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트] 황제 프리드리히 2세의 생애 상.하 세트 - 전2권 ㅣ 황제 프리드리히 2세의 생애
시오노 나나미 지음, 민경욱 옮김 / 서울문화사 / 202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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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94년 12월 26일 황제 프리드리히 2세는 예시라는 작은 마을 광장 천막안에서 세상 밖을 나왔다. 

붉은 수염의 신성 로마제국 황제 하인리히와 황후 콘스탄체가 결혼 8년 만에 태어난 아이, 성탄절 팔레르모 대성당에서 '시칠리아 왕'의 왕관을 쓴다. 

태어나자마자 부모와 떨어져 움브리아 지방에서 세살까지  살던 꼬마 프리드리히 세례식날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아버지 하인리히를 만난다. 

1년 후  하인리히 황제는 건강 이상으로 서른 두살의 나이로 사망하고 그의 예상치 못한 죽음으로 유럽 전역에 권력의 지각 변동이 시작된다. 

가장 처음 남부 이탈리아에서 시작된 반란이 종교계의 최고의 권력자 로마 교황의 죽음으로 더욱 혼란이 가중된다.

 황후 콘스탄체는 이제 네살이 채 안된 아들 프리드리히 2세를 권력의 왕좌에 앉히기 위해 왕실 최고 회의를 소집한다. 

1198년 1월, 로마 교황으로고 서른 여덟 살의 인노켄티우스 3세가 선출되고 황후 콘스탄체는 그에게 접근해 교황이 시칠리아 왕국에서 어린 프리드리히의 왕위를 인정해 주면 혈통상 프리드리히에게 권리가 있는 독일의 왕위 계승권을 포기하겠다는 조건을 내건다. 

교황 입장에서는 골치 덩어리 독일을 관리 하지 않아도 되니 황후의 조건을 흔쾌히 받아들인다.

1198년 5월 17일, 겨우 네 살이 된 프리드리히는 팔레르모 대성당에서 시칠리아 왕으로 즉위 한다. 

나폴리까지 공략해온 로마 교황의 영토와 국경을 접한 남부 이탈리아 전역의 통치권이 4살짜리 프리드리히 황제 손에 들어갔다.

 반년 후 1198년 11월, 황후 콘스탄체는 병상에 눕게 되고 자신의 죽음이 임박해왔다는 사실을 직감하며 아들의 후견인으로 교황 인노켄티우스 3세를 선택한다. 



교황은 죽음이 임박한 황후에게 다음과 조건을 요구한다.


첫째, 시칠리아 왕국이 로마 교황의 영유지 라는 것을 인정할 것.

둘째, 꼬마 프리드리히 황제가 성인이 될 때까지 자신의 후견인 비용을 낼 것. 

단, 후견 비용의 납부 시기는 성인이 된 다음에 할 것


황후 콘스탄체는 이 모든 조건을 받아들이고 며칠 후 눈을 감는다.


자, 이제  천애고아가 된 4살 꼬마황제 프리드리히 앞에 어떤 운명이 기다리고 있을까?

황후가 사망 한 후 교황의 신경은 온통 제 4차 십자군을 동방에 보내는데 쏠려 있었다.

꼬마 프리드리히 황제 옆에는 성직자나 학자 출신도 아닌 굴리에모 프란체스코라는 일반인에게 맡겨진다. 

어느 누구도 황제에게 관심을 갖지 않는 10년 동안 꼬마 프리드리히 황제는 자신의 호기심이 가는 데로 거의 전 분야를 독학해 나간다.

무엇을 배울지 스스로 선택했던 꼬마 황제는 라틴어, 프랑스어, 독일어, 이탈리아어, 그리스어, 아랍어를 차례 차례 익혀 나간다. 황제 프리드리히는 수행원이나 시종 없이 팔레르모 시내를 마음껏 돌아 다니며 서민들의 언어와 문화까지 익힌다.

황후의 사망 이후 단 한번도 꼬마 황제 프리드리히를 만난 적이 없었던 교황은 십년의 세월이 흐른 후 카푸아 대주교의 보고서를 통해 꼬마 황제가 어떻게 성장 하고 있는지 알게 된다.

카푸아 대주교가 교황에게 보낸 보고서는 다음과 같다.


-키는 중간 정도로  또래들 보다 크지 않다. 단단한 체격에 지구력이 강하다.

-칼과 창, 활을 평균 이상으로 잘 다룬다.

- 무술에 집중 하고 있을 때 자세가 유연하고 몸을 자유자재로 써서 약점을 내보이지 않는다.

-승마를 아주 즐긴다. 아무리 거칠고 성질 머리가 나쁜 말 위에 올라 타도 압도적인 속도와 기세로 말을 길들인다.

-아침에 눈을 뜰 때부터 밤 까지 절대로 가만히 앉아 있지 않는다. 미친 듯이 움직이고 돌아 다닌다.

-유일하게 가만히 앉아 있을 때는 독서를 할 때 뿐이다. 역사 책을 주로 탐독 하지만 뭐든 손에 잡히는 데로 읽는다. 한번 책에 빠지면  새벽까지 이어진다.

-피로 하다 거나 지겨워 한 적이 없다. 하지만 황제 의복으로 갈아 입고 나면 순식간에 근엄한 모습으로 돌변한다. 

-어느 누구나 눈이 휘둥그레지는 미소년은 아니다. 하지만 자세히 보면 넓은 이마는 넓은 마음을 드러내고  눈빛은 소년의 눈빛이지만  상대를 바라 볼 때는 강한 열정을 드러낸다. 단, 가끔 황실 사람들이 전혀 알아 듣지 못하는 서민들 언어로 말해서 시종들을 난감하게 만들때가 있다.

- 무엇이든 미리 정해진 데로 움직이지 않고 스스로 하고 싶은 일을 찾는다. 어린 나이지만 시종이나 하인을 부리지 않고 어떤 곳도 스스로 찾아가고 어려운 일도 스스로 척척 해낸다.


소년 프리드리히 황제가 살던 시기에 팔레르모는 다민족 다문화 다종교가 뒤섞인 무법지대로 독일과 이탈리아 세력이 끊임없이 충돌하며 언제 어떤 식으로 살해 될지 모르는 곳이였다.

황제의 후견인 교황도 이곳은 손도 대기 싫은 곳이지만 황제 프리드리히를 자신의 손안에 쥐고 흔들며 시칠리아 왕국 전체로 세력을 확장 하려는 목적을 갖고 있었다.

그가 첩자로 파견한 사제들과 대주교들은 황제 프리드리히를 24시간 감시 하며 수시로 교황에게 보고서를 보냈다.

완벽하게 감시 당하면서 완전하게 방치돼 버린 황제 프리드리히는 일곱 살 무렵 독일 세력들에 의해 납치 될뻔한 위기에 처한 적이 있었다.

소년 프리드리히는 자신이 기거 하고  있는 노르만인의 궁전으로 쳐들어온 독일 세력들 앞에 끌려가지 않으려고   자신의 몸에 피가 나도록 마구 할퀴며 짐승처럼 큰 소리로 울부 짖었다.

소년 프리드리히가 미쳐 버렸다 생각했던  독일 세력들은 곧바로 현장에서 줄행랑을 치고 이를 바로 눈앞에서 목격한 교황의 비밀 첩자 사제는 이날의 사건 보고서를 작성한다.


'소년 황제가 독일 세력들 앞에서 보인 행동은 극도의 공포심이 아닌 이름만 황제 뿐인 자신의 처지를 절망과 분노로 표출했습니다.'


이 사건 이후 소년 프리드리히는 자신이 신뢰 할 수 있는 사람만 곁에 두고 팔레르모 전역에 세워진 예배당의 서고들에 보관된 책들을 독파 하기 시작한다.

1208년 소년 프리드리히가 13살 생일날 삼촌 필립이 살해 당하고 소년은 호엔수타우펜 가문의 유일한 생존자가 된다.

1209년 12월 26일  14살 소년 프리드리히가 스스로 성인이 되었음을 선포 하자 이 사실을 알게 된 후견인 교황 인노켄티우스 3세는 전혀 예상치 못한 사실에 크게 놀란다.

'그 꼬마가 자신의 나이보다 월등한 능력을 키웠군, 소년의 모습이지만 인지 능력은 성인을 넘어 섰다니.'


가만히  14살 황제의 움직임을 가만히 지켜보고만 있지  않았던  마흔 아홉 살의 교황은 성직자 임명권을 놓고 서로 대립하지만 어린 황제의 대응에 맞서기 보다 너그럽게 이해하는 태도를 취한다.

 14살 황제 프리드리히 2세는 자신에게 맞서지 않고 공손하게 한 발자국 물러서는 교황의 속내를 파악하기 위해 주변 동태를 살피는 동안 교황은  황제보다 열 살이나 많은 아라곤 왕의 딸 콘스탄체를 눈앞에 데리고 와 결혼을 종용한다.

당시 아라곤 왕의 딸 콘스탄체는 헝가리 왕과 결혼 했지만 아들이 죽자 자신의 고향 스페인으로 돌아 간 상태였다. 

빠른 속도로 헝가리 왕과 이혼 절차를 마치게 한 교황은 1209년 8월 15일 자신의 꼭두각시 콘스탄체와  황제 프리드리히 결혼 혼사를 직접 주관하며 14살 짜리 황제를 자신의 손아귀에 넣으려는 계략을 짠다.

황제 프리드리히와 결혼식을 올리던 날 콘스탄체는 결혼 지참금으로 무려  오백명의 기사를 끌고 온다.

14살의 황제 보다 삶의 경험이 많았던 콘스탄체는 교황의 검은 꿍꿍이를 꿰뚫어 보았고 그의 바람대로  남편 프리드리히 황제가 꼭두각시가 되지 않게 하기 위해  왕국 통치 질서를 확립하는데 적극적으로 협력한다. 

콘스탄체가 이끌고 온 오백명의 기사들이 유럽 전역으로 퍼져 나가기 전, 교황은 황급히 독일 작센주 지역의 전폭적인 지원을 요청 한다.

당시 독일 작센 주는 황제 프리드리히의 삼촌 필립이 죽고 난 후 그 자리에 작센공 오토가 물려 받았다. 

작센공 오토는 교황파의 우두머리이자 교황 인노켄티우스 3세의 손과 발이 였다. 

교황은 자신의 수족이나 다름 없는 오토가 절대로 시칠리아 왕국을 손에 넣는 일은 하지 않으리라 굳게 믿고 있었다.

1209년 10월, 스물 일곱 살의 오토는 신성 로마제국 황제에 올라서고 교황 인노켄티우스 3세는 북쪽 독일은 오토가 남쪽 시칠리아 왕국은 14살의 프리드리히가 통치 해야 자신의 안위도 챙기고 권력도 자신이 쥐락 펴락 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황제 오토는 대관식을 마치자 마자 교황청 영토의 북쪽과 국경을 맞댄 토스카나 지방으로 군대를 이끌고 가 시칠리아 왕국의 영토 지역인 남부까지 진격한다.

이 사실에 교황은 크게 격노 하지만 일개 종교인으로  군사력이 없으니 오토를 암살 할 첩자 사제들을 급파 한다.

 이를 절대로 모를 일이 없었던 황제 오토는 첩자들을 색출해 내고 교황청의 북쪽 영토 카푸아, 나폴라, 살레르노, 아말피 까지 차례 차례 점령하며 교황의 암살단 사제들에게 에워 쌓여 있었던 황제 프리드리히를 구출하는데 성공한다.

자신의 사제를 모조리 몰살 시켜 버린 것에 크게  분노한 교황은 1210년 10월 신성 로마제국 황제 오토를 파문 시킨다고 공표한다. 

하지만 이미 교황청 영토를 정복 한지 1년을 넘겨 버린 시점이라 황제 오토는 파문 당하는 것도 두려워 하지 않는다. 

오토가 교황과 기 싸움을 벌이는 동안 한층 여유가 생긴 황제 프리드리히는 남유럽 전체의 방위군을 키우는데 주력 하고 있었다.

더 이상 암살단 사제들도 별 효과가 없다는 사실을 깨달은 교황은  남부 이탈리아 지역의 충직한 대주교인 서른 세 살 배라르도를  팔레르모 대주교로 임명한다.

교황이 대 주교 배라르도에게 준 임무는 팔레르모 땅을 지배 하고 있는는 열여섯살 짜리 황제 프리드리히를 곁에서 보좌 하며 감시해서 그의 일거수 일투족을 자신에게 보고 할 것을 명했다.

교황은 일개 지방 구석진 곳에서 벼락 출세한 배라르도가 자신에게 충성 하기 위해  야생마 같은 황제를 노련하게 조련 할 것이라 큰 기대를 품고 있었다. 

매일 아침 교황에게 보고서를 보냈던 베라르도는 차츰 시간이 흐를수록   로마 교황청에도  교황에게도 보고서를  제출하지 않는다.

매일 아침 교황은 베라르도의 보고서가 도착하기를 기다렸지만   소식조차  없게 되자  시칠리아 왕국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열여섯살짜리 황제가 어떤 일을 벌이고 있는지 전혀 알 방법이 없이 로마 교황청에 홀로 고립된다.

과연  베라르도 대 주교는 야생마 같은 황제 프리드리히에게 무릎을 꿇었던 것 이였을까? 아니면 온갖 뇌물에 포섭 당해 버린 것이었을까?

서른 세 살의 베라르도 대주교는 열 여섯살 황제의 운명을 읽고 있었다.

1년 후 황제 프리드리히는 북부 독일로 향하고 그의 곁에 동행 하는 사람은 바로 베라르도 대 주교, 그는 이제 황제 프리드리히 인생에 가장 소중한 은인이자 파트너가 된다.



황제 프리드리히 2세의 최대 적은 자신의 후견인인 교황도 아니였고 국경 너머 이교도 군대들도 아니였다. 

그가 이룩하려는 법치 국가를 세우는데 절대적으로 '시간'이 필요 했고 그 법치 국가를 이룩 하려면 절대적으로 '평화'를 유지 해야만 했다. 

'평화'는 꿈 만으로 유지 시키지 못한다. 

이 세상의 분쟁이란 꿈을 꾸듯 평화롭게 해결 할 수 없다.

황제 프리드리히 2세가 꿈꾸는 세상. 평화를 유지하기 이전에 평정의 상태로 만들려면  압도적인 군사력이 필요 했다.

중세 시대에 병력을 거느리고 싸울 수 있는 사람은 오로지 봉건 '제후'들 뿐이다.

그렇다면 황제 프리드리히 2세는 군사력을 내세우지 않고  어떻게 평화를 유지해서 법치 국가를 세울 수 있었을까?

1236년 마흔 한 살에 접어든 황제 프리드리히 2세에게  '시간'은 그가 설계하는 미래를 재촉하고 있었다.

조류를 이용한 사냥에 관한 책을 쓰면서 내가 명심한 것은 아래 한 가지다.

모든 것은 있는 그대로 그리고 본 그대로 쓸 것

왜냐하면 이 방침을 관철해야만, 책을 통해 얻은 지식과 경험해보고 처음으로 이해한 지식의 통합이라는 지금까지 아무도 시도하지 않은 과학의 길을 열 수 있을 것이라 믿어서이다.

-프리드리히 2세의 조류를 이용한 사냥에 관한 고찰 (De Arte Venandi cum Avibus)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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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안인
우밍이 지음, 허유영 옮김 / 비채 / 202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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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평양 한가운데 세상 어떤 지도에도 표시되지 않은 외딴섬 와요와요 섬에서 남자 아이가 태어나면 나무 한 그루를 골라 달이 죽었다 되살아날 때 마다 나무에 금을 하나씩 긋는 풍습이 있다.

나무에 금이 백개가 되면 아이는 자기만의 나무 쪽배인 '타라와카'를 만들어서 물고기를 잡아야 한다.

와요와요 섬에서 둘째 아들로 태어날 경우 맏아들이 일찍 죽는 경우를 제외하고 백팔십 번째 보름달이 뜰 때 섬을 떠나 돌아 올 수 없는 항해길을 나서야 한다.

물 한 병만 쪽배에 싣고 와요와요 섬을 떠나는 둘째의 운명은 영원히 사람과 인연이 닿지 않는 바다에서 노인이 될 때까지 살아야 한다.

이런 가혹한 운명을 타고난 아트리에는 우르슐라에게 말하는 피리를 받고 자신이 만든 쪽배 타라와카의 노를 저어 와요와요 섬을 떠난다.

섬을 떠나 바다를 항해 한지 7일 째 되던날 쪽배 타라와카에 물이 새기 시작하고 배가 서서히 바다 속으로 침식해 갈 때 아트리에는 바다로 뛰어들었다.

[눈을 떴을 때 아트리에는 자신이 여전히 바다에 떠 있는 걸 알았다.

섬 가장 자리에 소년들이 서 있었는데 하나같이 암울한 눈빛에 손이 있어야 할 곳에 지느러미가 있었으며 한 평생 산호초 위에서 뒹군 것처럼 온몸이 얼룩덜룩했다.]

바다에서 표류하던 아트리에가 도달 한 곳은 온갖것들이 뒤섞여서 지독한 냄새로 진동하는 거대한 쓰레기 섬이였다.

죽은 생물과 악취로 가득찬 그 섬은 끊임없이 회전하듯 매일 다른 방향에서 해가 뜨고 져서 아트리에는 그 섬이 사후세계가 틀림없다고 생각한다.

인간들이 버린 다양한 물건들은 바다 거북의 뱃속에서도 나왔고 조개 껍질 속에서도 나왔다.

불 같이 뜨겁다가 참을 수 없는 혹독한 추위가 닥치고 하늘이 맑게 개어 있다가 거센 폭풍이 불다가 별안간 밤이 찾아오는 그 쓰레기 섬에서 아트리에는 차남들의 영혼이 잠든 곳이라 여기고 손에 잡히는 것들로 집을 짓기 시작한다.

이승인지 저승인지, 섬인지 조차 불분명한 이 거대한 쓰레기 더미는 얼마 후 아트리에를 실은 채 대만 동부의 바닷가를 덮친다.

거대한 파도가 눈앞에서 해변을 통째로 쓸어버리는 무시무시한 장면이 텔레비전으로 생중계 되고 이를 지켜 보던 시민들은 기괴한 자연 현상에 한발자국도 밖을 나가지 않는다.

등산에 갔던 남편과 아들이 실종된 후 충격으로 교수 자리에서 물러난 앨리스는 병상을 박차고 나가 해변가를 덮친 화면에 얼핏 비추었던 그 무언가를 찾기 위해 직접 현장에 나간다.


​

[산길을 걸으며 앨리스는 계속 어떤 냄새가 나는 것 같았다. 무슨 냄새지? 태양의 열기, 바닷물의 공격성, 물고기의 비린내와 야생의 사향냄새... 결코 섞일 수 없는 상반된 냄새가 뒤섞여 만들어진 냄새 같았다.]

​

쓰레기 섬을 뒤지던 앨리스는 문득 지난 시절 외할머니와 함께 갯벌에 굴을 따러 갔던 기억을 떠올린다.

생계를 위해 굴을 땄던 외할머니와 동네 주민들은 인근에 있는 정유소 공장에서 버리는 폐 기름에 신장과 폐기관이 망가져서 고통 속에서 세상을 떠났다.

잃어버린 고양이를 찾듯이 해일처럼 떠밀려온 쓰레기 더미에서 아트리에를 발견한 앨리스는 대만의 원주민인 하파이와 다허, 터널 개발 공사 자문으로 대만에 방문한 독일인 볼트와 환경운동가 사라의 도움을 받아 미지의 섬 주민인 아트리에와 소통 하기 위해 노력한다.

​

[우리의 섬은 용사의 섬이고, 꿈이 모이는 곳이에요. 물고기 떼가 이동할 때 쉬었다 가는 곳이고 해가 뜨고 지는 좌표고 희망과 물의 휴식처예요. 우리 땅은 산호를 엮고 바닷새의 똥을 덮어서 만들었어요. 우리 카방이 눈물을 모아서 만든 작은 호수에 의지해 살아요.]

​

섬을 떠나 쪽배에 의지한 채 바다에서 홀로 살아갈 운명을 타고난 와요 와요의 원주민 소년 아트리에는 하루 아침에 가족을 잃은 대학 교수 앨리스에게 차츰 마음의 문을 연다.

남편과 아들이 추락한 지점을 찾아 나서는 앨리스를 따라간 아트리에는 암벽 정상에 다다르고 그곳에서 수많은 자연의 비밀을 품고 있는 생명체와 마주하게 된다.

바다 밑에 흐르는 암류처럼 사람을 끌어 당기고 휩쓸어 가고 파묻어 버릴 것 같은 눈빛을 한 복안인이 앨리스와 아트리에 일행 앞에 모습을 드러낸다.

겹눈 속 수 많은 홑눈이 바늘 끝보다 가늘고 보이지 않을 만큼 미세한 눈물을 흘리고 있는 복안인은 그저 세상을 지켜 볼 수만 있을 뿐이다.

앨리스와 아트리에 일행이 암벽을 내려 오던 날 와요와요 차남들의 화신인 향유고래 떼가 파도를 가로질러 헤엄쳐 갔다.

일주일 뒤 새벽 시간에 칠레 남부의 발파라이소 해변에 향유 고래 수백 마리가 온 몸의 뼈가 으스러진 상태로 발견된다.

[먼저 숨이 끊어진 고래들이 뜨거운 태양 아래서 차츰 부풀어 오르고 부패하다가 갑자기 차례로 폭발하기 시작했다. 무겁고 축축한 하늘로 솟구쳤던 내장이 고래 연구자, 어민 고래 뼈를 주으러 온 아이들 위로 비처럼 쏟아져 내렸다. 그들은 한 번도 맡아 보지 못한 썩은 내에 기절하거나 바닥에 엎드려 구토했다.]

앨리스는 고래가 죽은 그 해안가에서 오래 전 남편이 들려 주었던 이야기를 떠올리고 그리고 소년은 바다로 떠난다.

​

가상의 섬 '와요와요'에서 시작된 설화 같은 존재인 소년 아트리에가 바다를 떠돌다 문명의 해변에 맞닺는 순간 만나는 앨리스 그리고 겹눈을 가진 수수께끼의 존재 '복안인'은 서로 다른 세계에 살고 있지만 그 세계 모두 파괴되고 오염된 곳이다.

​

구술로 내려오는 설화와 현실의 암울한 모습이 절묘하게 뒤섞인 소설 <복안인>은 인간이 만들어온 오염의 파고의 영향이 어디까지 이어질 수 있는지 신화와 현실, 환상과 재난의 경계를 넘나들며 펼쳐 보인다.

작가 우밍이는 인간의 시야가 닿지 않는 영역을 볼 수 있는 복안인의 시선으로 세상의 무엇을 보느냐가 아니라, 어떻게 세상을 볼 것인가에 대한 질문을 독자들에게 던진다.

​


소설 <복안인>에 등장하는 세상은 현재 우리가 사는 세상과 크게 다르지 않다.

(c) 2024, 방글라데시 다카 바다의 인공 쓰레기 섬, 로이터 통신

2017년 부터 방글라데시 다카 바다에는 전에는 존재 한 적 없는 거대한 인공 쓰레기 섬이 드넓은 크기로 바다 위를 둥둥 떠다니는 진귀한 현상이 발생했다.

쌓여가는 쓰레기를 처분하지 못한 방글라데시 정부의 무능한 행정 정책과 무분별하게 아무데나 쓰레기를 버린 실종된 시민 정신의 힘으로 만들어진 다카 바다의 인공 쓰레기 섬은 사람들이 가로 질러가는 구역 마저도 쓰레기로 버린 택배 상자와 플라스틱 쓰레기들의 부유물 위에 세워졌다.

6천 500만 년 전 지구 상 곳곳에서 시작된 화산폭발과 운석 충돌로 인해 지구 전체에 기온 변화가 발생하고 이 변화된 환경에 공룡은 적응하지 못해 멸종되었고 공룡이 사라진 자리에 포유류가 최종 포식자로 등장했다.

곧이어 등장한 영장류과인 침팬지와 아프리카 대륙에서 인류 조상인 호모(Homo) 족이 석기를 사용하기 시작했다. 

석기를 사용 했던 호모족은 기후 변화로 식량을 찾기 위해 아프리카 대륙에서 유라시아 대륙으로 이동하기 시작하고 네안데르탈인(Neanderthal)으로 진화하고 불을 발견하면서 식습관의 변화로 외모와 체격에 큰 변화가 생긴다.

생명체가 살기 좋은 환경인 동아프리카에서 드디어 호모 사피엔스(Homo sapience)가 등장했고 이들은 전 대륙으로 퍼져 나가 농업과 유목 생활을 하면서 문명의 씨앗이 되는 글자와 화폐를 발명해서 사용하기 시작한다.

인류가 현 시대의 도시화 문명 아래서 살아 간 것은 고작 몇 세기 전으로 5천 년 전에 최초의 왕국을 이루기 전까지 인류는 한 손에 돌과 다른 손엔 불을 들고 동굴과 들판을 오고 가는 야생적인 삶을 살았다.

​

점심 한 끼를 먹고 나서 버리는 일회용 플라스틱 제품이 한 가득이고 매일 집으로 배달 되는 주문 상품을 포장한 상자와 뽁뽁이들이 한 가득이다.

일회용 소비를 줄이기 위해 에코백을 메고 폐 비닐과 폐 휴지 상자로 만든 제품을 소비하고 종이 빨대를 사용해도 이 모든 걸 생산하는데 막대한 석유자원이 쓰이고 있다.

개인 당 소비하고 버리는 쓰레기 양을 줄인다 해도 지구 온난화의 주범인 화석연료 에너지와 플라스틱 제품 그리고 이산화탄소의 사용과 배출량을 감소 시키는데 역부족이다.

또한 이를 대체 할 수 있는 에너지가 개발된다 하더라도 친환경으로 생산한 제품 포장과 용기 역시 버리고 처리할 때도 다량의 이산화탄소가 배출된다.

인간이 숨 쉬고, 먹고, 마시고, 배출하는 걸 멈추지 않은 이상 지구의 생명을 단축 시키는 온난화 현상은 멈추지 않을 것이다.

​

오늘 누군가 마시고 버린 플라스틱 병을 지구 반대 편 물개가 물고 있다.

버려진 쓰레기들로 이루어진 섬의 면적은 한반도의 7배, 가까운 미래에 이 쓰레기 섬은 공식적인 국가 되어 이곳으로 사람과 동물들이 이주하는 세상이 도래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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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의 세계
슈테판 츠바이크 지음, 이노은 옮김 / 다산초당 / 202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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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적 광기의 폭주가 단숨에 수 세대에 걸쳐 쌓아온 문명을 어떻게 잔혹하게 파괴 할 수 있는지.인간이 얼마나 연약한 존재인지, 동시에 얼마나 강인하게 시련을 견딜 수 있는지 현재 우리가 당연하게 누리는 평온한 일상도 언젠가는 ‘어제의 세계’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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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돌이 2026-09-14 15: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파괴되고 지나가 버린 어제에 대한 이야기가 츠바이크의 손에서 어떻게 살아날지 궁금해요. 다시 출판된 기념으로 저도 읽어보려구요. ^^

scott 2026-09-19 15:10   좋아요 0 | URL
독일어 원문 이번 번역본 저도 믿고 구입했습니다 ^^

젤소민아 2026-09-16 01:2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바람돌이님에 이어 저도 읽어보려 합니다~감사합니다~

scott 2026-09-19 15:10   좋아요 0 | URL
불멸의 명저 입니다 !^^젤소민아님 꼬옥 ^^
 
산 루이스 레이의 다리
손턴 와일더 지음, 정해영 옮김, 신형철 해제 / 클레이하우스 / 202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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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14년 7월 20일 정오 무렵 리마와 쿠스코 사이를 이어주는 페루에서 가장 멋진 다리 산 루이스 레이가 무너지는 사고가 발생한다.

다리가 무너져 버릴 당시에 건너던 다섯 사람 모두 떨어져 죽게 된다.

간발의 차이로 참사를 피한 주니퍼 수사는 “왜 이런 일이 하필 저 다섯 사람에게 일어난 것일까?”라는 의문을 품고 다리 붕괴 사고로 희생된 사람들이 우연히 그 장소에 가게 되어 죽게 된 것이였는지 아니면 신이 정해 놓은 운명의 섭리에 따라 죽음에 이르게 되었는지 ‘그들의 죽음’의 원인을 밝혀 낼 수 있을 것이라는 믿음을 갖고 인생 행적을 탐사해 나간다.


주니퍼 수사가 가장 먼저 인생 행적을 탐문하는 첫 번째 희생자는 몬테마요르 후작 부인으로 남편을 일찍 여의고 홀로 딸을 키워냈지만 엄마의 과도한 집착과 사랑에서 벗어나고 싶었던 딸은 스페인으로 도망가 그곳에서 결혼을 하고 엄마를 두번 다시 찾지 않는다.

두 번째 희생자는 후작 부인을 수행했던 하녀로 수도원에 버려졌던 고아 소녀 페피타이다.

그녀의 뒤를 따라 다리를 건넜던 세 번째 희생자 에스테반 청년은 자신의 쌍둥이 형제의 죽음으로 자살을 시도 했지만 실패 한 후에 새로운 인생을 시작 하기 위해 다리를 건너갔던 청년이다.

네 번째 희생자는 '늙은 어릿 광대' 피오 아저씨로 한때는 유명했던 연극 배우였던 그는 젊은 시절 페루의 최고의 여배우가 성공 할 수 있게 모든 것을 희생했지만 연인에게 버림 받는다.

다섯 번째 희생자는 하이메라는 이름의 아이로 '늙은 어릿 광대' 피오 아저씨가 자신이 연기를 가르쳤던 여배우 카밀라 페리콜이 낳은 아이를 맡아 키우며 함께 리마로 가던 중이었다.

한 날 한 시에 같은 마차에 타고 산 루이스 레이 다리에서 죽음을 맞이한 이 다섯 명의 운명은 ‘모두 죽을 만했던 사람들이였을까?" 아니면 ‘신의 섭리였을까?, 허무한 우연인 것인가?'

만일 이게 섭리라면 신은 잔혹하고, 한낱 우연이라면 인생은 무의미한 것 아닌가?

이 다섯 사람들은 그 날 왜 산 루이스 레이 다리를 건너갔던 것일까?

가톨릭 성인의 이름을 딴 산 루이스 레이 다리를 건너 산길을 오르면 클루삼부쿠아 성지에 닿는다.

이 성지는 개혁적이고도 헌신적인 마리아 수녀원장 이끄는 수녀원과 성당이 있는 곳으로 발길이 닿는 곳마다 성당과 수녀원에서 들리는 종소리가 울리는 경건함으로 가득 찬 곳이다.

포목상의 딸로 태어나 불행한 어린 시절을 보냈던 몬테 마요르 후작부인은 딸 클라라에 대한 강박과 집착이 결국은 자신을 위한 딸의 사랑이었음을 깨닫는 순간 다리를 건너다 죽음을 맞이 하고 후작부인의 하녀인 페피타는 고아였던 자신을 키워준 수녀원장의 사랑을 구하려다 결국 다리 아래로 떨어진다.

쌍둥이 동생을 잃은 형 에스테반은 삶의 의지를 잃어 버렸지만 자신의 형제를 키워준 수녀원장에게 줄 선물을 사기 위해 다리를 건너다 추락하고 연인에게 버림 받은 늙은 연극 배우와 그가 데려다 키우는 아이까지 각기 다른 사연을 품고 리마로 되돌아가던 한날 한시에 죽는다.

저마다 욕망하고 자학 하고 절망하고 원망하다 비로소 “용기”를 내어 죽고 싶은 마음을 이겨내고 새 삶의 의지를 품고 다리를 건너던 그 순간에 죽음을 맞는다.

이 안타까운 사고로 세상을 떠난 다섯 명의 사람들의 죽음에 대해 세상은 오만함과 부유함이 저주 받은 것이라 했지만 신의 섭리를 연구하던 주니퍼 수도사는 이들의 삶이 세상에 알려진 것과 다르다고 추론 했지만 결국 이교도로 몰려 책과 함께 화형을 당한다.

주니퍼 수사가 탐문하기 시작한 다섯 사람의 삶의 궤적을 따라가다 보면 완전히 우연한 사고처럼 보이는 산 루이스 레이의 다리가 무너지는 사고에 더 큰 운명이 도사리고 있었다.

가족 사이의 사랑, 스승과 제자 사이의 애정, 자기 자신에 대한 사랑 그리고 부모를 잃은 고아를 키워준 마리아 수녀원장에 대한 사랑을 품고 있었던 다섯 명의 운명은 인류 전체의 모습을 암시하고 있다.

산 루이스 레이의 다리가 연결 시켜 주는 가장 강력한 두 세계는 ‘살아 있는 사람들을 위한 땅’과 ‘죽은 사람들을 위한 땅’으로 이 두 세계를 연결하는 다리가 바로 사랑이다.

인간은 태생적으로 자신의 본성을 알지 못하는 유일한 동물이지만 자신과 다른 또 다른 인간의 속성을 찾아 서로 비교 하고 경쟁하며 동시대를 함께 살고 있는 인간이 직면하는 고통과 고난을 외면하지 않고 함께 극복하며 서로 공존하며 살아가는 지혜를 발휘 할 수 있는 능력을 갖고 있다.

우리는 그동안 세월호 참사와 이태원 참사, 제주항공 참사와 같은 비극을 겪는 동안 "왜 하필 이런 일이 일어났을까?"라며 사건 수습과 대처, 사고 예방에 미흡할 뿐 그저 누구나 우연히 그런 사고를 당해 그런 죽음을 맞이할 뿐이라고 덮어 버린다.

소설 <산 루이스 레이의 다리>에서 마리아 수녀원장은 자신의 신자들이자 다리 붕괴 사고로 세상을 떠난 이들의 죽음의 의미를 이런 말로 추모 한다.

'모든 사랑의 충동은 그것을 만들어 낸 사랑으로 돌아간다. 사랑을 위해서는 기억조차 필요하지 않다. 산 자들의 땅과 죽은 자들의 땅이 있고, 그 둘을 잇는 다리가 바로 사랑이다. 오직 사랑만이 남는다. 오직 사랑만이 의미를 지닌다.'

-손턴 와일더의 <산 루이스 레이의 다리> 중에서

작가 손턴 와일더(1897~1975)의 <산 루이스 레이의 다리> 작품의 첫 장의 시작은 '어쩌면 우연' 마지막 장은 '어쩌면 신의 의도'로 끝이 난다.

1714년에 페루 리마에서 발생한 안타까운 사고로 희생된 운명을 갖은 사람들에게 <신>은 구원적인 존재가 아니였다.

어차피 세상에 태어나는 모든 생명들은 언젠가 죽게 될 것이고 죽고 나서는 그 모든 기억들이 사라져 버린다.

어떤 시대가 도래 한다 해도 결국엔 모두가 세상에서 사라지는 끝이 있고 그 끝에서 다시 태어나서 시작되는 사랑이 있듯이 모순 가득한 세상 속에서 우리 모두 날마다 한치 앞을 내다 볼 수 없는 삶과 죽음의 다리를 건너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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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 가공선 ㅣ 손안의 클래식 3
고바야시 다키지 지음, 전설 옮김 / 잇북(Itbook) / 201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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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 대 미국 닷컴 버블이 붕괴 된 후 2002년까지  금융호황을 누렸던 일본은 2008년 미국의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로 큰 타격을 받는다.

 글로벌 금융시장의 위기로 엔화 강세가 지속 되자  해외 에너지·원자재 가격의 상승으로 일본의 무역수지가 악화되면서, 수출주도형 일본 경제가 침몰하기 시작 했다.

일본 대 기업들은 유동성 자산을 유지 하기 위해 예비 취업자들 고용을 취소 해 버렸고 파견 근로자들을 대량 해고 하면서 수 많은 노동자들과 취업자들이 하루 아침에 실업자가 되었다.

고용 환경이 가장 취약한 계층의 일자리가 사라지고 나자 대기업들은 대규모 감원 칼을 빼 들었다.

1941년 이래로 단 한 번도 불황을 겪어 본 적 없었던 도요타 자동차와 소니가 만 명 이상의 근로자들을 해고 하자 정부의 눈치를 보던 소규모 기업들이 해고 도미노 현상이 일기 시작했다.

2008년 한 해 동안 정규직과 비 정규직 노동자들이 6만 명 이상 해고가 되는 동안 공공장소와 학교, 병원, 놀이 시설 등지에서 묻지마 칼부림과 살인 사건으로 일본 국민의 불안감이 최고조로 달했다.

2008년에 일본에서 화학과 물리학 분야에서 노벨상 수상자가 배출되어 세계적 이슈가 되었지만  일본 각지의 서점에서 분 단위로 팔려나간 책은 노벨상 수상자들에 대한 책이 아닌 80년 전에 출간 된 소설 작품이였다.


붉은 배 (腹)를 널찍하니 내밀고 떠 있는 기선과, 한창 짐을 싣고 있는지 바닷속에서 한쪽 소매를 잡아당기기라도 하는 양 한쪽으로 완전히 기울어져 있는 배, 누렇고 굵은 굴뚝, 커다란 방울 같은 붉은 부표, 빈대처럼 배와 배 사이를 누비고 다니는 작은 증기선, 으스스하게 떠도는 검은 연기, 빵 부스러기와 썩은 과일 따위가 떠 있어 무슨 특별한 직물처럼 보이는 파도…… 연기는 바람을 타고 파도와 스칠 듯 나부끼며 후텁지근한 석탄 냄새를 풍겼다. 드르륵드르륵하는 윈치 소리가 때때로 파도를 타고 바로 발밑에서 울려왔다.

이 게 가공선 핫꼬오마루 바로 앞에서, 칠이 벗겨진 범선이 이물의 소코뚜레 같은 곳으로부터 닻줄을 내리고 있었다. 갑판에서는 마도로스파이프를 문 외국인 두 사람이 기계로 된 인형인 양, 같은 곳을 왔다 갔다 하고 있었다. 러시아 배 같았다. 일본의 ‘게 가공선’을 감시하는 배가 틀림없을 것이다.

“우린 이미 한푼도 없어. 제기랄.”

어부는 그렇게 말하며 다가오더니 옆 어부의 손을 잡아다가 자신의 허리께로 가져갔다. 작업복 아래 코르덴 바지 호주머니에 대고 눌렀다. 뭔가 작은 상자 같았다.

그 사람은 말없이 어부를 바라보았다.

“히히히……” 하고 웃고는 “화투야” 하고 말했다.

갑판에서 ‘장군’ 같은 차림을 한 선장이 어슬렁거리며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내뱉은 연기는 코끝에 닿자마자 수직으로 꺾여 흩날렸다. 나무밑창을 덧댄 짚신을 신고 음식물 양동이를 든 선원이 바쁘게 바깥쪽 선실을 들락날락했다. —준비가 다 끝났으니 이제 나가기만 하면 된다.

잡부들이 있는 배 밑바닥 방의 해치를 위에서 들여다보면 어두침침한 널판에서 잡부들이 둥우리에서 얼굴만 삐죽삐죽 내미는 새들처럼 부산스레 움직이는 게 보였다. 모두 열네댓살 소년들이었다.

“너는 어디야?”

“××마을.” 모두 같았다. 하꼬다떼 빈민굴의 아이들이었다. 그런 아이들은 거기에만 이미 한 떼거리였다.

“저쪽 널판은?”

“남부.”

“거기는?”

“아끼따.”

그들은 서로 마주 보는 널판이었다.

“아끼따 어디?”

고름 같은 콧물을 매달고 눈꺼풀이 뒤집힌 듯이 빨갛게 짓무른 아이가,

“키따아끼따여” 했다.

“농사꾼이야?”

“그려.”

퀴퀴한 것이 과일이라도 썩은 것처럼 시큼한 냄새가 났다. 절인 장아찌를 몇십 통이나 재어놓은 방이 바로 옆이라서 ‘똥’ 냄새 같은 것도 섞여 있었다.

“인자는 아부지가 안고 자줄겨.” —어부가 히죽히죽 웃었다.

어두컴컴한 구석 쪽에서 작업복 윗도리에 잠방이를 입고 보자기를 삼각형으로 쓴 날품팔이 같아 보이는 아이 엄마가 사과를 깎아서 널판에 엎드려 있는 아이에게 먹이고 있었다. 아이가 먹는 것을 보면서 자신은 둘둘 말려 있는 껍질을 먹고 있었다. 뭔가 중얼거리며 아이 옆에 있는 작은 보따리를 몇번이나 풀었다가 다시 쌌다가 했다. 그런 사람이 일고여덟이나 있었다. 배웅해주러 온 사람 없이 홀로 내지 內地2에서 온 아이들은 가끔씩 그쪽을 훔쳐보곤 했다.

-고바야시 다키지의 <게 가공선> 중에서

고바야시 다키지의 < 게 가공선>은 1929년 일본이 대동아 전선에서 아시아 국가를 잔혹하게 착취하며 전쟁의 화마 속으로 수 많은 인명들을 밀어 넣었을 때  전일본무산자예술연맹의 기관지였던 잡지 <센키(戦旗)>에 5월부터 6월까지 연재 된 소설이다.

1929년은 세계 대 공황으로 인해 수입선이 차단되어 식량과 물자 조달의 경로가 막혀 버리자 일본의 해운업계는  소비에트령 캄차카 영해를 침범해 게를 잡고 배 위에서 가공해 통조림으로 만들었다.

이 시기에 게를 잡는데 동원된 이들은 조선과 타이완에서 강제로 일본군에 의해 잡혀 온 남자들로 10대 부터 40대까지 어디에서 무엇을 하러 가는지 모른 채 일본군에게 끌려가서 게 가공선에서  혹사당하고 학대당했다.

또렷한 개성이 드러나는 주인공이 없는 고바야시 다키지의 <게 가공선>에는 악덕한 감독관 아사가와가 게 가공선에서 임금을 거의 주지 않고 노동자들을 죽음에 이를 정도로 혹사 시킨다.

가혹한 노동으로 노동자들이 죽기 시작하자 오로지 먹고 살기 위해 겨우 생명 부지를 했던 노동자들이 서로 연대 해서 투쟁하기 시작한다.

1929년 이 작품이 일본 사회에 출간 되자 마자 고용인에게 저임금에 착취 당했던 노동자들이 교과서처럼 읽기 시작하고  노동 연맹단체에서는 성경책 처럼 이 책의 내용을 투쟁 현장에서 인용하자 일본 정부는 암암리에 작가를 납치할 계획을 세운다.

신변의 위협을 느낀 작가는 지하로 숨어 버렸지만 동료의 밀고로 1933년 경찰에 체포되어 취조 당하던 중에 모진 고문으로 숨을 거둔다.

“어이, 지옥으로 가는 거야!” 


​ⓒ 시라카바문학관 다키지 라이브러리 고바야시 다키지의 시체를 둘러싸고 앉은 동지들

2008년 5월에서 7월까지 50만부를 돌파한 <게 가공선>의 독자층은 10대 부터 40대들로 기업들의 대규모 구조 조정이 시작되었던 시기와 맞물리고 동시에 묻지마 살인마들이 도심 곳곳에서 출몰 했다.

출판 대국 일본에서 단 몇 달 만에 오래전에 출간된 작품이 몇 십만부를 판매했던 적이 없었다.

<게 가공선>의 판매 열기가 활활 타오르자 일본 언론에서 '격차사회', '노동빈곤층(working poor)', '취업빙하기 세대'라는 신조어를 쏟아 냈다.

하지만 정작 일본 사회에서는 무고한 어린이나 여성을 대상으로 한 잔혹한 범죄가 잇따라 일어나면서 온 나라가 공포에 휩싸여 있었다.

범죄 현장에서 붙잡힌 범죄자들의 입에서 모두 입을 맞춘 듯 거의 비슷한 자백이 쏟아져 나왔다.

“이유 없이 누군가 죽이고 싶은 생각이 들어 인근 마트에서 부엌칼을 구입했다. 처음엔 초등학교 수위를 죽이려고 따라갔는데, 그 사람과 눈이 마주쳐서 포기하고 근처를 지나던 여교사 뒤를 쫓아 갔다. 강하게 저항 하며 소리를 쳐서 도망치는 여자 아이를 발견했다. 우발적으로 칼을 휘둘렀다."

2008년 부터 일본에서 발생한 묻지마 범죄의 가해자들은 주변의 평범한 이웃들이거나 학교 교사. 학원 강사들이였다.

어린 시절 이지메와 가족 불화, 학교 폭력 그리고 고용 노동 시장의 불안이 가중 되자 이에 따른 분노와 울분이 나와 전혀 무관한 이들의 생명을 위협하고 헤치는 사건으로 이어졌다.

무차별 살상 범죄를 일본에서는 도리마(通り魔·거리의 악마) 범죄라 부른다.

일본은 1980년대 부터 발생하기 시작한 도리마 범죄 사건에 대한  통계를 내고   백서를  통해 이 범죄를 새롭게 정의 한다.

도리마 범죄는 가장 먼저 사람이 많은 공공장소에서 범행이 일어나고 범행 동기가 모호하다.

 피해자와 어떤 연관이 없는  불특정인이고  흉기를 사용 해서 위해를 가한다.

한국의 묻지마 범죄는 2000년 부터 시작 되었지만 정신 병력과 초범이라는 이유로 심신미약 판정을 받아 10년이 채 안되는 형벌이 내려 졌다. 2004년  연쇄 살인을 저지른  유영철 살인마를 계기로 이런 유형의 범죄에 대해서 '묻지마 범죄'라 명명했다.

우울증 병력을 가진 교사에 의해 대전의 한 초등학교 아이가  세상을 떠났다.

조현병 증세로  평소에도 칼을 품고 학교에 출근 했던 여 교사는 병가 휴직서를 냈지만 20일만에 복직했고 잘 지냈느냐는 동료 교사 말에 팔을 꺾고 헤드락을 하며 위협을 가했다.

동료 교사들이   교육청에 도움을 요청했지만  교육청에서는  학교 측이 알아서 하라고 지시만 했고 학교측은 그 교사에게 담임 자리 대신 돌봄 업무를 주었다.

아이를 살해한 여교사는 범행 후 아이를 애타게 찾아 헤매는 가족을 한 차례 맞닥뜨렸지만 아이 행방을 모른다고 거짓말을 하고 선 범행 장소에 사람들이 들어오지 못하도록 출입문을 잠구었다.

그리고 자해를 가해서 병실에 입원 한 상태에서 경찰에게 이렇게 진술했다. 

“돌봄 교실에서 학생들이 수업을 마치고 갈 때 어떤 아이든 상관없었다. 같이 죽을 생각으로 맨 마지막에 가는 아이에게 책을 준다고 시청각실로 들어오게 해 살해했다” 

범죄자의 얼굴과 신상은 공개 되지 않았고 교사 단체들과 교육청은 애도만 할 뿐 현황 조사를 하겠다는 말만 반복하고 있다. 

 교사 신규 채용 시 신체검사에서 정신질환 검사 결과를 제출하는 절차가 없는 교육 제도 아래서 학교 교육 현장에서는 정신질환자를 거를 시스템도 없다.

질병휴직은 청원휴직으로, 휴직 사유가 소멸하면 30일 이내 즉시 복직하게 돼 있고 매번 심의 위원회를 열어 다툰다면 인권 침해 소지가 있다는 말 같지 않은 변명을 읊어 대고 있다.

범죄자의 신상 조차 제대로 공개 하지 않고 범죄자 인권을 우대 하고 있는 한국 형벌 제도에서   흉기 휴대 처벌 조항조차도  미비하다. 

현재 경범죄처벌법 3조 2항에 이렇게 규정 되어 있다.

 ‘칼·쇠몽둥이·쇠톱 등 사람의 생명 또는 신체에 중대한 위해를 끼치거나 집이나 그 밖의 건조물에 침입하는 데에 사용될 수 있는 연장이나 기구를 정당한 이유 없이 숨겨서 지니고 다니는 사람은 10만원 이하의 벌금, 구류 또는 과료(科料)의 형으로 처벌한다’

이와 달리 한국 보다 더 끔찍한 사회 범죄를 먼저 경험한 일본은 범죄 유형을 세분화 시켜 놓고 총포도검법을 개정해서 2009년부터 칼날 길이가 5.5cm 이상인 나이프 등의 양날형 검 소지를 금지하고  차량 침입 방지 매뉴얼까지 만들었다.

대규모 행사가 열릴 때는 행사장 주위에 차벽을 쌓도록 했고 칼을 소지 한 자들은 어린이와 유아들이 집단으로 모여 있는 장소에 출입 할 수 없다.

  대검찰청에서  2006년 발간한 <범죄분석>이라는 통계집에 따르면 1997년 부터 2007년 까지  무고한 시민을 대상으로 우발적ㆍ현실불만 살인사건이 매년 10퍼센트씩 상승해서  약 십 년 동안 발생한 묻지마 살인 사건이 전체 범죄에서 50퍼센트를 차지 했다.

이 시기에 검거되어 형벌을 받은 살인마 998명 중에서 20년 이상 형기를 채운 범좌자들은 열 명이 채 안된다.

대부분 술에 만취해서 기억이 나지 않음/ 조현병을 앓았음/정신병력으로 사회 생활을 하지 못함 이라는 이유로 감형을 받아 현재 우리 주변에서 살아 숨 쉬고 있다.


현재 ‘묻지마 범죄’를 저지르는 사람들은 여러  경제적 사회적 이유 등으로 불만을 품고 그 불만을 자신과 무관한  ‘불특정인’에게 터트리며 범죄를 통해  자신의 억울함이나 분노를 표출하고 있다.

 소중한 생명을  잃은 피해자의 얼굴은 공개 되고  가해자에게 얼굴과 신상 공개 여부를 친절하게 묻는 대한민국의 법과 정의는 세계 최빈국과 동등한 지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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