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스트리트 저널》에서 나는 세상에 알려지지 않은 사람들의 부고를 쓰는 기자로 알려져 있다. 내가 쓰는 부고 기사 대부분은 흥미롭고 주목 받을 만한 삶을 살았지만, 대중적으로 이름이 알려지지 않은 사람들의 부고다.]
-제임스 R. 해거티
매일 누군가의 사망 시간과 날짜를 체크하는 사람이 있다.
이른 아침부터 늦은 밤까지 한 생을 마친 이에 관한 글을 쓰는 사람.
그의 직함은 월스트리트 저널 소속의 부고 전문 기자 제임스 R. 해거티
그는 매일 2~3시간 동안 전 세계에서 속보로 올라오는 망자들의 이력을 읽으며 부고 기사 작성을 준비한다.
지난 40여년 동안그가 쓴 천 여명의 부고 기사의 주인공들은 대중의 사랑을 받은 유명인들, 또는 유명했어야 하는 사람, 악명 높은 사람, 거의 알려지지 않은 사람까지 광범위하게 퍼져 있다.
그는 부고 기사를 쓰기 전, 스스로에게 세가지 질문을 던진다.
첫째, 이 사람이 본인의 인생을 살면서 이루고자 했던 것은 무엇이었을까?
둘째, 왜 그걸 목표로 삼았을까?
셋째, 성공했을까?
[의료계를 선도하던 한 의사가 사망했고, 수많은 이들이 추도사를 낭독했다. 동료들과 환자들, 의료개혁 운동가들이 거듭 말하기를, 이 의사는 강단 있고 인간적이고 명석한 사람, 주변 분위기를 북돋우고 주도하는 사람, 엄격한 교육자이자 정력적인 연구자, 항상 남의 말에 귀를 기울이는 사람이었다고 한다.]
-비비언 고닉의 <상황과 이야기> 중에서
여기 , 한 의사의 장례식 장에 추모객 자리에 앉아 있는 사람이 있다.
미국의 비평가이자 저널리스트 그리고 에세이스트인 비비언 고닉은 말 없이 조문을 하는 이들을 바라보며 누군가 낭독하는 추도사를 듣고 있다.
그 추도사를 낭독하는 사람은 고인에게 가르침을 받은 40대 여성 의사로 그녀가 읽는 추도사를 통해 세상을 떠난 한 사람의 인생을 떠올리며 눈물을 닦아내고 있다.
어떤 추도사였길래 저널리스트 이자 에세이스트인 비비언 고닉의 눈에 눈물을 흘리게 만들었을까?
[추도사 연사는 선배 의사의 가르침을 받으며 성장했던 풋내기 의사 시절의 자신을 떠올렸다. 이 기억은 추도사의 구조를 결정하는 구성 원리로 작용했다. 구조는 질서를 부여했다. 질서는 문장의 모양새를 다듬었다. 다듬어진 모양새는 언어의 표현력을 더욱 높혔다. 농밀해진 표현력은 연상에 깊이를 더했다. 한 젊은이의 견습 시절 분위기를 전하는 묘사, 사회 변동기의 의료업, 그리고 잘못을 지적하기만 할 뿐 칭찬에는 인색한 스승에 대한 양가감정이 켜켜이 쌓여 마침내 하나의 드라마가 짜였다.]
-비비언 고닉
비비언 고닉은 이날 40대 여의사의 추도사를 통해 어느 한 사람에 대해 말해지지 않은 것, 결코 말로 할 수 없는 것 까지 전부 알게 되었다.
그녀는 한 망자가 남긴 인간관계의 따스하고도 고통스러웠던 불완전함에 통감했고 그 날 장례식장에서 받은 감동의 추도사는 평생 그녀의 가슴 깊은 울림으로 남아있게 되었다.
오로지 고인의 업적과 삶을 추모하는 자리에서 추도사를 쓰고 읽은 여의사는 자신이 망자에 대해 말하고 있는 이유와 함께 자신이 왜 이 자리에서 그의 삶에 대해 말하고 있는지 놀라울 정도로 명료한 언어로 말했다.
흔히들 누군가에 대한 이야기를 글로 쓸 때 자신의 머릿 속에서 뭉뚱그려진 하나의 이미지가 두서 없이 종이에 쏟아져 나오게 된다.
그렇게 쏟아낸 글 속에는 글쓴이의 시각과 어조, 구사하는 문장의 리듬과 대상이 적절한 위치에 들어서 있지 않게 된다.
결국엔 온갖 넋두리와 , 푸념 , 변명 그리고 모호한 주제, 흐지부지한 결말로 마무리 될 뿐이다.
자신이 쓴 글을 다른 이들에게 공감력을 끌어내는 것은 쉽지 않다.
아무리 어렵다 해도 에세이나 회고록을 쓸 때는 소설가나 시인처럼 자기 성찰이라는 견습 기간을 거치며, 왜 말하는가, 누가 말하는가를 동시에 알아내야 하는 이중고를 겪는다.
읽혀지는 세상의 모든 글에는 상황과 이야기가 있다.
그 상황이란 특정 주제의 맥락이나 주변 환경, 중심 플롯이고, 이야기란 글쓴이가 풀어내는 감정적 경험과 통찰력으로 허구의 인물과 시대를 창조하는 것이다.
우선, 좋은 글은 두 가지 특징을 갖고 있다.
첫째,활자가 꿈틀거릴 정도로 살아 숨 쉬며 읽는 독자들이 무언가 발견하고 알게 되고 궁극적으로 납득 시키는 글이다.
둘째, 시인과 소설가, 기자와 칼럼니스트, 기타 창작자들 모두 독자들에게 특정 상황과 이야기를 최대한 솔직하고 정직하게 써야 한다.
“그 사람에 대해 들어본 적은 없지만, 그의 이야기는 무척 매력적이었어요.”
우리는 매일 각종 매체에서 쏟아지는 뉴스와 소식을 읽는 동안 그곳이 어디인지 그 사람이 누구인지 어디서 무엇을 했는지 조차 알지 못한 채 기사를 읽고 에세이를 읽고 칼럼을 읽어나가면서 하나 씩 알아 나간다.
저널리즘에서 에세이 그리고 회고록으로 넘어 갈 수록 독자들은 점점 이야기 속의 화자에 대한 탐구심이 높아지고 더 깊어지게 된다.
따라서 글을 쓰는 이는 나와 그곳, 여기와 저곳, 그들과 저들 사이에 담겨있는 상황과 이야기가 무엇인지 확실하게 알고 떼어버리거나 축소하거나 확장 시켜서 이 모든 이야기들이 서로 어떻게 연관 되어 있는지 자신만의 언어로 써내야 한다.
'같은 일을 겪어도 사람마다 다르게 쓰게 되고 사건 순서도 미세하고 바뀌고 대사도 미세하게 바뀐다. 좋은 글은 거짓말을 마구 하면서 진실을 가리키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슬아
작가 이슬아는 구독료를 내는 회원들을 모집해 매일 글 한 편을 보내주는 ‘일간이슬아’라는 구독모델을 창안해서 높다란 문단의 벽이나 특정 문학상 수상자에 이름을 올리지 않고 자신만의 출판 판매 전략으로 작가이자 연재노동자가 되었다.
그렇게 수 년동안 글을 써왔고 드디어 온라인 서점 독자 투표로 ‘2023년 한국 문학의 미래가 될 젊은 작가’ 1위에 뽑혔다.
작가 이슬아는 에세이로 출발해서 소설과 드라마로 확장된 전방위 작가로 1인 출판사 헤엄을 운영하며 자신이 쓴 글을 직접 편집해서 출판하고 있다.
“글을 쓸 때 빼기를 되게 열심히 한다. 군더더기가 없을 때까지 빼려고 한다. 그건 문장의 리듬감 때문인 것 같다. 잘 쓴 문장들은 눈으로만 읽어도 경쾌한 리듬이 있다고 생각한다. 그 리듬감을 굉장히 중시한다.”
-이슬아

어머니와 자신의 이야기에 관한 회고록을 쓴 비비언 고닉도 자신의 삶과 어머니의 삶에서 무엇을 빼야 할지 가장 많이 고민했다.
'두 여자 모두 젊은 나이에 남편과 사별했고, 절망에 빠졌다. 한 명은 잃어버린 사랑을 찬미하는 데 남은 생을 바쳤다.'
-비비언 고닉
그녀의 회고록 집필은 더뎌져 갔고 문장은 한 없이 늘어져만 가더니 서서히 문장 속에 자기 변명만 쌓여갔다.
그리고는 지난 시절을 떠올리다 욱하는 감정이 터져 나와서 문장이 흐트러지더니 어느새 서러움이 북받쳐 올라서 쓰던 원고를 덮어버렸다.

[나는 이 이야기, 냉엄한 진실의 서술을 정당화하는 이야기를 감상적이거나 냉소적이지 않게 풀어내고 싶었다. 내게 번뜩인 통찰- 내가 어머니처럼 되었으므로 어머니를 떠날 수 없다는 사실-은 나의 지혜였다. 그런 심리적 혼란의 이야기를 절실한 마음으로 추적하고 싶었다.]
-비비언 고닉
이야기를 쓰기 위해서는 적절한 어조와 목소리를 찾아내야 하고 찾아 냈다면 쓰는 동안 쉼없이 지우고 쓰기를 반복하며 문장의 유연하게 흘러 갈 수 있게 리듬감을 부여 해야 한다.
그렇게 해야만 독자들은 서술자를 믿고 그 서술자가 이야기하는 세상 속을 보고 탐험하는 동안 한 편의 이야기에 비로소 생명력을 얻게 된다.
'인생을 벽화로 그려본다면 어떨까. 그 벽화에서 어떤 패턴이나 의미를 찾으려면 뒤로 몇 걸음 물러서서 봐야 한다. 하지만 어느 시점에는, 아무리 지루해 보일지라도 기본적인 세부 사항을 가까이에서 들여다보아야 한다.'
-제임스 R. 해거티
푸르른 청춘 시절엔 자신이 발을 딛고 서 있는 공간과 시간 한 가운데 서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나이를 먹어 갈 수록 서있는 공간은 좁아지고 중심에서 벗어나 어느덧 시간만이 떠밀려서 허둥지둥 거리게 된다.
그러다 어느 날 문득 자신이 살아 온 지난 날을 되돌아 볼 때면 흠짓 놀라게 된다.
시간이 흐를 수록 , 나이를 먹을 수록 앞으로 다가 올 날에는 플러스 + 되는 일 보다는 마이너스- 가 되는 일이 더 많아진다.
[1943년 7월 29일, 아버지가 세상을 떠났다. 같은 날 몇 시간 후, 아버지의 막내 아이가 태어났다. 이보다 한 달 전, 우리가 이런 일들에 대비하느라 모든 기력을 쏟아붓고 있을 때, 디트로이트에서 세기의 가장 잔혹한 인종 폭동이 터졌다. 아버지 장례식이 끝나고 몇 시간 후, 아버지가 장례실에 안치되어 있는 사이, 할렘에서 인종 폭동이 일어났다. 8월 3ㅣ일 아침 우리는 산산이 부서진 유리 파편들 사이를 뚫고 아버지를 모셔갔다.]
-제임스 볼드윈의 <미국의 아들 기록> 중에서
이 글을 쓴 작가 제임스 볼드위은 1943년 8월 3일 아침의 풍경에 아버지의 죽음, 새 생명의 탄생, 제 2차 세계대전의 전운이 감도는 시기에 뉴욕 할렘가의 모습을 몽타주처럼 빚어냈다.
이 시대를 살아 보지 않은 독자들은 문장을 읽어 나가는 동안 어느 흑인 남자의 죽음 속에 누군가의 아버지이면서도 폭력의 시대에 백인들에게 무차별 공격과 차별을 받았던 그 시대의 모든 흑인 남자들의 상황과 이야기로 받아들이며 공감하게 된다.
우리는 매 시간 실시간으로 올라오는 여러 상황과 이야기에 둘러 쌓여 살고 있다.
손 안에 스마트폰을 통해 우리는 때로는 전문가들이 보지 못하는 세상을 더 많이 알 수 있고 광범위한 빅테이터 수집을 통한 알고리즘 축적으로 간단한 키워드로 세상의 거의 모든 상황과 이야기를 내 스스로 찾아내 읽을 수 있다.
이렇게 나날이 읽고 쌓여가는 이야기를 읽다가 무언가를 끄적이기 시작하고 돌연 자신의 상황에 대한 이야기를 쓰게 될지 모른다.
부고 기사만 40년 동안 쓴 제임스 R. 해거티 기자는 이렇게 말한다.
'자기 이야기를 하는 것은 유언장 작성이나 다락방 청소처럼 성가신 일이 아니다. 생각보다 어렵지 않고 어쩌면 즐거운 일일지도 모른다. 뜻밖의 성과를 얻을 수도 있고 말이다. '
무언가를 완벽하게 쓸 수 있는 사람이 이 세상에 몇 명이나 될까?
글쓰기 수업을 듣고 전문 기관에서 일정 시간 동안 교육을 받아도 완벽한 글을 쓰기 힘들다.
하물며 우리 인생은 그렇게 하기에 시간이 충분하지 않다.
https://tobe.aladin.co.kr/t/scott
2023년 1월 12일 부터 투비컨티뉴드에 글을 매일 쓰기 시작해서 현재까지 총 498개 노트를 발행했다.
내일 9월 11일에는 500개 노트가 발행 될 것이다.
나는 매일 무엇에 대해 쓰면서 읽고 , 무엇을 쓰기 위해 읽고 있다.
머릿 속에 담겨진 생각을 문장으로 정리하는 동안 내가 그동안 보고 경험하고 느낀 것들을 활자로 재생 시키며 나를 탐구하며 이 세상을 유심히 관찰하고 있다.
어느 누구도 매일 글을 쓰라고 재촉하거나 등을 떠다 밀지 않지만 현재 이 순간에 벌어지고 있는 모든 상황에 대한 글을 쓰면서 내 삶에서 일어나고 있는 미묘한 변화를 감지하게 되었다.
故신영복 선생님은 이런 말을 남기셨다.
'훌륭한 사람 중에 글을 못 쓰는 사람은 많다. 좋은 글씨를 남기기 위해 결국 좋은 사람이 될 수밖에 없다’
내가 쓰는 문장이 형편 없어도 매일 단어를 고르고 문장을 다듬는 동안 결국엔 좋은 글을 쓰게 되면서 좋은 사람으로 거듭 날 것이라는 희망을 품고 오늘도 글을 쓴다.
'너무 늦기 전에 우리가 경험했던 사소한 것들을 그냥 쓰세요. 혹시 당신이 20살이고 죽음이 너무 멀리 있다고 느껴지더라도 지금 시작하세요. 쓰기 전까지는 당신의 인생 이야기는 세상에 존재하지 않습니다.
맞춤법이 틀리거나 디테일을 놓쳐도 괜찮습니다. 쓸수록 쌓이고 쌓이면 나아집니다.”
-제임스 R. 해거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