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 물, 공기, 흙 4개의 원소들이 살고 있는 ‘엘리멘트 시티'에 파이어 플레이스 가게를 운영하는 앰버 가족이 살고 있다.

아버지의 가게 일을 돕고 있는  불 원소 이민자의 2세이자 외동딸 ‘앰버’는 사랑을 주술적 방식으로 점치는 어머니의 영향으로 연애는 큰 관심이 없다.

아버지는 외동딸 엠버가  강한 화력을 내뿜는 다혈질적인 성격이여서 종종 분노를 조절하지 못해 가게를 불바다로 만들어 버리기에 언젠가 딸 엠버가 감정을 잘 다스리게 되면 가게를 물려주려고 그 시기만 기다리고 있다.

가게에서 대폭 할인 행사가 시작되던 날 거래처를 바쁘게 오고 가던 아버지가 엠버에게 가게를 맡기고 부모가 없는 사이에 분노를 조절하지 못한 엠버의 끓어 오른 화기 때문에 가게 수도관이 터져 물 원소의 ‘웨이드’를 만난다. 

끓어 오르는 화를 주체하지 못하는 엠버와 달리 침착하고 유한 성격의 수도 검사관인 웨이드는  조사 하던 중  노후한 가게 시설에다 불법 건축물인 가게 파이어 플레이스를 영업 정지 처분으로 당국에 신고 한다.

웨이드의 신고에 분노한 엠버가 부모님의 피 땀 눈물이 스며 있는 가게 폐업을 막으려  웨이드를 쫓아간다.


"화내는 것도 나쁜 건 아냐. 

화가 날 때 나는 이렇게 생각해. 

마음의 소리를 들을 준비가 안돼서 라고."

분노 조절을 하지 못하고 예민하고 까칠한 엠버와 달리 세상을 긍정적으로 바라보며 모든 걸 감싸 안아주는 웨이드는 불같이 화를 내는 엠버를 이해하고 다독인다.

그러던 어느 날 파이어 플레이스가  물난리로 가게가 위험에 처하게 되자  웨이드는 자신을 희생해서 가게를 지켜 낸다. 

"네 빛이 일렁일 때가 좋아"

 서로를 알게 되고 사랑에 빠져 버린 엠버와 웨이드

각기 다른 원소로 이루어진  불과 물인 육체가 서로 끌어 안으면 물은 증발하고 불은 꺼져 버릴 것이다.

하지만 불같은 엠버에게 먼저 다가간 웨이드는 손을 내밀어 그녀를 끌어 안는다.


"겁도 없이 너에게 뛰어들었고, 우린 무지개를 만들었지" 

활활 타오르는 앰버의 몸 속으로 들어간 웨이드의 몸은 소멸하지 않고  투명한 수증기가 되어 폭죽처럼 무지개 빛으로 피어 오른다.


물과 불의 원소가 만나면  하늘 위로 아름다운 무지개 빛을 뿜어 대지만 인간이 파괴한 자연의 순환이 부메랑이 되어 지구가 펄펄 끓어 오르고 있다.

불가마 같이 끓어 오른 8월,입추를 정점으로 폭염이 한풀 꺾였다.

새벽에 불어오는 찬 바람이 이토록 고마웠던 적이 없었을 정도로 자연의 힘은 인간의 물리적 노력과 비교 할 수 없을 정도로 대단하다.

이번 주 내리는 비가 한반도의 뜨거운 열기를 조금이라도 식혀 주면 좋겠지만 태풍이 몰고 오는 물폭탄으로 침수 피해를 입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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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 역사상 최고의 다재 다능했던 천재 다빈치도 4시간 이상 잠을 자지 않았고 인류에게 밝은 빛을 선사한 발명 왕 에디슨은 4시간 이상 침대 위에서 꼼짝 없이 누워 있는 사람들을 도통 이해 하지 못했다.

 그는 자신의 회사 부하 직원에게 “수면이란 시간 낭비에 불과하다”라는 말을 했다. 

고작 3-4시간만 숙면을 취한 역사적으로 대단한 성취를 이룬 인물들과 달리 물리학자 아인슈타인은 하루 평균 10시간 동안 잠을 잤고 마음만 먹으면 그 이상의 시간 동안 침대에 누워 있었다.

아인슈타인은 꿈을 꾸는 동안  (렘REM 상태 ) 물리 이론을 구상하고 수치를 계산했을까? 아니면 깨어 있는 동안 왕성하게 작동 시켰던 육체적 피로를 수면을 취하는 걸로 회복되는 시간을 가졌던 것일까?

인간의 수면에는 렘수면과 논렘수면이 있다. 

수면 중인데도 불구하고 대뇌가 활발하게 활동하는 상태가 렘수면으로 이 상태에 도달했을 때 인간은   꿈을 꾼다. 

꿈이란, 기억의 단편들이 이어지거나 깨어 있던 순간에 무의식적으로 무언가 포착한 것들이 렘수면 상태에서 떠오르는 경우로  인간은 꿈을 꾸는 동안 그동안 잊고 있었던 기억의  한 부분을 불 연속적인 시간으로 재 구성 시켜 나간다.

그렇다면 기억을 강화 시켜서 고도의 집중력을 발휘하게 만드는 건  렘 수면과 논 렘 수면 중 어느 쪽일까? 

대다수의 사람들은 전날 밤 잠을 충분히 못 잤을 경우 바로 다음 날 평소와 다른 컨디션을 경험하게 되는데 가장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증상은 바로 집중력의 저하다.

이렇게 수면이 부족한 날이 여러 날 동안 지속 될 경우 기억력 저하를 비롯해 무기력 증상이 나타나고 미각, 촉각, 후각, 시각이 무뎌지게 된다.


그렇다면 잠을 자는 동안 인간의 뇌 속에서는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것일까?

눈을 감은 상태로 누워 있기만 해도 피로가 풀어지거나 저하된 기억력과 체력이 원상태로 돌아 오지 않는데 그 이유는 인간의 뇌가 렘 상태에 빠지지 않으면 노폐물을 처리 하는 뇌 속 혈류의 순환이 원할 하게 흐르지 않고 뇌 척수액이라는 세포 간극을 채우는 액체 흐름에 문제가 생긴다.

이 상태가 오랜 기간 동안 지속되면 뇌세포의 영양 공급과 노폐물을 배출 하는 글림프 시스템으로부터 신호를 받는 신경교세포에 문제가 생긴다.

신경교세포가 정상적으로 작동하지 않으면 팔과 다리의 근육이 점점 사라지게 된다.

상자 속에 집어 넣은 실험용 쥐에게 하루 2-3시간만 숙면을 취할 수 있게 컴컴한 상태로 만들고 나머지 시간은 밝은 빛을 비추어 잠을 자지 못하게 하자 실험이 시작된지 2주 후 하루 2-3시간만 잠을 잤던 쥐들의 피부에서 털이 빠지고 몸 곳곳에 궤양이 생겼고 체온이 급격하게 떨어졌다.

잠을 제대로 못 잔 쥐들은 미로 틀에 설치된 먹이를 찾지 못할 정도로 후각 기능도 떨어졌고 체중이 감소했다.

성인 평균 수면 시간은 6-7시간 정도로 그 이하의 시간으로 떨어져도 곧바로 신체에 이상 증세가 나타나거나 죽음에 이르지는 않지만 장기간 지속 될 경우에 건강에 적신호가 켜진다.

 사람은 일단 자리에 누워서 잠을 청하게 되면 가장 먼저 논렘수면에 들어간다. 

논렘 수면 중에는 대뇌피질 뉴런의 활동이 저하 되어 점진적으로 신경세포의 활동이 느려지면서 전체 신체 기능 상태가 휴식의 모드로 작동하면서 이완되기 시작한다.

이 상태에서 2-3시간이 지나면 뇌에 혈류 량 속도가 늦춰지면서 뇌피질에 있는 뉴런들이 각자의 영역에서 움직이기 시작한다.

즉 인간의 신체는 움직이지 않는 동면 상태이면서도 뇌 속 뉴런들의 움직임으로 뇌에서는 출력 신호체계가 작동하기 때문에 이상태에 다다르면  중얼 중얼 말을 하거나 이를 갈거나 팔 다리를 움직이거나 몸을 비틀 수 있는 것이다.

자연계에서도  인간의 수면 과정과 거의 비슷하게  겪고 있는 포유류가 있는데 바로 그 포유류는 돌고래로 이들은 바닷물 속에서 낮잠도 자고 렘 상태까지 도달해서 꿈도 꾼다.


돌고래들의 평균 수면 시간은 인간의 평균 수면 시간과 거의 비슷한 6-7시간정도 인데 이 이상을 잘 경우 인간 사냥꾼들에게 포획되거나 파도에 떠밀려 무리들 속에서 이탈해서 고아가 되기도 한다.

돌고래들은 헤엄치는 동안 잠을 잘 수 있기 때문에  한번 잠이 들면 한쪽의 대뇌반구만 잠을 잔다. 

즉, 대뇌반구가 교대로 수면을 취함으로써 한쪽 뇌는 깨어 있는 상태를 유지한 채로 수면을 취하는 것이다(반구수면:hemispheric sleep). 

오른쪽 뇌가 수면 상태가 되면 왼쪽 눈을 감고, 반대로 오른쪽 눈을 감고 있을 때는 왼쪽 뇌가 수면 상태가 되기에 천적의 공격에 대비하거나 만약의 상황에서 자신을 보호 할 수 있다.

이렇게 반 쯤 깨어 있는 상태에서 계속 헤엄을 치는 돌고래는 어떤 날에는   양쪽 대뇌반구가 모두 깨어 있을 때가 있다. 

그건 바로 수면의 온도가 급격하게 떨어지거나 높아졌을 때로 2026년 달아오른 바닷물의 뜨거운 온도 속에서 돌고래의 양쪽 대뇌반구가 모두 깨어 있는 상태로 바닷 속을 헤엄치고 다닐 것이다.

연일 폭염으로 이어지고 있는 8월, 좀처럼 깊은 숙면 상태에 빠지기 힘들 정도로 무덥고 뜨겁다.

새벽 공기도 30도 아래로 떨어지지 않는 날이 지속되고 있으니 더워서 잠을 깨는 날이 많아졌다.



 눈폭탄을 맞으면서 눈뭉치를 만질 수 있는 겨울이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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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7월 3일 무라카미 하루키의  새 장편 夏帆─The Tale of KAHO─ 출간 자정부터 도쿄 대형 서점에서 오픈런이 벌어지는 등 현지에서 폭발적인 반응을 일으키면서 초판 25만 부 발매된 이후 단 4일 만에 5만 부 추가 증쇄(2쇄)가 결정되었습니다. 

8월 5일 현재 일본 내 누적 발행 부수는 총 30만 부를 돌파하며 하루키의 오랜 팬 뿐만 아니라 그의 작품을 처음 읽는 독자들로 부터 큰 호평을 받고 있습니다.

하루키 장편 사상 최초로  26세 여성 그림책 작가 '가호'를 단독 주인공으로 내세워서 '모녀 관계의 갈등'이면에 비춰진 현실과 비현실의 세계관이 투영된 이번 하루키 신작 장편은 일본의 mz세대로 부터  자신의 이야기를 해주는 것 같다는 호평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반면 일본 문학계에서는 77세에 다다른 하루키 필력이 이전에 비해 느슨해 졌고 20대 여성 주인공을 내세워서 독자들의 호기심을 유도한 "모녀 살해"라는 장치가 전체 서사에 매끄럽게 녹아들지 못했고 이야기 속 판타지적 설정이나 흐름이 지나치게 현실과 괴리되어 있거나, 기존 작품들에 비해 억지스럽게 설정했다는  지적을 하고 있습니다.






일본 소설계에 거장 히가시노 게이고의 갑작스런 사망 소식에 놀란 그의 두터운 팬들과 게이고의  책을 읽어 본 적 없는 독자들이 앞다퉈 읽으면서 현재 일본 베스트셀러 소설 리스트에는  히가시노 게이고 vs 무라카미 하루키 책들이 빼곡하게 서열을 정비 하듯  서로 오르락 내리락 하고 있습니다.

어쩌면 현 시대에  무라카미 하루키가   인공지능과 협업 하지 않고 작가적 상상력과 필력으로 쓴 마지막 20세기 아날로그형 작가 세대 일 지 모릅니다.

현재 투비컨티뉴드 <하루키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에 연재 하고 있습니다.

2023년부터 연재하기 시작한 <하루키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 지금까지 51개의 노트를 발행 했습니다. 국내에 어디에도 개재된 적 없는 인터뷰와 해외 기사, 하루키가 진행하는 도쿄 라디오에서 독자들과 나눈 이야기, 하루키 모교 와세다 대학 국제 문학관(일명 하루키 도서관)에서 진행 되었던 각종 행사와 잼 콘서트 그리고 한국에 출간 된 적 없는 에세이와 기타 짧은 단편을 제가 직접 번역해서 연재 하고 있습니다.

하루키에 대한 모든 것 투비컨티뉴드 <하루키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에서 만날 수 있습니다.

https://tobe.aladin.co.kr/s/1072

1.무라카미 하루키 새 장편 夏帆─The Tale of KAHO─출간 미국 뉴요커지 인터뷰

https://tobe.aladin.co.kr/n/631932

2.<가호( 夏帆 - The Tale of KAHO)>출간 -무라카미 하루키의 작가 연대기

https://tobe.aladin.co.kr/n/636979

큰 병을 앓는 동안에도 단 하루도 글쓰기를 멈추지 않은 하루키는 한 달에 한 번 진행 하는 도쿄 FM 라디오 진행을 거른 적이 없습니다.

지난 달 라디오 시청자들에게 새 장편 반응이 좋다며 오랜만에 어디에도 크게 기사화 되거나 연재될 소재도 아닌 소소한 이야기를 들려 주었습니다.

그가 들려준 소소한 이야기 (여름 6편) 여기에 직접 번역해 올립니다.

https://tobe.aladin.co.kr/n/6495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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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센트 반 고흐는 열 여섯 살이 되던 해  삼촌이 공동대표로 있는 헤이그의 화방에 견습사원으로 취직한다.

 Goupil&Cie라는 이름의 화방은  파리, 브뤼셀, 런던, 뉴욕에 지점을 가지고 있던  국제적 규모의 화방으로 고미술품이나 바다 건너 일본 화가들의 그림과 미술 작품을 취급하기도 했지만   사진기술의  발달로 유명한 화가의 작품을 똑같이 찍어 낸 복제품들을 소비자들의 요구에 맞춰   다량으로 팔아 수익성을 높이 올렸다.

 값비싼 실제 작품 보다 저렴한 복제품을 찾는 사람들이 부쩍 늘다 보니 청년 고흐가 근무 했던 헤이그 본사의 화방은  날마다 수많은 고객들이 찾아 왔다.

아버지의 강압에 의해 억지로 화방 견습생으로 일했던 고흐는 친절함과도 거리가 멀었고 무엇보다도찾아오는 손님들이 원하는 그림을 제대로 보여주지 않은 태도를  보였다.

삼촌은 조카 고흐에게 더 넓은 세상을 보여 주기 위해 런던과 파리 지점으로 보내지만 고흐는 그곳에서 오로지  화방에 입고 되는 작품에만 관심을 보였고 손님들에게 불친절한 태도를 보이다가 결국 해고 당한다.

청년 고흐가 화방에 찾아 오는 손님들에게 시종일관 거만하고 불친절한 태도를 보였던 이유는 가난한 이들을 벌레 처럼 보는 부유한 이들의 비위를 맞추고 싶지 않아서 였다.

종교적 자유를 누리며 열심히 일한 만큼 부를 누렸던 헤이그와 달리 영국 런던은 거리 어디를 가도 구걸하는 이들로 넘쳐 났고 가난 때문에 거리로 내몰린 아이들이 매춘을 하고 그 돈을 부모들이 갈취 하는 처참한 사회적 현실에 10대 청년  고흐는  큰 충격을 받았다.

화방에서 쫓겨난 고흐는 런던에서 낮에는 아이들을 가르치는 보조 교사로 일을 했고  저녁 부터 밤 까지 교회에서 봉사 활동을 하며 가난한 이들의 삶을 더 가까이서 목격하게 된다.

목사 아버지의 강요에도 신학 공부에 대한 관심은 눈꼽 만큼도 없었던 고흐는 진흙탕 같은 세상에서 살고 있는 가난한 이들의 삶을 목격하고 본격적으로 신학을 공부 하기 시작한다.

암스테르담에서 신학 공부를 시작한 고흐는 뜻밖에도 전도사 양성 학교 입학의 문턱을 넘지 못하고 크게 좌절 하고 네덜란드 북부에 위치한 드렌테로 훌쩍 떠난다.

1883년 가족으로 부터 금전적 지원을 전혀 받지 못하게 된 고흐는  팔 수 있는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화방에서 일하던 시절에 고객들이 가장 선호 했던 그림은 수채 물감으로 채색된 작품이라는 걸 잘 알고 있었던 고흐는 연필과 잉크로 밑 그림을 스케치 하고 나서 수채 물감으로 덧칠 하는 방법으로 그림을 완성해 나갔다.

1874년부터 1886년까지 모네, 르누아르, 피사로 등 다른 인상파 화가들과  함께 <인상파전>에 참가하며 꾸준하게 작품을 출품해 왔던 에드가 드가는 일상생활, 말, 정물 등 온갖 소재를 유채, 크레용, 목탄, 수채, 파스텔, 판화, 조각등 다양한 기법을 이용한 작품으로 주목 받으며 국제적 명성을 얻게 된다.

명성이 높아 질 수록 그의 작품 가격도 함께 올라갔지만 태생적으로 약한 시력을 갖고 있던  드가는 <살롱>출품도 거절 하고  1889년 만국박람회 예술관의 전시도 거절한다.

국제적 명성이 드높은 화가의 은둔 생활에 조바심이 난 언론과 미술계는 드가가 두 세 작품을 그룹전에 내는 것 만으로도 신문에 대서 특필 되었을 정도 였다.

1881년 제6회 파리 인상주의 전시에서 드가의  《열네 살의 어린 무용수(La petite danseuse de quatorze ans)가 등장 했을 때 평론가들은 열네 살의 어린 무용수(La petite danseuse de quatorze ans)조각상을 향해 “원숭이가 있어야 할 곳은 (전시장이 아닌)동물원이지 않은가.” 라며 드가를 향해 신랄한 악평을 쏟아 부었다. 

 쏟아지는 악평과 비난에 드가는 작업실 구석에 둔 옷장 문을 열고, 조각상을   깊숙히 밀어 넣고 두번 다시 세상에 조각상을 공개 하지 않았다.

오페라단의 하급 발레 무용수로  무대 뒤 소품 같은 취급을 받으며 보잘것 없고  빈약하고, 하찮다는 의미로   ‘작은 쥐’(Petites Rats) 무리라고 불렸던 소녀 마리는 드가가 세상을 떠난 뒤 세상에 다시 빛을 보게 되어 전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무용수가 되었다.

주변의 인상파 화가들이 찰나의 빛과 색을 그리는 데 몰두 하는 동안 ,  인간의 내면에 스며든  감정과 시대의 공기까지 담으려고 했던  마네는 <폴리 베르제르의 바> 작품이 세상에 공개 된지 1년 후 1883년 1월,  프랑스 정부로부터 최고 권위의 훈장인 레종 도뇌르 훈장(Légion d'honneur)을 받으며 화가로서의 공로를 인정받았고 3개월 후 4월 30일 51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난다.

1900년 20세기 신 문물과 산업혁명의 세기를 뽐냈던 파리 만국 박람회에  공식 참가한 대한제국은 경복궁 근정전을 본뜬 한국관을 지어 전통 공예품과 농기구 등을 선보이며 조선의 고유한 문화를 세계에 알렸다.

 파리 만국박람회 한국관에 조선 장인들의 나전칠기가 출품되자  서구 엘리트들은 동양의 신비로운 칠흑과 오색 자개 빛에 매료되었고, 이때부터 한국 나전칠기는 '글로벌 컬렉터들의 표적'이 되기 시작한다.

1905년 야수파가 등장한 이후  야수주의와 입체파로 나눠져서 서로 유사한 그림을 전시장에 쏟아내며  치열하게 경쟁을 벌이고 있는 동안 어떤 유파에도 속하지 않고 독자적인 화풍을 밀고 나가는 젊은 화가들 집단인 파리파 무리들과 어울렸던 아메데오 모딜리아니는 아프리카 가면의  단순하면서 간결한 선과, 캄보디아의 크메르 부처 석상에서는 부드러운 면(面)의 미학을  합쳐 길쭉한 얼굴, 한 줄로 떨어지는 코, 평면 위에 펼쳐진 인물. 그 전에도 그 후에도 없던 모딜리아니만의 화풍을  완성시킨다.자신만의 화풍을 정립한 1914년 유렵 전역에 몰아닥친 전쟁의 소용돌이는 모든 것을 파괴 했다.

모딜리아니는 그림을 그릴 수록 영원에 대한 갈구가 깊어졌고 삶의 덧없음이 뼛속까지 파고들어갔다.

가난, 폐병,  마약과 술, 여자에 탐닉했던 모딜리아니는 세상을 떠나던 1920년까지  현재 우리가 아는 작품들을 모두 쏟아 냈다.조선 제일의 명문가 문인 가문에서 태어난 강세황은 정치적 파벌 싸움으로 인해 가문에 불어 닥친 불운으로 과거를 포기하고 야인으로 지냈다.

당시 조선 시대 양반 50대, 강세황은 회갑년을 넘긴 직후 61세라는 매우 늦은 나이에 영조의 배려로 처음 관직(영릉 참봉)을 받게 된다.

그의 관운은 70세 이후에 더욱 빛을 발해서 정2품 이상의 고위 관직을 지낸 70세 이상의 원로들만 들어갈 수 있는 최고 명예 기구인 기로소(耆老所)에 입소하는 영광을 얻게 된다.

1782년 임인년 70세가 되던 해에 강세황은 붓을 들고 스스로의 모습을 그리기 시작했다.


그림 속 강세황은 머리에 관원들이 조정에 나갈 때 쓰는 공식 모자인 오사모(烏紗帽)를 쓰고 있으나, 몸에는 벼슬이 없는 선비들이 집에서 입는 옥빛 야복(도포)을 걸치고 있다.

 조정의 관모와 재야의 평상복을 동시에 착용한 차림새는 조선 시대 초상화에서 전례를 찾기 힘든 매우 독특하고 파격적인 연출 뿐만 아니라 70세 노인의 얼굴에 피어난 검버섯, 깊게 패인 주름살, 희끗희끗한 수염, 세월을 견딘 눈매를 미화 없이 극사실적으로 묘사 했다.

강세황은   조정에 나아가 관직을 수행하는 공직자로서의 삶(출, 出)과 자연에 묻혀 사는 선비로서의 삶(처, 處)을 모두 겪은 자신의 복잡한 정체성과 자부심을 담아 70대 노년에 이른 스스로의 모습을 그렸다.

화면 상단에 강세황이 직접 한문으로 써넣은 찬문(자기 비평)이 있어, 자신의 기이한 옷차림에 대한 설명과 스스로의 내면 인식을 후대인들에게 명확하게 알리고 있다.

"저 사람은 어떤 사람인가? 수염과 눈썹은 하얗고 머리에는 오사모를 썼으면서 몸에는 야복을 걸쳤구나. 심신을 조정에 보냈으나 이름은 일찍이 산림에 숨겼도다. 가슴에는 수천 권의 책을 간직했고, 손에는 성인을 뒤흔드는 필력이 있구나. 어찌 사람들이 알겠는가, 나 혼자 즐기노라. 노인의 나이는 일흔이요, 호는 노죽(露竹)이라. 초상을 스스로 그리고 화찬도 손수 쓰네. 때는 임인년(1782)이다."

조선 시대 남성 평균 사망 나이는 백성들은 39세, 조선 제 1일의 의식주와 의료 혜택을 받았던 왕은 밤샘 국정 업무나 정적의 암살 위협에 시달려서인지 평균 수명 나이는 46세였다.

왕만큼 혜택을 누리지 못했던 양반 계층은 노비의 노동력을 바탕으로 경제적 자유를 누리며  유학자로서 절제된 삶과 학문 탐구를 하는 유유자적한 삶을 누려서 인지 조선 시대 평균 수명 나이를 훌쩍 넘기며 장수 하는 인구층이 가장 많았다.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예술가는 죽어서 작품을 남긴다.

반면 정치인들은 죽어서 무엇을 남길까?

유리 지갑을 가진 백성들은 죽어서 무엇을 남길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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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잡한 파리를 벗어나 기차로 한 시간 쯤 달리면 도착하는 곳   오베르 쉬르 우아즈(Auvers-sur-Oise)

초록빛 들판과 언덕 그리고 우아즈 강이 흐르는 풍경이 펼쳐지는 이곳은 19세기 혁명적인 이동 수단인 기차 길이 뚫리면서 먼 곳에서 외지인들이 찾아오는 마을이 되었다.

1890년 5월,  남프랑스 생레미드 프로방스의 요양원을 떠나 오베르 쉬르 우아즈(Auvers-sur-Oise)에서 에서 단 70여일을 머물렀지만, 그는 하루에 한 점을 그려낼 정도로 빠른 붓질을 하며 마지막 생애 예술의 혼을 불태웠다.


고흐가 세상을 떠나기 한 달 전 프랑스 오베르쉬르우아즈에서 그린 평온한 분위기의 말년의 명작 고흐의  '오베르의 우아즈 강가' 작품을 직접 미술관에서 촬영해서 영상으로 제작했다.

갑갑한 요양원을 벗어나 새로운 환경에서 자유롭게 자신의 예술을 발전 시킬 수 있을 거라는 기대로 부풀었던  빈센트 반 고흐

전 세계 수십억 인구의 시선을 확 끌어 당기는 대담한 색채와 역동성 그리고 심오함까지 품고 있는 고흐의 작품은 그가 남긴 예술 작품 뿐 만 아니라 그의 개인적인 이야기에도 많은 사람들이 매료되고 감동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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