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눈빛만으로 남자를 죽였다고 말하면 당신은 나머지 이야기를 듣겠는가?

왜, 어떻게 그런 일이 일어났는지, 그 뒤로는 어떻게 되었는지 듣겠는가?

아니면 나에게서 도망치겠는가?

이 흐릿한 고대의 거울로 부터, 이 기이한 육체로 부터 도망치겠는가?

나는 당신을 안다. 당신은 도망치지 않을 것이다. 이야기를 이렇게 시작해 보면 어떻까. 괴이한 머리카락을 바람에 흩날리며 절벽 끝에 서 있는 한 여자. 그리고 절벽 바로 아래, 배를 타고 있는 한 남자. 둘은 서로에게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 줄 것이다.

시간보다도 오래된 이야기를 둘은 서로에게 자신의 모습을 드러낼 것이다.

-제시 버튼의 <메두사> 중에서

그리스 신화 속 괴물 메두사는 눈빛 만으로 남자를 죽일 수 있고 그 얼굴을 보기만 해도 사람들이 돌로 변하는 괴물로 변하게 만드는 힘을 갖고 있다.

하지만 메두사에게도 치명적인 운명의 족쇄가 있다.

그건 고르고네스 세 자매 중 유일하게 불사신이 아니기 때문에 영웅 페르세우스에 의해 목이 잘려 죽는다.

지그문트 프로이트는 메두사라는 존재가 남자들에게 주는 공포심을 '거세 불안증'과 연결 시켜서 심리학적으로 분석을 했을 정도로 <메두사>는 수 세기 동안 여러 문화에 깊이 영향을 끼쳤다.

역사 속에서 문화와 관습의 차이로 오인 되거나 간과 됐던 여성의 삶을 다시 쓰는 작업을 꾸준히 이어가고 있는 영국의 작가 겸 배우 제시 버튼은 <메두사>의 신화에서 태생적 운명의 출발점인 언니들과 바위 섬에 살던 시절부터 새롭게 이야기를 시작해서 남성 서사 중심의 신화를 전복 해 버린다.

어느 날, 메두사가 살고 있는 섬에 아름다운 청년 페르세우스가 찾아오고 고립된 섬의 외로운 유배 생활에서 벗어나고 싶었던 메두사는 바위에 모습을 감춘 채 페르세우스에게 말을 건넨다.

메두사가 페르세우스에게 자신의 이름을 메리나 라고 말하자 페르세우는 섬에 진짜 온 목적을 숨기고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한다.

각자 살아 온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그동안 잊고 있었던 끔찍한 기억들이 떠오르고 진짜 벌을 받아 섬에 유폐된 이야기를 꺼내기 시작한다.

할아버지는 늘 지위를 잃을까 봐. 자기보다 젊은 누군가에게 권력을 뺏길까봐 두려워 했어. 예언자의 말만 믿고 자신의 두려움에 놀아난 거야. 태어나지도 않은 어린애가 늙은 나무의 껍질을 벗기듯 자신의 가죽을 벗기고 뼈를 장작으로 쓰리라 생각한 거지. 결국 할아버지가 생각해 낸 해결책은 고작 어머니를 청동탑에 가둬 결혼하거나 아이를 낳는 일을 막는 거였어. 그러고는 절대로 어머니를 풀어 주지 않겠다고 맹세 했지.


서로 이야기를 나누면 나눌 수록 강하게 끌리지만 페르세우스는 메리나에게 자신의 '메두사'를 사냥하러 섬에 온 것이라는 본심을 드러내지 않는다.

페르세우스에게 반해버린 메두사는 머리카락이 아닌 뱀을 머리에 이고 있는 흉측한 모습을 그에게 보여 주어야 할 지를 놓고 깊은 고민에 빠진다.

​'내가 숨을 내쉬면 뱀들도 숨을 내쉬었다. 나의 근육이 긴장하면 뱀들도 공격 태세로 몸을 뻗었다.'

-만약 그때 내가 외롭지 않았더라면?

-만약 그때 내가 말을 걸지 않았더라면?

-만약, 만약, 만약, 우리 인간들은 왜 항상 지난날을 돌아보고 더 쉬운 길이 있었을 거라 생각할까? 우리는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을 수도 있었다고 믿는다.

메두사의 모습은 현 세상으로 건너와 세상의 중심 무대에서 활동하고 있는 여성들이 남성을 누르고 올라섰을 때 '악의적'인 이미지를 덧 씌워 버렸다.

두 개의 자아가 충돌했다. 새로운 자아와 과거의 자아, 마음이 무거운 자아와 근심 걱정 없는 자아. 흉측한 자아와 아름다운 자아

남성 중심의 서사적 신화에서 여성은 아름답다는 이유만으로 손쉬운 평가의 대상이 되어 신들의 싸움에서 희생양이 되어 버린다.


나는 위엄 있고 당당했다. 어린 시절처럼 나의 주인은 나였다.

무슨 말과 행동을 하건 그것은 나의 영혼과 완벽한 조화를 이루었다.

자기 꼬리를 먹는 뱀처럼 나는 저녁이 되면 태양과 함께 죽었다가 아침에 다시 태어났다. 우리가 어디로 향했느냐고? 안개와 우울의 땅도 아니고 피와 연기의 땅도 아니였다. 그런 곳이라면 이미 볼만큼 봤고 손에 닿을 듯 닿지 않는 무언가를 찾아 세상을 헤매는 영혼이 되고 싶지도 않았다. 우리는 바다에 머물며 계속 항해했다.

결국 남성의 힘으로 눌러 버린 메두사는 현 시대의 여성에 대한 차별적 시선과 크게 다르지 않다.

수세기 동안 권력을 가진 여성 또는 권력을 위해 싸우는 여성들은 탁월한 싸움꾼 또는 표독하고 악랄한 모습의 메두사에 비유되어 왔다.

기존의 신화에서 메두사는 자신의 아름다움을 과시하다 아테나의 저주를 받았고 그녀를 단칼에 제거해버린 페르세우스는 신화 속 영웅이 되었다.

어떤 사람들은 태어날 때 부터 몸 속에 운명의 지도가 새겨져 있다고 믿는다.

그렇다면 그 지도는 어떻게 만들어 질까?

신의 선택에 의해서? 아니면 우주 만물의 신묘한 기운을 받아서?

아니면 마치 로또 당첨의 행운의 숫자를 뽑듯이 경이로운 유전자 조합으로 태어나서?

어떤 능력을 갖고 태어날지 우리는 알지 못한다.

인간은 그저 태어난 순간 이 땅에 발을 딛고 살아갈 운명으로 신의 아들과 딸 그리고 권력자의 아들과 딸로 태어나도 죽음이라는 운명에서 벗어날 수 없다.

과연 신화의 결말처럼 작가 제시 버튼이 다시 쓴 <메두사>에서 페르세우스는 자신의 마음을 뒤흔든 메두사의 머리를 베어 버릴 수 있을까?

한때는 우리가 괴물이라고 생각했다. 날개를 활짝 펴고 하늘을 나는 스테노와 에우리알레

뱀들을 리본처럼 휘날리며 갑판에 서 있는 나, 햇살에 금빛과 은빛으로 털을 반짝이며 뱃머리 양쪽에 앉아 있는 개들...

이제 나는 안다. 우리가 찬란하다는 것을...

대부분의 스토리에서 선과 악이 등장하고 서로 충돌하다 결국 영웅이 악당을 무찔러 버리고 세상에 평화가 찾아 온다.

이런 류의 이야기에 익숙한 사람들은 누가 옳고 그른지, 누구 편에 설지, 고민하지 않고 악당을 물리쳐 버린 영웅을 응원한다.

하지만 현실 세계는 다르다. 절대선도 절대악 따위도 존재하지 않는다.

작가 제시 버튼은 바라보는 관점에 따라 전형적인 악인 캐릭터가 전혀 다르게 해석될 수도 있는 <메두사>는 인류 역사에서 추앙과 멸시의 대상으로 석화석 처럼 굳어져 버린 여성의 신체에 대한 차별적 시선과 폭력을 휘두르는 남자들에게 정당함을 부여하는 것들을 완전히 전복 시켜버렸다.

나는 누군가가 나를 보아주기를 원했다. 사랑을 원했다. 내가 원하는 방식으로, 뱀들까지 전부 다, 나를 있는 그대로 사랑해줄 사람을 원했다. 그러길 원한다고 인정하는 게 나약한 마음이 아님을 스테노가 일깨워주었다. 그건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그 어떤 여자도 외딴섬이 아니었다. 낯선 이들에게 외딴섬이 되길 강요 당할 뿐이다.

-제시 버튼의 <메두사>중에서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영국  총리들의 관저인 다우닝가 10번지에 2011년 데이비드 캐머런 총리 시절 부터 살기 시작한 이 고양이의 이름은 래리, 직책은 총리관저 수석수렵보좌관(Chief Mouser)으로 임무는 총리 관저에 출몰하는 쥐와 벌레를 잡는 것이다.

총리 관저 수석 수렵보좌관 자리에 올라가기 전, 래리는 키우던 주인에게 버려져서  런던 유기묘 보호소에서 살고 있었다. 

총리에 당선 된 캐머런이 관저에 쥐가 출몰하자 쥐약을 놓는 대신 고양이를 키우자며 가족들과 함께 유기묘 보호소에 가서 래리를 직접 발탁했다.

2011년 부터   총리관저 수석수렵보좌관(Chief Mouser)래리를 거쳐간 총리  집사는 데이비드 캐머런, 테리사 메이, 보리스 존슨,리즈 트러스, 리시 수낵으로 래리가 쥐를 직접 사냥하는 모습이 SNS에 공개 될 때마다 영국인들이 열광 할 정도로 사랑 받고 있다.

1682년에 지어진 영국 총리 관저인 런던 다우닝가 10번지 건물은 300년이 훌쩍 넘는 건물이다 보니 곳곳에 쥐가 살기 딱 좋은 환경이 되어서 침실과 주방에 출몰 하는 일이 잦았고 쥐들을 박멸 하는데 들어가는  방역 비용도 만만치 않았다. 

따라서 총리실에서 고양이에게 정식으로 직책을 주고 쥐를 잡는 임무를 주었고 이 전통은 1924년  처음 관저 고양이가 들어 온 이래로 총 13명의 고양이들이 총리 관저에서 쥐를 잡는 임무를 수행했다. 

그동안 총리 관저에서 최초로  쥐를 잡았던 고양이는  윌버포스로 1973년 부터 ~86년까지 총  13년동안  에드워드 히스, 해럴드 윌슨, 제임스 캘러헌, 마거릿 대처 총리 집사를 거쳤지만 수석수렵보좌관이라는 공식 직함이 부여된 고양이는 래리가 최초다.

다우닝가 10번지에 들어 왔을 때 래리의 나이는 4살의 혈기 왕성한   에너지를 발산하며 맹렬하게 쥐를 잡았고 관저 앞에 모여드는 비둘기들 까지 겁을 줘서 내쫓을 정도로 직무 수행을 잘 해냈다.

래리의 품행이 망가지기 시작한 건 영국의 트럼프로 불리는 보리스 총리와 그의 여자 친구가 관저에 들어 오고 나서 부터다. 

총리의 연하의 여자 친구는 래리에게 사랑만 듬뿍 준 것이 아니라 다양한 간식 거리를 주었고 수시로 관저에서 파티를 열었던 분위기 속에서 래리의 입맛은 식욕의 왕인 보리스 총리 가족의 입맛으로 변해버렸다.

입맛도 변해 버렸고 나이가 들어 몸도 둔해진 래리는 더 이상 눈 앞에 쥐가 나타나도 거들떠 보지 않게 되었다.

 여러 물의를 일으키고 사임한  보리스 총리의 뒤를 이어 들어온 총리 집사들이 재무 장관 관저의 뛰어난 쥐잡이인 호랑무늬 암고양이 프레야를 수석수렵 보좌관에 임명 하자며 여론의 반응을 살피기 시작했다.

총리 대변인이  쥐를 잡지 않는 래리를 일시적으로 해고하는 것을 검토 중이라는 발표를 했을 정도로 관저에 출몰하는  쥐들은 총리 개인의 삶을 망쳐 버릴 정도로  골치 덩어리였다.

하지만 영국 국민들의 반대로 래리는 총리 관저에 머무르게 되자 뛰어난 쥐잡이 프레야가 잠깐 총리 관저를 방문해서 보이는 데로 쥐를 잡으며 환경 적응 상태를 테스트 해보기도 했다.

안타깝게도 프레야가 2014년 9월 불의의 교통사고를 당해 재무 장관 관저에서 은퇴하고  시골로 내려가면서 현재는 래리가 총리 관저의  유일한 수석수렵보좌관 자리를 지키고 있다.

자신의 주인에게 복종하는 습성을 갖고 있는 개는 주인을 따라 거처를 옮겨가는 것에 거부감이 적지만 독립적인 성향의  고양이는 ‘집사(주인)’보다 장소에 대한 집착이 강해서 집사가 바뀌더라도 자신이 살던 곳에서 터줏대감처럼 사는 습성을 갖고 있다.

 역대 총리들은 자신들이 키우는 반려견과 반려묘를 관저에 데리고 들어 와서 래리의 자리를 위태롭게 했던 적이 종종 있었지만 자신의 영역에 대한 집착이 강한 래리는 임무는 방만하게 해도 외부자 침입에 대한 경계 태세를 한 시도 늦추지 않았다.

다우닝가 10번지를 찾아 온 총리 집사들이 권력의 의자에서 내려가도 래리는  31만여 명의 팔로어를 거느리고 있는  sns계의 슈퍼 스타로 군림하고 있다.

2024년 14년 만에 정권 교체를 이룬 영국 노동당 당수 키어 총리 집사는 관저에 들어 올 때 자신의 애묘 프린스(별명은 조조)를 데리고 들어 와서 집무실에서 종종 옆구리에 끼고 있는 모습을 보여주었지만 그의 애묘는 관저의 쥐를 잡기는 커녕 2년만에 총리직을 사임한 주인을 따라 나갔다.

브렉시트 탈퇴 이후 영국이 10년 동안 총리가 7번이나 바뀌는 정치적 격변을 겪는 동안 2007년에 태어난  총리실 고양이 래리는  환갑을 넘겼다.

새로 입주한 총리 집사가 데리고 온 반려묘에 대한  탐색의 냄새 교환을 하지 않을 정도로 극심하게 경계를 하던 래리는 2026년 새 총리 앤디 버넘 취임 후 런던 총리 관저에서 각료회의가 열리는 동안 현장에서  쥐를 잡아 스포트라이트를 한 몸에 받았다.

아직까지 크게 아픈 곳이 없는 래리는  움직임이 다소 둔해졌지만 여전히 총리 관저 주변을 자유롭게 돌아다니며  방문객을 맞이 하며 관저 구석 구석 보안 점검을 하며 쥐나 비둘기를 잡기도 하고  골동품 가구 틈 사이로 들어가  낮잠 적합성 테스트를 하며 자신의 임무를 완벽하게 수행 하고 있다.

 주인이 부르면 달려 오는 개와 달리  자신이 오고 싶을 때 오는 고양이

과연  인간이 개와 고양이보다 더 우월하다고 할 수 있을까?




댓글(2) 먼댓글(0) 좋아요(28)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붉은돼지 2026-09-18 11:0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대단합니다. ㅎㅎㅎ
저는 2026년에 총리 관저 각료회의 중에 회의장 안에서 쥐를 잡았다고 생각해서 무슨 각료 회의장에 쥐가 다 나오나 헐!!! 했는데......기사 찾아보니...2026. 7월 신임 총리의 첫 각료회의가 열리던 중에 총리관저 정원 마당에서 쥐를 잡았다고 하네요....사진을 보니 여러대의 카메라가 쥐 사체를 찍고 있네요.....2026.4월에는 총리 기자회견 중에 관저 내부에서 우리 수석보좌관님께서 능숙하게 쥐를 낚아채는 모습이 카메라에 포착되었다고...

하여튼 대단합니다. 무슨 총리 관저에 쥐가 그렇게 많이 출몰한다고 하니.......참...

scott 2026-09-19 15:09   좋아요 0 | URL
본업에 매우 충실한 충묘 래리입니다. 입주하는 단기간 총리들과 비교 할 수 없는 유능함에 영국 국민들의 사랑을 듬뿍 받고 있습니다.
영국 런던 주택가에 쥐들이 출몰하는 건 당연시 여길 정도로 런던 쥐 악명 높아여 ㅋㅋ
 

2002년  우수한 성적으로 아메리칸리그 서부지구에서 우승을 거두고 디비전 시리즈에 진출한 오클랜드 애슬레틱스 야구 대표팀의 빌리 빈 단장은  월드시리즈 우승으로 향하는 관문에서  자신이 이끌고 있는 선수들의 총 연봉의  세 배가 넘는 스타급 플레이어들만 모여 있는 뉴욕 양키스를 만나게 된다. 

 오클랜드 애슬레틱스 야구팀은 9회 말까지  혼신의 힘을 기울였지만  승리는 뉴욕 양키스에게 돌아가  끝내 패해 윌드시리즈 진출에 실패한다. 

폐배를 분석 할 겨를도 없었던 빌리 빈 단장은 불공정한 게임을 승리로 이끄는 기술인 '머니볼' 이론을  오클랜드 팀에 적용 시켜 보려 하지만 팀을 지탱하는 탑 플레이어 선수들이 부자 구단들에게 거액의 연봉과 계약금을 제안 받자  선수들을 붙잡을 돈이 없는 가난한 구단 오클랜드는 기존 전력을 유지하는 것조차 벅찬 상황에 맞닥뜨리게 된다.

감독과 의견 충돌로 인해  뜻대로 선수 영입을 하지 못한 빌리 빈 단장은 감독의 의견과 무관하게 해티 버그를 1루수로 기용하게 만들려고 올스타급 선수인  펜나라를 트레이드 시장에 이름을 올린 후 구단의 스텝들과 스카우터들을 모아 놓고 이렇게 말한다.

“우리는 돈이 없다. 그래서 많은 돈을 지불하고 스타선수를 데려가는 부자구단과 경쟁할 수 없다. 따라서 아직 주목 받지는 못하고 있지만 숨겨진 재능을 가지고 있는 선수를 찾아야 한다. 기존의 잣대에서 저 평가 받는 선수들 중에서 우리의 기준을 만족하는 선수를 골라내야 한다.'

-마이클 루이스의 <머니볼>중에서 

적은 돈으로 최선의 팀을 꾸리기 위해 고군 분투 하고 있던 오클랜드의 빌리 빈 단장은  당시는 생소한 개념이었던 세이버매트릭스를 적극 도입해 선수들을 분석하는 방법을 쓰고 있는 피터를 오클랜드로 스카웃한다. 

빌리 빈 단장은 온갖 반대에 부딪히지만 그는 피터의 분석 도구를 활용해서 자신의 방식을 믿고 저렴하지만 야구계에서 평가 절하된 선수들을 끌어 모아 떠난 선수들의 빈자리를 메꾸는 변혁을 시도한다.

오랫동안 야구에서  타율은 타자를 평가하는 가장 훌륭한 지표라고 평가되어 왔다.  따라서 타율은 타자가 안타를 치는 경우 만을 상정하지만, 출루율은 경기에서 아웃을 당하지 않는 모든 경우를 상정한다. 

그렇기 때문에 상대방이 아웃카운트를 쌓아 경기를 쉽게 풀어나가는 것을 방해할 수 있는 훌륭한 지표인 출루율이 타율의 그늘 아래 가려 오랜 시간 동안  저평가를 받고 있었다.

 빌리 단장은  타율 대신 출루율이 더 승리에 도움이 되는, 가치 있는 지표라고 평가했다. 이 평가에 대한 이유가 [머니볼]에서 나타나는 혁신의 핵심이자 야구의 본질이다. 

1.현재 아무리 성공적이라고 해도 변화는 언제나 필요하다. 

영원한 현상유지는 없다. 돈이 없을 때는 장기 해결책을 찾지 못하며 단기 해결책만이 가능하다.

 항상 업그레이드를 추구하라. 그렇지 않으면 끝장이다.

 2. 뭔가를 꼭 해야 한다고 말하는 순간 이미 끝장난 것과 다름없다. 형편없는 거래를 하고 말 것이기 때문이다.

 3.모든 선수가 정확히 어떤 가치를 지녔는지 정확하게 알아야 한다. 그래야만 선수의 가격을 제대로 매길 수 있다. 

4,어떤 선수가 필요한지 정확하게 파악하고 그 선수를 붙잡아라.

 5.내가 하는 모든 거래는 대중의 주관적인 판단에 따라 집중 공격을 당할 것이다. 

-마이클 루이스의 '머니볼' 중에서

 머니볼에서  단장 빌리 빈은 머니볼 이론으로 무장해서 우승에 도전 했지만 실패를 하고 나서야 비로소 자신의 의지가  어긋났음을 알고 크게 좌절하는 순간 결국 공은 담장을 넘어갔다.

"제레미 브라운이요 앤 아시다시피 2루로 뛰는 걸 겁내죠 6주전 경기에요 강속구를 받아쳐서 중앙 깊숙히 날렸어요 이 부분이 흥미로워요. 안하던 짓을 하거든요. 1루로 내달리는 거에요. 그리고 계속 더 달리죠.봐요 여기서 제레미의 악몽이 현실로 나타나요" 

"모두 비웃는군" 

"그는 이제 깨달아요 자기가 친공이 펜스를 넘어 날아갔다는 걸 홈런을 치고도 그걸 몰랐던 거죠"

-마이클 루이스의 <머니볼>중에서 

20여 년 전 미국 메이저리그의 상식을 뒤엎은 빌리 빈 단장의 개혁은, 현재 메이저리그의 모든 팀이 사용하는 보편적인 방식이 되었지만 한국 프로야구에서는 이제  막 도입하고 있다.

한 해 동안 프로야구 경기는 메이저리그는 162경기가 열리고 한국 프로야구 리그는 연간 144경기가 열린다. 

포스트시즌에 진출하면 현재 시스템상 최대 19경기까지 더 치러야 하고 여기에 시범경기와 훈련기간까지  포함한다면 1년 365일 동안  거의 300일 동안 야구 경기장에서 뛰어야 한다.

야구는 어제 경기가 잘 풀렸다고 오늘 경기가 잘 풀린다는 보장도 없고 어제 홈런을 날렸지만 오늘 경기에서 내 기록을 상대 선수가 깨버리는 경우도 있다.

200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속구, 커브, 슬라이더만으로 타자를 상대해도 됐고 시속 150㎞가 아주 빠르다고 여겨지던 때가 있었지만  지금은 체인지업, 스위퍼 등도 갖춰야 하고  시속 160㎞ 이상 날아 오르는 공에도 만반에 대비를 갖춰야 한다.

어제 보다 더 빨라진  공의 속도에 맞춰 방망이 반응 속도도 빨라져야 하기 때문에  어제의 야구로 오늘의 야구를 이길 수가 없고 늘 이기는 팀도, 늘 지는 팀도 없다. 

아주 잘하는 팀도 10번 중 2~3번은 지고, 시즌 초반 부터 부진을 겪던 팀도  10번 중 3번 이상은 이긴다.

따라서 매 시즌 마다 팀에  언제나 영웅인 선수도,  역적인 선수도 없다. 

오로지 야구 경기에서는 아웃과 세이프, 볼과 스트라이크의 절묘한  균형 속에서 그저 더 잘하는 팀이, 덜 실수하는 팀이 최후의 승자가  될 뿐이다.

따라서 야구 경기장에서 뛰는 선수들에게  매일이 새로운 기회다. 

어제의 승리를  토대로 새로운 전략을 짜서 기회를 만들 수도 있고, 어제의 실패를 뒤로 하고 다시 시작할 수도 있다. 

야구에서는 첫 타석에서 빈타로 물러나면 바로 교체되거나  안타를 치고 출루했어도 다음 기회가 아예 없을 수도 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선수들은 이 상태로 주저 앉지 않고 다음 경기에 나가고 연속 출전 하며 기회를 잡는다.

설령 대기석에 앉아 있는 선수들 조차도 하루 200~300개 이상의 스윙 연습을 하며 매일 자신과의  경기를 치르고 있다. 

한 방의 홈런으로 승리를 거머쥘 수 있는 야구는 그 한 방을 터트리기 위해 누구보다 많은 노력을 해야 한다.

 야구의 마지막 볼이 자신도 모르게  경기의 승률을 뒤바꾸고  그리고 세상을  변화 시키는 경우가 많다. 

종착점이 없는 야구는 이렇게 매일 새로운 경기를 나서고, 우리의 인생도 마찬가지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조선 시대 선비라는 신분을 떠올릴 때면  자동적으로 연상 되는 이미지가 있다.

-아무리 가난해도 자신만 살기 위해  남에게 구걸하지 않는 사람.

- 옳은 일이 아니라면 하늘이 두 쪽 나도 거부하며 올곧은 기개를 품고 있는 사람

-잠깐 누릴 호사와 영광보다는 오래도록 남을 가치를 지키려는 사람

이렇게 연상 되는 이미지를 떠올리다 보면 자연스럽게 넷플릭스에서 방영 되고 있는 퓨전 사극 속의 선비의 모습들이 슬라이드 영상처럼 지나간다.

가문의 명예를 지키고 나라를 전란 속에서 구하고 왕을 보필 하여 백성의 삶을 보살 피고 그리고 신분차를 극복하며 사랑도 얻는 선비는  ‘곧 죽어도 이것 만은 포기할 수 없다'는 기개와 지조를 지켰던 모습은  현대인들의 허구성을 양념칠한 드라마가 아닌  기록되지 않은 실제 역사 속에서 존재 했을 지도 모른다. 
가문의 명예를 지키고 나라를 전란 속에서 구하고 왕을 보필 하여 백성의 삶을 보살 피고 그리고 신분차를 극복하며 사랑도 얻는 선비는  ‘곧 죽어도 이것 만은 포기할 수 없다'는 기개와 지조를 지켰던 모습은  현대인들의 허구성을 양념칠한 드라마가 아닌  기록되지 않은 실제 역사 속에서 존재 했을 지도 모른다. 

유숙 ‘수계도’ 

조선 시대 오랫 동안 벼슬을 하지 못한 선비는 죽을 때까지 흰색으로 지은 두루마기를 입고 종이로 만든 창과 흙벽으로 된 초가집에서 방에 고드름이 주렁 주렁 매달려도  시나 읊조리며 지냈다는 일화들이 여러 일화 를 통해 전해 지고 있다.

하지만 이에 대한  일화는 일부는 맞고 일부는 미화 되었다.

철저한 신분 계급 사회였던 조선 시대에 중인 계급 이상의 집안에서 태어난 자손들은 7세를 넘기면 유교의 기본 예의범절과 붓글씨 쓰는 법부터 시작해서 천자문, 사자소학, 소학, 명심보감 등을 읽고 쓰면서 자연스럽게   시,서,화를 익혀 나갔다.

 10살을 넘기면 역사서를 탐독 하고 중국의 사상 철학을 공부 했고 성균관에 입학해서 중앙 정치 무대로 나가기 위한 예비 행정 과정과 정치 수업을 집중적으로 받았다.

따라서 신분이 선비인 이들은 딱히 뚜렷한 직업이 없어도 충분히 먹고 살 만한 집과 땅을 갖고 있었던 기득권 계층이였다.

조선후기 영조 집권기에 태어났던 연암 박지원은 조상 대대로 금수저 집안이여서 10대 시절에 아버지를 따라 중국의 문물을 일찌감치 접했던 최상위 계층이였다.

그는  한성부판관, 면천군수, 양양부사 등을 역임한 조선 후기 최고의  문신이자 학자이면서도 낙후된 조선과 달리 눈부신 발전을 이룬 중국의 선진 문물을 직접 관찰 해서 조선 경제를 일으켜 세우려고 했지만 막강한 신분 계층인 선비들에 의해 그 뜻을 이루지 못했다.

연암 박지원은 자신의 저서  <양반전兩班傳>에서 조선 선비를 이렇게 정의 했다.

'선비란 바로 농사일도 아니 하고 장사도 아니 하면서 그런대로 문장과 역사를 섭렵하여(不耕不商 粗涉文史) 크게는 문과, 작게는 생원, 진사 등 양반으로서의 나갈 길을 걸어가던 사람들을 말한다'고 하였다. 따라서 이들은 당대 사회에서 가장 높은 신분에 있던 그룹이며, 또 그럼으로써 이들대로 독특한 자존심이 있기도 하였다.”

-연암 박지원의 <양반전> 중에서

연암 박지원이 언급한 선비의 '독특한 자존심' 은 바로 일반 백성의 처지와 삶을 절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계급적 우월 의식'을 의미 한다.

선비들이 보여주는 올곧은 자존심과 태도 역시, 자신들의 신분을 지키며 조선 사회에 기득권을 행사 해서 백성들은 벌레 보다 못한 삶을 살고 있더라도 그것은 그들의 태생적 신분 탓으로 여겼다.

학교 교육 과정에서 윤리 과목 시간에 배웠던 '유교' 사상에서 선비라는 신분 계층의 유학적 가치관은 수기(修己)·치인(治人)·입언(立言) 이  세 가지 항목이 충족 되어야 한다고 배웠다.

수기(修己)라는 한자를 유교 사상으로  풀이 해보면 백성을 다스리는 신분인 선비는 가장 먼저 인격적 자질을 길러야 하고 그 다음으로 치인(治人)은 도덕적 사상과 철학적 포부와 이상을 세상에 이롭게 하기 위해 두루 펼쳐 보여야 한다.

마지막 입언(立言)에서 선비의 삶의 가치는 나와 이웃의 양식이 아니라 함께 어울려서 살 수 있는 토대를 만들어 후대를 위해 교훈을 남겨 놔야 한다.

이 세가지 선비의 유학적 가치관 중에서 어떤 걸 더 중시 해야 하는 것을 두고 오랫도록 문인들끼리 지역파벌로 나눠져서 온갖 더러운 싸움질을 해댔다.

왜구의 침입으로 나라 전체가 약탈 당해도 선비들은 정쟁을 일삼았고 중국을 하늘의 신보다 더 숭배해서 굴욕적인 외교를 하며 열심히 조공을 받혔다.

선비들이 가문의 명예를 위해 자신들의 후손들이 자자손손 잘 먹고 잘 살게 하기 위해 온갖 비리와 뇌물로 배불리 먹고 살 때 가장 밑바닥 계층인 백성들의 평균 수명은 40세를 넘기지 못했다.

김홍도 '삼공불환도’,삼성미술관 리움 소장 

오래도록 굶주림에 시달려서 황달에 걸려 배가 남산 만하게 불러서  들과 산에서 자라는 풀들만 먹다가 영양실조로 아사한 백성들과 달리 조선 시대 선비들은 대궐 같은 기와 집에서 따뜻한 온돌 방에서 난초를 키웠고 마당에는 닭보다 더 진귀한 두루미를 애완동물 처럼 키웠다.

천원 한 장으로 살 수 있는 식품들이 거의 사라지고 있는 고물가 시대에 서민들에게 숫자 0과 1의 차이는 엄청나게 크다.

세일품목, 반값세일, 매장 마감 할인 시간에 떨이 상품 그리고 현지 직송 거래 상품, 못난이 상품들을 구입하며 허리 띠를 졸라 매도  전에 구입했던 상품들의 크기가 작아졌고 용량도 줄어서 서민들의 삶의 질까지 기업의 얍삽함에 눈 속임 당하고 있다.

고물가에 허리가 휘고 공공 요금까지 들썩여서 야채도 과일도 너무 비싸서  서민들은 집에서 직접 키우며 자급자족 해야 할 지경까지 이르렀다.

현 시대의 선비 계층은 서울에 가장 노른자 땅인 영등포구 의사당대로를 자유자재로 드나들며 법카와 후원금 그리고 국민의 혈세로 온갖 혜택을 누리고 살고 있는 뱃지를 단 이들이다.

선거철을 앞둘 때 마다 너도 나도 찾아 가는 재래 시장과 지하철 역 입구 그리고 철도역에 얼굴을 드러냈던 정치인들은 내란 수괴범 탄핵 반대와 찬성 집회 장에서 가끔씩 마이크를 들고 소리쳐 대거나 여기 저기 유툽과 팟캐스트에 나와서 자신들의  권력을 지키는데  정신이 팔려 있다.

뱃지를 달고 있는 특권층들은 가장 저렴한 물건을 사기 위해서 사는 집에서 15분 이상 직접 걸어서 물건을 구입했던 적이나 마감 세일을 기다려서 떨이 상품을 구입해 본 적이 있을까?

조선 시대 선비들은 앞 마당에서 야생동물인 두루미가 날아가지 못하게  두루미의 깃털을 잘라내어 닭처럼 키웠다.

이는 곧 선비들의 지조인 수기치인(修己治人) 즉,  나를 닦고, 남을 다스리는 걸 실천 하며 살았던 것이다.



종이 돈에 그려진 선비들이 이 땅에 남긴 업적과 정신적 유산은 교과서를 통해 일 뿐 실생활에 큰 도움이 되지 않는다.

 역사의 수레바퀴를 돌고 돈다 해도  존경과 찬사를 받아야 하는 인물들은  피, 땀, 눈물을 흘리며 하루 하루 성실하게 일터로 나가는  일반 백성들이다.




댓글(2) 먼댓글(0) 좋아요(28)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젤소민아 2026-09-16 01:2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한편의 멋진 인문학 컬럼같은 리뷰 혹은 페이퍼 잘 읽었습니다. 올리신 책들 둘러보러 갑니다~~

scott 2026-09-19 15:11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 젤소민아님 9월의 화창한 계절 만끽하세요 ^^
 

1995년 1월 17일 일본에서 발생한 고베 대지진은 일본 지진 사상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두 번째로 강력했던 규모 7.3, 진도 7의 대지진이었다.

사진으로만 보아도 이런 지진 규모에서 대피 조차 하지 못했을 정도로 무너지고 갈라지고 고가 도로가 엿가락처럼 휘고 지반 전체가 땅 속 아래로 푹 가라 앉아서 수 백 세대 가옥이 주저 앉고 무너졌을 정도의 지진 강도는 강력한 폭격을 때려 맞은 것 처럼 도시 전체가 날라가 버렸다.

리히터 규모 별 지진의 강도 기준에 따르면 규모 2-2.9의 진도가 시작 될 때 지반이 흔들리고 있다는 게 느껴지고 규모 3을 넘어가면 대형 트럭 여러 대가 도로 위를 질주 할 때 흔들리는 강도이고 규모 4를 넘어가면 창문이 깨지고 물건들이 와르르 떨어지고 규모 5에 다다르면 제대로 서 있기 힘든 상태가 된다.

규모 6부터 전봇대가 뽑혀져 나가는 땅의 균열이 시작되고 규모 7이 되면 일본 고베 대 지진처럼 지반 전체가 갈라지고 벌어지면서 아비규환의 지옥의 문이 열린다.


지난달 28일 구마모토현에서 규모 7.1의 강진이 발생했다.

일본 기상청은 진원의 깊이를 약 68㎞로 추정했으며, 이번 지진으로 인한 쓰나미 우려는 없는 것으로 확인됐다고 밝혔지만 이번 지진으로 이바라키현과 사이타마현, 지바현, 도쿄도 등에서는 일본 기상청 기준 최대 진도 5약의 흔들림이 관측됐다.

진도 7은 건물이 파손 될 정도로 강한 지진이고 추후 여진이 이어질 가능성도 클 정도로 이번 지진은 한번 발생하고 지나가는 지진의 강도가 아니다.

도쿄에서 발생한 지진 5약의 강도는 고층 건물에서 길고 느린 흔들림이 이어지는 장주기 지진동이 이어져서   큰 흔들림으로 무언가를 잡지 않으면 걷기 어려워지고 선반 위 식기나 책 등이 떨어지는 정도의 강도다.

이 정도 강도라면 11년 전에 발생했던 동 일본 대 지진 정도의 거대 지진이 앞으로 닥쳐 올 것이라고 일본 원전도 무사하지 못할 정도로 국가 대 재앙의 불어 닥친다는 불길한 지진이 이번 미야자키 현을 시작으로 언제든 7도 이상의 강진이 바다부터 시작 될 것으로 예측 해 볼 수 있다.

국가적 재앙 앞에서 똘똘 뭉치는 지진 발생 전 일본 본 회의에서 대규모 재해가 발생했을 때 도쿄의 수도 기능을 대신할 제2의 수도와 해당 지역을 지정하는 법안을 가결 시켰다.

실제 법안 통과 나흘 후인 7월28일 구마모토현에서 규모 7.1, 최대 진도 7의 지진이 발생했으니 대규모 지진이나 후지산 분화 등으로 도쿄가 수도 기능을 하기 어려워질 경우 수도 도쿄의 중요 행정 기관을 홋카이도·미야기현·군마현·아이치현·오사카부·히로시마현·후쿠오카현 등 7개 도부현 중 한 곳으로 이전 한다는 계획을 추진 하고 있다.

일본 열도는 일명 불의 고리라 불리는 환태평양조산대에 있어 지진과 화산 폭발은 언제 어디서 발생 할지 모르는 시한 폭탄급이다.


일본은 매년 수백 차례 지진이 발생하는 일본 땅의 후대인들에게 경각심과 삶의 큰 교훈을 알려 주기 위해 자신들의 섬나라에서 발생하는 각종 재해, 재난 사고 현장을 고스란히 보존해서 야외 박물관으로 만드는 재주도 아주 뛰어나다.

마치 재난 영화의 가장 극적인 장면을 캡쳐 하듯 고베 항구의 뒤틀어진 현장을 위의 사진 처럼 고스란히 보존 하고 있다.

일본 역사상 최악의 재난으로 기록되어 그 재난의 흔적을 남겨 놓은 일명 ‘메모리얼파크’와 ‘사람과 방재 미래센터’는 바다 위를 둥둥 떠 위는 미항(美港)의 모습으로 지금까지 방문객들이 끊이지 않고 있다.

2024년 7월 일본 니가타현에 있는 사도 광산이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되자 마자 사도 광산 매표소에 '세계문화유산 등재'라는 문구를 세워 놓고 시민들은 '세계유산 등재'가 된 것을 자축하며 엄청난 관광 수익을 올릴 준비를 하고 있다.​

일본 니가타현 소재 사도광산은 에도시대인 16세기에서 19세기까지 전통 수공예 금 생산을 하던 곳으로, 메이지 시대 들어 사도광산을 기계화하면서 많은 조선인 노동자들이 강제로 투입되었다.

1943년 사도광산에서 목숨을 잃을 정도로 가혹한 노동에 내몰린 조선인의 숫자는 대략 1200명 정도로 파악 되고 있지만 일본 정부는 490명이라고 숫자를 축소 하고 강제 징용이라는 단어까지 삭제 하고 노동자 딱 세 글자로 세계 유산을 상대로 꾸준히 성실하게 로비해서 거대한 조선 노동자들의 피 땀 눈물이 배어든 광산을 세계 문화 유산으로 만드는데 성공 했다.

1930년 대부터 사도광산을 운영했던 기업 미쓰비시가 주도적으로 조선인들을 한반도에서 강제로 납치 해서 고용 했는지 조차도 한국 정부는 모르고 있다.

일본이 대동아 전쟁을 시작 했을 당시에 강제로 일본 땅으로 끌려간 조선인들의 숫자는 118만명에 다다르고 이 숫자에서 사도 광산에 동원되었던 조선인 노동자를 추려 내기 힘들다는 것이 우리측 외교부 입장이다.

지난 7월 27일 인도 뉴델리에서 열린 제46차 세계유산위원회의에 참석한 일본 수석대표 카노 타케히로 주유네스코 일본대사는 사도광산에서 일한 “모든 노동자”라 언급했을 당시 한국 외교부는 '모든'이라는 형용사를 듣고도 입 꾹을 한 것이다.

아니면 일본어에 능통하지 않은 관료 집단들이 못 알아 들었다면 ....

굴종 외교를 자처 한 것이다.

반 세기 넘도록 몇 명의 국민이 나라 밖, 지옥의 섬나라가 파 놓은 광산 속에서 얼마나 많이 희생 되었는지 조차 모른다는 건 부끄러운 일이다.

만일 국가에 대 재앙과 재난이 발생 하면 국민의 생명을 책임 질 관료들 정치인들 기타 재력가들은 서둘러 자신들 부터 살아 남기 위해 도망 칠 것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