겸재 정선 - 진경산수를 개척한 우리나라 화성 새로 쓰는 화인열전 1
유홍준 지음 / 창비 / 2026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조선시대 사대부 가문의 선비들에게 죽기 전에 꼭 가봐야 하는 명소가 있었다.

그 명소는 한반도 땅에서  가장 신성하고 아름다운 금강산으로 이 산에 올라갔다는 것 만으로도 사대부 가문 족보에 새겨 놓을 정도로 대단한 것이였다.

하지만 조선 시대 금강산을 간다는 건 단순히 시간과 체력이 뒷받침되어야 가능했던 것이 아니였다.

한양(서울)에서 출발 해서 금강산까지 가려면 몇 달이 걸리는 여정마다 머물러야 하는 숙박비용과 목적지까지 무사히 다다르게 인도하는 짐꾼과 말이 필요했다.

여러 달이 소요 되는  한양에서 금강산까지의 여정은 험준한 길목마다 수시로 출몰하는 짐승과 도적 무리들이 도사리고 있는 지역을 피해 가려면 곳곳에 자리 잡은 마을을 거쳐 가야 했다.

따라서 조선 시대 사대부 집안에서 금강산 여행을 가려면 쌀 몇 마지기 비용 만으로는 어림도 없었다.

귀중품을 모조리 팔거나 밭을 팔아 전 재산에 가까운 돈을 탈탈 털어서 생애 마지막 여정을 하듯 조선 시대 선비들은 한양에서 벼슬 자리에 올라갔다면 반드시 금강산에 올라가야만  사대부 가문을 빛내는 것이라 여겼다.

그렇게 성지 순례를 하듯 재산을 탈탈 털어 금강산으로 향했던 조선 시대 사대부들은 18세기에 들어서면서 금강산의 전경을 그린 그림을 보고 난 후 막대한 비용을 들여서 굳이 금강산을 가보지 않아도 된다는 분위기에 동요 되기 시작한다 


출처: 금강전도(국보). 개인 소장

조선 회화의 전성기 18세기를 대표하는 화가 겸재 정선(1676-1759)이 70세 무렵에 그렸다고 추정되는 <금강전도>는  하늘 위에서 내려다본 것처럼 그려진 전도(全圖) 형식의 그림이다.

이 그림을 본 선비들 중에서  금강산을 가본 사람은 여행의 추억을 회고할 수 있었고, 가보지 못한 사람은 봉우리와 골짜기 곳곳을 그림으로 감상하며 상상의 나래를 펼 수 있었다.

금강산을 다녀온 선비들의 입소문으로 겸재 정선의 <금강전도>가 실물에 가깝다는 소문이 나자  성지를 순례하듯 재산을 털어 금강산으로 향했던 사대부들이 겸재 정선이 그린 금강산 그림을 수집하는데 혈안이 되기 시작한다.

죽기 전에 꼭 가봐야 하는 조선에서  가장 아름다운 산, 금강산의 빼어난 절경과   ‘아름다움의 본질’을 붓과 먹으로  탁월하게  표현한 진경 산수화의 대가  겸재 정선은 몇 대에 걸쳐 풍비 박산된 몰락한 양반 집안을 금강산 그림으로 일으켜 세웠다.

조선 숙종이 집권 한지 2년에 접어 들었던 1676년 한성부 순화방(현재 서울 청운동)에서 태어난 겸재 정선의 집안은 증조할아버지부터 3대가 연속으로 과거에 낙방 해서 가족 모두 무너져 가는 흙집에서 겨우 끼니만 해결 할 정도로 빈궁한 처지에 있었다.

모든 것이 과거 시험제도 중심으로 돌아갔던 조선시대에 과거 시험에 3대 째 낙방 했던 겸재 정선 집안에서 생계를 책임졌던 이들은 여자들이였다.

겸재 정선의 아버지는 7살 때부터 과거 시험을 공부 했지만 연달아 떨어지고 막내인 겸재가 열 네 살이 되던 해 갑작스럽게 사망한다.

가문의 마지막 희망이였던 아버지가 사망하자 간신히 비 바람을 막아 주었던 흙집이 빚쟁이들에게 넘어가고 겸재는 어머니의 친정집에서 눈치 밥을 먹으며 살게 된다.

겸재의 어머니는 아들의 과거 합격을 위해 부유한 친척들이 맡긴 옷들을 수선하며 뒷바라지를 했지만 공부 머리가 뛰어나지 않았던 겸재는 과거 시험을 보러 갈 때마다 유명하다는 환쟁이들을 찾아 다니며 어깨 너머로 그림을 배웠다.

양반 사회에서 화가는  환쟁이로 손가락질 받았던 비천한 신분이였지만  자신이 공부에 재능이 없다는 걸 잘 알고 있었던 겸재는  주변의 시선에 개의치 않고 그림 공부에 매진한다.

일찌감치 과거 시험에 합격한 양반 가문 친척들이 높은 관직에 올라가 손주 손녀를 볼 나이인 36세가 되던 1711년, 겸재는 금강산 근처의 고을에서 현감으로 재직하던 오랜 친구 이병연이 금강산 여행길에 나선다는 소식을 듣는다.

절호의 기회라 생각하고 친구 이병연을 찾아간 겸재는  때마침 같은 고을에 살고 있던 부유한 양반 신태동을 만나고 마음씨가 후한 그가 겸재의 여행 경비를 적극 지원해 주었다.

드디어 조선 시대 사대부 가문 사람들이 죽기 전에 가보고 싶은 그곳, 금강산을 올라가게 된 겸재는 금강산 인근 지역의 풍광을 틈틈이 그려서 화첩으로 묶어서 금강산 여정길에 나서려는 양반들을 상대로 짭짤한 수익을 올리게 된다.

출처: 금강내산(해악전신첩, 보물).간송미술문화재단 

단순히 산봉우리만 그리지 않고 전체를 조망 하듯 산 주변을 에워싸고 있는 거대한 구름막과 바다까지 볼 수 있었던 겸재의 그림은 한반도를 넘어 중국에 까지 널리 알려져서 거액에 거래되는 귀한 그림이 된다.

겸재 정선이 70대에 이르러 필력이 무르익은 필법과 묵법을 자유자재로 구사하며 남긴 불멸의 명화 ‘박연폭포'는  층층이 먹을 겹쳐 칠해 폭포 물살 주위 암벽의 거칠고 장대한 물성을 돋우고, 내리 쏟아지는 물살의 결들을 마른 먹붓질로 그어 소리의 울림을 시각적 이미지의 대비를 통해 절묘하게 표현한 작품이다.

일 평생 동안 겸재 정선은 금강산의 일만 이천 봉우리를 올라가서  내금강, 외금강, 해금강 등 금강산의  주요 명승을 둘러보며 산세를 따라 대각선과 원형 구도를 사용해 그렸고, 산봉우리 명칭을 적거나 길을 표시해나갔다.

1751년 76세에 접어든 겸재 정선은 인곡정사 너머로 비 안개 걷히며 환히 드러나는 인왕산의 준수한 자태는 몇 겹으로 붓질을 가하면서 그 붓질은 각도만 달리해서 농묵으로 폭포와 바위에 슬쩍 강약의 리듬을 주어 인왕산 바위 봉우리의 양감과 질감 그리고 음영까지 실감나게 묘사했다. 

겸재 정선 이전에도  한반도 풍경을 그린 화가는 있었지만 겸재와 같이 탁월한 수준과 왕성한 작품 활동을 통해 압도적인 존재감을 보여준 화가는 없었다.

위대한 예술가의 작품 세계를 연대순으로 따라가다 보면 어느 정점에 도달한 뒤에는 선과 색 그리고 빛과 어둠 만으로 피사체의 전체를 한 눈에 볼 수 있는 작품으로 완성하는 경지에  달하는데 겸재 정선은 조선 회화의 황금기인 18세기를 대표하는 화가이자  그 누구도 흉내 내기 힘든 고차원의 그림 세계를 펼쳐 보인 불멸의 화가다.



댓글(8) 먼댓글(0) 좋아요(36)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2026-04-13 13:3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6-04-14 21:45   URL
비밀 댓글입니다.

책읽는나무 2026-04-13 22:32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 책 구입해뒀는데 말이죠.
언제 읽을지는….^^

scott 2026-04-14 21:44   좋아요 1 | URL
책은 쟁여 두지 마세요 ㅋㅋㅋ

호시우행 2026-04-14 04:3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 도서 저도 읽고 읽는 중인데, 리뷰글 멋집니다.

2026-04-14 21:43   URL
비밀 댓글입니다.

호시우행 2026-04-15 02:3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네,감사합니다.

scott 2026-04-16 00:19   좋아요 0 | URL
^.~
 
Banksy (Hardcover)
Stefano Antonelli / Rizzoli Electa / 2022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세상을 향한 정치적 사회적 비판의 목소리를 담벼락에 하고 있는 뱅크시(Banksy)는 얼굴과 본명 모두 베일에 싸여 있음에도 불구하고  수많은 수집가가 앞다투어 작품을 구입하고, 여러 그래피티 아티스트가 가장 존경하는 인물로 손꼽히고 있다.

 언제 어디서 무엇에 관한 작품을 그릴지 예고 없이 낙서처럼 그리는 뱅크시는 공공장소의 공공시설에서  쓰다 남은 철근으로 사람들이 많이 지나다니는 담벼락,이나 전봇대 스텐실 기법으로  작업을 하고 있다.

일반적으로 길거리에서 많이 보는 화려한 그래피티와는 조금 다른 뱅크시가 사용하는 이 스텐실 기법은 글자나 무늬 모양을 오려내고 뚫린 부분에 물감이나 스프레이 라커를 뿌리는 기법으로 빠른 시간 내에 작업을 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뱅크시가 2025년  5월 29일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올린 작품은 거리의 전봇대처럼 서 있는 등대였다.

 뱅크시가 그린 이  담벼락 그림은 데이터를 수집하고 활용할 권한을 가진 디지털 빅브라더들이 인간의 생각을 통제하고, 특정한 행동을 유도하고, 더 나아가 우리의 마음을 들여다보고 해킹하는 시대를 향한 경고 하는 디지털 감시 전봇대 그래피티다.

이 작품도 현재 사라져서 사진 상으로만 존재 할 뿐이다. 

언제 어디서든 누구나 볼 수 있는 뱅크시의 작품은 수집가들과 예술 애호가들의 가장 갖고 싶은 작품이면서도  가장 많이 훼손되는 작품이다.

누군가 훼손하기 전에 뱅크시의 그림이 그려진 구역 담당 직원들이   공공 장소 외관 질서 규정에 어긋나기 때문에 영구적으로 보존 하지 않고  곧바로 지워버린다. 이런 희소성 때문에  언제  사라질 지 모르는 작품에 전 세계 사람들의 관심이 집중되는 효과를 가져 오기도 한다.

뱅크시가  담벼락에 그래피티를 새기듯 일상의 오브제를 이용해서  뱅크시 작품을 영상으로  변주 하고 있다.

국가에 소속된 미술관이나 고급 갤러리에 갇혀 있는 ' 영구 보존 예술'의 권위와 큐레이터들의 작위적인 설정과 설명을 거부한 뱅크시가 누구에게나 열려 있는 거리로 뛰쳐나가 그래피티 아트를 새기듯 매일 마시는 라테 아트에 소녀와 빨간 풍선을 그리는 영상을 제작 했다.

2018년 소더비 경매에서 뱅크시의 작품 '풍선을 든 소녀'가 판매되자마자 갑자기 파괴된 사건과 영국 런던의 '카펫 아래 쓸기' 벽화에서 영감을 받아 제작했다.

미술관 바닥에 M&S초콜렛이 와르륵 떨어졌다면 눈에 보이는 대로 쓸어 담는 행위도 예술 작업의 연장선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바닥에 떨어진 초콜렛을 쓸어 담듯 어디선가 슬그머니 나타나 흔적을 남기는 뱅크시 처럼 고양이 발도장이라도 찍어보자.






댓글(2) 먼댓글(0) 좋아요(3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2026-04-01 20:2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6-04-01 20:29   URL
비밀 댓글입니다.
 
AI 최전선 - AGI 미래를 읽는 사람들
애덤 브로트먼.앤디 색 지음, 윤종은 옮김 / 윌북 / 2026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1776년, 영국의 식민지에서 벗어나 독립국가가 된 미합중국은 세계 제 1의 군사력을 갖춘 대영제국의 통치 지배권을 스스로 떨쳐낸 첫 번째 나라였다.

 그로부터 100년이 지난 1876년,  500년 동안 한반도를 지배하고 있었던  조선 왕조는 한반도 주변 국가들이 산업 문명으로 사회 전체가 개편 되고 있을 때 유교 문화의 악습과 폐해로 인해  문명의 대 전환기에  도태되어 강화도에서 일본과 굴욕의 조약을 체결 했다.  

조선왕조가 스스로 국권을 포기한 댓가로 인해  나라를 잃은 백성들은   36년 동안  일본에게 철저하게 착취 당하면서 피의 눈물을 흘려야만 했다.

 반면 영국 식민지에서 벗어난 미국은  산업문명의  표준인 연방 헌법 체제를 반포 하며 사회 전체 시스템을 혁신적이게 바꿔나갔고 결국 막강한 제국 이였던 영국과 프랑스를  누르고 산업 문명의 패권 국가가 되었다.

 1789년 프랑스 대혁명 이후 지구상의 모든 농업문명국가들이 사라져가는 데는 100년 이상 소요되었고 1894년 동학 혁명이 일어나고, 1897년 대한제국이 선포되었다. 

1911년 신해 혁명이 일어나고 대 청제국이 와해 되고 난지 불과 10년도 채 안된 시간에  1917년 10월 혁명이 일어나서 러시아제국이 지구상에서 사라졌다. 

그리고 1차 세계 대전이 종전 한지 10년 만인 1924년, 터키 혁명으로  오스만제국이 붕괴 되었다.

20세기 2차례 세계 대전을 비롯해 세계 곳곳에서 불화산의 전쟁과 내란이 발발했고 전쟁에서 이기기 위해 최첨단 기술과 의학 발전을 이룩한 인류는  물류 대 혁신을 비롯해 인공위성 수신을 통한 광역 통신망으로 세계는 이 전보다 더 빠르게 이동하고 소통해 나갔다.

 21세기 9.11 테러 사건 이후 미국과 이스라엘은 3년의 주기로 테러와의 전쟁을 벌이며 AI 기술을 탑재한 21세기 십자군 전쟁을 벌이고 있다.

현 시대 지구의  한 축은  북극의 빙하가 녹아내리는 속도 만큼이나 빠르게 이전 시대가 이룩해 놓았던 산업 문명이 붕괴되고 있고 또 다른 축은  20세기  용감한 선각자들이 북극 항로를  개척해 나가듯  새로운 문명이 태동 하고 있다. 

그 문명은 바로 생성형 AI가 주도하는 디지털 혁명으로 이 혁명은   기존의 산업 문명의 질서를 송두리째 뒤흔들며 자고 일어나면 새로운 기술들이 줄줄이 출시 되고 있을 정도로 천지 개벽이 눈 앞에서 펼쳐지고 있다.

인간의 노동력에 의존했던 산업 현장에 인공지능(AI)을 탑재한 로봇에 의한 생산력의 항구적인 초가속적 시스템이 현재 우리 사회 곳곳에 투입되고 있다.

0.1초 만에 결과물을 내놓는 AI가 그동안 인간이 수세기에 걸쳐 이룩해 놓은 문명의 패러다임을 순식간에 바꿔 놓고 있다.

앞으로 30년, 산업 문명의 모든 패러다임이 폐기 처분 될  운명에 처해 있는 상황 인데도 불구하고 한반도의 정치인들은 19세기 구한말 조선 사대부들처럼 국가를 위해 AI를 어떻게 활용해야 하는지 명료화하고 법제화 시킨 시스템 구축은 단 1초도 기획하지 않고 자기들의 밥그릇 다툼만 벌이는데 열중하고 있다.

산업혁명 이후 세계를 주도 했던 서양 세력은 몽테스키외의 민주주의와 로크의 사회계약처럼 기술이 열어놓은 새로운 시대에 맞는 철학으로  자유·평등·삼권분립·주권을 법제화하고 제도화 시켰고 우리는   그들이 만든 이념과 제도로 국가 기반틀을 마련했고 세계화에 편입될 수 있었다.

글로벌 AI 기업들의 주가는 천정부지로 치솟았지만 이 기업들은 이미 수만 명에 달하는 직원을 해고하고 있고 현재 한국의 직업군에도 큰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AI기술로  일부 업무를 자동화하는 동시에 새로운 산업과 직무를 만들어내면서 이러한 일자리 변화는 장기적으로 업무역할에 대한 균형을 이루는 방향으로 전개될 가능성이 높아 지고 있다.

지난 세기  기술 발전의 격변기 시기에  인간이 해왔던 직업군은 사라졌어도  새로운 직업군이 탄생하면서 기술은 인간의 역할을 없애기보다 더 높은 수준의 역량을 요구하는 방향으로 진화해 왔다. 

오늘날 AI 역시 이러한 기술 변화의 연장 선상에 놓여 있다.

산업혁명의 기계화와 함께  자동차의 등장과 컴퓨터의 보급으로 문명의 발전을 빛의 속도로 이뤄낸  사피엔스는 현재  AI의 등장으로 인류 노동 시장의 지각 변동, 즉 '문명적 인력 교체' 시기를 맞이 하게 되었다.

 2026년 AI와 공존하는 시대를  맞이한 인류가 직시해야 할 첫 번째 현실은  AI를 도구로 쓰는 사람이 그렇지 못한 사람의 일자리를 대체 해 나가고 있다는 것이다.

산업현장과 사무직, 기술직, 연구 그리고 환자를 치료하는 의료 현장에서도 빠른 속도로   AI와 협업 하면서 이전과 다른 속도와 영역으로 무한 확장 해 나가고 있다.

그동안 인간의 고유의 영역으로 평가 받고 있었던 창작 분야마저도 눈 깜짝 할 사이에 AI가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고, 음악과 영상을 만들어내고 있다.

AI와 공존하는 시대에 창작을 논한다는 것은 더 이상 창작물의 완성도를 평가하는 일이 아니라 인간은 어떤 방식으로 여전히 창작의 주체로 남을 수 있는 가를 묻는 일이 되었다.

동굴 생활을 하며 벽화에 낙서를 하고 그림을 그려 나갔던 사피엔스는 문명의 발전을 거듭하면서   기존의 음악과 문장, 이미지와 역사 속에서 영감을 발견하고, 그 위에 새로운 감각을 덧붙여왔다. 

즉 그동안 인간이 이룩한 창작은 이전 세대가 이뤄 놓은 결과물을 끊임없이 재 창조 해나가면서  개개인의 개성과 시대에 의미에 맞게  끊임없이 변주 해 나갔을 뿐이다.

 AI라는 도구를 사용하기 시작하면서 인간의 창작 과정에도 큰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했다.

이 시대에 진정한 작가는 누구인가?’ 

단순히 손을 움직인 사람이 작가인가, 아니면 아이디어를 제공하고 전체를 설계한 사람이 작가일까? 

지난 2023년 독일 작가가 AI 이미지로 국제 사진공모전에서 수상한 뒤 “AI와 예술의 경계를 논의하기 위한 의도적 문제 제기였다”며 스스로 상을 반납한 사례가 있었고 일본에서 열린 한 사진공모전에서 대상 작품이 생성형 인공지능(AI)으로 제작된 이미지였음이 드러나 수상이 취소되는 일이 발생했었다.

예술계의 반발과 법적 논쟁이 터져 나오는 것과 동시에 AI를 사용하는 과정에서 기존 저작물이 무단으로 수집·복제되는 게 침해에 해당 하는지의 논의도 여전히 뜨겁다.

현재 일부 드로잉 애플리케이션은 “AI는 우리의 미래가 아니다”며 기술 도입을 거부했고, 여러 공모전은 AI 활용 작품의 출품 자체를 금지하고 있다.

전 세계적으로 영화 제작이 가장 활발한 미국 영화계에서 미국작가조합(WGA)과 배우조합(SAG-AFTRA)은 “AI가 인간 창작자를 대체할 수 있다”는 우려 속에서 파업을 벌이고 있고  음악계에선 순수 AI 생성곡을 그래미 시상 대상에서 제외하는 규정을 신설했다.

출판계는  소설 표지를 AI로 제작했다는 이유만으로 수상이 취소되기도 하고 AI 대량으로 찍어내는 일명 딸각 출판물은 공공도서관에 들어가지 못하고 있다.

 ‘인간의 창작물’을 지적 재산권으로 보호 하고 있는 저작권법에 의하면   인간의 개입이나 지시 편집없이 AI가 스스로 만들어 낸 산출물은 원칙적으로 보호 대상이 아니다.

 단 AI 가 생성해 낸 결과물과 이미지에 인간의 창의적 편집이나 표현을 더한 경우 이에 대해 기여한 부분에 한해 지적 재산권 보호가 가능하다.

앞선  역사 속에서  반복되어 왔던 산업혁명의 시기에도 혼돈과 논란이 일어 났지만  결국 더 많은 일자리와 산업을 만들냈고, 그 결과 인류의 생산성은 비약적으로 향상됐다. 

따라서 신 기술의 등장은 때로는 인간의 삶을 뒤흔들기도 하지만, 그 기술은 발전을 거듭하면서 인간의 세계를 확장하는 방향으로 작동해 왔다.

일본 사진전 사례도 이런 맥락에서 읽을 필요가 있다. 

대상 작품은 개구리 머리 위에 잠자리가 앉은 순간을 포착한 이미지였다.

 그 장면을 실제 촬영하지 않고 AI로 생성했다는 점에서 비판 받을 수밖에 없지만  그 장면을 상상하고, AI에게 이미지 생성 구현을 지시해서, 수많은 결과물 중 하나를 선택한 주체는 인간 사진가였다.

AI가 아무리 정교한 이미지를 만들어도 인간이 현장에서 느끼는 감정과 우연성, 맥락의 층위는 쉽게 대체 할 수 없듯이  인간의 상상력과 AI 기술의 결합으로 탄생한 협업의 작품도 창의성의 무한 확장의 연장선이 될 수 있다.

 AI가 인간의 삶 속에 깊이 개입하면서  창작은 더 이상 고독한 1인의 작업이 아닌 ‘큐레이터’이자 ‘편집자’, ‘감정의 해석자’이자 시대의 흐름을 매끄럽게 읽어나가는 나래이터가 되고 있다.

AI의 발전은 되돌릴 수 없는 흐름이며 예술 역시 예외가 아니다. 

중요한 점은 기술을 배척하는 게 아니라, 어떻게 공존하며 새로운 창작의 지평을 넓혀 갈 것인지에 대한 사회적 합의다. 제도는 변화된 환경에 맞는 저작권 체계를 마련해야 하고, 창작자는 AI를 새로운 도구로 활용해야 하며, 사회는 기술 변화 속에서 새롭게 탄생하는 예술의 가치를 존중할 장치를 갖출 필요가 있다.

‘AI와 더불어 사느냐, 위협으로만 여기다 죽느냐. 그것이 문제.’가 화두인  시대에 나는 삶의 방향을  더불어 사는 방식으로 바꾸었다.

나는 매일  책을 읽으며 사고의 폭과 깊이를 넓혀 나가면서 시간을 들여 문장을 쓰고, 기획한 콘텐츠에 맞는 영상에 삽입할 시퀀스를 기획하며 스크립트를  구상하고 있다.

내가 기획한 것을 토대로  AI와 협력하면서도 인간 창작자로서의 중심을 잃지 않기 위해 모든 과정에 내가 직접 기획하고 스크립트를 짜고 영상을 편집해서  ‘내가 만든 영상’을 세상에 내놓는다. 

어느 누구에게도 영상 제작을 의뢰 받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유튜브 채널을 개설해서 영상을 올리는 작업을 하는  이유는  단 한 가지다. 

그것은 바로 시간의 들여 만들어낸 창작물을 통해 맛보게 되는 성취감 때문이다.

 마치 전시를 끝마친 화가가  작업실 텅 빈 캔버스로 돌아가  붓을 쥐듯이  아무런 대가 없이 시작되는 창작 작업에서 자아를 잊을 정도로  몰입하다 마침내 완성했을 때 찾아오는 형언 할 수 없는 성취감을 맛보는 순간 나라는  인간은 비로소 이 세상에 존재 할 이유를 찾게 되고 이 깨달음으로 인해 다시 창작이라는 고귀한 출발선으로 되돌아가는 것이다.

AI는 수조 개의 데이터를 조합해 ‘생성’할 수는 있지만, 그 결과물에 ‘의미’를 부여하거나 어떤 파장을 불러 일으키게 될 사회적 도덕적 ‘책임’을 지지 않는다. 

수백 개의 멜로디 중 사람의 가슴에 남을 단 하나의 음악을 고르는 안목과 무수히 쏟아지는 영상물 속에 빛나는 그 무엇을 발견할 수 있는 심미안을 갖고 있는 인간만이  창작의 방향을 설정 할 수 있고 이 행위는  오직 인간의 경험과 기억 속에서만 탄생한다.

 창작은 생존을 넘어  지구상 누군가에게  어떻게 기억되고, 어떻게 성장하며, 어떻게 세상과 연결 되는지를 보여주는 가장 인간다운 방식이다. 


AI와 더불어 사는 방식을 선택한 나는  춤을 추듯 유연하게 AI와 협력하면서도 창작자로서의 중심을 잃지 않는 지혜를 발휘 하기 위해  매일  나만의 'AI 팩토리(AI Factory)'를 가동 시켜서 단순히 AI가 주는 정보를 소비만 하는 '소비자'아닌  AI를 도구 삼아 새로운 가치와 창의적 결과물을  만들어내는 전문 크리에이터로 발전해 나갈 것이다.




댓글(4) 먼댓글(0) 좋아요(25)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호시우행 2026-03-30 05:45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일독해보고 싶어요. 구매찜 리스트에 올립니다.

scott 2026-03-30 10:41   좋아요 1 | URL
호시우행님 감사합니다!
3월 마지막 주! 건강하게 ^^ 보내세요 ^^

희선 2026-03-30 05:5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는 그냥 인공지능이 있는가 보다 하고 살 것 같네요 인공지능 혼자 뭔가를 만들지는 않지요 사람이 어떻게 하는지 알려줘야 하겠습니다 어디선가 보니 인공지능끼리 이야기 하는 것도 있다고 하더군요 그건 그걸 쓰는 사람은 볼 수 있을지... 요새는 자기 인공지능이 있다고도 하던데... 인공지능에 이름 붙이기도 하고... scott 님도 이름 붙였나요

여러 사람과 해야 했던 걸 이제는 인공지능과 하는 거네요 일인 방송 시대기도 하니 한사람과 인공지능 함께 하는 것도 이상하지 않겠습니다 scott 님이 만들고 싶은 영상 인공지능과 함께 즐겁게 만드시면 좋겠네요


희선

2026-03-30 10:45   URL
비밀 댓글입니다.
 
요리를 한다는 것
최강록 지음 / 클 / 2025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매 시즌 마다 쏟아져 나오는 예능 프로그램의 장르 중 최고의 인기를 누리는 것들 모두 "서바이벌' 장르다.

몸 근육을 쓰는 것 부터 노래를 부르는 오디션 프로그램들까지 모두 다 경쟁하는 한국인들에게 서바이벌 프로그램은 마치 내 이야기를 보는 것 같아 생존 경쟁을 담은 서바이벌 서사에 열광한다.

전 세계적인 열풍을 몰고 왔던 <흑백요리사: 요리 계급 전쟁> 시즌 1에 이어서 시작된 시즌 2는 특이하게도 결승에서 만난 백수저 최강록과 흑수저 이하성의  수저 색깔이 뒤바뀐 것처럼 보였다.

대학을 중퇴한 최강록 셰프는  군 제대 후 음식점 알바를 하다 ‘미스터 초밥왕’이라는 요리 만화에 빠져  요리를 시작했지만  창업과 실패를 반복하다 서른이 다 돼 가게를 접고 일본으로 건너가 조리사 전문학교를 졸업했다.

그는  귀국해서 시작한 가게 적자로 폐업하고 생계를 위해 참치 무역 회사에 들어가 회사원으로 일하다 술김에 지원서를 낸 ‘마스터 셰프 코리아2’에서 우승을 차지 하면서 대중들에게 이름을 알렸다. 

자신의 요리 인생을 '척하며 살아온 세월'이라고 말하는 최강록 셰프는 술김에 던진 지원서 한 장으로<마스터셰프 코리아 2> 우승자가 되었고 13년의 세월이 흘러  흐른 2026년 <흑백요리사: 요리 계급 전쟁> 시즌 2의 '히든 백수저'로 돌아와 최종 우승자 자리에 올라섰다.

 온갖 양념과 현란한 조리 기술 대신 "사실은 잘하는 척하며 살아왔다"라고 말하는 겸손함에 시청자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긴 최강록 셰프는 우승의 환호성 열차에 올라타서 온갖 예능 무대에 얼굴을 내밀거나 재간 넘치는 말솜씨와 개그가 섞인 요리 솜씨를 뽐내지 않는다.

우승의 기쁨을 맘껏 누리며 초고속도로 올라가는 인기 코인에 올라타지 않은 최강록 셰프는 인터뷰 자리마다  요리를 하는 매 순간 마다  무섭고 떨린다고 토로 한다.

음식을 향한 고집스러운 순정이 배어 나오는 그의 느릿한 말투에 듣는 이의 애간장을 다 태우는 독특한 화법을 구사하면서도  자신의 능력을  증명하는  경연에서 최종 우승자로 대중의 엄청난 주목과 관심을 받아도 외부의 시선에 아랑곳 하지 않고 자신만의 속도로 가고 있다.

짧은 시간 안에 음식을 완성하고 탈락을 피하기 위해 촌각을 다투는 요리 서바이벌의 살벌한 전쟁터에서 맷돌에 재료를 넣고 시간을 들여 천천히 곱게 갈아내듯 조리한 최강록 셰프의 요리는 보는 이들의 마음을 조마조마하게 하면서도 조리고 조려서 국물을 다 날려 보내고 마지막까지 남은 재료에 깊은 맛을 더해  끝내 살아남은 존재를 더욱 빛나게 해준 음식으로 완성 시켰다.

남들보다 더 빨리 더 많이 더 높이 올라가기 위해 온갖 수단과 방법을 동원하고 화려한 스펙을 쌓기 위해 미친듯이 몰두 하고 질주 하는 치열한 경쟁 사회에서 아는 척, 있는 척, 잘 하는 척하며 사는 이들이 많다.

모두가 질주 하는 세상에서 스스로를 끝없이 경쟁 속에서  마음을 조리면서도 책망하거나 안달 복달 하지 않고 자신만의 속도를 유지 해서 앞으로 나아가는 것은 결코 쉽지 않다.

경쟁이 아닌 자신에게 온전히 몰입한 최강록 셰프는 단 하나의 요리에 3시간의 정성을 다 쏟아부어 자신의 눈물과 땀이 배어 있는 인생 요리를 완성 했다.

인간에게 먹는 행위는 단순하기 허기진 배를 채우기 위해서 이기도 하지만 입안에 맛있는 음식을  먹는 동안 그 시간은 하루 중 최고로 만족스럽고 행복한 시간이 되는 것이다.

한번 칼이 지나간 자리는 다시 붙일 수 없다는 건 생선회를 조리 하는 데도 필요한 말이지만, 우리가 삶을 대하는 자세에 대해서도 좋은 말인 것 같다. 진지하되 두려워하지 말 것. 장난치는 것처럼 보인다면, 그건 지금 이 자리에 있는 의미를 부정하는 것이 될 테니까.

-최강록 




댓글(1) 먼댓글(0) 좋아요(34)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희선 2026-02-05 05:0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지금은 자기 속도대로 살기 어려운 시대기는 해도 그렇게 하려고 하는 게 좋을 듯해요 요리도 경쟁하는 시대군요 예전부터 그랬을지도 모르겠네요


희선
 
복안인
우밍이 지음, 허유영 옮김 / 비채 / 2025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태평양 한가운데 세상 어떤 지도에도 표시되지 않은 외딴섬 와요와요 섬에서 남자 아이가 태어나면 나무 한 그루를 골라 달이 죽었다 되살아날 때 마다 나무에 금을 하나씩 긋는 풍습이 있다.

나무에 금이 백개가 되면 아이는 자기만의 나무 쪽배인 '타라와카'를 만들어서 물고기를 잡아야 한다.

와요와요 섬에서 둘째 아들로 태어날 경우 맏아들이 일찍 죽는 경우를 제외하고 백팔십 번째 보름달이 뜰 때 섬을 떠나 돌아 올 수 없는 항해길을 나서야 한다.

물 한 병만 쪽배에 싣고 와요와요 섬을 떠나는 둘째의 운명은 영원히 사람과 인연이 닿지 않는 바다에서 노인이 될 때까지 살아야 한다.

이런 가혹한 운명을 타고난 아트리에는 우르슐라에게 말하는 피리를 받고 자신이 만든 쪽배 타라와카의 노를 저어 와요와요 섬을 떠난다.

섬을 떠나 바다를 항해 한지 7일 째 되던날 쪽배 타라와카에 물이 새기 시작하고 배가 서서히 바다 속으로 침식해 갈 때 아트리에는 바다로 뛰어들었다.

[눈을 떴을 때 아트리에는 자신이 여전히 바다에 떠 있는 걸 알았다.

섬 가장 자리에 소년들이 서 있었는데 하나같이 암울한 눈빛에 손이 있어야 할 곳에 지느러미가 있었으며 한 평생 산호초 위에서 뒹군 것처럼 온몸이 얼룩덜룩했다.]

바다에서 표류하던 아트리에가 도달 한 곳은 온갖것들이 뒤섞여서 지독한 냄새로 진동하는 거대한 쓰레기 섬이였다.

죽은 생물과 악취로 가득찬 그 섬은 끊임없이 회전하듯 매일 다른 방향에서 해가 뜨고 져서 아트리에는 그 섬이 사후세계가 틀림없다고 생각한다.

인간들이 버린 다양한 물건들은 바다 거북의 뱃속에서도 나왔고 조개 껍질 속에서도 나왔다.

불 같이 뜨겁다가 참을 수 없는 혹독한 추위가 닥치고 하늘이 맑게 개어 있다가 거센 폭풍이 불다가 별안간 밤이 찾아오는 그 쓰레기 섬에서 아트리에는 차남들의 영혼이 잠든 곳이라 여기고 손에 잡히는 것들로 집을 짓기 시작한다.

이승인지 저승인지, 섬인지 조차 불분명한 이 거대한 쓰레기 더미는 얼마 후 아트리에를 실은 채 대만 동부의 바닷가를 덮친다.

거대한 파도가 눈앞에서 해변을 통째로 쓸어버리는 무시무시한 장면이 텔레비전으로 생중계 되고 이를 지켜 보던 시민들은 기괴한 자연 현상에 한발자국도 밖을 나가지 않는다.

등산에 갔던 남편과 아들이 실종된 후 충격으로 교수 자리에서 물러난 앨리스는 병상을 박차고 나가 해변가를 덮친 화면에 얼핏 비추었던 그 무언가를 찾기 위해 직접 현장에 나간다.

[산길을 걸으며 앨리스는 계속 어떤 냄새가 나는 것 같았다. 무슨 냄새지? 태양의 열기, 바닷물의 공격성, 물고기의 비린내와 야생의 사향냄새... 결코 섞일 수 없는 상반된 냄새가 뒤섞여 만들어진 냄새 같았다.]

쓰레기 섬을 뒤지던 앨리스는 문득 지난 시절 외할머니와 함께 갯벌에 굴을 따러 갔던 기억을 떠올린다.

생계를 위해 굴을 땄던 외할머니와 동네 주민들은 인근에 있는 정유소 공장에서 버리는 폐 기름에 신장과 폐기관이 망가져서 고통 속에서 세상을 떠났다.

잃어버린 고양이를 찾듯이 해일처럼 떠밀려온 쓰레기 더미에서 아트리에를 발견한 앨리스는 대만의 원주민인 하파이와 다허, 터널 개발 공사 자문으로 대만에 방문한 독일인 볼트와 환경운동가 사라의 도움을 받아 미지의 섬 주민인 아트리에와 소통 하기 위해 노력한다.

[우리의 섬은 용사의 섬이고, 꿈이 모이는 곳이에요. 물고기 떼가 이동할 때 쉬었다 가는 곳이고 해가 뜨고 지는 좌표고 희망과 물의 휴식처예요. 우리 땅은 산호를 엮고 바닷새의 똥을 덮어서 만들었어요. 우리 카방이 눈물을 모아서 만든 작은 호수에 의지해 살아요.]

섬을 떠나 쪽배에 의지한 채 바다에서 홀로 살아갈 운명을 타고난 와요 와요의 원주민 소년 아트리에는 하루 아침에 가족을 잃은 대학 교수 앨리스에게 차츰 마음의 문을 연다.

남편과 아들이 추락한 지점을 찾아 나서는 앨리스를 따라간 아트리에는 암벽 정상에 다다르고 그곳에서 수많은 자연의 비밀을 품고 있는 생명체와 마주하게 된다.

바다 밑에 흐르는 암류처럼 사람을 끌어 당기고 휩쓸어 가고 파묻어 버릴 것 같은 눈빛을 한 복안인이 앨리스와 아트리에 일행 앞에 모습을 드러낸다.

겹눈 속 수 많은 홑눈이 바늘 끝보다 가늘고 보이지 않을 만큼 미세한 눈물을 흘리고 있는 복안인은 그저 세상을 지켜 볼 수만 있을 뿐이다.

앨리스와 아트리에 일행이 암벽을 내려 오던 날 와요와요 차남들의 화신인 향유고래 떼가 파도를 가로질러 헤엄쳐 갔다.

일주일 뒤 새벽 시간에 칠레 남부의 발파라이소 해변에 향유 고래 수백 마리가 온 몸의 뼈가 으스러진 상태로 발견된다.

[먼저 숨이 끊어진 고래들이 뜨거운 태양 아래서 차츰 부풀어 오르고 부패하다가 갑자기 차례로 폭발하기 시작했다. 무겁고 축축한 하늘로 솟구쳤던 내장이 고래 연구자, 어민 고래 뼈를 주으러 온 아이들 위로 비처럼 쏟아져 내렸다. 그들은 한 번도 맡아 보지 못한 썩은 내에 기절하거나 바닥에 엎드려 구토했다.]

앨리스는 고래가 죽은 그 해안가에서 오래 전 남편이 들려 주었던 이야기를 떠올리고 그리고 소년은 바다로 떠난다.

가상의 섬 '와요와요'에서 시작된 설화 같은 존재인 소년 아트리에가 바다를 떠돌다 문명의 해변에 맞닺는 순간 만나는 앨리스 그리고 겹눈을 가진 수수께끼의 존재 '복안인'은 서로 다른 세계에 살고 있지만 그 세계 모두 파괴되고 오염된 곳이다.

구술로 내려오는 설화와 현실의 암울한 모습이 절묘하게 뒤섞인 소설 <복안인>은 인간이 만들어온 오염의 파고의 영향이 어디까지 이어질 수 있는지 신화와 현실, 환상과 재난의 경계를 넘나들며 펼쳐 보인다.

작가 우밍이는 인간의 시야가 닿지 않는 영역을 볼 수 있는 복안인의 시선으로 세상의 무엇을 보느냐가 아니라, 어떻게 세상을 볼 것인가에 대한 질문을 독자들에게 던진다.

소설 <복안인>에 등장하는 세상은 현재 우리가 사는 세상과 크게 다르지 않다.

(c) 2024, 방글라데시 다카 바다의 인공 쓰레기 섬, 로이터 통신

2017년 부터 방글라데시 다카 바다에는 전에는 존재 한 적 없는 거대한 인공 쓰레기 섬이 드넓은 크기로 바다 위를 둥둥 떠다니는 진귀한 현상이 발생했다.

쌓여가는 쓰레기를 처분하지 못한 방글라데시 정부의 무능한 행정 정책과 무분별하게 아무데나 쓰레기를 버린 실종된 시민 정신의 힘으로 만들어진 다카 바다의 인공 쓰레기 섬은 사람들이 가로 질러가는 구역 마저도 쓰레기로 버린 택배 상자와 플라스틱 쓰레기들의 부유물 위에 세워졌다.

6천 500만 년 전 지구 상 곳곳에서 시작된 화산폭발과 운석 충돌로 인해 지구 전체에 기온 변화가 발생하고 이 변화된 환경에 공룡은 적응하지 못해 멸종되었고 공룡이 사라진 자리에 포유류가 최종 포식자로 등장했다.

곧이어 등장한 영장류과인 침팬지와 아프리카 대륙에서 인류 조상인 호모(Homo) 족이 석기를 사용하기 시작했다.

석기를 사용 했던 호모족은 기후 변화로 식량을 찾기 위해 아프리카 대륙에서 유라시아 대륙으로 이동하기 시작하고 네안데르탈인(Neanderthal)으로 진화하고 불을 발견하면서 식습관의 변화로 외모와 체격에 큰 변화가 생긴다.

생명체가 살기 좋은 환경인 동아프리카에서 드디어 호모 사피엔스(Homo sapience)가 등장했고 이들은 전 대륙으로 퍼져 나가 농업과 유목 생활을 하면서 문명의 씨앗이 되는 글자와 화폐를 발명해서 사용하기 시작한다.

인류가 현 시대의 도시화 문명 아래서 살아 간 것은 고작 몇 세기 전으로 5천 년 전에 최초의 왕국을 이루기 전까지 인류는 한 손에 돌과 다른 손엔 불을 들고 동굴과 들판을 오고 가는 야생적인 삶을 살았다.

점심 한 끼를 먹고 나서 버리는 일회용 플라스틱 제품이 한 가득이고 매일 집으로 배달 되는 주문 상품을 포장한 상자와 뽁뽁이들이 한 가득이다.

일회용 소비를 줄이기 위해 에코백을 메고 폐 비닐과 폐 휴지 상자로 만든 제품을 소비하고 종이 빨대를 사용해도 이 모든 걸 생산하는데 막대한 석유자원이 쓰이고 있다.

개인 당 소비하고 버리는 쓰레기 양을 줄인다 해도 지구 온난화의 주범인 화석연료 에너지와 플라스틱 제품 그리고 이산화탄소의 사용과 배출량을 감소 시키는데 역부족이다.

또한 이를 대체 할 수 있는 에너지가 개발된다 하더라도 친환경으로 생산한 제품 포장과 용기 역시 버리고 처리할 때도 다량의 이산화탄소가 배출된다.

인간이 숨 쉬고, 먹고, 마시고, 배출하는 걸 멈추지 않은 이상 지구의 생명을 단축 시키는 온난화 현상은 멈추지 않을 것이다.

오늘 누군가 마시고 버린 플라스틱 병을 지구 반대 편 물개가 물고 있다.

버려진 쓰레기들로 이루어진 섬의 면적은 한반도의 7배, 가까운 미래에 이 쓰레기 섬은 공식적인 국가 되어 이곳으로 사람과 동물들이 이주하는 세상이 도래 할 것이다.



댓글(2) 먼댓글(0) 좋아요(37)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희선 2025-10-20 03:25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앞부분을 보고는 판타지 같다 생각했는데, 신화였군요 그것뿐 아니라 현실도 담긴... 복안인이 뭔가 했습니다 어딘가에서 지구를 바라보는 생물체 같은 느낌도 듭니다 쓰레기 섬은 한반도 일곱배라니... 엄청나네요 한사람은 적어도 세계 모두는 아주 많군요 빨리 안 좋아지기도 하네요 쓰레기는 조금이라도 줄이는 게 좋을 듯합니다


희선

2025-11-01 23:35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