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만난 데미언 허스트 (무선) - 현대미술계 악동과의 대면 인터뷰
김성희 지음 / 마로니에북스 / 202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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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6년 영국 런던 그룹 전시회장에    온갖 잡동사니를 조각 조각 붙여낸 대형 작품이 등장했다.

텔레비전, 녹음기, 진공청소기 등 첨단 가전제품과 햄 통조림 등의 사진을 짜깁기해 채운 거실에 싸구려 잡지 광고에서 가위질한   근육질 남자와 가슴 풍만한 여자의 알몸 이미지로 들어찬 이 작품의 제목은 <무엇이 현대의 가정을 이다지도 색다르고 매혹적으로 만드는가?>

당시 전 세계 예술계를 지배하고 있던  난해하면서 요란한 추상그림을 비웃기라도 하듯  내 걸린 이 작품은 물질 만능 주의 시대에 범신론적인 존재인 소비재 상품을 예술의 선반 위에 올려 놓았고 수 년 후 전 세계 예술계를 강타하게 된다.

전후 경제번영기를 맞아 삶의 단면이나 실제 사물에 대한 묘사를 금기시하고 순수 추상만을 고집한 모더니즘 미술 시장에서 리처드 해밀턴의 <무엇이 현대의 가정을 이다지도 색다르고 매혹적으로 만드는가?>는 1960년대 전 세계 예술계를 강타한 팝아트의 선언문이 되었다.

1960년대 팝아트의 태동은 대량으로 생산된 상품과 텔레비전이라는 시각적 매체에서 퍼져 나간 대중 문화의 폭발력에서 분출 되면서 미디어가 끊임없이 쏟아내는 이미지들이 예술 시장에 쏟아져 나왔다.

팝아트의 선언문 같은 작품이 가장 먼저 내걸렸던 곳은 영국 이였지만 팝아트가 꽃을 피운 곳은 대서양 건너 미국이였다.

광고계에서 부터 경력을 쌓기 시작했던 앤디 워홀, 로이 리히텐슈타인, 클래스 올덴버그 모두 대중들이 소비하는  상품을 오브제로 삼고작품을 전시장에서 내걸었지만 이들의 예술적 뉘앙스는 서로 달랐다.

가장 먼저 대중 매체의 만화와 광고 이미지를 차용한 리히텐슈타인과 도저히 팔 수 없을 정도로 추하게 변형된 물건을 상품이라고 전시한 올덴버그와 달리 앤디 워홀은 슈퍼마켓에 물건을 진열 하듯 상품을 전시장 중심에 등장 시켰다.

1963년 미국 로스앤젤레스의 페루스 갤러리 등장한  워홀의 다섯 점의 캠벨 수프 그림은 오랫동안 관행처럼 벽에 걸린 그림이 아닌 선반 위에 캠벨 수프 깡통이 올려졌다.

악평이 쏟아지더니 캠밸 수프가 100달러 가격에 팔리고 있다는 것에 분노한 딜러가 진짜  캠벨 수프를 29센트에 판매 하겠다고 나서면서 대중들과 미디어 관심이 쏟아졌다.

온 세상이 워홀의 캠벨 수프 깡통으로 들썩이는 동안 워홀은 서른 두 점의 캠벨 수프 그림을 완성했고 이 그림은 대형 창고형 매장 진열 방식처럼 여덟 점씩 4열로 전시 됐다.

워홀이 상품을 작품의 기본 프로토콜로 사용하면서 미술계는 수레를 끌고 슈퍼마켓으로 들어가 온갖 상품을 담아 전시장에 내놓기 시작했다.

앤디 워홀은 자본주의 사회의 무한한 상품 생산이 가져온 시대를 "코카콜라 민주주의 "라고  정의 했다.

한 때 소수만 누렸던 상품들이 대량으로 생산 되면서 여왕도 대통령도  거리의 노숙자도 마실 수 있게 되었듯이 상품이 예술이 되는 순간 그것은 필연적으로 그 시대를 살아가는 다양한 인간들의 소비면모를 드러내는 매개체가 되었다.

1990년대 신자유주의 체제하에서 급속하게 진행되었던 세계화 물결 속에 등장한 영국의 젊은 작가 군단 yBa(young British artist)이   '죽음과 몸'이라는 담론으로 세계 미술 시장을 강타하기 시작했다.

동물의 사체를 미술관에 전시 해 놓고 삶의 무상함과 덧없음, 생의 한복판에서도 죽음을 기억하라는 Memento Mori라는 메시지를 담은 바니타스 회화의 후계자로 자처한 데미언 허스트는 1995년 영국 현대미술의 최고 영예인 터너상 수상하는 영광스러운 자리에서 그는 술에 취해 수상 소감조차 제대로 말하지 못했다

그는 “당시 받은 2만파운드의 상금조차 어디로 사라졌는지 기억나지 않는다”고 회상 할 정도로  술을 음미하는 수준의 애주가가 아니였다. 

젊은 시절 부터 오로지 취하기 위해 술을 섞어 마셨던 데미언 허스트는 한 때 코카인까지 곁들여서 음주를 즐겼던  방탕한 중독자였다.

1998년 데미언 허스트는 영국 테이트 모던에서 아스피린 모양의 의자와 약장, 약국을 테마로 한 독특한 벽지를 바른 전시장에 프라다가 디자인한 수술복을 입고 볼타롤 지연제, 러시아산 퀄루드, 마취제 화합물 같은 파격적인 이름의 시그니처 칵테일을 서빙하는 직원들을 등장 시켰다.

전시장에  ‘파머시(Pharmacy)’라는 레스토랑을 열은 허스트는 이듬해 칼튼 런던 레스토랑 어워드에서 최고의 디자인 레스토랑 상을 받았지만, ‘약국’이라는 이름을 사용했다는 이유로 영국 왕립 약학회와 갈등을 빚었다.

그가 방탕한 중독자 생활과 결별하고 예술에 집중 하게 된 계기는 2002년에 찾아왔다. 

전설적인 펑크 록 밴드 더 클래시의 조 스트러머, 예술가 마이클 주프와 밤샘 작업을 하던 어느 이른 아침  담배를 찾던 그의 시야에 일곱 갑의 빈 말버러 라이트가 들어왔다.

 140개비 모두 자신이 피운 담배였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은 그는 그길로 금연을 결심했고, 담배를 피우고 싶게 만드는 술까지 함께 끊어내며 방탕한 과거와 작별했다.

2016년 그는 ‘뉴포트 스트리트 갤러리’에 허스트는  정통 영국 요리와 함께 보드카 브랜드 블랙 카우(Black Cow)를 활용한 칵테일을 제공했지만 대중과 평단의 반응은 싸늘했다.

1986년 앤디 워홀을 시작으로 키스 해링, 에드 루샤, 루이즈 부르주아 등의 거장들과 협업 하면서  공격적이고 감각적인 마케팅으로 성장한 스웨덴 보드카 브랜드 ‘앱솔루트'는 데미언 허스트의 ‘살아 있는 자의 마음속에 있는 죽음의 물리적 불가능성’을 보드카의 투명한 액체 병에 담았다.

 ‘영원히 썩지 않게 보존한다’는 포름알데히드의 속성은 앱솔루트의 시그니처 보틀 브랜드의 영속성을 드러내는 헌사가 되어 보드카 시장에서  소비량을 치솟게 만들었다.

알콜과 약물 중독에서 빠져 나온 허스트는 자신의  스폿 페인팅(Spot Painting)을 독일의 맥주 브랜드 벡스의 한정판 라벨에 붙였다.

벡스의 이 한정판 보틀은 당시 큰 반향을 일으켰고, 현재는 영국 빅토리아 앤드 앨버트 뮤지엄(V&A)에도 소장돼 그 예술적 가치를 인정받고 있다.

 작가의 고유한 손길 대신 기계적인 정확성을 선택한  앤디 워홀처럼  데미언 허스튼 기술보다 개념을 판매하며 인간의 고통을 치유하려는 현대 의학의 차가운 시스템을 상징하듯  작품마다 LSD, 비소, 모르핀 같은 화합물 및 약품명을 붙이고 있다.

 모든 것이 상품처럼  팔리는 자본주의 시대에 데미언 허스트는 예술을 캔버스 밖으로 꺼내 술병에 담았고, 레스토랑으로도 만들어 우리 삶의 영역에 의도적으로 침투해 왔다.

어쩌면 손 끝 터치 하나로 빠르게 주문하고 대량으로 폐기되고 있는 현 시대에  1972년 듀안 핸슨의 작품 <슈퍼 마켓 구매자>에 등장하는 여성처럼 쇼핑카트에  인스턴트 식료품을 산더미처럼 쌓고 힘겹게 끌고 가는 모습이 오히려 더 예술적 가치가 더 클지 모르고 이에 대한   평가는 아마도 전시장을 찾은 관람자의 몫으로 남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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벨 에포크, 아름다운 시대 - 모네와 마네, 졸라, 에펠, 드뷔시와 친구들 1871-1900 예술가들의 파리 1
메리 매콜리프 지음, 최애리 옮김 / 현암사 / 202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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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89년 7월, 성난 파리 시민들이 절대왕권의 첨탑 바스티유 감옥을 습격하면서 절대왕정이 무너졌다.

1854년 혁명과 전쟁의 어둡고 긴 터널을 지나 산업혁명으로 도시 근대화 작업에 착수한 파리는  17세기 런던시 재정비에 영감을 얻은 오스만 남작이 17년 동안 진행했던 도시 재정비 사업으로  도로가 정비되었고 각종 도시 기반 시설들이 구축되면서 새로운 도시로 탈바꿈 했다.

1875년 파리에 대리석 장식과 금박 장식의 새로운 오페라 하우스가 문을 열었다.

건축가 샤를 가르니에의 이름을 따서 지은 가르니에 오페라 하우스에 부유한 특권층이 몰려 갔다. 

온 몸을 완전히 가리는 긴 드레스를 차려 입었던 귀족 여성들과 달리 무대 위의 무용수들은 팔 다리를 드러내고 얇은 재질에 의상을 걸친채 춤을 추니 이들을 보기 위한 남성들이 발레 공연장을 찾았다.

정기권을 구입한 남성 관객들은 공연 시작 전이나 막간 또는 휴게실을 자유롭게 드나들며 무용수들에게 은밀한 시선을 보냈다.

이들 틈에 화가 드가도 끼여 있었다.

시력이 좋지 않았던 드가는 공연이 시작 되기 전 무대 뒤와 계단, 관람석에서 무용수들의 모든 움직임을 빠른 손놀림의 파스텔 스케치로 그렸고 늦은 저녁 작업실에서 마무리 작업을 했다.

당시 발레단에 연습생으로 들어온 10대 어린 소녀들은 주로 노동 계층에서 선발 되었는데 일곱살 또는 여덟살 때 부터 열악한 환경에서 혹독한 훈련을 받았다.

가난한 가정 환경에 부모로 부터 금전적 도움을 받을 수 없었던 발레단의 소녀들은 온 종일 공연 연습에 몰두 해야 했다.

3년 동안 드가의 작업실에서 화가의 뮤즈였던 열 네 살 마리는  1865년 파리 9구역에서 태어났다.

당시 파리 9구역은 화려하면서 웅장한 건축물이 들어서기 훨씬 전 부터 각지에서 모여든 일용직 노동자들과 가난한 예술가들, 사기꾼, 협작꾼, 부랑아들 그리고 매춘부들이   토끼 굴보다 더 비좁고 열악한 주거 환경에서 한 공간에서 붙어 살았다.

드가의 뮤즈였던 마리의 부모는 벨기에계 이민자로 아버지는 재봉사였고 어머니는 세탁부였다.

19세기 유럽  사회에서 여성과 아동을 보호하는 어떤 법적 장치나 도덕적 관념조차 없던 시절이였다.

가난하고 헐벗은 가정에 아이들은 공장과 농촌, 부유한 가정의 하녀, 카페와 술집에 팔려 갔던 그 시절에 마리의 엄마는 남편 사망 후 자신의 세 딸을 모두 발레단에 보내 버렸다.

 1869년 파리 9구역에 개장한 음악홀 폴리베르제르에 술과 음식을 즐기며 공연을 보는 '카페 콩세르(Café-concert)' 들어서자 이곳에 부르주아, 예술가, 성매매 여성들이 몰려 들기 시작했다.

1881년 어느 날 밤, 파리 폴리 베르제르의 바에 병마에 시달리고 있던 화가 에두아르 마네(Edouard Manet)가 손님을 응대 하고 있는 여자 바텐더 쉬종(suzon)을 바라보고 있었다.

마네는 그녀와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폴리 베르제르의 바의 독특한 내부 인테리어를 유심히 관찰했다.

2층으로 나눠진 공간에 다채로운 빛을 뿜어내는 조명 빛 아래로 다양한 계층의 사람들이 왁자지껄하게 떠드는 와중에도 바텐더 쉬종은 시종일관 냉담한 표정으로 손님이 요청에 쉼없이 응대하는 모습을 가만히 지켜 보던 마네는 작은 스케치 북에 쉬종과 주변 배경을 빠르게 스케치 하기 시작했다.

건강 상태가 좋지 않았던 마네는 부산스럽고 떠들썩한 분위기에서 작업을 할 수 없어서 쉬종을 작업실로 초대 했다.

쉬종은 근무가 없는 날에 마네의 작업실로 찾아가 모델을 섰고 마네는 건강이 악화되고 있는 상황 속에서도  현장에서 작업했던 스케치를 토대로 작품 완성에 심혈을 기울였다.

 마네의 주변 사람들은 폴리 베르제르의 바 그림을 처음 보는 순간 혼란 스러워 했고 비평가들은  원근법을 알지도 못하고 쓰지도 못한다는 비난을 퍼부었다.

1863년  ‘올랭피아’로 명암이나 원근을 최소화하고, 평면적인 색과 대담한 구도를 통해 회화를 현실의 창이 아닌, '회화 그 자체'로 바라보게 했던 마네는 전 생애에 걸쳐서 프랑스 예술계를 뒤 흔들며 숱한 화제와 혹평에 시달려 왔다.

1881년 제6회 파리 인상주의 전시에서 《열네 살의 어린 무용수(La petite danseuse de quatorze ans)가 등장 했을 때 평론가들은 열네 살의 어린 무용수(La petite danseuse de quatorze ans)조각상을 향해 “원숭이가 있어야 할 곳은 (전시장이 아닌)동물원이지 않은가.” 라며 드가를 향해 신랄한 악평을 쏟아 부었다. 

마네와 드가는 정통 화단의 주류 세력과 비평가들로 부터 혹독한 비난을 받으면서도 자신의 작품을 살롱에 꾸준히 출품하며 누구보다 과감하게 기존 예술의 규범을 깨뜨려나갔다.

역사는 마네와 드가가 살았던 이 시기를 낭만과 영광의 시대, 벨 에포크(belle poque)라 부르며 두 거장이 남긴 그림의 가치는 현 시대 인간이 도저히 다다를 수 없는 신의 경지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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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의 모든 의미 - 삶의 의미에 대한 101가지 시선들 Meaning of Life 시리즈 14
존 메설리 지음, 전대호 옮김 / 필로소픽 / 202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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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끼 식사를 하기 위해 찾아간 편의점에 유연한 팔 놀림으로 주문한 피자를 오븐에 직접 구워주는 로봇이 있다.

키오스크에 주문을 하면 로봇은 선반에 토핑된 피자를 얹고 오븐에 밀어 넣어 굽고 익으면 꺼내서 잘라준다.

직원에게 직접 주문 요청을 하지 않으니 대기 줄도 없고 계산대에서 시간을 소비하지 않고 5분 30초 만에 완성된 피자를 받고 나서 바리스타 로봇이 만들어준 라떼를 받아 마신다.

바쁜 현대인들에게 하루의 에너지를 충당하며 시간을 허비 하지 않게 하는 로봇의 서비스는 매장에서 뜻하지 않는 불쾌한 서비스에 기분이 상하지 않으니 원하는 것 만큼 필요한 서비스를 제공하는 로봇의 서빙과 응대에 대한 만족도가 나날이 높아져 가고 있다.

마음의 안정을 찾기 위해 가까운 사찰에 찾아가 법회에 참석하니 불경을 읊는 로봇 스님이 법문을 하고 있다.

로봇 스님과 마주 하니 낯선 신도들과 인사를 나누지 않아도 되고 뜻하지 않게 불사를 하라는 보이지 않는 부담감도 없다. 

로봇 스님의 기도를 듣고 마음에 안정을 찾아 집으로 돌아오니 로봇 청소기가 집안 곳곳을 청소 하고 있다.

로봇 청소기가 청소하고  식기 세척기가 그릇들을 세척과 살균 작업을 하고 거실 한 구석에서 스팀 옷장이 작동 하는 동안 뇌운동을 위해 바둑 판을 펼쳐 놓고 로봇 손과 바둑 한 판을 벌인다.

손 끝으로 터치 하면 원하는 것을 작동 시킬 수 있고 세상의 모든 것과 연결 되는 최첨단 세상의 문이 열렸다.

바쁜 현대인들에게 이보다 더 편리하고 합리적인 가격으로 하루의 에너지를 충당하며 시간을 허비 하지 않게 만드는 최첨단 시스템은 인공지능과 공존할 인류를 위해 고도로 설계된 서비스다.

인공지능과 공존하는 시대가 마차와 자동차가 하나의 도로에서 달리며  등유와 전기 불로 세상을 밝혔던 시대 보다 더 나은 세상이 될 수 있을지 알 수 없다.

매일 같은 시간에 일어나 똑같은 열차를 타고 다녀도 하루의 운세의 기운은 어제와 다르듯 세월의 흐름과 더불어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에  얼마나 많은 변화를 겪었는지 그저 가늠할 뿐이다. 

눈 앞에서 전쟁이 터지고 국가의 지도자가 바뀌고 조직의 수장이 바뀐다 해도 강자만이 살아 남는 세상에서 미미한 존재들은 그저 묵묵히 주어진 운명에 순응하며 살아 갈 뿐이다.

우주에서 인생의 의미가 찾아지지 않는 이유는 우주는 그 자체로 하나의 개념일 뿐만 아니라, 동시에 특별한 대상으로 지구에 살고 있는 인간의  관점에서 거대한 우주는 그저 저 하늘에 반짝이는 별 정도로 밖에 느껴지지 않는다.

따라서 현재 지구 안에서 일어나고 있는 모든 일들과 현상들은 저 머나먼 우주에서 바라 볼 때는 그저 먼지처럼 보일 것이다.

우리가 살아가는 세계는 그저 의미장에서 또 다른 의미장으로 끊임없이 넘어가는 변환이자 융합일 뿐   세계는 어떤 대상도 사물로도 정의 할 수 없는  이 세상 모두의 영역이다.

 인생의 의미를 묻는 질문에 어느 누구도 명확하게 대답 할 수 없듯이 삼라 만상에는  우리가 알아내고 바꿀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 알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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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만난 데미언 허스트 (양장) - 현대미술계 악동과의 대면 인터뷰
김성희 지음 / 마로니에북스 / 202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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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8년 데미언 허스트는  <프리즈(Freeze)> 전시에서   영 브리티시 아티스트(Young British Artist, yBA) 상을 수상한 이래로  다이아몬드가 박힌 해골(For the Love of God), , 포름알데히드용액에 박제한 상어(The Physical Impossibility of Death in the Mind of Someone Living) 등 파격적인 개념미술로 세상을  끊임없이 놀라게 하고, 불쾌하게 만들기도 하며, 충격을 주었습니다.


1986년 지구상에 존재하는 약의 컬러를 원형으로 표현한 회화 '스팟 페인팅 시리즈(Spot Painting)’를 시작으로 데미언 허스트는    ‘비주얼 캔디(Visual Candy)’ ‘베일 페인팅(Veil Painting)’ 작품을 연이어 펼쳐 보이며 본격적으로  19세기 후반부터 20세기에 등장한 예술사조를 깊이 탐구하기 시작했습니다.

2019년 코로나 팬데믹으로 여러 전시 일정이 취소되자 데미언 허스트는 두툼한 브러쉬 스트로크를 들고 높이 5.5미터, 너비 7.3미터(18피트 x 24피트)에 물감을 찍어 나갔습니다.

자극적인 오브제로 섬뜩 할 정도로 강렬한 인상을 남기며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도대체 예술이란 무엇이지” 라는 원론적 질문을 하게 만드는 데미언 허스트는   대중과 평단의  비판과 찬사를 몰고 다녔지만   체리 블러썸 시리즈에서  전통 풍경화 양식을 차용해 동시대 화풍으로 재 해석  했습니다.


데미언 허스트는 일정한 시기에만 피어올랐다가 이내 흩어지는 벚꽃을 그리기 위해   수많은 회화적 실험을 하기 시작 했습니다.

가장 먼저, 작은 점들을 찍어 형태와 빛을 만드는 점묘법(Pointillism)으로 체계적이고 과학적으로 계산된 질서와 구조를 중시 했던 조르주 쇠라의 기법을 탐구한 데미언 허스트는 후기 인상파의 색채의 마술사로 불리는  피에르 보나르의 화풍도 참고해서    화려하고 강렬한 색채 대비를 시키며 작가의 본능적인 움직임으로  물감을 흘리거나 튀기는 기법을 사용한 액션 페이팅 요소를 체리 브러썸 작품에 결합 시켰습니다.

영원히 피어 있지 않기에  짧지만 찬란한 아름다움을 남기는 벚꽃은  데미언 허스트가 평생 추구했던 아름다움, 삶, 그리고 죽음을 주제로 한 작품과 긴밀하게 연결 되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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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nine 2026-05-16 19:2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 전시 보고 왔는데요, 새삼 예술이란 무엇일까 생각해보게 되었어요.
그런데 그런 생각 이전에 눈물부터 차오르더라고요.
Scott님은, 예술이 뭐라고 생각하시나요.
‘아무거나, 무엇이나‘. 저는 결국 이렇게 생각하게 되었는데요. 단, 다수의 공감을 얻을 수 있다면 이라는 조건이 붙는 것 같아요. 참 허접한 생각이지요?

scott 2026-05-17 14:59   좋아요 0 | URL
나인님 댓글을 읽고 나서 새삼 예술이 무엇인지라는 화두를 붙들고 있는데 자본주의 시대에 예술은 이미 앞선 창작물을 시대에 맞게 재 해석하고 편집하고 변주 하는 것이라 생각 합니다. 시대와 후원자 그리고 이런 저런 조건에 맞물리면 이름을 날리고 부를 축적 할 수 있는 셀럽이 될 수 있죠. ^^
 
1929 - 번영과 낙관은 어떻게 파국으로 치달았는가
앤드루 로스 소킨 지음, 조용빈 옮김, 신현호 감수 / 웅진지식하우스 / 202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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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1년 43세에  내셔널 시티 은행 수장이 된  찰스 미첼은  금융업은 지나치게 신비하게 포장됐다며 평범한 대중을 투자자로 끌어들이는 새로운 비전을 공표했다.

미래 증시 상황을 기이할 정도로 낙관했던 찰스 미첼은   소액 예금자에게 대출을 확대해 주식 투자를 유도하기 시작했다.

 당시 고위험 자산으로 평가되던 전기·가스 등 신산업 기업의 채권과 주식 판매에 내셔널 시티가 안전을 보증한다는 단서를  붙이자  투자자들의 매수세는 금세 불이 붙었다.

자동차, 세탁기, 라디오 같은 신기술도 잇따라 보급되었고 대규모 공장 가동으로 생산직에서 안정적인 월급을 받으며 안정적 생활을 누리기 시작한  중산층들이 지금 사고 나중에 갚는 ‘신용’의 개념으로 물건을 사기 시작했다.

물건을 신용 개념으로 구입하는 재미에 빠진 사람들은 차츰 은 자기 자본 10%만으로 주식을 대거 사들이는 신용거래를 하기 시작했고 이 거래는 미국 전역으로  유행처럼 번졌다.

증시 시장은 기술이 가져올 성장에 대한 기대 속에 활화산처럼 활활 타올랐고 미국인들은 전재산을 들고 주식 시장으로 뛰어들었다.

JP모건의 파트너 토머스 러몬트는 정관계에 뇌물성 주식을 상납하며 금융 규제를 무력화해서 투기 환경을 조성했다.

월가의 트레이더 제시 리버모어는 주가 하락에 베팅해 큰 수익을 올리며  미 전역 스타로 급 부상하자 그를 추종하는 투자자들이 증시 시장에서 소액 주주들의 투자금을 빠른 속도로 잠식하기 시작했다.

1929년 누구나 돈을 빌려서 물건을 대량으로 살 수 있던 황금의 시기에 미국  주식시장은 거품 우려 속에 등락을 반복하다가, 증권사의 계좌 청산과 매도 주문이 이어지며  결국 1929년 10월 24일, 하루 동안 1290만 주가 쏟아지며 패닉 셀링이 발생했다.

1929년 제너럴모터스(GM)사는 여러 경쟁사들과 치열한 경쟁에서 살아 남기 위해 사람들에게 자동차 가격의 10%만 내고 나머지는 은행에서 빌리는 할부 방식으로 자동차를 구매 할 수 있게 만든다.

그동안 미국인들은  엄격한 종교적 신념과 도덕적 규범을 지키며 은행에 신용이나 빚을 지지 않았다. 하지만 가격의 10%만 내고 나머지는 은행에서 빌리는 방식으로 자동차를 사기 시작하면서  사람들은 빚을 내 차를 구매 했고 이런  ‘파이낸싱'으로 인해 일반 서민들이 눈 깜짝 할 사이에 빚더미에 앉게 되었다.

돈을 제때 돌려 받지 못한 은행에 의해 집과 자동차가 압류 당하고 사람들은 거리로 내몰렸고 은행은  “더 많은 사람들이 주식을 살 수 있도록 돈을 빌려줄 수 있겠다.'는 탐욕으로 시장의 돈이 씨가 마를 때 까지 서민들을 쥐어 짰다.


역사의 수레 바퀴는 100년의 시간을 돌아서 2026년 현재 밈코인 같은 일부 암호화폐 상품들이 1929년과 유사한 방식으로 악용되고 있다.

투기꾼들이 암호화폐의 가치를 급등시켰다가 폭락 시키는 방식으로 이익을 취할 때 섣불리 푼돈을 걸고 달려 든 서민들은  2시간 만에 1억7000만 달러의 자산가가 되었다가 다음 날 살고 있는 집이 날아 가버려 삶 전체가 폭망하는 사례가 발생하고 있다.

트럼프 행정부가 미국 내 안팎으로  벌이는  대규모 감세와 관세 전쟁으로 인해  세계 재정 적자가  확대되고 있고 미 행정부의  셧다운이 장기화되면 성장 둔화로 이어져서 미국 내 가계 지출과 정부 소득이 줄어들고 있다. 

예비 선거를 앞두고 있는 트럼프 행정부는 표를 얻기 위해  복지 지출을  늘리게 될 것이고 이는 파월 의장이 금리를 아무리 낮춰도 투자자들은 미국 정부의 부채 상환 능력을 의심해서 장기 금리는 오르고 환율은 거침 없이 치솟는 결과를 낳게 된다.

올해 초 온스당 2800달러였던 금값은 현재 4000 달러를 넘어가고 있다.

원화가치는 하락하고 있는 반면에 미국 달러는 여전히  다른 통화들보다 강하지만, 종이 화폐 자체에 대한 신뢰는 무너지고 있다.

현재 세계 경제 상황이 1929년과 완전히 같지 않다.

당시에는 은행이 무너지면 금융 시스템이 무너졌다. 지금은 비은행 금융기관들이 무너져도 은행 시스템은 살아남을 수 있다. 

그동안 미국 국채는 세계에서 가장 안전한 자산이라고 불렸다. 하지만 지금은 미국의 자산 시장부터  폭락하고 있고 이 폭락은  레버리지 청산을 촉발해서 유동성이 마르게 될 것이고, 소비 전체를 위축 시켜서 결국엔  경제 전체를 무너뜨리는 도미노 현상을 불러 일으키게 된다.


지난 IMF와 다르게 한국의 경제 상황은 튼튼하다고 관료들은 자신하고 있지만 내수 시장이 좁고 수입이 많은 한국은 수출 경쟁력 만이 살 길이지만 미국의 금리 인하에도 장기금리가 상승하고 달러 신뢰가 흔들리는 가운데, 통화정책의 효력이 약화되는 현실에 직면해 있다. 

미국이  이란의 호르무주 해협 봉쇄로 인한 오일 쇼크가 3개월째 이어지고 있지만 현재 한국 경제 상황 지표를 살펴 보면 연일 주가가 오르고 있다.

전 세계적으로 신기술이 세상을 바꿀 거란 낙관론이 퍼지는 시기라  주가의 상승 곡선은 무한으로 치솟을 양상을 보이고 있다.

현재 대학생 부터  평범한 월급쟁이 그리고 용돈을 받는 10대 청소년 까지 거의 모두가 빚을 내서 주식시장에 뛰어들고 있다.

눈 깜짝 할 사이에 보유하고 있는 주식의 숫자 자리수가 하나씩 올라 갈 때 마다 돈뭉치가 넝쿨째 들어올 것 만 같다.


 전 세계  테크 기업들의 질주에 주식시장은 연일 최고점을 경신하고, 빚내서 투자 하는 신용거래융자 잔액이 34조 원을 돌파해 역대 최고치를 찍은 한국의 증시 시장이 앞으로 어떻게 전개될지는 어느 누구도 알 수도 없고  장담할 수도 없다.

1929년 경제 공항이 덮치기 전 미국 월스트리트는 앞서 1907년에도 폭락을 경험했던 교훈으로연방준비제도가 설립됐지만 정책과 규제가 느슨했다.

이를 악용한 부패한 관료와 투기를 조장하는 금융권과 결탁한 정치권은 미래를 내다 보지 않았고 지도자는 위기 앞에 무능했다.

미국이  이란의 호르무주 해협 봉쇄로 인한 오일 쇼크가 3개월째 이어지고 있는 가운데  글로벌 원유 재고량이 위험 수준 아래로 떨어졌다.

만일  전쟁이 6월 말까지 이어진다면 모든 원유 재고가 바닥이 날 것이고 부르는 게 값이 되어서  석유 원자재가 들어가는 모든  소비재 가격이 천정부지로 치솟게 될 것이다.

현재 전 세계는 1929년 대폭락의 경험의 역사는 잊혀졌다. 

단순히 지금은 과거와 다르다는 확신이 반복될 때 같은 위기는 찾아온다.


역사상 가장 유명한 주식 시장 붕괴를 거의 10년 동안 연구한 뉴욕타임스 칼럼니스트이자 CNBC 앵커인 앤드루 로스 소킨의 <1929>의 원제는 Inside the Greatest Crash in Wall Street History – and How It Shattered a Nation- 월스트리트 역사상 최대 붕괴의 내부, 그리고 그것이 어떻게 한 국가를 산산 조각냈는가다.

저자 앤드루 로스 소킨은 인류 역사상 가장 화려했던 황금기이자 처참한 파국의 시대였던 1929년의 미공개 회의록과 사료를 바탕으로 대폭락 전후 52개월간을 재구성해서  내부자들의 기만과 정치권의 무능이 궁극적으로  ‘인간의 탐욕과 오만’이었음을 폭로한다. 

어떤 시스템도 완벽하지 않고, 어떤 시장도 완전히 합리적이지 않고, 어떤 세대도 예외일 수 없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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