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의 불빛은 아름답다. 밤을 밝히는 그 노란 빨간 하얀 불빛들이, 특히 한강 다리의 초록 보라 등의 불빛들이 마음을 사로잡는다. 어둠이 없는 도시. 아니, 어둠을 물리쳐낸 도시의 불야성은 그 노고만큼 아름답게 보이는지 모른다.

하지만, 하동에서 서울로 올라오는 버스 차창 밖. 시골의 논두렁이 환하다. 비닐하우스 속에서 몇만촉의 빛을 발하고 있다. 이 빛은 전혀 아름답게 느껴지지 않는다. 다 먹고 살자고 하는 일인지도 모른다. 농한기라는 겨울에도 작물을 키워야 하는 농부의 마음이 오죽할지 짐작이 안가는 것도 아니다.

그러나 어둠은 때론 휴식이다. 세상을 잊게 만든다. 감시의 눈초리로부터 도망치도록 도와준다. 망각으로 인도함으로써 내일의 빛 속에서 움직일 수 있는 힘을 준다. 어둠은 철저히 어두워야 제맛이다. 시골에서 바라보는 달빛과 별빛이 아름다운 것은 어둠 덕분이다. 이 어둠이 시골에서도 사라졌다.

도시의 빛은 그토록 아름다웠건만 새하얀 하우스의 불빛은 눈을 거스린다. 도로 위를 지나쳐가는 나그네의 심정으로 바라보기 때문일련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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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racina 2006-12-10 20: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엉뚱하지만 빛에 대한 말씀을 하시니, 사진전이 생각나요. 예술의 전당서 본 만레이전 만레이전 & 세계사진역사전 생각요.솔라리제이션기법처럼 세상과 또 다른 세계에 관해,주인장님께서 독특한 빛을 발하여 주시는 것 아시죠? 영혼이 황페할 때 늘 힘이 된답니다^^감사& 미리 메리 크리스마스! 늘 건강하세요~

하루살이 2006-12-11 09: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고맙습니다^^ 제 황폐한 영혼도 따스해지네요. 님도 미리 메리 크리스마스~.
 

최근 스포츠클라이밍 기초교육을 받았다. 월수금 일주일에 3일 2시간씩 한달간 진행된 교육은 결석이 4번 이상 되면 수료증을 받을 수 없다. 정확하게 3번 결석하고 수강을 끝낸 덕분에 다행히도 수료증을 받았다. 교육은 상당히 힘들어 다음날이면 으례 몸이 찌뿌등했다. 2시간 내내 암벽을 오른 것도 아니고, 기껏해야 15분 정도, 잘 하면 2번 15미터의 벽을 오르는 정도인데도 말이다.

옆길로 새고 말았는데 하고 싶은 말은 클라이밍이 힘들다는 것이 아니라, 죽는다는 것의 공포감에 대해서다. 벌써 3년 가까이 되는 교통사고의 기억은 죽음이라기 보다는 그저 잠깐의 망각 정도로 기억된다. 살아남았기 때문에 돌이켜보면 죽음의 그림자보다는 해프닝의 햇살만 보인다는 것이다.

클라이밍을 할 때는 자일을 허리에 걸고 오른다. 안정장비를 다 갖추고서 오른다는 말이다. 마지막주 월요일 수업때는 추락실습도 있는데 12미터 쯤에서 8미터가량을 떨어져 혼쭐났다. 하지만 죽음의 냄새보다는 그저 아찔하다는 생각뿐이었다. 그렇다고 죽음에 대해 겁을 내지 않는 강심장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다. 혹시나 매듭을 잘못 매서, 또는 확보자가 하강기를 실수로 다루어서 떨어지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을 항상 갖고 벽을 오른다. 떨어지면 죽을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머릿속에서 떠난 적은 없다는 것이다. 하지만 암벽을 대할때면 이런 생각은 사라지고, 한번에 끝까지 올라서겠다는 의지만 불타오른다. 물론 팔에 힘이 떨어져 추락할때는 긴장하지만 말이다.

몇일 전 꿈을 꿨다. 소총을 든 사내들이 나를 트럭 뒤칸에 실으려한다. 나 이외에도 많은 사람들이 줄지어 트럭에 오른다. 가슴이 두근두근. 어느덧 널따란 평원에서 차는 멈추고 다들 트럭에서 내린다. 그런데 갑자기 나 혼자 줄에서 이탈해 다른 쪽으로 끌려간다. 그리고 찾아오는 죽음의 그림자. 총을 든 사내들이 거총을 한 것도 아닌데 끌려가는 내내 죽음에의 공포감이 밀려왔다. 이대로 죽는건가 라는 생각이 꼬리를 물자 온 몸이 떨려오기 시작했다. 꿈 속인데도 말이다. 너무 무서웠다. 살고싶었다. 이토록 내가 강렬하게 삶을 원했었나 하는 생각이 머리에 스치기 시작했다. 그리고 눈을 떴다. 그래 이렇게 살아있구나. 난 이토록 살고싶었구나.

최근 읽었던 일본 소설 <종말의 바보>가 생각났다. 어떤 일이 있더라도 악착같이 살아라. 삶은 이렇게도 고귀한 것이었음을 꿈을 통해 느낀다. 왜 이런 꿈을 꾸었을까 생각해보다 사는게 사는 것 답게 살아야겠다는 다짐으로 이불을 걷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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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이야 2006-10-03 02: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늘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을 보고도 이런 생각이 들었어요. 하루살이님, 정말 악몽이었지만 깨달음을 얻었네요 ^^ 스포츠클라이밍을 하시다니 대단하십니다..

하루살이 2006-10-03 09: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저도 영화 <우행시> 꼭 보고싶었는데...
클라이밍은 기초 교육만 받았어요. 제가 써 놓은 글 읽어보니 굉장히 어려운 것처럼 느껴지네요. 그런데 실제론 만만하답니다. 몸매 바르게 잡아주는데 최고일듯하니 혹 시간이 나신다면 도전해보세요. 안전장비만 유의한다면 정말 괜찮은 운동같아요.^^
 

 호주라는 나라 전체가 그러한지는 잘 모르겠지만, 한적한 시골마을의 노인들은 일상 생활 속에서 자신의 장례식 때 쓸 음악에 대해 이야기하곤 한다는군요. 라디오에서 들은 이야기인데 이 때 로드 스튜어트의 sailing 음악이 나오더군요. 참 절묘하다 생각했죠. 그러면서 들은 생각이 그럼, 난 어떤 음악으로 나의 마지막 길을 장식할까 였습니다. 나를 정리하는 음악이라...

딱히 떠오르는 음악이 없더군요. 하지만 김현식이나 김광석의 노래면 괜찮겠다 싶어요. 김현식의 하모니카나 김광석의 통키타 소리만으로도 충분하지 않을까. 먼저 떠나버린 청춘들을 생각하며 조금은 마음의 깊은 샘으로 침잠할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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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모도에는 삼량염전이 있었다.  있었다라고 말한건 올해 모두 폐전됐기 때문이다. 전 세계 천일염 생산의 60% 정도를 책임졌던 한국의 염전이 점차 사라져가고 있다. 중국과 멕시코의 염산에서 캐낸 소금들이 수입되면서 그 자리를 대신 차지하고 있다. 값싼 소금을 통해 값싼 음식을 마음껏 맛볼수 있다는 좋은 점이 있다고 말할 수 있을지 모르겠으나, 일단 천일염이라는 것과 산에서 캐낸 소금과는 그 무기질의 구성성분 자체가 다르다. 이것이 소금을 필요로 하는 음식에 어떤 영향을 줄지는 모르겠다.. 건강에도 분명 영향을 끼칠 테지만 그것이 금방 나타나는 성질의 것이 아니니 무어라 평가하기도 함들다.

또한 염전을 꾸려왔던 어민들의 삶은 어떠할 것인지 생각해보면 아득한 느낌이다. 그래서 폐염전의 모습은 마치 무덤처럼 다가온다. 희끗희끗한 소금기하나 발견할 수 없는 곳. 타일같은 것이 쌓여 있는 것이 마치 각각의 무덤처럼 을씨년스럽다. 허물어지진 않았지만 문을 닫아버린 소금창고는 생기를 잃고 쓰러질듯 하다.전국 대부분의 폐염전들은 생태공원 등으로 탈바꿈한다고 하는데 그것이나마 잘 진행되기를 바랄뿐이다. 무덤에 꽃이 피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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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란여우 2006-06-22 13: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소금과 빛
우리에게 소금없는 삶이 과연 존재할 수 있을까 하는 물음에는 존재할 수 있다입니다. 그만큼 현대인의 미각이 환골탈태한 것만은 분명해요. 그런데 혀가 지니고 있는 짠맛의 미감을 혈관에서조차 상실하기에는 더 많은 시간이 흘러야겠지요. 그만큼 소금은 곧 생명과 직결되는 뜨거운 문제입니다. 그럼에도 산업자본화, 디지털이윤화 라는 명목으로 천일염이 사라지고 대체한다는 것이 광물성인데,,전 그 산에서 캐낸 소금이 꼭 돌가루 씹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다 내주고 알몸으로 버티고 있다가 스러져가는 것들, 하루살이님의 글과 사진에서 그것을 바라보는 안타까운 마음이 엿보입니다.

하루살이 2006-06-22 13: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또 얼마나 많은 것들이 우리 주변에서 사라질지...
그것이 사라져야 할 운명이 아님에도 누구인가의 이익이나 맹목 때문이라면 얼마나 슬픈 일입니까?
 

석모도로 가기 위해서는 강화도 외포리에서 배를 타야 한다. 이 배에 올라서면 갈매기들이 떼로 몰려든다. 관광객이 던져주는 새우깡을 받아먹기 위해서다. 리처드 바크의 '갈매기의 꿈' 에 등장하는 갈매기는 눈을 씻고 찾아봐도 찾을 수 없다.
사냥의 본능마저 잃어버린 애완동물 갈매기. 하지만 이 갈매기들이 정말 구경거리로 전락한 것일까? 살아남기 위한 방편으로서 택한 길일 뿐이지 않을까?
갈매기들의 눈은 매서웠고 날갯짓은 치열했다. 삶을, 생존을 향한 그들의 몸짓을 비아냥거리기에는 어딘가 모를 애달픔이 있다. 살아남는다는 것은 누구에게나 치열하다. 갈매기들의 모습 뒤에는 삶의 고달픔이 서려 있다.
보다 쉬운 방법으로 생계를 해결하려는 진화의 모습을 엿봤지만, 실은 그것이 멸종으로 가는 길일지도 모른다는 우려. 그것은 갈매기뿐만 아니라 바로 우리들의 모습일지도 모른다. 갈매기의 날갯짓에서 우리의 자화상을 얼핏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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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란여우 2006-06-22 13: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외포리 나룻터에서 배를 기다리며 쭈그려 앉아 먹던 망둥이 회맛이 생각납니다.
바람, 겁나게 불던 겨울이었지요.
동동주 한 잔 마시고 배를 타서 새우깡에 미쳐 덤벼드는 녀석들을 보며 씁쓸했던.
곧 보문사 사진도 올라오겠군요^^

하루살이 2006-06-22 13: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어... 보문사 사진은 올릴 생각이 없었는데요 ^^;;;
낙조도 찍은게 있지만 흔한 것 같기도 해서...
일단 휴지통에 넣어둔 것 다시 찾아봐야 할련가...^^