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보다 세상에 선한 폭력이란 없다. 어떤 이유에서든 폭력은 악이다. 요즘은 사라진 ‘사랑의 매’조차도 매를 드는 사람의 시각에서 나온 말이지, 매를 맞는 아이의 관점에서 보자면 ‘고통의 매’일 뿐이다.

서열과 차별이 존재한다면 행복한 가정은 이루기 어렵다. 누군가는 힘들고 괴로운데 누군가는 편하고 즐겁다면 평등하지 않은 가족이고, 이런 가족 사이에 행복을 꽃피우기는 힘들다.

가족 안에서의 서열과 차별은 저절로 생기지 않는다. 가족 구성원 중 누군가 잘못된 구조를 만들기 때문에 생긴다. 이럴 때 피해를 받는 다른 가족은 치명적 상처를 받는다. 가족끼리 주고받는 상처는 씻기지도 않고 물릴 수도 없다. 서열과 차별은 저절로 없어지지도 않는다. 가족 구성원 모두의 결단과 노력이 필요하다. 특히 아빠나 엄마, 또는 첫째 등 영향력 있는 사람이 먼저 나서서 바로잡으려 애써야 한다.

우리가 속한 모든 공동체 안에서 알게 모르게 크고 작은 폭력이 일어난다.

아동학대는 폐쇄된 가정 안에서 일어나기 때문에 외부에서 개입하기가 쉽지 않다. 아동은 신체적, 정신적으로 미성숙하기 때문에 학대를 감당하거나 학대에 적절히 대처하기도 어렵다.

어떤 부모는 ‘훈육’이라는 이름으로 아이에게 어떤 권리도 주장할 수 없게 하거나 일방적으로 부모의 말을 듣고 따르도록 강요한다. 심한 경우 아이를 자신의 소유물이나 노예처럼 취급하기까지 한다. 이토록 강압적인 훈육 방식은 지금도 남몰래 이어져 오고 있다.

착한 아이가 되려고 노력할 필요는 없다. 인정받으려 애쓰지 않아도 된다. 무조건 참고 넘어가지 않아도 괜찮다. 혼자서 끙끙 앓으면서 전부 감내하지 않아도 된다. 우리는 모두 가족 공동체의 한 일원일 뿐이다.

우선 자신의 감정을 솔직하게 대면할 줄 알아야 한다. 내가 왜 아픈지, 어째서 힘든지, 아프고 힘든 내 감정의 정체가 무엇인지를 두려워하지 말고, 회피하지 말고, 정확하게 직면해야 한다. 치유의 출발은 바로 여기에서부터 시작된다. 만약 정서적 학대와 물리적 폭력으로 인해 상처를 주고받는 가족의 굴레에서 벗어날 수 없다면, 의료진이나 전문기관에 구체적 도움을 요청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한 인간의 성격이 형성되는 원인을 출생 순서에 따른 특성만으로 모두 설명할 수는 없지만, 대표적인 특성을 알아두면 개인의 성격을 이해하는 데 적잖이 도움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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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지만 독자들이 한 가지만 분명히 기억했으면 좋겠다. ‘가족이라서 다 괜찮다’라는 생각은 착각이라는 것. 가족이니까 모든 문제에 개입하고 지적하고 충고해도 상관없다는 말은 오판이라는 사실이다. 의외로 많은 사람이 가족이니까 상처를 줘도 이해하리라는 잘못된 생각을 한다. 하지만 오히려 가족이라서 더 아프고 속상하고 잊히지 않는다. 남들 같으면 무시하거나 상대하지 않으면 그만이지만, 가족이라서 가슴속이 시커멓게 타들어 간다. 학교는 졸업하면 그만이고, 직장은 옮길 수 있지만, 가족은 바꿀 수도 끝낼 수도 없는 관계이기에 생채기는 점점 심하게 곪아 간다.

자신과 가족을 객관화하는 연습을 위해 이 책이 도움이 되기를 바란다. 자신과 가족을 객관화한다는 뜻은 가족관계를 혈연과 필연의 관계 속에서만 바라보거나 대하지 않고, ‘타인’을 대하듯 적당한 격식과 예의를 갖추는 일이다. 일종의 가족 간 ‘거리 두기’다. 너무 멀지도 너무 가깝지도 않은, 너무 차갑지도 너무 뜨겁지도 않은 적절한 거리를 말한다.
가족에 대해 가졌던 막연한 환상을 깨뜨리고, 가족 간에 적정 거리를 유지하는 것, 이것이 건강한 가족관계를 위한 첫걸음이다. 희뿌연 안개가 걷히면 대상이 명료하게 드러나듯 자신과 가족을 객관화하면 가족이 어떤 존재인지, 내가 어떤 존재인지 비로소 볼 수 있게 될 것이다. 건강한 가족관계를 위해 지금 우리가 꼭 실천해야 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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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에게는 아직 5년이라는 시간이 남았어요." 에마가 말했다.
하지만 그녀의 말은 권위 넘치는 신탁의 말투도 아니었고, 진정으로 믿는 사람의 확신 같은 것도 묻어나지 않았다. 그녀는 내게 호소하듯이 말했다. 뇌를 다쳐서 오로지 숫자로만 말할 수 있었던 환자처럼. 에마는 내게 말을 하고 있다기보다, 이런 일을 진정으로 통제하는 힘을 가진 존재에 호소하고 있었다. 그녀 역시 한 인간에 불과했다. 그녀와 나는 근엄한 분위기에서 의사와 환자의 관계로 있을 때도 있었지만, 지금 이 순간에는 평범한 두 사람에 지나지 않았다. 심연에 직면하여 한없이 위축된 한 사람과 그를 바라보는 또 한 사람.
결국 의사도 희망이 필요한 존재였다.

루시와 나는 병원 침대에 누워 울었다. CT 촬영 결과는 여전히 컴퓨터 화면에 떠 있었고, 의사로서의 내 정체성은 더는 중요하지 않았다. 암은 여러 내장 기관들에 침투해 있었고 진단은 명확했다. 병실은 조용했다.

내 인생의 한 장이 끝난 것처럼 보였다. 어쩌면 책 전체가 끝나가고 있는지도 몰랐다. 나는 사람들이 삶의 과도기를 잘 넘기도록 도와주는 목자의 자격을 반납하고, 길을 잃고 방황하는 양이 되었다. 내 병은 삶을 변화시킨 게 아니라 산산조각 내버렸다. 형형한 빛이 정말로 중요한 것을 비춰주는 에피퍼니의 순간이 찾아온 것이 아니라, 누군가가 내 앞길에 폭탄을 떨어뜨린 것 같은 기분이었다. 이제 다른 길로 돌아가야 할 터였다.

희망(hope)이라는 단어가 처음으로 영어에 등장한 건 약 1,000년 전으로, 확신과 소망을 결합한 의미를 지니고 있었다. 하지만 내가 소망하는 것(삶)과 확신하는 것(죽음)은 달랐다. 그렇다면 내가 말하는 희망의 진짜 의미는 ‘헛된 소망을 위한 여지를 남겨두는 것’이었을까? 그건 아니었다. 의학 통계는 평균 생존 기간 같은 수치를 나타낼 뿐 아니라, 신뢰 수준, 신뢰 구간, 신뢰 한계 같은 도구들을 이용해 수치에 대한 우리의 신뢰도도 측정한다. 그렇다면 ‘통계적으로는 불가능하지만 여전히 가능성 있는 결과, 즉 95퍼센트로 측정된 신뢰 구간을 극복하고 생존할 가능성을 남겨두는 것’, 이것이 내게는 희망이란 것일까? 우리는 과연 생존 곡선을 ‘패배’, ‘비관적’, ‘현실적’, ‘희망적’, ‘망상’ 등의 영역으로 나눌 수 있을까? 숫자는 그저 숫자가 아니던가? 우리는 모든 환자의 생존 확률이 평균 이상이라는 ‘희망’을 기꺼이 받아들이지 않았던가?
통계 자료와 나의 관계는 내가 환자가 되자마자 달라져버렸다.

아무도 내게 앞으로의 계획을 묻지 않아서 다행이었다. 아무런 계획도 없었으니 말이다. 나는 이제 지팡이 없이도 걸을 수 있었지만, 불확실한 앞날을 생각하면 온몸이 마비되는 기분이 들었다.

죽음의 무게가 더 가벼워지지 않는다면 적어도 더 익숙해지기라도 할까?
불치병을 진단받고 나서 나는 두 가지 관점으로 세상을 바라보기 시작했다. 죽음을 의사와 환자 모두의 입장에서 보기 시작한 것이다. 의사로서 나는 "암이라는 전쟁에서 꼭 이길 거야!"라고 선언하거나 "왜 하필 나야?(이 질문에 대한 답은 "나라고 암에 걸리지 말란 법이 있는가?"이다)"라고 물어서는 안 된다는 걸 알고 있었다. 또한 나는 의료 행위, 그와 관련된 복잡한 일, 치료 공식에 대해 많은 걸 알고 있었다. 종양학 전문의와 상담하고 개인적으로도 연구하면서 알게 된 점은 1980년대 후반의 에이즈처럼 오늘날의 말기 폐암도 상황이 변할 수 있다는 사실이었다. 여전히 빠르게 진행되는 심각한 병이지만, 수명을 몇 년 더 늘려주는 치료법들이 등장하고 있다.

죽음을 이해하고 나 자신을 정의하고 다시 전진하는 방법을 찾는 데 도움이 될 어휘를 찾고 싶었다. 직접 체험이라는 특별한 경험을 하면서 문학 작품이나 학술적인 연구에서 멀어지긴 했지만, 내 경험을 언어로 옮겨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헤밍웨이 역시 비슷한 형태의 저술 과정을 설명한 바 있다. 풍부한 경험을 하고 충분히 사색한 뒤 글을 쓰는 것 말이다. 내게는 앞으로 나아가기 위한 글들이 필요했다.

의사로서 나는 절대 환자가 혼자 결정을 내리게 하지는 않았다. 나는 환자를 책임질 의무가 있었다. 그리고 나는 내가 그때와 똑같이 하려고 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의사인 내가 환자인 나를 책임지려는 것이다. 나는 그리스 신에게 저주받았을지 모르지만, 내 병을 나 몰라라 하는 건 불가능하지는 않더라도 무책임한 일로 여겨졌다.

내가 의사가 아닌 환자의 삶을 살게 되면서 내 가족은 갑자기 부산해졌다. 우리는 온라인으로 약을 살 수 있는 계정을 만들고, 침대 난간을 주문하고, 타는 듯한 요통을 덜어줄 인체 공학 매트리스를 샀다. 며칠 전만 해도 내년엔 수입이 여섯 배 늘겠구나 예상하면서 세웠던 우리의 재정 계획이 이젠 위태로워 보였고, 거기에 더해 내가 죽은 뒤에도 루시를 지켜주려면 이런저런 새로운 재정적 장치가 필요할 것 같았다. 아버지는 이렇게 계획을 수정하는 건 병에 지는 거라고, 내가 어떻게든 병을 이겨내고 나을 거라고 말했다. 환자의 가족에게서 이 말을 얼마나 많이 들었던가. 하지만 나는 그들에게 해줄 말이 딱히 떠오르지 않았고, 지금도 마찬가지로 아버지에게 뭐라고 말해야 할지 알 수가 없었다.
달리 어쩌란 말인가?

나는 나 자신의 죽음과 아주 가까이 대면하면서 아무것도 바뀌지 않은 동시에 모든 것이 바뀌었다는 사실을 깨닫기 시작했다. 암 진단을 받기 전에 나는 내가 언젠가 죽으리라는 걸 알았지만, 구체적으로 언제가 될지는 알지 못했다. 암 진단을 받은 후에도 내가 언젠가 죽으리라는 걸 알았지만 언제가 될지는 몰랐다. 하지만 지금은 그것을 통렬하게 자각한다. 그 문제는 사실 과학의 영역이 아니다. 죽음은 사람을 불안하게 만든다. 그러나 죽음 없는 삶이라는 건 없다.

죽음은 누구에게나 찾아오는 순회 방문객과도 같지만, 설사 내가 죽어가고 있더라도 실제로 죽기 전까지는 나는 여전히 살아 있다.

내 삶은 그동안 잠재력을 쌓아왔으나 그 잠재력은 결국 빛을 보지 못할 것이었다. 나는 정말 많은 걸 계획했고, 그 계획이 곧 성사될 참이었다. 내 몸은 쇠약해졌고, 내가 꿈꿨던 미래와 나 자신의 정체성은 붕괴되었으며, 내 환자들이 대면했던 실존적 문제를 나 역시 마주하게 되었다. 폐암 진단은 확정되었다. 내가 신중하게 계획하고 힘겹게 성취한 미래는 더는 존재하지 않았다. 일하는 동안 무척 익숙했던 죽음이 이제 내게 구체적인 현실로 다가왔다. 나는 죽음과 마침내 대면하게 되었지만, 아직 죽음의 정체를 명확하게 알 수 없었다. 지난 몇 년 동안 내가 치료했던 수많은 환자들이 남긴 발자국을 보고 따라갈 수 있어야 할 텐데, 기로에 선 내 앞에 보이는 거라곤 텅 비고, 냉혹하고, 공허하고, 하얗게 빛나는 사막뿐이었다. 마치 모래 폭풍이 그동안 친숙했던 모든 흔적을 쓸어간 것처럼.

예전에 내가 맡았던 환자들처럼 나는 죽음과 마주한 채 내 삶을 가치 있게 만드는 것이 무엇인지 이해해야 했다. 그리고 그렇게 하려면 에마의 도움이 필요했다. 나는 의사와 환자 사이에서 입장이 갈린 채, 의학을 계속 파고들지 아니면 문학에서 답을 찾아야 할지 고민스러웠다. 죽음과 마주하며 나는 예전의 삶을 복원하기 위해서, 아니면 새로운 삶을 찾기 위해서 부단히 버둥거렸다.

병을 앓으면서 겪게 되는 종잡을 수 없는 건 가치관이 끊임없이 바뀐다는 것이다. 환자가 되면 자신에게 중요한 게 뭔지 알아내려고 계속 애를 쓰게 된다. 누군가가 내 신용카드를 가져가 버리는 바람에 자금 계획 세우는 법을 배워야 하는 상황에 처하는 것과 비슷하다. 신경외과 의사로 일하기로 결정했더라도, 두 달 뒤엔 생각이 달라질 수 있다. 두 달 후에는 색소폰 연주를 배우거나 신앙생활에 몰두하고 싶은 마음이 생길지도 모르는 일이다. 죽음은 단 한 번 있는 일이지만, 불치병을 안고 살아가는 건 계속 진행되는 과정이다.

어느 순간 나는 약간의 협상을 시도했다. 정확히 말하면 협상이라기보다는 이런 식이었다. "하느님, <욥기>를 읽었는데 이해가 안 됩니다. 하지만 제 믿음을 시험하려고 이러시는 거라면, 제 믿음이 얼마나 약해 빠졌는지 이제 아셨을 겁니다. 저는 파스트라미 샌드위치에 매운 겨자가 빠져 있기만 해도 불경스러운 말을 뱉는 사람이니까요.3 하느님, 제게 이렇게 핵폭탄급 시련을 주실 필요는 없었을 텐데요……." 이렇게 협상을 하다가 분노가 치밀었다. "평생을 바쳐 여기까지 왔는데, 이제 암을 주십니까?"
그리고 마침내 나는 부정, 그것도 전면적인 부정 단계에 이르렀다. 아무것도 확실하지 않은 상황에서는 오래 살 수 있을 거라고 가정하는 수밖에 없다. 그렇게라도 생각하지 않으면 앞으로 나아갈 수 없으니까.

나는 내 삶의 모든 문장에서 주어가 아닌 직접 목적어가 된 기분이었다.

하지만 내가 바라는 게 뭔지는 몰라도, 나는 히포크라테스나 마이모니데스, 오슬러도 가르쳐주지 않은 뭔가를 배웠다. 의사의 의무는 죽음을 늦추거나 환자에게 예전의 삶을 돌려주는 것이 아니라, 삶이 무너져버린 환자와 그 가족을 가슴에 품고 그들이 다시 일어나 자신들이 처한 실존적 상황을 마주보고 이해할 수 있을 때까지 돕는 것이다.

한 무더기의 새로운 진통제가 처방되었다. 병원에서 절뚝거리면서 나올 때, 불과 엿새 전만 해도 수술실에서 거의 36시간 가까이 서서 버틸 수 있었던 것이 의아스럽기만 했다. 한 주 만에 이렇게 병약해진 건가? 어느 정도는 그랬다. 하지만 그 36시간을 버티기 위해 요령을 부리기도 하고 동료 외과의들의 도움을 받기도 했다. 그런데도 극심한 통증을 느꼈었다. CT 촬영과 검사 결과를 보면, 나는 암에 걸렸을 뿐만 아니라 몸도 거의 죽겠다 싶을 정도로 지쳐 있었다. 이렇게 내 건강 상태에 대한 두려움이 공식적으로 확인되었으니 이제 나는 환자, 신경외과학, 선의 추구라는 책무에서 벗어나게 된 걸까? 나는 그렇다고 생각했지만 거기에는 역설이 있었다. 환자들을 돌봐야 한다면서 나를 몰아붙이던 그 의무가 사라지자 나 자신이 어느새 병약자가 되어있었던 것이다. 마치 있는 힘을 다해 결승선을 통과한 후 쓰러지는 달리기 선수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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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관점을 바꾸고 나니, 환자가 수술을 의사에게 위임하는 서류에 서명하는 사전 동의는 신약 광고에 덧붙이는 해설처럼 모든 위험을 최대한 빠르게 줄줄 읊어주는 법적 행동이 아니라 고통 받는 동포와 굳은 약속을 맺는 기회가 되었다. ‘이제부터 우리는 함께입니다. 여기 헤쳐 나갈 길이 있습니다. 나는 최선을 다해 당신을 회복의 길로 인도할 것을 약속합니다.’
이즈음 나는 좀 더 유능하고 노련한 레지던트가 되어 있었다. 마침내 조금은 숨을 돌릴 여유가 생겼고, 이제는 필사적으로 매달리지 않아도 됐다. 그리고 내가 맡은 환자의 안녕에 대한 전적인 책임을 받아들이게 되었다.

병명을 들으면 대부분의 환자는 침묵을 지킨다.(patient라는 단어의 초기 뜻 중 하나는 ‘불평 없이 곤경을 견디는 자’이다.) 품위를 지키기 위해서건 충격 때문이건 보통은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그래서 의사는 환자의 손을 잡는 것으로 의사소통을 시도한다. 곧바로 강한 모습을 보이는 사람도 간혹 있다(대개는 환자 본인보다 배우자).

환자는 의사에게 떠밀려 지옥을 경험하지만, 정작 그렇게 조치한 의사는 그 지옥을 거의 알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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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하면 의사다운 판단을 내리고, 그 결과를 받아들이는 법을 배울 수 있을까? 앞으로 실제적인 의학을 더 많이 배워야겠지만, 생사가 걸린 상황에서 지식만으로 충분할까? 물론 지능만으로는 충분치 않고 도덕적 명확성 또한 필요했다. 앞으로 내가 지식뿐만 아니라 지혜도 함께 얻게 될 거라고 믿는 수밖에 없었다.

삶은 너무나 짧은 ‘잠깐’이기에 충분히 고민할 시간이 없을지도 모른다.

이처럼 결정적인 전환점에서 요점은 단순히 사느냐 죽느냐가 아니라 어느 쪽이 살 만한 가치가 있는가이다. 가령 당신이나 당신의 어머니가 몇 달 더 연명하는 대가로

때때로 죽음의 무게가 손에 잡힐 듯 뚜렷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스트레스와 고통이 공기 중에 감돌았다. 평소에는 그 공기를 들이마시면서도 알아채지 못했다. 하지만 습하고 후텁지근한 날처럼, 공기의 무게 때문에 질식할 것 같은 날도 있었다. 또 어떤 날은 끝이 보이지 않는 여름날의 정글에 갇혀 온몸이 땀에 젖은 채, 환자의 가족이 흘리는 눈물을 비처럼 맞고 있는 느낌이 들기도 했다.

기량이 발전할수록 내가 책임져야 할 부분도 점점 더 커졌다. 어떤 환자를 구할 수 있고 구할 수 없는지, 또 구해서는 안 되는지 제대로 판단하려면 손에 넣기 어려운 예지력이 필요하다.

내가 이 직업을 택한 이유 중 하나는 죽음을 뒤쫓아 붙잡고, 그 정체를 드러낸 뒤 눈 한 번 깜빡이지 않고 똑바로 마주보기 위해서였다. 신경외과는 뇌와 의식만큼이나 삶과 죽음과도 밀접하게 연관된 아주 매력적인 분야였다. 나는 삶과 죽음 사이의 공간에서 일생을 보낸다면 연민을 베풀 줄 아는 사람이 되고 스스로의 존재도 고양시킬 수 있으리라 생각했었다. 하찮은 물질주의, 쩨쩨한 자만에서 최대한 멀리 달아나 문제의 핵심, 진정으로 생사를 가르는 결정과 싸움에 뛰어들고 싶었다. 그곳에서 어떤 초월성을 발견할 수 있지 않을까?

나는 톨스토이가 묘사한 정형화된 이미지의 의사, 무의미한 형식주의에 사로잡혀 기계적으로 질병을 치료하는 의사로 변해가고 있는 게 아닐까 두려웠다. 그리고 더 중요한 인간적인 의미를 완전히 놓치고 있는 건 아닐까 두려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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