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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패거리
필립 로스 지음, 김승욱 옮김 / 비채 / 202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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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3년 미국 대법원관 자리에 올라간 얼 워런(1891~1974)이 이끄는 대법원은 매사 진보적인 판결을 내려서 흑백 분리주의 정책을 유지 하고 있었던 미국 사회에 큰 변화를 몰고 오기 시작한다.

가장 먼저 얼 워런 대법관은 흑백 인종차별을 철폐하고 나서 형사피의자와 피고인의 권리를 두텁게 보장했고 선거구 인구 불평등을 위헌으로 판시하면서 보수 정치인들의 표밭을 뒤흔들어 버린다.

일련의 진보적인 판결에도 불구하고 미국 땅에는 여전히 흑인 전용 화장실이 존재 했고 가게와 공공 장소 학교 그리고 클럽 마다 흑인 사절이라는 푯말을 내걸었다.


1960년 11월 8일 민주당의 대선 후보였던 존 에프 케네디가 대통령에 당선 되면서 미국 전역에 진보의 바람이 불기 시작한다.


1963년 11월 22일 재선 선거를 앞두고 미국 텍사스 댈러스 파클랜드 헐스를 퍼레이드 하던 중에 리 하비 오스월드의 총에 맞아 암살 당하고 1968년 미국 대통령 선거 민주당 예비 선거의 후보자 로버트 F. 케네디가 팔레스타인 난민 시르한에게 친이스라엘 성향이라는 이유로 선거 유세 중 총탄에 맞아 그 자리에서 즉사하면서 미국의 진보 정치에 검은 먹구름이 드리워 지게 된다.


8년 후 1968년 대선을 앞둔 대통령 예비 후보 리처드 닉슨은 자기가 대통령이 되면 헌법을 엄격하게 해석하는 법률가를 대법관으로 임명하겠다고 약속하고 1968년 3월 31일 존슨 대통령이 대선 불출마를 선언하자 워런 대법원장은 그가 후임 대법원장을 임명할 수 있도록 사임하겠다는 의사를 밝힌다.

1968년 6월 26일, 존슨 대통령은 자신의 친구이자 예일 로스쿨을 졸업한 유대계 에이브 포터스(1910~1982)를 대법관 후임으로 지명한다.

유대계 에이브 포터스 대법관은 모든 사안에 대해 진보적인 판결을 내렸다는 사실을 크게 우려한 공화당이 강력하게 반발하고 때마침 에이브 포스터는 고액 보수를 받고 강연을 다녔던 과거 이력이 들통나버린다.

논란이 급속도로 확산되자 에이브 포터스는 친구이자 마지막 대통령 임기가 남은 존슨 대통령에게 지명을 철회 할 것을 요청했고 존슨은 이를 받아 들였다.


그 해 11월 공화당 닉슨이 대통령에 당선 되고 워런 대법관이 이듬해 5월에 사임하면서 대법원에 두 명의 대법관 자리가 생기게 되어 닉슨은 이 기회를 놓치지 않고 보수의 가치를 내건 깃발 두 개를 꽂아 버린다.


가장 먼저 닉슨 대통령은 미네소타 출신이자 아이젠하워 행정부에서 법무차관보를 역임한 워런 버거(1907~1995) 컬럼비아 지구(DC) 연방항소법원장을 후임 대법원장으로 지명했다.

그 다음으로 닉슨 대통령은 사우스캐롤라이나 출신인 클레멘츠 헤인스워스 제4연방항소법원장을 지명했으나 과거 인종차별적 발언을 한 사실이 드러나서 상원에서 45대 55로 인준이 부결되자 뒤이어 닉슨은 플로리다 출신인 제5연방항소법원 판사 해럴드 카스웰을 지명했지만 그 역시 인종차별 성향임이 드러나서 상원에서 45대51로 인준이 부결되어버린다.

닉슨은 남부에 보수의 깃발을 꽂으려는 시도가 연달아 실패하게 되자 버거 대법원장이 추천한 미네소타 출신의 하버드 로스쿨을 졸업한 해리 블랙먼(1908~1999을) 제4항소법원 판사를 대법관으로 지명한다.

1970년 6월 상원은 해리 블랙먼을 94대0으로 통과시키고 1년 뒤 대법관 두 명이 건강 상의 이유로 사의를 표명하자 닉슨 정부는 만세를 부르며 버지니아 출신으로 미국변호사협회 회장을 지낸 루이스 파월(1907~1998)과 법무부 차관보이던 윌리엄 렌퀴스트(1924~2005)를 대법관으로 지명하면 미국 대법원을 완벽하게 보수주의자들이 장악 하게 만들어 버린다.

취임 한지 ​불과 2년 반 만에 닉슨 대통령은 대법원장과 대법관 3명을 임명하는 기록을 세워서 대법원을 보수 4인, 중도 2인, 진보 3인으로 바꾸어 버렸다.


미국의 진보 언론은 닉슨의 깃발이 꽂혀진 대법원을 ‘닉슨 대법원’이라고 불렀다.

1972년 1월 7일 일명 닉슨의 꼬리표가 붙은 대법관들로 구성된 미국 대법원은 잇달아 진보적인 판결을 내리면서 닉슨 정부를 경악 시켰고 미 전역으로 엄청난 진보적 개혁의 바람이 불게 만든다.

가장 먼저 1971년 4월 대법원은 먼 거리에서 통학 시켜서 라도 스쿨버스로 백인 학생과 흑인 학생을 통합 시켜야 한다고 판결했다.

이 판결로 많은 백인 학생들이 멀리 떨어진 흑인 학생이 많은 학교로 스쿨버스를 타고 다니게 돼서 백인 학부모들의 강력한 저항이 시작되었다.

곧바로 닉슨은 이 문제에 연방법원이 개입하는 데 반대했으나 버거 대법원장은 대법관 전원 판결로 자신을 지명한 닉슨의 기대를 완전히 저버렸다.

두 번째 진보의 바람을 불러 일으켰던 판결은 ​1971년 6월 30일 미국 정부는 뉴욕타임스와 워싱턴포스트가 기밀문서로 분류된 펜타곤 페이퍼를 게재하는 것을 금지할 수 없다고 판시했지만 대법원은 6대3 판결을 내리고 뒤이어서 사형에 대해 잔혹한 형벌이며 자의적으로 운영되고 있다는 이유로 대법원은 5대4 판결로 위헌으로 판시했다.

이 판결로 사형제를 유지하고자 하는 주(州)는 형법을 개정해서 사형 판결 요건을 엄격히 정해야 했고 차츰 미 전역으로 사형 집행이 중지된다.


지금까지도 찬반의 대립을 불러 일으키며 미국 땅을 분열 시키고 있는 낙태 문제는 1973년 1월 22일 로 대 웨이드(roe vs wade) 낙태 문제에 대법원이 낙태금지법이 헌법이 보장하는 여성의 사생활권을 침해한다며 7대2로 위헌 판결이 선고되기 시작하면서 미 대륙을 넘어 전 세계적인 이슈가 되었다.

당시 대법원은 임신 첫 3개월 동안 여성은 자신의 의사로 낙태를 할 수 있고 3개월 동안 미국의 주정부는 여성의 건강을 위해서 규제할 수 있으며, 마지막 3개월 동안은 여성의 생명과 건강을 위한 경우가 아니면 주 정부 법으로 낙태를 금지할 수 있다고 판시했다.

닉슨이 꽂아 놓은 대법관들 모두 진보적인 성향으로 돌아서서 이번 로 대 웨이드(roe vs wade) 낙태 문제 판결로 낙태를 둘러싼 논쟁에 종지부를 찍었다고 생각했지만 이 판결은 미국 복음주의 기독교와 가톨릭 교회를 중심으로 한 생명 운동(Pro-Life Movement)을 촉발 시키면서 미국을 두 개의 이념과 사상, 종교로 대립하는 양극화에 불을 질러 버렸다.


1980년대 낙태에 대한 입장은 보수와 진보를 가르는 정체성 차원의 문제가 되었고 1980년 11월 4일 공화당 대선 후보인 레이건이 대통령에 당선 되면서 대법원에 또 다시 보수주의 깃발이 꽂히게 된다.

2016년 11월 미국 워싱턴 연방대법원 앞에서 복음주의자들이 ‘생명을 지켜라’ 등의 팻말을 들고 낙태 반대 집회를 열었다. 당시 이들은 5개월 전 대법원이 텍사스주에서 낙태금지 법에 위헌 결정이 내려지자 이에 반발해 본격적으로 행동에 나섰다.


일명 바이블 벨트 지역에 거주 하며 활동하고 있는 미국 복음주의자들은 대선 같은 대형 정치 행사에서 낙태 및 동성애 반대, 작은 정부, 총기 자유화를 내걸며 강한 조직력과 결속력을 바탕으로 일반 유권자보다 적극적으로 투표에 적극적으로 참여한다.

전미복음주의연합(NAE)에 따르면 복음주의자들은 성경을 진지하게 받아들이고 예수를 구원자로 믿으며 다음과 같은 신념을 내세우고 있다.


- 성경주의(성경이 절대적 기준)

-십자가 중심주의(예수의 희생을 강조)

-회심주의(성경에 의한 거듭남을 강조)

-행동주의(사회 참여)


​미국 백인 복음주의자들은 2004년 대선과 2016년 대선에서 모두 공화당 후보인 조지 W 부시 전 대통령(79%)과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81%)에게 완전한 몰표를 던져서 당선을 시켰고 2016년 트럼프를 대통령으로 당선 시키며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서 단합하는 정치 집단세력이라는 걸 증명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진보 성향의 루스 베이더 긴즈버그 대법관이 사망 한지 불과 8일 만에 낙태 반대론자인 보수 성향의 에이미 코니 배럿 판사를 후임으로 지명 했고 2022년 6월 24일 . 진보 성향 대법관 3명을 제외하고 보수 성향으로 채워진 대법원은 로 대 웨이드 판결을 폐기하고 낙태는 각 주가 스스로 규제하도록 판결하면서 후 폭풍이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우리 국민들의 삶 중 어떤 부분에서도 불의를 용납할 수 없다는 생각 때문입니다. 우리는 공정한 사회에 살고 있습니다. 부자와 특권층 뿐만 아니라 가장 힘이 없는 사람들에게도 공정한 사회입니다. 요즘 흑인의 힘이니 여성의 힘이니 이런저런 힘을 이야기하는 사람이 많지 않습니까? 그렇다면 태아의 힘은 어떨까요? 비록 세포에 불과 하다 해도 그들 역시 권리를 갖고 있지 않습니까? 저는 그들에게도 권리가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그 권리를 위해 싸울 겁니다.]

-필립 로스의 <우리 패거리> 중에서


1971년 닉슨 대통령이 낙태에 반대하는 연설을 패러디한 필립 로스의 <우리 패거리>은 ‘트릭 E 딕슨’이라는 가상의 대통령을 내세워 그가 재선을 위해 펼치는 정치적 공작을 거침 없는 독설과 조롱, 유머를 뒤섞으며 공화당 출신 미국 제37대 대통령 리처드 닉슨을 향해 빅 펀치를 날려 버린다.


낙태를 결코 받아들일 수 없다며 ‘태아의 권리’를 주창한 1971년 4월 닉슨의 샌클레멘테 연설을 마치 한편의 풍자극 시나리오처럼 구성한 필립 로스는 태아 권리를 명분 삼아 (1972년 재선거 전) 태아 투표권까지 법제화 시켜서 재선에 당선 되기 위해서 온갖 모략을 참모들과 도모하는 소설 속 대통령 트릭 딕슨을' 리키(Tricky, 사기꾼)'로 부른다.


“이 나라가 다시 위대해지는 데 꼭 필요한 것은 바로 대량의 무지”라는 위험한 생각을 품고 있는 미 합중국 트리키 대통령은 12~13살 짜리 보이스카우트 단원 소년 세명이 반정부 세력 집단으로 파악한 경찰의 강경진압으로 숨지자 정치·군사·법률 참모들을 모아 놓고 사살 진압과 즉결 처분 안부터 좌파 화 공작 시나리오를 짜기 시작한다.

트리키 대통령은 국가의 모든 정책을 마치 미식축구 전략 짜듯 추가 논의로 밀어붙이고 보수성향과 반대의 길을 가는 진보적인 국가를 향해 포르노 정부라 지칭한다.

그는 국가의 공권력으로 사회의 정의와 공공 이익을 우습게 보며 법원에 자신들의 가치 성향에 부합하는 법관들을 앉혀 놓고 시민들의 눈과 입을 가려 버린다.

이렇게 자신의 이익을 대변해 줄 법관들을 앉혀 놓은 트리키 대통령은 “어떤 결정을 내리는가가 아니”라, “결정을 내린다는 사실이 중요”하다는 전체주의적 지배 논리를 시민들에게 늘어 놓는다.

이토록 음험하고 음흉한 다크 베이스 같은 독심술을 품고 있는 대통령의 모습을 작가 필립 로스는 1970년대 미국 사회를 두 개로 갈라 버리며 첨예하게 대립했던 사건들을 수면 위로 올려 버린다.


[목사, 이건 내 정치 생명이 걸린 문제요! 목사와 내가 보기에 더 훌륭한 퀘이커 교도가 되기 위해서라도 지금 우리가 상대하는 어린 녀석 무리는 무시무시한 거짓말에 오염되어 있소. 그들의 정신을 깨우면서 동시에 대통령직의 위엄과 신망을 회복하는 방법을 찾아야 해요. 만약 이 두 가지 중요한 임무를 달성하기 위해 내가 텔레비전에 나가 동성애자라고 말해야 한다면 나는 그렇게 하겠소. 예전에 나는 앨저 히스가 공산주의자라고 용감하게 말했어요. 흐루쇼프를 가리켜 약자를 들볶는 불한당이라는 말도 용감하게 했고, 분명히 말하지만 지금도 나는 스스로 동성애자라고 용감하게 말할 수 있소!]

-필립 로스의 <우리 패거리> 중에서


1971년 이 작품을 발표 할 당시 필립 로스를 향해 복음주의자들이 닉슨 대통령에 대한 모독이라고 맹비난을 퍼붓자 필립 로스는 이에 강하게 반발하며 이렇게 맞 받아쳤다.


'저는 제 2차 세계 대전 동안 뉴저지에서 성장하면서 오로지 국민 전체를 '전쟁 사업'에 총 동원 시키기 위해 라디오와 신문 같은 언론들이 정권의 나팔수가 되어서 전투 소식으로 국민의 마음을 자극했었죠.

저도 그 시절엔 열심히 깡통 모으는데 동참하며 동전 한 푼이라도 이념을 위해 자유를 위해 싸우는 군인 아저씨, 삼촌, 사촌 그리고 이웃들에게 보내줬습니다.

아주 대단히 헌신적인 뉴딜 당원이였죠.

1968년 닉슨 대통령은 우리 집안에서 악당으로 불렸고 종종 이모들은 신문에 그의 얼굴이 실리면 손에 부엌 칼을 들고 찍어낼 정도로 증오 했습니다.

저는 베트남 전쟁 시기에 제 인생에서 가장 정치적인 활동을 활발하게 했고 공산국가를 돌아 다니면서 진정한 자유가 무엇인지 깊이 생각했습니다.

제가 쓴 <우리 패거리>에 등장하는 트리키 대통령을 닉슨 대통령을 풍자하고 우스꽝스러운 똘아이로 그린 것이 아니라 리처드 닉슨 자체가 우스울 정도로 미국 땅에 똘아이 짓을 많이 했습니다.

그만큼 부패하고 음험 하고 무법적인 대통령은 닉슨이 처음이였고 조 매카시도 그 사람보다는 덜 했을 정도죠.

저는 일개 소설가로 고작 이런 이야기로 세상이 바뀌게 될 것이라 생각하고 쓰지 않았습니다.

단지 저는 시위대 한 가운데서 고함 치며 피켓을 흔드는 것보다 종이로 인쇄되어 이런 인간이 버젓이 내뱉는 '미국'이라는 말에 어떤 애국심도 없고 사람들이 살아가는 모습에 대해 애착심도 없는 패거리들끼리 사기 치고 수작 부리는 꼴을 널리 읽혀지게 만들고 싶었습니다.'

-1974년 필립 로스

마흔 살을 갓 넘긴 필립 로스가 6개월이 채 걸리지 않고 뚝딱 완성한 <우리 패거리>는 워터게이트 사건이 터지기 6개월 전에 발표되었고 이 똘아이들의 행동으로 인해 반 세기를 지나 2022년 미국 땅을 두 개로 갈라 버린 낙태법 폐기 법안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사실까지 충격일 정도로 이 작품은 단순한 소설을 넘어서 예언서처럼 읽혀진다.

복음주의가 미 정계 전반에 강한 영향력을 행사하기 시작한 시기는 1970년대 닉슨 집권기로 1973년 연방대법원이 여성의 임신중절 권리를 인정한 ‘로 대(對) 웨이드’ 판결을 내리자 낙태를 죄악시하는 복음주의자들은 거세게 반발하며 거리로 나섰다.

2003년 부시 대통령 재임기간 동안 찬반 논란이 극심했던 ‘부분 출산’(태아의 머리나 몸통 일부를 먼저 꺼내는 낙태 방식)을 금지하자 낙태 반대파는 이 방식이 매우 잔인하며 사실상의 영아 살해라고 반발했고 찬성론자들은 감염 위험이 적고 산모에게 안전한 시술이라고 반박했지만 부시 정권은 밀어붙였다.

2016년 백인 복음주의자들의 강력한 지지로 대통령에 당선 된 트럼프는 집권 이후 줄곧 반낙태, 반이민 정책을 펴며 복음주의자들이 선호하는 정책을 구현했고 재임 중 3명의 보수성향의 대법관을 임명했다.

이 세 명 모두 닉슨 시절에 헌법을 반기를 들며 진보로 돌아섰던 대법관들과 달리 보수적 판결을 충실하게 내리며 미국 사회를 ‘분열과 증오의 정치’로 대립 하게 만들었다.

현재 대선을 앞둔 미국은 전체 비율로 미세하게 바이든이 앞서고 있지만 경합주인 총 6개 지역에선 트럼프가 앞서고 있고 이 지역에는 미국 복음주의자들이 몰려 살고 있다.

필립 로스가 1971년에 쓴 <우리 패거리>의 우두머리이자 미국 역대 최고의 똘아이 대통령 트리키는 이런 말을 내뱉는다.


[미국 대통령, 또 다른 아프리카 국가에서는 십 대 소녀가 이분을 '자유 세계의 지도자'로 부르는 걸 들었습니다. 자유 세계의 지도자, 제 친구이자 저명한 재판관으로 현재 남아메리카에 살고 있는 법조인은 얼마 전 제게 보낸 편지에서 흥미로운 말을 했습니다.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의 최고급 호텔 엘리베이터에서 어떤 남자가 이분을 '미군 최고 통수권자'로 부르는 걸 들었다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이분은 평범한 의미의 지도자가 아니었으니까요. 그는 비범한 의미의 지도자였습니다. 그래서 그를 알았던 우리가 마치 반려동물에게나 붙일 법한 소박하고 허물없는 이름으로 그를 생각하는 겁니다.

어린 강아지에게나 붙일 법한 편안하고 친숙한 이름이죠.]

-필립 로스의 <우리 패거리> 중에서


트럼프는 미국 언론에서 "불법무도한 사이코패스(lawless psychopath)"로 심리 전문가들에게는 자기도취적 인격장애(narcissistic personality disorder)자로 불리고 있지만 충성스러운 지지자들에게는 우리 이익을 대변해 줄 수 있는 유일한 권력자로 칭송 받고 있다.

여러 우려 속에서 이번 미 대선에서 복음주의자들과 지지자들이 똘똘 뭉쳐서 트럼프에게 표를 던지게 된다면 포퓰리스트 사이코패스 패거리들의 이익을 대변하는 미국을 만나게 될 것이고 이는 현재 한국 정치 집단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걸 깨닫게 만들 것이다.



무능하고 교활한 정치인에게 작가가 펜으로 맞서는 최대치의 항거를 보여준 필립 로스의 <우리 패거리>는 전 국가에서 활동하고 있는 이익 집단의 패거리들의 행태와 악행을 실랄하게 풍자한 세기를 뛰어넘는 걸작이다.


[이것은 다른 무엇도 아닌 이념 전쟁입니다. 그래서 우리에게는 자신의 이상을 지킬 의욕과 능력이 있는 대 악마가 필요합니다. 오늘 밤 여러분은 우리의 삶 전체에 대해 판정을 내려야 합니다. 역사의 흐름은 우리 편입니다. 우리는 그 흐름을 계속 우리 편으로 묶어둘 수 있습니다. 우리가 옳은 편이니까요. 우리가 악의 편이니까요. 오해하시면 안 됩니다. 만약 제가 대악마로 선출된다면 악이 궁극적인 승리를 거두게 할 겁니다. 우리 자녀들, 자녀들의 자녀들은 올바름과 평화의 끔찍한 고통을 결코 모르게 할 겁니다.]

-필립 로스의 <우리 패거리>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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젤소민아 2024-07-06 00:4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이달의 당선작, 축하드려요 스콧님~

scott 2024-07-06 02:27   좋아요 1 | URL
감사합니다
젤소민아님 주말 동안 행복한 시간 보내세요 ^^
 
레이먼드 카버의 말 - 황무지에서 대성당까지, 절망에서 피어난 기묘한 희망 마음산책의 '말' 시리즈
레이먼드 카버 지음, 마셜 브루스 젠트리.윌리엄 L. 스털 엮음, 고영범 옮김 / 마음산책 / 202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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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하루 종일 나 자신에 대해 이야기 하다 보니

내가 깊이 생각했던 것, 그래서

하게 된 일이

떠올랐다. 내가 그 오랜 세월 동안

메리엔-지금 그녀는 자신을 애나라고

부른다- 에 대해 품었던 마음들

나는 물을 한 잔 받으러 갔다.

창가에 한참 서 있었다.

다시 돌아 왔을 때 우리는

다음 주제로 쉽게 넘어갔다.

내가 살아온 이야기를 이어갔다. 하지만

대못처럼 파고드는 그 기억.

1983년에 발표한 <대성당>으로 전미 도서상과 퓰리처상 후보에 오른 레이먼드 카버는 미국예술문학아카데미에서 제공하는 스트라우스 기금의 수혜자로 선정되면서 3년 전 부터 학생들을 가르쳤던 시러큐스 대학 정교수 자리에 과감히 사표를 던진다.

그는 자신의 문학적 뮤즈이자 동반자인 시인 테스 갤러거와 함께 위싱턴 주 포트앤젤레스로 이주하고 방문객 사절이라는 팻말을 붙여 놓고 타자기를 치는 동안에는 집안의 전화 선까지 모조리 빼버린다.

매일 아침 눈을 뜨면 시를 읽고 반나절 동안 시 한 편을 써낸 카버는 <대성당> 성공 이후 단 한편의 소설을 쓰지 못했지만 그의 명성은 전 세계로 퍼져 나가면서 인터뷰가 줄을 이었고 서평과 추천사를 써 달라는 출판사에서 보내는 편지들이 매일 한 가득 도착했고 문학 행사를 여는 도시 마다 그에게 초대장을 보냈다.

각종 문예지마다 카버의 문장을 흉내 낸 작품들이 쏟아져 나왔을 정도로 1980년대 미국 문학계에 최고의 스타는 레이먼드 카버 였다.


1971년 <에스콰이어> 잡지에 <이웃 사람들> 단편이 처음 실렸을 때부터 카버의 글은 대중들에게 좋은 반응을 불러 일으켰고 이후 카버의 문장을 대폭 뜯어 고쳐서 미니멀리스트라는 호칭을 받게 만든 고든 리시가 편집하는 작품 마다 호평을 얻었지만 한편으로는 더러운 삶을 사는 밑바닥 백인의 이야기를 팔아 먹는다는 악평이 쏟아졌다.

하지만 그의 단편집 <제발 조용히 좀 해요>와 <사랑을 말할 때 우리가 이야기 하는 것>이 출간 되면서 대중들의 폭발적인 반응을 불러 일으켰고 수록된 단편들이 영화로 제작되면서 레이먼드 카버는 미국 문학을 대표하는 작가가 된다.

노동자 집안에서 태어나 집안에 책이라곤 없었던 환경 속에서 여덟 살 때부터 술을 마셨고 스무 살이 채 되지 않았을 때 자신의 아이를 임신한 열 여섯 살의 여자 친구와 결혼식을 올렸던 레이먼드 카버는 지독한 가난과 파산과 알콜 중독으로 파멸 직전까지 내몰리면서도 불굴의 의지로 학업을 이어나갔고 글쓰기를 포기 하지 않았다.


사랑과 이별, 미움, 질투, 두려움, 슬픔 같은 살아가는 동안 느끼고 겪게 되는 인간의 모든 감정들이 각기 다른 상황 속에서 어떤 방향으로 흘러 가게 되는지 카버는 자신이 창조한 모든 인물들의 구석 구석을 냉정하게 들여다 보지만 개개인의 고유성을 존중 해주면서 연민의 시선으로 접근 한다.

단어 하나 하나에 인간의 생각과 행동의 의미를 담은 그의 글에는 평범한 사람들이 사소하지만 살아가는데 절대로 잊어 버려서는 안되는 것들에 대한 이야기들이 담겨 있다.


스무 살에 두 아이의 아버지가 된 카버는 아이들을 양육하기 위해 미 전역을 돌아 다니며 주유소 시급일 부터 튤립 수확, 병원 청소, 화장실 청소, 장난감 조립, 쿠키 공장,교과서 편집일을 전전 하는 동안 파산과 불화, 중독과 이혼으로 삶의 밑바닥까지 추락했다.

레이먼드 카버의 단편 대부분은 부부 사이에서 발생한 이야기들로 그의 출세작인 <제발 조용히 좀 해요>에서 보여준 의심과 질투, 분노는 이후에 출간한 작품집 <사랑을 말할 때 우리가 이야기하는 것>에서 '사랑'을 전면으로 내세운 이야기까지 지난 시절 고통과 절망에서 몸부림쳤던 모습을 겹겹이 이어 붙여 놓았다.



카버의 단편들을 모조리 읽고 나서 맨 앞 장으로 돌아가 두 번 세 번 읽어 나갈 때마다 그가 살아 왔던 인생들이 보였다.

16살 나이에 임신해서 무일푼에 카버와 결혼한 아내 메리엔은 불안정한 주거지에 극심한 생활고 속에서도 어떤 일이든 마다 하지 않고 일자리를 찾아 다녔고 남편 카버가 변변치 않은 직장 생활을 하면서 학교를 다니고 글을 쓸 수 있게 배려 했고 아이들 양육에도 소홀하지 않았다.

반면에 남편 카버는 아내가 사회적으로 승승 장구 할 때마다 외도를 의심했고 수시로 폭력을 휘둘렀다.

그는 알콜 중독으로 치료소를 들락 날락 거리는 동안에는 아내에게 칼을 휘둘러서 경찰이 출동할 정도로 상태가 심각했다.

이런 불화 속에서도 아내는 10여 년 동안 힘겹게 대학에 다녔고 법률가 꿈을 포기 하지 않았고 남편 카버는 아내가 장학금 수혜자로 선정 될 때마다 짐을 싸서 다른 곳으로 이사를 가버리는 속 좁은 남자였다.


남편 카버에게 가정 폭력을 당하면서도 끝까지 결혼 생활을 지키려 했던 아내 메리언 역시 몸과 마음에 병이 들어 알콜에 빠져서 병원에 드나들었고 이런 부모를 뒷바라지 했던 속 깊은 딸 역시 알콜 중독자가 된다.

1977년 지역 문학 행사에서 만난 시인 테스 갤러거와 사랑에 빠진 카버가 먼저 이혼 서류를 내밀었고 5년 후 이혼을 한 카버는 과거의 나쁜 남자에서 벗어나 시라큐스 대학의 교수로 부임하면서 새로운 인생의 날개를 펼쳤다.


미국의 북서쪽에 위치한 워싱턴주의 내륙의 소도시 야키마 출신인 카버는 미국의 전형적인 백인 노동자 남성의 마초적이면서 비굴하고 소심한 성격을 고스란히 가지고 있었다.

흑인과 백인이 완전히 분리된 시절에 성장했던 카버는 초기 작품에서 흑인들을 잠재적인 범죄자로 간주하는 태도를 보이며 작품 속에서 거친 용어를 내뱉으며 노골적이게 흑인에 대해 느끼는 거리감과 공포심을 드러냈다.

하지만 차츰 시간이 흐를 수록 그는 사랑과 공감에 대한 이야기를 써 나갔고 <대성당> 이라는 작품에서 장애를 가진 흑인과 백인이 하나의 펜을 잡고 함께 대성당을 그려내는 행위를 통해 나와 다른 피부색과 출신의 사람들과 함께 무언가를 나누고 만들어 나가는 모습으로 발전시켜 나갔다.

레이먼드 카버는 다중적인 시점으로 현란한 기교를 섞은 실험적인 성격의 스토리가 아닌 평범한 사람들의 일상에 숨어 있는 나약한 모습을 그린 그는 한때 평론가들로 부터 '더러운 리얼리즘'이라는 혹평을 들었고 그가 쓴 시는 어떤 평론가도 공개적으로 평론을 쓰지 않을 정도로 일절 시인이라는 소리를 들어 본 적이 없었다.

1983년 <대성당>이 퓰리처 상 후보에 올라갔고 종신직 교수직에 엄청난 문학 기금의 수혜자가 되고 미국을 넘어 전 세계 언어로 책들이 번역 되어 미국 단편 소설의 르네상스 시대를 주도 하며 비로소 삶에 환한 등불이 밝혀지던 시기인 1986년 폐암 선고를 받는다.

연기와 기만

저녁 식사를 마친 뒤 타티야나 이바노브나가

뜨개질거리를 붙들고 조용히 앉았을 때, 그는 그녀의

손가락들에 시선을 고정한 채 말을 이어갔다.

'살아가려면 최대한 서둘러야 해요. 내 친구...'그가 말했다.

'미래를 위해 현재를 희생해야 한다는 생각 따위는 말아요! 현재에는 젊은, 건강, 불이 있지만 미래는 연기와 기만일 뿐이에요.! 스무 살이 되는 즉시 인생을 시작해요.

티티야나 이바노브나는 뜨개바늘을 떨어뜨렸다.

-안톤 체호프, <비밀 조언자>

폐의 3분의 2를 들어낸 대 수술을 받은 카버는 매일 아침 동반자 갤러거가 안톤 체홉의 단편 하나를 읽으면 그는 늦은 저녁 시간에 시 한 편을 썼다.

레이먼드 카버는 50년의 세월을 사는 동안 총 두 번의 인생을 살면서 마지막 생애 끝자락에서 체홉의 단편 속에서 자신이 살아 온 지난 날의 삶을 읽었다.

마지막 몇 해를 앞 둔 카버는 체홉의 단편들 속에서 시어들을 골라내고 행갈이를 해서 부분적으로 문장을 다듬어 시의 형태로 만들어 나가면서 체홉의 글 속에 자신의 삶을 끼워 넣었다.


예감

'어떤 예감이 들어요... 어떤 이상하고

암울한 예감 때문에 우울해요. 꼭

사랑하는 누군가가 죽을 것만 같아요.'

'결혼하셨나요, 의사 선생님?' 가족이 있으시죠!'

'아무도요. 홀몸이에요. 심지어 친구도 하나 없어요.

부인 말씀해보시죠. 예감을 믿으시나요?'

'오, 그럼요. 믿죠.'

-안톤 체홉 <영원한 기계>


카버의 단편 이야기 속의 사람들은 삶에 막다른 골목에 다다라서 싸움이 시작 되기도 전에 포기하거나 희생하거나 방관하거나 아니면 이도 저도 아닌 선택을 한다.

너무나도 잔인하고 너무나도 무작위적인 주변부 인물들의 암울한 삶의 문제들을 카버는 마치 깃털로 살짝 건드리듯 부드러운 어조로 끔찍한 사고가 발생한다는 전조등을 켜놓고 속삭이듯 긴장감 넘치는 대화체로 이야기를 수면 위로 끌어 올린다.

30여 페이지 분량 속에 시작과 중간과 마지막이 담긴 인물들의 삶을 담아낸 카버는 글을 쓰기 시작할 때부터 시와 소설을 동시에 썼을 정도로 밑바닥 부터 창작을 차곡 차곡 다져나갔다.



'꿈이란, 결국 우리가 거기에서 깨어나야 하는 어떤 상태입니다. 그런 순간은 발견되어야 하고 상상 되어야 하는 것이다.'

-레이먼드 카버

나는 지난 시절에 읽었던 카버의 단편집 보다 그의 시를 자주 읽고 있다.

그가 남긴 시들은 지극히 개인적이지만 사소한 기억들과 아버지, 낚시, 사냥, 여행,첫 번째 아내와 두 아이들 그리고 두 번째 아내인 시인 갤러거와 기타 다른 사람들의 모습들 그리고 마지막 눈을 감는 모습까지 담고 있다.



만약 내가 운이 좋다면, 온갖 줄을 다 꽂은 채 병원 침대에

누워 있겠지. 튜브가 내 코로도

기어 들어가고 하지만 친구들 겁먹지 마!

지금 얘기해두지만 그거 다 괜찮아.

마지막 순간에 그 정도는 요구 할 수 있지

누군가가 그랬으면 좋겠는데, 모두에게 전화를 돌려서

이렇게 말하겠지 '빨리 와, 얼마 못 갈 것 같아!'

그러면 다들 오겠지. 그러면 나로서는 작별 인사를 할 시간이

생길 거야. 내가 사랑하던 이들 한 사람 한 사람에게

-나의 죽음 중에서

1988년 5월 마지막 인터뷰에서 카버는 이런 말을 남겼다.


'저는 가난한 노동자 계급에 속한 사람입니다. 어린이였을 때도 어른이였을 때도 저는 그들 중 한 사람이였습니다. 작품을 출간하자 마자 미니멀리스트라는 말을 들었지만 제 소설은 미니멀리즘을 넘어 그 이상의 것을 담고 있습니다. 평론가들에게 검은 잉크로 휘갈겼다는 소리를 들은 시에는 제 삶의 모습이 투영 되어 있습니다.

비록 시인으로 불리지 않지만 지난 시절에 사나흘 정도 술이 깨어 있을 때 시를 쓰고 나면 이야기가 떠올랐고 정신을 차려서 문장에 리듬감을 담아서 수시로 찾아 오는 잔인한 생각을 떨쳐 버리려고 노력했습니다.

저는 제가 아는 것에 대해 쓰려고 노력했고 그렇게 쓰다보니 어디서든 일어날 수 있는 이야기를 쓰게 되었습니다. 방사선 치료를 받고 있으니 곧 좋아 질 것이고 어쨌든 전 운이 좋은 사람입니다.'

-레이먼드 카버


이 인터뷰를 마친 카버는 한 달 후 양쪽 폐에 모두 암이 재발하고 6월 17일 네바다주 리노에서 시인 갤러거와 결혼식을 올린다.

7월 알래스카로 낚시 여행을 떠나고 돌아 와서 시애틀 병원에 입원하지만 시한부 선고를 받고 퇴원한다.

1988년 8월 2일 포트앤젤레스 자택에서 숨을 거둔 카버는 2틀 후 입관 되어 오션뷰 공동묘지에 안장 되었다.

그는 평생 동안 가난과 고통에서 발버둥치며 사랑 받기 위해 글을 썼고 사랑 받았다고 생각할 때 세상을 떠났다.

그의 무덤에 세워진 화강암 묘비에는 '시인, 단편소설 작가. 에세이스트'라고 적혀 있고 가장 마지막 줄에는 <만년의 편린 Late Fragment>라 새겨져 있다.


어쨌거나, 이번 생에서 원하던 걸

얻긴 했나?

그랬지.

그게 뭐였지?

내가 사랑 받은 인간이었다고 스스로를 일컫는 것, 내가

이 지상에서 사랑 받았다고 느끼는 것

-시집< 폭포로 가는 새로운 길>의 '만년의 편린' 중에서

50세로 세상을 떠난 카버는 25년 동안의 다섯권 분량의 소설과 시, 산문, 그리고 서문이 담긴 작가 선집에 수록된 것 까지 포함 해서 총 73편의 글을 남겼다.


그리고 여기 이 책 속에 25년의 작가 인생을 사는 동안 했던 24개의 인터뷰가 500여페이지 분량 속에 그의 인생 철학과 창작 과정들이 모두 담겨 있다.

각각의 인터뷰가 곧 인간 레이먼드 카버의 인생 이야기들로 이어져서 세상을 살아가는 힘은 결국 읽고 쓰는 행위에 있다는 것을 깨닫게 만든다.


'재능은 누구나 다 가지고 있지만, 열정이 있는 사람들만 계속해서 씁니다.'

-레이먼드 카버(1938-19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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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고 2024-05-31 09:17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마지막 말이 정말 좋네요 재능은 누구나 있지만 열정이 있는 사람들만 계속 쓴다...ㅠㅠ

scott 2024-05-31 10:50   좋아요 3 | URL
네, 열정만이 삶을 지탱하게 만드는 힘 ^^

2024-06-01 08:4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4-06-01 11:21   URL
비밀 댓글입니다.
 
정의가 잠든 사이에
스테이시 에이브럼스 지음, 권도희 옮김 / 비채 / 202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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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은 악마가 인간에게 행한 가장 큰 속임수 입니다.! 악마는 우리 스스로가 운명을 조종할 수 있다고 믿게 만들었지만, 우리가 만들 수 있는 건 종말밖에 없어요. 사당을 짓기 위해 자연의 법칙을 파괴하는 것은 악마의 짓입니다. 이제 그런 짓은 그만둬야 합니다.!]


6월 18일 일요일 오후

대법관 하위드 윈은 어느 대학 졸업식장에서 연설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와 밤 11시 47분 뇌사 상태에 빠져버린다.

평소와 크게 다르지 않았던 주말 동안 대법원장 하위드 윈에게 어떤 일이 발생한 걸까?

미국 대법원은 회기마다 청문회를 열어 법령을 제정하는데 10월의 첫 번째 월요일이면 윈 대법관과 동료 법관들은 딱한 사정을 가진 자들과 그들을 대리하는 변호사들에게 관용을 구할 시간을 분배해주고 심의를 시작한다.

통상적으로 법률 원칙에 어긋나지 않게 6월 마지막 날 밤 자정이 되면 무죄이든 유죄이든 결과가 나오고 전통에 따라 그들은 마지막 주에 가장 중요한 사안들을 분배하고 판결을 내린다.

사안에 따라 판결이 7월로 넘어가는 경우도 있지만 대법관 윈의 재임 기간 동안에는 절대로 그 기간 까지 넘긴 적 없이 6월 30일 날까지 모든 것이 결판 나고 마무리 된다.

대법관이 쓰러지기 전인 밤 11시, 그의 방에 들어간 간병인은 약병이 바닥에 떨어져 있는 걸 발견하고 급히 의료진에게 연락을 한다.


[그녀에게 전해 ...해답을 구하려면 동쪽에서 찾아보라고, 강을 봐야 해. 그 사이에 있는 광장으로 가야해. 라스커, 바우어 날 용서해]라는 말을 남기고 혼수 상태에 빠진다.


다음날 아침 6월 19일 월요일, 대법관의 서기 에이버리 킨은 대법관 윈이 쓰러지기 직전에 자신을 법적 후견인으로 지명했다는 통보를 받고 의문의 혼수 상태에 빠진 대법관 윈을 둘러싼 배후를 조사하기 시작한다.


'이게 대체 무슨 일이지? 졸업식에서 있었던 일 때문에 윈 대법관님한테 무슨 일이 생긴건가?'


대법관이 혼수상태에 빠지자 대통령 측에선 혼수상태인 대법관은 앞서 합의된 내용에 서명 할 수도 없고 법적 후견인 비서에게 대신 투표 할 수 있는 권한을 줄 수 없다고 판단하고 후견인 비서에게 사임하라는 압박을 가한다.

하지만 이런 불의의 상황은 역사적 사례로도 없었고 미국 헌법 3조에 의하면 질병으로 인해 그 직위를 거두는 것을 인정하지 않는다.

따라서 혼수 상태에 빠진 대법관은 스스로 사임을 하지 못하기 때문에 숨이 끊어지기 전까지 법원에서 이름도 자리도 없애 버리지 못한다.

2년 만에 대통령이 심장마비로 급사 하자 당시 부통령이였던 스토크스가 곧바로 대통령직을 넘겨 받았지만 연이어 터지는 주가 폭락과 마다가스카르에서 발생한 인질 구조 작전 실패, 마이크가 켜진 상태로 사적인 대화가 언론으로 흘러나가 버린 사건들 때문에 지지율이 빠른 속도로 떨어지고 있었다.

설상 가상으로 그동안 어떤 불협화음을 보이지 않았던 동맹국 인도가 배짱을 부리며 무역 협상 테이블에 나오지 않고 있다.

비밀리에 진행되고 있는 군사 프로젝트를 추진하고 있는 스토크스 대통령측은 이 사실이 대법원측으로 흘러 들어갔다는 정황을 포착한다.

그렇다면 대법관 윈이 자신의 서기인 에이버리를 법적 후견인으로 내세워 서명하게 만든 서류는 무엇일까?

컴퓨터에 저장된 파일 어디에도 어떤 증거를 찾지 못하고 자료들, 사건 기록부들 전부 찾아 봐도 대법관이 에이버리에게 위임한 중요한 문서의 서류함을 찾지 못한다.


-체스다이너모

-아니는 강에 있다.

-뒤마는 아니를 찾아라.

-광장에서


체스 경기를 즐겨 했던 대법관은 체스판 기호물에 암호 같은 알파벳을 표기 해 두었다.

상원 법안 의결을 바로 코 앞에 둔 백악관은 대법관 서기 에이버리를 법원 출임금지 상태로 만들어 놓자 그녀는 경찰과 FBI들의 감시 아래서 손과 발이 묶여 버린다.

에이버리는 자신의 머릿 속에 체스판을 띄워 놓고 기형물을 움직이며 각종 이권이 걸려있는 거대한 로비스트 단체와 국가의 중대한 기밀 사항이 들어 있는 특허권 분쟁, 외국 기업 강제 인수 합병 문제들의 뒤엉켜버린 실타래를 풀고 대법관에게 협박과 위협을 가한 이들을 찾기 시작한다.


-염색체 연구는 비밀리에 행해졌고, 티그리스로스트에 의해 부인 되었다.

-혈통을 대상으로 하는 유전자 연구의 무기화.

-미국 재무부에서 사전 승인 없이 히게이아에 수억 달러의 자금을 지급 했다.

-윌 밴스 소령은 CBIRF에 배정된 생화학자다.

-아프가니스탄, 인도, 쉽게 손이 닿는 세계에서 가장 큰 이슬람교도들의 나라

-사라진 과학자, 사라진 예산 분석가, 죽은 간병인, 살해 시도

-외아들을 살리기 위한 필사적인 대법관....


자금이 연방 계좌에서 빠져 나갔다는 증거를 찾아 낸 에이버리는 추적 결과 그 돈이 국토 안보부 소속의 과학 기술 부서에서 나왔다는 정황을 포착해낸다.

일련의 증거와 정황의 퍼즐을 맟춰보니 국가의 법률과 국제 조약에 위배되는 연구에 참여한 이들이 전부 미국 달러를 사용한 사실이 수면 위로 떠오른다.

그렇다면 과연 미국 대통령은 이 사건에 대해 어디까지 알고 있고 어디까지 개입했는가?

히게이아가 이 기술을 상용화 시킨다면 잘못된 염색체 변이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 중에서 누구라도 죽일 수 있는 생물 유전자적 바이러스를 만들 수 있게 된다.

호의와 어리석음의 나라 미국 땅.

정의는 어느 세계에서나 있지만 미국 땅 어디에서도 더 이상 찾기 힘들게 되었다.

염색체 연구 기금,실험 영상과 그밖에 돈의 출처까지 알아낸 서기 에이버리는 반 인륜적 범죄를 저지른 증거를 들고 미국 백악관의 문 앞에 설 수 있을까?


6월 27일 화요일

원고: 미 연방 대법원 배석판사 하워드 제퍼슨 윈

피고: 미 합중국


혼수 상태인 대법관의 법적 후견인 에이버리는 고소장을 접수하고 다음날 오전 10시 3분 재판장에 원고 자리에 선다.


대통령의 몰락...

백악관의 대량학살...


언론에서 여러 시나리오들이 흘러 나오기 시작하고 보수 방송에선 에이버리가 변호사 자격증을 잃고 법조계에서 추방될 것인지 아닌지를 놓고 토론이 벌어진다.

에이버리는 윈 대법관의 침대 옆에 서서 그의 손을 붙잡는다.


'정의는 다른 조각은 보이지 않는 곳에 있다. 그 세상이 만나는 곳'에서...



<정의가 잠든 사이에>를 쓴 작가 스테이시 에이브럼스는 예일대 법대를 졸업한 변호사로 조지아주 하원의원과 소수당 대표를 역임했고 2018년 조지아주 역사상 가장 많은 표를 얻어 민주당 주지사 후보가 되었다.

그녀는 셀리나 몽고메리라는 필명으로 로맨스 소설을 썼을 정도로 필력을 이미 출판계에서 검증 받은 프로 작가 이면서 미국 주요 정당의 주지사 후보에 오른 최초의 아프리카계 미국인 여성으로 미국 정치판에서 '공정한 싸움', '공정한 수', '남부 경제 발전 프로젝트'를 설립해서 민주주의 사회에서 공정하게 의결권에 헌신하며 국가와 국제 문제그리고 시민 사회문제를 폭넓게 다루는 뛰어난 정치인이다.

위스콘신 주(州) 미시시피에서 조선소 노동자로 일하는 부모님 아래서 성장한 스테이시는 노동자 계층 부모님이 국가에서 보조 받은 생활비로 생계를 꾸리는 걸 지켜 보면서 공공 서비스와 시민 참여의 중요성에 일찌감치 눈을 떴다.

아버지가 거리에서 추위에 떨고 있는 노숙자에게 코트를 벗어주는 모습을 보고 자란 스테이시는 교육열이 높은 부모님의 지원으로 좋은 학군에 공부하며 흑인계 미국인으로서는 최초로 졸업생 대표 연설을 한다.

그녀는 명문대학에 입학하고 2학년에 올라갔을 무렵에 LA 흑인 폭동의 불을 붙이게 된 ‘로드니 킹 사건’(Rodney King riots)으로 에이브럼스는 TV 토론 프로그램에 출연해 당시 조지아주 애틀랜타 첫 흑인 시장이었던 메이너드 잭슨에게 "당신은 (흑인을 대표하는) 젊은 시장이면서도, 젊은이들을 위해 충분히 일을 하고 있지 않다"고 맹비난을 퍼부어 댔다.

이후 스테이시는 예일대학교 로스쿨로 진학해 변호사 자격증을 따며 한 법률사무소에서 세무사로 활동하던 중 2002년 29세의 나이로 애틀랜타 변호사로 취직해 정부 관련 업무를 시작하면서 본격적으로 주 정부의 비효율적으로 운영 되고 있는 비과세 구조, 헬스케어, 공공 부문 재정 등을 주도 면밀하게 조사하고 분석하기 시작한다.

2006년 조지아주 하원 의원에 당선된 스테이시 에이브럼스는 미국 흑인 역사상 최초의 아프리카계 미국 여성 하원의원이 되고 주먹구구식으로 공공 운영비를 책정하고 있었던 공화당의원들에게 계산기를 들고 직접 보는 앞에서 계산을 하며 주민들의 세금이 어떻게 빠져 나가는 지 정확한 수치로 맞섰다.

그녀는 때로는 공화당의 눈속임을 향해 돌직구를 날리면서도 정부 개혁을 위해서 공화당과도 협력하며 범죄 개혁에 힘을 합쳤고 1% 저금리 대출 프로그램인 ‘희망(hope) 장학금 제도’를 만들어서 저소득층에게 교육의 문을 열어주었다.

스테이시 에이브럼스는 ‘조지아 역사상 가장 많이 세금 인상을 막아낸 인물’로 전통적으로 민주당이 강세를 보이지 않았던 조지아 주에서 숨어 있는 표를 발굴하기 위해 유권자를 찾아 다니며 투표를 독려 해서 기울어진 정치 지형을 바로 잡는데 앞장섰다.

미국 땅에서는 1965년 흑인의 투표권을 보장하는 투표권법(Voting Rights Act)이 통과되어 남부 지역에서 흑인 유권자에 대한 차별적인 투표 제한 조치가 금지됐는데도 불구하고, 공공연하게 또는 암암리에 흑인의 투표를 방해하며 투표를 하지 못하도록 심리적으로 압박하는 행태와 사회적 분위기가 뿌리 깊게 박혀 있는 곳이다.

2018년 공화당과 민주당을 통틀어 아프리카계 여성으로서는 최초로 주지사 후보로 지명된 스테이시 에이브럼스는 선거에서 떨어졌고 2022년 재도전에도 실패 했지만 미국 정치계에 흑인 여성 최초로 목소리를 내며 기울어진 미국의 정치 풍토를 바로 잡아나가는데 앞장 서고 있다.


2021년에 발표한 <정의가 잠든 사이에>는 스테이시 에이브럼스가 의정활동을 하며 주지사 선거에 도전 했던 지난 12년 동안 쓰고 또 쓰고 그리고 고치기를 반복한 끝에 완성했다.

이 작품의 출발은 판사 테리사 윈 로즈버러와 나눈 대화에서 시작되었고 소설적 상상력과 생생한 경험을 버무려서 최대한 현실에 가깝게 법원과 대법원 그리고 서기들의 움직임과 역할을 현실감 넘치게 펼쳐 보였다.

그녀는 모든 의정 활동과 지역 사회 발전과 방향을 논의하고 토론 하고 각 공공기관과 기타 시설 방문과 연설이 끝마치고 늦은 시간 노트북을 켜고 이 소설을 썼다.

그녀는 <정의가 잠든 사이에>를 쓰는 동안 미국 사회를 향해 질문을 던지며 그 해답을 찾기 위해 자료를 찾고 자문을 구하며 소설 같은 현실이 담긴 미국 사법권과 백악관 그리고 나라 밖의 움직임을 담아 냈다.

소설적 결말은 해피 엔딩이지만 현재 미국과 우리 나라 앞에 놓여진 현실은 절대로 낙관적인 상황도 아니고 해피 엔딩으로 향하지도 않을 것이다.

미국의 정치계, 법조계 모두 막강한 불법 자금을 세탁하며 세를 불리는 이권 세력들 손에서 자유롭지 못하고 성실하게 하루 하루 살아가며 세금을 꼬박 꼬박 내고 있는 시민들은 이들의 상세한 내막을 알지도 못할 뿐만 아니라 극단의 양극화·불평등그리고 계층의 갈등만 점점 커져 가고 있다.

이 땅에는 어디에나 있지만 어디에도 없는 것이 정의다.

이것이 현재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 정의가 잠들어 버린 세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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맛있는 이야기
이이지마 나미 지음, 홍은주 옮김 / 비채 / 202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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핀란드 헬싱키에서 작은 일식당 ‘카모메 식당’을 운영하는 일본인 사치에는 일본에서 즐겨 먹었던 주먹밥을 대표 메뉴로 내세우며 야심 차게 영업을 시작했지만 안타깝게도 손님이 단 한 명도 들어 오지 않는다.

그럼에도 매일 가게 문을 열고 주먹밥을 만들던 어느 날 일본 만화 매니아인 토미가 첫 손님으로 가게 문을 열고 들어와 카모메 식당의 단골이 되고 차츰 하나 둘 씩 손님들이 이 가게 찾아 온다.

기본 양념만 한 주먹밥 부터 다양한 재료를 넣은 주먹밥을 만들던 사치에는 어느 날 시나몬롤 만드는 신이 그녀 앞에 나타난다.

.


푸드 스타일리스 이이지마 나미의 시나몬롤 레시피는 거창하지 않아 맘만 먹으면 따라 할 수 있을 것처럼 느껴진다.


이이지마 나미가 담당한 영화 '카모메 식당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 드라마 '심야식당',남극의 셰프', '안경', '도쿄타워', '토일렛', '천사의 몫' '수영'에서 등장하는 요리들은 화려하지 않다. 

아무렇게나 툭툭 자른 감자와 당근은 크림 스튜 재료가 되어 무르게 익어간다. 

쌀밥에 버터 한 조각 올린 버터 라이스, 달걀에 마요네즈 풀어 섞은 샌드위치 소는 누구나 먹어보았을 ‘그 맛’을 상상하게 해 더욱 맛깔난다.

조리 학교를 졸업 하고 병원과 학교 급식을 담당하다 광고업계에서 요리를 담당했던 이와지마 나미가 처음으로 푸드 스타일리스트로 참여했던 영화 <카모메 식당>에 나오는 요리는 거창하지도 않고 주변에서 흔히 구할 수 있는 재료들이면서 일본의 기본 가정식인 흰 쌀밥, 달걀말이, 연어구이 등의 요리들은핀란드에서도 쉽게 구할 수 있는 재료들로 이 영화를 본 사람들은 마음만 먹으면 따라 할 수 있을 정도로 영화 속 요리 장면에 푹 빠져들게 만들었다.

외딴 마을의 민박집 주인에 소소한 일상을 그린 영화 <안경>에서 ‘유지’가 요리 하는 음식들은 달걀 프라이, 잘 구운 식빵, 잡곡밥, 신선한 채소 샐러드 등으로 조리 한 음식들을 담은 밋밋한 그릇까지 영화 속 마을 풍경과 너무나도 잘 어울린다.

태국을 배경으로 하는 영화 '수영' 에서 ‘사요’는 가족을 떠나 치앙마이에서 4년 째 일하는 엄마 ‘쿄코’를 만나러 간다. 자신을 버리고 훌쩍 떠나버린 엄마와 그 이유를 이해할 수 없는 딸 이 두 사람을 중심으로 벌어지는 이야기 속에 푸드 스타일리스트 이이지마 나미는 문양이 화려한 접시 위 푸팟퐁커리, 대나무 소쿠리에 담긴 파파야 샐러드, 그리고 바나나 튀김까지 보기만 해도 태국의 후덥지근한 공기를 상상하며 맛과 색을 느낄 수 있게 이국적인 요리를 맛깔나게 선보인다.


출판사를 그만두고 돌아가신 엄마가 오랫동안 운영했던 밥집을 빵과 수프를 파는 가게로 바꾼 ‘아키코’는 커다란 치아바타에 신선한 재료를 골고루 넣고 큰 그릇에 담긴 푸짐한 채소 수프를 담아 매일 찾아 오는 손님들에게 어디에서도 맛보기 힘든 편안하면서 아늑한 한 끼 식사를 맛보게 만든다.


작은 바닷가 마을 가마쿠라에 사는 자매 ‘사치’, ‘요시노’, ‘치카’는 아버지 장례식장에서 이복동생 ‘스즈’를 만나고 어머니 마저 세상을 떠나서 고아가 된 스즈를 집으로 데리고 온다.

이들 네 자매의 삶은 계절이 바뀌듯 그 날 그 날 함께 만들어 먹는 음식 속에 가족과 함께 했던 추억들이 송글 송글 배어 있다.


잔 멸치 덮밥, 전갱이 튀김,돈가스 덮밥, 오징어 카레, 단출한 국수, 다양한 야채 절임까지 매일 먹는 일상 요리를 정갈하게 담아낸다.

특히 이 영화에서 가장 아름답고 감동적인 장면은 매실을 수확하는 계절에 울퉁불퉁한 초록빛 매실을 깨끗하게 씻어내서 빨간 뚜껑으로 덮은 플라스틱 병에 담는 장면이다.


매실들이 알알이 익어가는 즐거운 상상을 하게 만든 푸드 스타일리스트 이이지마는

이 모든 영화의 요리 메뉴와 그릇, 주방 기기들, 기타 식기들 모두 직접 발로 뛰고 찾아내서 구입한 소품들과 식재료들로 화면 밖에서 조리 된 음식들이 어떻게 보이는지 까지도 철저하게 계산해서 연출하고 기획 했다.

그녀가 드라마와 영화에서 연출한 레시피는 매일 먹는 익숙한 음식, 언젠가 먹어보았던 것 같아 그리워지는 요리를 선보이며 거창하지 않아 마음만 먹으면 따라 할 수 있을 것처럼 느껴진다.

특히 그녀는 작품 흐름에 어긋나지 않도록 등장 인물들이 요리한 것처럼 자연스럽게 연출하는 데 탁월한 능력을 지녔다.

가령, 영화 <안경>에서 대본에는 '전골'이라고만 쓰여져 있었는데 이이지마는 대본 전체를 철저하게 읽고 분석해서 태국에서 일하는 상냥한 일본 남자 이치오가 여자 사람 친구 둘을 위해 만들 수 있는 '전골'요리를 만들어 보자 라고 설정해 놓고 무더운 나라에서도 부담없이 먹을 수 있는 재료들을 찾기 시작한다.

태국에서 가장 흔하면서도 품질이 좋은 뼈 붙은 닭고기를 크게 토막 내어 푹 끓여서 태국 채소를 넣고 국물을 그대로 먹다가 대화 도중에 레몬 그라스를 추가로 넣는 상황을 연출 했다.


한국에서도 대 히트를 친 드라마 <심야 식당>은 제작비가 넉넉하지 않아 그 드라마에 등장하는 거의 모든 식기들과 주방 기기들 전부 이이지마가 구입하고 소장하고 사용했던 것들로 드라마 촬영 전 미리 10회 분량의 요리 레시피를 만들어 놔야 했다.

심야식당'에서 감동을 불러 일으켰던 '돈가스덮밥'과 '달걀 샌드위치'의 조리법은 너무나도 간단해서 눈으로만 읽고 다음날 재료를 준비해서 만들어 먹을 수 있을 정도다.


돈가스 덮밥

재료(2인분)

밥 한공기, 돼지 고기 얇게 썬 것 3장(로스) 박력분 1작은술, 달걀 1개, 빵가루 적당량, 대파 혹은 부추 적당량

기본 양념- 맛 국물 세 큰술, 간장 1큰 술,미림 1큰술, 설탕 1작은 술, 굵은 소금 약간 , 후추 약간, 기름 적당량

만드는 법

1 돼지고기에 굵은 소금과 후추를 가볍게 뿌려 한쪽 끝에서부터 네 번 접는다 볼에 고기를 넣고 박력분을 전체에 묻힌다. 다른 볼에서 달걀물 1작은술과 빵가루를 차례로 묻힌다. 비계와 살코기 사이의 힘줄을 자르듯 한 면에 10군데 정도 칼집을 낸다.

2 작은 프라이팬에 기름을 1센티쯤 되게 붓고 중불에서 약 3분 고기를 뒤집어가며 튀겨 꺼낸다.

3.기본 양념을 작은 냄비에 넣고 끓으면 대파와 돈가스를 넣어 살짝 조려 밥 위에 얹는다. 남은 국물에 1의 남은 달걀을 돌려가며 넣어 가볍게 익혀 돈가스 위에 얹는다.


달걀 샌드위치

재료(2인분) 샌드위치용 식빵 6장, 달걀 4개, 마요네즈 1큰술, 버터 적당량, 소금 약간

만드는 법 1 달걀을 삶은 뒤 찬물에 담가 식힌다.

2 껍데기 벗긴 달걀을 노른자와 흰자로 나눈 뒤 흰자는 얇게 썰고 노른자는 대충 으깬다.

3 마요네즈 한 큰술과 소금을 약간 넣고 흰자와 노른자를 잘 섞는다.

4 가장자리를 자르고 버터 바른 식빵에 달걀을 펴 바른다.

5 달걀을 바른 식빵을 두 장씩 겹쳐 놓고 가볍게 손으로 누른 뒤 반으로 자른다.


이이지마 나미가 2008년 부터 아사히 신문에 연재 했던 글을 엮어낸 이 책 속에는 그녀가 그동안 직접 기획하고 연출하고 개발한 영화와 드라마 속 다양한 레시피부터 다른 국가를 여행 하는 동안에 맛보았던 음식들 이야기까지 소소하면서 정갈한 음식들 이국적이지만 쉽게 조리 해 볼 수 있는 요리 레시피들로 가득 차있다.

이름만 거창한 요리들 중에 가령 <에티오피아풍 니쿠자가>요리에 필요한 재료는 얇게 썬 소고기, 감자, 양파, 터머릭, 로즈메리, 버터, 굵은 소금, 흰 후추, 물 정도로 카레에 들어갈 재료를 볶듯이 조리 하면 완성되는 요리다.




이이지마 나미의 레시피에 맞춰 하루의 식단을 정해본다면 가장 먼저 아침에 커피와 샌드위치, 스프를 먹고 점심에는 계란 후라이나 계란말이, 미소 된장국과 밥을 먹거나 간단하게 주먹밥을 먹고 저녁에 돈가스 덮밥이나 파와 유부만 넣은 걸쭉한 우동을 먹고 마지막 살짝 아쉬움이 남는다면 시나몬 롤로 하루의 식사를 마무리한다.

이이지마 나미(飯島奈美)라는 이름에서 이이지마는 일본어로 ‘밥의 섬’으로 나미는 핀란드어로 ‘맛있다’는 뜻으로 그녀가 들려주는 요리 이야기는 오늘 어떤 음식을 먹을지, 내일은 또 어떤 음식을 먹을지 정해야 하는 일상의 맛으로 어차피 우리 모두 살기 위해 먹고 먹어야 일을 할 수 있는 운명이기에 한 끼 식사를 해도 먹는 즐거움이 있어야 삶의 소소한 행복을 느끼게 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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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통 없는 사랑은 없다 정호승의 시가 있는 산문집
정호승 지음 / 비채 / 202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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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아들이 부자인 아버지에게 유산을 미리 달라고 하자 아버지는 선뜻 아들에게 유산을 미리 준다.

아버지에게 미리 물려 받은 유산을 온갖 유흥에 흥청망청 전부 소비 해 버린 작은 아들은 그해 흉년이 들어 굶게 되고 굶주림에서 면하려고 남의 집 돼지치기를 하며 얹혀 살아간다.

돼지들이 먹는 쥐엄나무로 끼니를 떼우던 작은 아들은 그마저도 제대로 먹지 못하고 거지꼴이 되어 아버지의 집으로 돌아가 종으로 삼아 달라고 청한다.

거지꼴이 되어 돌아 온 아들을 반갑게 맞이한 아버지는 아들의 입에서 '당신의 종이 되겠습니다.'라는 말이 튀어나오기도 전에 '사랑하는 내 아들아.!'라고 외치며 가문의 상징인 반지를 아들의 손가락에 끼워준다.

아버지는 마을 사람들을 불러 모아 아들이 집으로 돌아 왔다며 축하 파티를 열자 큰아들이 자신은 집을 떠난 적도 없이 농사를 지으며 열심히 살아왔어도 아버지는 자신을 위해 돼지 한 마리 잡아 준 적도 없었다며 송아지를 잡고 이웃들을 물러 모아 파티를 여는 아버지에게 원망 섞인 말을 내뱉는다.

'나의 것은 다 너의 것이다. 내가 잃었던 아들을 되찾았으니, 죽었던 아들이 다시 살아왔으니 아니 기쁘지 않을 수 있겠느냐.!'

-누가 복음의 '돌아온 탕자' 중에서


<누가 복음>에 나오는 '탕자'를 그림으로 남긴 화가가 있다.


화가로 정점에 올라 서서 부와 명성을 손에 쥐었던 렘브란트는 서른 살 무렵 부터 누가 복음에 나오는 '돌아온 탕자'의 이야기에 관한 동판화 작품을 많이 그렸다.


서른 살 무렵에 그린 <돌아온 탕자> 속의 아버지는 문 밖으로 달려나가 힘차게 아들을 끌어 않는다.


1668년 생애 끝자락에 완성한 <돌아온 탕자>는 상처투성이 발을 드러낸 채 아버지 앞에 무릎을 꿇으며 가슴에 얼굴을 파묻고 있는 아들의 머리를 아버지는 사랑과 용서의 눈빛과 눈길로 쓰다듬고 있다.

이 그림을 수시로 꺼내 보는 시인이 있다.


시인은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 에르미타시 미술관까지 찾아 가서 미술관의 허락을 얻어 이틀 동안 의자를 그림 앞에 놓고 이 그림만 감상했다.

등단 50년을 넘긴 한국 서정시의 거장, 전 세대에게 사랑 받고 있는 시인 정호승은 한동안 시를 버리고 살았으나 시는 지금까지도 자신을 버리지 않고 있다며 질풍 노도 같은 청춘의 시기에 겪은 아픈 이별이 어떻게 시가 되었는지, 서울의 밤을 바라보았던 가난한 가장이 시를 쓰기 위해 과감히 신문사에 사표를 썼던 당시 심경은 어땠는지….

그동안 겪어온 사랑과 고통을 시와 함께 돌아보며 고해 하듯 직접 가려 뽑은 시 68편과 그 시에 얽힌 이야기 68편 속에 깊은 내면을 털어놓았다.


시인

혹한이 몰아닥친 겨울 아침에 보았다.

무심코 추어탕집 앞을 지나가다가

출입문 앞에 내어 놓은 고무함지 속에

꽁꽁 얼어붙어 있는 미꾸라지들

결빙이 되는 순간까지 온몸으로

시를 쓰고 죽은 모습을

꼬리지느러미를 흔들고 허리를 구부리며

길게 수염이 난 머리를 꼿꼿이 치켜든 채

기역자로 혹은 이응자로 문자를 이루어

결빙의 순간까지 온몸으로

진흙을 토해내며 투명한 얼음 속에

절명시를 쓰고 죽은 겨울의

시인들을

돌아 가시기 전까지 매일 밤, 가족을 위한 기도와 일기 쓰기로 하루를 마치셨던 시인의 아버지, 생을 마치기 전까지도 자식들을 걱정했던 시인의 어머니


어제 하루의 안녕에 대해 감사하고 오늘 하루의 안녕에 대해 기도 하는 삶을 실천했던 시인의 부모님의 모습에서 보이지 않게 세상 모두의 안녕을 위해 세상을 떠나는 그 날 까지 솔선 수범 하신 모습에서 가슴이 뭉클해졌다.

숯이 되라

상처 많은 나무의 가지가 되지 말고

새들이 날아와 앉는 나무의 심장이 되라

내가 끝끝내 배반의 나무를 불태울지라도

과거리를 선택한 분노의 불이 되지 말고

다 타고 남은 현재의 고요한 숯이 되라

숯은 밤하늘 별들이 새들과 함께

나무의 가슴에 잠시 앉았다 간 작은 발자국

밤새도록 새들이 흘린 눈물의 검은 이슬

오늘 밤에도 별들이 숯이 되기 위하여

이슬의 몸으로 내 가슴에 떨어진다.

미래는 복수에 있지 않고 용서에 있으므로

가슴에 활활 격노의 산불이 타올라도

산불이 지나간 자리마다

잿더미가 되어

잿더미 속에서도 기어이 살아남아

화해하는 숯의 심장이 되라

용서의 불씨를 품은 참숯이 되라

렘브란트가 생애 마지막 시기에 완성한 돌아온 탕자 그림에서 아들의 어깨에 올려진 아버지의 양 손의 모양과 크기가 다르다.


아버지의 손은 무릎을 꿇고 있는 아들이 입고 있는 옷에 주름이 질 정도로 움켜쥐고 있고 어머니의 손은 어깨 위를 토닥이듯 살며시 감싸 안고 있다.

자신을 용서 하지 못한 채 남도 용서하지 못하는 순간마다 이 그림을 꺼내보고 있는 시인 정호승은 마흔을 훌쩍 넘겨 인생의 방향을 바꿔 시인의 길을 갔다.

각고의 노력 끝에 완성했던 소설들이 누군가의 쓰레기장에 버려진 적도 있고 창작의 열의가 꺾여져 버렸을 때는 수년 동안 글 한 줄도 쓰지 못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상의 먼지보다 더 미미한 존재인 것 같다는 생각으로 좌절의 쓴맛을 보면서도 시를 썼다.

꽃을 보려면

꽃씨 속에 숨어 있는

꽃을 보려면

고요히 눈이 녹기를 기다려라

꽃씨 속에 숨어 있는

잎을 보려면

흙의 가슴이 따뜻해지기를 기다려라

꽃씨 속에 숨어 있는

어머니를 만나려면

들에 나가 먼저 봄이 되어라

꽃씨 속에 숨어 있는

꽃을 보려면

평생 버리지 않았던 칼을 버려라

문자와 카톡, 사진으로 소통이 가능한 시대에 언어의 참 의미와 진심에서 우러나오는 말을 듣기 어려워졌고 글자의 자음과 모음의 기이한 조합으로 타인의 행동과 말을 조롱하는 언어들이 SNS 세상에서 시커먼 구름처럼 둥둥 떠다닌다.

10초면 웃고 즐길 수 있는 틱톡 영상이 넘쳐 나고 언제 어디에서든 좋아하는 이들의 일상적인 모습을 실시간 영상으로 보는 시대에 정제된 언어와 말은 빠른 속도로 축약되고 희화화 되고 있는 시대에 어느 가정에서든 어떤 사회에서든 누가 복음의 '돌아온 탕자'들이 있을 것이다.

살아가는 동안 누가 복음을 읽지 않아도 렘브란트의 <돌아온 탕자>의 그림을 본 적이 없어도 이런 시대에 세상의 모습을 시어에 담아 맑은 영혼의 눈빛으로 세상의 빛과 어둠을 빚어내는 시인이 쓴 글을 읽게 된다면 지금 살고 있는 세상이 다르게 보일 것이다.

별밥

하늘의 우물에는 별이 많다.

어머니가 우물가에 앉아 쌀을 씻으시면서

쌀에 아무리 돌이 많아도 쌀보다 더 많지 않다.

물끄러미 어린 나를 바라보며 말씀하셨지만

나의 우물 속에는 언제나 쌀보다 별이 더 많았다.

지금도 나는 배가 고프면

하늘의 우물 속에 깊게 두레박을 내리고

별을 가득 길어 섞어 별밥을 해 먹고

그리운 어머니를 찾아 길을 떠난다.


어떠한 일에도 감사하고 용서하며 원망하지 않고 살겠다고 다짐하는 시인의 성정에 매일 한 편 한편 책장을 넘기며 사랑과 고통은 결코 나누어지지 않는다고, 고통이 산문이라면 사랑은 시라고 말하는 시인의 말을 가슴에 새겨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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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2-05 13:1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4-02-05 16:3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4-02-05 16:4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4-02-06 12:11   URL
비밀 댓글입니다.

희선 2024-02-06 02:4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마지막 글 어떠한 일에도 고마워하고 용서하고 원망하지 않겠다고 다짐하다니... 쉽지 않은 일입니다 어쩌면 마음이 편하려면 그게 더 좋기는 하겠지만, 어쨌든 쉽지 않은 일이죠 렘브란트가 그린 <돌아온 탕자>에서 아버지 손은 한사람 손이 아니었군요 그런 뜻도 있다니... 그림에 담긴 뜻을 알려면 오래 봐야겠네요 그런 적 별로 없군요 책에 실린 그림도... 정호승 시인은 그 그림을 오래 봤군요

며칠 뒤면 설 연휴예요 scott 님 설 연휴에는 편안하게 쉬시기 바랍니다


희선

2024-02-06 12:12   URL
비밀 댓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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