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과 평화 1~4 세트 - 전4권 (무선)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레프 톨스토이 지음, 박형규 옮김 / 문학동네 / 201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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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 보세요. 공작, 제노바도 루카도 보나파르트 일가의 여지, 영지나 다름없이 되어 버렸잖아요. 미리 말씀드려두지만, 그래도 전쟁 같은 건 없다고 하시거나 반그리스도의(정말 저는 그자가 반그리스도라고 믿고 있어요)추악하고 무서운 소행을 변화라도 하실 생각이라면 저는 당장 당신과 절교하겠어요. 앙신은 더이상 제 친구도 당신이 늘 입버릇처럼 말씀하시는 제 충실한 노예도 아녜요. 어쨌든 잘 오셨습니다. 잘 오셨어요. 제가 당신을 놀라게 해드린 것 같군요. 자, 앉아서 말씀을 들려주세요.'

-톨스토이의 <전쟁과 평화>중에서 

1805년 7월 ,마리야 페오도로브나 황태후를 가까이 모시면서 이름을 떨치고 있던 여관 안나 파블로브나 셰레르는 자기 집 야회에 맨 먼저 도착한 위세있는 고관 바실리 공작을  세련된 프랑스어로 맞아 들이면서 19세기 초 러시아 상류 사회 사교계들의 모습들이 눈 앞에 펼쳐 진다.

형형색색으로 수 놓은 궁중복을 입은 이들 별 모양의 훈장을 한 쪽 가슴에 주렁 주렁 달고 나타난 이들 온갖 향수 냄새로 진동하는 연회장 한 가운데서 안나 파블로브나는 느긋한 자세로 소파에 앉아 초대 손님을 향해 이렇게 말한다.

'아아, 오스트리아 얘기 따윈 그만하세요.!제가 잘 모르는 건지도 모르지만 오스트리아는 결코 전쟁을 원한 적이 없고, 지금도 원하지 않아요. 그 나라는 우리를 배신하고 있는 거예요. 오직 러시아만이 유럽의 구세주가 되어야 해요. 우리 폐하께서는 당신의 고귀한 사명을 알고 계시고 그 사명에 충실하실 겁니다. 제가 믿는 건 이것뿐이에요.......

우리 러시아인만의 힘으로 의인들이 흘린 피를 반드시 씻어주어야 합니다. 어디 한번 말씀해보세요. 우리는 도대체 누구에게 희망을 걸어야 합니까?....폐하께서 반드시 유럽을 구하실 겁니다.!'


1805년과 1807년, 그리고 1812년 나폴레옹이 모스크바를 점령 했다가 후퇴하는 시기를 담은 이 작품 속 중심인물들은 유산을 위해 싸우고 영적 성취를 갈망하는 백작의 사생아인 피에르 베즈호프 백작, 나폴레옹과의 전쟁에서 가족을 뒤로 하고 싸우는 안드레이 볼콘스키, 그리고 귀족의 아름다운 어린 딸이 등장한다.

 두 남자 모두를 유혹하는 나타샤 로스토프의 삶을 통해 전쟁을 겪으면서  소작농과 귀족, 민간인과 군인 등 다양한 배경을 가진 인물들이 시대, 역사, 문화에 따른 문제와 씨름하는 과정을  생생하게 그려 낸 톨스토이의  『전쟁과 평화』는  제1편에서는 화려한 러시아  사교계를 중심에 두고 곧  닥쳐올 전쟁의 위기를 주요 등장 인물을 통해 생생하게 펼쳐 보인다.

[보나파르트가 지휘하는 10만 프랑스군의 추격을 받고 가는 곳마다 주민들에게 반감을 사고 이제 더는 연합군도 믿을 수 없고 식량이 떨어지고 전쟁의 예기치 않은 조건 아래서 행동할 것을 강요당하던 3만 오천의 러시아군은 쿠투조프의 지휘 아래 도나우 강 하루 쪽으로 서둘러 퇴각했고 적군에게 추격을 당하면 멈춰서 중포 따위를 잃기 않고 후퇴할 수 있을 만큼만 후위전으로 응전하면서 나아갔다. 적군도 인정 할 만큼 러시아군은 용감하고 완강히 싸웠지만 이러한 전투는 결국 후퇴만 더 재촉할 뿐이었다.]


톨스토이가 36세이던 1864년이었다. 톨스토이는 같은 해 1월 20일자 편지에서 누이동생에게 “1812년부터 취재한 장편 소설을 쓰고 있다”고 알렸다. 그러나 이 작품을 탄생케 한 직접적인 동기는 1856년 유형지에서 귀환이 허용된 ‘데카브리스트(12월 당원, 1825년 12월 26일에 무장봉기를 일으킨 러시아 혁명가들을 통틀어 일컫는 말)’들의 활동에 대한 깊은 관심에서 시작되었다.

말하자면 톨스토이는 데카브리스트들의 혁명운동을 중심으로 한 소설을 쓰고자 했고, 스스로 여러 가지 자료를 모아 준비하고 있었다. 그는 데카브리스트의 성격과 세계관을 밝혀내기 위해서는, 어떻든 그보다 한 시대 이전의 러시아 국가가 당면했던 역사적 대사건이며, 당시 청년층에 커다란 영향을 준 나폴레옹 전쟁까지 거슬러 올라갈 필요성을 느끼게 된 것이다.

톨스토이는  한 시대 이전의 러시아 국가가 당면했던 역사적 대사건이였던 나폴레옹 침공이 현세대와 미래 청년 세대들에게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에 <전쟁과 평화>작품의 시작을 1805년으로 정해 놓고 개개인의 회상과 편지를 통해 당시 사회 정세 속에 여러 인물들의 삶이 어떤 변화와 성장 과정을 거쳤는지 상세하게 묘사했다.

『전쟁과 평화』는 인생, 역사, 가족, 그리고 인간이 된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에 대해  전쟁의 공포와 삶의 공허함에 대한 질문 즉 죽음의 공포 속에서 어떤 삶을 선택 할 수 있는지 묻고 있다.

 

전쟁이 발발한 원인은 인간이 알 수 없다. 

전쟁은 숱한 인간 의지가 응집한 힘의 파급으로 특정 원인이나 한 사람의 주도적인 영향만으론 절대 터지지 않는  수많은 우연이 켜켜히 쌓여 일어나는 필연이다.

인류는 전쟁의 한 단면만  볼 뿐 전체를 파악하는 시각을 갖지 못한 채 애국심에 불타 올라 이성을 잃고 광기에 휩싸일 뿐이다.

톨스토이가 애국심에 불탄 러시아 민중이  이성을 잃고 광기에 휩싸인 모습을 전쟁과 평화에서  생생하게 펼쳐 보였듯이 전쟁이 터지면 인간은 미쳐간다. 

전쟁에서 승리도 그리고 완전한 평화도 없다. 

 한쪽의 추가 기울어지지 않게 팽팽하게 당겨야 하는 평화라는 힘의 균형을 가까스로 유지 하고 있을 뿐  세상 곳곳의 화약고는 터지고 있다.

과거를 지배하는 자가 미래를 지배한다. 

현재를 지배하는 자 . 

그는 과거를 지배 한다.

-조지 오웰 <1984>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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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화의 완성, 그때 그 사람 명화의, 그때 그 사람
성수영 지음 / 한경arte / 202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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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미국 뉴욕 미술 시장 경매에 등장한  ‘누워 있는 나부’(Nu Couché)'의 낙찰 가격은  1억7040만달러(약 2585억원). 

전 세계 미술품 경매 역사상 전체 작품 중에서도 최상위권에 해당하는 기록을 세운 모딜리아니는 세상에서 작품 값이 비싼 화가대열에 끼여 있다. 

하지만 실제로 그의 작품을 보면 의문이 든다.

가늘고 긴 얼굴에  동공이 없는 텅 빈 눈 갸우뚱 고개를 숙인 채 생각에 잠긴 듯한 표정을 짖고 있는 모딜리아니 그림에 대체 어떤 특별한 마력이 있는 걸까?

왜 이런 그림이 이토록 높은 평가를 받고 있는지 알기 위해서는 그의 삶을 되짚어봐야 한다.

1884년 이탈리아 토스카나의 항구 도시 리보르노의 부유한 유대인 가문 모딜리아니 저택에 집행관들이 들이 닥친다.

때마침  모딜리아니 어머니는 진통이 시작되고 하인들은 분주하게 산모가 출산하는 방 침대 머리 맡에 온갖 귀중품들을 쌓아 올리고 있었다.

당시 이탈리아에서 "임산부나 산모의 침대 그리고 침대에 있는 것들은 압류 할 수 없다"는 법 규정 덕분에  모딜리아니가 태어나던 그날 재산의 일부를 지킬 수 있었다.

비극적이고 모순적이 상황에서 태어난  모딜리아니에게 모두들 입을 모아 천사처럼 잘생겼다고 말했다.

하지만 축복받은 외모와 달리 태생적으로 병약했던 모딜리아니는 여러 번 죽을 고비를 넘기다 열 네살 고열에 시달리던 중 미술관이 눈 앞에 나오는 환각 증세에 시달린다.

아들이 16살이 되던 해 결핵 진단을 받자 그의 어머니는 아들의 눈에 보였던 미술관을 운명이라 생각하고 로마와 베네치아 피렌체, 나폴리의 유명 미술관을 데리고 다녔다.

 르네상스 시대를 포함한 이탈리아 고전 미술의 정수를 온 몸으로 흡수한 모딜리아니는  1906년 세계 미술의 중심지인 파리로 갔다.

당시 파리 화단은 1905년 야수파가 등장한 이후 야수주의와 입체파로 나눠져서 서로 유사한 그림을 전시장에 쏟아내며 치열하게 경쟁을 벌이고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어떤 유파에도 속하지 않고 독자적인 화풍을 밀고 나가는 젊은 화가들 집단인 파리파가 등장한다.

당시 파리의 젊은 예술가들 사이에서 이국적인 아프리카의 미술과 조각품, 프랑스 식민지령에서 쏟아져 들어 오는 아시아 불교 미술과, 북아프리카 조각들 그리고 골동품 상들이 들여 온 선사시대와 아르카익기의 그리스 미술품에 대한 관심이 고조되고 있었다.

파리에서 미래주의 전시를 준비하는 이탈리아 작가들 그룹에 합류 하지 않았던 모딜리아니는 홀로 고립되어 자신만의 화풍을 발전 시켜 나갔다.

피렌체의 우피치 미술관에서 파르미자니노의 ‘긴 목의 성모’에 매료 되었던 모딜리아니는 목을 비롯한 신체를 의도적으로 늘려서 인물의 우아함을 연출하고 베네치아 동방 정교회 성화(聖畵)의 기울어진 고개의 인물 구도를 정립해 나갔다.

여기에 더해  고귀한 대상을 단순한 형태로 표현하는 방식에 인류 미(美)의 본질이 있다고 생각한 모딜리아니는 

아프리카 가면의 단순하면서 간결한 선과, 캄보디아의 크메르 부처 석상에서는 부드러운 면(面)의 미학을 합쳐 길쭉한 얼굴, 한 줄로 떨어지는 코, 평면 위에 펼쳐진 인물. 이전에도 이후에도 없던 모딜리아니만의 화풍을 완성시킨다.

자신만의 화풍을 정립한 1914년 유렵 전역에 몰아닥친 전쟁의 소용돌이는 모든 것을 파괴 했다.

모딜리아니는 그림을 그릴 수록 영원에 대한 갈구가 깊어졌고 삶의 덧없음이 뼛속까지 파고 들어갔다.

결핵을 숨기기 위해 술을 마시기 시작했던 모딜리아니는 돈이 생기는 데로 술을 마셨고 술을 사기 위해 그림을 그렸다.

그의 그림을 원하는 사람들은 작업실에  모델을 밀어 넣고 술과 마약을 던져 주었다.

가난, 폐병, 마약과 술, 여자에 탐닉하며 스스로를 파멸의 구덩이 속으로 몰아 넣었던  모딜리아니가 그린 작품은 놀랍게도  선이 분명한 얼굴에 꿈꾸는 듯한 표정에 모두 눈동자가 없지만 텅 비어 있지 않다. 

대체 그 눈을 채우고 있는 것은 무엇일까?

모딜리아니는 절친했던 친구이자 화가 카임 수틴에게 이런 말을 남겼다.

"고대의 아름다운 조각처럼 세잔의 인물들은 시선을 지니고 있지 않다네. 하지만 나의 인물들은 시선이 있지. 비록 내가 동공을 그려 넣지는 않았어도 내 인물들은 세상을 볼 수 있다네. 그렇지만 내 인물들의 시선도 세잔의 인물들과 마찬가지로 삶에 대한 무언의 긍정을 표할 뿐 다른 의미는 없네."

모딜리아니의 작품 모두 모델의 이름이 없다. 

신분도 사연도 식별할 수 없고, 옷차림으로도 잘 구분되지 않는다. 

초상화 모델의 사회적 지위를 과시하는 걸 중시했던 이전의 서양 초상화 양식과는 전혀 다르다. 

모딜리아니는 자신의 눈으로 마주 하고 있는 인물들의 동공을 그려 넣지 않았지만  우수에 젖어 있는 얼굴을 가까이 바라보면 그들의 속마음을 듣고 싶은 신비로움을 채워 넣었다.

세상을 떠나기 직전인  1920년까지 모딜리아니는 현재 우리가 아는 작품들을 모두 쏟아 냈고 혼수 상태로 발견되어 사망 한 후 이튿날 그의 약혼녀 잔 에뷔테른은  뱃속의 아이와 함께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당신의 영혼을 알게 되면 그때 눈동자를 그리겠다.” 모딜리아니 

살아생전 술과 마약에 빠져 자멸한 방탕한 인간일지라도 자신만의 예술적 신념으로 그려낸  얼굴들은 그 누구의 얼굴도 아닌 우리 모두의 얼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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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만난 데미언 허스트 (무선) - 현대미술계 악동과의 대면 인터뷰
김성희 지음 / 마로니에북스 / 202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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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6년 영국 런던 그룹 전시회장에    온갖 잡동사니를 조각 조각 붙여낸 대형 작품이 등장했다.

텔레비전, 녹음기, 진공청소기 등 첨단 가전제품과 햄 통조림 등의 사진을 짜깁기해 채운 거실에 싸구려 잡지 광고에서 가위질한   근육질 남자와 가슴 풍만한 여자의 알몸 이미지로 들어찬 이 작품의 제목은 <무엇이 현대의 가정을 이다지도 색다르고 매혹적으로 만드는가?>

당시 전 세계 예술계를 지배하고 있던  난해하면서 요란한 추상그림을 비웃기라도 하듯  내 걸린 이 작품은 물질 만능 주의 시대에 범신론적인 존재인 소비재 상품을 예술의 선반 위에 올려 놓았고 수 년 후 전 세계 예술계를 강타하게 된다.

전후 경제번영기를 맞아 삶의 단면이나 실제 사물에 대한 묘사를 금기시하고 순수 추상만을 고집한 모더니즘 미술 시장에서 리처드 해밀턴의 <무엇이 현대의 가정을 이다지도 색다르고 매혹적으로 만드는가?>는 1960년대 전 세계 예술계를 강타한 팝아트의 선언문이 되었다.

1960년대 팝아트의 태동은 대량으로 생산된 상품과 텔레비전이라는 시각적 매체에서 퍼져 나간 대중 문화의 폭발력에서 분출 되면서 미디어가 끊임없이 쏟아내는 이미지들이 예술 시장에 쏟아져 나왔다.

팝아트의 선언문 같은 작품이 가장 먼저 내걸렸던 곳은 영국 이였지만 팝아트가 꽃을 피운 곳은 대서양 건너 미국이였다.

광고계에서 부터 경력을 쌓기 시작했던 앤디 워홀, 로이 리히텐슈타인, 클래스 올덴버그 모두 대중들이 소비하는  상품을 오브제로 삼고작품을 전시장에서 내걸었지만 이들의 예술적 뉘앙스는 서로 달랐다.

가장 먼저 대중 매체의 만화와 광고 이미지를 차용한 리히텐슈타인과 도저히 팔 수 없을 정도로 추하게 변형된 물건을 상품이라고 전시한 올덴버그와 달리 앤디 워홀은 슈퍼마켓에 물건을 진열 하듯 상품을 전시장 중심에 등장 시켰다.

1963년 미국 로스앤젤레스의 페루스 갤러리 등장한  워홀의 다섯 점의 캠벨 수프 그림은 오랫동안 관행처럼 벽에 걸린 그림이 아닌 선반 위에 캠벨 수프 깡통이 올려졌다.

악평이 쏟아지더니 캠밸 수프가 100달러 가격에 팔리고 있다는 것에 분노한 딜러가 진짜  캠벨 수프를 29센트에 판매 하겠다고 나서면서 대중들과 미디어 관심이 쏟아졌다.

온 세상이 워홀의 캠벨 수프 깡통으로 들썩이는 동안 워홀은 서른 두 점의 캠벨 수프 그림을 완성했고 이 그림은 대형 창고형 매장 진열 방식처럼 여덟 점씩 4열로 전시 됐다.

워홀이 상품을 작품의 기본 프로토콜로 사용하면서 미술계는 수레를 끌고 슈퍼마켓으로 들어가 온갖 상품을 담아 전시장에 내놓기 시작했다.

앤디 워홀은 자본주의 사회의 무한한 상품 생산이 가져온 시대를 "코카콜라 민주주의 "라고  정의 했다.

한 때 소수만 누렸던 상품들이 대량으로 생산 되면서 여왕도 대통령도  거리의 노숙자도 마실 수 있게 되었듯이 상품이 예술이 되는 순간 그것은 필연적으로 그 시대를 살아가는 다양한 인간들의 소비면모를 드러내는 매개체가 되었다.

1990년대 신자유주의 체제하에서 급속하게 진행되었던 세계화 물결 속에 등장한 영국의 젊은 작가 군단 yBa(young British artist)이   '죽음과 몸'이라는 담론으로 세계 미술 시장을 강타하기 시작했다.

동물의 사체를 미술관에 전시 해 놓고 삶의 무상함과 덧없음, 생의 한복판에서도 죽음을 기억하라는 Memento Mori라는 메시지를 담은 바니타스 회화의 후계자로 자처한 데미언 허스트는 1995년 영국 현대미술의 최고 영예인 터너상 수상하는 영광스러운 자리에서 그는 술에 취해 수상 소감조차 제대로 말하지 못했다

그는 “당시 받은 2만파운드의 상금조차 어디로 사라졌는지 기억나지 않는다”고 회상 할 정도로  술을 음미하는 수준의 애주가가 아니였다. 

젊은 시절 부터 오로지 취하기 위해 술을 섞어 마셨던 데미언 허스트는 한 때 코카인까지 곁들여서 음주를 즐겼던  방탕한 중독자였다.

1998년 데미언 허스트는 영국 테이트 모던에서 아스피린 모양의 의자와 약장, 약국을 테마로 한 독특한 벽지를 바른 전시장에 프라다가 디자인한 수술복을 입고 볼타롤 지연제, 러시아산 퀄루드, 마취제 화합물 같은 파격적인 이름의 시그니처 칵테일을 서빙하는 직원들을 등장 시켰다.

전시장에  ‘파머시(Pharmacy)’라는 레스토랑을 열은 허스트는 이듬해 칼튼 런던 레스토랑 어워드에서 최고의 디자인 레스토랑 상을 받았지만, ‘약국’이라는 이름을 사용했다는 이유로 영국 왕립 약학회와 갈등을 빚었다.

그가 방탕한 중독자 생활과 결별하고 예술에 집중 하게 된 계기는 2002년에 찾아왔다. 

전설적인 펑크 록 밴드 더 클래시의 조 스트러머, 예술가 마이클 주프와 밤샘 작업을 하던 어느 이른 아침  담배를 찾던 그의 시야에 일곱 갑의 빈 말버러 라이트가 들어왔다.

 140개비 모두 자신이 피운 담배였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은 그는 그길로 금연을 결심했고, 담배를 피우고 싶게 만드는 술까지 함께 끊어내며 방탕한 과거와 작별했다.

2016년 그는 ‘뉴포트 스트리트 갤러리’에 허스트는  정통 영국 요리와 함께 보드카 브랜드 블랙 카우(Black Cow)를 활용한 칵테일을 제공했지만 대중과 평단의 반응은 싸늘했다.

1986년 앤디 워홀을 시작으로 키스 해링, 에드 루샤, 루이즈 부르주아 등의 거장들과 협업 하면서  공격적이고 감각적인 마케팅으로 성장한 스웨덴 보드카 브랜드 ‘앱솔루트'는 데미언 허스트의 ‘살아 있는 자의 마음속에 있는 죽음의 물리적 불가능성’을 보드카의 투명한 액체 병에 담았다.

 ‘영원히 썩지 않게 보존한다’는 포름알데히드의 속성은 앱솔루트의 시그니처 보틀 브랜드의 영속성을 드러내는 헌사가 되어 보드카 시장에서  소비량을 치솟게 만들었다.

알콜과 약물 중독에서 빠져 나온 허스트는 자신의  스폿 페인팅(Spot Painting)을 독일의 맥주 브랜드 벡스의 한정판 라벨에 붙였다.

벡스의 이 한정판 보틀은 당시 큰 반향을 일으켰고, 현재는 영국 빅토리아 앤드 앨버트 뮤지엄(V&A)에도 소장돼 그 예술적 가치를 인정받고 있다.

 작가의 고유한 손길 대신 기계적인 정확성을 선택한  앤디 워홀처럼  데미언 허스튼 기술보다 개념을 판매하며 인간의 고통을 치유하려는 현대 의학의 차가운 시스템을 상징하듯  작품마다 LSD, 비소, 모르핀 같은 화합물 및 약품명을 붙이고 있다.

 모든 것이 상품처럼  팔리는 자본주의 시대에 데미언 허스트는 예술을 캔버스 밖으로 꺼내 술병에 담았고, 레스토랑으로도 만들어 우리 삶의 영역에 의도적으로 침투해 왔다.

어쩌면 손 끝 터치 하나로 빠르게 주문하고 대량으로 폐기되고 있는 현 시대에  1972년 듀안 핸슨의 작품 <슈퍼 마켓 구매자>에 등장하는 여성처럼 쇼핑카트에  인스턴트 식료품을 산더미처럼 쌓고 힘겹게 끌고 가는 모습이 오히려 더 예술적 가치가 더 클지 모르고 이에 대한   평가는 아마도 전시장을 찾은 관람자의 몫으로 남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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벨 에포크, 아름다운 시대 - 모네와 마네, 졸라, 에펠, 드뷔시와 친구들 1871-1900 예술가들의 파리 1
메리 매콜리프 지음, 최애리 옮김 / 현암사 / 202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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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89년 7월, 성난 파리 시민들이 절대왕권의 첨탑 바스티유 감옥을 습격하면서 절대왕정이 무너졌다.

1854년 혁명과 전쟁의 어둡고 긴 터널을 지나 산업혁명으로 도시 근대화 작업에 착수한 파리는  17세기 런던시 재정비에 영감을 얻은 오스만 남작이 17년 동안 진행했던 도시 재정비 사업으로  도로가 정비되었고 각종 도시 기반 시설들이 구축되면서 새로운 도시로 탈바꿈 했다.

1875년 파리에 대리석 장식과 금박 장식의 새로운 오페라 하우스가 문을 열었다.

건축가 샤를 가르니에의 이름을 따서 지은 가르니에 오페라 하우스에 부유한 특권층이 몰려 갔다. 

온 몸을 완전히 가리는 긴 드레스를 차려 입었던 귀족 여성들과 달리 무대 위의 무용수들은 팔 다리를 드러내고 얇은 재질에 의상을 걸친채 춤을 추니 이들을 보기 위한 남성들이 발레 공연장을 찾았다.

정기권을 구입한 남성 관객들은 공연 시작 전이나 막간 또는 휴게실을 자유롭게 드나들며 무용수들에게 은밀한 시선을 보냈다.

이들 틈에 화가 드가도 끼여 있었다.

시력이 좋지 않았던 드가는 공연이 시작 되기 전 무대 뒤와 계단, 관람석에서 무용수들의 모든 움직임을 빠른 손놀림의 파스텔 스케치로 그렸고 늦은 저녁 작업실에서 마무리 작업을 했다.

당시 발레단에 연습생으로 들어온 10대 어린 소녀들은 주로 노동 계층에서 선발 되었는데 일곱살 또는 여덟살 때 부터 열악한 환경에서 혹독한 훈련을 받았다.

가난한 가정 환경에 부모로 부터 금전적 도움을 받을 수 없었던 발레단의 소녀들은 온 종일 공연 연습에 몰두 해야 했다.

3년 동안 드가의 작업실에서 화가의 뮤즈였던 열 네 살 마리는  1865년 파리 9구역에서 태어났다.

당시 파리 9구역은 화려하면서 웅장한 건축물이 들어서기 훨씬 전 부터 각지에서 모여든 일용직 노동자들과 가난한 예술가들, 사기꾼, 협작꾼, 부랑아들 그리고 매춘부들이   토끼 굴보다 더 비좁고 열악한 주거 환경에서 한 공간에서 붙어 살았다.

드가의 뮤즈였던 마리의 부모는 벨기에계 이민자로 아버지는 재봉사였고 어머니는 세탁부였다.

19세기 유럽  사회에서 여성과 아동을 보호하는 어떤 법적 장치나 도덕적 관념조차 없던 시절이였다.

가난하고 헐벗은 가정에 아이들은 공장과 농촌, 부유한 가정의 하녀, 카페와 술집에 팔려 갔던 그 시절에 마리의 엄마는 남편 사망 후 자신의 세 딸을 모두 발레단에 보내 버렸다.

 1869년 파리 9구역에 개장한 음악홀 폴리베르제르에 술과 음식을 즐기며 공연을 보는 '카페 콩세르(Café-concert)' 들어서자 이곳에 부르주아, 예술가, 성매매 여성들이 몰려 들기 시작했다.

1881년 어느 날 밤, 파리 폴리 베르제르의 바에 병마에 시달리고 있던 화가 에두아르 마네(Edouard Manet)가 손님을 응대 하고 있는 여자 바텐더 쉬종(suzon)을 바라보고 있었다.

마네는 그녀와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폴리 베르제르의 바의 독특한 내부 인테리어를 유심히 관찰했다.

2층으로 나눠진 공간에 다채로운 빛을 뿜어내는 조명 빛 아래로 다양한 계층의 사람들이 왁자지껄하게 떠드는 와중에도 바텐더 쉬종은 시종일관 냉담한 표정으로 손님이 요청에 쉼없이 응대하는 모습을 가만히 지켜 보던 마네는 작은 스케치 북에 쉬종과 주변 배경을 빠르게 스케치 하기 시작했다.

건강 상태가 좋지 않았던 마네는 부산스럽고 떠들썩한 분위기에서 작업을 할 수 없어서 쉬종을 작업실로 초대 했다.

쉬종은 근무가 없는 날에 마네의 작업실로 찾아가 모델을 섰고 마네는 건강이 악화되고 있는 상황 속에서도  현장에서 작업했던 스케치를 토대로 작품 완성에 심혈을 기울였다.

 마네의 주변 사람들은 폴리 베르제르의 바 그림을 처음 보는 순간 혼란 스러워 했고 비평가들은  원근법을 알지도 못하고 쓰지도 못한다는 비난을 퍼부었다.

1863년  ‘올랭피아’로 명암이나 원근을 최소화하고, 평면적인 색과 대담한 구도를 통해 회화를 현실의 창이 아닌, '회화 그 자체'로 바라보게 했던 마네는 전 생애에 걸쳐서 프랑스 예술계를 뒤 흔들며 숱한 화제와 혹평에 시달려 왔다.

1881년 제6회 파리 인상주의 전시에서 《열네 살의 어린 무용수(La petite danseuse de quatorze ans)가 등장 했을 때 평론가들은 열네 살의 어린 무용수(La petite danseuse de quatorze ans)조각상을 향해 “원숭이가 있어야 할 곳은 (전시장이 아닌)동물원이지 않은가.” 라며 드가를 향해 신랄한 악평을 쏟아 부었다. 

마네와 드가는 정통 화단의 주류 세력과 비평가들로 부터 혹독한 비난을 받으면서도 자신의 작품을 살롱에 꾸준히 출품하며 누구보다 과감하게 기존 예술의 규범을 깨뜨려나갔다.

역사는 마네와 드가가 살았던 이 시기를 낭만과 영광의 시대, 벨 에포크(belle poque)라 부르며 두 거장이 남긴 그림의 가치는 현 시대 인간이 도저히 다다를 수 없는 신의 경지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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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의 모든 의미 - 삶의 의미에 대한 101가지 시선들 Meaning of Life 시리즈 14
존 메설리 지음, 전대호 옮김 / 필로소픽 / 202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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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끼 식사를 하기 위해 찾아간 편의점에 유연한 팔 놀림으로 주문한 피자를 오븐에 직접 구워주는 로봇이 있다.

키오스크에 주문을 하면 로봇은 선반에 토핑된 피자를 얹고 오븐에 밀어 넣어 굽고 익으면 꺼내서 잘라준다.

직원에게 직접 주문 요청을 하지 않으니 대기 줄도 없고 계산대에서 시간을 소비하지 않고 5분 30초 만에 완성된 피자를 받고 나서 바리스타 로봇이 만들어준 라떼를 받아 마신다.

바쁜 현대인들에게 하루의 에너지를 충당하며 시간을 허비 하지 않게 하는 로봇의 서비스는 매장에서 뜻하지 않는 불쾌한 서비스에 기분이 상하지 않으니 원하는 것 만큼 필요한 서비스를 제공하는 로봇의 서빙과 응대에 대한 만족도가 나날이 높아져 가고 있다.

마음의 안정을 찾기 위해 가까운 사찰에 찾아가 법회에 참석하니 불경을 읊는 로봇 스님이 법문을 하고 있다.

로봇 스님과 마주 하니 낯선 신도들과 인사를 나누지 않아도 되고 뜻하지 않게 불사를 하라는 보이지 않는 부담감도 없다. 

로봇 스님의 기도를 듣고 마음에 안정을 찾아 집으로 돌아오니 로봇 청소기가 집안 곳곳을 청소 하고 있다.

로봇 청소기가 청소하고  식기 세척기가 그릇들을 세척과 살균 작업을 하고 거실 한 구석에서 스팀 옷장이 작동 하는 동안 뇌운동을 위해 바둑 판을 펼쳐 놓고 로봇 손과 바둑 한 판을 벌인다.

손 끝으로 터치 하면 원하는 것을 작동 시킬 수 있고 세상의 모든 것과 연결 되는 최첨단 세상의 문이 열렸다.

바쁜 현대인들에게 이보다 더 편리하고 합리적인 가격으로 하루의 에너지를 충당하며 시간을 허비 하지 않게 만드는 최첨단 시스템은 인공지능과 공존할 인류를 위해 고도로 설계된 서비스다.

인공지능과 공존하는 시대가 마차와 자동차가 하나의 도로에서 달리며  등유와 전기 불로 세상을 밝혔던 시대 보다 더 나은 세상이 될 수 있을지 알 수 없다.

매일 같은 시간에 일어나 똑같은 열차를 타고 다녀도 하루의 운세의 기운은 어제와 다르듯 세월의 흐름과 더불어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에  얼마나 많은 변화를 겪었는지 그저 가늠할 뿐이다. 

눈 앞에서 전쟁이 터지고 국가의 지도자가 바뀌고 조직의 수장이 바뀐다 해도 강자만이 살아 남는 세상에서 미미한 존재들은 그저 묵묵히 주어진 운명에 순응하며 살아 갈 뿐이다.

우주에서 인생의 의미가 찾아지지 않는 이유는 우주는 그 자체로 하나의 개념일 뿐만 아니라, 동시에 특별한 대상으로 지구에 살고 있는 인간의  관점에서 거대한 우주는 그저 저 하늘에 반짝이는 별 정도로 밖에 느껴지지 않는다.

따라서 현재 지구 안에서 일어나고 있는 모든 일들과 현상들은 저 머나먼 우주에서 바라 볼 때는 그저 먼지처럼 보일 것이다.

우리가 살아가는 세계는 그저 의미장에서 또 다른 의미장으로 끊임없이 넘어가는 변환이자 융합일 뿐   세계는 어떤 대상도 사물로도 정의 할 수 없는  이 세상 모두의 영역이다.

 인생의 의미를 묻는 질문에 어느 누구도 명확하게 대답 할 수 없듯이 삼라 만상에는  우리가 알아내고 바꿀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 알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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