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2월 1일 생애 두 번째 창작 소설<굿바이, 부다페스트> 첫 회를 쓰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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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4년 헝가리 부다페스트를 배경으로 한 <굿바이, 부다페스트>연재를 총 50부작으로 기획 해 놓고 나서 1914년과 2024년의 날짜가 적힌 두 개의 달력을 준비해 놓았다.
소설을 읽는 동안 인간은 소설 속 시대와 인물들의 삶을 상상하며 두 번째 삶을 살 수 있다.
마치 꿈 속에서 보았던 것을, 상상 했던 그곳을 활자로 읽는 동안 나와 다른 세상 사람들의 삶의 다양한 모습을 소설을 통해 간접 경험해 볼 수 있다.
불멸의 고전을 읽으면서 경험해 보지 못한 경이로움에 사로 잡혀 식사 시간을 건너 뛰고 날 밤을 꼬박 지새우며 책에 푹 빠졌던 시간 동안 허구 세계가 현실 세계 보다 더 생생하게 느껴 질 때가 있다.
세계의 거의 모든 작가들이 추천하는 불멸의 고전, 톨스토이의 안나 카레니나에 세기를 뛰어넘는 심리 묘사가 나온다.
기차가 페테르부르크에서 멈추었다. 그녀가 내리자마자 발견한 것은 남편 얼굴이었다.
아! 맙소사! 저이의 귀는 왜 저렇게 생겼을까? 그의 차갑고 당당한 풍채, 그리고 특히 지금 그녀를 놀라게 한 귀 연골(둥근 모자의 챙을 떠받치고 있는)을 보며 그녀는 생각했다. 그는 예의 조롱기 섞인 미소를 입술에 띠고, 크고 지친 눈으로 안나를 똑바로 쳐다보며 다가왔다. 남편의 고집 세고 지친 시선에 부딪치자 불쾌한 감정이 가슴을 짓눌렀다.
-톨스토이의 <안나 카레니나> 중에서
살아 보지 못한 머나먼 시대에 관한 소설을 쓰겠다고 마음을 먹고 나서 불멸의 고전을 꺼내 읽고는 크게 좌절 했다.
단 한 문장도 빼 버릴 수 없을 정도로 완벽한 플롯 구성과 각각의 인물들의 생생한 심리 묘사 그리고 감동의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하는 마지막까지 대가들의 작품은 마치 풋내기 창작자들이 절대로 열어봐서는 안되는 판도라 상자처럼 창작의 의욕을 흔들리게 만들었다.
창작 클래스를 단 한 번도 수강한 적은 없지만 여러 다양한 이들이 창작에 대해 쓴 비법 중에서 '절대 변하지 않는 네 가지' 항목은 마음 속 깊이 단단히 새겨 두고 있다.
1.글쓰기 워크숍에 오는 사람들 가운데 99.9퍼센트는 자신의 글에 확신이 없다.
2. 5분 즉흥 글쓰기 훈련은 저마다 글쓰기에 대해 갖고 있는 불안감 속으로 뛰어들게 하는 최고의 방법이다.
3. 누구나 이야기를 갖고 있다.
4. 정답을 쓸 필요가 없다. 그저 자신의 능력 껏 이야기를 쓰면 된다.
시험에서는 정답을 도출 해야만 다음 단계 그리고 더 높은 단계로 넘어 갈 수 있지만 인간의 한 생애는 명확한 정답도 해답도 존재 하지 않는다.
인간은 태생적으로 자신의 눈과 귀로 보고 들은 정보를 종합적으로 분석해서 세상을 이해 하고 받아 들인다.
책을 읽을 때도 영화를 볼 때도 음악을 들을 때도 상상하는 대로 원하는 대로 온 신경을 집중해서 읽고 보고 듣는다.
지구 상에 존재하는 생명체 중에 유일하게 꿈을 꾸고 상상을 하며 이야기를 지어 낼 수 있는 인간은 마치 화가가 붓질을 하듯 사진기로 영상으로 찍어내고 촬영 하듯 말하고 쓸 수 있다.
언제 어디서든 손 안에 폰으로 다양한 채널을 통해 영상물을 볼 수 있는 시대에 문자 해독 능력이 저하 되고 있다는 조사 결과가 나왔지만 한 편으로는 영상에 책을 읽고 일기를 쓰고 필사를 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문화로 발전하고 있다.
기계들이 점점 더 AI에 의해 구동 되면서 어떤 일을 기계의 몫으로 나눠 주고, 어떤 일을 인간의 몫으로 남겨 두면 가장 좋을지를 결정하기가 점점 힘들어지고 있다. 우리는 AI와 인간의 글쓰기에서 이런 딜레마에 봉착했다. 즉 우리의 개인적이며 전문적인 삶 양쪽에서 무엇을 양도하고, 무엇을 우리 몫으로 챙길 것인가?
-나오미 배런의 <쓰기의 미래>
가보지 못한 도시, 단 한번도 배워 본 적 없는 언어로 말하는 사람들, 뽀족한 첩탑이 보이는 도시, 붉은 기와를 얹은 지붕으로 가득 찬 마을, 무성한 밤나무 수풀, 폐허가 된 요새의 모습들이 머리 속으로 스쳐 지나가면서 허구의 이야기 소설을 읽기 시작하는 동안 인간의 뇌 속은 엄청난 세상이 펼쳐 진다.
하지만 수동적으로 읽는 것과 능동적으로 한 단어를 써나가는 창작의 영역은 다르다.
무언가에 대해 쓰기 전까지는 모든 것들이 머릿 속에서 가능했지만 새 하얀 백지 위, 모니터 속에 빈 노트 창을 띄워 놓는 순간 단어와 단어들이 줄줄이 쏟아지지 않는다.
첫 문장을 쓰는 것 부터 지우고 다시 쓰기를 반복 하다가 두 문장을 쓰고 나서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난다.
모든 이야기는 어디에서 부터 시작되는지 정확하게 알고 있는 사람들이 이 세상에 존재 할까?
톨스토이의 안나 카레니나를 읽는 동안 눈 덮인 상트페테르부르크 행 기차에 올라타는 안나의 모습을 상상 할 수 있지만 나의 창작 능력으로 그런 장면 그런 상황을 절대 쓰지 못한다.
머리로는 그려지던 풍경과 사람들이 글자로 옮겨 질 때면 마치 낯선 환경에 놓인 겁먹고 당황한 짐승처럼 제 갈 길을 가지 못한 채 배회 한다.
창작을 하고 부터 책을 다른 시각으로 읽게 되었다.
하나의 스토리를 따라 읽으면서 마주치는 풍경들 상황들이 등장 인물들과 어떤 관련이 있는지 앞으로 이어지는 스토리에 어떤 복선이 될지 하나 씩 체크 하면서 서술자가 무슨 말을 하고 싶은지 곱씹어 가며 읽게 되었다.
한 권의 책을 다 읽고 나면 머릿 속에서 단어를 그림으로 형상화 시키는 작업을 하고 있다.
나에게 글을 쓰는데 주어진 시간은 하루에 단 몇 시간 뿐이고 일주일의 스케줄을 탈탈 털어 내고 불필요한 시간을 모두 제거 하고 나서도 소설을 집필 할 수 있는 날은 일주일 중에서 월요일과 화요일 또는 수요일 정도 뿐이다.
스무 살 무렵, 주말이면 유로 스타를 타고 칙칙한 런던을 벗어나 유럽 땅으로 건너갔던 시절이 있었다.
한 때 제국의 수도였던 빈의 링스트라세로 주르륵 연결 된 미술관과 박물관을 드나들며 헝가리 부다페스트 곳곳을 누비는 동안 언젠가 이곳에 관한 이야기를 쓰겠다는 마음을 단 한 번도 품어 본 적이 없었다.
창작의 세계는 나에게 너무나도 멀었고 내 능력으로 해 낼 수 없는 신의 영역이였다.
2024년 2월 1일 부터 쓰기 시작한 <굿바이, 부다페스트>에 20세기 격변의 시대를 살았던 다양한 인물들(실존 인물과 허구의 인물들)이 뒤섞여 있다.
나는 독자들에게 어떤 이야기를 들려 주고 싶을까?
왜 나는 이 시대를 배경으로 쓰고 있을까? 라는 질문을 내 스스로에게 던지면서 2025년 1월 2일 제 1부 마지막 50회를 완성 했다.
-50회 새들의 힘겨운 날개 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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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은 특정 시대를 살았던 인물들의 이야기를 들려주지만, 소설이 단지 이야기로만 가득 채워져 있는 것은 아니다.
<굿바이, 부다페스트>라는 이야기 속에는 수 많은 사물과 소리, 대화와 상상, 추억과 지식, 생각과 사건들이 등장 한다.
매회 장면, 장면을 써 나갈 때마다 나는 2024년 그리고 2025년이 아닌 1914년으로 돌아가서 그 시대의 장군이 되기도 하고 황제로 군림하기도 하고 동화책을 즐겨 읽는 13살 소녀가 되기도 하고 부유한 저택을 매일 쓸고 닦고 청소하는 하녀와 하인이 되기도 한다.
<굿바이, 부다페스트>를 50회 쓰는 동안 두 개의 책장을 가득 채울 정도 분량의 책을 읽었고 1년 내내 쓰고 고치고 쓰기를 반복했다.
쓰는 동안 매번 한계에 부딪치고 쓰고 나서도 또 다른 장벽에 부딪친다.
이 장면에서 이렇게 밖에 쓰지 못하는 내 능력을 저주하다가 포기 하지 않고 꾸준히 쓰고 있는 내 자신을 스스로 대견스러워 하기도 한다.
창작을 하는데 많은 시간을 쏟아 붓기 힘든 나는 일을 하는 동안 출장을 가는 동안 출퇴근 시간 동안 온전히 머릿 속으로 상상하고 쓰고 지우기를 반복하고 있다.
이렇게 완벽한 문장이 떠올랐는데! 이렇게 완벽한 묘사가 떠올랐는데! 라고 외치다가 막상 쓰기 시작하면 입안에 침이 바짝 마를 정도로 능력의 한계에 부딪친다.
시대를 앞선 스타일로, 영미권에서 '통찰력 있는 에세이스트'를 넘어 신화가 된 조앤 디디온은 어린 시절 몸이 너무 허약해서 아프다고 징징대자 그녀의 어머니가 너무 아프면 노트에 글로 쓰라며 노트를 건넨다.
일곱 살 때부터 그날의 생각과 감정을 기록하기 시작한 디디온은 보그지의 인턴 기자 생활을 시작으로 논픽션, 픽션, 에세이, 영화 시나리오, 칼럼등 다양한 글을 종횡 무진 하며 작가들의 작가로 불렸다.
글쓰기의 대가, 어떤 장르를 써도 주요 문예상을 휩쓸어 버리는 창작의 신 조앤 디디온은 후배 작가들과 예비 작가들에게 이런 말을 남겼다.
못 쓴다고, 잘 쓰지 못한다고 징징 거리지 마라.
써 버려라. 누가 뭐라 해도 전부 써버려라.
네가 알고 있는 모든 단어를 모조리 써버려라.
쓰지 않으면 모든 것들이 너의 손에서 전부 빠져나가 버리고 누군가가 쓰고 만들고 찍은 것을 보는 데 소중한 인생의 시간을 허비하게 된다.
주방 찬장 문을 열어 보아라.
단 한번도 쓰지 않은 그릇들, 은 식기들, 머그 컵들이 눈에 들어 올 것이다.
글을 쓸 것인가? 아니면 찬장 속의 식기들을 전부 써 버릴 것인가?
언젠가 우리 모두 한 줌의 재가 된다.
너무 아끼지 마라.
전부 써 버려라.
모두 사용해 버려라
-조앤 디디온
사는 동안 어떤 순간이 가장 소중할까?
일반 서민들이 죽을 때까지 벌어 들일 수 없는 수익을 단 한 편의 예능과 영화, 드라마로 수 억, 수십억을 벌어 들이는 이들이 놀고, 먹고, 마시고, 여행하는 모습을 보는 순간일까?
아니면 매일 쓰지 않은 은식기를 사용하듯 꾸준하게 매일 무언가 끄적이는 순간일까?
써야겠다고 마음먹은 이야기가 있으면, 일단 이야기를 씁니다. ‘이걸 쓰고 나면 뭔가가 있겠다.뭔가가 없지는 않겠다’라는 확신은 있지만, 그게 무엇인지는 모르는 상태로요. 그런데 그렇게 쓰고 나면 쓰는 동안 정말 처음에는 생각하지 못했던 그 ‘뭔가’가 들어가 있습니다.
―장류진
소설은 온갖 모순으로 가득 차 있고 이 세상도 모순 덩어리다.
이렇게 서로 모순된 현실과 상상의 세계를 종횡 무진 하며 쓰는 동안 내면에서 서서히 삼차원의 세상이 펼쳐진다.
비록 무명의 작가가 창작한 작품이지만 읽어주고 응원해 주는 독자들 덕분에 2024년 2월 부터 50회까지 연재를 이어갈 수 있었다.
내가 보여준 또 다른 세상 <굿바이, 부다페스트>를 누군가 읽고 그 시절의 세계로 빨려 들어가 읽는 맛을 느꼈으면 좋겠다.
<굿바이, 부다페스트> 제 2부 제 51화 두더지 굴에 빠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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