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트] 황제 프리드리히 2세의 생애 상.하 세트 - 전2권 ㅣ 황제 프리드리히 2세의 생애
시오노 나나미 지음, 민경욱 옮김 / 서울문화사 / 202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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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94년 12월 26일 황제 프리드리히 2세는 예시라는 작은 마을 광장 천막안에서 세상 밖을 나왔다. 

붉은 수염의 신성 로마제국 황제 하인리히와 황후 콘스탄체가 결혼 8년 만에 태어난 아이, 성탄절 팔레르모 대성당에서 '시칠리아 왕'의 왕관을 쓴다. 

태어나자마자 부모와 떨어져 움브리아 지방에서 세살까지  살던 꼬마 프리드리히 세례식날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아버지 하인리히를 만난다. 

1년 후  하인리히 황제는 건강 이상으로 서른 두살의 나이로 사망하고 그의 예상치 못한 죽음으로 유럽 전역에 권력의 지각 변동이 시작된다. 

가장 처음 남부 이탈리아에서 시작된 반란이 종교계의 최고의 권력자 로마 교황의 죽음으로 더욱 혼란이 가중된다.

 황후 콘스탄체는 이제 네살이 채 안된 아들 프리드리히 2세를 권력의 왕좌에 앉히기 위해 왕실 최고 회의를 소집한다. 

1198년 1월, 로마 교황으로고 서른 여덟 살의 인노켄티우스 3세가 선출되고 황후 콘스탄체는 그에게 접근해 교황이 시칠리아 왕국에서 어린 프리드리히의 왕위를 인정해 주면 혈통상 프리드리히에게 권리가 있는 독일의 왕위 계승권을 포기하겠다는 조건을 내건다. 

교황 입장에서는 골치 덩어리 독일을 관리 하지 않아도 되니 황후의 조건을 흔쾌히 받아들인다.

1198년 5월 17일, 겨우 네 살이 된 프리드리히는 팔레르모 대성당에서 시칠리아 왕으로 즉위 한다. 

나폴리까지 공략해온 로마 교황의 영토와 국경을 접한 남부 이탈리아 전역의 통치권이 4살짜리 프리드리히 황제 손에 들어갔다.

 반년 후 1198년 11월, 황후 콘스탄체는 병상에 눕게 되고 자신의 죽음이 임박해왔다는 사실을 직감하며 아들의 후견인으로 교황 인노켄티우스 3세를 선택한다. 



교황은 죽음이 임박한 황후에게 다음과 조건을 요구한다.


첫째, 시칠리아 왕국이 로마 교황의 영유지 라는 것을 인정할 것.

둘째, 꼬마 프리드리히 황제가 성인이 될 때까지 자신의 후견인 비용을 낼 것. 

단, 후견 비용의 납부 시기는 성인이 된 다음에 할 것


황후 콘스탄체는 이 모든 조건을 받아들이고 며칠 후 눈을 감는다.


자, 이제  천애고아가 된 4살 꼬마황제 프리드리히 앞에 어떤 운명이 기다리고 있을까?

황후가 사망 한 후 교황의 신경은 온통 제 4차 십자군을 동방에 보내는데 쏠려 있었다.

꼬마 프리드리히 황제 옆에는 성직자나 학자 출신도 아닌 굴리에모 프란체스코라는 일반인에게 맡겨진다. 

어느 누구도 황제에게 관심을 갖지 않는 10년 동안 꼬마 프리드리히 황제는 자신의 호기심이 가는 데로 거의 전 분야를 독학해 나간다.

무엇을 배울지 스스로 선택했던 꼬마 황제는 라틴어, 프랑스어, 독일어, 이탈리아어, 그리스어, 아랍어를 차례 차례 익혀 나간다. 황제 프리드리히는 수행원이나 시종 없이 팔레르모 시내를 마음껏 돌아 다니며 서민들의 언어와 문화까지 익힌다.

황후의 사망 이후 단 한번도 꼬마 황제 프리드리히를 만난 적이 없었던 교황은 십년의 세월이 흐른 후 카푸아 대주교의 보고서를 통해 꼬마 황제가 어떻게 성장 하고 있는지 알게 된다.

카푸아 대주교가 교황에게 보낸 보고서는 다음과 같다.


-키는 중간 정도로  또래들 보다 크지 않다. 단단한 체격에 지구력이 강하다.

-칼과 창, 활을 평균 이상으로 잘 다룬다.

- 무술에 집중 하고 있을 때 자세가 유연하고 몸을 자유자재로 써서 약점을 내보이지 않는다.

-승마를 아주 즐긴다. 아무리 거칠고 성질 머리가 나쁜 말 위에 올라 타도 압도적인 속도와 기세로 말을 길들인다.

-아침에 눈을 뜰 때부터 밤 까지 절대로 가만히 앉아 있지 않는다. 미친 듯이 움직이고 돌아 다닌다.

-유일하게 가만히 앉아 있을 때는 독서를 할 때 뿐이다. 역사 책을 주로 탐독 하지만 뭐든 손에 잡히는 데로 읽는다. 한번 책에 빠지면  새벽까지 이어진다.

-피로 하다 거나 지겨워 한 적이 없다. 하지만 황제 의복으로 갈아 입고 나면 순식간에 근엄한 모습으로 돌변한다. 

-어느 누구나 눈이 휘둥그레지는 미소년은 아니다. 하지만 자세히 보면 넓은 이마는 넓은 마음을 드러내고  눈빛은 소년의 눈빛이지만  상대를 바라 볼 때는 강한 열정을 드러낸다. 단, 가끔 황실 사람들이 전혀 알아 듣지 못하는 서민들 언어로 말해서 시종들을 난감하게 만들때가 있다.

- 무엇이든 미리 정해진 데로 움직이지 않고 스스로 하고 싶은 일을 찾는다. 어린 나이지만 시종이나 하인을 부리지 않고 어떤 곳도 스스로 찾아가고 어려운 일도 스스로 척척 해낸다.


소년 프리드리히 황제가 살던 시기에 팔레르모는 다민족 다문화 다종교가 뒤섞인 무법지대로 독일과 이탈리아 세력이 끊임없이 충돌하며 언제 어떤 식으로 살해 될지 모르는 곳이였다.

황제의 후견인 교황도 이곳은 손도 대기 싫은 곳이지만 황제 프리드리히를 자신의 손안에 쥐고 흔들며 시칠리아 왕국 전체로 세력을 확장 하려는 목적을 갖고 있었다.

그가 첩자로 파견한 사제들과 대주교들은 황제 프리드리히를 24시간 감시 하며 수시로 교황에게 보고서를 보냈다.

완벽하게 감시 당하면서 완전하게 방치돼 버린 황제 프리드리히는 일곱 살 무렵 독일 세력들에 의해 납치 될뻔한 위기에 처한 적이 있었다.

소년 프리드리히는 자신이 기거 하고  있는 노르만인의 궁전으로 쳐들어온 독일 세력들 앞에 끌려가지 않으려고   자신의 몸에 피가 나도록 마구 할퀴며 짐승처럼 큰 소리로 울부 짖었다.

소년 프리드리히가 미쳐 버렸다 생각했던  독일 세력들은 곧바로 현장에서 줄행랑을 치고 이를 바로 눈앞에서 목격한 교황의 비밀 첩자 사제는 이날의 사건 보고서를 작성한다.


'소년 황제가 독일 세력들 앞에서 보인 행동은 극도의 공포심이 아닌 이름만 황제 뿐인 자신의 처지를 절망과 분노로 표출했습니다.'


이 사건 이후 소년 프리드리히는 자신이 신뢰 할 수 있는 사람만 곁에 두고 팔레르모 전역에 세워진 예배당의 서고들에 보관된 책들을 독파 하기 시작한다.

1208년 소년 프리드리히가 13살 생일날 삼촌 필립이 살해 당하고 소년은 호엔수타우펜 가문의 유일한 생존자가 된다.

1209년 12월 26일  14살 소년 프리드리히가 스스로 성인이 되었음을 선포 하자 이 사실을 알게 된 후견인 교황 인노켄티우스 3세는 전혀 예상치 못한 사실에 크게 놀란다.

'그 꼬마가 자신의 나이보다 월등한 능력을 키웠군, 소년의 모습이지만 인지 능력은 성인을 넘어 섰다니.'


가만히  14살 황제의 움직임을 가만히 지켜보고만 있지  않았던  마흔 아홉 살의 교황은 성직자 임명권을 놓고 서로 대립하지만 어린 황제의 대응에 맞서기 보다 너그럽게 이해하는 태도를 취한다.

 14살 황제 프리드리히 2세는 자신에게 맞서지 않고 공손하게 한 발자국 물러서는 교황의 속내를 파악하기 위해 주변 동태를 살피는 동안 교황은  황제보다 열 살이나 많은 아라곤 왕의 딸 콘스탄체를 눈앞에 데리고 와 결혼을 종용한다.

당시 아라곤 왕의 딸 콘스탄체는 헝가리 왕과 결혼 했지만 아들이 죽자 자신의 고향 스페인으로 돌아 간 상태였다. 

빠른 속도로 헝가리 왕과 이혼 절차를 마치게 한 교황은 1209년 8월 15일 자신의 꼭두각시 콘스탄체와  황제 프리드리히 결혼 혼사를 직접 주관하며 14살 짜리 황제를 자신의 손아귀에 넣으려는 계략을 짠다.

황제 프리드리히와 결혼식을 올리던 날 콘스탄체는 결혼 지참금으로 무려  오백명의 기사를 끌고 온다.

14살의 황제 보다 삶의 경험이 많았던 콘스탄체는 교황의 검은 꿍꿍이를 꿰뚫어 보았고 그의 바람대로  남편 프리드리히 황제가 꼭두각시가 되지 않게 하기 위해  왕국 통치 질서를 확립하는데 적극적으로 협력한다. 

콘스탄체가 이끌고 온 오백명의 기사들이 유럽 전역으로 퍼져 나가기 전, 교황은 황급히 독일 작센주 지역의 전폭적인 지원을 요청 한다.

당시 독일 작센 주는 황제 프리드리히의 삼촌 필립이 죽고 난 후 그 자리에 작센공 오토가 물려 받았다. 

작센공 오토는 교황파의 우두머리이자 교황 인노켄티우스 3세의 손과 발이 였다. 

교황은 자신의 수족이나 다름 없는 오토가 절대로 시칠리아 왕국을 손에 넣는 일은 하지 않으리라 굳게 믿고 있었다.

1209년 10월, 스물 일곱 살의 오토는 신성 로마제국 황제에 올라서고 교황 인노켄티우스 3세는 북쪽 독일은 오토가 남쪽 시칠리아 왕국은 14살의 프리드리히가 통치 해야 자신의 안위도 챙기고 권력도 자신이 쥐락 펴락 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황제 오토는 대관식을 마치자 마자 교황청 영토의 북쪽과 국경을 맞댄 토스카나 지방으로 군대를 이끌고 가 시칠리아 왕국의 영토 지역인 남부까지 진격한다.

이 사실에 교황은 크게 격노 하지만 일개 종교인으로  군사력이 없으니 오토를 암살 할 첩자 사제들을 급파 한다.

 이를 절대로 모를 일이 없었던 황제 오토는 첩자들을 색출해 내고 교황청의 북쪽 영토 카푸아, 나폴라, 살레르노, 아말피 까지 차례 차례 점령하며 교황의 암살단 사제들에게 에워 쌓여 있었던 황제 프리드리히를 구출하는데 성공한다.

자신의 사제를 모조리 몰살 시켜 버린 것에 크게  분노한 교황은 1210년 10월 신성 로마제국 황제 오토를 파문 시킨다고 공표한다. 

하지만 이미 교황청 영토를 정복 한지 1년을 넘겨 버린 시점이라 황제 오토는 파문 당하는 것도 두려워 하지 않는다. 

오토가 교황과 기 싸움을 벌이는 동안 한층 여유가 생긴 황제 프리드리히는 남유럽 전체의 방위군을 키우는데 주력 하고 있었다.

더 이상 암살단 사제들도 별 효과가 없다는 사실을 깨달은 교황은  남부 이탈리아 지역의 충직한 대주교인 서른 세 살 배라르도를  팔레르모 대주교로 임명한다.

교황이 대 주교 배라르도에게 준 임무는 팔레르모 땅을 지배 하고 있는는 열여섯살 짜리 황제 프리드리히를 곁에서 보좌 하며 감시해서 그의 일거수 일투족을 자신에게 보고 할 것을 명했다.

교황은 일개 지방 구석진 곳에서 벼락 출세한 배라르도가 자신에게 충성 하기 위해  야생마 같은 황제를 노련하게 조련 할 것이라 큰 기대를 품고 있었다. 

매일 아침 교황에게 보고서를 보냈던 베라르도는 차츰 시간이 흐를수록   로마 교황청에도  교황에게도 보고서를  제출하지 않는다.

매일 아침 교황은 베라르도의 보고서가 도착하기를 기다렸지만   소식조차  없게 되자  시칠리아 왕국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열여섯살짜리 황제가 어떤 일을 벌이고 있는지 전혀 알 방법이 없이 로마 교황청에 홀로 고립된다.

과연  베라르도 대 주교는 야생마 같은 황제 프리드리히에게 무릎을 꿇었던 것 이였을까? 아니면 온갖 뇌물에 포섭 당해 버린 것이었을까?

서른 세 살의 베라르도 대주교는 열 여섯살 황제의 운명을 읽고 있었다.

1년 후 황제 프리드리히는 북부 독일로 향하고 그의 곁에 동행 하는 사람은 바로 베라르도 대 주교, 그는 이제 황제 프리드리히 인생에 가장 소중한 은인이자 파트너가 된다.



황제 프리드리히 2세의 최대 적은 자신의 후견인인 교황도 아니였고 국경 너머 이교도 군대들도 아니였다. 

그가 이룩하려는 법치 국가를 세우는데 절대적으로 '시간'이 필요 했고 그 법치 국가를 이룩 하려면 절대적으로 '평화'를 유지 해야만 했다. 

'평화'는 꿈 만으로 유지 시키지 못한다. 

이 세상의 분쟁이란 꿈을 꾸듯 평화롭게 해결 할 수 없다.

황제 프리드리히 2세가 꿈꾸는 세상. 평화를 유지하기 이전에 평정의 상태로 만들려면  압도적인 군사력이 필요 했다.

중세 시대에 병력을 거느리고 싸울 수 있는 사람은 오로지 봉건 '제후'들 뿐이다.

그렇다면 황제 프리드리히 2세는 군사력을 내세우지 않고  어떻게 평화를 유지해서 법치 국가를 세울 수 있었을까?

1236년 마흔 한 살에 접어든 황제 프리드리히 2세에게  '시간'은 그가 설계하는 미래를 재촉하고 있었다.

조류를 이용한 사냥에 관한 책을 쓰면서 내가 명심한 것은 아래 한 가지다.

모든 것은 있는 그대로 그리고 본 그대로 쓸 것

왜냐하면 이 방침을 관철해야만, 책을 통해 얻은 지식과 경험해보고 처음으로 이해한 지식의 통합이라는 지금까지 아무도 시도하지 않은 과학의 길을 열 수 있을 것이라 믿어서이다.

-프리드리히 2세의 조류를 이용한 사냥에 관한 고찰 (De Arte Venandi cum Avibus)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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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 루이스 레이의 다리
손턴 와일더 지음, 정해영 옮김, 신형철 해제 / 클레이하우스 / 202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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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14년 7월 20일 정오 무렵 리마와 쿠스코 사이를 이어주는 페루에서 가장 멋진 다리 산 루이스 레이가 무너지는 사고가 발생한다.

다리가 무너져 버릴 당시에 건너던 다섯 사람 모두 떨어져 죽게 된다.

간발의 차이로 참사를 피한 주니퍼 수사는 “왜 이런 일이 하필 저 다섯 사람에게 일어난 것일까?”라는 의문을 품고 다리 붕괴 사고로 희생된 사람들이 우연히 그 장소에 가게 되어 죽게 된 것이였는지 아니면 신이 정해 놓은 운명의 섭리에 따라 죽음에 이르게 되었는지 ‘그들의 죽음’의 원인을 밝혀 낼 수 있을 것이라는 믿음을 갖고 인생 행적을 탐사해 나간다.


주니퍼 수사가 가장 먼저 인생 행적을 탐문하는 첫 번째 희생자는 몬테마요르 후작 부인으로 남편을 일찍 여의고 홀로 딸을 키워냈지만 엄마의 과도한 집착과 사랑에서 벗어나고 싶었던 딸은 스페인으로 도망가 그곳에서 결혼을 하고 엄마를 두번 다시 찾지 않는다.

두 번째 희생자는 후작 부인을 수행했던 하녀로 수도원에 버려졌던 고아 소녀 페피타이다.

그녀의 뒤를 따라 다리를 건넜던 세 번째 희생자 에스테반 청년은 자신의 쌍둥이 형제의 죽음으로 자살을 시도 했지만 실패 한 후에 새로운 인생을 시작 하기 위해 다리를 건너갔던 청년이다.

네 번째 희생자는 '늙은 어릿 광대' 피오 아저씨로 한때는 유명했던 연극 배우였던 그는 젊은 시절 페루의 최고의 여배우가 성공 할 수 있게 모든 것을 희생했지만 연인에게 버림 받는다.

다섯 번째 희생자는 하이메라는 이름의 아이로 '늙은 어릿 광대' 피오 아저씨가 자신이 연기를 가르쳤던 여배우 카밀라 페리콜이 낳은 아이를 맡아 키우며 함께 리마로 가던 중이었다.

한 날 한 시에 같은 마차에 타고 산 루이스 레이 다리에서 죽음을 맞이한 이 다섯 명의 운명은 ‘모두 죽을 만했던 사람들이였을까?" 아니면 ‘신의 섭리였을까?, 허무한 우연인 것인가?'

만일 이게 섭리라면 신은 잔혹하고, 한낱 우연이라면 인생은 무의미한 것 아닌가?

이 다섯 사람들은 그 날 왜 산 루이스 레이 다리를 건너갔던 것일까?

가톨릭 성인의 이름을 딴 산 루이스 레이 다리를 건너 산길을 오르면 클루삼부쿠아 성지에 닿는다.

이 성지는 개혁적이고도 헌신적인 마리아 수녀원장 이끄는 수녀원과 성당이 있는 곳으로 발길이 닿는 곳마다 성당과 수녀원에서 들리는 종소리가 울리는 경건함으로 가득 찬 곳이다.

포목상의 딸로 태어나 불행한 어린 시절을 보냈던 몬테 마요르 후작부인은 딸 클라라에 대한 강박과 집착이 결국은 자신을 위한 딸의 사랑이었음을 깨닫는 순간 다리를 건너다 죽음을 맞이 하고 후작부인의 하녀인 페피타는 고아였던 자신을 키워준 수녀원장의 사랑을 구하려다 결국 다리 아래로 떨어진다.

쌍둥이 동생을 잃은 형 에스테반은 삶의 의지를 잃어 버렸지만 자신의 형제를 키워준 수녀원장에게 줄 선물을 사기 위해 다리를 건너다 추락하고 연인에게 버림 받은 늙은 연극 배우와 그가 데려다 키우는 아이까지 각기 다른 사연을 품고 리마로 되돌아가던 한날 한시에 죽는다.

저마다 욕망하고 자학 하고 절망하고 원망하다 비로소 “용기”를 내어 죽고 싶은 마음을 이겨내고 새 삶의 의지를 품고 다리를 건너던 그 순간에 죽음을 맞는다.

이 안타까운 사고로 세상을 떠난 다섯 명의 사람들의 죽음에 대해 세상은 오만함과 부유함이 저주 받은 것이라 했지만 신의 섭리를 연구하던 주니퍼 수도사는 이들의 삶이 세상에 알려진 것과 다르다고 추론 했지만 결국 이교도로 몰려 책과 함께 화형을 당한다.

주니퍼 수사가 탐문하기 시작한 다섯 사람의 삶의 궤적을 따라가다 보면 완전히 우연한 사고처럼 보이는 산 루이스 레이의 다리가 무너지는 사고에 더 큰 운명이 도사리고 있었다.

가족 사이의 사랑, 스승과 제자 사이의 애정, 자기 자신에 대한 사랑 그리고 부모를 잃은 고아를 키워준 마리아 수녀원장에 대한 사랑을 품고 있었던 다섯 명의 운명은 인류 전체의 모습을 암시하고 있다.

산 루이스 레이의 다리가 연결 시켜 주는 가장 강력한 두 세계는 ‘살아 있는 사람들을 위한 땅’과 ‘죽은 사람들을 위한 땅’으로 이 두 세계를 연결하는 다리가 바로 사랑이다.

인간은 태생적으로 자신의 본성을 알지 못하는 유일한 동물이지만 자신과 다른 또 다른 인간의 속성을 찾아 서로 비교 하고 경쟁하며 동시대를 함께 살고 있는 인간이 직면하는 고통과 고난을 외면하지 않고 함께 극복하며 서로 공존하며 살아가는 지혜를 발휘 할 수 있는 능력을 갖고 있다.

우리는 그동안 세월호 참사와 이태원 참사, 제주항공 참사와 같은 비극을 겪는 동안 "왜 하필 이런 일이 일어났을까?"라며 사건 수습과 대처, 사고 예방에 미흡할 뿐 그저 누구나 우연히 그런 사고를 당해 그런 죽음을 맞이할 뿐이라고 덮어 버린다.

소설 <산 루이스 레이의 다리>에서 마리아 수녀원장은 자신의 신자들이자 다리 붕괴 사고로 세상을 떠난 이들의 죽음의 의미를 이런 말로 추모 한다.

'모든 사랑의 충동은 그것을 만들어 낸 사랑으로 돌아간다. 사랑을 위해서는 기억조차 필요하지 않다. 산 자들의 땅과 죽은 자들의 땅이 있고, 그 둘을 잇는 다리가 바로 사랑이다. 오직 사랑만이 남는다. 오직 사랑만이 의미를 지닌다.'

-손턴 와일더의 <산 루이스 레이의 다리> 중에서

작가 손턴 와일더(1897~1975)의 <산 루이스 레이의 다리> 작품의 첫 장의 시작은 '어쩌면 우연' 마지막 장은 '어쩌면 신의 의도'로 끝이 난다.

1714년에 페루 리마에서 발생한 안타까운 사고로 희생된 운명을 갖은 사람들에게 <신>은 구원적인 존재가 아니였다.

어차피 세상에 태어나는 모든 생명들은 언젠가 죽게 될 것이고 죽고 나서는 그 모든 기억들이 사라져 버린다.

어떤 시대가 도래 한다 해도 결국엔 모두가 세상에서 사라지는 끝이 있고 그 끝에서 다시 태어나서 시작되는 사랑이 있듯이 모순 가득한 세상 속에서 우리 모두 날마다 한치 앞을 내다 볼 수 없는 삶과 죽음의 다리를 건너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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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 워 - 기후 위기 시대, 자원과 에너지를 향한 거대한 생존 전쟁
아서 스넬 지음, 노승영 옮김 / 리더스북 / 202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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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이라 해도 남극의 여름은  영하 20도까지 떨어지는 추위가 이어지지만, 겨울보다는 바람이 덜 세고 태양의 길이도 좀 더 길다. 

북극 반대쪽 남극에는 짧은 여름이 시작되는 12월이면  5~6월 겨울 초입에 태어난 알을 수컷에게 맡기고 바다로 떠났던 암컷 황제 펭귄이 돌아오지만 상당수는 바다 사자에게 잡아 먹히거나 조류에 휩쓸려 가버린다.


암컷이 돌아 올 때까지 수컷 펭귄들은 6개월 가량 극한의 추위 속에서  얼음조각을 주둥이로 잘게 부숴 목을 축이고  알을 품으며 매서운 바다갈매기로 부터 필사적으로 새끼를 지켜내는데 헌신한다.

황제펭귄은 키가 최대 122㎝에 달하는 대형 펭귄으로 극한의 추위 속에서 암수 한 쌍이 돌아가며 알을 품고, 나머지 한 쪽은 바다로 나가 먹이를 구하는 양육 방식으로 극한의 땅에서 살아 남았다.

펭귄 중에 가장 체형이 크고 지능이 높은 황제 펭귄은 불의의 사고로 자기 새끼를 잃어버리면  남의 새끼를 납치해서 키우는 습성이 있다.

자기 새끼를 잃어버린 펭귄 부부는 필사적으로 무리들 틈에서 자신들의 새끼를 찾아내 납치해간 펭귄 부부와 대판 싸우기도 할 정도로 자신의 종족 보존을 위해서라면 온 몸을 던진다.

황제 펭귄은 저마다 다른 소리의 고유 주파수가 있다.

이 주파수로 서로 의사소통을 하는데 먹이를 구하러 바다 속으로 들어간 암컷이 내지르는 주파수를 남편 수컷이 알아 듣고 필사적으로 새끼를 품속에서 지켜내는 생명체들이다.

황제 펭귄들의 보금자리가  지구 온난화의 여파로 빠르게 줄어들면서 멸종 위기에 내몰렸다. 

2016년에는 두 번째로 큰 서식지인 남극 북쪽 핼리 만의 얼음이 급작스럽게 깨지면서 수영을 잘하지 못하는 새끼 펭귄 1만 마리가 익사 해 버렸고 바다 산성화로 주요 먹이인 크릴새우 개체 수가 감소해서 굶어 죽은 펭귄 숫자가 늘어 나고 있다.

우리가 살고 있는 땅에서 남극과 북극의 거리는 감이 잡히지 않을 정도로 멀게 느껴지기에 황제 펭귄의 새끼 1만마리가 몰살 당했다는 것 조차 안타까운 마음만 느낄 뿐이다.

하지만 펭귄 새끼들의 죽음 곧 우리에게 닥쳐올 비극일지 모른다.

북극과 남극의 얼음이 빠른 속도로 녹아내리고 있어 바다 위를 둥둥 떠다니고 있는 얼음 덩어리까지 완전하게 녹아 버리면 높아진 해수면이 인간들이 살고 있는 육지를 덮칠 것이다.

매년 한반도 면적의 10배에 해당되는 얼음이 사라지고 있다.

아기 황제펭귄들은 태어난 지 4개월 이상이 되어야 방수 깃털을 갖추고 헤엄칠 수 있는 근육이 발달하게 된다. 그 전에 물속에 빠지면 익사 하거나 털이 젖어서 동사 한다.

세상 밖으로 태어나는 순간 부터 우리는 죽음이라는 공포와 더불어 공포를 이겨내는 법을 터득한다.

걷기 시작하는 아이는 숱하게 쓰러지고 일어서는 과정을 반복하며 완전하게 두 다리가 바닥에 균형을 잡고 걸을 수 있을 때까지 수 많은 두려움과 공포에 떨었을 것이다.

나의 몸

나의 마음

나의 가족

나의 국가

그리로 우리 모두의 지구로 확장해 나가면 나와 너/ 당신과 우리

그리고 이 세상이라는 하나로 귀결 된다.

소리 없이 눈에 보이지 않는 세상에서 어떤 생명체는 세상 밖으로 나오고 어떤 생명체는 흙으로 돌아가 소멸해버린다.

세상에서 가장 높은 곳에서 흘러내리기 시작한 물이 흐르고 흘러 마지막 바다로 흘러 들어간다.

 이 물은 비구름을 뚫고 대지 위를 적셔서  늪을 지나 어떤 둑을 무너뜨려서 넓고 광활한 대지를 가로 질러 어느 대도시의 하수구 안에 모여 있다가 무사히 바다까지 흘러 들어 왔다.

물이 모래 사막에 다다르면 흘러가지 못하고 모래 알갱이들 속에 흡수 되어 태양의 열기에 증발해 버린다.

그러니 사막에서 물을 찾아 낼 수 없다.

뜨거운 태양에 달궈진 모래 사막에는 오로지 죽음만이 기다리고 있다.

물이 물이라는 형체를 잃어 버리는 순간 곧 그것은 물이 아니게 된다.

우리 모두의 삶도 사막을 만난 물줄기 일지 모른다.

생명의 가치를 존중하지 않고 자연의 위대함을 소중하게 여기지 않는 인간이 앞으로 맞이 하게 될 운명은 사막의 모래 깊은 곳으로 흘러 들어가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릴 것이다.

우리가 공기가 된 너를 실어날라 그 산으로 데려다주마.

그러면 너는 거기서부터 다시 물이 되어 흐르기 시작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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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의 변명은 최고의 예술
사이하테 타히 지음, 정수윤 옮김 / 위즈덤하우스 / 202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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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주 내내 장마 비가 내리고 있다.

집안 가득 습한 공기로 가득차니  침구류들을 교체하고 더 이상 필요 없는 물건들을 버리거나 재활용 함에 넣고 옷장과 서랍마다  제습제를 교체하고 세탁기를 돌리고 건조기를 돌리고 마지막 신발장을 정리하고 나면 하루 반 나절 눈 깜짝 할 사이에 지나가 버린다.

이렇게 정리하는 동안 지난 밤에 주문한 물건들이 차례 차례 도착을 하고 배송된 물건을 정리하는 동안 상자들과 포장팩, 뽁뽁이들이 한 가득 나온다.

식품을 꺼내서 각각 냉장고에마다 분류해서  정리하고 나면 플라스틱 류 포장재와 케이스가 한 가득 나온다.

 버려야 할 것들, 더 이상 필요 없는 것들을 한 자리에 모아보면 마치 낙타 등에 봇짐을 탑처럼 쌓아 올리듯 천장 높이 만큼 올라간다.

송필,기억저장소,Steel, Bronze, Wood_100x100x265cm, 2017

생이 이어지고 존립하는데 가장 필요한 기본적인 의-식-주의 양이 이 정도 라면 먹고 마시고 버리고 배설하는 양은 이보다 더 많은 양일 것이다.

치우고 버리고 정리하고 나면 또 다른 물건을 채우게 만드는 욕망, 소비의 욕망에 불씨를 지피게 만드는   고도의 자본 소비 지향 주의 시대를 살고 있는 인간의 숙명으로만 받아 들여야 할까?

한국인의 평균 수명이 대략 78세에서 83세 사이라고 할 때 평생 동안 웃는 시간은 하루에 단 90초 뿐으로 이를 생애 마지막 까지 계산 해본다면 고작 한 달을 채 넘지 않는다.

반면, 걱정하고 근심하고 분노하는 시간은 하루에 3-4시간 정도로 만일 80세까지 살게 된다면 걱정과 불안과 근심을 10년이나 하며 살게 된다는 의미다.

한국은 전 세계적으로 교육열이 높아서 유치원에 다니기 시작 할 때부터 무한 경쟁의 세계로 떠밀려 들어간다.

이런 경쟁에 아무리 익숙해진다 해도 학교와 사회에서 부딪치고 겪게 되는 여러 부류의 인간관계의 어려움들이 때로는 세상을 순탄하게 살아가기 힘들게 만든다.

공부와 시험의 압박, 업무의 과중함, 일과 승진에서 받는 스트레스 이 모든 것들을 날려 버리기 위해 영상물에 심취하고 게임에 빠지거나 여행을 나서도 내가 짊어지고 있는 것들을 타인이 대신 짊어질 수 없듯이 모든 고통과 번뇌,열망과 갈망 모두 나에서 출발해서 내 안에 머문다.

신기하게도 사람을 많이 만날수록, 친구가 많을수록, 대화를 나누고 함께 어울리는 사람들이 많을 수록 서로 다른 소망과 욕구의 접촉 범위가 점점 커질 때마다 떠안는 스트레스의 크기도 엄청나다.

 가끔 태어나지 않았더라면 더 좋았을 것이라는 후회를 한다 해도 죽는 것 조차 그리 간단하지 않고 만일 내가 이 세상에 없었더라면 이라는  한탄을 해도 그나마 건강하게 살아서 존재하는 일에 감사함을 느껴야 한다.

내가 안고 있는 걱정과 근심, 불안과 고통의 양은 얼마 만큼이나 될까.

봇짐 하나,

봇짐 둘,

봇짐 셋,

(c)KIMSOOJA / 2007. Bottari truck – Migrateurs

일상 어딘가에 좋아하는 순간이 있다면,

그것이 너의 진정한 유언이다.

가족이나 연인이나 친구라는 존재도 훌륭하지만,

그건 제쳐두고, 네가 소중히 여기는 샴푸통이나,

창문 너머로 보이는 큰 은행나무가,

죽은 너의 영혼을 감싸고,

그렇게 조개처럼 딱딱하게 닫힌다.

영원이 시작된다.

네가 눈을 깜박이듯, 매일 한순간 사랑했던 것들과 함께. 

-사이하테 타이의 「진주의 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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겸재 정선 - 진경산수를 개척한 우리나라 화성 ㅣ 새로 쓰는 화인열전 1
유홍준 지음 / 창비 / 202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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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사대부 가문의 선비들에게 죽기 전에 꼭 가봐야 하는 명소가 있었다.

그 명소는 한반도 땅에서  가장 신성하고 아름다운 금강산으로 이 산에 올라갔다는 것 만으로도 사대부 가문 족보에 새겨 놓을 정도로 대단한 것이였다.

하지만 조선 시대 금강산을 간다는 건 단순히 시간과 체력이 뒷받침되어야 가능했던 것이 아니였다.

한양(서울)에서 출발 해서 금강산까지 가려면 몇 달이 걸리는 여정마다 머물러야 하는 숙박비용과 목적지까지 무사히 다다르게 인도하는 짐꾼과 말이 필요했다.

여러 달이 소요 되는  한양에서 금강산까지의 여정은 험준한 길목마다 수시로 출몰하는 짐승과 도적 무리들이 도사리고 있는 지역을 피해 가려면 곳곳에 자리 잡은 마을을 거쳐 가야 했다.

따라서 조선 시대 사대부 집안에서 금강산 여행을 가려면 쌀 몇 마지기 비용 만으로는 어림도 없었다.

귀중품을 모조리 팔거나 밭을 팔아 전 재산에 가까운 돈을 탈탈 털어서 생애 마지막 여정을 하듯 조선 시대 선비들은 한양에서 벼슬 자리에 올라갔다면 반드시 금강산에 올라가야만  사대부 가문을 빛내는 것이라 여겼다.

그렇게 성지 순례를 하듯 재산을 탈탈 털어 금강산으로 향했던 조선 시대 사대부들은 18세기에 들어서면서 금강산의 전경을 그린 그림을 보고 난 후 막대한 비용을 들여서 굳이 금강산을 가보지 않아도 된다는 분위기에 동요 되기 시작한다 


출처: 금강전도(국보). 개인 소장

조선 회화의 전성기 18세기를 대표하는 화가 겸재 정선(1676-1759)이 70세 무렵에 그렸다고 추정되는 <금강전도>는  하늘 위에서 내려다본 것처럼 그려진 전도(全圖) 형식의 그림이다.

이 그림을 본 선비들 중에서  금강산을 가본 사람은 여행의 추억을 회고할 수 있었고, 가보지 못한 사람은 봉우리와 골짜기 곳곳을 그림으로 감상하며 상상의 나래를 펼 수 있었다.

금강산을 다녀온 선비들의 입소문으로 겸재 정선의 <금강전도>가 실물에 가깝다는 소문이 나자  성지를 순례하듯 재산을 털어 금강산으로 향했던 사대부들이 겸재 정선이 그린 금강산 그림을 수집하는데 혈안이 되기 시작한다.

죽기 전에 꼭 가봐야 하는 조선에서  가장 아름다운 산, 금강산의 빼어난 절경과   ‘아름다움의 본질’을 붓과 먹으로  탁월하게  표현한 진경 산수화의 대가  겸재 정선은 몇 대에 걸쳐 풍비 박산된 몰락한 양반 집안을 금강산 그림으로 일으켜 세웠다.

조선 숙종이 집권 한지 2년에 접어 들었던 1676년 한성부 순화방(현재 서울 청운동)에서 태어난 겸재 정선의 집안은 증조할아버지부터 3대가 연속으로 과거에 낙방 해서 가족 모두 무너져 가는 흙집에서 겨우 끼니만 해결 할 정도로 빈궁한 처지에 있었다.

​모든 것이 과거 시험제도 중심으로 돌아갔던 조선시대에 과거 시험에 3대 째 낙방 했던 겸재 정선 집안에서 생계를 책임졌던 이들은 여자들이였다.

​겸재 정선의 아버지는 7살 때부터 과거 시험을 공부 했지만 연달아 떨어지고 막내인 겸재가 열 네 살이 되던 해 갑작스럽게 사망한다.

​가문의 마지막 희망이였던 아버지가 사망하자 간신히 비 바람을 막아 주었던 흙집이 빚쟁이들에게 넘어가고 겸재는 어머니의 친정집에서 눈치 밥을 먹으며 살게 된다.

​겸재의 어머니는 아들의 과거 합격을 위해 부유한 친척들이 맡긴 옷들을 수선하며 뒷바라지를 했지만 공부 머리가 뛰어나지 않았던 겸재는 과거 시험을 보러 갈 때마다 유명하다는 환쟁이들을 찾아 다니며 어깨 너머로 그림을 배웠다.

​양반 사회에서 화가는  환쟁이로 손가락질 받았던 비천한 신분이였지만  자신이 공부에 재능이 없다는 걸 잘 알고 있었던 겸재는  주변의 시선에 개의치 않고 그림 공부에 매진한다.

​일찌감치 과거 시험에 합격한 양반 가문 친척들이 높은 관직에 올라가 손주 손녀를 볼 나이인 36세가 되던 1711년, 겸재는 금강산 근처의 고을에서 현감으로 재직하던 오랜 친구 이병연이 금강산 여행길에 나선다는 소식을 듣는다.

​절호의 기회라 생각하고 친구 이병연을 찾아간 겸재는  때마침 같은 고을에 살고 있던 부유한 양반 신태동을 만나고 마음씨가 후한 그가 겸재의 여행 경비를 적극 지원해 주었다.

​드디어 조선 시대 사대부 가문 사람들이 죽기 전에 가보고 싶은 그곳, 금강산을 올라가게 된 겸재는 금강산 인근 지역의 풍광을 틈틈이 그려서 화첩으로 묶어서 금강산 여정길에 나서려는 양반들을 상대로 짭짤한 수익을 올리게 된다.

출처: 금강내산(해악전신첩, 보물).간송미술문화재단 

단순히 산봉우리만 그리지 않고 전체를 조망 하듯 산 주변을 에워싸고 있는 거대한 구름막과 바다까지 볼 수 있었던 겸재의 그림은 한반도를 넘어 중국에 까지 널리 알려져서 거액에 거래되는 귀한 그림이 된다.

겸재 정선이 70대에 이르러 필력이 무르익은 필법과 묵법을 자유자재로 구사하며 남긴 불멸의 명화 ‘박연폭포'는  층층이 먹을 겹쳐 칠해 폭포 물살 주위 암벽의 거칠고 장대한 물성을 돋우고, 내리 쏟아지는 물살의 결들을 마른 먹붓질로 그어 소리의 울림을 시각적 이미지의 대비를 통해 절묘하게 표현한 작품이다.

일 평생 동안 겸재 정선은 금강산의 일만 이천 봉우리를 올라가서  내금강, 외금강, 해금강 등 금강산의  주요 명승을 둘러보며 산세를 따라 대각선과 원형 구도를 사용해 그렸고, 산봉우리 명칭을 적거나 길을 표시해나갔다.

1751년 76세에 접어든 겸재 정선은 인곡정사 너머로 비 안개 걷히며 환히 드러나는 인왕산의 준수한 자태는 몇 겹으로 붓질을 가하면서 그 붓질은 각도만 달리해서 농묵으로 폭포와 바위에 슬쩍 강약의 리듬을 주어 인왕산 바위 봉우리의 양감과 질감 그리고 음영까지 실감나게 묘사했다. 

겸재 정선 이전에도  한반도 풍경을 그린 화가는 있었지만 겸재와 같이 탁월한 수준과 왕성한 작품 활동을 통해 압도적인 존재감을 보여준 화가는 없었다.

위대한 예술가의 작품 세계를 연대순으로 따라가다 보면 어느 정점에 도달한 뒤에는 선과 색 그리고 빛과 어둠 만으로 피사체의 전체를 한 눈에 볼 수 있는 작품으로 완성하는 경지에  달하는데 겸재 정선은 조선 회화의 황금기인 18세기를 대표하는 화가이자  그 누구도 흉내 내기 힘든 고차원의 그림 세계를 펼쳐 보인 불멸의 화가다.



댓글(8) 먼댓글(0) 좋아요(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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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4-13 13:3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6-04-14 21:45   URL
비밀 댓글입니다.

책읽는나무 2026-04-13 22:32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 책 구입해뒀는데 말이죠.
언제 읽을지는….^^

scott 2026-04-14 21:44   좋아요 1 | URL
책은 쟁여 두지 마세요 ㅋㅋㅋ

호시우행 2026-04-14 04:3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 도서 저도 읽고 읽는 중인데, 리뷰글 멋집니다.

2026-04-14 21:43   URL
비밀 댓글입니다.

호시우행 2026-04-15 02:3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네,감사합니다.

scott 2026-04-16 00:19   좋아요 0 | URL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