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책들을 읽다보니 이 책은 거의 3달만에 다시 읽어볼 수 있게 되었다. 오늘 읽기 시작한 부분에서는 지식과 경험을 기반으로 하는 전통적 전문가들의 입지가 조금씩 줄어들고 있다는 얘기가 나온다. 이것은 각종 온라인 플랫폼상에서 전통적 전문가들이 가지고 있던 지식과 경험들이 공유됨에 따라 굳이 그들을 찾지 않더라도 고객이 자신의 문제해결을 위한 지식과 경험들을 얻을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라는 게 저자의 생각이다.

현실에서 변호사나 세무사 등과 같은 전문직들을 직접 면대면으로 만나는 것은 비용적인 부담이 결코 적지 않기에, 아마 대다수의 사람들은 인터넷에 떠도는 그들의 블로그 또는 해당 전문가가 직접 출연하는 유튜브 채널 등을 통해 간접적으로 전문가들을 만나서 자신이 필요로 하는 정보들을 얻는 경우가 적지 않을 듯하다. 물론 전문가를 직접 만나서 그들에게 어떤 사건을 전적으로 맡기는 게 정신적으로 더이상 신경쓰지 않아도 된다는 마음의 안정감을 준다는 장점도 있겠지만 그러한 서비스에 걸맞는 돈을 지급하는데 있어서 부담이 된다면 당사자가 온라인 상에 떠도는 정보들 중 자신에게 적용가능한 것들을 직접 찾아서 대응하는 방법도 얼마든지 선택가능한 대안이 되고 있다는 것이다.

예전에 읽었던 이 책 본문의 앞부분에서 ‘정보의 비대칭‘이라는 용어를 봤던 기억이 난다. 과거에는 온라인 상에서 정보가 공유되는 상황이 거의 없었기에 정보의 비대칭이 심했지만, 요근래에는 폭발적이라는 표현이 어울릴 정도로 온라인 상에서 정보의 공유가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기에 더이상 과거와 같은 정보의 비대칭보다는 점점 그 비대칭의 격차가 줄어들고 있는 게 사실이다. 이렇게 온라인 등을 통한 정보의 비대칭 해소가 전문가들의 입지를 예전만 못하게 만드는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전통적 전문 서비스 모형에서 지식과 경험을 공급하는 사람은 항상 숙련된 인간 전문가였다. 그런데 이러한 전통적 전문가를 비판하는 의견에 따르면, 과거에 전문 서비스를 받았던 사람들의 경험이 새로운 지침 공급 원천으로 떠오르고 있다. 오픈소스 운동과 소위 ‘사용자 생성 콘텐츠user generated content‘ 정신에 따라 실용적 전문성을 만들고 공급하는 방식인 ‘온라인 협동‘이 활동무대를 넓히고 있는 것이다. - P176

인터넷 사용자들이 공유를 기본 원칙으로, 다양한 동기에 따라 위키피디아나 리눅스 등을 같이 만들어가듯, 사람들은 그와 유사한 생산 절차를 통해 유용한 지식과 경험을 대량 보관하는 저장소를 생성하고 유지한다. 이런 자원은 사용자가 사용자를 위해 만드는 것이다. 비록 여기에 저장된 실용적 전문성은 인간 전문가가 직접 제공하지 않더라도 여전히 유용하다. 이를 이용하면 실제로 효과를 본 노하우와 지식에 쉽게 접근할 수 있기 때문이다. - P177

전문가가 아닌 일반인이 실용적 전문성을 공급하는 새로운 원천으로 등장하고 있다 - P177

온라인 공동체가 전문가 업무 수요자에게 주어진 또 다른 선택지 - P1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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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는 어릴적부터 자신만이 생각하는 ‘특별한 사랑‘이라는 것을 꿈꾸며 살아왔다고 한다. 그래서 자신이 전심으로 사랑하는 여자와 연애도 하고 결혼까지 하면서 그것이 다 이루어진 줄로만 알았는데, 결혼생활을 하면서 자신이 그동안 미처 예상하지 못했던 어떤 한계들을 느끼기 시작했다고 한다. 예를 들면 뭔가 채워지지 않는 공허감 같은 것 말이다. 저자가 말하는 공허감이라는 게 어떤 건지 독자인 내가 100% 이해할 수는 없지만, 문맥상으로 유추해본다면 저자가 꿈꿨던 이상향과 현실 사이의 괴리가 보통 일반인들이 생각하는 것들보다 훨씬 더 컸던 것 같다.

또한 오늘 처음 밑줄친 부분을 통해 살펴보면 자신이 생각했던 궁극의 목적과 수단이 바뀌어 있었던 것 같다. 비록 독자인 나는 저자의 글을 지면만으로 보고 있긴 하지만 그의 깊은 고뇌가 조금이나마 느껴졌다.


난 그동안 내 꿈이 ‘특별한 사랑‘인 줄 알았는데 알고보니 내 꿈은 그것이 아니었다. 내 꿈은 이기적인 나의 ‘완전하고 영원한 행복‘이었다. ‘특별한 사랑‘이 나에게 그것을 가져다주리라고 확신하고 있었던 것이다. ‘특별한 사랑‘이 목적인 줄 알았더니 수단이었다. 난 새로운 수단을 찾아봐야 했다. - P121

빈 공간을 없앨 방법이 없어지자 나는 할 수 없이 이 빈 공간을 마주해야 했다. 이 빈 공간은 도대체 무엇일까?‘ 나는 처음으로 무얼 하고 싶은 것이 아니라 알고 싶었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더 이상 할 수 있는게 없어지자 그제야 알고 싶어졌다. - P122

‘난 뭘 위해 살아야 하는 걸까??
‘난 왜 태어났을까??
‘날 누가, 왜 만든 걸까?? - P122

나는 내 삶의 시작과 끝, 즉 출생과 죽음에 대해 모르기에, 그 출생과 죽음 사이에 존재하는 삶의 의미도 알 수가 없는 것이었다. - P122

난 행복해지기 위해서는 알아야 했다. - P123

What is the Truth? - P123

우리가 왜 태어났는지, 죽음 뒤엔 무엇이 있는지, 내가 찾고 있던 것에 대해 정말 많은 사람들이 종교와 철학의 이름으로 답을 제시해 놓았다. 하지만 내가 찾고 있던 건 나와 같은 한계를 가진 인간의 대답이 아닌 전지전능한 창조주의 대답이었다. 음악에 비유해 예를 들자면, 내가 음악을 만들어 발표하면 많은 사람들이 그 뒤에 숨겨진 의미나 의도를 추측하지만 답을 알고 있는 사람은 나밖에 없다. 내가 만들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난 우주와 인간을 직접 만든 창조주가 말하는 답을 듣고 싶었다. - P126

만일 그런 창조주의 확실한 증거를 찾지 못한다면 나는 그냥 내 생각대로 다시 살아갈 생각이었다. 나보다 아무리 뛰어난 인간이라고 해도 결국은 나와 같은 한계를 지닌 인간이기에, 그가 나에게 완전한 진리를 말해줄 확률은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 P127

대학에서 과학을 전공하면서 내가 느낀 건 인간이 지금까지 밝혀낸 사실, 아니 밝혀냈다고 믿고 있는 사실들이 인간이 아직 모르는 사실들에 비해 형편없이 적다는 것이다. 심지어 밝혀냈다고 믿고 있는 그 사실들조차도 언제라도 뒤바뀔 수 있는 불안한 것들이다. - P127

난 우선 종교 경전 중 창조자가 등장하는 책을 찾아봤다. 여러 책을 비교해보며 공부해보려고 했었는데, 너무나 신기하게도 우주와 인간을 만든 창조자가 등장해서 그것을 왜, 어떻게 만들었는지 자세히 써놓은 책은 성경 한 권밖에 없었다. - P127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창세기 1장 1절 - P127

‘태초, In the beginning‘라는 말은 시간을 의미하고 ‘하늘과 땅, the heaven and the earth‘은 공간을 의미한다. 이 시간과 공간 전체를 우린 우주라고 부른다. - P127

(Universe의 정의를 찾아보면 ‘All of time and space‘라고 나온다.) - P127

천국과 지옥을 나누는 기준은 죄가 ‘많고 적고‘ 혹은 ‘크고 작고‘가 아니다. 죄가 ‘있고 없고‘이다. - P128

하나님은 인간을 만드시고 한없이 사랑하고 계신 아버지이다. 하지만 동시에 만물을 정의롭게 다스리는 왕같은 분이셔서, 아무리 사랑하는 자식이라고 해도 그의 죄를 못 본 체 넘어가실 수는 없다. 죄가 하나도 없는 세상에서 사시려고 하는 하나님은 죄가 하나라도 있는 죄인과는 함께 살 수가 없다. 그래서 하나님의 기준은 죄가 ‘있고 없고‘ 인데, 인간들은 죄가 ‘많고 적고‘ 혹은 ‘크고 작고‘를 가지고 선악의 기준을 삼는다. - P129

인간이 평생 아주 작은 죄 하나도 안 짓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기에, 하나님께서는 인간이 행위와 상관없이 완벽히 의인이 될 수 있는 길을 준비해주셨다. 그것은 바로 부모님이 자식의 모든 잘못을 대신해 벌을 받는 것과 같은 일이었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이 만든 인간들의 죄를 대신해 벌을 받으시려고, 자신의 분신인 예수님을 인간의 모습으로 이 땅에 보내어 인간 전체를 대신해 십자가에서 처형당하게 하셨다. 미래를 모두아시는 하나님이시기에 모든 인간이 저지른 죄 뿐만아니라, 앞으로 지을 죄까지 모두 담당하신 것이다. 그러고는 우리에게 걱정하지 말고 이 사실을 깨닫고 믿기만 하라고 말씀하신다. - P129

성경에 관한 많은 자료들과 해석들을 찾아보았고, 종파와 상관없이 다양한 목사님들을 만나 말씀을 들어보았다. 나는 매일 열 시간 이상씩 성경을 붙들고 씨름했다. - P133

성경에 대한 다양한 해석들을 비교할 때 나의 기준은 하나였다. ‘논리적 일관성.‘ 성경을 만일 하나님이 쓰셨고,
그 하나님이 지금도 계신다면, 그 내용이 변질되지 않도록지켜야 한다. 성경 내용이 왜곡되거나 변질되어버리면 인간이 진리를 알 수 있는 길을 잃어버리기 때문이다. 그렇게 되면 하나님은 인간을 심판하실 수가 없다. 인간들이 하나님 앞에 와서 ‘성경 내용이 변질되어 잘못 알았습니다‘라고 변명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 P1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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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도 어제와 마찬가지로 일단 스타트를 끊었다. 이 책의 일러두기란을 보니《라스트 울프》는 모든 문장이 쉼표로 이루어져 있으며 맨 마지막 문장에만 마침표가 찍혀 있다는 말과 함께 이것이 저자가 의도한 장치라는 얘기가 나온다.

이 얘기를 보자마자 개인적으로는 재작년에 노벨문학상을 받았던 욘 포세의 작품들이 문득 생각났다. 그의 작품을 이미 읽어보셨던 분들이라면 잘 아시겠지만, 마침표가 거의 없고 그대신 거의 모든 문장들의 끝에 쉼표가 나오기 때문이다. 욘 포세의 작품을 읽었을 때 독자인 나는 삶과 죽음이 끊어져 있지 않고 이어져있다는 것을 작가가 은연중에 시사하기 위한 도구로써 쉼표를 활용했다는 느낌을 받았었는데, 오늘 시작하는 이 작품에서는 어떤 의도로 저자가 쉼표를 사용한 것인지 한 번 생각해보는 것도 나름대로 의미가 있을 것 같다.

그리고 여기 별도로 밑줄치진 않았지만 본문을 읽다보면 스페인 지명이 자주 등장하는데, 개인적으로는 스페인 지명에 대한 배경지식이 많지 않은 관계로 다소 생소함을 많이 느꼈다. 인터넷에 지명들을 검색해보니 정확히 어딘지까지는 잘 모르겠으나 실제로 존재하는 곳으로 나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만약 스페인 지역에 대한 지리적인 배경지식이 어느정도 있는 독자라면 본문 내용이 조금이라도 더 익숙하게 느껴질 것 같긴 하다.

한편 오늘 처음 밑줄친 문장은 물론 어떤 의미도 있겠으나 표현이 굉장히 신박하게 느껴져서 적어보았다. ‘의도라는 악취가 원자 하나하나에까지 배어들었다‘는 표현을 어떻게 쓸 수 있었는지 참 신기하고도 놀라웠다. 저자가 과학 분야에도 어느정도 관심이 있지 않고서는 절대로 이런 표현이 나올 수가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신박한 표현과는 별개로 본문에 나온 문장들이 전반적으로 약간씩 난해하게 느껴지는 건 문화차이 때문인지 아니면 다른 이유 때문인지는 아직 잘 모르겠으나, 개인적으로는 작가의 의도를 명확히 이해하는 것이 그리 호락호락하지만은 않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물론 최대한 이해하려고 노력은 해보겠지만 말이다.


























다만 오히려 어둑한, 악마 같은 의도가 개입되듯, 무언가가 일들의 핵심 속에 깊이 박혀 있어, 일들 사이를 엮고 있는 관계의 편제 속에, 그들의 의도라는 악취가 원자 하나하나에까지 배어들었다, 이는 저주였다, 지옥살이의 한 형태, - P30

세상은 멸시감의 산물이라, 생각하기 시작하는 이의 뇌를 두드려대었다, 그리하여 그가 더 오래 생각할수록, 더 이상 생각하지 말자고 깨우치게 된 것이었다, - P30

사상가로 출발했던 사람은 삶의 매분 매초에 허무함과 멸시감을 영원토록, 의식하고 있어야 하였다, 반대로 생각을 다 접고 단순히 사물들을 바라만 보려 해도, 생각은 새로운 형태로 돌연히 나타나니, 다른 말로, 사람이 무슨 생각을 하든지 혹은 생각을 하지 않든 달아날 길은 없었다, 왜냐면 그는 어느 쪽이든 생각의 포로로 남아 있기 때문이었다, - P31

되는대로 두었다, 제 좋을 대로 흐르면 흐르는 거지, - P31

사건들이 어떻게든 전개되는 대로 내버려두자, 어쨌거나 일이 정확하게 그런 식으로 돌아갔다, - P31

핀카finca는 스페인어로 대농장, 핀크fink는 독일어로 되새, 불량배, 지저분한 아이라는 뜻이다. - P34

끔찍했다, 무서우리만치 징글징글했다, 누군가는 정말 이에 종지부를 찍어야만 했다, 그리고 그들은 이에 종지부를 찍었다, 그리고 계속 이에 종지부를 찍을 것이다, 오직 하나 끔찍이도 통탄스러운 점은 그들이 이런 일을 하는 데 한 가지 길밖에 없다, 세상을 안으로 수용하는 것이다, 그리하여 빌어먹을 생지옥을 인정하는 것이다, 때문에 모든 것이 나락으로 떨어질 것이다. 비록 그들은 전혀 알지 못했지만 엑스트레마두라에 있는 모든 것, 땅, 사람, 모든 것이 다, 저주받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들은 지식이 부족하고, 그들이 무슨 짓을 하고 있는지, 앞날에 어떤 일이 기다리는지 알아채지 못한다, - P40

갑자기 저 둘, 도밍게스 찬클론과 늑대는, 진정으로 서로에게 속해 있다고 갑자기 느꼈다, 왜냐면 거기, 늑대가그의 사냥감을 자랑스레 가리키고 있는 사냥꾼의 자부심만 채워주고 있는 것이 아니라, 자부심이 똑같이 둘 모두에게서 뿜어져 나오기라도 하듯, 사냥꾼과 사냥감, 그들은 같이 묶인 존재들이라고 그는 생각했다, - P45

늑대가 거기 있을때 가장 절실히 두려운 게 아니라, 아직 도달하기 전의 시간이 두렵다고, 늑대들이 내려와 도착할 조용한 사잇길 외에 아무것도 안 보일 때가 두렵다고 했다, - P61

늑대는 한 지역을 일단 자신들의 영역으로 삼고 나면 영원히 거기 머문다, 그들이 이곳의 주인이라, 저기 50헥타르까지 내 영역이로다 주장을 하면, 그러고 나면 그들은 이를 떠날 수 없다, 왜냐면 그게 그들의 법이다, 늑대의 법, 그런 천성을 안고 살아간다, 그런 이유로 결코 떠나지 않았다. 그들은 떠날 수가 없었다. 지속적인 위험을 의식한다고 해도, 그들이 자신의 영역을 떠나는 일은 불가능했다. 계속해서 경계를 표시하고 다니는 자신들의 영역을 떠나다니, 못 한다, 그들에게는 불가능했다, - P63

그는 늑대들의 법칙은 상당한 자존심으로 이뤄졌다고 전적으로 확신하였다, 그러니 적어도 부분적으로, 그들이 떠나는 걸 가로막는 것이 자존심이라고 가정해도 무방할 것이었다, 왜냐면 늑대들은 아주 자부심 높은 동물이다, 자부심으로 똘똘 뭉친, - P63

"El amor de los animales es el único amor que el hombre puede cultivar sincosechar desengano", 동물의 사랑은 인간이 결코 실망하지 않고 키워갈 수 있는 유일한 사랑이다. - P65

하지만 이제 그는 그때, 그곳에서, 그 당시에 느꼈던 것과 똑같은 불안에 휩싸였다, 그리고 그의 불안감이 그의 존재 자체를 이루던 공허감보다, 그가 익숙하던 차분하고 완전히 느긋한 이 존재의 공허감보다, 더욱 강렬하고 더욱 끈질기다는 점을 알아차리고 겁에 질렸다, - P74

수년간의 성공에도 불구하고, 운명을 피하지는 못했다. - P76

어떤 노력도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다. - P89

인간이란 모든 것에, 복잡하고 모르는 것은 전부, 그 자체의 용감무쌍한 단순성으로 기세를 꺾으려고 갖은 노력을 다하지만... - P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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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작이 반이라고, 어제는 동 저자의《사탄 탱고》, 오늘은 이《세계는 계속된다》를 시작해보게 되었다. 개인적으로는 비교적 생소한 헝가리 국적의 작가님이다보니 어떤 그들 고유의 문화나 분위기 같은 것들이 쉽사리 적응되는 느낌은 아니지만 그래도 한 문장 한 문장 읽다보면 국적을 불문하고 다 같은 사람들이기에,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는 부분들이 분명 있을 거라는 생각을 해보게 된다.

제목과 목차만 보고 나름대로 추측해보자면 뭔가 마음에 들지 않는 현실세계를 도피하고 싶다는 마음과 함께 한편으로는 화자의 그런 마음과는 별개로 이 세계는 계속된다는 명백한 진리를 깨닫는 뭐 그런 류의 이야기가 전개되지 않을까 조심스레 예상해보게 된다. 물론 이런 나의 예상과는 전혀 다른 이야기가 전개될 수도 있겠으나, 개인적으로 얼마전 한강 작가님의 책들을 읽으면서 깊이 느꼈던 것 중의 하나는 바로 소설을 읽어나갈 때 뒤에 나올 내용들을 나름대로 예상하면서 읽는 것과 그렇지 않은 것에는 그 책에 대한 몰입도에 있어 상당한 차이를 만들 수 있다는 것이었다. 이것은 예측의 정확성과는 별개의 문제다.

소설 초반부에는 누군진 모르겠으나 화자가 자꾸 떠나야만 한다고 반복해서 말한다. 아마도 현재 자신이 속해 있는 현실 또는 주변 환경이 마음에 들지 않는 듯 보인다.

떠나, 지금 당장 떠나, 생각하지 않고 즉시 떠나, 그리고 돌아보지 마, 그저 미리 결정된 행로를 따라가, 시선을 앞으로만 고정하고, 물론 제대로 된 방향에 고정하고, 그렇게 고통스러울 정도로는 어려워 보이지 않는 선택, - P12

오른쪽으로 갈 수 있지, 그러면 실수하지 않으리라, 왼쪽으로도 갈 수 있지, 그런들 실수가 되지 않으리라, 서로 180도로 반대인 양쪽 방향 모두, 우리 내면에 있는 이 실용적 감각에 따르면 완벽하리만큼 좋다는 판단을 내릴 수 있으므로, 그리고 여기에는 아주 좋은 이유가 있는데, 완전히 180도 정반대인 두 방향을 가리키는 이 실용적 지식은 욕망에 의해 판가름되는 프레임워크 안에서 작동하니까, 다시 말해, "오른쪽으로 가라"는 "왼쪽으로 가라"와 다름없는 말, 이런 두 가지 방향 모두, 우리의 욕망이라는 관점에서는 가장 먼 곳, 여기서부터 멀리 떨어진 곳을 가리키기 때문에, 그러니까 어느 방향으로 가든 도달할 수 있는 지점은, 더는 실용적 지식, 감각 혹은 능력이 아니라, 욕망, 그저 욕망으로만 결정되어, 현재 위치로부터 가장 먼 곳으로 가고 싶다는 것뿐만아니라, 가장 위대한 약속의 땅, 평온을 찾을 수 있는 곳으로 이동하고 싶다는 갈망, 확실히 평온이 가장 주된 요소일 것,
이것이야말로 한 사람이 그렇게 욕망하는 거리 속에서 찾으려 하는 것일 테니, - P14

그의 현재 상황을 떠올릴 때마다, 시작점을 떠올릴 때마다 그를 사로잡는 억압적이고, 고통스러우며, 광기 어린 소요로부터 벗어나는 평온, 그가 지금 있는 곳은 무한히 낯선 땅이며, 그는 그곳에서부터 떠나야 하니, 여기의 모든 것은 참기 어렵고, 차갑고, 슬프며 황량하고, 치명적이기에, - P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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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기회가 되어 읽어볼 수 있게 되었다. 과연 어떤 내용들이 기다리고 있을지... 그냥 첫 이미지만 보면 사탄이라는 단어가 들어가서 그런지는 몰라도 뭔가 고통스러운 게 나올 것 같은 느낌이다. 어쨌든 일단 시작해본다.


"그러면 차라리 기다리면서 만나지 못하렵니다." _F.K. - P5

유리창에 갑자기 불분명한 물체가 보이더니 점차 사람의 꼴을 갖춰갔다. 처음엔 그게 누구의 얼굴인지, 놀란 두 눈을 볼 때까지는 알지 못했다. 이윽고 그가 알아본 것은 자신의 초췌한 면상이었고, 순간 놀라고 당황한 것은 비가 창유리 위의 얼굴을 지워내듯이 세월이 그에게도 똑같은 일을 할 것이라는 예감이 들어서였다. 그 모습엔 무언가 엄청나고 낯선 궁핍이 어려 있었다. 수치와 자부심 그리고 두려움이 겹겹이 층을 이루며 그에게로 다가들었다. - P27

"이제 모든 게 정상으로 돌아가는 걸 보게 될 거야." - P35

아, 그리고 남편 말이, 돈은 훔쳐가려면 맘대로 하래요. 그런 건 우리한테 아무것도 아니래요. 그렇게 말했어요. 남편 말이 옳지요. 숨어 다니고 시치미 떼고 밤잠도 못 자고... 우린 그러고 싶지 않거든요. - P38

"짜증 내지 말라고. 보란 듯이 잘살 수 있게 될 테니까! 홍청망청 마음껏 즐기며 살 거야!" - P38

어지러운 생각들이 몇 분 동안 소용돌이치다가 허약하고 고통스러울 정도로 쓸모없는 문장들이 만들어져 나온다. 그것은 급조된 다리처럼 세 걸음만 걸으면 부서지는 소리가 나고 그다음 내딛는 마지막 발걸음에 와장창 무너지는 것이어서, 결국에는 지난밤 관인이 찍힌 소환장을 처음 받았을 때 빠져들었던 소용돌이 속으로 거듭해서 휘말려 들고 마는 것이다. - P42

"눈에 보이는 게 다가 아니잖아." - P46

"지나간 일은 잊어주기로 하지. 단, 당신들이 미래에 관한 내 제안을 받아들인다면 말이야." - P56

"저희에게도 권리란 게 있습니다" - P57

"어떤 법이냐고?" 대위의 얼굴이 음울하게 변한다. "강한 자의 법이지."  - P58

"빌어먹을 일은 그만 잊어버리는 편이 낫겠어!" - P62

"왜냐하면 시작한 건 끝을 봐야하는 법이거든." "그렇지. 흐리멍덩하면 안 되거든." - P66

"농부들은 언제나 뭔가를 쟁여두고 있지." - P70

자신이 저지른 실수를 관대하게 넘기는 일은 스스로 용납할 수가 없었다. 자신을 벌주지 않으면 나중에 그 자신이 손해를 보게 되는 이치였다. - P82

산만함이나 부주의로 저지른 실수는 일의 위험성을 높여 예상보다 심각한 결과를 불러왔다. 불필요한 동작 너머에는 안정함이 숨어 있지 않은가. - P82

관찰을 위한 최적의 조건이 완성된 것은 어느 한 순간에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수년에 걸친 작업의 결실이었다. 날이면 날마다 자신을 닦아세우며 스스로를 벌주고 철회하는 일을 통해 이루어진 것이다. 첫 시기의 불안정함과 때때로 찾아든 의심이 야기한 혼란이 지나간 다음에는 더 이상 자신이 개별적인 동작들을 통제할 필요가 없는 단계로 들어섰다. 그렇게 사물들은 마침내 최적의 위치를 찾게 되었고, 그는 자신의 행동을 별다른 생각 없이도 아주 사소한 부분에 이르기까지 통제할 수 있게 되었다. 착각이나 과대망상이 아니라, 그가 자신의 인생을 완벽하게 만들었음을 자부할 수 있게 된 것이다. - P83

시도는 무언가 변했으면 좋겠다는 욕구의 은밀한 현시거나, 혹은 기억력 쇠퇴의 증표일 뿐이었다. 실제로 그가 몰두한 것은 주변의 외적인 몰락에 맞서 자신의 기억력을 지켜내는 일이었다. - P87

아무리 애를 써도 모든 것ㅡ집들과 담장들, 나무와 들판, 공중에서 하강하며 나는 새들, 배회하는 짐승들, 육신을 가진 인간들, 욕망과 소망들ㅡ을 파괴하고 소멸시키는 힘에 맞설 수는 없었다. 그럴 능력이 없었다. 그는 인간의 삶에 대한 위협적인 공격에 헛된 저항밖에는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생각해낸 것이 돌이킬 수 없는 음험한 몰락에 자신의 기억으로 맞서는 것이었다. 왜냐하면 이곳의 모든 것, 벽돌공이 쌓고 목수가 만들고 여인들이 바느질한 모든 것이, 남자들과 여자들이 애써 이룬 모든 것이 저승의 물살에 어지러이 휩쓸려 형체가 불분명한 액체로 화한다 해도 오로지 기억만은, 그가 맺은 계약이 깨져 죽음과 몰락이 그의 뼈와 살을 공격하기 전까지는 살아 있을 것임을 그는 믿었기 때문이다. - P88

그는 모든 것을 주도면밀하게 관찰하고 기록하기로 마음먹었다. 아무리 하찮은 세부라도 놓쳐선 안 되었다. 중요하지 않아 보인다고 간과하는 것은 몰락과 질서 사이에 놓인 흔들리는 다리 위에 아무런 대책 없이 서 있다고 고백하는 것이나 다름없기 때문이다. - P88

하지만 정직하게 기억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못했다. 우두커니 기억만 하는 것은 무력하고 무능하므로 그것으로는 과업을 수행할 수 없었다. 기호들을 의미 있게, 그리고 지속적으로 연결할 방법이 있어야만 기억의 한계를 뛰어넘어 시간을 이겨낼 수가 있었다. - P88

‘관찰 대상을 늘리는 일은 최소화하는 게 좋겠군.‘ - P88

그는 갑자기 연속적인 시간에서 빠져나온 자신이 점처럼 왜소한 존재에 불과하다는 걸 자각했다. 자신이 지각의 요동에 무방비하게 방치된 무력한 희생자처럼 느껴졌다. 그의 출생부터 죽음까지의 시간이 가라앉은 대양과 솟아나는 산악의 말 없는 투쟁 사이에 내맡겨진 것이었다. - P93

고통의 증거는 흔적 없이 사라지는 일이 없다고 그는 믿고 싶었다. - P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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