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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는 길을 잃었다는 느낌, 너무 멀리 낯선 곳까지 와버렸다는 느낌을 떨칠 수 없었다. 이때껏 누구도 이렇게 멀리까지 와보지는 않았을 듯했다. 공기 성분 마저 고향과는 다른 듯한 낯선 느낌, 숨이 쉬어지지 않을 정도로 낯선 느낌이었다.

-카프카의 <성> 중에서


1919년 노동자 재해보험공사에 다니고 있었던 서른 여섯 살의 카프카는 전체 260여명의 직원 중에서 단 두 명 뿐인 유대인 중 한명으로 그가 맡은 업무는 보험료를 산정하고 노동 현장을 직접 시찰하고 무수한 청원에 답변하고 재해 예방에 관한 다양한 사례를 엮은 논문을 쓰는 업무를 담당했다.

체코 보헤미안의 최고 수재들만 들어가는 카렐 대학교 법학과를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했던 카프카는 체코 최고의 재해 보험 공사에서 성실하고 명석한 직원으로 맡은 일을 깔끔하게 처리하고 고객에게는 항상 친절했다.

그의 평판은 체코 노동자들 사이에서도 유명했고 회사 밖을 나가는 즉시 180센티의 훤칠한 키와 몸에 딱 맞는 깔끔한 슈트와 모자를 쓴 모습에 수 많은 이들의 시선을 사로 잡았다.











'사무실에 나가면서 외적으로 나의 직무를 완수하고는 있지만 나의 내적 직무를 완수 하고 있는 것은 아니고, 그 완수 되지 않은 직무 하나하나가 사고로 이어지는데 그 피해는 전혀 복고되지 않고 있습니다.'

-프란츠 카프카가 루돌프 슈타이너에게 보낸 편지 중에서

서른 여섯 살 카프카는 나날이 심해지는 폐결핵 질환 때문에 밀려드는 업무를 잠시 미뤄 두고 단 2주간의 휴가를 겨우 받아 프라하에서 약 32킬로미터 북쪽으로 떨어진 보헤미아의 휴양 도시 셸레젠으로 여행을 떠난다.

셸레젠이라는 도시에 도착한 카프카는 치료를 받는 환자들만 머무는 하숙집을 숙소로 잡는다.

몇 시간 후, 그의 절친한 친구 막스 브로트가 찾아 왔다.

침대에 반듯하게 누워 있던 카프카는 친구 막스 손에 들려진 종이 뭉치가 자신이 아버지에게 쓴 수 백장의 편지라는 걸 알아차린다.


'친구, 전부 태워 주게.'


친구 막스가 대답을 하지 않자, 카프카는 허공을 응시하며 이렇게 읊조린다.


'나에게는 조상도 없고 아내도 없고 후손도 없는 사람이다. 나는 어떤 신앙과도 관계 없는 인간이다.

내가 종족으로서의 유대인과 무슨 관계가 있겠는가? 나 자신과도 아무런 관계가 없는데?'

2주 후 회사로 복귀한 카프카는 하루 하루 수척 해져 갔고 말을 하거나 삼키기도 어려울 정도로 기관지 상태는 날로 악화되어 갔다.

죽도록 멎지 않는 기침을 해 댔던 카프카는 마치 거대한 공장 기계가 기름칠을 하지 않아 쇳소리를 대는 기계처럼 마지막 연인 도라 디아만트와 담당 주치의에게 보낼 편지를 쓴다.


살아 있는 동안 삶을 감당하지 못하는 사람은 자기 운명에 대한 비관을 약간이 나마 막아낼 손이 필요하다.

하지만 다른 손으로는 그 폐허 밑으로 보이는 것들을 기록할 수 있다. 남들과 다른 것을 그리고 남들 보다 많은 것을 볼 수 있으니까. 그런 사람은 마치 죽은 사람처럼 살아 있다.

아직 안 죽은 사람이라는 말이 딱 어울린다.

-카프카, 1921년 10월 19일


침상에 누운 카프카는 자신의 마지막 단편집이자 더없이 냉엄한 내용으로 채워진 단편<단식 광대>의 교정쇄를 검토 했다.

친구 막스 브로트는 카프카에게 건네 받은 원고를 들고 출판사로 달려가 하루 라도 빨리 출간 일정을 앞당기라고 재촉하고 연인의 작품을 체코어로 가장 먼저 번역한 멜레나 에센스카는 완성된 원고를 받자 마자 매일 밤 타자기를 두드려 체코어로 번역하기 시작한다.

완성된 번역판과 최종 출간 본을 받아 든 카프카는 도저히 만족하지 못하지만 자신에게 남아 있는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고 예감하고 친구 브로트에게 두 개의 원고를 돌려 주며 이렇게 말한다.


'나는 죽는 것에 대해 끔찍할 정도로 두렵네. 그건 내가 아직 삶을 덜 경험했기 때문이겠지.'


마흔 한 살의 프란츠 카프카는 자신이 세상에 남긴 모든 글이 미완성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그는 더 이상 고치고 수정하고 다시 쓸 수 있는 시간이 없다는 걸 잘 알고 있었기에 마지막 빈 외곽의 열 두 개의 병실이 있는 사설 요양원에 입원하기 전 친구 브로트에게 자신이 남긴 모든 걸 불살라 버려 달라고 부탁한다.

그로 부터 일주일 후 1924년 6월 11일 수요일 오후 4시 마흔 한 살의 프란츠 카프카는 가족들이 지켜 보는 가운데 눈을 감고 사흘 후 프라하 유대인 공동 묘지에 묻힌다.

친구의 죽음을 곁에서 지켜 보았던 막스 브로트는 장례식을 마치고 난 후에 친구 카프카가 마지막 숨을 거두었던 시각인 오후 4시에 자신의 시계 촛침을 맞추어 놓았다.

아들의 장례를 마치고 나서 카프카의 부모는 친구 막스 브로트를 집으로 불러 아들 프란츠의 사유물 관리자로 지정하는 계약서를 내민다.

브로트는 카프카가 남긴 책상 전체를 뒤집어서 심이 부러진 연필과 목깃이 뜯겨져 나간 단추들, 구슬들, 휴양지와 온천지에서 구입한 기념품들, 문진들 공책들, 미완성 초고들, 일기들 그리고 휴지 조각까지 전부 모아서 커다란 가죽 트렁크 속에 전부 때려 넣었다.

그는 친구 카프카가 살아 생전에 입었던 옷들의 주머니까지 전부 뒤져서 작은 종이 쪽지까지 전부 찾아 냈고 심지어 방 벽지에 낙서한 부분을 칼로 도려내서 떼어낼 정도로 카프카의 흔적이 남은 모든 걸 진공청소기로 빨아들이듯 전부 모으고 모았다.

부모가 마지막 열쇠가 채워진 서랍장을 열자 펜으로 쓴 쪽지 한 장과 연필로 쓴 쪽지 한 장이 발견된다.

막스 브로트는 두 눈을 크게 뜨고 마지막 찾아낸 쪽지에 적힌 카프카의 글을 읽었다.

가장 친애하는 막스에게

내 마지막 부탁이네. 내가 남기고 가는 것 중에 공책과 원고와 편지 그리고 스케치 등등은 절대로 읽지 말고 남김없이 불태워 없애 주기 바라네. 더불어 자네가 갖고 있는 글과 그림 전부, 그리고 내 지인들이 갖고 있는 글과 그림 전부를 찾아내서 전부 태워주길 바라네.

설사 여건 상 서로 만나지 못한 다면 상대에게 태워 달라고 부탁하길 바라네

-프란츠 카프카가

카프카가 친구 막스에게 남긴 마지막 쪽지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친애하는 막스에게

다시 몸을 추스르고 일어나기가 이번에는 좀 힘들 것 같네. 폐열 증상이 한 달 째 이어지니 무슨 힘이 나서 글을 쓸 수 있겠나? 설령 쓸 수 있다 해도 그 글에는 생명력이 없는 거네.

그런 연유로 이제 내가 쓴 글 전부에 대해 마지막으로 유언을 남기면 '판결', '화부', '변신', '유형지', '시골의사' 단편으로는 '단식광대' 뿐으로 이것 들 외에 내가 쓴 것들 현재 집안 어딘가에 남겨 있는 것들을 전부 찾아 내서 불태워 주길 바라네.

나의 마지막 부탁이니 당장 그렇게 해주리라 자네를 믿겠네.

-프란츠 카프카

1939년 3월 14일 화요일, 해가 뜨지 않은 어두운 새벽 ,집을 나선 카프카의 친구 막스 브로트는 검은 색 가죽 트렁크를 챙겨서 아내 엘자의 손을 잡고 황급히 프라하의 윌슨역으로 출발한다.

만일 이 역에서 오후 9시에 출발하는 열차를 타지 못하면 막스와 그의 아내는 게슈타포에게 체포될 운명이였다.

아내 엘자의 미국 친척이 보내준 영국발 팔레스타인행 이민비자를 갖고 있었던 막스는 열종대열에 맞춰 유대인 추방 구호를 외치는 나치 청년들이 역 밖을 에워싸고 있는 광경을 숨 죽이며 지켜 보았다.

마침내 프라하의 팔레스타인 공관 책임자와 유대인 원조 단체 위원장의 보호를 받은 기차가 역에서 출발했다.

기차에 올라탄 아내 엘자가 좌석에 앉자 마자 막스 브로트는 친구 카프카가 남긴 모든 것들이 들어 있는 가죽 트렁크를 소중하게 좌석에 올려 놓았다.

두 부부가 영국 땅에 도착 했을 때 신고할 물품은 달랑 가방 한 개 뿐 정작 자신들의 소지품이 담겨진 가방은 단 한 개도 갖고 있지 않았다.

먼지와 바람만 휘날리는 황량한 팔레스타인 땅에 도착한 막스 브로트의 여권엔 54세/ 남자/ 난민 이라는 굵은 글씨가 새겨진다.

팔레스타인의 난민들끼리 모여 있는 허름한 하숙촌에 방을 겨우 구한 막스는 가방 속에서 친구 카프카의 원고 뭉치를 꺼내기 시작한다.


아멜리아는 미소를 지었다. 슬픈 미소이기는 했지만 어둡게 구겨진 얼굴을 환하게 펴주는 미소, 말로 표현되지 않는 것을 들려주는 미소, 전혀 모르겠는 낯선 것을 알려주는 미소였다.

-프란츠 카프카의 <성> 중에서

1939년 나치가 유럽의 문을 폐쇄하기 직전 프라하에서 출발하는 마지막 열차에 올라탄 막스 브로트는 오로지 친구 카프카가 남긴 것들만 챙겨왔다.

54세의 빈털털이였던 브로트는 텔아비브에서 출판인들과 편집인들 문학가들을 전부 끌어 모아 친구 카프카가 남긴 유언을 거슬러서 미완성 원고였던 ‘성’, ‘소송’, ‘아메리카’를 비롯해 카프카의 일기와 편지를 전부 세상에 공개했다.

그는 자신을 카프카의 유일한 절친으로 자칭하며 직접 카프카의 전기를 쓰고 출간 하며 전 세계를 무대로 강연에 나섰다.

2차 세계 대전 전쟁의 포화 속에 파묻혀 있었던 세계는 그를 카프카의 전문가로 칭송 하며 그가 편집하고 출간하는 카프카의 모든 저작물을 신뢰했다.

막스 브로트는 친구의 원고를 출간하는 동안 차곡 차곡 쌓여 가는 저작권 비용으로 아파트를 구입하고 자동차에 운전기사까지 고용하고 그리고 친구의 방대한 원고 편집 작업을 위해서 프라하 난민 출신의 에스테르 호페라는 여성을 비서로 고용한다.

1952년 어느 봄 날 아침, 막스 브로트는 10년 동안 자신의 곁에서 충실한 비서 일을 한 에스테르 호페를 서재로 불러 서랍에서 편지지 한 장을 꺼내 그녀가 지켜 보는 앞에서 증서를 작성해 나간다.


'친애하는 에스테르 에게 나는 나의 소유물인 카프카의 원고 및 서신 일체를 1945년에 당신에게 증여 했다.'

-베냐민 발린트의 <카프카의 마지막 소송> 중에서


치밀하게 증여한 년도를 1945년으로 적은 막스 브로트는 1924년 친구 카프카가 남긴 모든 걸 담은 검은색 트렁크 안에 담긴 모든 원고와 일기, 편지, 쪽지들 그림들 사진들까지 전부 비서 에스테르와 함께 공동 금고에 맡기고 비서에게 모든 걸 증여한다.

16년의 세월이 흘러 20세기 최고의 문학가 자리에 오른 프란츠 카프카의 책이 전 세계 언어로 번역 되었던 시기인 1968년 12월 20일, 85세의 막스 브로트는 자신의 전 재산과 친구 카프카가 남긴 모든 걸 비서 에스테르 호페에게 상속하고 생일을 몇 일 앞두고 세상을 떠난다.

나치에 의해 카프카의 세 여동생과 친지들 모두 아우슈비츠 수용소에서 생을 마감했고 막내 여동생 오틀라의 딸만 유일하게 살아 남아 영국으로 이주 했다.

이스라엘과 독일 양국가가 카프카의 원고 소유를 놓고 다투고 있는 동안 카프카의 조카는 모든 의사를 국가간의 문제로 양도하고 자신들은 카프카가 남긴 어떤 유산을 사적으로 취득할 생각이 전혀 없다는 의사를 밝혔다.

반면 막스 브로트의 비서 에스테르 호페는 1988년 카프카의 ‘소송’ 원본 원고를 200만달러에 독일 마르바흐 아카이브에 팔며 호화로운 생활을 시작하고 카프카의 원고를 하나 둘 씩 꺼내면서 전 세계 부유한 수집가들의 귀와 눈을 홀리기 시작한다.

이스라엘 당국은 이미 30여 년 전, 막스 브로트가 사망한지 5년 뒤인 1973년 비서 에스테르 호폐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다가 패소 했다.

당시 이 소송을 맡았던 판사는 막스 브로트의 최종 유언장에 따르면 비서 에스테르 호페가 브로트의 유산을 처리할 권한을 갖는다며 이스라엘 정부가 아닌 에스테르 호페의 손을 들어주었다.

2007년 에스테르 호페마저 사망하자, 두 딸 에바와 언니 루트 호페가 상속 절차를 밟으려 할 때 이스라엘 정부가 또다시 소송을 제기한다.

이스라엘 당국은 국립도서관을 앞세워 텔아비브에 사는 브로트의 비서 딸인 73세의 에바 호페에게 카프카와 브로트의 원고를 반환하라는 소송을 제기 하고 약 9년에 걸쳐서 카프카가 남긴 원고 그리고 그의 친구 막스 브로트가 남긴 유언을 둘러싼 세기의 재판이 시작된다.

“이것이 줄다리기 시합이라면, 나에게는 아무 승산도 없겠지. 엄청나게, 엄청나게 강한 상대들과 싸워야 하잖아.”

브로트의 비서였던 엄마 에스테르 호페의 유언을 공증 받기 위해서 상속 등기소에 유언 공증을 신청했다가 난데없이 거대한 소송에 휘말린 에바에게 이스라엘 국립도서관 측은 막스 브로트가 비서 호퍼 에게 유산을 넘긴 것은 증여가 아니라 신탁일 뿐이었다고 주장했다.

체코 프라하에서 유대계 가정에서 태어난 프란츠 카프카는 체코어가 아닌 오로지 독일어로만 글을 썼지만 어디에서도 독일인으로도 유대인으로도 체코인으로도 살지 않았다.

그는 생애 마지막 시기에 만난 연인 도라의 권유로 시오니즘과 유대교에 대해 공부하고 히브리어를 배우기 시작했지만 자신의 정체성을 찾기 위한 것이였지 그는 명시적으로 시온주의를 지지 한 적이 없었다.


예로부터 유대인들은 독일이 천천히 자기 방식대로 가지게 되었을 것들을 독일에 강요했고 독일은 이방인들에게서 온 것들이라는 이유에서 그것들을 반대 했다.

-1920년, 프란츠 카프카가 친구 막스 브로트에게 보낸 편지 중에서


이스라엘 국립도서관은 막스 브로트가 비서에게 넘긴 것은 유산을 어떤 조건으로 어떤 기관에 넘길지를 선택할 권한일 뿐, 그녀의 딸들에게 물려줄 권한을 준 게 아니라고 주장하며 더 나아가 카프카가 명시적으로 시온주의를 지지하지 않았다고 해도 그의 문학 유산은 유대 민족의 문화재로서 유대국가인 이스라엘 정부가 소유해야 마땅하다고 강변했다.

소송은 텔아비브 가정법원(2007~2012년)과 지방법원(2012~2015년)을 거쳐 2016년 이스라엘 대법원까지이어졌고 가정법원에 이어 지방법원에서 이스라엘 정부의 승리로 끝났고, 2016년 최종적으로 대법원에서도 이스라엘 정부의 승소가 확정됐다.

이스라엘 대법원은 에바 호페는 카프카 원고를 포함한 막스 브로트 유산 전부를 이스라엘 국립도서관에 양도해야 할 것이며 단돈 1셰켈의 양도 보상금도 없을 것이라고 판결을 내렸다.

“어느 날 아침에 뒤숭숭한 꿈에서 깨어난 에바 호페는 자기가 상속권을 박탈 당한 상속녀가 되었음을 깨달았다.”

-에바 호페











20년 가까이 정부를 상대로 소송을 벌였던 에바는 카프카 원고 인도가 한창 진행되던 2018년 분노와 억울함을 풀지 못하고 세상을 떠났다.

막스 브로트는 친구 카프카의 마지막 유언을 지키지 않았다.

1939년에는 팔레스타인으로 도피해 유대인 절멸을 시도한 나치로부터 카프카의 원고를 지켜낸 막스 브로트는 배신자 일까?

그는 85세로 세상을 떠나기 직전 까지 오로지 카프카의 원고와 편지를 출판하는데 모든 걸 바쳤다.

그의 헌신과 노력이 없었더라면 살아 생전 무명이었던 카프카가 문학사의 가장 빛나는 자리에 오르지 못했을 것이다.

세기 마다 각 국가를 대표하는 문학가들이 있다.

이탈리아는 단테가 있고 영국은 셰익스피어가 있고 독일은 괴테가 있다.

그렇다면 세기의 불후한 천재 프란츠 카프카는 어느 국가에 속한 작가인 것인가?

막스 브로트가 마지막 눈을 감기 직전까지 붙들고 있었던 원고가 있다.

친구 프란츠 카프카가 종이에 끄적였던 어느 문장에 이런 글이 적혀 있었다.












그들에게 왕이 되거나 왕의 전령이 되는 선택이 주어졌다. 모두가 아이들처럼 전령이 되고 싶어 했다.

그래서 이렇게 전령들밖에 없는 것이고 이렇게 급하게 세상을 돌아다니면서 큰소리로 메시지를 왕이 없으니 무의미해진 그 메시지를 서로 주고받는 것이다.

유랑의 삶을 끝내고 싶어 하면서도 충성을 맹세했으니 차마 그러지 못한다.

-프란츠 카프카, 1924년 9월

프란츠 카프카가 세상에 잠든지 딱 100년이 되었다.

소송은 끝났고 그의 원고를 지켜내고 세상에 알리고 그 모든 혜택을 누렸던 이들 모두 세상을 떠났다.

카프카는 평생 동안 자신의 모든 것들로 부터 자립하고 자유를 찾기 위해 치열하게 노력하고 투쟁했다.

그의 소설엔 정확한 지명도 없고 정확한 이름도 없고 신도 없다.

하지만 그가 세상에 남긴 유산은 '문학'이라는 무한한 상상력, 누군가에 의해 끊임없이 재생되고 되살아나는 불멸의 언어를 남겼다.

그가 남긴 무수히 많은 글들은 마치 하늘에서 쏟아져 내리는 별빛처럼 세기를 지나 어디든 우리 곁에서 빛을 발할 것이다.

'한 권의 책은 우리 안에 있는 얼어 붙은 바다를 깨는 도끼여야 한다.'

-프란츠 카프카, 1904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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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돌이 2024-07-08 23:48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저 오늘 카프카 소송 읽었어요. 다음엔 성 읽으려고 책 사놨고요.
카프카 얘기들 읽으면서 저 막스 브로트는 어떤 마음이었을까 많이 궁금하더라구요. 스콧님 글 읽으니 생각이 많이 듭니다. 세기의 천재의 글을 알아본 안목. 그것을 버릴 수 없었던 마음. 그러나 친구의 유언을 무시하는데 일말의 주저도 없었던 것 같은 그의 삶 - 어떻게 보면 카프카가 소설속에서 그렸던 사람들 같기도 해요.
카프카의 작품은 인류의 것이지만 굳이 소유권을 따진다면 체코 아닌가요? 제 생각은 그렇네요. ^^
오랫만에 스콧님의 훌륭한 글을 읽으니 기분이 매우 좋아지는 밤입니다. ^^
 















[열한 번째로 본 아파트는 벽장은 하나뿐이었지만 유리 미닫이문을 열고 조그만 발코니로 나갈 수 있었다. 발코니에 나가니 10월인데도 티셔츠와 반바지만 입고 바깥에 앉아 담배를 피우고 있는 남자가 길 건너편에 보였다. 윌럼이 손을 들어 인사했지만, 남자는 인사하지 않았다. ]

-한야 야나기하라의 '리틀 라이프' 중에서


(c)Todd Hido: 3878, from Interiors/Motels (2005). Photograph: Courtesy the artist



여러 도시를 순회하고 취재를 마친 어느 날 모텔로 돌아 온 한야 야나기하라는 노트북 모니터 화면의 배경 사진을 뚫어지게 응시하고 나서 첫 문장을 적기 시작한다.

하와이에서 태어나 로스앤젤레스에서 학창 시절을 보내는 동안 혈액학자이자 암 연구자인 아버지가 이 도시 저 도시로 이동할 때마다 어린 한야는 엄마와 동생과 모텔에 머물렀다.

이 도시 저 도시로 이동하는 삶에 익숙했던 한야는 스미스 칼리지를 졸업 하자 마자 여행 잡지를 발행하는 회사에 들어가 마땅한 거주지 없이 계절을 앞서 발행하는 잡지 기사를 위해 매일 밤 낯선 도시, 낯선 공간에서 삶을 꾸려 나갔다.

1년 만에 승진한 한야는 뉴욕 본사로 발령이 나고 어렵게 구한 월세 방에 들어 가는 순간 머릿 속에 예술가들이 하나 둘씩 스쳐 지나간다.

수도 없이 즐비한 이상한 복도들을 따라가다 보면 쓰지도 않는 괴상한 모양새의 막다른 구석과 마감 안 된 어정쩡한 공간들 공사 도중 버려진 석고판들이 굴러 다니는 그곳 , 잘 팔리지도 않고 일고의 가치도 없는 형편 없어 보이는 것들을 끈질기게 작업하는 예술가들이 살고 있는 그곳, 뉴욕 땅의 한 구역에서 한야는 초록색 테이프로 4구역을 정확하게 나눠 놓고 낯선 월세인들과 같은 공간에서 살기 시작한다.

도시와 도시 공간을 취재하며 이 모텔과 저 모텔에 머물며 취재 기사 편집을 마치고 나면 한야는 누군가의 이야기를 쓰기 시작했다.


주드-헤럴드-제이비-윌럼- 앤디


다섯 명의 남자들의 삶을 조각 조각 써나갔던 한야는 마지막 문장을 찍고 나서 페이지 수를 확인했다.

천 페이지 분량의 원고를 받아 든 담당 편집자는 반 이상 덜어내라고 원고를 한야에게 돌려 보내자 그녀는 단번에 '싫다!'고 거절하고 천 페이지를 고집한다.

편집자는 주드 분량을 줄이라고 두 번째 원고를 반송하고 한야는 고심 끝에 몇 몇 부분을 다듬어서 한 손에 잡을 수 있는 700페이지 분량으로 최종 원고를 완성한다.

700페이지 분량의 원고를 받은 편집자는 이메일을 통해 스티븐 킹이나 해리포터 시리즈를 제외하고는 벽돌 부피의 현대 문학을 독자들은 외면 할 것이라며 분량을 더 덜어낼 것을 요구하자 한야는 거세게 항의한다.

마지막 편집부로 부터 승인을 받은 한야는 처음 원고를 쓰기 시작했을 때부터 줄곧 머릿 속에 떠올랐던 사진 한 장을 보내며 반드시 이 사진을 북 커버로 써야 한다고 못을 박는다.

Peter Hujar, Orgasmic Man, 1969,© The Peter Hujar Archive


한 남자가 두 눈을 질끈 감고 벅차오르는 슬픔을 꾹 참고 있는 모습의 이 사진은 사진가 피터 후자(Peter Hujar 1934-1987)의 '절정에 달한 남자(Orgasmic Man)'다.

이 사진을 처음 본 담당 편집자가 커버로 쓸지 망설이자 한야는 “이 사진 속의 가차 없고 무력한 어떤 것이 내 소설 속 인물인 주드와 윌럼을 떠올리게 했다”는 말로 설득하고 “사진 속 남자가 고통스러워하는 것인지 기뻐하는 것인지”의 판단은 독자의 몫으로 남기자는 말에 편집자는 흔쾌히 동의하고 출간을 한다.

잡지사 일을 하는 동안 18개월 만에 완성한 두툼한 벽돌 부피의 <리틀 라이프>는 2015년 출간 즉시 전미 도서상 후보에 올랐지만 미국 문학계에 큰 돌풍은 일으키지 않았다.

돌풍의 시작은 영국에서 시작되어 그 해 맨 부커상 후보작에 오르며 영국의 주요 매체와 언론들의 극찬 세례가 이어지고 독자들의 뜨거운 반응에 힘입어서 영국 문학 베스트셀러 자리에 올라간다.

한야 야나기하라의 <리틀 라이프>는 안타깝게도 문학상을 수상하지는 못했지만 독자들 사이에서 청춘들의 어두운 부분을 현실감 있게 그려 냈다는 평가를 받으며 인생 책 베스트에 올라간다.

2018년 <리틀 라이프>의 눈물의 간증 고백 리뷰가 틱톡과 숏폼 영상에 올라가면서 전 세계적으로 큰 화제를 몰며 각 국가 마다 절판 된 책을 다시 찍어내기 시작한다.


[고군분투하고 있는 가엾은 사람들, 자기도 모르는, 각자의 인생을 살고 있는 수십억 명의 사람들을 다 감싸 안는 것 같은 슬픔이었다. 매일매일이 너무나 힘들 때에도, 상황이 너무나 비참할 때에도, 사방에서 사람들이 살기 위해 얼마나 애쓰고 있는지 생각하면 느끼게 되는 경탄과 경외심이 뒤섞인 그런 슬픔이었다. 인생이란 너무 슬프구나.]


비평가들로 부터 “잔인한 걸작”이라는 찬사를 받은 <리틀 라이프>는 어린 시절에 겪은 성적 학대와 폭력의 트라우마가 성장 하는 동안 한 인간의 삶을 어떻게 무너뜨리는지 인류 역사상 물질적으로 가장 풍요롭고 최첨단 기술이 정점에 다다랐지만 인간 이하의 야만성이 공존하고 있는 모순된 이 시대의 예술과 우정과 그리고 죽음을 청춘 남자들의 삶을 통해 펼쳐 보인다.
















[패트릭은 포도즙 압착기 위에 이르자 아래를 보았다. 두 개의 강철 롤러가 맞물려 한 치의 틈도 없이 서로 반대 방향으로 돌았다. 포도즙으로 얼룩진 롤러들은 요란한 소리를 내며 포도를 압착했다. 공중 통로 난간의 하단은 겨우 패트릭의 턱 높이였다. 무척 가까이 느껴지는 압착기를 내려다보며 사람 눈도 반투명의 무른 젤리로 이루어진 포도송이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자 얼굴에서 눈이 떨어져 나가 압착기 롤러에 으깨질 것만 같았다.

-에드워드 세인트 오빈의 '패트릭 멜로즈' 중에서]


명망 높은 귀족의 작위를 갖고 있는 의사 아버지 데이비드는 다섯 살 아들 패트릭 멜로즈를 10여년 동안 성폭행을 하며 신체적 학대를 자행한다.

드넓은 영지를 마음껏 뛰어놀던 상상력이 풍부하고, 자부심이 강했던 소년 패트릭은 아버지의 강압적인 성적 폭력과 가족의 무관심 속에 육체적 정신적으로 너덜 너덜한 상태가 되어 10대 부터 독한 약물에 손을 대기 시작한다.

약에 의지 하고 있을 때도 약에서 손을 때는 순간에도 반드시 잠들기 전에 책 한 권을 머리 맡에 두고 잠이 들었던 작가 에드워드 세인트 오빈은 20 여 년의 세월 동안 총 다섯 권의 자전적 소설을 써 나간다.


[패트릭은 이에 찢긴 아버지의 아랫입술 상처를 종잇조각처럼 죽 찢고 싶은 강렬한 충동을 느꼈다.

아니야, 그건 아니야. 패트릭은 그런 생각을 허용하지 않을 것이다. 커튼 봉 위로 넘어가 달아났던 그 터무니없는 필요. 그건 아니야, 그 생각을 하지 않을 것이다. 사람이 사람에게 그런 짓을 하면 안 된다. 패트릭은 그런 사람이 될 수 없었다. 개자식.

패트릭은 악문 이를 드러내고 으르렁거리듯 말했다. 아버지더러 의식을 되찾으라고 주먹으로 관 옆을 쳤다. 인생의 영화에서 이 장면을 어떻게 연기해야 할까? 패트릭은 자세를 바로잡고 경멸의 웃음을 지었다.

“아버지, 아버지는 그리도 지독히 슬픈 사람이었는데, 이젠 나도 슬픈 사람으로 만들려는군요.” 지나치게 감상적인 미국 사람 어투였다. 패트릭은 가식적으로 목이 메었다. “어유, 안되셨어.” ]

패트릭 멜로즈는 술에 손을 대고 약물 없이는 행동과 사고를 통제하지 못하고 입원과 치료를 이어나가는 동안에도 아버지의 학대와 어머니의 무관심으로 일관 했던 고통스러웠던 유년기의 악몽을 쉽게 떨쳐 내지 못한다.

어린 영혼의 상처는 10대 부터 시작된 마약과 술에 찌들어서 40대에 들어서서 겨우 중독에서 벗어나 닥치는 데로 책을 읽으며 자기 고통의 원인과 이유를 찾기 위한 글쓰기 탐구 여정을 시작한다.

어머니가 사망하고 나서 마침내 다섯 권의 책으로 완성한 작가는 자신의 정신 상태가 ‘유아기의 의식에서 오래 침전된 미 성숙한 어른'이라고 스스로 진단을 내린다.

그렇게 진단을 내리고 나서 비로소 짐승 같은 행동과 폭력을 서슴치 않았던 아버지와 귀족의 작위와 명예를 목숨 같이 여기며 오로지 사회적 체면만 내세웠던 어머니와 자신을 동등한 인간으로 바라보게 된다.

그들 부모도 조부모에게 비슷한 성적 학대를 당했고 그 조부모들도 부모에게 받은 이 끔찍한 대물림에 대해 작가의 친구이자 정신과 의사는 그에게 이렇게 말한다.

'어머니의 죽음은 네 인생 최고의 사건이지 아니, 아버지의 죽음 다음으로”













'사람들은 모두 편견의 피해자인 동시에 가해자다.'라는 첫 문장으로 시작하는 앤드류 솔로몬의 <부모와 다른 아이들>에는 게이, 청각 장애인, 소인, 다운 증후군, 자폐증, 정신분열증, 신동, 강간으로 잉태된 아이, 범죄자가 된 아이, 트랜스젠더가 된 사람들의 이야기가 나온다.

인간의 심리를 집요하게 탐구한 작가 앤드류 솔로몬은 300가구가 넘는 가족들을 상대로 4만 페이지가 넘는 분량의 인터뷰를 진행하면서 예외적인 정체성을 갖고 태어난 아이들 중 상당수는 어린 시절에 학대와 폭력을 당한 상처로 인해 부서지고 피폐된 영혼을 가진 성인으로 성장 했다는 사실을 발견한다.

작가 앤드류 솔로몬은 남들과 다른 재능과 특징을 타고 태어난 아이를 제대로 양육하지 못한 부모들 역시, 성장 과정에서 큰 문제를 안고 있었고 장애를 안고 태어난 아이에게 정상인의 신체를 갖기 위해 무시 무시한 수술을 감행하는 부모들 역시 아이의 삶보다 자신들의 삶이 우선이였다는 것을 여러 가족의 사례를 통해 펼쳐 보인다.


한야의 작품 커버를 찍은 사진가 피터 후자는 우크라이나에서 건너온 어머니가 뱃속에서 육개월 때 생부에게 버림받는다.

그는 고등학교를 졸업하자 마자 카메라 한 대만 달랑 손에 들고 뉴욕에 정착해서 독학으로 상업 사진계로 진출하고 닥치는 대로 동물, 사람들의 초상화를 날것 그대로 렌즈에 담아 1960년대 뉴욕이라는 거대한 인종의 용광로 속에서 고군분투하며 살아가는 예술가들의 시선과 영혼을 사로잡는다.

(c) Susan Sontag Peter Hujar American 1975


수전 손택은 사진가 피터 후자의 작품에 대해 이런 말을 남겼다.


'피터 후자의 카메라 렌즈에 포착된 사람들은 온전하게 드러나 있는

살갗 위로 촉촉하게 스며 올라온 슬픔이 보인다.'

-수전 손택

재능이 있는 것과 장애는 놀라울 정도로 비슷하다.

태어나는 순간 부모를 놀라게 하거나 겁에 질리게 해서 걱정스럽게 만든다.

이 세상의 수 많은 예비 부모들은 곧 태어날 아이가 장애를 갖고 있지 않은지, 재능을 타고 나는 건 아닌지 모른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한 편으론 자신의 아이가 뛰어난 재능을 갖고 태어나기를 바란다.

한야의 소설 <리틀 라이프>에서 주드는 교수의 격려와 지원을 받아 판사의 재판 과정을 돕는 연구원이 되지만 어린 시절에 수도원에 버려진 상처를 끝내 극복 하지 못한다.

아들 패트릭 멜로즈의 몸에 굳은 살이 박혀 버릴 정도로 신체적 정신적 학대를 가한 아버지 데이비드는 사회에서 존경 받는 의사로 세상의 모든 천박함을 경멸하는 삐뚤어진 자아를 가졌던 병든 인간이였다.

대다수의 부모들은 지금의 자식을 가질 수밖에 없었다고 믿고 있다.

그리고 아이가 태어나면 애초에 다른 아이를 가질 수 없었다고 믿는다.

그렇게 태어난 자식은 부모에게 운명으로 주어진 선물로 설령 장애가 있어도, 잘못을 저질러도, 상처를 주어도, 심지어 먼저 세상을 먼저 떠나도 자식은 부모의 삶의 일부가 되어 영원히 끊고 싶어도 끊어 버릴 수 없는 천륜이 된다.

사진가 피터 후자와 어머니 로즈


이 세상에 모든 걸 주는 관계란 존재 하지 않는다.

따라서 인간은 태어나는 순간 영으로 시작해서 영으로 끝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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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단씨 2024-06-28 14:27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와아...
꼭 읽어야 한다고 생각해서 목록의 가장 우선 순위에 둔 작품들이 이 페이퍼에 한꺼번에 있으니... 너무 놀라워요. ^^
잠깐 잊고 있다가 다시 상기하게 되네요.
소개 감사합니다.

2024-06-28 17:20   URL
비밀 댓글입니다.

북깨비 2024-06-28 15:4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리틀 라이프... 살까말까 살까말까 고민하고 있었는데 스캇님까지 등판하셨으니 이제 사야할 때가 온 것 같습니다. ㅋㅋㅋㅋ

2024-06-28 17:22   URL
비밀 댓글입니다.

희선 2024-06-29 04:3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부모가 가장 쉽게 망가뜨리는 게 바로 자식이 아닌가 싶네요 그렇게 하는 부모도 자기 부모한테 비슷한 일을 당했을지도... 꼭 그런 게 대물림 되지는 않기도 하겠지요 부모와 다르게 살려고 애쓰는 사람도 있을 겁니다 많지 않을지 몰라도...


희선

2024-06-30 12:44   URL
비밀 댓글입니다.
 

'그들은 각자 만의 불을 품고 모였다. 나는 이들의 손에 들려진 불들이 다음 세대를 위한 것임을 믿는다. 신은 알 것이다. 나의 태어나지 않은 딸을 위해 이 자리에 서 있노라고.'

-1970,11.27 빌리지 보이스, 비비언 고닉


1970년 미국 전역을 뜨겁게 달구었던 여성 해방 운동가들의 시위 현장에 가장 먼저 달려갔던 인물은 '빌리지 보이스' 소속 기자 비비언 고닉으로 그녀가 취재한 티그레이스 앳킨슨, 케이트 밀렛, 슐라미스 파이어스톤, 필리스 체슬러, 엘런 윌리스, 앨릭스 케이츠 슐먼 운동가들의 생생한 목소리가 전 세계로 퍼져 나가면서 뉴욕 래디컬페미니스트 창설에 불씨를 싹트게 만들었다.




[독자가 내 시선을 그대로 따라 보도록, 허구를 창작하듯 서사를 설정했는데 그렇게 나 자신을 참여적 서술자로 활용하니 독자로 하여금 그날 밤 사건을 겪은 그대로 경험하고 내가 느낀 날 것의 감정을 고스란히 느끼게 끔 할 수 있었다. 그 땐 미처 몰랐지만 나는 이미 '일인칭 저널리 즘(독자가 화자의 시선을 그대로 따라 보게 만드는 새로운 논픽션 저널리즘 양식)을 연습하기 시작했던 것이다.]

-비비언 고닉

1980년대 미디어 홍수의 시대 속에서 비비언 고닉은 날카로운 통찰력과 예리한 비판으로 우파와 좌파 지지층으로 부터 맹 공격을 받았지만 그녀가 개척한 일인칭 비평은 SNS시대의 1인 미디어 체제가 도입 되기 반 세기 전부터 독보적인 서사로 비평계에 새로운 물결을 선도 했다.

1970년대 세상을 뒤흔들며 강렬하게 들끓어 올랐던 페미니즘은 1980년대 부터 와해 되고 느슨해지면서 연대의 공감대가 무너졌고 비비언 고닉은 '이론과 실천의 괴리'사이에서 갈등하며 좌절을 거듭한 끝에 그동안 몸담았던 빌리지 보이스를 떠난다.

그녀는 대학원에 진학하고나서 사회적 공분을 불러 일으키는 공개적이고 비판적인 글쓰기에서 한 발자국 물러나서서 다른 곳에서 자신의 목소리를 낼 분야를 찾기 시작한다.


그건 바로 '나'의 이야기를 쓰는 것으로 마흔다섯 살의 딸과 일흔 일곱 살의 어머니가 뉴욕의 거리를 걸으며 대화를 나누는 독특한 형식의 자서전 <사나운 애착>을 쓰기 시작하면서 눈앞의 소재에서 구출되기를 기다리는 귀중한 이야기를 찾아 다니는 진정한 글쟁이로 다시 태어난다.



'사람은 자신의 과거를 발견해야 한다. 나는 이 사실을 인정한다. 이것이 나의 직업이었다. 그래야만 우리의 한계를 알고 연민으로 삶을 견뎌낼 수 있다.'

-비비언 고닉


1990년대 부터 프린래서 작가가 된 비비언 고닉은 회고록과 에세이, 대학 강연과 각종 일간지 서평에 이름을 올렸지만 그녀가 출간 한 책들은 2000년대 들어서 절판을 하고 독자들 사이에서 잊혀진 존재가 된다.

2006년 여성 사회 운동가 타라나 버크가 미국에서도 가장 약자인 소수 인종 여성과 아동들이 성폭력, 언어 폭력,감금, 폭행등의 피해 사실을 함께 공유하고 연대해서 세상을 향해 용기 있는 목소리를 내어 추가 발생 피해자들을 막기 위한 운동 '미투 운동(Me Too Movement)'이 촉발된다.

그리고 지난 반 세기 전 페미니즘 물결의 선봉자들의 목소리를 적극 취재 했던 기자 '비비언 고닉'의 이름이 언론과 출판계에 오르내리기 시작한다.

지난 시절에 출간 되었던 그녀의 책들이 새로운 표지로 출간 되면서 페미니즘과 저널리즘을 강의 하는 강의 시간에 화자 되어 참고 도서로 읽혀지게 되었고 1987년에 발표한 자전적 회고록인 <사나운 애착>이 2015년에 재 출간 되면서 주요 신문의 서평란에 다시 등장하게 된다.

2015년 비비언 고닉의 <사나운 애착>은 미국 문단에서 지난 50년간 출간된 회고록 중에 최고의 회고록이라는 평가를 받으며 20세기 100대 논픽션 라이브러리에 이름을 올렸다.


[친구들 사이에서 나는 뭔가를 소유하는 데 무관심한 인간으로 통한다. 원하는 게 아무것도 없는 사람 같다고들웃는다. 나는 뭐든 이름도 잘 모르겠고 가짜와 진짜, 고급스러운 것과 평범한 것도 한눈에 알아차리지 못한다.]

-비비언 고닉의 '짝 없는 여자와 도시' 중에서


80세에 비로소 세계적인 명성을 얻게 된 비비언 고닉은 영국 가디언지 인터뷰에서 '이젠 더이상 한 달 렌트비와 병원비 걱정을 하지 않게 되었다'며 서서히 주변 지인들이 세상을 떠나거나 요양원에 들어 간다는 소식을 들을 때면 자신에게 남겨진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말을 했다.


[얼마 전 한 때는 잘 알았지만 한동안 들춰보지 않았던 책의 사실관계에 대한 질문을 받았는데. 대답을 하지 못했다. 당연히 몇 장 넘기다 보면 기억나지 않은 그 정보를 금세 찾을 거라 생각했다.]

-비비언 고닉의 <끝나지 않은 일 >중에서


세상 일을 까맣게 잊은 채 손에 책을 들고 있지 않았던 시간이 기억에 없었을 정도로 스스로 태어날 때 부터 책을 읽었다고 생각 했을 정도로 독서광이였던 비비언 고닉은 자신과 함께 나이를 먹어가고 있는 책장 속에 꽂혀진 책들을 정리하면서 그 책들을 다시 읽기 시작한다.


'내 경험으론 인생 초년에 중요했던 책을 다시 읽다 보면 긴 의자에 누워 정신분석을 받는 느낌이 들 때가 꽤 있다.'

-비비언 고닉


지난 시절에 읽은 책들을 하나 씩 다시 읽으면서 사회 경험이 별로 없고 세상 물정을 몰랐던 시기에 어떻게 '빌리지 보이스'에 기사 원고를 투고 했는지, 사회 깊숙이 스며있는 성차별과 어떻게 맞섰는지 날 것의 잔혹하고도 범상하고도 내밀한 비비언 고닉의 독특한 1인칭 자기 고백의 이야기를 들려 준다.

[ 나는 몇 편의 기사를 써낸 공격적인 스타일의 이혼한 서른다섯 살 ‘여자‘가 되어 뉴욕 여기저기를 돌아다니고 있었다. 허세 아래 혼란은 깊었고, 막막함 역시 엄청났다. 내가 어쩌다 이렇게 됐지? 날마다 머리가 지끈거렸다. 그리고 여기서 어떻게 나가지? ]


서른을 앞두고 결혼을 한 비비언 고닉은 1년 만에 이혼하고 뒤 이어 또 한번 결혼 하지만 그리 오래 지속되지 못하고 두 번째 이혼을 한다.


'어느 영문학 교수가 손에 <아들과 연인>을 쥐어 주었을 때 나는 스무 살이었다.'


스무 살에 처음 읽은 D.H로런스의 <아들과 연인>은 이후 15년의 세월이 흘러 두 번의 결혼과 두 번의 이혼 후에 다시 펼쳐 들고 팔십세를 넘기고 나서 세 번째로 펼쳐 든다.


'앞 날을 바라보고 삶을 조망하면 산 채로 매장 당하는 기분이 들었다.'

-D.H로런스의 <아들과 연인> 중에서


성애 소설인가? 성장 소설인가? 마마보이의 성장기 인가? 라는 의문을 품으며 이 책을 펼쳐 들었을 당시에 비비언 고닉은 두 번째 이혼 절차를 밟고 있었거나, 언론사를 그만두고 떠돌이처럼 기사를 썼거나, 두 번의 이혼으로 어머니와 신경전을 벌이거나 그리고 마침내 어머니 마저 세상을 떠나고 홀로 남겨진다.

그녀가 인생의 매 순간 마다 펼쳐 보았던 D.H로런스의 <아들과 연인>에서 이상적인 삶, 교육받은 삶, 용감한 삶, 더 넓은 세상에서 살아가는 삶 그리고 사랑만 추구 할 뿐만 아니라 세상에서 반드시 쟁취해야 하는 목표가 있는 삶이 무엇인지 살아가는 지혜와 통찰에 이르기 까지 50년의 세월이 더 필요했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무엇보다 독서는 머릿속 가득한 혼돈으로부터 우리를 구원하며 순수하고 온전한 안식을 허한다. 이따금, 책 읽기만이 내게 살아갈 용기를 준다는 생각이 든다.'

-비비언 고닉


여든 넷의 고닉이 다시 읽기 시작한 책들은 D.H로런스의 <아들과 연인>, 시도니 가브리엘 콜레트,마그리뜨 뒤라스,엘리자베스 보엔,델모어 슈워츠,나탈리아 긴츠부르크,J.L카, 팻 바커,도리스 레싱,토머스 하디까지 40년 전에 읽었던 책들로 오랜 세월 책장 속에 잠들어서 종이색이 바래지고 활자들까지 희미해진 책들이다.


[갑자기 40여년 전 쯤 내가 그은 게 틀림없는 밑줄이 주의를 붙들더니 다음에는 내가 동그라미 쳐둔 문단이 여백에 나란히 적힌 두 개의 느낌표가 눈에 띄었다. ]


밑줄이 그어진 페이지, 동그라미를 친 구절을 읽어나가던 고닉은 '뻔한 문장에 왜 밑줄을 그었을까? 넌 대체 무슨 생각을 했던 거니? 이거 정말 흥미로운 대목인데 ?라는 질문을 자신에게 던지면서 마치 고고학자들이 흩어져 있는 파편의 조각을 맞추듯이 새로운 시각으로 자신의 지난 삶과 현재의 삶을 되돌아 본다.

(c) vivian gornik house, lux magazine


그녀가 다시 읽기 시작한 책들은 총 아홉권(미국판에 있는 E.M포스터의 하워즈 엔드 작품에 대한 내용은 한국어판에서 빠짐, 미국판은 총 열권의 책이 언급됨)으로 지극히 사소하지만 개인적인 그녀의 인생에 큰 변화를 불러 일으켰던 책들이지만 한국어로 번역되지 않은 책들도 있고 개인적으로 유대계 역사나 작가에 관해 큰 흥미가 없거나 배경 지식이 없다면 이 책은 전에 출간 된 책들 보다 그리 큰 감동이나 인상을 주지 못 할지 모른다.


이 책의 맨 첫장에 적혀 있는 작가 노트에서 비비언 고닉은 앞서 출간 된 책들 중에 문장과 문단을 인용 하거나 한 대목을 통쨰로 옮겨다 적어서 자기 표절을 서슴지 않게 했다고 독자들에게 고백한다.

80세를 넘긴 자기 자신이 다시 읽고 썼으니 독자들도 앞서 출간 된 책에서 언급했던 대목을 다시 읽는 것도 꽤 쓸모가 있을 것이라 판단한다며 양해를 구했다.

비비언 고닉이 다시 읽기 시작한 책들 중에서 나의 인생의 책은 딱 한 권으로 언제든지 어디서든지 다시 읽고 또 읽는 작가, 출간된 모든 작품을 모조리 찾아 읽고 있으며 읽을 때 마다 필 사하며 새기는 작가는 단 한 명이다.


'나 한테 삶을 더 사랑하게 하는 작품들을 자주 써준 작가는 나탈리아 긴츠부르그다.'

-비비언 고닉


나는 이탈리아 사실주의 문학과 네오리얼리즘 시대와 나온 영화와 예술을 사랑한다.

가부장적인 사회와 지독할 정도로 카톨릭 신앙이 뿌리 깊게 박혀 있는 이탈리아에서 파시즘의 폭력이 들불 처럼 일어 났을 때 활발하게 활동했던 작가들 중에서 목숨 걸고 자유를 울부짖었던 남성작가들이 있다.


반면에 피난 도중에 홀로 아이를 낳고 양육하면서 저녁을 준비하는 사이에 먹을 것을 구하고 와서 내일 먹을 양식 걱정을 하지 않게 된 날에 총성 소리가 멎은 날에 배고픔에 칭얼거리는 아이들이 잠든 사이에 틈틈이 조각 조각 파편화 된 글을 쓴 작가 나탈리 긴츠부르그가 있다.












[전쟁이 일어났고 사람들은 수 많은 집이 무너지는 것을 목격했다. 그래서 지금은 자신의 집에 있어도 예전처럼 편안하거나 안전하다는 기분을 느끼지 않는다. 어떤 상처는 치유되지 않는다.]

-나탈리아 긴츠부르그의 '인간의 자식' 중에서

시칠리아 팔레르모에서 태어나서 세살 무렵부터 토리노에 살았던 나탈리아 레비(결혼전 성)는 토리노 대학 생물학 교수 였던 아버지가 온갖 병균이 창궐한다는 이유로 학교에 보내지 않았다.

트리에스테 출신의 유대계 아버지는 완고한 성격으로 첫 번째 결혼에서 낳은 장성한 아이들이 있었고 나탈리아의 어머니는 밀라노 태생의 독실한 카톨릭 집안에서 성장해서 현실성이 전혀 없는 몽상가적인 사람이였다.

어머니에게 개인 교습을 받았던 나탈리아는 나이 차이가 많이 나고 성이 다른 형제들과 어울리지 못한 채 세상과도 단절되어 어른들의 삶을 관찰 하는 고독한 아이였다.


[난 내가 기억하고 있는 것만 썼다. 그래서 시대를 기록한 소설을 기대하는 독자는 공백이 너무 많다고 반박할 수도 있다. 실제 이야기를 소재로 삼았지만 이 책을 소설로 읽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

-나탈리아 긴츠부르그의 '가족어 사전' 중에서


파시즘과 전쟁의 상흔이 사라졌던 시기인 1963년에 발표한 <가족어 사전>은 1930년 이탈리아 토리노의 한 가족의 모습을 담고 있다.

그녀는 이 작품에 등장하는 모든 인물들이 실존 했던 인물이고 나이도 이름도 모두 허구가 아닌 실제 이름을 차용 했다고 소설 맨 앞장 서문을 통해 '기억'에 의지해 문학적 양식으로 쓴 회고록 이라고 밝혔다.


'가족어 사전'의 첫 장을 열면 이런 문장으로 시작한다.


'아버지가 고함쳤다.

'교양 없는 짓 하지 마라.'

우리가 빵을 소스에 적셔 먹으면 이렇게 소리쳤다. '빵으로 접시 닦지 마라! 교양 없는 짓 하지 마라! 추잡스러운 짓 하지 마라!'

-나탈리아 긴츠부르그의 '가족어 사전' 중에서


사회적으로 존경 받고 명망 있는 학자였던 아버지는 무자비 할 정도로 가정에서 독재자로 군림했고 파시즘이 거세 질 수록 가족을 옭아맸다.

학교에 가지 않고 집안에만 있었던 어린 나탈리아는 집안의 공기의 기류를 바꾸며 끝도 없이 치닫는 감정적 폭력으로 몸과 마음이 멍든 가족의 모습을 기록한다.


[아버지의 다른 행동이 다 그렇듯이 중재 역시 폭력적이었다. 아버지는 달라붙어 상대를 두들겨 패고 있는 두 오빠 사이로 뛰어 들어가서 그들의 따귀를 때렸다. ]


나탈리아는 돈은 없지만 놀랍게도 가난하지도 않았던 집에서 벗어나서 겨우 중학교와 고등학교 과정을 마치지만 낙제를 하고 이 상처와 굴욕감을 글쓰기로 극복하기 위해 시를 쓰기 시작한다.


첫 단편 소설을 발표하고 나서 러시아 문학을 가르치는 오데사 출신의 유대인 레오네 긴츠부르그를 만나 사랑에 빠지면서 비로소 그녀는 아버지의 그늘에서 벗어난다.

십대 후반의 나탈리아의 마음을 단 번에 사로잡은 레오네 긴츠부르그는 토리노 대학에서 러시아 문학을 가르치며 작가로 활동하다 당국에 의해 반파시스트 운동의 핵심 인물로 지목되어 투옥 된다.

한 가족이라는 울타리 안에서 서로 미워하고 갈등 했던 형제들은 막내 나탈리아를 보호 하기 위해 목숨을 걸고 탈출을 도와 주고 나탈리아는 레오네가 감옥에서 출소 한 후 결혼을 한다.

유대인 박해가 극에 달 했을 때 나탈리아는 남편과 함께 두 아이를 데리고 아브루초 지방으로 추방 당하고 온 세상이 얼어 붙어 버린 한 겨울 추위 속에 남편은 비밀 경찰에게 끌려간다.




[내가 말하고 있는 마을에 왔을 때 처음에는 모든 얼굴이 다 똑같아 보였다. 여자들은 부자거나 가난하거나 젊거나 늙거나 생김새가 다 비슷했다. 대부분 이가 없었다]

-나탈리아 긴츠부르그의 '아부르초의 겨울' 중에서


두 아이들과 낯선 곳에 고립된 그녀는 이 시절 집중적으로 글을 쓰면서 언제 어떤 식으로 죽거나 끌려갈지 모른 상황 속에서 삶의 희망을 찾기 위해 노력한다.

전쟁이 끝나고 남편이 먼저 로마로 돌아가고 나탈리아는 갓 태어난 셋째 아이와 두 아이와 함께 유배지인 아브루초에 남지만 독일군의 침공으로 마을 전체가 폭격을 당한다.

그녀는 이웃들의 도움으로 무사히 탈출해서 세 아이들을 데리고 남편이 있는 로마로 돌아 오지만 만난지 28일 만에 남편은 독일 게슈타포에게 끌려가 처형 당한다.


[남편은 우리가 그 마을을 떠난지 몇 달이 채 되지 않아 로마의 레지나 코엘리 감옥에서 숨을 거두었다. 고독한 그의 죽음이 가져온 공포에 직면해서 그의 죽음에 앞선 고통 스러운 선택들 앞에서 이것이 지로네 가게에서 오렌지를 사서 눈 속을 산책하던 우리에게 벌어진 일이 맞는지 자문해보곤 한다. 그때 나는 바라는 게 다 충족되고 다양한 경험과 함께 하는 모험들이 가득한 평탄하고 행복한 미래가 찾아오리라 믿었다. 하지만 그때가 내 인생에서 가장 행복한 시절이었고 영원히 사라진 지금에서야, 이제야 그것을 알게 되었다.]

-나탈리아 긴츠부르그


자신에게 찾아 온 불행을 담담한 어조로 읊조리듯 이야기하는 나탈리아는 남편을 감옥에 보내 놓고 아이들과 유형지에서 살아가는 동안 비로소 결혼과 육아로 중단했던 글을 쓸 수 있는 시간과 여유가 생겨난다.

남편이 감옥에 투옥 되어 있는 동안 홀로 셋째 아이를 낳은 나탈리아에게 매일 매일 불안한 나날의 연속이였지만 유형지에서 3년 동안의 시간은 그녀를 작가로 살아 갈 수 있게 만든 시간이 되고 남편이 처형 당하고 나서는 행복했던 시절은 영원히 사라지고 만다.

나탈리아아는 세 아이와 함께 로마에서 삶을 다시 시작하며 에이나우디 출판사에서 근무를 시작한다.

이 출판사는 남편이 살아 생전 동료 교수와 함께 토리노에 차렸던 출판사 지사로 나탈리아는 이 출판사에서 유대계 출신의 작가 체사레 파베세, 이탈로 칼비노, 그리고 토리노 출신의 유대계 작가이자 홀로코스트에서 구사일생으로 살아 남은 프리모 레비의 책을 출간하며 전후 이탈리아 문학의 황금시기를 맞이 하게 만드는 작품을 출간한다.

어린 시절 영어 개인 교습을 받았던 나탈리아는 뛰어난 영어 실력으로 번역일도 하며 틈틈이 자신의 글을 쓰며 동시대 작가들과 달리 정치적인 주제나, 전쟁에 관한 이야기가 아닌 지극히 사소하지만 개인적인 이야기에 집중하며 어떤 문학적 사조에 관여하거나 휩쓸리지 않았다.

1950년에 영문학과 교수인 가브리엘레 발디와 재혼한 나탈리아는 그가 영국의 이탈리아 문화원장으로 근무 할 때 함께 체류하며 개인의 기억에서 벗어나 세상과 사회 그리고 현재의 삶에 대한 글을 쓴다.


1960년에 발표한 에세이 <나의 일>은 비비언 고닉, 리디아 데이비스,엘레나 페란테 , 데버라 리비등 현재 영미 문학계에서 독보적인 창작 활동을 펼치는 작가들에게 깊은 영향을 끼쳤다.


[어떻게 해야 할까? 이제 20대 후반에 들어섰지만 허구만 섞어보려 하면 한 줄도 생동감 있게 안 나오는 마당에 어떻게 위대한 미국 소설을 쓰겠다는 건지 막막하고 깜깜하기만 했다. 그런데 때마침 나탈리아 긴츠부르그의 에세이 '나의 일'을 읽었고 거기서 내가 앞으로 나아갈 길을 보았다.]

-비비언 고닉


지난 50년동안 가장 뛰어난 회고록으로 평가 받는 비비언 고닉의 '사나운 애착'의 첫 문단은 이런 장면으로 시작한다.


[나는 여덟 살이다. 엄마와 나는 아파트에서 나와 2층 층계참에 서 있다. 옆집 드러커 아줌마가 자기네 집 문을열고 담배를 피우고 있다. 엄마가 우리 집 문을 닫으면서 그 아줌마에게 말한다. ˝거기 서서 뭐해?˝ 아줌마는고갯짓으로 집 안을 가리킨다. ˝저 남자가 하자고 해서.

나 건드리려면 샤워부터 하라고 했지.˝ 나는 ‘저 남자가아줌마의 남편이라는 걸 안다. ‘남자‘는 언제나 남편이다.]

-비비언 고닉의 사나운 애착 중에서


1961년에 출간 된 나탈리아 긴츠부르그의 <저녁의 목소리>라는 작품을 펼치면 이런 장면이 등장한다.


-어머니가 말했다. '목구멍에 덩어리 같은 게 느껴져.'

-어머니가 말했다 ' (저 장군은) 어쩌면 머리숱이 저렇게 많니, 저 나이에!'

그분이 말했다. '개꼴이 얼마나 흉해졌는지 너 봤니?'

그래도 새 의사는 고혈압이 있는 걸 찾아냈지 뭐니? 난 항상 혈압이 낮았는데 항상..'

-나탈리아 긴츠부르그의 '저녁의 목소리' 중에서

이런 진부하면서도 지극히 사소한 대화들이 줄줄이 이어지고 도대체 이 사람들은 뭐지? 왜 이런 쓸데 없는 말을 하지 등등의 생각이 꼬리를 물고 이어지다가 한 페이지 넘기고 다음 장면 그 다음 장면을 이어서 읽어나가다 보면 전쟁의 한 복판에서 살고 있는 이들의 삶에 스며들어온 살의와 두려움 그리고 전쟁의 무서움 보다 더 끔찍한 굶주림이 도사리고 있다는 걸 발견하게 된다.

비비언 고닉은 나탈리아 긴츠부르그의 글을 처음 읽고 두 번째 읽을 때 부터 마치 자신 안에 잠재 된 가능성을 발견하며 스승이 직접 작가의 삶이란 이런 거다. 창작을 하는 건 이런거다라는 걸 시연해 보여 주기라도 한 것처럼 흥분과 전율에 사로잡힌다.


2022년에 출간 한 나탈리아 긴츠부르크의 소설 <All Our Yesterdays>의 서문을 21세기 샐린저로 불리는 아일랜드 출신 작가 샐리 루니가 썼다.

그녀는 서문에서 이 작품이 지금까지 읽은 어떤 소설 보다 완벽한 작품, 완벽한 서사로 나탈리아 긴츠부르그가 구사하는 모든 문장이 마치 자신의 경험을 이야기 하듯, 삶을 엿본듯 표현해서 소름이 끼친다고 솔직한 심경을 드러냈다.

전쟁이 발발하고 가족과 뿔뿔이 흩어지고 형제들과 남편은 감옥에 투옥되고 홀로 아이를 낳는 동안에도 글을 썼던 나탈리아는 글을 쓰는 동안에 상상 할 수 없을 정도로 세상이 쪼개지고 갈라지며 그칠 줄 모를 정도로 폭탄이 쏟아지는 지옥의 시절을 견뎌 냈다.

이런 삶을 견뎌 내며 글을 쓰고 살아 남아 문학역사에 이름을 새긴 작가들이 많고 남편을 잃고 홀로 아이를 낳아 기르면서 필사적으로 글을 쓰고 마침내 문학상을 거머쥔 작가들도 있다.

그런데 수 많은 작가들이 나탈리아 긴츠부르그를 글쓰기 스승을 삼고 칭송 하며 여러 번 반복해서 읽는 이유는 어디에 있을까?

이탈리아 중등 과정 교과서에 실리는 <가족어 사전>에 이런 문단이 나온다.


[알베르토는 휴일을 맞아 학교에서 집에 와서 식탁에 앉아 오믈렛을 먹으려 하면 종이 울렸다는 이야기를 해주었다. 교장이 방에 들어와 말했다.

'오믈렛은 나이프로 써는 게 아니라고 한 번 더 말해줘야 겠구나!'

그리고 다시 종이 울리면 교장이 사라졌다. 아버지는 이제 스키를 타러 가지 않았다. 나이가 너무 많이 들었다고 했다. 어머니는 늘 그랬다.

'산이라니! 위험천만한 곳이지!' 어머니는 스키를 탈 줄 몰랐고, 실내에만 있었다. 그러나 막상 남편이 스키를 타지 않는다고 하니 아쉬워 했다.]

-나탈리아 긴츠버그의 '가족어 사전' 중에서

과거와 현재가 뒤죽 박죽인 시점 사이로 등장하는 인물들의 대화가 초현실적이면서도 눈 앞에 모든 인물들이 생생하게 살아 숨 쉬게 묘사 했다.

이런 스타일의 글쓰기는 후대에 모더니즘 적인 기법으로 1994년생 밀리니얼 세대 작가 샐리 루니가 <노멀 피플>에서 차용한 기법 중 하나다.



[나의 일은 글을 쓰는 것이다. 나는 그걸 오래 전 부터 잘 알고 있다. 내 말을 오해하지 않길 바란다. 나는 내가 쓸 수 있는 글의 가치에 대해 아무것도 모른다. 내가 아는 건 글을 쓰는 게 내 일이라는 사실이다. 글을 쓰기 시작하면 편안함을 느끼며 내가 특히 잘 아는 것 같은 본래의 영역 안에서 움직인다. 내가 잘 알고 친숙한 도구들을 사용하는데 그것들이 내 손에 딱 맞는 게 느껴진다. 다른 일을 한다면, 가령 외국어를 공부하거나 역사나 지리나 속기를 배워보려 하거나 대중 앞에서 말을 하거나 뜨개질을 하거나 여행을 떠나려고 한다면 나는 괴로워하며 다른 사람들은 그런 일을 어떻게 하는지 끊임없이 궁금해 했을 것이다.]

-나탈리아 긴츠부르그의 <나의 일> 중에서


비비언 고닉에게 스승 같은 글쓰기 교본이자 너는 작가가 될 수 있다는 에피파니 였던 이 에세이를 나는 안정된 환경을 보장해 주었던 런던을 떠나 북서쪽에 위치한 고풍스러운 중세 시대 건물로 에워 싸인 대학의 도시에서 고군분투 하던 시절에 처음 읽었다.


[우리는 이미 눈물이 말라버린 사람들이다. 우리 부모가 감동했던 것에 우리는 전혀 감동하지 않는다. 모두 사색 하고 공부하고 자신의 삶을 평화롭게 가꾸어나가길 기대했다. 그때는 다른 시대였고 아마 그 나름대로 좋았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고뇌의 끈을 끊어버리지 못한다. 그래도 궁극적으로는 인간으로서의 우리 운명에 만족한다.]

-나탈리아 긴츠부르그


그동안 내가 읽은 어떤 작가도 이런 문장을 쓰지 않았고 이런 목소리로 자신의 삶에 대해 이야기 하지 않았다.

일상에서 겪은 경험들과 목격한 것들에 대해 이토록 치열한 성찰과 인간 심리에 대해 예리한 관찰력으로 글을 남긴 작가는 나탈리아 긴츠부르그가 유일하다.

최고의 에세이스트, 저널리스트, 독보적인 이야기를 구사하는 작가들로 칭송 받고 있는 비비언 고닉, 리디아 데이비스 ,엘레나 페란테 그리고 데버라 리비의 작품들은 출간 되면 챙겨 읽지만 전 작품을 섭렵하며 수시로 들춰 보지 않는다.


우리는 허구의 이야기가 넘쳐 나는 세상에 살고 있다.

유툽이나 OTT에 온갖 이야기가 넘쳐 나고 있고 게임 세상에도 온통 이야기 천지고 예능과 웹툰까지 모든 것들이 살아가는 이야기를 하고 있다.

긴츠부르그는 고립된 외톨이 어린 시절부터 피와 폭력의 파시즘 시대에 유형 생활과 전쟁 중 피난 생활 그리고 종전 후 비로소 성인으로 성장한 아이들을 지켜보며 인간이 한 시대를 통과 하며 비로소 어른으로 성장 하는 과정을 글로 엮어 냈다.

나탈리아 긴츠부르그는 이 과정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앞에 있는 사람만 바라보는 대신 뒤에 있는 사람들을 바라보기 시작할 때 내 뒤에서 침묵하는 죽은 사람의 존재를 느낄 때 미약 하나마 자비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볼 때 비로소 어른이 된다.]

-나탈리아 긴츠부르그


우리는 언제 어른이 될까?

언제 비로소 이 세상에 어른 같은 삶을 살아 갈 수 있을까?

어른이 되었지만 나는 이 세상에 어떤 권력이나 위세를 행세 하지 못하는 미약한 어른으로 하루 하루 성실하게 일해서 꼬박 꼬박 세금이 털려나가는 유리 지갑을 갖고 있다.

만일 권력을 갖고 있다면 한번 쯤 위세나 가식을 떨며 모순투성이의 나라는 결점을 세상에 숨기게 될지 모른다.

나에게 세상을 향한 권력이 없기 때문에 나는 날마다 새로운 나의 가능성을 발견하고 내 존재를 확인하기 위해 끊임없이 읽고 쓰고 있다.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이야기의 끝은 단 하나다.

결국엔 우리 모두 죽는다. 사랑하는 이들, 미워 하는 이들 모두 한 줌의 흙으로 돌아갈 것이고 이 땅의 행성도 엔트로피가 최대가 되는 열평형 상태에 도달하게 되면 우주 속 먼지가루가 될 것이다.

그때가 되면 이 모든 것이 사라져서 텅 빈 공 空의 상태가 될 것이다.

그토록 치열하게 요란을 떨 정도로 열심히 오만하게 살았던 생명체들 모두 무無로 존재 하지 않은 상태, 모두가 0의 지점에서 끝이 난다.

이런 진실을 알고 있지만 우리는 아무것도 알지 못한다는 듯, 끝이 죽음이 아니라는 듯 살아간다.

바쁘게 하루 하루 일분 일초를 낭비하지 않고 살아도 텅 빈 공 空의 상태는 채워지지도 않고 영원히 사라지지도 않는다.

이 텅 빈 공 空의 상태를 알아차리는 순간 허무와 우울 그리고 모든 것이 헛되어 보이고 커다란 두려움이 엄습해 온다.

이런 나약함을 극복하기 위해 다른 이들이 살아 온 모습을 통해 용기와 희망을 얻기도 하고 무언가에 몰두하고 열의를 쏟아 부으며 견디고 극복한다.

1935년생 비비언 고닉은 아흔 살을 앞두고 있다.

그녀는 매일 친구들의 안부를 물으며 하루를 시작하고 쉼없이 걷고 읽고 쓰며 정신과 육체가 온전 할 때 더 열심히 하루를 보내고 있다.

84세부터 지난 시절의 책들을 다시 읽기 시작한 비비언 고닉은 읽는 자는 영원히 늙지 않고 성장한다는 말을 했다.

그녀는 회고록, 사회비평, 심층 심리 탐구와 문학 비평으로 글쓰기 영역을 넓혀 나가며 과거의 기억과 의식을 과감하게 받아들이고 끌어 안으면서 영원히 자신을 탐구하는 일을 멈추지 않고 있다.

롤랑 바르트는 다시 읽기 과정에 대해 이런 말을 남겼다.

'다시 읽기 과정은 자신의 지난 시절에 고착된 기억과 생각을 되돌아 보고 뜯어 고치고 개혁하는 힘든 과정이다. 기존의 습관을 바꾸는 것만큼 어려운 일이 없듯이 다시 읽기 과정은 자아를 재 발견하게 되어 다시 읽기 시작하는 순간 부터 인간은 새로 태어나게 된다.'



비비언 고닉은 다시 읽어야 할 책들이 많아서 더 오래 살고 싶다며 세상이 변하고 나이가 들어가는 것에 절대 두려워 하지 말고 읽고 쓰는 통합된 자아를 갖춘 지식인으로 거듭 태어나라는 조언을 했다.

'나는 여전히 대문자 L로 적힌 Life 삶의 압력을 느끼려고 읽는다.'

-비비언 고닉

2024년 1월 부터 대대적으로 책장을 정리하며 곳곳에 쌓아 놓은 책탑에 책들 중 다시 읽고 싶은 책들을 추려 내고 있다.

볼거리가 넘쳐 나는 세상에 다시 읽기에 시간을 할애 하는 것이 좀처럼 쉽지 않다.

드라마 한 편은 빨리 돌려 보고 되감아 보면서 한 시리즈를 하루 몇 시간 만에 정주행 할 수 있지만 장편 소설을 다시 읽는 데는 시간 뿐만 아니라 고도의 집중력과 끈기가 필요하다

하지만 다시 읽어 나가면서 전에는 이해해 보지 못했던 것들, 인간관계 그리고 이 세상의 한 부분을 이제는 경험하고 체득했기에 또 다른 나의 자아를 들춰 볼 수 있는 소중한 경험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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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읽는나무 2024-05-20 22:50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저도 <끝나지 않은 일>을 조금씩 읽고 있는데 읽으면서 ‘소설 다시 읽기‘에 대해 감명을 받고 있어요.
스콧 님도 다시 읽고 싶은 책을 추려내셨군요. 어떤 책일런지?^^

Life 삶의 압력을 느끼려고 읽는다.
고닉은 참 존경스럽습니다.^^

2024-05-30 19:23   URL
비밀 댓글입니다.

초란공 2024-05-21 00:4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비비언 고닉에 대해, 나탈리아 긴즈부릌크에 대해 더 자세히 알게 되어 반깁고 기쁘네요! 정성이 담긴 귀한 글 잘 읽었습니다~! 저도 요사이 ‘읽기’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고 있어요. 읽을 수 있는 책은 한계가 있고, 눈은 나빠지고, 집중력과 체력은 바닥나고있어서 더 그렇기도 하구요. ^^;

scott 2024-05-30 19:21   좋아요 0 | URL
이 책은 고닉의 앞서 출간된 책에서 언급했던 이야기가 이어지거나 중복되기도 하고 팔순을 넘긴 나이에 이정도 기억력과 필력을 갖춘 것 만으로도 대단!

읽고 싶은 책은 많지만 눈과 집중의 한계가 있어서 먹고 자는 시간을 줄여야 이번 생에 책읽기의 행위를 이어나갈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초란 공님의 읽기는 지적인 읽기
저는 그냥 팔랑, 팔랑, 휘리릭 ^^

물감 2024-05-30 12:0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알라딘 서재에서 비비언 고닉에 대해 많이들 얘기하지만 손이 안갔던게, 어쩐지 어렵게 느껴진다는 편견이 생겨서였거든요. 스캇님 글 보고 읽어봐도 좋겠다는 생각이 이제서야 듭니다. 감사합니다!

2024-05-30 19:19   URL
비밀 댓글입니다.
 

매년 주기적으로 책의 날이 있는 달이면 독서 인구층은 점점 줄어 들고 있고 1년에 책 한 권 안 읽는 비율이 50퍼센트를 넘어섰다는 발표를 하고 있다.

종이책, 전자책에 모두 포함해서 2024년은 역대 최저치를 찍었다.

세계적으로 독서 인구층이 점점 줄어 들고 있는 추세 속에 한국은 전 세계에서 가장 빠른 인구 소멸과 독서 인구 소멸의 최상위 단계로 진입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매년, 매달 베스트 상위를 차지 하고 있는 책들 상당수는 사는 것과 살아가는 것에 대한 책들로 작년 부터 시작된 쇼펜하우어 철학 열풍은 2024년 상반기 까지 이어지고 있다.











200년전 금수저 집안 출신의 깐깐한 독신남으로 살다 세상을 떠난 쇼펜하우어가 남긴 명언들이 2024년을 살고 있는 한국인들에게 큰 위로가 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인간은 누구나 자신이 하고자 하는 것과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아야 한다. 자신이 하고자 하는 것(욕망)과 자신이 할 수 있는 것(능력)을 분별하는 자기 인식이 행복의 전제 조건이다.]

- 쇼펜하우어


태어 날 때부터 극한의 경쟁의 세상으로 내던져 지는 한국 사회에서 영어 유치원 열풍, 수학 영재, 의대 입시반, 각종 자격 시험을 향해 줄곧 달려서 부모 세대보다 더 많은 교육비를 쏟아 부어서 사회로 나오는 순간 도살 될 차례를 기다리는 소떼, 돼지떼들 같다는 생각을 품게 된다.

육체적 고통의 크기 만큼 견디기 힘든 건 정신적 고통으로 일상에서 일과 가정, 사회에서 소소한 행복과 기쁨을 느끼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쇼펜하우어는 애초에 인간이 이 세상에 태어나는 순간부터 부질없다는 말을 남겼다.

따라서 인간적 동물의 삶이 비인간적인 동물의 삶보다 더 낫지도 않아서 결국 삶은 무의미하다는 결론을 내리고 '한 동물이 다른 동물을 잡아 먹을 때 그 동물들 각각 느끼는 바를 비교해보라'는 질문을 던진다.

그렇다면 만일 들판을 뛰어다니는 '나'라는 소가 저 멀리 지켜 보고 있는 도살자에게 선택 당하는 운명이라면 오늘 마음껏 발에 밟히는 데로 풀을 실컷 뜯어 먹어 버릴 것이다.라는

운명을 깨닫게 되는 순간. 현실의 안락함, 평안함, 명예, 부귀 심지어 어제 주문한 물건들에 대한 어떤 집착이나 아쉬움 조차 남아 있지 않는다.

어차피 지구 상 모든 생명체들은 언젠가는 이 땅에서 사라져 버릴 운명이다.

이런 운명을 알고 있음에도 오늘은 좋지 않아도 내일은 더 좋아 질 것이라는 희망을 품고 온갖 어려움, 힘듦을 견딜 수 밖에 없다.

그러나 200년 전 쇼펜하우어는 이에 대해 이런 말로 일침을 가한다.


'오늘은 좋지 않고, 내일은 더 나빠질 것이다.

그리고 최악이 될 때까지 계속해서 그럴 것이다.'


현재 세상 돌아가는 상황과 지구촌 곳곳에서 발생하고 있는 일련의 전쟁과 재난, 고통의 문제들이 내일 그리고 내년까지도 더 나아질 것 같지 않다.

그럼에도 우리는 오늘도 일하고 걱정하고 고통에 시달리는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다 하루를 마감하기 전 단 몇 시간 동안 스마트 폰과 영상물, 이런 저런 소문과 뉴스 덩어리들의 조각글을 읽다 잠이 든다.

우리가 소망 하는 건 그다지 대단하지 않다.

살아가는 데 가장 기본이 되는 의-식-주를 걱정 없이 해결 하기만 하면 된다.

의-식-주만 해결 된다면 대단한 행복을 맛보지 않아도 그럭 저럭 세상에 살아 갈 수 있다.

그러나 이에 대해서도 쇼펜하우어는 이런 일침을 가한다.


[삶을 그렇게 보는 시각에 익숙해지면 당신은 자신의 기대를 적당히 조절 할 것이며 모든 불쾌한 사건들을 이례적이거나 규칙을 벗어난 일로 보기를 그칠 것이다.

아니, 당신은 우리 각자가 고유의 특수한 방식으로 존재의 죗값을 치르는 세계에서 모든 것이 마땅히 그러해야 하는 대로 그러함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전 세계 거의 모든 종교의 공통된 가르침은 다음과 같다.


'이웃에게 관용을 베풀고 힘듦과 고통을 인내하고 서로 존중하며 사랑하라.'


세상의 모든 생명체는 태어나는 순간 부터 평등하지도 공평하지도 않은 세상에 떨어진다.


그렇다면 산다는 건 무엇일까? 생명을 유지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마지막 순간까지 참을 수 없는 고통의 상황에서 죽음을 맞이하기 보다 좀 더 편안하게 조금은 덜 고통스럽게 죽기 위해서 오늘을 희생하고 있는 것일까?


우리는 출발선에 서는 순간 부터 지속적으로 내리막길을 가는 것이다. 행복하게 꿈꾸는 유년기를 지나 모든 것이 새로운 불만으로 가득 찬 청소년기를 지나 고생과 고난으로 가득 찬 성인기를 지나면 모두 다 비참한 노년을 맞이 하며 온갖 잔병과 괴로움들이 한꺼번에 몸 밖으로 나오게 된다.

죽음에 이르는 과정이 어느 누구에게나 똑같이 찾아 오지 않는다 해도 세상의 시작과 끝의 종착지는 단 하나의 고통만 기다리고 있을 뿐이다.

쇼펜하우어의 철학적 분석은 기본적으로 옳은 말이다.


고통- 현재의 삶의 덧없음-확정된 죽음의 시간


이 모든 것이 삶의 의미를 방해하고 의미 있는 죽음을 방해 하고 있다면 애초에 태어나지도 말아야 했다.

그렇다면 우리는 왜 살아야 하나?

우리는 죽음에 대해 아무것도 모른다.

보여지는 나의 몸은 만져 볼 수 있고 어디에도 비춰지지만 내 안에 있는 마음, 정신의 세계는 볼 수도 없고 보이지도 않는다. 그러나 나는 느낄 수 있다.

오늘 내가 어떤 생각을 했고 어떤 감정을 품었으며 무엇에 화가 났고 무엇에 기뻐 했는지 자각 할 수 있지만 딱 여기까지다.

나의 앎은 여기서 끝이 나고 죽기 전까지도 어쩌면 내가 누구인지 모른 상태로 끝이 나버릴 것이다.

'과거의 행복에 매달리지 말고 미래에 행복을 미루지 마라.'


2024년의 달력이 4장이 넘어 갔다.

앞선 시간은 두 번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 그렇다고 미래의 시간들이 이전의 시간보다 좀 더 많이 주어지지도 않을 것이고 무한하게 펼쳐지지도 않는다.

과거는 이미 지나가서 없고 오지 않는 미래를 걱정하기에 현재의 내 코가 석자다.

무심코 틀어 놓은 화면에 익숙한 얼굴들이 나온다.

물론 그들은 나를 모르지만 나는 그들의 생활과 취미 그리고 어디로 여행을 가서 촬영했는지 알고 있다.

대한민국은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은 예능 프로그램을 시즌 별로 방송 하고 있다.

화면 속 스타들의 삶은 너무 쉽게 재밌게 유익하게 살아가고 있고 주변 사람들과 두루 두루 원만하게 행복하고 다정한 사이로 지내고 있다.

재미로 하는 게임과 시합에서만 경쟁 하는 것 처럼 보이는 이들의 삶은 몇 편의 프로그램에서 먹고-놀고-여행하고- 그리고 몇 시간 수다를 떨며 살아가는 것 자체가 즐거운 예능 프로그램이다.

사는 동안 평범한 것들로 부터 행복과 기쁨, 즐거움을 느끼지 못한 채 타인의 모습을 통해 대리 만족을 하면 할 수록 살아가는 것 자체가 불행하다고 느끼게 된다.

삶은 우리가 바라는 걸 전부 주지 않는다.

욕망을 버리고 체념하며 모든 걸 받아들여야 한다 해도 마음의 상태는 쉽게 떨쳐 버리거나 지워 버릴 수 없다.

따라서 마음의 상태를 온전하게 유지 하려면 예술, 철학 그리고 음악을 통해 분노를 가라 앉히고 세상을 다른 시각으로 보며 나와 다른 타인의 시선과 관점을 분석해 볼 수 있다.

여기 한 시인이 쓴 아이스크림의 황제에 대한 이야기가 있다.












아이스크림의 황제  

월리스 스티븐스(1879~1955)


큰 시가 마는 사람을 불러

근육질인 사람으로, 그리고 휘젓게 해

부엌의 컵 속 색정적인 응유(凝乳)를 말이야.

처자들은 늘 입던 옷 그대로

꾸물거리게 내버려 둬, 소년들에게는

꽃을 지난 달 신문에 말아서 가져오라고 하고.

있는 것이 보이는 것의 피날레가 되도록 해.

유일한 황제는 아이스크림의 황제니까.

유리 손잡이가 세 개 빠진

전나무 경대에서 꺼내, 그 시트 말이야

한때 그녀가 공작비둘기 수놓았던 그것을 펼쳐서

그녀의 얼굴을 덮도록 해.

딱딱한 발이 삐져나온다면 그건

그녀가 얼마나 싸늘하고 또 묵묵한지를 보여주는 것이지.

램프의 빛줄기를 잘 고정 시켜 놓도록.

유일한 황제는 아이스크림의 황제니까.

* 시집 <하모니엄>(Harmonium, 1923) 중에서


이 시의 배경은 죽은 자를 기리고 추모하는 '장례식' 자리다

한 방에는 아이스크림 같은 달콤한 환락이 있고 다른 방에는 시신이 안치 되어 있다.

아이스크림을 향한 욕망은 식욕을 향한 욕망이고 싸늘한 시신은 죽음으로 이것이 바로 우리 인간이 삶과 죽음에 대해 할 수 있는 전부다.

동물적 삶은 존재하는 최선의 것이고 죽음 보다 더 낫다.

따라서 평범한 삶이 가장 비범한 삶이니 죽는 것 보다 오늘 하루 만이라도 살아가는 것이 중요하다.

앞서 세상을 떠난 나의 조부들은 자손들 앞에 이런 말을 남겼다.


'하려고 했지만 시도조차 하지 않은 것이 가장 후회스럽다. 매 순간 열심히 살아라. 너의 앞에 있는 시간들을 소중히 여겨라.'

나의 할아버지는 자신의 생을 90세로 정해 놓고 아버지 처럼 100세를 앞두고 세상을 떠날 줄 아셨다.

할아버지는 사회에서 완전히 은퇴 하신 후 남은 생애 해야 할 목록을 작성 하셨지만 그 목록에 적힌 것들을 시도조차 해보지 못하고 눈을 감았다.

모두에게 갑작스러운 죽음이였다.

결코 평범하지 않은 삶을 사셨던 분이여서 은퇴 이후의 삶은 장미빛으로만 빛날 줄 알았다.

하지만 매 순간 매초 단위로 어느 누구 보다 바쁘게 사셨던 할아버지는 진정으로 지극히 평범하고 사소한 것에는 등한 시 하셨다.

가끔 할아버지가 남기고 가신 책들을 펼쳐보면 이토록 치열하게 살아서 그 자리까지 올라가셨구나라는 생각을 하면서도 마지막 순간 죽음에 이르기까지 이보다 더한 고통을 겪고 가셨을까라는 슬픔에 잠긴다.











반지의 제왕 톨킨은 이런 말을 남겼다.

'두 차례 세계 전쟁을 겪는 동안 이 세상은 신도 없고 날개 달린 천사도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렇다고 신도 없는 세상에 괴물만 살지 않는다.

이토록 불완전하고 부조리한 세상에서 인간에게 유일하게 허락된 것 지극히 평범한 것 뿐이다. 그러니 우리 인간이 소설 속 영웅처럼 살 수도 없고 날개 달려서 비상하는 이카루스도 될 수 없다. '

-톨킨


누구나 한 번쯤은 내일이 오지 않기를 바랬을 것이다.

하지만 이 세상에 한 번 태어나는 이상 어떻게서든 살아가야 하고 그렇게 견뎌 내는 것 만으로도 그리 잘못된 인생이라 할 수 없다.

우리는 사는 동안 늙음, 죽음을 인지 하지 못한다.

항상 이 사실을 인지 하고 있더라도 24시간 내내 늙고 죽는 문제에만 매달릴 수 만은 없다.

그러니 지상의 모든 평범하고 사소한 것에 의미를 두고 사는 게 힘들고 지치고 허무하더라도 살아가는 동안 일말의 행복과 기쁨, 희망을 찾기 위해 시간이 나는 데로 보고 느끼고 즐기고 맛보며 살아야 한다.

‘아이스크림은 달콤하다. 그러나 아이스크림은 녹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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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lueyonder 2024-04-27 13:32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좋은 글 감사합니다. 쇼펜하우어에서 시작해서 아이스크림까지 해주신 말씀에 깊이 공감합니다~ 평범 속에서, 주변에서, 지금 행복을 찾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다시 한 번 되새깁니다.

scott 2024-04-27 18:49   좋아요 1 | URL
오늘 날씨는 정말 아이스크림을 먹어야 할 정도로 바깥은 벌써 뜨거운 여름 햇살이 가득 !ㅎㅎ
어쨌든 일상의 소소한 행복을 통해 이세상 그나마 살맛 나는 것 같습니다 ^^

꼬마요정 2024-04-27 14:0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평범한 삶이 가장 비범한 삶이다. 제일 어려운 것 같아요. 아이스크림은 달콤하니 녹기 전에 먹을 수 있는 부분은 후딱 먹어야겠어요. 그렇게 때론 달콤하게 때론 눅진하고 끈적하게 살아가는 게 삶인가 봅니다.

scott 2024-04-27 18:51   좋아요 1 | URL
서울은 오늘 29도!
뜨거워서 충격 받을 정도로 이런 뜨거운 4월이 낯설어서 올 여름 큰일 났습니다 ㅋㅋㅋ

진한 커피에 아이스크림 퐁당 빠뜨린 걸로 오늘 하루 행복!
요정님은 사랑 냥이들과 행복한 삶을 ^^

꼬마요정 2024-04-28 12:43   좋아요 1 | URL
서울은 정말 덥네요ㅜㅜ 큰일이에요ㅜㅜ 게다가 이번에 비도 많이 올 거라고 하던데… ㅠㅠㅠㅠㅠ 진한 커피에 아이스크림 퐁당!! 이거슨 진리죠 ㅎㅎㅎㅎ 스콧 님도 즐겁고 행복한 하루 보내세요^^

새파랑 2024-04-27 16:16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독서 인구가 줄어들긴 하지만 스콧님 같은 분이 만명분의 독서를 대신 하고 있어서 오늘도 출판계는 돌아가는거 같습니다~!!

내일이 오늘보다 좋을건 없을거 같긴 하지만 내일이 기대되긴 합니다. 또 무슨 일이 있을지 ㅋ
아이스크림은 달콤하고 녹지만, 녹으면 다른 아이스크림을 사면 될거 같습니다~!!

2024-04-27 18:52   URL
비밀 댓글입니다.

호시우행 2024-04-28 06:5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좋은글입니다.

scott 2024-04-29 18:01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