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퀴어 영화로 불리는 콜미 바이 유어 네임

감독이나 출연배우에 관심은 없었고 오로지 영화속 배경인 이탈리아의 푸른빛깔 하늘 뜨거운 햇살, 그리고 귀를 사로잡은 음악,call me by your name 


영화를 두번 보고 난후 원작 소설을 찾아 읽어보았다.








열일곱의 엘리오, 스물넷 대학원생 올리버
어느 무더운 여름날 이탈리아 별장에서 가족과 함께 여름휴가를 보내고 있던 엘리오 앞에 아버지(고고학자인 펄먼 교수)의 보조 연구원인 올리버가 나타난다. 
이영화는  눈이 부시도록  뜨거운 햇살과 푸른바다색깔의 하늘이 배경화면을 가득 채운다.욕망처럼 일렁이는 물결 무릎이 훤히 드러나는 반바지, 헐렁한 셔츠 그리고 핑크빛이 맴도는 복숭아

여자친구가 있지만 엘리오는 올리버에 시선을 두고 일부러 거만하게 말을 걸고 그의 약점을 찾으려고 하지만 회오리치는 마음을 들켜버린다 피아노를 치며 음표를 그렸던 연필로 올리버를 향한 마음을 할퀴듯 써내려간다.

"그가 날 싫어하는 줄 알았어. 올리버. 올리버."

"당신이 알아줬으면 해서…"

뜨거운 햇살 복숭아가 익어가는 과수원, 한적한 시골길, 인적이 드문 비밀스러운 강가는 두남자의 사랑은 한여름 뜨거운 태양빛 아래서 무르익어가고 있었다.

"엘리오 엘리오 엘리오 올리버 올리버 올리버."

영화는 줄곧 엘리오의 얼굴을 비추던 것에서 벗어나 잠시 올리버 얼굴을 클로즈업한다. 깡마른 사지, 당당하면서도 불안한 눈빛의 엘리오와 다르게 차분하며 침착하다. 하지만 그도 사랑 앞에서 흔들린다. 

이영화를 보기전까지 푸른빛이 사랑의 모든 것을 담을수 있다는 생각을 하지 못했다.

여름날 찾아온 손님은 언젠가 떠나버린다. 파란색옷을 입은 두남자는 광활한 자연속으로 들어가  초록빛 들판을 휘젖으며 둘만의 시간을 보낸다.

어느덧 화면속에 비친 엘리오의 파란색옷은 올리버의 파란색보다 더짙고 푸른빛으로 비쳐진다. 엘리오의 첫사랑, 올리버

올리버가 떠나고 뜨거웠던 여름도 끝나버린다.

시간은 흘러 한여름 뜨거웠던 태양 아래서 무르익었던 과일들 초록빛을 내뿜던 잎사귀들 모두 새하얀색 눈으로 뒤덮혔다. 가족들은 크리스마스 준비로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다.

 이때 걸려온 한 통의 전화. 올리버는 몇년전 사귀었던 여자와 약혼을 한다는 말을 꺼낸다. 축하한다는 말을 내뱉은 엘리오는 감기에 걸린것처럼  온몸을 떨며 수화기를 내려놓는다.

모닥불 앞에 앉은 엘리오 시뻘건 불빛에 데어버린 것처럼 눈물을 글썽인다.

엄마가 자신을 부르는 목소리에 정신이 든 엘리오

그제서야 깨닫는다, 겨울, 추운 겨울이 왔다는 것을



call me by your name에 대한 이미지 검색결과

원작소설에서는 한겨울 가을날씨처럼 서늘한 어느날 대학교수가 된 올리버가 엘리오의 이탈리아 별장에 찾아온다.노년을 바라보는 나이에도 엘리오는 여전히 멋졌고 한 여자의 남편이자 두아이의 아버지였다. 청명하게 빛나는 별빛아래 두남자는 더이상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이들 그해 여름에 함께 했던 이들의 이름을 부른다.

엘리오는 별장 곳곳에 남아있던 엘리오의 흔적을 하나씩 꺼낸다.

여기 있었고 살았고 행복했었다고 말하는 올리버

그때 그여름날의 모든것을 기억하고 있고 진심으로 자신을 사랑했다면 내일 이곳을 떠나기전에 자신을 향해 너의 이름을 불러달라고 말하는 엘리오

여전히 올리버의 마음은 엘리오 처럼 푸른빛이 였을까?


영화의 흥행 때문인지 이작품을 쓴 작가 안드레 애치먼은 엘리오의 그후의 이야기를 썼다.

올리버가 떠난후 엘리오는 어떤 삶을 살게 되었을까?


'나는 그가 내앞에 나타날까 두려웠다. 아니다 내앞에 나타난 그가 나를 쳐다보지 않을까봐 더욱 두려웠다.'


언제 어디서 다시 만나자는 약속을 하지 않았던 엘리오와 올리오

세월이 흐를수록 엘리오는 혼돈이 뒤섞였던 그날 그와의 사랑에 수치스러운 감정이 마음속 깊숙히 차곡차곡 쌓여간다.

올리버를 향했던 사랑이 휴지조각에 불과 했을까?


아들의 선택을 존중해주었던 엘리오의 부모님, 뜨거움 여름의 열기가 사라진후 다시 곁으로 돌아온 아들을 따뜻하게 위로해주었던 아버지

로마로 향하던 기차 안에서 한 여인과 마주 앉은 아버지는 돌연 그여자의 아버지 집에 점심 식사 초대를 받는다.

그녀와 묘한 성적 긴장감을 주고 받은 엘리오의 아버지는 아들과 약속했던것 조차 잊어버릴정도로 그녀에게 빠진다. 여자는 엘리오의 아버지를 끈질기게 호텔로 유혹해 그의 아이를 갖고 싶다고 말한다.

한편, 올리버를 사랑했던 엘리오는 피아니스트가 되어 파리에 거주 하고 있다. 매력적인 외모로 주변의 시선을 한 몸에 받고 있던 중 재력이 상당한 나이가 많은 사업가 마이클과 가깝게 지내고 있다.

엘리오는 올리버보다 몇배 나이 많은 마이클과 사랑을 하며 올리버의 모습을 지워버리려고 노력하고 있다. 

이 엄청난 자산가는 지적인 모습은 눈꼽 만치 없는 늙은이로 항상 책을 손에 쥐고 다녔던 지적인 올리버와 달리 사랑할때 저돌적이게 달려든다.


세월이 흘러 중년의 나이를 훌쩍 넘긴 올리버는 아내와 두아이가 곁에 있어도 이탈리아의 뜨거웠던 태양을 닮은 엘리오의 모습을 지우지 못하고  있다.

두아이들이 성인이 되어 집을 떠나면 그도 주변의 삶을 정리하고 엘리오에게 돌아갈 날을 고대하고 있다.


전작 콜미 바이 유어 네임은  푸르른 청춘의 빛깔이였다. 

하지만 후속작 'find me'는 올리버와 엘리오의 사랑을 삼류로 만들어버렸다.

느닷없이 엘리오 아버지의 불륜을 보여주고 난후 엘리오가 돈많은 늙은이와 사랑하는걸 보여주고 마지막에 엘리오에게 돌아가고 싶은 올리오의 모습을 새겼다.


작가는 현실적인 사랑의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다고 인터뷰를 했는데 엘리오와 올리버의 사랑을 미완성으로 남겨두는 편이 훨씬 좋았다.


call me by your name 에 대한 이미지 검색결과

 

콜미 유어 네임을 제작한 감독이 후속작을 읽고 아무런 답변이 없었다고 한다.

나는 출간되자마자 이북으로 읽고 크게 실망해서 페이퍼백은 소장하지 않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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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리바바 2019-11-05 12:4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 영화 티비에서 해주는거 봤던 기억이 있어요~ 후속작의 내용이 저렇군요...
뭐든 1탄이 가장 좋은것같아요.
요즘엔 터미네이터 신작이 과연 전작의 위엄을 지켜줄지 기대중이에요~
추워지는 요즘 건강 잘 챙기시구요~^^
전 컬러링에 집중하는 기간입니닷!
열씸히 완북을 하려해요.
하다보니 몰랑이에게 정이 들고 있슴돠....^^;;;

scott 2019-11-05 21:26   좋아요 1 | URL
역시 후속작은 전작을 못뛰어 넘는것 같아요.
터미네이터 이번 편에 아놀드 할배도 나오고 딱히 끌리는 배우들이 없네요.
몰랑이는 색감이 화려해질수록 빨려들어가는것 같아요. ㅎㅎ

미세먼지 없는 이번주 yaribaba님 화창한 가을 만끽 하세요. ^.^

마를린 2019-11-25 22: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번역본이 안나와서 궁금했는데 그런 내용이군요. 감사합니다. 올리버를 계속 올리오라고 쓴게 거슬리네요. 이름만 수정하면 더 매끄럽게 읽을 수 있을것 같아요.
 

요몇달간 즐겨 읽는 작가들의 신작 출간들이  줄줄이 이어지고 있다.

우선 가장 고대하는 작가 존 르 카레의 신작

john le carré new book에 대한 이미지 검색결과


47살의 영국 에이전트를 주인공으로 한 이번 신간은 영국 브렉시트 사건과 관련한 독일과 러시아사이에 치열한 스파이전을 다루고 있다고 한다.

주요 일간지 평론가들은 팽팽한 긴장감 긴박감을 기대한 독자들이 100여페이지의 느슨한 전개를 꾹 참고 읽더라도 마지막 까지 늘어지는 전개에 속터져 하거나 허무해 할지 모른다고 김새는 말들을 쏟아내고 있다.


존르카레의 가장 대표작이면서 눈부신 성공을 안겨준 이 작품은 무려 50년전에 출간되었음에도 스파이계 작품이 고전으로 칭송받고 있다.

놀라울정도로 현실적인 스파이세계와 함께 세게대전이 끝난후 살벌했던 철의 장막같은   냉전시대의 서늘한 풍경을 그려낸 이작품은 존르카레가 실제로 영국 MI5요원 생활을 했을당시 틈틈히 노트에 적어가며 썼던 작품이라고 한다.







존르카레의 최고의 작품을 꼽으라고 하면 바로 이책 '팅커 테일러 솔저' 스파이계의 은어와 복잡한 인물관계 정치적 상황 개개인의 사생활들까지 교묘하게 맞물려 돌아가는 이작품은 1970년대 컴퓨터와 인터넷이 일상생활에 파고 들기전의  세상속 스파이들의 모습을 담고 있어서 더욱 흥미롭다.


작가가 2000년대 한 인터뷰에서 이작품속 주인공 조지 스마일리라는 인물은 자신에게 가장 중요한 정보를 준 사람중에 한명이라고 한다.(그가 누구인지 어떤 임무를 맡았었는지 현재 어떤일을 하고 있는지 밝히지 않았지만 냉전시기 중요직책을 담당했던 요원이었지만 누군가의 배신으로 목숨만 겨우 건진 사람들중 한명이라고 한다. 존르카레도 요원으로 활동 했을 당시 배신자들 러시아 이중 첩자들의 밀고로 수백명의 동료들이 목숨을 잃었고 자신도 간신히 목숨만 건졌다고 한다.)

이작품은 영화 드라마로도 만들어져서 책과 영상을 함께 보는 재미를 준다.


냉전시대가 끝나고 난후 존 르 카레는 더 이상 자신의 동료들의 이야기를 쓰지 않고 지금 지구상에서 일어나는 것들이 자신의 작품의 중요 소재라고 한다.


이제 88세가 된 존 르카레에게 작품의 소재나 영감은 주로 티비나 신문을 통해 얻고 있다는데 이번에 발표한 신작이 마지막 작품이 될지 모르겠다.


작가 필립 로스가 완벽한 소설이라고 칭송한 이작품 '퍼펙트 스파이' 이작품까지가 존르카레가 작가로써 최고의 전성기 였던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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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리바바 2019-10-29 08:0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일본어공부하다가 컬러링하다가 지쳤다가 일본애니보면서 각오를 다지다가..... 아주 칼춤을 춥니다.
몰랑이 컬러링북을 버리려고하다가, 시간이 걸리더라도 끝마치기로 마음먹고...
힐링할수있는 쉬운컬러링북을 찾다가 양말도깨비 컬러링북을 찜해두고나니 양말도깨비를 읽어보면 컬러링에 도움이 되겠다...싶어 도서관에 대출하러갔다가 문득 해리포터시리즈가 눈에 띄었는데, 아무 생각없이 덥석 1권을 빌려왔습니다.
영화도 드문드문 볼 정도로 그리 좋아하지 않는데, 그냥 내가 살아가는 동시대에 너무 유명한 작품이니 읽어볼까 하고 동했어요.
스콭님께 제가 한 컬러링을 보여드리고싶었는데 댓글에는 사진첨부가 안되네요.
요즘 아주 변덕이라는 죽을 열씸히 끓입니다.
스콭님, 해피 가을!!!

scott 2019-10-29 10: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Yaribaba 님 잘지내셨나요 컬러링하신거 포스팅에 조금씩 올려보세요저도 변덕쟁이 인데 스마트폰이 문제인것 같아요 책 영화 드라마 예능 요즘 절찬상영중인것들 전부다 시쿤둥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매일 숨쉬는것처럼 손으로 무언가 해놓으면 나태하고 무기력함이 사라지지않을까 스스로 다독이고 있어요 화창한 가을 yaribaba 님 해피해피한 하루 보내세요
 

지난주 주말판 영국 FT 마가렛 여사님의 장문의 인터뷰가 실렸다.

'lunch with the ft' 라는 코너로 중요 인물들과 레스토랑에서 점심을 함께 먹으면서 인터뷰를 한다.

margaret atwood lunch with ft에 대한 이미지 검색결과

마가렛 여사는 현재의 눈부신 성공, 작가로서의 명성이 믿기 힘들 정도라며 책을 출간했을 당시 대형 백화점 양말 코너 옆에 자신의 ( 3) 진열되어있었다고 한다.

' 내책이 여기 있지?' 라며 주변을 둘러보니 양말 매장 바로 옆에 에스칼레이터가 있어서 지나가는 고객들의 눈높이에 맞춰 놓았으리라며 자신의 마음을 다독였다고 한다.

출판 관계자들이 그해 마가렛여사의 책이 3권이 팔렸는데 아마도 백화점 양말 매장에 전시되었던 3권의 책이 모두 팔렸던것 같다.

마가렛여사는 1939년 오타와에서 태어났지만 대공항의 여파로 경제가 붕괴된 노바스코시아를 떠나 오타와에서 동물학 교수가 된 아버지를 따라 캐나다 곳곳을 누볐다. 아버지의 전공은 나무 해충 연구로 겨울이 끝나면 아버지는 가족 모두를 이끌고 퀘벡의 오지로 갔다. 퀘벡 오지 숲속에는 학교라는 시설이 없어서 어머니가 아이들을 가르쳤다고 한다. 아버지는 정기적으로 노바스코시아를 가셨는데 마가렛여사는 자신의 정신적 고향은 바로 이곳 노바스코시아로 생각했다.

10대후반이 되어서 지역 캠프에서 만난 친구와 함께 북부 캐나다를 여행하면서 캐나다의 광활한 자연에 푹빠져버린다.

그녀가 작가가 되고 싶다는 생각을 한 건 16살 이미 동화 작가로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던 친척의 영향으로 작가라는 꿈은 더욱 견고 해진다.

1957년 빅토리아 대학 영문학을 전공하면서 시를 쓰기 시작한다. 대학신문 문학잡지에 글을 기고 하며 시낭송을 시작으로 1961년 첫시집을 출간한다.

1961년 대학을 졸업한 후 빅토리아 시대 문학을 파고 들면서 캐나다가 아닌 미국 보스턴 레드클리프 대학원에 진학한다. 당시 60년대 미국 보스턴 대학의 분위기는 굉장히 보수적이여서 진보적인 분위기였던 캐나다 빅토리아 대학과 확연하게 달랐다고 한다. 래드클리프 대학원에 재학 당시 하버드 대학과 통합되었는데 어떤 도서관은 여성은 출입이 금지 되었었다고 한다. 이를 계기로 마가렛은 빅토리아 시대 문학이 아닌 미국 초기 문학(여성중심)으로 전공을 바꾼다. 대학원 시절에 만났던 대다수 미국인들은 캐나다는 촌동네 겨울밖에 없는 곳 정도로 깔보았다고 한다.

1963년 여름 토론토로 돌아가 소비자 행동연구업체에서 일하다가 UBC대학교수가 되었다.

첫소설’The edible woman’(1969)을 출간하고 1965년 하버드로 돌아가 2년동안 학업에 매진한다.

1967년 결혼후 3권의 시집을 연달아 출간하며 평단과 독자들로부터 호평을 받기 시작한다.

마가렛의 독특한 창작 세계는 전기,수도, 영화, 전화, 이웃이 없었던 적막했던 어린시절에 대해 어떻게 써야 할까? 라는 의문을 품으면서 자신만의 창작세계를 그리게 되었다.

1973년 독보적인 작가가 된 마가렛은 캐나다 작자 노조 설립에 힘을 실어 주고 2년마다 장편을 발표하며 왕성한 창작 활동을 하게 된다.

캐나다에서 마가렛의 인기는 엄청나다 서점 전체 중 반 이상이 마가렛의 책으로 뒤덮힐정도다.

Ft와 인터뷰 장소는 런던 내셔날 초상 갤러리에 있는 레스토랑으로 자신의 퍼블리스트 한명과 함께 약속시간보다 몇분 일찍 나왔다.

1979년에 발표한 시녀이야기79세가 된 작가에게 어떤 의미였을까?

드라마를 보고 그녀의 이야기에 광팬이 된 팬들이 작가에게 보낸 수많은 질문들(마가렛 작가는 전부 읽어봤다고 함)에 대한 답변으로 후속작을 썼다고 한다.(팬서비스 ㅎㅎ)

현재 엄청난 판매 부수를 기록하고 있어서 자신의 에이전트 퍼블리스트들이 밤을 꼴딱 새고 있다고 한다.

베를린 장벽이 붕괴되고, 냉전시대가 종식된 세상에서 여전히 세상은 살벌한 전쟁터, 더 이상 상점에 가지 않아도 인터넷으로 모든 상품 주문이 가능한 시대, 세상이 점점 더 좋은 방향으로 흘러 가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마가렛 여사는 지구 환경, 기후 문제가 심각하다며 전세계인들이 그 심각성을 알아주길 바라며 남은 생을 환경운동에 몰두 하고 싶다고 한다.

시스템이 더욱 견고하고 탄탄하게 구축되어 구석구석을 샅샅히 감시하게 된 세상에서 권력의 기이한 불균형 전체주의, 독재로 권력이 기울어지면 미래는 기후변화 만큼 인간의 세계는 더욱 심각해지게 될것이다.

마가렛이 그린 세상 시녀들 이야기는 현재 아프가니스탄, 시리아 같은 국가에서 벌어지고 있을지 모른다.

마가렛의 작품들이 모든 이들(비평가들,출판관계자들)에게 골고루 호평 받고 있지는 않다. 보수적인 사람들은 자신의 아이들에게 마가렛의 책을 읽지 못하게 하는데 그녀가 창조한 세계가 너무 극단적이고 잔혹하고 어둡다며 청소년들의 정신세계를 어둡게 할지 모른다고 혹평한다.

발표되는 소설은 당시 사회현상을 반영한다. 현재의 세상이 어둡다면 작가들의 작품세계도 어두워질수 밖에 없지 않은가?

마가렛은 종종 딸과 함께 정신과 상담을 받는데 자신의 정신을 분석하는 의사를 관찰하는 재미로 상담을 받는다고 한다.

창작 활동을 하지 않을 때는 빅토리아 시대소설을 즐겨 읽는다고 한다.

1939년생이 마가렛은 영국에 살고 있던 아버지의 친지들의 아이들이 2차대전중에 안전한 지역으로 피난 보냈다는 이야기를 부모님한테 들으며 자랐다. 부모님들은 만약에 캐나다에서 전쟁이 터진다면 내 아이들이 다른 지역으로 보내져서 영원히 만날 수 없을지 모른다는 두려움을 안고 있었다고 한다. 그래서 마가렛 부모님은 도시에서 멀리 떨어진 숲 속만 찾아 다녔다고 한다.(물론 아버지가 나무 해충을 연구 하셨고 어머니는 스피디 스케이팅, 말타기,카누 낚시를 하는 아주 활동중인 여성이였다고 한다 집안일은 절대로 안하고 산에서 내려오는 곰을 쫒는데 기가막힌 재주를 가지셨다고 함,남동생과 절대 차별하지 않고 동등하게 대우 해주었는데 이런 어머니의 모습을 마가렛은 자신의 작품 곳곳에 넣었다고 함) 마가렛은 주요 문학상에서 받은 상금을 멸종 동물 단체에 꾸준히 기부 하고 있다.

페미니스트 크리스천, 공산주의자 등등 하나의 거대한 주제나 이슈로 묶어버리게 되면 자신이 보는 세상만이 진실이라고 믿게 된다고 한다. 스스로를 어떤 사람이라고 규정하기 힘든 것처럼 항상 시야를 넓게 잡고 살아야 어떤 흐름에 쉽게 휩쓸려 가지 않는다.

마가렛 작가가 바라보는 세상은 오물과 담배 연기 같은 매연으로 가득 차서 더 이상 숨쉬기 힘든 곳앞으로 몇 년 후면 바다 거북이를 더 이상 볼수 없는 곳이다

마가렛의 남편은 모든 여자들이 결혼하고 싶어 할 정도로 이상적인 남편이라고 자랑하고 다녔다.

남편도 책을 출간한 작가였지만 아내가 새 책을 홍보하고 돌아오면 쿠키를 구워놓고 옷을 다려놓아두고 자신의 방으로 가서 글을 썼다. 작년에 런던에서 심장마비로 세상을 떠났다. 아내가 출간한 책을 함께 홍보하고 난 후 정확히 일주일이 지나서

50년 가까이 함께 살면서 남편과의 삶을 제대로 되돌아 본적이 없던 마가렛은 Negotiating with the Dead’라는 에세이(2014년 On Writers and Writing라는 타이틀로  출간)펴냈다.


남편이 살아있을때에 단 한번도 에세이를 써본적이 없었다.


아마 체호프의 작품을 읽고 용기를 내서 쓰기 시작했을꺼에요.’ 

사람들은 20살이 되었을 때 자신의 삶이 앞으로 얼마만큼 남아 있는지 모를겁니다. 80년을 가까이 살고 있는 나 역시 앞날은 모른다는거죠.’

하지만 스스로 자신의 생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 새작품을 발표할 시간이 서서히 줄어들고 있있다는 것 잘알고 있다. 장편을 쓰기 힘들 때 시라도 써야할까?라고 고민하다가 오늘밤 죽게 된다면? 아마 편집자들은 새 책 홍보가 끝나는 순간 회고록집필하라고 스케줄을 뽑아놓을지 모른다.


1978년에 아프가니스탄을 여행한 직후 바로 전쟁이 터졌고 그 다음해 베를린 장벽이 무너졌다. 만약에 회고록을 써야한다면 78년이 시작점이 될지 모른다. 작품을 꾸준히 써나갈때마다 어떤 친구는 세상을 떠났고 어떤 친구는 중병에 걸렸고, 이혼을 하고 사별을 하는 사이 남편도 곁을 떠나버렸다.

1995년에 처음 반지의 제왕을 읽으면서 느꼈던 흥분, 자신의 책을 읽었던 독자들이 보낸 편지를 읽으면서 수세기가 지나도 전세계에서 읽혀지고 있는 반지의 제왕처럼 자신의 책도 그런 평가 받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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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가렛 작가가 FT와 인터뷰한곳은 영국내셔널 초상화 갤러리에 있는 레스토랑으로 뷰가 특히 환상적인 곳이다. 창너머 의사당을 시작으로 넬슨 동상까지 한눈에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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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가렛은 재료가 설익은 것보다 부드럽게 조리된 것을 좋아하는데 치즈가 덮혀져 있는 요리를 가장 좋아한다. FT기자가 영국랍스터와 캐나다 랍스터의 맛을 비교해달라고 하니

자신의 입맛에 비슷하지만 캐나다 남자들에게 이런 질문을 하면 당장 멱살을 잡히게 될지 모를정도로 캐나다인들에게 랍스터는 캐나다산!(영국에서는 연어를 먹는건 도전이라고 함 캐나다산은 연어살이 탱글 쫄깃 ㅎㅎ)

그럼, 마가렛이 주문한 메뉴를 살펴보자


브라운 새우 샐러드 (14파운드)

훈제 연어 샐러드(13.50파운드)

남방대구 찜(29.50 파운드)

생수한병(4파운드)

엘더플라워 코디얼(7파운드)

음식값에 팁 넣고 갤러리 기부금(강요하지 않지만) 냈다면 대략 70파운드 넘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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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최고권위의 문학상으로 꼽히는 '맨부커상'이 올해 이례적으로 2명의 여성 작가 캐나다의 마거릿 앳우드(애트우드)와 영국 출신의 버나딘 에바리스토를 선정했다.(노벨상도 올해는 두명!)

마거릿 앳우드작가는 이번에 꼬옥! 노벨상을 수상하길 바랬는데  이번에 출간한 따끈따끈한 신작 'The Testaments'로 맨부커상을 수상(그동안 무려 6번이나 후보에 올랐었다)하게 되어 기쁘다.

이책은 현재 이북으로 몇장만 휘리릭 넘겨보았기에 스토리 줄기만 대략 파악했다. 전작 '시녀이야기'(1985년출간)의 주인공이였던 오브프레드의 두딸과 교육을 담당했던 리디아 아주머니의 시선으로 이야기가 시작된다.

그후 15년의 세월이 흘러 권력을 장악했지만 내부에서부터 부패의 징조가 서서히 드러나는 길리어드 공화국의 모습을 담았다.








그동안 전작 '시녀이야기'를 읽으며 의문을 품어 왔던 비밀들을 이번 신작을 통해 풀어낸다.

드디어 독자들은 길리어드의 내막에 대해 상세하게 알수 있게 된다.
아마도 드라마로 속편을 제작하지 않을까? 34년만의 출간된 후속작이 맨부커상을 받았으니








하루키 옹이 이탈리아 토리노에서 '동굴속 모닥불' 이야기를 하며 와인을 홀짝이실때(맨부커 후보 단골 작가)

마가렛 앳우드 여사는 시상식에서 기후변화 대응을 촉구하는 글로벌 환경단체 '멸종저항'의 배지를 달고 나오셨다.

수상 소감으로 '내 나이에 이렇게 경력의 끝자락에서 온전하게 상을 독차지 했다면 무척 당황 스러웠을것이다. 젊은 작가의 빛나는 경력의 발목을 잡아버리지 않아서 다행이다.'

올해 수상자들은 상금 5만 파운드(한화로 약 칠천사백육십4만원?)을 나눠갖는다. 

margaret atwood man booker에 대한 이미지 검색결과

9월 11일 출간 즉시 온라인 서점 베스트 1위를 휩쓸며 초판만 50만부 뚝딱 찍어냈다.

한국은 언제 출간될지 모르지만 황금가지에서 출간될 예정이라고,,,,(번역이 잘되야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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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키 옹이 2019년 이탈리아 'Lattes Grinzane(이탈리아아 작가이자 화가Mario Lattes(1923-2001년)의 업적을 기념하기 위해 Bottari 재단에서 지정한 상)  '의 La Quercia 부분  수상자(10월 2일)로 선정되었다. 이상은 지난 10년동안 총 아홉명의 세계적인 작가들을 수상자로 선정했는데 이번 2019년은 '무라카미 하루키'가 수상하게 되었다.

이탈리아에서 무라카미 하루키의 작품은 출간되자 마자 베스트 셀러에 올라갈정도로 인기 작가다.(미국보다 스페인 유럽 지역에서 하루키 작품이 더 많이 팔렸다고 함) 

그동안 하루키는 무수히 많은 국제적인 문학상을 수상했는데 이번에  이탈리아 토리노에서 받은 이상이 하루킹옹에게 꽤 큰 의미가 있었던 것 같다.(수상 연설문이 상당히 길다)

발번역이지만 전문을 올려본다.


lattes grinzane haruki에 대한 이미지 검색결과


동굴속의 작은 모닥불


                                                                       무라카미 하루키


이야기를 쓰는 것, 오늘은 이것에 대해 이야기 하고 싶습니다. 물론 지구 온난화 문제나 핵무기 문제에 대해 이야기 할 수도 있을테지만 오늘 만큼은 제가 가장 잘 알고 있는 주제인 글쓰기에 대한 이야기에 집중해 조금은 구체적으로 이야기 하고 싶습니다.

제가 처음 글을 써야겠다라는 생각을 한 건 29살때였습니다. 1978년의 일이었고 그로부터 벌써 41년이란 세월이 흘렀습니다. 그 나이까지 저는 한번도 소설을 써보려는 시도도 하지 않았습니다. 중학교에 들어가고부터 저만의 시간이 주어지면서 몇시간 동안 책 읽는 것을 좋아했습니다만 소설가가 되고 싶다라는 생각이나 꿈은 꾸지 않았습니다.

물론 나도 무언가를 쓰면 좋겠다라는 생각은 했지만 작가가 될 정도의 능력은 없다고 확신했습니다. 학창 시절 저는 발자크, 도스토예프스키, 디킨스, 프란츠 카프카와 같은 작가들을 사랑했습니다. 제가 이작가들처럼 글을 쓸 수 있다라는 것은 상상조차 할 수 없었습니다. 그건 완전히 명백한 일이었기 때문에 작가가 되어보려는 무의미한 시도는 하지 않았습니다.

 소설은 제가 창작해낼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대단한 작가들의 작품을 읽는 저에게 큰 즐거움을 주는 것일 뿐이었습니다. 이것이 문학을 향한 저의 순수한 마음이었습니다. 책을 읽는 것 이외에 음악, 특히 재즈를 듣는 것을 정말 좋아했습니다.

24살 때 도쿄에 재즈바를 열었습니다. 그 당시 결혼을 한 상태여서 아내와 함께 재즈바를 운영했습니다. 초기에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은행과 부모님, 친구들로부터 돈을 빌려서 도쿄 교외에 작은 재즈바를 열었습니다. 이 재즈바에 작은 피아노를 놓고 주말에는 젊은 음악가들의 라이브 공연을 할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하기도 했습니다. 거의 10년 가까이 재즈바를 운영했는데  그자체로 매우 재미있는 경험이었습니다. 재즈바를 운영하는 일상적인 일들은 상당부분 육체적인 노력을 필요로 하기도 하고 부채를 갚아나가야 하는 일도 포함되었지만 당시 저는 젊고 활력이 넘쳤습니다 그래서 아침부터 밤까지 좋아하는 음악을 들을 수 있었습니다.

저는 60년대 후반 일본의 강력한 혁명운동을 겪은 반문화 현상을 낳은 세대에 속합니다. 또한 이런 이유와 배경등으로 대학을 졸업하고 기업에 취업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물론 제 친구들중 일부는 반문화의 상징과도 같았던 장발과 수염의 얼터너티브 룩을 버리고 재킷과 넥타이를 메고 사업을 시작하기도 했습니다.

저는 이런 전공투 운동에 열성적으로 참여하지는 않았습니다 그리고 일시적으로 전공투 운동이 다시 잠잠해지면서 언제 그랬냐는듯이 온순하게 변한 학교와 사회분위기에 저를 그냥 포함시키고 싶지 않았습니다.

마치 아무일도 없었다는 듯이 거대한 자본속에서 다시 세워진 사회는 더 공고해졌습니다. 가능한 저는 사회적 기대를 고려하지 않고 오로지 제 개인적인 기대에 부합되게 일관성 있는 개인으로서 살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이것은 지금도 제가 계속해서 해나가려고 하는 것 중에 하나입니다. 재즈바를 운영한 것도 사회 시스템 안에 들어가기 보다는 개인적인 삶을 살고 싶었던 이유에서 였습니다.

 재즈바는 경제적인 축면에서 봤을때  경영이 잘 되었기 때문에 안정적으로 재즈바를 계속 운영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29세가 되던 해 저는 갑자기 소설을 써야겠다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어떤 이유로 어떤 때에 저는 제가 어떤 하나의 소설을 쓸 수 있겠다라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물론 발자크나 도스토예프스키 같은 엄청난 작품까지는 미치지 못하겠지만 어쩌면 저만의 방식으로 이야기를 써 내려갈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때까지 제가 겪은 삶의 경험이 어떤 이야기로서 가치가 있을 만한 것들을 축적했을지도 모를 일 일이었습니다. 정말 안타깝게도 역시나 전 소설을 쓰려고 시도한 적이 없어서 무엇을 어떻게 써야 할지 전혀 지 못했습니다.

처음에는 편지 같은 형식으로 겨우 시작 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약 6개월 뒤 저는 소설과 비슷한 이야기를 만들었고 그후 원고를 출판사에 투고 했습니다. 그 결과 놀랍게도 문예지에 신인작가들을 위해 주는 상을 수상하게 되었습니다.

난생 처음 쓴 소설로 상을 받다니 정말 운이 좋았다고 생각했습니다. 제 첫소설이 발표 되었을때 많은 이야기들이 있었습니다. 6개월후 3만부가 팔렸는데 당시 데뷔 작가의 소설 판매량으로 볼 때 꽤 놀라운 기록이었습니다.

제목은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입니다. 그렇게 30살이 되면서 저는 더 좋거나 혹은 더 나쁘거나 어쨌든 작가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2-3년간 재즈바 운영과 작가 생활을 병행했습니다. 동시에 두가지 일을 하는 것은 보통 힘든 일이 아니었고 저는 글쓰기에 전념하기 위해 재즈바를 양도 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물론 제대로 잘 운영되고 있던 사업을 포기 하는 것 역시 힘든 결정이었습니다.

친구들은 모두 작가라는 직업은 너의 경제적인 부분에 있어서 안정적으로 보장해주지 않을 것이라고 얘기했지만 저는 아직 젊었고 이미 소설을 쓰고 싶다라는 욕망이 커져버린 상황이었습니다. 작가로 실패하면  거기서부터 무언가를 다시 시작하면 되는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첫 소설이 발표되고 40년이 지났지만 그 이후 저의 소설을 쓰는 방식과 독자들에게 선보인 제 소설은 근본적으로 바꾸지 않았습니다. 여러가지 쓰는 방식의 변화를 거쳐 발전한 작품이라기 보다 소설을 쓰는 방법은 처음부터 지금까지 똑같습니다.

다른 작가들이 어떤 방법을 택하는지는 자세히 모르겠습니다 저만 알고 있는 저의 글쓰는 스타일에는 몇가지 특징적인 부분이 있습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새로운 이야기를 쓸 때 계획을 세우지 않습니다. 대부분의 경우 저는 어떤 부분의 이야기를 써내려가는것으로 첫 문장을 시작합니다. 이단계에서는 이이야기의 줄거리가 무엇이지 알지 못한 상태로 아직 전체적인 이야기를 생각하지 못한 단계입니다. 그러나 그단계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이야기가 잘 진행되는 동안 저는 계속해서 머릿속에 있는 이야기를 자연스럽게 써내려갑니다. 중요한 것은 이런 이야기들이 모두 자연스럽게 흘러나온다는 것입니다. 마치 땅속 깊은 곳에서 지하수가 터져나오듯이 제 안 깊은곳에서 부터 이야기와 나와 소설의 큰 줄기를 형성하게 됩니다.

예를 들면 이런 이야기를 쓰기 시작한 적이 있습니다.


22세의 봄, 스미레는 태어나서 처름으로 사랑에 빠졌다. 드넓은 평원을 곧장 달려가는 회오리 바람같은 격렬한 사랑이었다

그것은 지나는 길에 있는 모든 존재를 남김없이 쓰러뜨렸고, 하늘 높이 감아 올려 철저히 두들겨 부수었다

그리고 기세를 조금도 늦추지 않고 바다를 건너 앙코르와트를 무자비하게 붕괴시키고 한 떼의 불쌍한 호랑이들을 포함한 인도의 숲을 뜨거운 열로 태워 버렸으며, 페르시아 사막의 모래바람이 되어 이국적인 정취가 물씬 풍기는 성으로 이루어진 어떤 도시를 통째로 모래로 묻어 버렸다

멋지고 기념비적인 사랑이었다. 사랑에 빠진 상대는 스미레보다 17년 연상으로 이미 결혼한 사람이었다. 그리고 덧붙인다면 여성이었다. 그것이 모든 사건이 시작된 장소이고 모든 사건이 끝난 장소였다.’


저는 왜 언제 그리고 어떤 목적으로 이런 문장이 제 안에서 생겨났는지 알지 못합니다

단지 어느 새벽 책상에 앉아 이글을 쓴 것이고 가끔씩 이렇게 충동적이게 글쓰기에 몰입해버립니다

다시말해 저는 제 안에 있는 이미지를 문학적인 형태로 바꾸고 싶을 때가 종종 생겨서 그럴때마다 책상으로 가 그 이미지를 텍스트로 바꿉니다.

이렇게 쓰고 나면 어느정도 머릿속이 정돈되어 제가 쓴 글을 인쇄해서 서랍에 넣어둡니다.


제작업실에는 이렇게  소설로 쓰기 어려운아니 생생하게 살아있는 문장의 조각들을 담아두는 몇 개의 서랍이 있습니다. 그러다 어느날 갑자기 마치 시간이 지난후 발효라도 된 것처럼 혹은 포도가 와인이 되기 위해 익어가듯이 거의 소설로 쓰기 어려운종이 중 하나가 제작업실에서 숙성되기 시작합니다.

그럼, 저는 서랍에서 종이를 꺼내 이야기를 이어 쓰기 시작합니다. 방금 제가 읽은 문장은 제소설스푸트니크의 연인의 첫단락입니다 그시 점에서 그 문장은 더 이상 쓸모 없는 텍스트가 아니고 소설의 시작이 된 것입니다.

그렇게 제가 소설을 쓰기 시작하면서 이야기의 주인공은 스미레라는 젊은 여성이라는 것을 알게 되고 그녀에게는 그녀가 미치도록 사랑하는 연상의 여자가 있습니다. 라고 시작할 때 이정도로 쓰기 시작해서 그 뒤에 어떤 이야기나 사건이 도사리고 있을지 알지 못한 채 심지어 결말도 알지 못하고 글을 쓰기 시작합니다.

이야기는 거의 백지 상태에서 시작해서 작가적인 상상력과 직감 제 안에 깊이 쌓여 있던 것들이 표출되어 한장 한장 이야기는 빠르게 진행되어 나갑니다. 저는 이렇게 서랍 속에 있던 문장을 확장시켜야 할 이야기가 있다고 확신했고 이렇게 하나의 소설을 시작하기 위해서는 이런 서랍속의 문장들이 저에게 꼭 필요한 존재가 되었습니다.


또다른 장편소설 태엽감는새역시 태엽감는 새와 화요일의 여자들이라는 단편으로부터 시작된 것입니다.

이 소설의 첫번째 문장은 이렇게 시작합니다.


부엌에서 스파게티를 삶고 있을 때 전화가 걸려왔다. 나는 fm방송에서 흘러나오는 로시니의 도둑까치 서곡을 따라 휘파람을 불고 있었다. 스파게티를 삶기에 더없이 좋은 음악이었다.’


갑자기 영감을 받아 쓴 이 단락은 이렇게 써두고 역시 서랍 속으로 들어 갔습니다. 요컨대 비디오 카메라로 영상을 찍어두고 아카이브에 보관하기 전에 필요한 장면만을 편집해 보관하는 것처럼 잘 정리해서 보관했습니다.


사람들중에는 잠에서 깨기 전 꾸었던 꿈을 기억하고 기록해두는 습관을 가진 사람이 있는데 이와 같다고 할 수 있습니다. 어떤 특별한 목적없이 나중에 그 단락은 잘 발효되어 단편소설태엽감는 새와 화요일의 여자들의 시작이 되었습니다. 저는 잡지에 이 단편을 기고 했고 단편모음짐에 포함되어 출간되었습니다. 그리고 몇 년이 지난후 저는 이 단편을 매우 긴 장편소설태엽감는새 연대기로 발전시켰습니다


결론적으로 이렇게 짦은 단락은 이야기의 형태로 잡힌 뒤 오랜시간이 지나면 장편소설로 팽창됩니다. 이런 의미에서 2단계 발효과정을 거쳤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이런 종류의 일은 저에게 자주 발생합니다. 갑작스럽게 떠오른 생각은 짦은 문장으로 나타나 더 견고한 형태로 자리 잡힐 때까지 한 단계씩 자라나고 발전 해나가면서 화학반응을 일으킵니다. 저는 전체적인 과정을 주시하며 자연스럽게 이야기를 만들어내어 일련의 과정을 따라갑니다. 저에게 있어서 이야기는 자발적이어야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이야기는 부자연스러워지게 되고 그렇게 되면 설득력이 떨어지게 됩니다. 그럼, 결국 독자의 마음을 움직 일수 없습니다.

위 이야기의 첫번째 문장과 관련해서 단편으로 출간했을 때 한 비평가로부터 꽤 거센 공격을 받은 적이 있습니다. 그는 첫 문장이 매우 비현실적인 상황이라며 일본 남자는 정오에 혼자 부엌에서 스파게티를 만들어 먹지 않아요.’ 이건 어디까지나 그의 의견입니다. 그런데 저는 종종 혼자서 스파게티를 요리 하는데 왜 그런지 정말 모르겠지만 스파게티 면이 거의 다 익어갈 때 쯤 전화가 울립니다. 진짜 입니다.

아무튼 전 이런 이야기를 좋아합니다. 전체 소설의 큰 그림을 염두 해두지 않고 자유롭게 이야기를 진행시킵니다. 이 소설이 어떻게 끝나게 될지 너무 궁금한 상태로 이야기를 써 나갑니다. 그리고 독자들도 그 결말을 찾기 위해 계속해서 한 페이지 한 페이지 읽어 나갈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작가가 처음부터 줄거리와 결말을 정했다면 소설을 쓰지 않아도 됩니다.

적어도 소설 쓰기란 저에게 이런 식으로 작동하고 있습니다. 글을 쓰면서 사다리 같은 어떤 논리 구조나 습관, 관습에 얽매여 소설을 완성해나가는 커다란 틀 속에 질서를 유지 해야하는 규칙에 제한 받지 않는 것이 전제가 되어야합니다.

왜 이렇게 작가에게 자유스러움이 필요할까요?

자유롭다라는 것은 작가 자신의 무의식의 영역에 접근하는 것이 더 쉬워서 처음부터 줄거리를 염두해두지 않고 제약없이 소설을 쓰는 방식이 대단히 큰 장점이 될 수 있습니다. 작가가 자신의 작품에 궁극적인 목표가 일반적으로 예술분야의 창작자들과 비슷해서 자신의 무의식 속으로 깊숙히 들어가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해 가장 안쪽 깊숙히 숨겨진 어두운 곳 무의식의 미로로 들어가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마침내 당신은 당신 안에 있는 실제 이야기에 도달 할 수 있게 됩니다. 논리의 법칙에 따라 당신의 머릿속에 채워진 이야기가 아니라 마음속 깊은 곳에서 저절로 찾아낸 이야기 입니다.


솔직하게 말한다면 다른 사람과도 정신적으로 깊게 소통 할 수 있습니다. 이 놀랍고도 유일한 이야기가 바로 소설 속에 내재되어 있습니다. 우리는 완전히 혼자가 아닙니다. 바로 이점이 좋은 이야기 따뜻하면서도 차분한 자연스러운 공감대를 형성하게 되는 것입니다.

제가 글을 쓰기 시작했을 때 저는 이모든 것을 알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첫 소설을 쓰고 난 후 계속해서 작품을 하나 둘 써 나가면서 제 자신의 문학 스타일이 만들어졌습니다.

저는 작가가 소설을 쓸 때 자유스러움을 느끼는 것을 토대로 어느 시점에서 독자들과 폭넓은 공감을 형성 해나가는것이 필요한지 차츰 선명하고 구체적이게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앞서 첫번째 언급한 장편 스푸트니크의 연인을 보면 저는 회오리에 관한 짧은 단락을 쓰고 그종이를 서랍에 넣어두었습니다. 바로 그 순간부터 발효가 시작되어 그 회오리의 이미지를 제 의식속에 더 깊이 담기 시작해서 어느정도 수준에 도달할때까지 무의식의 심연속에서 시간이 지나면서 몇가지 여건들이 합쳐져 비옥한 보다 완전한 이야기의 성격을 띄게 되었습니다

마침내 의식의 수면위로 올라오는데 전 바로 그 시기를 놓치지 않고 표면으로 올라와 떠다니는 것을 모아 소설의 형태로 전환 시킨 것입니다.

물론, 제가 서랍 속에 넣은 문장 종이가 모두 성공적으로 발효 되는 것은 아닙니다. 실제로 대부분은 서랍 속에 보관되어 잊혀진 채 극히 적은 부분만 건져 올려집니다. 그러나 어떤 종이가 사용될지 미리 알 수 없습니다. 어떤 종이가 건져올려질지 결과가 나오기 전까지 모른 채 그저 어떤 단락이 올라온 결과만 저에게 오게 됩니다.

저는 기다릴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이때 가장 중요한 것은 가능한 시간이 오래 흐르게 두는 것입니다. 그리고 일반적으로 자연적인 반응이 일어나기 위해서 많은 시간이 필요하기도 해서 작품을 완성하기 까지 굉장한 인내심이 필요합니다. 일반적으로 말하자면, 이세상의 중요한 많은 일들도 그것을 이루기 까지 많은 시간을 필요로 하지 않는 것은 없습니다.

실제로 자유로운 느낌의 중요성을 알게 해준 것은 문학보다 더 자유롭다고 여겨지는 음악이 그 역활을 했다고 생각합니다. 저의 글이 재즈의 전형적인 즉흥연주에서 강한 영감을 얻었을 가능성이 큽니다. 정해진 테마에서 시작하지만,연주자의 영감에 따라 연주는 무한하게 변주 됩니다

저는 어린시절부터 이런 재즈 음악을 들어서 글을 쓸 때도 똑같은 즐거움을 느끼고 싶다라는 강한 욕구가 있습니다 이것이 제가 음악으로부터 배운 핵심 사항 중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또다른 조건은 리듬입니다. 이야기를 계속해서 유지 해나갈 수 있는 리듬입니다. 때로는 단순하게 때로는 복잡하면서도 마법처럼 흔들릴 수도 있습니다. 리듬은 음악에서 만큼이나 소설에서도 필수적입니다. 리듬이 살아 있으면 스타일이 아름답고 이야기가 매력적이게 됩니다. 활기차게 잘 선택된 리듬이 없으면 대부분의 독자들이 페이지를 넘기고 싶지 않을것입니다.

글을 쓸 때는 항상 리듬의 중요성을 명심 해야합니다. 쓰고 있는 글에 맞는 리듬을 찾았다고 여겨지면 멈출 수 없이 계속해서 써 내려가게 됩니다.

마지막은 멜로디 입니다. 결국 멜로디가 독자의 마음에 깊은 인상을 남기게 됩니다. 소설로 치면 독자가 자발적으로 인용하거나 기억해두고 싶은 특별한 문장이 될 것 입니다. 독자에게 강렬한 감정을 불러 일으킬 수 있는 아름다운 구절입니다.

런데 이때부터는 결국 타고난 재능이라는 문제에 직면하게 됩니다. 아마도 멜로디를 작곡 할 수 있는 능력은 우리가 태어날때부터 가지고 태어난 것 일수도 있습니다. 아무리 노력해도 멋진 멜로디를 작곡 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모차르트와 슈베르트가 만든 경이로운 멜로디 모두 노력과 헌신의 결과라고 말하기 어렵습니다

하지만 내면에 숨어 있는 멜로디에 귀를 기울여 조심스럽게 시도해보면 상당수준의 재능을 끌어 올릴 수 있습니다. 시간이 걸리겠지만 시도해볼 가치는 충분히 있습니다. 즉흥연주, 리듬의 중요성, 아름다운 멜로디를 구성하는 이 세가지 조건을 음악에서 배웠습니다. 이런 의미에서 매일 음악과 함께 일했던 재즈바 시절이 아마 제가 소설가가 되기 위한 훌륭한 훈련이 였던 것입니다.최소한 음악은 저의 문학적 스타일을 형성하는데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앞서 얘기 했듯이 저는 제 소설이 다른 작가들의 그것과 어떤 면에서 공통적인 부분을 찾을 수 있는지 잘 모릅니다. 제가 말할 수 있는 것은 각각의 작가들 마다 개인의 독특한 스타일을 만들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소설을 쓰는 표준적인 방법이라는 것은 없습니다. 사람마다 삶이 다르듯 작가마다 스타일이 달라지게 됩니다. 그리고 모든 문학적인 스타일의 근본에 발생지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방금 얘기한 제 스타일을 찾기 위해 수행한 방법은 다른 작가들에게는 적용될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든 소설가는 자신만의 창작스타일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글을 쓴다는 행위 그자체의 기저에 놓인 공통 요소는 찾을 수 있습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심플한 단어를 선택하는 것이 기본적인 이야기의 자신감이라고 생각합니다. 소설은 수세기에 걸쳐서 온갖 시련을 통해 발전해 왔습니다. 소설은 인류에게 꼭 필요한 형태의 표현 방식이며 우리 모두가 반드시 알아야할 표현 도구 입니다. 소설에 대해 이정도 깊이의 경외심이 없다면 독자의 마음속 깊은 곳까지 닿을 수 있는 책을 쓸 수 없을 것입니다.

소설의 기원, 즉 스토리 텔링은 인류가 동굴에 살았던 선사시대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눈을 감고 그 당시 생활을 상상해보십시오 해가 지면 주위는 어두워집니다. 문자 그대로 완전한 어둠입니다. 날카로운 송곳니와 발톱을 지닌 맹수들이 돌아다니는 위험한 장소에 모여있습니다. 그 짐승들을 피하기 위해 동료들과 함께 동굴로 들어나 피난처로 삼고 불을 피워 기나긴 밤을 서로를 의지하며 보내게 됩니다. 동굴 안에는 모닥불을 피워 놓습니다. 몸을 따뜻하게 해서 야생동물들이 가까이 오지 못하게 합니다. 음식은 늘 부족해 굶주림으로 잠을 이루지 못합니다.

이때 어느 순간 한남자가 이야기를 시작합니다. 일반적으로 말을 시작하는 사람은 항상 같습니다. 그는 누구보다 말을 잘하는 법을 스스로 알고 있기에 주변 사람들은 주의 깊게 들으려고 귀를 기울입니다. 당시에는 여가라는 것이 없던 시대입니다. 그가 하는 이야기는 잠시라도 두려움과 굶주림을 잊게 해줍니다. 나레이터는 아마도 즉흥적으로 이야기를 진행해 나갈 것입니다. 그의 말에 귀를 기울이고 있는 사람들은 자신이 그 이야기에 관여 하고 싶어져서 이따금씩 질문을 하거나 의견을 내기도 합니다.

그리고 나레이터가 그들의 반응에 따리 이야기 흐름을 조금씩 바꿔나가기도 합니다. 그러다가 어느 시점에서 이야기가 끝납니다. ‘그뒤에는 어떻게 돼?’ 라고 모두 묻습니다. 나레이터는 마지막 이야기를 들려주고 이야기는 그렇게 끝이 납니다

그리고 모두 잠을 청하면서 방금 들었던 이야기를 떠올리다가 잠이 듭니다. 아마 전 세계의 동굴에서 같은 장면이 반복되었을 것입니다. 유럽, 일본 ,아프리카,중동등 모든 곳에 비슷한 동굴과 어둠이 있었을 것이고 아마도 같은 종류의 이야기가 같은 방식으로 들려 졌을 것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소설의 형태로 표현 방식이 바뀌어 나가는 것이 수세기에 거쳐 형성되었을 것입니다. 구도로만 전해지던 이야기는 활자라는 기호를 사용해서 인쇄를 할 수 있는 이야기가 되었고 인쇄가 시작된 후 책이라는 출판물이 등장했습니다.

현재는 많은 사람들이 전자책 형식으로 화면을 통해 소설을 읽기도 합니다. 그런데 이렇게 소설이 접히는 도구로 변해왔더라도 기본적으로 동굴에서와 같은 이야기의 흐름을 따르는 구조는 변하지 않습니다.

우리 소설가는 동굴 속에 있던 이야기 꾼의 후손입니다. 길고 깊은 어둠, 작은 모닥불, 하나로 뭉쳐 있는 사람들, 짧은 시간 동안 두려움과 굶주림을 잊을 수 있는 이런 근본적인 환경은 지금까지도 변하지 않는 것입니다. 물론 고대와 비교하면 지금 세상은 훨씬 더 밝은 곳이 되었습니다. 빛이 닿지 않는 곳이 거의 없어졌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도시의 밤은 빛으로 인해 밝아질 수 있지만 어둠은 항상 깊은 곳 에 존재 하고 있습니다. 스콧 피츠제럴드는 영혼의 진짜 어둠은 새벽3시에 온다.’라고 에세이에 썼습니다.

제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이런 종류의 어둠입니다. 고대와 오늘날에는 이런 어둠을 밝힐수 있는 작은 모닥불이 항상 필요합니다

그건 아마도 소설만이 제공 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 모닥불을 염두해두고 40년 동안 중단 없이 계속해서 글을 썼습니다.

제가 쓴 이야기가 전세계 많은 곳에 있는 동굴 속 어두운 구석을 밝히는 것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었다면 앞으로도 계속 그 역할을 할 수 있다면 더 이상 기쁜 일이 없을 것입니다.

이 자리에 오신 모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lattes grinzane haruki에 대한 이미지 검색결과

 

하루키 옹은 매년 노벨문학상 후보로 오르는 작가다. 그가 노벨상 까지 수상해버린다면 그야말로 전세계 중요 문학상은 싹쓸어담는 그야말로 작가로서  굉장히 성공(지금까지도 엄청나게 성공함)한 작가로 역사에 기록될것이다.(죽을때까지 그동안 벌어놓은 돈도 다못쓰고 죽을 만큼 ㅎ)

만약에 하루키가 조금더 왼쪽으로 방향을 틀어 아베놈을 비난하고 동일본 대지진으로 인해 사라져버린 생명들에 관한 글을 작품으로 남기거나 아니면 일본이 일으킨 전쟁에 대한 사죄를 담은 글을 인쇄로 길게 남긴다면( 우회적으로 빙 둘러서 몇몇 소설속에 일본군의 만행을 집어넣었지만) 내년 내후년, 하루키 옹  탄생 80주년에 받게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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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리바바 2019-10-14 23:3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읽다보니 좋은 얘기로 이루어진 수상소감이지만.....꼰대기질이 무지무지하게 느껴지는 이 무시무시한 길이......
문득 어릴때 운동장 땡볕에서 듣던 교장선생님의 훈화말씀이 떠오릅니다....좋고, 좋고, 좋은 말씀이나... 너무 좋고, 좋고, 또 좋고, 계속 좋아서 기억나는건 덥고, 다리아팠던 기억뿐....
애니웨이, 하루키옹께 축하를 전하고, 훌륭한 번역의 스콭님께 치하를!!! 짝짝짝짝짝~~~

scott 2019-10-15 09:4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맞습니다 읽다보면 하루키옹은 글이 저절로 쓰여진것 같은 자부심 자찬이 확느껴져요 명예돈 다갖은 옹ㅎㅎ yaribaba 님 오늘도 해피해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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