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책들을 읽느라 하루이틀 계속 밀리다보니 이 책은 거의 1달만에 다시 읽는다. 오늘 읽기 시작한 부분에서 화자인 김인영은 임의선이라는 인물에 대한 얘기를 이어나간다. 한 달 전 포스팅에서 잠시 언급하기도 했었는데, 이 소설 속에 나오는 임의선이라는 인물은 정신이 온전치 못한, 정신이 오락가락하는 미스테리한 캐릭터로 나온다. 한 번은 무단으로 가출을 해서 행방불명된 적도 있었고, 어느 날은 옷을 입지 않은 채 알몸으로 번화가를 질주하는 등 일반적인 상식으로는 도무지 납득하기 힘든 행동을 하는 사람이다.
오늘 처음 밑줄친 부분은 화자인 김인영이 임의선에 대해 생각하면서 머릿속으로 생각한 것인데, 아직 뒷 부분을 읽지 못했기에 앞으로 어떤 내용들이 나올지는 정확히 알 수 없지만, 이 문장에 근거하여 독자인 내 나름대로 이후에 나올 내용을 예상해보자면 임의선이라는 인물이 지금은 좀 이상한 캐릭터로 나오지만 향후에 어떤 결정적인 순간에 돌변해서 좋은 쪽이든 안 좋은 쪽이든 스토리 상에서 큰 영향력을 줄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았다. 이런 나의 예상대로 이야기가 전개될지 아닐지 가능성은 반반이지만 설령 내 예측이 틀릴지라도 이런 식으로 예측하면서 소설을 읽어나가는 게 몰입도를 높이는데는 확실히 도움이 되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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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이어서는 화자인 인영과 명윤 그리고 황곡시에 거주하는 장종욱 간의 대화가 나온다. 인영과 명윤은 잡지사에 소속된 자들로 취재차 황곡시를 찾았는데, 거기서 장종욱을 만나 인터뷰를 한다. 여기서 이루 다 말하기 힘들정도로 장종욱은 기상천외하고도 다양한 모습들을 보여주는데, 취재하는 인영과 명윤의 입장에서는 일관성없는 장종욱의 모습을 속으론 못마땅하게 생각하면서도 취재를 해야하는 자신들의 업무 특성상 인내심을 가지고 장종욱과의 대화를 이어나간다.

한 사람의 정신이 폭발했을 때 그 사건은 얼마만한 변화를 일으킬 수 있는 것일까. - P201
"지금 가자. 기다린 게 잘못이었어." - P205
하필 여기로 온 이유가 뭐요? 솔직하게 말해보시오. 뭐가 재미있을 것 같아서 온 거요? 잡지라는 거, 그거 뭔가 읽는 놈들을 재미있게 해보겠다는 거 아니오? - P210
밝고 건강해야만 했다. 4월호니까. - P214
"그래가지고 남자라고나 할 수 있겠소?" - P216
"내가 그런 말에 영향을 받을 거라고 생각했다면 오산입니다………… 자존심에 상처라도 받은 듯이 울컥 뛰어들기를 바라고 말했겠지만, 나는 저런 곳에 들어가지 않습니다. 나한테는 자존심이라는 게 없으니까요." - P217
"......원래 겁쟁이들은 이유들이 많은 법이지." - P217
"정확히 잘 보셨습니다. 나는 이유가 많은 비겁잡니다." - P217
세상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던지는 인사말이나 타인에 대한 최소한의 배려마저도 힘겨워 보이고 어울리지 않게 느껴지는 이들이 있다. - P229
"당신 같으면, 죽을 만큼 부려먹다가 필요 없게 되었으니 아무런 대책 없이 쫓아내버린다면 어떻겠소." - P231
이 도시는 어둡고 고요하고 검었으며, 시가지를 제외하면 거의 모든 지역들이 황폐하게 버려져 있었다. 마치 다른 세계에 들어온 것 같았다. 내가 살았던 공간에서 버림받은 것들이 모두 모여 이루어진 다른 공간 같았다. 아니, 땅 위 세계의 반대편으로, 지구의 핵을 향해 컴컴한 그림자처럼 드리워진 도시 같았다. - P232
날씨 탓이었겠지만, 마치 땅속에 걸린 인공의 태양을 바라보고 있는 듯이 이 도시의 공기는 어둑어둑하고 답답했다. 마치 두꺼운 땅을 비집고 어디론가 나가야 할 것 같았다. 그렇게 나가고 나면 진짜 세계를 만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러나 사실 이곳은, 내가 자란 도시보다 오히려 하늘에 가까운 곳이었다. - P232
만일 명윤의 말대로 이곳이 의선의 고향이라면, 의선이 애써 어린 시절에 대한 화제를 피하곤 하였던 것은 이곳을 기억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일까. - P233
그냥...... 잊고 지내요. 잘 생각하지 않아요. - P233
명윤의 말대로 나는 지독히 차가운 인간인지도 몰랐다. 어쩌면 내가 원하는 것은 의선을 찾지 못하는 것이었는지도 몰랐다. 그렇다면 나는 여기까지 와서 찾아다녔다는 위안을 얻기 위해, 최선을 다했으므로 이제 괜찮다는 면죄부를 스스로에게 주기 위해서 여기까지 온 것일까. - P237
"뭐, 실을 만한 사람이 아니다 싶으면 싣지 마시오." 장은 숨을 멈추었다. 그의 얼굴에서 내가 읽은 것은 환멸이라기보다는 견고한 외로움이었다. - P239
어쨌든, 이리저리 변죽만 근사하게 울려대도 기사라는 것은 메꾸어질 수 있다. - P240
취재원과 헤어질 때마다 다시 만나자고 말하지만 실제로 다시 만나게 되는 일은 거의 없었다. - P241
깊은 땅속, 암반들이 뒤틀리거나 쪼개어져서 생긴 좁다란 틈을 따라 기어다니며 사는 짐승이랍니다. 흩어져 있는 놈들을 헤아려보자면 수천 마리나 되지만, 사방이 두꺼운 바위에 막혀 있는 탓에 한 번도 자신들의 종족을 만난 적이 없기 때문에 저마다 자신을 외돌토리로 여긴다지요. - P243
생김새나 몸집은 사슴 모양인데, 녹슨 바늘 뭉치 같은 검은 털들이 매끄러운 가죽을 뚫고 나와 정수리부터 네 발끝까지를 뒤덮고 있답니다. 두 눈은 굶주린 범처럼 형형하고, 바윗돌을 씹어먹는 것으로 허기를 이기느라 이빨은 늑대 송곳니처럼 예리하고 단단하답니다. - P243
이 짐승의 몸에서 유일하게 아름답다고 할 수 있는 부분은 번쩍이는 뿔입니다. 크기 때문에 얼핏 보아서는 무시무시하다는 인상부터 주는 그 뿔은, 그러나 꼬아놓은 머리채처럼 부드러운 곡선을 이루며 이 짐승이 걸어가는 길 앞을 음음하게 밝혀준답니다. - P244
이 흉측한 짐승을 직접 만날 기회가 있는 사람들은 광부들뿐입니다. 채굴 작업을 하는 광부들이 때로 이 짐승과 맞닥뜨리는데, 그때마다 이 짐승, 평생에 단 한 번만이라도 하늘을 보는 것이 소원인 이놈은 바깥으로 나가는 길을 가르쳐달라는 부탁을 한다지요. 잡아먹히는 것이나 아닌가 떨고 있던 광부들은 조건을 내건답니다. 네 번쩍이는 뿔을 자르게 해다오. 그러면 하늘을 볼 수 있게 해주마. - P244
짐승은 잠시 망설이다가 이마를 앞으로 내밉니다. 땀을 뻘뻘 흘리며 짐승의 단단하고 아름다운 뿔을 잘라낸 광부들은 몇 발짝쯤 짐승을 데리고 가다가 다시 조건을 내겁니다. 네 날카로운 이빨을 자르게 해다오. 그러면 하늘을 볼 수 있도록 해주마. 짐승은 이번에는 그럴 수 없다고 버팁니다. 하지만 광부들은 여럿이고 짐승은 혼자 몸이니 배겨낼 수가 있나요. 한 사람은 뿔이 뭉툭하게 잘라진 짐승의 이마를 누르고, 다른 한 사람은 흑탄처럼 시커먼 짐승의 뒷다리를 붙잡고, 남은 사람들이 짐승의 뾰죽한 이빨을 뽑아냅니다. - P245
거무죽죽한 피가 짐승의 입이며 턱이며 이마에서 흘러넘치는 것을 보면서, 광부들은 지상으로 통하는 넓은 갱도를 향해 필사적인 낮은 포복으로 달아납니다.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짐승의 뿔이며 이빨들은 달아나는 길에 아무렇게나 던져버리고, 짐승이 따라나오지 못하도록 재빨리 나오는 통로를 막아버립니다. - P245
......그때부터 이 짐승은 아무것도 먹지 못하고 아무것도 보지 못하는 채 컴컴한 암반 사이를 느릿느릿 기어다니며 흐느껴 웁니다. 마지막으로 숨이 넘어갈 때쯤 되면 이 짐승의 살과 뼈는 검은 피와 눈물로 다 빠져나가 들쥐 새끼만하게 쭈그러들어 있다지요. - P2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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