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피렌체 아르노 강 남쪽 언덕 위에 자리 잡은 미켈란젤로 광장에 올라서면 울긋 불긋한 빛깔의 테라코타 지붕마다 꽃들이 만발한 듯 시가지 전체가 한 눈에 들어 온다.

꽃 피는 곳 ‘플로렌티아(Florentia)’라고 불렸던 도시 피렌체
천재 건축가 브루넬레스키가 1436년에 완공한 피렌체의 심장 같은 거대한 돔 성당 두오모 성당의 정식 이름은 꽃의 성모 마리아로 산타 마리아 델 피오레(Santa Maria del fiore)에서 왼쪽으로 방향을 틀면 아르노 강의 유서 깊은 다리 폰테 벡키오(Ponte Vecchio)를 지나가게 된다.

1274년 5월 1일 아버지를 따라 부유한 은행가 포르티나리의 저택에서 열리는 칼렌디마지오 축제에 갔다가 주인집의 여덟 살 난 딸 베아트리체를 보고는 그만 눈과 마음이 완전히 뒤집혀 버렸던 9살 소년 단테 알리기에리(Dante/Durante degli Alighieri, 1265 ~ 1321)
10년의 세월이 흘러 19세의 청년 단테는 폰테 벡키오 근처 강변로에서 자신의 마음을 사로잡았던 그 소녀 베아트리체와 마주친다.

천공의 뭇별들이 깨어서 망을 보는 긴긴 시간의 가운데서,
세 번째 시간이 거의 지났을 무렵에.
사랑의 신이 무심결에 말할 수 없을 정도로 끔찍한 모습을 하고 내게 나타났다.
그는 기쁨에 가득 찬 사람처럼 보였고 한 손에는 내 심장을 쥐고, 품에는 망사를 덮고 잠든 내 여인을 안고 있었다.
그녀를 깨운 후에 그는 곧장 그녀로 하여금
내 심장을 먹게 했다.
-단테의 '새로운 인생' 중에서
단테는 폰테 벡키오(Ponte Vecchio)다리에서 마주쳤던 그녀, 베아트리체를 본 그 날이 생애 두 번째이자 마지막이 되고 베아트리체는 24살의 나이에 세상을 떠난다.
집안에서 일찌감치 점찍어둔 부유한 도나티 가문의 딸과 결혼한 단테의 마음속에는 항상 베아트리체에 대한 그리움으로 가득 차있었다.
나를 거쳐 고통의 도시로 들어가고,
나를 거쳐 영원한 고통으로 들어가고,
나를 거쳐 길 잃은 무리 속에 들어가노라.
정의는 높으신 내 창조주를 움직여,
성스러운 힘과 최고의 지혜,
최초의 사랑이 나를 만드셨노라.
내 앞에 창조 된 것은 영원한 것들 뿐,
나는 영원히 지속되니,
여기 들어오는 너희들은 모든 희망을 버릴지어다.
-단테의 '신곡' 지옥 중에서
1300년대 유럽의 경제 문화 중심지로 막 부상하고 있었던 피렌체는 교황 지지파와 신성로마제국 황제 지지파로 분열되어 황제와 교황사이의 권력 다툼으로 인해 정치는 극도로 혼돈기에 빠져 버려 이 소용돌이에 휘말려 버린 단테는 1302년에 피렌체로부터 영구히 추방된다.

단테는 오랜 세월동안 곳곳을 떠돌아 다니며 자신의 영원한 사랑 베아트리체를 추억하면서 방대한 서사시 <희곡(Commedia/후대인들이 신곡이라 부름)>을 완성한다.
단테는 당대 지식인들만 사용했던 라틴어가 아닌 고향 피렌체의 생생한 구어체로 완성했다.
그의 작품은 그가 태어나고 자란 고향 땅 피렌체와 그 주변 토스카나 지방에서 널리 읽혀지다 서서히 이탈리아 반도의 표준어가 된다.

현재 이탈리아 사람이라면 누구나 학교에서 단테의 작품을 배우고 읽었을 정도로 성서만큼 널리 읽혀지고 있고 수 세기 동안 세계의 언어로 읽혀지고 있다.
여기 발신인의 이름과 주소 자리에 단테 알리기에리가는 대문자로 적혀진 편지 봉투를 받아든 사람이 있다.
[나는 편지를 잘 살펴보기 위해 들뜬 마음으로 방에 들어가 침대 가장자리에 걸터앉아 봉투를 열었다.
편지에 적힌 모든 단어의 충격이 지금도 여전히 마음속에 떠오른다.]
-줌파 라히리의 <단테 알리기에리> 중에서
열 일곱 살 때까지 누구와도 키스해 본 적이 없는 이에게 도착한 편지 <단테 알리기에리>
열렬한 구애 끝에 마침내 s라는 남자와 사귀게 된 친구의 절친인 그녀는 친구가 S와 첫 키스를 했던 그 장소, 그 순간을 생생하게 떠올릴 정도로 친구의 그 남자에 관해 잘 알고 있다.
'내 친구는 S의 입술이 자신의 입술에 닿는 것을 느꼈고, 그의 얼굴이 자신의 피부를 사포처럼 여기저기 문지르는 당혹스러운 충격을 느꼈다.'
친구의 사랑 이야기에 흠뻑 빠져들 정도로 그녀는 자신에게도 그런 사랑이 찾아오기를 기다렸다.
스무 살이 된 그녀는 죄책감이 뒤섞인 슬픔과 동경으로 가득 찬 러브레터를 읽고 있다.
'내가 자고 있는 동안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그 봉투를 우체통에 넣기 위해 도대체 몇 시간을 걸어왔을지 궁금했다. 그는 내 방을 추측하기 위해 집 창문 아래에서 몇 분 동안 머물렀을까?'
그 남자, 단테 알리기에리에게 이별 통보를 받은 그녀의 친구
'네가 모든 걸 망쳐놨어.'
어느 토요일 아침 한산한 캠퍼스에서 그를 만난다.
'너도 날 사랑하는 걸 알아.'
마침내 그녀는 그 남자, 단테 알리기에리와 키스를 한다.
[도망가듯 빠르게 지나가는 모든 시간을 당신의 시간처럼, 마지막 시간처럼 어떻게 살 것인지. 당신의 시간을 온 마음을 다해 어떻게 살 것인지 보여주십시오.]
남편과 별거 한지 7년 동안 자신이 태어난 미국과 이탈리아 로마를 오고 가는 삶을 살고 있는 그녀는 이제는 끝나버린 엄마와 아내로 살았던 그곳, 시어머니의 장례식이 열리고 있는 그 성당으로 향하고 있다.
시어머니의 장례식에 참석하기 위해 대서양을 건너 도착한 그녀는 장례식 복장으로 갈아 입고 이제는 끝나버린 엄마와 아내로 살았던 그곳에서 오랜 세월 동안 열어보지 않았던 옷장 문을 열고 장례식 복장으로 갈아 입는다.
단테 알리기에리의 사랑을 거절한 그녀는 졸업 후 이탈리아 로마로 건너가 단테 알리기에리의 <신곡>을 줄줄 입으로 읊어대는 남자와 사랑에 빠진다.
사랑에 빠지듯 이탈리아어를 배우고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은 그녀는 열정적으로 새로운 땅에서 새 삶의 터전을 다져나가면서 손 때가 묻어버린 것들을 버리기 시작한다.
처음엔 친구에게 받은 선물을 그리고 그 다음엔 자잘한 집안의 물건들을 버리고 구두를 버리고 옷가지를 버리고 시들어 죽어버린 화초까지 몽땅 버린다.
'어느 날 나보다 더 젊은 남자 때문에 나를 버릴지도 모르겠는데, 내가 당신을 사랑한 유일한 남자라는 법은 없잖아.'
단테 알리기에리의 편지를 받아 본 그녀의 지난 사랑의 상처, 친구를 배신하고 부모님의 뜻을 배신하고 그리고 단테 알리기에리의 사랑도 져버린 그녀는 이제 이탈리아어로 단테의 글을 읽고 자신의 행복의 길을 찾아 나선다.
'저쪽을 잘 보아라.
그 돌 아래에 무엇이 있는지 들여다보고 알아내라.'
-단테의 <연옥편> 중에서
어느 날 해변에서 만난 낯선 남자에게 단테 이야기를 하는 그녀는 마음 한 구석에 남아 있는 공허한 빈 자리에서 그 낯선 남자와 동침한다.
' 산책을 끝내고 우리는 앉아서 키스를 했다.'
그리고 마흔 살에 다다른 그녀는 예순 살에 가까운 남편의 그늘에서 벗어나 로마 외곽의 한 대학에 다니면서 단테의 <신곡>을 읽기 시작한다.
'이제 주님 그들은 평안을 찾았습니다.
주님께서 그들에게 주시고 남아 있는 평안,
그 무엇도 방해 할 수 없는 평온, 흔들리지 않는 평온을 찾았습니다.'
학위를 따고 학생들을 가르치는 삶을 살아가는 그녀는 홀로 된 아버지가 있는 미국과 이탈리아를 오고 가며 가끔씩 남편과 만나 식사를 하고 친구들과 바에서 수다를 떨며 방랑하는 자신의 영혼의 흔들림을 응시하고 있다.
'단테의 시대에 한 번 이상의 삶을 살 거라는 , 혹은 단 한번도 온전한 삶을 살 수 없을 거라는 형벌을 받은 사람들이 있었을까?'

줌파 라히리는 자신의 두 번째 장편 <저지대>를 완성하고 홀연 로마로 떠나 그곳에서 이탈리아어를 배우며 이탈리아어로 글을 쓰고 있다.
서른 두 살의 나이에 단편집으로 풀리처 상을 수상한 줌파 라히리는 그동안 그녀가 쓴 거의 모든 단편과 장편들은 주요 문학상을 수상하며 대학 창작 문예과 교재로도 사용되고 있을 정도로 동시대 미국을 대표하는 작가이고 여러 나라의 언어로 번역되는 세계적인 작가다.
[나는 이 여정이 좋았다. 내 삶의 나머지를 등 뒤에 남겨둔 채 집을 나섰다. 작품 집필은 생각하지 않았다. 몇 시간 동안 나는 내가 아는 언어들을 잊었다. 매번 작은 도주를 하는 것 같았다. 오직 이탈리아어 하나만 중요한 곳이 날 기다리고 있었다. 새로운 현실이 펼쳐지는 나의 피난처였다.]
-줌파 라히리
새롭게 배운 언어, 새로운 사랑을 하듯 새 언어의 단어와 낱말을 익히고 문법의 뼈대를 세워서 글을 쓰기 시작한 줌파 라히리는 인생의 길을 바꾸기 위해 기쁨을 느끼기 위해 그리고 스스로의 삶을 지탱하기 위해 이탈리아에서 제 2의 인생을 시작한다.

[나는 두 얼굴을 가진 내 삶의 학문적 해안을 일종의 연옥이라고 부르고 싶다. 로마는 여전히 천국과 지옥 사이에서 흔들린다. 부서지고, 잘못 되고, 상처 받고, 버려지고, 죽은 것들로 가득 차 있지만, 나는 연결된 실을 자를 수가 없다.]
-줌파 라히리
줌파가 이탈리아어로 쓴 단편들과 에세이들은 여전히 미국 대형 출판사에서 출간되고 있고 여러 나라 언어로 번역되고 있지만 평단과 독자들의 평가와 시선은 이전에 영어로 썼을 때와 다르다.
2022년에 완성한 단편집 <로마 이야기>에 수록된 작품 순서는 시기별로 단어와 문장 그리고 서사 구조의 견고함이 엉성하다가 다시 꽉찬 묘사와 서사로 이어지다 툭 끊어져 버린다.
마지막에 수록된 <단테 알리기에리> 단편은 지난 시절에 발표했던 단편에서 구사했던 서사와 묘사가 비춰질 정도로 그녀가 이탈리아어로 쓴 단편 중에 가장 우수하다.
이 작품을 읽은 이탈리아의 한 독자는 아마존 서평에 중학생 1학년의 어휘와 문장을 구사했다는 실망감을 표출했다.
줌파의 글을 여전히 사랑하며 그녀의 신작을 기다리는 수 많은 독자들은 그녀의 새로운 도전을 응원하고 있고 미국의 주요 서평지에도 혹평을 달지는 않는다.
[그들은 중년의 나이에 스스로 자신의 뿌리를 뽑아 새로운 기준점을 취하기로 한 결정을 자랑스러워하는 것 같았다. 그들은 내 지평 너머의 세계, 내가 회피했던 대담한 발걸음을 떠올리게 해주었다.]
-줌파 라히리의 'p의 파티' 중에서
새로운 단편 <로마 이야기>를 발표한 줌파 라히리를 취재한 영국 가디언 기자는 줌파에게 이런 질문을 던졌다.
'작가님은 현재 세상에 대한 관심이 없으신거죠.'
'네, 저에 관한 이야기, 제 주변에 관한 이야기를 쓰는데 머물러 있습니다.'
'앞으로 사회가 이 세상이 어떤 방향으로 흘러 가고 있는지 걱정은 하고 계시겠죠?'

글을 쓰는 작가가 반드시 시대의 목소리를 대변해서 변화를 울부짖지 않아도 된다.
작가들은 작가들만의 고유한 창작 세계가 있고 그 창작 세계에서 크게 벗어난 모험을 하기 쉽지 않다.
단테는 <연옥편> 제 24곡에서 시인 보나준타에게 이런 말을 한다.
아!형제여! 이제 알겠소. 공증인과 구이토네 같은 시인들을 가둔 매듭이 이제 내가 듣는 당신의 이 감미롭고 새로운 문체의 시에서 풀리는군요.
이제 당신네들이 날개가 그 불러주는 이의 뒤를 바짝 쫓아
어떻게 날아가는지 분명히 알겠소.
그것은 우리로서는 전혀 할 수 없는 것이지요.
스스로 깊이 따지면 누구라도
이 문체와 저 문체의 차이를 보지 못할 거요.
시인 보나준타는 단테에게 이렇게 대답 한다.
'나는 이제야 넘어야 할 장애물이 있었음을 깨달았지만 단테 당신은 당신의 글로 이미 그 장애물을 넘었다오.'
태어날 때부터 배운 언어를 버리고 새로운 언어를 배워나가는 과정은 마치 흙에 씨를 뿌려 싹을 틔우고 꽃을 피워 열매를 맺는 과정만큼 지루할 만큼 길고 결실을 맺기 힘들 정도로 고달프다.
[호수 건너편에 도착했다. 난 문제없이 해냈다. 지금껏 멀리서만 봤던 오두막이 몇 걸음 앞에 보인다. 저 멀리 남편과 내 아이들의 모습이 까마득하다. 도달할 수 없을 것 같았는데 그렇지 않다는 걸 알았다. 호수를 건너자 내가 알던 호숫가는 건너편이 되었다. 이쪽이 저쪽이 된 것이다. 새로운 언어를 배우고 빠져들려면 기슭을 떠나야 한다. 구명대 없이, 뭍에서 몇 번 젓는지 세지만 말고 말이다.]
-줌파 라히리

새로운 땅에서 그 나라의 언어를 구사하는 사람들과 경쟁 하기 위해 나는 매일 새벽 동트기 전에 책상에 앉아 익히고 수집하고 모아 쌓아 놓은 새로운 언어와 씨름했다.
정해진 길이 아닌 길로 걸어가는 자에게 커다란 포부와 결심이 필요하다.
삶을 바꿀 수 있는 것은 여기가 아닌 저곳에 있다.
그것이 새로운 언어를 배우는 것이든 새로운 환경에서 삶의 터전을 시작하는 것이든 결국엔 변화가 지금 보다 한 단계 더 높이 올라가는 삶의 발판이 된다.
세상에 그대로 멈춰 있거나 정지된 것은 없다.
삼라만상이 변하고 끊임 없이 시간이 흐르는 동안 내 스스로가 변하지 않는다면 현실에서 부딪치게 되는 장벽을 넘지 못한다.
나는 나를 자극 시키는 것, 가라 앉고 침체되어 있는 상태를 일깨워서 감각의 촉수를 일깨워주는 모든 것을 사랑하고 매달린다.

우리에게 주어진 삶은 짧지 않지만,
우리는 삶을 (짧게) 만들며,
우리에게 삶이 부족하지 않지만,
우리는 삶을 허비한다.
...non accipimus brevem vitam sed fecimus
, nec inopes eius sed prodigi sumus.
-세네카
아침 마다 세네카의 글을 읽는다.
아니 매일 나는 모국어가 아닌 언어로 쓰여진 글을 읽고 쓰고 있다.
가장 순수한 강물처럼 강하고 맑은 그는
풍요를 펼치리니, 풍부한 언어로 라티움을 부유하게 하리라.
그는 모든 과잉을 살피고 어떤 조악도 손질하리라.
세심한 손길로 힘을 잃은 것은 모두 버리고
놀이하듯이, 실은 괴로워 몸부림할 때에도, 춤을 추듯이.
이제는 사티로스처럼, 이제는 미개한 키클롭스처럼.
vemens et liquidus puroque simillimus amni
fundet opes Latiumque beabit divite lingua;
luxuriantia compescet, nimis aspera sano
levabit culitu, virtue carentia tollet,
ludentis speciem dabit et torquebitur, ut qui
nunc Satyrum, nunc agrestem Cyclopa movetur.
-호라티우스
라틴어를 암송 하고 쓰는 동안 시간은 마법처럼 멈춘다.
어떤 날은 호라티우스의 삶의 잠언을 흡수하고 집 밖을 나서고 어떤 날은 세네카의 지혜를 읽고 세상의 차별 앞에서 굴하지 않는다.
우리는 매 순간 새롭게 망각하고 새롭게 배우고 터득하며 살아간다.
망각의 공간에 새로운 단어들이 채워질 때 마다 마음을 움직이고 변화의 감정을 불러 일으킨다.
구글 창을 열고 검색하면 무엇이든 찾을 수 있고 어디든 볼 수 있고 원하는 장소 찾는 곳을 쉽게 알 수 있다.
하지만 새로운 언어를 배우려면 구글 창을 열고 검색하는 것 만으로 습득할 수 없다.
언어를 터득하려면 엄청난 집중력과 기억력이 요구된다.
그 시간을 견디고 인내하며 학습하는 동안에도 수 만가지 일들, 해야 할 것들이 사방에서 날아오고 맹렬하게 달려 든다.
지금 이 순간 나에게 필요한 질문은 바로 이것이다.
'나는 무엇에, 어디에 열정을 쏟아 붓고 있는 것일까?'
인생의 길은 직선이 아니다.
새로운 목표도 세워 놓는다고 모두 다 성취할 수 없다.
SNS세상에 갇혀 있는 동안 시간은 멈춰진다.
잠깐 구글 창을 클릭해서 해야 할 일을 하는 동안에도 순식간에 집중력이 무너져서 두 세시간이 훌쩍 지나가 버린다.
그리하여 나는 날마다 눈을 뜨면 더 이상 세상에 존재 하지 않는 이들이 남겨 놓은 문장 속으로 들어간다.
곳곳에 낯선 어휘들이 튀어나오고 그것들을 하나씩 익혀 나가는 동안 나는 그들이 새겨 놓은 지식의 양분을 온 몸으로 흡수한다.
그들은 묻는다 왜 그렇게 생각했는지 ..
행동했는지...
그리고 말했는지...
그곳에 머무는 동안 나는 전혀 지루함을 느끼지 않는다.
날마다 새로운 언어를 배우는 동안 현실의 걱정과 고민은 잠시 접어둔 채 어떤 것에도 흔들리거나 동요하지 않는다.
단어들이 존재하고 문장들이 나열된 언어들은 생생하게 살아 숨쉬고 있다.
나는 단어의 의미를 유추하고 찾아서 단어와 단어 사이의 공간에 내가 흡수한 지식을 쏟아낸다.
내가 알고 있는 지식이 어떻게 유지 되고 있는지 현재 나의 지적 능력은 어디까지 뻗어나갈 수 있는지 가늠해보며 날마다 새로운 언어를 읽는 순간에 나는 기차를 타고 비행기를 타고 배를 타고 그리고 전차에 올라타서 그들이 남긴 흔적을 찾아 다닌다.
배우고 읽고 쓰고 사는 동안 나라는 인간이 현재 어디로 가고 있는지 깊이 이해하게 된다.

모든 것이 변한다.
Omnia vertuntur
현재를 즐겨라
Carpe die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