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자 을유사상고전
묵자 지음, 최환 옮김 / 을유문화사 / 201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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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간에 이름 높은 학파로 유가와 묵가가 있다. 유가의 으뜸은 공구요. 묵가의 으뜸은 묵적이다.

주나라의 봉건 제도가 유명무실해지고 혼란이 극에 달했던 이시기에는 다양한 사상이 등장해 각축을 벌였다. 

당시 등장한 사상가 집단 중에서는 유가. 묵가, 도가 ,법가가 활발하게 활동했던 시절로 이들 중 묵가는 유가와 대립하면서 크게 성장했다.

묵가는 유가와 함께 사회에 큰 영향을 미쳤지만 묵자의 성명과 출신 생애에 대한 기록이 거의 남아 있지 않다.

사마천의 '사기' '맹자순경열전' 마지막 줄에 이런 구절이 나온다

대체로 묵적은 송의 대부로 지키고 막는 일에 뛰어 났고 씀씀이를 줄이자고 주장했다.

 '어떤 이는 공자와 같은 시대 사람이라고 하고 어떤 이는 그 후대라고 말한다.'라는 기록만 남아있을 뿐이다.

묵자는 전쟁 시 필요한 수레를 직접 제작하고 수성 무기 제조에 능했다는 점 ,철저하게 근검 절약 하는 삶을 살았다는 설화가 전해진다.

어쩌면 묵자는 천민 출신에 기술자로 추측 할 수 있는데 당시 얼굴에 글자를 새겨 놓고 먹으로 물들여서 노예로 삼아버리는 형벌 '묵형; 이 있었다. 묵자의 墨은 성이  아니라 형벌의 이름을 지칭할지 모른다.

춘추 전국 시대에 백성들의 이주는 굉장히 자유스러웠고 전국 시대에 들어서면서부터 각국 사이에 더 많은 백성을 얻기 위에 서로 빼앗을 정도였다. 

백성이 많아야 충분한 생산력과 군사력을 확보 할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 시대에는 국적과 신분이 연달아 바뀌는 평민과 천민들이 나타났다. 

전쟁 속에서 기술만 익힌다면 어느 나라에서도 살면서 부를 쌓아 계급을 바꿀 수 있던 시대였다.

<묵자>는 총 53편으로 구성되어 있다 한나라 유향이 왕국에 수장 된 서적 가운데 모아서 정리한 총 71편 이었는데 송나라에 이르러 10여 편이 유실 되어 최종 53편만 전해지고 있다.

<묵자>는 묵자가 스스로 쓴 것이 아니라 그의 제자와 후대인들이 집대성 한 책이다.

묵자의 말을 기록한 것과 제자가 묵자의 뜻에 맞게 고쳤다.

만약 천하의 모두가 서로 사랑한다면 나라와 나라가 서로 공격하지 않고 집안과 집안이 서로 어지럽히지 않으며 도적이 없어지고 임금과 신하 아버지와 자식이 모두 효도 하고 자애로워질 것이다. 이처럼 된다면 천하는 잘 다스려진다. 따라서 성인이 천하를 다스리는 일을 하는 이로서 어찌 악을 금하고 사랑을 권하지 않겠는가? 그러므로 천하의 모두가 서로 사랑하면 곧 다스려지고 서로 미워하면 곧 어지러워진다. 그러므로 묵자가 '남을 사랑하라고 권하지 않을 수 없다.' 라고 말한 건 모두 이 때문이다.


묵자는 처음에 유학을 공부했지만 세상의 혼돈을 잠재우고 현실 문제를 해결하면서 사회를 올바른 방향으로 이끌어가는 것을 해결 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고 유가와 다른 문제 인식으로 세상을 구하려고 노력했다.

공자가 주나라 문화에 함축된 정신을  발굴 하는데 힘쓰고 인문 가치를 회복 시켜서 난세를 구하고자 했다면 묵자는 봉건 질서 바깥의 시선으로 내재된 결점이 바로 난리의 근원임을 깨닫고 과감하게 봉건 질서를 포기해야 나라 전체가 평온해진다고 주장했다.

유가 사상의 번거로운 예절은 백성들의 실생활 수준을 떨어뜨리고 재물을 낭비하게 만들어 가난에서 벗어나지 못하기 때문에 실생활에 맞는 백성을 위한, 어려움에 처한 백성을 구제 하기 위한 사상과 행동으로 현실을 바꿔나가자고 했다.

큰 나라가 작은 나라를 침략하던 시대, 친족이 많은 집단이 의지 할 데 없이 가난한 사람을 괴롭히며 폭력으로 농민이 피땀 흘려 키운 곡식과 가축을 빼앗던 시대에 하층민을 대변하고 실천에 앞장섰던 묵가의 만민 평등 사상은 지난 2천 년 동안 빛을 보지 못했다.


노인이 편안하게 생을 마치고 장성 한 사람은 쓰일 곳이 있으며 아이는 자랄 곳이 있고 홀아비와 과부, 고아,자식 없는 노인,불구자는 모두 보살펴 주면서 남의 부모를 내 부모처럼 여기고, 남의 집안을 내 집안처럼 여기고 남의 나라를 내 나라처럼 여겨야 서로가 서로를 죽이고 해치는 일이 사라질 것이라 믿었던 묵자는 세상이 어지러운 이유가 사람들이 서로 사랑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묵자의 주장처럼 남의 부모를 내 부모처럼 여기고, 남의 집안을 내 집안처럼 여기고 남의 나라를 내 나라처럼 여기며 사람들이 자기 또는 자기 집, 자기 나라 위주의 생각을 버리고 모든 사람을 차별 없이 사랑할 수 있는 세상은 영화 속에서 나 가능 할 것이다.

형식과 명분이 아닌 실용과 실질을 앞세워야 백성 모두 편안하고 행복한 삶을 영위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2026년 극단적인 폭력이 넘쳐 나는 시대 허술한 법과 제도에, 솜방망이 처벌에 국민의 생명은 위태로워졌다.

우리 모두  자신의 생명과 삶을 스스로 지켜야 하는 각자 도생의 시대에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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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읽는 백석 시 - 백석 시 전집, 수정증보판
백석 지음, 이경수.황선희 엮음 / 소명출판 / 202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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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절기 가운데 대서와 처서 사이에 음력 7월 초순 경(2026년 8월7일과 8일 사이)으로 입추가 시작되는 '입추'가 시작되면 가장 먼저 새벽에 서늘한 바람이 불어오고 그 다음으로 이슬이 진하게 맺히고 이후부터 쓰르라미가 울기 시작하고 바다에서는 밀물과 썰물의 차가 커지는 조석 현상이 발생하면서 한 계절의 기세가 꺽이고 그 다음의 계절로 넘어간다.

​ 여름이 끝나고 곧 가을로  들어 선다는 입추에 서울의 한낮의 온도는 40.1도  

40.1도 도로 한 가운데 생계란이 완숙 후라이가 될 정도의 온도이고 한 겨울 습식 사우나의 평균 온도인  50~70℃에 근접한 온도다.

실제 온탕(溫湯)의 온도는 인체의  정상 체온 온도보다 불과 5~6도 정도 높은 섭씨 42~43도다.

 발끝만 닿아도  뜨겁다고 느껴지는 고온탕 역시 45~46도에 지나지 않는다.

 이 온도를 넘어서면  인체가 열을 받아들이지 못해 화상을 입기도 한다.

연일  40도로 끓어 오르니 물과 얼음으로 배를 채우는 나날이 길어져서 입맛을 잃었다.

 박각시 오는 저녁

                                백석

당콩밥에 가지냉국의 저녁을 먹고 나서

바가지꽃 하이얀 지붕에 박각시 주락시 붕붕 날아오면

집은 안팎 문을 휑하니 열젖기고

인간들은 모두 뒷등성으로 올라 멍석자리를 하고 바람을 쏘이는데

풀밭에는 어느새 하이얀 다림질감들이 한불 널리고

도루래며 팥중이 산 옆이 들썩하니 울어 댄다

이리하여 하늘에 별이 잔콩 마당 같고

강낭밭에 이슬이 비 오듯 하는 밤이 된다

당콩(‘강낭콩’의 평북 방언)밥에 가지냉국을 곁들인  저녁 식사를 마치고 휑하니 열어 젖힌 문 너머로 하얀 박꽃에 박각시나방이 날아다니는 모습을 바라 보는 백석 시인에게 한 여름의 저녁 모습은 한 폭의 그림 같다. 


여름 한 철에 열리는 갓 딴 강낭콩을 밥에 넣고 짙은 자줏 빛깔의 통통한 가지를 살짝 쪄서 길게 쭉 쭉 찢어서 식초와 집간장으로 간을 맞춰서 냉국으로 먹는다면 이보다 더 기운 나는 여름 밥상은 없을 것이다.

  할인 품목, 묶음 세일 상품 이벤트에 목숨 거는 고물가 시대에  한 끼 보다 비싼 빙수 건강에 해롭다며 스스로 세뇌 시켜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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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염 살인 - 폭주하는 더위는 어떻게 우리 삶을 파괴하는가
제프 구델 지음, 왕수민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2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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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이 시작 되자마자  한 낮의 기온이 35도로 치솟더니 새벽에도 뜨거운 공기는 사라지지 않고 날이 갈 수록 공기는 뜨거워져서 36-37-38-39도를 기록하며 밖을 돌아 다니는 것이 생명에 위협이 될 수준까지 올라가고 있다.

  50도를 넘겨버린 인도와 파키스탄은 거리에서 사람들이 쓰러지고 있고  바로 옆 나라 스리랑카와 방글라데시는 10년 동안 내릴 비가 한꺼번에 쏟아지고 있고 좀처럼 비가 내리지 않았던 미국 텍사스에 쏟아진 폭우로 3백 명 가까운 인명 피해가 발생했다.

여름철 온도는 높아도 습하지 않은 지중해성 기후였던 유럽 지역에서는 이번 여름 습한 공기에 열대야까지 발생했고 연일 치솟은 폭염으로 산불까지 발생했다.

  열돔 처럼 공기층의 순환을 막아 태풍마저 힘을 잃게 만드는 현재 지구 상태는 기후 관측 역사상 2025년 여름 기간 온도가 가장 높았던 기록을 단숨에 깨버렸다.

 앞으로 이보다 더 한 뜨거움이 전 지구를 덮친다는 불길한 징후가 곳곳에서 관측 되고 있다.

바야흐로 기후 재난의 시대에서 재앙의 시대를 맞이하게 되었다.

유럽에서 가장 큰 빙하 바트나요쿨이 빠르게 녹아 내려서  압력이 줄어들기 시작하면서 아이슬란드의 땅은 매년 2cm 이상 상승하고 있다. 더 큰 문제는 빙하가 녹아 염분이 거의 없는 담수가 유입되면서 바다의 흐름까지도 바뀌고 있다.

바닷물에는 크게 두 가지  흐름이 있다.

가장 먼저 바람에 의해서 이동하는 표층 순환은 바닷 물의 순환류 역할을 하고 있는 북대서양의 멕시코 만류(Gulf stream)로 따뜻한 멕시코만에서 시작해 미국 플로리다, 캐나다 뉴펀들랜드 섬을 거쳐 북상하는 북대서양에 이르는 따뜻한 해류가 두 개로 갈라져서 하나는 서유럽의 영국, 아일랜드, 스칸디나비아반도 그리고 북극의 그린란드 근처까지 이어지는 북대서양해류다.

한국의 수도 서울 보다 보다 북극에 더 가까운 북위 51도의 영국 런던이 겨울에 좀처럼 눈이 내리지 않고 영하 10도 이하로 떨어지지도 않고 얼음 조차  보기 힘든 이유가 바로 이 난류 때문이다.

멕시코 만류에서 갈라져 나온 나머지 해류는  카나리아 제도와 아프리카 해안을 따라 내려간다.

바닷 물 순환에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하는  북대서양해류는 북극의 차가운 바다와  그린란드 얼음산을 지나 갈 때면  물은 얼려지지만 소금은 얼려지지 않아서 밀도가 높은 차가운 물이 아래로 가라앉고 이렇게  얼음이 얼면서 소금기 머금은 밀도 높은 물은 바다 밑으로 내려가기를 반복하면서 발생하는  결빙이 이렇게 내려간 물을 적도 쪽으로 느릿느릿 밀어낸다.

마치 인간의 심장이  펌프질을 해서 혈관을 타고  혈액이 온몸으로 보냈다가 받아오는 것처럼, 북극 바다의 결빙 현상은  따뜻한 곳에서 온 물을 받아 얼리고 일부는 내려보내서 심층 순환을 통해 따뜻한 곳으로 되돌려 보내는 순환 원리로 작동하고 있다.

이렇게 물이 얼려졌다 녹아지기를 반복하며 남극과 태평양을 지나서 대서양과 북극을 돌아 자전주기에 맞춰 심층과 표층의 해류가 골고루 순환되어야 지구의 적정한 온도가 유지 된다.

한반도는 유라시아판 내에 위치해서  판 경계에 자리한 옆 나라 일본 보다 상대적으로 지진이 적고 안전한 곳으로 여겨졌지만 2000년대 들어서고 부터 규모 2.0을 넘어 4.5 지진이 자주 발생하고 있다.

 한반도 전체가 열탕처럼 펄펄 끓어 오르고 있고 장마가 시작된 제주도에는 역대급 물폭탄 비가 쏟아져 내리고 있다.

기후 재난의 주기가 점점 짧아지고 있고 그 위력은 재난 영화에서나 봤을 것 같이 상상하거나 가늠할 수 없을 정도로 무시 무시하다.

한때는 상상도 하지 못했던 자연재해와 재난이 현실이 되어서  예상했던 것보다 더 쉽고 빠르게 우리를 죽이고 있다

기후 과학자들과 환경 전문가들은 지구 열탕화의 원인이 ‘화석연료 사용’에 있다고 입을 모아 말하고 있다.

 석유 및 가스 생산과 소비는  매년 최고치를 찍고 있고 아스팔트와 콘크리트, 강철 그리고 실외기로 가득 찬 도시는 열을 가두기 딱 좋은 설계와 구조를 갖춘 찜통이다.

그동안 폭염으로 길에서 쓰러지고 물 폭탄을 맞아 도시 전체가 물 바다가 되어 배를 타고 피난을 떠나고 산불로 마을 전체가 전부 잿더미가 된 지구촌 반대편의 재난 상황은 그저 먼 나라에서 들려 오는 안타까운 소식이였다.

인간의 무한한 욕망은 결국 바다를 끓게 했고, 한계에 다다른 바다는 마침내 인간의 생명선을 향해 다가 오고 있다.

탄소 배출을 줄이고 쓰레기 용량을 줄이기 위해 오늘도 어김없이  에코백을 들고 종이 빨대를  챙기고 연일 뜨거운 폭염을 피해  얼음을 잔뜩 넣은 음료를 마시고 시원하고 쾌적한 바람을 내뿜는 에어컨이 도는 실내에서 하루의 반을 꼬박 버텨 내고 있지만 어떤 방법으로 환경의 재앙과 기후의 역습을 막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

(c)Steve McCurry , Kuwait (1991) 

“아이슬란드의 빙하는 200~300년 안에 사라질 것입니다. 

꼭대기에 조금 남은 몇몇 빙하를 제외하면 말이죠”

- 옷두르 시구르드손 빙하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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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터슨
윌리엄 칼로스 윌리엄스 지음, 황유원 옮김 / 읻다 / 202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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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버스 운전기사가 있다. 


미국 뉴저지주 패터슨시(市)의 23번 버스 운전기사 패터슨은 월요일 아침 6시 10분과 15분 사이에 알람 소리 없이 일어나 아내에게 ‘굿모닝 키스’를 하며 하루를 시작한다.

정확한 시간에 아침 식사를 마친 패터슨은 아내가 챙겨준 점심 도시락을 갖고 자신의 일터인 23번 버스에 올라 탄다.

버스에 시동을 걸기 전에 그는 수첩을 꺼내 시를 끄적인다.

또 다른 하나

네가 어렸을 때

너는 세 개의 차원이 있다는 것을 배운다:

높이, 너비 그리고 깊이

마치 신발 상자처럼.

그러다 나중에 너는

네 번째 차원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시간.

흠.

그러다 누군가는 말한다.

다섯 번째, 여섯 번째, 일곱 번째 차원...

나는 일을 해치우고

바에서

맥주를 마신다.

나는 내 맥주잔을 내려다보며

기쁨을 느낀다.

그는  버스 백미러에 비친 이들이 자신에게 이런 저런 이야기를 늘어 놓거나  푸념할 때도 싱긋 미소를 지어 보이며  정해진 정거장을 따라 운행 시간을 마치면  집으로 돌아간다.

집으로 돌아 온 패터슨을 자신을 반기는  애완견 마빈을 쓰다듬고는  아내의 하루를 묻는다.

지난 밤 자신의 꿈 이야기를 늘어 놓던 아내는  매일  수첩에 시를 끄적이는 남편에게 시를 출판 하지 말라는 말을 한다.

그는 아내의 잔소리를 흘려 듣고 애완견 마빈을 데리고 산책을 나선다.

산책 중에 그는 잠시 들리는 술집에서 맥주 한 잔을 마시고 집으로 돌아간다.


우리의 별 볼 일 없는 이들

그 끔찍한 얼굴의

아름다움이

나를 흔들어 그리하라 하네.


까무잡잡한 여인들,

일당 노동자들—

나이 들어 경험 많은—

푸르딩딩 늙은 떡갈나무 같은

얼굴을 하고선

옷을 벗어던지며

해질 무렵 집으로 돌아가는.

―윌리엄 카를로스 윌리엄스의 「사과」, 『꽃의 연약함이 공간을 관통한다』중에서

그 다음날도 패터슨의 일상은 어제와 크게 달라지지 않는다.

시시각각 변하는 건 오늘의 날씨와 차장 밖으로 보이는 풍경, 그리고  그가 운전 하는 23번 버스에 올라타는  승객들만 바뀔 뿐이다.

패터슨은  매일 운행되는  버스 노선 시간표에 맞춰 살아가면서도 마치 찰나의 순간에 수면 위로 살포시 떨어지는 꽃잎의 모습을 포착 하듯 버스 시동을 켜기 전  시를 쓰고 있다.

꽃잎 가장자리에서 하나의 선이 시작된다

하염없이 가늘고 하염없이

단단한 그 강철의 존재가

은하수를

뚫고 들어간다

접촉도 없이—거기에서

올라간다—매달리지도 않고

밀지도 않고—

멍 들지 않은

꽃의 연약함이

공간을 관통한다.

―윌리엄 카를로스 윌리엄스의 「그 장미」, 『꽃의 연약함이 공간을 관통한다』중에서

버스 기사 패터슨은 대단한 기대나 거대한 야망을 품고 시를 쓰지 않았을 것이다.

분명 패터슨은 한번 쯤은 늦게 일어나고 싶은 날도 있었을 것이고, 버스가 고장 나 일정이 변경되는 날도 있었을 것이다. 오랫동안 잘 알고 있다고 생각했던 사람이 어느 날 그에게 전혀  다른 모습으로 상처를 주거나 배신을 했던 순간도 있었을 것이다. 

지극히 평범하면서 지루할 정도로 무미 건조한  인간의 삶은 끊임없는 반복 속의 적지 않은 충돌과 갈등이  수도 없이 반복해서 일어나고 있다. 

인간이 무수히 내뱉는 말은 매일 바뀌는 날씨처럼 생각이나 기분에 따라 어떤 식으로든 마음에 상흔을 남겨서 하루에도 여러 번 요동치는 감정들은  마치 시의 운율처럼 움직인다.

그러니 인간의 삶은 매 순간이 연을 이루는 행과도 같아  일주일의 삶은  7연으로 쓰인 시(詩)일 것이다.

 시를 쓰며 시내버스를 운전하는 패터슨도, 컵케이크를 굽고 기타를 치는 그의 아내 로라도, 패터슨의 단골 바에서 매일 밤 패터슨이라는 도시의 역사를 들려주는 주인장도, 이 영화를 보는 우리 모두도  각자의 일상을 시어로 빚어내는 예술가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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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를 위한 한국미술사 - 교양과 상식으로서 우리 문화유산의 역사
유홍준 지음 / 눌와 / 202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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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적으로 한반도는 지정학적 위치로 외세 침략과 약탈로 셀 수 없이 많은 문화재와 유물이 화재나 도굴, 강탈로 소실 되었다.

1782년 정조가 강화도 행궁(行宮·임금이 임시로 머무는 곳)에 창덕궁 규장각의 부속시설로 설치했던 왕실 자료실 외규장각(外奎章閣)은 1866년 철종 재임당시  강화도를 침략한 프랑스군에 의해  파괴되었고 귀중 도서 340여 권과 지도 갑옷 등을 약탈해갔다.

프랑스 군이 외규장각을 약탈 했을 당시  외규장각에는 당시 조선 역대 왕의 글과 글씨, 의궤와 주요 서적, 왕실 물품들이 보관되어 있었고 도서는 대략  6000여 권 정도 보관 하고 있었지만 귀중한 보물의 상당수가 파괴되어 사라졌다.

1991년 서울대가 외규장각 도서의 반환을 요청하면서 한국과 프랑스 간 반환 협상이 시작되었지만 프랑스 측에서 지속적인 반환 거부로 협상이 결렬 되었지만 경제적 실무 협약을 맺으면서 협상을 이어가다가  2010년 주요 20개국(G20) 서울정상회의에서 양국 정상이 ‘의궤 대여’(5년마다 다시 계약하는 대여 방식)에 합의해서 현재 서울 국립 중앙 박물관에서 관람 할 수 있게 되었다.19세기 말 무렵 부터 20세기 전반기 일제강점기와 근현대 수난기를 거치는 동안 한반도에서 사라진 문화재와 유물들이 국외로 반출되어 현재까지 해외에 남아있는 한국 문화유산은 공식 확인된 것만 약 25만 6천여 점에 달한다.

이 중 전체의 43.2%인 11만 6백여 점이 일본에 집중되어 있어, 일제강점기 당시 가장 압도적인 규모의 문화재 유출이 일본을 통해 이루어졌다는 사실을 확인 할 수 있다.

암암리에  자행 되었던 약탈과 도굴로 찾아낸 문화재들이  밀반출되어 개인이 은닉한 유물까지 합치면 실제 유출 규모는 이보다 훨씬 클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국가유산청과 국외소재문화유산재단 조사에 따르면, 현재 전 세계 29개국 박물관·미술관 등에 분산된 한국 문화유산은 총 256,190점으로  일본이  110,611점에 달하는 한국의 문화재를 자국의 박물관과 사찰, 기타 개인 소장품으로 등록 시켜 놓았다.

반도체가 등장하기 전까지 한반도 역사에서 가장 인기 있는 ‘메이드 인 코리아’ 상품이었던 도자기는 일본이 임진왜란을 일으킨 목적이 조선의 도공을 납치 할 목적으로 전쟁을 일으켰다고 할 수 있을 만큼 한반도 전역을 닥치는 대로 약탈을 해갔다.

이토 히로부미도 고려청자를 손에 넣자 마자 자신의 방에 모셔 두었을 만큼 일본의 한국 청자 사랑은 유별나다 못해 병적이였다.

일제 강점기 당시 일본으로 넘어간 유물은 고려청자, 조선백자 등의 도자기류와 고문헌(서적류), 고분 출토 장신구 및 불상이 대다수를 차지하는데일본 지배층 사이에서 고려청자 수집 열풍이 불면서 무덤을 파헤치는 잔인한 도굴이 성행했다.

도굴에서 파낸 청자는 중간 상인들을 거쳐서 비싼 가격에 해외 컬렉터에게 넘겨 졌다.

1883년 조영통상조약 체결 이후 한국에 들어온 영국의 외교관, 의사, 선교사들은 조선 왕실 및 고위층과 교류하며 엄청난 양의 미술품과 민속품을 합법·비합법적으로 사들였는데 영국인들은  고려 청자의 아름다움에 탐복해서 외교관·자산가·박물관이 삼각편대를 이루어 고려청자를 필두로 한 예술품과 민속품을 종합적이고 지속적으로 수집했다.

한국과 해외에 흩어져 있는 수많은 애국적 수집가와 후원 단체들이 자발적으로 구입한 한국의  청자를 국가에 조건 없이 기증 해서 현재 국립 중앙 박물관과 호암 미술관 기타 지방 국립과 사립 미술관에서 청자를 볼 수 있다.

일본 다음으로 한국 문화재를 가장 많이 보유 하고 있는 국가는 미국으로  68,961점을 보유하고 있다.

독일과 영국은 선교나 목회 활동으로 한국에 체류 했던 종교인들과 외교 사절단으로 방문해서 장기 체류 했던 해외 관료들과 대사관 근무를 했던 외교관들 그리고 방대한 자금으로 컬렉션을 갖고 있던 수집가들이  19세기 말부터 20세기 전반에 걸쳐 한국 문화재를 집중적으로 손에 넣었다.

1909년 한국에서 선교 활동을 펼치던 독일 가톨릭 순교 수도회인 성 베네딕도회 선교사들은 한국의 문화와 풍속을 깊이 연구했는데 이들 중에서 1911년과 1925년 두 차례 한국을 방문한 노르베르트 베버 총원장은 일제에 의해 한국 전통문화가 말살되고 헐값에 팔려 나가는  것을 안타까워했다. 

그는 조선의 일상 유물, 민속품, 양반가의 가구 등을 대거 수집하여 독일로 가져가 보존했는데 베버 총원장의 수집품 중에 조선 최고의 천재 화가 중 한 명인 겸재 정선 화첩이 있었다.

 독일 상트 오틸리엔 수도원에 보관되어 있던 '겸재 정선 화첩(보물)'은 수도원 측에서  이 유물의 가치를 인정하고 지난 2005년 한국(왜관 베네딕도 수도원)에 조건 없이 영구 기탁 형식으로 반환해 주었지만 여전히 독일 수도원에 한국의  많은 민속 유물이  보존되어 있다.

제국주의 시절 전 세계의 문화재를 끌어 모은 영국은  서울 인사동으로 흘러들어 온 한국 유물과  일본, 중국의 골동품 시장에 유출된 문화재를 대영 박물관 예산으로 직접 대량 매입했는데 이 과정에서 국보급 유물인 고려시대 '나전칠기 경함'이나 '화엄경변상도', 삼국시대 금귀걸이 등이 영국 박물관의 소장품으로 편입되었다.

고려 시대를 대표하는 초정밀 공예품인 고려 나전칠기는 현재 전 세계적으로 단 20여 점밖에 남아있지 않은 초희귀 유물품이 되었다. 20여점 중에 7점이 현재 일본 도교 국립 박물관에 국보로 소장 되어 있다.

고려 시대의 정교한 기법을 이어받으면서도 조선 공예가들의 독창성이 꽃피기 시작한 조선 전·중기(15~16세기) 나전함은 임진왜란 당시 약탈 당하거나 화재로 소실 되어서 현재  전 세계에 단 4점만 남아 있는 초희귀 유물이 되었다.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나전함 (1점)은 조선 중기에 제작되었고 일본 도쿄국립박물관 소장 나전함 (1점)은 현재  일본의 '중요문화재'로 지정되어 관리되고 있다.

2023년 일본에서 환수된 나전함 (1점)은  문화재청과 국외소재문화유산재단이 일본의 한 개인 수집가에게 사들인  16세기 경에 제작된  나전함이다.


 8~10년 정도 자라야 옻액을 채취할 수 있는 옻나무에서 채취하고 걸러 내어 많은 시간과 공을 들여야 하는 옻칠로 가공한 상자에 4만 5천여 자개조각을 길고 가느다란 모양으로 오린 후, 아교를 바른 바탕 위에 칼로 끊어가며 붙여 장식하는 끊음질 기법과 타찰법으로 무늬의 균열을 내어 다양한 형태의 연꽃과 넝쿨 줄기 밤하늘을 수 놓은 별빛 처럼 새겨져 있다.

유럽과 이슬람권 등 다른 문화권에도 조개껍데기를 가구나 목재 상자 표면에 박아 넣는 장식(Inlay) 기법은  존재했다.

하지만 조개껍데기를  실처럼 가늘게 자르고(끊음질) 의도적으로 깨뜨려(타찰법) 보석처럼 수놓는 기법은 한국(조선)이 세계에서 유일한 독보적인 기술이었다.연꽃 봉오리, 잎받침이 있는 연꽃, 활짝 핀 연꽃들이  뒤얽힌 넝쿨 줄기와 이파리, 칠보무늬의 장식이 언뜻 보면 별 것이 아닌 듯한 상자로 보이는 나전 칠 연꽃넝쿨무늬 상자는 나라를 잃은 우리 조상들 처럼  400년 동안 해외를 유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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