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맛있는 이야기
이이지마 나미 지음, 홍은주 옮김 / 비채 / 202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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핀란드 헬싱키에서 작은 일식당 ‘카모메 식당’을 운영하는 일본인 사치에는 일본에서 즐겨 먹었던 주먹밥을 대표 메뉴로 내세우며 야심 차게 영업을 시작했지만 안타깝게도 손님이 단 한 명도 들어 오지 않는다.

그럼에도 매일 가게 문을 열고 주먹밥을 만들던 어느 날 일본 만화 매니아인 토미가 첫 손님으로 가게 문을 열고 들어와 카모메 식당의 단골이 되고 차츰 하나 둘 씩 손님들이 이 가게 찾아 온다.

기본 양념만 한 주먹밥 부터 다양한 재료를 넣은 주먹밥을 만들던 사치에는 어느 날 시나몬롤 만드는 신이 그녀 앞에 나타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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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드 스타일리스 이이지마 나미의 시나몬롤 레시피는 거창하지 않아 맘만 먹으면 따라 할 수 있을 것처럼 느껴진다.


이이지마 나미가 담당한 영화 '카모메 식당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 드라마 '심야식당',남극의 셰프', '안경', '도쿄타워', '토일렛', '천사의 몫' '수영'에서 등장하는 요리들은 화려하지 않다. 

아무렇게나 툭툭 자른 감자와 당근은 크림 스튜 재료가 되어 무르게 익어간다. 

쌀밥에 버터 한 조각 올린 버터 라이스, 달걀에 마요네즈 풀어 섞은 샌드위치 소는 누구나 먹어보았을 ‘그 맛’을 상상하게 해 더욱 맛깔난다.

조리 학교를 졸업 하고 병원과 학교 급식을 담당하다 광고업계에서 요리를 담당했던 이와지마 나미가 처음으로 푸드 스타일리스트로 참여했던 영화 <카모메 식당>에 나오는 요리는 거창하지도 않고 주변에서 흔히 구할 수 있는 재료들이면서 일본의 기본 가정식인 흰 쌀밥, 달걀말이, 연어구이 등의 요리들은핀란드에서도 쉽게 구할 수 있는 재료들로 이 영화를 본 사람들은 마음만 먹으면 따라 할 수 있을 정도로 영화 속 요리 장면에 푹 빠져들게 만들었다.

외딴 마을의 민박집 주인에 소소한 일상을 그린 영화 <안경>에서 ‘유지’가 요리 하는 음식들은 달걀 프라이, 잘 구운 식빵, 잡곡밥, 신선한 채소 샐러드 등으로 조리 한 음식들을 담은 밋밋한 그릇까지 영화 속 마을 풍경과 너무나도 잘 어울린다.

태국을 배경으로 하는 영화 '수영' 에서 ‘사요’는 가족을 떠나 치앙마이에서 4년 째 일하는 엄마 ‘쿄코’를 만나러 간다. 자신을 버리고 훌쩍 떠나버린 엄마와 그 이유를 이해할 수 없는 딸 이 두 사람을 중심으로 벌어지는 이야기 속에 푸드 스타일리스트 이이지마 나미는 문양이 화려한 접시 위 푸팟퐁커리, 대나무 소쿠리에 담긴 파파야 샐러드, 그리고 바나나 튀김까지 보기만 해도 태국의 후덥지근한 공기를 상상하며 맛과 색을 느낄 수 있게 이국적인 요리를 맛깔나게 선보인다.


출판사를 그만두고 돌아가신 엄마가 오랫동안 운영했던 밥집을 빵과 수프를 파는 가게로 바꾼 ‘아키코’는 커다란 치아바타에 신선한 재료를 골고루 넣고 큰 그릇에 담긴 푸짐한 채소 수프를 담아 매일 찾아 오는 손님들에게 어디에서도 맛보기 힘든 편안하면서 아늑한 한 끼 식사를 맛보게 만든다.


작은 바닷가 마을 가마쿠라에 사는 자매 ‘사치’, ‘요시노’, ‘치카’는 아버지 장례식장에서 이복동생 ‘스즈’를 만나고 어머니 마저 세상을 떠나서 고아가 된 스즈를 집으로 데리고 온다.

이들 네 자매의 삶은 계절이 바뀌듯 그 날 그 날 함께 만들어 먹는 음식 속에 가족과 함께 했던 추억들이 송글 송글 배어 있다.


잔 멸치 덮밥, 전갱이 튀김,돈가스 덮밥, 오징어 카레, 단출한 국수, 다양한 야채 절임까지 매일 먹는 일상 요리를 정갈하게 담아낸다.

특히 이 영화에서 가장 아름답고 감동적인 장면은 매실을 수확하는 계절에 울퉁불퉁한 초록빛 매실을 깨끗하게 씻어내서 빨간 뚜껑으로 덮은 플라스틱 병에 담는 장면이다.


매실들이 알알이 익어가는 즐거운 상상을 하게 만든 푸드 스타일리스트 이이지마는

이 모든 영화의 요리 메뉴와 그릇, 주방 기기들, 기타 식기들 모두 직접 발로 뛰고 찾아내서 구입한 소품들과 식재료들로 화면 밖에서 조리 된 음식들이 어떻게 보이는지 까지도 철저하게 계산해서 연출하고 기획 했다.

그녀가 드라마와 영화에서 연출한 레시피는 매일 먹는 익숙한 음식, 언젠가 먹어보았던 것 같아 그리워지는 요리를 선보이며 거창하지 않아 마음만 먹으면 따라 할 수 있을 것처럼 느껴진다.

특히 그녀는 작품 흐름에 어긋나지 않도록 등장 인물들이 요리한 것처럼 자연스럽게 연출하는 데 탁월한 능력을 지녔다.

가령, 영화 <안경>에서 대본에는 '전골'이라고만 쓰여져 있었는데 이이지마는 대본 전체를 철저하게 읽고 분석해서 태국에서 일하는 상냥한 일본 남자 이치오가 여자 사람 친구 둘을 위해 만들 수 있는 '전골'요리를 만들어 보자 라고 설정해 놓고 무더운 나라에서도 부담없이 먹을 수 있는 재료들을 찾기 시작한다.

태국에서 가장 흔하면서도 품질이 좋은 뼈 붙은 닭고기를 크게 토막 내어 푹 끓여서 태국 채소를 넣고 국물을 그대로 먹다가 대화 도중에 레몬 그라스를 추가로 넣는 상황을 연출 했다.


한국에서도 대 히트를 친 드라마 <심야 식당>은 제작비가 넉넉하지 않아 그 드라마에 등장하는 거의 모든 식기들과 주방 기기들 전부 이이지마가 구입하고 소장하고 사용했던 것들로 드라마 촬영 전 미리 10회 분량의 요리 레시피를 만들어 놔야 했다.

심야식당'에서 감동을 불러 일으켰던 '돈가스덮밥'과 '달걀 샌드위치'의 조리법은 너무나도 간단해서 눈으로만 읽고 다음날 재료를 준비해서 만들어 먹을 수 있을 정도다.


돈가스 덮밥

재료(2인분)

밥 한공기, 돼지 고기 얇게 썬 것 3장(로스) 박력분 1작은술, 달걀 1개, 빵가루 적당량, 대파 혹은 부추 적당량

기본 양념- 맛 국물 세 큰술, 간장 1큰 술,미림 1큰술, 설탕 1작은 술, 굵은 소금 약간 , 후추 약간, 기름 적당량

만드는 법

1 돼지고기에 굵은 소금과 후추를 가볍게 뿌려 한쪽 끝에서부터 네 번 접는다 볼에 고기를 넣고 박력분을 전체에 묻힌다. 다른 볼에서 달걀물 1작은술과 빵가루를 차례로 묻힌다. 비계와 살코기 사이의 힘줄을 자르듯 한 면에 10군데 정도 칼집을 낸다.

2 작은 프라이팬에 기름을 1센티쯤 되게 붓고 중불에서 약 3분 고기를 뒤집어가며 튀겨 꺼낸다.

3.기본 양념을 작은 냄비에 넣고 끓으면 대파와 돈가스를 넣어 살짝 조려 밥 위에 얹는다. 남은 국물에 1의 남은 달걀을 돌려가며 넣어 가볍게 익혀 돈가스 위에 얹는다.


달걀 샌드위치

재료(2인분) 샌드위치용 식빵 6장, 달걀 4개, 마요네즈 1큰술, 버터 적당량, 소금 약간

만드는 법 1 달걀을 삶은 뒤 찬물에 담가 식힌다.

2 껍데기 벗긴 달걀을 노른자와 흰자로 나눈 뒤 흰자는 얇게 썰고 노른자는 대충 으깬다.

3 마요네즈 한 큰술과 소금을 약간 넣고 흰자와 노른자를 잘 섞는다.

4 가장자리를 자르고 버터 바른 식빵에 달걀을 펴 바른다.

5 달걀을 바른 식빵을 두 장씩 겹쳐 놓고 가볍게 손으로 누른 뒤 반으로 자른다.


이이지마 나미가 2008년 부터 아사히 신문에 연재 했던 글을 엮어낸 이 책 속에는 그녀가 그동안 직접 기획하고 연출하고 개발한 영화와 드라마 속 다양한 레시피부터 다른 국가를 여행 하는 동안에 맛보았던 음식들 이야기까지 소소하면서 정갈한 음식들 이국적이지만 쉽게 조리 해 볼 수 있는 요리 레시피들로 가득 차있다.

이름만 거창한 요리들 중에 가령 <에티오피아풍 니쿠자가>요리에 필요한 재료는 얇게 썬 소고기, 감자, 양파, 터머릭, 로즈메리, 버터, 굵은 소금, 흰 후추, 물 정도로 카레에 들어갈 재료를 볶듯이 조리 하면 완성되는 요리다.




이이지마 나미의 레시피에 맞춰 하루의 식단을 정해본다면 가장 먼저 아침에 커피와 샌드위치, 스프를 먹고 점심에는 계란 후라이나 계란말이, 미소 된장국과 밥을 먹거나 간단하게 주먹밥을 먹고 저녁에 돈가스 덮밥이나 파와 유부만 넣은 걸쭉한 우동을 먹고 마지막 살짝 아쉬움이 남는다면 시나몬 롤로 하루의 식사를 마무리한다.

이이지마 나미(飯島奈美)라는 이름에서 이이지마는 일본어로 ‘밥의 섬’으로 나미는 핀란드어로 ‘맛있다’는 뜻으로 그녀가 들려주는 요리 이야기는 오늘 어떤 음식을 먹을지, 내일은 또 어떤 음식을 먹을지 정해야 하는 일상의 맛으로 어차피 우리 모두 살기 위해 먹고 먹어야 일을 할 수 있는 운명이기에 한 끼 식사를 해도 먹는 즐거움이 있어야 삶의 소소한 행복을 느끼게 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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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통 없는 사랑은 없다 정호승의 시가 있는 산문집
정호승 지음 / 비채 / 202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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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아들이 부자인 아버지에게 유산을 미리 달라고 하자 아버지는 선뜻 아들에게 유산을 미리 준다.

아버지에게 미리 물려 받은 유산을 온갖 유흥에 흥청망청 전부 소비 해 버린 작은 아들은 그해 흉년이 들어 굶게 되고 굶주림에서 면하려고 남의 집 돼지치기를 하며 얹혀 살아간다.

돼지들이 먹는 쥐엄나무로 끼니를 떼우던 작은 아들은 그마저도 제대로 먹지 못하고 거지꼴이 되어 아버지의 집으로 돌아가 종으로 삼아 달라고 청한다.

거지꼴이 되어 돌아 온 아들을 반갑게 맞이한 아버지는 아들의 입에서 '당신의 종이 되겠습니다.'라는 말이 튀어나오기도 전에 '사랑하는 내 아들아.!'라고 외치며 가문의 상징인 반지를 아들의 손가락에 끼워준다.

아버지는 마을 사람들을 불러 모아 아들이 집으로 돌아 왔다며 축하 파티를 열자 큰아들이 자신은 집을 떠난 적도 없이 농사를 지으며 열심히 살아왔어도 아버지는 자신을 위해 돼지 한 마리 잡아 준 적도 없었다며 송아지를 잡고 이웃들을 물러 모아 파티를 여는 아버지에게 원망 섞인 말을 내뱉는다.

'나의 것은 다 너의 것이다. 내가 잃었던 아들을 되찾았으니, 죽었던 아들이 다시 살아왔으니 아니 기쁘지 않을 수 있겠느냐.!'

-누가 복음의 '돌아온 탕자' 중에서


<누가 복음>에 나오는 '탕자'를 그림으로 남긴 화가가 있다.


화가로 정점에 올라 서서 부와 명성을 손에 쥐었던 렘브란트는 서른 살 무렵 부터 누가 복음에 나오는 '돌아온 탕자'의 이야기에 관한 동판화 작품을 많이 그렸다.


서른 살 무렵에 그린 <돌아온 탕자> 속의 아버지는 문 밖으로 달려나가 힘차게 아들을 끌어 않는다.


1668년 생애 끝자락에 완성한 <돌아온 탕자>는 상처투성이 발을 드러낸 채 아버지 앞에 무릎을 꿇으며 가슴에 얼굴을 파묻고 있는 아들의 머리를 아버지는 사랑과 용서의 눈빛과 눈길로 쓰다듬고 있다.

이 그림을 수시로 꺼내 보는 시인이 있다.


시인은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 에르미타시 미술관까지 찾아 가서 미술관의 허락을 얻어 이틀 동안 의자를 그림 앞에 놓고 이 그림만 감상했다.

등단 50년을 넘긴 한국 서정시의 거장, 전 세대에게 사랑 받고 있는 시인 정호승은 한동안 시를 버리고 살았으나 시는 지금까지도 자신을 버리지 않고 있다며 질풍 노도 같은 청춘의 시기에 겪은 아픈 이별이 어떻게 시가 되었는지, 서울의 밤을 바라보았던 가난한 가장이 시를 쓰기 위해 과감히 신문사에 사표를 썼던 당시 심경은 어땠는지….

그동안 겪어온 사랑과 고통을 시와 함께 돌아보며 고해 하듯 직접 가려 뽑은 시 68편과 그 시에 얽힌 이야기 68편 속에 깊은 내면을 털어놓았다.


시인

혹한이 몰아닥친 겨울 아침에 보았다.

무심코 추어탕집 앞을 지나가다가

출입문 앞에 내어 놓은 고무함지 속에

꽁꽁 얼어붙어 있는 미꾸라지들

결빙이 되는 순간까지 온몸으로

시를 쓰고 죽은 모습을

꼬리지느러미를 흔들고 허리를 구부리며

길게 수염이 난 머리를 꼿꼿이 치켜든 채

기역자로 혹은 이응자로 문자를 이루어

결빙의 순간까지 온몸으로

진흙을 토해내며 투명한 얼음 속에

절명시를 쓰고 죽은 겨울의

시인들을

돌아 가시기 전까지 매일 밤, 가족을 위한 기도와 일기 쓰기로 하루를 마치셨던 시인의 아버지, 생을 마치기 전까지도 자식들을 걱정했던 시인의 어머니


어제 하루의 안녕에 대해 감사하고 오늘 하루의 안녕에 대해 기도 하는 삶을 실천했던 시인의 부모님의 모습에서 보이지 않게 세상 모두의 안녕을 위해 세상을 떠나는 그 날 까지 솔선 수범 하신 모습에서 가슴이 뭉클해졌다.

숯이 되라

상처 많은 나무의 가지가 되지 말고

새들이 날아와 앉는 나무의 심장이 되라

내가 끝끝내 배반의 나무를 불태울지라도

과거리를 선택한 분노의 불이 되지 말고

다 타고 남은 현재의 고요한 숯이 되라

숯은 밤하늘 별들이 새들과 함께

나무의 가슴에 잠시 앉았다 간 작은 발자국

밤새도록 새들이 흘린 눈물의 검은 이슬

오늘 밤에도 별들이 숯이 되기 위하여

이슬의 몸으로 내 가슴에 떨어진다.

미래는 복수에 있지 않고 용서에 있으므로

가슴에 활활 격노의 산불이 타올라도

산불이 지나간 자리마다

잿더미가 되어

잿더미 속에서도 기어이 살아남아

화해하는 숯의 심장이 되라

용서의 불씨를 품은 참숯이 되라

렘브란트가 생애 마지막 시기에 완성한 돌아온 탕자 그림에서 아들의 어깨에 올려진 아버지의 양 손의 모양과 크기가 다르다.


아버지의 손은 무릎을 꿇고 있는 아들이 입고 있는 옷에 주름이 질 정도로 움켜쥐고 있고 어머니의 손은 어깨 위를 토닥이듯 살며시 감싸 안고 있다.

자신을 용서 하지 못한 채 남도 용서하지 못하는 순간마다 이 그림을 꺼내보고 있는 시인 정호승은 마흔을 훌쩍 넘겨 인생의 방향을 바꿔 시인의 길을 갔다.

각고의 노력 끝에 완성했던 소설들이 누군가의 쓰레기장에 버려진 적도 있고 창작의 열의가 꺾여져 버렸을 때는 수년 동안 글 한 줄도 쓰지 못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상의 먼지보다 더 미미한 존재인 것 같다는 생각으로 좌절의 쓴맛을 보면서도 시를 썼다.

꽃을 보려면

꽃씨 속에 숨어 있는

꽃을 보려면

고요히 눈이 녹기를 기다려라

꽃씨 속에 숨어 있는

잎을 보려면

흙의 가슴이 따뜻해지기를 기다려라

꽃씨 속에 숨어 있는

어머니를 만나려면

들에 나가 먼저 봄이 되어라

꽃씨 속에 숨어 있는

꽃을 보려면

평생 버리지 않았던 칼을 버려라

문자와 카톡, 사진으로 소통이 가능한 시대에 언어의 참 의미와 진심에서 우러나오는 말을 듣기 어려워졌고 글자의 자음과 모음의 기이한 조합으로 타인의 행동과 말을 조롱하는 언어들이 SNS 세상에서 시커먼 구름처럼 둥둥 떠다닌다.

10초면 웃고 즐길 수 있는 틱톡 영상이 넘쳐 나고 언제 어디에서든 좋아하는 이들의 일상적인 모습을 실시간 영상으로 보는 시대에 정제된 언어와 말은 빠른 속도로 축약되고 희화화 되고 있는 시대에 어느 가정에서든 어떤 사회에서든 누가 복음의 '돌아온 탕자'들이 있을 것이다.

살아가는 동안 누가 복음을 읽지 않아도 렘브란트의 <돌아온 탕자>의 그림을 본 적이 없어도 이런 시대에 세상의 모습을 시어에 담아 맑은 영혼의 눈빛으로 세상의 빛과 어둠을 빚어내는 시인이 쓴 글을 읽게 된다면 지금 살고 있는 세상이 다르게 보일 것이다.

별밥

하늘의 우물에는 별이 많다.

어머니가 우물가에 앉아 쌀을 씻으시면서

쌀에 아무리 돌이 많아도 쌀보다 더 많지 않다.

물끄러미 어린 나를 바라보며 말씀하셨지만

나의 우물 속에는 언제나 쌀보다 별이 더 많았다.

지금도 나는 배가 고프면

하늘의 우물 속에 깊게 두레박을 내리고

별을 가득 길어 섞어 별밥을 해 먹고

그리운 어머니를 찾아 길을 떠난다.


어떠한 일에도 감사하고 용서하며 원망하지 않고 살겠다고 다짐하는 시인의 성정에 매일 한 편 한편 책장을 넘기며 사랑과 고통은 결코 나누어지지 않는다고, 고통이 산문이라면 사랑은 시라고 말하는 시인의 말을 가슴에 새겨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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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2-05 13:1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4-02-05 16:3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4-02-05 16:4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4-02-06 12:11   URL
비밀 댓글입니다.

희선 2024-02-06 02:4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마지막 글 어떠한 일에도 고마워하고 용서하고 원망하지 않겠다고 다짐하다니... 쉽지 않은 일입니다 어쩌면 마음이 편하려면 그게 더 좋기는 하겠지만, 어쨌든 쉽지 않은 일이죠 렘브란트가 그린 <돌아온 탕자>에서 아버지 손은 한사람 손이 아니었군요 그런 뜻도 있다니... 그림에 담긴 뜻을 알려면 오래 봐야겠네요 그런 적 별로 없군요 책에 실린 그림도... 정호승 시인은 그 그림을 오래 봤군요

며칠 뒤면 설 연휴예요 scott 님 설 연휴에는 편안하게 쉬시기 바랍니다


희선

2024-02-06 12:12   URL
비밀 댓글입니다.
 
[세트] 패신저 + 스텔라 마리스 - 전2권
코맥 매카시 지음, 정영목 옮김 / 문학동네 / 202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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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응급 가방에서 꺼낸 회색 구조용 담요로 몸을 감싸고 앉아 뜨거운 차를 마셨다. 주위에서 거무스름한 바다가 찰싹였다.

백 야드 떨어진 곳에 멈춘 해안 경비대 보트가 항해등을 켠 채 큰 파도에 흔들리고 있었고 그 너머 북쪽으로 십 마일 떨어진 곳에는 둑길을 따라 움직이는 트럭의 불빛이 보였다.]

-코맥 매카시의 <패신저> 중에서


1980년 미국 테네시주 녹스빌 출신 인양 잠수부로 살아가는 서른 일곱 살 보비 웨스턴

그는 돈만 받으면 바닷 속으로 뛰어들어 '무엇이든' 찾아주는 일을 하고 있다.

어느 새벽 , 멕시코만 수중에 추락한 비행기를 탐색해 달라는 급한 의뢰를 받은 ‘인양 잠수부’ 보비 웨스턴은 친구 오일리와 함께 수색하는 작업에 뛰어든다.


[웨스턴은 장갑을 꼈다. 조사등의 하얀 빛줄기가 물 위를 내달리다 돌아오더니 이윽고 깜깜해졌다. 그는 벨트를 두르고 고리를 걸고 나서 조절기를 입에 넣고 마스크를 내린 다음 물로 걸어 들어갔다.

밑에서 이따금 확 타오르는 토치 불빛을 향해 어둠을 뚫고 천천히 내려갔다.

묵주 같은 리벳들, 토치가 다시 불을 밝혔다. 동체의 형태는 터널처럼 어둠 속으로 길게 이어졌다. 그는 발 장구를 쳐 터보팬 엔진들을 담고 있는 거대한 엔진실들을 지난 다음 동체 옆면을 따라 내려가 빛의 웅덩이 안으로 들어섰다.]


인양 잠수부 웨스턴은 부서진 비행기 운전석에서 여전히 좌석에 벨트를 맨 채 거대한 꼭두각시처럼 사지를 아래로 늘어뜨리고 머리 위 천장에 등을 붙인 채 심해 속을 둥둥 유영하고 있는 부조종사와 조종사 시신을 발견한다.

생존자가 단 한 명도 없는 걸 확인한 웨스턴은 탑승객 일곱 명의 시신을 차례 차례 물 밖으로 끌어 올리고 마지막 수색작업을 펼치던 중 비행기 내부엔 수상하게도 조종사의 운항 가방과 블랙박스는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무사히 인양 작업을 마친 웨스턴과 친구 오일리는 뉴스 어디에서도 비행기 추락 사고에 대한 소식을 듣지 못하고 그 날 밤 비행기가 바닷 속으로 추락했던 시기에 어부 몇 명을 제외하고 물 밖에서 목격한 이들도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수색 당일 저녁. 보비 웨스턴 집에 선교사 같은 정장을 입은 형사 두 명이 찾아와 그에게 블랙박스 행방과 승객 한 명의 실종에 대해 캐묻지만 수상한 낌새를 감지한 보비는 모호한 답변으로 이들의 심문을 넘어간다.

보비가 잠시 집을 비운 사이에 몇 주에 걸쳐 집안 곳곳에 누군가가 몰래 침입해서 수색한 사실을 알고 부터 그는 이 비행기 추락 사건에 모종의 음모가 있다는 걸 직감한다.

며칠 뒤 함께 비행기를 수색 작업을 했던 친구 오일러가 베네수엘라로 일하러 갔다가 의문의 사망을 하면서 사건에 대한 의혹은 커져 만 간다.

그리고 비행기가 추락하는 순간을 봤다는 그 어부들의 행방도 묘연 해지고 시신을 찾는 가족도 없고, 아무도 이들의 죽음을 모른다.

그렇다면 그 비행기가 추락하기 전 비행기에 탑승하고 있었던 승객 아홉 명(조종사 부조종사를 포함해서)들은 이미 사망했었던 것일까?

실체 없는 죽음을 목격한 웨스턴은 인양 잠수부 일을 사뭇 주저 하면서도 어둠의 바닷 속, 심연 깊숙이 자리 잡은 그곳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보비 웨스턴, 한 때는 전도 유망한 물리학도였던 그에겐 조현병을 앓다 10년 전 스무 살 나이에 스스로 목숨을 끊어 버린 여동생 얼리샤가 있었다.

여동생 얼리샤는 십대 초반에 대학에 들어가 스무살에 시카고 대학원에 입학한 천재로 웨스턴 남매의 아버지는 오펜하이머가 이끄는 원자폭탄 개발프로그램인 맨해튼 프로젝트에 참여했던 학자로 핵심 멤버들 중에 나이가 가장 많았다.

종전 후 남매의 아버지는 수소폭탄 개발을 주도한 텔러와 함께 숱한 비난과 공격을 받았고 원폭으로 희생된 무고한 생명에 대한 죄책감으로 사회와 격리된 삶을 살다 췌장암으로 세상을 떠났다.


이곳은 그녀 삶의 마지막 해 겨울의 시카고일 것이다.

일주일 뒤면 그녀는 스텔라 마리스로 돌아가

거기에서 정처 없이 걷다가 황량한 위스콘신 숲으로 들어간다.


10대 때부터 편집성 조현병을 앓아온 얼리샤는 증세가 심각해 질 무렵부터 다른 사람들 눈에 보이지 않는 ‘키드’라 불리는 난쟁이와 쉼없이 대화를 나눈다.

그녀의 머릿속에선 '키드'는 콧구멍의 털과 귓구멍 안 생김새까지 들여다볼 수 있는 생생한 모습이지만 세상 어디에도 실재하지 않는 허상의 존재다.

명망 있는 화학자 였던 할아버지, 원자 폭탄 개발에 참여 해서 2차 대전 종전을 앞당기는 데 일조한 수학자 아버지를 두었던 얼리샤에게 이 세상은 인간이 의식하고 있는 것들 모든 것이 실재 하지 않는다.

열 두 살 때부터 환각을 경험한 얼리샤를 진단한 담당의사는조현병이라 진단 하지만 그녀는 자신의 눈에만 보이는 난쟁이 '키드'에게 오빠 보비를 사랑하고 있다고 고백한다.


연작 형식의 소설 1권 ‘패신저’는 현 시점의 보비 웨스턴의 어제와 오늘의 시간이 서술 되어 있고 2권 ‘스텔라 마리스’는 자살하기 전 여동생 얼리샤의 어제와 오늘의 시간 동안 담당 의사와 면담 형식을 기록한 보고서로 구성되어 있다.


1권 <패신저>의 주인공 보비 웨스턴은 마치 사방으로 충돌하는 원자의 입자처럼, 카페에서, 모텔 카운터에서, 연고 없는 마을의 작은 식당에서 늦은 아침을 먹다 만난 사람들과 묻고 답하며 과거의 시간을 회상한다.

이 작품을 처음 읽게 되면 1권 패신저의 추락한 비행기와 그에 얽힌 미스터리한 사건 속에서 웨스턴 남매의 지나가 버린 사랑에 대한 이야기로 읽혀진다.


하지만 두 번째로 1권과 2권의 책을 나란히 펼쳐 놓고 번갈아 읽는 동안 이들이 선문답 처럼 주고 받는 대화 속에 신과 종교.인간, 죽음, 우주의 시간이 20세기 현대 역사와 촘촘하게 맞물려 진행 되고 있다는 걸 발견하게 된다.

따라서 이 작품의 시간은 선형적이게 흘러가지 않고 점진적이게 중추적인 방식으로 이야기가 흘러간다.


1972년 위스콘신주의 정신과 치료시설 '스텔라 마리스'를 제 발로 찾아간 얼리샤가 정신과 의사 닥터 코언과 7차례 나눈 상담 녹취록으로 구성된 제 2권 <스텔라 마리스>에서 얼리샤는 오빠 보비와 외부인들에게 절대로 들켜서는 안되는 금지된 사랑을 털어 놓는다.

오빠 보비는 여동생과의 사랑에서 벗어나려고 심해 잠수부 인양 작업을 하며 포물러 원 경주 선수로 살다 자동차 사고 이후 혼수 상태에 빠져 뇌사 판정을 받았다.

생명 유지 장치에 의존하고 있는 오빠 보비의 숨을 거둘 권한은 여동생 얼리샤에게 있다.

한편, ‘스텔라 마리스’ 병원에 있는 얼리샤는 “오빠 없이 살아 있는 것보다 오빠와 함께 죽는 게 낫다”는 말을 하지만 보비의 뇌사판정이 얼리샤의 환각 증세로 인한 망상인지 작가 코맥 매카시는 소설에서 분명하게 드러내 보이지 않았다.

다만,오빠와 금지된 사랑의 중압감에 시달렸던 얼리샤가 겨울 숲을 홀로 찾아가 스스로 정신병원에서 삶을 마감한 건 수식으로 전개되는 서사를 사랑하며 일찌감치 방정식들이 생명이 유지되는 어떤 형식을 가정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어느 누구의 눈에 보이지 않아도 자신의 눈앞에 실재하고 있다는 걸 이해 했기 때문이다.

정신적 문제를 겪으면서 세상의 절대적 진리를 해결 할 수 있을 것 같은 수학에서 구원을 얻고자 했던 얼리샤가 어떤 방정식으로도 진리에 결코 닿을 수 없다는 것을 깨닫고 결국 스스로의 존재 자체를 무너뜨리고 만다.


“하나의 공허 뒤에 또 하나의 공허이고 그게 본질이야.

 그냥 하나가 아니야. 좋은 책에서 말하는 것 하고는 달라. 

너는 공허가 그냥 공허라고 생각하지만 그렇지 않아. 계속돼.”


얼리샤의 환각 증세를 분석하는 담당의사 코언은 환자 얼리샤에게 절대적이였던 것이었다가 절망을 안겨준 수학과 사랑하는 친오빠 보비 그리고 인류의 재앙이 될 수 있는 핵폭탄 개발에 참여한 아버지에 대한 이야기를 거쳐서 마침내 그녀 내면 깊숙한 곳에 자리 잡고 있는 죽음의 문턱에서 자신을 떠나려는 오빠 보비를 발견하게 된다.


“슬픔은 삶의 재료야. 슬픔이 없는 삶은 아예 삶이 아니지. 하지만 후회는 감옥이야. 네가 아주 소중하게 여기는 너의 일부가 더는 찾을 수도 그렇다고 절대 잊을 수도 없는 어떤 교차로에 영원히 꽂혀 있는 거야.”

미국 현대소설의 거장 코맥 매카시가 생전에 마지막으로 남긴 유작 '패신저'와 '스텔라 마리스' 작품에 대해 뉴욕 타임즈의 한 서평 기자는 이런 말을 남겼다.


“향후 150년간 전도서처럼 작가들이 훔쳐 자기 책의 서문으로 쓸, 웃기고 이상하고 뇌리에서 떠나지 않는 문장들이 가득하다”


2022년 나는 이 두 작품이 한 번에 출간 되자마자 읽었다.


1권 '패신저'를 꾸역 꾸역 읽고 나서 2권 '스텔라 마리스'를 완독하고 다시 1권으로 돌아 갔다.

1권에서 주인공 보비가 여러 인물들과 주고 받는 대화들의 주요 핵심 단어들을 체크 하고 나서 성경 책을 꺼내 놓고 오펜하이머 자서전,오펜하이머 연설문집, 편지 모음집, 기타 맨해튼 원자 폭탄 프로그램에 참여 했던 핵심 맴버들에 관한 책과 그들의 삶을 다룬 자서전과 미국 현대사(1960년대 이후/케네디 형제의 죽음을 다룬 책과 다큐멘터리/케네디 형제를 살해한 배우 세력에 관한 책들 ) 전부 찾아 읽었다.


1년의 시간 동안 곁 가지로 뻗어나간 책과 지식을 쌓고 나서 2023년 12월, 마침내  패신저와 스텔라 마리스 책을 처음 부터 다시 읽기 시작했다.


물 위에 둥둥 뜬 코르크, 유릿 조각, 유목,

작은 곶 너머로 대리석 조각 같은 돌들이 해변을 따라 달그락 거리고

파도가 길게 부글 거리며 물러나고 있다.

오랜 세월 지칠 줄 모르고 해협 건너 간신히 보이는 베드라의 바위 요새,

빗속에 시커먼 돌, 첨탑들..



1933년생인 코맥 매카시는 89세로 생을 마감하기 2년 전에 유작처럼 출간한 이 두 작품을 지난 15년의 시간에 걸쳐서 완성했다.

미국에서 현존하는 작가들 중에서 단 3명의 작가의 작품만 편집자들의 수정이나 조언을 거치지 않는다.

돈 드릴로, 폴 오스터 그리고 코맥 매카시 이 세 명의 작가의 작품은 작가가 원고를 넘겨주는 즉시,오탈자만 검열하고 편집 작업에 들어간다.

코맥 매카시의 마지막 출판을 담당했던 편집자들은 그가 몇 달에 걸쳐서 원고 뭉치를 건네며 반드시 비밀을 유지 해 달라고 신신당부를 했다는 말을 했다.

코맥은 이 작품을 쓰는 동안 원자 폭탄 개발이 이루워 졌던 뉴멕시코 주의 로스 앨러모스에 장기간 거주 하며 미국 현대사의 비극이 일어났던 역사적 현장을 직접 방문하며 철저한 자료 조사를 했다.

케네디 가문사람들 모두가 알고 있지만 아무도 그녀가 어디에 살고 있는지 알지 못했던 잊혀진 첫째 달 로즈 마리 케네디가 입원했던 <스텔라 마리스> 병원까지 조사했던 코맥 매카시는 대학에서 잠시 물리학과 공학을 공부했던 물리학도이자 공학도로 작가의 길을 가겠다는 걸 격렬하게 반대했던 아버지를 벗어나 무일푼으로 미국 전역을 떠돌며 다양한 직업에 종사했다.


매카시는 실제로 잠수부 인양 작업부일도 했었고 석유 시추 회사에 고용되어 조사원으로도 일 했었고 주유소에서 기름을 넣는 일도 하며 극빈의 삶까지 경험했다.

성공한 변호사를 둔 부유한 집안이였음에도 미래가 전혀 보장 되지 않는 글쟁이 길을 갔던 코맥 매카시에게 글쓰기란 영혼의 밑바닥까지 내려가서 인간의 심연 속 그 무엇을 문장으로 끌어 올려 내는 것이였다.

따라서 그의 일련의 작품은 메시아적인 시점으로 선문선답을 주고 받는 대화체들이 마치 누군가의 녹취를 풀어 놓듯 선형적인 구조로 층층이 쌓여져 있다.


<패신저>와 <스텔라 마리스>에 나오는 두 주인공과 주변 인물들인 주유소 직원도, 사장도, 술집 종업원도, 모델과 배우 일을 하는 사람들 그리고 이미 세상을 떠난 오펜하이머, 케네디 형제, 재클린 오나시스 그리고 저격수 오스월드, 수 십년 동안 막강한 권력을 가졌던 FBI국장 에드거 후버 그리고 여러 명의 범죄자들 모두 세상의 끝에 간신히 매달려 있다.


원자 폭탄이 일본 나가사키에 떨어졌을 때 2차 대전의 전쟁은 종전이라는 서류에 도장을 찍었지만 뒤이어 한반도에서 전쟁이 발발했고 연이어 중동의 화약고가 폭발했고 쿠바 미사일 위기로 인류는 일초 즉발의 핵 위기까지 인류 문명의 눈부신 기술과 과학 혁명이 우리가 살고 있는 이 땅에 어떤 평화와 전쟁, 폭력을 가져다 주었는지 90년의 세월을 살다간 코맥 매카시는 모든 것이었다가 절망을 안겨준 문명의 혜택이 갈급한 욕망에 사로 잡혀 결국엔 우리 모두의 존재 자체를 무너뜨리고 만다는 것을 마지막 두 권의 유작을 통해 펼쳐 보인다.

세계 최초로 핵폭탄을 만드는 데 선도적인 역할을 한 레오 실라르드는 훗날 개발 당시에 자신이 느꼈던 심정을 이렇게 토로 했다.


“1943년과 1944년의 몇 달 동안 우리의 가장 큰 염려는 연합군이 유럽으로 진격하기 전에 독일이 원자폭탄을 완성 하지 나 않을까 하는 것이었다……. 독일이 우리에게 할 수 있는 일에 대한 염려가 사라진 1945년에는 우리는 미국 정부가 다른 나라들에 할 수 있는 일에 대해 염려하기 시작했다.”

1945년 8월 6일, 아인슈타인과 프랑크, 실라르드, 라비노비치는 원자폭탄 사용을 막으려고 최선을 다했지만 어쨌든 8월 15일 나가사키에 폭탄이 떨어졌고 한국은 해방이 되었다.

만일 일본 , 독일이 먼저 핵 개발에 성공 했다면 20세기 역사는 완전히 뒤바뀌어 버렸을 것이다.

1945년 8월 12일 일본은 이미 한국 동해안의 작은 섬에서 소형 원자폭탄을 실험했다.

미국이 7월 16일 최초의 핵실험에 성공한 것보다 불과 3주 뒤로 이 핵실험 성공을 미국측이 알고 있었는지 현재까지 어디에도 확실한 증거는 없다.


1942년 4월 18일 미국이 일본 본토에 첫 공습을 시작하고 1944년부터 전략 폭격으로 확대해 나가자 일본은 원폭 프로그램을 한국의 흥남으로 옮겨 버렸고, 흥남지역에서 일본군이 원자탄 연구를 계속 수행 하는 동안 소련 잠수함이 흥남항 주변까지 내려 왔다.

만일 1945년 8월 15일 나가사키에 B-29 폭격이 아니었다면, 일본이 먼저 미국 본토에 핵폭탄을 떨어뜨려서 미국을 평화협상에 강제로 끌어 당겨 놓고 영원히 한반도와 동아사이 전체를 집어 삼켰을 것이다.

핵폭탄 성공 후 익명의 플루토늄 폭탄 개발 관계자는 이런 말을 남겼다.


“나는 더 ‘나은’ 이 폭탄을 사용하는 것이 몹시 두려웠습니다. 나는 그것이 사용되지 않길 바랐고, 그것이 초래할 파괴를 생각하며 몸서리쳤습니다. 하지만 아주 솔직하게 말한다면, 나는 이 종류의 폭탄 역시 예상한 대로 작동하는지, 다시 말해서 그 복잡한 메커니즘이 제대로 작동하는지 몹시 보고 싶었던 것도 사실입니다. 물론 이것은 끔찍한 생각이란 걸 알지만, 그래도 그 생각이 자꾸 떠오르는 걸 막을 수 없었습니다.”


당시 소련 간첩 혐의를 의심 받은 과학자들은 정식 재판에 회부된 적은 한 번도 없었지만, 정부로 부터 밀착 감시를 받으며 죽을 때까지 조국을 배신했다는 의심을 지우지 못했다.

아버지가 원자 폭탄 프로젝트에 참여했던 과학자의 자식들은 이웃들로부터 불신과 기피 대상이 되었고 학계에 유배 되거나 학계에서 밀려난 채 거의 추방 선고 형을 받은 삶을 살았다.

자살하거나 병들거나 아니면 침묵을 지켜야만 했던 매카시즘의 광풍이 몰고 온 비극이였지만 극단의 폭력으로 동아시아는 물론 인류 전체를 전쟁의 광풍으로 휩쓸어 넣어 버렸던 일본의 폭주를 멈추게 할 수 밖에 없는 건 원자 폭탄 뿐 이였다.

일본에 몇 몇 도시가  불바다가 되었을 때 마침내 전범 국가에게 짓밟혔던 국가의 국민들이 겪었던 끔찍하고 참담했던  고통은 끝이 나버렸지만 원자 물리학의 모순적인 테이터 통계로도  극단의 상황은 영원히 해결하지 못하게 되었다.

현재 이 세상은 마음만 먹으면 핵을 가진 국가는 버튼을 누를 수 있고 그 폭탄이 떨어지는 순간 우리가 존재 했던 세상은 무너져 버린다.

20세기 중반 현대 물리학이 바꾸어 놓은 세상의 질서가 모든 인류의 삶을 벼랑 끝으로 몰아 넣었다.


보비 웨스턴은 10년 전 세상을 떠난 동생이 문득 생각 나서 그녀의 사진을 찾지만 찾지 못한다.

아니 도저히 먼지가 쌓인 앨범에 있는 앳된 모습의 여동생 얼리샤의 얼굴을 똑바로 응시하지 못한다.

어둠에 쌓여 있는 바닷 속을 하염없이 유영하는 보비 웨스턴

마침내 자신의 두 손을 오므려서 마지막 순간을 밝혀주는 불을 스스로 꺼버린다.


누군가에게 자비를 베풀며 옷과 먹을 것을 주는 건 사람으로 이런 일을 할 수 있는 건 오직  인간 뿐 이다.

하지만 이런 인간들이 여러 명이 모여 집단을 형성하게 되면 이들 중 누군가는 증오심과 적개심을 품고 있을 것이고 슬픔에 사로잡히거나 폭력을 행사하거나 스스로 목숨을 끊어 버리는 이들도 있다.

집단적 슬픔, 집단적 폭력, 집단적 적개심에는 '나'라는 존재가 없고 '우리'라는 집단만 있을 뿐이다.

따라서 집단적으로 발생하는 전쟁과 폭력 앞에서는 '영원한 화해'도 '영원한 용서'도 없다.

20세기 초에 이르자 마침내 수학자들과 물리학자들은 모든 것을 수학으로 계산 할 수 있다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단지 우주가 완전한 어둠과 정적 속에서 헤아릴 수 없이 긴 세월 동안 진화 하는 동안 진행된 방식이 인류가 생각하고 상상하는 방식과 전혀 다르다는 것이다.

소리 없이 폭발하는 별들, 혜성들, 지나가는 유성들 모두 인간의 문명으로 설명하고 계산하기 힘들 정도로 우주라는 공간은 끝도 없이 펼쳐지며 어떤 생명체가 목격하거나 실재의 본질에 다가가지 못했다.

작가 코맥 매카시도 마지막 두 권의 책에서 불확실한 세상을 문학적 언어로도 완전하게 설명하지 못했지만 독자들에게 이런 질문을 던졌다.


-당신은 여전히 인간의 존엄성과 창조자의 명령을 믿는 게 타당하다고 생각하나요?


1962년 4월 케네디 대통령은 오펜하이머를 노벨상 수상자들과 함께 하는 백악관 만찬 행사에 초청에 비공식 청문회로 실추된 그의 명예와 자존심을 세워 주고 다음 해 봄 공직에서 국가에게 공헌한 이들에게 주는 엔리코 페르미상을 수여 하고 5만 달러의 상금을 준다.(1963년 11월 22일  포드 자동차 회사에서 만든 링컨 컨티넨탈 차를 타고 텍사스주 댈러스 시내에서 퍼레이드를 행사를 하던 중 오후 12시 30분, 딜리 플라자를 지나던 케네디 대통령의 차량에 보관 창고 건물 6층에서 리 하비 오스월드가 총 3발이 케네디 대통령의 목을 관통하였고 목을 잡고 고통을 호소하다 부인 재클린 케네디가 보는 앞에서 머리에 총을 맞고 사망해서 당시 부통령이였던 린든이 대통령직에 올라가자마자 오펜하이머에게 상을 수여했다. 몇 주 후 재클린 케네디가 개인 면담을 통해 생전 남편이 오펜하이머를 수상자로 결정했다는 걸 무척 자랑스러워했다는 말을 전달했다.)

오펜하이머는 당시 이 시상식 자리에서 이런 연설을 남겼다.


“과학을 하는 사람과 예술을 하는 사람은 모두 항상 불가사의에 둘러싸인 채 그 가장자리에서 살아갑니다. 그리고 모두 자신이 만들어낸 창조물의 척도로서, 항상 새로운 것을 익숙한 것과 조화 시키고, 새로운 것과 종합 사이에서 균형을 이루고, 전체적인 혼란 속에서 부분적인 질서를 만들려고 노력해야 했습니다. 이들은 자신의 일과 인생에서 스스로를 돕고, 서로를 돕고, 모든 사람을 도울 수 있습니다. 이들은 예술과 과학의 마을들을 서로와 전체 세계와 연결하는 길을 만들어 진정한 세계적인 공동체의 많고 다양하고 소중한 유대들로 발전시킬 수 있습니다. 이것은 쉬운 삶이 될 수 없습니다. 우리는 열려 있고 심오한 상태로 마음을 유지하기 위해, 우리의 미적 감각과 그것을 만드는 능력을 유지하기 위해, 그리고 가끔 멀고 이상하고 낯선 장소에서 그것을 보는 능력을 유지하기 위해 힘든 시간을 보내야 할 것입니다. 우리 모두는 거대하고 열려 있으며 바람이 세게 몰아치는 세계에서 이것들이 번창하도록 유지하기 위해 힘든 시간을 보내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이런 조건에서 우리는 서로를 도울 수 있는데, 왜냐하면 우리는 서로를 사랑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J. 로버트 오펜하이머(1904-1967)



맨해튼 원자 폭탄 개발에 참여 했던 모든 과학자들도 세상을 떠났고 오펜하이머의 명예를 살려주며 상을 수여한 케네디 대통령도 세상을 떠났고 미국 현대 문학의 거대한 산맥의 봉우리였던 작가 코맥 매카시도 세상을 떠났다.

첫 번째 책 패신저의 첫 문단으로 돌아가면 노란 장화 한 짝이 벗겨진 상태로 눈 밭에 서있는 엘리샤의 모습이 나타난다.

그리고 패신저의 마지막 문단에 다다르면 어둠 속에서 죽은 여동생의 얼굴을 떠올리며 짚자리에 누워 자그만한 소리로 오빠 보비 웨스턴이 미지의 언어로 노래를 부른다.


작가 코맥 매카시는 곧 다가올 자신의 죽음을 직감한 듯 범 우주적인 세계관 속에 현실과 환각의 세상을 교차 시키며 삶과 죽음에 관해 자신의 언어로  지상에 마지막 두 권의 이야기를 남겼다.


[여기 이야기가 있다. 주위가 어두워지는 동안 우주에 홀로 서 있는 모든 인간 가운데 마지막 인간, 하나의 슬픔으로 모든 것을 슬퍼하는 인간, 한 때 그의 영혼이었던 것이 소진되고 남은 애처로운 찌꺼기에서는 이 마지막 날들을 안내해줄 신 비슷한 존재라도 만들 재료는 전혀 찾지 못할 것이다.]

                                                                                -코맥 매카시(1933-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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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onnight 2024-01-08 13:2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scott님. 와♡ 멋진 글 잘 읽었습니다. 원서로 나오자 마자 읽으시고 배후 지식까지 1년간 쌓으신 후 다시 독파하시다니@_@;;; 번역본도 자신이 없어서 아직 주문 못 하고 있는데@_@; 부끄럽고 존경합니다^^

scott 2024-01-08 14:25   좋아요 1 | URL
이 책 읽을 만한 (시간을 두고) 가치가 충분히 있는 아주 훌륭한 책입니다.
폴 오스터의 4321
코맥 매카시의 <패신저>는 21세기 현대 문학 명작에 반열에 올라가 있습니다.
꼭 읽어 보세요 ^^

망고 2024-01-08 14:4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저 오펜하이머 자서전 번역서 벽돌 두께에 기가질려서 언제나 읽게될까 하고 있는데 스콧님은 무려 원서로ㅜㅜ 이 소설을 제대로 잘 읽으려고 곁가지로 저렇게나 많은 방대한 자료들을 함께 읽으셨군요👏👏👏저는 근데 이때까지 이 작가님 소설이 취향인적이 없는데 오펜하이머 자서전 다 읽으면 도전해 봐도 좋을거 같다는 생각을 했어요🤣

2024-01-08 16:17   URL
비밀 댓글입니다.

어쩌다냥장판 2024-01-08 22:3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폴오스터의 4321 은 어떤 삶이 어떤 책을 읽었고 어떤 선택을 했는지가 헷갈렸는데
이책 스텔라마리스는 대화형식이라 읽혔지만
와 패신저는 당췌 헤상에 침몰한 배에 들어간 인양부에서 뭐가 일이 일어나나 싶으면 이상한 이야기로 이어지고 번역이 문제인지
제 이해력이 날이 갈수록 딸리는건가 다시 읽어 보려던 차에 리뷰 글에 이해가 가네요
그놈의 오 하느님에 ㅜ 머리 쥐어 뜯을뻔 했다니까요 ㅋ

2024-01-11 11:58   URL
비밀 댓글입니다.

새파랑 2024-01-09 06:4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오! 한번 실망했던 코맥 매카시인데 스콧님 리뷰 읽어보니 이 책들 두권 완전 흥미진진하네요~!! 다음 이야기들이 궁금합니다~!! 명작이라니 안읽을수가 없겠네요~!!

scott 2024-01-11 11:58   좋아요 1 | URL
실망은 아니고
제대로 알지 못한 상태에서 읽어서
현대사와 과학 철학을 학습 하고 나서 다시 읽었습니다
명작 중에 명작입니다

유명인들이 추천을 안한 이유가
두꺼워서 일지도 ㅋㅋㅋ

demianee 2024-01-10 21:3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스콧님 오랜만이에요! 기억에 남을만한 인용구가 있는 글이네요! 잘읽었습니다 :)

scott 2024-01-11 11:59   좋아요 0 | URL
장문의 댓글이 짧아졌어요 ㅋㅋㅋ

저는 매일 투비에 글을 쓰고 있습니다
데미님 시험은 잘 보셨겠죠(너무 오래전 이지만)
건강하게 행복한 새해, 갑진년 한해 행운만 가득하시길 바랍니다 ^^

희선 2024-01-12 02:4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코맥 매카시 책 한번도 못 봤군요 이름만 아는 작가... 이 책이 나왔을 때 원서로 보시고 다른 책을 죽 찾아서 보시다니 대단합니다 그런 걸 보고 다시 봤을 때 더 잘 알았을 것 같네요 과학자가 연구하는 걸, 제대로 쓰려고 해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런 것보다 돈을 먼저 생각하는 사람이 더 많을지도...


희선

2024-01-12 12:20   URL
비밀 댓글입니다.
 
어느 작가의 오후 - 피츠제럴드 후기 작품집 (무라카미 하루키 해설 및 후기 수록)
프랜시스 스콧 피츠제럴드 지음, 무라카미 하루키 엮음, 서창렬 외 옮김 / 인플루엔셜(주) / 202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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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년 전 이달에 나는 직장을 그만두었다. 사업에서 은퇴했다고 말하는 게 더 나은 표현일지도 모른다. 어쨌든 직장 생활을 끝냈다. 스트리트레일웨이 광고 회사는 알아서 굴러갈 것이다. 은퇴하는 것이 나에게 이익이 되어서 은퇴한 것이 아니라 빚과 절망, 약혼 파기 같은 부정적인 요인 때문에 은퇴한 것이었다. 은퇴한 나는 '장편 소설을 완성하기 위해' 고향인 세인트폴로 가만 가만 기어 내려갔다.]

-피츠제럴드의 '젊은 날의 성공' 중에서


대학 재학 중에 결혼 하고 생업 전선에 뛰어든 작가 무라카미 하루키는 재즈바를 경영 하는 동안 낮과 밤이 뒤바뀌는 생활 속에서도 피츠제럴드의 소설은 수시로 읽었다.

1979년 어느 날 자신의 삶의 계시처럼 하늘 위로 날아 온 야구 공처럼 무라카미 하루키는 서른을 앞두고 소설 한 편을 완성했고 글 쓰는 인생의 길을 걸어 간다.


[내가 처음으로 번역한 책은 스콧 피츠제럴드의 소설집 <마이 로스트 시티> 였다. 이 책은 1981년에 출판되었는데, 내가 소설가로 데뷔한 직후였다. 이후로도 나는 창작을 하면서 피츠제럴드의 소설을 번역하는 일을 시간 간격을 두고 조금씩 계속해왔다. 이후 소설집을 몇 권 엮어 내고 장편 소설 <위대한 개츠비>를 번역했다.]

-무라카미 하루키

어디에서도 창작 수업을 들어 본 적 없었던 하루키는 작가 생활과 함께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작가의 작품을 번역 하면서 창작과 번역이라는 두 개의 회로를 동시에 움직이기 시작한다.

일본에서 출간 되었던 피츠제럴드의 주요 작품들 대부분은 1960년대 쇼와 시기에 집중 번역 되었다가 대단한 판매 부수를 올리지 못한 채 대부분 절판 되었다.

피츠제럴드는 동시대 살았던 작가들 중 포크너와 헤밍웨이처럼 노벨 문학상이나 퓰리처 상 같은 타이틀 조차 없었기에 일본 독자들에게 잊혀진 작가 였고 영문학과에서 교재로 읽혀지는 작가에 불과했다.

1980년 부터 본격적으로 피츠제럴드의 작품을 번역하기 시작한 하루키는 대학에서 영문학을 전공하지도 않았고 번역 스킬을 배운 적도 없었지만 피츠제럴드의 문장에 스며있는 리듬감과 생생한 시대의 목소리를 일본어로 옮기는데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하루키는 일본에서 미국 현대 문학 번역의 대가이자 폴 오스터의 작품을 일본어로 번역한 도쿄대학 시바타 모토유키 교수 앞에 번역한 원고를 전부 펼쳐 놓고 첫 문장부터 소리내어 읽어가며 문장 전체의 유연성, 리듬감, 의미를 원문과 철저하게 비교하고 수정하는 작업으로 한 권의 번역서를 완성한다.

하루키 작품의 열풍은 그가 번역하는 작품들로 이어져서 오래전에 잊혀지고 절판 되었던 피츠제럴드 작품들이 일본 주요 서점의 베스트셀러로 올라가고 미국 문학계까지 주목하게 되자 일본 내에서 번역가로 손꼽히는 이들이 하루키가 번역한 작품들과 다른 번역가들이 번역한 작품들을 나란히 놓고 원문과 비교하는 작업을 수행 한 적이 있다.

오래도록 대학의 상아탑에서 학자의 이름을 걸고 시작했던 이 작업에서 하루키의 번역 실력은 A로 평가 받아 학계에서도 인정 받을 정도로 그의 번역 실력은 현재 일본에서 최고로 평가 받고 있다.


'<마이 로스트 시티>를 번역하던 당시, 피츠제럴드의 작품은 얼마 번역되어 있지 않았고 대부분 절판 되었다. 따라서 그의 작품을 일본 독자에게 널리 소개하는 게 번역자로서의 내 중요한 역할 가운데 하나가 되었다. 아직 번역 능력도 변변치 않았지만. 그 같은 열의가 나를 앞으로 나아가게 했다.'

-무라카미 하루키

한국에서도 하루키가 번역한 피츠제럴드의 열풍을 타고 그의 작품들이 앞다퉈 출간 되었고 유명 작가들이 직접 번역하는 번역서도 출간 되었을 정도로 작가로써 짧은 생애를 살다간 피츠제럴드의 작품이 다시 한번 독자들의 눈길을 받게 되었던 건 무라카미의 성실한 번역의 힘이 가장 컸다.


무라카미 하루키는 1979년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라는 첫 작품으로 군조상을 수상하고 2년 후 1981년 피츠제럴드의 초기 단편집<마이 로스트 시티>를 번역하고 이듬해인 1982년 <양을 둘러싼 모험> 장편을 완성하고 전업 작가가 된다.

그는 이미 소설가가 되기 전 부터 재즈 바 문을 닫은 새벽녘 부엌 테이블 위에 노트와 사전을 펼쳐 놓고 꾸준히 피츠제럴드의 작품을 번역하고 있었다.

피츠제럴드의 작품은 그의 새로운 삶의 출발점이였고 그의 문학적 스승이자. 글쓰기 교본이였다.

2006년60세를 앞둔 무라카미 하루키는 자신의 인생 작품인 피츠제럴드의 <위대한 개츠비>를 두 번째로 새롭게 다듬어 번역 출간 했다.

장편과 단편, 에세이를 출간하는 동안에도 하루키는 피츠제럴드의 장편 <밤은 아름다워> 번역에 이어서 70세에 들어선 2022년 알콜중독으로 <마지막 대군> 집필 중에 44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난 피츠제럴드의 미완성 작품까지 번역하며 문학적 스승인 스콧 피츠제럴드를 향한 고마움이 담긴 번역 작업 마무리를 마쳤다.



[뉴욕은 태초의 모든 빛깔을 지니고 있었다. 귀환한 참전 부대가 5번가를 행진 했고, 여자들은 본능적으로 그들을 향해 동쪽으로, 북쪽으로 이끌렸다. 우리 미국은 마침내 명백히 가장 강력한 나라가 되었고, 그래서 공기에 축제의 기운이 감돌았다. 토요일 오후에 플라자 호텔 레드룸을 유령처럼 떠돌 때도 술이 풍족하게 제공되는 이스트 60번가의 가든파티에 갔을 때도, 빌트모어 술집에서 프린스턴 동문들과 술잔을 기울일 때도, 나의 다른 인생은 한시도 뇌리를 떠나지 않았다. 브롱크스의 칙칙한 방, 붐비는 지하철을 타고 출퇴근하는 일, 앨라배마에서 오는 편지를 날마다 기다리는 일(편지가 올까? 뭐라고 쓰여 있을까?) 허름한 양복, 가난 그리고 사랑이 언제나 나의 뇌리에 들러붙어 있었다. 친구들이 순조롭게 인생의 바다로 출항하는 동안 나는 나의 불완전한 배를 강물 한가운데로 저어 가려고 열심히 손발을 놀려댔다.]

-피츠제럴드의 <나의 잃어버린 도시> 중에서


내가 피츠제럴드를 다시 만났던 시기는 유럽의 삶을 뒤로 하고 뉴욕에 도착했을 무렵 이였다.

뉴욕 맨해튼 4번가에 위치한 최대 규모의 중고 서점 스트랜드 앞 매대에 1달러짜리 피츠제럴드의 책을 집어 들었던 그 날을 잊지 못한다.


피츠제럴드의 'The Crack up (망가지다)'의 첫 문장, 아니 첫 문단은 이렇게 시작한다.


[ 물론 모든 인생은 망가져 가는 과정이지만 이 같은 일의 극적인 측면을 만드는 타격(외부에서 오는 -또는 외부에서 오는 것처럼 보이는 -크고 갑작스러운 타격)은, 그러니까 계속 뇌리를 맴돌 뿐만 아니라 우리가 갖가지 안 좋은 일에 대한 원인으로 돌리며 탓하고, 마음이 약해질 때면 친구들에게 얘기하게 되는 종류의 타격은 갑자기 효과를 발휘하지는 않는다.]

-피츠제럴드의 '망가지다' 중에서


이 날 밤 나는 1달러를 지불한 피츠제럴드의 에세이들을 여러 번 읽고 다음 날 중고 서적이 아닌 일반 서점으로 달려가서 장편 <위대한 개츠비>를 구입했다.

오래 전 초등학교 졸업 년도에 읽고 고등학교 시절에 원문으로 읽었지만 어떤 감명을 받지도 않았고 내 책장에 그 책을 꽂아 두지도 않았다.


스콧 피츠제럴드가 살았던 1920년대 미국은 엄청난 대 호황이 지나간 뒤 썰물처럼 모든 것들이 빠져나가 버렸던 경제 대공황 시절로 사회 전체가 암담함으로 가득 차 있었다.

신기하게도 현 시대와 그 시절의 상황이 맞물려 움직이는 것처럼 내가 살았던 뉴욕의 공기도 피츠제럴드가 살았던 뉴욕의 공기와 크게 다르게 느껴지지 않았다.


한 세기 전에 출간 된 <위대한 개츠비>는 피츠제럴드의 세 번째 작품으로 그는 20대 나이에 철저하게 아웃 사이더의 시선으로 주류의 영역, 계층의 사다리에 올라가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 인생의 불공평함, 삶의 부조리를 작품 속에 녹여 냈다.


'그것은 희망에 대한 탁월한 재능이요, 다른 어떤 사람에게서도 일찍이 발견된 적 없고 앞으로도 다시는 발견할 수 없을 것 같은 낭만적인 민감성이었다. 아니, 결국 개츠비는 옳았다. 내가 잠시나마 인간의 짧은 슬픔이나 숨 가쁜 환희에 대해 흥미를 잃어버렸던 것은 개츠비를 희생물로 이용한 것들, 개츠비의 꿈이 지나간 자리에 떠도는 더러운 먼지 때문이었다.

-스콧 피츠제럴드의 <위대한 개츠비> 중에서


그동안 피츠제럴드는 나에게도 잊혀진 작가였고 그의 출세작인 개츠비가 왜? 위대한지도 전혀 이해하지 못했다.


[나는 마흔 네 살이 되었을 때 이렇게 생각했다. '그렇구나, 딱 이 나이에 피츠제럴드는 죽었구나' 나는 그때 프린스턴 대학에 다니며 (피츠제럴드의 모교다), <태엽 감는 새 연대기>라는 장편 소설을 쓰고 있었다. 그리고 통감했다.'이 작품을 마치지 못하고 죽어버린다면 틀림없이 분하겠다.']

-무라카미 하루키


나는 개츠비가 보았던 초록빛을 보기 위해 그가 프린스턴 재학 시절에 끄적였던 원고 복사본까지 찾아 읽으며 뉴욕에서 새로운 희망의 빛을 찾기 위해 노력했다.

유럽 땅에서 인생의 2막을 시작해서 미 대륙으로 건너와 내가 살았던 땅을 벗어나 마치 거세게 밀려 드는 조류를 거슬러 올라가듯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기 위해 매일 고군분투 하는 동안 가방 속에 부적처럼 피츠제럴드의 책을 넣고 다녔다.


[그의 마음속에는 언제나 폭풍우가 거칠게 몰아치고 있었다. 밤에 잠을 잘 때면 너무나 기괴 하고 환상적인 생각이 머릿속에서 떠나지를 않았다. 시계가 세면대 위에서 째깍 거리고 촉촉한 달빛이 바닥에 아무렇게나 벗어 놓은 옷을 적시는 동안, 차마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화려한 우주가 그의 머릿속에서 실타래처럼 피어났다. 매일 밤 그는 졸음이 몰려와 생생한 장면을 망각의 포옹으로 감쌀 때까지 새로운 환상을 계속 늘려 나갔다. 얼마 동안 이런 환상은 그의 상상력에 돌파구를 마련해 주었다. 현실이 꿈처럼 비현실적인 것이 될 수 있다는 충분한 암시요, 이 세상의 주춧돌이 요정의 날개 위에도 안전하게 세워질 수 있다는 약속이었던 것이다.]

-피츠제럴드

살아 가는 동안 다양한 형태로 찾아 오는 공격들이 있다.

하물며 새로운 환경에서 맞닥뜨리게 되는 어려움이나 곤경들을 지혜롭게, 아니 운 좋게 해결하고 넘어가기는 쉽지가 않다.


'인생이란 내가 조금만 노력하면 뜻대로 꾸려나갈 수 있는 것이었다. 삶은 지성과 노력에 또는 이 두 가지가 적절히 뒤섞여 발휘된 것에 쉬이 길을 내주었다.'


피츠제럴드의 이 문장은 나에게 건네는 따뜻한 조언 그 이상이였다.

새로운 환경이 나쁘지만은 않았다.

대부분 내 스스로 해결 할 수 있었고 적절한 시기마다 좋은 사람들이 나타나 도움을 주었고 노력 한 만큼 애쓰는 만큼 댓가를 받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공'의 빛, 지금보다 한 단계 더 높은 곳으로 올라가는 과정에는 엄청난 압박과 눈에 보이지 않는 장벽이 존재 했다.


'사는게 순탄치 않았지만 마흔 아홉 살까지는 괜찮을 꺼야. 라고 나 자신에게 말했다.

그럴거라고 믿어 이런 삶을 살아 온 나 같은 인간이 뭘 더 바라겠어.'

-그런데 마흔 아홉 살을 10년 앞둔 지금, 나는 내가 이미 망가져 있다는 사실을 갑자기 깨달았다.

만일 내가 서른 살에 마흔 살 그리고 오 십대에 피츠제럴드를 만났다면 그저 한 번 읽어버리고는 두 번 다시 읽지 않았을 것이다.

조류를 거슬러 앞으로 질주 하던 20대 시절에 그의 글을 읽고 삶의 정체기 시절엔 그의 글을 모두 필사 하며 일시적으로 겪었던 난독 증세를 극복했다.

내 인생에서 봉착 했던 어려움은 피츠제럴드의 삶을 무너지게 만들었던 알콜 때문도 아니였고 눈부신 성공에 취해서 흥청망청 시간을 낭비하며 체력을 소진해서가 아니였다.

마치 누군가에 의해 뇌신경세포가 손상 된 것처럼 눈으로 활자를 인식해도 머릿 속에선 백지 상태가 되는 증세를 겪었다.

그 분야에서 저명한 의사들도 스트레스 과부하가 원인이라는 진단만 내려서 딱히 뚜렷한 처방도 치료 약도 없었다.


'성공의 첫 번째 거친 바람과 그 바람에 실려 온 달콤한 안개, 그 시절은 짧고도 소중한 시간이다. 왜냐하면 몇 주 후 또는 몇 달 후에 안개가 걷히고 나면 우리는 최고의 시간이 끝났다는 것을 깨닫게 되기 때문이다.'


달콤했던 런던의 안개와 희망의 빛을 비춰 주었던 파리의 짙은 스모그가 사라진 후에 마주한 뉴욕의 공기는 거칠었다.

거친 공기를 매일 마시면서 나는 서서히 일 근육을 키웠고 공격을 하는 상대에 맞서면서 낯 빛까지 두꺼워졌다.

조류에 휩쓸리지 않으려면 단단하게 닻을 묶어서 중심을 잡아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조류에 떠밀려 부서지거나 망가지거나 영원히 나라는 존재가 세상에서 사라져 버린다.


'인생의 낭만적인 것이라는 믿음이야말로 너무 이른 시기에 거둔 성공의 대가이다. 긍정적인 의미에서는 이를 통해 젊음을 유지하게 된다고도 볼 수 있을 것이다.'

-피츠제럴드

조류를 거슬러 올라가지 전 파리에서 마지막 밤을 보냈던 그 해 12월 , 집 밖을 나와 미라보 다리를 건너 에펠탑이 뿜어내는 불빛이 가장 잘 보이는 곳에 앉아 친구들과 샴페인 잔을 기울였다.

12월 31일 나는 홀로 미라보 다리에 앉아 에펠탑에 새겨진 다음 해의 시작을 알리는 카운트 다운의 숫자를 세고 있었다.


1월 1일 0의 숫자가 찍히는 순간, 내 시야는 파리가 아닌 뉴욕, 자유의 여신상에 맞닿아 있었다.


삶의 터전을 옮기는 건 대륙과 대륙 사이의 이삿짐을 옮기는 것 만큼 힘든 일이다.

그럼에도 그 해 새해, 파리의 찬란했던 빛을 뒤로 하고 인생의 또 다른 시작을 위해 뉴욕으로 건너갔다.

알 수 없는 미래의 꿈을 향해 발을 내딛던 그 시절엔 절벽 위를 기어 올라가도 구불 구불한 도로 위를 질주 해도 무섭고 두려울 것이 없었다.


[젊어서 성공에 이른 사람은 자신의 운명의 별이 눈부시게 빛나기 때문에 자기가 의지를 행사하는 거라고 믿는다. 서른 살에 어렵사리 두각을 드러낸 사람은 의지력과 운명이 각각 어떤 기여를 했는지에 대해서 균형 잡힌 생각을 갖는다. 마흔 살에야 그런 위치에 이른 사람은 의지력만을 강조하는 경향이 있다. 서로 차이 나는 이런 태도는 폭풍우가 당신의 배를 강타할 때 드러난다.]


피츠제럴드가 파리를 찾았던 시기는 알콜에 찌들어서 손가락을 덜덜 떨 정도로 육체적으로 정신적으로 무너지기 시작했던 시기로 문학계에 혜성같이 나타난 헤밍웨이의 작품에 밀려났고 남부 출신의 윌리엄 포크너 작품에 가려져서 미국 문단에서 그의 이름은 사라지고 있었다.

그럼에도 피츠제럴드는 빛났던 젊음과 사랑, 돈과 명성이 무너져 내리던 시기에도 글을 썼고 딸을 부양하며 창작의 영감이자 뮤즈였던 아내 젤다의 치료비를 대기 위해 영화 시나리오까지 손을 댔다.


'이 낡은 배도 한동안은 물에 떠 있을 수 있겠지... 어떤 바람이 분다 해도....'

-피츠제럴드의 '바람 속의 가족' 중에서


이번에 다시 찾은 파리는 전에 내가 살았던 그 모습은 아니였지만 그렇다고 나의 꿈조차 사라지진 않았다.


다시 찾은 파리에서 미라보 다리에 앉아 밤하늘의 어둠 속에서 뿜어져 나오는 에펠탑의 불빛을 향해 미래의 카운트다운을 세지는 않지만 개츠비가 그랬듯이 조류를 거스르는 배처럼 끊임없이 과거로 떠밀려가면서도 앞으로 앞으로 계속 전진해 나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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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시우행 2023-12-02 06:2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하루키의 작가 인생에 큰 영향을 미친 피츠제럴드, 다시 찾아서 읽어보고 싶네요.

scott 2023-12-02 10:55   좋아요 0 | URL
하루키에게 문학적 스승(피츠제럴드의 굴곡진 인생까지도)의 단편, 특히 에세이가 무척 좋습니다
자극적인 스토리가 넘쳐나는 시대에 피츠제럴드의 단편 속 이야기 맘을 편하게 해준답니다 ^^

새파랑 2023-12-02 14:2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번역은 소설쓰기의 다른 형태라는 생각이 듭니다 ㅋ저도 이거 펀딩했는데 아직 열어보진 않았네요~!!

전 하루키 덕분에 피츠제럴드를 알게 되었습니다 ㅋ

scott 2023-12-03 23:36   좋아요 1 | URL
얼릉 열어보세요
새파랑님이 전부 좋아하실 단편들과 에세이
그리고 마지막 하루키옹의 후기까지 꽉찬 책입니다
만듦새도 이쁘고 책갈피도 이쁨 ㅎㅎㅎ

나와같다면 2023-12-04 23:4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scott님 2023년 서재의 달인 선정되심 축하드립니다. 수고하셨어요

scott 2023-12-05 00:41   좋아요 1 | URL
감사합니다
뒤숭숭한 연말 건강 잘 챙기세요 ^^

페크pek0501 2023-12-05 17:1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번역 작업을 하면 문장력 향상에 많이 도움이 될 듯합니다. 번역할 때 이것이 좋을까 저것이 좋을까 고민하며 어휘를 선택하지 않겠습니까? 하나의 문장을 번역해 놓고 고치고 고치면서 더 나은 문장으로 조탁하게 위해 애쓰지 않겠습니까? 그래서 번역가들이 글을 잘 쓰는 것 같아요.^^

scott 2023-12-07 01:15   좋아요 1 | URL
문장력 향상 수준 까지 다다르려면 빠른 속도로 번역하는 스킬 수준일 때 입니다
한 단어 한 단어 사전에서 의미 찾는 동안 늘어나는 건 어휘력과 문맥 이해력 !ㅎㅎ
아무래도 글쟁이 소설가들은 번역하면서 원작가의 기술을 빠르게 습득해 나가는 것 같습니다
마치 건축 설계사가 설계 도면 보면 바로 머릿 속에 건물 한 채가 뙁!^

희선 2023-12-06 02:2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무라카미 하루키가 스콧 피츠제럴드를 일본에 더 많이 알렸다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겠습니다 스콧 피츠제럴드는 하루키한테 고마워해야 하겠네요 한국에까지 영향을 주지 않았을지... 무라카미 하루키가 번역한 소설에는 레이먼드 카버와 레이먼드 챈들러도 있네요 더 있을지도 모르겠지만...

scott 님 scott은 스콧 피츠제럴드에서 온 건가요(예전부터 물어보고 싶었는데) scott 님 서재 달인 축하합니다 오늘 좋은 하루 보내세요


희선

2023-12-07 01:17   URL
비밀 댓글입니다.
 
이 책을 훔치는 자는
후카미도리 노와키 지음, 최고은 옮김 / 비채 / 202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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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 곳곳에 50여 개의 책방들이 즐비 한 책의 마을 요무나가에는 신사가 있다.

이 곳 신사에는 서책을 관장하는 미쿠라관에는 이나리 신이 모셔져 있다.

서책을 관장하는 이나리 신을 모신 요무나가신사로 향하는 이들의 염원하는 소원들은 독서, 글쓰기에 관한 것으로 책과 관련된 기원과 욕망, 저주의 말들을 쏟아 내기 위해 전국 각 지역에서 모여 들고 있다.


[1980년에 나온 <정본 수서산서>의 특별 한정판 35부를 10만엔 이하로 구입할 수 있길.

SF작가 도헨 보쿠타로의 창작 의욕에 불을 지펴주세요.

20년 동안 신간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신인 문학상을 탄다.! 이번에는 무슨 일이 있어도 꼭 탄다! 타게 해주세요!

서점 매출이 오르기를, 가능하다면 인터넷 서점 아마존이 경영이 악화되거나 스캔들이 발각 되어 망하길]

인간을 위한 신사가 아닌 미쿠라관은 조상 대대로 책을 지키고 보관하고 널리 전파 하는 가문으로 미쿠라관 설립자인 미쿠라 가이치는 책 수집가이자 평론가였고 그의 아내도 책 수집가로 살다 세상을 떠났다.

이 가문의 자손인 아들 아유무와 딸 히루네는 관리인으로 오로지 이 집안 책을 펼치고 읽고 수집하고 관리하고 보존하는데 혼신의 힘을 기울인다.

그러던 중 어느 날 미쿠라관이 소장하고 있는 희귀본 중에 200여권이 서가에서 사라지자 폐쇄를 결정하고 희귀본을 훔쳐간 도난범을 찾는데 온 가족이 혈안이 된다.

미쿠라 집안의 손녀 미후유는 책을 싫어하는 고교 1학년생으로 책을 읽는 것 보다 친구들과 어울리며 맛있는 걸 먹는 걸 더 즐기는 십대 소녀다.

인간을 위해 지은 것이 아닌 오로지 책을 위해 지어진 미쿠라관에는 몇 개의 방을 제외하고는 인간이 편안하게 쉴 공간이 없다.

할아버지가 돌아 가시자 마자 정원을 없애고 별관을 증설해서 가족들의 거주 공간을 마련했지만 창도 없고 환기구만 있는 그곳은 십대 소녀 미후유에게 감옥이였다.

남아 있는 희귀본을 지키기 위해 폐쇄해버린 미쿠라관에 교복을 입은 낯선 침입자가 슬그머니 들어 온다.

침입자의 이름은 마시로, 낯선 침입자가 입을 열었다.


[미쿠라관의 책. 현재 23만 9122권. 그 모든 책에 '책의 저주'가 걸려 있어. 훔치면, 미쿠라 집안 사람이 아닌 자가 바깥으로 책을 한 권이라도 가지고 나가면 발동하지 이야기를 훔친자는 이야기의 감옥에 갇혀. 이번엔 선택된 건 마술적 사실주의의 저주야. 매직 리얼리즘이라고도 불리는 마술적 사실주의의 세계에 도둑이 갇히는 저주지.]


서책들이 걸린 저주는 미쿠라관 주변을 에워싸더니 요무나가 마을의 고서점 일대로 퍼져 나가 신호등 색이 뒤바뀌며 녹색빛의 은행나무 잎이 갑자기 샛 노란색으로 물들기 시작한다.


'미후유, 지금부터 도둑을 찾아야 해. 책 도둑을 잡으면 책의 저주는 사라지고 마을도 원래대로 돌아올 거야.'


책을 지키는 가문에서 태어나도 책을 싫어하는 미후유가 과연 책 도둑을 잡을 수 있을까?


비를 몰고 다니는 남자 베이젤과 해를 몰고 다니는 남자 케이젤이 살았던 한모 마을

두 형제는 어머니가 세상을 떠나는 날 여우비를 맞으며 형 베이젤이 거대한 바위를 들어 동생을 향해 던지려는 순간 동생 케이젤은 날카로운 나뭇가지로 형을 찌르려고 달려들자 나그네가 주사위 두 개를 던져 하나는 서쪽, 하나는 동쪽으로 향해 떠나라고 지시한다.

형제는 나그네의 말 대로 각각 서쪽과 동쪽으로 떠나 성인이 되어 다시 만난다.

형 베이젤은 빗물을 받아 놓는 항아리 밑에서, 동생 케이젤은 뙤약볕이 내리쬐는 시장에서 검은 투구벌레를 발견한다.

서로 각자의 길을 가다 두 형제를 만나게 한 투구벌레, 형제의 이야기는 마을의 전설처럼 전해져서 한모 마을 사람들은 투구벌레 처럼 등딱지가 있는 벌레를 신의 심부름꾼으로 숭배한다.

미쿠라 도서관의 낯선 침입자 마시로는 미후유에게 현재 요무나가 마을이 한모 마을 같은 저주에 걸렸다며 투구벌레를 찾아 낸다면 책 도둑도 잡고 마을에 걸린 저주도 풀 수 있다고 말한다.

한모 마을의 전설처럼 전해져 내려오는 두 형제 베이젤과 케이젤의 이야기가 책 도둑을 찾아 내려는 미후유의 모험과 함께 맞물리며 독자들은 책을 모시고 지키는 가문의 손녀이자 후계자가 책도둑을 찾아 다양한 책들을 만나고 그 책들을 읽은 사람들을 추적하는 동안 그토록 책을 싫어 했던 미후유는 책을 펼치고 활자의 마력 속으로 빨려 들어간다.


[작은 산만 한 그 생물은 고개를 젓다가 위쪽 램프와 부딪쳤고, 가엾은 램프는 지면에 떨어졌다. 기름에 불이 붙었고, 순식간에 불꽃이 융단처럼 퍼져나갔다. 그 불꽃이 비춘 생물은 분명히 '짐승'이라고 밖에 표현 할 수 없는 모습이었다.]


미후유는 언젠가 어린 시절 할머니가 읽어 주셨던 그림책<은빛 짐승>에서 보았던 짐승들이 바로 눈 앞에 나타난다.

노란 여우, 하얀 개, 갈색 말


이런 짐승들을 돌봐주던 사람들 모두 동물의 모습으로 변해 버리고 마을의 저주는 점점 더 강해져서 짐승으로 변하지 않은 인간들의 삶까지 위태로워진다.

하얀 개로 변해버린 미쿠라 도서관의 낯선 침입자 마시로의 등에 올라 탄 미후유는 인간의 모습으로 남아 있는 사람을 찾기 위해 달리고 달리고 또 달리지만 인도에도 고서점 거리에도 어디에도 사람의 인기척을 발견하지 못한다.

마을 주민들이 전부 사라져 버린 도시에 홀로 남겨진 미후유는 책의 도시였던 마을에 북커스의 버그나 오작동으로 사람을 싫어하는 마을이 되었을지 모른다는 의구심을 품는다.


[미쿠라 집안과 연고가 없는 자, 미쿠라관의 장서를 한 권도 반출 하지 말 것. 이 금기가 깨지면 주술, 즉 북커스가 발동된다.]


저주에 걸린 마을 사람들은 여우의 모습이 되고 도둑이 나타나면 미쿠라관과 신사를 제외하고는 세계는 정해진 책에 기초하여 변해버린다.

이 모든 저주는 요무나가신사에 모셔진 제신 혼요미노미코토의 가호로 집행되었고 미후유는 '마을에 거부당한' 그곳 저주를 풀기 위해 신의 거처를 찾아 간다.

미후유는 신의 거처에서 엄청난 가문의 비밀을 알게 되고 첫 페이지 부터 마지막 장

'진실을 알아버리다'를 펼친 독자들은 온 몸에 소름이 쫙 돋아나는 경험을 하게 된다.

책들은 진심으로 책과 문자에 대한 사랑이 깊은 신앙심으로 이어진 미쿠라가문사람들에게 고마움을 느꼈을까?

책을 신성한 가치로 여기며 책을 소중히 여기고 간직하고 보관했던 옛 선인들은 자신의 손 떼가 묻은 책을 어느 누구에게도 양도하거나 물려 주기 싫었을 정도로 신성 불가침의 가치를 지니고 있었다.

곰곰이 생각해보면 책의 신이라는 게 고대부터 존재할 리 없었고 종이의 대량 생산과 맏물린 인쇄기의 발명으로 서민들이 글을 깨우치고 자신의 돈으로 책을 구입하고 소장하면서 책의 가치는 더 이상 드높아지지 않았다.

그러니 신처럼 책탑을 숭배하고 모시며 소원을 빌고 책의 신의 권능으로 저주를 받는 현실은 불가능 하다.

하지만 살아 생전 책을 가까이 하며 책을 읽고 쓰며 책의 가치와 효용에 생명력을 지속적으로 불어 넣었다면 가능할 것이다.

이삿짐을 쌀 때 가장 먼저 처분하는 것이 책들로 처분할 때 가장 헐 값에 매입 되는 것도 책이다.

종이와 인쇄 비용은 날로 치솟아서 만 원 한 장으로 책 한 권을 구입하기 힘들어 졌고 그동안 유용하게 읽었던 책 탑을 팔아 치우면 지폐 몇 장만 손에 쥐어질 정도로 이 세상에서 책의 가치는 무게와 부피에 비해 턱없이 낮다.

이북으로 편리하게 전자 결제로 책을 읽을 수 있는 시대에 여전히 한 끼 식사 가격의 비용을 지불하고 종이 책을 사는 이들이 있고, 처분해버리기도 아까울 정도로 책탑을 쌓아 놓으며 읽고 싶은 책들을 장바구니에 가득 담고 있는 이들도 있다.

이 책의 작가 후마미도리 노와키는 책을 너무나도 사랑해서 고등학교를 졸업하자 마자 서점에 취직해서 온 종일 책 무덤 속에서 살다 미스터리 단편으로 작가로 데뷔해서 데뷔 3년 만에 그해 미스터리 베스트 10에서 6위에 올라가는 작품을 써냈다.

매년 작가 후카미도리가 써내는 작품들은 여러 상의 후보로 올랐고 2015년에 발표한 첫 장편 <전쟁터의 요리사들>은 나오키상 후보에 올랐을 정도로 탄탄한 필력을 갖추었다.

책의 세계로 빠져드는 미스터리 판타지 세상을 그린 <이 책을 훔치는 자는>은 서점 직원들의 극찬과 사랑을 받으며 독자들에게도 보물 같은 작품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이 책을 훔치는 자는>에는 매 챕터 마다 '마술적 사실주의', '하드보일드', '스팀펑크', '호러' 같은 다양한 장르 영역을 넘나들며 네 편의 환상적인 책 이야기가 곳곳에 등장한다.

따라서 독자들은 이 책을 읽는 동안 여러 영역과 이야기 세상을 탐험하며 책의 마법 속으로 빠져 버린다.


사는 동안 책이 거는 주문과 마법에 빠져 보는 것만큼 인생의 도움이 되는 건 없는 것 같다.

스마트 폰 세상 보다 순수하고 유해 하지 않는 공기를 품고 있는 책의 세계

이 책을 읽고 나면 북커버를 씌워주고 싶어 질 것이다.


세상의 모든 책들을 소중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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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선 2023-11-21 04:1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 책을 읽는 사람은 이 책 매력에 빠져 버린다... 별난 집안이네요 집안 사람이 아닌 사람이 책을 훔쳐가면 저주가 걸린다니... 책을 싫어하던 미후유는 저주를 풀면서 책을 만나고 책을 좋아하게 되겠습니다 영상을 보는 것보다 책을 보면서 상상하는 게 더 자유롭지 않나 싶기도 합니다 그런 걸 다 똑같이 상상하지 않겠지만... 사람마다 다르겠지요


희선

2023-11-21 11:49   URL
비밀 댓글입니다.

새파랑 2023-11-21 11:5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북커버 예쁘네요. 혹시 저 책을 구매하면 북커버를 사은품으로 주나요? ㅋ

책을 사랑하는 작가의 작품이어서 그런지 내용도 완전 책에 대한 여행 이야기군요~!!

2023-11-21 11:55   URL
비밀 댓글입니다.

희선 2023-12-09 01:5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scott 님 축하합니다 이번주도 거의 다 가고 주말이 왔네요 십이월 남은 시간도 빨리 갈지도 모르겠네요 아니 아직 삼주 조금 넘게 남았으니 잘 지내도록 해야겠습니다 즐겁게... 마음은 가라앉아도...

scott 님 주말 편안하게 보내세요


희선

2023-12-09 11:53   URL
비밀 댓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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