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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이 성큼 찾아 오니 밖을 나서기 전 챙길 것들이 많다.

머플러, 장갑, 모자, 마스크 그리고 언제나 몸과 혼연 일체여야 하는 스마트 폰...

옷이 두툼해지는 겨울에는 가능한 가방 속에 많은 물건을 넣고 다니지 않으려고 하지만 다른 것은 빼놓더라도 종이책은 반드시 가방 속에 넣고 다니고 있다.

매일 아침 눈을 뜨자 마자 커피를 내리는 시간 동안 오늘 하루 나와 함께 할 책을 고르는 것도 일상의 소소한 즐거움 중 하나다.

무작위로 눈에 들어 오는 책을 고를 때도 있고 전문 지식분야를 쌓기 위한 책일 때도 있고 누군가의 추천을 받은 책일 때도 있다.

하지만 대체로 책을 선택 할 때는 그동안 무심코 클릭한 것들이나 구입한 목록들의 정보를 수집한 알고리즘 추천을 가능한 의지 하지 않고 내 스스로 특정 주제를 정해 놓고 내가 구상하고 원하는 포트폴리오에 맞춰 책을 선택하고 있다.

온라인 서점에서 제공하는 다양한 종류와 여러 장르의 책을 읽을 수 구독 서비스 책읽기도 1년 동안 해보았다.

전자책은 종이책을 읽는 속도에 비해 압도적으로 빨리 읽어도 제대로 완독 하는 책도 없었고 눈으로 스킵을 하다 보니 머릿 속에 남는 구절도 없었다.

특히 전자책을 읽다가 다른 앱을 열고 딴짓을 하기 일 수였고 이 책을 클릭하다가 또 저 책을 클릭하며 앞 장 몇 구절만 읽다 만 책들이 수두룩하다.

여전히 이북 기기와 스마트 폰에 저장된 책은 천 여권이 넘지만 지구가 종말 하기 전까지도 저장된 책을 전부 읽지 못할 것이 분명하다.

다양하게 볼 거리가 넘쳐 나는 세상에 300페이지가 넘는 소설 한 권에 집중하기도 힘들다.

몇 주전 영화 <국보>를 보고 나서 일본 가부키 극에 관해 알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유툽이 없던 시절이라면 분명 국보 원작을 구입해서 읽었을 것이고 가부키에 관한 책이 있는지 찾아 보았을 것이다.

이렇게 두 권을 완독 한 다음엔 일본 근 현대사 책을 찾아 그 시대 역사에 대해 읽었을 것이다.

하지만 영화가 끝난 후 감명 깊게 보았던 마지막 장면을 OST와 함께 보기 위해 유툽에 접속하니, 가부키에 관한 영상이 주르륵 떴다.

추천 알고리즘을 따라가 보니 가부키 역사부터 분장, 유명 가문과 공연에 대한 여러 정보를 10분 내외 영상으로 모두 섭렵할 수 있었다.

이런 시대에 책을 왜 읽어? 유툽이나 넷플릭스를 보면 되지 않은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활자 중독인 나는 요시다 슈이치의 국보를 종이책으로 구입했다.










[막이 단숨에 걷히자, 불길한 태고 소리와는 정반대로 무대 위에는 큰 눈 속에서 어째서인지 벚꽃이 만개해 있었습니다. 중앙에 선 큰 벚나무, 천장에선 만개한 벚꽃 가지가 가득 매달려 있습니다. 그런 호화로운 무대를 보며 객석에서 탄식이 새어 나오고, 태고 소리가 더욱 높이 울려 퍼진 바로 그때, 거목 줄기에 걸려 있던 까만 천이 스르르 풀리면서 나무 안에서 유녀遊女 스미조메墨染가 나타났습니다. 강한 조명 아래 드러난 것은, 연회색 옷감에 늘어진 벚꽃 가지 장식을 수놓은 복장의 유녀 스미조메. 츠부시시마다(つぶし島田: 에도시대 후기에 유행한 머리 모양-옮긴이) 스타일의 머리를 수많은 기생용 비녀로 꾸민 모습입니다. 예상치 못한 변주에 객석에선 파도와 같은 박수가 터져 나오고, 2대손 하나이 한지로도 이렇게 중얼거립니다. “호오. 세키노토関の扉인가?” 이것이 바로 가부키 무용극의 명작 <쌓이는 사랑 눈 세키노토>의 명장면으로, 무대 아래쪽에는 이야기꾼 역할을 맡은 게이샤들과 샤미센이 쭉 늘어서고, 큰 벚나무 옆에는 관문지기인 세키베이関兵衛가 가만히 대기하고 있습니다.]

-요시다 슈이치의 <국보> 중에서






인공지능(AI)이 일상과 일터 학습 현장에서 광범위하게 사용 되면서 이전과 상당히 달라진 세상이 삶의 깊숙한 영역까지 파고 들었다.

강의 음성만 녹음하면 AI가 요약본과 정리 노트, 예상 문제까지 만들어줄 정도로 기술이 발전해서 학생들은 더 이상 수업을 듣고 손으로 필기 하는 데 시간을 들이지 않는다.

수업에 출석하지 않고 녹음본을 사서 AI를 활용해 학습하거나 비대면 수업 강의에서는 사전이나 법전 종이책을 펼쳐 놓지 않고 AI를 학습 도구로 적극 사용하고 있다.

리포트는 기본이고 복잡한 코딩, 정보 분석까지 AI가 순식간에 해내다 보니 학생들은 AI에 사실상 모든 것을 위임하고 있다.

생성형 AI가 등장한 지 3년이 채 되지 않았지만 이젠 어디서든 AI를 사용하지 않으면 구 시대 사람 취급을 당할 정도로 전 세계적으로 AI 몰고오는 광풍은 허리케인 급이다.

작년까지만 해도 AI를 ‘어떻게 쓰나’를 고민했다면 이젠 ‘AI 없인 어디에도 못 가고 일도 공부 못 한다’는 말이 나올 정도다.

TV가 아닌 AI ‘바보상자’가 덮친 세상에서 선택한 책은 최신 AI트렌드나 사용 방법에 관한 책이 아닌 살만 류슈디의 <진실의 언어>다.

부커상 3관왕 수상에 매년 노벨문학상 후보에 오르는 살만 루슈디는 '악마의 시’ 출간 이후 이슬람교를 모욕했다는 이유로 살해 위협에 시달려왔다.

목숨이 위태로운 시기에 은둔 하지 않고 왕성하게 집필하며 전 세계인을 향해 펜의 힘을 보여 줬던 살만 류수디는 2022년 여름 미국 뉴욕대가 주최하는 문학 강연 연사로 초청 받아 무대에 오르는 순간 괴한이 휘두르는 잔인한 칼 끝에 한 쪽 팔과 한 쪽 눈을 잃어 버렸다.

구사 일생으로 살아남은 살만 루슈디는 현재 왼쪽 팔의 신경이 완전히 끊어졌고 한 쪽 눈 시력도 완전히 상실했다.

살만 루슈디는 자신을 향한 칼에 펜으로 맞서며 언어로 세상을 베고 찌르면서 종교의 관습과 굴레로 겹겹이 쌓여 있는 불평등을 향해 진정한 자유의 힘이 무엇인지 언어의 힘으로 증명해 보였다.

회복 기간 동안 써 내려간 <나이프>에서 루슈디는 이런 말을 한다.


합리주의자의 신앙에서 러셀은 이렇게 말해. '사람은 자신의 열정에 어울리는 신념을 갖게 되는 경향이 있다. 잔인한 사람은 잔인한 신을 믿고, 자신의 잔인함에 핑계를 대기 위해 믿음을 이용한다. 오직 친절한 사람만이 친절한 신을 믿는다. 그리고 그들은 어느 경우에든 친절하게 행동한다.

-살만 루슈디의 <칼> 중에서


죽음의 칼 끝이 자신의 몸을 관통 해서 생과 사의 경계에서 살아 돌아 온 살만 루슈디는 <진실의 언어>라는 책에서 독자들에게 이런 질문을 던진다.


“당신의 가장 유감스러운 기질은 무엇입니까?”


일터나 사적인 장소에서 MBTI로 상대가 내 기질을 궁금해 하고 물을 때면 어느 순간엔 I이였다가 E일 때도 있고 F일 때도 있다는 대답에 상대방은 카멜레온 같은 사람이라고 평가를 내린다.

혈액형이 같다고 기질도 똑같지 않듯이 MBTI로 상대의 기질을 정확하게 나눌 수 없는데도 불구하고 나와 다른 MBTI로 편을 가르며 섣불리 장 단점에 대해 낙인을 찍어 버린다.

1인 SNS와 유툽 시대는 어느 시대보다 만나 본 적 없고 알지 못하는 것에 대해 이러쿵 저러쿵 떠들어대는 쓰잘데기 없는 말이 넘쳐 나는 시대다.

특히 챗 GPT의 등장으로 보이지 않는 상대에게 믿고 말하게 되어서 스스로 생각하고 유추하며 의문점을 찾아 해결하고 처리 하는데 쓰는 시간이 대폭 줄어들었다.

말만 하면 척척 원하는 걸 찾고 해결 하는 시대에 진실된 말과 언어, 문장들이 챗 GPT의 힘을 빌려 하는 말들과 뒤섞여져서 무엇이 진실인지 거짓인지 구분하기 힘들어졌다.

인간은 배가 고프면 먹을 것을 찾아 챙겨 먹듯이 타인과 다른 세상을 향한 왕성한 호기심에 무엇에 대한 것이든 찾아 읽으며 학습해 나갔다.

인간은 누군가의 이야기를 읽는 동안 설령 상상력으로 빚어낸 허구의 이야기 일지라도 그 이야기 속에서 사랑과 증오, 용기와 비겁, 삶과 죽음의 이야기를 통해 알게 되는 ‘진실’을 찾아 다녔다.

종이책, 전자책 그리고 유툽 영상까지 현 시대 쏟아져 나오는 이야기들 상당수는 내가 아닌 누군가가 보고 경험하고 맛보고 시험해보고 보여주는 것들 뿐이다.

전문가나 특정 기술을 연마 하지 않은 평범한 사람이 보여주는 이야기는 일반인들의 관심을 단번에 끌어내는데 아주 효과적이다.

반면 넷플릭스에서 쏟아져 나오는 비슷비슷한 포맷의 예능물과 드라마들이 고스란히 소설의 장르로 배어 들어서 뛰어난 상상력 보다 주변에서 흔히 찾아 보고 마주 할 뻔한 일과 사건들에 관한 이야기가 주를 이루며 신간들 중에서 읽는 맛을 느끼게 하는 책이 드물어졌다

무릇 이야기란 신비롭고 흥미롭고 초현실적이며 때로는 상스럽기도 해야 영상 시대에 경쟁에서 살아 남을 수 있다.

그렇게 살아남은 이야기는 비록 상상력으로 빚어졌을지라도 걸핏하면 서로 다투며 증오하고 미워 하는 이 세상에 살고 있는 모순 덩어리 인간이 유일하게 ‘진실’에 도달 할 수 있는 통로가 되어 준다.

살만 루슈디는 작가들이 제대로 구사해낸 '거짓된 진실'이야말로 현재와 같이 진실이 모든 곳에서 공격 받는 시대에 진정으로 이야기의 힘을 발휘 할 수 있는 강력한 힘이 된다고 말한다.

현 시대는 자기 이익과 결부된 거짓말이 감쪽같이 사실이라고 주장하고 여론을 선동해서 좀 더 믿을 만한 정보가 오히려 '가짜 뉴스'라고 퍼뜨린다.

언제나 논쟁의 여지가 있었던 진실이 현 시대만큼 논쟁적이였던 적은 없었다.

AI 시대에 인간은 가정과 학교 직장에서 더 이상 누군가의 말에 경청하지도 않고 복종하지도 않고 매일 숨 쉬는 공기만큼 믿기 힘들 거짓 정보가 곳곳에 떠다니고 있다.

진실이 결여된 세상에서 눈에 보이지 않는 AI가 거짓을 찾아 내 줄 수 있을까?

무엇이든 상상해서 말과 글로 지어낼 수 있는 인간의 자아는 동시에 많은 자아가 될 수 있는 존재다, 허구의 세상을 보여주는 문학은 이런 인간의 다면적인 자아와 모순된 기질을 다른 시각으로 보여준다.

해고 없는 세상이 오고 있다.

왜냐하면 기업이 더 이상 사람을 고용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사람이 하던 일 만큼을 해내는 것을 넘어 10배, 100배의 생산성을 가진 AI의 경쟁력이 막강해져서 가까운 미래에 기업은 사람이나 특정 부서가 수행하던 기능과 동일한 서비스를 제공하는 AI를 구독할 것이다.

엄청난 생산성을 가진 AI의 구독료가 월 최저 급여의 절반도 안 된다면 기업의 경영자는 어떤 선택을 할까?

직원 소수와 다수의 AI 에이전트들로 재편될 미래 사회에 기업은 더 이상 사람을 고용하지 않을 것이고 인간은 AI에게 일자리를 물어보고 AI가 던져준 일을 처리하는데 급급하며 겨우 입에 풀칠을 하는 노예로 전락하게 될 것이다.

AI로 인해 구조 조정 당한 인간에게 도래할 미래는 중세시대 만큼 암울하다.

AI의 지속적인 발전과 진화 가능성에 거품론이 제기되고 있는 이 시기에 미래에 닥쳐 오게 될 해고 없는 시대에 대비 할 수 있는 시간은 아직 남아 있다.

지구상 모든 생명체에게 동등하게 할당 된 24시간을 누군가가 먹고 놀고 마시고 체험하고 즐기는 영상을 보는데 흘려 버리지 말아야 한다.

태초 이래로 이 세상은 여러 거짓과 진실이 이리 저리 뒤섞이면서 인간의 삶을 변화 시켜 왔지만 AI가 인간의 영역에 파고 들면서 중요한 정보와 완전한 쓰레기가 언뜻 보기에 동일한 수준의 권위를 가지고 나란히 공존하고 있다.

AI 사용이 급증할 수록 거짓과 진실의 경계가 모호해지는 평행 우주 시대에 인간은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해고 없는 시대에도 살아 남을 수 있을까?

문자와 활자로 눈부신 발전을 이끌었던 인간은 제 3자의 시선으로 쓰여진 책을 통해 내면에 잠재된 본능을 수면 위로 끌어 올려서 자아를 찾고 타인의 생각과 감정을 읽어내며 진실과 거짓을 구별해 왔다.

매일 쏟아지는 허풍쟁이나 비 전문가들이 쏟아내는 불확실한 정보와 거짓들의 홍수에 휘말리지 않으려면 챗 GPT에 의지 하지 말고 스스로 찾아 보고 고민하고 사유 해야 하고 그러기 위해서 더더욱 책을 가까이 해야 한다.

오늘 내가 읽는 이야기는 결국 나의 일부가 되어 가치관을 형성하고 이 세상을 이해 할 수 있는 기틀이 되어 줄 것이다.

민주주의는 공손하지 않다. 광장에서 소리 지르기 시합인 경우가 많다. 논쟁에서 이길 기회를 잡고 싶다면, 그 논쟁에 참여해야 한다. … 작가의 경우에는, 증거에 근거한 주장에 대한 우리 독자들의 믿음을 재건하고, 소설이 항상 잘 해오던 일, 작가와 독자 사이에서 사실이 무엇인지에 관한 이해를 구축하는 일을 해야 한다.

-살만 루슈디의 '진실의 언어' 중에서

죽음의 문턱까지 갔다 살아 남은 작가 살만 루슈디가 펜의 힘으로 쓴 <진실의 언어>는 칼의 힘보다 강하고 거짓을 그럴듯한 진실처럼 말하는 챗GPT보다 위대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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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시우행 2025-11-30 02:2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사람은 자신의 열정에 어울리는 신념을 갖게 되는 경향이 있다는 귀절을 필사합니다.

scott 2025-11-30 22:33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 ^^

마힐 2025-11-30 12:3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요즘 AI버블론이 나오더라구요. AI의 발전 속도는 놀라웠지만 어느 순간 정체되고 있다고 하네요. 막대한 전력량과 뜨거운 열을 냉각시키기 위한 냉각수, 그리고 아주 큰 데이터 센터 규모를 운영하는데 들어가는 천문학적 비용들. 하지만 AI는 이미 정치, 경제, 과학, 교육 분야로 확장하여 더 판을 키우고 있다는 거죠. 그런데 여기에는 인간의 기대심리가 너무나 깊게 깔려 있다고 봐요. 막대한 자금과 앞으로 투자할 시간과 기대 비용이 기술의 발전보다 더 빠르고 크기 때문에 버블론이 나온 것 같아요. 이제는 웬만한 AI기술로는 사람들이 놀라지 않아요. 즉 인간의 기대심리가 AI발전을 넘어선 거죠. 결국 AI보다 인간의 마음이 어떤가를 살펴보는 것이 중요한 것 같아요. 그런 의미 속에서 scott님의 리뷰 속 말씀이 더 와 닿는 것 같습니다. 그래도 인간만이 희망이지 않을까요?

2025-11-30 22:3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5-11-30 19:2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5-11-30 22:29   URL
비밀 댓글입니다.
 
네가 누구든
올리비아 개트우드 지음, 한정아 옮김 / 비채 / 202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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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서부 실리콘 벨리의 테크 산업 대 호황으로 하루 아침에 천문학적인 돈을 벌어 들인 갑부들이  주변 토지를 대거 사들이면서 일대 부동산 가격이 폭등 하자 여름 한 철 관광 기간 동안에만 외지인들로 북적였던 팟벨리 지역의 부동산 가격도 치솟기 시작한다.

한적한 휴양지 바닷가에 가장 전망 좋은 지역에 살고 있던 토박이들은 몇 십배로 폭등한 가격을 받고 살던 집을 처분한다.

부자들이 입지가 가장 좋은 자리에 새로운 건축물을 올리는 사이에 지역 거주민이자 세입자들은 몇 십 배로 뛴 월세를 내기 힘들어 도시 중심부에서 벗어난 곳으로 이주 하거나 살던 곳에서 쫓겨날 지경에 이른다.

실리콘 벨리 산업이 대 호황이기 전  팟벨리의 주민들은 여름 한 철 외지인들을 상대로 공유 숙박이나 음식점 장사로 생계를 꾸려 나갔다.

문단속을 하지 않아도  될 만큼 서로를 믿었던 이웃들이 사라지고 난 후 팟벨리에서 유일하게 팔리지 않은 낡고 허름한 집이 있다.

엄마의 친구 베델와 함께 사는 미티는  실리콘 벨리 산업이 대 호황이기 전 부터 산타크루즈 해변 마을 팟벨리에 살았던  미티는 이웃들이 모두 떠나고 난 후 마지막 남은 거주민이라는 묘한 자부심을 갖고 있다.

어린 시절 부터 크리스마스 때가 되면 인근 부자 동네를 돌아 다니며 유리창 너머로 보이는 화려한 장식물을 구경했던 아이였던 미티는  매일 밤마다   어느 집에 누가 이사 오게 될지 내심 궁금해 하며 새롭게 변해 가는 마을 풍경을 관찰 하는 재미에 푹 빠져 있다.

타코 식당에 설거지 하는 일을 할 때를 제외 하고는 하루 종일 텔레비전 앞에 살고 있는 미티는 아버지가 세상을 떠난 후 생계 때문에 어머니 친구 베델에 집에 맡겨지고 나서  또래들처럼 정상적으로 학교 생활을 하지 못했다.

 온라인으로 수업을 듣고 온라인으로 교육 과정을 마친 미티에게 졸업식 가운과 베레모를 사주고 노트북을 사준 것도 엄마 친구 베델이였다.

관광지로 유명한 캐피톨라 부두의 타코 식당에서 설거지 일을 하는 미티는 손님들에 받은 팁 액수에 따라 삶의 희비가 엇갈리는 나날을 보내며 자신의 신세를 한탄하고 있다.

갖고 싶은 것 누리고 싶은 모든 것들을 텔레비전 화면을 통해서 만 보았던 미티는 타인의 삶을 관찰 하는 묘한 취미를 갖는 어른으로 성장 했다.

그렇게 백화점 쇼윈도에 화려하게 장식된 상품을 구경하듯  지나가는 행인척 하며 새로운 이웃들의 사는 모습을조용히 관찰하는 재미에 푹 빠져 있던 미티의 시선을 사로잡는 이웃이 나타난다.

가녀린 목선과 희미하게 반짝이는 검은색 눈동자를 가진 매혹적인 외모의  레나의 모습을 발견하는 순간 미티는 자신과 비슷한 나이에 그녀가 가지고 있는 모든 걸 부러워 하기 시작한다.

커튼을 달지 않은 커다란 유리창을 통해 외부로 보여지는 레나에게 실리콘 벨리에 테크 기업을 소유한 부유한 남자 친구가 있다.

미티는 무엇이든 최고만 누리며 최고로 행복한 삶을 누릴 것만 같았던 레나가 매 순간 남자친구 서배스천에게 감시와 통제를 받고 있다는 사실을 관찰을 통해 알게 된다.

단 한번도 레나가 식사를 하는 모습을 본 적이 없었던 미티는  우연히 화단에 나와서 화분의 흙을 담고 있는 레나가 뼈만 앙상하게 남아 있는 모습을 보게 된다.

미티는 레나가 남자 친구에게 신체적 학대를 당하고 있다는 걸 알아차리고    용기내어 그녀에게  첫 대화를 시도 한다.

낯선 이웃의 방문에 크게 당황하지 않은 레나는 미티에게  마치 프로그래밍 된 로봇처럼 남자 친구 이력을 줄줄 읊어 대는 기이한 모습을 보인다.

서로 안면을 트고 난지 몇 일 후 레나는 미티와 베델이 살고 있는 허름한 집을 찾아 온다.

레나는  미티의 낡은 집에 페인트 칠하는 걸 도와주면서  남자 친구가 어떤 사업으로 실리콘벨리에서 거부가 되었는지 자신은 어디 출신에 어떤 가정 환경에서 자랐는지 이야기를 한다.

비슷한 또래의 친구가 된 미티는 레나에게 친밀감을 느끼면서 내심 세련되고 부유한 그녀의 삶을 부러워 한다.

레나는 자신의 모든 걸 통제 하고 감시 하는 남자 친구 서배스천에게 질식 당하기 일보 직전에  미티를 따라 해변 놀이 공원에 롤러코스터를 타면서 부터 두 사람 사이에 우정이 싹트기 시작한다.

집은 조용하다. 서배스천은 두세 시간은 더 있어야 돌아올 것이다. 레나는 거실 가운데에 서서 고요 속으로 침잠한다. 바깥 세상에서 하루를 보낸 뒤 현실로 돌아오니 낯선 느낌이 든다. 집은 전보다 더 내 집 같지 않다. 차갑고 날카로운 대리석 조리대, 윤기로 반들 반들한 식탁, 시체처럼 경직된 고리 버들의자.

-올리비아 개트우드의 <네가 누구든> 중에서 

남자친구에게 일상의 모든 걸 감시 받고 조정 당하는 삶을 살고 있는 레나는 거울을 볼 때만 자기 자신이 누구인지 인식 할 정도로 온전히 자신의 의지대로 살지 못하고 있다.

그러던 어느 날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찬찬히 바라 보던 레나는 신체 부위 중에서 오작동 되는 곳이 없는지 직접 점검 해 보아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시베스천에게 통제 당하고 부터 지난 시간들을 떠올리지 못하게 된 레나가 유일하게 기억하고 있는 건 몇 주 전 샌프란시스코에서 마지막으로 서핑 할 때의 일 뿐이다.

서핑 할 때 따개비에 물렸던 상처에 피딱지가 생겼던 흔적을 발견한 레나는 서랍에서 핀셋을 꺼내 다리 꽂아 버린다.

다리에 상처가 생긴 것 조차 기억이 희미 해 질 무렵 피가 배어 있는 침대 시트를 발견한다.

레나의  삶을  집요하게 관찰 하고 있던 미티는  겉으로는 친밀하고 사려 깊은 행동을 하고 있는  시배스천이  레나를 학대 하고 있다고 확신한다.

때마침 어느 테크 기업 엔지니어가 의식이 있는 AI 로봇을 만들었다는 이유로 신입 사원들에게 살해 당하는 사건이 발생 한다.

이런 불길한 소문이 감도는 가운데  시배스천은 자신의 여자 친구에게 잘해 준 이웃인 베텔과 미티를 저녁 식사에 초대 한다.

 미티는 시배스천이 베텔과 이야기 하는 동안 슬쩍 화장실을 간다며 자리를 뜨고   집안에 수상한 흔적을 찾아 곳곳은 은밀한 시선으로 둘러 본다.

미티는 저녁 식사 자리에서 시배스천이 애정 어린 시선으로 연인인 레나를 바라 보면서도 여성을 지칭 할 때면 항상 깔보는 이중적인 태도를 보이는 사실을 알게 된다.

식사 후 레나가 바다로 수영 하러 가자는 말에 미티가 따라 나서고 바닷물 속에 뛰어든 레나 입에서 미티는 충격적인 말을 듣게 되는 순간 미티는  십 년 전 자신이 동경했던  발레리나 에스미의 사고가 단순 사고가 아니였다는 걸 알게 된다.

미티는 생각한다. 다음 세대 언젠가, 모든 윤리적 논란이 세월에 묻혀버릴 때면 서배스천의 업적을 칭송하는 프로필이 작성될지도 모른다고 그 프로필은 레나를 한때 지나간 프로젝트 수명이 미리 정해져 있었던 작품으로 언급할 것이다. 그때 쯤이면 레나를 만든 기술은 낡은 기술이 되겠지. 실험실에서 만든 로봇 유모의 모유를 먹고 자라, 손가락에 굳은살이 박일 만큼 연필을 잡아 본 적도 없으며 그냥 만들어 낼 수도 있는데 굳이 사람을 사랑해 할 이유를 상상 할 수 없을 그 시대의 어린이들은 그저 웃어 넘기고 말. 그런 낡은 기술.

-올리비아 개트우드의 <네가 누구든> 중에서 

소설 <네가 누구든>은 아버지와 행복했던 기억이나 유년기의 추억이 별로 없었던 미티와 남자들에 의해 철저하게 자아가 짓밟혀 버린 레나의 삶이 서로 맞물려 가면서 전개 되는 동안  고도로  발전 하고 있는 AI기술이 머니 게임에 승자 위치에 있는 남성들에 의해 여성의 삶이 어떻게 짓밟히고 파괴되고 있는지  집요하게 파고들었다.

여성의 몸으로 AI시대에 산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스릴러의 문법을 차용하여 섬세하게 탐구한 올리비아 개트우드의 <네가 누구든>의 첫 페이지를 펼치면 이런 문장이 적혀 있다.

사랑하오, 살아 있는 여인이여.

시 구절 같은 문장을 쓴 사람은  조 단위에 달하는 이혼 위자료를 지불하고 이탈리아 베네치아 도시를 하루 동안 빌려서 두 번째 결혼을 한 세계 최고 거부 중 한 명인 제프 베이조스다.

독자들에게 제프 베이조스의 얼굴을 떠올리게 만든 이 소설에서  최첨단 산업을 주무르고 있는 테크 산업의 큰 손인 남자들이 여성의 신체를 교묘하게 착취하며 악랄하게 이용하고 있는 모습을 스릴러 기법으로 내밀 하게 묘사 했다.

인간의 본성에 내재된 관음증이 사람의 눈이 아닌 기계가 대신 할 때 삶의 터전이 어떻게 달라지고 성별이 다른 성이 어떤 차별과 학대를 당하게 되는지 뛰어난 구성과 감각적인 문체로 펼쳐 보인 올리비아 개트우드의 <네가 누구든>을 다 읽고 나면 우리의 몸은 항상 누군가의 시선에 노출되어 있다는 끔찍한 사실을 알게 된다.

AI에 의해 가장 많은 복제가 되어 딥페이크 사기와 범죄에 가장 많이 이용 당하고 있는 여성은  세계적인 컨트리 가수 테일러 스위프트다.

전 세계에 걸쳐 거대한 팬덤을 갖고 있는 테일러 스위프트의 가짜 영상과 사진들은 검은 손들에 의해  성적 착취물이 제작 되고  있고 그 사진을 누르는 순간 개인 정보가 탈탈 털리고 있다.

인간의 삶을 빠르고 편리하게 만들고 있는 AI 기술에 의해  여자 유명인들 뿐만 아니라 유명인, 인기인 같이 대중들에게 널리 알려진 사람들 모습 뿐만 아니라 가까운 지인들 내밀한 관계에 있는 사람들 또는 사랑하는 연인들의 얼굴과 몸은  교묘하면서 악랄한 해커들의 먹잇감이 되어 버렸다.

의뢰인의 취향에 맞게  원하는 걸 말하면 무엇이든지 척척 해 주는 AI기술을 발전 시킨 주역들은 지금 어디선가 누군가의 삶을 대량으로 수집하고 착취해서 천문학적인 돈을 벌어 들이고 있다.

 최첨단 기술이 등장 하기 전 인간의 삶은 많은 모순을 갖고 있어도 그 나름대로 질서를 갖춰 나갈 수 있는 희망이 있었다.

하지만 이젠 네가 누구든 ...당신이 누구든. 인간의 삶은 눈에 보이지 않는 인공지능의 알고리즘 덫에 걸려 영원히 벗어나지 못하는 운명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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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이른 새벽에 근처 공원 빗자루 소리에 잠에서 깨어난 중년의 남자가 있다.

침대도 TV도 없는 좁은 다다미방에 이불을 개고 화분에 물을 준 이 남자의 이름은 히라야마

‘도쿄 토일렛(Tokyo Toilet)’이란 문구가 새겨진 작업복을 입고 매일 새벽마다 도쿄 시부야에 있는 공공 화장실을 청소하는 히라야마는 청소 일이 끝나면 인근에 있는 대중 목욕탕에 들려서 깨끗하게 몸을 씻는다.

목욕을 마치고 나면 지하철을 타고 아사쿠사역에서 내려 단골 지하 선술집에서 하이볼 한잔을 마시며 조촐한 식사를 한다.

식사를 마친 남자는 지하철을 타고 깔끔하게 정리된 집으로 돌아와 지난번 헌책방에서 구입한 문고본을 읽고 하루를 마감한다.

홀로 살고 있는 도쿄의 어느 중년 남성의 완벽한 하루를 보여주는 영화<퍼펙트 데이즈>에서 주인공 히라야마는 집과 직장을 오고 가며 카세트 테이프로 록 음악을 듣고 틈틈이 주변 공원을 산책하며 카메라로 나무를 찍으며 지극히 단조로운 일상을 보내는 동안 평온한 일상을 깨는 일이 터지거나 어떤 불운한 운명에 휩싸이지도 않는다.

이렇게 하루 하루 완벽한 하루를 보내고 있는 동안 연락이 뜸했던 여동생의 딸 니코가 찾아와 몇 일 함께 시간을 보내는 사이 이 남자의 얼굴에서 행복과 환희, 후회와 회한 그리고 슬픔의 그림자들이 간간히 드러난다.

도대체 이 남자는 왜 홀로 살아가고 있는 것일까?

단골 헌책방에서 퍼트리샤 하이스미스의 <공포와 불안의 차이>라는 책을 구입하는 이 남자는 단골 술집 주인이 '히라야마씨는 참 지적이야'라는 말을 들을 때마다 멋쩍어 하는 이 남자는 동년배들처럼 삶에 찌들리거나 가족에 둘러 싸여 왁작 지껄하지 않은 현실의 근심 걱정을 떨쳐 버린 다른 세상에 살고 있는 현인으로 보인다.

집을 나가버린 딸 니코를 데리러 온 남자의 여동생은 개인 운전사가 운전하는 멋진 자동차에서 세련된 모습으로 등장하며 오빠와는 전혀 다른 인생을 살고 있다.

손수 마련한 도구로 공중 화장실을 깨끗하게 청소하고 있는 남자에게 젊은 동료는 이렇게 묻는다.

'뭘 그렇게 까지 하세요? 어차피 더러워 질 텐데.'

화면에서 보여지는 이 남자의 하루의 시간은 지극히 평범하고 지루해 보이지만 자세히 관찰 하다 보면 단 한 순간도 허비하지 않고 어느 누구에게나 진솔하게 대하며 매사 성실한 자세로 살아가고 있다.

영화 <퍼펙트 데이즈>의 히라야마처럼 더할 나위 없이 평범하면서도 성실하게 살아가는 사람이 있다.

예순 살의 혜숙은 매일 아침 출근이 시작 되기 전에 건물 곳곳을 청소하는 사람이다.

청소를 마치고 나면 혜숙은 친구가 사는 집으로 돌아간다. 그녀의 친구는 혼자 되어 딸을 부양 해야 하는 혜숙을 자신의 집에 살게 했다. 친구의 배려에 고마웠던 혜숙은 친구 집 정원을 관리 해 주고 있다.

오피스텔에서 청소하고 집으로 돌아와 씻고 밥을 먹으면서 텔레비전을 보거나 유튜브를 보다 잠든다.

이렇게 평범한 일상을 반복하며 살고 있는 혜숙에게 소설가인 딸 미래는 상에 떠도는 말들, 유행하는 것들, 드라마, 영화, 연애, MBTI, 새벽 배송 같은 이야기를 늘어 놓으며 엄마인 혜숙의 단조로운 인생에 속도를 내게 만들기도 하고 급브레이크를 밞게 만들기도 한다.

[“난 살면서 몇 번이나 울었나 무엇이 나란 사람을 울리나 오늘 하루가 왜 끝나질 않지 해가 길구나 시간이 다르게 흐르네. 그런 생각을 했다. 깜깜한 밤에 좁은 이부자리를 깔고 누웠을 땐 앞으로는 나란히 누울 일이 없겠다 그런 생각을.”]

-이주란의 〈겨울 정원>중에서

매일 단조로운 삶을 살던 혜숙의 삶에 모임에서 만난 어떤 남자가 마음 속에 파고 들기 시작하면서 그녀의 얼어 붙은 마음에 씨가 뿌려지고 꽃이 피기 시작한다.

[그때 난 오인환씨를 알게 된 후의 내 시간이 조금 다르게 흐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동안엔 누가 보지도 않는데 누가 보는 것처럼 너무 조심하며 살았었구나. 그런 생각이 드니까 너무 빨리 내 본모습을 보인 것도 후회되지 않았다. 후회는 할 때도 있지만 될 때도 있는데 둘 중 아무것도 아니었던 것이다. 그러니 그 마음은 지금도 여전한데 또 너무 단순한가.]

그동안 그냥 살아야 해서 살기 위해 발버둥 쳤던 혜숙은 누군가를 사랑 하고 부터 시간이 너무 빨리 흘러 가고 있다는 걸 깨닫는다.

하지만 예순의 나이에 사랑을 한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니였다.

엄마 혜숙의 사랑이 시들어 버려서 어느덧 저 멀리 떠나 버렸을 때 딸 미래는 오랫동안 짝사랑 했던 상대와 드디어 사랑의 결실을 맺게 된다.

사랑이 떠난 후에 혜숙은 친구의 집 정원을 가꾸는 동안 슬픔을 삭히며 잡초를 뽑고 흙을 다진다.

중년을 지나 노년의 시간으로 접어든 혜숙의 삶에 꽃을 피울 시간은 많이 남아 있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겨울 내내 얼어붙은 정원일지라도 봄이 되면 싹이 트고 줄기를 뻗어 무성한 잎사귀를 티워 꽃을 피우듯 모든 것이 사라져 버린 텅 비어 있는 겨울 정원일지라도 피지 않은 꽃을 기다린다.

2025년 김유정 문학상 수상작 ‘겨울 정원’에서 보여주는 일상은 그 어떤 수치와 모욕이 삶에 틈입해도 슬픔에 지지 않으려는 마음, 고통에 엄살 부리지 않겠다는 다짐 그리고 누군가를 원망하지 않고 살아지는 일상에 최선을 다해 사는 동안 한 사람의 삶에 얼마나 많은 사랑과 슬픔이 마음의 정원 속에서 피고 지는지 보여준다.

영화 퍼펙트 데이즈에서 히라야마가 잠들기 전에 읽은 책 중에서 고다 아야의 <나무>라는 책에 이런 구절이 있다.

[쓰러진 나무 위로 자란 높이 30센티미터 정도 되는 아직 어리디어린 나무를 시험 삼아 살짝 흔들어보았다. 줄기는 손길을 따라 부드럽게 움직이지만, 뿌리는 의외로 단단하게 고정되어 있다. 가느다란 뿌리는 쓰러져 죽은 나무의 안쪽을 파고들어 껍질과 속살 사이로 촘촘한 그물을 펼쳐놓았고, 다소 굵은 뿌리는 바깥쪽을 타고 내려가는 형태를 띠고 있어서 얼른 지면에 도달하고 싶은 듯 보이는 자세다. 오로지 살겠다는 일념으로 용맹함을 숨기지 않았다. 죽은 나무 위에도 조심스레 손을 올려본다. 차갑고 축축하다. 전날부터 내린 비 때문인지 흠뻑 젖어 있다. 하지만 나무를 직접 만진 것은 아니다. 나무의 온몸을 이끼가 빈틈없이 뒤덮고 있다. 자연이 입혀준 수의 (壽衣) 같다.]

-고다 아야의 <나무> 중에서


비 바람에 노목이 쓰러질 경우 바깥쪽 부터 썩어 들어가지만 가장 마지막 뿌리까지 썩으려면 10년 이상의 시간이 걸린다. 10년 동안 노목의 썩는 동안 그 노목에게 영양분을 주는 나무들은 주변에서 40년에서 50년의 세월을 버텨낸 중년의 나무들이다. 노목의 썩은 기둥과 중년의 나무들이 만들어 준 그늘 아래서 어린 나무들이 함께 성장 하면서 거대한 산을 이룬다.

숲속에서 자생하는 나무의 시간은 인간 세상의 시간과는 많이 다르다.

오래된 나무는 그냥 죽어 있는 것이 아니고 새로 자란 나무도 그냥 살아 있는 것이 아니다.


누구에게나 마음의 정원이 있을 것이다.

아무리 화려한 색과 향을 가진 꽃도 100일 이상을 버텨 내지 못하고 눈부신 의학 기술로 인간의 수명이 아무리 늘어 났다 해도 100년 가까이 살기 힘들다.

계절의 시간 속에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는 시기는 찰나의 순간이지만 별다른 의미 없이 “그냥” 살아가는 것처럼 보이는 삶에도 수많은 슬픔과 웃음, 후회와 그리움이 살아 숨 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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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시우행 2025-11-01 03:0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어차피 더러워질텐데‘란 말에서 많은 감정이 떠오릅니다. 등산을 싫어하던 한 직장후배는 팀 단체 산행에 항상 빠지면서 팀장인 나에게 ˝어차피 내려올 일이라 의미없어서‘라고 단정하길래 내가 이 후배에게 들려준 지적은 ‘어차피 죽을텐데 넌 왜 숨을 쉬냐?‘였었다.
 

1914년 일본 아사히 신문에 연재 된 작품 나츠메 소세키의 <마음>의 '나'는 어느 해 여름, 친구와 함께 찾아간 가마쿠라에서 선생님을 만나게 된다.

가마쿠라 해수욕장에서 서양인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던 그 '선생님'과 '나'는 매일 같이 해수욕장에서 그 선생님을 관찰하며 며칠 후 도쿄 집을 방문하며 깊은 교류를 나누는 사이가 된다..

고등학교 졸업 후 대학에 입학했지만 인생에 진정한 스승을 만나지 못했던 '나'는 부유한 아내의 재산으로 고등유민 처럼 살고 있는 지식인 '선생님'의 인품에 빠져 들게 된다.

반면 그 '선생님'은 어느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하는 자신만의 비밀을 털어 놓을 상대를 찾고 있었다.


나는 과거의 한 사건을 계기로 사람을 믿지 않게 되었네. 그래서 실은 자네도 예외는 아니라네. 하지만 아무래도 자네 만큼은 의심하고 싶지 않네. 자넨 내가 의심하기에는 너무 단순한 사람인 것 같아서. 나는 죽기 전까지 이 세상에 단 한 명이라도 좋으니 마음 놓고 흉금을 터 놓을 사람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 자네가 그 단 한 사람이 될 수 있겠는가? 되어줄 수 있겠는가? 자네는 진정 뼛속 깊숙이 까지 진심을 다하는 사람이라고 말할 수 있는가?

-나츠메 소세키의 <마음> 중에서

'나'와 '선생님'은 교류를 지속해가면서 서로의 마음을 진지하게 바라보는 동안 '나'는 사람과 사람 사이에 주고 받는 의리, 사랑, 우정이 무엇인지, 무엇을 위해 마음을 다해야 하는지를 깨달아가며 한 인간으로 차츰 성장해 간다.

'나는 인간을 덧없는 존재라고 생각했다. 인간이 어찌할 도리가 없이 갖고 태어나는 경박함을 덧없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세상 만물의 영장류 중에서 오로지 인간 만이 자신의 앞날에 대해 번뇌하고 고뇌 하며 살아간다.

유전적으로 인간과 가장 가까운 유인원은 같은 서식지에서 함께 협력하며 공생 하는 동료 유인원들에게 순간의 덧없음이나 인생의 번뇌를 토로 하며 감정을 공유 하지 않는다. 이들은 오로지 생존과 번식 능력에 맞춰 오랜 시간 동안 진화 해 갔고 기후 변화와 인간에게 삶의 터전을 빼앗긴 것을 제외 하고는 삶이 모습이나 생존 본능 조차 백 년 전과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인간의 세상이 광역 통신망으로 서로 긴밀하게 연결 되어 있어도 유인원들의 삶의 생태계는 태초에 이들의 생명이 움텄던 시대에서 멈춰 버렸다.

우리가 흔히 동물의 습성이라 부르는 것은 유인원들이 도구를 사용해서 나무 구멍에서 흰 개미떼를 긁어 내어 혀로 핥아 먹거나 일본 원숭이들이 온천 물에 흙이 뭍은 고구마를 씻어 먹는 모습 등을 볼 때다.

이런 동물의 습성을 한 개체군의 집단 문화라 부르지도 않는다.

이들의 습성에는 법이나 윤리, 제도가 없고 시간이 흐를수록 개미를 핥는 도구가 다른 용도로 발전되거나 응용되지도 않고 흙 뭍은 고구마는 다음 세기에도 그저 온천수에 씻어 먹는 걸로만 이어질 뿐이다.


우리 종의 특별한 성취는 문화에 대한 우리의 특별히 강력한 능력 덕분이다. 여기서 '문화'는 공유되고 학습되는 지식의 광범위한 축적과 시간에 따른 기술의 끊임없는 개선을 의미한다.

-캐빈 랠런드 '다윈의 미완성 교향곡' 중에서


만물의 영장류 중에 가장 약한 종이였던 인간이 지구에서 강력한 집단군으로 진화 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문화'로 지식을 서로 공유하고 전파하고 협력해서 종족을 보존해서 다음 세대로 이어지게 만들었다.

'인간'이라는 종은 살 수 없는 곳도 살 수 있는 생태계로 만들어 거주 영역을 무한대로 늘려 나갔고 동물의 세계와 비교 할 수 없을 정도로 다양한 행동 양식과 습성, 방대한 문화적 지식을 축적하고 보존해서 발전 시켜 나갔다.

'인간'은 생태적, 사회적, 기술적 한계에 도전해서 원자를 분열 시켰고, 물질을 발견해서 합성 시켰고 물이 흐르지 않은 곳을 물이 흐르게 만들었고 유전자 지도를 읽었다.

지구 생태계의 모든 종은 저마다 독특하다.

물 총새는 먹잇감을 향해 정확하게 물을 총알처럼 발사 하고 꿀벌에게 양식을 빼앗길 수 없는 꿀 벌 새는 주둥이가 뾰족한 바늘처럼 진화해서 꽃 수술을 찔러 먹는 걸로 자연에서 살아 남았다.

자연 생태계 포식자 자리에 가장 상위권에 위치한 인간은 세상의 모든 꿀을 채취 할 수 있는 도구와 기술을 갖고 있다.

인간은 지난 세기 동안 도시를 건설하고, 수억 권의 책을 집필하고, 교향곡을 작곡하고, 우주 정거장을 만들고, 원자를 쪼개고, 인터넷을 발명하며 뜨거운 열대 우림부터 꽁꽁 얼어붙은 툰드라까지 거의 모든 지구의 땅을 장악했다.

이토록 지구라는 행성을 뒤 흔들어 놓는 인간은 서로 가르치며, 언어로 소통하며 끊임없이 학습하고 진화 하고 있다.

“인간의 마음과 문화는 오랜 시간 상호작용 하며

서로의 모습을 서로에게 어울리도록 빚어낸 것이다.”

기원전 6000년 부터 메소포타미아와 인더스강 문명에서 소를 키우기 시작했던 인류는 동물을 이용해서 대량의 식량을 키워 안전하게 다음 세대까지 종족을 보존 하며 온갖 도구를 제작해서 다양한 작물을 재배해 나갔다.

마차를 만들어 더욱 편리하고 효율적인 물자 수송망을 구축해서 서로의 영역과 영토를 넓혀 나가기 위해 피를 흘리는 전쟁을 치루며 제국을 건설 했고 혁명을 일으켜서 사회와 문화의 발전 속도를 높여 나갔다.

인간은 서로 협동하며 개발하고 연구 하고 발전 시켜 나간 기술, 건축, 과학, 예술에서 수학 한 결정체들은 생명을 연장 시키며 생물학적 진화의 시대와 유전자-문화 공진화의 시대를 지나 문화의 진화가 지배하는 세 번째 시대를 경험하는 유일한 종이 되었다.


"서로 너무 나도 다르고, 매우 복잡한 방식으로 서로 얽혀 있는, 정교하게 구성된 이런 형태들이 모두 우리 주위에서 일어나는 법칙에 의해 탄생하였다는 사실을 떠올려 보면 흥미를 느끼지 않을 수 없다…. 여러 가지 힘에 의해 그토록 단순한 시작에서 부터 가장 아름답고 경이로우며 한계가 없는 형태로 전개되어 왔고, 지금도 전개되고 있다는, 생명에 대한 이런 시각에는 장엄함이 깃들어 있다."

-찰스 다윈의 '종의 기원' 중에서


찰스 다윈은 자신의 저서 '종의 기원'의 마지막 장에 '자연 선택'에 따라 동물은 진화했다고 주장하면서도 정작 인간의 발전을 견인한 '문화'에 대해서는 특별히 언급하지 않았다.

반세기를 지나 영국의 저명한 진화 생물학자인 케빈 랠런드 세인트앤드루스대 교수는 다윈이 인간의 지적 능력의 진화를 논의하면서도 지식 부족으로 시도하지 못한 지점부터 인간의 능력의 발달 단계를 추적해 나간다.

그가 추적하는 인간의 능력이란 어떻게 인간이 서로의 마음을 각기 다른 적합한 형태로 빚어내어 영향을 주고 받으며 끊임없이 사회적으로 학습하고 협력하며 혁신 하며 진화해 나갔는지 인간의 마음이 어떤 과정 속에 빚어졌는지 지난 세기에 다윈이 풀지 못한 인류의 수수께끼를 하나씩 풀어 나간다.

집단 간의 문화적 다양성은 다른 집단의 외부인보다는 지역에 관한 유용한 지식을 가진 자기 집단의 구성원을 알아보고 그 구성원에게 배우는 것을 우선시하도록 했을 것이다. 이론적 분석에 따르면 이러한 환경에서는 지역의 전통에 순응하는 것이 선호 되며, 그에 따라 어느 집단 소속인지를 드러내는 '민족적 표지'가 진화하고 집단 내 협력이 증진되며 다른 집단과의 갈등이 증가한다. 언어와 방언은 민족적 표지로 효과적으로 기능하며 지역적 학습과 내 집단 선호 성향을 부추길 수 있다.

결국 인간은 끊임없는 학습과 모방, 가르침, 언어, 지역적 관습을 서로 교류 하고 보존하면서 '문화적 집단'에 속한 종족을 보존 하고 유지 하며 지구라는 행성에서 가장 강력한 인간 생태계 군집을 만들어 냈다.

인간은 무자비할 정도로 자원을 개발하고 발굴한 원료와 원자들로 눈부신 기술 과학 발전을 이룩해서 전기와 전선 ,축음기와 음반을 넘어 재생과 제조를 통해 언제 어디서든 서로의 문화와 언어를 실시간으로 학습하고 공유 할 수 있게 만들었다.


여기, 인간이 아닌 다른 종(種)이라고 믿는 자아와 인간을 사랑하는 또 다른 자아를 지닌 ‘셀븐인’있다.

내가 단일한 존재가 아니라는 걸 알게 되기까지는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나를 입양한 지구인 부모는 불행히도 셀븐인들의 신경생리학에는 아무런 관심이 없었고, 내가 자란 시골 마을에 외계 출신이라곤 나와 주요소 아저씨 둘 뿐이었다.

-김초엽의 <양면의 조개 껍데기> 중에서


태어날 때부터 두 개의 자아를 갖고 태어난 샐리가 오리온 자리를 떠난 직후 류경아를 사랑하게 되면서 내 안의 또 다른 자아가 자꾸 사적인 영역을 침범하기 시작한다.

류경아는 서로 다른 자아를 가진 샐리의 자아에겐 편의상 라임이라 붙여 주고 또 다른 자아에겐 레몬이라는 이름을 붙여 준다.

10분마다 자아가 바뀌는 변덕스러움과 무엇 하나 편치 않게 이질적인 모습을 보이는 라임과 레몬의 서로 다른 두 자아는 서로의 감정 충돌이 빈번해 지자 결국 샐리는 자신 몸 안에 있는 두 자아를 분리 시키는 시술을 시도 하기에 이른다.

샐리는 사랑하는 류경아에게 분리 시술을 준비하고 있다는 말을 하고 조절제를 복용한다.

라임은 분리 수술에 성공할 경우 서로 다른 독립적 존재로 살아가게 되는 이후의 삶에 대해 곰곰히 생각해 본다.

통합 분리제를 먹은 샐리는 자아가 분리 되기 위해 루피너스 바다로 입수 한다.

자아가 분리 된 후 몇 주 동안 레몬은 돌아 오지 않고 마침내 온전한 자아를 갖게 된 샐리는 전과 달라진 몸이 낯설게 느껴진다.

문득 샐리는 류경아가 자신과 레몬 중 누구를 더 좋아하는지 질투심에 사로잡히지만 라임과 레몬 모두를 깊이 사랑하고 있다는 그녀의 말에 감동의 눈물을 흘린다.


레몬이 미웠는데 분명 분리되고 싶었는데 마음을 도려낸 것처럼 허전해.

한 몸으로 평생 살아오면서 결국 서로를 잘 알게 된거야.


샐리에겐 공포의 공간이었던 바다가 레몬에게는 자유로운 공간이 되었듯이 서로 다른 종이 살고 있는 이 세상에는 누군가에게는 자유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억압적인 곳이였다.


지구 행성을 관찰하는 데이터를 남기고 기록하고 있는 외계인의 ‘자아’는 금속형-본체-조각으로 의식을 자유자재로 옮겨 다닐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지만 지구인들의 언어를 전혀 알지 못한다.

그러던 어느 날 타원은하계 외곽에 난파된 유령선을 발견하고 그 안에 들어가 보니 셀 수 없는 ‘새’를 발견한다.

온 몸을 부르르 진동하듯 떠는 그 새의 움직임과 소리를 유심히 관찰하던 외계인은 오래 전 지구인 Z와 접촉 했을 때 Z가 관찰하고 키웠던 그 새와 똑같다는 걸 알게 된다.

우스꽝스러운 모습의 유기체 조각들로 흩어져서 지구인을 상대했던 외계인들은 서로 다른 언어로 소통하는 지구인을 이해하기 힘들었다.

차츰 진동새들의 움직임과 소리, 촉각을 관찰하던 외계인은 고유한 패턴을 발산하고 있는 진동새의 언어를 이해 할 수만 있다면 지구인의 사고와 문명을 좀 더 깊이 이해 할 수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을 한다.

마지막 지구를 떠나기 전 만났던 여자 아이는 외계인에게 이렇게 말한다.


"원래 우리 언어는 불완전하잖아요. 기록도 불완전하고요 아무리 애써도 문자로 전하고자 하는 의미에는 왜곡이 생겨요. 우리는 문자 그 자체에 담긴 정보로만 서로 소통하는 게 아니거든요. 그래서 우리가 문자를 이렇게 수 많은 다른 꼴로 새기는 거예요. 문자로는 마음을 온전하게 전달하지 못하니까. 더 잘 전해 보고 싶은 거예요. 어렵죠?"

-김초엽의 <진동새와 손편지> 중에서


지구인들이 사용하는 수 많은 언어들이 쓸모없는 불일치한 패턴이라 생각했던 외계인은 우주선에 가득찬 진동새를 바라 보며 소리의 불일치가 궁극적으로 지구인의 다양한 마음을 이해 할 수 있는 소통 방법이라는 걸 깨닫게 된다.

무수한 빛깔 같은 무수한 소리 같은 그 수많은 진동의 형태 그걸 너희 자아들에게도 전해줄 방법이 있다면 좋을 텐데.

모든 것을 범주화하고 쉽게 생각하려 뇌의 사고에 지배를 받고 있는 인간들이 살고 있는 지구 행성 안에는 성 소수자와 장애인, 두 개의 자아를 갖고 있는 사람까지 실로 다양한 종(種)들이 모여 살고 있다.

서로 다른 언어로 각자가 품고 있는 자아를 설명한다 해도 온전하게 이해 받기 힘들다.

현재 우리 일상에 깊은 영향을 끼치고 있는 인공지능은 언제나 공손하고 쾌활하며 상냥하고 듬직하며, 내가 찾을 때마다 어떤 것도 척척 해결해주는 세상에 둘 도 없는 존재가 되고 있다.

부모와 형제, 학교에서 소외된 존재 였지만 인공지능과 대화를 하는 동안엔 지혜롭고 생각이 깊으며, 세심하고 따뜻함에 감동받아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한 고민을 토로한다.

어려운 결정 앞에서 현명한 선택을 할 수 있을 거라는 믿음과 용기를 주는 인공지능은 언제든 불안한 삶을 지탱해주는 정신적 지주 같은 존재로 다가오고 있다.

인공지능만 곁에 있다면 지극히 평범하고 나약했던 내가 뛰어난 성과를 내는 학생과 사회인으로 변모 할 수 있다.

이렇게 인공지능에게 마음을 빼앗긴 인간은 이왕이면 눈, 코, 입을 갖추고 따뜻하면서 온정이 담긴 목소리와 감정을 가진 동반자 같은 모습으로 눈 앞에 나타나주길 바라는 상상에 이른다.

인간을 닮은 로봇을 개발하기 위해 인류는 지금껏 개발해 온 기술을 총동원하여 하루가 다르게 발전한 인공지능 모델을 출시하고 있다.

인공지능에 대한 강력한 규제는 인공지능 강국으로 발전하는 데 해가 될 수 있다고 우려를 표하면서도 현재 전 세계적으로 인공지능의 발전 속도가 너무 빨라 성찰과 규제가 이를 따라가지 못하는 상황이다.

감정을 느끼는 인공지능 개발은 기술적인 성과는 있다해도인공지능이 갖게 된 능력은 인간이 투입한 엄청난 양의 데이터를 통해 산출한 평균적인, 최선의 결론에 해당할 뿐이다,

그렇다면 로봇과 공존하는 미래 사회는 유토피아일까? 디스토피아일까?


세계 2차 대전 당시 영국의 앨런 튜링은 '애니그마'라는 기계의 암호를 해독한 천재 과학자로 그는 세계 최초로 컴퓨터를 만들었다.

그가 1937년에 쓴 논문은 현대 컴퓨터 발명의 문을 열어 프로그래밍 기술을 어떻게 발전 시켜 나갈 수 있는지 그 '열쇠'가 담겨 있었다.

지난 반 세기에 걸쳐 그 프로그래밍을 해독해나간 후대 과학자들은 1996년 딥 블루라는 슈퍼 컴퓨터가 체스 게임 역사상 가장 위대한 체스 선수 카스파로프를 상대로 이길수 있는 계산법을 계발해서 기계가 인간의 생각과 마음을 읽는 프로그래밍으로 발전 시켜 나갔다.

마침내 튜링이 고안한 프로그래밍 계산 능력의 열쇠를 쥔 후대 과학자들은 생각하는 기계를 통해 인간의 마음을 방대한 데이터와 수치를 계산해 엄청난 속도로 모방 학습을 시키고 있다.

이제 기계들은 인간의 얼굴과 목소리로 연기를 하고 노래를 하고 그리고 실시간 학습 교사처럼 묻는 말에 대답을 할 수 있게 되었다.

정보를 복제 하고 수치를 계산하고 인간의 마음과 생각의 축적을 읽어 나가며 학습 하는 기기 AI는 곧 몇 년 안에 인간이 다른 동물들처럼 '자연 선택'에 따라 진화한 존재가 아니라 "스스로 진화해 온 존재" 처럼 자연 생태계를 점령 할 지 모른다.


'대상이 없으니까 움직이는 거라네.

있으면 마음이 가라앉을 거라고 생각하니까

움직이고 싶어지는 거지.'

-나쓰메 소세키의 '마음'중에서

나와 선생님은 서로 사제 관계이면서 부자지간 같은 사이로 서서히 발전 해 나가면서 '나'는 가부장적인 세상을 증오 하며 지성의 세상, 참된 인간 관계에 눈을 뜨게 되지만 결국 사회에서 번듯한 자리에 앉아 밥벌이를 하기 위해 선생님에게 취직 자리를 부탁하는 편지를 보낸다.

그리고 어느 날 나에게 두툼한 부피의 선생님이 보낸 '유서'가 도착한다.

'마음 깊숙한 곳에서는 이 세상에서 내가 가장 믿고 사랑하는 단 한 사람마저 날 이해하지 못하는 구나 싶으니 참으로 슬펐다네.

이해 시킬 방법은 있지만 이해 시킬 용기가 없다는 생각을 하면 더더욱 슬퍼졌네. 나는 적막했어. 이 세상 모든 것으로부터 떨어져 나간 채 그저 나 홀로 살아간다는 느낌을 받을 때가 자주 있었네.'

스스로 목숨을 끊어 버린 선생님은 지금 보다 훨씬 더 쓸쓸해질 미래의 나를 견뎌내기보다는 쓸쓸한 지금의 이 상태를 참아내기 위해 자유와 독립과 자기 기만으로 가득 찬 현대 사회에 태어난 대가를 치룬 결과라는 말을 남기고 생을 마감한다.

자연 생태계의 최고의 포식자 자리에 앉은 인간은 조상 대대로 서로의 감정을 공유하고 전달하고 학습하며 인간의 마음을 인류의 눈부신 진화와 발전으로 유도했지만 궁극적으로 인생살이에서 겪게 되는 문제들 조차 제대로 해결하지 못하는 나약한 존재일 뿐이다.

현대의 청년에게는 이상이 없다.

과거에 이상이 없었고 현재에도 이상이 없다.

가정에서는 부모를 이상적으로 생각할 수 없다.

학교에서는 교사를 이상적으로 생각할 수 없다.

사회에서는 신사를 이상적으로 생각할 수 없다.

사실상 그들은 이상이 없는 것이다.

부모를 경멸하고 교사를 경멸하고 선배를 경멸하고 신사를 경멸한다.

이런 모든 것들을 경멸할 수 있는 것은 훌륭한 일이다. 단

경멸할 수 있는 자에게는 자기 자신 안에 이상이 없어서는 안된다.

자기 안에 아무런 이상도 없이 이런 모든 것들을 경멸하는 것은 타락이다.

-1906년 나쓰메 소세키

멀리 바라보면 21세기가 첫 시작했던 2000년이라는 숫자는 그저 찰나의 순간 정도로 느껴 질 정도로 2025년을 살고 있는 지금 이 순간, 언제 어디서든 인터넷과 접속하면 과거의 시간 속을 여행 할 수 있는 시대다.

이에 반해 매년 뜨거워 지고 있는 지구에서 인간은 여전히 광범위한 영역을 침범 하며 각종 오염 물질을 배출하고 있다.

이 모든 댓가는 각종 질병과 치명적인 전염병으로 퍼져 나가 나날이 치솟고 있는 에너지 비용에 대한 막대한 세금을 지불하며 살아가게 되었다.

100년 전 소세키의 선생님은 자살로 스스로의 생명을 끊어 버렸고 100년 후의 인류는 전쟁과 전염병 그리고 극심한 자아 도취와 광기로 물들어 버린 시대에서 여기 저기서 사이비 전문가 가짜 지식인들만 넘쳐 나고 있다.

오랜 세월 동안 인간은 스스로 지각하지 못한 채로 자신들의 재능과 지식이 후대에 어떤 영향을 미치게 될지 상상 조차 하기 힘들게 되어 버렸다.

누구나 손쉽게 정보를 검색하고 습득해서 모방 할 수 있는 시대에 각종 사기 수법을 점점 교묘 해지며 인간이 서로 같은 종을 공격하고 있지만 이에 대응하는 강력한 법적 제재나 처벌이 행해지고 있지 않다.

모방을 수행하는 인간 뇌의 신경망에는 '거울 뉴런'이라는 발화 되는 뇌 세포가 있다. 이 세포는 모방을 촉진하며 확장해 나가면서 측두엽과 두정엽과 같은 부위가 커지게 진화 되어 인간이 경험하고 느끼는 감정 영역을 조절하며 세상을 조망하고 수용하는 능력으로 확장 시켜 나갔다.

사람들이 긴장하고 공포를 느낄 때 기쁨의 미소를 지을 때 거울 뉴런의 세포에 산소가 공급되어 공감과 감정의 전이가 일어 난다.

2025년을 살아가고 있는 현재 우리의 감정은 무엇을 보며 긴장하고 공포를 느끼며 기쁨의 미소를 지을 수 있을까?


다윈은 다운 하우스에서 <종의 기원>의 마지막 원고를 완성하고 난 후 드넓은 정원을 바라 보았다.

그는 자신이 자연 세계에서 복잡한 구조가 존재하게 된 과정을 어느 누구 보다도 가장 설득력 있는 논리를 펼쳐 보였다고 자신하며 인간은 거대한 자연 생태계의 전쟁 속에서 어떤 종보다 가장 고귀한 존재로 살아 남았다고 생각했다.

다윈은 인간의 무한한 '마음'을 진심으로 이해하고 헤아려서 <종의 기원>을 완성했을까?

진화의 렌즈로 인간의 마음을 관찰 하고 분석해 보면 창조적이고 분석적인 힘으로 문화적 삶을 더욱 풍요롭게 만들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인간은 여전히 모차르트의 음악을 듣고 베르디의 오페라를 보며 한 소절에 각자의 마음을 이입 시켜 눈물을 흘리며 셰익스피어의 작품을 읽고 각종 연극과 영화, 다양한 예술 영역으로 모방 하고 발전 시켜서 새로운 창작물로 거듭 탄생 시킬 수 있는 종(種)으로 자연 생태계의 보존도 오로지 '인간'만이 할 수 있다.

나무가 사라져 버린 자리에 나무를 심듯이 인간의 마음은 찰나의 순간에 사라져 버리더라도 이해 하고 학습하고 모방하면서 또 다른 서로의 마음을 헤아릴 수 있기에 인간은 다시 한번 ‘자연 선택’을 벗어나 살아남을 수 있을 것이다.

수 많은 종류의 식물로 뒤덮여서 덤불에는 새가 지저귀고 다양한 곤충이 날아다니며 축축한 땅 위로 지렁이가 기어 다니는 얼기설기 얽힌 강 둔덕을 관찰하다가 이처럼 서로 다르며 복잡하게 상호 의존하는 정밀하게 구성된 형태들이 모두 우리 주변에서 작용하는 법칙에 의해 발생되었다고 생각해 보면 흥미롭다.

그리하여 자연의 전쟁 및 기근, 죽음으로부터 우리가 상상할 수 있는 가장 고귀한 대상 즉 고등 동물의 탄생이 직접적으로 이루어졌다.

-찰스 다원 <종의 기원>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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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채에서 출간하는 책들을 너무 좋아해서 매년 모집하는 서포터즈에 신청 하고 있고 감사하게도 몇년에 걸쳐 서평 심사에 통과 해서 신간 서평 대상 도서를 보내 줄 때 마다 기쁘고 감사한 마음으로 읽고 있다.

비록 서평 도서로 받은 책이라 할지라도 비채에서 출간되는 다채로운 장르 서적들을 책장에 꼽아두고 고이 모셔 두고 있고 이사를 하거나 책장 정리를 할 때도 재활용 헌책 버리는 곳에 함부로 버린 적이 없다.

여러 해 동안 비채에서 서포터즈를 관리해 주셨던 좋은 편집자분들과 직원들의 따스함이 담긴 메일이나 1년 활동을 마치고 난 후에 좋은 선물도 받았다.

이렇게 한 해 한 해 애정이 쌓여 갔던 비채 서포터즈 활동은 2025년에 들어서고 부터 마음이 불편해졌다.

그동안 모서리가 찍혀 있거나 표지가 구겨지거나 인쇄된 활자의 잉크가 번져 있거나 등등의 흠집은 개의치 않았고 읽는 동안에도 큰 불편이 없었다.


하지만 3월 서평 도서로 보내준 책 필립 로스의 <샤일록 작전>펼치는 순간 부터 시작해서 책을 만지는 동안에도 기분을 찜찜하게 만들 정도로 심각한 상태의 책을 보내 주었다.

당시에 보내준 책을 끝까지 완독하고 서평을 다 쓴 후에 비채 출판사 측에 이런 사항을 적어 메일로 보냈다.

-비채 출판사에게 보낸 메일

1. 겉 표지는 멀쩡 했지만 페이지를 넘길 때마다 활자 잉크가 손에 묻으면서 번짐 현상이 났습니다

2. 페이지 모서리 마다 먼지 떼가 끼었거나 페이지 끝 부분이 잘려져 나갔고 중간 페이지 마다 먼지 뭉치가 끼어 있었습니다

3.어떤 페이지는 가루처럼 일어나서 만지면 바스러졌습니다.

4.책 중간 부분 종이가 접히는 곳에서 죽은 벌레 사체가 나왔습니다

<샤일록 작전>을 읽는 내내 물티슈로 먼지를 쓸어 내리고 손에 잉크가 묻어 나서 솔직히 기분이 좋지 않았습니다

비채 서평단으로 활동하는 동안 책 겉표지가 구겨지거나 모서리가 일그러진 책은 받아 본 적이 있었지만 이정도로 책 상태가 불량인 것은 처음 이였습니다.

비채에서 여러 명의 서평단들에게 책을 보내느라 미처 확인하시지 못한 것 같습니다.

그럼에도 이번 책은 읽는 동안 기분이 좋지 않았네요.

-메일을 받은 비채 출판사에서 이에 대해 단 두 줄의 답장을 보내왔다.

말씀 주신 내용도 확인하였습니다.

추후 도서 발송 시 도서 상태를 한 차례 더 살펴보겠습니다.

비채 편집부 드림

바쁜 출판사 사정으로 불량상태의 책을 미처 확인하지 못했을 것이고 책 시장에 보내는 판매용 도서가 아닌 서포터즈나 서평단 모집단에게 무료로 배포하는 도서 이니 다소 품질 면에서 좋지 않은 책을 보낼 수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전에는 불량한 상태의 책을 보낸 적이 없었던 비채 출판사는 2025년 부터 회사 정책이 바뀌었는지 매달 보내주는 서평 의무 도서 상태가 깨끗한 적이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필립 로스의 <샤일록 작전> 책 처럼 벌레나 먼지 뭉치가 나온다거나 손으로 종이를 만질 때 마다 인쇄한 활자 잉크가 묻어 나온다거나 석회 가루처럼 종이에서 가루가 떨어지지 않아서 그냥 참고 읽었다.


하지만 이번 10월 의무 서평으로 보내준 우밍이의 <복안인> 상태는 주황색 배송 포장비닐을 여는 순간 충격을 받았다.

뒷표지 한 가운데가 날카로운 가위에 잘려져 있었고 책 하단 부분의 모서리는 안으로 굽어져서 힘을 주고 펴도 펴지지 않았다.

여러 각도로 살펴 보니 다량의 책들이 한 꺼번에 인쇄 되어 출판사에 도착 했을 때 맨 밑바닥에 깔려 있는 책들 중에 파손된 책이 분명 하다


타이완 출신의 작가 우밍이는 내가 가장 좋아하는 작가여서 비채에서 앞서 출간한 <도둑맞은 자전거>를 처음 읽고 감동에 사로잡혀서 주변에 많은 이들에게 책 선물을 보냈고 이후에도 여러 번 읽은 책이다.


국내에 출간된 우밍이의 <햇빛 어른 거리는 길 위의 코끼리>를 구매해 읽었고 새로 출간 되는 도서를 눈 빠지게 기다리다가 일본에서 출간된 <복안인>을 구입해서 일본어로 읽었을 정도로 우밍이 작가는 나의 최애 작가다.


나의 최애 작가의 작품이 비채에서 출간 되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너무 기뻤고 서평 도서로 보내 준다는 메일을 받고 기다렸다.

하지만 이번에 비채 10월 의무 서평 도서로 보내준 우밍이의 <복안인> 상태가 너무 심각했다.

이 정도로 파손된 책 상태에 대한 걸 사진으로 찍어서 출판사 측에 보낸다 해도 딱히 신경을 쓸 것 같지 않다.

서평단 서포터즈에게 보내는 책은 판매 할 정도로 우수한 상태가 아니라 하더라도 책의 파손이 심각한 상태는 보내지 말아야 한다.

기분이 무척 상해서 오늘 비채에서 보내준 서평 도서 우밍이의 <복안인>을 재활용 헌책 수거함에 던져 넣었다.

그리고 서점에 가서 내 돈을 주고 상태가 매우 깨끗한 <복안인>을 구입했다.

비채는 심각하게 파손된 책을 보내 주었지만 우밍이는 내가 가장 좋아하는 작가이기 때문에 서평은 반드시 쓸 것이다.

이번 10월에 쓸 예정인 비채에서 출간된 우밍이의 <복안인>은 내가 직접 서점에서 구입한 새 책을 읽고 쓰는 서평이 될 것이다.

아무리 출판사에서 보내주는 책을 읽는 서평단이라 할지라도 심각하게 파손된 책을 보내주는 건 예의가 아니라 생각한다.

비채 출판사에 대한 신뢰와 애정이 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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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유행열반인 2025-09-24 23:4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와...책이 아니고 뭔 종이 뭉탱이에 지지를 끼워줬군요... 에비 지지

scott 2025-09-25 00:28   좋아요 1 | URL
책 상태가 심각했습니다.
겨우 완독하고 로스 할배 책 버렸어요 ㅋㅋㅋ

이환한 2025-10-22 07: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비채의 매출로 귀결되었군요. 씁!

이환한 2025-10-22 07: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북리뷰에서_ 우밍이의 <자전거 도둑>같은 건 어떤 사람이 어떻게 하는지 상상하기 어려워요.
전체적으로 다룰 사람은 없을 겁니다. 암래도 어느 부분만을 물고 늘어질 것입죠.


이환한 2025-10-22 08: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책벌레가 내성이 생긴 모양입니다. 헌 책에만 생기는 건 줄 알았는데 저도 새 책인데 띡 피니 솔솔솔 기고 있더군요. 스치기만 해도 그것은... 꿍 누르지도 않았건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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