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하면 의사다운 판단을 내리고, 그 결과를 받아들이는 법을 배울 수 있을까? 앞으로 실제적인 의학을 더 많이 배워야겠지만, 생사가 걸린 상황에서 지식만으로 충분할까? 물론 지능만으로는 충분치 않고 도덕적 명확성 또한 필요했다. 앞으로 내가 지식뿐만 아니라 지혜도 함께 얻게 될 거라고 믿는 수밖에 없었다.

삶은 너무나 짧은 ‘잠깐’이기에 충분히 고민할 시간이 없을지도 모른다.

이처럼 결정적인 전환점에서 요점은 단순히 사느냐 죽느냐가 아니라 어느 쪽이 살 만한 가치가 있는가이다. 가령 당신이나 당신의 어머니가 몇 달 더 연명하는 대가로

때때로 죽음의 무게가 손에 잡힐 듯 뚜렷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스트레스와 고통이 공기 중에 감돌았다. 평소에는 그 공기를 들이마시면서도 알아채지 못했다. 하지만 습하고 후텁지근한 날처럼, 공기의 무게 때문에 질식할 것 같은 날도 있었다. 또 어떤 날은 끝이 보이지 않는 여름날의 정글에 갇혀 온몸이 땀에 젖은 채, 환자의 가족이 흘리는 눈물을 비처럼 맞고 있는 느낌이 들기도 했다.

기량이 발전할수록 내가 책임져야 할 부분도 점점 더 커졌다. 어떤 환자를 구할 수 있고 구할 수 없는지, 또 구해서는 안 되는지 제대로 판단하려면 손에 넣기 어려운 예지력이 필요하다.

내가 이 직업을 택한 이유 중 하나는 죽음을 뒤쫓아 붙잡고, 그 정체를 드러낸 뒤 눈 한 번 깜빡이지 않고 똑바로 마주보기 위해서였다. 신경외과는 뇌와 의식만큼이나 삶과 죽음과도 밀접하게 연관된 아주 매력적인 분야였다. 나는 삶과 죽음 사이의 공간에서 일생을 보낸다면 연민을 베풀 줄 아는 사람이 되고 스스로의 존재도 고양시킬 수 있으리라 생각했었다. 하찮은 물질주의, 쩨쩨한 자만에서 최대한 멀리 달아나 문제의 핵심, 진정으로 생사를 가르는 결정과 싸움에 뛰어들고 싶었다. 그곳에서 어떤 초월성을 발견할 수 있지 않을까?

나는 톨스토이가 묘사한 정형화된 이미지의 의사, 무의미한 형식주의에 사로잡혀 기계적으로 질병을 치료하는 의사로 변해가고 있는 게 아닐까 두려웠다. 그리고 더 중요한 인간적인 의미를 완전히 놓치고 있는 건 아닐까 두려웠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나는 며칠만이라도 수술실에서 벗어나기를 고대해 왔다. 충분한 잠, 휴식, 기분전환, 그러니까 바로 평범한 일상의 맛. 그러면 허리 통증과 피로도 정상 수준으로 돌아오리라. 하지만 하루 이틀 지내보니 그런 기대는 헛된 것이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유전과 행복을 각각 하나의 대륙이라고 한다면, 이 둘을 연결하는 보스포루스 다리가 있다. ‘외향성’이라는 성격 특질(trait)이다. 유전적 영향에 의해 외향성 수치는 어느 정도 정해지며, 그 외향성의 정도가 개인의 행복 수치와 깊은 관련을 맺는다.

외로우면 산도 더 높아 보인다.

친구와 함께하면 기왓장만 가벼워지는 것이 아닌가 보다. 눈앞의 장벽도 낮아 보이고, 주사도 잘 맞을 수 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이 책에서 소개하는 큰 착각 중 하나도 행복이 외적인 조건에 의해 좌우된다는 믿음이다.

한국은 이제 돈이나 비타민 결핍에 시달리는 사회가 아니다. "그래도 더 필요해!"라고 고집 피우는 것은 기회비용 차원에서 본다면 자기 삶에 큰 손실을 입히는 것이다. 이 믿음은 행복을 위해 정작 투자해야 할 곳에 집중하지 못하게 만든다.

부유해질수록 돈으로 행복을 사는 것은 점점 어려워진다.

유학 시절, 지도교수가 쓴 논문을 읽은 적이 있다. 제목은 ‘행복은 기쁨의 강도가 아니라 빈도다(Happiness is the frequency, not the intensity, of positive affect)’. 나는 이것이 행복의 가장 중요한 진리를 담은 문장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큰 기쁨이 아니라 여러 번의 기쁨이 중요하다. 객관적인 삶의 조건들은 성취하는 순간 기쁨이 있어도, 그 후 소소한 즐거움을 지속적으로 얻을 수 없다는 치명적인 한계가 있다.
결국 행복은 아이스크림과 비슷하다는 과학적 결론이 나온다. 아이스크림은 입을 잠시 즐겁게 하지만 반드시 녹는다. 내 손 안의 아이스크림만큼은 녹지 않을 것이라는 환상, 행복해지기 위해 인생의 거창한 것들을 좇는 이유다.
하지만 행복 공화국에는 냉장고라는 것이 없다. 남는 옵션은 하나다. 모든 것은 녹는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고, 자주 여러 번 아이스크림을 맛보는 것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중요한 점은 이렇게 철저히 사회적인 뇌가 21세기를 사는 우리의 일상을 여전히 주도한다는 것이다. 내 생각엔, 행복한 사람은 바로 이 고지식한 사회적 뇌를 잘 ‘이용’하는 자들이다.

세상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우선 기본적인 사실을 냉정하게 받아들여야 한다.

태양은 우리를 따뜻하게 해 주고 꽃을 피우기 위해 뜬 것이 아니다. 물리적 법칙에 따라 지구는 자전을 하고, 내가 살고 있는 동네가 태양과 마주 보는 각도로 되돌아오면 아침이 되는 것이다.

세상은 그 누군가의 계획과 목적에 의해 만들어진 것도 아니고, 인간은 더 똑똑해지기 위해 살아온 것도 아니다. 물리적 법칙과 화학반응들에 의해 발생한 것이 우주고, 생명이고, 인간이다. 그 과정에는 어떤 목적도 이유도 없다. 인간은 수천 개 부품으로 이루어진 시계보다 복잡한 존재지만, 이 복잡성 자체가 초자연적인 힘의 존재를 증명하는 것은 아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