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호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홍은주 옮김 / 문학동네 / 202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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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7월 3일 무라카미 하루키의  새 장편 夏帆─The Tale of KAHO─ 출간 자정부터 도쿄 대형 서점에서 오픈런이 벌어지는 등 현지에서 폭발적인 반응을 일으키면서 초판 25만 부 발매된 이후 단 4일 만에 5만 부 추가 증쇄(2쇄)가 결정되었습니다. 

 하루키는  현지 언론 인터뷰를 통해,    앞서 출간한 작품에서  아버지와 아들 서사를 주로 다뤘던 것과 달리 이번에 출간한 새 장편  夏帆─The Tale of KAHO─는 어머니와 딸의 관계, 여성의 시선에 초점을 맞춘 작품이라며 인공지능(AI)이 과거 데이터를 종합해 유추하는 글쓰기와는 달리, 소설은 "허공에서 불쑥 새로운 것을 끌어오는 작업"이라고 강조 하며  개인의 서사가 아닌 가족을 둘러싼 문제를 중심으로 내세운 작품이라고 소개 했습니다.

하루키 장편 사상 최초로  26세 여성 그림책 작가 '가호'를 단독 주인공으로 내세워서 '모녀 관계의 갈등'이면에 비춰진 현실과 비현실의 세계관이 투영된 이번  신작 장편은 일본의 mz세대로 부터  자신의 이야기를 해주는 것 같다는 호평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반면 일본 문학계에서는 77세에 다다른 하루키 필력이 이전에 비해 느슨해 졌고 20대 여성 주인공을 내세워서 독자들의 호기심을 유도한 "모녀 살해"라는 장치가 전체 서사에 매끄럽게 녹아들지 못한채 이야기 속 판타지 설정이나 흐름이 지나치게 현실과 괴리 되어 있거나, 기존 작품들에 비해 억지스럽게 설정했다는  지적을 하고 있습니다.

서로 상반된 평가에도 불구하고 현재 일본 내 누적 발행 부수는 총 30만 부를 돌파하며 하루키의 오랜 팬 뿐만 아니라 그의 작품을 처음 읽는 독자들로 부터 역대 출간 된 하루키의 소설 중에서 신간 <가호>가 가장 쉽고 재미있으며 스릴 넘친다’는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2024년 3월 와세다 대학 국제문학관에서 열린 낭독회 때 하루키는 두 페이지 분량의   짧은 단편 <顔> * 발표 당시 여주인공의 얼굴을 의미 하는 한자 가호로 함  를 행사에서 직접 낭독했습니다. 

2024년 6월 월간 문예지 《신초(新潮)》에 연재 당시 수정을 거쳐 여주인공의 이름 (夏帆)로 발표 했고 그 해   7월 미국 뉴요커의 여름 소설 특집편에 영어 번역본이 실렸습니다.


 2023년 '도시와 그 불확실한 벽'을 발표한지 3년 만에 나온 하루키의 16번째 장편소설 <가호> 夏帆 - The Tale of KAHO 완성본이 출간 될 때까지 저는 소설의 도입부인 제 1장 가호와 모터 사이클의 남자를 읽으면서  하루키가  이 이야기를 어떻게 이끌고 갈지 상상 하며 여러 번 탐독 했습니다.

'여름 하(夏), 돛 범(帆)'을 의미하는 이름의 26살 여성 가호는 이야기 그림책을 쓰고 그리는 작가입니다.

 2월 중순에 태어난 가호의 이름에  여름이라는 의미의 한자가 들어간  이유는 그녀의 아버지가 한여름의 요트 꿈을 사흘 내내  꿨기 때문입니다. 계절과 이름이 일치하지 않는 가호는 기이하게도 태생적으로 자신의 얼굴에 큰 관심을 두지 않는 성인으로 성장 합니다.

그러던 중 스물 여섯 살 생일을 지나 저녁 식사 자리에서 처음 만난 남자에게 '못 생겼다'는 말을 듣자마자 순간 당황하지만 자신의 외모를 지적하는 남자의 무례함에 분개 하거나 충격을 받지 않고 그저 순수한  놀라움에 사로 잡힙니다.

편집자의 소개로 만난 남성과  블라인드 데이트를 하고 난지  두 달이 지났을 무렵 가호는 기나긴 꿈 속에서 기이한 경험을 하고 나서 현실로 돌아와 다음 날 동이 틀때 까지 꿈에서 본 이야기를 전부 떠올려 새 그림책을 완성하게 됩니다.

가호가 완성한 그림책의 이야기는 곤히 잠든 사이 누군가 훔쳐간 자신의 얼굴을  찾으로 가는 이야기 입니다.

얼굴 찾기 여행을 하기 시작하는 가호의 그림책 소녀의 이야기와 현실의 그림책 작가인 가호의 비 현실적인 이야기가 서로 맞물리면서 이야기의 전개는 독특한 캐릭터가 곳곳에 등장하면서 '꿈속인지, 혹은 꿈 같은 것 인지' 수수께끼 같은 입구로 독자들을 이끌고 갑니다.

가호가 처음 맞닥뜨린 꿈속인지, 혹은 꿈 같은 존재는 '말하는 개미핥기 부부'입니다.

' 개미핥기 부인'이 가호에게 도쿄 서쪽 외곽으로 이사를 가야 한다고 말하니 가호는  불가해한 힘에 이끌려 그곳으로 이사를 합니다.

그곳에 새롭게 정착한 가호는  이번엔 '칼 가는 집'으로 가서 '죽은 흰개미를 오일에 절인 병조림'을 밀반입해 달라는 부탁을 받습니다. 가호가 칼 가는 집에 가니, 이번엔 또 느닷없이 개미핥기 '남편'이 등장해 칼 가는 집 주인을 찌르라는 말을 듣게 됩니다.

세상에 존재 하지 않거나 존재하는   개미핥기 부부와 흰개미 여왕, 재규어 같은 동물들이 이야기 곳곳에 등장 하지만 이 소설에서 핵심을 이루는 갈등은 가호와 그의 어머니 사이에서 벌어지지만 모녀 간의 갈등보다  더 흥미로운 것은 가호가 현실에서 겪는 사건들과  그림책에 쓰여지는 광경이 마치 장기판의 말이 움직이듯 입체적으로 펼쳐 집니다.

가호가 쓴 첫번째  그림책의 주인공인  소녀가 자기 얼굴을 찾으러 가는 이야기는 편집자의 소개로 만났던 남자가 대뜸 그녀의 얼굴을 두고 모욕적인 평을 퍼부은 일과 무관하지 않습니다. 

가호의 두 번째 그림책인 개미핥기 부부가 천적인 재규어를 물리치는 과정과  어머니와의 갈등을 겪고 있는  소녀가 감추어진 비밀 출구를 찾는 세번째 작품까지  책을 읽다 보면, 어느 순간 이 책은 단지 '이야기'가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당신은 당신 자신의 세계 속 이야기의 중심에 있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가호> 223p

소설 속에서 가호가 완성한 첫번째 그림책은 독자들로부터 좋은 반응을 얻고 가호 자신의 마음도 치유하게 되는데 그녀는 편집자로 부터 이 책의 아이디어를 어디에서 떠올렸느냐는  질문에 대해 이렇게 답합니다. 

“어딘가 어둡고 깊은 곳에서”

여기 까지 펼쳐진 스토리를 하루키의 광팬들이 읽게 된다면 20대 여성인 가호가 그림책 작가라는 사실을 제외 하면 앞서 출간한 하루키의 대표작 '해변의 카프카'처럼  어느 날 문득 모종의 계기로 인해 일상에서 벗어나 비일상의 세계로 들어가 그곳에서 이런저런 일들을 겪으며 성장하고 깨달음을 얻은 뒤 일상으로 복귀하는 스토리로 귀결 될 것임을 짐작 할 수 있습니다.

 아버지의 예언과 부친 살해를 다룬 '해변의 카프카'가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를 전면에 내세웠다면 여성이 주인공인 '가호'는  아버지에게 부성을  느끼고 아버지를 사이에 두고 어머니를  경쟁자로 인식하는  엘렉트라 콤플렉스를 가졌다는 심리학적 해석을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하루키는 광팬들이 예측한 대로 이야기에 복선을 교묘하게 비틀어버렸습니다.

가호의 모친 살해 의도는  생물학적인 어머니를 죽이는 게 아니고 어머니의 몸을 '가로챈' 흰개미 여왕을 죽이면서 자신을 낳은 어머니와 아버지로 부터 가호 (夏帆)라는 이름의 의미를 부여 받아  역설적인 현실의 부조리한  세계를 부수고, 자신만의 돛(帆)을 펼치면서 본연의 모습을 되찾게 됩니다.

2023년 부터   세계 마라톤 대회 참가를 하지 못하게 된 하루키는  2024년 6월호부터 2026년 3월호까지 '여름(夏帆)' 시리즈로 나뉘어 총 4회에 걸쳐  <가호> 원고를  수정 하는 동안 그의 건강에 적신호가 켜져서 약 20kg의 체중이 줄어드는 투병 생활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시 일상으로 돌아온  하루키는 매일 한 시간씩 집 주변을 달리며 체력을 다졌음에도 투병 후  달리 걷는 것조차 힘들 정도로 기력이 떨어졌지만 다시 펜을 잡고 글을 썼고 마침내 원고지 650매를 채운  352 페이지 분량(한국어판 374페이지)의 장편 소설을 완성 했습니다.


저 역시 몇 년 전 부터 업무 과다와 심리적 부담감 등 여러가지로 인해 피로가 지속적으로 누적되어 왔음에도 불구하고 스스로 건강에 대한 자만감에 사로 잡혀 있었던 중에 올 초 부터 급격한 체력 저하와 피로감에 시달려 왔습니다.

무심코 몸에 이상 징후가 나타나도 몇 일 쉬면  자연 치유 되리라 과신 하며  지나쳤던 것들이 큰 병이 발발할 적신호라는 걸 쓰러지기 전까지 깨닫지 못했습니다.

병원에 실려가서 의사의 호통과 강제 입원을 하고 나서야 그동안 제 스스로 몸을 돌보지 않았다는 후회를 하면서도 여전히 이 병이 왜 발발 했는지 의문이 들 때가 많습니다.

투병 중에 어떤 것도 눈에 들어 오지 않았고  무조건 안정을 취하라는 의사의 말에 몇 일 동안 병실 천장만 멍하니 보고 있으니 시간이 지날 수록 도저히 견디지 못해 아이패드로 이런 저런 영상을 클릭하다가 이북으로 하루키의 에세이 책들을 읽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10월 21일 하루키의 16번째 장편 <가호>가 도착 했고 병상에서 단숨에 읽어 버렸습니다.

앞서 출간한 하루키의 소설 중에 제가 가장 아끼는 소설은 초기작인 '쥐'가 등장 하는 삼부작과 '태엽을 감는 새' '세계의 끝과 하드보일드 원더 랜드' 그리고 수 십편에 달하는 단편집 입니다.

투병 중에 읽어서인지 이번에 출간한 <가호>는 제 마음에 와 닿은 문장들이 빼곡하게 적혀 있습니다.

마치 바다 건너 77세에 접어든 노작가가 제 마음을 읽고 활자로 옮겨 놓기라도 한 것 처럼 <가호>라는 소설은 제가 겪은 이야기도 스며 있습니다.

[소녀는 걸어서 세계를 누빈다. 높은 산을 넘고, 깊은 강을 건너고 광대한 사막을 가로 지르고 빽빽한 정글을 헤쳐나간다. 가혹한 여정 이지만 절대 포기 하지 않는다. 자기 얼굴을 찾으면 제 것임을 바로 알아보리라는 확신이 있다. 아무튼 나라는 존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소중한 일부니까. 여행 하면서 숱한 사람을 만나고 갖가지 기묘한 체험도 한다. 코끼리 무리에 짓밟힐 뻔하거나 야구 글로브만한 거대한 거미가 달려들거나 사나운 말에게 걷어차일 뻔한 적도 있다. 깊은 정글 속 좁은 길에서 온화해 보이는 개미핥기 부부와 스쳐지난 적도 있다. 소녀가 살짝 고개를 숙이자 개미핥기 부부 역시 살짝 고개를 숙였다. "흉포한 재규어만은 모쪼록 조심하도록 해요." 개미핥기 부인이 친절하게 충고 했다]

무라카미 하루키 <가호> 31p

저는 스무 살부터 세상 곳곳을 유랑 하면서 새로운 언어를 습득하며 문화와 피부색이 다른 국가에서 살아 남기 위해 제 본연의 얼굴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한 채 살았습니다. 나와 피부색이 다른 그들이 자신들과 나를 다른 부류로 나누며 선을 그을 때마다 하루키의 소설 <가호>에 등장하는 개미핥기 부부 같은 은인도 만났고 불가해한 힘에 이끌려 이사간 곳에서 기이한 경험을 하기도 했습니다.

아침에 눈을 뜨고 밖을 나가면 보이는 것은 온통 낯선 타인의 얼굴이라는 것, 내가 살고 있는 도시에 유일한 아시안 여성이라는 사실을 깨닫던 순간 슬픈 영화나 드라마를 봐도 눈물을 흘리지 않았던 제가  출근길 전차에서 눈물을 흘린 적이 있습니다.

그렇게 세월이 흘러 하루키 소설 <가호>에 등장하는 칼 가는 집에서 칼을 갈은 저는 지독할 정도로 앞만 보고 달려서 목표했던 것을 성취 했지만 이에 대한 댓가는 달콤하지만은 않았습니다.

하루키가 제 마음을 읽기 라도 했는지  <가호>에 이런 문장을 발견 했습니다.

[임시 방편으로 붙이고 다니던 얼굴이 이미 진짜 얼굴이 되어 있었다. 여행하며 체험한 갖가지 일이 가는 곳마다 마음을 스쳤던 색색깔의 생각이, 희망이며 슬픔이며 동경이며 실망의 조각조각이 그녀 자신의 진정한 얼굴을 풍요롭고 생생하게 만들어낸 것이다. 그것은 그녀 본래의 얼굴 외에 무엇도 아니었다.]

-무라카미 하루키 <가호> 32p

원하던 원치 않았던 이 세상에 태어난 이상 우리 인생의 주인공은 자기 자신이고 누구나 각자의 이야기 세계에서는 신화적 주인공의 역할을 맡아서 그에 걸맞은 선택을 해야 합니다.

긴 투병을 마친 뒤 이 작품을 완성한 하루키는  번역으로 돌아가 매일 7000자의 활자를 쏟아내고 있습니다.

일본 출판계에서  무라카미 하루키라는 작가는 매일  원고지 20장을 채우며   365일 글을 쓰는 작가로 통하고 있습니다.

일본어는  원고지 한 장에  400자를 채울 수 있습니다.

한글처럼 띄어쓰기가 없는 일본어 400자를  원고지에 가득 채우려면 하루 평균 7000자 이상의 글을 써야 하는데 일반적으로 일본에서 출판 되는 장편 소설 분량은  책 한 권에 10만자가 기본입니다.

이 기준을 무라카미 하루키에게 적용한다면 그는 보름마다 책 한 권을 완성 하며 단 하루도 헛되게 살지 않는 철두 철미한 작가입니다.

그가 이번에 16번째 완성한 <가호>에 마치 작가의 분신처럼 이런 문장이 등장 합니다.

“왜냐하면 이건 당신 자신의 세계 속 이야기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당신이 필연적으로 그 세계의 중심이 됩니다. 그래서 선한 것도 악한 것도, 선도 악도 아닌 것도 다 같이 당신 품으로 밀려듭니다. (…) 그리고 당신은 밀려 드는 그것들 가운데서 어떤 것은 기꺼이 받아들이고 어떤 것은 단호히 제거해야만 합니다. 그것이 주인공인 당신의 책무입니다—받아들일지 내칠지 판별해서 좋은 이야기로 만들어가는 것, 그게 당신 역할입니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가호> 중에서

병상에서 잠든 동안 저는 꿈 속에서 너무 많이 울었는데 실제로 깨어나 보니 베갯잇이 전부 젖어 버릴 정도 였습니다. 

80세를 앞둔 무라카미 하루키 과연 남은 생애 동안 몇 편의 작품을 더 발표 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그는 이번 <가호> 소설 마지막에 깊은 여운을 남긴 문장을 새겨 넣었습니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가호는 정말 오랫동안 툇마루에 앉아 온 몸을 쥐어 짜내듯 울었다. 말 그대로 눈물이 바닥날 때 까지. 마침내 눈물이 더 나오지 않자 자리에서 일어나 세면대로 가서 얼굴을 씻고 수건으로 닦았다. 그리고 세면대 거울을 보며 크게 한번 심호흡한 다음, ‘미소라 이야기’를 완성하기 위해 늘 앉는 작업용 책상 앞으로 돌아갔다.]

-무라카미 하루키 <가호> 374p

어쩌면 현 시대에  무라카미 하루키는  인공지능과 협업 하지 않고 작가적 상상력과 필력으로 쓴 마지막 20세기 아날로그형 작가 세대 일 지 모릅니다.

하루키가 긴 투병을 마친 뒤 도전하는 마음으로 써낸 16번째 소설 <가호> 많은 독자들이 긴 감동의 여운을 느끼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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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유행열반인 2026-10-25 07:3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scott님 늘 건강 잘 챙기시고 하루키보다 오래오래 쓰고 싶은 글 잔뜩 쓰시길 빕니다.

2026-10-30 22:18   URL
비밀 댓글입니다.

마힐 2026-10-25 21:4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나이를 먹어갈 수록 내가 거울을 잘 보지 않는다는 것을 얼마전에서야 알게되었어요. 어릴때 나는 늘 거울 앞에서 나를 보고 혼자 대화를 하거나 노래를 곧 잘 불렀는데 직장 생활, 결혼 생활 속의 나는 거울 속의 비친 내 얼굴에 무덤덤해져 있었더라구요. 그렇게 점점 자신의 얼굴을 잊고 살아가고 있더라구요. 늘 나라고 생각했던 ‘나’가 나를 어느새 타인처럼 대하고 있더군요. 하루키선생의 작품을 한번도 읽어본적이 없지만 Scott 님의 글을 통해서 간접적으로나마 그 깊이를 느껴봅니다. Scott 님 얼른 쾌차하시길 기원하겠습니다.

2026-10-30 22:17   URL
비밀 댓글입니다.
 
스탈린 - 20세기를 붉게 물들인 소비에트의 지배자 ㅣ 그레이트 하모니 17
로버트 서비스 지음, 윤길순 옮김 / 21세기북스 / 202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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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1년  6월  독일은 소련과 체결 했던 독소 불가침 조약을 깨고 레닌그라드를 기습 공격했다.

 이듬해 여름 무렵부터 가을까지 독일군은  동부전선으로  사단 200개 이상을 투입했고 기습 공격을 당한 소련군은   연전 연패 하면서 뒤로 밀려났다.

 넉 달 뒤 독일군의 선봉부대가 모스크바 근교까지 도달하고  900일 동안 모스크바 도시 전체를 포위 하며 음식과 연료 공급을 차단한다.

 독일군에게 포위 당한 레닌그라드 시민들이 하루 배급 받았던 빵의 양은 125그램, 추운 겨울  시민들이 거리  곳곳에서 굶어 죽거나 얼어 죽은 상태로 발견되었고 시간이 흐를 수록  시신이 쌓여서 도시 전체가 거대한 무덤이 되어간다.

진격을 멈추고 전력 태세를 갖춘  독일군이  모스크바 시민 전체를 볼모로 마지막 육상 통로를 차단하며 소련 정부를 압박하는 사이  재빨리 모스크바에서 퇴각한 소련군은 주요 군사 무기와 시설을 후방으로 옮겨 버린다.

9월 8일  히틀러는 레닌그라드를 완전히 함락 시키기 위해  도시와 연결된 북쪽과 서쪽 열차 선을 끊어 버리고 공중에서 폭격을 시작한다.

전쟁 역사상 가장 긴 포위 전으로 기록된 900일 동안의 레닌그라드 포위 전에서 레닌그라드 전체 시민 400만명 중에서 약 254만 명만 간신히 살아 남았다.

 푸틴의 아버지는 레닌그라드 공방전에서 독일군의 포격에 한쪽 팔을 잃었고  푸틴의 둘째 형은 독일군의 레닌그라드 봉쇄 중에 치명적인 질병에 감염되어 사망했다. 

1952년 레닌그라드에서  블라디미르 푸틴이 태어났을 때 부모에게 유일한 자식이여서 넉넉한 환경은 아니였지만 응석받이로 자랐다.

1879년 차르 통치 시대에 태어난 푸틴의 할아버지 스피리돈 푸틴은 12살 때 부터 친척이 운영하는 여관에서 주방일을 보조 하다 상트페테르부르크에 있는 대형 호텔에 취직한다.

호텔에서 요리 실력을 인정 받은 푸틴의 할아버지는 제정 러시아 말기의 파계 수도자이자 예언자인 라스푸틴에게 극찬을 받고 황실 행사에 단골 초청을 받는 스타 셰프가 되었다.

혁명으로 재정 러시아가 무너지고 소비에트 연방국이 탄생 하고 나서 푸틴의 할아버지는 블라디미르 레닌의 전속 요리사가 되고 이후 세기의 악마 이오시프 스탈린 독재자의 밥상을 차려주는 특급 요리사가 되었다.



피의 숙청을 자행 했던 스탈린은 자신의 입에 들어가는 것에 행여 독금물이 첨가 될 것을 두려워해서 즐겨 먹는 것을 직접 키우고 재배하는데 지대한 정성과 관심을 쏟았다.

그는 머나먼 계곡의 물을 파이프로 연결해 작은 연못을 만들어 직접 키운 잉어를 튀겨내어  크름 반도에서 공수 해온  레몬 나무에서 수확한 레몬즙을 듬뿍 뿌려 먹었다.

잔혹한 피가 흘러 넘쳤던 스탈린이 가장 좋아했던 건 과일들로 그는 매년  1헥타르에서 8톤씩 분량의  과일을 수확했고 매 끼니 마다 다채로운 과일로 배를 채웠다.

1953년 2월, 스탈린은   심복들과 고향 그루지야 특산품 포도주를 진탕 마시기 시작했다. 

술잔치는 다음날 새벽까지 이어지다 돌연 스탈린은 쓰러졌지만 암살될 것이 두려운 스탈린은 자신의 비밀 별장으로 데려 갈 것을 명령한다.

 스탈린은 자신의 비밀스러운 별장에서 쓰러진 채로 발견된 것은 1953년 3월 1일 저녁, 그의 부하들은 서로 책임을 분산하기 위해  위원회가 소집되었고 이틀이 지난 후에서야  저명한 심장 전문의 마스니코프(Alexander Myasnikov)가 독재자를 치료하기 시작했다.

암살이 두려웠던 스탈린이 복잡한 미로처럼 설계해 놓은 비밀 별장에 도착한 경호원들은 그가 사망한 장소의 위치를 정확하게 알지 못해서 의식불명 소식을 들었는데도 길을 찾지 못해 의료 조치를 하지 못했다.

사망하기 수년 전 부터 수차례 뇌졸증 증세를 보였던 스탈린은  자신의 건강 상태를 폭로하거나 암살할 것을 우려하여 주치의들을 고문형에 처했는데 주치의들이 고통 속에서 죽는 동안 스탈린 자신도 여러 번 발작을 일으켰지만 그의 병 상태를 제대로 치료 해 줄 의사가 없었다.

발견 당시 스탈린은 고혈압과 동맥경화에 의한 좌측 뇌출혈로 반신 불수 상태였다.

미로 같은 별장에서 독재자를 소생 시키기 위해 스탈린의 부하들은  ‘내란 음모’에 가담하지 않은 의사들을 데려 왔지만 5일 후 방부 처리 되어 레닌 옆에 안장 되었다. 

1953년 3월 5일 극악한 통치자 스탈린이 사망하자 소련 전역은 스탈린의 초상화를 태우는 불꽃으로 활활 타올랐고 그의 동상이 설치된 공장, 학교, 극장, 대학, 거리, 광장, 공원에서 두 동강이 난 채 바닥에서 나뒹굴었다. 

1922년 부터 1953년까지 30년 동안 피의 통치를 했던 스탈린은 급격한 농업체제 개편 등으로 1000만 명이상을 잔혹하게 굶어 죽였고 3000만명 이상을 시베리아나 중앙아시아로 강제 이주시켜서 노역으로 병들어 죽게 했다.

스탈린은 자신의 권력을 강화하기 위해 KGB(국가보안위원회) 전신인 NKVD(내무인민위원회)라는 비밀경찰을 동원해 정적과 국민을 감시하고 탄압했다.

 

출처:The Moscow Times

반 세기 전 방부 처리 되었던 스탈린이 현 시대에 러시아 땅 곳곳에서 소생하고 있다.

러시아 국민 중 상당수는 스탈린을 제2차 세계대전에서 나치 독일에 승리하고 소련을 초강대국 반열에 올려놓은 위대한 지도자로 생각하고 있다. 

레닌과 스탈린 요리사의 손자 푸친은  “서방이 스탈린을 지나치게 악마화하는 것은 러시아를 공격하려는 음모”라고 주장하며 국민의 반(反)서방 정서를 자신의 통치 수단으로 이용하고 있다.

러시아 곳곳에  스탈린  동상들이 세워지는 동안 국가 반역자를 색출하고 언론을 탄압하고 외신기자들을 내쫓으며  우크라이나 침공 전보다 더 강화된  철권통치를 하고 있다.

러시아 땅에서 차르(황제) 시대를 제외하고 가장 긴 통치를 한 지도자는 스탈린이였다.

 1923~1924년 소비에트연방(소련) 레닌 집권기 2인자였던 스탈린은  1924년 1월 레닌의 사망 이후 1인자로 등극해 1953년 자신이 사망할 때까지 29년간 장기 집권했다.

 2000년 첫 당선 이후 지금까지 네 번째 대통령직을 맡고 있는 푸틴은  2020년 7월 개헌을 통해 84세가 되는 2036년까지 통치 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해두었다.

그의 통치가 끝이 나더라도 또 다른 스탈린, 푸틴 같은 독재자가 연달아 등장 하게 될 것이다.


권력은 그 누가 행사한다 해도 그 자체에 있어서는 악이다.

 -브르크하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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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트] 황제 프리드리히 2세의 생애 상.하 세트 - 전2권 ㅣ 황제 프리드리히 2세의 생애
시오노 나나미 지음, 민경욱 옮김 / 서울문화사 / 202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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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94년 12월 26일 황제 프리드리히 2세는 예시라는 작은 마을 광장 천막안에서 세상 밖을 나왔다. 

붉은 수염의 신성 로마제국 황제 하인리히와 황후 콘스탄체가 결혼 8년 만에 태어난 아이, 성탄절 팔레르모 대성당에서 '시칠리아 왕'의 왕관을 쓴다. 

태어나자마자 부모와 떨어져 움브리아 지방에서 세살까지  살던 꼬마 프리드리히 세례식날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아버지 하인리히를 만난다. 

1년 후  하인리히 황제는 건강 이상으로 서른 두살의 나이로 사망하고 그의 예상치 못한 죽음으로 유럽 전역에 권력의 지각 변동이 시작된다. 

가장 처음 남부 이탈리아에서 시작된 반란이 종교계의 최고의 권력자 로마 교황의 죽음으로 더욱 혼란이 가중된다.

 황후 콘스탄체는 이제 네살이 채 안된 아들 프리드리히 2세를 권력의 왕좌에 앉히기 위해 왕실 최고 회의를 소집한다. 

1198년 1월, 로마 교황으로고 서른 여덟 살의 인노켄티우스 3세가 선출되고 황후 콘스탄체는 그에게 접근해 교황이 시칠리아 왕국에서 어린 프리드리히의 왕위를 인정해 주면 혈통상 프리드리히에게 권리가 있는 독일의 왕위 계승권을 포기하겠다는 조건을 내건다. 

교황 입장에서는 골치 덩어리 독일을 관리 하지 않아도 되니 황후의 조건을 흔쾌히 받아들인다.

1198년 5월 17일, 겨우 네 살이 된 프리드리히는 팔레르모 대성당에서 시칠리아 왕으로 즉위 한다. 

나폴리까지 공략해온 로마 교황의 영토와 국경을 접한 남부 이탈리아 전역의 통치권이 4살짜리 프리드리히 황제 손에 들어갔다.

 반년 후 1198년 11월, 황후 콘스탄체는 병상에 눕게 되고 자신의 죽음이 임박해왔다는 사실을 직감하며 아들의 후견인으로 교황 인노켄티우스 3세를 선택한다. 



교황은 죽음이 임박한 황후에게 다음과 조건을 요구한다.


첫째, 시칠리아 왕국이 로마 교황의 영유지 라는 것을 인정할 것.

둘째, 꼬마 프리드리히 황제가 성인이 될 때까지 자신의 후견인 비용을 낼 것. 

단, 후견 비용의 납부 시기는 성인이 된 다음에 할 것


황후 콘스탄체는 이 모든 조건을 받아들이고 며칠 후 눈을 감는다.


자, 이제  천애고아가 된 4살 꼬마황제 프리드리히 앞에 어떤 운명이 기다리고 있을까?

황후가 사망 한 후 교황의 신경은 온통 제 4차 십자군을 동방에 보내는데 쏠려 있었다.

꼬마 프리드리히 황제 옆에는 성직자나 학자 출신도 아닌 굴리에모 프란체스코라는 일반인에게 맡겨진다. 

어느 누구도 황제에게 관심을 갖지 않는 10년 동안 꼬마 프리드리히 황제는 자신의 호기심이 가는 데로 거의 전 분야를 독학해 나간다.

무엇을 배울지 스스로 선택했던 꼬마 황제는 라틴어, 프랑스어, 독일어, 이탈리아어, 그리스어, 아랍어를 차례 차례 익혀 나간다. 황제 프리드리히는 수행원이나 시종 없이 팔레르모 시내를 마음껏 돌아 다니며 서민들의 언어와 문화까지 익힌다.

황후의 사망 이후 단 한번도 꼬마 황제 프리드리히를 만난 적이 없었던 교황은 십년의 세월이 흐른 후 카푸아 대주교의 보고서를 통해 꼬마 황제가 어떻게 성장 하고 있는지 알게 된다.

카푸아 대주교가 교황에게 보낸 보고서는 다음과 같다.


-키는 중간 정도로  또래들 보다 크지 않다. 단단한 체격에 지구력이 강하다.

-칼과 창, 활을 평균 이상으로 잘 다룬다.

- 무술에 집중 하고 있을 때 자세가 유연하고 몸을 자유자재로 써서 약점을 내보이지 않는다.

-승마를 아주 즐긴다. 아무리 거칠고 성질 머리가 나쁜 말 위에 올라 타도 압도적인 속도와 기세로 말을 길들인다.

-아침에 눈을 뜰 때부터 밤 까지 절대로 가만히 앉아 있지 않는다. 미친 듯이 움직이고 돌아 다닌다.

-유일하게 가만히 앉아 있을 때는 독서를 할 때 뿐이다. 역사 책을 주로 탐독 하지만 뭐든 손에 잡히는 데로 읽는다. 한번 책에 빠지면  새벽까지 이어진다.

-피로 하다 거나 지겨워 한 적이 없다. 하지만 황제 의복으로 갈아 입고 나면 순식간에 근엄한 모습으로 돌변한다. 

-어느 누구나 눈이 휘둥그레지는 미소년은 아니다. 하지만 자세히 보면 넓은 이마는 넓은 마음을 드러내고  눈빛은 소년의 눈빛이지만  상대를 바라 볼 때는 강한 열정을 드러낸다. 단, 가끔 황실 사람들이 전혀 알아 듣지 못하는 서민들 언어로 말해서 시종들을 난감하게 만들때가 있다.

- 무엇이든 미리 정해진 데로 움직이지 않고 스스로 하고 싶은 일을 찾는다. 어린 나이지만 시종이나 하인을 부리지 않고 어떤 곳도 스스로 찾아가고 어려운 일도 스스로 척척 해낸다.


소년 프리드리히 황제가 살던 시기에 팔레르모는 다민족 다문화 다종교가 뒤섞인 무법지대로 독일과 이탈리아 세력이 끊임없이 충돌하며 언제 어떤 식으로 살해 될지 모르는 곳이였다.

황제의 후견인 교황도 이곳은 손도 대기 싫은 곳이지만 황제 프리드리히를 자신의 손안에 쥐고 흔들며 시칠리아 왕국 전체로 세력을 확장 하려는 목적을 갖고 있었다.

그가 첩자로 파견한 사제들과 대주교들은 황제 프리드리히를 24시간 감시 하며 수시로 교황에게 보고서를 보냈다.

완벽하게 감시 당하면서 완전하게 방치돼 버린 황제 프리드리히는 일곱 살 무렵 독일 세력들에 의해 납치 될뻔한 위기에 처한 적이 있었다.

소년 프리드리히는 자신이 기거 하고  있는 노르만인의 궁전으로 쳐들어온 독일 세력들 앞에 끌려가지 않으려고   자신의 몸에 피가 나도록 마구 할퀴며 짐승처럼 큰 소리로 울부 짖었다.

소년 프리드리히가 미쳐 버렸다 생각했던  독일 세력들은 곧바로 현장에서 줄행랑을 치고 이를 바로 눈앞에서 목격한 교황의 비밀 첩자 사제는 이날의 사건 보고서를 작성한다.


'소년 황제가 독일 세력들 앞에서 보인 행동은 극도의 공포심이 아닌 이름만 황제 뿐인 자신의 처지를 절망과 분노로 표출했습니다.'


이 사건 이후 소년 프리드리히는 자신이 신뢰 할 수 있는 사람만 곁에 두고 팔레르모 전역에 세워진 예배당의 서고들에 보관된 책들을 독파 하기 시작한다.

1208년 소년 프리드리히가 13살 생일날 삼촌 필립이 살해 당하고 소년은 호엔수타우펜 가문의 유일한 생존자가 된다.

1209년 12월 26일  14살 소년 프리드리히가 스스로 성인이 되었음을 선포 하자 이 사실을 알게 된 후견인 교황 인노켄티우스 3세는 전혀 예상치 못한 사실에 크게 놀란다.

'그 꼬마가 자신의 나이보다 월등한 능력을 키웠군, 소년의 모습이지만 인지 능력은 성인을 넘어 섰다니.'


가만히  14살 황제의 움직임을 가만히 지켜보고만 있지  않았던  마흔 아홉 살의 교황은 성직자 임명권을 놓고 서로 대립하지만 어린 황제의 대응에 맞서기 보다 너그럽게 이해하는 태도를 취한다.

 14살 황제 프리드리히 2세는 자신에게 맞서지 않고 공손하게 한 발자국 물러서는 교황의 속내를 파악하기 위해 주변 동태를 살피는 동안 교황은  황제보다 열 살이나 많은 아라곤 왕의 딸 콘스탄체를 눈앞에 데리고 와 결혼을 종용한다.

당시 아라곤 왕의 딸 콘스탄체는 헝가리 왕과 결혼 했지만 아들이 죽자 자신의 고향 스페인으로 돌아 간 상태였다. 

빠른 속도로 헝가리 왕과 이혼 절차를 마치게 한 교황은 1209년 8월 15일 자신의 꼭두각시 콘스탄체와  황제 프리드리히 결혼 혼사를 직접 주관하며 14살 짜리 황제를 자신의 손아귀에 넣으려는 계략을 짠다.

황제 프리드리히와 결혼식을 올리던 날 콘스탄체는 결혼 지참금으로 무려  오백명의 기사를 끌고 온다.

14살의 황제 보다 삶의 경험이 많았던 콘스탄체는 교황의 검은 꿍꿍이를 꿰뚫어 보았고 그의 바람대로  남편 프리드리히 황제가 꼭두각시가 되지 않게 하기 위해  왕국 통치 질서를 확립하는데 적극적으로 협력한다. 

콘스탄체가 이끌고 온 오백명의 기사들이 유럽 전역으로 퍼져 나가기 전, 교황은 황급히 독일 작센주 지역의 전폭적인 지원을 요청 한다.

당시 독일 작센 주는 황제 프리드리히의 삼촌 필립이 죽고 난 후 그 자리에 작센공 오토가 물려 받았다. 

작센공 오토는 교황파의 우두머리이자 교황 인노켄티우스 3세의 손과 발이 였다. 

교황은 자신의 수족이나 다름 없는 오토가 절대로 시칠리아 왕국을 손에 넣는 일은 하지 않으리라 굳게 믿고 있었다.

1209년 10월, 스물 일곱 살의 오토는 신성 로마제국 황제에 올라서고 교황 인노켄티우스 3세는 북쪽 독일은 오토가 남쪽 시칠리아 왕국은 14살의 프리드리히가 통치 해야 자신의 안위도 챙기고 권력도 자신이 쥐락 펴락 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황제 오토는 대관식을 마치자 마자 교황청 영토의 북쪽과 국경을 맞댄 토스카나 지방으로 군대를 이끌고 가 시칠리아 왕국의 영토 지역인 남부까지 진격한다.

이 사실에 교황은 크게 격노 하지만 일개 종교인으로  군사력이 없으니 오토를 암살 할 첩자 사제들을 급파 한다.

 이를 절대로 모를 일이 없었던 황제 오토는 첩자들을 색출해 내고 교황청의 북쪽 영토 카푸아, 나폴라, 살레르노, 아말피 까지 차례 차례 점령하며 교황의 암살단 사제들에게 에워 쌓여 있었던 황제 프리드리히를 구출하는데 성공한다.

자신의 사제를 모조리 몰살 시켜 버린 것에 크게  분노한 교황은 1210년 10월 신성 로마제국 황제 오토를 파문 시킨다고 공표한다. 

하지만 이미 교황청 영토를 정복 한지 1년을 넘겨 버린 시점이라 황제 오토는 파문 당하는 것도 두려워 하지 않는다. 

오토가 교황과 기 싸움을 벌이는 동안 한층 여유가 생긴 황제 프리드리히는 남유럽 전체의 방위군을 키우는데 주력 하고 있었다.

더 이상 암살단 사제들도 별 효과가 없다는 사실을 깨달은 교황은  남부 이탈리아 지역의 충직한 대주교인 서른 세 살 배라르도를  팔레르모 대주교로 임명한다.

교황이 대 주교 배라르도에게 준 임무는 팔레르모 땅을 지배 하고 있는는 열여섯살 짜리 황제 프리드리히를 곁에서 보좌 하며 감시해서 그의 일거수 일투족을 자신에게 보고 할 것을 명했다.

교황은 일개 지방 구석진 곳에서 벼락 출세한 배라르도가 자신에게 충성 하기 위해  야생마 같은 황제를 노련하게 조련 할 것이라 큰 기대를 품고 있었다. 

매일 아침 교황에게 보고서를 보냈던 베라르도는 차츰 시간이 흐를수록   로마 교황청에도  교황에게도 보고서를  제출하지 않는다.

매일 아침 교황은 베라르도의 보고서가 도착하기를 기다렸지만   소식조차  없게 되자  시칠리아 왕국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열여섯살짜리 황제가 어떤 일을 벌이고 있는지 전혀 알 방법이 없이 로마 교황청에 홀로 고립된다.

과연  베라르도 대 주교는 야생마 같은 황제 프리드리히에게 무릎을 꿇었던 것 이였을까? 아니면 온갖 뇌물에 포섭 당해 버린 것이었을까?

서른 세 살의 베라르도 대주교는 열 여섯살 황제의 운명을 읽고 있었다.

1년 후 황제 프리드리히는 북부 독일로 향하고 그의 곁에 동행 하는 사람은 바로 베라르도 대 주교, 그는 이제 황제 프리드리히 인생에 가장 소중한 은인이자 파트너가 된다.



황제 프리드리히 2세의 최대 적은 자신의 후견인인 교황도 아니였고 국경 너머 이교도 군대들도 아니였다. 

그가 이룩하려는 법치 국가를 세우는데 절대적으로 '시간'이 필요 했고 그 법치 국가를 이룩 하려면 절대적으로 '평화'를 유지 해야만 했다. 

'평화'는 꿈 만으로 유지 시키지 못한다. 

이 세상의 분쟁이란 꿈을 꾸듯 평화롭게 해결 할 수 없다.

황제 프리드리히 2세가 꿈꾸는 세상. 평화를 유지하기 이전에 평정의 상태로 만들려면  압도적인 군사력이 필요 했다.

중세 시대에 병력을 거느리고 싸울 수 있는 사람은 오로지 봉건 '제후'들 뿐이다.

그렇다면 황제 프리드리히 2세는 군사력을 내세우지 않고  어떻게 평화를 유지해서 법치 국가를 세울 수 있었을까?

1236년 마흔 한 살에 접어든 황제 프리드리히 2세에게  '시간'은 그가 설계하는 미래를 재촉하고 있었다.

조류를 이용한 사냥에 관한 책을 쓰면서 내가 명심한 것은 아래 한 가지다.

모든 것은 있는 그대로 그리고 본 그대로 쓸 것

왜냐하면 이 방침을 관철해야만, 책을 통해 얻은 지식과 경험해보고 처음으로 이해한 지식의 통합이라는 지금까지 아무도 시도하지 않은 과학의 길을 열 수 있을 것이라 믿어서이다.

-프리드리히 2세의 조류를 이용한 사냥에 관한 고찰 (De Arte Venandi cum Avibus)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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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안인
우밍이 지음, 허유영 옮김 / 비채 / 202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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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평양 한가운데 세상 어떤 지도에도 표시되지 않은 외딴섬 와요와요 섬에서 남자 아이가 태어나면 나무 한 그루를 골라 달이 죽었다 되살아날 때 마다 나무에 금을 하나씩 긋는 풍습이 있다.

나무에 금이 백개가 되면 아이는 자기만의 나무 쪽배인 '타라와카'를 만들어서 물고기를 잡아야 한다.

와요와요 섬에서 둘째 아들로 태어날 경우 맏아들이 일찍 죽는 경우를 제외하고 백팔십 번째 보름달이 뜰 때 섬을 떠나 돌아 올 수 없는 항해길을 나서야 한다.

물 한 병만 쪽배에 싣고 와요와요 섬을 떠나는 둘째의 운명은 영원히 사람과 인연이 닿지 않는 바다에서 노인이 될 때까지 살아야 한다.

이런 가혹한 운명을 타고난 아트리에는 우르슐라에게 말하는 피리를 받고 자신이 만든 쪽배 타라와카의 노를 저어 와요와요 섬을 떠난다.

섬을 떠나 바다를 항해 한지 7일 째 되던날 쪽배 타라와카에 물이 새기 시작하고 배가 서서히 바다 속으로 침식해 갈 때 아트리에는 바다로 뛰어들었다.

[눈을 떴을 때 아트리에는 자신이 여전히 바다에 떠 있는 걸 알았다.

섬 가장 자리에 소년들이 서 있었는데 하나같이 암울한 눈빛에 손이 있어야 할 곳에 지느러미가 있었으며 한 평생 산호초 위에서 뒹군 것처럼 온몸이 얼룩덜룩했다.]

바다에서 표류하던 아트리에가 도달 한 곳은 온갖것들이 뒤섞여서 지독한 냄새로 진동하는 거대한 쓰레기 섬이였다.

죽은 생물과 악취로 가득찬 그 섬은 끊임없이 회전하듯 매일 다른 방향에서 해가 뜨고 져서 아트리에는 그 섬이 사후세계가 틀림없다고 생각한다.

인간들이 버린 다양한 물건들은 바다 거북의 뱃속에서도 나왔고 조개 껍질 속에서도 나왔다.

불 같이 뜨겁다가 참을 수 없는 혹독한 추위가 닥치고 하늘이 맑게 개어 있다가 거센 폭풍이 불다가 별안간 밤이 찾아오는 그 쓰레기 섬에서 아트리에는 차남들의 영혼이 잠든 곳이라 여기고 손에 잡히는 것들로 집을 짓기 시작한다.

이승인지 저승인지, 섬인지 조차 불분명한 이 거대한 쓰레기 더미는 얼마 후 아트리에를 실은 채 대만 동부의 바닷가를 덮친다.

거대한 파도가 눈앞에서 해변을 통째로 쓸어버리는 무시무시한 장면이 텔레비전으로 생중계 되고 이를 지켜 보던 시민들은 기괴한 자연 현상에 한발자국도 밖을 나가지 않는다.

등산에 갔던 남편과 아들이 실종된 후 충격으로 교수 자리에서 물러난 앨리스는 병상을 박차고 나가 해변가를 덮친 화면에 얼핏 비추었던 그 무언가를 찾기 위해 직접 현장에 나간다.


​

[산길을 걸으며 앨리스는 계속 어떤 냄새가 나는 것 같았다. 무슨 냄새지? 태양의 열기, 바닷물의 공격성, 물고기의 비린내와 야생의 사향냄새... 결코 섞일 수 없는 상반된 냄새가 뒤섞여 만들어진 냄새 같았다.]

​

쓰레기 섬을 뒤지던 앨리스는 문득 지난 시절 외할머니와 함께 갯벌에 굴을 따러 갔던 기억을 떠올린다.

생계를 위해 굴을 땄던 외할머니와 동네 주민들은 인근에 있는 정유소 공장에서 버리는 폐 기름에 신장과 폐기관이 망가져서 고통 속에서 세상을 떠났다.

잃어버린 고양이를 찾듯이 해일처럼 떠밀려온 쓰레기 더미에서 아트리에를 발견한 앨리스는 대만의 원주민인 하파이와 다허, 터널 개발 공사 자문으로 대만에 방문한 독일인 볼트와 환경운동가 사라의 도움을 받아 미지의 섬 주민인 아트리에와 소통 하기 위해 노력한다.

​

[우리의 섬은 용사의 섬이고, 꿈이 모이는 곳이에요. 물고기 떼가 이동할 때 쉬었다 가는 곳이고 해가 뜨고 지는 좌표고 희망과 물의 휴식처예요. 우리 땅은 산호를 엮고 바닷새의 똥을 덮어서 만들었어요. 우리 카방이 눈물을 모아서 만든 작은 호수에 의지해 살아요.]

​

섬을 떠나 쪽배에 의지한 채 바다에서 홀로 살아갈 운명을 타고난 와요 와요의 원주민 소년 아트리에는 하루 아침에 가족을 잃은 대학 교수 앨리스에게 차츰 마음의 문을 연다.

남편과 아들이 추락한 지점을 찾아 나서는 앨리스를 따라간 아트리에는 암벽 정상에 다다르고 그곳에서 수많은 자연의 비밀을 품고 있는 생명체와 마주하게 된다.

바다 밑에 흐르는 암류처럼 사람을 끌어 당기고 휩쓸어 가고 파묻어 버릴 것 같은 눈빛을 한 복안인이 앨리스와 아트리에 일행 앞에 모습을 드러낸다.

겹눈 속 수 많은 홑눈이 바늘 끝보다 가늘고 보이지 않을 만큼 미세한 눈물을 흘리고 있는 복안인은 그저 세상을 지켜 볼 수만 있을 뿐이다.

앨리스와 아트리에 일행이 암벽을 내려 오던 날 와요와요 차남들의 화신인 향유고래 떼가 파도를 가로질러 헤엄쳐 갔다.

일주일 뒤 새벽 시간에 칠레 남부의 발파라이소 해변에 향유 고래 수백 마리가 온 몸의 뼈가 으스러진 상태로 발견된다.

[먼저 숨이 끊어진 고래들이 뜨거운 태양 아래서 차츰 부풀어 오르고 부패하다가 갑자기 차례로 폭발하기 시작했다. 무겁고 축축한 하늘로 솟구쳤던 내장이 고래 연구자, 어민 고래 뼈를 주으러 온 아이들 위로 비처럼 쏟아져 내렸다. 그들은 한 번도 맡아 보지 못한 썩은 내에 기절하거나 바닥에 엎드려 구토했다.]

앨리스는 고래가 죽은 그 해안가에서 오래 전 남편이 들려 주었던 이야기를 떠올리고 그리고 소년은 바다로 떠난다.

​

가상의 섬 '와요와요'에서 시작된 설화 같은 존재인 소년 아트리에가 바다를 떠돌다 문명의 해변에 맞닺는 순간 만나는 앨리스 그리고 겹눈을 가진 수수께끼의 존재 '복안인'은 서로 다른 세계에 살고 있지만 그 세계 모두 파괴되고 오염된 곳이다.

​

구술로 내려오는 설화와 현실의 암울한 모습이 절묘하게 뒤섞인 소설 <복안인>은 인간이 만들어온 오염의 파고의 영향이 어디까지 이어질 수 있는지 신화와 현실, 환상과 재난의 경계를 넘나들며 펼쳐 보인다.

작가 우밍이는 인간의 시야가 닿지 않는 영역을 볼 수 있는 복안인의 시선으로 세상의 무엇을 보느냐가 아니라, 어떻게 세상을 볼 것인가에 대한 질문을 독자들에게 던진다.

​


소설 <복안인>에 등장하는 세상은 현재 우리가 사는 세상과 크게 다르지 않다.

(c) 2024, 방글라데시 다카 바다의 인공 쓰레기 섬, 로이터 통신

2017년 부터 방글라데시 다카 바다에는 전에는 존재 한 적 없는 거대한 인공 쓰레기 섬이 드넓은 크기로 바다 위를 둥둥 떠다니는 진귀한 현상이 발생했다.

쌓여가는 쓰레기를 처분하지 못한 방글라데시 정부의 무능한 행정 정책과 무분별하게 아무데나 쓰레기를 버린 실종된 시민 정신의 힘으로 만들어진 다카 바다의 인공 쓰레기 섬은 사람들이 가로 질러가는 구역 마저도 쓰레기로 버린 택배 상자와 플라스틱 쓰레기들의 부유물 위에 세워졌다.

6천 500만 년 전 지구 상 곳곳에서 시작된 화산폭발과 운석 충돌로 인해 지구 전체에 기온 변화가 발생하고 이 변화된 환경에 공룡은 적응하지 못해 멸종되었고 공룡이 사라진 자리에 포유류가 최종 포식자로 등장했다.

곧이어 등장한 영장류과인 침팬지와 아프리카 대륙에서 인류 조상인 호모(Homo) 족이 석기를 사용하기 시작했다. 

석기를 사용 했던 호모족은 기후 변화로 식량을 찾기 위해 아프리카 대륙에서 유라시아 대륙으로 이동하기 시작하고 네안데르탈인(Neanderthal)으로 진화하고 불을 발견하면서 식습관의 변화로 외모와 체격에 큰 변화가 생긴다.

생명체가 살기 좋은 환경인 동아프리카에서 드디어 호모 사피엔스(Homo sapience)가 등장했고 이들은 전 대륙으로 퍼져 나가 농업과 유목 생활을 하면서 문명의 씨앗이 되는 글자와 화폐를 발명해서 사용하기 시작한다.

인류가 현 시대의 도시화 문명 아래서 살아 간 것은 고작 몇 세기 전으로 5천 년 전에 최초의 왕국을 이루기 전까지 인류는 한 손에 돌과 다른 손엔 불을 들고 동굴과 들판을 오고 가는 야생적인 삶을 살았다.

​

점심 한 끼를 먹고 나서 버리는 일회용 플라스틱 제품이 한 가득이고 매일 집으로 배달 되는 주문 상품을 포장한 상자와 뽁뽁이들이 한 가득이다.

일회용 소비를 줄이기 위해 에코백을 메고 폐 비닐과 폐 휴지 상자로 만든 제품을 소비하고 종이 빨대를 사용해도 이 모든 걸 생산하는데 막대한 석유자원이 쓰이고 있다.

개인 당 소비하고 버리는 쓰레기 양을 줄인다 해도 지구 온난화의 주범인 화석연료 에너지와 플라스틱 제품 그리고 이산화탄소의 사용과 배출량을 감소 시키는데 역부족이다.

또한 이를 대체 할 수 있는 에너지가 개발된다 하더라도 친환경으로 생산한 제품 포장과 용기 역시 버리고 처리할 때도 다량의 이산화탄소가 배출된다.

인간이 숨 쉬고, 먹고, 마시고, 배출하는 걸 멈추지 않은 이상 지구의 생명을 단축 시키는 온난화 현상은 멈추지 않을 것이다.

​

오늘 누군가 마시고 버린 플라스틱 병을 지구 반대 편 물개가 물고 있다.

버려진 쓰레기들로 이루어진 섬의 면적은 한반도의 7배, 가까운 미래에 이 쓰레기 섬은 공식적인 국가 되어 이곳으로 사람과 동물들이 이주하는 세상이 도래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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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의 세계
슈테판 츠바이크 지음, 이노은 옮김 / 다산초당 / 202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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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적 광기의 폭주가 단숨에 수 세대에 걸쳐 쌓아온 문명을 어떻게 잔혹하게 파괴 할 수 있는지.인간이 얼마나 연약한 존재인지, 동시에 얼마나 강인하게 시련을 견딜 수 있는지 현재 우리가 당연하게 누리는 평온한 일상도 언젠가는 ‘어제의 세계’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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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돌이 2026-09-14 15: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파괴되고 지나가 버린 어제에 대한 이야기가 츠바이크의 손에서 어떻게 살아날지 궁금해요. 다시 출판된 기념으로 저도 읽어보려구요. ^^

scott 2026-09-19 15:10   좋아요 0 | URL
독일어 원문 이번 번역본 저도 믿고 구입했습니다 ^^

젤소민아 2026-09-16 01:2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바람돌이님에 이어 저도 읽어보려 합니다~감사합니다~

scott 2026-09-19 15:10   좋아요 0 | URL
불멸의 명저 입니다 !^^젤소민아님 꼬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