원 벤치를 돌아 다니며 새겨진 문구를 낭독하는 재미에 빠졌던 아이였다.

홀로코스트에서 살아남아 이 도시에서 인생을 시작한 C와 B를 위하여

나의 앤, 당신을 사랑하고 존경하고 소중하게 생각합니다.

저와 결혼해주시겠어요?

1942년 4월 12일, 이곳에서 우리의 사랑이 시작되었습니다.

열 아홉살의 아름다운 메릴

더 멋진 삶이 어울렸건만 너무 일찍 세상을 떠났구나.

그때로 돌아가 너를 살릴 수만 있다면 무슨 짓이든 할거야.

딸 페이지는 벤치에 새겨진 문구를 노트에 적으며 이를 주제로 상상력을 발휘해서 이야기를 짓곤 했다.

공원 여기저기서 기타 소리가 요란하게 울려 퍼지고 구걸하는 이들, 향을 피우며 존 레넌에게 절을 하는 이들, 조깅 하는 사람들, 개를 산책 하는 이들, 수영복 차림으로 바닥에 누워 있는 사람들 틈 바구니에서 사이먼은 우두커니 서 있다.

잠시 후 자신에게 구걸 하러 온 여자에게 시선을 고정 시키는 사이먼

푸석하게 엉켜버린 머리카락을 한 그 여인은 양 볼이 움푹 패인 몰골에 깡마른 체격에 누더기를 걸치고 있었다.

냄새나고 더럽고 망가진 채 구걸 하고 있는 여인

그 여인은 사이먼의 딸 페이지였다.

뉴욕 월가에서 최고의 몸값을 올리고 있는 주식 중개인 사이먼, 그의 아내는 몇 달씩 예약 환자가 늘어선 유명한 소아 청소년과 의사다.

세 아이들 모두 명문대 입학을 앞 둘 정도로 수재로 이름을 날렸다.

뉴욕 맨해튼의 콜롬버스 라인에 늘어선 극장가, 박물관, 미술관 그리고 고급 레스토랑과 백화점을 드나들며 주말마다 센트럴 파크 공원에서 뛰놀았던 가족, 세상에서 가장 완벽해 보였던 이 가족의 삶은 완벽했다.

첫째 딸 페이지가 집을 나가기 전까지는...

마약 중독자로 거리를 떠돌고 있는 딸 페이지를 찾기 위해 아버지 사이먼은 날마다 시간이 날 때 마다 공원을 배회 하며 불법으로 약을 판매하는 공급망 책들과 이들 중개인들을 찾고 있다.

이들은 SNS로 구매자들과 메신저를 교환하며 공원등지에서 약을 주고 받기 때문에 사이먼은 이들을 찾아 내기만 하면 딸의 행방을 알아 낼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하고 있다.

사이먼은 거리 악사들에게 틈틈이 50달러 지폐를 쥐어주며 말을 붙이며 주변 소식을 듣고 있다.


'문자로 고정 다섯 명이 있고, 놈들이 황금 시간대를 잡고 있지. 다른 사람들은 그 사이사이에 끼어 들어가.'

'그럼, 스케줄은 당신이 담당하나요?'


악단 구성원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다 사이먼이 100달러 지폐를 슬쩍 주머니에 넣어 주자 다음날 문자가 도착했다.


-오늘 오전 11시 나한테 들었다고 하지 마쇼. 난 그런 떠버리는 아니니까.

-내 돈은 10시까지 가져오시길. 11시에 요가를 가야 해서.

지금 사이먼은 그 약속 장소인 공원 벤치에 앉아 있다.

혹시라도 딸 페이지가 자신을 알아볼까 싶어 맞은편 벤치에 앉아 있다.

오전 11시 58분

사이먼은 이미 뉴욕 주 북부에 있는 솔매니 클리닉 병실을 예약해 두었다.

드디어 누더기를 걸친 한 여자가 쓰레기 봉투에서 기타를 꺼낸다.

노래가 끝나자 사람들이 던지고 간 1달러 지폐를 정신없이 손으로 쓸어 담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던 사이먼. 지폐를 줏어 담는 그 여인이 쥐고 있는 기타는 사이먼이 사준 기타로 딸 페이지는 그 기타를 선물 받던 그날 '아빠 사랑해요'를 백번 외쳤었다.

지금 그 딸은 모여든 구경꾼들 앞에서 술에 취한 듯 비틀거리며 기타를 치고 노래를 부르고 있다.

딸의 모습에 충격을 받은 사이먼은 어디서 부터 잘못 되었는지 곰곰이 떠올려 보지만 좀비처럼 변해버린 딸이 강제로 병원에 끌려 갈 것 같지 않다.

쓰레기처럼 살며 약물 중독에 빠진 남자친구 에런의 뒤에 숨어버린 딸 페이지

아버지 사이먼을 딸의 이름을 부르며 에런에게 주먹을 날리고 도망치는 딸을 뒤쫓아가다 누군가가 그를 향해 몸을 날렸다.

이 모든 모습을 누군가가 촬영해서 유트브 영상에 올렸다.

조회수 289,000회를 기록하며 베스트 영상에 올라간다.


부자가 빈민에게 주먹질

월가가 부랑자를 가격하다

가난한 여자 노숙자를 망쳐놓은 대디 워벅스

노숙자를 때리는 증권 맨

'가진 자'가 '가지지 못한 자'를 공격하다.

자유의 여신상이 보이는 38층 사무실에서 사이먼은 수 년 동안 고객들의 자산관리 사업 확장과 급여 계좌 관리, 아이들 학비 자금 충당부터 은퇴를 대비한 투자와 포트폴리오 잔고, 회사 급여 지급, 가족 여행 경비와 자잘한 취미 활동과 해외 여행 계획, 그리고 집안 리모델링 공사를 비롯해 부동산 투자 설계까지 완벽하게 기획하고 추진하며 고객의 인생을 설계해주었다.

그에게 돈은 스트레스를 덜어주었고 더 나은 삶을 제공해 주었고 더 나은 미래를 보여 주었다.

그에게 돈은 평안과 자유, 경험과 편의는 물론 시간까지 벌어 주었다.

하지만 그가 돈으로 얻지 못한 두 가지 '가족'과 '건강'으로 열심히 돈으로 투자 하고 계획하더라도 계획 했던 것 만큼 성과가 드러나지 않은 유일한 것이였다.

딸에게 달라 붙은 쓰레기 같은 남자 친구 에런을 돈으로 떼어버리지도 못했고 마약 중독에서도 벗어나게 하지 못했다.

결국 딸의 쓰레기 같은 남자 친구 에런은 자신에게 주먹을 휘두른 사이먼을 끈질기게 물고 늘어지고 신고를 받고 동영상을 확인한 형사들이 그의 사무실에 들이닥친다.

사이먼은 당당히 자신의 딸을 위한 정당 방위라고 주장하며 변호사를 내세운다.

하지만 형사들이 그를 찾아 온 건 에런의 목을 칼로 찌르고 도망간 용의자를 추적 중으로 그의 딸 페이지가 종적을 감추었기에 사이먼의 집과 아내의 병원까지 경찰들이 찾아와 샅샅이 뒤지고 있다.

[그건 악령과도 같아. 잡고 놔주질 않지. 상대방의 약점을 찾을 때까지 들쑤시다가 바로 그 약점을 파고들어 혈관으로 들어간다오. 술, 도박, 암이나 다른 바이러스일 수도 있고. 헤로인이나 코카인, 메스암페타민 같은 것일 수도 있소. 악령은 어떤 형태로도 존재할 수 있지.]

딸 페이지는 도주 중에 몰래 부모님 집으로 들어가 아버지 금고에서 현금과 보석을 가져갔다.

사이먼과 그의 아내 잉그리드는 경찰의 추적을 피해 몰래 딸의 주변 인물을 만나며 딸이 그동안 어디서 누구와 함께 살다 약물에 빠지게 되었는지 그 내막을 알게 된다.

온갖 약물을 중간에서 공급했던 에런이 살해 되자 에런에게 약물을 공급했던 공급자들 끼리 서로 에런의 몫을 가져 가기 위해 총을 겨눈다.

이들의 세력 다툼 속에서 사이먼의 아내 잉그리드가 총에 맞아 혼수상태에 빠져버리고 마약 공급책들은 거리의 가장 어두운 지하 영업소로 숨어 버렸다.

뉴욕의 타투 거리마다 자리 잡은 그들은 서로가 누구를 만나 무엇을 주고 받는지 알고도 모른 척 하고 있다.

브롱크스, 브루클린 지역의 재개발 공사가 들어가는 허름한 아파트 마다 마약 공급원들이 활보하고 있지만 이들 모두 신분 노출을 하지 않은 채 주문자와 공급자, 매개자로 끈끈하게 얽혀 있다.


-찾아봐 아저씨. 찾아보는 거야.

하지만 당신 딸은 마약쟁이야 찾는다 한들. 해피엔딩은 아닐 거야.


사이먼은 수시로 연락처가 바뀌는 이들을 추적하며 딸의 행방을 찾아다닌다.

그는 딸을 찾는 동안 그동안 딸에게 자신은 어떤 아빠 \였는지 지난 시절의 일들을 떠올리기 시작하며 어디서 부터 어긋나게 되었는지, 파멸의 불씨가 시작되었는지. 자신이 어떤 잘못을 저질렀는지 떠올려 보며 딸의 남자 친구 에런의 가족이 살고 있는 곳을 방문한다.

술에 찌들린 채 허름한 농장 밖을 어슬렁 거리는 에런의 부모는 죽은 에런의 친 엄마에게 가보라고 사이먼에게 연락처를 던져 준다.

타투 전문 클럽에서 일하고 있는 에런의 생모에게 어떤 정보를 얻지 못한 사이먼은 어떤 학교에도 다닌 적이 없었던 에런이 어떻게 자신의 딸에게 접근할 수 있었는지 그 내막을 듣기 위해 딸이 다녔던 학교를 찾아간다.

딸의 기숙사 친구들은 에런을 만나기 전부터 약물에 손을 대었다는 걸 눈치 챘지만 어느 누구도 약물 복용을 말리지 않았다.

사이먼은 아내가 혼수 상태에 빠져 있는 사이 그동안 아이들이 발급 받은 카드 사용처를 뽑아 하나씩 조사하기 시작한다.

행방 불명인 채 도주 중인 딸 페이지가 'DNA검사로 가계도 완성하기' 라는 계보학 사이트에 79달러를 결제한 내역을 발견했다.

집으로 돌아가 아이들이 사용한 칫솔을 모조리 지퍼 백에 담은 사이먼은 마지막 큰 딸의 방 욕실에 먼지가 쌓여 있는 칫솔을 찾아 낸다.

-그 사람을 죽이지 마세요. 제발

-이 종이를 아무에게도 보여주지 마세요. 그 아이에게도요.

당신은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모릅니다.

두 시간 후면 유전자 검식 결과가 나올 것이다.

사이먼은 지난 시절 자신의 아버지, 국제전기공조합 102번 지부 소속 전기기술자였던 아버지의 모습을 떠올렸다.

아들 사이먼의 졸업 2주전 심근 경색으로 세상을 떠난 아버지

아들 사이먼이 아버지를 사랑했던 것 만큼 그의 아이들도 그를 사랑할까?

사이먼은 자신의 아버지가 만약 자신이 마약쟁이였다면 내버려 두었을지 생각해보던 중 딸의 대학의 교수 루이스 밴더비크가 그의 앞에 나타난다.

딸이 대학에서 당한 성폭력 사건을 교내 법령 학칙에 따라 처리해 버렸다는 사실을 알게 된 사이먼은 분노조차 못한 채 큰 충격을 받아 집으로 돌아가던 중 지하철 좌석에서 정신을 잃어 버린다.


-돈 준비했어. 사인해야 할 거야. 토드 레이시를 찾아가

패스트푸드 체인점과 고급 제과점 사이에 그들이 지나가고 있다.

100달러를 요구하는 그들에게 연락처를 받아낸 사이먼은 유전자 검사 결과를 문자로 확인한다.

혼수 상태에 빠진 아내를 찾아 온 어느 종교 단체 사이비 교주

젊은 시절 아내 잉그리드가 해외에서 모델 활동을 했을 때 사이비 종교에 빠져 교주의 아이를 임신했고 사람들에게 아이가 사산 되었다고 거짓말을 했다.

대학 음주 파티에서 더그 멀저라는 남학생에 성폭행 당한 딸 페이지는 멀저 부모의 재력에 고개를 숙인 학교 측으로 부터 아무일 없었던 걸로 하자는 합의를 강요 당한다.

몸과 마음에 큰 상처를 받은 페이지 앞에 친 오빠라는 사람이 나타나고 그에게 홀려 버린 페이지는 무시 무시한 약물중독자가 된다.


완전히 회복하고 난 후 집으로 돌아 온 아내 잉그리드, 그녀는 노래를 부르는 듯 가족에게 '저녁식사 준비 다 됐다'고 외친다.


'나는 우리 가족을 사랑해.'

'나도 마찬가지야.'


가족이라는 울타리 안에서 삶을 살아가는 동안 순수하게 행복한 순간을 맛볼 기회가 많지 않을 것이다.

대부분 억지로 미소를 지어 보이거나 감정을 억제 하며 자신들의 본래의 모습을 감추며 살아간다.

수면 위로 불쑥 올라 온 행복은 그리 길지 않다. 태양의 길이보다 훨씬 짧고 오래도록 유지 되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족이라는 울타리 안에 모두 모여 있다.

어려울 때나 힘들 때나 슬플 때나 기쁠 때나

사이먼은 알고 있다.

세상의 모든 가족마다 각기 다른 행복의 길이와 주기를 갖고 있다는 것을...

그는 저녁 식사 자리에서 아내의 웃음 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있다.

그녀의 웃음소리를 계속 듣기 위해서라면 그는 어떤 댓가라도 치뤄야 한다는 걸 이제서야 깨닫게 되었다.

아이들을 위해서, 자신의 사회적 지위와 돈을 위해서라도


“나는 누군가 죽는 이야기보다 사라지는 이야기에 매료되는 편이다.

살인은 사건 해결에 초점을 두지만 실종은 희망을 이야기하기 때문이다.

희망이란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것이자, 우리를 산산이 깨부술 만한 거대한 것이다.”

_ 할런 코벤, 출간 인터뷰 중에서

대부분의 스릴러의 시작은 '살인'에 촛점을 맞추지만 스릴러의 거장 할런 코벤은 ‘실종’에 중심을 두고 인간이 가장 집착하고 있는 본질적인 질문을 던진다.

그건 바로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점점 더 깊은 곳으로 추락을 감수하는 희생적인 인물과 나만 추락 할 수 없다는 악랄한 이기심으로 무장한 빌런들을 등장 시켜 인간에 내재된 선과악을 정교한 시선으로 거침없이 질주 하다 마지막 예측할 수 없는 반전을 툭 던진다.



사라진 딸을 찾아 나선 아빠 사이먼의 추격전과 함께 미국 전역을 돌며 자신들의 먹잇감을 ‘ 사냥하는 수상한 2인조와 실종자사건을 추적하는 FBI 출신 사설 수사관이 맨 마지막 하나의 연결 고리로 이어진다.

마지막 퍼즐이 완성되는 순간,스릴러의 거장 할런 코벤이 보여주는 이야기가 뉴욕의 부유한 가정의 이야기가 아닌 바로 현재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가장 큰 문제인 마약 중독,교내 성폭력, 부와 권력을 쥔 부모 뒤에 숨은 청소년 범죄자들, SNS 바이럴 영상, 광신도, 연쇄 범죄까지 스릴러라는 장르를 넘어 현시대의 인간의 본성이란 무엇인가?라는 묵직한 질문을 던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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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선 2023-09-05 02:01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여러 가지 문제가 섞여 있군요 무엇이 문제였을까를 찾다보면 여러 가지 일을 알게 되기도 하겠습니다 그런 걸 알면 좋을지... 아니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게 해야 하지 않을까 싶기도 한데... 페이지가 학교에서 성폭력을 당했을 때 학교에서 가해자를 처벌 받게 했다면 좋았을 텐데 싶네요 그런 걸 부모한테 말하기도 그렇겠죠 어느 나라든 성폭행은 숨기려고 하는군요 더 위로 거슬러 가면 엄마가 피해를 본 이야기도 있다니...


희선

2023-09-05 23:28   URL
비밀 댓글입니다.

새파랑 2023-09-05 09:0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야기가 흥미진진하네요 ㅋ 페이지의 결말이 어떻게 될지 궁금합니다~!!

scott 2023-09-05 23:29   좋아요 1 | URL
이 책 잼납니다
역쉬 세계적인 베스트셀러 물은 달라여 ㅎㅎ
페이지가 휙휙 넘어갑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