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미언 허스트가 골드 스미스 대학 시절 친구들과 기획 했던 전시 이름에서 차용된 잡지 <프리즈>는 4년 후 1995년 뉴욕과 베를린에 아트페어 개최를 시작으로 지난 30여년 세월 동안 현대 미술계의 광범위하면서도 촘촘한 네트워크를 구축해서 아트페어 개최를 비롯해 출판물,비디오, 팟캐스트, 웹사이트 등을 통해 전 세계 예술가와 컬렉터를 연결 하는 세계적인 아트 ,컬쳐 멀티 플랫폼으로 성장했다.21세기에 들어서면서 <프리즈>는 본격적으로 전세계 예술 작품을 한 곳에 전시 하는 아트 페어를 2003년 런던에서 개최 하면서 예술과 문화가 대중에게 더 가깝게 다가 가는 계기를 마련했다.

2012년 랜들스 아일랜드 에서 개최한 <뉴욕 페어>와 런던 <프리즈 마스터 페어>를 시작으로 영상과 작품을 다양한 매체로 적극 소개 하며 단순히 미술품을 구매 해서 전시 하는 것 뿐 만 아니라 문화와 패션, 음식,영화와 연결 시키며 전 세계 예술의 교두보로 우뚝 성장했다.

반면 1966년 독일 쾰른에서 처음으로 시작된 아트 페어가 열린 이후 줄곧 아시아 지역은 일본과 홍콩을 제외하고 예술계 변방으로 한국은 몇몇 소수의 작가들 작품을 제외하고 해외 거물 급 갤러리 소장품으로 등록 되지 못했다.

1980년대 까지 아시아 미술 시장의 중심은 일본으로 막강한 엔화 자금력을 동원해서 빈센트 반 고흐의 '해바라기', 모네의 '수련'작품 같은 최고의 명작을 긁어 모아서 세계 미술계 시장을 움직이는 한 축으로 우뚝 성장했다.1990년 버블 경제로 일본 경제가 기나긴 침체에 빠져 버리자 싱가포르가 아시아 미술 시장 자리를 차지 했지만 2007년 싱가포르 정부가 미술품에 7퍼센트 부가 가치를 부과 하는 치명적인 실책을 저지르면서 세계 주요 경매 회사들이 세금이 없는 홍콩으로 건너 갔다.

외국의 메이저 급 화랑들이 홍콩 미술 시장 곳곳에 문을 열며 아시아 문화 예술 중심지가 되었지만 홍콩 민주화 운동으로 인한 불안한 사회 경제 상황과 중국 공안의 극심한 검열로 정치적 불안이 요동 치던 중 코로나 팬데믹이 시작 되면서 유럽 명문 갤러리들이 서울에 사무실을 열기 시작했다.

그동안 일본과 싱가포르 그리고 홍콩에 밀렸던 서울은 2022년 9월 세계적인 아트페어 <프리즈>를 개최 하면서  아시아 예술계의 변방에서 벗어나  예술산업이라는 새로운 부가가치를 창출하게 되었다,

국내외 거장 예술가들 작품들과 세계적인 갤러리들이 총 집결하는  세계적인 아트페어 <프리즈>가 열리는 동안 단순히 그림을 사고 파는 것 뿐만 아니라 행사 기간 동안  출품 전시된 작품에 관한 영상 전시,소더비 인스티튜트의 프리미엄 컬렉션 코스, 토크 프로그램, 피아니스트 조성진의 클래식 연주회 그리고 야간 행사를 통해 작가와 작품, 컬렉터와 수집가를 연결 시키며 미술계의 중요한 화두와 의제에 관해 소통하는 거대한 '아트 테마 파크' 같은 프로그램이 빼곡하다.

 세계 메가 갤러리들이 총 집결하는 2026년 프리즈에 참석한 가고시안은 데이미언 허스트의 솔로 부스를에  ‘Pill Cabinets’를 비롯해 ‘Spin Paintings’, ‘Spot Paintings’, ‘Treasures’ 등 대표 연작을 한자리에서 선보이고 있다.

2026년 프리즈에서는 이전과 달리 서구 중심 미술사에서 상대적으로 덜 조명 받았던 한국 미술과 세계의 20세기 작가 15명의 작품과 함께 도자와 섬유, 유리, 금속, 목재, 한지 같은 재료로 만든 공예 작품들도 출품 되었다.세계 제 1일의 반도체 공정을 창출하는 한국인의 DNA에는 탁월한 미적 감각이 스며 있어서 물과 불, 흙과 조개 껍질 그리고 옻나무 같은 자연에서 얻을 수 있는 재료로 수천년 동안 빛을 바라지 않는 예술작품을 만들어 왔다.

인공지능과 알고리즘이 인간의 삶 전체를  재편하는 시대에 인간의 본능과 신체적 감각으로 빚어낸 예술 작품이 품고 있는  생명력은 세상에서 가장 값지고 귀한 존재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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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안 가구 배치를 할 때 가장 중요한 건 방 안의 침대 위치를 잡는 것으로 침실의 크기와 방문과 창문의 위치에 맞춰야 잠잘 때 머리 방향의 위치를 잘 잡을 수 있다.

머리 방향 위치를 잡는데 몇 가지 염두 해야 할 사항들이 있다.

자기장을 발산하는  전자파를 발산하는 전자 기기 방향으로 머리를 두면 뇌신경을 자극 할 수 있기 때문에 가능한 멀리 하거나 방향을 바꿔야 한다.

과학적으로 증명되지 않았지만 머리를 방문 쪽으로 향하거나  장롱 쪽 가까운 곳에 두거나 발이 문 쪽으로 향하고 자는 것도 좋지 않다.

머리의 방향은 그 사람의 기나 건강 상태 등에 의해 좋고 나쁨이 미묘하게 달라지게 하는데 수면 시 머리 방향을 동쪽으로 두면 떠오르는 햇빛의 양기를  받을 수 있어 좋다는 말이 있다. 

 잠잘 때 머리의 방향을 내 스스로 느끼기에 가장 편안한 상태의 방향을 잡아도 자고 일어나면 온 몸이 뻐근하다.

한동안 불면증에 시달렸을 때 좋다는 기능성 베개를 찾아 전문 매장에 시범 전시 된 침대에 누워 보며 내 몸에 맞는 베개를 사용했다.

 누웠을 때 머리부터 발끝까지 편안함을 주는 베개를 비고 자도 이를 악물고 자거나 이를 갈거나 입을 벌리고 자는 경우가 많아 졌다.

이런 증상 때문인지 기상 알람 소리를 들으면 심장 박동이 빨라져서 마치 전속력으로 달리다 갑자기 멈추기라도 하듯 호흡까지 가파졌다.

머리 방향을 바꿔보기도 했고 베개를 바꿔 보기도 했지만 증상이 사라지지 않았다.

가장 바람직한 수면 자세는 바르게 누워서 천장을 보고 자는 자세로 경추와 요추의 커브가 자연스럽게 근육의 긴장이 없는 상태여야 한다.

하지만 나는 옆으로 누워야만 잠이 들기 때문에 바른 자세 상태에서 꿈나라를 가보지 못했다.

학부 시절 기숙사 생활을 할 때 다리를 꼬거나 한쪽 다리를 다른 쪽 다리에 올려놓고 교차 시켜 놓은 자세로 잠을 잤다.

나는 이 사실을 전혀 알지 못했는데 메이트가 알려줘서 깜짝 놀랬다.

두 다리를 묶고 자야 하는 걸까라는 고민을 했지만 기숙사를 나오고 나서 이 자세는 사라졌다.

사람마다 체형과 척추 커브, 구조의 비대칭 정도가 달라서  편안함을 느끼는 수면자세도 다르다.

의사와 베개 매장 직원 말에 의하면 베개는 천장을 보고 바로 누워 잘 때보다 어깨 높이를 감안하여 팔뚝 하나만큼 더 높은 위치인  10~15cm의 높이가 적당한데 똑바로 누워 자는 사람이라면 머리와 어깨 사이의 빈 공간을 채워주도록 베개의 목 부분만 높으면 되고 옆으로 누워 자는 사람이라면 베개 좌우가 높아 누웠을 때 어깨를 받쳐줄 수 있는 형태가 좋다는 조언을 했다.   

 베개 높이는 자는 자세에 따라 달라지고 사람마다 체형과 척추 커브, 구조의 비대칭 정도가 달라서  편안함을 느끼는 수면자세도 다르다.

그렇다면 각자의  목 높이에 맞는 베개를 선택할 때 고려해야 할 사항은 다음과 같다.

1. 벽에 등을 살짝 붙이고 머리 뒤통수는 닿지 않도록 기대어 선다.

2. 머리 각도가 5도 정도 앞으로 향해 있는지 확인 후 벽에서부터 목까지의 거리를 잰다.

3. 측정한 목 높이를 고려해 베개에서 목이 닿을 부분을 꾹 눌러 그 높이가 나오는 베개를 고른다.

이런 사항을 모두 고려해서 베개를 골라도 일어났을 때 몸 상태는 개운하지 않다.

그동안 사용했던 베개들 중에서 가장 편안한 숙면을 취하게 해 주었던 베개들 중에서 이것 저것 따져보면 내가 직접 고른 베개가 아니였다.

 

기숙사를 나와 학교에서 멀리 떨어지지 않는 주택가 4층 꼭대기에 살았던 시절, 당시 집 주인은 내가 자신들의 두번째 입주자라며 각별하게 신경을 써 주었다.

없는 게 없을 정도로 혼자 쓰기 딱 좋은 가구와 세간 살이들, 주방 시설과 기기까지 완벽했다.

특히 덮고 잤던 이불과 베개는 깃털 만큼 가볍고 폭신 해서 여행을 갈 때면 가져 가고 싶을 정도로 편안했다.

 그 집에서 몇 주를 보내고 난 뒤 집주인이 잠은 편히 잤냐. 어디 불편한데 없는지 물었다.

나는 단 몇 초도 망설이지 않고 이불과 베개가 너무 편했다고 대답했다.

날씨가 화창했던 어느 저녁  집주인 가족에게 저녁 초대를 받아 뒤뜰에서 열린 바베큐 파티에 참석했다.

이사 오던 날 잠깐 인사만 나눴던 집주인의 두 아들과 반갑게 이야기를 나누던 중 나와 동갑이였던 둘째 아들이 내가 아끼는 그 베개가 자신의 할아버지가 농장에서 키운 거위 털로 직접 만든 수제 베개라는 말을 해주었다.

 

둘째 아들에게  베개 한 개에 몇 마리 거위 털이 들어 가냐고 물으니 한 마리 거위에서 대략 140그램이 나오는데 성인용 베개 한 개에 들어가는 거위는 15마리에서 20마리가 필요하다는 말을 했다.

혹시 내가 덮고 있는 이불도 거위털로 만들었냐고 물으니 그렇다며 그 거위 이불에 들어간 거위는 50마리가 넘는다며 솜털과 날개 쪽 깃털을 사용해야 보온이 뛰어나다는 말을 했다.

 

거위 털 베개의 수명은 1년에서 1년 반이고 이불은 5년이다.

그 집에서 2년을 채우지 못하고 다른 곳으로 이사를 갔고 그 이후로는 거위 털을 넣은 걸 침구로 사용하지 않았다.

베개가 불편 할 때면 그 시절 거위 털 베개가 생각나지만 나의 질 높은 수면을 위해 수십마리의 거위 털을 뽑아 만든걸 사용할 수 없어서 베개 전문 매장을 찾아다닌다.

전문가에 의하면 기능성 베개로 인기가 좋은 메모리 폼이나 라텍스 소재 베개 수명은 3년이고 천연 라텍스의 수명은 10~15년인데 개개인의 머리 무게와 땀 수분 상태에 따라 교체 주기가 달라진다는 말을 했다.

새로 구입한 베개 사용 설명서에 이런 문구가 적혀 있다.

 라텍스는 수분에 약해 습기가 계속 닿으면 표면이 딱딱해지고 갈라지는 경화현상이 일어난다. 

이를 방지하기 위해 자는 동안 땀이나 침을 많이 흘리는 사람은 방수포를 안쪽에 한 겹 씌워주면 좋다.

경화현상이 일어날 경우 베개가 점점 더 딱딱해지고 탄성이 떨어질 뿐만 아니라 라텍스 가루가 떨어져 코·입으로 흡입할 수 있으니, 그 상태에 이르렀다면 빨리 교체해야 한다.


체형에 맞는 베개를 찾지 못하거나 교체 하는 것도 귀찮다면 이런 베개도 괜찮을 것 같다.

(c) Håkon Anton Fagerås

세상에서 제일 딱딱한 베개를 만드는 노르웨이 조각가 호콘 안톤 파가로스는 베개 천을 재단하고 박음질 하지 않고 딱딱한 대리석을 드릴로 정교하게 깎아내고 다듬는다.

 

점토나 대리석을  면 베개와 구분하기 어려울 정도로 포근한 베개로 변모 시키는 조각가 파가로스는 인생이 침대에서 시작되어 침대에서 끝난다며 '만약 당신이 딱딱한 베개를 좋아한다면...'이라는 주제로 다양한 색과 크기의 딱딱한 베개 조각품을 만들고 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발표한 수면 시간 통계 자료에 따르면 미국 성인들은 평균 9시간 28분이고 일본은 7시간 22분 한국인 성인  하루 평균 수면시간은 7시간 41분, 이 가운데 직장인은 6시간 6분으로 전체 회원국 중 일본 다음으로 가장 낮았다. 

현재 우리나라 연간 노동 시간이 2100시간을 넘어 OECD 평균 1766시간보다 무려 400시간이나 많다.

잠도 못 자며 일만 해도 어제보다 더 나은 삶을 사는 것도 빠듯하기에 베개 만큼은 내 몸을 편하게 해주면 좋겠다.

잠과 싸우지 말고 머리를 베개에 눕혀라. 

-마하트마 간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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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읽는나무 2026-09-04 10: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잠을 잘 자는 게 참 중요하단 걸 나이 들면서 새삼 느껴요. 건강의 척도란 것을요. 저도 늘 옆으로 또는 살짝 업드리다시피 누워야 어느새 잠이 들어 있을 때가 많아 바른 자세 유지가 참 힘들더군요. 그리고 베개의 중요성도 느껴 정말이지…다른 곳에서 잠을 잘 못 잘 정도가 되어버렸죠. 베개 정말 중요해요.^^
 

지금으로 부터 142년 전인 1884년 12월 5일 , 조선 땅에서 선교를 하며 의술을 펼쳤던 미국인 호러스 알렌(1858~1932)은 늦은 밤, 휘황찬란한 달빛이 기이할 정도로 대낮 같이 빛나서 일기에 황홀할 정도로 빛나는 순간을 기록한다.

“인적이 드문 거리는 조용하고, 달빛에 비친 거리 모습이 너무 아름다워 산보 하기 위해 대문 밖으로 나갔다”

일기를 쓰고 난 후 호러스 알렌은 대낮 같이 빛나는 달빛을 맞으며 집 주변을 산책 하고 밤 10시 반쯤 집으로  돌아와 잠자리에 들자마자 누군가 요란하게 대문을 두드렸다.

화들짝 놀란 호러스 알렌이 문을 열자  미국공사관 직원이 다급한 목소리로 외쳤다.

'정변이 일어 났습니다. 어서, 안전한 곳으로 대피 하십시요.'


1884년(고종 21) 12월 4일 저녁, 우정국의 책임자였던 홍영식(1856~1884)이 한국 최초의 근대적 통신체제 출범을 기념하는 연회장에서 급진 개화당의 주역들(김옥균,박영효,서광범, 서재필)과 함께  민씨 척족 등 수구파들을 몰살할 계획을 꾸민다.

조선의 급진개화파들은 청나라의 내정 간섭이 심각한 상태에 이르자  청불전쟁으로 조선 주둔 청군이 3000명에서 절반으로 감소한 시기를 기회로 삼고  자주국가 수립과 개혁을 위해 정변을 계획했다.

1884년 12월 4일  밤 10시 30분,   개화당은 우정국 개청 축하연회장에서 개혁 정령을 반포 하기 전  고종을 경우궁으로 옮기고 군사권을 장악하고 문벌 폐지와 인재 등용, 군제 개혁 등 근대적 개혁안이 담긴 개혁 정령을 반포했다.

개혁 초기는 성공한 듯 보였지만  청에 맞서 자주를 회복할 것인가, 당분간 보호 아래 국력을 키울 것인지를 놓고 분열의 조짐이 시작되었고 섣불리 일본군을 끌어 들여서 민심에 반하는 행보를 보이면서  청나라군이 개입할 시간을 벌어 주었다.

당시 일반 조선인들은 개항 이후 일본을 침략자로 인식하고 있었고 고종의 성급한  군사 근대화 정책으로 인해 하루 아침에 일자리를 잃었고 급속하게 밀려 들어 온  외국 상품의  범람으로 조선 경제는 무너져 버렸다.

도로 정비를 이유로 살던 주거지들이 철거 되어 고향을 떠나 전국 떠돌이 신세로 전락한 민중들은 개화당이 발표한 개혁 정령에 극심한 반감을 갖고 있었다.

 부유한 금수저 20대 조선 청년들이 경제적으로 어려움에 처한 민심의 흐름을 제대로 읽지 못했고 주변 강대국 세력들의 본심을 제대로 읽지 못한 채 이들의 교활한 전략에 휘말려 들어갔다.

특히 정변 마지막 날 고종이 폐립됐다는 소문이 퍼지면서 민중의 분노가 폭발해 일본 공사관을 공격하고 개화당의 집을 파괴하는 사태로 이어졌다.

결국  정변은 3일 만에 실패로 끝났다.

출처 :일본국회도서관 

일본에서 최고 조선전문가였던 이노우에 가오루(1936~1915) 외무경은 청일전쟁이 발발한 뒤 조선의 내정개혁을 위해 일본이 주도해 시행한 갑오개혁을 성공시키기 위해 조선 공사로 부임하기전 도쿄에서 김옥균을 만난다.

고종 내외의 사치와 민씨 척족들의 부패로 조선 재정은 거덜이 난 상태에서 김옥균은 조선 국방력 확충에 필요한 무기 구입과 신식 군대 훈련에 들어갈 자금을  일본 정부로 부터  끌어 올 생각이였지만 이노우에게 단호하게 거절한다.

이미 2년전 일본 정부는 조선왕 고종에게 요코하마 정금은행에서 대출한 17만엔을 차관 해 주었지만 명성 왕후 일가와 황족들이 외국사절 접대, 수신사·조사시찰단·유학생 등 파견, 부산·원산·인천 등의 개항한다는 명목으로 펑펑 써버려서  나라를 지키고 경제 내실을 다질 곳엔 단 한 푼도 쓰이지 못했다.

김옥균은 앞서  후쿠자와 유치키에게 2천만엔을 지원 받았지만 개인 경비와 사치 비용으로 홀라당 써버렸다.

이런 사실을 잘 알고 있었던 이노우에는 김옥균이라는 인물을 허세와 허풍이 심해서 신뢰 할 수 없는 인물이라 생각했다.


출처:문화재청 /1884년 갑신정변 실패후  망명 시절의 김옥균의 모습.

김옥균이 벌인 일로 너무 많은 이들이 고통을 당했다.

가장 먼저 그의 아내와 딸은 관노비가 되었고 집안은 풍비 박산이 났다.

3일 천하 정변이 실패로 돌아가자  조선의 지배계급 내에 뿌리 깊었던 증오심이 폭발해서 나라 전체가 쑥대밭이 됐다. 

이 틈을 노렸던 청나라와 일본은 서로 살벌한 기싸움을 벌이며 갑신정변의 사후 처리를 위해 1885년 4월 “장래 조선국에 만약에 중대 변란이 생겨 청·일 양국 혹은 한 나라에서 병사 파견이 요구될 때에는 마땅히 먼저 상대에게 행문지조(行文知照·문서로 알린다) 해야 한다”는 내용이 담긴   톈진조약을 체결한다.

이 조약이 7년 후 조선 땅을 불바다로 만든 청일 전쟁의 도화선이 된다는 사실을 꿈에도 몰랐던  고종과 명성황후 일가는  김옥균을 비롯해 개화파 세력 처단에 집착하며 나라를 통째로 외세 세력들이 쉽게 들락거리게 만드는 빌미를 던져준다.


조선 땅에 쿠테타가 발발 했다는 소식에 알렌은 황급히 조선의 통상 업무를 담당하고 있는 독일 외교관 출신인 묄렌도르프의 집을 찾아 간다.

그 집에 도착해 보니 오른쪽 귀에서 눈두덩까지 칼에 베여서 피를 철철 흘리며 죽어가는 이를 발견한다.

명성왕후의 양오빠 민승호의 양아들로 고종 내외의 신임을 독차지 하고 있었던 민영익(1860년~1914)은 하늘에서 내린 천운으로 의사 알렌의 치료를 받아 목숨을 구했다.

 천하(天下)라는 단어는 사전적 의미로  전통적 우주관에서 ‘온 세상’을 뜻한다. 하지만 시간을 뜻하는 수사와 명사 뒤에 붙으면   짧은 기간 동안 권력을 잡았다가 그 권력을 빼앗긴 사건을 의미한다.

1884년  갑신정변 두달 뒤인 12월 13일, 도망가지 못한 김봉균, 이희정, 신중모, 이창규는  능지처참됐고, 이점돌, 이윤상, 차홍식, 서재창, 남흥철, 최영식은 참형을 받았다.

 일본으로 도망갔던 김옥균은 청나라 실세 이홍장을 만나러 상하이에 갔다가 홍종우에게 암살된 뒤 국내로 송환 돼 양화진 백사장에 시신이 던져 졌다.

김옥균의 생부 김병태는  교수형에 처해졌고 어머니와 누이동생은  독을 마시고 자결했고 그의 아내와 딸은 관노비가 되어 비극적인 삶을 살다 갔다.

가장 오래 살아 남았던  홍영식, 박영효, 서재필의  부모, 아내와 자식 모두 독금물을 먹고 자살하거나 자결했다.

1919년 1월 제1차 세계대전을 마무리하는 파리강화회의에 의친왕과 하란사를 밀사로 파견해 대한제국 황실의 독립 의지를 알리려 했던 고종의 은밀한 계획은 일본 측에서 심어둔 비밀 첩자들인 황제를 보좌하는 궁녀들과 내시들에 의해 흘러 들어갔다.

사전에 고종의 계획을 알고 있었던 일본은 뜻대로 되지 않자 독살을 감행했다.

1919년 1월 19일  이날 고종이 마신 음료는 식혜였다.

사망 직후 고종의 팔다리가 심하게 부어올라 바지를 찢어야 했고 이가 빠지고 혀가 닳아 있었으며 목에서 복부까지 30센티미터가량 검은 줄이 나 있었다는 기록이 윤치호 일기에  기록 되어 있다. 

대한제국 마지막 황태자였던 영친왕의 비 이방자 여사 수기에 조선총독부가 시의 안상호에게 독살을 명령했다는 소문을 들었다고 적었다. 

궁내부 사무관을 지낸 일본인 곤도 시로스케의 회고록 '이왕궁비사'에 고종의 갑작스러운 서거가 민병석과 윤덕영이 조선총독부 고위 관리와 모의해 안상호에게 명해 독을 쓰게 했기 때문이라는 유언비어가   적혀 있다. 

곤도 시로스케의 회고록에 등장하는 안상호는 1896년 관비 유학생으로 일본에 건너가 도쿄 자혜의학전문학교를 졸업하고, 한국인 최초로 일본 의사 자격증을 취득했다.

 귀국 후 순종과 고종의 전의(주치의)로 활동하며 조선 최초 서양 개업의로 활동 했다.

 1909년 12월 22일 서울 명동성당에서 독립운동가 이재명 의사에게 피습당한 이완용을 치료한 하며 신의 손으로 소문이 자자해지기 시작했다.

구사 일생으로 살아 남은 매국노 이완용은 1910년 8월 한일병합조약, 즉 경술국치 체결에 앞장서서 

대정친목회를 조직해서 조선 땅의 경제인과 관료·언론인·교육자·법조인·의료인을 참여 시켜 조선인의 영혼까지 탈탈 털어내고 세뇌 시키는 일본의 손과 발이 되었다.

이 조직에서  한국 최초의 개업의 안상호는  평의원을 지내며 일제강점기 동안 조선인들이 피 땀 눈물을 흘릴 때 경기도 군포 등지의 철도·도로 인근에 수천 평 규모의 부지를 소유했고 이후 자손대대로 엄청난 부와 명예를 누리며 대한민국 땅에서 살고 있다.

2026년은 갑신정변 발발 142주년을 맞는 해다.

 타임머신을 타고 과거의 시간으로 되돌아간다면 나라가 퍠망으로 가는 길을 막을 수 있었을까?

갑신정변 주역들인 개화당 엘리트들은 역설적이게도  모두  강경 수구보수파였던 노론명문가의 자손들이었다.

조선 왕조 5백년 내내 계파와 당파 싸움으로 조선 최고의 지식인들과 권력자들의 아귀다툼으로 내부에서부터 섞어 들어 갔다.

로봇과 공존 하는 시대에 들어서도 여전히 협회.단체, 조직, 정당, 관공서 그리고 민생의 안전과 치안을 최우선으로 맡고 있는 경찰 조직까지 모두 썩어 버려서 부패 할 대로 부패 하다 못해 은폐와 은닉, 눈감아 주는 것은 당연시 하고 있다.


암행어사, 홍길동이 등장 한다 해도 법과 정의가 실종된  이 나라를 구제 할 수 있을까? 


개인의 안전을 위해 차라리 신변 보호용 로봇이 등장 하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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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NHK 일일 아침드라마 1920년대 일본 사회가 배경인 ‘호랑이에게 날개(虎に翼)’의 87화 에피소드에  조선인 남성이 피고인이 된 방화 사건 재판이야기가 등장한다.

간토 대지진 발생 당시 조선인들이 우물에 독을 탔다는 유언비어가 급속도로 퍼져나가자 일본인들은 손에 총과 칼을 들고  눈에 보이는 데로 조선인들을 잔혹하게 찔러 죽였다.

잔혹한 반인륜적 범죄를 저지른 일본인들에게 누명을 쓰고 방화 혐의를 받은 조선인을  재판장에 세운  검사는 그를 유력한 용의자로 지목하며 판사에게 이렇게 말한다.

'불이 나지 않으면 연기가 올라오지 않는다”

검사의 말을 들은  판사는 조선인이 폭동을 일으켰다’는 유언비어 때문에 무고한 조선인이 학살 당했던 일을 재판장에서 언급 하고  다음과 같은 사항을 지적한다.

'차별이 생기는 이유는 다양하다. 아니 땐 굴뚝에 연기가 나지 않는다고 끝내버릴 건가, 연기를 피운 사람이 누구인지를 찾아낼 것인가? 헛소문을 믿고 무고한 사람을 잡으면 안 된다.'

일본 방송 텔레비전 역사상 자신들의 손으로 조선인을 잔혹하게 죽인 '1924년 간토 대 학살'에 대한 이야기를 직접적으로 언급한 건 2024년에 방영된 아침드라마  ‘호랑이에게 날개(虎に翼)’가 최초다.

2024년 드라마 방영 당시 방송 게시판은 두 개의 의견으로 강하게 충돌했다.

 “조선인 학살을 부정하는 고이케 유리코 도쿄도지사는 이 드라마를 보라”며 응원하는 글과 “NHK는 좌파다” “왜 일부러 (조선인 차별 문제를) 다루는가” 라는 글들이 게시판에 줄을 잊자 제작진은 이 드라마의 제작 의도에 대해 이렇게 밝혔다.

'1920년대 사회를 배경으로 하는 이 드라마에서 간토대지진 발생으로 일본 사회가 그 시절에 어떤 상황이였는지 짚고 넘어가지 않으면 시대 드라마는 판타지로 전락해 버립니다.

따라서  간토대지진으로 수많은 조선인들이 유언비어로 살해 당했다는 걸 이 작품에 분명히 보여 줘야 하고 당시 일본 전역에서 광범위하게 조선인에 대한 차별이 있었다는 것 역사적 사실입니다.'


2024년  4월 방영되었던 일본  NHK 일일 아침드라마 ‘호랑이에게 날개’는 1938년 일본 최초의 여성 변호사가 된 미부치 요시코의 일생을 다룬 드라마로 일본 법조계에서 남녀 성 차별의 문제 부터 일본이 전 세계로 군사력을 펼치며 한반도를 무력으로 점령했던  일제강점기와 제2차 세계대전 전후의 시대 상황이 일본 사회 전체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밀도 있게 펼쳐 보였다.  

1923년 9월 1일, 도쿄·요코하마를 비롯한 일본 간토 지방을 진도 7.9 대지진이 발생했다.

단 몇 분만에  사망자 10만명, 이재민이 340만명에 달할 정도로 일본 열도 역사상 최악의 대지진이였다.

지진이 발생했던  동시간 대  도쿄 스미다구 요코아미초공원에 형체를 알아 볼 수 없을 정도로 시신이 훼손된 조선인들로 넘쳐났다. 

지진 발생 직후 괴이한 유언비어가 떠돌기 시작했다.

‘조선인이 폭탄을 던져 화재가 계속되고 있다’ ‘우물에 독을 탔다’ 등의 괴소문이 급속도로 퍼지자 가장 먼저  일본 군인과 경찰이  총·칼·죽창을 들고 조선인들을 죽이기 시작하고 이에 동참한 일본 민간인들은 조선인들의 사지를 찢어서  산채로 불태워 버렸다.

이렇게 일본인 손에 의해 학살된 조선인의 수가 6661명에 달한다. 

당시 상황을 취재 했던 미국 뉴욕트리뷴, 영국 맨체스터 가디언 등 외신 기사는 인종청소라는 단어를 언급하며 일본의 잔혹함을 강하게 규탄했다.

도쿄 스미다구의 조용한 주택가 지역을 돌아 요코아미초 공원에 들어서면 눈에 잘 띄지 않는 곳에 돌비석 같은 것이 세워진 곳이 있다.

 그 돌비석에 새겨진 문구에는 주어 없이 이런 비문이 적혀 있다.

 ‘추모’

이 역사를 영원히 잊지 않고, 재일 조선인과 굳게 손을 잡고 일조친선, 아시아의 평화를 세우겠다.

인간의 모습으로 태어나 사람의 가죽을 벗겨 먹었던 일본 군인들과 경찰들은 국가의 명령을 받아 인간으로서 도저히 저지를 수 없는 범죄를 저질렀고다.

 전쟁에서 무조건 승리 하기 위해 일본은 '메스암페타민' 이라는 피로와 졸음을 없애는 마약 성분의 각성제까지 먹여서 반 미치광이 상태로 만들어 살인기계들이 아시아 전역에서 핏물로 물들였다.

‘1923 간토대학살’에 대해 우리는 학교에서도 상세하게 배운 적이 없다. 

뉴스나 신문에서 스쳐 지나가듯 언급되는 정도 였지만 최근에 개봉된 영화 '1923 간토 대학살'을 촬영한 감독은 제작에 앞서 사전 조사를 하다 충격적인 사실을 발견하게 된다.

 “일본 방위성 방위연구소는 자료 열람신청부터 허가까지 6개월이 걸렸다. 일본 정부는 ‘자료가 하나도 없다’고 했지만 거짓말이었다. 막상 찾아보니 당시 군대 관련 증거 기록이 적지 않았다.

방위연구소에 보관된 군대보고서에서 간토대지진 당시 계엄군 15연대가 조선인을 총살한 기록을 확인했다. 또 도쿄공문서관서 발견한 ‘관동계엄사령부 상보 제5권’을 통해선 일본 정부의 의도적 기록 삭제 정황이 의심될 정도로 증거가 남아 있었다. 한때 기밀 문서였던 이 자료는 1923년 당시 무기사용 기록 중 제11장 목차와 내용이 잘려나간 상태였다. 

이 문서와 보고서에  군대·경찰에 의해 살해된 (조선)사람들도 있었다는 점이 기록되어 있고  1923년 11월 22일 뉴욕타임스가 요코하마 부두 부감독인 미국인 헤드스트롬의 증인을 기사에  인용했는데 그 기사 내용은 다음과 같다.“가능한 많은 조선인을 죽이라는 공식 명령이 내려졌다” 

영화 '1923년 간토 대학살'에 증언과 기록 문서에 의하면 1923년 9월 1일 지진이 발생한지 하루가 지난 2일 동안 총 250명의 조선인이 5명씩 묶인 채 산채로 불태워졌다.

하토야마 유키오 일본 전 총리는 “(조선인에 대한) 유언비어 자체를 당시 내무성이 유포했다'는 사실을 직접 출연해서 밝히고 있다.

일본은  3·1운동 당시 조선에 대규모 독립운동이 일어나자 일본 지배층의 위기감이 커졌고 간토대지진을 계기로 잔혹함을 보여주어 한국인들의 손과 발을 묶어 버리는데 성공했다.

 이듬해 일본은 군국주의화로 치닫더니 대륙 중국으로 넘어가 세기의 살육전 난징 대학살을 자행했다.

 일본 아사히 신문 사설 <천성인어>에 조선인 대학살이 자행 되었던 <간토 대학살> 발생 당시 역사적 사실을 언급 하며  일본 정부와 도쿄 도지사를 향해 따금한 비판을 날렸다.

 “유언비어를 믿은 시민과 군·경찰에 의해 많은 한반도 출신의 사람이 살해된 것은 당시 보고서나 체험자 수기 등에서 분명하다. 학살과 재해는 다르다”며 “고이케 지사 태도는 인정하고 싶지 않은 과거를 묵살하는 학살 부정론과 통한다”

일본에 남아 있는 상당량의 증거와 증언에 의하면 학살 배경에는 조선인에 대한 경계심과 잠재적 차별 감정이 있었다.

역대 한국 정부의 정치인들과 권력자들은 일본에 대해 항상 저 자세로 굴었고 국민들 앞에서나 일본을 향한 비판의 목소리를 반사판처럼 내지르기만 하고 있다.

정확한 희생자 숫자도 모른 채 일본은 103년 째 역사적 사실을 부정하며 사과를 단 한번도 하지 않았다.

일본 정부는  ‘간토 계엄사령부 상보’, ‘도쿄 백년사’ 등 학살 기록이 엄연히 존재하고 있지만 마치 눈 먼 장님이 우물 속에서 바늘을 찾듯이 학살에 대해 정부 내에 사실관계를 파악할 수 있는 기록이 보이지 않는다는 말만 103년 째 반복하고 있다.

2023년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난 재일조선인 학자이자 미술사와 디아스포라 연구에 매진한 서경식 도쿄경제대 명예교수는 이런 말을 남겼다.

'간토 대지진 때처럼 조선인을 죽이자고 이 강의실에 누가 들어왔을 때 이 방에 있는 학생 중 누군가가 나를 지켜줄 것인가. 아니면 학생들도 조선인을 죽이자는 무리에 들어갈 것인가. 그런 생각을 늘 합니다.' 


그동안 일본에서 발생한 최악의 지진과 쓰나미로 목숨을 잃은 일본인 사망자 수와 비교 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조선인들이 일본인들 손에 잔혹한 죽임을 당했다.

조선인을 향한 대학살을 부정 당한 시간은 103년, 광복을 맞이한 시간은 81년이다.

기록되지 않는 기억은 사라진다.


한국의 정치인들과 권력자들은 태극기를 향해 경례를 올릴 자격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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짜라투스트라 2026-09-02 22:17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저 또한 잊지 않도록 노력해야겠네요

카스피 2026-09-03 09: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개인적으로 일본의 침략역사 부정은 과거 일본 정부의 잘못도 크지만 그걸 바로 잡을 생각을 전혀 한했던 승전국 미국의 책임이 제일 크단 생각이 듭니다.2차 대전이 끝나고 냉전이 시작되고 중국이 공산호되면서 소련의 남하를 막기위해 미국은 일본의 과거 잘못을 많이 눈을 감아 주었지요(실제 일본은 미국말을 잘 들었기에 역사 왜곡쯤 쉽게 눈을 감았단 생각이 듭니다)
이는 독일이나 이태리의 경우 주변의 피해국들이 대부분 직접 전쟁을 치르며 승전국이 되어 역사 왜곡을 할래야 할 수 없었던 반면 한국은 일본과 직접 전쟁에 참여하지 못했고 중국은 공산화이후 잦은 뻘짓으로 자국 정차사정도 복잡해 일본의 역사왜곡에 항의나 재제를 가할 형편이 못된 것이 가장 큰 이유가 아닐까 싶네요.
 

주기적으로 건강 기사에 단골로 등장하는 식품이 있다.

식품을 제조하는 과정에서 여러 단계를 거쳐 인공적인 첨가물이 많이 포함된 초가공식품들이다.

가장 먼저 유전자 공학자들이 절대로 먹지 않는 초가공 식품은 세 가지는 다음과 같다.

1. 감자 튀김

맛의 변형을 하기 가장 쉬운 감자는 유전자 조작을 통해 대규모로 재배된 것들을 여러 조미 단계를 거쳐 냉동을 시킬 때 제조 과정에서 아크릴아마이드 같은 발암 가능 물질이 생성된다.

이렇게 초가공된 감자를 고온 기름에서  튀겨 지는 동안 짠 맛은 강해지고 식감은 청각과 미각을 자극하고 중독 시킬 정도로 바삭하게 튀겨진다. 바삭한 식감과 짠맛, 인공 향미 맛은  뇌의 보상 시스템을 자극 해서 배가 부르더라도 계속 먹게 되는 중독성이 생긴다.

2. 다양한 과일 맛이 첨가된 가향 요거트

제품 뚜껑에 신선한 과일이 그려진 요거트들은   과일 고유의 향을 내기 위해 당류와 향료를 첨가한 제품이다. 

요거트 뚜껑을 열고 한 스푼 떠 먹어 보면 딸기 덩어리가 씹히고 복숭아, 블루베리 알갱이들이 혀끝에 착 감긴다. 스푼을 세 번 움직 였을 뿐 인데 금세 바닥을 보이는 요거트에는 실제 과일의 농축액은 1퍼센트 미만이고 과일 맛으로 둔감 시킨 향료가 대량 첨가 되어 있다.

 ‘칼슘 강화’, ‘장 건강’ 같은 문구가 붙어 있는 것도  당류 함량과 인공 첨가물 함량이 높다.

가향 요거트의 미각 첨가물은 고도로 설계 되어 있어서 과일 맛 요거트를 먹고 나면 미각의 형질이 바뀌어서 더 단 맛을 찾게 되게 설계 되어 있다.

3. 시리얼

간편하게 아침 공복을 해결해 주는 시리얼은 당 함량이 초가공식품 중에서 가장 많다.

오트밀, 귀리,퀴노아 같은 곡물이 첨가 되었다 해도 하루 당 함량 권장량의 절반을 넘기는 단 맛이 들어 있다. 여기에 초콜릿 맛이나 과일 맛이 첨가 되면 혈당을 급격히 변화 시키고 포만감이 오래 가지 않아 우유 한 그릇에 시리얼을 가득 먹고 나서 다른 음식으로 배를 더 채우고 싶어진다.

초가공 식품들은  가공 과정에서 식품의 형태를 변형 시키고, 저장성을 높이기 위한 여러 가공 과정을 거쳐서  배가 불러도 뇌가 자극적인 맛에 중독되어서  계속 먹게 되도록 아주 정교하게 설계돼 있다. 

유전자 공학자들도 먹지 말라는 감자 튀김-가향 요거트- 시리얼은 구매 하지 않는 습관을 들이면 안 먹게 되고 건강하게 조리한 다른 제품으로 먹을 수도 있다.

하지만 배고프고 피곤 할 때나 바빠서 제대로 끼니를 든든하게 챙겨 먹기 힘들 때 우연히 채널을 돌리다 누군가 맛있게 육즙을 뚝뚝 흘리면서 먹고 있는 것을 볼 때면 먹고 싶다는 식욕이 강하게 치솟는 식품이 있다.



보는 것 만으로도 군침이 돌게 만드는 햄버거는 주문부터 포장까지 간편하고 가격 대비 포만감도 좋아서 바쁜 현대인들이 가장 선호 하는 식품이다.

미국을 대표하는 음식 햄버거는 오늘 날 우리가 먹는 햄버거의 레시피와 재료와 맛의 기준을 만들었을 뿐  최초는 아니다.

10세기 광활한 초원에서 세계 반을 정복 했던 몽골 유목 민족이 척박한 환경에서 신속하게 음식을 조달 하기 위해 질긴 말고기 육질을 부드럽게 하려고 말의 등과 안장 사이에 고기를 넣고 하루에서 이틀 동안 대륙과 대륙을 달렸다. 

질긴 말고기는 이동 중에 마찰로 인해 육질은 부드러워졌고 쫀득한 식감까지 났다. 몽골 유목 민족이 소금으로만 간을 하고 불에 구워낸 말고기 패티는 유럽까지 전해져서 아랍 상인들에게 구입한 후추가 첨가 되고 헝가리 땅에서 타타르 족이 즐겨 먹었던 소스가 올려 졌다. 국경을 넘나드는 상인들에 의해 전해진 이 고기 패티는 독일 함부르크 항에 도착 해서 선원들이 고기를 곱게 갈아서 식감을 부드럽게 만들었다.

함부르크 선술집에서 이 고기 패티는 철판에 구워져서  ‘햄버그(hamburg)’라 이름 지었져고 맥주와 찰떡 궁합이 되었다.

19세기 미국으로 건너간 독일 이민자들이 고향 음식을 미국 땅에서 만들어 팔기 시작했다.

1848년 캘리포니아 땅에 금광이 발견 되고 금을 찾기 위해 미국 전역에서 서부로 몰려 갔다.

금 몇 개만 있으면 원하는 만큼 땅을 살 수 있었던 골드러쉬 시대에 미국 땅에 자리 잡은 독일 이민자들은 캘리포니아 땅에 햄버그를 팔았다. 하지만 이 때 까지만 해도 다양한 국적의 이민자들의 입맛을 사로 잡지 못했다.

 1904년 세인트루이스 박람회장의 음식 조리를 담당했던 주방장은 몰려 드는 손님들이 음식을 재촉하자 주방에 있었던 둥근 빵에 구운 고기를 끼워서 내놓았다.

세인트루이스 박람회장에서 핫 샌드위치(hot sandwich)로 불렸던 이 음식은 미국인들의 입맛을 순식간에 사로 잡아 몇 주 후에 레스토랑의 기본 메뉴로 등장했다.

1950년대 미국 전체 인구 60퍼센트가 중위 소득의 중산 계층으로 경제 대 공항 시기였던 1929년 부터 1930년대에 삼십 퍼센트 미만에 비해 두 배 이상 증가 했다.

이들은 교외에 주택을 구입하고 자동차를 소유 했고 집집 마다 텔레비전과 냉장고, 식기 세척기를 비롯해 다양한 소비재들을 마구 사들였다.

중산층의 급부상으로 엔테테이먼트 산업의 대 호황으로 이어져서 1955년 대규모 놀이 시설이 디즈니 랜드 개장에 이어서 간편하게 식사를 할 수 있는 맥도날드 매장이 문을 연다.

 1955년 일리노아주의  사업가 레이 크룩이 맥도날드 형제로부터  사업권을 사들여서 캘리포니아에 큰 규모의 맥도날드 매장 문을 열며 본격적으로  프랜차이즈 사업을 시작한다.

 5년 만에 미국 전역의 500개 매장 오픈으로 이어진 맥도날드에서 판매하는 햄버거의 크기와 종류 그리고 세트 메뉴는 전 세계 햄버거의  기준이 되어 미국 식문화가 전 세계로 퍼져 나가게 만들었다.

하지만 언제부턴가 햄버거는 ‘공공의 적’이 되어서 미디어 매체와 건강 전문가들은  햄버거를 ‘비만의 원흉’ ‘성인병의 주범’으로 지목하는 데 조금도 주저하지 않는다.

아침 건강 프로그램에 단골로 등장하는 의사들과 전문가들의 조언이 있다.

“채식을 하고 비타민을 먹으면 암과 성인병, 각종 난치병이 예방된다”라는 가정을 하고 나서 홍삼,염소 추출물, 각종 미네랄 함유 비타민등을 줄줄 소개 하고 있다.

 신약을 개발하는 약품 회사들의 PPL의 후원을 받았다는 것을 의심하면서도 의사들이 신빙성 있는 자료를 제시 하며 실제로 효과 본 사람들의 간증까지 이어진다. 

‘몸에 좋다는 음식은 언제든 복용해도 반드시 건강에 좋다’는 편견을 갖고 있는 한국인들이 평균적으로 하루 복용하는 비타민과 각종 영양제들은 한 움큼이다. 

특히   ‘어떤 음식이 어떤 질환을 유발할 수 있다’는 내용이 방송되면 그 순간부터 그 음식은 ‘유해 식품’이 되어서 하루 아침에 그 음식은 만병의 원인이 된다.

그렇다면 항상 전문가들에게 비만과 각종 성인병의 원인으로 항상 지목 되는 고열량 식품인 햄버거는 초가공식품보다 더 위험  유해 식품일까?

 햄버거는 이런 편견에 희생된 대표적인 음식이다. 

햄버거는  다진 쇠고기에 달걀, 빵가루, 볶은 양파 등을 넣어 둥굴 넓적하게  공 모양으로 빚은 뒤 손바닥의 힘으로 찹찹 소리 날 정도로 두드려서 소금과 후추를 뿌리고 패티를 만들어 프라이팬에서 구운 다음 고기 속까지 익혀서 둥그런 빵 속에  양상추, 양파, 토마토와 입 맛에 맞는 소스등을 첨가하면 완성되는 음식이다.

좋은 재료로 만든 햄버거에는  영양소가 골고루 들어 있어서, 제대로만 먹으면 비만을 걱정할 이유가 없다.

 나이프나 포크 등 도구를 사용하지 않고도 간편하게 든든하게  먹을 수 있는 햄버거는 언제 어디서든지 사 먹을 수 있어서 편리성과 가격 대비 최고의 식품으로 누군가에게 받는 기프티콘 중에서 가장 기분 좋은 기프티 콘은 아마도 햄버거 쿠폰일 것이다.

하지만  고물가 시대에 햄버거 크기는 날이 갈 수록 줄어 들고 있고 인건비 상승까지 겹쳐서 김밥 한 줄 가격과 햄버가 한 개 가격대가 비슷해졌다.

급격한 기후 변화에 천재 지변의 재난으로 꿀벌과 나비가 빠른 속도로 사라져 농작물 생육 마저 멸종 지경에 이르러서  지구상 모든 생명체의 안전 고리가 풀어져 버렸다.

바야흐로 빠른 속도로 치닫고 있는  소멸의 시대가 우리 눈 앞에 펼쳐 지고 있다.

 언제 어디서나 사 먹을 수 있었던 기본 식재료가 몇 년 안에 우리 식탁 앞에서 사라지게 되어 인간이 먹을 수 있는 식량군이 소멸 해 버린다면 지구 생명체 개체군 먹이 사슬의 최정점을 차지 하고 있는 인간 종도 먼 옛날 공룡 처럼 멸종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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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스피 2026-09-01 20: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른건 몰라도 과일요거트는 건강에 좋은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넘안좋네요.좋은 정보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