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수를 믿다
나스타샤 마르탱 지음, 한국화 옮김 / 비채 / 202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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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의 다양한 생태계와 기후 상태를 연구 하고 그 지역에 생존하고 있는 생태계의 습성과 진화 상태를 관찰 하기 가장 좋은 지형은 러시아 극동에 위치한 캄차카 반도다.

일본 홋카이도 쪽으로 흐르는 쿠릴 열도의 출발지인 캄차카반도는 태평양과 오호츠크해에서 미국 알래스카까지 이어지는 알류산 열도와 인접해 있어서 북극의 툰드라 기후와 남쪽의 습한 기후로 인해 불과 얼음이 공존하는 독특한 환경으로 전 세계 과학자들과 인류학자들이 연구를 위해 몰려 가는 곳이다.



17세기말에 러시아인들이 도착하기 이전까지 캄챠카 반도에는 곰과 순록 그리고 연어를 사냥하며 기후 변화에 맞춰 이동하며 살았던 이텔멘족, 코랴크족 원주민들이 드문 드문 살고 있었던 곳이였지만 19세기 러시아와 일본 열강들의 침략으로 백 러시아인들과 일본인 홋카이도의 아이누족들이 뒤섞이기 시작했다.

2차 대전 발발 당시 러시아가 캄차카 반도를 점령 하면서 핵원료 생산과 핵실험 장소가 되었다.

대 자연은 시간이 축적되듯 핵 방사능에 오염 되었고 반도 땅에서 다양한 민족들과 평화롭게 공존 하며 살았던 원주민들은 극소수만 살아 남게 되었다.

소련 체제 아래서 방출된 엄청난 방사능이 캄차카 반도의 자연과 생활 터전을 오염 시켜서 이 지역에 살고 있는 이들은 전 세계에서 백혈병과 각종 암, 기관지염 같은 질병의 발병률이 높은 곳이 되었다.

소련 연방이 해체되고 나서 서구인들은 이 지역에 탐사와 탐험, 관광과 연구 목적으로 방문 하면서 무분별하게 들어 오는 서구 문명과 자본주의 시스템으로 생태계가 파괴 되었고 토착 원주민들과 토종 동식물들이 빠른 속도로 멸종하기 시작했다.

한반도 보다 약간 넓은 크기의 캄차카 반도는 1년 중 활동 하기 좋은 온화한 기후가 단 3개월 뿐이고 이 시기에 현지인들은 연어와 곰 사냥 그리고 외지인들을 위한 관광 안내와 숙박으로 생계를 유지 하고 있다.

수도 주변 지역은 광물 자원이나 핵실험으로 마구잡이로 개발 되어서 생태계가 파괴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 지구 생태계의 다양한 기후와 멸종 직전의 동물들을 볼 수 있고 특이한 지형이 많아서 외지인들이 끊임없이 이 곳으로 몰려 가고 있다.

불꽃이 치솟는 활화산 부터 얼음 덩어리들이 둥둥 떠다니는 바이칼 호수와 바다 깊숙한 심해까지 전부 외지인들이 훑고 지나가서 생활 터전을 빼앗긴 곰과 순록들이 인간들이 거주 하는 지역까지 내려와 먹이를 찾아 다니거나 습격을 하는 일이 자주 발생 하고 있다.


파리 사회과학 고등연구원에서 인류학을 전공한 프랑스 태생의 나스타샤 마르탱은 알래스카 지역의 원주민인 그위친인들과 함께 생활하며 이들의 습성과 문화를 탐구한 논문으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알래스카 북부와 캐나다의 유콘 지역에 걸쳐 살고 있는 애서바스칸 인디언의 11개 지파 중 한 종족인 그위친(Gwich'in)족은 침략자 러시아와 미국에 대항하며 북극야생보호구역의 석유 자원 개발에 반대했던 유일한 부족이였다.

하지만 수 세기 전에 러시아 극동의 캄차카 반도로 이주한 그위친족은 러시아와 일본에게 오랜 시간에 걸쳐 잔혹하게 학살로 극소수만 살아남아서 무자비한 자원 개발이나 동식물 사냥을 막는데 대항하지 못했다.

2015년 그위친족의 이동 경로와 습성과 문화를 연구 하는 젊은 인류 학자 나스타샤 마르탱은 시베리아 북동부로 이주해서 그곳 원주민과 혼혈 된 에벤인을 대상으로 인류학 연구를 진행 하기 위해 캄차카 화산 지대 근처에 연구 기지에 터를 잡는다.

2015년 8월 인류학자 마르탱은 에벤인 족의 한 가정에 거주 하던 중 활화산 움직임이 시작되던 날 연구 진척을 확인하기 위해 동료들과 함께 숲 속으로 들어 간다.

몇 날 몇 일 동안 산을 오르며 강과 불화산을 만나는 위기가 도사리는 숲 속 한 가운데서 동료들이 잠시 다른 지역을 탐사 하러 갔던 날 곰 한 마리가 인류학자 마르탱이 거주 하고 있던 공간을 습격하는 사건이 발생 한다.

단 몇 분 만에 곰의 날카로운 이빨은 그녀의 얼굴 반의 뼈와 살을 무너뜨렸고 턱의 반쪽도 부숴버렸다.

마르탱은 치료를 받는 중에 극심한 통증으로 발 버둥치며 눈물이 뺨을 타고 흘러내릴 때마다 상처 부위에 파고 들어 고통에 몸부림을 쳤다.

마르탱은 무사히 러시아에서 응급 치료를 받고 프랑스로 돌아가 후속 재활 치료를 받는 동안 러시아 의료진 치료를 불신한 프랑스 의사들이 강행한 재수술에서 병원성 세균에 감염되어 혼수 상태에 빠진다.

눈 깜짝 할 사이에 곰이 이빨을 드러내며 그녀를 공격 했던 절체절명의 위기의 시간을 지나 병원에 긴급 우송 되어 곰에게 습격 당한 부위를 수술하고 회복되는 시기에 마르탱은 곰과 마주 했던 끔찍한 순간을 떠올리며 기록하기 시작한다.

그날 늦은 밤, 문장들이 종이 위를 가로지른다. 파도처럼 밀려오는 명백한 것들, 내 마음속 깊이 충격을 준 것들을 쓴다. 나에겐 두 권의 현장 노트가 있다. 하나는 주간용으로 세세한 묘사와 대화 혹은 말의 녹취가 어수선한 형태로 한가득 적혀 있다.

집으로 돌아가 체계를 부여 하기 전까지는 상세한 정보의 축적을 정리해서 그것을 토대로 균형적이고 알기 쉬우며 다른 이들과 공유할 수 있는 무엇인가로 만들기 전까지는 대부분 몹시 난해 하다.

다른 한 권은 야간용이다. 여기 적힌 내용은 불완전하고 파편적이고 들쭉 날쭉 하다. 나는 그것을 검은 노트라고 부른다. 그 안에 무엇이 들었는지 정의할 수 없기 때문이다. 주간 노트와 야간 노트는 나를 갉아 먹는 이중성의 표현이자, 내 의지와 무관하게 내가 가지고 있는 객관성과 주관성의 상징이다.

-나스타샤 마르탱의 <야수를 믿다.>

마르탱은 인류학자로서 관찰하고 목격하고 경험한 것까지 모두 연구 자료의 토대로 활용하려는 의지 만으로 노트에 그 날의 사건을 떠올리기 시작하지만 곰에게 무자비하게 습격 당한 육신의 통증으로 정상적인 사고조차 힘든 지경에 이르게 된다.

캄차카 반도 땅에서는 오래 전 부터 곰과 혼혈 종족들이 서로 경계 하며 공존 하는 삶을 살아갔지만 침입자인 외부인들의 약탈과 파괴로 소멸과 멸종의 시간대로 들어섰다.

죽음의 순간에서 다시 회생한 인류학자 마르탱은 자신의 목숨을 위태롭게 할 정도로 곰에게 큰 습격을 받고도 이 사건을 공격이라는 단어를 사용 하지 않고 과거의 시간과 현실의 시간의 경계가 파열 되어 균열을 일으킨 것이라 스스로 정의 한다.

나는 내가 곰과 함께 무엇을 찾는지 알고 있었나? 내가 기다리던 자가 누군지, 꿈에서 본 자가 누구인지 알고 있었나?

내가 사방으로 그의 흔적을 밟은 이유와 언젠가 그와 눈을 마주치기를 은근히 바란 이유를 알고 있었나?

자연의 생태계와 그 안에 살고 있는 종족을 탐구했던 인류학자 마르탱은 회복 되는 동안 그날의 습격으로 부숴지고 함몰된 현재 자신의 몸 안에서 가족에게 받았던 정신적 상처의 트라우마와 조우하게 된다.

유년기 시절에 겪었던 아버지의 죽음, 홀로 고군분투하며 자신을 양육 했던 엄마, 가난과 차별에서 벗어나 엄마를 위해 세상을 떠난 아버지를 위해 지구 반을 돌며 인류학 연구에 매진 했던 마르탱은 마음 한 구석에 도사 리고 있던 우울증을 끄집어 내어 자신의 육신이 파괴된 캄차카 반도 땅에 다시 찾아 간다.

곰에게 습격 당하기 전 마르탱은 캄차카 반도 땅의 동과 서, 겨울과 봄 그리고 새벽부터 밤까지 탐험하면서 오로지 자신의 논문에 채워야 하는 탐구 대상 목록을 찾아다니는데 급급했었다.

하지만 반쪽 얼굴이 함몰 되고 다리를 절뚝 거리는 육신으로 다시 찾은 캄차카 반도에서 마르탱은 처음으로 어느 방향에서나 빛이 나는 밤 하늘의 별을 관찰하기 시작한다.

나는 태곳적 만남을 따라 끝까지 갔지만 다시 돌아왔고 여전히 살아있다.

이종교배가 일어났지만 나는 여전히 나다.

적어도 나는 그렇게 믿는다. 나를 닮은 무엇인가에 애니미즘 가면의 특징을 더한 채로 나의 안과 밖은 뒤집혔다.

인간 애니미즘의 근본은 가면의 변형된 얼굴이다. 반절은 사람, 반절은 바다표범, 반절은 사람, 반절은 독수리, 반절은 사람, 반절은 늑대, 반절은 여자 반절은 곰, 얼굴의 이면, 짐승들의 인간적인 실체, 그것이 봐서는 안 됐을 자의 눈 속에서 곰이 보는 것이다. 그것이 나의 눈 속에서 내 곰이 본 것이다.

-나스타샤 마르탱

인간은 캄차카 반도의 땅 속 깊이 매몰된 광물을 캐고 화산재를 퍼 날라서 핵 개발을 하고 강과 바다의 밑바닥까지 훑으며 기후의 변화를 연구 하고 자생하는 동식물을 마구 잡이로 채집하고 사냥 하는 사이 곰의 개체수는 빠른 속도로 줄어 들었고 부화 한 곳으로 되돌아와 생을 마감하는 연어들은 방사능으로 오염 되어 인간에게 먹히지 않아도 곧 죽을 운명이 되었다.

영화 보다 더 악랄한 악당 지도자들이 활개 치고 있는 현 시대에 지구 상에서 가장 부유한 자원과 드넓은 땅을 소유 하고 있는 미국의 지도자는 인접 국가인 캐나다와 멕시코를 집어 삼키고 북극과 가까운 그린란드에 미국 국기를 꼽고 더 나아가 미국 땅으로 건너온 팔레스타인 난민들을 아프리카 대륙으로 내쫓는다는 계획을 세우고 있다.

세상에서 가장 잔혹한 전쟁으로 유럽에서 가장 풍부한 자원을 보유 하고 있는 우크라이나 땅을 집어 삼키려는 러시아의 푸틴은 캄차카 반도 땅 속에 매몰 시켜 놓은 핵무기를 만지작 거리며 인류 전체를 위협 하고 있다.

숲 속의 사냥꾼은 먹잇감의 냄새를 풍기며 짐승의 가죽을 뒤집어 쓰고 사냥감을 유인 할 수 있어도 지구의 회전 방향을 뜻대로 바꿀 수 없지만 연어는 생을 마감하기 위해 강을 거슬러 올라 갈 수 있고 곰은 자신의 영역에 들어 온 침입자들을 공격 할 수 있는 본능을 갖추고 있다.

자연에서 가장 초라하고 빈약했던 인간은 동굴과 숲을 벗어나 쾌적한 삶을 살 수 있는 도시 생태계를 건설 했지만 남쪽에 살던 기러기가 먹이를 찾아 생명을 부화 시키기 위해 북극 하늘로 날아 오는 걸 막지도 못한다.

눈부신 과학 기술로 문명의 진보를 이룩해 온 인류는 여전히 많은 시간이 남아 있다고 생각하고 기술 발명이 인류의 모든 생명을 구할 수 있으리라 믿고 있는 사이에 빙하는 녹아 내리고 있고 땅바닥은 갈라져서 불기둥이 치솟고 있다.

홍수와 쓰나미, 지진과 산불로 철새들은 떼 죽음을 당하고 있고 연어는 돌아 오지 못하고 오염된 토양에서 태어난 가축들은 인간에 의해 살처분 당하고 있다.

인간의 마음과 행동을 읽고 세상의 변화를 분석하고 통제 할 수 시대가 되었다 해도 현재 지구 곳곳은 붕괴되고 무너지고 있다.

세상은 우리가 원하고 바라는 데로 변화되거나 바뀌었던 적이 없었다.

지구 상의 악당들이 앞으로 몇 년을 더 살 수 있을지 모르지만 최고의 의료 기술과 치료로 생존 시간을 끌어 올린다 해도 100년을 넘어 설 수 없을 것이고 인간의 삶은 자연을 거슬러서 영원 불멸한 삶을 살 수 없다.

과거를 반복에서부터 조금이라도 해방하는 것, 이것은 이상한 과업이다. 과거의 존재가 아니라 과거의 결속에서 우리 자신을 해방하는 것, 이것은 오묘하고도 가련한 과업이다. 지나간 일, 일어난 일, 일어나고 있는 일의 연결고리를 푸는 일은 단순하지만 힘든 과업이다.

-파스칼 키냐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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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변의 스토브 - 오시로 고가니 단편집
오시로 고가니 지음, 김진희 옮김 / 문학동네 / 202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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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은 전 세계 국가 중에 책을 가장 많이 읽는 국가로 종이로 발행 될 수 있는 거의 모든 것들을 출판 하며 전 세계에서도 손꼽히는 출판대국이였다.

특히 종이 만화의 종주국이였던 일본의 만화 시장은 전 세계 독서 소비인구가 단연 1등이였고 발행되는 만화 잡지 종류도 다양했다.

엄청난 독자들의 사랑을 받으며 세상 전체가 종이 만화로 뒤덮였던 일본은 손 안에 스마트 폰 시대에 읽는 매개체가 디지털화 되면서 웹툰과 전자책 발행으로 판매 부수로는 인쇄 비용조차 감당하기 힘들어졌다.

2020년 이전에 일본 도쿄 지하철 안에서 종이 신문과 종이 잡지, 만화, 기타 문고본을 읽고 있는 일본 승객들을 자주 볼 수 있었지만 최근에 갔던 일본인들 대부분 대중 교통 이동 중에 스마트 폰만 응시 하고 있었다.

호기심에 일본인들이 스마트폰으로 뭘 보고 있는지 얼핏 보니 게임이나 버라이어티 쇼 같은 예능을 주로 보고 있었고 한국 드라마를 보는 이들도 꽤 보였다.

간간히 웹툰을 보는 일본인들 중 상당수는 종이로 발행 되었던 만화를 가로로 화면에 축소 시킨 흑백 만화책을 스마트 폰으로 보고 있었다.

일본은 잃어 버린 30년 경제 침체 속에서 저출산 고령화에 따른 인구 감소로 유서 깊은 서점들도 문을 닫고 있고 지역 도서관도 사라지고 대세가 된 디지털화 흐름 속에서 종이에 인쇄 된 거의 모든 것들을 스마트 폰으로 볼 수 있어서 종이 만화 발행 부수량도 대폭 줄어 들고 있다.

출처: 오시로 고가니의 단편 만화 <눈 내리는 마을> 중에서

밀려 드는 K-웹툰 공세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굳건하게 종이에 펜으로 만화를 그리는 이들이 있다.

종이 만화 중에서 압도적인 인기를 이어가고 있는 종이 만화들은 ‘원피스·나루토·블리치-귀멸의 칼날·주술회전·체인소맨 같은 소년들이 주인공인 만화가 여전히 대세지만 이 틈을 뚫고 여성을 주인공으로 내세운 만화가 ‘이 만화가 대단하다’ 순위에서 1위(여성편)를 차지했다.

스마트 폰 기기 하나로 집 안의 가전 제품과 연결 되어 원격 조정과 제어를 할 수 있는 시대에 아마존 쇼핑몰에서 구입한 전기 스토브가 집 안의 모든 상황을 감지 하며 말을 한다는 비 현실적인 이야기 조차 나 홀로 살아가는 외로운 이들의 일상과 절묘하게 뒤섞여서 따스한 상상을 불러 일으킨다.

주변의 공기를 따스하게 해주는 전기 스토브 한 대와 평균 체온이 삼십 칠도에서 삼십 오도 사이의 온기를 가진 사람들이 한 공간에서 살다가 어느 날 갑자기 떠나 버린다면 남아 있는 온도는 자신의 체온과 전기 스토브 한 대 뿐이 된다.

종이를 넘길 수록 매회 등장하는 장면 마다 사랑은 쿵 하고 다가와서는 휙 하고 떠나가버린다.

방 안의 온기가 되어 주었던 연인이 떠나고 전기 스토브만 덜렁 남겨진다거나 한 때 따스한 우정을 함께 나눴던 친구가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나거나 매일 쳇바퀴처럼 반복되는 회사 생활에서 영혼까지 갈아 넣어 버리다 텅빈 영혼의 육신만 덜렁 남겨진다.

펑펑 내린 눈길을 가다 우연히 만난 사람과 함께 눈덩이를 뭉치거나 공중 목욕탕으로 가던 길에 만난 이와 함께 목욕을 하며 진심 어린 대화를 나누면서 실연당하고 이별 하고 영혼을 치유 받는다.

오시로 고가니 단편에 나오는 주인공들은 누군가와 헤어지는 걸 항상 두려워 하며 가족과 연인을 잃는 상상을 쉼 없이 하면서도 섣불리 누군가에게 다가가지 못한다.

작가 오시로 고가니는 매 장면 마다 출렁이는 바다, 달리는 지하철, 하늘에서 펑펑 내리는 눈, 따스한 물로 가득찬 공중 목욕탕에서 서로의 손을 맞잡거나 함께 걷거나 마주 보며 살을 맞대고 눈을 마주치며 이야기 하고 서로를 보듬는 모습을 보여 준다.

별 것도 아닌 평범한 사람들이 등장 하지만 한 장 한 장 마다 그려진 그와 그녀의 모습을 따라 가다 보면 미숙한 청춘의 상실과 슬픔이 느껴지고 언젠가 잃어 버리게 될 곁에 머물던 존재의 죽음과 이별이 한 편의 시처럼 다가 온다.

출처: 오시로 고가니의 <당신이 투명해지기 전에>

어느 날 광학연구소로 향하던 차량이 폭발 하고 이 길을 지나가던 스기와라는 그 차량에서 흘러나온 특수 약품을 온 몸에 뒤집어쓰는 사고를 당한다.

사고 이후 스기와라는 나닐이 자신의 육신이 사라지는 기이한 일이 벌어 지고 아내는 자신의 눈 앞에서 사라지는 남편의 모습을 눈물을 흘리며 지켜 볼 뿐이다.

한 때 사랑했지만 함께 사는 동안 울고 웃다가 미워 하기도 했던 사랑이 눈 앞에서 사라지게 된다면 그 사랑이 떠나고 난 후에 남게 되는 것은 무엇일까...

우연히 들렸던 도쿄 서점에서 이 만화가 대단하다 여성편 1위를 차지 했다는 띠지 문구에 호기심이 일어서 구입한 오시로 고가니의 단편집 <해변의 스토브>는 휘리릭 눈으로 훑어 버리는 만화가 아니였다.

디지털 시대에 화려한 컬러 색상의 웹툰이 대세인 시대에 작가 오시로 고가니는 여전히 편을 쥐고 종이에 그림을 그리고 있다.

뚜렷한 명암 대비와 고운 선으로 그린 배경과 사물 그리고 사람들의 그림체가 지극히 평범하면서도 소소한 일상을 보여 주다가 인간의 기억에 남기 위해 본보기로 사람을 얼려 죽이는 설녀가 등장해서 인간과 한 집에 살면서 처음으로 뜨거운 음식을 먹고 빙수를 먹으며 영화를 보고 축제를 따라가는 기발한 상상이 펼쳐 진다.

현 시대에는 모든 것이 스마트 폰과 연결된 과도한 ‘소통의 시대’를 살고 있다.

화장실에 갈 때도 자기 전까지 스마트 폰에서 눈을 떼지 못하는 동안 엉뚱한 상상이나 잡념 조차도 넘쳐 나는 영상과 이미지 홍수에 푹 젖어 들어서 시간을 들여 생각을 하기 보다 자극적이고 즉각적인 것에 소중한 시간을 쏟아 붓고 있다.

모든 것이 연결 되었지만 통제 하기 힘들 정도로 과도하게 연결 되어 소통이 단절 되고 관계가 단절 되어 오로지 '나' 하나만 덜렁 남겨 버린 시대가 되었다.

가게를 들어가도 자판기로 주문을 하는 시대에 집에 돌아와 반기는 건 내가 없는 사이에 집안 구석 구석을 청소해준 청소 로봇 기기의 불빛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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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을 진 산정에서
미나토 가나에 지음, 심정명 옮김 / 비채 / 202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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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에 일본에서 출간된 <고백>은 신인 각본상 가작 수상을 시작으로 창작라디오 드라마 대상을 수상 하고 같은 해 소설 추리 신인상을 수상하며 일본 내 존재하는 거의 모든 상을 휩쓸며 일본 문단에서 <미나토 가나에> 신드롬을 일으켰다.

작가로 데뷔하기 전 미나토 가나에는 대학을 졸업하고 의류회사에 근무 하던 중 일 년 만에 퇴사하고 남태평양에 위치한 통가 섬에서 청년 해외 협력대 대원으로 2년 동안 봉사 활동을 했다.

귀국 후 효고 현 고등학교에서 기간제 교사로 근무 하다 같은 학교 국어 교사와 결혼과 동시에 교사 일을 그만둔다.

작가 미나토 가나에는 결혼 생활 10년 동안 아내로 엄마로 살고 있는 자신의 인생이 무기력 하다 생각해서 무작정 서점에 달려가 창작법과 글쓰기에 관한 책을 사서 매일 밤 식구들이 잠든 시간에 소설을 쓰기 시작한다.

내 딸을 죽인 사람이 바로 우리 반에 있다”는 고백과 함께 열세 살 중학생 범인들을 상대로 가혹하게 복수하는 교사 이야기 <고백>으로 추리 소설계의 돌풍을 일으킨 작가 미나토 가나에는 첫 작품 <고백> 이후 출간하는 작품 마다 미스터리 랭킹 1위를 차지 하며 400만부 가까이 팔리는 초대형 베스트셀러 작가가 된다.

평화로운 일상에서 인간의 마음 속에 스며든 독을 소름 끼치게 해부하는 작가 미나토 가나에는 데뷔 이후 첫 작품을 출간 한지 15년 동안 세상의 악을 마주 보며 글을 썼다고 고백 할 정도로 죽기 살기로 작가로 세상에 인정받기 위해 고군분투하며 글을 썼다.

독자들에게 읽고 나면 기분이 찝찝해진다는 소리까지 들었던 작가는 일본 내 최고 작가의 자리에 올려 주었던 살인, 복수극이 아닌 '아무도 죽지 않는 이야기'를 쓴다.

데뷔 15년 만에 발표한 8편의 연작 소설 ‘여자들의 등산일기’는 이별의 슬픔, 사랑의 두려움, 미래에 대한 불안, 오랜 열등감 등 제각각의 고민을 안고 산에 오르는 다양한 세대의 여성들의 모습을 담아 단숨에 독자들의 마음을 사로 잡아서 드라마로 제작 방영되었다

대학 시절 취미가 등산이였던 작가 미나토 가나에는 자전거를 타고 일본 열도를 여행 하며 오르지 않은 산은 거의 없었을 정도로 배테랑 등산 매니아로 드라마에서 산행 하는 등산객 중 한 명으로 카메오로 출연했다.

2014년에 발표한 ‘여자들의 등산일기’에서 일본 니가타의 묘코산과 히우치산을 시작으로 홋카이도의 리시리산, 뉴질랜드 통가리로산 등을 경유하는 산과 국립공원, 산악 페스티벌까지 등정 하는 모습을 담았다.

2021년에 출간한 <노을진 산정에서> 는 앞서 발표한 등산일기의 속편 연작 소설로 이 작품에 등장하는 산은 다음과 같다.

-우시로타테야마 연봉(도야먀/나가노)

-북알프스 오모테긴자 (나가노)

-다테야마ˑ 쓰루기다케 (도야마)

-부나가타케ˑ 아다타라 산 (시가)

작품에 가장 먼저 등장하는 우시로타테야마 연봉은 도야마에서 나가노까지 펼쳐진 산으로 이 산에 오르는 여성들은 평지부터 시작해서 1530미터까지 올라가서 리프트를 타고 1673미터에 위치한 지조노카라시 도미 능선을 걸어서 2490미터에 있는 고류 산장을 목표로 등정 하기 시작한다.

우시로다테야마 연봉 등산 코스는 위험한 쇠사슬 구간이나 사다리 타기도 없는 비교적 안전한 코스다.

이 등산 코스 대열에 참여한 여성들의 나이대는 60대와 40대들로 10년 전 남편과 사별하고 현재는 카페 ‘GORYU’를 경영하고 있는 65세의 다니자키 아야코는 생전에 남편이 가장 좋아했던 그 산 코스 등정에 처음 참여 했다.

훗교쿠 유업에 다니는 회사원 마미야 미코는 42세로 거래처인 카페 ‘GORYU’에 들렀다가 단골이 되어 카페 주인 다니자키 아야코와 친구처럼 지내고 있다.

그녀는 대학시절 산악부 출신으로 처음 산에 올라가는 아야코를 등산로 입구로 이끌어주다가 함께 산 정상에 올라간다.

은퇴 후 남편이 등산에 미쳤다 생각했던 아야코는 산 정상에 올라가서야 비로소 살아 생전에 함께 오르지 않았다는 걸 후회 한다.

“등산로 입구에 선다는 건 정상 바로 아래에 있는 거야. 등산로 입구까지가 멀거든.”

'산에 오르면 그대로 시간이 멈추면 좋겠다.' 라는 문장으로 시작하는 <북알프스 오모테긴자> 편에는 고등학생 노가미 유이가 등장한다.

지방 동네의 작은 노래자랑 대회에서 트로피를 휩쓸던 가수지망생 노가미 유이는 음악 교사에게 방과 후 레슨을 받아 음악 대학에 기적적으로 입학해서 성악을 전공한다.

유이는 반주자 메이트이자 피아노 전공의 이와타 유카로와 유명한 음악가 집안 출신에 바이올린을 전공하는 마에다 미사키와 함께 산에 올라간다.

출신도 성장 배경도 다른 세 명의 음대생들은 산을 오르는 동안 졸업 후의 진로에 대한 걱정을 한다.

평범한 회사원 아버지를 둔 유이는 어린 시절부터 음악가인 부모님을 따라서 해외 초청 연주회를 다녔던 미사키가 독일 유학을 앞두고 있다는 사실에 내심 부러워 하며 질투를 한다.

산을 오르는 동안 자연의 소리에 귀를 쫑긋 세운 이와타 유카로는 유이의 목소리를 담은 작품을 작곡 하고 싶어 한다.

출발선부터 다른 미래의 음악가들은 과연 목표 했던 산 정상에 무사히 올라 갈 수 있을까?

돌아보지 않는다. 똑바로 앞을 보며 올라간다.

커다란 바위를 돈다. 창끝이 떡 나타난다. 공이 날아갈 거리 정도가 아니다 눈 싸움도 가능한 거리다. 하지만 이걸로 가까이 다가갔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다가갔다고 생각하면 냉담하게 밀쳐내니까

'언젠가는 누군가 죽겠지?' 라고 기대하며 읽다가 다음 편 산에 올라가는 이들의 사연을 따라 가다 보니 서로 얽히고 설킨 관계를 가진 사람들이 산에 올라가면서 영원히 풀리지 않을 것 같은 오해와 갈등을 풀어 나가고 화해 한다.

산을 올라가는 과정은 종종 살아가는 것과 비슷하다.

한 고비를 넘었다 싶으면 또 다른 고비가 나타나고, 한 고비에 올라서고 나서야 산을 내려가는 동안 앞으로 내가 가야 하는 길이 얼마나 많은 어려움이 있는 지를 알 수 있게 된다.

미나토 가나에의 <등산 일지>에 등장하는 인물들 모두 혼자 산에 올라가지 않는다.

손님과 가게 주인 사이로 만난 이들, 전공이 다른 대학 동기들, 갈등을 겪고 있는 엄마와 딸, 가업 승계자였던 오빠의 죽음으로 갑작스럽게 가업을 있게 되어 힘에 버거웠던 이가 오랜만에 연락이 닿은 동창과 함께 산에 올라간다.

서로 다른 삶을 살며 서로 다른 인생의 행로를 걸어가던 이들은 산에 오르는 동안 누군가로 부터 도움을 받고 또 다른 누군가에게 도움을 준다.

능선을 걷다 아담한 바위 밭을 올라간 곳에 정상이 있었어.

내 머리 위에는 하늘, 파란 하늘 단지 그것 뿐이야.

어느 날 문득 산에 올라가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다양한 사이트에서 정보를 찾아 내고 가고 싶은 산에 직접 등정 한 영상을 찍은 어느 유튜버 채널 영상에 시선을 고정 시킨다.

뒤이어 알고리즘으로 올라오는 비슷한 주제의 영상을 관람하다 어느 새 도파민에 중독 되어 눈으로 감상한 그곳은 이미 가 본 것이나 다름 없다.

인간은 본능적으로 삶의 여유가 있게 되면 타인에 대해 너그러워지지만 지금의 내 삶이 힘겨워서 나 살기도 급급할 경우에는 누가 어떻게 되던지 관심을 가질 마음의 여유가 없다.

소득 양극화로 인한 빈부의 격차 ,갈수록 줄어드는 안정적인 일자리로 불안한 앞날이 나날이 짙어지고 있는 이 사회가 지옥이라면 언제나 그 자리에 있는 산은 천국인 것이다.

지난 괴로운 날들은 괴로웠다고 인정해도 돼.

힘들었다고 입 밖에 내어 말해도 돼.

그리고 그걸 지나온 자신을 그냥 위로해줘.

이제부터 다음 목적지를 찾으면 되는 거야.

-미나토 가나에의 <노을 진 산정에서>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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샤일록 작전
필립 로스 지음, 김승욱 옮김 / 비채 / 202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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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9년에 발표한 첫 번째 소설 <굿바이, 콜롬버스>로 전미도서상을 수상하며 화려하게 문학계에 데뷔한 필립 로스는 1969년 율법의 결벽 속에서 성(性) 불능이 된 유대인 변호사가 이스라엘로 돌아가 고통의 근원을 발견하는 문제작<포트노이의 불평> 출간 즉시 논쟁을 불러 일으키며 평단과 종교계를 뜨겁게 달아 오르게 만든다.

뜻밖에도 독자들은 세상을 소란스럽게 만든 <포트노이의 불평>에 열광하고 필립 로스는 단숨에 문학계 중심 인물이 된다.

세계적인 명성을 얻게 된 필립 로스는 1970년대부터 유럽 문학계에서 전방위적인 활동을 벌이며 동유럽권 출신 작가들과 교류 하기 시작한다.


필립 로스는 체코 68혁명 세대의 중심 인물이였던 극작가 바츨라프 하벨과 밀란 쿤데라와 만남을 통해 꾸준히 서신 교류를 이어가던 중 평소 자신이 존경 했던 작가 프란츠 카프카의 무덤이 있는 체코 프라하를 방문한다.

그는 이념이나 사상 체제 비판은 공개적으로 하지 않고 서방 세계로 망명한 동유럽권 작가들과의 인터뷰를 적극적으로 추진해서 그들의 작품이 영미권에 출판 할 수 있게 힘을 쏟는다.

1970년대 필립 로스는 공산 체제하에서 사상과 표현의 자유가 유린 당하는 동유럽의 지식인들의 모습을 담은 작품을 비롯해 자전적 분신(分身)인 네이선 주커만을 주인공 또는 관찰자로 등장 시킨 일련의 소설을 발표하며 학계의 부조리와 타락한 지식인의 이중적인 모습을 투영시켰다.

작가로 최고의 전성기를 보내던 1988년 경 필립 로스는 뉴욕 맨해튼에 머물던 어느 날, 이스라엘에 거주하는 친척으로부터 한 통의 전화를 받는다.

그는 "TV에 네가 나오고 있다"는 친척 앱터의 말에 터무니없는 일이라고 여겼지만, 그 전화는 불길한 예감의 시작이었다.

나흘 후 작가 필립 로스는 인터뷰 취재 일정이 잡혔던 이스라엘의 소설가 아하론 아펠펠드로부터 "조만간 예루살렘에서 강연한다고 신문에 실렸다"는 소식을 듣게 되고 마침내 누군가 자신을 사칭하고 있다는 사실에 큰 충격을 받는다.

1988년 1월, 신년이 밝은 지 며칠 뒤에 나는 또 다른 필립 로스의 존재를 알게 되었다. 내 친척 앱터가 뉴욕의 내게 전화를 걸어, 이스라엘 라디오의 보도 내용을 알려 주었다. 트레블링카에 근무하던 공포의 이반이라고 알려진 존 데미야뉴크의 재판을 내가 예루살렘에서 방청 하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필립 로스의 <샤일록 대작전>

공포의 이반이라고 알려진 존 데미야뉴크의 재판을 방청 하고 있었던 또 다른 필립 로스라는 인물은 현시대 유대인을 가장 위협하는 요인이 이스라엘의 유대인 전체주의라며 유대인을 유럽에 재정착 해야 한다는 주장을 펼치고 있었다.

당시 뉴욕에 살고 있었던 필립 로스는 수면제 ‘할시온’ 부작용으로 정신적으로 피폐해진 상태여서 이 모든 것이 수면제 부작용으로 인한 자신의 환각이 아닐까 의심한다.

때 마침 예루살렘에서 소설가 아하론 아펠펠드 인터뷰 일정이 잡혀 있었던 작가 필립 로스는 사칭범이 있다는 예루살렘의 킹 데이비드 호텔 511호실에 전화를 건다.

나는 수화기를 들어 예루살렘의 킹 데이비드 호텔로 전화해서 511호실로 연결 해 달라고 말했다. 목소리를 위장하기 위해 나는 프랑스 말씨를 썼다.

자신을 ‘필립 로스’라고 당당히 말하는 사칭범에게 작가는 파리에서 활동하는 프랑스 기자 ‘피에르 로제’라고 역으로 사칭하고 진실을 알기 위해 그와 대화를 시도 한다.

" 여보세요, 로스 씨? 필립 로스 씨 입니까?" 내가 물었다.

"네."

"정말로 그 작가예요?"

"그렇습니다."

"<포트노이의 불평>의 작가?"

"그래요. 그래요. 누구십니까?"

진짜와 가짜가 뒤바뀌는 순간 독자들은 이 이야기가 실화 인지 작가 필립 로스가 창작한 허구적 사실인지 헷갈리기 시작한다.

필립 로스는 앞선 작품에서 자신이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소설을 여러 편 집필했다.

그는 '샤일록 작전'에서도 자신을 사칭하는 '필립 로스'라는 인물을 통해 나치 집권기 유대인 수용소 간수의 전범 재판이 한창 진행 되는 것과 동시에 점점 격화 되고 있는 팔레스타인 봉기를 교차 시키며 펼쳐 보인다.

"유대인들이 이렇게 기로에 서 있는데 소설을 써요? 이제 저는 유대계 유럽인들의 재정착 운동에 모든 것을 바치고 있습니다. 디아스포리즘에."

작가 필립 로스의 사칭범은 예루살렘의 전범 재판을 방청 하고, 유력 정치인을 만나 정치적 주장을 공표한다.

사칭범은 '유대인은 유럽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이른바 디아스포리즘을 주창하며 이스라엘 우파 정치인들의 심기를 거스르는 발언을 일삼자 이 소식을 들은 진짜 필립 로스는 이스라엘로 가서 사칭범을 대면한다.

자신을 사칭하고 다니는 자를 만나러 간 작가 필립 로스는 이스라엘 땅에서 다양한 인물들과 만나고 이들의 입을 통해 박해를 받았던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을 밀어내는 정복자의 잔혹한 이중적인 모습을 발견하게 된다.

1967년 이스라엘이 6일 전쟁에서 승리 했다. 이와 함께 확인된 것은 유대인의 귀화 또는 동화 또는 정상화가 아니라 유대인의 힘, 홀로코스트의 냉소적인 제도화가 시작된다.

필립 로스가 마주한 이스라엘 땅의 사람들 중 친척 앱터는 제2차 세계대전 때 겪은 폭력의 후유증을 떨쳐 내지 못한 상태다. 그는 이스라엘 민족을 짓밟은 이들에게 죗값을 받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반면 점령지 라말라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팔레스타인 출신 조지는 작가에게 이스라엘 압제에 관해 열변을 토한다.

유대인들의 군사국가가 의기양양하게 으쓱거리는 가운데 이제 정복자가 된 유대인이 과거에는 희생자였으며 순전히 그 역사 때문에 정복자가 되었음을 온 세계에 시시각각 날이면 날마다 일깨워주는 것이 유대인들의 공식적인 방침이 된다.

군사 강국이 된 이스라엘은 촘촘한 첩보망을 통해 아랍과 팔레스타인의 협력을 붕괴 시키는데 몰두 하면서 요인 암살과 정적 제거 스파이 색출을 하는데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

이들은 지속적으로 세계적 영향력을 갖춘 지식인들을 지원하며 소설과 영화에서 유대인들이 박해과 억압의 희생자라는 걸 전 세계인들에게 주입시키는 작업을 주기적인 홍보 캠페인처럼 펼치며 잔혹한 방법으로 팔레스타인들을 죽이는 모습을 감춘다.

유대계 지식인들과 예술가들이 전 세계인들에게 유대인의 희생에 대한 걸 끊임없이 상기 시키는 동안 이스라엘은 점령지를 꿀꺽 집어 삼킨 뒤 팔레스타인들을 추방하고 역사적인 정의에 따른 정당 보복 조치라며 자기 방어 논리를 펼친다.

이스라엘 건국을 위해 평생을 바친 유대인 노인 스마일스버거는 이제 유대인이 죄를 짓고 있다고 말하며 "성경에 새로운 장이 하나 더 생긴다면 하느님이 죄를 지은 이스라엘 민족을 파괴하려고 일억 명의 아랍인을 보냈다는 이야기가 거기 실릴 것"이라고 한다.

-필립 로스의 <샤일록 작전> 중에서

작가 필립 로스를 사칭하는 자는 스스로 반유대주의와 싸우는 투사라며 “유럽 출신 유대인들이 유럽에 재정착해서 이스라엘 인구가 절반으로 줄어든다면, 이 나라의 영토를 1948년 수준으로 줄이고, 군대를 해산하는 것이 가능해진다”면 아랍의 이웃들과 평화롭게 공존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작가 필립 로스는 사칭범이 폴란드나 루마니아, 독일에 유대인을 재정착 시켜서 서구에 유대인을 분산 시키자는 주장에 맞서던 중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분쟁과 그 이면에 펼쳐 지고 있는 첩보 작전인 일명 <샤일록 작전>에 휘말리게 된다.

나는 계획을 짜기 시작했다. 저들에게 모이셰 피픽의 이야기를 들려 줄 것이다. 놈이 꾸미는 일과 내가 꾸미는 일이 어떻게 다른지 말해 줄 것이다. 그들이 조지 지아드에 대해 물어 보는 것에 모두 대답할 것이다.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분쟁과 관련된 첩보 작전, '샤일록 작전'에 가담하게 된 필립 로스는 사실과 허구의 경계를 넘나들며 독자들에게 유대인 정체성과 그들의 역사적 고난, 그리고 현대 정치 상황을 밀도있게 서술한다

작가 필립 로스는 이 작품 맨 첫 장에 법적인 이유로 여러 사실을 변형해서 책을 쓸 수 밖에 없었다며 현실의 이야기를 토대로 인물과 장소에 관한 세세한 정보를 변형 시킨 허구의 이야기는 사실을 분명하게 밝혔다.

필립 로스 자신을 주인공으로 내세운 <샤일록 작전>은 1993년 출간 즉시 당시 첩보소설의 문법을 빌려 현실과 허구의 경계를 넘나드는 실험에 성공한 작품이라는 평을 들으며 이듬해 미국 최고 소설에 수여하는 펜/포크너상을 받았다.

실화를 바탕으로 한 필립 로스의 <샤일록 작전>에서 이스라엘 법정에 선 존 데미야뉴크의 실제 삶의 행적은 다음과 같다.

1940년 나치 시절 강제 수용소에서 간수로 일하는 동안 유대인 수용자들을 잔혹하게 고문하는 걸로 악명이 높아 '공포의 이반'으로 불렸던 데미야뉴크는 1988년 1월 예루살렘 지방 법원에서 사형선고를 받은 데미야뉴크는 항소심에서 소련 측 증거를 제시하며 판결에 불복했지만 1심 판결을 받은 지 오 년 만에 사형 선고를 받았다.

1920년 우크라이나의 수도 키이우 외곽에서 태어난 데미야뉴크는 스탈린 통치 당시 자행 되었던 대기근 홀로도모르(기아에 의한 살인 )에서 살아 남아 2차 대전 발발 이전 까지 집단 농장에서 트랙터 운전수로 일하다가 군에 자원 입대 한다.

2차 대전 발발 당시 독소 전쟁에서 패한 독일군과 유대인들을 수용했던 트레블링카 강제 수용소(학살 증거가 철저히 사라져서 절멸 수용소라 칭함)에서 감시원 역할을 하다가 종전 후 수감자들을 국경 밖으로 내보내는 트럭 수송 담당을 하던 중 수용소에 탈출한 여성을 돕다가 미국으로 망명 신청을 한다.

1952년 미국 이민청에 등록된 데미야뉴크의 서류에는 우크라이나 태생의 소련군 출신으로 종전 후 난민 캠프로 이동하는 차량을 운전 했던 운전수라고 기록 되어 있었다.

미국 땅에서 강제 포로 수용소 간수였다는 과거가 사라진 데미야뉴크는 동유럽 출신 이민자들이 집단 거주하는 오하이오 주에 정착해서 포드사로 납품하는 자동차 부품 업체에서 전기 기술자 일을 하며 함께 도망친 아내와 세 아이를 낳고 시민권을 받는다.

트레블링카 강제 수용소에서 살아 남은 수감자들은 수감 당시 잔혹하게 고문하는 걸로 악명이 높아 '공포의 이반'으로 불렸던 간수가 데미야뉴크라고 지목한다.

1986년 60세를 훌쩍 넘긴 데미야뉴크를 체포한 이스라엘 재판부는 그에게 사형선고를 내린다.

법정에 선 데미야뉴크는 자신은 수용소에서 수감자들 이송과 수송을 담당 했을 뿐이고 어느 누구에게도 고문을 가 한 적이 없다고 적극 항소 한다.

1991년 12월 26일 소련이 무너지고 연방 체제의 사슬이 사라지고 나서 국가 주요 기밀 문서가 공개 된다.

소련 국가 기밀 문서에 의하면 트레블링카 강제 수용소에서 '공포의 이반'으로 불렸던 간수는 데미야뉴크가 아닌 전혀 다른 인물이였다.

2차 대전 당시 포로수용소에서 수감자들 이송과 수송을 담당했던 데미야뉴크를 기억하고 있는 생존자를 찾아낸 변호인단은 수용자들에게 데미야뉴크가 가장 친절했던 인물이였다는 증언을 받아 낸다.

장장 5년 동안 이스라엘 법원과 소송을 이어갔던 데미야뉴크는 독일과 폴란드에 남아 있는 모든 기록을 샅샅이 뒤져도 그의 범죄 행위가 발견 되지 않아 무죄 판결을 받고 마침내 자유의 몸이 되어 가족이 있는 미국으로 돌아간다.

2002년 유대계 단체와 이스라엘 정부는 데미야뉴크가 트레블링카 강제 수용소 뿐만 아니라 29000명의 유대인들을 잔혹하게 살해한 독일 소비보르 수용소에서 간수로 일했던 기록을 찾아 내 그를 독일 법정에 세운다.

장장 10년에 걸쳐 미국 지방 법원과 이스라엘과 유대계 단체가 데미야뉴크의 시민권 박탈과 추방을 놓고 법정 공방을 펼치는 사이에 90세를 넘긴 데미야뉴크는 호스피스 병원에서 숨을 거두고 독일은 소비보르 수용소 전범 재판을 종결 시켜 버린다.

데미야뉴크가 사망 하고 나서도 유대계 단체들은 끈질기게 그의 범죄 흔적을 찾아 다녔고 마침내 데미야뉴크로 추정되는 사진을 유대인 추모 기록관에 증거로 제출한다.

2025년 임기 두 번째를 맞이한 미국 트럼프 대통령은 가자지구 주민의 자발적 출국과 이주를 돕겠다는 외교적 발언을 하고 나서 이스라엘과 비밀리에 나눈 회담 자리에서 ‘가자지구'를 이스라엘에게 통째로 넘겨 주는 '가자 점령’ 계획을 논의 했다.

이는 유대인이 나치에게 당한 인종말살 정책을 가자지구 주민에게 행하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왜 유대인들끼리 분쟁을 벌어야 하는가 단순히 유대인과 유대인 사이만 분열된 것이 아니라, 개인의 내면 또한 분열되어 있기 때문이오. 세상에 이보다 더 다중적인 성격을 지닌 사람이 있소?

모든 유대인의 내면에는 유대인 '무리'가 살아요. 착한 유대인, 못된 유대인, 새로운 유대인, 옛날 유대인, 유대인을 사랑하는 자, 유대인을 증오하는 자. 이교도의 친구, 이교도의 적, 거만한 유대인, 상처 받은 유대인, 경거한 유대인, 파렴치한 유대인, 거친 유대인, 점잖은 유대인, 반항적인 유대인, 달래는 유대인, 유대인 다운 유대인, 유대인에서 벗어난 유대인....

셰익스피어 희곡 '베니스의 상인'에 등장한 악독한 유대인 고리대금업자의 이름을 차용한 <샤일록 작전>은 어디까지나 소설일 뿐이지만 역사는 과거에 머물지 않고 지금까지도 계속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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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유행열반인 2025-03-06 20:1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와 저의 두 거대 기둥 할배들끼리 실제로 만난 적도 있었군요. 할시온 거 별로긴 한데 로스 할배 시절에는 졸피뎀이 없었나 보군... 아직도 번역될 소설이 더 남은 것도 신기하네요. 난 아직 할배책 쌓아 놓은 것도 너무나 많은데...

2025-03-06 23:09   URL
비밀 댓글입니다.

반유행열반인 2025-03-07 18:29   좋아요 1 | URL
ㅋㅋㅋ역시 모르는게 없는 척 척박사 scott님!!!!
 
누구나 밤엔 명작을 쓰잖아요 타이피스트 시인선 7
김이듬 지음 / 타이피스트 / 202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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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원으로 살 수 있는 물건을 찾기 힘든 세상에서 천 원으로 배를 채울 것도 없고 지하철을 탈수도 없다.

천 원으로 영혼을 고양 시킨다거나 지성을 갈고 닦을 수도 없으니 천원 지폐 만큼 가벼운 시집 한 권을 구입한다.

당신은 지금 잠의 가시 덤불 속에서 양 떼를 세고 있습니까?

한 마리의 양을 잃은 상실감으로 뒤척거리다 일어나, 모든 양을 풀어 주러 나왔습니까?

집들은 모두 낡은 목조 건물이고, 지붕에서 뜯어낸 판자로 만든 덧문 너머 별들이 빛나고 있습니까?

지붕 고치는 사람처럼 나는 사라져 가는 직업의 사람입니다.

어쩌다가 우연히 걸작을 만들 수 있다고 믿는 사람들은 모두 죽었습니다.

-김이듬의 <목동의 밤> 중에서

진주에서 태어난 시인 김이듬은 2020년 『히스테리아』의 영미 번역본이 전미번역상과 루시엔스트릭번역상을 동시 수상하기 전 까지 시를 쓰는 것 만으로 생계를 잇기 힘들어서 일산에서 ‘이듬 책방’을 운영하며 시를 썼다.

시인은 낮에는 책방 주인으로 북토크를 열고 손님들과 함께 시를 읽으며 낭독의 시간을 가졌지만 책은 고작 하루 서너 권 정도 팔렸다.

대학 강사 수입까지 탈탈 털어 넣어도 매년 치솟는 높은 임대료를 감당할 수 없어서 결국 시인은 책방 문을 닫고 서울 변방에 작은 작업실에서 온종일 시어를 다듬었다.

젊은 시절에 나는 안락의자를 샀다고 말했던가?

이 의자에 눕다시피 앉아 나는 열 권의 책을 쓰고 서른 한 번의 겨울을 보냈다.

시인은 안전하지도 아름답지도 않은, 얼어붙은 길목 앞에서 파쇄한 백지가 눈보라처럼 흩날리는 길 위에 서 있다.

비애와 불운의 배낭을 메고 길을 떠나는 시인의 고독은 세상과 엇물리는 자의 일방통행로를 따라 이어진 시어들이 누구에게도 사랑 받거나 이해 받지 못했던 이들과 함께 동행을 하듯, 정처 없이 떠돈다.

어제는 에밀리가 내민 지번 주소 들고 그의 부모 댁을 찾아갔지만 삼미시장으로 변한 거리만 확인했을 뿐 우리는 40여 년 전의 시간을 찾을 수 없었다

―블랙 아이스 중에서

또래들과 달리 유치원에 다니지 않았던 나는 미술학원, 피아노 학원을 거쳐 학교와 학원, 다양한 국가의 문화원과 도서관, 여러 국가의 박물관 문턱이 닳도록 드나들며 알지 못한 세상, 가 보지 못한 세상을 향한 갈증이 강했다.

한국 땅을 떠나 영어와 독일어를 마스터 하고 프랑스를 여행하며 언어와 문화를 배우고 오스트리아를 거쳐 체코 프라하에서 연극에 심취하고 그리고 다시 런던으로 돌아가서 이집트 고대 상형 문자를 배우며 어느 누구도 강요한 적 없는 고대 문명을 연구 해 보겠다는 계획도 세웠다.

유럽 전 대륙을 누벼 봤고 살아 봤고 북아프리카 이집트 카이로 부터 남아공 케이프타운의 킬리만자로까지 올라가 봤다.

킬리만자로에서 표범은 보지 못했지만 브라질의 리우데자네이루에 거대한 예수상을 보고 볼리비아의 소금 사막 우유니의 모래 가루 같은 소금도 만져 보았다.

그러니까 나는 20대 시절에 하고 싶었던 일들, 버킷 리스트에 적어 놓은 것들을 거의 다 해보았고 대학원까지 다니는 동안 수많은 스승들을 만났다.

하지만 막상 사회로 나와 보니 순수가 어떻게 위협 받고 배반 되는지, 열망은 어떻게 죄가 되는지 인생의 단맛과 쓴 맛을 두루 맛보았다.

그동안 나에게 좋은 스승이 있었던가?

학업의 성취를 넘어 사회에서 성실하게 일한 댓가를 정당하게 받고 있을까? 아니면 피 땀 눈물로 번 돈이 모두 중 범죄 짓을 저지르고 민주주의 체제를 뒤흔들고 국민의 생계는 아랑곳 하지 않고 자신들의 밥그릇만 챙기는 권력자들의 세금 루팡으로 전락해 버린 걸까?

시인 김이듬은 이렇게 말한다.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믿는 사람들은 풀도 가축도 무시하는 목동 같아요.'

퇴계 이황의 얼굴이 새겨진 천 원으로 시집 한 권 살 수 없는 세상에서 늦은 밤 시인이 써 내려간 시를 읽는다.

어떤 순정과 진심은 ‘명작’ 이지만 세상 밖으로 나오는 순간 시는 명작이 되어 누구의 삶을 구원 할 수 있을까?

“길가에 앉아 사람들을 읽는다 내가 읽던 사람이 노란 버스에 탄다 구름을 읽는다 가로수와 새를 읽는다 건성으로 읽을 때도 있다 이상하게 나는 난독증을 고칠 의욕이 없다 다시 길을 걸으며 간판을 읽는다 독일어를 아는 게 도움이 된다 아우구스트스트라세에서 서점에 들어갔다 흥미로운 책을 발견했다 당나라 말기 러브레터 이집트 상형문자 벵골어 부기어 등 오래된 언어들이 적힌 얇은 책이었다 이상하게 나는 글자를 통해 사람을 읽는 게 재밌다 읽을 게 없으면 죽고 싶다 얼굴은 표지의 기능도 상실했다 워낙 리커버가 많으니까 나는 읽으면서 읽힌다 투명 비닐로 포장된 타이포그래프 잡지도 골랐다 셀프 계산대가 있었다 공항 검역대를 통과할 때처럼 소리가 난다 바코드 읽는 기계로 사람을 읽는다”

-「두 유 리드 미」 전문

내가 좋아하는 시인들은 시를 쓸 때 제목부터 적는다.

커다란 덩어리 같은 제목을 적고 감정의 살점을 붙이듯 한 단어를 쓰다 떼어내고 다시 한 단어를 붙이며 운율을 붙여서 풍경과 사람들이, 어떤 시선들이 온 몸을 관통한다

퇴근 후 늦은 시각 텔레비전을 켜고 OTT에 접속하면 내가 평생 뼈 빠지게 일해도 벌 수 없는 고소득의 개런티를 받는 예능인들, 배우들 모델들이 먹고 마시고 울고 웃고 있다.

나는 이들이 광대짓을 하며 돈을 버는 동안 내 시간을 허비 하며 삶을 소진 하고 싶지 않다.

글자를 깨친 사람들은 모든 것을 읽을 수 있지만 사람들은 시를 읽지 않고 한 편의 시가 누군가의 일생을 바꾸지 못한다.

세상은 앞으로 점점 더 숨이 쉬기 힘들 정도로 탁해질 것이고 전파력이 강한 치명적인 바이러스는 지구상에서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루의 양식을 찾아 다니듯 천 원의 행복과 만족을 찾아 다이소에서 물건을 구입하듯 누구에게도 사랑 받거나 이해 받지 못해도 시를 쓰는 시인의 시집을 사러 갈 것이다.

극장에서 돌아와 글을 써요. 나는 지저분하며 조그마한 구역에 살아요 항상 떠날 궁리를 하죠. 안정감이 밤 물결 소리를 내며 떠나라는 신호로 받아들여요. 나를 여기 데려다 놓고 데리러 오지 않는 사람이 혹시나 들를지도 몰라서 떠났다가 다시 돌아오곤 합니다.

방 모서리엔 낡은 회색 슬리핑 백이 있어요. 오늘은 자지 않고 명작을 써요. 반투명한 해파리처럼 생긴 전등을 켜요. 미안하지만 당신을 위로하러 글을 쓰진 않아요.

이어링을 만지작거리며 명작을 써요. 누구나 밤엔 명작을 쓰잖아요. 은밀하고 거칠며 쓰라린 글쓰기에 걷잡을 수 없이 빠져들죠.

-김이듬의 <밤엔 명작을 쓰지>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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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그다드 2025-03-09 13:20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김이듬 시인의 시도 좋지만 님의 글도 놀랍네요.

scott 2025-03-09 15:00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
주말 시간 행복하게 보내세요 ^^

media666 2025-03-09 20:2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세상에 무언가 값진 걸 주고 계시네요. 감사하고 또 부럽습니다 :)

scott 2025-03-09 21:38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
주말 밤 평안하게 보내세요 ^^

건빵 2025-03-09 22:5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좋은 글 감사합니다. 책도 한 번 읽어봐야겠네요

scott 2025-03-10 12:22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
한 주 시작 활기차게 보내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