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과 남자의 과학 공부 - 나는 무엇이고 왜 존재하며 어디로 가는가?
유시민 지음 / 돌베개 / 202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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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두 번의 포스팅에서 책의 전반적인 내용과 함께 뇌과학과 생물학에 대한 내용과 관련된 리뷰를 했었다. 오늘은 화학파트에 대한 리뷰를 써본다.

화학관련된 얘기를 본격적으로 시작하기에 앞서 저자는 학창시절에 물질이 무엇으로 구성되어 있는지에 대한 호기심이 그닥 없었기에 과학과목(특별히 여기선 화학)에 관심이 안 생겼고 결과적으로 자신이 ‘운명적 문과‘일 수 밖에 없었음을 고백하는 부분이 나오는데, 저자의 이 고백은 비단 저자만의 고백이 아닌 독자인 나의 고백이기도 했다. 나도 중고등학교 시절 과학 시간이 되면 과학에 대한 어떤 학문적인 호기심이 발동하기보다는 이런게 실생활에 무슨 도움이 되겠나 하는 회의감이 더 컸었던 것 같다. 그래서 과학 과목에서 호기심이나 흥미를 느끼기보다는 그냥 중간고사 기말고사에서 쪽팔리지 않을 정도의 점수만 맞았으면 좋겠다는 (지금 생각해보면 꽤나 어리석었던) 생각을 하면서 학창시절을 보냈던 것 같다.

그나마 불행 중 다행인 것은 과거에 시험본다고 꾸역꾸역 머리에 욱여넣었던 지식들이 이 책에 나오는 내용들을 이해하는데 미약하게나마 도움이 되었다는 사실이다. 물론 과거에 이해없이 단순 암기만 했던 것들이 많았던지라 읽으면서 찬찬히 생각해봐야 할 것들이 많아서 제대로 이해하는데 시간이 좀 걸리긴 했지만 그래도 저자께서 친절하게 설명해주셔서 이제 겨우겨우 이해할 수 있는 수준정도까지는 된 것 같다. 과학쪽에 무지몽매했다는 표현이 딱 나에게 해당되는 표현이었는데 이제는 이 책을 읽고나서는 조금이나마 기초과학, 교양과학 수준정도로는 올라갈 수 있는 레벨로 접근하기 시작한 듯 하다.


그럼 이제부터 본격적인 내용과 그에 관련된 나만의 생각들을 덧붙여보면서 리뷰를 해보겠다.

화학파트에서 가장 먼저 소개된 원소는 바로 탄소였다. 본문에는 탄소와 결합하여 생성되는 다양한 화학물질이 나와있는데 이 부분에서 특별히 독자인 나는 ‘살충제‘ 라는 단어가 눈에 띄었다. 이유인즉, 작년에 읽었던 책 중에 이 ‘살충제‘와 비슷한 역할을 한다고 볼 수 있는 ‘살균제‘ 에 대한 얘기를 본 적이 있기 때문이다.

정확히 몇 년도인지까지는 잘 기억나지 않지만 예전에 온 나라를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가습기 살균제‘ 사건 다들 기억하실 거다. 내가 읽었던 책이 바로 이 사건에 대해 분석하고 피해자들을 인터뷰했던《가습기 살균제 리포트》라는 책이었는데, 그 책을 읽다보면 화학물질을 안전하게 사용하지 않고 오용하거나 남용할 경우 돌이킬 수 없는 일들이 발생할 수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다시 원래 리뷰하고 있던 책인《문과 남자의 과학공부》로 잠시 돌아와서 본문에 나온 내용 중에 이런 문장이 있다.

‘아는 사람은 안다. 화학이 ‘돈 되는 과학‘이란 걸. 화학의 이미지가 나빠도 사람들은 ‘화학제품‘에 아낌없이 돈을 쓴다.‘(p.166)

화학이 이렇듯 돈이 되는 과학이다보니, 소비자들의 안전을 무시한 채 눈앞의 이익만을 좇은 비도덕적인 기업들과 이러한 기업들로부터 연구비 등의 명목으로 금전적인 지원을 받는 대학교수들 및 연구자들이 서로 짜고쳐서 사용자들에게 유해할 수 물질을 마치 별 문제 없는 것처럼 서류를 조작해 둔갑시키고, 이를 감시감독해야할 관련 분야의 정부부처들은 신종 화학물질에 대한 전문성 부족 밎 규제와 관련된 별도의 규정이 없다는 이유로 기업과 전문가들이 만든 유해성있는 화학제품을 시중에 유통될 수 있도록 허락한 결과물이 바로 위에서 언급했던 ‘가습기 살균제‘ 로 인한 사망 사건으로 나타난 것이다.

이 사건의 주요 피해자들은 어린아이를 키우는 가정들에서 많이 발생했는데 이들 대다수가 가습기의 유해물질을 제거해준다는 생각에 기반하여 우리 아이의 건강에 도움이 될 수 있겠다는 선의로 화학제품에 아낌없이 돈을 썼다가 돌이킬 수 없는 일들을 당했다고 한다.

화학제품과 관련된 이러한 끔찍한 사례를 보면서 우리 일상 생활에 들어와 있는 수많은 화학제품들에 들어있는 화학성분들에 대한 지식을 일정수준 이상으로는 갖추고 있어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신종 화학물질들도 마구 쏟아져 나오는 이 시대에 모든 것을 다 알 수야 없겠지만 최소한의 기본적인 화학관련 지식의 필요성을 뼈저리게 느끼게 해준 사례였다고 생각한다.

좀 더 확장해서 생각해본다면 이것(기초 화학에 대한 지식)은 자신이 문과이든 이과이든 관계없이 모든 국민들이 기본적으로 알고 있어야 할 지식이 아닐까 싶다. 우리가 일일이 다 느끼진 못하지만 문과 남자인 저자가 본문에 언급한 화학제품들의 목록들을 보다보면 화학이 우리 삶에 얼마나 깊숙이 침투해 있는지를 느낄 수 있다. 본문에 나온 몇 가지만 나열해보면 립스틱, 주름방지화장품, 자외선 차단제, 미백크림, 살균제, 소독약, 항생제, 일회용기저귀 등을 비롯해 농축산물 생산에 쓰이는 비료, 농약 등 분야를 막론하고 참으로 다양하다. 저자는 이러한 화학의 영향력을 다음의 문장으로 표현한다.

‘현대인의 삶은 화학에서 시작해 화학으로 끝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p.167)

이렇듯 우리 생활에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는 것이 바로 화학인데 단지 문과라는 이유로 화학을 등한시 하는 태도는 결코 바람직한 태도가 아닐 듯하다.

요즘도 이런 말을 쓰는지 모르겠는데 예전에 ‘문과라서 죄송합니다‘ 라는 말을 줄여서 ‘문송합니다‘ 라는 말이 유행했던 적이 있다. 근데 내가 이 책을 읽으면서 드는 생각은 과학과 관련된 얘기가 나올때 단지 자기가 문과라는 이유로 ‘문송합니다‘ 라고 말하고 끝나서는 안되겠다는 것이었다. 물론 깊이있는 수준까지야 힘들겠지만 적어도 우리 일상생활을 영위하는 것과 관련된 과학지식정도는 알고 있어야 하지 않을까 싶다. 과거에 읽었던《가습기 살균제 리포트》와 지금 리뷰를 쓰고 있는《문과 남자의 과학 공부》를 연계하여 생각해보면서 과학 공부를 해야 할 필요성과 그 이유를 보다 명확하게 느끼게 되었다.


이어지는 내용에서 저자는 가장 먼저 화학의 본질에 대한 설명을 한다. 저자에 따르면 화학은 물질의 조성과 구조, 성질, 관계, 변화를 연구하는 과학(p.167)이라고 한다. 앞서 가습기 살균제 사건 같은 화학과 관련된 위험한 일들에 대해 언급하긴 했지만, 적어도 이 정의만 놓고 봤을 때 화학은 우리가 속한 세계에 있는 물질들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는 기초학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에 더해 독자인 나를 포함한 많은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화학에 대한 오해들에 대해서도 잠시나마 생각해볼 수 있었는데, 본문에 이런 문장이 나온다.

‘화학은 천연의 반대말이 아니다. 자연 상태에 존재하든 사람이 만들었든, 물질로 존재하는 모든 것은 화학의 연구 대상이다.‘(p.167)

여기서 독자인 나는 앞에 나온 첫 번째 문장이 좀 의외라고 느껴졌다. 일반적으로 화학이라고 하면 뭔가 혼합되어 있는 물질이라는 이미지가 강하게 박혀있었는데, 이러한 생각이 잘못된 것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기 때문이다. 즉, 꼭 혼합물이 아니더라도 자연 상태에 있는 순수한 물질자체도 화학의 연구 대상이라는 것을 이번 독서를 통해 확실하게 알게 되었다.

또한 이어지는 문장 중에 다음과 같은 문장이 있었다.

‘화학은 생명을 해치는 사악한 마법이 아니다. 좋지 않은 물질을 만들어 잘못 사용한 책임은 화학이 아니라 사람한테 있다.‘(p.168)

이 문장을 보면서 독자인 나는 화학 자체보다는 화학을 오남용한 사람들의 잘못이 화학에 대한 오해를 키워왔음을 뼈저리게 느낄 수 있었다.

이러한 화학에 대한 사람들의 오해는 저자가 탄소에 대한 얘기를 하는 부분에서도 확인할 수 있었다. 이 부분에서 저자는 사람들이 전지구적인 기후 위기의 원인이 탄소라고 지적하는 현실에 대해 분노하는 모습을 보인다.

처음에 이 부분을 읽을 때 독자인 나는 요즘 전지구적인 기후위기에 대비하기 위해 탄소 중립을 실천해야 한다고 여기저기서 많이 들은 바가 있는데 도대체 저자께서 왜 저렇게까지 탄소를 감싸시는 건지 잘 이해가 되지 않았다. 하지만 본문에서 저자는 이런 말을 한다.


‘그 많은 탄소는 다 어디에서 왔는가? 어디서 온 게 아니다. 원래 지구에 있었다. 다른 곳에 다른 형태로 있던 탄소가 풀려나 산소, 수소와 결합한 탓에 기후위기가 생겼다. 오로지 인간 탓인 건 아니다. 화산 폭발과 자연발화 산불도 중요한 원인이다. 하지만 호모 사피엔스가 문제를 더 심각하게 만들었다는 것은 분명하다.‘(p.187)

‘인간이 집을 데우고 자동차를 굴리고 비행기를 띄울 때마다 거기 들어있던 탄소가 풀려났다.
...(중략)... 숲을 훼손해 도시와 경작지를 만든 탓에 나무가 광합성으로 흡수 고정하는 탄소량이 줄었다.(p.188)


위에 나온 문장들을 읽으면서 독자인 나는 탄소에 대한 인식을 새롭게 하게 되었다. 탄소 자체의 잘못보다는 원래 지구에 존재하고 있는 탄소를 무분별한 개발 등으로 인해 우리 인간들이 오남용한 결과가 지금 전지구적으로 나타나고 있는 이상 기후로 대변되는 기후 위기의 원인이라는 것을 깨달을 수 있었다. 저자는 탄소에 대한 오해는 마치 살인범이 칼을 비난하는 것과 다름이 없다.(p.188) 는 비유를 들며 사람들의 탄소에 대한 오해가 잘못된 것임을 지적한다.

이는 마치 ‘죄는 미워하되 사람은 미워하지 말라‘ 는 말과 비슷한 맥락이라고 느껴졌다. 탄소사례에 적용해서 위의 문장을 풀어 써보면 ‘탄소 배출로 인해 기후에 악영향을 미치는 새로운 화합물(이산화탄소, 메탄 등)은 미워하되 탄소 자체는 미워하지 말라‘ 라는 문장 정도로 바꿔 써볼 수 있을 듯하다.


이 탄소 사례와 관련해 추가적으로 사고를 확장시켜 생각해보자면 비단 탄소뿐만 아니라 우리가 살아가는 일상생활에서도 본질과 비본질을 잘 구분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비본질적인 것보다는 가급적 본질적인 것들에 좀 더 집중해서 어떤 대상이나 사람에 대한 섣부른 오해를 하는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우리 한사람 한사람의 의식이 깨어있어야 겠다는 생각도 해볼 수 있었다.


뒤이어 읽다가 눈에 띄었던 개념 중 하나가 있었는데 그것은 바로 환원還元(reduction)라는 것이었다. 이것은 간단히 말해 크고 복잡한 것을 작고 단순한 것으로 쪼개는 것(p.169)을 의미한다. 또한 모든 대상을 이런 방법으로 연구하려는 경향을 ‘환원주의‘ (p.169)라고 하는데, 여기 나오는 화학 뿐만 아니라 과학의 다른 모든 분야에서 이러한 환원주의에 기반하여 연구를 한다고 하니 굉장히 중요한 개념이라고 봐도 무방하다.

다시 화학 얘기로 돌아와서 저자는 이러한 환원주의에 입각하여 대다수의 독자들이 그래도 비교적 이해하기 용이한 사례라고 할 수 있는 소금물이 만들어지는 과정에 대한 설명을 한다. 이 과정에 대해 여기서 일일이 자세한 얘기를 다 하기는 힘들지만, 저자가 소개하는 이 사례를 통해 원소와 원자, 분자, 전자 등 기초화학에 나오는 개념들을 보다 명확히 구분하여 이해할 수 있었다.

또한 모든 원소들을 원자번호와 화학적 성질에 따라 배열한 주기율표를 읽는 방법이라든지 화학에 나오는 각종 결합 방법 등 기초적인 개념들을 독자들이 받아들이기 쉽도록 친절하게 설명해주셔서 과학이 낯설고 어렵게만 느껴지는 나같은 독자들에게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었을 듯하다.

특별히 개인적으로 주기율표의 경우 본문의 내용을 통해 각각의 원소, 원자들의 특성이 마치 사람의 성격이나 성향과도 비슷하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요즘 유행하는 MBTI같은 걸 보면 사람들의 성향에 따라 16가지로 사람의 유형을 분류하는 것과 비슷하게 주기율표에서도 각각의 원소들을 분류하는 기준이 있어서 그 기준에 따라 원소가 위치하는 자리가 달라지는 것이 흥미롭게 느껴졌다.

이과 출신 독자들의 경우 위에서 언급했던 소금물의 결합과정에 대한 저자의 설명이 오히려 복잡하다거나 혹은 식은죽 먹기같이 느껴졌을지도 모르겠으나 적어도 나같이 과학에 상대적으로 무지한 문과 출신 독자들에게는 저자의 설명이 어둔 밤길의 등불처럼 친절하게 느껴지지 않았을까 싶다. 하지만 저자의 이러한 친절한 설명에도 불구하고 독자인 나는 소금물 사례에 나오는 개념과 과정들이 빠르게 이해되기보다는 이해하는데 시간이 좀 걸리는 것들을 보면서 도대체 학창시절에 과학 공부를 잘했던 친구들은 머리가 얼마나 비상한 친구들이었을까 하는 생각도 문득 들었다. 또한 기초 개념들에 대한 설명을 이미 배웠음에도 불구하고 몇일이 지난 뒤 다시 이어 읽으려 할 때 개념들이 헷갈리는 내 자신의 모습을 보며 이런 개념들을 헷갈리지 않고 그 과정들을 잘 따라나갔던 친구들이 참으로 대단하다는 생각도 해보게 되었다. 다른 한편으로는 이러한 이유들로 인해 나도 저자와 같은 ‘운명적 문과‘ 일 수 밖에 없지 않았나 싶기도 했다.


뒤이어 나온 내용 중에서 저자가 탄소의 화학적 성질을 정치학 언어로 표현한 부분이 있었는데 굉장히 인상적이었다. 한 예로 탄소는 ‘유능한 중도‘여서 성공했다.(p.188)라는 문장과 함께 탄소의 성질에 대한 설명이 이어지는데, 이런 식으로 과학을 배우면 문과출신들도 과학을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이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떤 복잡한 수식이나 산식이 아니라 직관적인 의미로 딱 와닿는 게 좋았다. 이런 식의 설명은 아마도 저자가 과거에 정치에 몸담았던 경험이 있었기에 가능하지 않았을까 싶다.


화학 파트의 마지막 부분에서는 앞서 언급했던 환원주의의 위험 요소에 대한 내용이 나온다. 여기서의 핵심은 복잡한 것을 단순한 것으로 쪼개서 설명하다가 원래의 목적이었던 복잡한 것을 설명하지 못할 위험성이 있다(p.199)는 것이었다. 본문에 나왔던 예를 들자면, 우주의 구조와 운동법칙을 설명하기 위해 가장 단순한 수소의 원자 구조를 파악하는 데, 여기서 단지 수소의 원자 구조만 파악하고 보다 복잡한 우주의 구조와 운동법칙을 설명하지 못할 경우 환원주의에 따른 연구의 의미가 퇴색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저자는 이러한 복잡한 것을 설명할 수 있으려면 각 분야의 연구자들이 자신의 분야가 아닌 다른 분야의 연구 성과를 습득하고 해당 분야의 연구자들과 소통할 수 있어야 한다고 말하는데, 이를 ‘통섭‘ 이라 지칭한다. 본문에서는 통섭을 ‘환원주의를 수단으로 삼아 지식을 통합하는 것‘(p.201) 이라는 정의와 함께 ‘분석은 과학적 방법으로 하지만 통섭은 언어로 해야 하기에 과학과 인문학이 모두 필요하다‘(p.201) 고 말하는데 독자인 나는 이것을 단순한 지식의 통합을 넘어 해당 분야 사람들끼리 활발한 교류를 하는 것 까지도 포괄하는 개념으로 이해했다.

또한 이 ‘통섭‘이라는 용어는 개인적으로 예전에 읽었던 최재천 교수의 책에서도 만난 적이 있는데,《문과 남자의 과학공부》에 나온 환원주의의 위험성에 대한 해결책으로 ‘통섭‘이 제시되어 있는 것을 보면서 이전보다 그 중요성을 한층 더 실감할 수 있었다.


이 정도로 화학 파트에 대한 리뷰를 마치고 다음 포스팅에서는 개인적으로 가장 읽어나가기 힘들었던 물리 파트에 대한 리뷰를 해보도록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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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과 남자의 과학 공부 - 나는 무엇이고 왜 존재하며 어디로 가는가?
유시민 지음 / 돌베개 / 202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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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번 포스팅에서 이 책의 전반적인 리뷰와 함께 뇌과학 분야까지 내가 느끼고 생각해봤던 것들에 대해 적어보았고 오늘은 생물학 파트에 나왔던 내용들과 그에 관한 나의 생각들을 적어보겠다.


저자는 뇌과학에서 뇌를 ‘유전자가 생존을 위해 만든 기계‘(p.38) 라고 정의했었는데, 생물학에 나오는 유전자에 대해서도 이와 비슷한 느낌으로 인식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저자는 ‘유전자는 목적의식을 가진 행위 주체가 아니‘(p.123)라고 말하는데 이로부터 파생된 것이 ‘삶의 의미‘와 관련된 얘기다.

뇌과학에서 말하는 뇌와 지금 여기 생물학에서 언급하고 있는 유전자 모두 과학의 관점에서는 그냥 물리적 실체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닌 것이다. 다시 말해 뇌과학적으로든 생물학적으로든 이들(뇌와 유전자)에게 주어진 어떤 철학적이라고 할 수 있는 삶의 의미라는 것은 애초에 없다는 것이다. 저자는 이러한 생각에 기반하여 결국 삶의 의미라는 것은 과학에서 찾을 수 없기에 개개인이 각자 알아서 찾아야 한다고 말한다.

독자인 나는 바로 이 지점에서 인문학이라는 것이 효용을 발휘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아니나 다를까 독자인 내가 이런 생각을 하기가 무섭게 저자도 삶의 의미를 찾기 위해 인문학을 소환해야 한다(p.127)고 말한다. 즉, 인문학이 각 사람의 어떤 철학적인 삶의 의미를 찾는데 유용할 수 있다는 말이다. 이는 과학이 말하기 힘든 부분을 보완하는 보완재 성격으로 인문학을 바라볼 수 있다는 얘기도 된다. 이 부분을 통해 인문학의 쓸모 혹은 유용성에 대해 한 층 더 깊이있게 이해할 수 있어서 좋았다.

본문을 읽으면서 과학과 인문학이 서로 협력해야 한다는 것을 잘 정리해서 표현했다고 생각한 문장을 적어보면 다음과 같다.

우리는 대단히 복잡하고 독특하게 발전한 생존기계다. 유전자가 명하는 본능에 따라 사는 데 만족하지 않는다. 존재의 의미를 탐색하고 감정을 느끼며 도덕적 판단을 내린다.(p.128)

이 문장은 앞선 파트였던 뇌과학에서 언급했던 것과도 일맥상통하는 부분이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또한 생존 기계로 지칭되는 물질적 실체인 ‘나‘ 와 삶의 의미를 탐색하는 철학적 자아인 ‘나‘ , 이렇게 두 종류의 ‘나‘ 에 대해 잘 파악하고 알아가고자하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메시지를 독자들에게 주고 있는 것 같다는 느낌도 받을 수 있었다.


이어 읽다가 저자가 ‘생물학 이론으로 사회주의 체제가 실패한 이유를 설명할 수 있다‘(p.117)고 말하는 부분이 나오는데 개인적으로 꽤나 눈길을 끄는 얘기였다. 이유인즉, 저자의 정치 성향이 좌파에 가깝다는 걸 독자인 나를 포함한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는데 상대적으로 좌파적 성격을 많이 갖고 있다고 여겨지는 사회주의 체제의 한계점에 대해 가감없이 논했기 때문이었다.

저자는 본문에서 사회주의가 실패한 이유는 바로 마르크스가 인간의 본능을 너무나도 이상적인 것으로 가정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인간은 생물학적으로 이기적인 본능을 갖고 있는데 그것을 무시한 결과로 인해 사회주의가 무너졌다는 게 저자의 설명이었다.

솔직히 마르크스가 얘기했던 이상대로만 현실 사회가 구현되었다면 부자와 가난한 자의 구별없이 모두가 행복한 사회가 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마르크스는 인문학적 지식 수준에 비해 상대적으로 인간의 이기적인 본능에 대한 과학적(여기서는 생물학적)지식은 미처 고려하지 못했던 것 같다.

이렇게 사회주의가 실패하게 된 이유를 분석하면서 저자가 독자들에게 궁극적으로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바로 과학적인 사실들을 결코 무시하거나 간과해서는 안된다는 것이었다. 인간의 이기적인 본성에 역행하여 어떤 일을 추진한다면 잠깐은 자신의 의도대로 움직일 수 있을지 몰라도 결국에는 인간 본능에 따라 회귀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마르크스의 사회주의 실패 사례가 명백히 보여주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하여 본문에 나왔던 한 문장을 적어보면 다음과 같다.

‘국민 대다수가 ‘태만‘ 을 생존 전략으로 선택한 사회는 혁신과 발전을 이룰 수 없다. 소련은 미국이 아니라 인간의 생물학적 본성과 싸우다 졌다.‘ (p.143)

위에서 내가 주저리주저리 적은 내용들보다 어쩌면 p.143에 나온 이 문장이 훨씬 임팩트 있게 느껴지는 건 비단 나만의 느낌은 아닐듯 하다.


뒤이어서 개인적으로 흥미를 가지고 읽었던 사례 중 하나는 바로 국민건강보험공단에 있는 심사평가원 이야기였다. 이것은 저자가 과거 참여 정부 시절 보건복지부 장관을 역임하면서 경험했던 일들에 대해 서술한 것인데, 이 사례는 인간의 이기적인 본성을 독자들이 보다 실제적으로 느낄 수 있도록 돕는다.

이 사례를 간단히 요약해보자면 다음과 같다. 의료서비스 시장에는 환자로 대변되는 의료서비스의 소비자(수요자)와 의료서비스를 제공하는 의사(공급자) 이렇게 두 그룹이 있다. 여기서 공급자인 의사라는 역할의 본질은 아픈 환자의 병을 치료하는 것이지만, 결국 의사들의 뇌 또한 다른 사람들의 뇌와 동일하게 생존이라는 본업에 충실하다는 게 이 사례의 키포인트다. 이러한 생존 본능으로 인해 의사들은 가벼운 처방이 필요한 환자들에게 필요 이상으로 과잉진료를 하고 공단에 과다한 금액을 청구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의사들의 이기적인 본능으로 인해 과잉청구된 금액을 적정한 금액으로 바로잡고 이외의 추가적인 감시감독을 목적으로 설립된 기관이 바로 건강보험공단의 심사평가원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물론 사람이 하는 일이다보니 완벽하게 모든 것을 감시감독하는데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지만, 이러한 기관이 있음으로 해서 의사들의 과잉진료로 인한 부담금 과잉청구 같은 불합리한 일들을 조금이나마 줄일 수 있었다는 게 저자의 설명이다.

생존 본능과 관련하여 본문에 나온 임팩트 있는 문장 하나를 소개한다.

‘욕망이 이성보다, 이익이 도덕보다 힘이 세다.‘ (p.144)

개인적으로 이 문장과 관련된 과거의 기억들이 문득 떠올랐다. 과거에 나왔던 고전 소설들(예를 들어 세계 문학 같은 것들)을 읽다보면 등장 인물들이 이성에 입각해서 행동하기보다는 본능에 충실한 행동들을 하는 것들을 보게 되는데, 이로 인해 파생되는 각종 사건 사고가 끊이지 않았던 것들이 생각났다. 이러한 경험들을 통해 개인적으로 ‘본능을 이기는 이성은 없다‘ 라는 나름의 철학을 갖게 되었는데 이번에 읽게 된 이 건강보험공단 심사평가원 사례를 보면서 본능을 적절히 제어할 수 있는 사회시스템을 잘 만드는 것이 정말로 중요하다는 생각을 추가로 더 해볼 수 있게 되었다. 또한 이런 사회 시스템을 만드는 것도 결국 본능에 대한 과학적 지식이 없이는 불완전할 수 밖에 없다는 것도 덤으로 생각해볼 수 있었다. 문득 이런 말이 생각 났다. ‘아는 것이 힘이다.‘ 과학이든 인문학이든 많이 알면 알수록 도움이 될 거라는 말이다. 여러모로 생각의 폭을 넓힐 수 있게 도움을 주신 저자께 감사드린다.


생물학 파트 관련 포스팅은 이 정도로 마무리하고 다음 포스팅에선 화학 파트에 대해 리뷰해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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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유야 다양하겠지만 일반적으로 문과 출신 사람들에게 과학이라는 분야는 뭔가 나와는 거리가 먼 분야 혹은 나랑은 관련없는 분야라고 생각하는 분들이 많을거라고 본다. 지금 이 리뷰를 쓰고 있는 나 또한 그랬다. 중고등학교 시절을 되돌아보면 여타 다른 과목들과는 다르게 과학은 과목자체에 대한 어떤 호기심이나 탐구심보다는 그저 시험을 봐야하니까 그리고 전체 평균점수를 깎아 먹지 않기 위해 공부해야 하는 정도로만 가볍게 생각했던 것 같다. 그래서 나에게 과학이라는 과목은 그저 시험 때만 바짝 외웠다가 시험 끝나면 머릿속에서 다 휘발되고 사라지는 그런 과목이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굉장히 바보같고 어리석은 생각과 태도였지만 그 당시에는 내가 우주에 갈 일도 없는데 왜 우주에 대해 알아야 하며, 눈에 보이지도 않는 주기율표의 원소들은 도대체 왜 외워야 하는지 그리고 각종 물리공식들은 실생활에서 과연 필요가 있긴 한건가 하는 회의감, 마지막으로 생물학 용어들은 왜 그리 난해하게만 느껴지는지 등등 진짜 과학의 세부분야들에 대해 필요성과 흥미를 거의 느끼지 못했던 게 과거의 나였다. 한마디로 그냥 바보 중의 바보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다. 그래서 지금도 중학교에서 과학고로 진학하는 과학에 재능이 있는 똑똑한 학생들을 보면 참으로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아무튼 이렇게 과학에 흥미를 느끼지 못했던 나 였는데, 성인이 되고 시간이 지나서 이런저런 책들을 읽다가 우연히 지난 5월경에《최재천의 곤충사회》라는 책을 읽고 과학 분야에 대한 호기심이 조금씩 샘솟아서 연관된 책을 찾다가 알게 되어 읽게 된 책이 바로《문과 남자의 과학공부》다.


이 책이 다른 과학 책들과 다른 특이한 점이 있다면 바로 저자가 문과 출신이라는 점을 꼽을 수 있다. 여타의 과학 교양서들은 과학 분야에 일가견이 있는 이과 출신의 과학 전공자들이 저자인 경우들이 많은데, 이 책은 저자가 문과 출신이다보니 일반적으로 과학에 익숙하지 않은 문과 출신의 독자들의 입장을 고려하여 쓰였다는 느낌을 받았다. 이 느낌은 전혀 근거없는 느낌이 아니다. 저자는 책의 말미에 과학 교양서들을 닥치는대로 읽고 공부하며 자신이 느끼거나 생각했던 것들을 서술하면서 문과 출신 사람들이 과학을 접하기 좋은 순서대로 책의 내용을 배치하였다고 말한다.

목차를 보면 일반인들에게 상대적으로 거부감이 덜한 뇌과학부터 시작하여 여기서 파생되는 생물학, 생물학을 이해하기 위한 화학, 화학을 이해하기 위한 물리학, 마지막에는 우주의 언어로 대변되는 수학의 순서로 구성되어 있는데, 이를 통해 상대적으로 쉽게 접근할 수 있는 것부터 조금씩 호기심을 심화시키는 형태로 목차를 구성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책의 말미에 나왔던 얘기를 좀 더 하자면 저자는 이 책이 철저히 문과 출신 독자들을 주요 타겟으로 했음을 밝히는데, 자신이 본문에 썼던 내용들 중에 이과출신들이 보면 오류라고 생각할만한 것들이 있을까 두렵다는 고백도 한다. 솔직히 문과 사람인 나의 입장에서는 저자가 본문에 이해하기 쉽게 풀어서 설명해준 각종 과학지식들만 소화하는 것도 결코 쉽지 않겠다고 생각했었는데, 간혹 과학에 대한 배경지식이 비교적 풍부하신 분들이 이 책을 리뷰한 글들을 보다보면 자신이 이미 거의 다 알고 있는 것들이 나와서 이 책 내용의 깊이가 얕다는 식으로 말하는 것들을 보며 과알못(과학을 알지 못하는 사람)인 나같은 사람과는 달리 과학에 관심있고 깊이가 어느정도 있는 사람들도 꽤나 많다는 것을 간접적으로나마 느낄 수 있었다.

앞서 저자는 이 책을 문과 출신 사람들을 주요 독자층으로 설정하고 썼다는 얘기를 했었는데 혹여나 저자는 딱히 원치는 않지만 만약 이과출신의 독자들 중에 일반 대중들을 상대로 과학 교양서를 쓰는 분들이 있다면 앞으로 책을 쓸 때 과학을 잘 모르는 독자들의 수준을 가늠하는 지표로 이 책을 활용해주었으면 하는 바램도 덧붙인다.


이런저런 얘기들이 길었고 본격적으로 이 책을 읽으며 독자인 내가 느꼈던 내용들 중 핵심적인 것들 위주로 리뷰를 시작해보겠다.

가장 먼저 저자는 과학공부를 하면서 자신이 오랫동안 공부해왔던 인문학의 토대가 과학이 되어야 한다는 신념이 생겼다고 고백한다. 저자는 자아를 두가지로 분리해서 생각하는 모습을 보여주는데, 하나는 물질로 존재하는 ‘나‘ , 다른 하나는 철학적인 생각을 하는 ‘나‘ 이다. 전자의 ‘나‘는 과학의 영역이고, 후자의 ‘나‘는 인문학의 영역이다. 저자는 이러한 생각에 기반하여 철학적인 생각을 하는 ‘나‘에 대해 생각하기에 앞서 물질로 존재하는 ‘나‘ 가 무엇으로 이루어져 있는지를 아는 것이 필요하다고 보는 듯했다. 독자인 나는 이것을 물질로 이루어진 외형이 없는 상태에서 생각이라는 것이 툭 튀어나올 수 없기 때문이라고 이해하였는데, 저자께서도 이러한 내 생각에 동의하실지 문득 궁금해졌다.

이러한 생각들이 맞고 틀리고를 떠나서 이러한 것에 대해 생각한다는 거 자체가 굉장히 심오한 영역을 다루는 것처럼 느껴졌다. 읽으면서 때론 머리가 지끈지끈해지기도 했는데 여기서 어떤 의미를 찾아보자면 이 책을 읽기 전에는 전혀 생각해보지 못했던 것들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이다. 아예 이런 생각조차 해보지 못하는 사람들도 부지기수일텐데, 생각의 폭을 조금이라도 확장시켜보는 시도를 해봤다는 것에 의미를 두고 싶었다.

저자는 ‘공부는 인생에 의미를 부여하기 위해 인간과 사회와 생명과 우주를 이해하는 일이다. 공부를 온전하게 하려면 당연히 과학을 알아야 한다‘(p.8) 라는 말을 하는데, 지금 이 글을 쓰는 나를 포함한 문과 출신들의 경우 앞에 나온 두 가지인 인간과 사회를 이해하는 것에는 익숙할지 몰라도 뒤에 나온 두 가지인 생명과 우주를 이해하는데는 상대적으로 소홀한 경우가 많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과학을 공부한다면 뒤의 두 가지인 생명과 우주를 이해하는 시각까지 갖추게 되어 세상을 바라보고 이해하는 눈이 더 크게 확장될 수 있겠다는 기대감이 들게 하는 부분이었다.

또한 ‘먹는 것은 몸이 되고 읽는 것은 생각이 된다‘(p.8) 는 문장도 나오는데, 지극히 문과적인 입장에서 봤을 때 나를 이루는 것이 단지 어떤 생각이나 관념만 있는 것이 아니라 어떤 물리적인 몸뚱아리(?)도 있다는 것을 자각할 수 있게 해준 문장이었다. 문과 출신이라면 상대적으로 어떤 물리적인 실체보다는 관념적인 철학 같은 것에 집중할 때가 많은데, 본문에 나온 이 문장을 곱씹어 읽으면서 인문학과 과학이 따로 별개의 것으로 나뉘어 있는 것이 아니라 어느 하나도 소홀히 할 수 없이 ‘나‘라는 실체를 구성하고 있는 중요한 두 축 혹은 두 날개라는 생각이 들었다.


본문을 읽다보면 저자가 읽었던 과학 교양서 중 리처드 파인만이 쓴 책에 나왔던 용어가 하나 나오는데 그것은 바로 ‘거만한 바보‘(p.18) 라는 말이었다. 독자에 따라 이를 다양하게 해석할 수 있겠지만, 내가 느끼기에 이 말은 인문학과 과학 중에 어느 한 쪽은 정말 심도있게 알지만 다른 한 쪽 분야에는 무지한 사람을 지칭하는 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느 한 분야에 정통한 관계로 ‘야, 나 이정도 알아.‘ 같은 태도를 보이지만 자신이 아는 분야 외의 다른 분야에 대해서는 무지하면서도 마치 자신이 세상의 모든 지식을 섭렵한 사람처럼 행동하는 사람을 지칭하는 사람을 가리키는 말인 것이다.

간단한 예를 들자면 내가 공부 좀 했다고 혹은 어떤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냈다고 거들먹거리는 모든 인간들을 지칭하는 말인 것이다. 뭐 딱히 내세울 것도 없긴하지만 독자인 나는 살면서 이런 적이 없었는지 한 번쯤 스스로를 돌아보고 만약 있었다면 반성하고 겸손한 태도를 지녀야 겠다는 생각을 해보게 되었다.

이어지는 내용에서 저자는 인문학이란 자기 자신을 이해하려는 욕망의 산물(p.27)이라는 말과 함께 이것이 우리 자신을 이해하는데 아무 도움이 되지 않는 때가 인문학의 위기의 때라는 점을 지적하는데, 과학이 최신 지식들을 지속적으로 업데이트하는 것에 비해 인문학은 자신들이 쳐놓은 울타리 안에 갇힌채 안주하는 경우가 많다는 점을 지적하며 새로운 사실을 지속적으로 찾아내려는 과학과 소통하고 교류하려는 노력만이 인문학의 위기를 극복할 수 있다고 역설한다(p.29).

이 부분을 보면서 어떤 학문이라도 화석처럼 굳어지기보다는 역동적으로 살아움직이는 생명체처럼 지속적으로 최신 지식들을 업데이트하면서 진화해나가려는 노력이 얼마나 중요한지 생각해볼 수 있는 시간이었다. 시간이 지나도 변하지 않는 건 없다. 모든 건 다 변한다. 변화의 흐름에 역행하지 말고 그 흐름에 올라타야 한다는 것을 저자가 독자들에게 시사하는 것처럼 느껴지는 부분이었다.


이어지는 내용에서 저자는 ‘내가 무엇인지 모르는데 누구인지 어찌 알겠느냐‘(p.30) 는 말을 하는데, 이는 앞서 언급했던 ‘먹는 것은 몸이 되고 읽는 것은 생각이 된다‘(p.8) 는 문장과도 어느정도 관련이 있다고 느껴졌다. 저자는 인문학의 익숙한 질문 형식은 ‘나는 누구인가‘ 인 반면 과학의 질문 형식은 ‘나는 무엇인가‘라는 말을 한다. p.30에 나온 문장을 좀 더 알기 쉽게 풀어보자면 ‘내가 물리적으로 무엇으로 구성되어있는지를 알고난 뒤에 내가 누구인지, 즉 인문학에서 말하는 철학적 자아가 누구인지를 알아야 한다는 얘기다. 이와 관련하여 본문에 나온 문장 하나를 적어보면 다음과 같다.

‘정신은 물질이 아니지만 물질이 없으면 정신도 존재하지 않는다.‘(p.32)

어쨌든 이 얘기를 통해 과학적인 시각과 인문학적인 시각 두 가지 모두가 있어야 ‘나‘라는 사람의 실체를 좀 더 깊이있게 이해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었다. 이는 과학 공부의 필요성을 느끼게 되었다는 말로도 바꿔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동안 ‘나 자신‘에 대해 반쪽만 알고 나머지 반쪽은 전혀 모른채 살아왔다는 생각에 ‘내 자신‘에게 괜시리 미안한 감정이 들었다.


뒤이어 읽다가 문득 자존감이 높아지게 만드는 문장 하나가 나왔는데 간단히 적어보면 다음과 같다.

‘내 몸과 똑같은 배열을 가진 원자집합은 우주 어디에도 없다‘(p.32)

누군가에겐 별 거 아닌 문장처럼 느껴졌을수도 있지만 독자인 나는 이 문장을 통해 넓디넓은 우주에서 고유한 존재가 바로 ‘나‘ 라는 사실을 다시금 자각하며 ‘나‘ 라는 사람이 소중한 존재라는 생각이 들었다. 단지 표현 방식이 문학적이기보다는 과학적이다보니 다소 딱딱하게 느껴질 수도 있겠지만 의미만 놓고 곰곰이 생각해본다면 굉장히 좋은 문장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또한 우주에 존재하는 모든 물질이 통일성이 있음을 깨닫게 해주는 문장들도 있는데 몇 가지만 적어보면 다음과 같다.

‘내 몸을 이루는 물질은 별과 행성을 이루는 물질과 같다.‘(p.32)

‘지구 생물의 유전자는 모두 동일한 생물학 언어로 씌어있다.‘(p.32)

이 두 문장은 진화론에서 말하는 어떤 하나의 물체에서 모든 것이 진화했다는 일원론의 생각에 기반한 것으로 보여지는데, 우리 우주에 존재하는 모든 만물들이 겉으로 드러나는 형태는 각기 다를 수 있어도 속에 내재된 근원의 물질에는 공통점이 있다는 것을 통해 우주를 뜻하는 단어 중 하나인 universe에서 파생된 형용사인 universal이 ‘보편적인‘ , ‘일반적인‘ 이라는 뜻으로 쓰이는 이유에 대해서도 잠시나마 생각해볼 수 있었다.


저자는 이어지는 내용에서 ‘과학은 인문학보다 힘이 세다.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물질의 증거를 찾아내기 때문이다. 그 덕분에 우리는 우리 자신과 세계를 있는 그대로 볼 수 있게 되었다‘(p.32) 는 말을 하는데, 이는 뒤에서도 언급하겠지만 인문학의 성격이 다소 주관적인 반면 과학은 지극히 사실에 입각하여 말하는 객관적인 성격을 갖고 있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또한 어떤 추론이나 추측보다는 명백하고 확실하게 드러난 증거가 더 강력한 힘을 발휘한다는 점을 생각해본다면, 설령 인문학자라 하더라도 과학이 인문학보다 힘이 세다는 사실을 부정하기는 어려워보인다.

하지만 저자가 인문학자여서 그런지는 몰라도 순순히 물러서지만은 않는 듯하다. 저자는 과학이 객관성이라는 측면에서 힘이 센 것은 맞지만, ‘원자는 생각하지 않지만 원자의 집합인 인간은 생각한다‘는 점을 근거로 인간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과학과 인문학 둘 다 필요하다고 말한다(p.37). 이는 마치 서로가 서로의 부족한 점을 채워주는 ‘상호 보완적인 관계‘라는 말이 생각나게 한다. 어느 한 쪽이 힘이 쎄더라도 힘이 약한 쪽도 결코 불필요한 것이 아니라는 점에서 인간 관계의 모습과 과학과 인문학 간의 관계의 모습이 일맥상통하는 측면이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어지는 내용에서 저자는 과학자들의 연구결과에 근거하여 인간의 뇌를 ‘유전자가 생존을 위해 만든 기계‘(p.38)라고 정의한다. 이 정의에 따르면 뇌는 단지 기계일뿐 이 기계가 스스로를 이해하는 것은 전혀 다른 차원의 문제라고 말한다.

이는 결국 앞에서 언급했던 과학에서 말하는 물리적인 ‘나‘ 와 인문학에서 말하는 철학적 사고를 하는 ‘나‘ 를 명확히 구분해야 한다는 말로 귀결된다고도 볼 수 있다. 또한 과학의 사실을 받아들이고 과학의 이론을 활용하면 인간과 사회를 더 정확하게 이해할 수 있다(p.39)는 얘기로도 확장해서 생각해 볼 수도 있는 것이었다.


뒤이어 저자는 앞서 언급했던 과학적 질문인 ‘나는 무엇인가‘ 라는 질문에 대한 답으로 ‘나는 뇌다‘ 라고 말한다. 저자는 이 대답을 사실을 기술한 문장이 아닌 자아의 거처를 드러내는 문학적 표현(p.47)이라고 말하는데, 그 이유는 뇌를 떠나서는 철학적 자아가 존재할 수 없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어서(p.48) 였다고 말한다. 또한 철학적 자아의 모든 감정과 생각은 뇌가 작동해서 생긴다는 말도 덧붙인다.

이러한 설명을 통해 독자인 나는 물질인 뇌와 물질이 아닌 철학적 자아가 서로 얽히고 설켜서 나온 대답인 ‘나는 뇌다‘ 라는 말이 너무나도 가슴 깊이 와닿게 느껴졌다. 얼핏 보면 단순한 대답처럼 보이지만 그 내면의 의미를 자세히 들여다보고 생각해보면 결코 단순한 의미가 아니라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이어서 뇌와 관련된 다소 디테일한 내용들이 쭉 나오는데 보다 자세한 내용들이 궁금하신 분들에게는 저자가 본문에 정리해놓은 뇌와 관련된 내용들이 많은 도움이 될 것이라 생각한다. 직접 책을 구해서 읽어 보시길 추천드린다.

추가로 저자가 서울대 경제학과 출신이라 그랬는지는 몰라도 경제학에 나오는 한계효용체감의 법칙이라든지 한계생산력분배이론 등과 같은 것들을 사용하여 내용을 설명하는 부분들도 있었는데, 개인적으로 인상적이었던 것은 뇌에 있는 신경세포의 성질이 경제학에 나오는 한계효용체감의 법칙과 유사하다는 사실이었다. 이러한 것은 문과출신(경제학과 출신)인 저자만이 가지고 있는 독특한 이력으로 인해 추가로 생각해볼 수 있는 것이었기에 참으로 신선하게 느껴졌다.


뒤에 이어지는 내용 중에서 한 가지 흥미로웠던 것으로 과학자와 인문학자의 차이점을 비교하는 부분이 있었다. 먼저 과학자는 자신이 모르면 모른다고 하지만 인문학자는 잘 몰라도 일단 아는 것처럼 둘러댄다는 것이었다(p.68). 뭐든지 생각하기 나름이겠지만 저자는 이렇게 둘러대는 것도 인문학의 매력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독자인 나는 이러한 비교를 보면서 위에서 언급했던 과학과 인문학의 특성들이 문득 생각났다. 과학은 객관적인 사실에 근거하는 것이기에 확실하지 않은 것에 대해서는 모른다는 말을 할 수 밖에 없는 것인 반면에, 인문학은 주관적인 생각에 근거해서 말하는 것이기에 잘 몰라도 일단 그럴싸하게만 떠들어놓고 주관적인 생각이라고 덧붙이면 그만인 것이다. 또한 그 주관적인 생각이 논리적으로만 들어맞는다면 다른 사람으로부터 더 이상 방해받을 일도 없을 것이다.


이후에 칸트의 불가지론, 거울신경세포 등을 비롯한 각종 다양한 과학 지식들을 접하고 배울 수 있었는데, 낯설게만 느껴졌던 과학 개념이나 관련 지식들을 저자가 나같은 일반인들에게 잘 풀어서 설명해 주어서 해당 내용을 이해하기가 조금이나마 수월했다. 마치 저자가 공부했던 과학이라는 재료를 독자들이 먹기 좋게 제공한 ‘요리‘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고나 할까.

또한 저자가 인문학자이다보니 맹자, 묵가, 양주학파 등 다양한 철학 사상에 대해서도 함께 소개되면서 과학의 내용과 비교분석해볼 수 있었는데, 이를 보면서 독자인 나는 문과 출신 독자들이 과학에 접근하는 것이 조금이라도 수월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저자가 부단히 노력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이를 그냥 지극히 주관적인 느낌이라고 볼 수도 있겠지만, 맨 앞에서 저자가 문과인들을 주요 독자층으로 겨냥하면서 비교적 접근하기 쉬운 뇌과학 부터 접근했다는 얘기를 생각해본다면 그렇게 딱히 근거없는 느낌도 아니라고 생각한다.


뒤이어 읽다가 ‘사람은 변한다‘ 라는 말과 함께 ‘전향‘ 이라는 단어가 나온다. 전향이라고 하면 ‘무슨 사상을 전향했다‘ 뭐 이런 말들이 머릿속에 떠오르는데 여기서 저자는 이러한 전향이라는 행동을 인문학과 과학 이렇게 두 가지 측면으로 나눠서 분석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먼저 인문학에서는 사람이 어떤 행동을 하는 것을 ‘자유의지‘를 가지고 하는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과학에서는 이러한 ‘자유의지‘보다는 뇌의 물리적 변화나 호르몬 분비의 불균형으로 인해 발생되는 것(p.94)이라고 생각한다. 과학적인 용어를 사용하여 좀 더 설명하자면 뇌의 시냅스 연결망과 연결패턴의 변화로 생긴 현상(p.96)을 전향이라고 볼 수 있다는 것인데, 이 부분을 읽으면서 독자인 나는 인문학과 과학이 세상을 보는 관점 혹은 패러다임이 아예 뿌리부터 다른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았다. 과학이 참으로 객관적인 학문이라고 한다면 인문학은 객관적이라기보다는 추상적인 것에 좀 더 가깝다고나 할까. 다만 여기서 한가지 오해하지 않았으면 하는 것은 객관적이지 않다고 해서 쓸모가 없다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그냥 과학과 인문학의 특성이 그렇다는 것일뿐 어느 것이 더 좋고 다른 것은 더 안 좋고 이런 차원의 문제는 아니라는 것이다. 다시 본론으로 돌아와서 과학과 인문학의 성격은 앞에서 언급했던 내용들과도 일맥상통하는 것이기도 하다. 하지만 앞선 내용들에선 이러한 것들을 그냥 머리로만 이해했다면 지금 이 ‘전향‘ 이라는 현상에 대해 생각해보면서는 과학과 인문학의 차이를 보다 명확히 마음속 깊이, 뼛속까지 이해할 수 있었던 것 같다.

추가로 위에서 언급했던 뇌의 시냅스 연결망과 연결패턴의 변화를 만들어내는 신경전달물질 중 하나인 도파민에 대한 내용들도 본문에서 만나볼 수 있었는데, 이 도파민으로도 인간의 행동을 일정부분 설명할 수 있음을 보면서 과학의 힘이라는 게 과연 그 한계가 어디까지인지 감히 가늠조차 할 수 없을 정도로 감탄을 연발할 수 밖에 없었다. 특별히 최근 커다란 사회문제로 번지고 있는 마약 같은 것도 결국에는 도파민 분비에 혼란을 일으켜 야기되는 문제이기에 과학이 이러한 사회문제를 해결하는데도 상당부분 영향력을 끼칠 수 있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또한 마약이외에도 사람들의 소비행동패턴 등을 연구하는데도 도움이 된다는 것 등 우리 사회 곳곳에 과학으로 설명할 수 있는 것들이 여기저기 산재해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다음에 이어지는 글 중에 ‘뉴런은 서로 연결함으로써 사람의 생각과 행동을 만들어내고, 사람의 생각과 행동은 거꾸로 뉴런의 연결패턴에 영향을 준다‘(p.99) 는 말이 나온다. 이 말을 좀 더 쉽게 풀어 쓰자면 자아가 뇌에 그저 깃들어 있는 게 아니라 뇌를 형성하고 바꾼다(p.99)는 말인데, 이 글을 보면서 독자인 나는 우리가 무엇을 생각하느냐가 굉장히 중요하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단지 과학에서 말하는 신경전달물질이 우리의 자아에 일방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것이 아니라 거꾸로우리의 생각도 신경전달물질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되자 왜 그토록 많은 자기계발서 같은 것들에서 긍정적인 생각이 중요하다고 하는지 비로소 이해가 되었다. 긍정적인 생각을 심어야 신경전달물질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이런 말을 직접적으로 하는 자기계발서가 얼마나 있는지는 다 알 수 없지만 독자인 내가 그동안 막연하게 추상적으로만 생각했던 것의 과학적 근거를 알고나자 그동안 알고 있던 생각들에 대한 믿음이 좀 더 확고해졌다.

난 개인적으로 사람들이 어떤 행동을 해야하는 이유가 많으면 많을 수록 그 행동을 하게 될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하는 사람인데, 이 책을 통해 과학에 대해 조금씩 알아가다보니 내가 하는 어떤 행동이나 생각들에 합당한 이유를 찾을 수 있는 범위가 넓어진다는 느낌을 받는다. 최재천 교수의 표현을 잠시 빌리자면 ‘지식의 영토‘ 가 확장됨에 따라 넓어지는 지식들과 파생되는 생각들이 내가하는 행동에 대한 이유를 찾는데 도움이 되는 것 같다.

이와 관련하여 저자는 데이터도 자아에 영향을 준다(p.97) 는 말과 함께 내 뇌의 뉴런이 순조롭게 다양한 연결망을 형성할 수 있도록 부지런히 책을 읽고 생각한다(p.100) 는 말도 덧붙인다. 이렇게 지속적으로 자신의 자아에 데이터를 공급함으로써 자아가 어리석어지는 것을 최대한 늦추고자 애쓰는 저자의 모습을 보며 저자가 과학 공부를 하면서 몸소 느꼈던 것들을 단지 깨닫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실제 행동을 통해 실천하며 살고 있다는 점이 참으로 멋지게 느껴졌다.

저자는 뇌과학 파트를 마무리하면서 언제가 될지는 정확히 알 수 없지만 나중에 자신의 행동이 변하게 되더라도 그것은 자유의지가 아닌 단지 뇌라는 하드웨어가 퇴화된 것이라 여겨달라(p.100) 는 말과 함께 인간을 바라보는 하나의 관점을 제시한다. 그것은 바로 어떤 인간도 무한 신뢰하거나 무한 불신하지 않게 되었다(p.101) 는 말이었다. 독자인 나는 저자의 이 말을 보면서 모든 것은 변한다는 것을 다시금 상기해볼 수 있었다. 또한 뇌라는 하드웨어의 퇴화를 최대한 늦추기 위해서 무엇을 해야할지에 대해서도 생각해볼 수 있었는데, 일단은 악과 누추함을 멀리하고 선과 아름다움에 다가서려 노력하면서, 내게 주어진 시간을 살아내자(p.101) 는 저자의 말을 참고해볼 필요가 있지 않나 싶다.

일단 이 책에 대한 전반적인 얘기와 뇌과학 파트를 읽으며 느꼈던 생각들을 쭉 적어봤는데, 생각보다 양이 너무 길어져서 이어지는 생물학 파트부터는 다음 포스팅에서 다뤄보도록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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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간의 미래 - 코로나가 가속화시킨 공간 변화
유현준 지음 / 을유문화사 / 202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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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의 전작들에서 접했던 내용들이 일부 겹친다는 느낌도 들었지만 전체적으로 이 책 제목에 나온 단어인 ‘미래‘ 라는 키워드에 걸맞게 저자가 생각하는 미래의 공간들에 대해 살펴볼 수 있는 시간이었다. 코로나19로 촉발된 변화가 우리 사회를 지탱하는 새로운 뼈대를 만드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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