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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은 장군에게 주어진 마지막 완전한 책이었다. 장군은 과묵하면서도 탐욕스러운 독자 였다. 전쟁중이든 휴식중이든 연애중이든 항상 그랬다. 

하지만 그의 독서에는 일정한 순서나 방법이 없었다. 장군은 한순간도 책을 손에서 떼지 않았다. 

어떤 유형의 불빛 아래서도 책을 읽었다. 때로는 나무 아래를 거닐며 책을 읽었고 때로는 적도의 내리쬐는 태양아래서 책을 읽었다. 마차를 타고 돌길을 지날때도 그늘 아래서 책을 읽었고 해먹에 누워 편지를 받아 적도록 불러주면서도 해먹을 흔들며 책을 읽었다. 

리마의 서적상 한명이 장군의 어마어마한 장서의 양과 종류를 보고는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그의 장서에는 없는 책이 거의 없었다. 그리스 철학자의 저작에서부터 수상전문서적까지 없는 책이 없었다. 

젊은 시절에는 스승 시몬 로드리게스의 영향을 받아 낭만파 작가들의 작품을 대거 읽었다. 

지금까지도 그는 여전히 굶주린 듯이 이런 책들을 읽고 있다. 이상주의의 열정적인 성격 때문에 그는 이런 책을 읽는것이 마치 자신이 쓴 작품을 읽는 것 같았다. 

장군애 여생은 온통 열정적인 독서로 채워졌다. 

결국 그는 주의의 모든 책을 다 읽었다. 

특정 작가의 작품만 편애 하지 않고 여러 시대 작가들의 책을 두루 좋아했다. 장군의 책장은 항상 빽빽하게 채워져 있었고 침실과 복도도 책으로 가득차 지나다니는 통로가 몹시 좁았다. 어지럽게 널린 문서들이 나날이 늘어나 산처럼 쌓였고 결국 서류철에 넣어 찾는 것으로 위안을 삼아야 했다. 

장군은 자신의 장서와 문서들을 전부 다 읽은 적이 없었다.

 한도시를 떠날때면 가장 신뢰하는 친구에게 장서 관리를 맡겼다. 끝내 책들의 행방을 알지 못하는 일이 있어도 그래야만 했다. 

평생을 떠돌아다니는 군인 생활로 인해 그는 볼리비아에서 베네수엘라까지 2000킬로미터에 달하는 길에 책과 문서의 궤적을 남겼다. 

시력을 잃기 시작하기 전까지 때로는 서기관이 독서를 돕기도 했다. 

결국 장군은 안경의 번거로움 때문에 서기관에게 전적으로 의존하게 되었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독서에 대한 흥미가 점점 줄어들었다. 항상 그랬듯이 장군은 문제의 원인을 객관적인 것으로 돌렸다.

'좋은 책이 갈수록 줄어들고 있어.'

그는 항상 이렇게 말하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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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NY YEARS LATER as he faced the firing squad, Colonel Aureliano Buendía was to remember that distant afternoon when his father took him to discover ice. 


At that time Macondo was a village of twenty adobe houses, built on the bank of a river of clear water that ran along a bed of polished stones, which were white and enormous, like prehistoric eggs. 

The world was so recent that many things lacked names, and in order to indicate them it was necessary to point. 

Every year during the month of March a family of ragged gypsies would set up their tents near the village, and with a great uproar of pipes and kettledrums they would display new inventions. 

First they brought the magnet. A heavy gypsy with an untamed beard and sparrow hands, who introduced himself as Melquíades, put on a bold public demonstration of what he himself called the eighth wonder of the learned alchemists of Macedonia.


Muchos años después, frente al pelotón de fusilamiento, el coronel Aureliano Buendía había de recordar aquella tarde remota en que su padre lo llevó a conocer el hielo.

 

Macondo era entonces una aldea de veinte casas de barro y cañabrava construidas a la orilla de un río de aguas diáfanas que se precipitaban por un lecho de piedras pulidas, blancas y enormes como huevos prehistóricos.


 El mundo era tan reciente, que muchas cosas carecían de nombre, y para mencionarlas había que señalarías con el dedo.


 Todos los años, por el mes de marzo, una familia de gitanos desarrapados plantaba su carpa cerca de la aldea, y con un grande alboroto de pitos y timbales daban a conocer los nuevos inventos. 


Primero llevaron el imán. Un gitano corpulento, de barba montaraz y manos de gorrión, que se presentó con el nombre de Melquiades, hizo una truculenta demostración pública de lo que él mismo llamaba la octava maravilla de los sabios alquimistas de Macedon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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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


 사흘째 비가 내리고 있었다. 집안에 들어온 게를 얼마나 잡았는지 모른다.

펠라요는 잡은 게를 버리려고 질펀한 마당을 지나 바닷가로 갔다.

게 썩는 냄새 때문에 갓난아이가 밤새 고열에 시달렸다고 생각했다. 화요일부터 세상은 우중충했다.

하늘도 바다도 하나같이 잿빛이었다.

3월에는 반짝거리던 모래사장도 이제는 썩은 조가비와 진흙탕 뒤범벅이었다.

대낮인데도 날씨가 흐린 탓에 게를 버리고 돌아오던 펠라요는 마당 한 쪽에서 꿈틀거리고 있는 게 무엇인지 한눈에 알 수가 없었다.

가까이 다가가 보니, 어떤 노인이 진흙에 얼굴을 처박고 있었다.

노인은 일어나려고 안간힘을 썼으나 거대한 날개 때문에 어쩔 도리가 없었다.

 

 한 광경에 놀란 펠라요는 아내 엘리센다에게 달려갔다.

그리고 아이에게 물수건을 하고 있던 아내를 마당으로 데려갔다. 두 사람은 쓰러진 노인을 보고 어안이 벙벙했다.

차림새는 꼭 넝마주이 같았고, 맨숭맨숭한 대머리에는 센 머리카락 몇 가닥이 붙어있었으며, 이도 다 빠져버리고 몇 개 남지 않았다.

초라한 행색에 물초가 되었으니, 노인에게서 위엄은 찾아볼 수가 없었다.

날개는 독수리보다 더 거대했다. 그러나 깃털은 듬성듬성했고, 그나마 더러웠다.

게다가 진흙탕에 처박혔으니 꼼짝할 것 같지도 않았다. 펠라요와 엘리센다는 여기저기 자세히 뜯어보는 동안 이내 노인에게 친근감을 느꼈고, 마침내 말을 붙여보았다.

노인의 말은 무슨 방언인지 도무지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목소리만은 선원처럼 근사했다.

그래서 그들 부부는 풍랑을 만나 난파한 외국 선원이라고 대충 넘겨짚었다.

그러나 날개가 달려있다는 사실이 마음에 걸렸기 때문에 이웃집 여자를 불러 노인을 보게 했다.

그 여자는 이승의 일이건 저승의 일이건 모르는 게 없는 사람이었는데, 한번 척 보더니 대번에 이렇게 말했다.

 “천사야. 틀림없이 아이 때문에 내려왔어. 그런데 너무 늙어서 비를 맞고 나뒹굴어버렸네.”

다음날이 되자, 펠라요 집에 살아있는 천사가 붙잡혀있다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이 없었다.

도통한 이웃집 여자는 요즘 천사란 하늘나라에서 음모를 꾸미다 도망친 나쁜 놈들이라고 했으나 부부는 노인을 몽둥이로 때려잡고 싶은 생각은 없었다.

펠라요는 그 날 오후 내내 경찰봉으로 무장하고 부엌에 앉아 노인을 감시했고, 잠자리에 들기 전에는 진흙 뻘에서 노인을 끌어내 닭장에 가두었다. 한밤중이 되자 비가 그쳤다.

펠라요와 엘리센다는 그때까지 게를 잡아죽이고 있었다. 잠시 후 아이가 깨어났다.

열도 내렸고, 식욕도 되찾았다.

그러자 그들은 마음이 너그러워졌고, 뗏목에 삼일 분의 식량과 물을 싣고 천사를 태워 먼바다에 버리기로 작정했다. 나머지는 운명에 맡기는 수 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날이 밝아 마당에 나가보니 동네 사람들이 닭장 앞에 모여있었다. 천사를 놀리는 사람들의 태도에서 신앙심은 눈곱만큼도 찾아볼 수 없었다.

그리고 철망 사이로 먹을 것을 던져주는 품은 천사와 같은 초자연적인 존재를 대하는 태도가 아니라 서커스단 동물 다루는 듯했다.

 

 사가 신부는 이상한 소문을 듣고 일곱 시가 되기도 전에 허겁지겁 달려왔다.

그 시간쯤에 모여 있던 구경꾼들은 새벽녘 구경꾼처럼 짓궂지 않았다. 그저 노인의 장래에 대해서 갖가지 추측을 하고 있었다.

순진한 사람들은 세계의 시장으로 임명될 것이라고 생각했고, 괄괄한 성격의 사람들은 오성장군으로 승진시켜 전쟁이란 전쟁에서 모두 이겨야 한다고 주장했다.

몇몇 몽상가들은 노인의 씨를 받아 날개 달린 현인 가문을 세우고, 이들에게 세상사를 맡기는 게 좋겠다고 여겼다.

사실 곤사가 신부는 땔나무꾼 출신이었다.

신부는 철망 사이로 닭장 안을 들여다보면서 단숨에 몇 가지 교리문답을 주워섬겼다.

그리고 처량한 노인을 좀 더 자세히 살펴볼 수 있도록 문을 열어 달라고 거듭 부탁했다.

어리둥절한 암탉들 틈에 끼어 있는 노인은 사람이라기보다는 차라리 거대한 몸집의 늙은 씨암탉 같았다.

닭장 구석에 드러누워 햇볕에 날개를 말리고 있었는데, 주변에는 새벽녘 구경꾼들이 던져준 과일 껍질과 음식물 찌꺼기가 널려져 있었다.

신부가 닭장 안으로 들어가 라틴어로 아침 인사를 했을 때, 노인은 이 세상의 부당한 대우에는 개의치 않는다는 듯이 골동품 같은 눈을 들더니 방언으로 중얼거렸다.

신부는 하느님의 말도 이해 못하고 하느님의 종에게 인사할 줄도 모르는 노인을 보고 문득 사기꾼일지도 모른다는 의심이 들었다.

가까이 다가가 살펴보니 노인은 너무나 인간적이었다.

후줄근한 냄새는 참을 수 없을 만큼 역겨웠고, 날개 뒤편 여기저기에 해초가 붙어있었으며, 깃털은 바람을 맞아서 망가져 있었다.

처참한 몰골 어느 곳에서도 고결한 천사의 품격은 도무지 찾아볼 수가 없었다.

이윽고 신부는 닭장에서 나와 구경꾼들에게 간단한 설교를 했다.

악마란 카니발에서처럼 갖가지 속임수로 경망한 사람들을 혼란시키는 못된 버릇이 있다는 사례를 들어 순진한 생각은 위험천만이라는 것이다.

날개만으로는 독수리와 비행기도 구별하기 어려운데, 하물며 어떻게 천사라고 단정할 수 있겠느냐고 반문했다. 아무튼 신부는 주교에게 편지를 보내겠다고 했다.

그러면 주교는 윗사람에게 편지를 쓸 것이고, 마침내 교황에게까지 소식이 알려지면 최고 재판소에서 판결을 내릴 것이라고 했다.

 

 신부의 신중한 태도는 궁금증을 부채질했다.

천사가 붙잡혔다는 소문은 급속도로 퍼졌고, 몇 시간 후 마당은 시장바닥처럼 북적거렸다.

마당이 터질 정도로 사람들이 모여들었고, 이들을 해산시키기 위해 무장한 군인들을 불러와야만 했다.

엘리센다는 허리가 부러지도록 쓰레기를 치우다가 문득 좋은 생각이 떠올랐다.

마당에 울타리를 두르고 천사를 보러온 사람들에게 오 센타보(화폐 단위)씩 받겠다는 것이다.

멀리 떨어진 마르티나카(지방 이름)에서도 구경꾼들이 찾아왔다.

곡마단도 들어왔다.

재주꾼이 날개를 달고 몇 번인가 사람들 위를 붕붕 날아다녔으나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았다.

천사의 날개가 아니라 하늘 나라 박쥐의 날개를 달았기 때문이다.

병을 고쳐보겠다는 일념으로 카리브 해에서 찾아온 중환자들도 있었다.

그 중에는 어려서부터 심장 박동수를 세어 왔는데 이제는 숫자가 모자라 더 이상 셀 수 없다는 여자도 있었고, 성좌에서 들려오는 소음 때문에 도저히 잠을 이룰 수 없다는 자메이카 사람도 있었고, 한 밤중에 일어나 낮에 한 일을 망가뜨리는 몽유병자도 있었다.

물론 이보다 증세가 가벼운 사람들도 많았다. 펠라요와 엘리센다는 온 세상이 떠들썩한 북새통 때문에 몸은 파김치가 되었으나 마음만은 행복했다.

일주일도 못되어 방마다 돈이 가득 쌓였으며, 입장할 차례를 기다리는 순례자들이 지평선 너머까지 줄을 서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런일에 무관심한 사람은 당사자인 천사였다.

천사는 둥지 안에서 편안하게 지낼 궁리를 하며 시간을 보냈다.

남포등(燈)의 지독한 열기와 철망 안으로 흘러드는 성사(聖事) 촛불 때문에 정신이 혼미했다.

사람들은 천사에게 정제한 장뇌를 먹이려고 했다.

도통한 이웃집 여자가 정제한 장뇌는 천사들의 특별한 음식이라고 일러주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천사는 그 음식을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마찬가지로 신도들이 가져온 교회 음식도 입에 대지 않았다.

천사이기 때문에 그런 것인지 아니면 노인이어서 그런 것인지 아무도 모를 일이지만, 가지를 넣고 끓인 죽밖에 먹지 않았다.

그러나 인내심 하나만은 초자연적이었다.

특히 처음에 그랬다. 닭장 안의 암탉들은 날개에 창궐한 천상의 기생충을 쪼아먹고, 장애인들이 깃털을 마구 뽑아 신체에 문지르고, 돈독한 신심을 가진 사람들조차 노인이 일어나면 전신을 살펴볼 요량으로 돌멩이를 던졌다.

노인이 반응을 보였을 때는 사람들이 벌겋게 달군 낙인으로 옆구리를 지졌을 때뿐이었다.

몇 시간 동안이나 꼼짝 않고 있었기 때문에 죽었으려니 생각하고 그랬던 것이다. 노인은 화들짝 놀라서 눈을 떴다.

눈에는 눈물이 가득 고여있었다.

그리고 신비한 언어로 고함을 지르면서 날개를 몇 번 퍼덕거리자 회오리바람이 일면서 닭똥과 달나라 먼지가 휘날렸다. 이 세상에서는 볼 수 없는 공포의 돌개바람이었다.

많은 사람들은 분노 때문이 아니라 아픔 때문에 바람을 일으켰다고 믿었다.

하지만 그 이후로는 노인을 귀찮게 하지 않으려고 조심했다.

잠자코 있는 노인은 은퇴한 영웅이 아니라 휴화산이라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곤사가 신부는 포로의 본성에 대한 확정적인 판단을 기다리는 동안 상투적인 말로 군중들의 경망한 행동을 제지했다.

그러나 로마에서 보낸 편지는 느긋했다.

붙잡힌 사람에게 배꼽이 달렸는지, 방언을 사용한다고 했는데 아람어(예수 그리스도가 사용한 언어)와 모종의 관계는 없는지, 바늘구멍을 자유자재로 드나들 수 있는지, 혹시 날개 달린 노르웨이 사람이 아닌지 따위를 물어오면서 시간만 낭비하고 있었다.

신의 섭리와 같은 그 사건이 없었더라면 신부는 이런 쓸데없는 편지를 주고받으며 평생을 보냈을 것이다.

 

그러니까 그 무렵이었다. 카리브해에서 건너온 유랑극단은 볼거리가 많았는데, 그 가운데는 부모 말을 듣지 않아서 거미로 변해버린 불쌍한 여자도 있었다.

입장료도 천사 관람료보다 저렴했을 뿐만 아니라 어쩌다 그렇게 처량한 신세가 되었는지 물어볼 수도 있었고, 위아래, 앞뒤를 살펴보고 섬뜩한 사실을 확인할 수도 있었다.

얼굴은 슬픈 표정의 처녀였으나 양(羊)만한 몸집은 무시무시한 독거미 형상이었다.

그러나 사람들은 기괴한 모습보다 그 여자가 얘기하는 구구절절한 사연을 듣고 한층 가슴이 아팠다.

어릴 적 그 여자는 부모 몰래 집을 나와 춤을 추러 갔다.

밤새 춤을 추고 숲길을 통해서 돌아오는데, 엄청난 천둥소리와 함께 하늘이 두 쪽으로 갈라지더니 유황 번개가 내려쳐 그만 거미로 변해버렸다는 것이다.

그 여자의 식사란 인정 많은 사람이 입안에 넣어주는 미트볼이 전부였다.

이같은 광경은 너무나 인간적인 진실과 오싹한 교훈을 담고 있었으므로 인간을 거들떠보지도 않는 천사는 자연히 관심에서 멀어졌다.

더구나 사람들은 천사 덕분이라고 생각하는 몇 안되는 기적을 보고 도무지 갈피를 잡을 수가 없었다.

장님은 눈을 뜨지는 못했으나 치아가 세 개나 돋아났으며, 중풍 환자는 일어나 걸을 수는 없었으나 복권에 당첨됐고, 나병 환자의 환부에서는 해바라기가 피어났다.

위안보다는 조롱거리가 될 법한 이상과 같은 기적 때문에 천사의 명성은 금이 가기 시작했고, 이제 거미로 변한 여자가 출현함으로써 완전히 망가졌다.

이렇게 해서 곤사가 신부의 불면증을 씻은 듯이 나았고, 펠라요 집 마당은 사흘 동안 비가 내리고 게가 침실을 기어다니던 그 시절처럼 적막해졌다.

 

 펠라요 부부는 탄식할 이유가 없었다. 모아놓은 돈으로 발코니에 정원까지 딸린 이층 저택을 지었다.

겨울에 게가 들어오지 못하도록 담을 높이 둘렀고, 천사가 다시는 들어오지 못하도록 쇠창살을 설치했다.

또 펠라요는 마을 근처에 토끼 사육장을 지었고, 경찰서에 사표를 제출했다.

엘리센다는 굽 높은 비단 구두와 알록달록 반짝이는 비단 옷을 구입했다.

당시 멋쟁이 부인들이 일요일에 차려 입고 뽐내던 그런 옷이었다.

그러나 닭장은 손도 대지 않았다.

크레졸로 닭장을 소독을 하고 몰약을 태운 적도 있으나 그것은 천사를 위한 것이 아니라 유령처럼 도처에서 스멀거리며 새 집을 헌 집처럼 만들어버리는 닭똥 냄새를 몰아내기 위한 것이었다. 아이가 걸음마를 시작했을 때 닭장 근처에는 얼씬도 못하게 했다.

그러나 이내 부부는 무서운 일을 잊어버렸고 악취에도 익숙해졌다.

아이는 이를 갈기도 전에 닭장 안에 들어가서 놀았다.

녹이 슨 철망은 여기저기 뚫려있었다.

천사는 다른 사람에게 그랬듯이 아이에게도 냉담했다.

그러나 아무런 생각도 없는 온순한 개처럼 갖가지 장난질도 참고 견뎠다.

천사와 아이는 동시에 수두를 앓았다.

아이를 돌보던 의사는 천사도 진찰하고 싶은 유혹을 떨쳐버릴 수가 없었다.

천사의 심장에서는 심각한 바람 소리가 들리고 신장에서는 요란한 소음이 들려와 살아있다는 게 믿어지지 않았다.

무엇보다도 의사가 놀랐던 것은 날개였다.

완벽하게 인간적인 유기체에 달린 날개가 너무나 자연스럽게 보였으므로 어째서 다른 인간에게는 날개가 없는 것인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아이가 학교에 들어갔을 무렵, 닭장은 비바람을 맞고 오래 전에 폐허가 되어버렸다. 천사는 죽어 가는 떠돌이처럼 이곳저곳으로 몸을 끌고 다녔다.

침실에 들어온 천사를 빗자루로 몰아내면 조금 후 주방에서 나타났다.

동시에 도처에 존재하는 것처럼 보였기 때문에 천사가 온 집안에 복제품을 만들어 놓았다고 생각했다.

화가 치민 엘리센다는 이성을 잃었다.

천사가 우글거리는 이 지옥 같은 곳에서는 도저히 살 수가 없다고 소리를 질렀다.

천사는 거의 먹지도 않았다.

골동품 같은 눈동자는 더욱 흐릿해져서 다니다가 기둥에 부딪치기 일쑤였다.

깃털도 다 빠지고 그나마 남아있는 것도 마치 주사기를 꽂아 놓은 듯했다.

펠라요는 천사에게 담요를 던져주고 곁에서 자도록 선심을 베풀었다.

그 때 비로소 천사가 밤에는 열이 오르고, 고대 노르웨이 언어로 헛소리를 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들 부부는 어쩔 줄을 몰랐다.

천사가 곧 죽을 것 같은데 통통한 이웃집 여자도 천사가 죽으면 어떻게 처리할지 몰랐기 때문이다.

그러나 천사는 혹독한 겨울을 이겨냈고, 봄이 되자 건강도 좋아진 것 같았다. 며칠 동안 아무도 눈에 띄지 않는 마당 구석에서 꼼짝 않고 있었다.

십이월 초순에는 날개에서 크고 단단한 깃털이 돋기 시작했다.

늙은 괴조에게서 깃털이 돋아나다니, 차라리 또 다른 노쇠의 징후라고 해야할 것이다.

그러나 천사는 틀림없이 이러한 변화가 생긴 연유를 알고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아무도 눈치채지 못하도록 극도로 조심했고, 한밤중이면 별을 쳐다보며 가끔 부르는 뱃노래도 주변 사람들이 듣지 못하도록 목소리를 낮추었다.

어느 날 아침 엘리센다가 부엌에서 양파를 썰고 있을 때 바람이 불어왔다.

마친 먼바다에서 불어오는 바람 같았다.

엘리센다는 창밖을 내다보았다. 천사가 날아보려고 날개를 퍼덕이고 있었다.

날갯짓이 서툴러 손톱과 발톱으로 채마밭에 이랑을 만들어 놓았으며, 자꾸만 햇볕에 미끄러지고 공중을 헛 집는 바람에 헛간이 무너질 지경이었다.

그러나 이내 날아올랐다.

늙은 독수리처럼 위태위태하게 몸을 가누면서 마을을 벗어나는 천사를 보았을 때, 엘리센다는 반은 자신을 생각하고 반은 천사를 생각하며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더 이상 보이지 않을 때까지 지켜보고 있었다. 이제 천사는 걱정거리가 아니라 수평선 위에 떠 있는 상상의 점이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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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에게 땅을 주었습니다

 

 

 

                                                                                                                  후안  룰포

 

     

오랜 시간을 걸은 후에 비로소 개 짖는 소리가 들려 왔다. 우리는 나무 그늘이나 옥수수 혹은 그 어떤 식물의 뿌리도 보지 못한 채 마냥 걷고 있었다.


우리는 바람 한 점 없는 이런 길 한복판에는 아무 것도 없을 것이라고 믿었다. 그리고 금이 가고 개울물도 말라 버린 이런 황무지의 끝에서는 아무 것도 발견하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렇지만 개 짖는 소리가 들려 오고, 공기 속에서는 굴뚝에서 흘러나온 연기 냄새를 느낄 수 있었다. 우리는 사람들이 내뿜는 이런 냄새를 마치 한 가닥의 희망처럼 음미하고 있었다.

그러나 마을은 아직 먼 곳에 있었다. 마을 냄새를 이곳까지 가져오는 것은 바로 바람이었다.


우리는 동틀 녘부터 걷고 있었다. 이제 시간은 오후 네 시쯤 된 것 같았다. 누군가가 하늘을 바라보면서 태양이 걸쳐 있는 곳으로 눈을 지긋이 떠서 바라보면서 말했다.

"오후 네 시쯤 된 것 같군."

이 말을 한 사람은 멜리톤이었다. 그와 함께 가고 있던 사람들은 파우스티노, 에스테반, 그리고 나였다. 우리는 모두 네 사람이었다. 나는 그들을 세어 보았다. 두 사람은 앞에, 그리고 나머지 두 사람은 뒤에 가고 있었다. 나는 뒤를 바라보았지만 아무도 보이질 않았다. 그러자 나는 마음속으로 말했다. 《우리는 네 사람이야》 한참 전만 하더라도, 그러니까 오전 열 한시 경만 하더라도 우리 그룹은 모두 스물 한 명이었다. 그러나 한 뭉큼씩 흩어지더니, 이내 우리 네 사람밖에는 남지 않게 되었다.

파우스티노가 말했다.

"비가 올지도 모르겠어."

우리 모두는 얼굴을 들어 머리 위로 지나가는 검고 무거운 구름을 바라보았다. 그리고는 《그럴지도 몰라》 라고 생각했다.


우리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을 말하지 않았다. 이미 오래 전에 말하고 싶은 욕망이 사라졌기 때문이었다. 너무나 더워서 그럴 생각이 없어졌던 것이다. 다른 곳이라면 기꺼이 즐거운 마음으로 말을 건넸을지 모르지만, 이곳에서는 말한다는 것 자체가 매우 힘든 일이었다. 여기에서는 말을 하면, 그 말은 밖의 더위 때문에 입에서 더워지고, 혓바닥에서 말이 말라 버려 마침내는 씩씩거리는 소리밖에는 내지 못하기 때문이었다.

여기에서는 모든 것이 그랬다. 그래서 아무도 말을 하고 싶어하지 않았던 것이다.


크고 두툼한 물방울이 하나 떨어졌다. 그것은 마른땅에 구멍을 내고, 마치 침을 뱉은 것처럼 자국을 남겨 놓았다. 그러나 단지 한 방울만이 떨어졌을 뿐이었다. 우리는 계속해서 더 떨어지기를 바랬다. 그러나 비는 오지 않았다. 이제 하늘을 쳐다보니 소나기구름이 전속력으로 저 멀리 달아나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마을에서 불어오는 바람은 언덕의 푸른 그림자들 반대쪽으로 구름들을 밀치면서 우리에게 다가오고 있었다. 그리고 실수로 떨어진 물방울은 대지가 삼켜 버렸으며, 대지의 갈증 속으로 사라져 버리고 없었다.

"어떤 빌어먹을 놈이 황무지를 이토록 크게 만들었지? 이게 모두 무슨 쓸모가 있나, 안 그래?"


우리는 다시 걷기 시작했다. 우리는 비가 오는지를 바라보기 위해 잠시 걸음을 멈추었다. 이제 우리는 다시 걷고 있었다. 나는 우리가 실제로 걸어온 거리보다 더 많이 걸었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만일 비만 내렸더라도 나는 다른 생각을 했을 것이다. 어쨌거나 나는 내가 어렸을 때부터 황무지 위에 비가 내리는 것을 본 적이 없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러니까 소위 비온다고 말할 정도로 비가 내린 것을 본 적이 없었다.


황무지는 쓸모 있는 땅이 아니었다. 그곳에는 토끼도 없고 새도 없었다. 그곳에는 아무 것도 없었다. 황무지에서 자라는 몇몇 선인장과 칭칭 동여 감고 있던 잡초를 제외하면 아무 것도 없는 땅이었다.


우리는 그런 곳을 지나가고 있었다. 네 사람 모두 그런 곳을 걷고 있었다. 이 일이 있기 전에 우리는 말을 타고서 장총을 비스듬히 걸고 다녔다. 그러나 이제 우리는 장총조차도 갖고 있지 않았다.


나는 항상 우리가 장총을 갖지 못하게 한 것은 잘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이곳에서 무장하고 다니는 것은 매우 위험스런 일일 수도 있기 때문이었다. 허리띠에 항상 30구경 장총을 매고 다니는 사람을 보면 아무런 사전 통보도 없이 죽여 버리는 것이 상례였다. 그러나 말(馬)은 그것과는 다른 문제였다. 만일 말을 타고 왔다면, 우리는 이미 푸른 강물을 맛보았을지도 모르며, 마을의 거리를 누비며 먹을 것을 달라고 하면서 우리의 배를 채웠을지 도 모르는 일이었다. 우리 모두가 예전에 갖고 있었던 말만 있었으면, 이런 모든 것을 이미 했을지도 몰랐다. 그러나 장총과 함께 우리의 말도 빼앗았던 것이었다.

 

나는 사방을 둘러본 후, 다시 황무지를 바라보았다. 그토록 넓은 땅이었지만 아무짝에도 쓸모 없었다. 우리의 눈은 한곳에 고정되지 않고 이리저리 돌아가고 있었다. 바라볼 것이 아무 것도 없었기 때문이다. 단지 도마뱀 몇 마리만이 자기들이 사는 구멍 위로 고개를 쳐들기 위해 나올 뿐이었다. 그러나 작렬하는 햇빛을 느끼자마자 이내 바위 그늘로 숨기 위해 뛰어갔다. 하지만 우리들이 여기에서 일해야만 한다면, 무슨 수로 뜨거운 태양을 피해 몸을 식힐 수 있을 것인가? 우리들에게는 약간의 풀 포기만 자라는 메마른 땅 껍질을 주었고, 그곳에 씨를 뿌리라고 했었다.


그들은 우리에게 말했다.

"마을 저쪽 땅은 모두 당신들 것이오."

그러자 우리는 물었다.

"황무지 말입니까?"

"그렇소. 저 황무지 말이오. 광활한 황무지가 모두 당신들 땅이오."


우리는 고개를 쳐들고 우리가 원하는 것은 황무지가 아니며, 강가에 있는 땅을 원한다고 말하려 했다. 그러니까 그곳은 울창한 나무들과 푸른 초원과 비옥한 땅이 있는 강 저쪽의 평야였다.


그러나 그들은 우리가 말하도록 놔두지 않았다. 정부의 농지개혁 사절단 단장은 우리와 대화를 하러 온 것이 아니었다. 그는 우리 손에 서류를 쥐어 주고는 말했다.

"당신들이 너무 많은 땅이 갖게 되었다는 사실에 놀라지는 마시오."

"단장님, 황무지는......"

"그건 수천, 아니 수만 평의 땅이오."

"하지만 물이 없습니다. 심지어는 입에 적실 물도 없어요."

"비가 내리지 않는다는 소리요? 아무도 당신들에게 관개용수가 있는 땅을 줄 것이라고 말하지는 않았소. 그곳에 비만 내리면, 옥수수가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자라날 것이오."

"하지만 단장님, 그 땅은 메마르고 황폐합니다. 그 땅은 돌과 같아서 쟁기로 파고 들어갈 수도 없다고 생각합니다. 황무지는 바로 그런 땅입니다. 씨앗을 뿌리려면 커다란 쟁기로 구멍을 뚫어야 하고, 그런 식으로 하더라도 씨에서 무언가가 싹트리라는 보장이 하나도 없습니다. 옥수수나 그 어떤 것도 싹을 틔우지 못할 것입니다."

"그런 의견은 서면으로 제출하시오. 그리고 지금은 그만 돌아가시오. 당신들이 공격 해야 할 대상은 대지주들이지, 당신들에게 땅을 준 정부가 아니오."

"단장님, 잠시만 기다려 주세요. 우리는 정부 기관에 항의하려고 온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말하는 것은 황무지가...... 도저히 일굴 수 없는 땅을 일굴 수는 없습니다. 우리가 말한 것은 바로 이런 사실을...... 설명을 드릴 테니 잠시만 기다려 주세요. 우리는 우리가 예전부터 일해 왔던 곳에서 시작하고자......."

하지만 그는 우리의 말을 들으려고 하지 않았다.


이런 식으로 우리에게 땅을 준 것이었다. 이 뜨거운 가마니 속에서 그들은 우리가 씨앗을 뿌려 무언가가 싹을 틔우고 자라는지 보고 싶어했던 것이다. 하지만 여기에서는 아무 것도 자라나지 않을 것이 분명했다. 심지어는 검은 까마귀도 살지 않을 땅이었다. 까마귀들이 시시각각 저 위로 아주 빨리 날아다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그들은 딱딱하고 희멀건 땅에서 가능한 한 빨리 도망치려고 기를 쓰고 있었다. 그런 땅은 바로 아무 것도 움직이지 않고, 사람들만이 힘없이 축 쳐진 채 걸어가는 곳이었다.

멜리톤이 말했다.

"이것이 바로 우리에게 준 땅이야."

그러자 파우스티노가 말했다.

"뭐라고?"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나는 이렇게 생각했다. 《멜리톤은 제 정신이 아니야. 그렇게 말하는 것은 바로 더위 때문일 거야. 더위가 그의 모자를 뚫고 들어와 머리를 뜨겁게 해서 그렇게 돌아 버린 거야. 만일 그렇지 않다면 왜 그런 말을 하겠어? 멜리톤, 도대체 우리에게 무슨 땅을 주었다는 거야? 그런 곳은 잔잔한 바람이 오다가도, 이내 회오리바람으로 변하는 곳이야.》

멜리톤은 다시 말을 했다.

"무언가에 쓸모가 있을 거야. 당나귀들이 뛰어 노는 데라도 사용될 수 있을 거야."


그러자 에스테반이 물었다.

"무슨 당나귀?"

나는 얼마 전까지만 해도 에스테반을 주의 깊게 살펴보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 그는 말하고 있었고, 그래서 나는 그를 유심히 쳐다보았다. 그는 외투를 입고 있었지만, 그것은 기껏해야 배꼽까지밖에는 닿지 않았다. 그런데 외투 아래에서 암탉 같은 것이 고개를 내밀었다.


그랬다. 에스테반이 외투 아래에 숨겨서 갖고 오던 것은 울긋불긋한 암탉이었다. 눈 은 졸린 듯이 감겨 있었고, 주둥이는 하품을 하듯이 벌리고 있었다. 나는 그에게 물었다.

"이봐, 에스테반. 그 닭은 어디서 훔친 거야?"

에스테반이 대답했다. 

"내 거야"

"아침나절만 해도 없었잖아. 도대체 어디서 훔친 거야?"

"훔친 게 아니야. 내 닭장에 있던 닭이야."

"그럼 잡아먹으려고 가져온 거야?"

"아니야. 보살펴 주려고 갖고 온 거야. 집이 텅 비어 있어서 먹을 것을 줄 사람이 없어. 그래서 가져온 거야. 내가 멀리 갈 때면 항상 이 암탉을 데리고 다녀."

"그곳에 숨겨 두면 질식해 죽을지도 몰라. 그러니 꺼내 놓는 것이 좋을 것 같아."

그는 자기 팔 밑으로 닭을 편안하게 안은 다음, 자기 입에서 나오는 뜨거운 공기를 불어 주었다. 그리고는 말했다.

"이제 벼랑에 다다르고 있어."


나는 에스테반이 계속해서 말하는 것을 듣지 않았다. 우리는 줄을 지어 벼랑을 내려갔다. 그는 제일 선두에 섰다. 그리고 암탉 다리를 쥐어 잡고는 머리가 다리에 부딪히지 않도록 때때로 이리 저리 흔들어 주고 있었다.


내려갈수록 땅은 좋아지고 있었다. 마치 노새가 성급히 뛰어 내려가듯이, 우리 위로 먼지가 일었다. 하지만 우리는 먼지로 뒤덮여도 좋았다. 우리는 그런 것을 좋아했다. 11시간 동안이나 딱딱한 황무지만을 밟고 온 이후에, 우리는 우리 위로 치솟으면서 땅 냄새 풍기는 먼지를 즐거운 마음으로 뒤집어쓰고 있었다.


강 건너 저쪽으로 울창한 푸른 나뭇잎 위로 초록색의 들새 무리가 날아다니고 있었다. 이것 역시 우리가 좋아하는 것이었다.


이제 우리 옆에서 개 짖는 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마을에서 불어오는 바람은 벼랑에 부딪치면서 벼랑을 온통 개 짖는 소리로 뒤덮었다.


우리가 제일 먼저 눈에 띄는 집들로 다가가자, 에스테반은 자기 닭을 꽉 껴안았다. 그리고는 움켜쥐었던 다리를 놓아서 저린 다리를 풀어 주었다. 그런 후 그와 그의 암탉은 선인장 숲 뒤로 사라졌다.


"난 여기에서 살 거야!"

에스테반이 우리에게 말했다.

우리는 계속해서 앞으로 나아가면서 마을 안쪽으로 들어갔다.

이제 우리에게 준 땅은 저 뒤쪽에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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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날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



    월요일은 희미하게 밝아 왔다. 그러나 비는 오지 않았다. 아우렐리오 에스코바르 씨는 여섯 시에 치료실 문을 열었다. 그는 무면허 치과 의사였으나 매우 부지런한 사람이었다.

 진열장에서 아직 석고틀이 붙어 있는 의치를 꺼냈고, 의료 기구 한 줌을 크기에 맞추어 무슨 전시회처럼 정리해 놓았다. 그는 금박 단추로 목 언저리까지 채운 칼라 없는 줄무늬 셔츠를 입었고, 바지는 고무줄 멜빵으로 걸치고 있었다. 그는 무뚝뚝하고 말수가 적었으며, 마치 귀머거리처럼 좀처럼 주위로 시선을 돌리지 않았다.

    탁자 위의 물건을 정리한 후에 천공기를 의자 쪽으로 밀어 놓고 의치를 다듬기 위해 자리에 앉았다. 자신이 하는 일에 대해 전혀 생각하지 않는 것 같아 보였으나 천공기를 사용하지 않을 때에도 계속 페달을 밟으며 고집스럽게 작업해 나갔다.

    여덟 시가 지나자 창문을 통해 하늘을 보기 위하여 잠시 작업을 멈추고 이웃집 용마루에서 햇볕을 쬐고 있는 두어 마리의 얼빠진 듯한 매를 바라보았다. 점심 전에 다시 비가 퍼부을 거라 생각하며 작업을 계속했다. 열한 살 먹은 아들의 고르지 못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빠!”

    “뭐냐?”

    “읍장님께서 어금니 하나를 뽑아 줄 수 있는지 물으시는데요.”

    “여기 없다고 하려무나.”

    치과 의사는 금니를 다듬고 있었다. 그는 그것을 들어 팔을 쭉 뻗은 채 눈을 반쯤 감고 살펴보았다. 대기실에서 아들이 다시 소리쳤다.

    “있다는 것 아신대요. 말씀을 듣고 계시거든요.”

    치과 의사는 계속 금니를 살펴보았다. 작업을 다 마치고 금니를 탁자 위에 놓은 후에야 말했다.

    “좋군.”

    다시 천공기를 작동시켰다. 일거리를 보관해 두는 마분지 상자에서 여러 조각으로 된 받침대를 꺼내어 금을 세공하기 시작했다.

    “아빠!”

    “뭐냐?”

    아직도 말투가 바뀌지 않았다.

    “만일 어금니를 뽑아 주지 않으면 한 방 쏴버리겠다고 하시는데요.”

    치과 의사는 서두르지 않고 극히 침착한 동작으로 천공기 페달을 멈추었다. 의자에서 천공기를 밀어내고, 탁자의 아래 서랍을 열었다. 그곳에 연발 권총 한 자루가 있었다.

    “좋아, 쏘라고 하려무나.”

    그는 의자를 돌려 문 바로 앞에 놓아두고 한 손은 서랍 가장자리에 두었다. 

읍장이 문지방에 나타났다. 왼쪽 뺨은 면도를 했으나, 부어 올랐고 통증이 있는 반대편은 지난 닷새 간의 수염을 고스란히 지니고 있었다. 치과 의사는 읍장의 시든 눈에서 수많은 절망의 밤을 볼 수 있었다. 그는 손가락 끝으로 서랍을 닫고 나서 부드럽게 말했다.

    “앉으시오.”

    “안녕하쇼.”

    읍장이 말했다.

    “안녕하시오.”

    치과 의사가 말했다.

    기구를 끓이는 동안 읍장은 머리를 의자의 머리받이에 기대고 한결 나아짐을 느꼈다. 

냉랭한 기운이 감돌았다. 초라한 치료실이었다. 낡은 나무 의자, 페달용 천공기, 자기로 된 향수병이 들어 있는 진열장이 전부였다. 의자 앞에는 사람 키 높이의 커튼이 달린 창문이 있었다. 치과 의사가 다가온다고 느꼈을 때 읍장은 발뒤꿈치를 단단히 붙이고 입을 벌렸다.

    치과 의사는 읍장의 얼굴을 빛이 있는 쪽으로 돌렸다. 상한 어금니를 살펴 본 후 손가락에 조심스럽게 힘을 주어 턱을 고정시켰다.

    “마취 안하고 해야겠군.”

    치과 의사가 말했다.

    “왜?”

    “종양이 생겨서...”

    읍장은 눈을 크게 뜨고 치과 의사를 바라보았다.

    “좋아요.”

    읍장이 말했다. 그리고 웃어 보이려 했다. 치과 의사는 대꾸하지 않았다. 끓인 기구가 담긴 냄비를 작업 탁자로 옮겨와서 차가운 핀셋으로 기구를 건져냈다. 여전히 서두르지 않았다. 구두코로 타구(唾具)를 돌려놓고 세면기로 손을 씻으러 갔다. 읍장을 쳐다보지도 않는 채 모든 일을 했다. 그러나 읍장은 그를 시선에서 놓치지 않았다.

    아래쪽 사랑니였다. 치과 의사는 입을 벌리고 뜨거운 집게로 어금니를 짓눌렀다. 읍장은 의자 팔걸이를 움켜쥐고 다리에 힘을 주었다. 아주 깊숙한 곳에서 얼어붙는 듯한 공허를 느꼈으나 고통을 토해 내진 않았다. 치과 의사는 단지 손목만을 움직였다. 아무런 증오 없이, 오히려 씁쓸한 부드러움으로. 그리고 말했다.

    “이것으로 스무 명의 죽음에 대한 대가를 지불한 것이오, 중위.”

    읍장은 턱에서 뼈마디가 삐걱거리는 것을 느꼈고, 두 눈은 눈물로 가득 찼다. 그러나 어금니가 뽑혀져 나오는 것을 느끼지 않으려고 한숨도 쉬지 않았다. 그때 눈물 속에서 어금니를 보았다. 그의 고통에 비해 너무 어처구니없게 보였다. 그래서 지난 닷새간의 밤의 고문을 이해할 수 없었다. 땀을 뻘뻘 흘리고 헐떡거리며 타구로 몸을 기울이고 군복 상의 단추를 풀었으며, 바지 주머니에서 손수건을 더듬더듬 찾았다. 치과 의사가 읍장에게 깨끗한 수건을 건네주었다.

    “눈물을 닦으시오.”

    읍장은 눈물을 닦았다. 떨고 있었다. 치과 의사가 손을 씻는 동안 읍장은 밑이 빠진 천장을 올려보고 거미알과 죽은 곤충이 널려 있는 먼지 낀 거미줄을 바라보았다. 치과 의사가 손을 닦으며 돌아왔다. ‘누우세요. 소금물로 입을 헹구시고.’ 그러나 읍장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군대식 인사로 작별을 고하고 다리를 끌며 문께로 나아갔다. 군복 상의 단추는 채우지 않고 있었다.

    “계산서를 보내시오.”

    “당신에게, 아니면 읍사무소로?”

    읍장은 그를 쳐다보지 않았다. 문을 닫고 철망 너머로 말했다.

    “마찬가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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