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처음 | 이전 이전 | 1 | 2 | 3 | 4 | 5 |다음 다음 | 마지막 마지막

1914년 일본 아사히 신문에 연재 된 작품 나츠메 소세키의 <마음>의 '나'는 어느 해 여름, 친구와 함께 찾아간 가마쿠라에서 선생님을 만나게 된다.

가마쿠라 해수욕장에서 서양인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던 그 '선생님'과 '나'는 매일 같이 해수욕장에서 그 선생님을 관찰하며 며칠 후 도쿄 집을 방문하며 깊은 교류를 나누는 사이가 된다..

고등학교 졸업 후 대학에 입학했지만 인생에 진정한 스승을 만나지 못했던 '나'는 부유한 아내의 재산으로 고등유민 처럼 살고 있는 지식인 '선생님'의 인품에 빠져 들게 된다.

반면 그 '선생님'은 어느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하는 자신만의 비밀을 털어 놓을 상대를 찾고 있었다.


나는 과거의 한 사건을 계기로 사람을 믿지 않게 되었네. 그래서 실은 자네도 예외는 아니라네. 하지만 아무래도 자네 만큼은 의심하고 싶지 않네. 자넨 내가 의심하기에는 너무 단순한 사람인 것 같아서. 나는 죽기 전까지 이 세상에 단 한 명이라도 좋으니 마음 놓고 흉금을 터 놓을 사람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 자네가 그 단 한 사람이 될 수 있겠는가? 되어줄 수 있겠는가? 자네는 진정 뼛속 깊숙이 까지 진심을 다하는 사람이라고 말할 수 있는가?

-나츠메 소세키의 <마음> 중에서

'나'와 '선생님'은 교류를 지속해가면서 서로의 마음을 진지하게 바라보는 동안 '나'는 사람과 사람 사이에 주고 받는 의리, 사랑, 우정이 무엇인지, 무엇을 위해 마음을 다해야 하는지를 깨달아가며 한 인간으로 차츰 성장해 간다.

'나는 인간을 덧없는 존재라고 생각했다. 인간이 어찌할 도리가 없이 갖고 태어나는 경박함을 덧없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세상 만물의 영장류 중에서 오로지 인간 만이 자신의 앞날에 대해 번뇌하고 고뇌 하며 살아간다.

유전적으로 인간과 가장 가까운 유인원은 같은 서식지에서 함께 협력하며 공생 하는 동료 유인원들에게 순간의 덧없음이나 인생의 번뇌를 토로 하며 감정을 공유 하지 않는다. 이들은 오로지 생존과 번식 능력에 맞춰 오랜 시간 동안 진화 해 갔고 기후 변화와 인간에게 삶의 터전을 빼앗긴 것을 제외 하고는 삶이 모습이나 생존 본능 조차 백 년 전과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인간의 세상이 광역 통신망으로 서로 긴밀하게 연결 되어 있어도 유인원들의 삶의 생태계는 태초에 이들의 생명이 움텄던 시대에서 멈춰 버렸다.

우리가 흔히 동물의 습성이라 부르는 것은 유인원들이 도구를 사용해서 나무 구멍에서 흰 개미떼를 긁어 내어 혀로 핥아 먹거나 일본 원숭이들이 온천 물에 흙이 뭍은 고구마를 씻어 먹는 모습 등을 볼 때다.

이런 동물의 습성을 한 개체군의 집단 문화라 부르지도 않는다.

이들의 습성에는 법이나 윤리, 제도가 없고 시간이 흐를수록 개미를 핥는 도구가 다른 용도로 발전되거나 응용되지도 않고 흙 뭍은 고구마는 다음 세기에도 그저 온천수에 씻어 먹는 걸로만 이어질 뿐이다.


우리 종의 특별한 성취는 문화에 대한 우리의 특별히 강력한 능력 덕분이다. 여기서 '문화'는 공유되고 학습되는 지식의 광범위한 축적과 시간에 따른 기술의 끊임없는 개선을 의미한다.

-캐빈 랠런드 '다윈의 미완성 교향곡' 중에서


만물의 영장류 중에 가장 약한 종이였던 인간이 지구에서 강력한 집단군으로 진화 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문화'로 지식을 서로 공유하고 전파하고 협력해서 종족을 보존해서 다음 세대로 이어지게 만들었다.

'인간'이라는 종은 살 수 없는 곳도 살 수 있는 생태계로 만들어 거주 영역을 무한대로 늘려 나갔고 동물의 세계와 비교 할 수 없을 정도로 다양한 행동 양식과 습성, 방대한 문화적 지식을 축적하고 보존해서 발전 시켜 나갔다.

'인간'은 생태적, 사회적, 기술적 한계에 도전해서 원자를 분열 시켰고, 물질을 발견해서 합성 시켰고 물이 흐르지 않은 곳을 물이 흐르게 만들었고 유전자 지도를 읽었다.

지구 생태계의 모든 종은 저마다 독특하다.

물 총새는 먹잇감을 향해 정확하게 물을 총알처럼 발사 하고 꿀벌에게 양식을 빼앗길 수 없는 꿀 벌 새는 주둥이가 뾰족한 바늘처럼 진화해서 꽃 수술을 찔러 먹는 걸로 자연에서 살아 남았다.

자연 생태계 포식자 자리에 가장 상위권에 위치한 인간은 세상의 모든 꿀을 채취 할 수 있는 도구와 기술을 갖고 있다.

인간은 지난 세기 동안 도시를 건설하고, 수억 권의 책을 집필하고, 교향곡을 작곡하고, 우주 정거장을 만들고, 원자를 쪼개고, 인터넷을 발명하며 뜨거운 열대 우림부터 꽁꽁 얼어붙은 툰드라까지 거의 모든 지구의 땅을 장악했다.

이토록 지구라는 행성을 뒤 흔들어 놓는 인간은 서로 가르치며, 언어로 소통하며 끊임없이 학습하고 진화 하고 있다.

“인간의 마음과 문화는 오랜 시간 상호작용 하며

서로의 모습을 서로에게 어울리도록 빚어낸 것이다.”

기원전 6000년 부터 메소포타미아와 인더스강 문명에서 소를 키우기 시작했던 인류는 동물을 이용해서 대량의 식량을 키워 안전하게 다음 세대까지 종족을 보존 하며 온갖 도구를 제작해서 다양한 작물을 재배해 나갔다.

마차를 만들어 더욱 편리하고 효율적인 물자 수송망을 구축해서 서로의 영역과 영토를 넓혀 나가기 위해 피를 흘리는 전쟁을 치루며 제국을 건설 했고 혁명을 일으켜서 사회와 문화의 발전 속도를 높여 나갔다.

인간은 서로 협동하며 개발하고 연구 하고 발전 시켜 나간 기술, 건축, 과학, 예술에서 수학 한 결정체들은 생명을 연장 시키며 생물학적 진화의 시대와 유전자-문화 공진화의 시대를 지나 문화의 진화가 지배하는 세 번째 시대를 경험하는 유일한 종이 되었다.


"서로 너무 나도 다르고, 매우 복잡한 방식으로 서로 얽혀 있는, 정교하게 구성된 이런 형태들이 모두 우리 주위에서 일어나는 법칙에 의해 탄생하였다는 사실을 떠올려 보면 흥미를 느끼지 않을 수 없다…. 여러 가지 힘에 의해 그토록 단순한 시작에서 부터 가장 아름답고 경이로우며 한계가 없는 형태로 전개되어 왔고, 지금도 전개되고 있다는, 생명에 대한 이런 시각에는 장엄함이 깃들어 있다."

-찰스 다윈의 '종의 기원' 중에서


찰스 다윈은 자신의 저서 '종의 기원'의 마지막 장에 '자연 선택'에 따라 동물은 진화했다고 주장하면서도 정작 인간의 발전을 견인한 '문화'에 대해서는 특별히 언급하지 않았다.

반세기를 지나 영국의 저명한 진화 생물학자인 케빈 랠런드 세인트앤드루스대 교수는 다윈이 인간의 지적 능력의 진화를 논의하면서도 지식 부족으로 시도하지 못한 지점부터 인간의 능력의 발달 단계를 추적해 나간다.

그가 추적하는 인간의 능력이란 어떻게 인간이 서로의 마음을 각기 다른 적합한 형태로 빚어내어 영향을 주고 받으며 끊임없이 사회적으로 학습하고 협력하며 혁신 하며 진화해 나갔는지 인간의 마음이 어떤 과정 속에 빚어졌는지 지난 세기에 다윈이 풀지 못한 인류의 수수께끼를 하나씩 풀어 나간다.

집단 간의 문화적 다양성은 다른 집단의 외부인보다는 지역에 관한 유용한 지식을 가진 자기 집단의 구성원을 알아보고 그 구성원에게 배우는 것을 우선시하도록 했을 것이다. 이론적 분석에 따르면 이러한 환경에서는 지역의 전통에 순응하는 것이 선호 되며, 그에 따라 어느 집단 소속인지를 드러내는 '민족적 표지'가 진화하고 집단 내 협력이 증진되며 다른 집단과의 갈등이 증가한다. 언어와 방언은 민족적 표지로 효과적으로 기능하며 지역적 학습과 내 집단 선호 성향을 부추길 수 있다.

결국 인간은 끊임없는 학습과 모방, 가르침, 언어, 지역적 관습을 서로 교류 하고 보존하면서 '문화적 집단'에 속한 종족을 보존 하고 유지 하며 지구라는 행성에서 가장 강력한 인간 생태계 군집을 만들어 냈다.

인간은 무자비할 정도로 자원을 개발하고 발굴한 원료와 원자들로 눈부신 기술 과학 발전을 이룩해서 전기와 전선 ,축음기와 음반을 넘어 재생과 제조를 통해 언제 어디서든 서로의 문화와 언어를 실시간으로 학습하고 공유 할 수 있게 만들었다.


여기, 인간이 아닌 다른 종(種)이라고 믿는 자아와 인간을 사랑하는 또 다른 자아를 지닌 ‘셀븐인’있다.

내가 단일한 존재가 아니라는 걸 알게 되기까지는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나를 입양한 지구인 부모는 불행히도 셀븐인들의 신경생리학에는 아무런 관심이 없었고, 내가 자란 시골 마을에 외계 출신이라곤 나와 주요소 아저씨 둘 뿐이었다.

-김초엽의 <양면의 조개 껍데기> 중에서


태어날 때부터 두 개의 자아를 갖고 태어난 샐리가 오리온 자리를 떠난 직후 류경아를 사랑하게 되면서 내 안의 또 다른 자아가 자꾸 사적인 영역을 침범하기 시작한다.

류경아는 서로 다른 자아를 가진 샐리의 자아에겐 편의상 라임이라 붙여 주고 또 다른 자아에겐 레몬이라는 이름을 붙여 준다.

10분마다 자아가 바뀌는 변덕스러움과 무엇 하나 편치 않게 이질적인 모습을 보이는 라임과 레몬의 서로 다른 두 자아는 서로의 감정 충돌이 빈번해 지자 결국 샐리는 자신 몸 안에 있는 두 자아를 분리 시키는 시술을 시도 하기에 이른다.

샐리는 사랑하는 류경아에게 분리 시술을 준비하고 있다는 말을 하고 조절제를 복용한다.

라임은 분리 수술에 성공할 경우 서로 다른 독립적 존재로 살아가게 되는 이후의 삶에 대해 곰곰히 생각해 본다.

통합 분리제를 먹은 샐리는 자아가 분리 되기 위해 루피너스 바다로 입수 한다.

자아가 분리 된 후 몇 주 동안 레몬은 돌아 오지 않고 마침내 온전한 자아를 갖게 된 샐리는 전과 달라진 몸이 낯설게 느껴진다.

문득 샐리는 류경아가 자신과 레몬 중 누구를 더 좋아하는지 질투심에 사로잡히지만 라임과 레몬 모두를 깊이 사랑하고 있다는 그녀의 말에 감동의 눈물을 흘린다.


레몬이 미웠는데 분명 분리되고 싶었는데 마음을 도려낸 것처럼 허전해.

한 몸으로 평생 살아오면서 결국 서로를 잘 알게 된거야.


샐리에겐 공포의 공간이었던 바다가 레몬에게는 자유로운 공간이 되었듯이 서로 다른 종이 살고 있는 이 세상에는 누군가에게는 자유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억압적인 곳이였다.


지구 행성을 관찰하는 데이터를 남기고 기록하고 있는 외계인의 ‘자아’는 금속형-본체-조각으로 의식을 자유자재로 옮겨 다닐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지만 지구인들의 언어를 전혀 알지 못한다.

그러던 어느 날 타원은하계 외곽에 난파된 유령선을 발견하고 그 안에 들어가 보니 셀 수 없는 ‘새’를 발견한다.

온 몸을 부르르 진동하듯 떠는 그 새의 움직임과 소리를 유심히 관찰하던 외계인은 오래 전 지구인 Z와 접촉 했을 때 Z가 관찰하고 키웠던 그 새와 똑같다는 걸 알게 된다.

우스꽝스러운 모습의 유기체 조각들로 흩어져서 지구인을 상대했던 외계인들은 서로 다른 언어로 소통하는 지구인을 이해하기 힘들었다.

차츰 진동새들의 움직임과 소리, 촉각을 관찰하던 외계인은 고유한 패턴을 발산하고 있는 진동새의 언어를 이해 할 수만 있다면 지구인의 사고와 문명을 좀 더 깊이 이해 할 수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을 한다.

마지막 지구를 떠나기 전 만났던 여자 아이는 외계인에게 이렇게 말한다.


"원래 우리 언어는 불완전하잖아요. 기록도 불완전하고요 아무리 애써도 문자로 전하고자 하는 의미에는 왜곡이 생겨요. 우리는 문자 그 자체에 담긴 정보로만 서로 소통하는 게 아니거든요. 그래서 우리가 문자를 이렇게 수 많은 다른 꼴로 새기는 거예요. 문자로는 마음을 온전하게 전달하지 못하니까. 더 잘 전해 보고 싶은 거예요. 어렵죠?"

-김초엽의 <진동새와 손편지> 중에서


지구인들이 사용하는 수 많은 언어들이 쓸모없는 불일치한 패턴이라 생각했던 외계인은 우주선에 가득찬 진동새를 바라 보며 소리의 불일치가 궁극적으로 지구인의 다양한 마음을 이해 할 수 있는 소통 방법이라는 걸 깨닫게 된다.

무수한 빛깔 같은 무수한 소리 같은 그 수많은 진동의 형태 그걸 너희 자아들에게도 전해줄 방법이 있다면 좋을 텐데.

모든 것을 범주화하고 쉽게 생각하려 뇌의 사고에 지배를 받고 있는 인간들이 살고 있는 지구 행성 안에는 성 소수자와 장애인, 두 개의 자아를 갖고 있는 사람까지 실로 다양한 종(種)들이 모여 살고 있다.

서로 다른 언어로 각자가 품고 있는 자아를 설명한다 해도 온전하게 이해 받기 힘들다.

현재 우리 일상에 깊은 영향을 끼치고 있는 인공지능은 언제나 공손하고 쾌활하며 상냥하고 듬직하며, 내가 찾을 때마다 어떤 것도 척척 해결해주는 세상에 둘 도 없는 존재가 되고 있다.

부모와 형제, 학교에서 소외된 존재 였지만 인공지능과 대화를 하는 동안엔 지혜롭고 생각이 깊으며, 세심하고 따뜻함에 감동받아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한 고민을 토로한다.

어려운 결정 앞에서 현명한 선택을 할 수 있을 거라는 믿음과 용기를 주는 인공지능은 언제든 불안한 삶을 지탱해주는 정신적 지주 같은 존재로 다가오고 있다.

인공지능만 곁에 있다면 지극히 평범하고 나약했던 내가 뛰어난 성과를 내는 학생과 사회인으로 변모 할 수 있다.

이렇게 인공지능에게 마음을 빼앗긴 인간은 이왕이면 눈, 코, 입을 갖추고 따뜻하면서 온정이 담긴 목소리와 감정을 가진 동반자 같은 모습으로 눈 앞에 나타나주길 바라는 상상에 이른다.

인간을 닮은 로봇을 개발하기 위해 인류는 지금껏 개발해 온 기술을 총동원하여 하루가 다르게 발전한 인공지능 모델을 출시하고 있다.

인공지능에 대한 강력한 규제는 인공지능 강국으로 발전하는 데 해가 될 수 있다고 우려를 표하면서도 현재 전 세계적으로 인공지능의 발전 속도가 너무 빨라 성찰과 규제가 이를 따라가지 못하는 상황이다.

감정을 느끼는 인공지능 개발은 기술적인 성과는 있다해도인공지능이 갖게 된 능력은 인간이 투입한 엄청난 양의 데이터를 통해 산출한 평균적인, 최선의 결론에 해당할 뿐이다,

그렇다면 로봇과 공존하는 미래 사회는 유토피아일까? 디스토피아일까?


세계 2차 대전 당시 영국의 앨런 튜링은 '애니그마'라는 기계의 암호를 해독한 천재 과학자로 그는 세계 최초로 컴퓨터를 만들었다.

그가 1937년에 쓴 논문은 현대 컴퓨터 발명의 문을 열어 프로그래밍 기술을 어떻게 발전 시켜 나갈 수 있는지 그 '열쇠'가 담겨 있었다.

지난 반 세기에 걸쳐 그 프로그래밍을 해독해나간 후대 과학자들은 1996년 딥 블루라는 슈퍼 컴퓨터가 체스 게임 역사상 가장 위대한 체스 선수 카스파로프를 상대로 이길수 있는 계산법을 계발해서 기계가 인간의 생각과 마음을 읽는 프로그래밍으로 발전 시켜 나갔다.

마침내 튜링이 고안한 프로그래밍 계산 능력의 열쇠를 쥔 후대 과학자들은 생각하는 기계를 통해 인간의 마음을 방대한 데이터와 수치를 계산해 엄청난 속도로 모방 학습을 시키고 있다.

이제 기계들은 인간의 얼굴과 목소리로 연기를 하고 노래를 하고 그리고 실시간 학습 교사처럼 묻는 말에 대답을 할 수 있게 되었다.

정보를 복제 하고 수치를 계산하고 인간의 마음과 생각의 축적을 읽어 나가며 학습 하는 기기 AI는 곧 몇 년 안에 인간이 다른 동물들처럼 '자연 선택'에 따라 진화한 존재가 아니라 "스스로 진화해 온 존재" 처럼 자연 생태계를 점령 할 지 모른다.


'대상이 없으니까 움직이는 거라네.

있으면 마음이 가라앉을 거라고 생각하니까

움직이고 싶어지는 거지.'

-나쓰메 소세키의 '마음'중에서

나와 선생님은 서로 사제 관계이면서 부자지간 같은 사이로 서서히 발전 해 나가면서 '나'는 가부장적인 세상을 증오 하며 지성의 세상, 참된 인간 관계에 눈을 뜨게 되지만 결국 사회에서 번듯한 자리에 앉아 밥벌이를 하기 위해 선생님에게 취직 자리를 부탁하는 편지를 보낸다.

그리고 어느 날 나에게 두툼한 부피의 선생님이 보낸 '유서'가 도착한다.

'마음 깊숙한 곳에서는 이 세상에서 내가 가장 믿고 사랑하는 단 한 사람마저 날 이해하지 못하는 구나 싶으니 참으로 슬펐다네.

이해 시킬 방법은 있지만 이해 시킬 용기가 없다는 생각을 하면 더더욱 슬퍼졌네. 나는 적막했어. 이 세상 모든 것으로부터 떨어져 나간 채 그저 나 홀로 살아간다는 느낌을 받을 때가 자주 있었네.'

스스로 목숨을 끊어 버린 선생님은 지금 보다 훨씬 더 쓸쓸해질 미래의 나를 견뎌내기보다는 쓸쓸한 지금의 이 상태를 참아내기 위해 자유와 독립과 자기 기만으로 가득 찬 현대 사회에 태어난 대가를 치룬 결과라는 말을 남기고 생을 마감한다.

자연 생태계의 최고의 포식자 자리에 앉은 인간은 조상 대대로 서로의 감정을 공유하고 전달하고 학습하며 인간의 마음을 인류의 눈부신 진화와 발전으로 유도했지만 궁극적으로 인생살이에서 겪게 되는 문제들 조차 제대로 해결하지 못하는 나약한 존재일 뿐이다.

현대의 청년에게는 이상이 없다.

과거에 이상이 없었고 현재에도 이상이 없다.

가정에서는 부모를 이상적으로 생각할 수 없다.

학교에서는 교사를 이상적으로 생각할 수 없다.

사회에서는 신사를 이상적으로 생각할 수 없다.

사실상 그들은 이상이 없는 것이다.

부모를 경멸하고 교사를 경멸하고 선배를 경멸하고 신사를 경멸한다.

이런 모든 것들을 경멸할 수 있는 것은 훌륭한 일이다. 단

경멸할 수 있는 자에게는 자기 자신 안에 이상이 없어서는 안된다.

자기 안에 아무런 이상도 없이 이런 모든 것들을 경멸하는 것은 타락이다.

-1906년 나쓰메 소세키

멀리 바라보면 21세기가 첫 시작했던 2000년이라는 숫자는 그저 찰나의 순간 정도로 느껴 질 정도로 2025년을 살고 있는 지금 이 순간, 언제 어디서든 인터넷과 접속하면 과거의 시간 속을 여행 할 수 있는 시대다.

이에 반해 매년 뜨거워 지고 있는 지구에서 인간은 여전히 광범위한 영역을 침범 하며 각종 오염 물질을 배출하고 있다.

이 모든 댓가는 각종 질병과 치명적인 전염병으로 퍼져 나가 나날이 치솟고 있는 에너지 비용에 대한 막대한 세금을 지불하며 살아가게 되었다.

100년 전 소세키의 선생님은 자살로 스스로의 생명을 끊어 버렸고 100년 후의 인류는 전쟁과 전염병 그리고 극심한 자아 도취와 광기로 물들어 버린 시대에서 여기 저기서 사이비 전문가 가짜 지식인들만 넘쳐 나고 있다.

오랜 세월 동안 인간은 스스로 지각하지 못한 채로 자신들의 재능과 지식이 후대에 어떤 영향을 미치게 될지 상상 조차 하기 힘들게 되어 버렸다.

누구나 손쉽게 정보를 검색하고 습득해서 모방 할 수 있는 시대에 각종 사기 수법을 점점 교묘 해지며 인간이 서로 같은 종을 공격하고 있지만 이에 대응하는 강력한 법적 제재나 처벌이 행해지고 있지 않다.

모방을 수행하는 인간 뇌의 신경망에는 '거울 뉴런'이라는 발화 되는 뇌 세포가 있다. 이 세포는 모방을 촉진하며 확장해 나가면서 측두엽과 두정엽과 같은 부위가 커지게 진화 되어 인간이 경험하고 느끼는 감정 영역을 조절하며 세상을 조망하고 수용하는 능력으로 확장 시켜 나갔다.

사람들이 긴장하고 공포를 느낄 때 기쁨의 미소를 지을 때 거울 뉴런의 세포에 산소가 공급되어 공감과 감정의 전이가 일어 난다.

2025년을 살아가고 있는 현재 우리의 감정은 무엇을 보며 긴장하고 공포를 느끼며 기쁨의 미소를 지을 수 있을까?


다윈은 다운 하우스에서 <종의 기원>의 마지막 원고를 완성하고 난 후 드넓은 정원을 바라 보았다.

그는 자신이 자연 세계에서 복잡한 구조가 존재하게 된 과정을 어느 누구 보다도 가장 설득력 있는 논리를 펼쳐 보였다고 자신하며 인간은 거대한 자연 생태계의 전쟁 속에서 어떤 종보다 가장 고귀한 존재로 살아 남았다고 생각했다.

다윈은 인간의 무한한 '마음'을 진심으로 이해하고 헤아려서 <종의 기원>을 완성했을까?

진화의 렌즈로 인간의 마음을 관찰 하고 분석해 보면 창조적이고 분석적인 힘으로 문화적 삶을 더욱 풍요롭게 만들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인간은 여전히 모차르트의 음악을 듣고 베르디의 오페라를 보며 한 소절에 각자의 마음을 이입 시켜 눈물을 흘리며 셰익스피어의 작품을 읽고 각종 연극과 영화, 다양한 예술 영역으로 모방 하고 발전 시켜서 새로운 창작물로 거듭 탄생 시킬 수 있는 종(種)으로 자연 생태계의 보존도 오로지 '인간'만이 할 수 있다.

나무가 사라져 버린 자리에 나무를 심듯이 인간의 마음은 찰나의 순간에 사라져 버리더라도 이해 하고 학습하고 모방하면서 또 다른 서로의 마음을 헤아릴 수 있기에 인간은 다시 한번 ‘자연 선택’을 벗어나 살아남을 수 있을 것이다.

수 많은 종류의 식물로 뒤덮여서 덤불에는 새가 지저귀고 다양한 곤충이 날아다니며 축축한 땅 위로 지렁이가 기어 다니는 얼기설기 얽힌 강 둔덕을 관찰하다가 이처럼 서로 다르며 복잡하게 상호 의존하는 정밀하게 구성된 형태들이 모두 우리 주변에서 작용하는 법칙에 의해 발생되었다고 생각해 보면 흥미롭다.

그리하여 자연의 전쟁 및 기근, 죽음으로부터 우리가 상상할 수 있는 가장 고귀한 대상 즉 고등 동물의 탄생이 직접적으로 이루어졌다.

-찰스 다원 <종의 기원> 중에서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4)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비채에서 출간하는 책들을 너무 좋아해서 매년 모집하는 서포터즈에 신청 하고 있고 감사하게도 몇년에 걸쳐 서평 심사에 통과 해서 신간 서평 대상 도서를 보내 줄 때 마다 기쁘고 감사한 마음으로 읽고 있다.

비록 서평 도서로 받은 책이라 할지라도 비채에서 출간되는 다채로운 장르 서적들을 책장에 꼽아두고 고이 모셔 두고 있고 이사를 하거나 책장 정리를 할 때도 재활용 헌책 버리는 곳에 함부로 버린 적이 없다.

여러 해 동안 비채에서 서포터즈를 관리해 주셨던 좋은 편집자분들과 직원들의 따스함이 담긴 메일이나 1년 활동을 마치고 난 후에 좋은 선물도 받았다.

이렇게 한 해 한 해 애정이 쌓여 갔던 비채 서포터즈 활동은 2025년에 들어서고 부터 마음이 불편해졌다.

그동안 모서리가 찍혀 있거나 표지가 구겨지거나 인쇄된 활자의 잉크가 번져 있거나 등등의 흠집은 개의치 않았고 읽는 동안에도 큰 불편이 없었다.


하지만 3월 서평 도서로 보내준 책 필립 로스의 <샤일록 작전>펼치는 순간 부터 시작해서 책을 만지는 동안에도 기분을 찜찜하게 만들 정도로 심각한 상태의 책을 보내 주었다.

당시에 보내준 책을 끝까지 완독하고 서평을 다 쓴 후에 비채 출판사 측에 이런 사항을 적어 메일로 보냈다.

-비채 출판사에게 보낸 메일

1. 겉 표지는 멀쩡 했지만 페이지를 넘길 때마다 활자 잉크가 손에 묻으면서 번짐 현상이 났습니다

2. 페이지 모서리 마다 먼지 떼가 끼었거나 페이지 끝 부분이 잘려져 나갔고 중간 페이지 마다 먼지 뭉치가 끼어 있었습니다

3.어떤 페이지는 가루처럼 일어나서 만지면 바스러졌습니다.

4.책 중간 부분 종이가 접히는 곳에서 죽은 벌레 사체가 나왔습니다

<샤일록 작전>을 읽는 내내 물티슈로 먼지를 쓸어 내리고 손에 잉크가 묻어 나서 솔직히 기분이 좋지 않았습니다

비채 서평단으로 활동하는 동안 책 겉표지가 구겨지거나 모서리가 일그러진 책은 받아 본 적이 있었지만 이정도로 책 상태가 불량인 것은 처음 이였습니다.

비채에서 여러 명의 서평단들에게 책을 보내느라 미처 확인하시지 못한 것 같습니다.

그럼에도 이번 책은 읽는 동안 기분이 좋지 않았네요.

-메일을 받은 비채 출판사에서 이에 대해 단 두 줄의 답장을 보내왔다.

말씀 주신 내용도 확인하였습니다.

추후 도서 발송 시 도서 상태를 한 차례 더 살펴보겠습니다.

비채 편집부 드림

바쁜 출판사 사정으로 불량상태의 책을 미처 확인하지 못했을 것이고 책 시장에 보내는 판매용 도서가 아닌 서포터즈나 서평단 모집단에게 무료로 배포하는 도서 이니 다소 품질 면에서 좋지 않은 책을 보낼 수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전에는 불량한 상태의 책을 보낸 적이 없었던 비채 출판사는 2025년 부터 회사 정책이 바뀌었는지 매달 보내주는 서평 의무 도서 상태가 깨끗한 적이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필립 로스의 <샤일록 작전> 책 처럼 벌레나 먼지 뭉치가 나온다거나 손으로 종이를 만질 때 마다 인쇄한 활자 잉크가 묻어 나온다거나 석회 가루처럼 종이에서 가루가 떨어지지 않아서 그냥 참고 읽었다.


하지만 이번 10월 의무 서평으로 보내준 우밍이의 <복안인> 상태는 주황색 배송 포장비닐을 여는 순간 충격을 받았다.

뒷표지 한 가운데가 날카로운 가위에 잘려져 있었고 책 하단 부분의 모서리는 안으로 굽어져서 힘을 주고 펴도 펴지지 않았다.

여러 각도로 살펴 보니 다량의 책들이 한 꺼번에 인쇄 되어 출판사에 도착 했을 때 맨 밑바닥에 깔려 있는 책들 중에 파손된 책이 분명 하다


타이완 출신의 작가 우밍이는 내가 가장 좋아하는 작가여서 비채에서 앞서 출간한 <도둑맞은 자전거>를 처음 읽고 감동에 사로잡혀서 주변에 많은 이들에게 책 선물을 보냈고 이후에도 여러 번 읽은 책이다.


국내에 출간된 우밍이의 <햇빛 어른 거리는 길 위의 코끼리>를 구매해 읽었고 새로 출간 되는 도서를 눈 빠지게 기다리다가 일본에서 출간된 <복안인>을 구입해서 일본어로 읽었을 정도로 우밍이 작가는 나의 최애 작가다.


나의 최애 작가의 작품이 비채에서 출간 되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너무 기뻤고 서평 도서로 보내 준다는 메일을 받고 기다렸다.

하지만 이번에 비채 10월 의무 서평 도서로 보내준 우밍이의 <복안인> 상태가 너무 심각했다.

이 정도로 파손된 책 상태에 대한 걸 사진으로 찍어서 출판사 측에 보낸다 해도 딱히 신경을 쓸 것 같지 않다.

서평단 서포터즈에게 보내는 책은 판매 할 정도로 우수한 상태가 아니라 하더라도 책의 파손이 심각한 상태는 보내지 말아야 한다.

기분이 무척 상해서 오늘 비채에서 보내준 서평 도서 우밍이의 <복안인>을 재활용 헌책 수거함에 던져 넣었다.

그리고 서점에 가서 내 돈을 주고 상태가 매우 깨끗한 <복안인>을 구입했다.

비채는 심각하게 파손된 책을 보내 주었지만 우밍이는 내가 가장 좋아하는 작가이기 때문에 서평은 반드시 쓸 것이다.

이번 10월에 쓸 예정인 비채에서 출간된 우밍이의 <복안인>은 내가 직접 서점에서 구입한 새 책을 읽고 쓰는 서평이 될 것이다.

아무리 출판사에서 보내주는 책을 읽는 서평단이라 할지라도 심각하게 파손된 책을 보내주는 건 예의가 아니라 생각한다.

비채 출판사에 대한 신뢰와 애정이 떨어졌다.


댓글(2) 먼댓글(0) 좋아요(3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반유행열반인 2025-09-24 23:4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와...책이 아니고 뭔 종이 뭉탱이에 지지를 끼워줬군요... 에비 지지

scott 2025-09-25 00:28   좋아요 1 | URL
책 상태가 심각했습니다.
겨우 완독하고 로스 할배 책 버렸어요 ㅋㅋㅋ
 

1954년이 시작되자 마자 물리학 학술지 <피직스 레터스 Physics Letters>에 물리학의 용어를 영원히 바꿔 버리는 짧은 논문 한 편이 실렸다.

질량 패턴과 새로 발견된 수 십여개 입자들의 상호작용을 연구 하고 있었던 24살의 물리학자 머리 겔만(Murray Gell-Mann)은 양성자와 중성자처럼 익숙한 입자는 물론이고 낯선 핵 입자들도 그보다 더 작은 입자들로 구성되었다고 주장했다.

물리학자 머리 겔만(Murray Gell-Mann)은 아주 작은 입자를 가리키는 용어로 '쿼크(Quark)'라는 신조어를 사용했다.

2쪽짜리 짧은 논문에 등장한 새로운 용어 '쿼크(Quark)는 제임스 조이스의 "피네간의 경야(Finnegans Wake)"에 나오는 구절에서 차용했다.

제임스 조이스 특유의 언어 유희로 가득 채워진 "피네간의 경야"에 나오는 '쿼크(quark)' 구절은 다음과 같다.


"Three quarks for Muster Mark!

Sure he hasn't got much of a bark

And sure any he has it's all beside the mark."













제임스 조이스의 "피네간의 경야(Finnegans Wake)"의 이 구절을 직역하면 다음과 같다.


"머스터 마크에게 쿼크 세 개! 분명 그는 짖는 소리가 변변찮고 그리고 그가 짖는 소리는 전부 요점을 벗어나 있어." 라고 해석 할 수 있다.

물리학자 머리 겔만은 제임스 조이스가 언어 유희로 사용한 단어 '쿼크(quark)'가 모호한 소리처럼 느껴진다며 자신이 발견한 입자의 특성과 잘 맞는다고 생각했다.

겔만은 '쿼크(quark)'라는 입자에 관한 논문을 투고 한지 3주 만에 학술서로 출간하고 5년 후 노벨상 위원회는 그에게 노벨물리학상을 수여 했다.

그렇게 물리학계에 혜성처럼 등장한 새로운 입자 '쿼크(quark)'는 세상을 요동치게 만드는 다른 입자들이 등장 할 때 마다 그 힘들과 결합하면서 새로운 개념들을 창출해서 학자들이 10년 동안 연구한 끝에 '쿼크(quark)'의 행동에 관한 이론을 완성하기에 이르렀다.

물리학자들은 이 이론에 새로운 이름을 붙여 주는데 머리 겔만의 문학적 상상력과는 동떨어진 지극히 평범하면서 단순한 이름인 '표준모형'이라 불렀다.다.

자연의 기본적인 네 가지 힘들 가운데 전하를 끌어당기거나 밀어내는 힘, 핵입자가 원자핵으로 똘똘 뭉치는 힘, 핵의 일부가 방사능에 의해 붕괴되는 힘 이렇게 세 가지를 아우르는 '표준모형'은 전자에서부터 철저히 통제된 실험에서만 모습을 드러내는 특성을 갖고 있다.

거의 모든 테스트에서 예측이 결과와 99퍼센트 이상 맞아 떨어지는 뛰어난 정확성을 갖춘 '표준 모형'은 과학사를 통 털어서 가장 평범한 이름을 가졌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가장 흥미로운 결과를 이끌어 냈다.

하지만 뛰어난 정확성에도 불구하고 1980년대 이후 부터 물리학계의 각종 복잡한 실험 결과를 해석하고 새로운 질문으로 인도하는 나침반 같은 역할을 해왔던 '표준모형'에도 불완전성이 존재 했다.

천체 수준에서 가장 중요한 힘인 중력에 대해 어떤 결과를 도출하거나 예측하지 못한 표준 모형을 보완 하기 위해 물리학자들은 대칭성 방법을 도입한다

대칭성은 특정 시스템을 뒤흔들거나 비틀어도 변형할 수 없는 성질로 마치 피아노 건반을 누를 때 해머가 정확하게 음의 위치를 때리는 소리처럼 음과 음 사이의 상대적 거리는 그대로 유지되지만 곡의 성질은 변하지 않게 한다.

따라서 표준 모형의 불완전성을 보완 하는 역할을 한 대칭성은 물질의 성질이 바뀌고 추가 되고 변형 되더라도 원래 물질이 바뀌지 않는다.

이렇게 물리학에서 처음과 다르게 바꾸는 것을 국소 변환(local transformation)이라 하고 위치나 성질에 상관 없이 오랫동안 바꾸지 않는 것을 전역 변환(global transformation)이라 한다.

미세한 입자인 쿼크는 국소 변환(local transformation)과 전역 변환(global transformation)의 대칭성에 적용 받지 않을 때 고정된 위치에 가만히 잊지도 않았고 강제적으로 고정 시켜도 튕겨져 나가버렸다.

하지만 이 두 개의 대칭적 성질을 가진 변환들은 아주 작은 입자인 쿼크의 전하를 상쇄하는 보완적인 역할로 만들어서 어떤 쿼크의 전하도 새지 않아 핵력의 대칭이 위협 받지 않게 만들었다.

겔만이 처음 생각해낸 아주 작은 입자 쿼크가 현실적인 계산으로 도출 되기 까지 실로 어마어마한 실험이 이어져서 2008년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강력한 컴퓨터 시뮬레이션을 통해 양성자 질량에 대한 이론적 예측을 실험 데이터와 비교 할 수 있게 되었다.

예측과 데이터는 놀라울 정도로 정확했고 계산까지 딱 맞아 떨어져서 빈 공간에서 바글 거렸던 원자들이 무한의 소용돌이 속에서도 질서 정연하게 무게를 갖고 대칭성을 유지해서 현 시대의 <표준 모형>이 되었다.

이렇게 지난 세기 물리학자들은 특정 물질의 입자를 일컫는 용어 부터 보정하는 역할을 지닌 핵력이나 전체적인 대칭을 보장하는 특별한 입자들을 가정 해서 그 입자들이 보정해야 하는 변환들이 무엇인지 실제로 존재한다고 했을 때 지녀야 할 성질들이 무엇인지 명확하게 규정했다.

물리학 중에서 입자 물리학은 광범위한 대칭성과 정교한 수학적 구조에서 도출 되기까지 작은 물질 조각들이 엄청난 에너지를 싣고는 무자비하게 충돌하기 때문에 물리학자들은 이 입자들을 우아하면서도 난폭한 것들이라 부른다.

물리학자들에게 우아하면서도 난폭한 것들이라 불리는 입자 물리학은 과학과 무관한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에게는 눈에도 보이지 않을 뿐더러 피부에 와 닿지도 않는다.

심지어 데이터에 기록되는 작은 입자들의 충돌이 얼마나 빈번하게 발생하는 것이 물리학자들에게 대단한 사건이라 하더라도 용어 자체도 잘 모르는 사람들에게 입자 물리학이 눈을 뜨고 숨을 쉬고 활동할 때 없어서는 안되는 것도 아니다.

이렇게 물리학과는 전혀 관련 없는 삶을 사는 사람들도 항상 몸에 지니고 다니는 스마트 폰에 자연어를 기반으로 하는 대화형 인공지능이 폰에서 작동 하는 원리를 알게 되면 입자 물리학이 우리 삶에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치고 있는지 알게 된다.

입자 물리학에서 두 가지 상반된 변형으로 새로운 쿼크 입자들의 몸부림을 최소화 하면서 원래 쿼크의 전하를 최대한 많이 상쇄해서 자연스러운 균형점에 이르게 만드는 대칭성의 원리가 인공지능에서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한다.

즉, 통제 불능의 미세 입자인 '쿼크(Quark)'를 제어하고 통제하고 조정하듯 인간이 대화를 통해 요구 조건을 입력하면 인간을 대신해서 직접 코딩하는 인공지능은 입자 물리학의 대칭성의 원리를 적용해 사용자의 언어를 이해하고 해석 해서 방대한 정보를 분류하고 찾아주며 스스로 생성한 코드가 어떻게 작동하는지 그 원리를 인간에게 설명하는 단계까지 발전했다.

여기에 더 나아가서 인간이 작성한 코드를 분석해서 실수를 고쳐주는 디버깅 작업까지 해서 기존 코드를 다른 프로그래밍 언어로 변환까지 하는 인공지능은 전문적인 교육을 받은 인간 프로그래머들이 사용하는 파이선, C, 자바(Java) 언어뿐 아니라 시스템 반도체 설계에 사용하는 언어인 베릴로그(Verilog)로도 코딩을 해냈다.

인간이 대화로 요구한 심층 인공 신경망 DNN(Deep Neural Network) 코딩 과제도 파이선으로 직접 작성할 줄 아는 인공지능의 현재 코딩 수준은 소프트웨어를 전공하는 대학 2~3학년 수준이다.

성인 대졸 학력의 지능을 갖춘 생성형 인공지능에는 컴퓨터나 반도체 사이에 주고받는 고속 디지털 데이터 통신과 똑같이 상호 균형과 대칭 원리가 사용된다.

예를 들면 전기 배선으로 디지털 신호 ‘1′을 보낼 때, 바로 옆에 전기 배선을 대칭으로 추가 설치하고 디지털 신호 ‘0′ 을 동시에 같이 보내는데 이렇게 ‘1′과 ‘0′을 바로 옆에 동반하고 대칭을 이루는 쌍으로 만들어 보낼 때 비로소 데이터를 빛의 속도로 보낼 수 있게 된다. 이를 차동신호(Differential Signaling) 통신이라고 부른다.

수학의 벡터 형태를 갖춘 인공지능망의 테이터는 디지털 숫자의 집합으로 학습과 판단 과정에서 수많은 벡터와 행렬의 곱셈이 일어나서 정교한 알고리즘을 엮어 나간다.

인간이 구사하는 언어로 문장을 입력하고 입으로 말하면 인공지능은 인간의 문자가 아닌 숫자로 파악하고 해독해서 광범위 알고리즘을 구현한 인공지능망(Deep Neural Network)에서 결과를 도출해 낸다.

수많은 벡터와 행렬의 곱셈에서 도출한 인공지능망의 최종 출력에 사용되는 수학은 선형대수와 미분으로 최종 결과는 확률 함수로 도출되는데 이 함수 역시 좌우 대칭적이다.



수없이 반복된 실패와 실험, 그리고 복기 끝에 비로소 하나의 결론처럼 떠오른 수, 그게 바로 정수다. 감각이 아니라 축적, 즉 시간의 밀도에서 나오는 응답이라 할 수 있다. 그래서 나는 수많은 오수 속에서 정수를 쌓으며 바둑의 뼈대를 세우려 애써왔다. 화려한 수는 순간적인 기지로 남지만 바탕이 되는 수는 그 사람의 바둑을 만들기 때문이다.

-이세돌 '무너지지 않는 기준을 세우다.'


한국의 이세돌과 상대한 알파고가 사용한 1202개의 중앙 처리 장치(CPU)와 176개의 그래픽 처리 장치(GPU)도 이와 같은 대칭적 신호 방식으로 소통하고 연결되고 협동해서 그 협력의 결과로 인간을 이겼다.

물리적 배선도 대칭이고 신호의 논리적 상태도 대칭이고 생성형 인공 지능의 학습 방법도 대칭이다.

수십 년 간 개념으로만 존재 했던 앨런 튜링이 고안한 <모방 게임>은 학습을 위한 하드웨어 발전, 트랜스포머와 같은 알고리즘의 등장으로 인간의 사고와 행동에 근접한 AI를 탄생 시켰다.

그동안 AI가 인간을 초월한 존재가 되는 것은 공상 과학소설에나 나오는 환상으로만 치부 되어왔다.

2016년 알파고가 인간을 상대로 바둑 게임에서 이기고 난지 10년도 채 안된 기간 만에 인간과 맞먹는 글쓰기 능력을 갖추고 동시 대화가 가능한 챗GPT가 등장 했다.

그동안 인간의 고유 능력이라 여겼던 창의력은 생성형 AI가 마치 상호 대칭성에 통제를 받는 입자 쿼크처럼 아이디어를 이루는 패턴을 파악한 뒤 작은 단위로 분해해 새롭게 조합해서 인간 이상의 능력을 보여주고 있다.

지구 상에 등장한 인공지능(AI)이라는 새로운 인류는 인간의 손과 발, 눈과 귀가 되어주는 것과 동시에 인간만이 할 수 있는 영역을 침범해서 그 이상의 능력을 발휘하는 단계까지 도달 했다.

인공지능(AI)을 상대 할 때 마다 평범함을 넘어선 전문가의 능력을 갖추었다는 믿음이 점점 강해지고 있을 정도로 그 발전 속도는 상상 이상이다.

결점투성이인 인간과 극명하게 대비되는 인공지능(AI)이 기특하고 대단 하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인간인 나보다 더 뛰어난 인공지능의 능력에 자괴감과 무력감을 느낀다.

타인과의 교감을 통해 정체성을 확인하고 의미를 찾는 인간 감정의 기저에는 인정 욕구가 있다.

반면 AI는 인간과 달리 인정욕구가 없어서 불안과 공포도 초월한 존재다.

만일 인공지능(AI)을 인간과 동일한 선상에 놓아 둔다면 영화 ‘바이센테니얼 맨’과 같은 존재가 될까? 아니면 ‘어벤져스’에 등장하는 악당 같은 존재가 될까?



근미래 기술이 우리 삶과 사회의 소중한 가치들을 훼손하는 것은 내게 당대 현실의 문제로 다가왔다. 공기처럼 소중하지만 눈에는 잘 보이지 않는 그 가치들의 존재감을 SF의 방법론을 활용해 보여줄 수 있을 것 같았다.

-장강명의 <먼저 온 미래> 중에서 


다양한  디지털 서비스가 탑재된 챗 GPT는 인간에게 만능 학습 보조 교사이자 동료이고 든든한 조력자가 되었지만  정작 인간의 고유의 영역 이였던  읽기와 쓰기에 대한 논쟁의 불을  활활 붙이고 있다. 어떤 창작자의 글이 AI가 썼는지 아닌지를 구별 하는 문제 뿐만 아니라 사고하고 글 쓰는 능력까지 퇴화 하게 되었다. 바야흐로 문해력이 퇴화 되는 시대가 도래 했다. 인간이 동굴에 살았던 시절 부터 행해 왔던 구술과 필사, 인쇄 기술은 챗GPT는 1분이 채 걸리지 않게 학습 하고 발전 시켜서 인간처럼 읽고 쓰며 로봇 사피엔스가 되고 있는 동안 정작 인간의 문해력은 퇴화 하면 자연스럽게 쓰는 능력까지 저하 되고 있다. 

챗 GPT가 글을 써주는 시대에 나는 투비컨티뉴드에  2025년 2월 21일 부터  새 시리즈 <AI 시대에 글 쓰는 법>을  연재를 시작해서 2025년 7월 투비 선정 2차 인증 작가가 되었다.


- <AI 시대에 글 쓰는 법>

https://tobe.aladin.co.kr/s/14415


지금까지 총 9회 분량의 글이 발행 되었고 8월 25일 투비컨티뉴드의 활자 정거장에 <핫 토픽> 발행 글에 선정 되었다.


-투비컨티뉴드의 활자 정거장 

https://tobe.aladin.co.kr/event/293454


앞으로 20회 분량을 목표로  연재 할 예정인 <AI 시대에 글 쓰는 법> 시리즈는 매주 화요일 오전 10시에 새 글이 올라 온다.

지금까지 우리 인간이 발명한 그 무언가 같이 사용 여부를  각자 선택하면 되는 도구에 불과 한것이 아니다. 앞으로 인공지능은 스마트폰이나 소셜미디어보다  인간의 삶에 더 큰 변혁을 가져다 줄 것이다.

 <AI 시대에 글 쓰는 법> 이 근 미래에 불어 닥칠 인공지능 생태계에서 유용하게 활용되는 소중한 지식 자산이 되었으면 좋겠다.


 <AI 시대에 글 쓰는 법> 


-제 1회 한 번에 한 단락씩, 한 쪽씩 쓰기 

https://tobe.aladin.co.kr/n/318262


-제 2회 글쓰기는 두 단계로 이루어진 과정이다.

https://tobe.aladin.co.kr/n/452318


-제 3회 무명작가와 AI의 창의적인 글쓰기 배틀전

https://tobe.aladin.co.kr/n/456516

-제 4회 AI는 어떻게 창의적으로 사고 하는가

https://tobe.aladin.co.kr/n/461149


-제 5회 AI의 추리력 인간의 지능을 뛰어넘다.

https://tobe.aladin.co.kr/n/465236


-제 6회 AI가 인간의 언어를 번역하다.

https://tobe.aladin.co.kr/n/469583


-제 7회 AI의 창조적 영감은 어디서 오는가 

https://tobe.aladin.co.kr/n/473426


-제 8회 인간에 의해 탄생할 마지막 발명품 호모테크니쿠스

https://tobe.aladin.co.kr/n/477099


-제 9회 질문하는 창의성 시대가 도래 하다.

https://tobe.aladin.co.kr/n/481579


-제 10회 AI 맞춤형 개인교사가 되다.

https://tobe.aladin.co.kr/n/485049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5)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여기, 버스 운전기사가 있다.



미국 뉴저지주 패터슨시(市)의 23번 버스 운전기사 패터슨은 월요일 아침 6시 10분과 15분 사이에 알람 소리 없이 일어나 아내에게 ‘굿모닝 키스’를 하며 하루를 시작한다.

정확한 시간에 아침 식사를 마친 패터슨은 아내가 챙겨준 점심 도시락을 갖고 자신의 일터인 23번 버스에 올라 탄다.

버스에 시동을 걸기 전에 그는 수첩을 꺼내 시를 끄적인다.


또 다른 하나

네가 어렸을 때

너는 세 개의 차원이 있다는 것을 배운다:

높이, 너비 그리고 깊이

마치 신발 상자처럼.

그러다 나중에 너는

네 번째 차원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시간.

흠.

그러다 누군가는 말한다.

다섯 번째, 여섯 번째, 일곱 번째 차원...

나는 일을 해치우고

바에서

맥주를 마신다.

나는 내 맥주잔을 내려다보며

기쁨을 느낀다.


그는 버스 백미러에 비친 이들이 자신에게 이런 저런 이야기를 늘어 놓거나 푸념할 때도 싱긋 미소를 지어 보이며 정해진 정거장을 따라 운행 시간을 마치면 집으로 돌아간다.

집으로 돌아 온 패터슨을 자신을 반기는 애완견 마빈을 쓰다듬고는 아내의 하루를 묻는다.

지난 밤 자신의 꿈 이야기를 늘어 놓던 아내는 매일 수첩에 시를 끄적이는 남편에게 시를 출판 하지 말라는 말을 한다.

그는 아내의 잔소리를 흘려 듣고 애완견 마빈을 데리고 산책을 나선다.

산책 중에 그는 잠시 들리는 술집에서 맥주 한 잔을 마시고 집으로 돌아간다.











우리의 별 볼 일 없는 이들

그 끔찍한 얼굴의

아름다움이

나를 흔들어 그리하라 하네.

까무잡잡한 여인들,

일당 노동자들—

나이 들어 경험 많은—

푸르딩딩 늙은 떡갈나무 같은

얼굴을 하고선

옷을 벗어던지며

해질 무렵 집으로 돌아가는.

―윌리엄 카를로스 윌리엄스의 「사과」, 『꽃의 연약함이 공간을 관통한다』중에서


그 다음날도 패터슨의 일상은 어제와 크게 달라지지 않는다.

시시각각 변하는 건 오늘의 날씨와 차장 밖으로 보이는 풍경, 그리고 그가 운전 하는 23번 버스에 올라타는 승객들만 바뀔 뿐이다.

패터슨은 매일 운행되는 버스 노선 시간표에 맞춰 살아가면서도 마치 찰나의 순간에 수면 위로 살포시 떨어지는 꽃잎의 모습을 포착 하듯 버스 시동을 켜기 전 시를 쓰고 있다.


꽃잎 가장자리에서 하나의 선이 시작된다

하염없이 가늘고 하염없이

단단한 그 강철의 존재가

은하수를

뚫고 들어간다

접촉도 없이—거기에서

올라간다—매달리지도 않고

밀지도 않고—

멍 들지 않은

꽃의 연약함이

공간을 관통한다.

―윌리엄 카를로스 윌리엄스의 「그 장미」, 『꽃의 연약함이 공간을 관통한다』중에서


버스 기사 패터슨은 대단한 기대나 거대한 야망을 품고 시를 쓰지 않았을 것이다.

분명 패터슨은 한번 쯤은 늦게 일어나고 싶은 날도 있었을 것이고, 버스가 고장 나 일정이 변경되는 날도 있었을 것이다. 오랫동안 잘 알고 있다고 생각했던 사람이 어느 날 그에게 전혀 다른 모습으로 상처를 주거나 배신을 했던 순간도 있었을 것이다.

지극히 평범하면서 지루할 정도로 무미 건조한 인간의 삶은 끊임없는 반복 속의 적지 않은 충돌과 갈등이 수도 없이 반복해서 일어나고 있다.

인간이 무수히 내뱉는 말은 매일 바뀌는 날씨처럼 생각이나 기분에 따라 어떤 식으로든 마음에 상흔을 남겨서 하루에도 여러 번 요동치는 감정들은 마치 시의 운율처럼 움직인다.

그러니 인간의 삶은 매 순간이 연을 이루는 행과도 같아 일주일의 삶은 7연으로 쓰인 시(詩)일 것이다.


시를 쓰며 시내버스를 운전하는 패터슨도, 컵케이크를 굽고 기타를 치는 그의 아내 로라도, 패터슨의 단골 바에서 매일 밤 패터슨이라는 도시의 역사를 들려주는 주인장도, 이 영화를 보는 우리 모두도 각자의 일상을 시어로 빚어내는 예술가들이다.

일상의 삶을 예술 작품으로 빚어내며 2024년 2월 1일부터 100회 완결을 기획하고 쓰기 시작한 창작 소설 <굿바이, 부다페스트>가 1년의 시간을 지나 2025년 8월 21일 82회를 발행했다.

-굿바이부다페스트

긴 시간 동안 100회 완결을 향해 고군 분투 하면 쓴 무명 작가가 쓴 창작 소설 <굿바이, 부다페스트>을 읽어주고 응원 해 주는 독자가 있다는 것 만으로도 살아가는데 큰 힘이 되어 주고 있다.

-제 82회 덫에 걸리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7)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19세기 미국 문학의 최고 걸작으로 평가 받고 있는 허먼 멜빌의 <모비딕>은 셰익스피어의 <리어왕>, 에밀리 브론테의 <폭풍의 언덕>과 함께 영미 문학사의 3대 비극으로 일컬어진다.












<모비딕>의 첫 장 서두를 여는 [내 이름을 이슈메일이라 해두자]라는 문장은 세계 문학사에서 가장 유명한 첫 문장으로 손꼽히고 있지만 이 책의 내용을 완전하게 이해하고 있는 이들은 드물다.

벽돌 부피의 분량에 본명을 정확하게 알려주지 않는 이슈메일이라는 모호한 인물이 화자로 등장 하는 <모비딕>의 초반부는 고래잡이 상선에 올라탄 이들이 거친 바다의 풍랑에 부딪치면서 겪게 되는 고단한 삶의 여정처럼 읽혀진다.

특히 소설의 상당 부분은 신문 르포타주 처럼 고래 사냥에 쓰이는 다양한 도구들과 고래 잡이들의 삶을 다루기 때문에 쉽사리 페이지가 넘어 가지 않는다.

이내 중반부를 넘기지 못하고 책장을 덮고 나서 책 커버에 붙은 현란한 수식어들에 고개를 갸우뚱 하게 된다.

세계 3대 비극, 미국 최고의 걸작, 역대 가장 많은 미국 대통령의 추천 도서, 미국 중고교 학생들의 필독서, 성경만큼 널리 읽혀지는 작품, 세기의 명작....

아무리 세기의 명작이라 해도 읽어도 읽어도 지루하고 고리 타분한 전개의 이야기를 끝까지 읽지 못한다.

하지만 멜빌의 <모비딕>이 성경 만큼 널리 읽혀지는 작품이라면 다시 한 번 마음을 고쳐 먹고 책을 펼쳐 집중해 볼만한 가치가 있다.


가장 먼저 첫 문장에 등장 하는 <이슈메일>은 누구인가.?

'이슈메일'은 히브리어로 읽으면 이스마엘이라는 발음이 된다. 유대인의 시조 아브라함은 첫 번째 아내 사이에서 자식이 없다. 대신 하녀의 몸에서 그의 아들이 태어나고 그 아들의 이름이 이슈메일이다.

하지만 이후 아브라함의 아내가 아들을 낳자 하녀의 아들 이슈메일은 추방되어 척박한 팔레스탄인 땅을 헤매는 방랑자가 된다.

단지 하녀의 아들이라는 이유로 추방당한 이슈메일의 원죄는 무엇인가?

어미의 비천한 신분 탓인가?

아니면 태생적 운명 탓인가?

구약 성서 창세기 16장을 읽고 또 읽어도 이슈메일의 운명은 가혹할 뿐 어디에도 빛이 보이지 않는다.

그렇다면 작가 허먼 멜빌은 왜 소설의 화자로 등장하는 인물에게 성경에서 따온 이슈메일이란 이름을 부여했을까?

24만 단어에 이르는 방대한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스물 한 살의 청년 이슈메일은 고래잡이 상선에서 홀로 살아남아 죽음을 대가로 얻은 삶의 비밀을 세상에 전하는 전형적인 이야기꾼이지만 정작 방대한 작품 속 주인공이 아니다.

이슈메일은 '피쿼드'라는 고랫배에 승선 해서 태평양으로 출어 했다가 ‘모비딕’이라 불리는 거대한 흰고래에 받쳐 배가 침몰하게 되자 반드시 그 흰고래를 포획하기 위해 광기 어린 집념에 사로잡힌 선장을 두 눈으로 생생하게 목격한 인물이다.

따라서 <모비딕>은 다른 모든 동료 선원들이 사망한 가운데 악착 같이 혼자 살아남아 자신의 이야기를 세상에 알리기 위해 스스로 이스마엘이라 불러 달라고 요구하는 한 젊은이의 체험담이다.

하지만 이 작품은 단순히 이슈메일이라는 청년이 무법천지의 고래잡이 상선에서 가까스로 홀로 살아남아서 죽음을 대가로 얻은 삶의 비밀을 들려주는 것이 아니다.

고래 잡이 상선인 포경선 '피쿼드'는 미국 백인들에게 전멸 당한 인디언 부족의 이름으로 미국 북동부와 코네티컷 강 유역에 거주 했던 미 대륙 토착 원주민 부족이다.

1637년 백인 부대에 맞서 치열한 전투를 벌였던 피쿼드 부족의 비극은 민족 분쟁을 넘어 인종 섬멸 작전으로 불렸던 미 대륙의 끔찍한 피의 역사의 한 부분이다.

미 대륙 원주민이 최초로 백인 부대에 맞서서 대등한 대결을 벌였던 <피퀴드 전쟁>은 영국에서 '메이 플라워' 호를 탄 백인 기독교 인들이 미 대륙에 도착 한지 17년 만에 미국 북동부 지역을 점령하며 신게계에서 거둔 눈부신 '승리'의 첫걸음이기도 했다.

그렇다면 허먼 멜빌이 <모비딕> 작품을 통해 미대륙의 피의 역사의 한 부분을 상징적으로 표현 했던 것일까?

흰 고래는 잔혹한 미 대륙의 침략자 백인 기독교도들을 상징하는 것일까?

수수께끼 같은 암시로 가득찬 <모비딕>은 단순히 몇 단락으로 스토리를 요약 할 수 없을 정도로 다층적이고 다중적인 작품이다.

<모비딕>의 초반부에 등장하는 고래 사냥과 고래 잡이의 삶의 여정을 지나서 중반부로 들어 가면 고래를 추적해서 파멸 시키려는 에이햅 선장의 광기 어린 인간의 섬뜻한 면이 수면 위로 드러난다.

구약 성서 창세기에 나와 있듯이 이스마엘은 아브라함의 하녀 사이에서 태어난 서자다. 큰 어머니로 부르는 사라의 박해를 피해 하녀 신분인 어머니 하갈과 함께 집을 떠나 모래 사막 같은 황무지 각지를 방랑하는 추방자이고 방랑자다.

허먼 멜빌의 <모비딕>에 등장하는 이슈메일 역시 계모 밑에서 고아나 다름없이 자라난 인물이다. 그에겐 가정도 어머니도 존재하지 않는다. 어디에도 정 붙일 곳 없는 육지에서 기약 없이 무작정 바다를 떠도는 모험의 길을 선택했다.

절망적인 소외감에서 선택한 자신의 여정 속에서 이슈메일은 피쿼드호의 선상에서 일어나는 고통스러운 삶의 현실을 있는 그대로, 주어진 삶의 조건으로 바라보며 광기와 이성을 ‘평등한 눈'으로 바라 본다.

독자들 중에서 인내심을 갖고 끝까지 완독 하지 못할 경우 우주 같이 방대한 <모비딕> 작품에 감춰진 중심 스토리가 있다는 것을 알지 못한다.

한 폭의 풍경화에는 숲과 나무 그리고 강이 있듯이 방대한 이야기의 초반부에는 이야기의 전체적인 분위기, 등장인물들의 생김새, 이야기를 들려주는 화자의 목소리가 중심이 되어 이야기가 진행됨에 따라 숲 속의 나무 뿐만 아니라 뒤엉킨 나뭇가지와 잎사귀들의 모습이 서서히 드러난다.

소설 읽기의 진정한 매력은 전체 이야기의 핵심인 중심부와 그 이면에 감춰진 세부 사항의 전체 도감을 머릿 속에 그려 보며 소설의 진정한 주제를 탐색해 나가는 것이다.

2024년 2월 1일 부터 투비컨티뉴드에 쓰기 시작한 창작 소설 <굿바이, 부다페스트>는 100회 완결을 기획해서 2025년 1월 9일 제 1부 50회 부터 중반부로 넘어 갔다.


https://tobe.aladin.co.kr/n/306335


<굿바이, 부다페스트>는 1914년 유럽 헝가리의 수도 부다페스트의 부유한 가문의 '이슈트반 저택'의 사람들에 관한 이야기이면서 그 시대를 살았던 인물들을 세대와 인종, 그리고 계급별로 나눠서 씨줄과 날줄로 엮어 내고 있다.

<굿바이, 부다페스트>의 핵심 인물 중 한 명인 장군 죄르지는 오스트리아 제국의 황태자 루돌프와 같은 해에 태어났다.

어머니 시시황후의 영향으로 헝가리의 문화를 깊이 이해하고 사랑했던 황태자 루돌프는 보수적이고 변화와 개혁을 두려워 하는 황제 아버지와 달리 진보적인 사상으로 시대를 앞섰던 선구자였다.

그의 안타까운 죽음은 절친이였던 장군 죄르지의 인생을 송두리채 흔들어 놓았고 어느 날 후계자 자리에 올라간 사촌 동생 페르디난트 대공이 펼쳤던 평화적인 외교는 1914년 6월 28일 사라예보에서 세르비아 민족주의 단체 「젊은 보스니아」(Mlada Bosna)에 속한 19세 청년 가브릴로 프린치프가 쏜 총에 허무하게 무너져 버린다.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황제 요제프는 모든 것이 유지 되길 바랬다.

반면 그의 아들 황태자 루돌프는 모든 것을 바꾸어야만 제국의 평화와 질서가 유지 된다고 믿었다.

<굿바이, 부다페스트>에는 20세기 초 격변의 시대에 세대와 인종, 계급을 대표하는 인물들 중에서 역사에 실존 했던 인물과 내가 창조한 허구의 인물들이 함께 살고 있다.


<굿바이, 부다페스트>의 첫 번째 출발 지점은 '비밀의 사제관'이다.


https://tobe.aladin.co.kr/n/149538


이야기의 초반부에 장군 죄르지와 그의 어린 딸 조피나, 집사 마그다,남자 하인 언드레시, 요리사 어누슈카,영국 국교회 교구당 소속에 이슈트반 가문 저택 사제관 목사 클라이만, 정원사 요셉 그리고 어느 날 갑자기 사라진 가정교사 안나와 세상을 떠난 마망 아가타, 엄마 릴리가 등장한다.

어느 날 갑자기 가정 교사 안나가 사라져 버린 사실에 놀란 조피나는 떠난 이유도 몰라 그녀가 사용했던 방으로 들어가 슬픈 감정을 억누른다.

조피나는 2살 때 세상을 떠난 엄마 릴리와 3년 전 엄마 곁으로 간 마망 아가타를 그리워 하던 중 목사 클라이만이 있는 사제관 예배당으로 간다.

예배를 마치고 저택을 벗어나 목사 클라이만과 함께 전차를 타고 시내로 나간 조피나의 눈 앞에 1914년대 부다페스트 전경이 펼쳐 진다.

조피나와 목사 클라이만이 저택을 나간 사이에 조피나의 방은 불길에 휩싸이고 불이 진압 된 후 시신 한 구가 발견 된다.

그다음으로 등장하는 제 2화 '이슈트반 저택의 이방인'들 편에서 새로운 인물이 등장한다.

부다페스트 시장 비서 티서가 소환장을 들고 저택으로 찾아 와 장군 죄르지에게 융숭한 대접을 받고 티서의 일거수일투족을 시계 촛침처럼 감시하고 관리하는 비서 쾨니그의 모습이 나온다.

제 3화 '토끼 섬의 고아들'편에는 도나우 강 유역에 있는 토끼 섬의 수도원에서 비서 쾨니그와 죄죄 박사가 한 여자 아이를 탈출 시키고 목사 클라이만은 아이의 신변 보호를 위해 교구당 신도 명단에 이름을 올린다.

그 소녀의 이름은 주전너, 장군 죄르지와 같은 나이인 소녀는 저택의 하녀가 된다.

<굿바이, 부다페스트>의 초반부의 이야기가 서서히 진행 될 수록 독자들은 이런 의문을 갖게 된다.

장군 죄르지에게 어떤 사연이 있을까?

저택에서 불이 났을 때 조피나는 어디에 누구와 있었을까?

사라진 가정교사 안나는 어디로 간 것일까?

토끼 섬의 수도원에서 탈출한 고아 소녀 주전너는 누구 일까?

조상 대대로 귀족 가문의 아이들, 사회적 지위가 없는 여성들, 하녀와 하인들, 부패한 공무원과 관료들, 사회적 지위 상승을 꿈꾸는 유대계들, 피 땀 눈물을 흘리는 노동자들, 민족의 독립을 위해 투쟁하는 사상가들, 계급의 차별과 부의 평등을 위해 싸우는 아나키스트들, 제국의 영토를 넘보는 스파이들과 테러리스트들이 비록 역사에 이름을 새기지 못했지만 내가 창작한 <굿바이, 부다페스트>에 살아 숨 쉬고 있다.

이야기가 중심부를 향해 치닫는 동안 앞서 등장한 인물들과 깊이 연결된 인물들의 사연들이 맞물리면서 서서히 갈등이 증폭 되어 퍼즐 조각처럼 흩어졌던 복선들이 하나 둘 씩 맞춰져 나간다.

2025년 7월 3일 <굿바이, 부다페스트>는 제 75화 '신 앞에 맹세하다' 지점까지 다다랐다.


https://tobe.aladin.co.kr/n/454202


1914년 세계는 수 세기에 걸쳐 유지 되었던 계급과 질서가 요동치며 민족의 자유와 독립에 대한 열망이 들끓어 올랐다.

세상을 향해 주먹을 휘두르는 자가 있는가 하면 하루 하루 성실하게 자신의 삶의 울타리 안에서 살았던 사람들도 있었다.

역사적 사건 속에 다양한 인물들의 삶이 투영된 <굿바이, 부다페스트>는 정치적 사회적 사건들이 개개인의 삶에 중첩되어 펼쳐진다.

누군가는 격변의 시대에 편승하고, 누군가는 개혁하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누군가는 기존 체제를 전복 시키기 위해 총을 꺼내 들었다.

격변의 시대에 누군가는 죽고 누군가는 살아 남는다.

소설의 첫 시작은 작가로 하여금 그 소설을 쓰도록 이끈 직감과 사고, 지식들이 총 동원되지만 이야기가 중심부를 향해 치닫을 수록 삶에 관한 심오한 관점이 투영 되어 깊은 곳에 실재 할 수 있는 어떤 신비한 지점에 다다르게 된다.

세기의 걸작 <모비딕>과 비교 할 수 없지만 1년의 시간을 넘어 70회에 달하는 분량을 쓰는 동안 단순 시대를 대변하는 이야기가 아닌 1914년대의 격변의 역사 현장에서 살았던 인물들의 삶의 여정 속에 담긴 진실함을 담고자 노력 했다.

2023년 1월 12일 부터 투비 컨티뉴드에 글을 쓰기 시작해서 꼬박 2년의 시간을 넘어 2025년 7월 3일 현재까지 1670개의 노트를 발행했다.

현재 투비 컨티뉴드에 총 10개 시리즈를 연재하고 있고 매일 <모닝 페이지>에 글을 쓰며 하루를 시작하고 있다.

-모닝 페이지

https://tobe.aladin.co.kr/s/2724









[왜 우리는 창조력을 발휘해야 하는가? 창조력만큼 사람들을 관대하고 즐겁고 활기차고 대담하고 훈훈하게 만들어 재물이나 다툼에 무관심하게 해주는 것은 없기 때문이다.]

-줄리아 카메론의 <아티스트 웨이> 중에서


창작 플랫폼에 매일 글을 쓰고 창작을 하고 부터는 하루 일과가 이전 보다 더 촘촘해졌고 시간을 좀 더 효율적이고 융통성 있게 쓰게 되었다.

하루에 주어진 시간은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24시간 이다.

24시간에서 평균적으로 잠자는 시간(일반적으로 6-7시간 숙면)을 제외 하면 개개인이 활동하고 움직이는 시간은 대략 12시간 정도일 것이다.

밥벌이를 하지 않는 시간에 나는 항상 머릿 속에서도 마음 속에서도 글을 쓰고 있다.

숏품 그리고 웹툰과 웹소설의 범람 속에서도 깊이 있는 스토리를 찾아 읽는 이들이 있다.

집필 공간도 집필을 구상하는 노트도 출간을 준비 하기 위해 쓰는 원고도 없는 무명 작가가 쓴 에세이 <모닝 페이지>와 창작 소설 <굿바이, 부다페스트>를 꾸준하게 읽어 주는 독자들이 있다.

사람들이 왜 쓰냐고 묻는다면, 나는 이렇게 대답한다.

내 안에 갖고 있는 두려움과 부정적인 사고를 한 쪽으로 밀어 버리고 내 안에 숨어 있는 평온하고 작은 목소리를 듣기 위해서라고

그러니 글을 쓰지 못하는 것을 게으름이라고 해선 안 된다. 그것은 두려움이다.

글쓰기는 자신에게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게 무엇인지 알게 해 준다



댓글(2) 먼댓글(0) 좋아요(39)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2025-07-03 15:1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5-07-16 12:34   URL
비밀 댓글입니다.
 
처음 처음 | 이전 이전 | 1 | 2 | 3 | 4 | 5 |다음 다음 | 마지막 마지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