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에게나  후각을 자극하는 향이 있다.

그 향 중에서 빵 굽는 냄새와 커피 향은 세대와 국적을 불문하고 먹고 싶고 마시고 싶은 식욕을 불러 일으킨다.

빵은 매일 먹지 않아도 커피는 매일 마셔야 했던 나는 현재 건강 상의 이유로 빵과 커피를 먹지 못하게 되었다.

모퉁이를 돌 때 마다 길 건너편 건물 1층 마다 크고 작은 커피 프랜차이즈점이 있는 커피 공화국에서 거리를 걸을 때면 병원 대기실에서도 그리고 병실 복도에서도  구수한 원두 커피 향의 냄새에 커피 중독자에게 견디기 힘들 정도다.

환자가 되어 커피를 마실 수 없게 되니 커피에 관한 부정적인 것에 대한 의학적 정보를 수집하게 되었다.

커피에 효능과 성분에 대해 다양한 연구 결과가 발표 될 때마다 신경을 쓰이게 하는 건 바로 기계화된 대규모 커피 플랜테이션 재배 방식 및 수확 방식에서 불거진 대규모 살충제 사용 문제와 발효와 가공 과정에서 배출되는 발암 물질 성분이다.

세계 최대 커피 생산국 중의 하나인 콜롬비아의 경우 전체 커피 생산량이 68%를 기계화 경작 방식으로 재배하고 수확하는 동안   연간 40만톤에 이르는 화학비료를 사용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는  커피 생두 1파운드당 반 파운드 꼴의 화학비료를 사용했다고 할 정도로 커피 재배에 엄청난 화학비료가 사용되고 있었던 것이다.

 커피재배에 사용되는  화학 비료는 DDT, 말라티온, 벤젠헥사클로라이드 그리고  아크릴아마이드 약품으로 발암물질로 의심 받거나 분해되지 않고 환경을 오염 시킨다는 이유로 미국에서는 사용이 금지된 화학비료다.

2010년 인체에 유해한 발암 화학물질인 아크릴아마이드(Acrylamide, C3H5NO)가 커피에 함유됐다는 경고를 하지 않았다며 스타벅스와 같은 대형 프랜차이츠  커피회사들이 고소를 당했다.

재판 과정에서 커피회사측은 화학물질이 매우 소량이기 때문에 해가 되지 않는다는 주장을 펼쳤지만 담당 판사는 태아, 영아, 아동 그리고 성인까지 위험을 줄 수 있다는 데 대해 명백한 반증을 제시하지 못하였다는 이유로 커피회사측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고   2018년 3월 미국 캘리포니아주 법원은 커피회사에 발암 경고문을 부착하라는 판결을 내렸다.

커피 회사측에서 재차 항소를 거듭하며 판결에 의의를 제기 하자  2019년 6월 3일 캘리포니아 환경건강위해평가청(Office of Enviromental Health Hazard Assesement)은 "커피를 로스팅하는 과정 또는 커피를 추출하는 과정에서 야기되거나 본질적으로 내재되어 있는 커피 속 화학물질에 노출된다고 하여 중대한 발암 위험이 있는 것은 아니다"라고 법률로 규정하는 대신 커피와 심각한 발암 위험은 아무런 연관이 없는 것으로 결론을 내리고 발암 경고문을 부착하여야 하는 법적 요건에서 커피를 공식적으로 제외하였다.

따라서 캘리포니아주의 법 규정 개정으로 커피에 발암 경고문을 부착하라는 법원 판결은 그 의미를 잃게 되었다.

전 세계인들의 기호 음료인 커피에 이런 제조 과정을 거치고 있었다는 사실도 충격 이였지만 대규모 커피 회사의 로비와 총 공세에 미국 캘리포니아 주 법원이 경고문 부착 같은 강경함에서 한 발 물러 난 것이라는 의심을 지울 수 없다.

우리가 마시는 커피는 반드시 열을 가해 볶는 과정을 거쳐야 하고 볶아진 정도에 따라 커피의 향과 맛은 엄청나게 차이가 난다.

커피재배에 사용되는  화학 비료 중 하나인  아크릴아마이드는 무색무취의 결정성 고체로 정수시설이나 폐수시설의 응집제로 널리 사용되는 화학 물질이다. 

이 화학 물질이  사람 신경계에 이상을 일으킨다는 엄청난 사실이 2002년에서야 처음 세상에  알려졌다. 

스웨덴의 어느 시골마을의 터널 공사에 참여한 노동자들 중에서 아크릴아마이드 물질을 흡인한 노동자들이  사지에 감각이 없다는 고통을 호소했고 이 마을 주변 양식장 물고기가 죽어나가기 시작했다.

몇 달 후   가축들도 잘 걷지 못하고 사지가 마비되는 증상이 나타나자 스웨덴 당국은 심각성을 인지 하고  역학조사를 벌인  결과 아크릴아마이드가 그 원인으로 밝혀졌다. 

이러한 끔찍한 사례를 주도 면밀하게 연구한 미국 FDA가 커피생콩을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에서는 살충제 성분이 생콩에서 빈번하게 검출 되었지만 로스팅 단계를 거친 원두에서는 거의 발견되지 않았고 뒤이어 여러  일본 학자들이 실시한 연구에서도  커피 추출에 사용되는 로스팅 된 원두에는 잔류 농약이 거의 사라진다는 걸 연구 논문을 통해 증명했다. 

연구에 참여한 학자들은 커피를 추출 할 때 빠른 시간에 추출 해서 가능한 커피 여과지에 커피를 걸러 마시면  커피에 뜨거운 온도의 물이 닿을 때 배출되는  혈중 콜레스테롤 수치를 높이는 성분인 카페스톨을 걸러 낼 수 있고 생두를 볶거나 가공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발암물질도 걸러 낼 수 있다고 조언하고 있다.

커피 안에는 1000여 종의 화학물질이 들어 있는데 이 물질 중에 인간에게 무해한 것과 유해한 것들이 뒤섞여 있다.

커피를  향 때문에 마시는 사람도 있겠지만 피곤함을 이겨내기 위해 마시기거나  커피를 즐기는 수준에서 벗어나 중독 수준이라면  반드시  어떤 제조 과정을 거쳤는지 어떤 방법으로 추출해 먹어야 하는 지 각별하게 신경 써야 건강을 관리할 수 있다. 

커피 맛은 원두 원산지와 품종, 가공과정과 로스팅 상태와 추출 방법에 따라  천차 만별로 달라지지만 가장 건강하게 마시는 추출 방법은 필터에 원두커피 가루를 담아 뜨거운 물을 부어 중력으로 커피를 추출하는 드립(Drip) 방식이다.



원하는 양이 추출될 때까지 사람이 부어주는 방식을 매뉴얼 드립(Manual drip)이라 하고  전기커피메이커 같은 기기를  이용하는 방법을 오토매틱 드립(Automatic drip)이라 한다.

 매뉴얼 드립 추출 방법은 일본식 영어로 1910년대 부터 일본에서 핸드 드립(Hand drip) 방식으로 발전되어 현재까지 전 세계적으로 널리 쓰이고 있다. 

1888년부터 무역 개방으로 커피를 마시기 시작했던 일본은 1910년대에 면을 필터로 사용해서 추출해 마셨지만 종이 필터에 비해 조직이 치밀하지 않아서 커피 가루가 침전 되고 커피 추출 과정에서 맛을 내는 성분까지 걸러지고 특히 면을 삶고  사용 후 다시 삶아서 깨끗한 물에 헹궈 햇볕에 건조 시켜야 하는 번거로움이 있었다.

이러한 이유로 일본은 1950년대 부터 종이 필터를 생산하기 시작했다.

종이 필터는 1908년 독일의 각 가정에서 사용하고 있었지만 두 차례 전쟁으로 물자 생산과 조달이 어려워졌고 이 가공 기술을 배운 일본이 자체 기술력으로 제조해서 현재 일본식 커피 종이 여과지는 전 세계 드립추출 방식의 표준 여과지가 되었다.

드립 추출 전용 주전자 역시 독일에서 1930년대 부터 가정에서 보편적으로 사용 되었지만  차(茶)를 우려 내듯 일본인들은 연한 커피 맛을 선호해서 일본인들의 취향에 맞게 추출구가 3개인 칼리타 드리퍼가 탄생하게 됐다.

하지만 1970년대 폭발적인 개인 카페집이 들어 서고 나서 부터 물이 빨리 빠지는 방식으로 추출하는  칼리타 드리퍼 보다 물줄기가 가늘게 나와 천천히 커피 고유의 원두 맛을 우려 내게 만드는 드립형 주전자들이 다양하게 나오기 시작했다.

드립 커피는 가정에서 저렴한 비용으로 누구나 손쉽게 세계 각국 최고의 커피를 신선하게 즐길 수 있기 때문에 기본적으로 필요한 도구는 커피를 분쇄 하기 위한 그라인더, 여과지, 드리퍼, 추출된 커피를 담는 서버, 드립 주전자만 있으면 된다.

그동안 커피 중독자였던 나는 직접 원두를 골라  집에서 분쇄기로  갈고 종이필터(여과지)에 핸드 드립퍼로  커피를 추출하는 순간 하루 중 가장 행복한 시간이였다.

하지만  환자가 되고나서 커피를 마실 수 없게 되니 그동안 사두었던 원두가 담긴 병을 열고   킬리만자로, 케냐 캐리초, 에티오피아 코체레 케디다의 향기를 맡으며 마시지 못한 슬픔을 스스로 위로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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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더 파더》의 첫 장면은  평화로운 오후를 보내고 있던 어느 노인의 모습을 보여 주면서 시작한다.

어느 때와 다름 없이 평화로운 오후를 보내고 있던  앤서니는 오디오에서 흘러나오는 오페라 음악에 심취 하던 중 문이 닫히는 소리를 듣는다.

누가 이 집에 들어 왔나?

 오디오 볼륨을 줄인 앤서니가  거실로 나가 보니 난생 처음 보는 남자가 자신의 소파에 앉아 신문을 보고 있었다.

놀란 앤서니는 낯선 남자에게 묻는다.

"당신 누구요?"

"저. 폴이 잖아요."

"누구? 당신 지금 내 집에서 뭐 하고 있는거요?"

"저 여기 살고 있잖아요."

"당신이. 이 집에 살고 있다고? 이게 무슨 황당한 소리야!"

앤서니의 고함에 놀란 폴이라는 남자는 소파에서 벌떡 일어나 어디론가 전화를 건다.

"여보, 나야. 아버님 몸이 어디 좀 불편하신 것 같아.빨리 와봐야겠어.”

낯선 남자의 말에 앤서니는  심기가 불편 해지고 잠시 후 현관에 난생 처음 보는 여자가 장바구니를 들고 서 있다.

"당신은 누구요? 내 딸 앤은 어딨소?"

앤서니가 낯선 여자에게 묻자 그 여자는 장바구니를 바닥에 내려 놓고 이렇게 말한다.

" 앤 여기 있잖아요. 저예요 아빠.”

저 낯선 여자가 내 딸 앤이라고! 

앤서니는 방금 전 자신의 소파에 앉아 있던 폴이라는 낯선 남자를 쳐다본다.

이상하다. 내 딸은 이혼했는데. 저 남자가 내 딸의 남편이라니. 

어느 때와 다름 없이 평화로운 오후를 보내고 있던 앤서니는 갑자기 자신의 집에 불쑥 나타나 딸 부부 행세를 하는 사람들 때문에 모든 게 엉망이 되었다. 

화가 치밀어 오른 앤서니는 딸 부부 행세를 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역정을 낸다.

"지금 당신들 내 집에서 뭐 하고 있는 거요!"

딸의 남편이자 사위라고 주장하는 폴이라는 남자가 앤서니에게 이렇게 대꾸한다.

“여긴 아버님 집이 아닙니다. 아버님은 얼마 전에 우리 집으로 들어오셨잖아요. 여긴 저희 집이라고요.”

노년의 남자와 그의 사위라고 주장하는 남자 그리고 그의 딸이라는 낯선 여자가 등장하는 영화 <더 파더>는 프랑스의 극작가이자 소설가인 플로리앙 젤레르가 자신의 동명 연극을 영화로 연출한 작품으로 치매에 걸린 팔십세 노인의 시선에 촛점을 맞추고 관객들로 하여금 치매 당사자의 시선으로 벌어지는 일들을 펼쳐 보인다.

이 작품의 스토리는 그다지 복잡하지 않지만 가족 중에 누군가 어느 날 기억을 상실하는 알츠하이머에 걸리게 된다면 환자인 당사자와 그 가족들이 어떤 고통을 받게 되는지 입체적인 시선으로 보여 준다.

현역에서 은퇴한 80세의 앤서니는 얼마 전 이혼한  딸이 살고 있는 런던 집으로 이사 했다. 

앤서니는 딸의 집에서 예전처럼 자신이 좋아하는 오페라를 즐겨 듣고 있지만 그의 딸 앤은 알츠하이머에 걸린 아버지 상태가 나날이 나빠지고 있어서 그를 돌봐 줄 간병인을 찾고 있다.

하지만 낯선 사람을 경계하는 앤서니는 혼자 지내겠다며 딸이 고용한 간병인을 매번 내쫓아 버린다.

아버지의 고집을 꺽지 못한 딸 앤은 새 남자 친구가 생겨서 그가 살고 있는 파리로 가겠다고 선언한다.

딸이 파리로 가겠다는 말을 들은 앤서니는 지금 이 집도 자신의 집이고 딸 앤은 이혼을 했는데 남자가 있다는 말에 충격을 받는다.

그리고 다음 날 현관문을 열고 들어온 자신의 딸이 돌연 파리에 가겠다고 한 적이 없다고 말하고 급기야 딸과 사위라는  두 사람이 이 집이 앤서니의 집이 아니라 자신들 집이라고 주장한다. 

앤서니는 이 모든 것이 자신의 집을 차지하려는 딸과 사위 라는 낯선 자들의 음모는 아닌지 의심하기 시작한다.

영화가 진행 될 수록 관객들은 80세의 노인 앤서니가 중증 알츠하이머 환자라는 걸 알게 되고 화면에서 펼쳐지는 장면 장면들이 마치 카페트에서 털이 한 움큼씩 빠져 나가듯 시간이 흐를 수록 앤서니의 기억이 송두리채 사라지고 있는 걸 알게 된다.

흔히들 치매와 알츠하이머가 같은 질병으로 혼용 되는데 치매는 다양한 원인에 의해 발생하는 증후군으로 치매의 원인 중 하나가 알츠하이머 질환이다. 

알츠하이머는 기억력과 사고력, 행동에 문제를 일으키는 뇌 질병으로 뇌에 '아밀로이드'라는 단백질이 쌓이고 엉겨 붙으면서 이 단백질이 뇌세포를 파괴해 인지능력을 떨어뜨리는 질환이다.

이 질환을 앓게 되면 지적 기능이 서서히 상실 되면서 습관적으로 했던 행동이나 습관을 잊어버리거나 인지 하지 못하게 되어 사람들과 대화까지 제대로 이어나가지 못하게 된다.

알츠하이머는 순간적으로 기억을 상실한 것이 아니다.

한번 상실 된 기억이 온전하게 복구 되지 않기 때문에 알츠하이머에 걸린 환자는 가까운 가족들이 보여주는 행동과 말에 큰 충격을 받게 되고 익숙했던 그 모든 것들이 자신을 공격하고 죽일지 모른다는 무시무시한 망상을 하게 된다.

반면 늘상 별탈 없었던 가족이 낯선 사람처럼 행동하고 점점 더 화를 내다가 폭력적인 행동을 보이기 시작하면서 평화로웠던 가족에 공포의 그늘이 덮치게 된다.

영화 <더 파더>에서 이야기가 진행 될 수록 관객은 80세의 앤서니가 겪는 혼란에 감정이 이입 되어버린다.

관객들은 오페라를 즐겨 듣고 온화한 미소를 지으며 품격 높은 언어를 사용하고 있는 앤서니가 기억을 잃어버리기 전에 굉장히 학식이 높고 부유했던 사람이라는 것을 짐작 할 수 있다.

그리고 아버지에게 고함을 치는 딸과 이 집이 내 집이라고 말하는 남자가 앤서니의 재산을 탐하고 있는 것이 아닌지 의심을 품게 된다.

영화에서 앤서니는 시간이 흐를 수록 기억을 상실하고 가족을 당황시키는 행동을 하면서도 습관적으로 하는 몇 가지 행동들이 있다.

 그는 매번 자신의 손목시계에 미친듯이 집착하는데 어떤 날은 간병인이 시계를 훔쳐갔다는 말을 하기도 하고 어떤 날은 어딘가 자신이 숨겨두었다며 찾아 다니기도 한다.

그리고 대뜸 딸의 새 남자 친구가 차고 있는 시계를 보고 나서 그 시계를 산 영수증은 어디에 있냐고 묻는다.

관객들은 앤서니가 시계의 집착 하며 몸부림칠 수록 그의 기억 속에 남아 있는 것들이 서서히 부서지고 마모 되고 있다는 걸 알게 된다.

앤서니는 기억을 잃어 버리지 않으려고 몸부림치며 울부짖지만 방금 전에 일어났던 일까지 온전하게 떠올리지 못한다.

별탈 없이 지내다가 돌연 괴물처럼 소리 지르는 아버지, 그리고 자신의 처지를 비관하며 슬피 우는 아버지의 모습을 지켜 보던 딸은 고통스러워 하면서도 스웨터에 머리와 손을 끼워 넣는 것조차 어려워하는 아버지에게 다가간다.

앤서니는 딸이 옷을 입혀주자 그는 딸에게 이런 말을 한다.


“모든 게 고맙다."

알츠하이머의 정확한 발병 원인은 아직까지 확실하게 밝혀지지 않았지만 노화 질환 중 하나이기도 하고 유전적으로 직계 가족 중에 알츠하이머를  앓았다면, 그렇지 않은 이들보다 발병 위험이 훨씬 높다. 

유전적 요인과 별개로 지속적인 스트레스나 특정 질병에 걸려서 면역계에 이상이 생겼을 경우, 머리를 크게 부딪친 적이 있을 경우 뇌세포의 골격 유지에 꼭 필요한 타우 단백질의 과인산화나 신경염증 반응, 산화 스트레스에 의한 뇌 손상 등도 알츠하이머병 발생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것이 현재 까지 연구 결과로 밝혀졌을 뿐이다.

알츠하이머 질환은 아주 초기 단계에 어떤 증상이 드러나지 않은 채 15년에서 20여년에 걸쳐 아밀로이드 찌꺼기가 서서히 쌓여 가면서 분자 구조를 무너뜨리고 신경계에 염증을 유발 시키며 세포들이 하나씩 사라져버리면서 맑고 투명했던 수면 아래 침체 되었던 모래들이 올라 오듯 기억의 중추 역할을 하는 해마가 쪼그라들어 버린다.

어느 날 길 한 가운데 서서 목적지를 잃어 버렸거나 첫 단어가 떠오르지 않았다면 이미 중증 단계 진행 중이라는 의미로 누군가 특정 기억을 떠올리게 만드는 단서를 줘서 기억이 다시 돌아 오는 건망증과 전혀 다른 상태의 기억의 오류가 생긴다.

일상적으로 겪는 건망증이 아닌 기억의 오류는 전전두엽과 전두엽의 신경회로가 손상되는 과정으로 오래된 가전제품의 모터 엔진에 먼지가 서서히 쌓여가다 급기야 전선회로가 녹슬고 막혀버리는 것과 같다.

알츠하이머 병이 무서운 건 단순히 기억의 회로 선이 무너져 버리는 것 뿐만 아니라 근육의 쓰임새까지 망가져 버린다.

그러니까 이전에 자연스럽게 했던 행동들 문을 열고 닫는 거 바람이 불면 창문을 닫는 거 의자를 끌어 내고 다시 제자리로 옮기는 것 그리고 칫솔질 하는 것 까지 모두 할 수 없게 된다.

영화< 더 파더>에서 앤서니는 더 이상 자신의 시계를 찾지 못하게 되고 낯선 사람이라 생각한 딸과 간병인 조차 구별하지 못하게 된다.

결국  딸은 아버지를 병원에 입원 시키고 앤서니의 간호사는 딸이 남기고 간 편지를 읽어주겠다고 하지만 증세가 악화된 앤서니는 딸의 이름조차 기억하지 못한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서 관객들은 딸과 아버지를 치료했던 의사와 간호사가 나누는 대화를 통해 영화 첫 장면 부터 중반부까지 진행되었던 이야기가 병실에 누워 있는 중증 알츠하이머 환자의 머릿 속에 뒤죽 박죽 엉켜 있는 기억들의 파편이라는 걸 알게 된다.

이토록 무시 무시한 병에 알츠하이머라는 고급스런 이름을 붙인다고 해서 이 병이 가져다주는 비극성이 조금이라도 경감되는 것은 아니다. 

태어나고 성장하면서 맺었던 사람들과 관련된 기억은 물론이고 자신이 누구였는지 조차 기억하지 못하는 이 질환은 가족과 가까운 이들 모두를 기약도 희망도 없는 순수한 절망과 불행 속으로 빠뜨리고 마는 무시무시한 병이다.

알츠하이머는 젊다고 해서 직계 가족 중에 걸렸던 사람들이 없다고 해서 누구보다도 건강 만큼은 자신있다고 해서 걸리지 않는 낯선 병이 아니다.

오랜 시간에 걸쳐 천천히 일어나고 있는 이 무서운 질병은 이제 멀리서 드물게 일어나는 낯선 병이 아니라 바로 곁에서 자주 만나게 되는 지극히 흔한 병이 되고 말았다.

영화 <더 파더>에서 알츠하이머에 걸린 80세의 노인 역을 연기한 배우 앤서니 홉킨스는 이 작품 출연 당시 실제 나이가 82세였다.

이 영화로 아카데미에서 남우 주연상을 받은 앤서니는 같은 시기에 영화계에서 활동했던 동료들 중 상당수가 이미 세상을 떠났고 살아 있는 동료들 중에서  노환으로 요양소에 있거나 알츠하이머로 자신을 알아 보지 못하는 이들이 많아서 이 영화 속 배역이 남의 일처럼 느끼지 않았다는 말을 했다.

최근 들어 젊은 층에서도 여러 요인으로 인해 알츠하이머 병 발발 사례가 발견 되곤 하지만 대다수 신경과학자들의 연구 결과에 의하면   아주 초기 단계의 환자에게는 자각 증상이 없어서 발병을 늦추는 치료 시기를 늦추게 되어 본인이 증세를 자각하고 병원에 찾아 왔을 때는 이미 중증 단계를 지난 경우가 대다수였다.

40세를 넘은 뇌라면 아밀로이드 찌꺼기가 천천히 쌓여가고 있을 가능성이 크고 수년 동안 어떠한 특이한 증상도 경험하지 않고 있어도 아밀로이드 찌꺼기가 15년에서 20년에 걸쳐 쌓여가다가 어느 날 한계에 도달하면 분자구조가 무너지고 얽히면서 신경에 염증이 생기고 세포가 죽고 기억이 비정상적으로 소실 되는 상태에 다다르게 된다.

따라서 나이는 알츠하이머병의 최대 위험 요소다.

 알츠하이머병으로 인한 기억 손실은 65세 미만의 연령에서는 드물지만 65세를 기점으로 사례가 급증하고 있다.

 65세의 미국인 10명 가운데 한 명이 알츠하이머병을 앓고 있고 85세 쯤에는 셋 중 하나가 환자가 되고 85세를 넘기면  둘 중 한 명이 알츠하이머를 앓고 있다.

이렇게 나이 대가 고령으로 올라 갈 수록 알츠하이머 병에  근접해 지고 결국  지구 상  절반의 고령층 인구가  알츠하이머병 환자가 되는 셈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나는 아닐 것이다 라는  생각을 하겠지만  알츠하이머는  누구에게나 언제든 닥칠 수 있고, 또 언젠가는 닥치게 될지 모르는  병이다.

그렇다고 알츠하이머병 진단을 받았다고 해서 당장 죽는 것은 아니다.

영화 <더 파더>에서 앤서니는 어떤 것도 기억 하지 못하고 있는 자신의 모습이  마치 죽어가는 나무처럼 자신 안에 있었던  모든 잎들이 사라지는 것 같다는 말을 한다.

누구나  한 때는  찬란하게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기도 했을 것이지만  어느 누구도  인생의 마지막 여정에서  존엄한 죽음을 맞이 하지 못하게 되는 것이 자연의 섭리인 것을 알고 나면  삶이란 참으로 덧없이 왔다 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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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TT 채널에 매 시즌 마다 쏟아져 나오는 예능 프로그램의 장르 중 최고의 인기를 누리는 것들 모두 "서바이벌' 장르다.

몸 근육을 쓰는 것 부터 노래를 부르는 오디션 프로그램들까지 모두 다 경쟁하는 한국인들에게 서바이벌 프로그램은 마치 내 이야기를 보는 것 같아 생존 경쟁을 담은 서바이벌 서사에 열광한다.

짧은 시간 안에 음식을 완성하고 탈락을 피하기 위해 촌각을 다투는 요리 서바이벌의 살벌한 전쟁터를 생생하게 보여준 <흑백요리사: 요리 계급 전쟁> 프로그램은 전 세계적인 열풍을 불러 일으켰다.

다양한 예능 방송 출연하는 셰프는 인기 연예인 못지 않는 예능인으로 거듭 나고 있고 다양한 요리를 방송에서 선보이면서 파인다이닝에 대한 대중적 관심까지 높아졌다.

현재 한국에서 전 세계 유명 맛집과 프랜차이즈점들이 들어서서 언제 어디서든 다양한 국가의 음식을 맛볼 수 있게 되었지만 오랜 시간 우리나라에서 가장 인기 있는 외식은 중국 음식이었다.

특별한 날에 먹는 중국 음식에서 오랫동안 한국인들에게 짜장면과 짬봉은 최고 인기 메뉴였고 지금까지도 중국 음식점 메뉴판을 볼 때면  짜장면 아니면 짬뽕 사이에서 갈팡질팡 할 때가 많다.

짜장면도 짬뽕도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던 나는 어린 시절 가족과 함께 중국 음식점에 갈 때면 군만두만 먹었다.

부모님은 막둥이가 검고 시뻘건 색깔 때문에 짜장면이나 짬뽕을 먹지 않는다고 생각 하셨는지 군만두를 주문 할 때면  울면을 시켜 주셨다.

처음 울면이라는 단어를 들었을 때 울음도 그칠 정도로 맛이 기가 막힌 면요리라 생각했다.



 다양한 해물과 돼지고기, 닭고기 채, 버섯과 채소가 들어가는 울면은 매운 맛이 없고 순한 국물에 녹말을 풀어 걸쭉한 국물을 내어서  한 그릇만 먹어도 속이 든든한 요리다. 

일제 강점기 때 태어난 외할아버지는 전쟁 발발 이전까지 짜장과 울면이 가장 인기 메뉴였다는 말씀을 하셨다.

개화기와 일제강점기 때 중국 음식점은  '청요리'로 불렸는데 경성의 유명 호텔이나 고급 레스토랑의  파인다이닝에서 식사하는 것과 같은 위상을 가지고 있었다. 

당시 저렴하게 서민들이 먹을 수 있는 중국 음식은 대륙에서 넘어온 중국 노동자들이 포장마차에 차린  호떡과 밀가루 반죽을 기름에 튀겨낸 유타오라는 일종의 꽈배기, 그리고 따뜻하게 데운 콩물을  팔았다.

그릇에 담긴 면 요리나 탕수육은 서민은 물론이고 중상층도 1년에 한 번 먹기 힘들 정도로  굉장히 고가의 음식이었다. 

1930년대 중국 베이징과 북동부 지역에서 가장 인기 있는 고급 국수는 북경(베이징)식 짜장면(검은색이 아닌)과 다루멘(打滷麪) 또는 지역 사투리로 원루멘(溫滷麪)이었다. 

녹말을 풀어 하얗게 된 국물의 빛깔이 마치 염전에서 소금이 엉긴 소금물 같다는 뜻인 따뜻할 온(溫)과 , 소금밭 로(滷)의 원루멘의 한국식 한자 독음인 '온로멘'이 발음의 변화를 거치면서 울면이 되었다.

근대화 이전에는 녹말을 대량으로 제조하기 어려워 녹말을 많이 쓰는 요리일수록 가격이 높아서 호텔이나 고급 레스토랑에서만 맛볼 수 있었지만  개화기 즈음 공장에서 대량으로 녹말을 생산하는 기술이 생기면서 예전의 고급 요리들이 상대적으로 먹어볼 만한 가격이 됐고 이 때문에 울면과 탕수육의 인기가 높아지게 되었다.

중국인과 화교들에게 고향의 맛인 울면은 단연 인기가 높았지만 녹말을 풀어내어 끈적하게 입 속에 머무는 국물이 낯설었던 한국인들 중 부유한 계층은 녹말을 풀지 않은 맑은 국물의 일본식  우동을 더 선호 하게 되었다.

전후 경제 부흥기 시절에 청춘을 보냈던 아버지의 기억에 의하면  짬뽕이 처음 나왔던 때가 1970년대이고 시뻘건 색깔의 짬뽕은 1970년대 후반에 등장 했다고  기억하고 계셨다.

짜장과 짬뽕이 한반도에 등장 하기전 우리 조상들은 대대로  밥과 된장, 간장을 먹는 식문화를  1000년 이상의 지속 시켜 왔다. 

반면 지금처럼 밥보다 빵과 면을 주식 처럼 먹는 것,  된장국보다 된장찌개를  더 자주 먹게 된 것, 조선간장이 아닌 공장제 간장을 먹게 된 것은 불과 100년도 되지 않은 일이다.

매운맛을 가장 좋아 하는 한국인으로 세계적으로 알려져 있지만 청양고추가 개발된 것은 1983년이고 이 매운 고추가 널리 퍼진 것은 1980년대 말에서 1990년대 초다.

 그전까지 한국 요리의  매운 맛은 청양고추가 아닌 일반 붉은 고추의 고춧가루와 후추가 들어갔다.

다양한 식재료에 청량 고추를 넣어 먹기 시작 한 것은 1997년 외환위기 이후로  그전까지 한국인에게 매운맛의 대명사는 신라면이였다.

 청양고추보다 더 매운 음식이 잔뜩 쏟아져 나온 것은 마라탕이 밀려 들어 오면서 불닭볶음면이 유행했을 때 즈음으로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불과 한 세대 전만 해도 우리 식탁에는 맵지 않은 음식들이 지금보다 많았고 다양한 식당가에서도 순한 맛, 맑게 우러 낸 재료 본연의 맛의 음식들을 쉽게 찾아 먹을 수 있었다.

한국인이 가장 많이 찾은  중국 요리점에서도  울면과 중국 우동 외에 닭고기와 닭뼈 육수에 가늘게 썬 닭고기 고명이 올라가는 기스면도 인기 메뉴였다.

 볶음밥을 시키면 따라 나오는 국물의 경우도 미리 만들어 둔 짬뽕 국물이 아니라 시원한 중국식 고기 육수에 보드랍게 계란을 풀고 파와 참기름을 띄워 주는 계란국까지 순한 맛의 국물들을 지금 보다 더 다양하게 맛 볼 수 있었다. 

짜장과 짬뽕을 고민 하지 않는 나는 울면을 앞에 두고 1937년에 출간된 채만식의 장편소설 '태평천하'에서 주인공 윤직원(윤참판)이 춘심이와 중국집에서 우동과 탕수육을 먹고 기생들과 친구들에게 자랑을 할 거라는 대목을 찾아 본다.


윤직원 영감은 쿨럭 갈앉은 큰 배를 슬슬 만집니다. 춘심이는 그 속을 모르니까 뚜렛뚜렛합니다.

"아뇨, 왜요?"

"배고푸다머넌 우동 한 그릇 사줄라구 그런다."

"아이구머니! 영감 죽구서 무엇 맛보기 첨이라더니!"

"저런년 주둥아리 좀 부아!"

"아니, 이를테믄 말이에요……! 사주신다믄야 밴 불러두 달게 먹죠!"

"그래라. 두 그릇만 시키다가 너허구 한 그릇씩 먹자!"

"우동만, 요?"

"그러먼?"

"나, 탕수육 하나만……."

"저 배때기루 우동 한 그릇허구, 또 무엇이 더 들어가?"

"들어가구말구요! 없어 못 먹는답니다!"

"허! 그년이 생부랑당이네! 탕수육인지 그건 한 그릇에 을매씩 허냐?"

"아마 이십오 전인가, 그렇죠?"

윤직원 영감의 말이 아니라도 계집애가 여우가 다 되어서, 탕수육 한 접시에 사십 전인 줄 모르고 하는 소리가 아닙니다.

우동 두 그릇, 탕수육 한 그릇 얼른 빨리…… 우동 두 그릇, 탕수육 한 그릇 얼른 빨리…… 삼남이는 이 소리를 마치 중이 염불하듯 외우면서 나갑니다. 사실 삼남이한테는 그걸 잊어버리지 않는 것이, 하루 세 끼 중에 한 끼를 잊어버리지 않음과 일반으로 중요한 일이어서, 그만큼 긴장과 노력이 필요하던 것입니다.

-채만식의 태평천하 중에서 

식문화는 가장 바뀌기 어렵지만 동시에 가장 많이 바뀔 수 있는 것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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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스피 2026-10-24 23: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요즘 중국집들은 배달 위주의 식당이 많다보니 과거와 달리 기본인 짜장면이 하향 평준화되어서 맛있는 짜장면 찾기가 매우 힘들다고 하더군요.게다가 볶음밥은 고슬고슬하게 볶는 것이 아니라 기름에 절은 밥이어서 먹고 남면 더부룩 해 지더군요.
그나마 메뉴판에 우동과 욺면이 있는 중국집은 기본 이상이라고 해서 요즘은 이런 집이 맛집이라고 각광받는다고 하네요.
 

매자나무 열매는 벌써 익었습니다.

꽃밭에 시들어가는 과꽃이 여린 숨을 내쉽니다.

지금 가진 것이 없는 사람은, 여름이 지나가고 있기에,

언제고 기다릴 뿐 아무것도 손에 놓지 못할 것입니다.


자신의 어둠 속에서 일어서기 위해

내면의 밤이 시작되기만을 기다리는

숱한 환상들이 있음을 스스로 믿기에

지금도 눈을 감을 수 없는 사람은

노인처럼 세월만 흘리고 말 것입니다.


그는 이제 아무것도 갖지 못하고, 어떤 날도 일어나지 않으며,

그에게 일어나는 모든 것은 그를 속일 뿐입니다.

나의 신이여, 당신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리고 당신은

매일 그를 심연으로 끌고 가는 돌과 같습니다.


-릴케의 기도 시집,순례의 서- '매자나무 열매는 벌써 익었습니다.' 중에서



시어 속에 가을의 향기와 맛, 정취를 즐겨 넣었던 릴케는 태양의 길이가 짧아지는 늦가을 무렵이면   '과일들이 완성을 재촉 하시고 진한 포도주에는 마지막 단맛이 스며 들게 해달라'라는 기도를 저녁 시간에 올렸다.

그는 1년 동안 포도주를 숙성 시키듯 시어들을 차곡 차곡 담아 익어가는 매자 나무 열매에서 생의 끝자락을 보았다.

그가 이 시를 썼을 무렵엔 극도로 생활고를 겪었던 시기로 1903년 조각가 로댕의 작업실에서 숙식을 해결 하면서 낮에는 로댕의 작업 일지를 독일어로 번역하는 일을 했고 밤이면 시를 썼다.

'들판을 가로질러 먼 길을 달려온 듯 이내 피곤해질'만큼 하루를 보내며 시를 쓴 릴케는 로댕의 파리 뒷골목 작업실 안으로 가득 찬 진료서 약품 냄새와 골목마다 자리한 식당에서 조리 한 음식 냄새로 뒤섞이는 고통의 나날을 보내던 중 인간의 병을 치료하기 위한 요오드포름 냄새와 식욕을 채우려는 음식 냄새에서 삶과 죽음이 교차하는 순간을 기록하기 위해 1904년 <말테의 수기>를 쓰기 시작한다.

릴케는 <젊은 시인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젊어서 시를 쓰게 되면, 훌륭한 시를 쓸 수 없다며 시를 쓰기 위해서는 때가 오기까지 기다려야 하고 한평생, 되도록이면 오랫동안, 의미와 감미를 모아야 한다.는 조언을 했다.

글쓰기는 항아리 속에 담근 술이 익어가는 동안  발효 과정에서 내뿜는 기포 같은 번민과 상념, 후회와 상실, 기쁨과 행복 같은 감정을 서서히 가라 앉혔다가 떠오르는 순간을 포착하듯 써야 한다.

운명은 여러 무늬와 형상을 고안해 내기를 좋아하기에 시란 사람들이 주장하는 것처럼 감정이 아닌 살아 온 시간이 응축 된 언어다.

봄과 여름의 시간을 지나 마침내 가을의 태양 아래서 익어가는 과일들은 저마다 다른 색과 향 그리고 각기 다른 크기의 씨를 품고 있다.

그 씨들은 다음 생명을 위한 씨가  되어 가을의 시간이 지나가도 생명의 빛은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제8 비가

모든 눈으로 생물들은

열린 세계를 보고 있다. 우리들 인간의 눈만이

반대 방향을 보는 듯,

그들의 자유로운 출구를, 덫이 되어 둘러막고 있다.

출구 밖에 <있는> 것, 그것을 우리는

동물의 표정에서 읽을 뿐이다. 어린아이 때부터 우린 이미

아이의 등을 돌려놓고 형상의 세계를 뒤쪽으로 보도록

강요하기 때문이다.

동물의 얼굴에 깊이 깃들어 있는 열린 세계를 보지 못하게

한다,

죽음으로부터 자유로운 그 세계를.

죽음을 보는 것은 우리들뿐이다. 자유로운 존재인 동물은

언제나 몰락을 뒤에 두고

앞에는 신을 보고 있다. 걸을 때에는 영원 속으로

걸어 들어간다, 마치 샘물이 흘러가듯이.

<우리는> 단 한 번도, 단 하루의 날도

꽃들이 끊임없이 피어 들어가는 그 순수 공간을

만나는 적이 없다. 우리가 만나는 것은 언제나 세계이다,

결코 <부정이 없는 어디도 아닌 곳>,

공기처럼 숨쉬고, 무한정이라고 <알기에> 탐내지 않는

순수한 것,

감시받지 않는 것이던 적은 한 번도 없다, 어릴 때에는

아무도 모르게 거기 몰입했다가 누군가에게 흔들려

깨어난다. 혹은

죽을 때 그것이 되는 사람도 있다.

왜냐하면 죽음에 이른 사람이 보는 건 이미 죽음이 아니라

<먼 곳>이기 때문이다

-『두이노의 비가』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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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92년 10월, 크리스토퍼 콜럼버스가 탄 산타 마리아 호는  쿠바에서 출발해서 미지의 섬을 향한 항해를 시작했다.

두 달 전 아메리카 대륙에 첫 발을 내딛었던 콜럼버스는 타이노 원주민으로 부터 신비한 섬에 대한 이야기를 듣는다.


그 원주민이 알려준 신비한 섬 <바네케baneque>에 황금과 보석이 가득하다는 말을 진심으로 믿은 콜럼버스는 황금과 보석을 독차지 하기 위해 10월부터 시작된 항해가 12월까지 이어졌지만 결국 그 섬을 찾지 못한다.


 (C) oscar santillan,2016

수세기의 시간이 흐른후 에콰도르 출신의 작가 오스카 산틸란이 2016년 15세기 콜럼버스가 남긴 지도를 참조해서 직접 황금과 보석이 가득한 보물섬인 <바네케baneque> 을 찾아 나섰다.

바네케 섬은  현재 도미니카 공화국 북쪽 해안, 대서양의 한가운데 있는 섬으로 콜럼버스가 남긴 지도에 새겨진 그 섬의 위치로 추정되는 지점은 불에 그을려 버린 흔적처럼 구멍이 뻥 뚫려 있었다.

구멍 난 지점을 찾아 나선 작가 오스카 산틸란은 해안에서 4.2 마일 정도 떨어져 있는 지점에서 100리터의 바닷물을 퍼 올려서 자신의 작업실에서 물을 증발 시키고 부유물과 소금 결정체로 이루어진 덩어리를 만든다.

(C) LLANO _ Oscar Santillán,2016

작가의 상상력으로 탄생한 <바네케>섬은 어느 누구도 차지 할 수 없는 바다 한 가운데서 퍼 올린  바닷물에서 쏟아져 나온 소금 알갱이처럼 콜럼버스가 그토록 갖고 싶었던 황금과 보물로 가득 찬 섬도 아닌  지도에 구멍이 뻥 뚫려 버린 것 처럼  인간의 헛된 욕망이  만들어 낸 섬이다.

작가가 만든 이 소금 덩어리들도 시간이 흐를 수록 공기 속 수분과 습도로 인해 녹아 사라져 버릴 것이다.

그러니 인간이 생각하는 그 섬은 만물의 생성의 소멸과 중간 어디 즈음에 존재 할 뿐이다.


사람들 꿈속에서 보는 것은 

사는 동안 그들을 사로잡고 있는 것.

깨어 있을 때 그들이 생각하고 보고 행하는 것

그러니 놀랄 일은 하나도 없네

아티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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