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리자베스 핀치를 만나고 알게 된 것에 더 감사했다. 실제와 비교할 때 영 부실한 말이기는 하지만. 그녀가 말한 대로 우리는 삶에서 늘 우연이라는 요소를 고려해야 한다. 삶에서 행운의 평균 할당량이 얼마인지 또는 얼마가 되어야 하는지는 알지 못하지만 ― 이것은 답할 수 없는 질문이고, 또 어차피 여기에 "얼마가 되어야 한다" 같은 건 없는 게 분명하다 ― 그녀가 나의 행운에 속했다는 것은 잘 알고 있다.

어떤 일은 우리가 어떻게 해볼 수 있고 어떤 일은 우리가 어떻게 해볼 수 없다. 우리의 의견은 우리가 어떻게 해볼 수 있고, 우리의 충동, 욕망, 혐오 ― 간단히 말해서 우리 자신에게서 비롯되는 모든 것 ― 도 마찬가지다. 우리의 몸은 우리가 어떻게 해볼 수 없고, 우리의 소유나 평판이나 공적 직책도 마찬가지다. 즉, 우리 자신에게서 비롯되지 않는 모든 것이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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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스로 생각하는 것"은 더 진실하고 깊은 생각을 낳기보다는 하나의 통념idee recue을 다른 통념으로 대체하는 결과를 낳았을 뿐이라는 것 ― 그렇다 해도 그 과정은 그 자체로 귀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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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 어른의 행복은 조용하다
태수 지음 / 페이지2(page2) / 202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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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른의 행복은 조용하다>

이 책은 행복을 찾아가는 것이라기 보다 불행을 막는 것에 대해 이야기한다.
마냥 행복할 수만은 없는 법이지~
나 자신이 소심하고 쫄보라 그런지 불행이 더 신경쓰이고 겁이 나기도 한다.
그럼 이제는 건강과 체력을 관리하면서 불행이 더 줄어드는 삶, 그런 삶을 살아보자.



다정함은 체력에서 나온다. 달달한 사랑이나 찐한 우정도 결국 다 건강해야만 가능했다. 당장이라도 쓰러질 것 같은 사람에겐 부모도 부부도, 결국은 남이다.
어쩌면 그래서 혼자가 좋다는 사람이 갈수록 많아지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혼자만 될 수 있으면 이 모든 귀찮음과 짜증, 쓸모없는 대화에서 벗어나 자유를 만끽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하니까. 그러나 알다시피 사람은 혼자 살 수 없다.
- p9

멈춤과 지속. 둘 중 무엇이 더 맞는 일인지는 여전히 잘 모르겠다. 오래된 유행어처럼 그때그때 다르겠지.
- p14

독일어에는 ‘치타델레(Zitadelle)’라는 말이 있다. 요새 안의 독립된 작은 보루라는 뜻으로 아무도 모르는 나만의 작은 방을 의미한다. 나는 섬세한 사람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이 치타델레라고 생각한다. 챙겨야 할 것, 챙겨야 할 사람, 챙겨야 할 모든 감정들에서 벗어나 오직 나 자신만이 남겨진 시간과 공간이 이들에게는 필요하다. 돌볼 사람이 아무도 없는 그 고립된 공간 속에서만 남들에게 수도 없이 제공했던 말을 자신에게 돌려줄 것이기 때문이다.
- p15

돈으로 행복을 살 수 있다는 건 실화였다. 적어도 내 인생에서만큼은. 다만 이 한 가지 의문만큼은 끝끝내 풀리지 않았다. ‘그래서 행복이 얼만데?’

행복에도 가격표가 필요하다. 막연히 로또 1등 한 장 값은 있어야지라는 상상은 너무 폭력적이지 않은가. 그럼 나는 평생 행복할 수 없을 것이다. 행복을 구매하기 위해서라도 내겐 좀 더 현실적인 숫자가 필요했다.
- p21

인생의 의미를 잃어도, 누군가의 성공에 까무룩 자존감이 무너져도 꿋꿋이 일어나 제자리로 향하는 너를 응원해.
도망치지 않는 것도 능력이야.
빌어먹을 인생에 정직하게 부딪히는 너도, 충분히 대단한 사람이야.”
- p27

‘우리 서로를 그냥 좀 내버려두자.’
사람을 미워하는 데도 체력이 든다. 시간도 들고 감정도 들며 때때로 큰돈도 든다. 모두 이득 없이 낭비하기엔 너무도 소중한 가치들이다. 그 가치들을 지키기 위해서라도 우린 서로를 좀 더 내버려둬야 한다. 사랑은 아니어도 “넌 그렇구나” 정도의 건조한 존중은 보내줘야 한다. 또 모른다. 혐오가 혐오를 부르듯 존중이 존중을 불러올지도.
- p33

말에는 분명 힘이 있다. 그것이 부정적이든 긍정적이든 말은 머리 위의 천장이 되어 우리의 한계를 정의 내리는 굳건한 벽이 된다. 그래서 우리는 말을 잘해야 한다. 남에게 잘해야 하는 것만큼이나 나에게도 꼼꼼히, 계산적으로 잘해야 한다.
말 한마디로 모든 게 변하진 않겠지만 말 한마디로 내 마음만은 바꿀 수 있으니까. 포기가 도전이 되고 한계가 가능성이 되고 겸손이 자신감이 될 수도 있으니까.
- p39

진짜 건강한 사람이란, 튼튼한 인간이란 무슨 일이 있어도 절대 아프지 않은 사람이 아니라, 고통이 찾아올 때 가장 먼저 자신에게 말해줄 수 있는 사람이다.

“더 아프기 전에 얼른 병원부터 가자.”

우리 좀 더 자주 아프자. 그리고 빠르게 낫자.

아프지 않기보다는
빠르게 나을 줄 아는 사람이 되자.
- p43

하늘은 여전히 핑크빛이고, 나는 이제 안다.
행복은 선언이다.
- p49

한국은 전 세계에서 가장 열심히 사는 나라다.

한 해 평균 1,900시간을 일하는데도 업무 시간을 더 늘리려는 나라며, 평균 공부 시간도 1위를 놓친 적이 없다. 거기다 과로사로만 한 해 500명이 넘게 죽는 나라이기도 하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재수생과 취준생 수는 매년 정점을 찍고, 청년 자살률 또한 늘고 있다.
전 세계에서 가장 열심히 살지만 가장 많은 실패를 하는 나라. 이런 상황에서 우리가 서로에게 가장 많이 건네는 말은 이렇다.

“누칼협?” 그러니까 누가 그렇게 살라고 칼 들고 협박함?
- p57

사람은 나이를 하나 먹을 때마다 타고난 표정 하나씩을 잃는다고 한다. 웃음, 행복, 만족, 기쁨. 신기하게도 맑은 표정부터 잃게 되는 우리는 짜증으로 일관되다 결국 무표정으로 인생을 마감하게 된다고.
- p61

그래서 웃음에는 연습이 필요하다. 웃음이 행복이, 모래 위 글씨처럼 인생이란 파도에 쓸려가기 전에 습관을 만들고 몸에 배게 해야 한다. 화밖에 남지 않은 얼굴로 마지막을 장식하고 싶지는 않다. 끝까지 삶에 웃어 보이고 싶다.
- p61

말투에는 그 사람이 가진 온도가 드러난다.
- p66

사람의 말에는 그가 가진 참 많은 것들이 드러난다. 내가 세상을 어떻게 바라보고 느끼고 해석하고 결론짓는지는 의외로 내가 평소 쓰는 말투에 담겨 있다. 마치 어릴 적 방학 숙제로 해간 양파 실험처럼 좋은 말, 예쁜 말을 더 많이 듣고 뱉은 나일수록 마음의 크기 역시 잘 자라게 됐다. 예쁘게 세상을 바라보기 위해서는, 먼저 예쁜 말을 써야 했다.
- p67

마음이 우울할 때 타이레놀을 먹으면 효과가 있을까?
놀랍게도 의외로 효과가 있다. 마음의 통증은 신체의 통증과 가늘지만 단단히 연결되어 있기에 진통제로도 소기의 효과는 볼 수 있다고. 물론 임시방편에 불과하겠지만 이 신기한 현상은 한 가지 의미 있는 사실을 직관적으로 설명한다.
마음의 무너짐은 신체의 무너짐으로도 연결된다. 물론 반대로도.
- p69

그간 우린 자신에 대해 너무 과신해왔다. 신체의 나이와 정신의 나이가 동일하게 먹을 거라 착각해왔지만 마음은 죽을 때까지 늙지 않았다. 여든 먹은 노인의 마음조차 말 한마디에 무너지는 것이 현실이다. 그렇기에 우린 좀 더 자신의 마음에 따뜻해져야 한다.

충분히 어르고 달래며 먹이고 재워야 한다.
그게 비록 보이지 않는 어린아이일지라도.
- p71

멈춤은 정지가 아닌 충전이라는 당연한 논리를 우린 자주 까먹는다. ‘쉬는 건 나중에 하면 돼. 다 끝내고 그때 가서 편히 쉬면 돼’라고 말하지만 알다시피 인생이란 도통 끝이 나질 않는다.
학교가 끝나면 직장이, 직장이 끝나면 가정이, 가정이 끝나면 육아가, 육아가 끝나면 노후가 우릴 기다리고 있다. 인생이란 뺑뺑이는 놀이터에 있던 것과는 많이 달라 아무리 기다려도 알아서 멈춰주질 않는다.
- p80

쉬어야 할 때 쉬지 않으면 정작 뛰어야 할 때 쉬게 된다. 그러니 다 쓰러져가는 나를 위해, 매일같이 지쳐 사는 나를 위해 부디 한 시간에 한 번쯤은 스스로에게 종을 울려주자. 어린 날의 학교처럼.

지금은 쉬라고.
지금 쉬지 않으면 분명 수업 시간에 졸 거라고.
- p80

타인을 상처 냄으로써 내 상처를 치유하는 사람이 되고 싶지는 않다. 내 상처 따위는 오롯이 책임지며 웃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부러운 건 부럽고, 아픈 건 아프다고 세련되게 고백할 수 있는 사람이.
- p87

분명 승리가 행복이라고 배워왔는데. 세상은 점점 더 승리를 불가능하게 바꿨다. 미치지 않고서는 배길 수가 없었다.
- p90

어른에게도 어른이 필요하다. 만 19세가 넘은 모두를 어른이라 공인하기에 세상은 너무 빠르고, 어렵다. 심지어 더 가파른 속도로 어려워질 것이다. 그렇기에 우린 서로가 서로의 어른이 되어줘야 한다. 다시 한 번 소년 같은 아빠가 될 기회를 줘야 하고 신입사원 같은 부장이 될 용기도 가져야 한다.
- p95

나는 그저 다음 인생을 살 준비가 됐을 뿐이다. 실패는 슬프지만 오늘로 끝낼 것이다. 그게 내가 웃음으로 불행에게 보내는 신호다.

나는 이제 웃으며 다음을 살 것이다.
나는 오늘은 실패했지만, 내일은 웃으며 다시 시작할 것이다.
- p98

지식은 때때로 저주가 된다. 철학자는 인간에 대해 너무 많이 이해하다 정신병을 앓고 투자자는 돈을 극한까지 이해하여 세상이 숫자로 보인다. 세상과 인간에 대해 많이 알고 많이 겪는 것이 꼭 더 많은 행복으로 연결되는 것은 아니다.
- p106

세상에는 메달이 없는 레이스가 더 많다. 누군가는 그딴 걸 왜 하냐고 묻고 또 누군가는 그래서 뭐가 남았냐고 따진다. 매 순간 효용을 증명해야 하는 세상이기에 우린 점점 더 아무것도 하지 않게 된다.
- p112

우리 세대는 유독 ‘작은 실패’에 더 큰 수치심을 느낀다. ‘되’와 ‘돼’ 같은 맞춤법을 틀린다거나 옆 나라의 수도가 어디인지 맞히지 못할 때 우린 상상 이상의 조롱을 만나게 된다. 회사 일도 비슷하다. 뜬구름 잡는 기획은 참아줄 수 있다. 말 그대로 신입이니까. 그런데 복사를 못하는 건 뭐랄까… 어딘가 급이 다른 한심함을 느끼게 한달까?
- p118

세상에는 문제 삼지 않으면 문제가 되지 않는 것들이 더 많다. 우리가 병이라고 지칭하는 것들 중 대부분은 사는 데 지장 없는 성격이나 개성인 경우가 더 많고, 진짜로 치료가 필요한 건 오히려 그토록 작은 것조차 쉽게 넘어가지 않는 사회적 시선이다.

별것 아닌 것은 별것 아니게 둬야 한다.
늘려야 할 건 포비아가 아닌 성향이다.

우린 그렇게 많은 곳이 아프지 않다.
- p119

나쁜 강연자는 희망을 팔아서 돈을 번다. 자신의 커리어가 아닌 타인의 성공을 예시 삼아 인생 역전의 용이함을 말하고 외제차와 아파트, 큰 매출만을 강조하며 듣는 사람들의 생각을 마비시킨다.
그들은 절대 말하지 않는다. 경제적 자유와 불로소득을 위해 얼마나 많은 젊음을 갈아야 하는지. 더러운 꼴은 또 얼마나 많이 견뎌야 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달성의 가능성은 얼마나 작은 바늘구멍 사이에 놓여 있는지. 절대 말해주지 않는다. 그건 안 팔리기 때문이다.
- p128

그래서 우린 좀 더 신중하게 희망을 사야 한다. 그 잘난 비법들을 왜 생면부지인 나에게만 이토록 쉽고 저렴하게 알려주려 하는지, 한 번쯤은 고민해봐야 한다. 단순히 돈을 아끼기 위해서가 아니라 돈보다 더 소중한 것들을 지키기 위해 그들을 의심해야 한다. 내 감정과 시간, 그리고 희망이다.

슬프지만 성공은 어렵다.
쉬운 건 성공이 쉽다는 말 한마디일 뿐이다.

인생에도 족보가 있다는 간편한 한마디에 쏟아붓기에 우리의 시간과 감정은 너무 소중하다.
- p128

‘게으른 완벽주의자.’
게으른 완벽주의자의 특징은 간단하다. 뭘 하든 완벽을 추구하기에 반대로 아무것도 시작할 수 없다. 잘하지 못할 바에는 차라리 내일로 미루는 것을 선택하고, 아무것도 실패하지 않기 위해 결국 아무것도 시도하지 않는다. 그래서 이 병은 슬픈 병이다. 문제를 몰라서가 아니라 너무 잘 알아서 생기는 병이기 때문이다.
- p133

우린 시작이 어렵지 끝을 맺지 못하는 놈들은 아니다. 일단 뭐든 시작만 하면 퍼펙트하게 끝내지 않고는 못 배기는 성격이기에 시작만 하면 스스로를 멈출 줄 모른다. 정리하자면 이런 것이다.

우린 할 수 있는 일들로, 할 수 없는 것들을 해내는 사람들이다.
- p135

공감은 단순한 감성을 넘어 지적 능력까지 필요한 영역이 되었다. 요즘 시대의 공감이란 전혀 다른 상황에서도 비슷한 경험과 감정을 유추할 수 있는, 꼼꼼한 이해가 필요한 능력이 됐기 때문이다.
- p140

사람에겐 때때로 말 없는 위로가 필요하다. 몇 마디 따끔한 말로 구성된 무정한 위로보다 너의 상처를 이해하고 있다는 깊은 끄덕임과, 진심으로 네 말에 공감하고 있다는 눈 마주침이 우리에겐 훨씬 더 절실할 때가 있다. 아니, 많다.
- p151

조용한 게 좋다. 심심한 건 편안하다. 나른한 건 안정적이다. 짜릿함은 여전히 즐겁지만, 뭐랄까. 조금 피곤하다. 예상치 못한 일은 이제 기쁜 이벤트가 아닌 새로운 숙제다. 어제와 같은 하루가 나쁘지 않다. 즐거워할 일은 없지만 실망할 일도 없는 이 일상에 감사하게 된다. 나도 이제 어른이 다 됐나 보다.
- p152

어른의 행복은 조용하다. 짜릿함보다는 안도감에, 특별함보단 일상적임에 더 가깝다. 아무 탈 없이 일할 수 있어서, 아픈 곳 없이 가족과 통화할 수 있어서, 희망은 없어도 절망도 없이 내일을 또 살아갈 수 있어서 행복할 수 있는 게 지금의 내 삶이다. 누군가는 그토록 조용한 인생에서도 행복을 발견할 수 있냐고 묻겠지만, 물론.
- p153

때로는 소유하지 못한 고통보다 소유하는 불편함이 더 크다. 그 말처럼 빗금 쳐진 관계까지 끌어안으려다 소중한 마음까지 다치지는 않을 것이다. 놓아줄 것은 놓아주고 소중한 것에 더 집중하는 성숙함을 배울 것이다.
사람을 싫어해도 괜찮다. 소중한 것을 더 좋아하기 위해서.
- p162

마음이 지옥 같은 날, 모든 게 실패한 것 같은 날일수록 보다 공들여 웃고 감사하고 인사하자. 나를 위해서. 내 마음을 지키기 위해서. 그 작은 태도가 어떤 말보다 강력한 신호가 되어줄 테니.
- p168

어릴 땐 사람이 없는 시간이 외로움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살다 보니 사람이 진짜 외로워지는 순간은 혼자일 때가 아니라, 함께 있음에도 여전히 혼자 같은 순간이었다. 내가 아니라 누군가가 되어야만 사랑받을 수 있을 때, 사람은 진심으로 외로워졌다. 그러므로 사람에게, 아니 나에게 진정으로 필요했던 것은 옆 사람이 아니었다. 내 사람이었다.
- p170

잃지 않고 싶은 기억과 추억이 많아질수록 우린 보다 고요해져야 한다. 감각의 셔터를 내리고 조용히 더 조용히 스스로에게 정적을 제공해야 한다. 깨끗한 밤에만 활동하는 반딧불이처럼 그제야 감각은 스트레칭을 하고 차 한 잔을 즐길 테니까.
감각은 정지가 아니라 정적을 좋아하니까.
- p177

최근엔 의도적으로 혼자가 된다. 의미 없는 술자리에서 분위기를 띄우려다 가족에게 써야 할 에너지까지 낭비하지는 않는다. 지인들의 때 묵은 감정 배설은 정중히 사양할 줄도 알게 되었다. 거기다 한 달 중 며칠은 나와의 대화를 갖기 위해 공실로 비워둔다. 외롭지만 생산적이다. 맞다. 생산적인 외로움이다.
- p182

현명한 사람일수록 함부로 불행해지지 않는다.
- p187

그래서 현명함이란 의외로 행복의 양을 늘리는 것보다 불행의 양을 줄이는 데 더 많이 쓰인다. 일단 한번 불행으로 물든 마음은 어떤 행복으로도 쉽게 퇴치되지 않기 때문이다.
- p187

내 인생은 생각만큼 불행하지 않고, 생각보다 행복하다.

나는 불행해서 불행한 것이 아니라 불행하다고 하니 불행했기 때문이다. 부족했던 건 행복의 양이 아니라 일종의 기준점이었다. 그래서 요즘은 불행이 발견되면 일단 연필로 기준점을 긋는다. 거기서 통과하지 못한 것들은 절대 불행으로 등록해주지 않는다. 이게 내가 불행을 수비하는 방식이다.
- p1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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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쁘다, 귀엽다, 착하다, 통통하다(응?) 아내가 지겹지 않은 이유에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가장 중요한 이유는 이거다. 아내와 함께 있으면 즐겁다. ‘웃기다’와는 결이 다르다. 결과적으로 웃음이 새 나오는 거야 비슷하겠지만 질적인 측면에서 차이가 있는 것이다. ‘마음의 긴장이 풀리는 것.’ 이게 핵심이다.
꼬투리 잡히지 않게 말해야 한다는 부담감도 무던한 사람인 척 행동해야 한다는 책임감도 아내 앞에선 없다. 만약 집이란 게 정말 존재한다면 여기가 내 집이다.

내가 나로서 존재해도 된다는 당연함. 나에겐 꽤나 낯선 감정이다. 아내는 ‘틀리다’는 말도 ‘다르다’라고 발음할 줄 아는 사람이었기에 나는 힘껏 내가 될 수 있었다.

어릴 땐 사람이 없는 시간이 외로움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살다 보니 사람이 진짜 외로워지는 순간은 혼자일 때가 아니라, 함께 있음에도 여전히 혼자 같은 순간이었다. 내가 아니라 누군가가 되어야만 사랑받을 수 있을 때, 사람은 진심으로 외로워졌다. 그러므로 사람에게, 아니 나에게 진정으로 필요했던 것은 옆 사람이 아니었다. 내 사람이었다.

세월이라는 호르몬은 비누로는 닦아낼 수 없다. 기름기 없이 뽀득뽀득 몸을 닦아내도 몸 안에서 새 나오는 냄새에는 방도가 없다. 절망이란 이토록 일상적이다. 대단한 것에 실패할 때보다 당연한 것을 해내지 못할 때 인간은 더 크게 좌절한다.

늙어가는 게 싫다는 생각을 부쩍 자주 한다. 청년이라는 단어의 범주가 점점 넓어지면서 어찌저찌 다리 한쪽은 걸친 채 살아가고 있지만 마음만은 벌써 중년이다. 젊음은 어느새 추억 같고 나도 이제 끝물이라는 말도 심심찮게 입에 담는다.

세월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인 노인의 삶은 분명 멋지다. 그러나 세월이라는 반격 불가능한 타격에 저항하는 삶 또한 존경스럽다. "어쩔 수 없지" "이런 게 인생인 걸"이라는 자조보다 여전히 눈앞의 문제에 지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삶이 어쩌면 가장 큰 젊음일 것이다.

초단기 기억상실은 흔한 질병이라고 한다. 아주 먼 옛날의 기억이 아닌 고작 1분 전의 기억을 놓쳐버리는 질병으로 주요 원인은 나이가 아니다. 우리가 매일같이 보고 있는 ‘스마트폰’이다. 또 스마트폰이냐고 볼멘소리를 할 수도 있겠지만 어쩌겠냐. 진짜로 안 좋은걸.

스마트폰을 하는 모든 순간 나는 내가 쉬고 있는 줄 알았다. 눈에 띄게 움직이는 것이라곤 손가락, 그중에서도 엄지와 검지밖에 없었기에 나는 내가 여유를 즐기는 줄 알았지만, 전혀. 내 머리통은 야근 중이었다.

감각에도 휴식이 필요하다. 스마트폰, 티브이, 노트북, 지하철 플랫폼 소리, 옆 사람 다리 떠는 소리, 유튜브 자막 등등. 나노 초단위로 우리의 눈과 귀와 코와 뇌로 주입되는 정보에서 완벽히 해방되는 시간이 우리의 감각에겐 필요하다. 하루 한 시간만이라도 스마트폰과 컴퓨터로부터 눈과 귀를 차단하고, 너덜너덜해진 오감에게 조용한 시간을 주어야 한다.
그렇지 못한 감각은 모든 노동자가 그렇듯 파업을 하기 때문이다. 뇌는 쇠파이프를 두들기며 두통을 만들 것이고 귀는 밤새도록 이명을 노래처럼 부를 것이다. 초단기 기억상실은 단지 시작일 뿐이다.

잃지 않고 싶은 기억과 추억이 많아질수록 우린 보다 고요해져야 한다. 감각의 셔터를 내리고 조용히 더 조용히 스스로에게 정적을 제공해야 한다. 깨끗한 밤에만 활동하는 반딧불이처럼 그제야 감각은 스트레칭을 하고 차 한 잔을 즐길 테니까.

감각은 정지가 아니라 정적을 좋아하니까.

혼자 있는 시간이 부쩍 늘었다.

혼자 밥을 먹는 것도 어느새 어색하지 않고 편하다.

사람이 싫어진 건 아니다. 오히려 사람이 더 좋아졌달까. 맞지 않는 관계에서 멀어지니 좋은 사람들이 더 많이 남게 됐다. 거기다 만남의 횟수까지 획기적으로 줄이니 만날 때마다 애틋해지는 것은 덤이다.

웃긴 일이다. 사람에게서 멀어지니 사람과 가까워졌다. 나와 내 사람들이다.

최근엔 의도적으로 혼자가 된다. 의미 없는 술자리에서 분위기를 띄우려다 가족에게 써야 할 에너지까지 낭비하지는 않는다. 지인들의 때 묵은 감정 배설은 정중히 사양할 줄도 알게 되었다. 거기다 한 달 중 며칠은 나와의 대화를 갖기 위해 공실로 비워둔다. 외롭지만 생산적이다. 맞다. 생산적인 외로움이다.

뭐 그러다 가끔 놀랄 만큼 휑해진 일상에 겁을 먹고 무엇이든 채워볼까 고민도 하지만, 그전에 스스로에게 꼭 묻는다. 배터리가 얼마나 남았지? 나에게 쓸 용량 30%. 아내에게 쓸 용량 30%. 가족에게 20%. 그리고 남은 20%, 아니 혹시 모르니 10%의 용량만큼만 관계를 채운다. 감당할 수 없는 관계를 우걱우걱 삼키다 또 체하지 않도록. 깜지처럼 뻑뻑히 관계를 채우다 마음이 또 까매지지 않도록.

오늘도 나는 최대한 현명하게 외로워지려 한다.

나는 오늘이 아니라 내일이 너무 걱정됐다. 오늘 잘 살았냐는 배부른 소리는 구겨서 저 멀리 버렸고, 내일도 살아남을 수 있을까에 대한 불안만을 머릿속에 꽉꽉 채웠다. 꼭 생존밖에 없는 유기견처럼 경계심이 강해졌다.

그래서 화를 냈다. 그것도 자주 냈다. 틈만 나면 절약을 요구하고 생필품도 다 사치처럼 보였다. 나도 이러는 내가 지지리도 싫었다. 너무 처량해서 보기 역했다. 그러나 오늘로 다시 되돌아오는 방법을 나는 배우지 못했다. 누가 좀 알려주길 절박하게 바랐는데 너무 커버린 내게 삶은 아무것도 알려주지 않았다. 나는 스스로 살아내야 했다.

낭비하진 않지만 가족들이 원하는 것만큼은 통 크게 장만해줄 수 있는 멋진 가장이 되고 싶었다. 하지만 쉽지 않았다. 나는 너무 어리석고 작아 아내의 마음에 가끔씩 골을 넣기도 했지만 이내 또 자살골을 넣기 바빴다. 다정함도 능력이라는데.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기껏해야 몇 가지 남루한 노력밖에 없었다.

현명한 사람일수록 함부로 불행해지지 않는다.

그래서 현명함이란 의외로 행복의 양을 늘리는 것보다 불행의 양을 줄이는 데 더 많이 쓰인다. 일단 한번 불행으로 물든 마음은 어떤 행복으로도 쉽게 퇴치되지 않기 때문이다.

불행은 행복에 비해 너무 강하고, 구체적이다. 행복이 상상이라면 불행은 일상인 것이다. 어른이 될수록 불행에 대한 수비력이 더 중요해지는 이유다.

내 인생은 생각만큼 불행하지 않고, 생각보다 행복하다.

나는 불행해서 불행한 것이 아니라 불행하다고 하니 불행했기 때문이다. 부족했던 건 행복의 양이 아니라 일종의 기준점이었다. 그래서 요즘은 불행이 발견되면 일단 연필로 기준점을 긋는다. 거기서 통과하지 못한 것들은 절대 불행으로 등록해주지 않는다. 이게 내가 불행을 수비하는 방식이다.

사람이란 의외로 행복 없이도 행복할 수 있다. 불행하지 않은 것만으로도 우린 행복감을 느낄 수 있고 충분한 만족감도 얻을 수 있다. 그래서일까. 이제 와 누군가 내게 행복이 뭐냐 묻는다면 이렇게 답하고 싶다.

"불행이 없는 상태."

행복이란 짜릿함만 있는 것이 아니기에. 편안함과 안도감. 안정감과 잔잔함. 깊은 밤 고민 없이 잠들 수 있는 감사함 또한 우린 행복이라 이름 붙일 수 있기에.

부쩍 불행하다는 기분이 자주 든다면, 나만 뒤처진 것 같다는 생각에 괴로워질 때가 많다면. 조용한 곳으로 들어가 스스로에게 한 번만 물어보자.

"내가 정말로 그렇게 불행해?"
세상이 주는 답에 잠시만 가위표로 반창고를 붙여보자.
행복이란 귀를 열 때보다
귀를 닫을 때 오히려 더 잘 찾아오니까.

에필로그

우린 너무 쓸데없이 불행하고
너무 복잡하게 행복하다

불행이란 기다린다고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는 것.
필사적으로 도망치고 막아내야 하는 것이라는 것.

물론 위인들의 말처럼 추위도 이겨낼 만큼 튼튼한 마음을 가질 수 있다면야 좋겠지만, 그게 어디 쉬운 일인가. 어떤 비교에도 흔들리지 않는 거대한 마음을 키우는 건 또 어떻고. 그런 대단한 일을 이뤄내기 전에 아마도 나는 늙어 죽을 것이다. ‘인생은 불행한 거야’라는 슬픈 체념을 부정하지 못한 채.

그럴 바에 차라리 옷을 더 단단히 입고 집 안의 보일러를 낭낭하게 트는 쪽을 선택한 것이다. 어떤 비교에도 흔들리는 좀생이 같은 내 마음을 너무 잘 알기에, 나를 작게 만드는 모든 것들에서 멀어지는 쪽을 선택했다. 이 책에 나온 모든 이야기들은 그런 목적에서 쓰였다.

당신이 행복하기에 앞서 쉽게 불행해지지 않는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다. 즐겁기 이전에 별 탈 없는 삶을 이어가길 바란다. 매일같이 찾아오는 여름철 모기마저 수행이라 버텨내는 사람이 아니라, 꼼꼼히 방충망을 치고 모기향을 켠 뒤 잔잔한 밤을 보낼 줄 아는 현명한 사람이 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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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우리의 생존을 위해 스스로 ‘귀여워지는 것’보다 훨씬 더 중요한 것이 하나 있다고 한다. 바로 ‘귀여운 것을 보는 것’이다. 왜 그럴까. 요즘 사회에서 나를 죽이는 것은 남이 아닌 나 자신이기 때문이다.
끝도 없이 타인과 비교하며 자신에게 폭언을 퍼붓고, 뒤처지면 안 된다는 불안 때문에 스스로를 재우지 않는 우리의 마음은 늘 긴장과 스트레스로 가득하다. 그 불꽃같은 마음마저 살기 좋은 온도로 식혀낼 수 있는 거의 유일한 것이, 바로 귀여운 것들이다.

가족이 가족을 위로하기도 힘든 세상이다. 서로에 대한 위로는커녕 서로의 불행을 바라지나 않으면 다행인 세상이다. 그런 약육강식의 세상에서 내 마음을 지키는 것은 여간 벅찬 일이 아닐 것이다. 그럴 때 속는 셈치고 귀여운 것을 한번 찾아보자. 고양이든 수달이든 아이든 캐릭터든. 뭐든 좋으니 귀여움이라는 강력한 무기로 경직된 내 마음을 녹이는 그 작은 것들을 찾아가자.

귀여움은 모든 것을 이겨버리니까. 스트레스마저도.

나는 사진을 좋아하지 않았다. 아니 싫어했다. 사진 찍을 시간에 뭐 하나라도 눈에 더 담아야 옳게 된 여행이라 여겼고 추억이란 볼 때가 아니라 떠올릴 때 더 깊은 맛이 난다고 꼿꼿하게 강론했다. 오산이었다. 젊든 늙든 우리의 뇌는 생각보다 많은 추억을 남겨주지 않았다.

기록되지 않은 기억은 생각보다 더 추억으로 남지 못했다. 저화질로 풍화되어 내 머릿속 어딘가를 둥둥 유영하고 있을 뿐, 절대 인화되지 않았다. 그래서 나이가 들면 지갑만큼이나 카메라를 잘 열어야 했다. 늙어서 돈이 없는 것만큼 서러운 게 추억이 없는 것이었으니까.

고작 10년 전만 해도 사람을 싫어하는 데는 꽤 큰 용기가 필요했다. 끊기보다는 맺기가 더 각광받았고 피치 못할 이유로 관계가 끊어지면 설사 피해자라도 불편한 마음을 가져야 했다. 모두의 합의가 이루어진 악인을 제외하면, 우린 사람을 싫어할 수 없었다. 정확히는 표현할 수 없었다.

생각해보면 관계는 꼭 발효식품 같았다. 모든 발효식품이 으레 그렇듯 시간이 지날수록 대체로 풍미 좋게 익어갔지만, 한번 썩어버리면 어떤 음식보다도 더 고약한 악취가 났다. 추억이라는 방부제를 아무리 쳐봐도 이미 썩은 관계 위에 핀 곰팡이는 사라지지 않았다. 붙잡을수록 더 괴로워지기만 했다. 인간관계에도 유통기한이 있었는데. 그땐 그걸 몰랐다.

때로는 소유하지 못한 고통보다 소유하는 불편함이 더 크다. 그 말처럼 빗금 쳐진 관계까지 끌어안으려다 소중한 마음까지 다치지는 않을 것이다. 놓아줄 것은 놓아주고 소중한 것에 더 집중하는 성숙함을 배울 것이다.

사람을 싫어해도 괜찮다. 소중한 것을 더 좋아하기 위해서.

사람의 진짜 우아함은 무너졌을 때 드러난다고 한다.

윗사람에게 깨진 날 후배를 대하는 태도나 안 좋은 일이 넘친 날 웃으며 인사할 줄 아는 여유에서 우린 그 사람의 깊이를 느낄 수 있다. 그러니까 우아함이란 다시 말해 이렇게 정의할 수 있을 것이다.

마음이 두 조각난 날에도 평소처럼 인사하고 웃고 공들여 사과할 수 있는 태도.

마음이 지옥 같은 날, 모든 게 실패한 것 같은 날일수록 보다 공들여 웃고 감사하고 인사하자. 나를 위해서. 내 마음을 지키기 위해서. 그 작은 태도가 어떤 말보다 강력한 신호가 되어줄 테니.

오늘 나는 실패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무너지지 않았다.
나는 오늘 다시 시작한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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